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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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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여행 이야기-그랜드케어년의 숨결 댓글:  조회:691  추천:0  2019-11-22
기행 수필 그랜드캐년의 숨결     나는 지금 태평양 위를 몇 시간 째 날고 있다. 감기려던 눈이 커튼이 열려진 창밖으로부터 갑자기 쏟아져 들어온 강한 햇볕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졸음이 싹 달아났다. 나는 내 눈을 자극한 햇볕 가득한 무한대의 창밖 광경을 응시한다. 깨끗하고 보송보송한 하얀 솜털 같은 구름 위에서의 느린 움직임. 그 위에 펼쳐진 무한대의 쪽빛 창공…저 신비한 우주 속엔 아직도 숨겨진 비밀들이 얼마나 있을까? 옛날엔 어떠했었고 미래엔 또 어떤 변화들이 생길까? 끝없는 상상의 시뮬레이션 속으로 갑자기 내가 반년 이상을 밟고 다녔던 미국 땅의 이모저모들이 망망한 운해위로 둥실둥실 떠오른다.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그 많은 그림들 속에서 문득 내 눈앞에 힘차게 박두하고 있는 풍경하나-길이 447km나 되는 기다란 몸뚱이를 늘어뜨리고 조용히 누워있는 대자연의 신비한 조화물-그랜드캐년이다. 어린 시절, 시드니셀던의 를 즐겨 읽었던 나는 미국 땅의 이모저모에 대해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반년 넘게 미국 땅을 둘러보며 정말 많은 곳을 보았다. 10만여 평의 부지에 세워진 동화 속세계 디즈니랜드, 텍사스주의 대초원, 애리조나주의 메마른 사막, 그 사막위에 어느 마피아가 생각해 건설했다는 전설같이 이루어진 전 세계서 가장 유명한 카지노 유답지ㅡ라스베가스! 태평양 서해안의 맑고 시원한 바다 바람결에 여인들의 긴 머리가 아름답게 날리는 캘리포니아주! 세계영화인들의 성지인 헐리우드 유니벨리스 그 명예의 거리엔 2,500여 명의 세상에 이름을 날린 명배우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그리고 스탠포드 대학의 성당과 평화로운 잔디밭, IT천재들이 모여 있는 구글과 애플 회사의 콧대 높은 깃발들!…그러나 이 시각 내 머리를 꽉 채우고 있는 것은 이 모든 것들의 황홀함과 신비에 대한 경탄이 아니라 바로 그 깊은 추억에 잠들고 있는 듯한 그랜드캐년의 모습이다. 원래 그랜드캐년으로의 여행은 집 애들의 계획이 아니었다. 나와 같이 여행을 같이한 애들은 라스베가스에서 며칠 더 즐기자고 졸라댔다. 애들의 말대로라면, 200년 전의 미국을 알려면 뉴욕을 가보고 100년 전의 미국을 알려면 샌프란시스코를 가보며 50년 전의 미국을 알려면 로스앤젤레스를 가보고 오늘의 미국을 알려면 라스베가스를 가보란다는 것이다. 그만큼 라스베가스의 유혹은 무척 컸다. 그러나 이번 여행길에서의 빠질 수 없는 나의 목적지는 그랜드캐년이었다. 끝내는 나의 고집대로 라스베가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그랜드캐년을 향해 떠났다. 라스베가스에서 자가용을 타고 6시간이라는 긴 여정을 거쳐 도착한 곳은 그랜드캐년 인근에 자리 잡고 있는 유답지 숙박시설로 이루어진 한 마을의 통나무 집 숙박소였다. 아주 소박하게 꾸려졌지만 호텔 못지않게 서비스업이 고루 잘 갖추어져 아주 편안하였다. 물론 들어서면서 로비 벽에 걸려있는 그랜드캐년에 관한 소개가 제일 먼저 눈에 띠었다. 그랜드캐년은 에리조나주 콜로라도 강이 콜로라도 고원읕 가로질러 형성된 대 협곡이다. 애리조나주 북쪽 경계선 근처에 있는 파리아강 어구에서 시작하여 네다바주 경계선 근처에 있는 그랜드워시 절벽까지 구불구불 이어져 그 길이가 무려 447km. 너비6~30km 깊이1.500m로 넓고 깊은 협곡은 불가사의한 경관을 보여 준다. 그랜드캐년과의 만남을 상상하며 설레는 가슴을 꾹 누르고 잠을 설친 나는 이튿날 약 1 시간가량의 차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물론 연중 내내 개방하는 사우스림은 42km 거리의 데저트뷰 드라이브가 공원까지나 있다. 차에서 내리기가 바쁘게 나는 뭇 관광객들을 헤치며 부랴부랴 협곡 변두리로 달려갔다. 오, 그랜드캐년! 내가 이곳을 이렇게 집착하게 된 것은 10년 전 서울 63 빌딩에서 본, 세계가 열광한 아이맥스 영화의 걸작-그랜드캐년을 본 후이다. 1540년, 스페인 정부가 전설속의 황금도시를 찾아 탐험대를 조직하여 나섰는데 그중 데마르데니스가 이끄는 탐험대가 미 서부를 탐험하다 발견해낸 곳이 바로 그랜드캐년이다. 금광을 찾아 헤매던 그들은 비록 꿈속의 황금도시는 찾아내지 못했지만 북아메리카의 존재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다고 한다. 내가 본 아이맥스 영화는 1869년 미국 정부로부터 특명을 받은 존 웨슬리 파월 소령과 탐험대원들이 역사적인 그랜드캐년 답사에 도전하는 모험기를 재현해낸 것이다. 어마어마한 산더미같이 눈앞에 쏟아져 나오는 아이맥스 특수 효과의 장면들과 광음들. 그랜드캐년은 몇 천년 깊숙이 묻어 놓았던 자기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인류와 맞서 대성질호하고 포효하였다. 그러나 탐험대들은 이 낯선 대자연과 사투를 벌이며 캐년의 가슴속을 하나하나 들추어냈다. 형형색색의 오묘한 빛깔로 유혹하는 깊은 계곡의 아름다움과 바위 속에 새겨진 수많은 전설. 콜로라도강의 날뛰는 거친 숨소리. 그 강위의 탐험대들을 태운 뗏목들의 아찔아찔하고 위험천만한 질주. 나는 그 용맹한 슈퍼맨들로 하여 가슴이 뛰었고 무궁무진한 비밀을 안고 있는 캐년의 신비롭고 장엄한 품위에 경탄을 그칠 수 없었다. 그랜드캐년에 가보는 것은 나의 여행 소망이었다. 어디보자 그랜드캐년 우리가 왔다! 아니, 그런데 우리 눈앞에 펼쳐진 이 생소한 풍경은 무엇인가?! 캐년은 갑옷 같은 세월의 연륜을 쓰고 조용히 누워 있었다. 아이맥스 영화로 하여 우리 머리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던 그의 모습은 자취를 감추었다. 날뛰는 사자 같은 모습, 협곡의 깊고 폭 넓은 물결의 거센 파도, 울울창창한 숲과 사나운 짐승들. 아아한 절벽과 그 동굴속에서 원시인의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던 아사나사족- 모두 어디로 갔나?…한참만에야 나는 눈앞의 현실로 돌아왔다. 아아. 그래, 그 모든 것은 내가 영화에서 본 4천 년 전의 일이었다. 숙박소에 그랜드캐년의 현재 모습이 사진으로 찍혀 있었지만 내 상상에만 너무 몰두하고 있던 나는 그 상세한 소개와 사진들을 다 흘려버렸던 것이다. 지금 내 눈앞의 캐년은 어찌 보면 길디긴 몸뚱이를 늘어뜨리고 누워있는 거용의 미라 같은 환각까지 든다. 나는 마음을 다시 한 번 안정시키고 머릿속에 각인된 영상을 털어버리며 우리를 맞이하는 낯선 그랜드캐년을 답사한다. 1.7000년 전 지구 깊숙한 곳의 압력이 위쪽의 땅덩어리를 들어 올려 오늘날의 콜로라도고원이 이루어졌으며 그 고원이 500년 동안의 침식 작용, 콜로라도강과 매서운 바람, 얼음사태들의 대거습격으로 고원 속에 세계에서 제일 깊은 오늘의 캐년을 태어나게 했다. 강에 의해 침식된 계단모양의 협곡과 색색의 단층. 기암괴석들…1,500m 높이의 캐년의 절벽엔 20억년이라는 지구의 지질학 역사를 보여주는 암석층의 속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거대한 퇴적물이 침식작용으로 생성된 여러 가지 줄무늬를 바라보며, ‘지질학교과서’란 말이 왜 나왔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정말 학술적인 가치가 대단한 곳이다. 협곡의 저 깊은 아래쪽에는 원시 바닷말도 보이며 그 위쪽에는 중성대의 조개와 삼엽층, 공룡의 뼈와 발자국. 낙타. 말. 코끼리의 화석등도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의 이 말없는 캐년은 옛날과는 또 다른 마력으로 온 세계 관광객들을 흡입하고 있는 모양이다. 노새를 타거나 경비행기를 타고 캐년을 샅샅이 누비는 관광객도 있다. 젊은층의 관광객들은 가파른 절벽길을 따라 협곡의 밑층으로 내려간다. 내리고 다시 올라오는 데는 모험도 모험이고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릴 테지만 이 변천한 협곡의 깊숙한 곳의 비밀을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고 손으로 만져보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 수 없는 모양이다. 나도 절반쯤 내려가는데 “위험해요, 너무 힘들어요, 올라오세요.”하고 위에서 소리치는 애들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힘겹게 올라왔다. 물론 사우스림의 절벽을 따라 전망대가 설치되어 협곡을 내려다볼 수 있어도 말이다. 그랜드캐년의 양안에 무한대로 펼쳐진 고원은 맨 가슴으로가 아니라 각종 이름 모를 초목들을 키우며 캐년이란 이 기다란 거물의 숨결을 완강히 영위하고 있었다.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 품안에 상상 밖으로 70여종의 동물들과 250여종의 새들, 25종의 파충류들이 살고 있단다. 가장 흔한 동물은 다람쥐, 코요테, 여우, 사슴, 오소리, 시라소니 등등이란다. 그렇다. 그랜드캐년은 누워있는 미라가 아니라 유서 깊은 가슴에 아직도 특유의 생명들을 키우고 있는 커다란 생령이었다. 그는 조용히 누워서 초창기의 황홀했던 젊은 시절을 상기시켜 주고 그 옛날 자기 가슴에 겁 없이 뛰어든 용맹한 탐험대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으며 인류의 힘으로 막아낼 수 없는 대자연의 변천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루 종일 8월의 뙤약볕을 받으며 협곡의 둘렛길과 골짜기 중턱까지 답사했던 나는 몸이 지칠 대로 지쳤지만 알 수 없는 격정에 가슴이 설레었다. 식을 줄 모르고 타오르던 태양이 이제는 협곡의 건너편 저 멀리 고원의 지평선에 걸려 불그스레한 원형을 드러내고 있다. 열기가 많이 식었다. 캐년의 절벽은 시간에 따라 색을 달리한다. 아침에는 은색과 금색으로 반짝이다가 정오에는 연한 갈색으로 바뀌고 해질 무렵에는 붉은 색이 되어 버린다. 달빛이 은은한 밤이면 주위는 어느새 시원한 푸른색으로 변하기도 한단다. 유람객들은 협곡 변두리에 꾸려진 작은 공원들에서 셀카를 들고 이곳에서 또 하나의 멋진 풍경으로 알려진 일몰을 렌즈에 잡아넣느라 분주하다. 캐년은 제일먼저 어둠의 면사포를 끌어당겨 비밀스런 자기 깊은 곬 을 가리기 시작한다. 나는 한국의 동해바다, 서해바다, 남해바다를 돌아다니며 수평선의 멋진 일출과 일몰을 수 없이 카메라에 집어넣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협곡의 이모저모를 들고 다니는 아이패드에 나름대로 골라 많이 찍었다. 그러나 바로 지금 눈앞에 놓인, 내리 깔리는 어둠속에서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협곡을 사이 두고 끝없는 광야의 저 끝에서 열기를 다 식힌 빨간 태양이 마지막 빛살을 지평선에 꽂아 놓고 어둠의 도래를 예고하는 캐년의 일몰이 이처럼 장엄하고 아름다울 줄 몰랐다. 그것은 단하나의 화면으로서는 도저히 그 정서를 집어낼 수 없는, 공포와 황홀함의 조화물인 절묘한 광경이었다. 백발이 된 한 할아버지가, 그러나 아직은 체구가 퍽 건강한 미국인이 나를 보고 얼마나 멋있느냐는 뜻으로 두 팔을 벌리며 어깨를 으쓱한다. 나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무심결에 그를 조용히 훑어본다. 얼굴엔 지울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 가득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정수리엔 머리가 다 빠지고 둥그렇게 뒷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백발은 석양빛을 받으며 저녁 바람에 힘없이 날리고 있었다. 문득 나는 그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은 어떠했을까 상상해본다 피 끓는 청춘의 그 나날, 그에게도 저 캐년과 같이 무성한 수림과 넘치는 정력, 그리고 콜로라도강 같이 힘찬 인생분투의 질주가 있었으리라. 그리고 그 슈퍼맨과 같이 멋진 체구와 불타는 눈동자의 얼굴을 가진 젊음의 가슴엔 그만이 추억할 수 있는 많은 스토리들이 묻혀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 대자연도, 인간도 세월의 변천을 이겨내지 못한다. 그래서 이 세상에 지금의 그랜드캐년이란 기적이 태어났다. 1919년에 캐년은 미국의 자랑스러운 국민공원으로 선정되었고, 1979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랜드캐년은 세월이 가져다준 변천의 또 다른 가치로 이 세상에 새로운 기상과 매력을 호소하고 있다…. “손님. 양식으로 드실래요, 한식으로 드실래요?” 식단 차를 밀고 온 스튜어디스가 내 사색을 깨뜨린다. 안녕, 캐년! 나의 여행코스에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이정표여! 2016년 9월                  서울에서 
8    박람회에 가다 댓글:  조회:430  추천:0  2019-11-22
기행문 오월, 강원도 GTI 박람회 팸투어 류 재순 여왕의 계절 오월은 힐 링의 계절이며 감성 충전의 계절이다. 빛나는 태양과 황홀한 꽃향기와 싱그런 풀내음, 무르익는 신록에 산소가득 불어오는 애교스런 봄바람은 도저히 창문을 닫고 집안에 앉아 베길 수 없어 어디론가 떠나고 싶게 하는 베낭의 계절이다.   바로 이 좋은 계절이면 강원 도청 글로벌 투자 통상국에서는 벌써 5년째, 길림신문사와 손잡고 GTI 박람회 추진 팀을 만들어 강원도의 명승지들과 그곳에서 펼쳐지는 박람회의 알찬 정보들을 선보이고 있다.   5월 28일, 길림신문사에서 중국동포단체 및 언론인으로 조직한 GTI 박람회 팸 투어 40여명이 관광버스에 올랐다. 팸 투어, 말 그대로 우리는 박람회 사전 답사대 이다. 듣고 보는 것을 충전하여 주위에 전달한다. 우리가 먼저 도착한 곳은 강원도 무릉계곡이었다. 강원도 두타산과 청옥산 사이에 자리 잡은 약 14km 길이의 이 긴 계곡은 기암괴석, 넓은 반석위로 흐르는 청량한 계곡물, 수려한 청산, 고색창연한 사찰 등이 잘 어우러져 멋진 조화를 이루는 천혜의 비경지대임이 틀림없었다. 特히 그 무릉계곡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중국시인 도연명“도화원가”에 나오는 武陵桃源(무릉도원 )의 얘기에서 유래 되였다는 안내원의 말에 우리 모두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계곡 초입에는 대형 무릉 반석에 가로로 쓴 “ 武陵仙源,中臺泉石, 頭吒洞天”이라는 풍채 있는 암각서가 눈길을 끈다. 그 뜻인즉, 신선이 노닐던 이 세상의 별천지/물과 돌이 부등 켜서 /잉태한 오묘한 대자연에서/잠시 세속의 탐욕을 버리니 /수행의 길이 열리네./라는 것이라 했다.   무릉계곡엔 다양한 관광코스와 건강순환코스, 등산코스, 산악마라톤코스 등이 있다지만 짧은 여행길에 오른 우리는 욕심을 버리고 마당바위 옆의 금란정을 지나 다리 하나를 건너 일단 삼화사 쪽으로 중점을 잡아 걸어 들어갔다. 천여 년의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고찰 삼화사는 신라 말에 창간되었다고 한다. 두타산이 안고 있는 무릉 반석을 지나 삼화사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12지로보이는 동물석상이 줄을 서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귀에 익었던 보물 제 1277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보였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 그날 마침 불교계의 큰 행사가 있는 듯 울안에 사람이 꽉 차 들어갈 수가 없었다. 우리는 되돌아서 삼화사 맞은 켠에 있는 금란정 앞으로 갔다. 그기서 우리는 잠간 발을 멈추고 두 팔을 벌리고 폐활량을 널리며 오월의 숲속에서만이 하사 받을 수 있는, 기운차게 뻗어 오르는 만물생령들의 운기를 깊이깊이 들어 마시며 향수 하였다. 계곡엔 물이 말라 아쉽게도 폭포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바닥을 들어낸 넓은 반석위엔 세인들이 다녀가며 새겨놓은 글들이 웅기중기 자리 메김을 하고 있었다. 모두들 연기마냥 사라 질 짧은 인생에 그래도 작은 흔적이라도 이 세상에 남기고픈 욕심은 버릴 수 없었는가보다. 우리도 우리 팀 팸 투어 프랑 카트를 앞에 두르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강원도청 글로벌투자 통상국 전 홍진 국장님, GTI 박람회 추진팀 심 재환 계장님 강인선주무관님은 이번 우리의 팸 투어활동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하여 각 방면으로 되는 노력과 아낌없는 배려를 하였다. 관광버스를 서울에 안배하고 안내원까지 배동 해 보냈으며 아침식사, 간식 여러 가지 선물들까지 푸짐히 준비하였다. 점심 식사 땐 한정식으로 푸짐히 준비된 식당까지 찾아와 인사말과 박람회참관객 모집을 위한 희망사항과 부탁을 하였다.   점심을 먹고 난 우리는 동해시 추암 촛대바위 관람 길에 들어섰다. 애국가의 첫 소절의 배경으로 나타나는 촛대바위는 대한민국 제1의 일출 명소로 유명하다고 하였다. 한류열풍 이였던 “겨울연가”의 촬영지로도 인기가 있다고 하였다. 남자의 형상을 상징한다는 촛대처럼 생긴 기이하고 절묘한 모습의 바위, 하늘을 찌를 듯 꼿꼿이 솟아있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그리고 주변기암과 석군을 둘러싼 바다는 수시로 그 모습을 바꾼다고 하였다. 파도 거친 날에는 흰 거품에 가려지며 승천하는 용의 모습을 담기도 한다는데 우리를 맞이하는 그날의 동해는 잔잔한 바람 속에서 물들인듯 매혹적인 에메랄드빛으로 얌전한 새 각시처럼 수줍게 빛을 뿌리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저 촛대바위의 원형이었다던 옛 어부 사나이가 생각났다. 그 한 사나이를 위하여 처 첩 두 여인이 아웅다웅 매일 싸움질 하다 하늘나라로 추방당했다는 전설이 생각나 혼자 웃고 말았다. 곳곳에선 사람마다 폰을 들고 동해의 아름다운 오늘의 절경 속에 자신을 집어넣느라 자리와 시간을 다툰다.   우리는 역시 무릉계곡 명승지인 천곡 동굴 문을 지나서 동해종합경기장에 이르렀다. 넓디넓은 경기장의 푸른 잔디밭은 누워 뒹굴고 싶은 융단 같았다. 갈 길이 먼 우리는 아쉬운 눈요기를 뒤로 하고 급급히 귀경길의 원주로 달렸다. 원주에는 동해 시청 기업지원과 박 남기 과장님, GTI 박람회 임 성빈 계장님, 김 수덕 주무관님이 맛있는 보쌈 밥 저녁상을 푸짐히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동해에서의 점심밥도 그분들이 차려 놨었다. 그들은 박람회의 성공개최를 위한 길림신문사와의 효률 있는 협력을 부탁하였으며 길림신문사 전 춘봉 사장님도 감사의 말씀과 더불어 지속적인 협력으로 성과 있는 박람회개최를 기원 하였다.우리는 뜨거운 박수를 치며 그들의 감사와 부탁의 축사에 화답하며 원주특산 막걸리와 박 춘근 선생님이 선물로 가져 오신 된장 술을 즐겁게 마셨다. 앞으로 강원도는 더 많은 우리 동포들의 즐거운 관광지로 떠오를 것이며 박람회를 빛낼 더 많은 인파들이 페스티벌을 이룰 것이다. 장시간 여행길의 피로와 춘곤도 뒤로 한 채 즐거운 웃음소리와 노래 소리를 가득 실은 버스는 오월의 시원한 저녁바람을 헤치며 어둠이 몰려드는 귀성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2017, 5, 30 서울에서    
7    클로즈 여행 댓글:  조회:695  추천:0  2019-11-22
기행수필 팬 스타 클로즈 여행 류 재순   클로즈 여행하면 자연히 옛날에 보았던 영화“타이타닉”을 떠올리게 된다. 그 영화의 깊은 감동―파도를 헤가르고 바다 위를 달리는 항해선 밖에서의 잭 과 로즈가 취하던 해연마냥 두 팔을 쫙 펼친 로맨스 포즈와 그를 동반한 주제곡을 잊을 수 없다. 타이타닉의 마지막 비참한 참사와 그 속에 얽혀진 많은 감동적인 장면들은 오랜 세월 아픔으로 내 기억에 남아 있었지만 클로즈 여행이라는 이 체험해 보지 못한 신비함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은 마음속에서 계속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조건도 시간도 안 되니 조그만 한 클로즈 여행도 좋아, 어느 때던 기회만 되면. 그런데 마침 그 기회가 왔다.   햇볕이 화사한 봄날, 나는 옛 고향 친구 몇과 그룹을 무어 아침 일찍 서울에서 부산을 향해 떠났다. 친구들도 클로즈라는 이 특수 여행이라는 생각에 모두들 기분이 잔뜩 들떠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 빡빡한 일터에 몸이 매여 있는지라 넉넉한 시간의 여행은 못하고 2박3일, 부산에서 일본 오사카 여행을 결정하였다.   오후 3시에 부산 국제여행터미널에서 떠나는 팬 스타는 클로즈 여행선 답게 웅장하고 화려하였다. 우리 다섯 사람은 2층 5인용 넓은 방으로 함께 투숙하였다. tv, 옷장, 간이세면실…집에 들어선 것처럼 편안하였다. 짐을 풀고 난 우리는 화려한 샨데리아 등불 아래 아름다운 주홍색 융단을 깐 층계를 내려와 팬 스타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선실 안에 사방이 바다인 돔 카페, 편의 실, 찜질방 같은 목욕탕, 아이넷 열창무대실, 더 파라다이스, 면세점, 게임 룸, 스시 바, 키즈존… 다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날씬한 허리의 금발머리 파랑 눈동자의 아름다운 서구 여인이 룸 한쪽에서 끊임없이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감성 푹 젖은 풍경이었다. 다양한 객실과 선상의 이모저모 흥겨운 이벤트들이 많았지만 우리는 안내원에게서 들었던 해협의 멋진 절경을 보려 선박 위 갑판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참,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면서 우리 시야에 안겨오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우중충한 하늘과 바다의 이어진 경계 뿐 이였다. 오리가 물속에 코를 박고 잠수하는 신비한 모양의 섬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래도 우리는 클로즈라는 이 거대 여행선 위에서라는 낭만이 뻗혀 그대로 내려가기 싫어졌다. 우리는 함성을 지르고 손 카세트를 틀며 히스테리 적으로 춤을 추고, 야 이거 선내에 우아한 흥취의 각종 오락기구가 구전하게 다 있는데 우린 왜 이러지? 아무튼 우리 취향이다! 끝없이 검푸른 바다, 달리는 클로즈, 우리도 타이타닉의 잭과 로즈처럼 두 팔을 쫙 펼치고 하늘을 나는 듯한 낭만을 향수해 본다! 나는 갑자기 북조선의 유명한 작곡가였던 이 면상 곡의 “저기 바다로 산으로 가자‘가 생각났다. 이 노래는 아버지가 대학 다닐 때 즐겨 부르던 노랜데(그때는 결혼한 사람도 입시에만 합격되면 대학에 갈 수 있었다.)내가 중학에 갔을 때 음악선생님이 우리 중창단에게 뜻밖에 이 노래를 배워줘 나도 일평생 즐겨 부르게 되었다. “저기 바다로 가자, 저기 저 바다로 가자 흰 물새 훨훨 파도위에 넘나들고, 아득한 수평선에 흰 돛이 아름다워 …“ 내가 1절을 채 끝내지도 않았는데 그 중창단에 같이 있었던 친구가 금방 2절을 이어 불렀다. “저기 산으로 가자, 저기 저 산으로 가자 맑은 물 졸졸 바윗돌에 굴러가고, 새소리 바람소리 마음에 울려오는…“ 그리고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 후렴을 불렀다. “물에 가면 물새, 산에 가면 산새, 가는 곳마다 아―” 그리고 한바탕 세상이 떠날 듯이 웃어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를 바라보며 우리는 나름대로 낭만을 풀었다!   배 아래로 내려 왔더니 저녁 식사시간이 되었다. 한식 및 일식, 단품요리와 다양한 종류의 뷔페, 소리를 너무 질러 배가 고파난 우리는 남이야 웃던 말든 수북수북 음식을 담아 바다 옆 창문으로 재빠르게 자리 매김을 하였다. 꿀맛 같은 음식, 밥상머리와 유리창 하나 사이 두고 철썩이는 파도물결, 멀리 어렴풋이 지나가는 거뭇거뭇한 실루엣들…   저녁식사가 끝나고 일정의 휴식이 있은 후엔 아이넷 낭만 콘서트가 시작 되었다. 한 혜진, 금 채안, 문 주리, 효 성 등 가수들이 열창으로 무대를 달궜다. 그러나 더욱 이색적인 것은 유람객들의 노래자랑 이였다. 그야말로 십인십색의 무대는 배를 끌어안고 웃게 하였다. 마지막에 노래 잘한 사람들에게 상들이 차려 졌는데 한 가족 단이 나와서 며느리 동생이 노래를 부르니 사돈 벌 되는 팔십 고령의 할아버지가 너무나 신나게 덩실덩실 춤을 잘 춰 최고의 장원 상을 타갔다. 그들은 뜨거운 박수갈채 속에서 호화 호텔 급 방으로 온가족이 특수 투숙 상을 받았다. 사실 노래와 춤은 더 멋 있은 참가자들이 있었지만 노인을 공양하며 사돈 간에도 즐거운 여행을 같이 나온 가족애를 찬양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인들의 숨은 전통 도덕이 빛을 내는 행사 주체에 심히 감동 되었다. 뒤를 이은 정채로운 마술 표현도 있었는데 스므나문 살로 보이는 젊은 사람의 마술 재능이 얼마나 대단한지 눈 깜박할 새에 천변만화하는 마술 법에 우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야, 재순아, 저 사람 사기죄로 고소해야 되는 거 아니야 저렇게 깜빡깜빡 사람을 속이다니.” 항상 익살 끼가 가득한 친구가 옆에서 끝내 한마디 던진다. 우리는 또 폭소를 터뜨렸다.   열아홉시간의 항해를 거쳐 이튿날 열시에 우리는 일본 오사까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먼저 593년에 건축되었다는 四大王寺를 찾아갔다. 왕사의 역사를 들으며 이리저리 사위를 둘러보며 나는 전에 책에서 봤던 일본 불교의 발전에 대한 글들이 떠올랐다. 일본의 불교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그래도 중국과 한국이라 하겠다. 공식적인 불교의 전래는 538년인바 특히 用明 천왕의 제 1 황태자였던 성덕태자가 불교의 수용과 발전에 큰 역할을 하엿다고 한다. 성덕태자는 중앙집권을 이룬 후 불교사상을 기조로 하여 일본 불교의 기틀을 닦았으며 또한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불교를 비롯한 선진 문화를 수입하는데 전력하면서 四天王寺를 창건하였다고 하였다. 시찰의 모양새는 중국이나 한국이나 일본이나 다 대동소이 하여 우린 다른 사찰에선 볼 수 없었던, 죄를 씻는다는 수양 청에 둘러서서 열심히 손을 씻는 일에 열념 하였다. 무슨 죄를 지었던지 갑자기 생각은 안 나지만 아무튼 부처님은 알고 있으리란 생각을 해 보면서. 지진이 많은 일본의 집들이 대개 다 그런지는 몰라도 오사까의 집 구조들을 보니 집이 흔들리면 빨리 탈출할 수 있게 벽 창문과 베란다가 이웃과 밖으로 서로 통하게끔 설계구조가 좀 특이 하였다.그리고 단층이 많고 아주 단단해 보였다. 면세점도 좋고 깍듯한 서비스가 특색인 일본식당에서의 점심식사도 좋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먹자골목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었다. 같이 묻어간 아이넷 가수들과 사진도 같이 찍고 주거니 받거니 서로 맛있는 것을 사주는 정도 좋았다. 다꼬야찌라는 음식이 특별히 많은 주문을 받았다. 문어를 살짝 대쳐 자그마한 속을 만들고 찹쌀가루와 밀가루로 완즈를 만들어 파래를 다시 넣어 기름에 튀기는 것인데 나오는 즉시 먹다보니 더운 날에 우리는 뜨거워서 홀홀 불면서 먹어도 재미있기만 하였다. 2박3일의 여행을 마치고 부산에 다시 돌아온 우리는 그냥 서울로 돌아오기가 아쉬워 해운대며 동백섬이며 국가 급 손님들이 투숙한다는 조선비치 호텔이며 를 대충 둘러보았다. 시간만 허락되면 부산도 참 가볼 곳이 아주 많은 곳이었다. 클로즈 여행을 마친 손님들에게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모습으로 손을 흔들어 주는 곳이었다.     2017, 06 , 06 서울에서      
6    여행이야기-미국탐방기(5) 댓글:  조회:661  추천:0  2019-11-22
미국 탐방기5 옐로스톤 국립공원(Yellowstone National park)으로 가는 길   1, 솔트 레이크 시티 우리 가족을 실은 승합차는 라스베이거스를 떠나 계속 앞으로 달렸다. 4시간 남짓이 달렸을까 할 무렵, 모두 피곤한데 차에서 내려 점심 요기도 할검 휴식을 취하자고 하였다. 여기가 바로 솔트 레이크 시티 부근이라 하였다 말 그대로 소금 호수 도시라는 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먼저 유명하다는 소금호수를 가봐야겠다. 저 멀리 산 능선들이 둘러싸인 가운데 확 펴진 대형호수가 눈앞에 펼쳐졌다. 길이 112㎞ 너비 48㎞가 된다는 이 탁 트인 호수가로 들어서는데 하루살이 같은 날것들이 날아다녔다. 우리의 신은 금세 소금 꽃이 피어올랐다. 물을 보니 좋은지 애들은 무조건 물속으로 뛰어 든다. 저게 다 소금물인데, 농도가 27%나 된다잖아. 말려도 소용없다. 하긴 입구에 보니 생수 샤워 터가 있었다. 유타 주의 모든 소금양은 아마도 모두 이곳에서 공급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간단한 눈요기를 끝내고 여숙을 잡으려 시내로 들어갔다. 아주 깔끔한 하야트 호텔에 짐을 풀고 시내로 들어서 활보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이 시티는 예수그리스도 후기- 모르몬교의 중심지였다. 1847년, 브리검 영(Bri gham Young) 이란 청년이 모르몬교도 148명과 종교적 박해를 피해 이곳에 와서 정착하였다. 18개월 동안의 2천키로가 넘는 죽음의 이주를 격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또 모로몬 교도들과 비 모로몬 교들 간의 사회적, 종교적 마찰은 근 1세기 동안이나 계속 되었다고 하는데 우리 눈에 안겨오는 이 시티는 이미 광업, 철도, 상업, 금융, 제조업 , 컴퓨터, 농산물 등의 튼튼한 중심지로 자리매김한 아름답고 번영해 가고 있는 모로몬 교도들의 요새지로 되어 있었다. 우리에게는 그저 2002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만 알려졌는데 누군가는 “박해를 피해 온 모르몬교도 집단에 의해 19세기에 사막 한가운데에 뻣뻣하게 직각으로 건설 된 초현실적인 인공도시”라고 했다고 한다. 그들에겐 어떤 사유 재산도 금지되어 있으며 십일조를 내고 공동행복추구라고 하는데 전에는 일부다처제가 실시되고 있다가 지금은 폐쇄 되였지만 이혼은 여전히 금물이란다. 종교 신앙이 없는 나로서는 별로 관심 가는 부분은 아니었다. 유명한 솔트레이크 성전은 그 건축물을 짓는데 만 40여년이 걸렸다고 하니 그들의 신념에 대한 집요성과 헌신성을 보아낼 수 있었다. 모르몬교의 사원의 꼭대기엔 십자가가 없었다. 사원의 입구엔 사원을 세우고 정착촌을 만들었다는 브리검 영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들에겐 미국 전역으로 유명한 모르몬 태버내클 합창단이 있다. 350여명의 자원 봉사단으로 조직된 이 합창단은 미국 전역으로 생방송되어 나가고 있으며 미국 대통령 취임식과 동계올림픽 개막식과 폐회식에서도 한몫을 했다고 한다. 그들은 웅장하고 럭셔리한, 대형 파이프 오르간이 멋지게 장치 되여 있는 템플 스퀘어의 무대에서 많은 교인들과 함께 열창하고 있었다. 다운타운의 안을 보나, 밖을 나오나 그리고 공원 같은 그들의 쇼핑물 센터를 둘러보나 그들에겐 어쩌면 이곳이 천국같이 느껴지는 곳이리란 생각을 해 보았다. 이 세상의 인간들의 삶은 참 제 나름대로의 추구와 향수가 있는 것 만 은 분명하다. 모르몬교가 끊임없는 이단설에 얽히고 있지만 그렇게나 쫓기 우고 짓밟혔던 교리가 어떻게 이렇게 까지 확고하게 번창하고 있는지는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2, 변화의 땅-옐로스톤 이튿날, 우리는 또 몇 시간을 달려 드디어 옐로스톤 입구에 있는 작은 부락에 도착 하였다. 여기에다 우리는 이번 가족 여행을 위해 캠핑카(房車)를 예약 해놓은 터였다. 옐로스톤으로 들어가는 모든 도로가 개방되는 6~8월 관광 성수기엔 엄청난 관광객이 몰리다보니 숙소를 구하려면 거의 전쟁에 가깝다고 하였다. 아니면 호텔까지 오고가는데 둬 시간 이상으로 시간 낭비를 해야 하니 여행 일정을 조종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고 밤과 낮의 엄청난 기온 차이를 보이고 있는 고온지대의 추운 밤을 애들까지 데리고 텐트로 야외 숙박을 한다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다. 처음으로 캠핑카를 보는 나는 참으로 신기 하였다. 안에는 몇 사람이 잘 수 있는 의자겸의 침대가 있었고 싱크대, 화장실, 샤워 실, 냉장고, 세면대… 참 말 그대로 집안의 자그마한 살림이 다 갖추어져 있었다. 그리고 여행 도중 어느 때던 임의로 가다 서고, 보고 하면서 자유자제로 시간과 지점을 조정하며 제대로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편안한 가족 여행 도구임이 틀림없었다. 로스엔젤렌스의 트랜스에서 옐로스톤까지의 거리가 1600㎞ 인데 중간 중간 관광을 하며 오다나니 3일이 걸렸다. 차가 한참을 달리는데 저 멀리 높은 산 봉오리에는 이 더운 8월에 싱싱한 흰 눈이 쌓여서 이색 풍경을 펼치고 있었다. 그 아래로는 눈석임물들이 흘러내려 출렁이는 대형 호수를 이루고 드디어 강으로 흐르고 있었으며 울울창창한 산림과 야생 초목들을 펼치고 있었다. 우리도 차를 멈추고 뭇사람들처럼 인증 샷을 하고 큰 강물이 출렁이는 강변으로 내려갔다. 강물이 얼마나 센지 큰 뗌이 억센 물살을 억제하고 있었다. 당지 사람들인지 고무바지를 입고 강물에서 그물을 치며 고기잡이하는 한가로운 풍경이 보였다. 잠시 멈춘 후 우린 본격적인 공원 안으로 핸들을 잡았다. 공원으로 들어가는 길이 여러 갈래가 있다는데 어떻게 되어 우린 좀 무서운 길로 들어서게 된 것 같았다. 우리가 들어선 길은 산허리를 감고 도는 좁은 차길이었다. 길 옆구리를 보니 깊은 골짜기가 엉켜진 야생 숲 속에 아슬아슬하니 보이는데 우리의 길을 지탱해주고 있는 낭떠러지기 절벽이 스릴하게 세워져 있었다. 한번 보고 나니 경관이고 뭐고 더 보고 싶지 않았다. 이럴 때 만약 비라도 쏟아지면, 상상 하기도 무서웠다. 근 20년 차를 몰고 출퇴근 했던 노련한 운전 기술의 사위였건만 그의 눈동자는 박힌 듯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았고 두 팔의 근육은 불끈 튀어나오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갑자기 재작년에 그랜드 케어년에 갔다 돌아올 때 미국 국토1호 길을 달리던 생각이 났다. 그때도 길이 이렇게 산허리를 감고 도는 좁은 위태한 길이였는데 길 오른쪽 낭떠러지기 아래로는 시퍼런 태평양이 넘실대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런 집채 같은 캠핑카가 아니었기에 자연히 사위의 운전 기술을 믿으며 지금처럼 공포에 떨지 않았다. 아아, 이럼에도 사람들은 왜 여행을 하려할까? 조금은 현기증이 났다. 그렇게 반시간쯤 달렸을까 했는데 앞이 트이고 넓은 대로가 나타났다. 다른 길을 선택한 것 보다는 빨리 왔다고 하였다. 휴~맙소사!   옐로스톤의 품안으로 들어왔다. 이곳은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이다. 옐로스톤이란 명칭은 노란바위 (黃石)란 뜻으로 미네랄이 풍부한 온천수가 석회 암층을 흘러내리며 바위 표면을 노랗게 변색시켜 붙여진 이름이란다. 평균 고도 2,000m의 옐로스톤 고원은 유문암 ,마그마가 쌓여서 형성된 곳으로 현재 650,000ha의 숲을 이루고 있으며 고원의 남쪽을 제외한 삼면에 모두 4,000m 높이의 산이 솟아있다. 우리는 그의 품안으로 계속 달렸다. 어느 듯 늦은 오후가 되었다. 우리는 조급히 밤을 보낼 캠핑장을 찾았다. 하루 밤 20달러란 아주 저렴한 가격의 산림속의 캠핑장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형형색색의 캠핑카들, 승합차들. 이미 알록달록 진을 치고 있는 텐트들이 정해진 자리들에서 투숙준비들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캠핑장엔 화장실 샤워 실, 식수대가 주위에 설치되어 있었으며 매 캠핑장에 밤새 태울 장작개비를 공급하였다. 여기저기서 구수한 바비큐 냄새가 청신한 소나무 숲 향기를 안고 날아왔다. 우리는 물론 캠핑카 여행을 하다 보니 여행에서 종종 느끼는 이런 저런 불편함이 이미 대거 소거되었고 음식도 준비해온 재료로 먹고 싶은 데로 해먹어서 다른 큰 욕망이 없었지만 애들은 장자개비에 불울 붙이자말자 덩달아 바베큐 굽기에 열을 올렸다. 먹기 절반 재미 절반인 것 같다 나는 그래도 한국 신라면을 훌훌 끓여먹는 것이 여행에서는 최고인 것 같았다. 서서히 산림 속에 어둠이 깃들며 키다리 낙엽송 가지 끝 위 틈새로 밤 별들이 반짝반짝 빛을 뿌리기 시작했다. 온화함도 웃음기도 없는 냉랭한 달빛도 밤마다 바뀌어 지는 이 낯선 손님들을 말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뿌직뿌직 장작개비 타는 소리, 피곤을 모르고 깔깔 웃어대는 애들의 웃음소리, 연인들의 끝없는 속삭임, 저 멀리 어디선가 이따금씩 들려오는 종잡을 수 없는 이상한 소리(짐승?) 이 생태공원의 밤은 이렇게 특유의 하모니를 이루며 깊어갔다. 이튿날 ,날이 밝기 바쁘게 나는 캠핑카의 세면대를 뒤로하고 산림 언저리로 내려가 푸르른 호수가로 걸어갔다. 예로스톤이란 곳은, 옐로스톤 강이 옐로스톤 호수에서부터 줄지어선 폭포를 통과하며 옐리스톤의 수많은 협곡 호수, 유명한 간헐천, 온천들이 한데 어울려 놓은 신비의 땅이다. 나는 맑은 호수 물에 손을 담구고 얼굴을 씻었다. 그 무슨 정기 같은 거라도 받고 싶었을까? 그리고 무연히 펼쳐진 호수를 바라보며 두 팔을 한껏 올리며 기지개를 켜고 심호흡을 하였다. 좋은 아침- 소리가 호수 저편으로 울려갔다. 캠핑장에 돌아와 보니 캠핑카들은 차속의 오물들을 배수하고 새 물들을 바꿔 넣느라 환수기 옆에 줄을 서고 있었고 . 텐트에서 밤을 보낸 사람들은 밤에 꾀 추웠는지 뜨거운 커피들을 훌훌 마시고들 있었다. 아침 일찍 우리는 온천 구경에 나섰다 이곳의 온천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몸을 씻으며 즐기는 그런 곳이 아니다. 아침저녁 조금은 쌀쌀한 기온이 감도는 공원에서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온천을 보면 왠지 손이나 몸을 담구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그러나 곳곳엔 경고 주의팻말이 꽂혀있다. 따뜻한 물처럼 보이는 이 온천들의 온도가 모두 90도C가 넘는다는 것이다. 손만 넣으면 금방 녹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충격이다! 주의경고를 못 봤거나 무시하고 호기심으로 손을 들어밀었다가 끔찍한 변을 당한 사람들도 더러 있다고 하였다. 옐로스톤에는 3000여개의 온천과 간헐천이 있는데 우리는 우선 파이어롤 강이 지나가는 그랜드프리즈매틱 이라는 유명 온천을 보기로 하였다. 미국에서 가장 큰 온천인 그 이름은 온천에서 상생되는 인상적인 색채로부터 명명되었다고 하였다. 파랑 노랑 녹색 오렌지 금색 빨강 등 아름다운 무지개 색체가 멀리서부터 한 눈에 안겨왔다. 어찌 보면 옛 고흐의 색을 막 뿌려 놓은 유화 같았다. 어떻게 이런 색상들이 온천을 이룰 수가 있단 말인가 크기도 지름이 90m, 깊이 50m나 된다고 하였다. 신기해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애들이 설명해 주었다. 이런 특유의 색상을 띨 수 있는 원인은 온천의 내열성 녹조와 그 온도에서도 상생하고 있는 특유의 박테리아 때문이라고 하였다. 참 세상은 정말 요지경이다 주위에는 크고 작은 유사의 온천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앞을 다투어 시트를 누르느라 정신없다.   온천 구경을 끝내고 우리는 이번 여행 코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코스인 올드 페이스풀 (Old faith fui) 간헐천 관광에 나섰다. 간헐천(間歇泉)이란 문자 그대로 더운물과 수증기, 기타 가스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주기적으로 분출하는 온천을 말한다. 올드 페이스 풀은 1870년에 이름이 지어 졌는데 1995년에 지진에 의해 분출 간격이 변동된 적이 있었던 시기를 제외하곤 120여 년 전부터 거의 일정한 시간 , 간격, 높이로 약 70~80분마다 4만 리트러의 온천수가 40~50m 높이의 뜨거운 물이 솟아올라 약 4분 정도 지속된다. 너무 시간을 잘 맞추어 분출되기 때문에 중국어로는 老忠誠이라고 한다. 인간도 아닌 이 대자연이 이토록 시간을 꼭꼭 맞춰 신비한 현상을 나타내고 있으니 관광객들이 떼를 지어 몰려든 다. 그 많은 관광객들은 건축물 안에 박물관 같은 볼거리도 많은데도 혹시나 놓칠가봐 노천 뙤약볕 아래서 간헐천 주위에 몇 겹으로 진을 치고 앉아 그 시각을 기다린다. 나는 얼굴을 가리며 끝도 없이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위엔 나같이 햇볕을 피하려 하고 부채질을 하는 미국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다. 40여도에 달하는 라스베이거스에서도 그렇고 많은 관광지에서 보면 그들은 그대로 자신을 노출 시키고 그대로 모든 것을 받아드리고 있었다. 조금만 햇볕이 비춰도 머리와 얼굴을 꽁꽁 싸매는 한국 여성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이튿날부터 우리는 캠핑카를 몰고 3,471ml²란 제주도 3배 넘는 광활한 이 생태공원을 닥치는 대로 달려 보았다. 정말 대자연의 경의가 한눈에 안겨왔다. 무한히 펼쳐진 초원과 구릉과 진펄, 그 사이사이로 자유롭게 흘러내리는 강물 과 햇볕에 반짝이는 호수들, 계곡과 폭포들, 여기저기 담쏙담쏙 피어있는 이름 모를 어여쁜 꽃들, 끝도 없이 김을 올려뱉는 온천과 부글부글 끓으며 유황냄새 물씬물씽 풍기는 웅뎅이들… 갑자기 도로를 달리던 앞의 차량들이 멈춰서며 통행이 지체된다. 차에서 내려 앞을 보니 들소 몇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대로로 올라와 지나는 차량들을 막고 있었다. 어느 한 놈은 지나가다말고 한 승용차를 떡 가로막고 차창 안을 넌지시 들여다보고 있었다. 지금 저 차안의 사람들은 어쩌고 있을까? 놀람 공포? 한참을 지나서야 그놈 들소가 슬슬 길을 떠나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은 그저 신기하다고 좋아라 손벽까지 쳤다. 아휴, 우리도 한숨을 놓았다. 우리는 차에서 내린 김에 그 들소들이 돌아다니는 벌판으로 슬슬 걸어 들어가 보았다. 어디에나 넓적넓적한 두꺼운 소똥들이 너무 많이 늘려있어 더 걸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이곳엔 이런 아메리카 들소, 일명 바이슨 이란 동물이 활개를 치고 다녔다. 이 동물원은 이런 아메리카 들소, 늑대, 고라니 곰, 사슴, 등등이 많다는데 우리 눈에는 별로 띄우지 않았다.   지금은 이렇게 조용하고 평화롭고 천국 같은 황홀경을 현시하고 있는 옐로스톤이 220만 년 전, 130만 년 전, 64만 년 전, 이렇게 일정한 간격의 주기적으로 모두 거대한 화산폭발을 일으켰던 곳이다. 220만 년 전 화산은 경악할만한 크기의 폭발을 일으켜 미 대륙의 상당부분을 화산재로 덮었다 한다. 이 거대한 화산은 폭발 시에 엄청난 충격파를 전달해서 거대한 지진을 일으켰으며 대 지진과 화산 때 발생하는 뜨거운 공기와 화산재의 급류로 무려 600마일(965㎞)이나 떨어진 지점까지 화산재를 뿌렸다 하니 그야말로 지구의 대 재앙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국립공원에서 화산 같은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전반 공원 그 자체가 활화산이라고 한다. 즉 너무 커다란 칼데라 화산 지형 안에 공원이 있어서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과거 지질학자들은 이 사실을 알게 되자 경악을 금치 못했고 한시도 신경 줄을 놓지 못하고 지금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한다. 어느 해 인가 들소들이 무리를 지어 한 방향으로 무섭게 질주하는 현상이 있었는데 이 거대 온천이 다시 터질 주기가 돌아온 것이 분명하다며 그때 온 세계는 지구 종말 설까지 무성했다고 한다. 또 한 가지 위험한 이유는 자신이 밟고 있는 곳이 일반 땅인지, 아니면 뜨거운 알고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이곳 아메리카 들소들이 발정이 나서 난동 질주를 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예측하기 어려운 위험이라면 온천위에 덮여있는 길 위의 얇은 바닥들이다.- 즉 바닥이 무너지면 바로 아래의 미 발견 온천의 나락으로 다이빙하게 되는 곳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단다. 실제로 이런 식으로 죽거나 크게 다친 사람들에 대한 무시무시한 사례의 에피소드로 모아놓은 책도 있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이 천변만화하는 대자연의 신비한 유혹에 떠밀리어 끊임없이 이곳을 찾아온다. 재앙과 위험은 항상 인간의 머릿속에 저 아득한 곳에 있다. 인류와 대자연은 살상과 공존을 끊임없이 이어가며 지구의 변화무쌍한 생명력의 역사를 써내려 가는 것이 아닐까?   옐로스톤을 나오며 우리는 마지막 코스로 브라이스케어년(Bryce canyon)에 들렸다. 오랜 시간 풍화 작용으로 부드러운 흙은 다 사라지고 단단한 붉은 암석들만 남아 수만 개의 주황색첨탑이 깊은 골짜기 속에서 우뚝우뚝 솟아들 있었다. 바다 밑에 있을 때 토사가 쌓여 형성된 암석들이 빗줄기와 흐르는 물의 힘에 의해 깎여 나가고 비교적 단단한 암석만 침식 되지 않고 남아 울뚝불뚝한 수 십 개의 붉은 돌기둥들을 만들어 놓았다. 그것들은 망망 고원에 펼쳐져 있었다. 정말 장관이었다. 깊숙한 케어년 안으로 우불구불 계단식으로 내려가는 길들이 있었다. 우리는 애들을 데리고 케어년의 깊은 경지를 탐험하려 내려가고 또 내려갔다. 동화소설에 나오는 유렵의 성채 같기도 하고 인도의 불교궁전 모습 같기도 한 유혹이 우리를 그만 너무 깊숙이 떠밀었다. 올라오는 게 큰 문제였다. 우리는 땀을 뻘뻘 흘리며 마른 목을 애써 참으며 헐헐 거리며 쉼쉼 겨우 끝까지 올라왔다. 안녕, 이 변화무쌍한 신비의 땅—옐로스톤! 지구의 재앙으로 비롯된 너의 현실의 가치와 미래의 추측불가의 에니메이션을 상상해 본다…   여행의 끝 이야기 여행은 위험과 피로와 허기와 갈증 많은 불편함도 동반된다. 그러나 넓은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부른다. 그 속에서 우리의 흉금은 터이고 우리의 머리는 세상을 배운다. 인간은 대자연의 넓은 품속에서 그 위력을 터득할 때만이 자신의 가냘픈 존재를 인정한다. 대 자연이 주는 감동은 벅차고 뜨겁다. 대 자연 속에서 인간의 존재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한 경쟁도, 적자생존도, 약육강식도 .그 무엇으로도 어길 수 없는, 수 억 년을 이어온 우주의 생리 앞에서 비로소 모든 것은 공정하게 된다.   2018, 1, 7 서울에서  
5    여행 이야기-미국탐방기 (4) 댓글:  조회:664  추천:0  2019-11-22
미국 탐방기 4   1, 광활한 모하비 사막 이번 미국 여행에서 가장 주되는 스케줄은 가족 여행지로 결정한 옐리스톤 캠핑카 여행이다.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우리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 토랜스에서 온가족이 차를 타고 장거리 여행길에 올랐다. 옐리스톤으로 가는 길은 긴 노정이여서 모하바 사막을 가로질러 라스베이거스 등 많은 관광지를 경유하게 된다. 우리는 라스베이거스를 지난 후부터 캠핑카를 탈 계획이었다. 줄을 그어놓은 듯이 조금도 휘어듦이 없이 북으로 북으로 아득히 뻗어나간 국토 15호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시내를 벗어나자 앞 시야에는 달리는 차량들 외에는 아무것이 볼 것이 없다. 지평선 끝으로 달리는 감각이었다. 얼마를 달렸는지 드디어 도로 양옆에 광활한 모하비 사막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시에나바다 산맥에서 콜로라도 평원까지 뻗어 있다는 무려 65,000K㎡의 광활한 사막- 우리의 감각으로 말하면 캘리포니아 주에서 라스베이거스가지 한눈 가득 안겨오는 풍경이다. 그러나 우리 눈앞에 펼쳐진 사막은 기존 우리의 상상처럼 풀 한포기 없는 완전 모래사막이 아니었다. 전형적인 산악분지 지형이어서 군데 군데 식생이 분포되어 있는 것 이었다. 이 특수 건조 지역에서 강한 생명력으로 메마른 사막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억센 작은 초목들이 듬성듬성 황량한 벌판에 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그 초목들 속에는 죠수아 트리라고 하는 십자가 모양의 유명한 선인장들이 그 키 낮게 자리메김하고 있는 잡초들 속에서 키 자랑을 하고 있었다. 낮에 불같이 뜨겁고 밤엔 무섭게 추워지는 이모하비 사막의 혹독한 생태에 적응하느라 나무 모양은 그로테스크한 모양? 메두사처럼, 말미잘처럼 동화극에 나오는 그림 같았다. 옛날 궁지에 밀렸던 모르몬교들이 콜로라도 강을 건너 이 척박한 사막에 들어섰을 때 목은 마르고 밤이 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숨을 거두기 일보 직전인데 누군가 그들의 팔을 이끌어 데리고 가 물 있는 곳을 찾아주어 살게 되였다는데 아침에 해가 뜨면서보니 그것이 바로 사람 아닌 한그루의 나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나무는 일명 여호수아 나무라고도 하는데 그 뜻인즉 “인도자”라는 뜻이라고 하였다. 성경에 나오는 모세의 후계자로 이스라엘 민족을 거느리고 가나안땅으로 들어간 지도자의 이름이기도 하다. 참 신기한 전설을 안고 살아가는 나무다.   한참 달리다 나니 차창 밖으로 시커먼 현무암들이 구릉과 산 능선을 이루며 무덕무덕 지나간다. 아마도 그 옛날의 화산 폭발의 흔적들일 것이다. 지루한 풍경이 계속되는 중 저 멀리 길고 긴 구렁이 같은 것이 도로와 평행선을 이루며 서서히 기어가는 것 같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바로 철길위에서 달리고 있는 아주 기다란 화물차였다. 무려 40여개의 차량을 단 무지긴 화물차다. 그 길이가 1.6M나 된다는데 주의 깊게 살펴보니 그런 차량들이 가끔가끔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사막의 평원지대에서는 붕사, 산화 칼륨, 소금이 채취되며 금, 은, 텅스텐, 철 등도 적지 않게 채굴되고 있다고 하였다. 저 분주한 물류현상은 이 불모의 땅 밑에 숨어있는 풍부한 자원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도 한참을 달리니 현대차의 모하비 주행시험장이라는 팻말이 보이는데 그것을 보며 애들이 하는 말이 항공우주센터도 이 사막에 있는데 개인 자가용 비행장으로서 새로운 항공기 비행, 훈련장 겸 항공 조종사 양성지라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비행기 무덤”이란 곳도 있는데 몇십년 째 메마른 기후를 이용해 미국은 물론 전세계 여러나라들의 비행기 중고품과 폐쇄 품들이 찾아와 처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다.   갑자기 차에 앉은 다섯 살짜리 외손녀가 “저것 봐!”하고 소리쳤다. 거대한 네모형의 눈부신 반사경의 모습이 하늘 반공중에서 번뜩이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태양광 발전소인데 세계 최대 태양열 발전소로서 그 크기가 잠실 운동장의 35배나 된다고 하였다. 우리는 모두 눈을 떼지 못하고 태양열 발전소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 발전양은 연간 392와트라고 애들이 폰을 뒤적이며 얘기 했다. 즉 해당14만가구의 사용양이라는 것이다. 발전소에는 태양열을 반사하기 위한 저런 거울 347000개나 설치되어 있다하여 나는 믿기지 않아 다시 잘 읽어 보라 할 정도였다. 우리 눈에 보이는 저런-컴퓨터로 통제되는 반사경들이, 약140 메트 높이의 탑에 햇빛을 보이라로 반사시킨다는 것이다. 그것이 태양열이 강한 낮 시간에는 최고 섭씨 588도까지 올라간다니 생태계의 위협도 문제점이라고 보여 졌다. 그 옆으로 뿜겨 반사되는 열빛 근처로 지나가는 그 어떤 조류나 생물들도 금방 타 죽을 것이다! 이렇게 뜨거운 태양열 발전소가 있는가 하면 사막의 더운 공기와 태평양으로부터 불어오는 찬 기류와의 생성으로 세찬 바람이 사막에 일기도 하는데 차를 타고 가다나면 수백 개가 넘는 하얀 프로펠러가 좍 널어져 천천히 돌아가는 그 모습이야말로 또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저 풍력 발전기 하나만 해도 10억이 넘는다는데 저런게 사막에 5000여개라니! 아주 오래전엔 바다였지만 화산 활동과 콜로라도 강의 퇴적 작용, 그리고 태평양 서북부의 특수 기후에 의해 불모의 사막이 되어버린 이곳에 인간들은 지혜와 꿈과 땀으로 거칠고 야성 충만한 대자연을 인류의 순복도구로 변신시켰다.   구불구불 산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곧이어 내리막 구릉지, 길가의 높고 낮은 언덕 아래로 또다시 광활한 평원 지대가 펼쳐진다. 벌판엔 모두 목초지로 덮여있다. 늦여름인데도 그 목초들은 초록색이 아니라 누런 마른 풀들 같았다. 여기서 생산되는 목초는 살짝 말려서 비닐로 봉하고 질소를 넣는다고 한다. 목축의 사료로 뿐이 아닌 발효와 정제를 시킨 후의 목초의 용도는 상상 밖일 것 이란 걸 생각해본다. 정말 또 한참을 가니 초목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벌판 여기저기에 소떼와 말떼들의 방목 장면이 눈에 띄였다. 여기가 사막 지대가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 녹색지대는 점점 더 짙어진다. 완전 초록색 농장물들이 탐스럽고 어여쁜 자태로 차창밖으로 펼쳐진다. 각종 야채, 그밖에 오렌지, 포도, 아몬드, 등등의 농작물들이 휘휘 돌아가며 뿌려대는 수많은 스프링클러들의 시원한 물세례를 받으며 싱싱 자라고 있었다. 사막하면 끝없는 모래 평야와 모래언덕, 물을 실은 낙타가 터벅터벅 힘겹게 걸어가는 모습만 상상 해 오던 나로서는 생각 밖의 세상모습에 다시 한 번 눈을 크게 뜬 셈이다.   2,라스베거이스(LAS VEGAS) 깍아지른 듯한 누렇고 붉으스럼한 석토로 이루어진 절벽 계곡길로 고속도로는 계속된다. 곧 부서질 듯한 돌들과 붉은 바위산들이 수백 년의 변모의 전설을 장엄히 과시하고 있었다. “라스베이거스에 다 와 갑니다.” 사위가 운전석에서 알려준다. 라스베이거스- 전번에 그랜드케년에 갈 때도 들렸었는데 내가 케년에 대한 환상에 젖어 이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에서 좀 오래 놀다 가자하는 애들의 의사를 모두 밀막아버렸었다. 사막 한가운데 신기루처럼 만들어진 이 도박과 환락의 불야성-세계의 명성높은 라스베이거스! 차가 서서히 도시에 들어서면서부터 첫눈에 안겨오는 크다란 건축물의 현광 판-“멋진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에 오신 것을 환영 합니다‘란 영문판 글들이 두 눈에 안겨왔다 .스트립들로 가득 채운 고급호텔과 화려한 천국 같은 풍경이 벌써 예사롭지 않았다. 그리고 “트럼프”라는 이름의 호텔도 눈에 확 안겨온다. 트럼프의 금융계에서의 위력을 보아낼 수 있었다.   주차장에 들어서서 주차를 위해 지하부터 위로 빙빙 돌아 올라가며 자리를 찾는데 도저히 빈자리라고는 눈에 띄지 않는다. 7층에 이르러서야 겨우 자리 하나를 발견하였다. 도대체 이 도시에 몰려드는 사람 수는 얼마나 되는가? 후에 들은 얘기지만 연간 이리로 몰려오는 관광객은 4500만 명 이상이라 한다. 1905년에 사막위에 자리를 잡았고 1911년에 도시로 자리매김하면서 미국에서 애클랜틱시티와 함께 유일하게 도박이 허용된 이 352㎢면적의 그리 크지 않은 도시의 입으로 이렇게나 많은 용양이 밀려들어 가다니!   저녁이 되었으니 우리는 미리 예약해놓은 호텔로 들어갔다. 그런데 우리의 예약실은다른 별관으로 바뀌어 졌다고 하였다. 별관으로 힘겹게 찾아가 문을 열고 보니 이런, 침실 , 샤워 실…모두 우리 예약 해놓은 기준치와 틀렸다. 그런데다 에이콘 돌아가는 소리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였다. 아주 오래된 초창기의 호텔 같았다. 사위는 화가 나서 책임 직원께 전화를 했다. 딱한 상황이 생겨 이렇게 재 조정했으니 일부 환불해 주겠다고 하였다. 예약규칙을 함부로 변경시키고도 전화를 걸기전까지 아무 해석도 없었다는 점이 우리를 몹시 화나게 하였다. 우리는 곧바로 총경리게 직통전화를 걸었다. 몽당 환불받고 다른 호텔로 자리를 옮기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였다. 그러자 상황을 알게 된 총 경리는 바로 직원을 사직시키고 오늘밤 무료 숙식에다 다음번에 우리의 예약대로 4성급 무료 숙박까지 약속하였다. 이렇게 되고 보니 우리의 마음도 가볍지가 않았다.   파리 뉴욕 베네치아 로마 리오 등 세계 모든 도시를 한곳에 모아놓은 것 같은 지구상의 유일하게 점직혀진 도시라는 의미를 새김질하며 이 자유왕국의 밤을 산책하였다.도시의 중심가이자 최대 유통지역으로 15㎞정도 거리의 메인스트립에는 최고의 볼거리, 럭셔리, 카지노 호텔 ,쇼핑물들이 즐비하다. 이집트의 스핑크스,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프랑스의 에펠탑, 리틀베네치아 곤돌라투어 등의 대형 조형물들, 벨라지오 호텔앞의 화려한 음악 분수쇼,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모여드는 ”태양의 서커스“ 지구상에서 가장 큰 170 메트 높이의 하이롤루와 르레브쇼, 미스트어쇼, 비 한 방울 안 내리는 이 도시엔 도처에 녹색 식목이 무성할 뿐만 아니라 하늘, 먹구름, 천둥, 비, 이런 신비한 것들도 머리위에서 진짜처럼 사람을 현혹시킨다. 세계 최고 수준의 레스토랑도 아주 합리적인 가격에 경험할 수 있으며 명품부터 아웃렛까지 선택의 폭도 아주 다양하다. 쇼핑과 엘티비티가 모두 어우러진, 그야말로 완벽한 엔터테인 맨트의 도시다. 듣자하니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대형호텔 10개중 6개가 라스베이거스에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호텔 값은 주말 빼고는 상대적으로 싸다. 즉 카지노 빼고는 라스베이거스 모든 물가는 상대적으로 합리적이고 비교적 저렴하다. 말하자면 도박 하나로 승부를 걸며 도시를 충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카지노 안에서는 칵테일, 맥주, 콜라, 모든 음료가 무제한무료다. 호텔들은 모두 특별한 테마를 가지고 있는데 카지노에 들어서면 아찔한 복장의 아가씨들이 사면팔방에서 춤을 추고 서빙을 하고 딜러를 본다. 문제는 뷔페로 가려하던 쇼핑을 하려하던 호텔밖으로 나가려하던 모두 카지노를 지나가야만 하는 구조로 되어 있어 숙박객은 본의 아니게 하루에도 수차례 카지노의 화려한 분위기와 마주치게 된다는 것이다. 백화점 쇼핑물 심지어 에스켈레이트 까지 모두 카지노 중심으로 돌고 있다. 일단 손을 대면 처음엔 기필코 따게되는 운세에 걸려들어 작은 솔로머신 게임에서 10분~15분 하게 되면 야금야금 돈이 다나가게 되는데 다 털려도 별로 슬프지 않은 묘한 기분과 새로운 야심이 차오르면서 더 큰것에 손을 대게 된다. 이 도시는 이혼수속이 또한 세상 가장 간단한 것으로 유명한 “아혼도시”이기도 하다 이혼을 원하는 부부들이 미국 각지에서 모여든다고 한다.   나도 한국 서울에 있을 때 강원도 정선에 들어가서 체험차로 작은 슬로머신에 손을 댔었는데 운좋게 첫 판에 8만원을 땄다. 더 놀고 싶은 욕망이 솟구쳐 올랐다 그러나 체험차로 왔다는 깨달음을 하며 나는 돈을 호주머니에 넣고 줄행랑을 놓으며 밖으로 뛰쳐나와 그 돈으로 저녁밥을 사 먹었다. 밥을 먹으며 창밖을 보니 점당포들이 줄지어 있었다. 돈을 다 잃은 후에는 시계나 반지를 들여대서라도 돌아 갈 차비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곳 정선에도 온 들판에 차량들이 꽉 들어차 주차 할 자리를 찾느라 근 한시간 친구와 빙빙 돌던 기억이 떠올랐다. 일확천금의 꿈은 누구나 다 가질 수 있으나 그기서 살아남는 행운아는 얼마나 되는가?! 라스베이거스, 아이러니한 인류 현대 문명의 도시여…                                                                                                                                                                                                                                                                                                                                                                                                                                                                                                                                                                                                                                                                                                                                                                                                                                                                                                                                                                                                                                                                                                                                                                                                                                                                                                                                                                                                                                                                                                                  
4    여행이야기-미국 탐방기(3) 댓글:  조회:643  추천:0  2019-11-22
미 국 탐 방 기 3 켈리포니아주에서의 이곳저곳   켈리포니아주는 미국 서부 해안선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주로서 현재 미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주다. 경제 성장 성취도 역시 가장 큰 주의 하나다. 시마다 기온차가 있기는 하지만 거의 다 온화한 해양성기후를 가지고 있어 옛날 8급 지진피해역사를 지니고 있긴 하지만 건축물은 시멘트 구성은 거의 없고 모두 목조와 벽돌로 이루어졌으며 건축물마다 몇 십 년의 연륜에도 변함없는 풍채를 자랑하고 있다. 로스안젤렌스에서 나는 일 년이 지나도록 비오는 날을 한두 번밖에 볼 수 없을 정도로 강우량이 적다. 그러나 주 중심에 형성된 센트럴벨리가 있어 북쪽의 새크라맨토 강과 남쪽의 샌 호아킨 강이 새롭게 준설되면서 내륙 도시에도 몇 개의 항구가 있고 벨리의 첨단적인 운영으로 이 주의 농업, 식수 모든 것을 충분히 해결 받고 있다. 키 높은 관목 수림과 사시장철 푸르른 잔디밭과 질줄 모르는 꽃나무들은 항상 찬란한 태양아래서 반짝이고 있었다.   1, 센 디아고 나는 처음 센 디아고 라는 명칭을 들었을 때 그 위치 마침 남쪽으로 맥시코의 바하칼리포르니아 반도와 인접해 있어 무심결에 하이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 속의 주인공 산티아고를 연상케 했다. 두 이름이 얼마나 근사한가? 혹 어떤 연결 고리라도 있나 싶었지만 그건 너무 엉뚱한 생각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고장에 마음이 끌렸다. 우리는 그곳에서 유명한 시프러빌리지에 위치해 있는 센 디아고의 대표적 관광 명소 —미드웨이 항공모함 박물관을 보러 갔다. 이 박물관은 바다위에 실제 항공모함을 띄워놓고 박물관 형태로 개조하여 관광객이 배에 올라타서 구경할 수 있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그 항공모함은 2차 세계대전 때부터 임무를 수행하면서 2004년에 와서야 퇴역한 실제 항공모함이었다. 박물관 안에서는 항공모함의 실제 시설들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칸칸이 당년 전쟁 시에 겪었던 상황들을 영사막으로 재연하고 해설하고 있었다. 3층까지 돌다 배가 고파 밖으로 나오니 각종 휴식 시설과 먹거리 시설들이 즐비하였다. 젊은이들은 유명했던 영화 “탑건”에서 나오는 그때 그 전투기 옆에서 기념사진들을 찍고 최고 인기를 누렸던 그 미남 주인공 톰 크로즈가 들어가 식사하던 QQ큐 식당 안으로 들어가느라 분주들 하였지만 그 영화를 보지 못한 나로서는 흥취가 없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내가 이 항공모함 박물관을 보고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미국의 항공모함의 놀라운 조기 발전이 아니라 박물관 밖에 세워져 있는 “수병의 키스”동상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종전 될 때 목숨을 내건 치열한 전쟁에서 살아나온 나 젊은 수병이 평화의 문턱에 들어설 때 그 치솟는 흥분을 억누를 수 없어 해안에 내려서면서 부딪친 낯선 젊은 간호사를 무작정 끌어안고 키스를 퍼붓는 장면이다. 당시 마침 이순간이 누군가의 카메라에 잡혔다고 한다. 그 후, 이사진은 전쟁과 종전의 회지로 동상이 만들어 졌으며 박물관 문전에 세워 졌다고 한다. 저런 미친 듯한 희열의 표현, 세계 평화에 대한 갈망은 미국인이나 중국인이나 한국인이나 모두 똑 같은 것이다! 나는 동상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이 지구에 전쟁이 없는 날이 영원하기를 조용히 묵도하였다.   2, 유 리 교 회 드라마 “올인‘에서 배우 이병헌과 송혜교가 결혼식을 올린 유명한 유리교회가 있다고 하여 찾아가 보았다. 로스엔젤렌스 서남부에 자리한 팔로스 버디스 페인슐라에 위치하고 태평양 절경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위에 건축된 이 교회는 1951년, 이 웨이스 체플이라는 교회는 미국 현대건축의 거장으로 알려진 프랭크 로이드라이트의 아들인 프렌고 로이드가 설계하였다고 한다. ’나무채플’이라는 것을 모티브로 삼아 간결한 프레임과 유리를 이용한 설계양식으로 마치 판타지 영화 속 한 장면에 서 있는듯한 느낌을 준다고 하였다. 이 유리교회가 최고의 결혼식 장소로 유명세를 타는 이유로는, 바닷가가 보이는 숲속 오솔길을 따라 신랑 신부가 예식장에 입장하면 유리지붕을 통해 마치 천사가 축복하는 듯한 찬란한 햇볕이 머리위에 아름답게 쏟아지는 정경이야말로 참으로 황홀해 진다고 한다. 그 다음에 주례를 서는 목사님의 축도가 시작될 때 감동의 음악과 숲속안의 새들도 함께 축가를 부르듯 지저귄다고 한다. 비오는 날이 거의 없는 로스엔젤렌스에서 만은 참 환상적인 예식장이 아닐 수 없다. 100여명의 하객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도착 했을 때는 한창 혼례식이 진행중이여서 하객이 아닌 우리는 성당안의 예식을 볼 수 없었다. 성당 정원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면서 바라보느라니 금방 식을 올린 한 쌍의 연인이 성당밖 나무숲에 나와 정자나무 아래서 저 멀리 바다와 팔로스 버디스라는 아름답기로 이름난 도시를 바라보며 키스를 하며 정열을 아낌없이 내여 놓는 장면이 보였다. 정원에 깔려있는 벽돌 같은 블록에는 여기서 식을 올린 쌍쌍 이름들이 새겨져 있었다. 몇 백 명이나 되었다. 그들은 지금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이 성스런 성당 안에서의 맹세는 혹 잊어버린 적은 없는지…항상 생각이 많은 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보기도 하였다. 우리는 넓고 두툼한 잔디밭에서 마음껏 뒹굴며 정원을 꽉 채운 향기에 취해 보았다. 나의 딸과 귀여운 외손녀가 잔디밭에 앉아있는 모습이 어쩌면 저렇게나 평화로워 보일까!   3, 스텐포드 대학, 켈리포니아 주에 살고 있는 우리 애들은 자기 아들이 장래에 미국의 하버드대학도 좋지만 본주에 위치하고 있는 스텐포드 대학에 들어갈 것을 희망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요일 날 우리는 애를 데리고 온 식구가 스텐포드(StanFord) 대학을 가 보기로 하였다. 이 대학은 센프란시스코에 있다. 서부 뉴욕이며 “인종의 용광로”라고 불리 울 만큼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는 이 거대한 국제항구 도시는 뉴욕 다음으로 금융업이 발달하여 서부 지역의 금융 행정 중심지이며 상업제조업의 중추도시이기도 하다. 이곳은 음악, 예술, 그리고 맛있는 음식향수 같은 최고의 문화적 쾌락을 모두 향유하는 상위권 세련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지만 알코올 소비량과 자살률 또한 미국 상위권에 든다. 그곳의 금문교, 아름다운 꽃동네 속에 5매트 간격으로 굽이굽이 급커브가 이어지는 유명한 러시안 힐, 푸른 바다와 대조를 이루며 붉은 빛으로 빛나는 헤이그, 일광욕을 즐기는 바다사자와 해산물을 맘껏 즐길 수 있는 피셔맨스워프, 차이나타운…볼거리가 참말 많은 곳이기도 하다. 이곳의 관광은 이미 전에 끝내고 오늘의 목적지는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유명대학을 찾아가는 것이다.   1891년에 릴렌드스텐드가 설립한 이 대학은 미국의 대부분 주요 대학보다 설립 역사가 짧은데 비해 ‘금세기의 가장 성공한 대학’이라는 별을 안고 있다. 역시 학부 합격률 기준으로 미국에서 가장 입학하기 힘든 학교라고 한다. 학교의 넓은 캠퍼스는 얼마나 큰지 여의도의11배, 서울대학의 8배나 된단다. 그래서 재학생도 가끔씩 모르는 빌딩에서 파이널 시험이라도 치르려면 구글맵에 띄워 스마트폰으로 지점파악을 해야 된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교정 안에서도 학생들은 자전거를 타고 운행을 한다. 전 세계의 명석하고 재능 있는 학생들이 모여 자신들의 커리어를 추구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6,500여명의 학부생, 1만 1,000여명의 대하원생, 4백 50여명의 유학생이 재학하는데 그중 24%는 아세아계라고 한다. 유학생을 위해 714만 달러씩 지불할 뿐만 아니라 학생 가족 연간 수입이 10만 달러 미만이면 수업료를 면제 받으며 6만 달러 미만이면 숙식비 까지 면제 받는다니 학부의 배려 심과 재력 여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의 독특한 입학 평가 또한 유명하다. 성적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다양한 평론가들이 모여 다양한 시각으로 평가하는 것처럼 인성, 지적열정 등등의 다양한 분야를 검토해 본다고 한다. 물론 다방면의 골고루 뛰어난 학생과 한 가지 분야에 아주 특출한 재능보유자를 받아들이는 특색 있는 학교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2016년까지 현재 역대 60여명의 노벨상 수상자, 18명의 튜링상 수상자, 2명의 필즈상 수상자를 배출했다니 정말 입이 딱 벌어졌다.   연황색 벽과 붉은 타일 지붕의 건축물들, 야자수 거리 ,넓은 푸른 융단 같은 잔디밭, 교문 입구에서부터 보이는 메모리얼처치라는 고풍스런 성당, 메인퀴드라고 불리는 35개의 2층 건물, 타이거 우즈가 재학 시 놀았다는 18롤 골프장, 제 31대 미국 대통령 허버트후버 이름을 단 후버연구소…내가 보고 들은 것만도 이렇게 많다. 하루 종일 돌아도 다 볼 수 없는 상황이라 애들을 데리고 간 우리로서는 거의 많은 것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햇볕이 쨍쨍하여 아이스크림만 찾는 애들 때문에 우리는 좀 서늘한 “생각하는 조각정원”에서 발길 바이오산업의 기적이 치솟는 시대이다. 스텐포드 대학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자연히 그 대학이 배출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구 글 본사에 들려 둘러보았다. 구 글(GoogIellc) 이란 사람들을 도와 준다. 라는 뜻이라고 하였다. 구 글은 1998년에 설립된 미국의 다국적 기업이다. 가국에 40여개의 지사를 두고 있다고 한다. 콧대 높은 구 글 본사의 깃대를 보며 정원에 들어서니 역시 여기저기 자전거들이 보였다 넓은 회사 안을 오가는데 직원들이 자전거와 스코트를 이용하기 때문이란다. 일요일이서 회사는 문을 잠군 채 조용하였다. 2015년 한해 순이익만 165억 딸라나 된다고한다. 꿈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이 회사는 7시 출근 ,오후 4시 반이면 칼 퇴근을 하는데 월등한 직장 환경이며 각종 체력단련시설과 고급 호텔 같은 휴식실들, 각종 게임 룸들도 인기지만 제일 귀에 들어오는 이야기는 그들의 음식 향수이다. 그들에겐 특급 일류 요리사들로 구성된 팀이 최고급 유기농 재료로 식단을 작성하는데 하루 세끼 세계 각국 음식을 고루 맛보게 한다니 옛날 황제에 비하겠는가! 그리고 여기저기 디즈터 바들도 널려있어 간식과 음료는 자유자제로 먹을 수 있다니 살이 찔 가 봐 제일 걱정이라는 직원들의 말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역시 문제점들도 있다고 한다. 구 글의 검색 능력이 너무 대단해 개인정보 보호 면이 취약하다거나 비정규직 차별화, 권력화 및 반독점, 부실한 고객 센트 등이 있다고 하였다. 문제가 생겨 고객 센터에 상담을 요구하면 통쾌하게 해결받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탈세 문제가 부상되어 땀을 흘리기도 했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또 애플본사도 대로 옆에 있었다. 1976년에 설립된 애플 주식회사는 미국의 소포트웨어 및 컴퓨터 하드웨어 산업 하는 회사다. 스티브잡스, 위즈니 악과, 론 웨인 등 세 명이 창립자라고 한다. 이 회사에 대해 내가 제일 궁금한 것은 회사 로그에 대한 유래였다. 저 사과는 왜 한입 물어 먹었을까? 이번에 나는 그 유래를 들었다. 알고 보니 컴퓨터의 이론을 확립한 앨런튜링이 독이든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 죽었다는 점에 착안하여 그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도 있지만 더욱 유력한 설은 성경에 나온 아담이 사과를 한입 베어 물어 인류의 운명이 바뀐 것처럼 컴퓨터가 장래 인류의 문명을 바꿀 거라는 스티브잡스의 확신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다. 참 전망이 있는 예언이었다. 지금은 세계스마트폰 94%를 차지하는 회사라고 한다. 그러나 한동안은 유해물질 사용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4,사파리 공원, 그리고… 디즈니 위인 록에 심취되어있는 손자 놈이 아침부터 또 디즈니랜드에 가자고 졸라댔다. 이미 몇 번을 갔고 세상이 다 잘 아는 할리우드의 풍격도 맘껏 향수 했었다. 오늘은 애를 설득하여 센디아고에 있는 사파리 공원에 가기로 했다 생태적인 동물현장 체험이 애들에게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센디에고 도심에서 30여분 차를 타고가면 에스콘 디도라는 소도시가 있는데 그 근처에 사파리 공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공원에 가보면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각국 동물들, 특히는 멸종 위기에 처해있는 동물들도 볼 수 있다는 소문이 우리를 유혹하였다. 8월의 뜨거운 햇살아래 땀벌창이 되어 들어서는 우리에게 무성한 숲의 입구에는 안개처럼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냉증기가 우리를 시원히 맞아주고 있었다. 우리는 티켓을 사고 오랜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46개의 안락의자가 구비되어 있는 사파리 텐트, 즉 트램을 타고 광활한 대자연속에서 제 멋대로 생활하고 있는 생생한 동물관람에 나섰다. 이 동물공원의 면적은 1800에이크, 300여종의 동물이 생활하고 있다고 하였다. 물론 초식동물이 위주였다.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캥거루, 혈기왕성한 태즈매니아 주머니 곰, 기다란 목을 움츠릴 줄 모르는 기린, 코뿔소, 가젤, 양양…놈들은 이 인간 행렬과는 추호의 상관도 없는 듯이 느릿느릿 돌아다니며 제 하고픈 일들을 하고 있었다. 마침내 옆에 귀여운 자이언트판다가 눈이 둥그레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앞 석에 앉은 댓살 난 아주 예쁘게 생긴 미국 여자애가 손 벽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웃으며 속으로 네가 더 예쁘고 귀여워 라고 찬탄하였다. 아프리카 사자는 작은 텐트차량 뚜껑에 벌렁 누워 아랑곳없이 잠만 자고 있었다. 참 웃기는 놈이다. 위로 보니 열기구를 타고 날며 넓은 들판의 동물들을 구경하기도 하였다. 코끼리 계곡입구에는 캠프장이 있는데 아프리카 평야가 바로 앞이라고 한다. 그곳에 투숙하면 밤중에 아프리카 동물들의 무시무시한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이지역의 강렬한 햇볕과 건조한 기후에 잘 적응하는 수천 종류의 나무들이 여러 대륙에서 옮겨와 잘들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도 애들은 작은 산양들 앞에 가서 건초를 먹이며 쓰다듬어 주는 것을 좋아 했으며 할로원 축제에서 크리피 캠프에 들어가 유령과 오싹한 동물들의 갑작출연에 놀라면서도 좋아하였다. 마지막엔 선물까지 가지고 나올 수 있으니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 아쿠아리움(수족관)에 가자고 애가 졸랐다. 그리 크지 않은 아쿠아리움이었다. 수족관은 어디나 다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인상이 깊은 것은 송사리가 먹는다는 플라크톤, 그런데 그 플라크톤이란 것은 현미경으로 들어다 보았는데 그 미세 정도가 보통 미세먼지의 두 배 정도니 육안으로서는 도저히 확인할 수 없었다. 즉 그것은 식물과 동물의 합성 물체라고 하였다. 물론 그 외 어느 수정관에서나 볼 수 있는 송사리, 상어, 해파리, 불가사리, 문어, 앞에 장애물을 헤치는갈구리 같은 것을 이마에 달고있는 아귀, 투명한 명주 같은 너울가지를 입고 있는 문 젤리…애들은 좋아하였다. 밖으로 나오니 직접 물고기를 만져 보며 놀 수 있는 작은 시넷물 장소 같은 체험프로도 있었다. 그리고 더욱 좋은 것은 아쿠아리움을 나서며 즐겁게 산책할 수 있는 바다가가 펼쳐지는 것이었다. 보트놀이도 가능했다. 배고픔을 달래려 우리는 급급히 근처의 태국 전통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 안에도 태국 특징인 불교의 짙은 풍미가 곳곳에서 표현되고 있었다. 이름 모를 태국음식으로 허기를 채우고 도 남기까지 하였어도 나는 어쩐지 뭔가 좀 부족한감을 느꼈다. 집에 돌아오니 럭키가 꼬리를 저으며 반겨 날리었다. 주방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금방 느꼈다. 그렇지, 이런 날엔 한국 신 라면을 꼭 먹어야 지성이 풀리는 것이다. 나와 딸은 한 봉지를 터뜨려 삶아 둘이서 후룩후룩 그 부족함을 채웠다.   2017, 11, 2 서울에서
3    여행이야기-미국탐방기(2) 댓글:  조회:627  추천:0  2019-11-22
미국 탐방기 2 미국 생활의 이모저모 낯선 풍경들   비행기를 타고 켈리포니아주 로스안젤렌스 공항에 내렸다. 새벽이었다. 딸과 사위가 마중 나와 있었다. 우리는 청신한 새벽 공기를 헤가르며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는 토렌스에 있는 집으로 달렸다. 토렌스가 켈리포니아주에서 노후생활 1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면서 애들은 나에게 토렌스에서 노후생활을 보낼 것을 권장 하였다. 나는 웃기만 하였다. 이미 몇 번째로 되는 토렌스에서의 낯선 미국생활을 나는 경험했기 때문이다.   토랜스의 자택과 교통 토랜스의 자택은 대부분이 별장식 전원주택이다. 주택 앞뒤로 펼쳐진 잔디밭, 과일과 꽃나무들, 겨울과 여름이 따로 없는, 사시장철 상쾌한 바닷바람을 품고 찬란하게 웃어주는 햇빛과 가슴을 씻어주는 청신한 공기…대자연이 준 혜택들이다. 이 터전이 얼마나 오랜 세월 평화롭게 살아왔는지 이곳의 가옥들은 대부분 오륙십년씩 된 연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한 견고함과 정교함으로 풍채를 자랑하고들 있었다. 집안의 가전제품들은 물론 인테리어들도 여전한 현대 감각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뉴욕이나 워싱톤 같이 아파트가 빼곡한 대형 도시를 내어 놓고는 이렇게 별장식 전원주택에 사는 땅이 넓고 인구가 적은 곳에서는 집집마다, 사람마다 모두 자가용을 몰고 다니니 운전을 못하는 사람은 참으로 많은 불편함을 감내해야한다. 지하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버스도 어쩌다 한번씩 있지만 영어가 능통치 못한 나 같은 경우에는 불안해 탈수가 없다. 친구들이 커피숍에 한번 모이는데도 모두 자가용을 몰고 가 모인다 나의 친구 하나가 역시 켈리포니아 주에 있는 딸네 집에서 시민권을 신청해 놓고 살고 있는데 내가 왔다는 소리를 듣고 한번 놀려오려 오랜 시간 벼루었지만 자식들이 차로 둬시간 실어다 줘야 하는 바쁜 일상에 제대로 여유를 만들 수 없어 계속 안타까운 전화만 오고 있었다. 끝네는 내가 딸과 함께 차를 타고 하루 품을 놓고 찾아갔다. 친구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그 친구는 외로워 재미없다며 괜히 시민권을 신청했다고 속상해 하였다. 솔직히 말해 나의 남편도 이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 적응되지 않아 여행을 가지 않는 날이면 집에서 럭키(개 )와 노는 것이 취미다. 몇 발자국이면 지하철에 도달할 수 있고 거미줄 같은 지하철을 타기만 하면 나이가 얼마가 되어도 어디든 갈 수 있는 서울의 교통을 생각해 보니 그곳에서 나라의 노후연금이 아무리 돈둑해도 살고 싶지 않았다.   켈리포니아 주의 인 앤 아웃버거(In-N-Out)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보면 이탈리아는 피자, 프랑스는 바케트, 일본은 초밥, 미국은 햄버거 등으로 꼽을 수 있다. 켈리포니아주에 가면 미국 전역으로 유명한 맥도날도를 앞지른 인 앤 아웃버거란 것이 있다. 이 버거는 켈리포니아주 어바인에 본사를 두고 서부 5개 주에 매장을 운영하는 즉석식 매장 연쇄점이다. 미국에만 존재하며 메뉴판에 오로지 버거와 프렌치 프라이, 그리고 음료뿐인 인 앤 아웃버거가 그처럼 문전 성사를 이루며 명성높이 성공한 비결은 바로 다른 페스트푸드와는 다른 신선함과 정직함-상업도덕성에 있다고 한다. 그들은 냉동이 아닌 냉장 패티를 사용하며 프랜치 프라이 역시 즉석에서 통감자를 썰어 튀겨내고 가격까지 아주 합리적이다. 신선한 재료의 유통을 위해 해외 매장은 한군데도 두지 않는다고 한다. 생고기의 질감과 육즙이 그대로 느껴지는 갓 구은 패티, 그리고 신선한 채소들의 조합, 아일렌드 소스와 쫀득하게 녹아내리는 치즈 한 장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밀가루 음식을 완전 싫어하는 내가 켈리포니아주에 가면 꼭 이 버거를 사먹는 메니아가 되었으니 참으로 웃기는 일이다. 매번 버거를 사먹고 나올 때 면 문에 걸린 인 앤 아웃버거의 표지간판 –노란 화살표를 보며 생각에 잠긴다. 왜 아웃이라 했을까? 아이폰 애플이 사과 표지에 기어이 한입 물어버린 표시를 지금도 이해하고 있지 못하듯 이것도 아직은 오리무중이다. 주말 브런치(Brun ch)와 韮菜盒子(부추속전병)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사위가 오늘같은 주말엔 브런치를 한단다. 즉 아침 식사와 점심식사를 대신하여 그 중간 시간에 먹는 식사란다. 한국에도 젊은 층에는 이런 식사가 있는데 속어로 아점이라 간칭하고 들 있다. 우리가 근사한 브런치를 하러 차를 몰고 간곳은 팬케이크 하우스였다. 9시반 이었는데 차가 식당 정원에 들어서면서부터 눈에 들어오는 것은 주차장을 다 채운 차량들과 정원에서 서성이며 대기하고 있는 엄청 많은 사람들이었다. 11시가 거의 다 되여서야 식당 안에 들어서는데 역시 실내를 꽉 채운 손님들이었다. 오물렛, 팬케익, 버터 베이글, 쵸클렛베이글 그 외에도 이름모를…무한리필의 가종 음료, 큰접시에 수북수북 담은 양이 얼마나 많은지 미국사람들의 비만을 생각해 보았다. 그들의 주말 아침 식습관을 보여주는 낯선 풍경이었다. 주말아침 느슨히 일어나 식당서 맛나는 식사를 끝마치고 소풍과 주말 여행을 떠난단다.   그 다음 주말이었다. 남편이 말했다. 그 버런치인지 뭔지 그만 둡시다 시간도 너무 낭비고 우리입맛엔 별로야- 그래서 나는 좀 일찍 일어나 애들이 좋아하는 부추속 전병을 해 주기로 했다. 계란을 볶아 부추와 버무려 속을 만들었다. 뒤를 이어 나온 남편이 자기도 돕겠다며 반죽은 자기 몫이란다. 내가 속을 다 만들고 남편이 만들어 놓은 밀가루 반죽을 찾는데 뒤늦게 나온 딸애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이건 팬케이크 가루인데?-- 뭐? 남편도 나도 모두 깜작 놀랐다. 밀가루 봉지가 몇 개 가지런히 줄져 있는 중에서 봉투가 뜯기여 있는 것을 이미 쓰던것이라 여겨 무작정 꺼내어 반죽을 한 것이다. 하긴 하단에 작은 영문 표시가 있었고 팬케이크 그림까지 그려져 있었다. 뒤따라 나온 사위가 눈치있게 장인 편을 들어준다. 괜찮아요 더 맛일수도 있어요- 만들어 놓고 보니 케이크처럼 잔득 부풀어져 있는 모양새가 빵도 아니고 부추속 전병은 더욱 아니었다. 맛? 달짝지근하니 부추의 상큼한맛도 도망가고 또 부추 땜에 케이크의 고소한맛도 전무!… 손주놈 무작정 젓가락 놓아버리고 딸과 사위는 슬금슬금 눈치 보며 무작정 입에 구겨넣는데 일 저지른 내 남편만 맛있다고 허세를 부리며 먹고 있다. 휴, 웃을가, 화낼까? 환경의 변화는 이렇게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도 한다.   미국의 ₵ 99 점포   미국에는 재래시장이라는 것이 없고 보통 마트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코스트코(CosTco)에 가서 장을 보고 필요한 용품들을 산다. 그런데 알다시피 코스트코의 물건들이란 것은 가격이 비교적 합리적이고 질도 보장이 되지만 큰 포장을 그대로 사야하는 특점이 있어 한번 차를 몰고 가서 이것저것 준비하다보면 어느새 차안이 그득해진다. 그만큼 한 번에 묵 돈이 들어간다는 소리다. 이것은 중하층 생활권과 영세민들에게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자기들에게 알맞은 쇼핑을 하고 있을까? 미국이란 나라를 돌아다니다보면 군데군데 ₵99 stcr 이라는 점포를 흔히 보게 된다. 즉 미화99불 점포이다. 매 상품 가격대가 99불이란 뜻이다. 물론 한국에도 천원점포가 가끔 선을 보인다. 그러나 그 천원이라는 것은 극히 범위가 좁은 일상 용 잡화에 그친다. 미국의 이 점포는 완전 다르다. 상품 구성내용을 보면 쌀, 밀가루, 각종 야채 먹거리, 일용잡회, 청소용품, 문구와 간단완구, 과일 각종 장식용품, 생화…등등 거의 백화점이다. 물론 쌀 같은 큰 포장은 99불은 아니어도 다른 점포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판매한다. 생활에 필요한 것이 거의 다 있다. 어떻게 이렇게 저렴할 수가 있는가? 각종 산품은 성수기호수 출하시 저가격으로 매입하여 일시적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정부가 이런 특별한 도매밴드를 지원하여 빈곤층과 영세민들에게 공급하도록 지원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불황의 미국 서민들에게 아주 큰 호응을 받고 있다. 나의 남편도 툭탁하면 자전거를 타고 그 점포로 달려가서 마침마침 금방 들어온 물건들을 사들고 와서는 기분이 좋아 집에 들어서기 바쁘게 큰 소리로 외친다 - 야 이것봐, 이렇게 좋은게 99불밖에 아니라니! 코스코 구매밖에 모르는 애들은 머리를 갸우뚱하고 눈을 크게 뜬다. 과일 같은건 한창 성수기 때는 정말 그저 가져오는 감이 든다. 한국에서 팔고 잇는 체리- 즉 미국앵두이다. 시장에 들어가 보면 체리 파는 앞에는 항상 그 비상한 효능을 잔뜩 써 붙혀 놓았다. 몸에 그렇게 좋다니 소풍가는 손주놈에게 5천원 어치를 사 줬다. 그런데 정말 생각보다도 너무 조금이었다. 비싸다는 생각에 더는 사먹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99불 점포에 툭탁하면 달려가 실컷 먹어 보며 입맛을 해갈 하였다.   미국에서의 아동“보호” 그날 아침엔 애들을 데리고 레고랜드에 놀려 갈 차비를 하고 있었다. 도착거리 까지가 3시간 정도인데 아침 일찍 떠나야 길이 막히지 않는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난 손주놈의 정서가 아주 저락되어있었다. 빨리 준비하여 일찍 떠나야 하는데 밥도 안 먹고 짜증만 낸다. 엄마 아빠가 한마디씩 하자 점점 더 짜증을 부린다. 옆에 있던 아빠가 한쪽으로 데려가 뭐라고 한마디 훈계하는 것 같았다. -나 안갈거야! 그리곤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갔다. 차에 시동을 걸며 아무리 얼리고 불러도 그럴수록 거리 저쪽으로 더 멀리 달아난다. 저 엄마 아빠가 할 수없이 차를 몰고 따라라가며 빨리 올라타라고 아무리 얼리며 재촉해도 No! -죤, 우린 간다- 아들 이름을 화나게 부르며 그들은 떠나버렸다. 떠나는 차를 본 다음에야 손주놈은 슬슬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얼마를 지났을까? 떠난 줄 만 알았던 차가 어디서 한 바퀴 돌고 반대 방향으로 해서 집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아들을 마주해 들어오고 있다. 집 앞에서 보니 저 엄마가 차에서 내려 뭐라고 한참 설득 중이다. 아바도 내려와 설득 중이다. -아빠 엄마는 날 사랑하지 않아!- 큰소리로 외치는 죤의 목소리가 들렸다.- 널 사랑하지 않으면 이렇게 되돌아 왔겠니? 제 에미의 거의 울부짖는 소리다! 멀리서 듣고 있는 나는 화가 치밀어 죽을 지경이다. 저런 놈은 그저 팽개치고 갔다 와서 단단히 버릇을 고쳐줘야 해! 끝내 애를 차에 태워 떠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한탄하였다. 그래서 저녁에 그들이 돌아오자마자 한소리 하였다. 그러자 딸이 차분히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친구 중국인의 얘기란다. 한번은 그 친구가 너무 화가나 10살 된 아들의 뺨을 쳤단다. 밖으로 뛰쳐나가며 엉엉 우는 아들애의 모습을 본 이웃(미국인)이 곧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정원에 경찰 둘이 들어 닥친 것을 본 아들이 중국말로 저 엄마에게 –아무일도 없었다고 해요-하고 짧은 부탁을 했다. 그리곤 경찰이 왜 우느냐? 너의 부모가 너를 때렸느냐? 등의 질문을 했다. 아이는 유창한 영어로 단호히 대답했다- 아니요, 그저 가끔 이렇게 떼질 한번씩 해요!- 그래도 경찰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다시 두 부모를 세워놓고 질문하였다-글쎄요, 제가 왜 가끔 소리쳐 우는지 우리도 알아봐야겠어요. 그들도 알고 있었다. 원인을 막론하고 부모라도 애를 때렸다고 승인하면 경찰에 붙들려가 조사를 받고 억류당하고 벌금 한다. 좀 더 심각하다 생각하면 부모의 자격이 없다고 국가에 맡겼다 다른 집에 입양 시킨다. 그렇게 경찰이 아무 단서 없이 떠나긴 했어도 3달동안 계속 그 집 주위를 연행하며 감시했고 가끔은 집에 까지 들려 냉장고까지 열어보며 애를 제대로 먹이고 있는 집인가, 가만히 학대하지 않는가 등등을 확인해 보더란 것이다. 또 한 번은 초등학교의 담임이 학생들에게 집에서 학생들 샤워할 때 누가 도와주는가를 테스터 하였다고 한다. 애들은 모두 솔직한 대답을 하였다. 그 중 12살 난 여학생이 자기는 엄마가 없어 아빠가 도와서 씻어준다고 하였다. 선생님은 조용히 그 나이면 혼자 얼마든지 씻을 수 있지 않느냐 했더니 아빠가 마음을 못 놓는다고 하였다. 그 후 얼마 안 되여 그 아이는 다른 집으로 입양 되였다고 한다. 그리고 아빠도 몇 번을 경찰의 호출에 곤혹을 먹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다. 애를 차에 태워 쇼핑하러 가서 차안에서 애가 자고 있어 잠간이면 되지싶어 쇼핑몰에 들어섰다가 경찰에 발각 되는 날이면 벌금당하고 애를 빼앗기고 …이런 일이 어렵지 않게 발생한단다. 참 우리에겐 생소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쓰레기 분리수거 미국의 쓰레기 분리수거도 참 우리를 놀랍게 한다. 공원이나 공공장소 어디에나 커다란 뚜껑달린 철물 쓰레기통이 있는데 재활용, 일반쓰레기, 음식물쓰레기 할 것 없이 무조건 한통에 다 쏟아 버리는 것이다. 가정주택에는 대형 플라스틱 쓰레기통이 3개씩 되는데 검정(일반스레기), 회색(종이류), 파랑(정원 정리에서 나온 나무,풀) 등으로 분리 되어 있긴 한 것 같은데 그것을 꼭 지키는 감시 시스템도 없고 말하는 사람도 없으며 그저 쟈율에 맡기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도 작은 것은 싱크대 하수구 입구에서 직접 분쇄되여 흘러가고 큰 것은 아무 쓰레기통에나 쏟아 버린다. 도처에서 넘쳐나는 일회용품들도 가차 없이 아무 쓰레기통에나 마구 던져진다. 재활이란걸 모른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시청 환경 관리국에서 대형트럭이 와서 집집마다의 그 큰 13 갤런의 쓰레기통을 커다란 집게손이 번쩍 들어 짐차에 꺼꾸러 푹푹 쏟아버린다. 특히는 얼마나 큰 가구나 물건들도 내여놓으면 언제인지 모르게 다 실어가 버린다. 한국에선 큰 가구 가전제품 등 은 동 사무에서 딱지를 사다 일일이 붙여야 하고 재활용품과 음식물 쓰레기는 신경을 써 엄밀히 분리한다. 더욱 골치 아픈 것은 보통 생활에서 패기 되어 나오는 큰 트렁크나 바퀴 달린 큰 장바구니 같은 것들은 쓰레기봉투에도 들어가지 않고 도대체 어디에다 분리할 수가 있는지 알 수가 없어 구석구석 무단투기가 되어버리는 경우다. 이렇게 생각하면 미국은 정말 아주 편안해서 무단투기라는 딱지는 절대 없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다시 한 번 냉정히 생각해 본다.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규제하고 각 나라의 환경보존을 주장하는 선진국-미국, 그들은 인구가 적고 넓은땅, 풍족한 자원을 확보하고 있는 우월성을 이용해 이 모든 쓰레기를 대부분 재활 필요 없이 불모지에 화학 처리해 매몰시킨다. 화학처리 과정의 이산화탄소의 배출은? 세상에 넘쳐나는 플라스틱 제품들이 일회용으로 다 소각되어 버리다니! 자원이 풍족하고 인력이 비싼 그 나라에서는 재활하는 과정이 더 큰 경제적 손실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나보다.      
2    ㅁ여행이야기ㅡ미국탐방 기 (1) 댓글:  조회:711  추천:0  2019-11-22
미국 탐방기 1   떠도는 구름처럼, 흐르는 바람처럼, 자유여행의 작은 이야기들. 가다 서고 섰다 다시 가는 두서없는 행선이었다. 그 속에서 몰려오는 어쩔 수 없는 불편함과 기진맥진한 피로…그래도 사람들은 소중한 돈과 시간, 체력을 투자하며 길을 떠난다. 그것은 그 낯선 세상과 문화가 가져다 주는 신비함과 감동이 움츠린 내 가슴의 용속함을 풀어주며 내 머릿속에 지울 수 없는 보석같은 추억이란 것을 심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1, 세계 여행지의 진주―하와이   나는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일본 도꾜에 내려 몇 시간이란 환승시간을 기다려 하와이를 향한 비행기에 올랐다. 하와이 하면 애들과 함께 한국 KBS방송 ‘골든밸 ’프로를 즐기다가 수학여행을 늘 하와이로 보내는 것을 보면서 점을 찍어 두던 곳이다. 매번 해외여행을 떠나기 전의 습관대로 나는 먼저 위키백과를 통해 사전 답사를 한다. “하와이 주는 태평양의 하와이 제도에 위치하고 있다. 본래는 폴리네시아 민족의 땅으로 여왕이 다스리는 왕국이었으나 1959년, 8월21일,미국의 50번째 주로 편입이 되었다. 본토에서 370km 떨어져 있는 해외 최 남단주이다. 하와이 섬, 마우이 섬, 오하우 섬, 몰로카이 섬등의주요8개의섬과 100개 이상의 작은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도(州都)는 호놀루루이다.”   그러고보니 비행기에서 내린 공항이 바로 호놀루루었다. 호놀루루는 하와이어로 ‘보호받는곳“이란 뜻이라 했다. 어떻게 보면 불안정했던 그의 역사가 남긴 아픔인 것 같기도 했다. 이곳은 또한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사망한 곳이기도 하다. 내가 투숙하게된 호텔은 와이키키비치 부근에 자리잡고 있는, 번화한 상가와 즐비한 음식점들, 아름다운 바다가 눈앞에 다가오는 너무 좋은 위치였다. 나는 짐을 풀고 거리로 나갔다.   세계에서 아세아인들이 제일 즐기는 유람지며 세계 최고의 휴양지라는 말답게 별의별 복장을 한, 각양가색의 유람객들이 거리를 꽉 채우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자유분방하게 자기들이 좋아하는 형형색색으로 온 거리를 채색 무지개마냥 장식하고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여인들의 숨트이게 내여놓은 앞가슴과 엉덩이들, 그리고 여러가지 야생화 같은 꽃 머리띠를 머리에 두르고 다니는 모습이었다. 나도 꽃화환을 머리에 얹고 싶은 충동을 참고 있었다. 상가에 들어서면 ABC란 마트가 연이어 눈에 띄우는데 모두 이고장 50%를 차지하는 일본인들이 가게 주인이라고 하였다. 하와이 하루 기준으로 한국사람은 제일 많이 오는날이 200명인데 비하여 일본인은 평균 6000명이라니 모든 상권과 관광업에서 자연 한국인이나 다른 나라 사람보다는 일본인이 우세를 차지하기 마련이었다.   와이키키 해변가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카일루아 비치도 다가왔다 세계 3대 비치로, 미국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비치 1위로 등록된 해변중의 하나다. 저절로 함성이 터져 나오게 하는, 말그대로 에메랄드색 바다, 하늘과 바다는 모두 파란색이라고만 일괄 짓던 나는 이때 정말 파란 하늘색과 아름다운 바다색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었다. 파도를 가르며 서핑을 즐기는 람들, 햇볕은 뜨거운데 선들선들 얼굴을 식혀주는 바닷바람, 얼굴을 덮고 백사장에 누워 번들번들 근육을 구을리는 사람들, 그리고 파라데이소에 누워 책을 읽거나 소담을 즐기는 한가로운 모습 그대로가 요양지가 따로 없어 보였다. 또 한참 걸으니 방파제로 바다 파도를 인공적으로 막아놓아 너무 깊지도 않고 파도도 없어 부모들을 따라 유람길에 오른 어린 애들이 바다에서 애기 고래들처럼 펄덕이며 즐기고 있었다. (사진) 비치를 둘러싼 공원가를 걷노라니 줄기인지 뿌리인지 모를 키높은 무성한 나무들이 종종 눈에 띄였다. 이고장의 특종 나무였다. 알고보니 반얀트리 나무라는 것이었다 중국에서는 아마 榕樹라고 하는 나무인 것 같았다. 나는 처음보는 나무인지라 한참을 서서 살펴보았다. 반얀트리는 수많은 가지가 땅으로 뼏쳐 뿌리를 내리고 영양분을 섭취하며 살아간다. 뿌리가 산발한 머리카락처럼 내려오고 땅에 닿은 뿌리로 다시 가지가 지주근(支柱根)이되어 하늘로 뻗어 자라는 굉장한 생명나무였다. 우리 인간들이 살아감에 있었어도 이런 천방백계를 다하는 생명력이 있다면 무슨 일을 못하랴!(사진)   하와이 하면 미국이 일본에 핵폭탄을 던지게 한 도화선―진주만전쟁을 상기하게 될 것이다 .하와이에서 공용버스 이용은 그리 편리하지 못하다. 진주만까지 가는데 버스가 있다고 하여 버스를 정류소에서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려서야 탈 수 있었고 또 환승을 위해 또 그렇게 오래 기다렸다. 일본 군대가 태평양 미군기지에 있는 진주만의 해군기지를 새벽 4시에 돌연 습격하여 천척의 배가 침몰되고 10여만의 군대가 사망되었다고 한다. 그 화근으로 45년도에 미국은 일본 도꾜에 원자탄 2개를 떨어뜨려 30~40만명의 살상을 내였다. 인과보응이란 단어가 자연히 떠오른다. 그러나 세상은 참 요지경이다. 지금 미국과 일본은 떨어질 수 없는 우방이지 않은가! 전쟁기념관은 침몰되였던 배안에 설치되여 있었다. 나는 사전 예약이 없어 들어가 보지 못했다. 당시 배와 운명을 같이한 1200여명의 에리조나 해군장병을 기리는 곳이었다. 그런데 나는 유람객 속에 일본인들도 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먼 태평양을 바라보며 삼라만장이 잠든 그 고요한 새벽에 벌어진 그 끔찍한 참사를 상상해 보았다.   하와이 오하우 섬에는 다이아 몬드헤드산이란 것이 있다. 이름을 들어면 멀리서 봐도 엄청 반짝거리는 산일 것이라 생각이 들것이다. 그러나 올려다보니 정반대로 반석,돌덩어리들로 이루어진 , 헤드높이 232m에 나무 몇포기 안되는 민둥산이었다. 알고보니 하나의 사화산인데 산 정상에는 거대한 분화구가 있었다. 옛날에 일어난 화산폭발로 지금의 모습이 형성되였다. 다이아몬드헤드산이라 불리운 이유는 먼 바다에서 항해하다 돌아오면 산이 빛을 뿌리듯 빤작거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총 왕복2시간이 걸리는 등반시간에 꼬불꼬불 흙,돌자갈길을 걸어서 정상을 가기 위해서는 몇 번의 높은 계단을 올라야 되는데 나는 체력이 딸려 땀벌창에 짜증에 휴~ 그런데 앞을 보니 댓살난 여자애가 앞에서 열심히 걷고 있었다. 내가 정말 늙긴 늙었나 보다 그래서 다시 힘을 돋구어 부지런히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상에 올라`파란 하늘을 이고 맞받아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눈에 안겨오는 전체적인 와이키키를 보게되는 순간 모든 피로가 일소되었다. (사진)   점심과 저녁은 항상 밖에서 당지의 음식을 찾아 먹었다. 그러나 아침식사는 호텔메뉴를 따랐다. 여러 가지 뷔페식 메뉴가 나왔는데 스크램불 네그 베이컨 포테이트 프렌치 토스토 또는 와플 씨리얼 제철과일 요거트 다양한 종류의 빵과 쥬스 우유 ,그기다 아세아사람들이 많은 점을 감안하여 쌀밥, 일본식 멀건 된장국, 한국식 아주 짠 배추김치가 있었다. 이만하면 정말 훌륭한 식단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한창 식사를 하다 옆을 보니 30대 부부인 듯한 일본인 젊은이가 식탁에 앉아 쌀밥 한 공기를 가져다 놓고 주머니에서 작은 치약 같은걸 꺼내는 것이었다. 보아하니 비행기 탑승때 내여준 고추장 같았다. 그것을 꾹 짜서 밥에 얹더니 아무것도 곁들지 않고 그것만 쓱쓱 비벼 먹는 것이었다. 헐, 음식 문화와 식습관의 완고함을 다시 한번 심히 느꼈다. 여행에서 집밥을 동반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이러니저러니 해도 하와이여행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플리네시아 문화센트 방문이다. 남태평양 소재 섬들을 모티브로 재현해 놓은 종합테마파크 pcc는, 와이키키에서 한시간거리에 열대 야자수가 우거진 16만8천㎡ 의 광대한 부지에 7개섬 원주민들의 전통 생활양식과 문화를 집대성해 놓았다. 그들의 전쟁춤, 불꽃춤. 전통혼례식, 태초에 불을 지폈던 일, 나무를 쪼아만든 티키상, 등등을 그들은 황홀한 에니메이션을 동반해 대형연극 서사시로 연출해 보여줬다. 그리고 화려한 하와이훌라댄스 배우기, 하늘높이 솟아오른 야자수에 맨발로 올라가기 등등의 쇼와 귀신동굴구경 볼트놀이 등 볼거리가 너무 많아 어느듯 해가지는지도 몰랐다. 문화센트에서 공급하는 점식식사도 거의 호텔식 뷔페에 가까운데다 원주민들의 전통음식까지 곁들여 먹거리가 참 풍성하였다. 아참, 좋았어요 “아로하” (안녕 이란 뜻, 원주민들의 인사말)! (사진)   근 일주일의 관광을 마치고 호놀루루 공항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와이 황궁 박물관―이올라니 궁전을 둘러보았다. 1882년, 하와이 왕국의 칼라카우아 왕이 건설하고 1893년, 하와이 왕국 최후의 군주(여왕) 릴리우오 칼라이가 페위하여 고궁이 되였다 한다. 지금은 미국영토의 유일한 궁전이 되였다고 했다. 유람객이 많지 않았다. 한적하고 풍경 좋은 정원엔 옛 궁전때 부터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교향악단이 많지 않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고전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날이 일요일이여선지 궁전안은 들어갈 수 없어 나는 반시간 정도의 외경을 돌며 사진을 찍고 점심 식사할 자리를 찾기 위해 나와 버렸다. 한 한국 식당하나를 간신히 찾아내어 오랜만에 순두부찌개를 시켜 먹었는데 화장실을 찾는 게 문제가 되었다. 꾀 멀리 떨어져 있는 월마트를 찾아 가란다. 생각해보니 이번 여행길에서 일본음식점이던 당지 음식점이던 거의 다 식당 안에 화장실이 없던 기억이 떠올랐다. 모두다 어느 어느 대형마트를 가르키며 안내를 해 주었다. 한국에서 음식점들 대개가 화장실을 겸하고 있던 생활에 습관된 나로서는 보통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땅값이 금값이여서 조그만한 가게하나 사서 설치하기도 힘드니 화장실 겸용은 아예 생각도 않는걸가? 여행은 항상 불편함을 감안해야 되는거다. 공항에서 나는 다시 켈리포니아주 로스애젤레스로 날아갈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국 문학 탐방 이야기                                           류재순   영국이란 나라를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나로서는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오래전에 봤던 영화 《OLIVER TWiST雾都孤儿》의 장면들이였다. 안개 속에 가려진 우중충한 하늘과 침침한 추위와 음침한 사람들 속에서 한 고아가 겪는 비참한 정경들… 정말 찬란한 해빛과는 대조적인 인상이였다. 12시간의 비행을 거쳐 그 찬란했던 력사와 문화의 유적지에 도착하였다. 한국문인협회 문효치 리사장의 란 축사로부터 양왕용 부리사장님의 , 문학 평론가 임영천선생님의 그리고 수필가이며 한국 문학사 편찬 위원장인 권대근선생님의 이란 강좌를 하셔 한국 문학과 영국 문학의 탐방 길에 참고의 시야를 만들어주셨다.  해외 문학상은 미국 텍사스에서 온 박인애 시인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한국 작가 한강의 가 영국 부커서가 제정한 맨부커상이였다는 점에 우리의 생각은 오래 머무르고 있었다. 1.케임브리지대학교(cambrige University) 우즈강 지류인 캠강의 동안- 케임브리지, 예로부터 런던과 북부 지방을 잇는 교통요지이며 중세기에는 스타브리지 시장도시로 알려진 상업도시였는데 지금은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소재지로 영국의 유일한 ‘참다운 도시’로 일컬어져있다고 하였다.  중국이나 한국 혹은 미국처럼 학교교사校舍가 한군데 멋지게 운집되여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중앙을 흐르는 캠강 량안의 력사를 자랑하는 35개의 칼리지가 여기저기 흩어져 케임브리지대학교란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각 칼리지는 자치적으로 운영되며 법적으로도 독립되여있었다. 대학교에는 114개의 도서관이 있는데 서울대학교의 30배에 달한다고 한다. 무려 3000 만권의 장서와 각종 자료가 비치되여있다고 하니 영국출신 노벨 수상자 90 명 중 32명이 이 대학교 출신이라는 기적적인 인재배출의 놀라운 수자도 당연한 결과가 아닐가 싶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바와 같이 워즈워드 등 문인과 뉴턴, 베이컨, 반고 등 유명 인사들이 수학한 유서 깊은 곳이란 점에서 더욱 마음을 사로잡았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월계관을 쓰고 있던 중세기의 영국의 주역들을 키워냈고 지금도 새로운 주역들을 키우고 있는 요람임이 분명하였다. 별로 크지 않은 사과나무가 만유인력을 창조한 뉴턴이 수학했던 한 켈리지 문앞 정원에 자라고 있어 유람객들의 발길을 끌고 있었다. 앞다투어 기념사진 남기느라 분주한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년륜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저 작고 애된 나무가 과연 몇백년 전의 그 나무일가 머리가 갸우뚱거려졌다. 그가 쓴 《돈 주앙》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작품이였다. 날카로운 통찰과 비판의식, 자유분방하고 유려한 문체로 랑만주의 문학을 이끈 이 시인은 자신이 “하루라고 밤 자고 났더니 유명해졌더라.”라고 할 정도로 한때 쓰나미처럼 영국 전역을 휩쓸며 천재적 위상을 떨쳤지만 “내가 영국에 맞지 않던가, 영국이 내게 맞지 않다.”는 비감을 토로하며 세상을 떠돌아다녔다. 만나는 녀성들을 기절시킬 정도라는 그의 조각 같은 멋진 외모와 과분한 자유분방함으로 하여 그의 천부적 시 창작으로 인기가 치솟는 시기 녀성들과의 너무 많은 염문을 뿌리며 센세이션을 일으켜 상류계층의 혹평을 받았다고 한다.   구름 한점 없이 빛나는 밤하늘처럼 어둠과 광명의 모든 정화는 하늘이 눈부신 한낮엔 보이지 않는 …   A.《폭풍의 언덕》 브론테Bronte 자매의 령혼    리즈에서 우리는 아트 갤러리를 관람하였는데 조각가 헨리 무어의 작품들이 깊은 인상을 남기였다. 갤러리 관람을 끝마치는 대로 우리는 급급히 하워드를 향한 뻐스에 올라탔다. 영국 전체의 면적은 한반도와 비슷하지만 산지가 적어 가용 면적이 한국의 4~5배 수준이라 하는데 목축업과 밀, 보리, 감자 농사가 위주이고 물가가 아주 비싼 데 비해 감자는 굉장히 싼 모양이다. 가이드의 말에 툭탁하면 돈 떨어지면 감자만 먹는다는 말이 자주 나왔다. 겨울에는 령하로 내려가는 추위도 없지만 여름엔 안개와 비가 많고 섭씨 30도를 못 넘기는, 따가운 해볕이 없는 이 나라 땅에는 벼농사를 할 수 없어 입쌀밥을 먹을 수 없다는 게 우리에겐 은근한 거부감을 안겨주었다.  드디여 우리는 브론테 자매의 고장 하워드에 도착했다.  나는 저 멀리 우거진 숲속에서 관광 온 련인들이 작은 벤치에서 은밀한 정을 나누는 다문다문 눈에 띄는 그림 같은 풍경들을 훔쳐보며 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사랑 스토리를 음미한다. 그리고 우리 문학의 영원한 주제가 사랑이 될 수 밖에 없는 원인을 해석해본다. 《폭풍의 언덕》이 만들어낸 워킹 코스를 따라 산책하던 나도 언덕의 한 의자 우에서 한컷을 남긴다. 나에게 사랑은 어떤 것이였던가… 《폭풍의 언덕》 견학 후 우리는 근 5시간의 뻐스 질주를 거쳐 스코틀랜드의 상징인 에든버러에 도착하였다. 에든버러에 도착하며 가이드는 먼저 에든버러성에 깃든 잉글랜드에 정복당한 스코틀랜드 왕가의 비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에든버러성은 에든버러의 캐슬 록이라는 가파른 바위산에 세워진 고대의 군사요새였다. 그 치욕을 담은 력사의 후환으로 지금도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하다못해 스포츠 경기를 볼 때도 잉글랜드가 우승하는 꼴을 못 본다는 우스개도 하였다.(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4개의 구성국이 합쳐진 나라다.) 스코틀랜드의 대문호 월터 스콧의 기념탑을 먼저 둘러보았다. 그의 대표작이라는 《아이반호》를 읽어보지 못해 유감이였다. 이어서 조앤 롤링이 《해리포터》의 구상을 무르익혔다는 엘리펀트하우스 카페에 들어갔다. 작은 카페였는데 역시 관광객이 바글바글하여 급급히 나와버렸다. 작가 롤링이 사색을 더듬었을 그 분위기를 체험해보려던 나의 욕망은 무산되여버렸다. 이어서 ‘작가박물관’ 왕관모양의 지붕이 독특한 ‘성자일스성당’의 외관도 둘러보았다.    에든버러에서 하루밤 잠을 자고 우리는 또 5시간의 뻐스 운행을 거쳐 잉글랜드 중부 원드미어로 향했다. 원드미어는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의 생가가 있는 글라스미어와 이어져있다. 원드미어에는 길이 17㎞ 된다는, 중국의 서호와 닮은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 그리고 15개의 호수가 주변의 수려한 산들과 아기자기한 농가들로 어우러져 수많은 시인과 예술가들의 령감을 안겨준 아름다운 도시로 유명했다. 원드미어에서 나와 반시간 쯤 달렸더니 드디여 작은 호수 그리스미어가 보이고 부근 한적한 시골에 윌리엄 워즈워드 시인의 생가에 도착하였다. 돌로 쌓아올린 소박한 중세기 시골집 형태였다.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그의 비중과 유명세를 생각하면 조금은 뜻밖이란 생각이 들었다. 2층으로 된 조금은 침침하고 크지 않은 침실과 서재 복도 층계… 시인의 자취를 찾아본다. 정원의 한쪽에는 시인의 묘와 안해의 묘 그리고 평생 결혼도 안하고 존경하는 오빠의 시 작품들을 내조하였던 녀동생의 묘도 나란히 있었다. 초원의 빛 그대를 사랑하는 마음 희미해진다면 나는 그대를 잊을 수 있겠습니다. 꽃의 영광이여 차라리 그 속 깊이 간직한 오묘한 힘을 찾으소서!   그리고 오스틴Austin… 드디여 오늘의 목적지, 쉐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 (Straford upon Avon)에 도착하였다. 세계 최대 문호라는 타이틀을 가진 불멸의 작가 쉐익스피어를 탄생시킨 이 소도시로 들어서면서부터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희극과 비극, 력사와 시 등 47여편의 작품 중에서 내가 읽은 글은 고작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오셀로》, 《베니스의 상인》 등 몇편 밖에 없다. 세인들은 그를 “뛰여난 시적 상상력, 인간성의 안팎을 넓고 깊게 꿰뚫어보는 통찰력, 놀랄 만큼 풍부한 언어 구사, 다양한 무대 형상화 등에서 그를 따를 사람이 없다.”고 평한다. 마을 입구의 광장으로 들어서니 쉐익스피어의 연극 에 나오는 어리광대 터치스톤의 동상이 유람객들을 맞아주고 있었다. 크지 않은 소도시는 올드 시티와 뉴 시티로 나뉘여져있었는데 쉐익스피어 센트는 뉴 시티- 스트랫퍼드다. 센트 입구로 들어서면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RSC라고 크게 쓴 간판이다. 그의 극 작품을 공연하는 대형 극장이였다. 이어서 쉐익스피어 박물관 생가 등등이 거리 안쪽으로 들어가며 차례로 눈에 안겨왔다. 길 량쪽으로 줄 지어선 목조 건물들이 중세기의 모습 그대로 선을 보이고 있었다.  우선 먼저 2층으로 된 그의 생가로 들어갔다. 역시 400여년 된 목조 건물이다. 그가 쓰던 침실, 서재, 거실, 식탁… 우리는 이 대문호의 옛 자취와 정서를 찾느라 구석구석 조용조용 살펴보며 머리와 가슴에 무엇인가 묻어보았다. 도시 전체를 가로질러 흐르는 에어번강- 강 우를 자유로이 헤염치는 백조들, 각양각색의 요트, 강가의 잘 다듬어진 산책로, 벤치… 그리고 좀더 걸으면 쉐익스피어의 무덤, 8세 년상이였던 안해-앤과 쌍둥이 남매 자식들의 무덤도 있다는데 우리는 가보지 못하였다. 가이드가 말하기를 쉐익스피어는 자기의 무덤에 “내 무덤을 파는 자는 엄정한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는 비문을 남겼다 하여 충격을 받았다. 왜 그랬을가?  관광 중 나는 많은 생각을 하였다. 대학교육도 받지 못했다는, 하나의 장갑 제조업자의 아들, 그러나 “대학을 다니진 않았지만 자연과 인간의 실제 삶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웠다”고 세인들은 평한다. 비평가 칼리일이 “영국 식민지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라고 말할 정도로 위대한 인류의 유산으로 되였다. 그의 작품 속에는 수많은 명언이 있다. 그중 두마디를 골라본다. “녀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 D.제인 오스틴 배스는 로마 시대로부터 잘 알려진 온천 도시로 18세기부터 영국의 부유층이 가장 선호하는 료양과 사교의 세련된 도시로 거듭났다고 한다. 이곳에는 1801년부터 1806년까지 오스틴이 살던 집이 있었다. 사실은 내부를 개조하여 오스틴이 살았던 거리와 집안 분위기를 재현한 것이였다. 11살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오스틴은 처음엔 닉명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지만 왕궁의 왕세자도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등 사후 그의 작품은 식상하고 진부할 수 있는 소재와 통속적인 구조 속에서도 주제의식과 재미 두가지를 다 잡아낸 작가라는 평가의 재조명을 받았다. 우리는 그 후 관람했던 원체스톤 성당에서 그의 납골탑이 세워진 것을 알게 되였다. 3.이곳저곳 볼거리, 그리고 그 의미들 영국기행을 시작 할 때부터 우리는 안개와 비가 많으리라는 영국의 기후 특점에 비추어 사람마다 우선 비옷과 우산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생각 밖으로 어느 날이나 날씨가 다 맑았고 특히 관광할 때는 해볕이 따가울 정도여서 녀사님 둘이는 양산을 받쳐들고 걸었다. 그러자 가이드가 그 분들께 대오에서 떨어져 걸으라는 충고까지 하였다. 왜냐 하면 쉽지 않게 내리쬐는 영국 하늘의 해볕을 그들은 소중하게 여기며 모처럼의 일광욕으로 즐기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의 눈에 양산으로 해볕을 가리고 걷는 일은 도저히 리해할 수 없는 비정상 행위이기 때문이다.  영국은 날씨가 영국 사람들을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설도 있다. 겨울엔 거의 한달 내내 해빛을 보기 힘들다 한다. 추운 날씨와 강한 바람, 해가 잘 나지 않는 어둠침침한 날들이 지속되면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닫고 그들만의 마음속 깊은 곳의 숨겨진 공간으로 들어가 생각의 깊은 곬을 만든다고들 한다. 영국에 대문호들이 많은 것도 이렇게 고독과 사색을 만들어내는 날씨 때문이 아닌가 하는 사람들도 있다. 4500년 전, 선사 시대의 높이 8메터 무게 50톤에 달하는 거석 여든여개가 황야에 덩그러니 세워져있었다. 누가,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가 지금도 해명되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세계 7대 불가사의 하나로 꼽힌다고 했다. 대자연은 영원한 신비이고 력사 속에 묻혀진 비밀들은 영원한 탐구의 과제로 남아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비슷한 정체불명의 ‘존재’들을 이미 많이 접촉하고 있는듯하다. 그래도 신비설은 계속 흐르고 관광객은 계속 찾아온다. 이튿날, 우리는 다시 런던으로 향했다. 그러니 우리는 남단의 런던에서 시작하여 북단의 스코틀랜드를 거쳐 다시 런던으로, 서쪽과 동쪽을 모두 누비며 영국을 한바퀴 도는 셈이다.  먼저 윈체스터 성공회의 대성당에 들렸다. 영국엔 성공회, 감리교, 구세군 장로회 등이 있는데 주요 성공회가 대부분이다. 이어서 우리는 런던 근처의 윈저성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런던 근교의 성으로 엘리자베스 2세 녀왕이 주말에 와서 쉬는 궁전이며 국빈을 영접하는 곳이라고 하였다. 왕이 올 때는 탑 우에 영국 국기가 아닌 왕실기로 바뀐다고 하였다. 우리가 도착한 바로 2주 전에 세계적인 풍문을 날렸던 다이애나비의 둘째아들 해리 왕자와 미국 할리우드 배우 매건마크리의 결혼식이 여기서 거행됐었다는 점으로 나는 많이 흥분되였다. 영국 왕실 최초 혼혈 왕세자비라고 한다. 윈저성 세인트 조지 성당에서 결혼식을 했는데 500여명의 하객이 참석하였다고 하였다. 우리는 그들의 웨딩마차가 요란스레 들어왔을 멋진 그 왕의 길에서 앞을 다투어 인증샷을 날렸다.   런던은 진짜 볼거리가 많았다. 버킹엄 궁전, 웨스트민스터 사원, 대영 박물관, 그 밖에도 유명한 런던 브리지… 다음은 유명한 세계 3대 박물관 중의 하나인 대영 박물관을 관람하였다. 이곳에는 전세계의 문명권의 력사 문화 유적 800만점 이상이 소장되여 있다고 한다. 그러나 관람을 하면서 알고 보니 그 대부분은 모두 중세기에 많은 식민지를 만들며 타국에서 ‘략탈’해온 귀중한 문물임을 느끼게 된다. 다시 말해 당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위력과 탐욕의 전리품들이라는 것이 오히려 맞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박물관 입구에 보면 첫눈에 안겨오는 것은 불교의 대형 부처상이다. 중국 혹은 인도의 문물? 똑똑히 알 수 없었다. 운반 중 과실이였는지 팔 하나가 떨어진 상태다. 그다음 보이는 아늑한 한국식 한옥모델 하우스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에서 가져온 신전 전시관도 주목을 끌었다. 그 속에는 영국 배가 그 문물들을 실어오다 바다에 침몰하여 그 아까운 장식물들 대부분을 다 잃어버리고 조각들만 남았다는 스토리가 전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갑자기 훼손당하고 잃어버린 중국의 유명한 문물-원명원 圆明园이 생각나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이집트 미라가 전시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래세에 다시 살아나기 위해 죽는 즉시로 70일 동안 피기 없이 가공하여 40일 산에서 바싹 말려 이루어진다는 각양각색의 미라들을 보면서 인간의 생명에 대한 집착과 그 허망함을 사색해보았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영국 성공회 본부로 국왕의 대관식과 결혼식, 장례식이 거행되는 왕실 교회인바 잉글랜드와 영국 왕의 장지葬地이기도 하다. 성당 밖에 따로 무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당 안에 유해를 안치한다. 력대 왕들과 총리들, 그리고 아이작 뉴턴을 비롯한 위인들의 무덤이 성당 곳곳에 있는데 우리가 주목한 것은 이곳에도 역시 유명 문인들-챨스 디킨스, 토머스 하디, 키플린 등이 있었으며 다른 지역에 묻힌 쉐익스피어, 브로테 자매, 제인 오스틴 등의 기념비까지 보충해놓았다는 것이다. 영국에서의 문인들의 가치와 열애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사원의 화려하고 장엄한 건축물은 영국건물의 전통적이고 전형적인, 뾰족뾰족한 고딕형 지붕으로 된 클래식한 품격의 최고치인 것 같았다. 그 모던한 구성감각 또한 감탄이 절로 나온다.   13일간의 해외 문학 탐방을 끝내고 서울행 비행기에 오르게 되였다. 관광뻐스 창밖으로 펼쳐지는 무한대의 그린세계, 하늘의 구름, 새, 풍차 흰 양떼들… 그것들은 밝은 날 흐린 날 상관 없이 대자연과 인류의 큰 재앙 없이 여유 있고 평화로운 이 섬나라에 펼쳐져있다. 물론 아쉬운 이야기도 들었다. 자연은 아름다우나 고률의 세금과 높은 물가로 실질 소득은 적으며 의료 복지가 잘되여 병원비가 전액 무료인 데다 친절하기까지 한다지만 예약과 실질 진료 혜택이 너무 동떨어져 작년에 수술을 기다리다 죽은 사람이 4200명이라니 무상복지의 민낯이 보인다.  김재진 시인이 쓴 려행시 한구절이 생각이 난다. 지구의 반대편을 걸어와 함께 시간을 나누던  기약 없는 리별일 때 있어라 때로는 마음이 저절로 움직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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