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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겨울 녀인-류재순
2019년 07월 17일 10시 33분  조회:607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류재순

겨울 녀인  
 
 
쌓여진 가을 락엽을 밟으며 단풍의 의미를 새김질하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새파랗게 올려붙은 겨울창공에서 싸늘하게 불어오는 찬공기가 귀뿌리에 빨간 불을 지핀다. 라목이 된 가로수를 가로 지나 기다란 산책길을 걷고 있다. 아직 미련을 다 털어버리지 못한 모든 의미의 풍경에 어김없이 찾아온 계절을 실감하며 움츠러지는 내 형체를 현실 앞에 자백시키고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다. 산책길 옆에는 봄, 여름, 가을을 아름답게 장식했던 좀작살나무, 볼레나물, 산철죽, 개쉬땅나무 등 키 낮은 관상용 잡목들이 즐비하게 줄져있다. 이제는 그 이름을 분간하기 어렵게 똑같이 벌거벗은 모양새로 추위에 떨고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한 종류의 나무가 유별히 눈길을 끈다. 꽃도 잎도 다 떨어진 라목이긴 한데 이 추운 겨울의 언덕에서 물 오른 봄버들마냥 초록빛 매끈한 몸매를 가지고 있는 황매화이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서서 바라본다. 조그마하게 씌여진 패말속 설명서를 읽는다. 황매화의 꽃말은 숭고, 고귀, 왕성을 뜻한단다. 나무 전체를 뒤덮는, 4~5월에 피여나는 노란 꽃은 개화기간이 유난히 길 뿐만 아니라 가을의 노란 단풍과 추운 겨울에도 잃지 않는 매력적인 초록색 줄기로 관상용으로 인기가 높단다. 그리고 음지와 양지를 가리지 않고 잘 자랄 뿐만 아니라 추위와 공해에 강한 것이 특징이란다…
이 신비의 나무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이상하게도 미약하게나마 분명 따뜻한 해살 몇오리가 집요하게 내 머리결을 헤치고 입맞춤을 해준다. 가슴 한구석의 어느 세포가 봄바람에 파르르 떨리는 꽃잎마냥 환생의 입김을 상생시킨다.
나는 거울을 바라본다. 거울속엔 분명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 없는 얕고 짙은 주름을 지닌 작은 키의 로녀(老女)가 서있다. 아, 저 얼굴, 나는 누구인가? 내 나이는 얼마인가?
어느 날 손자놈이 할머니하고 달려올 때, 나는 한번 깜짝 놀랐었다. 아직도 풋풋하게 느껴지는 내 가슴에 할머니라니! 그리고 또 세월이 흘렀다. 텔레비죤앞에서 골몰하게 드라마를 보고 있는 나를 보고 남편이 한마디 했다.
“당신, 왜 그렇게 입을 헤벌리고 봐? 똑 마치 치매 걸린 사람같이.”
나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화를 버럭 내였다. 남편은 웃으며 롱담이라 하였지만 나는 당시의 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런 장면을 나는 료양원 할머니들 속에서 본 적이 있었다. 놀란 내 가슴은 슬픔으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젊음, 아름다움, 능력, 민감,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우주의 섭리 속에 그려진 부인할 수 없는 오늘의 나의 초상화다! 어느 날은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한 완전 가능하게 치매로인이 될 수도 있는…
환각일가? 거울속에서 겨울동화속 같이 새파랗게 물올라있는 황매화가 예쁜 윙크를 보내고 있음을 보아냈다. 나는 내 안의 또 다른 하나의 ‘나’를 발견하였다. 유치하고 감성이 넘치며 바다 저편의 신기루를 기다리는 귀여운 소녀 같은 천진한 눈길, 삭막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절절한 삶의 추구를 가진 지꿎은 생명력, 어쩌면 볼품없는 겨울나무에 청사과(青苹果)를 만들려는 착각은 아닐가?
한번은 한 문학후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어머 선생님, 발톱 메니큐도 빨갛게 하셨네요!”
나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웃으며 조용히 대답하였다.
“응, 내 마음가짐의 표현이야.”
그렇다. 나는 꺼지지 않는 추구와 향기를 가지고 싶은 내 마음의 소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청춘은 얼굴에 크림 한번 못 바르고 예쁜 옷 한번 입어보지 못하고 지나가버렸다. 처녀로 시집온 나의‘새엄마’의 보얀 얼굴을 보고 그가 바르던 크림을 몰래 손가락으로 찍어발라봤던 소녀시절, 할머니에게 들켜 종아리가 빨갛게 회초리 세례를 받던 일은 나에게 오랜 아픔이였다.
그래서 이 나이에도 키 작은 자신을 보완하기 위하여 하이힐을 신고 다니며 문밖에 나설 때면 옷장안에서 내 기질에 맞는 옷을 고르느라 무지 기운을 뺀다. 녀인들은 모임에 나설 때면 옷장에 아무리 옷이 가득하다 해도 항상 부족함을 느낀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 고르다 시간이 되여버리면 아쉬움을 삼키며 급급히 블랙으로 된 옷가지를 몸에 걸치고 떠난다. 어느 장소에서나 무난한, 소화가 되는 색상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장을 하면 꼭 립스틱을 바르는 걸 잊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물고기를 그렸을 때 마지막으로 눈을 그려넣는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다. 바람이 불어 로녀의 머리를 푸시시 날리는 계절이면 녀인 식 베레모를 예쁘게 쓰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조건 류행을 따르는 건 질색이다.
댄스 추러 다니고 가끔은 친한 친구들과 마주 앉아 마작도 치고 려행도 다니지만 나에겐 또 하나의 취미가 있다.
열다섯살 소녀시절, 그때 아주 보기 드물었던 《음식 만드는 법》이라는 북조선에서 나온 책을 보게 되였다. 할머니가 해주는 밥만 먹으며 음식 작식법에 전혀 무관심했던 나였는데 내용을 알아보지도 못하면서 그 책을 한글자도 빠짐없이 다 읽어버렸다. 그리곤 뒤장에 엉뚱한 글 한 줄을 써놓았다. 음식을 잘 만들어 가족의 건강을 지켜주는 것, 이것은 녀인의 직책, 지금 생각하면 같잖아죽겠다. 그 나이에 뭘 안다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도 가족들에게 갖가지 영양가치에 신경을 써 음식을 차려주는 것이 마냥 즐겁다. 일하러 갔다 돌아온 식구들이 내가 정성들여 만든 음식을 맛갈스레 먹는 장면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한없이 행복하다.
마음은 그러한데 탄력 없는 나의 성격으로 유모아도 없는 나의 직설적인 표현에 가끔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오해를 받을 때가 있고 또한 나의 굳은 표정은 상대방의 거부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남편과 잘 다툰다. 군인 출신의 그와의 혼인 생활은 감성이 넘쳐나고 완벽함을 주장하는 나와 현실적이고 편안함을 좋아하는 그와 쇠소리 나게 부딪칠 때가 많다. 일평생 원망하며 사는 것 같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몇년 동안 그와 갈라져있을 때, 나는 공중전화를 붙들고 그와 대화를 하다가 그칠 줄 모르는 눈물에 말이 막혔었고 남편이 맹장수술을 할 때에도 수술실 밖에서 엉엉 울어 뭇사람들을 웃겼다.
젖먹이 어린 것을 등에 업고 방에 엎드려 밤을 새우며 글을 쓰던 그 나날에 돈벌이도 안되는 글쟁이가 되는 것이 어려서부터의 소원이였다는 나의 한마디 말에 남편은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나는 “옛날 그 시절”이란 말을 문학후배들 앞에서 절대하지 않는다. 이십 몇년이라는 창작 공백이 지금의 나를 얼마나 초라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또다시 글쟁이라는 주술에 빠져들고 말았다.
늦게 다시 시작한 문학창작이지만 무뎌진 솜씨에도 글 한편을 금방 탈고하고 필을 놓는 그 순간, 산출의 그 환희와 쾌락과 행복감은 글쟁이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리해할 수 없는 일이다. 세계적인 작가들도 초고는 끔찍했다고 말한다던데 나는 볼품없는 그 첫 탈고의 ‘성공’에 도취되여 자신이 아직은 청춘이고 최고인 줄 안다. 매번의 이런 유혹에 빠져 이 로녀의 마음에도 겨울 황매화의 초록색 줄기가 풋풋하게 살아나는 것이 아닐가.
그렇다고 내가 여생에 무슨 대단한 성과를 이루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세상을 나만의 눈으로 바라보며 사상을 잉태하여 글을 써내는 주술에 빠진 인생을 즐기려 한다. 그것이 나라는 겨울 녀인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좀비 같은 존재를 면할 수 있는 내 특유의 길일 것이다. 자신을 향기의 녀인으로 포장하며 그 속에 끊임없이 내 추구의 내용물을 리필하련다. 그래서 내 인생의 마지막 퍼즐을 잘 맞추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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