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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평에 사랑을 담다
허복순
1
나의 아버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쉰아홉 고개를 넘기지 못하고 생일을 며칠 앞둔 날, 유언 한마디도 없이 심장마비로 조용히 떠났다.
아버지는 원래 성격이 조용했다. 희로애락 같은 걸 표현하기 썩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에 대한 사랑은 무척 깊었다. 언제나 나보다 엄마가 우선이였고 말없이 엄마를 아끼고 보살폈으며 엄마의 의사를 무조건 따르군 하였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엄마가 왕이였고 두분은 평생을 살면서 흔한 부부싸움 한번 하지 않았다.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두분은 금슬도 좋아 주변에서 부러워하는 잉꼬부부였다.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나는 눈물을 흘리지 못했다. 갑작스런 사망소식에 미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어리벙벙한데 엄마가 히스테리적인 반응을 보이는 통에 더욱 놀라 엄마를 돌보느라 나는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엄마는 “여보”를 목 터지게 웨치면서 식어가는 아버지의 몸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뜯어 말려도 또다시 아버지의 시신 우에 엎어졌다. 엄마의 피 터지는 목소리는 복도를 타고 온 병원을 쩌렁쩌렁 울렸다. 의사들도 처음 있는 일이라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였다.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마주하자 엄마는 두 손을 포개 가슴에 얹으면서 “여보, 사랑해!”를 거듭 웨쳤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그 말만 수없이 반복하였다. 마치도 아버지가 엄마의 사랑을 의심이라도 하고 있는듯, 그래서 아버지에게 엄마의 절대적인 사랑을 확인시키려는듯 그렇게 가슴 저리게 웨쳤다. 젊은이들도 사람들 앞에서는 부끄러워 감히 내뱉기 힘든 말이 60세를 바라보는 엄마 입에서 거침없이 흘러나왔으니 엄마의 ‘애절한 사랑’은 청승맞을 정도였다. 미끄러져 들어가는 아버지의 시신을 엎어지듯 따라가며 웨치는 엄마의 목소리가 장례식장을 떠돌다가 아버지의 시신을 따라 밀려나갔다.
아버지는 뱀띠였다. 뱀띠 석상 앞에서 우리는 고별제를 치렀다. 엄마는 연신 곡을 하였다. 아버지의 령전에 술 한잔 부어놓고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린 후 엄마는 “여보,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라는 말을 곱씹으면서 자리에서 일어설 념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아버지의 대답을 기다리는듯 아버지의 유상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엄마는 제정신이 아닌 듯하였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연기하는 줄 여길 정도로 그 날의 엄마는 다른 사람 같아보였다. 조문객들도 이상한 눈길로 엄마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수군거렸다. 아버지를 그렇게 보내고 엄마는 슬픔을 못이겨 지쳐 누웠다. 집에 돌아와서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더 이상의 넉두리도 없었으나 대신 식사도 안하고 이틀 동안 그냥 누워만 있었다.
삼일장까지 치르고 연길로 돌아가기 이틀전, 나는 근심스레 엄마한테 여쭸다.
“엄마, 우리 집에 같이 갈가?”
엄마는 그제야 머리를 돌려 나를 보더니 갑자기 이불을 제치고 머리를 매만지면서 일어났다.
“내 걱정 말고 가거라. 갈 사람을 보내드렸으니 이제 우리가 잘사는 게 그 사람을 위하는 거야.”
말을 마치고는 랭장고를 열더니 어디서 구해왔는지 깨끗하게 다듬어놓은 닭 한마리를 꺼냈다.
“저번부터 해준다던 게 네가 안 와서 그냥 넣어두었다. 래일 해줄 테니 먹고 가.”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아버지를 하늘나라에 보내고 이제 겨우 이틀이 지났는데 엄마는 벌써 언제 그랬느냐 싶게 마치 감기를 앓고 난 사람처럼 툭툭 털고 일어나 나한테 닭곰을 해주겠단다.
나는 아무 말도 안했다. 엄마가 받은 정신적 타격이 큰 것 같았다. 다음날이면 이번 호 잡지를 인쇄부문에 넘겨야 하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엄마만 두고 떠나기에도 난처했다. 속상한 나머지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나는 애꿎은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핸드폰 모니터에는 오도카니 앉아 말똥말똥 나만 쳐다보는 우리 애완견 ‘꽃너울’의 얼굴이 떠있었다. 나는 그제야 집에 두고 온 ‘꽃너울’이 어쩌고 있나 싶어 집에 설치한 카메라의 실시간 영상을 켰다. ‘꽃너울’은 쏘파에서 네다리를 뻗고 시름없이 자고 있었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나는 서서히 해동되는 닭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갑자기 좋은 생각이 머리를 쳤다. 엄마 집에도 이런 카메라를 설치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면 혹시 엄마에게 돌발상황이 발생해도 나는 곧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의 동의 없이 카메라를 설치하는 건 위법이고 사생활 침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일은 엄마가 모르게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걱정되여서 하는 것이니 효도라며 나는 자신을 위안했다.
이튿날 엄마는 반나절 부엌에서 맴돌다 구수한 닭곰을 만들어 상에 올렸다. 나는 입맛이 당기지 않았지만 엄마의 정성을 몰라라 할 수 없어 무슨 맛인지도 모른 채 닭곰을 먹었다. 그 다음날 나는 연길로 돌아왔다.
엄마는 이틀 만에 평정을 되찾았지만 나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엄마에 대한 걱정을 한가슴에 안고 살았다.
2
엄마의 남편
남편은 나를 남기고 먼저 갔다.
나는 내가 먼저 가기를 바랐다. 슬픔에 잠긴 남편의 가슴에 안겨 잘못했다고, 용서를 바란다고 유언을 남기려고 했었다. 그러나 순진한 남편은 못된 녀자에게 잘못을 빌 기회마저 주지 않고 홀연히 떠났다. 사람은 죽으면 심장이 멎었어도 귀는 마지막까지 열려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나는 남편의 귀가 닫히기 전에 할 말을 다해야 했다. 사랑한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입으로가 아니라 령혼으로 하였다.
“여보, 잘 가요.”
나는 남편의 유상을 만지작거리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는 옷장 뒤의 보이지 않는 곳에 유상을 넣어두었다. 그리고는 서랍을 열고 남편의 흔적이 남아있는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오래동안 펼쳐보지 않았던 작은 앨범 하나가 눈에 띄였다. 펼치자니 엉켜붙어서 잘 떨어지지도 않았다. 힘껏 당기자 쫙 하면서 사진이 찢어졌다. 그것은 흑토신문사를 배경으로 찍은 나와 남편의 사진이였다. 남편의 얼굴은 그대로인데 내 얼굴이 반쪽으로 찢겨나갔다. 나는 찢긴 나를 향해 중얼거렸다.
“너의 죄가 컸어. 사랑하는 남편한테 미안한 짓을 많이 해서 남편이 너한테 주는 벌이야.”
나는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 진심을 남편이 믿지 않을가 봐 나는 사는 동안 내내 전전긍긍하였다. 대학교 3년 동안 나를 향한 남편의 질긴 추구에도 허락하지 않았던 건 룡택이에 대한 사랑 때문이였다. 교외실습을 시작하기 전, 남편은 자신의 고향인 할빈으로 함께 가자고 하였다. 아버지가 할빈에 있는 흑토신문사 사장이라며 둘이 같이 그 곳에 가서 실습할 수도 있고 잘하면 정식직원으로 남을 수도 있다고 하였다. 솔직히 나는 흑토신문사에서 출근하는 것보다 내가 나서자란 고향과 부모님을 멀리 떠나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했다. 그 집을 떠나야만 나는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은 내가 ‘바보네 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서서히 싹트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소아마비로 어려서부터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앉은뱅이였고 아버지는 사지는 멀쩡하나 지적 장애가 있었다. 동네사람들은 아버지의 이름보다는 ‘바보’라는 호칭을 더 많이 썼고 어머니의 이름보다는 ‘앉은뱅이아줌마’라고 더 많이 불렀다. 한번은 동네어른들이 모여앉은 자리에 우리 또래 애들을 불러놓고 노래를 해보라고 하였다. 여러명중에서 내가 노래를 제일 잘 불렀고 칭찬도 제일 많이 받았다. 새로 이사 온 사람이 나를 기특하다며 사탕을 쥐여주면서 물었다.
“누구 집 딸인지 참 예쁘고 똑똑하구나.”
내가 으쓱해서 사탕을 받으려는데 옆에 있던 동네로인이 끼여들었다.
“걔는 제일 뒤집에 사는 바보네 딸이요.”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처음으로 부끄럽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알게 되였다. 나는 귀한 사탕도 받지 않고 홱 돌아서서 눈물을 뿌리며 뛰여갔다.
“어머, 바보네 딸인데 저렇게 똑똑할 수가 있나?”
“엄마를 닮았겠지, 뭐. 엄마는 앉은뱅이래도 사람이 손부리가 야무지고 영 참하오.”
“어휴, 애만 불쌍하네. 어쩌면 저런 집에서 태여나가지고. 쯧쯧…”
내가 공연히 심심한 사람들에게 말거리를 만들어준 셈이였다. 끝없이 이어지는 우리 집 얘기를 피해 나는 뛰고 또 뛰였다. 숨이 차올랐지만 산 정상까지 뛰여올라갔다. 아무도 없는 높은 산꼭대기에서 나는 치마폭에 얼굴을 묻고 소리 내여 엉엉 울었다. 눈물이 치마폭을 질펀하게 적시였다.
그 때 나는 알았다. 내가 남보다 뛰여날수록 사람들의 입방아에 더 오를 것이며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나 때문에 또 한번 혀의 란도질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곳을 벗어나지 않는 한 나는 영원한 ‘바보네 딸’이라는 것을. 그렇게 일곱살의 어린 녀자애는 너무 일찍 세상의 억울함을 알아버렸다.
그래서일가? 나는 사랑하는 두 남자중에서 내가 ‘바보네 딸’로 살지 않을 수 있는 쪽을 선택하였다. 누구도 모르는 곳에 가서 사람답게 살고 싶은 욕망이 더 커서 룡택이를 버리고 고향을 멀리 등지고 남편을 따라 할빈으로 왔다.
“여보, 고마워. 당신 덕에 난 한평생 ‘바보네 딸’이 아닌 기자선생님으로 불리면서 머리 쳐들고 잘살았어.”
또 사진 한장이 눈에 안겨왔다. 딸애 명화의 첫돌생일에 우리 세식구가 활짝 웃으면서 찍은 사진이였다. 나는 사진 속 명화의 코등을 톡톡 치며 혼자 중얼거렸다.
“너의 코는 왜 하필 룡택이를 닮아서 한평생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거니? 너의 코를 볼 때마다 네가 혹시 룡택이의 딸이 아닐가 하는 걱정 때문에 평생 발편잠을 못 잤구나…”
사실 명화가 누구 딸인지 나한테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어쨌든 내 배가 아파서 난 내 딸이니까. 솔직히 누구 딸인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룡택이의 딸이라면 남편한테 너무 미안하고 남편의 인생이 너무 비참할 것 같아서 괴로웠을 뿐이다. 여태까지 마음을 졸이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다 부질없는 짓이 되여버렸다.
갑자기 룡택이가 보고 싶었다. 지금은 뭘 하면서 살고 있는지? 그 때 그렇게 헤여지고 나서 그의 소식을 한번도 듣지 못하고 살아왔다. 나는 약속을 지켰으니 이제는 룡택이가 약속을 지킬 차례가 되였다. 내가 그를 필요로 할 때 찾아오겠다던 그 약속을 기억하고나 있을가?
나는 서랍을 빼고 몰래 감추어두었던 사진 한장을 꺼내 들었다. 나와 룡택이가 대학입학통지서를 펼쳐들고 “연변1중”이라고 씌여진 학교 대문 앞에서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이였다. 나는 사진을 잘 닦아서 액자 속에 넣은 후 탁상 우에 살며시 올려놓았다.
3
엄마의 첫사랑
그 날은 나와 영애가 사랑을 약속한 지 30일이 되는 날이였다. 한달이 되는 기념적인 날에 대학입학통지서를 받으러 같이 학교에 가기로 영애와 약속했다.
나와 영애의 인연은 아마도 연변1중 입학통지서를 받은 그 날부터 시작되였던 것 같다. 중점고중에 입학하였다고 아버지는 돼지를 잡고 친척들과 동네어른들을 청하여 잔치를 벌였다. 자정이 넘어도 술판은 끝날 줄 몰랐다. 나는 잠도 안 오는지라 스적스적 강변을 따라 걷다가 마을 앞 호수가에 다달았다. 그런데 고요한 호수가에 웬 사람의 그림자가 언뜻거렸다. 깜짝 놀란 나는 슬며시 몸을 숨기며 한밤중에 뭐하는 사람인지 눈여겨보았다. 그 사람은 신발을 벗고 그대로 호수에 들어서더니 곧바로 수심을 향해 걸어갔다. 물이 가슴을 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급해난 나는 얼결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거 누구요? 거기서 뭐하는 거요?”
그 사람은 놀랐는지 뒤를 돌아보다가 몸을 휘청하더니 그만 중심을 잃고 허우적거렸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대로 달려가 물에 뛰여들어 그 사람을 기슭으로 끌어올렸다. 녀자였다. 그녀는 물을 왈칵왈칵 토해내더니 한참후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더니 고맙다는 말 대신에 소리를 지르며 오열하였다.
“죽게 내버려두지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 네가 뭔데?… 아!…”
그녀가 미친듯이 몸부림치는 바람에 겨우 어깨에 걸려있던 옷이 벗겨지며 브래지어를 입지 않은 하얗고 통통한 젖가슴이 달빛 아래에서 처량하게 드러났다. 숨을 고르고 자세히 보니 물에 젖어 얼굴에 찰싹 달라붙은 머리카락 사이로 두개의 하얀 덧이가 유표하게 눈에 띄였다.
그녀는 ‘바보네 딸’ 영애였다. 예쁘장하게 생기기는 했어도 ‘바보네 딸’이고 또 쩍하면 덧이를 드러내고 벌처럼 톡톡 쏘아대는 바람에 그녀와는 평소에 말도 몇마디 섞어보지 못했었다. 나는 말없이 웃옷을 벗어 그녀의 몸을 감싸주고 진정하도록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그 날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변1중 입학통지서를 받았지만 그녀의 부모는 돈이 없어서 학교에 못 보내준다고 했단다. ‘바보네 딸’로 사는 것이 진저리가 나 이곳을 떠나고 싶고 그러려면 연변1중에 입학해 공부하는 길밖에 없는데 그 길이 막혔으니 죽는 길밖에 없다며 그녀는 입술을 피 터지게 씹었다. 그녀가 불쌍했다. 부모 잘못 만난 게 죄는 아니지 않는가. 이렇듯 고통스럽게 사는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다. 나는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희떠운 소리를 내뱉었다.
“학비만 대달라고 해. 식비나 기타 생활비는 내가 도와줄게.”
그 말에 영애는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동그란 눈을 반짝거리며 되물었다.
“진짜지? 너 약속할 수 있어?”
나는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자는 내가 지켜줘야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남자의 본능적인 책임감이 발동하였던 것 같다. 그후부터 나는 영애의 수호천사로 살았다.
영애네 집앞에 이르니 나무그늘 밑에서 영애는 어머니와 함께 담배를 뱆고 있었다. 한줄에 십전씩 받고 하는 삯일이였다. 영애 어머니는 앉아서 하는 일은 뭐든 잘했다. 그래서 농사철에는 닥치는 대로 삯일을 해서 푼돈을 벌고 겨울철에는 삯바느질을 해서 생활에 보태군 하였다.
내가 온 것을 본 영애는 일하다 말고 오뚝 몸을 일으키며 나한테로 뛰여왔다. 그러자 영애 어머니가 불러세웠다.
“이 년아, 또 어디로 튀는 거야? 한푼이라도 벌어야 학교를 가거나 말거나 할 게 아니야!”
영애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으니 자기 일은 혼자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일가, 그녀는 자기주장이 강했고 세상에 맞서는 자기만의 생존방식이 있었다. 갖고 싶거나 하고 싶은 일은 어떤 수를 써서든지 꼭 이루려고 했다.
학교 정문 옆 커다란 공시란 앞에는 사람들이 꽉 모여서서 본인들의 이름을 찾느라 북적거렸다. 그 속에는 나와 영애도 끼여있었다. 갑자기 영애가 만세소리를 지르며 내 품에 와락 안기였다.
“룡택아, 우리 둘 다 조문학부에 붙었어!”
나는 내가 붙은 것보다 영애가 기뻐하는 모습이 더 즐거웠다. 우리는 통지서를 찾아 쥐고 교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그리고는 정원의 정자에 나란히 앉아 입학통지서를 펼쳐들고 다시한번 우리들의 이름을 확인하였다. 통지서에 적힌 글을 내리 읽던 영애의 얼굴이 흐려졌다. 나는 영문을 몰라 통지서를 들여다보았다. ‘박영애’라고 제대로 밝혀져있었다. 의아한 눈길로 쳐다봤더니 영애는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울먹거렸다.
“학비가 천원이 넘네. 우리 형편에 어림도 없는데. 나 어떡하지?”
고중 3년 동안 나는 영애의 학업에 영향을 줄가 걱정되여 사랑한다는 말을 꾹 참고 지냈다. 그러다 대학입학시험을 마친 날 저녁, 동네 호수가에서 영애에게 사랑을 고백하였다. 영애도 기다렸다는듯이 순순히 나에게 앵두입술을 내주며 사랑을 약속하였다.
나는 저도 모르게 3년전, 영애가 고중을 다니지 못한다고 호수에 들어서던 정경이 떠올랐다. 그 때도 구해줬는데 지금은 내 녀자, 내 사랑인데 영애한테 가슴 아픈 일이 생기게 할 수 없었다.
“일단 걱정 마. 내가 알아서 해결해줄게. 근데 잠시 내가 대학에 붙었다는 말을 누구하고도 해서는 안된다. 우리 집에도 비밀이야. 알겠어?”
“너만 믿을게. 나한테는 너밖에 없다는 걸 알지?”
영애의 애원에 찬 눈길을 바라보며 나는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영애는 대학교에 입학했고 나는 어머니가 사업하는 중학교에 대리교원으로 출근하였다. 벽돌공장 공장장인 아버지와 중학교 교원인 어머니를 둔 나는 경제상의 어려움이 없었다. 내가 대학입시에서 락방한 걸로 알고 부모님은 얼마든지 뒤바라지를 해줄 테니 대학교에 붙을 때까지 5년이고 10년이고 공부를 다시 하라고 권했지만 나는 머리가 아파서 더는 공부를 못하겠다며 기어이 출근을 결정하였다. 영애를 책임질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4
나의 첫사랑
부모와의 만남도 일종의 인연이라고 한다. 아버지와의 35년 인연을 끝내고 내 삶을 위하여 슬픔에 잠긴 엄마를 혼자 두고 부랴부랴 연길로 돌아오는 나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였다. 인간세상은 륜회라고 하지만 역시 인간은 가장 탐욕적이고 리기적이며 랭혹한 동물인 것 같다.
주필의 사무실 문을 노크하고 들어가 나는 그동안의 자초지종에 대해 보고했다. 언제나 자상하고 나를 딸처럼 아껴주던 주필은 오늘도 나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어머니 곁에 며칠 더 있다가 천천히 와도 된다는데 왜 이렇게 빨리 왔어? 편집본은 내가 이미 인쇄에 넘겼으니까 어서 들어가 쉬여. 입맛이 없을 텐데 이걸 먹어. 남아있는 사람이 너무 슬퍼하면 가신 분 가실 길 제대로 못 가신단다.”
주필은 언제 준비해놓았는지 보건품과 내가 좋아하는 간식거리를 쥐여주면서 어서 집에 들어가 쉬라며 내 등을 떠밀었다. 언제나 가까이에서 나에게 아버지 못지 않은 사랑을 주는 령도이면서 스승이였고 나의 사회생활의 인도자이고 상담사이기도 하였다. 인생을 살면서 귀인을 만난다는 게 이런 만남을 두고 말하는 것 같다.
내가 24살에 대학교 실습으로 《진달래문학》잡지사에 왔을 때 김룡택 주필은 49세의 로총각이였다. 인물, 체격, 재력, 명예, 능력 등 모든 걸 다 갖춘 우수한 남자라 할 수 있는데 왜 그 나이까지 결혼을 안한 건지 나는 몹시 궁금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나를 하나부터 열까지 성심껏 가르쳤다. 또 작품을 감상하고 평하면서 놀라울 만큼 견해가 같을 때가 많아서 더 가까워진 것 같다. 일년이 되여 실습이 끝날 때 나는 내가 김룡택 주필을 사랑하고 있음을 느꼈다. 주변에서도 주필이 딸 벌이 되는 나이 어린 실습생과 좋아한다는 뒤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실습이 끝나서 학교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자 나는 고민에 빠졌다.
사랑한다고 고백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짝사랑으로 끝내야 할지를 몰라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 때 마지막 만찬을 사준다며 김룡택 주필이 나를 불렀다.
식사자리에서 나는 어떻게 말을 꺼낼가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한참후 나는 용기를 내여 내 속마음을 고백하려고 입을 뗐다.
“주필님, 실은 제가…”
그러나 내 말이 끝나기 전에 주필이 말꼭지를 잘라갔다.
“오, 요즘 도는 소문 때문에 그러지? 나도 그것 때문에 너한테 물어볼 게 있어. 너 우리 잡지사에 남아서 계속 나하고 같이 일할 자신 있어?”
주필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뭐든지 두려울 게 없었다. 나는 상기된 얼굴로 힘있게 머리를 끄덕이였다.
“알았어, 내가 다 해결해놓을 테니 너 소식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오라고 할 때 오면 돼.”
나는 기뻤다. 김룡택 주필도 날 사랑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세상이 더 아름다워보였다.
“어린애가 그런 소문을 달고 학교로 돌아가면 너 인생 망친다. 소문은 난 자리에서 주저앉게 해야 돼. 우리의 행동으로 우리는 그런 사이가 아님을 증명해야 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주필의 그 한마디에 무지개처럼 피여올랐던 나의 행복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나는 너무 부끄러워 모닥불을 뒤집어쓴듯 얼굴이 빨개졌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듯 김룡택 주필은 히죽이 웃으면서 빨개진 내 코등을 손으로 꼭 집어놓으며 내 기분을 풀어주었다.
“꼭 그 리유만은 아니야. 너 참 능력 있고 참해서 마음에 들었어. 남겨서 같이 일하고 싶었거든. 나를 아빠처럼 믿고 따라와, 다른 생각 말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하고 일하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르지? 허허허!”
나도 덩달아 웃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고 꿈에서 깬듯 머리가 맑아졌다.
김룡택 주필은 약속 대로 나를 《진달래문학》잡지사의 정식직원으로 받아주었고 나의 인생의 등대가 되여 앞을 환히 비춰주었다. 나에게 좋은 신랑감도 소개시켜주었고 내가 직장에서나 생활에서 곤난이 있을 때마다 직접 나서서 해결해주었다. 인제는 돌아가신 아버지 몫까지 해줄 양 사랑이 듬뿍 담긴 보따리를 안겨주니 나는 눈물나도록 고맙기만 하였다.
집에 들어서자 바람으로 엄마가 걱정되여 카메라를 켰다. 서랍장에 마주앉아 아버지의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 엄마의 뒤모습이 너무 처량해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사진첩을 쫙 찢는다. 나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잠시후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혹시 엄마가 정신이 잘못되지 않았는지 마음이 죄여들었다. 다음에는 내 첫돌사진을 보면서 서글픈 표정으로 내 코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린다. 볼륨을 높이고 들어보니 “넌 누구 딸이니?” 하는 말이 또렷이 들렸다. 뭔 말인지 통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서랍을 빼고 안쪽에서 또 다른 사진 한장을 꺼낸다. 그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는 액자를 찾아서 사진을 정히 넣고 탁자 우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은 후 어깨를 들먹이며 서럽게 울었다. 액자 유리가 알른거려 사진 속 사람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없었지만 젊은 남녀가 나란히 서있는 사진인 것 같았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 전등을 켰다. 영상다시보기를 클릭하고 화면을 최대한 확대하여 사진을 보았다. 녀자는 엄마였는데 남자는 아버지가 아니였다. 사진 속 남자는 모르는 사람이였는데 어데서 본 것 같기도 했다. 아주 오래전 사진이였다. 다시 실시간 영상화면으로 돌아와 보니 엄마는 사진을 가슴에 꼭 안은 채 탁자 아래 바닥에 누워 잠들어있었다.
나는 머리가 뗑해났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람? 가슴이 침침해나서 되는대로 옷을 걸치고 밖에 나와 강변도로를 무작정 걸었다. 한마디로 엄마한테서 느끼는 배신감과 아버지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어떻게 남편을 보내고 3일도 안 지났는데 다른 남자를 생각하면서 울 수가 있을가? 장례식장에서의 엄마의 그 애탄 부르짖음은 가식이고 연극이였을가? 엄마가 무서워났다. 그리고 아버지가 불쌍해났다.
사진 속 남자와 엄마는 보통 사이가 아닌 것 같았다. 불현듯 “넌 누구 딸이니?”라고 중얼거리던 엄마의 말이 머리속을 맴돌았다. 혹시 나한테 출생의 비밀 같은 게 있는 건 아닐가?
5
엄마의 남자
영애의 순정을 빼앗은 나는 발길을 돌리면서부터 후회했다. 아무래도 보내줄 걸 사나이답게 보내줄 것을. 그 자책감은 내 인생을 동반했고 다른 녀자를 가까이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나는 한평생 총각으로 늙어가도 좋다고 생각했다.
헤여지자는 영애의 말에 나는 미치도록 흥분했다. 죽겠다는 사람을 살려놓고 도와주겠다고 말한 사람은 나였다. 또한 자신의 언약을 지키기 위해 고중 3년 동안 나의 생활비 절반을 덜어 그녀의 식비를 대주었다. 사랑하는 그녀를 위하여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4년 동안 뒤바라지를 해주었다. 그 시간들이 억울해서였을가? 그러나 영애를 위해 대학진학을 포기했지만 실제로는 영애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하였다. 나는 계획에 따라 2년제 전문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하고 졸업증을 땄으며 그후에 통신대학에서 조선언어문학을 공부하여 영애와 똑같이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학과 본과졸업증을 따냈다. 영애가 대학을 졸업할 때에 나도 똑같이 대학졸업증을 내밀며 놀라게 해줄 예정이였다. 그런데 도리여 영애에게서 생각지도 못한 리별통보를 받을 줄이야. 3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나는 영애가 나에게 한 그 말을 리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었다.
그 날도 우리는 사랑을 약속한 그 호수가에서 만났다.
“난 너와 그 남자를 둘 다 사랑해. 둘 다 진심이야. 그런데 너를 선택하면 난 영원히 ‘바보네 딸’로 살아야 하잖아? 내가 ‘바보네 딸’인 걸 모르는 사람하고 살고 싶어. 룡택아, 날 보내줘.”
만약에 그 때 영애가 단지 ‘바보네 딸’로 살기 싫어서 떠나겠다는 말만 했더라면 나는 그렇게 화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눈물을 흘리면서 사랑하니까 보내준다는 시 같은 말을 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와 그 남자 두 사람을 똑같이 사랑한다는 말에 참을 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마음은 하나뿐이야, 몸도 하나고 령혼도 하나인 것처럼. 거짓말하지 마.”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영애는 눈을 크게 뜨더니 억울한듯 나를 쏘아보며 물었다.
“난 너를 사랑한다고. 그 마음이 변한 거 아니야. 그냥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한 것뿐이라고. 제발 믿어줘. 어쩌면 믿을 건데? 이 호수에 빠져 죽을가? 죽으면 믿을 거야?”
영애는 진짜로 호수로 뛰여들려고 하였다. 몇년전의 정경이 떠올라 나는 영애의 팔을 잡았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영애는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악을 쓰며 몸부림을 쳤다. 그 바람에 옷이 다 벗겨지고 처음 이곳에서 영애를 만났을 때처럼 그녀의 흰 살결이 드러났다. 순간 우리는 멈칫했다. 영애는 몸을 돌려 내 품에 안기면서 말했다.
“너를 사랑해, 영원히. 내 몸으로 증명해줄게.”
내 머리속에는 한가지 생각뿐이였다.
‘사랑은 하나야. 몸도 하나야.’
나는 그녀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싶은 반발심에 서슴없이 그녀의 몸을 가졌다. 몸으로 사랑의 약속을 하는 그녀를 두고 돌아서는 사나이의 가슴에서는 피가 흘렀다. 그러나 하나만은 더 또렷해졌다. 영애는 영원히 내 녀자라는 것, 영애를 위해 살고 영애를 위해 죽을 것이며 오늘은 영애를 위해 떠나간다고…
나는 영애가 날 필요로 할 때 언제든지 달려갈 준비가 되여있었다. 지금 영애가 날 부르고 있다. 나는 일각이 삼추같았다. 고향에 돌아가 영애와 함께 남은 인생을 보내리라 작심하였다. 퇴직이 반년 정도 남아있으나 아끼는 후배한테 주필자리를 넘겨줄 생각이다. 그 애와는 첫 만남부터 이상하게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비록 세대차이가 있었지만 말하지 않아도 나의 의사를 잘 알아주었고 문제를 보는 시각이나 견해도 같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이가 어리지만 곁에 두고 싶어 정식직원으로 받아주었다. 그런데 리력서를 보는 순간 나는 운명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재확인하면서 온몸에 전률이 일었다. 엄마가 박영애, 바로 내 첫사랑 영애의 딸이였던 것이다.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잠자던 영애는 그 때로부터 내 주변을 맴돌았다. 영애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착잡했지만 나중에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 여기며 영애의 딸 명화를 내 딸처럼 살갑게 대해주었다. 마음은 통하는 법이다. 명화도 말로는 주필님이라고 부르지만 날 가족처럼 대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명화한테 업무를 인계하고 시름 놓고 영애를 찾아가야지 하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면서 잠이 오지 않았다.
그 때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시계를 보니 새벽 한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
현관 카메라 화면에는 명화의 그늘진 얼굴이 나타났다. 례사롭지 않은 표정이였다. 언제나 고민스러운 일이 있으면 나를 찾아오긴 했지만 오늘처럼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는 처음이였다. 문을 열어주니 아무렇게나 옷을 걸쳐 입은 명화가 초췌한 얼굴로 맨발에 끌신을 신은 채 서있었다. 집으로 들어온 명화는 곧추 쏘파에 가 맥없이 주저앉았다. 나는 말없이 따뜻한 커피를 타서 그녀 앞에 놓아주었다. 몰몰 피여오르는 커피향이 분위기를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명화는 잔을 들어 한모금 마시더니 약간은 진정된듯 조용히 말했다.
“주필님, 내가 이 나이 돼서 나의 출생의 비밀 같은 걸 알았다면 꼭 사실을 밝혀야 할 필요가 있을가요?”
나는 순간 흠칫하면서 커피잔을 든 손이 떨려왔다.
“그게 무슨 말이야?”
“어머니가 혼자말처럼 중얼거리는 걸 들었어요.”
나는 갑자기 머리가 뜨거워났다. 혹시? 나는 왜 그 생각을 단 한번도 못했을가? 복잡해지는 생각을 잠간 멈추고 마음을 추스리며 커피를 단숨에 쭉 굽을 냈다. 그리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다독이듯 말했다.
“어머니가 너무 슬퍼서 그냥 하는 소리겠지. 진짜 뭔가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네가 알아야 할 일이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고 몰라도 되는 일이라면 그냥 내버려두는 게 좋지 않을가 싶은데… 어머니의 선택에 맡기는 게 도리인 것 같구나.”
명화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사색에 잠긴듯 멀거니 캄캄한 창밖을 응시하였다. 나도 명화의 시선을 따라 캄캄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맘속에 오래도록 두고 있던 말을 서서히 내뱉고 말았다.
“녀자들은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는 거니?”
밑도 끝도 없는 내 말에 명화는 놀란듯 올롱한 눈으로 나를 이윽히 바라보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할 수 있어요. 나는 지금도 두 남자를 사랑하고 있어요.”
말을 마친 명화는 그윽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결심한듯 일어서며 창문을 열었다. 이제 곧 동녘이 서서히 밝아오며 어둠을 밀어낼 것이다. 나는 미리 준비했던 인계서류와 문서들을 꺼내놓았다.
“새날이 곧 올 거고 생활은 계속될 거야. 래일부터는 네가 주필이다. 그리고 이 집도 네가 맡아줘. 나는 시골로 내려가서 내 글이나 쓰면서 만년을 보내련다. 시간이 나거들랑 종종 찾아다구.”
쫓듯이 명화를 보낸 후 나는 헝클어진 생각들을 정리하느라 몇시간째 방안을 배회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담배 한가치를 입에 물었다.
영애의 딸이면 내 딸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영애의 딸이 내 친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왜 한번도 해보지 못했을가? 이 세상에 혼자 왔다가 혼자 갈 줄 알았는데 내 피줄이 있다니, 피줄에 대한 강한 끌림과 흥분에 세상마저 달라지는 것 같았다. 명화가 내 자식이면 얼마나 좋을가? 명화가 인정하지 않아도 좋다. 나만 알고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꼭 알고 싶어졌다. 나는 채 태우지 못한 담배를 비벼 끄고 명화가 마셨던 커피잔을 챙겼다.
6
재회
과연 사람은 운명을 벗어날 수 있을가?
‘바보네 딸’로 살기 싫어서 부모님을 버리고 사랑을 배반하고 이방인처럼 고향을 떠나 살아온 세월이 36년이다. 그동안 비록 나를 ‘바보네 딸’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지만 나는 내가 ‘바보네 딸’이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이제는 운명에 머리 숙이고 나의 숙명을 다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먼저 명화한테 영상전화를 걸었다.
“명화야, 이번 주말에 엄마랑 같이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보러 가자.”
명화가 놀라운듯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물어왔다.
“뭐라구? 나한테 외가집이 있었어? 엄마 혹시 어디 아파?”
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불안하게 나를 바라보는 명화의 눈길을 피했다.
“엄마가 너한테 말 못한 게 있어. 연변 룡정에 석정이란 곳이 있어. 해란강 끝자락에… 거기가 엄마의 고향이야.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생전이시고. 주말에 엄마랑 같이 가보자. 시간 비우고 기다려라.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해줄게.”
말을 마치고 나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남편도 명화도 나의 부모님에 대해서 모른다.
남편을 따라 여기로 와서 5년후 명화가 첫돌생일을 쇠던 날, 나는 어머니가 실명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삯바느질을 많이 해서인지 아니면 집을 떠난 이 딸이 보고 싶어서인지 어머니는 손녀의 얼굴도 못 본 채 두 눈이 실명되여 더 이상 가정을 이끌어나갈 수 없었다. 하여 나는 두분을 장애자복지시설로 모셨다.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이야기하였다.
“괜찮다, 너만 행복하게 살면 돼. 우리 걱정은 말구. 우리가 죽었다 하구 살어라. 다시는 찾지 말라.”
어머니의 보이지 않는 두 눈에 눈물이 그득 고였다. 나는 아무 말도 안했다.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뒤따라 나오며 물었다.
“너 어디 가? 우릴 데리러 올 거지?”
내가 사간 사과를 한입 뚝 떼서 입에 문 채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묻는 소리였다.
“나 학교 가요. 졸업하면 올게요. 엄마 말을 잘 듣고 계세요.”
늘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내가 어쩌다 차분하게 존대말까지 해서 기분이 좋은지 아버지는 헤헤 소리내여 웃었다.
“알았어, 기다릴게. 숙제 빨리 하고 와.”
그렇게 떠난 후 나는 혹간 남편 몰래 엄마와 짧게 통화를 했을 뿐 한번도 찾아가보지 않았다.
‘바보네 딸’은 이제야 그 ‘숙제’를 다 마쳤다. 고향에 돌아가 옛집을 보수한 다음 두분을 모시고 여생을 살아야겠다. 결정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급했다.
새 농촌 건설을 하면서 나라에서 집을 새로 지어주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2층으로 된 호화로운 전원주택은 아닐 텐데…
나는 빠끔 열려진 문을 조심스럽게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마당에는 포도넝쿨로 갓을 올린 길이 쭉 뻗어있었고 량옆에는 빨갛고 노란 이름 모를 꽃들이 가득 자라나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마치 례식장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감히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어정쩡하니 그 자리에 선 채 집주인을 불렀다.
“계십니까?”
그 때 포도넝쿨 뒤쪽에서 한 남자가 나타나더니 나를 향해 시나브로 걸어왔다. 저 곱슬머리, 저 미소, 저 걸음걸이, 어쩐지 익숙하다. 아! 룡택이다. 룡택이였다. 가슴이 툭 소리를 내며 뛰였다.
룡택이는 내 앞에 와 서더니 나를 한참 여겨보았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끝내 왔구나. 네가 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지.”
그는 내 손을 으스러지게 잡았다. 나는 온몸이 굳어져버렸고 그대로 붕 뜨는 것 같았으며 꿈인지 현실인지 정신이 혼미해졌다. 입도 굳어져 말할 수 없었다. 룡택이는 나를 끌고 한발한발 꽃길을 따라 마당을 꿰질러 집안으로 들어갔다.
“여기는 거실이야. 온 집 식구들이 모여서 텔레비죤도 보고 차도 마시면서 즐기는 공간이야. 량쪽에 방 하나씩 있는데 오른쪽 방은 우리 둘이 쓸 방이야.”
그 방은 젊은 신랑각시의 신혼방처럼 아늑하게 꾸며져있었다. 탁자 우에 놓인 사진이 유표하게 눈에 띄였다. 아, 대학입학통지서를 펼쳐들고 찍은 나와 룡택이의 사진, 나는 끌리듯 다가가 액자를 만지작거렸다.
“이걸,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네.”
나는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그럼, 내 인생에서 첫번째로 따낸 큰 성과인데… 좋은 것들이 많으니까 천천히 보여줄게.”
룡택이는 신이 난듯 빠른 걸음으로 왼쪽 방으로 향했다. 커다란 온돌방이였다.
“이 방에는 너희 부모님을 모실 예정이야. 그리고 웃층은 서재와 손님방으로 쓸 거야. 혹시 명화네가 놀러 오면 거기서 지낼 수 있게 말이다.”
“명화? 명화를 어떻게 알아?”
명화라는 말에 나는 갑자기 전기에라도 닿은듯 몸을 흠칫 떨었다.
“여기에 앉아. 내가 천천히 이야기해줄게.”
룡택이는 차거워진 내 손을 다시 잡았다. 나는 가슴이 옥죄여들었다. 심상치 않은 느낌이 가슴 속에서 스멀스멀 연기처럼 피여올랐다.
“명화가 누구 딸이야? 혹시 내 딸이야?”
순간 귀가에서 윙— 하는 소리가 울렸다.
“아니야, 누구 딸도 아니고 내 딸이야.”
룡택이는 잠간 생각하더니 서류봉투를 꺼내놓았다.
“나 이 세상에 혼자 왔다가 혼자 가려고 했는데 정작 명화가 내 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달라지더구나. 그래서 친자감정을 했어. 너와 함께 보려고 여직껏 두고 있었어.”
그것은 밀봉을 떼지 않은 친자감정서였다.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와 내 심장에 꽂히면서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룡택이는 봉투를 열고 속지를 꺼냈다.
“안돼, 꺼내지 마.”
나는 괴성을 지르며 손을 뻗어 속지를 빼앗아 마구 뭉그렸다. 이 때 갑자기 문이 쾅 열리더니 명화가 뛰여들어왔다.
“엄마, 난 도대체 누구 딸이야? 나 줘. 나는 알 권리가 있잖아.”
나는 종이를 움켜쥔 손을 뒤로 감추었다. 명화가 다가와 내 손에서 그것을 빼앗으려 하였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엄마는 진짜 나쁜 사람이야. 아버지의 인생을 비참하게 만들지 마. 자기를 낳아 기른 부모님도 버리고 사랑했던 사람도 배반하고. 내 인생마저 더럽히지 말라고. 내가 엄마 딸이라니 부끄러워!”
명화가 히스테리적으로 소리 질렀다.
“나는 ‘바보네 딸’인 게 부끄러웠는데 너도 내 딸인 게 부끄럽다고?”
숨이 막혔다. 나는 두 눈을 조용히 감았다. 하늘에서 남편이 내 손을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끝
2023.연변문학 12기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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