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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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다른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2018년 07월 30일 16시 33분  조회:1556  추천:1  작성자: 하얀 진주
   한해의 끝자락이 나붓거리면서 초중에 다니고 있는 딸애도 기말시험을 맞이하게 되었다.  한달 전부터 이 잡듯 샅샅히 훑으며 복습을 하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담임선생은 애들 핸드폰은 절대 금물이라고 위챗그룹에서 학부모들에게 따끔하게 이른다.
 
    핸드폰은 청소년 아이들에게 있어서 정말 부모 못지 않게 중요한 것 같다. 잠간이라도 이리저리 훑으며 메시지 확인을 하고 난 후에야 마음 놓고 숙제를 하는 우리 딸애다. 성적은 반급에서 앞자리를 차지하고 선생으로부터 칭찬도 여러모로 듣는 아이기때문에 평소에 자기 일은 자기가 결정할 수 있도록 자각에 맡기는 편이다. 그래서 핸드폰은 하루에 얼마나 오래 다뤄야 할지 혼자 결정하라고 했더니 한시간을 제의했다. 평소에는 별 문제 없이 승낙했다. 
 
     헌데 요즘은 담임선생으로부터 큰 제지를 받았다. 기말복습 동안 핸드폰은 무조건 부모가 간수하고 있으란다.
믿는 도끼에 발 찍힌다고 애들 자각성을 한번쯤은 의심해보라는 것이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래서 딸애한테 오늘부터 핸드폰은 엄마가 갖고 있을 거라고 했다. 이것은 선생님의 요구일뿐만 아니라  엄마가 봤을 때도 시험기간만큼은 핸드폰과 거리를 두는게 좋을 거 같다고 했다. 딸애는 강하게 반발했다. 
“엄마는 나를 믿지 못해요. 나는 공부에 지장을 주지 않고 핸드폰을 잘 관리할 수 있다고요.”
딸애는 얼굴을 찡그리며 나를 흘겨보았다. 
“아니, 영영 안주겠다는 말도 아니고 너 시험기간만 엄마가 갖고 있겠다는데도 안된다는 거야. 너네 반 대부분 애들은 아예 오래 전부터 핸드폰을 다치지도 않는다고 하잖아.”

    엄마의 권위가 늦가을의 나무잎처럼 위태롭게 흔들리는 요즘 오랜만에 딸애와 기싸움을 하니 갑자기 성수가 났다. 지고싶지 않은 오기도 메뚜기처럼 풀쩍 튀어나왔다. 
핸드폰을 가지고 나가는 엄마를 등뒤로 딸애는 꽝하고 문을 닫아걸었다. 
“흥, 너에게 핸드폰을 주는 것은 도둑에게 열쇠를 주는 격이지.”
딸애는 저녁내내 무엇을 하는지 문을 열지 않았다. 
(그래, 어디  누가 이기나 두고보자.) 
나도 질세라 딸애의 방문을 가끔 돌아다볼뿐 들어가 달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는다. 맞은 놈은 다리 펴고 자고 때린 사람은 쪼그리고 잔다고 잠을 설치는 사이에 아침이 되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일찍 일어나 상을 차리는데 딸애가 방에서 징징 걸어나오더니 “엄마. 오늘 나 학교 안갈래요. ”하지 않는가? 
“왜?”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여태까지 등교를 거부한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감기가 심할 때도 딸애는 약을 챙겨 먹으면서도 학교에 가지 않았는가. 결석은 딸애한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중학생이 되더니 갑자기 당돌해진 건가.
“나 어제 숙제를 안했어요. ”
딸애는 나와 눈길도 마주치지 않고 천정을 쳐다보며 말했다. 핑계없는 무덤이 없다더니 숙제 안한 것도 결석 원인이 되다니 어이가 없었다. 

    순간 마음 한구석에서 화가 치밀어오르기 시작했다. 화염 같이 발작을 하려고 할 때 다행히 내 안의 다른 목소리가 나를 잡았다. 
(그랬구나. 어제 핸드폰 압수한 것 때문에 기분이 나빴구나. 이해해줘.)
나는 한결 차분해진 어조로 말했다. 
“그래. 숙제를 안하면 선생님한테 혼나니 학교 가는 건 무리겠다. 그럼 어떡하면 좋지?” 
“하여튼 오늘 학교 안갈래요. 숙제 안하고 학교 가면 혼나요. ”
딸애는 어느새 고개를 떨구고 가라앚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건 엇나가는 말이란 걸 인차 알아낼 수 있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딸애는 아침 학교 가는 시간에 맞춰 일어났으며 교복도 반듯하게 챙겨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곳에 황금삼백냥이 없소이다 하는 것과 같았다.
   
    “음. 그러면 이렇게 하면 어떨까? 숙제를 하지 않고 학교 가는 경험을 한번 해보는 거야. 이런 경험도 아주 색다르지 않을까. 안 그러면 또 이렇게 할수도 있지. 지금부터 숙제를 해서 아침 아홉시 쯤에 학교를 가는 거야. 이것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두가지 제안를 했다. 그리고 먼저 밥을 먹자고 다그쳤다. 그랬더니 딸애는 밥 안먹을래 하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책을 펼치고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밥 먹는 걸 거절했으니 엄마한테 이기고 체면은 세운 셈이라 할까. 
그날 딸애는 여덟시 전에 숙제를 마치고 학교로 갔다. 
딸애의 첫 등교 거부 사건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밤길을 오래 걷다보면 도깨비를 만난다고 아이를 키우다보면 본의 아니게 트러블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모순이 생길 때 마음의 탕개를 느슨히 풀면 하는 일이 가벼워 진다. 물론 부모 자식 간의 일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흔히 세상사란 맞서기보다는 강물이 돌을 어루쓸 듯 다독이면서 넘기는게 더 효율적이고 마진이 남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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