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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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색한 변명
2018년 08월 08일 08시 46분  조회:1429  추천:1  작성자: 하얀 진주
      십여년전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의 일이다. 큰 아들애는 8세였고 작은 딸애는 5세였다.
말복도 지났는데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무더운 8월의 어느날, 매미가 목청이 터져라 울어대는 소리에 집안에 앉아있으려니 갑갑하기 그지 없어서  나는 말은 듣지 않고 애만 먹이는 아이 둘을 끌고  수영을 가기로 했다.

그때만해도 내가 사는 작은 도시에는 수영장이 별로 없었던거 같다. 유명한 호텔1층에 신립한 수영장이 있어서 거기로 가기로 했다. 어릴 때 도랑에서 동네 아이들과 함께 개헤염을 쳐본 일은 있지만 시내로 와서 살면서 고급 풀장에서 수영하기는 나도 처음이였다. 아이들도 사우나 욕실에서 허우적대는거 보다 수영장을 간다고 하니 신이 나서 방방 뛰였다. 

수영장입구에서 입장료에 대해서 물어보니 어른은 50원이고 애들은 4살 이상이면 25원이란다. 앗싸, 잘 되였네. 우리 딸애가 4주세이니 무료로 놀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카운터 아가씨한테 넉살 좋게  큰 애는 8세이고 작은 애는 아직 4주세가 안되였다고 하였다.

       그러자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 애 둘이 줄을 서서 앞다투어 “아니예요. 다섯살입니다.”라고 하는게 아닌가.
내가 너무 놀라서 그 아가씨한테 “아닙니다. 세는 나이로 5세고 실은 4주세가 안되였어요.”하면서 궁색하게 변명을 했다. 솔직히 4주세가 안되였다.
그런데 여덟살 된 큰 애가 못마땅한 듯 자기나름대로 열심히 설명하는 것이였다.
“아니예요. 내 동생은 지금 다섯살입니다. 설을 쇠여서 다섯살 된지 오래됐어요. ”
그 카운터 아가씨 앞에서 얼마나 창피한지 나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이 다 알렸다. 

엄마는 한사람 수영비라도 아끼려고 안깐힘을 쓰는데 애들 둘은 정의의 용사인양 엄마를 비난하고 다섯살이라고 빡빡 우기고 있었다. 나는 당황한 김에 돌아서서 애들을 째려보면서 우리말로 큰소리로 호통쳤다.
 “가만 있지 못해? 혼 좀 나야 입 다물거니. ”
애들은 금세 주눅이 들어 입을 삐죽이 내밀었다.

나는 다시 아가씨를 쳐다보면서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구구절절 해석했지만 스스로도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고 어이없어보였다.
바로 그 순간,기차표 값을 아끼려고 다 큰 나를 등에 업고 기차에 오르던 우리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가 기차에 오르면서 나더러 머리를 푹 숙이고 자는 척 하라고 하여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큰 키를 오그리고 자는 흉내를 냈었다. 돈이 귀했던 그 세월에 한푼이라도 아끼려는 엄마를 도왔다는 자부심에 은근히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거짓말로 기차역 일군들을 속이는 엄마가 못마땅하게 생각되였지만 엄마를 위해 돈을 아꼈다는 생각에 어느새 엄마등에서 흐뭇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엄마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우아하고 고운 면사포를 서슴없이 내려놓고 기꺼이 악역을 담당했던 것이다. 나와 엄마가 모처럼 겹쳐지는 순간이였다.
다행히 아가씨가 융통성이 있어서 작은 애는 그냥 놀아도 괜찮다고 선심을 베풀어서 나는 난처한 경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도 찝찝한 느낌은 계속 남아있어서 수영장으로 재빨리 들어가버렸다.

나의 엄마는 용케 기차를 공짜로 태우면 나에게 호떡을 사주군 했었다. 솔직히 어린 나이였지만 엄마의 행동에 선뜻 반기기는 싫었다. 한순간 엄마가 혹시 나쁜 사람은 아닐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내심 호떡을 얻어먹는 재미에 나름대로 행복감을 느꼈다.
만약  나도 아낀 수영비 25원으로 애들에게 피자나 치킨을 사준다면 우리 아이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가 하는 고민도 해보았다. 역시 어렸을 때의 나처럼 엄마를 아니꼽게 보다가도 즐겁게 야호를 웨치지 않을가 싶다.

엄마는 가족을 위해 자신을 완전히 제쳐놓고 치렬하고 품위 떨어지게 살수도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정작 자신을 완성해가는 우아함과 지적인 수양을 지키기 위해서는 말뿐이지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엄마들이 수두룩하다. 그들은 우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 기꺼이 악역을 담당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종래로 해명할줄 몰랐다. 엄마를 주름지게 하는 것은 세월이 아니라 자식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살림을 영위해나가는 알뜰함이 아닐가 생각해본다.

우리는 엄마의 고운 면에서 착한 품성을 배우고 가끔은 부적절한 처신에서 살아감에 꼭 필요한 융통성을 배워간다.
이 세상은 자기 의지를 내려놓고 품위를 잃어가며 자식을 사랑해주는 엄마들이 있어 한층 더 따스하다. 오늘도 엄마들은 아이들이 먹다 떨군 피자를 주어들며 궁색한 변명을 하신다.
“파지가 아까워서가 아니라 운동삼아 줏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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