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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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사한 상처
2019년 08월 08일 16시 09분  조회:759  추천:1  작성자: 하얀 진주
수필
 
치사한 상처
김영분
 
큰 애가 고중을 가면서 숙소에 들게 되었다. 매주 토요일 오후가 되면 집으로 돌아온다. 투당투당하는 발걸음소리와 함께 덩치 커다란 아들이 턱하니 집에 들어서면 일주일 모아두었던 빨래가 훌쭉해진 풍선이 다시 부풀 듯 집안이며 베란다를 가득 채운다. 덕분에 분주해진 세탁기가 윙윙 소리를 내며 쉴새없이 돌아가고 주방도 뒤질세라 소란스럽게 치리릭치리릭 소리를 내며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낸다.
평일에는 밋밋하던 밥상도 토요일만 되면 지갑을 흔쾌히 털은 티를 내며 먹음직한 갈비가 아니면 해산물로 격이 높게 바뀐다. 심지어 손이 많이 가는 물만두도 벌렁벌렁 끓고 난 뒤에는 덩그러니 밥상에 오를 때도 있다. 학교에서 일주일 내내 허접하게 먹고 다녔을 큰 애를 바라보며 연신 많이 먹으라고 권유가 끊이지 않는다.
이럴 때가 되면 애매하게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꼭 있으니 바로 작은 애다.
“엄마는 왜 오빠가 오는 토요일만 맛있는 거 해줘요?”
마음이 전기에 덴 듯 화들짝 하고 놀란다. 나는 전혀 차별하고 있다고 느끼지 않았는데 매일 집에서 통학하는 딸애는 미묘한 차이를 느꼈나보다.
그러고보니 평일에는 집에 있는 반찬을 대충 떼워먹은 거 같기도 하다. 허나 큰 애가 숙소를 든 후 매주 토요일만 되면 안테나가 신호를 잡 듯 반찬부터 신경이 쓰이고 자연적으로 시장으로 발걸음이 옮겨진다.
시장 보는 마음 자세부터 달라진다. 요리조리 살피고 같은 반찬도 어떻게 하면 더 맛있고 영양을 살릴가 고민을 한다. 매일 데리고 있는 작은 애는 평소에 맛있는 것을 많이 먹겠거니 하고 등한하지만 한주일에 한번 집에 오는 큰 애한테는 저도 모르게 신경이 쓰인다.
작은 애의 꼬집는 말투도 잠시일 뿐 시간이 흘러 토요일이 다가오면 또 밥상을 향한 안테나는 작동하기 시작한다.
큰 애가 없는 동안 작은 애가 맛나는 음식을 해달라고 하면 핑계거리를 만들어 되도록 토요일에 같이 해먹자고 설득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을 거라고, 민주적이라고 자칭을 했던 자신도 큰 애의 숙소살이 한방으로 작은 애 앞에서 오빠만 편애하는 엄마로 서서히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이 이야기를 회사 동료들과 재미삼아 했더니 생각밖으로 집안에서 먹거리 차별을 받은 사람이 적지 않는지 불만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치사하게 먹는 거 가지고 작은 애를 섭섭하게 한다고 난리다.
 한 동료는 집에서 먹는 음식때문에 푸대접을 받았었는데 어른이 다 된 지금도 생각하면 서럽다는 것이었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고 어릴 때 조금씩 쌓인 원망이 큰 돌덩이가 되어 지금은 작은 불행도 그 때 서러움과 연결이 된다고 했다.
그녀는 좀 뚱뚱한 편이었다. 병약한 오빠가 있는 그의 부모는 항상 오빠만 많이 먹으라 하면서 자기더러는 좀 적게 먹으라는 말을 자주 했단다. 한창 식탐이 왕성한  어린 나이에 먹고 싶은 음식을 조금만 먹으라고 하고 오빠만 챙기는 부모에게 서럽다 못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에 서운하기 그지 없었다고 한다.
그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서른이 다 된 지금 자기절로 돈을 벌어 간식거리를 끊지 않고 사먹는다. 먹은 만큼 몸집도 튼실하지만 아직도 동료들이 좀 적게 먹으라는 농담을 하면 눈쌀이  꼿꼿해진다. 그리고 똑 부러지게 일은 잘해도 동료들 사이 양보정신이 결핍하고 참을성도 적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면 민감해져서 바로 싸울 태세다. 그만큼 어렸을 때 부모들로부터 받은 음식 차별이 큰 상처로 남아있었던 것이었다.
자고로 먹는 거로 사람을 차별하면 제일 치사하다고 했다. 동료의 말을 듣고서야 저도 모르게 작은 애에게 큰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무심히 별러서 꾸몄던 토요일 밥상이 누구에게는 이렇게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흠칫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이 관심받지 못하고 외면당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토요일에 온 집식구가 숙소에서 허술하게 먹고 다녔을 큰 애와 함께 맛있는 것을 먹고자 했던 바램을 작은 애가 지레 리해할 거라고 생각한 자신이 바보스러웠다.
고사리도 꺾을 때 꺾으라고 애는 애일 뿐 어떻게 자기가 당장 먹고 싶은 걸 바로바로 해주지 않는 엄마를 리해해줄 수 있단 말인가. 작은 애는 자신의 요구가 무시당했다고 생각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것도 여러번 그랬으니 섭섭함이 많이 쌓였을 것이다.
한 친구는 식당에 갔다가 시어머니가 당신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만 시켜서 그 섭섭함이 가셔지지 않는다고 몇번이나 외웠었다. 엉킨 실타리는 풀기 쉬워도 꼬인 노여움은 가시기 어렵다. 다 큰 어른도 먹는 차별을 받으면 치사하게 상처를 받는데 하물며 어린 애가 어떻게 리해를 한단 말인가.
가난했던 시절에는 먹을 것이 부족해서 할수 없이 차별 아닌 차별을 했다고 하지만  먹을 거리가 풍성한 오늘날 조금만 지혜로우면 상처가 아닌 사랑으로 온 집식구의 배를 달랠 수 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할 만큼 먹는 것은 사람의 제일 원초적이고 강렬한 욕구가 아닌가.
큰 애를 위해 토요일에 맛있는 음식을 해 줬으니 평일에도 우리 작은 애만을 위한 아기자기한 밥상도 차려줘야겠다. 사랑은 많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골고루 나누어 주는 것이 더 지혜로운 일이다.
그래서 오늘은 작은 애가 좋아하는 귤을 사서 집에 들어간다. 이건 너만을 위해서 사온 거라고. 작은 것일지라도 깍듯하게 정중하게 건네봐야겠다. 무엇이든 먹고 싶다고 하면 바로바로 해줘야겠다.
더이상 토요일을 기다리는 일은 없다. 그리고 그로 인한 치사한 상처는 다시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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