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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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두산작가공원의 의미
2016년 09월 01일 09시 09분  조회:2266  추천:1  작성자: 장경률

지난 7월 9일, 온라인계간 백천문학사가 주최하고 안도현 이도백하진 내두산촌이 후원한 내두산작가공원이 내두산촌입구에 정식으로 락성되여 현판식을 가졌다. 연길시 의란진 두레마을에 터를 잡은 현지작가창작기지 그리고  연변작가협회 시가창작위원회가 화룡시 서성진 진달래마을을 “시인의 집” 창작기지로 선정한데 이어 세번째로 되는 중국조선족문인들의 현지체험, 창작, 탐구, 교류를 일체화한 전문성활동터전이라는데서 그 참뜻이 한결 심원하다.

1920년대초 조선 함경북도 갑산지역 사람들이 살곳을 찾아 이곳 원시림으로 이주하기 시작, 이 산골 저 골짜기에 숨어들어 황무지를 개간하고 농사를 지었다. 그러던것이 첩첩산중에 항일유격대가 근거지를 개척하면서 이에 불안을 느낀 일본침략자들이 1936년 유격대 소탕 목적으로 화룡현에서 100여명 규모의 자위단을 조직해 내두산촌에 주둔시키고 부근 산속에 흩어져 사는 농가들을 모두 내두산집단부락으로 집중시켰다. 그때로부터 내두산촌은 점차 100호가 넘는 큰 부락으로 되였던것이다.

내두산은 장백산밀영에서 활동하던 항일유격대의 홍색관광기지이기도 하다. 1936년—1937년 사이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제6사가 내두산에 진주하여 항일근거지를 개척했는데 이 시기 동북항일련군의 명장 왕덕태도 내두산에서 활동했으며 현재 항일유적비가 세워져있다.

“내두산촌이 가장 흥성했던 때는 지난 세기 60년대 초기부터 70년대말이였습니다. 100세대가 넘는 마을에 소학교, 중학교는 물론 농중까지 있어 제법 흥성했습니다.” 내두산촌 전호산주임의 말이다. 해외로무와 도시진출 바람은 이곳에도 어김없이 불어와 사람들이 하나둘 고향을 떠나버렸다. 2001년에 내두산촌은 학교가 페교되였고 현재는 마을에 주민들이 50세대도 채 안되게 남아있는데 마을을 지키고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60세 이상 로인들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촌민들이 떠나가고 마을은 비워졌지만 내두산촌에서는 지금까지 타민족 이사호는 단 한 세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선조들이 개척한 소중한 마을과 땅을 열심히 지키고 가꿔나가려는것이 바로 이네들의 철석같은 신념이란다.

내두산은 우리 민족의 얼을 고이 간직하고 때묻지 않은 민속문화전통기지이기도 하다. 내두산촌로인협회 회장 김종국로인에 따르면 내두산촌에서는 지금까지도 중국조선족전통장례문화를 지켜가고있는데 촌에서 상여회를 운영하면서 마을에 상사가 났을 때는 상여로 장례를 치른다. 내두산사람들이 지금껏 상여장례를 고집하는것은 조선족장례문화에 담긴 효와 례에 대해 매우 중시하기때문이란다. 내두산촌에서는 중국조선족 무형문화재인 상여장례문화를 적극적으로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향후 상여장례문화를 정기적인 표현문화로 승화시키면서 내두산촌을 연변의 유일한 중국조선족전통장례문화촌으로 만들어나갈 타산이라고 한다.

내두산촌은 최근년간 전국특색농촌건설에 힘입어 마을환경이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관광객을 상대로 한 촌로인들의 전문공연무대도 마련됐다. 큰 규모는 못되지만 관광객들에게 숙박과 식사를 제공할수 있는 농가식봉사시설도 마련됐다.

최근에 내두산촌은 국가민족사무위원회에서 전국적으로 첫 진으로 공개한 중국소수민족특색마을이다. 내두산촌은 력사문화적 잠재력도 무궁하다. 이에 촌에서는 이 귀중한 유산, 독특한 우세를 살려 지금 한창 내두산촌의 력사문화적인 발굴에 한창 열을 올리고있다. 실상 이 고장은 장백산아래 첫 동네로서 원시림과 조선족촌이라는 독특한 인문경관으로 여러번 영화촬영지로 선정되였는데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서 1991년에 제작한 예술영화 “하얀 꽃”중의 일부 장면은 내두산촌에서 촬영되였고 장춘영화촬영소에서 제작한 “장백의 아들”도 이곳에서 촬영되였다.

이처럼 귀중한 현장에 내두산작가촌을 건설한다는것은 바로 금상첨화, 아주 의미심장한 새로운 도약이 아닐수 없다. 백천문학사 사장인 소설가 김춘택씨는 “내두산작가촌은 ‘백천문학’이 성산 백두산 기슭에 세운 중국조선족문인들의 창작기지로 그 취지는 성산 백두산 기슭에 자리잡은 하늘아래 첫 동네 내두산촌에 생태창작기지와 민혼창작기지를 세워 중국조선족작가들이 청정자연속에서 스스로 뜨거운 민혼을 격발시켜 민족문학의 성스러운 사명을 완성하는 과정에 정품문학작품을 창작하는 문학창작공간을 마련해드리려는것이다”고 하면서 향후 많은 작가들이 내두산작가촌을 적극 리용해줄것을 희망했다. 김춘택작가는 내두산작가공원은 중국조선족문학의 대표작품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지는 문학공원으로 그 취지는 우리 중국조선족문학의 정품문학작품을 시비, 소설비 등 문학비의 형식으로 성산 백두산 기슭에 조성하여 널리 기리는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내두산작가공원에 50편의 중국조선족문학의 정품문학작품 및 50명의 작가를 선정하여 50점의 문학비를 세울 타산이란다.

내두산작가공원에는 이번 내두산작가촌 설립 현판식을 계기로 이미 관솔나무로 된 내두산작가공원편액, 내두산작가촌기념비, 림원춘의 “몽당치마” 소설비, 김응준의 “진달래” 시비, 김학천의 “장백송” 노래비가 세워졌다. 이를 토대로 내두산작가공원에 50편의 중국조선족문학의 정품문학작품 및 50명의 작가를 선정하여 50점의 문학비를 세울 타산이란다. 내두산의 장미빛 래일이 더더욱 찬연해질것은 의심할바 없다. 그래서 한결 흥분되는것이 아닐가!

연변일보 2016-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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