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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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 지는 인생의 길목에 서서
2012년 03월 13일 09시 25분  조회:1450  추천:5  작성자: 조성일

1

제행이 무상하고 인생은 초로(草露)와 같다. 우리 민족의 가사 “로처녀가”에서는 “백년을 다 살아야 삼만륙천일”이라고 하였다.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한들 사람의 일생은 끝없는 시간에 비하면 어이없이 짧은것이다. 게다가 인생은 달리는 흰 말을 틈으로 보듯이(白駒過隙) 가속에 가속이 붙어 빨리 흘러간다.

나도 어느덧70대 중반에 들어섰고 80대를 향해 숨가쁜 등반을 하고 있다. 인생을 살다보니 세월 가는 속도가 흐르는 물 같고 흘러가는 구름같고  쏜 화살같음을 피부로 절감하게 된다. 그리고  세월 가는 소리도 몰아치는 삭풍같이, 사라져가는 기적소리같이 귀가에 아련하게 울리고 가슴속을 아프게 파고든다. 

흘러간 세월을 뒤돌아보니 기쁨도 슬픔도 행복도 고통도 보람도 후회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시간을 탄 세월이 어찌하여 그렇게도 빨리 흘러가 버렸는지 하는 생각에 깜작 놀라게 되며 인생의 무상과 허무함을 감수하게 된다. 나의 인생엔 땅거미가 지기시작했다.

독일 철학가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것은 잠시동안 머물다가 죽음으로 줄달음친다. 식물과 곤충은 여름이 지나면 죽고 동물과 인간은 몇년이 지나면 죽는다. 죽음은 지치지도 않고 거둬들인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변하지 않고 항상 제자리에 있을것이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늙기 마련이요, 늙으면 종당에는 죽기 마련이다. 선인들이 하신 “구만리장천(九萬里長天)이 지척(咫尺)”이라는 말씀의 뜻인즉 높고 먼 저 세상이 곧 지척간에 있다함이니 사람은 지금 이 세상에서 살고있지만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 나의 목숨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짧은 목숨으로서 저승을 “문턱밑”에 두고 여생을 힘겹게 직조하고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늙음과 죽음은 인생의 숙명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로서 모든 사람은 늙어서 죽는다는 천리(天理)를 확실히 알고있으면서도 될수록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더 꼬집어말하면 늙지 않고 죽지 않으려는  “묘한 욕심과 기대”를 가지고있다. 또한 사람들은 일찍 죽기보다는 늙을때까지 오래 살기를 원한다. 이런 심리를 두고 프랑스의 사상가이며 문필가인 몽테뉴는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판단함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우리는 사람들이 죽을 시점에 도달했다는것을 쉽게 믿지 않는다는 사실에 류념해야 한다. 그리고 실로 마지막 시간이라고 확신하고 죽는 사람은 실제로 극히 드물다. 여기에 바로 희망의 속임수가 우리를 쉽게 현혹시킬수 있는 리유가 있다. 그래서 그들은 흔히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더욱 심한 병에 걸려서도 죽지 않았으며 나의 현재 상태는 그리 절망적이지 않으며 또 최악의 경우에는 분명히 하느님이 기적적으로 나를 살려줄것이라고 계속 믿는다’”.

모든 인간은 죽음에 대해 확실히 알고있으면서도 늙지 않고 죽지 않으려는   이런 “묘한 욕심과 기대” 즉 불로장생의 욕망은 옛날 사람이나 현대인이 공통으로 갖고있는 불로장생콤플렉스다.

기원전 221년 39세에 전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는 영원한 생명을 꿈꾸며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장수인이 되기위해 방방곡곡의 명산으로 신하들을 파견하여 불로초를 구해오도록 하였다.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서불(일명 서복))이란 신하가 두 차례에 걸쳐 수천명의 동남동녀(童男童女)와 장인들을 거느리고 불로초를 찾아다녔다고 한다.그러나 그도 불로장생의 욕망을 실현하지 못하고 결국 환갑도 못넘긴 50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그것도 외로운 신세로 객사하였다고 한다.

현대인들도 불로장생콤플렉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젊은 시절에는 건강을 뽐내지만은, 나이가 들고 서서히 늙어가면서 병마에 시달리기까지 하면은 불로장생콤플렉스의 포로로 되는것이 보통이다. 나를 놓고말하면  좀더 오래살자고 건강에 좋다는 약은 될수록 죄다 사 먹으려 애를 쓰며 언론매체의 장수비결 소개와 약광고에 신경을 쓴다. 한때 나는 시내 거리를 걸어다니거나 뻐스를 타려고 뻐스역에서 기다릴때면 무료로 주는 약 관계 신문이나 자료라고 하면 주는족족 다 받아가지고 귀가하는데 집에 와서 보면 10여종이 넘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우리 민족의 속담 “땡감도 떨어지고 익은 감도 떨어진다”가 시사하다싶이 늙은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사람은 죽는데 있어서는 일반이다. 빠르고 더딘 차이가 있을뿐이다. 늙기 전에 일찍 죽거나 늙을때까지 오래 살다가 죽는 둘중의 하나이다. 대개는 일찍 죽기보다는 늙어서도 “젊께” 오래 살기를 바란다. 나이를 먹으니 지난날 젊은 시절에는 그다지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던 젊음이 매우 부럽게 보인다. 젊은 사람을 보면 젊다는 리유 하나만으로도 나를 매료되게 한다. 늙으면 늙을수록 다시 한번 청춘을 되찾고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며 따라서 자기의 늙음을 안타까웁게 생각한다. 내가 늙은것은 분명한데 누가 나를 보고  “왜 이렇게 늙었소”하면 반갑지 않고 “당신은 정말 젊어보이오…장수하겠소”하면 흡족해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내 나이를 물으면 대답하기 꺼려하며 늙어갈수록 내 자신의 나이에 한살 더 보태는 일에 인색해지곤한다. 나의 이런 심리는 앞에서 말한 “묘한 욕심과 기대”의 완곡적인 표현, 다시 말하면 불로장생콤플렉스의 표현이라고 할수 있지 않겠는가.

독일의 문호 괴테의 거작 <파우스트>에 의하면 작중인물인 로학자  파우스트는 젊음을 되찾기 위해 그레첸이라는 순진한 소녀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파우스트는 이 소녀의 련정을 짓밟고만다. 그레첸은 파우스트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집을 파멸시키고 아이도 죽이고 자신도 감옥에서 죽는다. 인간은 젊음을 유지하려고 신경을 쓰지만 <파우스트>의 이야기는 자신의 이른바 과분한 젊음의 욕망과 젊음에 대한 무리한 추구는 바람직하지 않다는것을 시사해주는것 같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로년은 분명히 찾아오는데 젊음에 집착한 나머지 무리하게 젊음을 유지하려고 하면 몸과 마음에 부담을 주게 되며 그렇게 되면 심적인 피로가 심해져 한번밖에 없는 인생을 망칠수도 있다는 이야기로도 되겠다.

불로장생은 인간의 오랜 꿈이요, 자연의 섭리요, 인간 본연의 심성이니 누굴 탓할수 있으랴. 불로장생하여 손자 환갑잔치 얻어먹을수 있다면야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불로장생은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과 어리석음을 말해주는 상징이기도 한것것같다.인간은 태여나서 파란만장한 세월을 주름잡으면서 언젠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누가 말했듯이 이것 역시 자연의 섭리라면 거스를수 없는 대세일지도 모른다. 해는 중천에 뜨면 기울고 달은 차면 이지러지듯이 인생도 어차피 세상에 태여나 한번 살다 가는 과정이기에 이왕이면 늙어도 더 건강하게, 더 젊게 될수록 오래 사는것이 상책이 아니겠는가.

 

2

불교에서는 모든 인간이 무려 1백8개의 번뇌를 가지고 살수밖에 없는 고통의 존재라고 말한다. 황혼기에도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며 로익장(老益壯)을 과시했던 시인 괴테는 “로인의 삶은 상실의 삶”이라고 하면서 상실의 내용을 건강, 돈, 일, 친구, 꿈 등 다섯가지에 두었다. 말하자면 사람은 늙어가면서 상술한 다섯가지를 상실하며 살아간다고 하였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현재도 많이 류행되고있는바 생로병사(生老病死) 또는 “로년사고(老年四苦)”가 그 사례라 하겠다. “로년사고”란 빈고(貧苦), 고독고(孤獨苦), 무위고(無爲苦), 병고(病苦)를 이르는 말이다. 상술한 말들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들이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특히 필자와 같은 늙은이들이 더욱더 공감하게 되는 말들이다.

오늘의 시점에서 나의 현재상황을 짚어보면 퇴직후에도 월급이 있기에 빈고는 없고 또한 한 사회민간단체에 투신하고있기에 지금까지 무위고는 체험하지 못했다. 지금 문제시되고있는것은 병고와 고독고라고 말할수 있다.

늙었다는것은 그 육신이 닳았다는 뜻이다. 수십년간 사용해 왔기에 신체부위의 여기저기서 고장이 나서 작동이 잘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이 세상의 로인들이 가지고있는 로인병이 나의 육신에 하나하나 엄습하고있다는 말이 되겠다.. 60대까지만해도 “60청춘 닐리리”라고하면서 자기의 건강을 자랑하였지만 70대에 들어서니 완전히 딴 판이다. 기억력도 쇠퇴하고 로안(老眼)도 찾아들고  치아도 말이 아니고 하반신도 약해지고있다. 해마다 당뇨를 비롯한 여러가지 수치도 정상치보다 올라가는것을 목격할수 있다. 몸이 불편하니 금연도 하고 그렇게 좋아하던 백주와 맥주도 집에서는 한잔도 마시지 않는다. 사회상의 이런저런 파티에서는 다만 그 자리의 분위기에 호응하려  맥주만 겨우 한두잔하는 신세가 되였다.  늙음도 서러운데 병고까지 겹치니 그 신심의 고통은 이루 말할수 없다.

로인으로 여생을 엮어감에 있어 또 다른 고통은 소외와 고립으로 특징되는 고독이다. 이는 대부분의 보통사람 특히 로인들이 보편적으로 겪는 정신적고통이다. 하지만 청년기나 로년기에 적지 않은 사람들 이를테면 작가나 예술가나 과학가들은 남들과 격리된 실존적고독의 순간에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면서 그 어떤 깨달음의 지혜와 슬기의 자락을 붓잡는가 하면 성숙한 성찰과 관조, 고민을 통해 창조력을 높이기도 한다. 이 경우의 고독은 높은 단계의 고독이며 “나” 혼자만의 자랑스러운 고독이다. 이런 고독은 재생과 회복 그리고 창조의 원천을 의미하는 성스러운 고독이며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음미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한 실존의 시간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홀로 있고자하는 욕구는 자신의 능력을 최고로 발휘하는 건강한 삶의 능력”이라고 하였다.고대 그리스의 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이 없는 자, 능력이 없는 자에게는 자기 자신이 최대의 적이여서 고독을 두려워하지만 초인에게는 자기 자신이 최선의 벗이므로 칩거를 좋아한다”고 하였다.

나도 피가 끓어넘치던 청년시절에는 고독이란 말을 즐겨 사용했었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조용한 환경속에서 홀로 자유로운 상상의 날개를 펼쳐 한없이 날수 있는 고독의 경지를 그리워 했었다. 70십고개에 올라설때만 해도 이런 고독속에서 창작을 진행하면서 변변치 않은 글이나마 썼었다. 눈 깜빡하는 사이에 이런 상황은 이젠 옛말이 되여가는것 같다.

나는 “초인”도 아니요 그 무슨 특출한 “능력자”도 아니다. 한 보통문인으로서 나의 경우 60대 말 더우기 70대에 들어서면서 저도 모르게 건강이 나빠지고 기력이 쇠진하며 생명력이 감퇴되는 현상을 절감함에 따라 나의 가슴속에 아름다운 고독이 아니라 병적인 고독이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학창시절의 동창들과 사회상의 친구들이 하나, 둘 먼저 떠나는것을 보게 되고 나이들면서 사회의 나들이와 교제가 어려움을 겪게 됨에 따라 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의 활동도 점차 쇠퇴의 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이런 것들이 루적되여 나의 정신세계에 소외와 고독감을 안겨주었다.

이러한 소외와 고독감은 그 반세기동안 함께 살아오던 사랑하는 안해의 병사(病死)로 하여 생각보다 더 심각해졌고 나로 하여금 육체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모진 상처를 입게 하였다. 그가 돌아오지 않을 먼길을 떠난지도 1주기를 넘겼다. 그가 떠난 빈 자리는 너무나도 컸다. 이 빈 자리는 온 집안을 고독으로 꽉 차게 하였다. 생전에 나의 안해는 병마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옆에 누어있는것만으로도 나의 마음은 외롭지 않았다. 하지만 안해가 한 순간에 나를 리별하고 저 세상으로 떠날 때 내 가슴은 무너지는듯 하였다. 사랑하는 님이 없는 지금의 나의 집은 행복의 보금자리가 아니라 고독으로 욱실거리는 “무명”의 좁은 울타리요 창살없는 “감옥”이다. 우울하고 말 한마디 없는 고독은 나로 하여금 견디기 어려운 외로움과 괴로움과 무서운 불안속에서 몸서리치게 하고있다. 나의 마음의 심처에 기여든 이 차디찬 고독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공포로 변하였다. 고독은 이제는 더 이상 로맨스도 환상도 아니다. 나의 앞에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고독하게 이 세상에 태여나 어려운 세월을 숨가쁘게 경유하여온 지금의 나의 인생은 고독속에 저물어가는 인생이다.  누가 말한바와 같이 “인간은 그 누구라도 마지막에 ‘혼자’다. 오는 길이 ‘혼자’였듯이 가는 길도 ‘혼자’이다”. 늙고 병든 몸에는 눈 먼 새도 아니온다. 지금의 나는 아내를 잃어버린 “홀아비”며 “짝 잃은 기러기”나 다름없다. 까놓고 말해서 지금의 나는 형체(形體)와 그림자가 서로 불쌍히 여기고있는(形影相弔) 신세이며 형체와 그림자가 짝이 된(形影單雙) 처지에 놓여있다. 인생은 무력감에 빠지고 쓸쓸함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고독이 뭔지를 뻐아프게 체감한다. 무정한 세월에 실려 왕성했던 청춘은 흘러가고 김빠진 늙은이로 산다는것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지 이제야 알게 되였다.

이런 역경속에서 병고나 고독고의 포로로 되여 무력하게 죽어가는가 아니면 각고의 노력과 견강한 의지로 병고와 고독 다시말하면 늙음과 죽음에 대한 실존적문제 등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책을 강구하여 곱게 늙다가 삶을 마무리하는가 하는 엄숙한 과제가 나의 어깨를 짓누르고있다.

 

3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은 조선시대의 실학자이고 사상가이며 실학파 시문학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로년기에 그가 쓴 시에는 <밤(夜)>이라는 시가 있다.

   “어둑어둑 강가마을이 저무는데/성긴 울타리엔 개짖는 소리 걸렸네/차가운 물결에 별빛은 고르지 못하나/먼 산의 눈빛은 되려 밝아라/끼니 잇는 일에야 좋은 계책 없건만/독서 즐김에야 등장불이 있다네/깊은 근심에 마음 졸임 그치지 않으니/어떻게 해야 일평생을 제대로 마칠까”.

    이 시에서 다산 정약용은 늙어가는 처지에 욕심이나 채우고 끝내자는 일반 로인들과는 달리 깊은 근심에 잠기면서 어떻게 해야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가치있고 유용하게 보낼것인가를 걱정하는 그의 높은 뜻을 표출하였다. 육체적인 쇠퇴와 질병, 고독과 고립, 무력감과 허무감 등 일반적인 로년의 실존적인 문제점을 다산 정약용도 결코 피해 갈수는 없었다. 지어는 자신이 평생동안 이룩한 방대한 학문적성과에 대해서 깊은 회의를 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는 로년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 외면하거나 분식하거나 거짓위안을 도모하는 일 없이 그대로 직시하고 남다른 의력으로 자기의 신심(身心)에 스며든 병마들을 이겨가면서 만절(晩節)을 멋지게 지켜냈다. 18년의 귀양살이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다시 또 18년을 살면서 학문을 마무리하고 많은 학자들과 학술연구에 대한 줄기찬 토론을 전개했던 그의 로년기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세계사를 펼쳐보면 로년기에 업적을 남긴 위인들이 수두룩함을 발견할수 있다. 어느 지성인의 통계에 따르면 “세계 력사상 최대 업적의 35%는 60대-70대에 의하여 성취되였고” “23%는 70-80세 로인에 의하여 그리고 6%는 80대에 의하여 성취되였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결국 력사적업적의 64%가 60세 이상의 로인들에 기대어 창출되였다는 말이 되겠다. 이 통계가 불완전 통계라하더라도 세계의 위인들이 로년기에 많은 업적을 창조하였다는 이 기본 사실만은 틀림이 없는것같다. 17세기 동일의 세계적인 음악가인 요한 세바스챤 바하는 75세까지 살면서 명곡들을 작곡하였으며 19세기 러시아의 대문호 레오 톨스토이는 82세까지 삶을 영위하면서 인생의 후반기에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으며 19세기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괴테는 76세의 고령에 <파우스트>를 쓰기시작하여 82세에 완성하였다. 20세기 불란서 최대의 화가인 파불로 피카소는 92세까지 왕성한 창작활동을 펴냈다.

   로년기에 원숙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 위인들을 이야기할 때 우리 조선족 문학거장 김학철을 잊을수 없다. 일제의 죄행으로 인해 왼쪽다리를 절단하게 된 척각작가(隻脚作家) 김학철은 초인간적인 완강한 의지로 파란만장한 세월을 경유하면서 치열한 붓의 싸움을 벌렸으며 특히 로년기에 진입하여  그의 창작은 고봉에 이르렀고 그의 삶은 더욱 원숙해졌고 더욱 아름다워졌다. 65세에 정치적생명과 작가의 창작자유를 다시 찾은 김학철은 여생이 길지 않음을 느낀 나머지 자기 집 출입문에 “한인막고문”(閑人莫敲門)이라는 패찰을 붙혀놓고 두문불출 서재에 들어박혀 불철주야로 전력질주하면서 놀라운 문학성과를 떠올렸다. 그리하여 그는 장편소설 <격정시대>(상, 하 1986),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996)을 비롯하여 수많은 소설, 수필, 잡문, 회상기 등을 후세에 남겨놓았다.

   김학철은 수필 <오래 살자는 목적>에서 오래 사는것이 목적이 아니라 오래 사는것을 값어치가 있는 일을 많이 하기 위한 수단임을 시사해준다. 제한된 여생에 많은 일을 하자면 건강한 육체가 필수적임을 자각한 그는 척각의 몸이면서도 10년 옥살이때도 그러했지만 출옥한 후에도 자체로 움직일수 있는 그날까지 매일 아침 4시면 연길공원 소돈대(小敦臺)꼭대기에 오르거나 어두운 부르하통하 강뚝에 나가 가로수를 잡고 쌍지팽이를 던지고 아침단련을 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로익장(老益壯)을 견지할수 있었고 자기의 로년기를 아름답게 가꿀수 있었다.

   김학철의 생을 마감하는 과정마저도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이 상상할수 없는 한부의 숭고한 드라마였다. 그는 자신의 최후를 인지하시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하나하나를 계획적으로 준비하였다. 그는 타계하기 20일전에 스스로 삶을 마무리하려고 작심한 나머지 친필로 유서를 작성하였다.

 

남기는 말

사회의 부담을 덜기 위해

가족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더는 연연하지 않고

깨끗이 떠나간다

김학철

 

병원 주사 절대 거부

조용히 떠나게 해달라

    김학철은 이렇게 생의 마지막 20여일을  병원치료를 거부하고 곡기(谷氣)를 끊고 태연하게 조용히 이 세상을 하직하였다. 타계하기 15일 전에 그는 다음과 같은 유서를 남겼다.

     편안하게 살려거든 不義에 외면하라

     그러나 사람답게살려거든 그에 도전하라.

 

   우리 문인들은 그의 유언대로 화장후 일부 골회를 두만강물에 뿌려주고 일부 골회를 잘 포장하여 우편박스에 실어 두만강물에 띄워서 그의 고향 원산으로 향하도록 하되 그 골회함에는 “홍성길(김학철 본명) 이제 고향에 돌아갑니다”란 글을 첨부했다.

   이 경우 중국 도가의 시조인 장자(莊子)의 말씀이 생각난다. 장자는 죽음에 림박해 장례식을 성대히 치르려고 의논하는 제자들에게 “나는 천지로 관(棺)을 삼고 일월(日月)로 련벼(連壁)을, 성신(星辰)으로 구슬을 삼으며 만물이 조상객이니 모든것이 다 갖춰졌다. 나를 그냥 돌판에 버려라. 나를 묻는건 까마귀와 솔개의 밥을 빼앗아 땅속의 벌레와 개미에게 주는것이 공평하지 않구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학철은 이런 리치를 일찍 스스로 터득하였는지 추도식도 열지 못하게 하고 자신의 골회도 남다르게 처리하도록 하였다. 나는 김학철의 이런 처사를 통해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회의 부담을 덜고 가족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신경을 쓰며 의연했던 모습에 감동을 금할수 없다.

실로 위인들은 단순히 세월의 흐름을 아쉬워하고 유한한 인생을 탓만하지 않고 여생을 아름답게 직조하였고 어느 지성인이 말했듯이 “죽음을 인간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일종의 통과의례(通過儀禮)”로 대하면서 태연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들의 이런 모습은 우리의 귀감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위대한 자연의 섭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죽는 그날까지 적극적인 삶을 살다가 조용하게 저승으로 간 위인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나의 몸과 마음이 움츠러진다. 70대에 들어서서 생각밖으로 몸에 이상이 생기고 아내가 하늘나라로 간후 고독에 울면서 무기력과 비관의 늪에 빠져들어가던 한때의 내가 너무나도 부끄럽다. 나의 여생을 위인들처럼 아름답게는 하지 못하더라도 추하게는 만들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70대의 늙음을 먹고사는 나로서 앞날은 많지 않다. 지금부터 죽는 날까지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앞날 다시말하면 래일은 아직 오지 않았기에 래일 일은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나에게는 오늘이 소중하다. 앞날이 많지 않은 나같은 로인에게는 오늘이 더더욱 중요하다. 쏜 살같이 흘러가는 세월앞에서  인생길에 땅거미가 찾아드는 길목에서 병고와 고독에 짓눌려 인생의 무상과 허무의 “타령”이나 부르면서 여생을 소극적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역경을 타개하면서 이제 남은 한 순간을 지난날의 연장선에서 적극적인 삶으로 충만시키려고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그 어떤 변화에도 연연하지 않고 초심으로 일관하게 늙은 육체를 끌면서 갈길을 끝까지 가려고 작심해 본다.저항시인 윤동주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이”깨끗하게 살았다. 내 처지에서 그런 격고(格高)의 경지에 이른다는것은 “그물로 바람잡기”, “태산을 안고 북해 건너기”와 같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부끄럼이 적도록 살고싶은것이 나의 바람이요 소망이다.

“래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나무를 심겠다”는 17세기 유럽의 철학가 바뤼흐 스피노자의 명언이 나의 가슴을 울린다.

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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