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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지심이 척박한 풍토
조 성 일
시비지심
《맹자》의 “공손축장”(公孫丑章)에는 사단(四端)이란 말이 나온다. 사단이란 측은지심(惻隱之心),수오지심(羞惡之心),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을 이르는 말이다.
《맹자》의 4단에 나오는 수오지심, 사양지심, 측은지심 등은 모두 타인의 불행을 슬퍼하고 불쌍히 생각하거나, 겸손하고 사양하거나,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마음 등으로 이들은 모두 수기(修己), 수신(修身) 즉 스스로를 관리하고 바로 세우는 덕성들인데 반하여 시비지심은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우리가 냉정하게 심중하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적인것의 하나는 시비지심인것 같다.사물이나 리치, 사고, 행위가 옳은지 옳지 못한지를 구별하는 능력이 가장 기본이다. 필자는 불교를 믿지 않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삼독심(三毒心) 가운데 ‘어리석음’이 곧‘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하는 마음 상태’ 즉 시비지심 능력의 결손을 의미하는바 지당한 말이라고 생각된다.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하여 무엇이 옳고 그른지 사회와 자연의 질서,공정한 기준, 량심과 상식에 따라 판단하고 구별하지 못한다면 참된 사람이기를 포기한것과 다름이 없으며 그 결과는 사회를 소란시키고 정의가 죽고 정도가 눌리우고 불의가 판을 치게 된다.
우리 조선족문단과 일부 언론인들은 시비지심이 없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김문학은 10년을 웃도는 긴긴 세월에 중국을 비판하고 조선족과 한국을 비하하는 일본 우익세력의 어용문인으로 친일, 반화, 배족의 행각과 매문매필(賣文賣筆)활동을 진행하여왔다. 우리 동포사회의 일부 문인과 지식인들은 시비지심과 량심을 버리고 각종 수단을 리용하여 지속적으로 친일파 김문학을 비호하고 그에 대한 반대론자들을 좌적인 매질군(打手)으로 매도하는것이 그 일례라 해야겠다. 이로하여 우리 문인과 지식인 사회는 오랫동안, 아니 지금까지도 적반하장(賊反荷杖), 지록위마(指鹿爲馬), 어목혼주(魚目混株), 흑백전도, 차도살인(借刀殺人), 가화어인(嫁禍於人)등 비정상적인 일들이 판을 치면서 시비가 없는 정의부재의 대혼란속에 빠지고있다.
“김문학현상”의 핵심문제
“김문학현상”에 대한 론쟁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찬반론자들이 계속 대립각을 세우고 “랭전상태”에 처해있다. 그런데 쌍방이 노리는 초점은 다르다.
“김문학현상”의 찬양론자들은 “공기일점, 불급기여”(攻其一占, 不及其餘)의 수법으로 김문학이 주장하는 기본적인 지론을 회피하거나 은폐한 나머지 대방의 비판 문장에서 나타난 일부 거치른 말과 일부 과격한 현상에 대한 비판에만 예각적대응을 꾀하는데 반하여 “김문학현상”의 반대론자들은 김문학의 착오적인 지론을 거머쥐고 비판의 화살을 날리고있다. 따라서 그 론쟁의 초점이 엇갈려 론쟁의 접점이 이루어지지 못하고있는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이는 아주 반상적인 현상이다. 이 론쟁에서 시비가 갈라지려면 “김문학현상”의 핵심문제를 에워싸고 백가쟁명을 벌려야 한다. 대방의 언어표현에 나타난 문제에 대한 론의로 김문학의 주장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덮어감추거나 묵살해서는 안되며 다른 방향으로 호도해서는 안된다.
“김문학현상”에 대한 론쟁은 2000년대 초 김문학의 《중국조선족대개조론》,《한국인이여 ,상놈>이 되라》 , 《반문화지향의 중국인》으로부터 인기되였다. 김문학은 《중국조선족대개조론》을 빌어 “조선족녀성들은 20세기의 위안부”,“연해지역으로나 해외로 진출한 조선족녀성들은 창녀(娼女)군단”, “조선족사회는 남자는 도둑놈, 녀자는 창녀(娼女)인 남도녀창(男盗女娼)의 사회”, “남조선놈은 사기치고, 북조선놈의 인육(人肉)을 팔아 넘기는 중국조선족”, “사소한 배신도 습관이 돼버린 조선족”, “동굴속에 사는 조선족”, “조선족이 중국에 공헌한 건 김치와 개고기뿐”, “조선족사회은 하나의 거대한 정신병원”, “조선족은 초우센주(肏鲜族)”, “조선족은 팬티를 입은 원숭이” 등등 입에 담지 못할 악담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리고 《중국국민에게 고함》과 그 재탕인 《반문화지향의 중국인》이라는 책에서 중국을 “문화가 없는 문명 고국”,“문화를 반대하는 성향을 지닌 나라”, “문화의 사막”, “류망의 반리성주의가 살판치는 나라”, “우민정책으로 찌들어온 8억 아Q의 나라”, “례의렴치가 없는 후안무치한 나라”라고 매도하였다. 중국을 반대하는 김문학의 악렬한 행각은 《반일에 미친 중국, 친선을 구걸하는 일본》(2006년)이란 책 출판에 이르러 극도에 도달했다. 따라서 “김문학현상”에 대한 반대론자들의 비판은 점차적으로 이 책이 퍼드린 반화언론에 모를 박게 되였다.
그렇다면 “김문학현상”의 핵심은 무엇인가? 필자의 천박한 생각에 따르면 일본 우익세력의 대변자로 나타나 일본군구주의의 죄행을 “력사적인 “공로”로 둔갑시킴과 아울러 무치하게 “수비립전(樹碑立傳)하여 가공송덕(歌功頌德)하며 중국을 비롯한 조선반도와 중국조선족의 력사외곡과 위대한 인물들의 공적을 말살하는 나발을 거침없이 불어댄것이라 말할수 있다. 이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대표적인 책은 김문학의 《반일에 미친 중국, 친선을 구걸하는 일본》이다. 이 책은 중국에서 출판하려하였으나 거부당하였다.
김문학은 《반일에 미친 중국, 친선을 구걸하는 일본》이란 책에서 중국에 대한 일본의 침략은 중국에 대한 “해방전쟁”이며 “五族協和”, “王道樂土”라는 위만주국의 건국리념은 일제 식민지전략의 지도이념을 찬양하면서 만주국은 “滿族國”이며 중화인민공화국은 만주국의 “複制ㅡ擴大版”이라고 모독하였으며 일제의 점령구역은 “樂園”이라고 미화한 반면에 국민당 통치구와 공산당이 지배했던 해방구는 “地獄”이라고 모욕하였다. 남경대학살은 중국인이 조작한것이라 미친듯이 소리쳤고 모택동이 일본황군을 “반면교원”으로 삼고 평가한것을 제 마음대로 외곡하여 모택동을 “친일파”라고 악독하게 중상하였다. 심지어 모택동을 비롯한 중국공산당의 수뇌부는 침화일본군 사령부와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장기간 손잡아 왔다고 력사를 외곡함으로써 중국공산당을 항일전쟁시기에서의 가장 큰 친일한간집단이라고 모독하였다.
이에 반하여 일제의 조선과 중국침략의 원흉인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 제2차세계대전시기 일본침략의 괴수 도죠히데키(東條英機), 남경대도살의 원흉 마츠이이와네(松井石根) 등 일본의 력대의 전범들을 영웅으로 미화하였던 것이다. 최근 일본총리 아베가 산포한 일본의 침략전쟁을 일으킨 죄악을 부인하고 력사를 외곡하고있는 망언과 김문학의 망언은 동일한 것으로 김문학은 일본 극 우세력의 후설이고 충견임을 보다 분명하게 보아낼수 있는것이다.
중국화동사범대학 종계천교수는 《반일에 미친 중국, 친선을 구걸하는 일본》을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력설하였다. “이 책에서 김문학은 자기야 말로 미친 소리를 마구 치면서 조국을 마구 무함하고 헐뜯었다. 그 언어는 악독하고 그 관점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이책은 그야말로 일본 우익집단의 언론의 집대성이며 민족의 절개를 던져버리고 학술 량지(良知)를 구겨버리고 나라를 팔아서 이름을 날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는데, 그야말로 구역질이 난다”.
김문학은 중국에서 조선족으로 태여나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6년간이나 대학에서 강사노릇을 하였으며 문필작업도 벌렸다. 이것이 김문학의 원래의 문화신분이였다. 하지만 지금의 김문학 문화신분은 완전히 변했다. 비둘기는 하늘을 날아도 콩밭은 못잊는다는 선인들의 말 있듯이 사람이 아무리 좋은데를 떠돌아다녀도 자기가 살던 고장을 잊지 못하는것이 통례이지만 김문학은 자기의 조국인 중국을 등지고 “일본인”으로 귀화하여 중국과 조선, 한국. 조선족을 비판의 과녁으로 삼았다. 그의 오만무례하고 자화자찬하고 안하무인의 정도는 우리 속담이 말해주듯이 “시아비 뺨을 칠 정도”이다. 그는 노상 코스모폴리탄 ㅡ세계인 혹은 우주인 다시말하면 자기는 중국, 한국, 일본…등을 초월한 “제3부류의 지성인”으로 자처하고 자랑하며 무치하게도 자기의 음흉한 의도를 감추고 그 무슨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문제를 처리하고 전도된 력사와 사실들을 다시 전도시키는 작업을 한다고 불어대고있다. 이는 어띠까지나 사람들을 기만하는 사기극이다. 로신선생은 “ ‘제3부류의 사람’을 론람”이란 잡문에서 이런 사람으로 되려는것은 “흡사 자기의 손으로 머리카락을 우로 끌어당겨 지구를 떠나려는것과 같은것이다”라고하였다. 이 얼마나 적중한 말인가!
김문학은 중국을 떠나 일본에 가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고 권세를 업어야 했다. 따라서 그는 “부귀공명”을 얻으려고 달갑게 일본 우익세력에 빌붙어 일본 우익세력을 대변하는 어용문인으로 전향하였던것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조선족이라고 나발불며 세계인으로 고아대는데 이것은 종이로 불을 싸는것과 같은 어리석은 짓이다. 김문학은 민족, 국가를 초월한 “세계인”의 탈을 쓴 에누리없는 신친일파이다. 김문학의 현황을 분석해 볼때 애초에 일본우익세력의 울타리속에 들어갔기에 이제와서 그 울타리로부터 발을 뺄수 없는것이다. 만일 그가 오늘에 이르러 일본 우익세력의 반대편에 선다면 일본 우익세력이 용서하지 않을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따라서 김문학은 일본 우익세력에 곡학아세(曲學阿世)하며 량면삼도(兩面三刀)의 술책을 리용하여 기회주의적인 광대놀이를 하면서 신친일파의 길을 죽을때까지 걸어야 하는것은 그의 숙명이라고 해야하겠다.
연변에서 정의는 죽었는가
10년을 웃도는 짧지 않는 세월에 김문학에 대한 론쟁이 계속되여 왔다. 이 와중에 김문학의 신친일파의 모습과 그의 악렬한 본질이 백일하에 들어났다. 한국에서는 일찍 김문학을 신친일파로 찍었고 중국비교교육학회 회장이며 중국화동사범대학 종계천교수는 중국교육계의 유명한 권위적인 잡지로 알려져있는 “전구교육전망(全球敎育展望)”을 통해 철같은 사실을 들어가며 김문학은 매국적, 일본우익세력의 충복, 한간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연변대학 김관웅교수를 비롯한 연변의 적지 않은 문인들도 김문학의 친일행각을 10년 넘도록 지속적으로 비판하여왔다. 하지만 연변의 일부 문인, 문인단체의 책임자, 일부 사이트의 관계자들은 이런 정의적인 행동에 찬물을 퍼붓고 이에 반해 김문학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지지하고 비호하고 있음으로 하여 그에 대한 찬반론쟁이 지금까지 현재형으로 계속되고있다.
오래동안 우리 문단의 일부 문인들은 김문학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않으면서 그 무슨 “디아스포라형의 지식인”, “세기적인 문화반성을 하는 최고지성인”, “후기현대사회의 품격을 갖춘 지성인”이요 뭐요 하면서 하늘 높이 춰 올렸다. 김관웅교수가 어느 글에서 말했듯이 애초에 김문학을 극구 칭찬을 해댔던 우리문단의 일부 친구들이 김문학의 “신친일파”의 본질을 사전에 속속들이 알고서 그러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나중에 김문학의 친일파의 진상이 적라라하게 세상에 들어나고 특히 김문학이 << 반일에 미친 중국, 친선을 구걸하는 일본>>이란 책을 빌어 상기한 악독한 언론들을 퍼뜨린것을 알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이르러 우리 문단의 한 평론가는 그에 대해 비판하는것이 아니라 김문학에 대한 이전의 그릇된 평가를 고집하면서 한발 더 나아가 최근년간에 김문학의 글쓰기와 연구는 “조선족의 미증유의 현상이며 김문학의 의의는 그의 존재와 활동으로 하여 조선족 문학의 판도(版图)를 국제, 세계로 확장시켰다고 강조”했으며 “김문학은 조선족이 낳은 독보적 지성이며 앞서 달리는 문화선구자이기에 그에 대한 오해, 몰이해가 있는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도 지적했다.” (국제김문학팬클럽 심양지회장 선우옥련, 조글로미디어).
이 평론가는 중국공민이고 중국국적을 가진 조선족으로서 김문학의 << 반일에 미친 중국, 친선을 구걸하는 일본>>중의 반화언론을 보고도 김문학을 친일파가 아니라고 계속 변명하고 있는데 너무나도 어이 없는 일이다. 더욱 한심한것은 그가 “친일은 력사문제로 당시 일본제국주의 식민치하에서 만주국건립의 건국리념을 찬양하고 일본의 중국침략을 구가하고 반공을 주장하는 등 친일행적 여부로 친일문학인가 아닌가를 판단해야 한다”(동상)는 잣대를 만들어가지고 광복 전에 “일본제국주의 식민치하에서 만주국건립의 건국리념을 찬양하고 일본의 중국침략을 구가하고 반공을 주장하는 등 친일행적”이 있으면 친일파이지만, 광복 이후에는 아무리 상기한 친일행적이 있어도 ‘친일파’가 아니라’는 자가당착의 황당한 론리를 펴면서 무치하게도 김문학의 반화곡조를 극구 감싸주고있는것이다. 이 평론가는 구경 어느 나라 사람인지, 중국의 존엄과 국익과 기본적인 정책과 주장과 엇서는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이 아닌지 의심을 떨쳐버릴수 없다. 이런 평론가가 우리 문단에서 “대환영”을 받고있으니 우리 문단의 시비지심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최근에 일어난 또 하나의 사건은 “김관웅의 문학심포지엄”을 준비할때의 사건인데 문단의 한 책임자는 이번 심포지엄에서 김문학관계의 쟁론문제를 다루지말라고 김관웅교수와 론문작성자에게 “지령”을 내렸다. 당사자들은 우리가 진행한 김문학에 대한 비판은 중국의 정책에 맞고 국익을 보호하는 정당한 행위인데 왜서 그를 다루지 못하는가고 문단 관계책임자에게 반대의견을 제기하였다. 이 문제는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았고 복잡한 문제이기에 회피하라고 자기의 의견을 고집하는 한편 만일 이 문제를 다루면 나의 상황이 어렵게 된다는것이였다. 결과적으로 심포지엄에서 김문학문제를 회피하지 않으면 안될 괴이한 현상이 나타났던것이다. 선행의 문단 책임자로부터 이번 책임자(전근하여 갔음)에 이르기까지 김문학에 대한 비판에 소극적이였고 지어는 반대하기까지에 이르렀다. 묻노니 친일파를 비판하고 중국공산당의 정책과 주장에 반대곡조를 부른 반화파에 비판의 메스를 대는것이 무슨 잘못인가? 이를 저해하는 행위를 뭐라고 어떻게 평가해야 옳은가?
조글로는 자기 사이트에 김문학의 전문코너를 설치하고 그의 프로필, 칼럼/수필, “나의 정신세계 고백서”, “신조선족”월경론, 김문학론/인터뷰, 활동사진 등을 올리면서 그에게 특별한 관심을 돌리고있다. 조글로에 실린 김문학의 프로필에서 다른 단체의 이름을 빌어 김문학은“ ‘월경하는 글쓰기’를 전개한 문인으로서 ‘신조선족 지성의 기수,국제파 귀재, 동양비교문화의 작은 거인’ 으로 국제적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고 극찬하고있는가 하면 또 지속적으로 김문학의 50권출판기념회, 70권출판기념회 등을 기사화하여 그를 선양하고있다. 또한 최근에는 김문학이 쓴 친일파 리광수를 미화한 “ ‘친일파’의 무덤에도 봄은 오는가?”, 중국의 위대한 문호로신을 친일파쪽으로 밀어부친 “로신과 리광수”, “비적”을 도원하여 폭력혁명을 하였다고 모택동을 비하한 “중국 ‘비적원리’의 발견” 등 글들을 사이트에 올려 방문객들의 분노를 야기시키고있다. 조글로는 무엇때문에 이런 정치적문제가 엄중한 김문학의 글들을 계속 올리고있는가? 이런 행동을 할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온것인가? 심히 의심되는바이다.
김문학은 비교문화학자라고 한다. 김관웅교수를 비롯한 “김문학현상”의 반대파들은 애초부터 그의 비교문화연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지 않았다. 우리는 시종여일하게 중국을 반대하고 중국의 근본적인 국익을 해치는 그의 황당하고도 독소가 잠재해있는 망언에 초점을 맞추어 비타협적인 론쟁을 벌려왔다 우에서 이미 말했지만 과격한 언사를 발산한 오류가 한때 있었지만 우리가 다룬 기본견해와 내용은 시종 정확하였다. 정의적인 주장이였다. 틀림이 없었다. 그런데 “김문학현상”지지론자들은 넌지시 “김문학현상”의 내용이나 보질을 바꾸어놓는 투량환주(偸梁換柱)의 수법으로 중대한 시비문제에 한해서는 회피하고 감싸주고 대방의 언어표현에 관계되는 일부문제만을 꼬집으면서 그것으로 “김문학현상”을 무마시키고 비호하고 김문학을 극찬하는 한편 김관웅을 비롯한 반대론자들을 극좌사조를 가진 자들이라고 타매하였다. 지어는 관방의 세력을 빌어 반대론자들의 입을 막고 억압하려고까지 하였다.
이런 치열한 론쟁속에서 중도파도 나타났고 강건너 불보듯, 먼 산우의 바위보듯하는 수수방관파도 있었고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대로 왔다리갔다리하는 눈치보기파도 있었다. 각양각색의 파에 속하는 사람들의 심층에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잠재해 있겠지만 그중 공통한것의 하나는 “모난 돌 정 맞는다”는 속담이 시사하다싶이 사람이 모나지 말고 둥글둥글하게 살자는 처세철학인것같다. 옛날 황희 정승에게는 이런 일화가 있다. 황희 정승이 하인들이 싸우는 사연을 듣고는 “네 말이 맞다!”라고 한 뒤, 상대 하인의 말을 듣고서도 “네 말도 맞다!”라고 했다. 그러자, 듣고 있던 아내가 “그럼 누가 옳단 말이오?”하고 묻자 “당신도 맞소!”라고 했단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처세술에 순응하는것같다. 나아가 모난 돌을 배척하고 중상하고 모난 돌을 란타(亂打)하는 몽둥이노릇을 하는 사람도있다. 그런데 과연 아무때나 아무런 일이나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모난 돌은 정을 맞고 둥근 돌이 되여야 하는가? 특히 대시비문제를 가르기위해 정곡을 찌르는 촌철살인(寸鐵殺人)에 걸맞는 날카로운 지론을 펴는 “정의지사”가 정을 맞아야 하는가? 그대답은 부정적이다.
중국의 인민 내부의 일상 생활에서나 작은 시비문제에서는 량보도 하고 융화와 조화를 이루는 “둥근돌”이 수요된다. 하지만 정치적인 대시비, 부조리와 비리, 비정은 곧은 나무처럼 굳건히 자기의 자세을 지키는 모난 돌”, 생벽을 뚫고나가는 “무소의 뿔”이 요청된다. 분위기가 소란하고 질서가 문란하거나 기풍이 바르지 못한 우리 동네 특히 우리 문단은 력사상의 천재적인 예술가들이나 과학자, 사상가들은 대부분 체세에 서투른 “모난 돌”이였음을 상기하고 “모난 돌”을 소중히 여기는 풍토를 조성해야 할것이다.
일본에서 극우세력의 대표주자인 아베가 일본총리로 당선되고 일본자유당이 정권을 거의 독점하는 추세가 나타나면서 오늘날 일본에서는 군국주의의 부활 조짐이 날로 더 명확해지고 있다. 아베정권의 이른바 “강대한 일본을 건설한다”는 이 슬로건에는 바로 평화헌법을 고쳐서 일본의 군대를 부활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목적이 숨겨져 있다. 일본침략의 과거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일본 극우정권이 일본군국주의의 옛길로 나아가려고 한다는 점은 이미 세인들의 공동한 인식으로 되였다. 김문학현상은 바로 일본극우세력의 그늘밑에 돋아난 독버섯이다.
이런 동북아세아의 국제정치의 배경하에서 달갑게 일본극우세력의 후설로 되여 일본제국의의 침략전쟁을 극구 미화하고, 일본의 침화전쟁의 력사를 외곡하고, 중국공산당을 악랄하게 모독한 “김문학 문제”는 중국의 핵심적리익을 엄중하게 해친 대시비에 직결되는 이데올로기 면의 중대한 문제 일쁜만 아니라 중국의 국가와 민족이익에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지극히 중대한 정치문제이다. 이는 단지 연변이라는 자그마한 지역사회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이런 중대한 정치시비문제를 호도하거나 덮어감추려거나 묵살하려하거나 비호하거나 수수방관하거나 침묵을 지키는것은 중국공민으로서 중국의 량심있는 지식인으로서는 바람직하지 않는 일이며 조화로운 사회를 이루는데 해가 되는 일이다.
특히 연변지역의 의식형태 분야를 주관하는 상급기관이 이러한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해주길 바란다. 만일 1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한간문인 김문학의 친일, 반화, 반공, 반민족의 엄중한 정치문제에 대해서 계속 보고도 못본척 하거나 심지어 이런 일을 덮어감추려고 한다면 그것은 인식문제를 떠나서 엄중한 정치립장, 정치태도 문제로 볼수 밖에 없다.
나의 생각에 따르면 연변지역의 의식형태 분야를 주관하는 상급기관에서는 김문학의 정치적문제를 지지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반성하도록 교육을 진행하고 김문학의 코너를 설치한 사이트에 한해서는 그것를 삭제하도록 유도하는것이 바람직한것 같다. 그리고 연변 문단 책임자들도 이 문제 해결헤 앞장서주길 바라며 “김문학현상”과 같은 일이 다시 발생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강구하길 제의한다.
2013.7
부록
김문학의<< 반일에 미친 중국, 친선을 구걸하는 일본>>
일본 祥伝社(黄金文庫) 출판2006,12
목록 (이 목록은 연변대학 김관웅교수가 번역한것을 재차 수정한 것이다)
프롤로그 : 친일파 중국인으로서의 고발
제1장 중국에 있어서의 "憎日"의 심층심리
- 이상하기 그지없는 "반일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리유는
(1) 일본인이 모르고 있는 "日本鬼子"
일본인 "賣春"사건으로 보는 중국인들의 과잉반응
우호국을 "鬼"라고 부르는 奇怪千萬한 나라
馬立誠씨는 왜 《인민일보》를 쫗겨났는가
(2) 국책으로서의 "反日憎日"
인터넷에 올린 치열한 반일 선동문
반일 프로파간다는 교육으로부터 시작되였다
눈을 감고 싶은 중국 역사교과서의 왜곡
(3)모택동, 등소평 시대의 대일관계에서 배우라
일본에서 강도질한 중국인 류학생의 변명
공산당군대와 일본군대가 손을 잡았다는 새로운 사실
모택동은 일본에 "감사하다"고 말한 적 있다.
중국이여, 역사를 거울로 삼으라
(4) 궁극의 역사카드 "남경대학살"
南京攻防戰의 책임은 중국에 있다
왜 中國軍隊가 中國兵士들을 총격했을까
"30만명"설은 어디서 생겨난 것인가
사상자수가 뻥튀기 된 정말 중국다운 이유
자국내의 대량학살에는 입을 다무는 중국정부
제2장 일본은 사죄해서는 안 된다
- 自虐史觀, 당당하지 못한 외교에 대한 참을수 없는 일본질책
(1) "사죄"는 죄악이다
일본인에게서 잃어버린 당당한 자존심
중국은 "약자 같은 어린애"짓을 그만두라
인근 국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사죄하지 않는 중국
(2) "패전국 •日本"을 위한 변명
미국에 의해 척추가 부러져버린 일본인의 정신구조
"승자=정의"라는 데는 한계가 있다
戰後의 일본인들이 정말로 반성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3) "日本의 전쟁에 긍지를 가지라
일본이 일으킨 전쟁이 가져온 아시아에 대한 대공헌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비렬한 중국과 한국
(4) "야스구니(靖國)"라고 하는 일본문화
야수구니신사에 낙서를 한 대학생은 "반일영웅"
죽은 자를 채찍질하는 문화와 적과 제편을 같이 제사 지내는 문화
중국과 한국 이외의 외국에서도 참배하고 있는 사실
제3장 일본점령하의 중국의 진실
-일중전쟁 15년, 평화와 번영을 구가한 것은 어떤 쪽인가
(1) "滿洲國"의 위대한 유산
현대 중국이 완전히 부정하는 "滿洲國"
孫文이 획책했던 "滿洲賣却"계획
中華人民共和國은 滿洲國의 複寫-擴大版
(2) "滿洲國"은 "滿足國"이였다
新京의 도시계획으로부터 보는 일본의 의욕과 공헌
일본이 만주에 투입한 막대한 자본
西洋의 識者가 보아낸 滿洲國의 眞價
滿鐵시대의 기차는 지금보다 빨랐었다
(3) 日本占領區는 "樂園"이였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점령구"
러브레타를 출간하여 인세수입으로 살았던 노신
너무나도 대조적인 "해방구"의 실태
(4) "日本鬼子"의 진짜 모습
"三光政策"이란 것은 일본에는 없는 중국의 전통
興亞觀音에 기탁한 마쯔이이와네(松井石根) 大將의 념원
日華事變이후의 8년은 1년의 전투와 7년의 경제건설
제4장 新中國의 씨를 뿌린 일본
-明治이후 오늘까지 日本이 中國의 스승이였던 사실
(1)孫文과 일본 그리고 일본인
일본이 없었다면 중국의 혁명은 없었다
孫文과 중국혁명에 한생을 다 바친 미야자키도우덴(宮崎滔天)
孫文이 주창했던 日中협력과 아시아의 단결
(2) 일본어를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는 현대중국어
일본어로부터 중국어에 수출된 대량의 단어들
중국문단은 일본류학생들이 만들었다
지금도 진행중에 있는 일본문화의 수입
(3) 실현되지 못한 "伊藤博文首相" 초청계획
"伊藤首相" 초청계획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故宮의 보물들을 지켜준 이들은 일본군대였다
"敎育勅語"의 정신은 중국에서 지금도 살아있다
(4) 남아서 新中國建設을 도왔던 日本人들
戰後의 中國內戰에 參戰했던 日本人들
감동을 불러일으킨 일본인 의사와 간호부들의 일하는 자세
中國空軍의 기반을 다져준 하야시야 이찌로우(林弥一郞)소좌
國共兩軍의 싸움은 "日本遺産"을 쟁탈하기 위한 전쟁
제5장 "日中友好"를 해체하라
- 强要와 迎合의 "友好"로부터 진정한 관계의 구축에로 나아가야
(1) "自虐"의 日本人과 "超愛國"의 中國人
일본의 교육 붕괴는 세계의 웃음거리
自國의 國旗를 존경하지 않는 나라는 세계로부터 輕蔑을 당한다
(2) 東京裁判과 文化大革命
文化大革命의 진정한 의도는 무엇이였는가
이미 증명되고 있는 東京裁判의 不當性
洗腦政策의 呪術의 束縛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日本의 悲劇
(3) 중국은 일본을 절대로 추월하지 못한다
대두하는 "中國威脅論"과 "日本沈沒論"
중국에서의 自然破壞 실태의 이모저모
집단賣春사건의 진정한 원인은 무엇인가
중국의 敵은 중국 內部에 있다
隣國로서의 日本이 진짜 무서운 점
(4) "日中友好"론은 왜 위험한가
언제나 뒤틀리는 일밖에 없는 허위적인 "友好"관계
일방적인 규탄과 일방적인 迎合으로 점철된 30년
民主主義를 모르는 중국인들이 리해할 수 없는 것들
좋은 말만 하면서 영합하는 것은 “간사한 친구”이다 (대체 이상의 뜻)
출처:중국조선족문화통신 2013-7-28 8: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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