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소설
아버지 찾아 28년
방산옥 구술
김성문 지음
이 소설을 1950년7월12일11시경에 사망하신
방민관렬사의 령전에 삼가 올립니다.
방산옥 구술
김성문 지음
아버지 23세, 어머니47세 합성결혼사진.
아버지가 딸 방산옥에게 붙혀온 유일한 유물.
국가 민정국에서 렬사증을 재검할때 원본을 가져갔기에 이는
남은 존근이다.
(시민정국에서 제공)
2014년에 마지막으로 발급된 렬사증명서.
마지막으로 보낸 희생자 수속등기표.
조선인민군 총사령부에서 보낸 답복편지봉투와 편지내용.
정상덕 확인서.
정상덕동지에 대한 연길시이란향 혁명위원회 증시.
정상덕에 대한 연길현 이란인민공사 당위서기 杨春伯증실.
방민관 렬사에 대한 정상덕 동지의 확인내용(1)
방민관 렬사에 대한 정상덕 동지의 확인내용(2)
방광필 동지에 대한 연길현태양공사중평대대 증실과
연길현태양인민공사혁명위원회 증실.
박광필 동지에 대한 연길현태양공사 당위부서기 최진복 증실.
방민관 렬사에 대한 박광필 동지의 증실 (1)
방민관 렬사에 대한 박광필 동지의 증실 (2)
연길시 흥안인민공사 흥안대대 렬사기념비.
연길시 흥안인민공사 흥안대대 렬사기념비에 새겨진
방민관 렬사와 그 동생 방정관 렬사의 이름.
연변혁명렬사박물관
연변혁명렬사박물관에 새겨진 방민관 렬사의 이름.
연변혁명렬사박물관에 새겨진 삼촌 방정관 렬사의 이름.
아버지와 삼촌의 이름이 새겨진 혁명렬사비석을 바라보는 방산옥.
차 례
머리말…………………………………………………………25
1.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29
2.토비숙청에 나간 정관삼촌………………………………33
3.첫딸 산옥이…………………………………………………38
4.참군하는 아버지……………………………………………42
5.해방전쟁의 나날……………………………………………47
6.아버지에게서 온 선물 ……………………………………54
7.미운 아버지…………………………………………………59
8.소학생이 된 산옥이 ………………………………………63
9.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67
10.고마운 박수산아저씨 ……………………………………73
11.아버지를 찾아 나선 산옥이 ……………………………77
12.조선 군관을 만난 산옥이 ………………………………80
13.아버지의 행방을 알아 낸 산옥이 ………………………86
14. 전우들의 안타까운 마음…………………………………90
15.아버지의 전우를 찾고 쓰러진 어머니 …………………94
16.두번째 확인자………………………………………………98
17.함께 부른 만세소리 ………………………………………101
18.아버지의 제사를 지내고 조선정부에 보낸 첫편지……105
19.검토된 작전 방안 …………………………………………110
20대학생이 된 산옥이. ………………………………………115
21,문화혁명기간에도 아버지를 찾아 ………………………119
22..아버지는 《포로병》, 어머니는 《국민당 가족》……121
23결혼한 산옥이………………………………………………125
24.인심이 천심 …………………………………………………131
25.로할머니가 데려간 어머니…………………………………133
26.렬사증! ………………………………………………………136
머리말
나는 2017년 6월 9일 ,우리 아버지 이름이 새겨진 렬사비를 찾아갔다.
아버지가 사망된지 67년!
나는 나서 지금까지 아버지를 직접 바라보면서 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
나는 승용차에서 내리면서 그렇게 불러 보고싶은 그 이름을 렬사비를 바라보며 목놓아 하고 불렀다.그 부름소리가 골안을 쩌렁쩌렁 울리여 퍼졌다.
그 순간 ,난데없던 회오리바람이 씽하니 불어와 승용차문이 쾅!하고 닫기였다.그 찰나,나의 왼손이 차문에 끼였다 대번에 뻘건 피가 뚝뚝 떨어지였다.
그 작은 상처에서 떨어지는 그 피가 아버지께서 흘린 피와 어찌 비기련만,손톱이 빠지고 뼈가 끊어진 그 아픔이 아버지께서 겪은 그 고통과 어찌 비기련만 나는 오늘 아버지께서 느낀 그 아품과 그 고통을 직접 체험할수가 있었다.하늘이 나더러 그걸 느껴보라고 한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나는 붕대로 상처를 대충 싸매고 아버지의 령전에 새하얀 장미꽃과 새하얀 나리꽃을 고이 올려놓았다.그리고 최근에 우리가 쓴 이라는 책도 그 앞에 정히 올려 놓았다.
나는 수많은 렬사들의 이름이 새겨진 렬사비를 우러러 눈물을 흘리며 경건한 마음으로 뜨거운 절을 올리였다.
렬사!
방민관렬사!
렬사, 그 이름은 나와 어머니가 28년 간 악전고투하여 찾아온 이름이다.
빛나는 렬사!
방민관렬사!
어머니는 아버지가 군대 가신 다음 아버지를 그리며 전선원호사업에서 모범이 되고 로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잘 모시여 연길시와 자치주의 모범으로 그 영예를 빛내 가시다가 아버지의 소식도 모르시고 저승으로 가시고 말았다.
아버지의 딸- 이 산옥이는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그 곰방숟가락을 보면서 자라나 대학을 졸업하고 의학가가 되고 성의학전문가로 되여 지금 여생을 빛내여 가고있다 …
이때 번개 치고 우뢰가 꽈르릉 하더니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져 내리였다.굵은 비방울이, 아니 하늘에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내리였다.나는 그리운 그 이름를 부르고 부르고 또 부르며 울고 울고 또 울었다.
아무리 불러도 아무리 울어도 아버지는 다시 깨여나지 못하는 그런 몸이다.그러나 렬사,그 이름은 저 웅위로운 렬사비처럼 영원히 영원히 천추에 길이 빛날것이다.
나의 절절한 그 부름소리는 골안에 쩌렁쩌렁 울리여 저 먼 하늘가로 메아리쳐 갔다.
방산옥
2017.6.9.
실화소설
아버지를 찾아 28년
나는 우리 연구소 일 때문에 몇번 방생진료소 방산옥 원장을 찾아간 적이 있다. 그 때마다 방선생은 나한테 따끈한 커피를 타주었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커피를 누런 동으로 만든 곰방숟가락으로 젓군하는 그것이였다. 현대식 숟가락을 쓸 대신 시대가 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진 그런 곰방숟가락을 쓰는걸 보아서는 무슨 깊은 사연이 있을상 싶었다.
《방선생, 그게 곰방숟가락이 잖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아버지께서 저한테 물려준 유일한 유물입니다.》
《유물이라구요?》
그래서 나는 방선생의 이야기를 듣게 되였다. 그 이야기가 어찌나 감동적인지 나는 글을 쓰지 않을수가 없는 충동을 받았다.그래서 떨리는 필을 들게 된것이다.
1.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
1945년 봄이였다. 흥안촌 버들골 방씨네 맏아들 방민관이 결혼잔치를 하는 날이다.
흥안촌 서쪽 벌판은 물이 고인 습지였고 동쪽 언덕을 따라서는 버들숲이 뉘연하게 펼쳐져 있었다. 마을은 언덕 우에 자리잡고 있는데 방씨네 팔간집은 바로 마을 앞쪽에 있었다.
아침부터 사람들이 방씨네 집에 모여 들었다. 정주칸에 일본 군용모포를 펴놓고 그 자리에 방씨네 할머니가 오른 무릎을 세우고 점잖게 앉았다.
지금 새각시를 데리러 가는 신랑 민관이가 인사하려고 서두르는 참이다. 키가 훤칠하고 고수머리에 어글어글한 두눈을 가진 멋진 신랑이 허리를 굽히고 구들에 꿇어 앉으며 절을 올린다.
《할머니 새각시 데리러 가겠습니다.》
《그래여. 아모쪼록 잘 다녀오너라.》
그 다음은 마을에서 방도이사로 불리는 아버지 차례였다. 민관이가 절을 올리며 말하였다.
《아버지, 새며느리 데리러 갔다 오겠습니다.》
《그래, 날래 갔다 오게.》
그 뒤를 이어 일가 친척들이 련이어 나섰다. 작은 남동생하고 녀동생 둘이 민관의 손을 잡고 흔들며 신랑이 잘 다녀오기를 바랬다.
인사가 끝나고 뜨락에 나서니 마을 사람들이 숱해 모여들었다. 어느새 꽃수레를 장식하고 황소 이마에 붉은 꽃까지 달고 떠날 차비를 하였다. 새각시는 언덕 아래 국자가 거리에 있다고 한다. 아마 새각시를 데려 오자면 적어도 3시간은 좋이 기다려야 할것 같았다.
신랑은 수레에 앉지 않고 삐거덕거리는 수레 옆에서 성큼성큼 걸었다. 수레에는 함보따리를 실으니 넘쳐났다.함이라야 별로 희한한것은 없었다. 귀한것이라면 베 2필과 새각시에게 줄 모본단 아래우 옷감, 장모 장인한테 드릴 명주 옷감이 필이였다. 그리고 베수건 따위들을 두루 넣다 보니 부피는 꽤나 되였다.
언덕에 올라 서서 신랑은 마을을 향하여 손을 내저으며 소리쳤다.
《여보시우… 》
별로 할 말이 없어 가지고도 신랑은 제 기분을 이기지 못하여 이런 소리를 치고 고개를 넘어갔다.
마을에서는 떡을 치느라고 뚱땅뚱땅 떡메소리가 들썽하였다. 젊은이들은 뜨락에 말뚝을 박고 삿자리로 병풍을 둘러쳤다. 그리고 밥상 우에 미닫이문을 떼다가 올려놓고 새각시 상을 만들었다.
오후 1시나 되였을가 언덕에서 쩔렁쩔렁 소방울 소리가 울려왔다. 동네 아이들이 와! 소리치며 달려갔다. 젊은이들도 구경거리나 있나 하여 뒤따라 갔다.
꽃수레에는 어디서 나타났는가? 봉황새 같은 새각시가 아미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고운 복숭아 이마에 당실한 코… 아니, 고개를 쳐드니 정말 장미꽃같은 새각시가 사람들 눈앞에 환히 나타났다.
젊은이들은 침을 흘리며 소리를 쳤다.
《우와! 국자가 미인이라던게 정말이구나!》
《아니, 장미가 왔다가 울고 가겠네!》
《민관이 어디 가서 미인을 업어 왔네!》
아이들도 소리쳤다.
《각시 각시 고운 각시 범이 범이 무섭잖나?》
그건 아이들이 민관이를 두고 하는 말이였다. 민관이는 광복이 되자 지주네 집을 학교로 만들고 아이들을 모여놓고 《하늘천따지》를 배워주었다. 그런데 생김새처럼 무섭구 우둑지여서 아이들이 민관이라면 쩔쩔 매였다.
게다가 아이들이 공부에 게으르면 싸리회초리로 장단지를 내리 쳐서 아이들은 민관이 앞에서는 꼼짝 못하고 를 읽어 바치군하였다.
하지만 뒤에서는 민관일 모두 《범》이라고 손가락질 하였던것이다. 그래서 지금 아이들이 새각시 앞인데도 범이 무섭지 않는가고 새각시에게 엄포를 놓는 판이였다.
꽃수레는 마을에 도착하였다. 신랑 민관이는 너무 좋아 입을 다물지 못하고 허허거리며 어쩔줄을 몰라하였다.그새 너울을 곱게 쓴 새각시는 꽃수레에서 내려 삿자리로 만든 병풍 앞에 차려놓은 새각시 상을 마주하여 얌전하게 앉았다.
고개를 수그리고 앉은 새각시가 앞이마에 꽂은 꽃때문에 더더욱 아름답게 보여 예서 제서 새각시가 곱다고들 찬탄을 금치 못하였다.
신랑 민관이도 새각시 옆에 덜썩 주저 앉았다. 워낙 키큰 사람이라 앉은 키가 어지간한 사람의 선 키 만큼 되였다. 옆에 앉은 새각시도 녀자 치곤 큰 사람이여서 둘이 정말 오랍누이 같았다.
먼저 신랑신부 맞절을 하라고 하여 신랑 신부는 앞에 나와 맞절을 하고 서로 바라 보았다. 마치 처음이나 보는것처럼 신부는 상그레 웃으며 신랑을 쳐다 보고 살풋이 고개를 숙이는것이였다. 신랑은 그것이 좋아 신랑이라는것도 잊고 흐허허허 웃는것이였다.
그리고 첫날상에 나란히 마주 앉아 큰상을 받았다. 이렇게 되여 흥안골에 멋진 방민관과 국자가의 장미 남청숙은 백년을 하루같이 살자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결혼잔치를 올린것이였다.
2. 토비숙청에 나간 정관삼촌
방민관이 결혼하자 제일 좋아한것은 동생 정관이였다.정관이는 지금까지 형과 함께 고방에서 잤다. 그런데 형이 결혼하자 정관이는 베개와 모포를 안고 수산이네 집에 가서 자게 되었다.
수산이는 정관이와 송아지 동무였는데 키가 정관이보다 한뼘이나 작아 함께 서면 동생벌로 여기였다. 정관이는 키가 훤칠하고 억실억실하게 생겨서 16살이지만 제법 청년취급을 당하였다.
마을 형님들이 버들숲에 모여서 비밀 모임을 할 때도 정관이가 가면 아무 말 없는데 수산이가 가면 손을 홰홰 내저으며 가라고 하여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2년전 어느날 마을 형님들이 버들숲에 모여서 어떤 낯모를 형님의 연설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날도 정관이는그 모임에 참석할 수가 있었다.
《지주란 흡혈귀요. 흡혈귀란 피를 빨아 먹는 귀신이란 말이거든...》
정권이는 그렇게 설명하여도 아리숭한게 알아 들을수가 없었다. 그때 민관형님이 정관이를 보고 보충설명을 하는것이였다.
《우리 흥안 촌은 원래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들이 버들숲을 개간한 곳이란다. 그런데 강지주가 일본놈을 등에 업고 우리 흥안촌을 모두 제 땅으로 만들어 버린거야. 그리구 그 땅을 농민들에게 나누어주어 소작 짓게 하구 자기는 호미 한번 들어보지두 않구 가을이면 소작료를 거둬가는거야. 이게 그래 농민들의 피를 빨아 먹는게 아니냐?》
그 말을 들은 정관이는 알만하였다. 생김새는 어진 사람처럼 생기였는데 사실은 사람의 피를 빨아 먹는게 지주구나! 그래서 강지주 아들놈은 자전거를 타고 거리로 쏘다니며 일본놈의 앞잡이로 일하지! 알았어. 정관이는 정말 대단한 도리를 깨닫게 되어 얼마나 좋았는지 몰랐다.
그날 오후 정관이는 수산이를 데리고 연집강에 나가 물고기를 잡으며 오전에 들은 말을 알기 쉽게 이야기하여주었다. 수산이도 그제야 강지주도 흡혈귀라는것을 알게 되었던것이다.
《수산아, 형님들이 나한테 임무를 주었어.》
《무슨 임무?》
정관이는 누가 들을세라 수산의 귀에 대고 말하였다.그날 저녁 정권이는 수산이네 집에서 잤다. 약속대로 밤중이 되자 수산이네 방문을 누군가가 똑똑똑 두드렸다.
정관이와 수산이는 냉큼 일어나 옷을 주어 입고 밖으로 나왔다. 민관형님이 풀통과 삐라를 가지고 온것이였다.
《이 삐라를 강지주네 토성에 붙이거라. 알았지?》
《개가 짓기때문에 얼른 붙이구 저 버들숲으로 내 뛰거라. 절대 마을로 들어오지 말구.》
《알았어요!》
정관이와 수산이는 민관형님의 말대로 삐라를 토성에붙이였다.어득스레한 밤이지만 《강지주를 타도하자!》, 《토지는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자》, 《중국공산당 만세!》라는 삐라들이 아이들의 눈에 환히 보였던것이다.
그때부터 정관이와 수산이는 함께 비밀활동을 하였던것이다. 이젠 16살 먹은 정관이는 제법 청년이 다 되었다. 그런데 수산이는 아직도 아이들 취급을 당하고 있다.하지만 정관이가 맡은 임무는 꼭꼭 수산이와 함께 하군하였다.
어느날 민관형님이 풀통과 삐라를 주면서 거리에 나가 붙이라고 했다. 삐라를 보니 《쏘련홍군을 열렬히 환영한다》는것이였다. 그날 수산이와 정관이는 거리를 뛰여 다니며 삐라를 얼마나 많이 붙이였는지 모른다.
이제 민관형님이 결혼하여 잠자리까지 빼앗긴 정관이는 낮이나 밤이나 수산이와 함께 있게 되어 정말 좋았다.그보다도 정관이가 좋아한것은 형이 결혼하였으니 자기가 먼저 군대 갈수 있구나 생각하니 더더욱 기뻐났다.
어느날 정관이네 집에 많은 형님들이 모여 들어 또 무슨 회의를 하였다. 그날은 수산이도 함께 참가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회의 장소가 정관이네 집이였기 때문이였다. 낯모를 형님이 먼저 말을 시작하였다.
《지금 일본놈들이 투항하구 쏘련홍군이 연길에 진주하자 지주놈들이 도망쳤다구. 어디루 도망쳤는가? 이란구루, 싼두만으루 도망 가서 토비부대를 만들었다구. 토비부대는 왜 만드는가? 우리의 인민정권을 뒤엎자구 만든거지...》
낯모를 형님이 여기까지 말하자 모두 주먹을 부르쥐고 윽윽 거리였다. 정관이도 그 말뜻을 어지간히 다 알아들을수가 있었다.
그날 저녁, 남청숙이 저녁상을 갖추고 식구들을 식사하자고 불렀다. 그런데 제일 먼저 밥상에 다가 앉은 정관이가 먼저 말을 떼는것이였다.
《할머니, 아버지, 할 말 있슴다. 저...》
《무슨 말이냐?》
정관이는 낯모를 형님처럼 주위를 둘러보고 《음》하고 건가래부터 떼였다.
《할머니, 아버지! 지금 우리마을 강지주랑 강지주 아들이랑 모두 토비부대에 갔습니다. 우리 인민정권을 뒤엎자구 갔습니다.》
무슨 말인가 귀여겨 듣던 아버지가 말참견을 하였다.
《그래서 어쩌자는거냐?》
《저... 형님두 결혼 하였구... 그래서 내 군대 가자구 그럼다!》
《이게 무슨 소리냐?》
아버지가 뒤젖참하면서 두눈을 치떴다. 할머니는 《게무슨 소리냐?》하면서 앞으로 나 앉았다. 형님은 정관이를 끄당기며 소리쳤다.
《이마에 피두 안 마른 놈이. 안돼! 내가 갈란다!》
《형님 나감 새아주머니는 어떡함까?》
정관의 주장을 그 누구도 꺾을수가 없었다. 그러자 수산이가 그 누구보다 상심하였다. 그렇게 붙어 다니던 송아지 친구가 군대 나가면 이제 누구와 같이 논단 말인가? 그 누가 근심하고 그 누가 걱정하여도 정관이는 앞가슴에 붉은 꽃을 달고 1945년 11월 13일 16살 나이에 군대로 나갔다.
정관이가 군대에 가서 2달만에 수산이한테 편지가 왔다.
보고싶은 딱친구 수산아:
그 동안 잘 있니? 나는 총을 메고 이란구로부터 전진하여 싼두만까지 와서 전투에 참가하였다. 처음 총을 쏠 때 어깨쭉지가 떨어져 나가는것 같더라. 그런데 몇발 쏘니 아무렇지두 않더구나. 난 토비놈들을 직접 세 놈이나 죽였어. 처음은 좀 두렵더라. 그러나 ‘저 놈들이 우리를 죽이자구 하는 놈들이다’라구 생각하니 눈에 불이 켜지더라. 수산아, 임마 우리 장춘으로 쳐들어갈 때였어. 지금두 난 그 강 이름은 모르겠는데 얼음선이 둥둥 떠내리는 강을 우린 건너야 했어. 그런데 임마! 난 장가두 가지 않은 놈이 아니구 뭐야! 물이 어찌나 찬지 임마, 그 아랫도리가 떨어져 나가는것 같았어. 그래두 그게 얼어 떨어지지 않았거든...하하하...
전투때문이였는지 편지 쓴 날자도 없이 날아온 편지였다. 그런데 그 편지가 마지막 편지일줄은 그 누가 알았겠는가? 정말 놀라운 일이였다. 장춘으로 처음 쳐들어 갈 때 정관이는 글쎄 복부 관통상을 입었다. 장춘포위전이 시작되여 정관이는 할빈 야전병원에 옮겨 가서 치료를 하였는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이 세상을 영원히 떠나고 말았던것이다.
그래서 방씨네 집에는 사람 대신 렬사증이 날아오고 말았던것이다.
3. 첫딸 산옥이
며느리가 시집 오니 집식구는 대번에 불어났다. 로할머니 시아버지 시동생들과 시누이 그리고 신랑 신부, 이렇게 3대손 9명이나 함께 사는 대가정이 되였다. 그러다 보니 때시걱을 하기도 여간만 힘들지 않았다.
민관이는 대낮에 학교에 나가 아이들에게 천자문, 노래공부, 체육을 가르치였다. 일요일이면 새벽부터 아버지와 함께 버들숲에 나가서 나무 뿌리를 파해치고 땅을 일구었다.
《이 사람아, 인젠 우리두 땅을 일구어야지》
《아버지, 이젠 땅걱정은 안해도 될것 같아요.》
《게 무슨 말이여. 우리 지주놈들 땜에 땅 고생을 했으면 얼마나 했나? 인제 해방이 되였으니 푸름해서 몇무 장만 하자구.》
그래서 민관이는 아버지 성화에 못이겨 꽉지로 버들뿌리를 파헤치였다.
어느새 아침밥을 가지고 나온 청숙이는 힘차게 꽉지를 휘두르는 남편을 이윽토록 바라 보았다. 꽉지를 머리 우에 휘둘렀다가 땅을 땅! 하고 내리치면 버들뿌리가 척척 뽑혀 나갔다. 정말 힘꼴 쓰는 남편이였다.
《아버님 아침 진지 잡숫구 하십지.》
며느리는 밥보자기를 풀어놓고 이미 파놓은 나무뿌리들에서 흙을 툭툭 털어 내였다. 며느리는 시집 온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집안 일을 하랴 농사일을 도우랴 정말 헐치가 않았다. 그러나 제집 일이라고 생각하니 힘드는 줄도 모르는 청숙이였다.
아침식사가 끝나자 청숙이는 밥보자기를 옆구리에 끼고 버들뿌리를 머리에 이고 일어났다.
《아니, 여보, 나무뿌린 왜 이고 가우?》
《불을 때자구요.》
《그런건 내가 하잖으리라구 그래?》
그래도 청숙이는 버드나무 뿌리를 머리에 이고 집에 와서는 뜨락에 널어 말리워냈다. 땔나무가 귀한 이 곳에서는 이런 방법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저녁이면 새 부부는 고방을 차지하고 자리에 누웠다.청숙이는 낮일에 지쳐 코를 드르렁 고는 남편의 팔을 베고 쌔근 쌔근 잠들군 하였다. 밤중이면 남편이 자기 이마를 쓸어주면서 혀를 끌끌 차는 소리를 듣고는 깨여났다.그러면 남편의 품에 안겨들었다.
《여보세요.》
《무슨 일?》
《우리 잔치날에 아이들이 왜서 당신을 범이라구 했나요?》
《흐허허허... 그래 내가 범이 돼 보이오?》
그러면 청숙이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아니라고 하였다.남편은 억척스레 생겼지만 자기를 이처럼 살뜰하게 생각하여주고 자기를 이처럼 따뜻이 아껴주는데 범이란 웬 말이 냐는 것이 였다.
《그래. 아이들은 공부를 하여야 하우. 이제 세상이 변했으니 공부하여야 하지. 그런데 그놈들이 공부를 싫어한단 말이여 거 리수길이라는 녀석은 숙제를 안하구 손바닥에 천자문을 베껴가지구 날 얼리지 않겠수. 그래서 싸리리회초리로 혼빵을 내주었지.》
《아, 아니! 그러지 마세요. 아프 잖아요?》
《아프면 뭐라나? 공부시키는게 죈가 뭐?》
남편은 어지간히 고집스러운 사람이 아니였다. 하지만 밉지가 않았다.
이런 밉지 않은 남편한테서 청숙이는 어느 사이인가 벌써 온양방씨네 씨앗을 물려 받았다. 배가 불러왔다. 남편은 저녁이면 남들이 들을 세라 청숙의 배에 귀를 대고는 흐허허하고 흡족하여 저 혼자 웃군하였다.
날이 가고 달이 가서 드디여 열달이 차서 1946년 2월 2일에 청숙이는 해산하게 되였다. 할머니가 집이 복잡하다면서 청숙이를 데리고 외양간으로 들어갔다. 언제 준비하여 놓았는지 조이짚단을 펴놓고 그 우에 일본 군용 모포를 펴놓고 여기서 해산하라는것이였다. 청숙이는 남들 모두 이렇게 해산하는가고 아무 군소리 없이 거기에 누웠다.
이윽하여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온 집안에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첫 아기가 태여난것이였다. 모두들 손자인가 손녀인가부터 물었다. 민관이가 외양간에 뛰여 었을 때 할머니는 《고추가 아니네!》라고 서운한 소리를 하였다.
그러나 그게 뭐 대수냐? 민관이는 안해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며 《수고했소》라고 한마디 하고는 청숙의 이마에 뜨거운 손을 얹어주었다. 청숙이는 《미안해요》하면서 남편의 손을 꼭 잡아주었던것이다.
갓난아이는 날따라 무럭무럭 자라났다. 아버지를 닮아서 머리는 고슬고슬 고수머리고 눈은 엄마를 닮아 아글아글한 초롱눈이였다. 날따라 예뻐지는 아이에게 이름을 무엇이라고 달아줄가 토론이 분분하였다.
아버지가 아이를 이라고 지어 주자고 하였다.며칠전 꿈에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데 저 앞에 반짝반짝하는 물건이 보여서 달려갔더니 그것이 글쎄 구슬이더라는것이였다. 그게 바로 태몽이라고 우기면서 녀자애를 낳았으니 산에서 주은 옥이니까 산옥이라는게 옳다는 통에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산옥이가 태여나니 방씨네집 항렬순위가 한급씩 높아졌다. 그리하여 할머니는 로할머니가 되고 아버지는 할아버지로 되고 민관이는 아버지로 청숙이는 어머니로 되였다.
민관이는 저녁이면 산옥의 이마에 뽀뽀를 하면서 아버지가 된 그 참맛을 한껏 느끼군 하였다. 그리고 이런 귀염둥이 아이를 낳아준 안해에게 뜨거운 볼을 부비였다.이제 함께 어린애를 잘 키우며 행복하게 오래 오래 잘 살자고 부등켜 안았다.
4. 참군하는 아버지
토지개혁이 시작되고 지주청산도 시작되였다. 민관이네는 땅을 분여 받았고 지주놈들이 쓰던 앉음뱅이 재봉틀도 분배 받았다. 청숙이는 시집 오기 전에 동네에 있는 마선집에 가서 마선질을 배워 어지간한 옷가지는 제법 척척 만들어냈다. 그래서 청숙이게는 새로운 일거리가 생기게 되였다.
그런데 청숙이게는 날벼락이 떨어졌다. 저녁밥상에 식구들 모두 마주 앉았을 때였다.
《할머니, 그리구 아버지…》
웬 일인지 민관이는 숟가락을 들다 말고 이런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웬 일이여? 할 말 있음 얼른 할거지…》
《아버지 지금 국민당군대들이 돈화까지 쳐들어 왔슴다.》
《아니 그건 또 무슨 소리여?》
《국민당 군대들이 여기까지 쳐 나오면 우리는 또 재벌 고생을 하게 됩니다.》
《재벌 고생이라니?》
민관이는 할 말을 곧바로 하지 못하고 먼저 머리말을 늘어놓느라고 무척 애를 쓰는 판이였다.
《저 우리가 분배 받은 땅이란 재봉침이랑 도로 다 내놓아야 함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아버지도 할머니도 거의 동시에 입을 짝 벌리며 물음표를 내던지였다. 그제사 민관이는 때가 되였다고 여기고 건가래를 떼고 실말을 내놓았다.
《할머니 그리구 아버지 이 민관이가 군대에 나가기로 자보하였습니다.》
《게 무슨 소리여?》
할머니부터 다급히 물었다. 아버지도 거 듣다 별소리라는 듯 《안되여!》하고 돌아 앉았다.
《이 사람아, 새며느리는 어쩌구? 안된다. 안돼》
《아버지, 전 이 판에 전선에 나가서 토비숙청에서 죽은 동생의 원쑤도 갚을 랍니다.》
《암…》
아버지는 이렇게 외마디 소리를 하군 말을 삼키는것이였다.
아버지는 민관이가 하는 연설에서 어느정도 침을 맞아 그런지 할머니처럼 그렇게 마구잡이로 나서지 않았다.우리가 재벌고생을 한다는데 눈을 펀히 뜨고 그 고생을 앉아 기다릴수는 없구… 이걸 어쩌면 좋아… 아버지는 도리머리를 하였다.
그때 민관이가 한술 더 떴다.
《나같은 젊은이가 나가지 않으면 누가 나가야 합니까? 아버지... 》
민관이는 먼저 약한 아버지의 다리에 침질을 들이댔다. 집안은 물 뿌린듯 고요하였다. 아버지는 할머니만 바라 보았다. 할머니는 자네 할 일이니 자네가 처리하라는듯 눈을 감고 아무 말이 없었다.
이때 아버지가 어험 가래를 떼고 입을 열였다. 《음,일이 별랗게 돌아 가는구나 어쩌겠나. 아무리 생각하여두 이건 새며느리가 결정해야 할것 같구나 아니 그렇냐?》
일이 이렇게 되자 식구들은 말없이 저녁식사를 하였다. 민관이는 저녁식사를 하면서도 이제 청숙이가 어떤 태도로 나올것인가 근심만 되였다.
식사후 고방에 들어선 민관이는 언제 저녁설걷이를 하고 청숙이가 들어오겠나 기다리였다. 이윽하여 청숙이가 들어섰다. 청숙이는 눈물부터 글썽하였다.
《여보…》
《…》
《당신은 내가 군대가는거 동의하지?》
《뭐라구요? 자기가 다 결정하고 저한테 동의하느냐구요?》
《난 우리 청숙이가 동의 할줄 알거든…》
청숙이는 흐윽 울음을 터뜨리며 민관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그러나 울음소리는 낮아 정주까지 들려 나가지는 않았다. 청숙이는 두주먹으로 남편의 가슴팍을 막 마구 두들겨 팼다.
그때 남편은 더 말없이 청숙이를 무작정 으스러지게끌어 안았다. 숨이 차서 할딱이는 청숙이는 남편을 밀어놓았다. 그러다가 다시 와락 끌어 안는 청숙이! 도대체 동의 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반대한다는 말인가? 민관이는 답복은 받지 못하였지만 청숙의 입에 자기의 뜨거운 입술을 포개여 대였다.
이렇게 되여 민관이는 딸 애 산옥이가 세상에 태여난지 2달만에 산옥이와 청숙이를 후방에 남겨두고 전선으로 떠나가게 된것이다.
청숙이는 온밤 색천을 무어 무지개 담배쌈지를 지어 남편의 손에 꼭 쥐여주었다.
《여보 내가 떠날 때 절대 당신은 울어선 안되오. 알았지?》
《왜서요?》
《할머니와 아버지를 위하여서지!》
《알았어요 》
군대 가는 날 마을에서는 민관의 앞가슴에 커다란 붉은 꽃을 달아주었다. 그리고 꽹괘라를 울리고 북을 치면서 군대 가는 사람들을 바래주었다. 청숙이는 사람들 뒤에 서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산옥이에게 말하였다.
《산옥아, 아빠 군대 간다. 잘 가시라 해.》
그러나 나서 두달밖에 안되는 산옥이는 엄마의 말을 알아 들을수가 없었다. 아니. 산옥이는 아버지가 군대가는것도 알수가 없었다.
물론 갓난 산옥이는 자기의 두 눈으로 군대 가는 아버지를 보았으련만 나어린 산옥이로서는 자기의 기억 속에 아버지의 영상을 남길수 있는 그런 나이가 아니였다.
이렇게 되여 우리의 불쌍한 산옥이는 이 세상에 다시없는 자기의 아빠를 다시는 더 보지를 못하게 되였던것이다.
5.해방전쟁의 나날
(1)
1947년 5월 20일 민관이는 부대에 가서 군복을 입었다. 키가 장대 같은데 누런 군복을 입고 척 나서니 장군 같았다.
룡정에서 한달간 훈련을 하고 어느날 밤중에 짐차에 올라 탔다. 기차는 어둠속을 뚫고 칙칙푹푹 달리기만 하였다. 들을 지나 산을 넘어 달리고 달리던 기차는 칙 하고 멈추어섰다. 교하를 지나 강밀봉에서 모두 내리였다. 토비숙청을 한다는것이다.
룡정에서 총 쏘는 훈련을 하고 첫 전투에 나서는 민관이는 저으기 근심도 났다. 총 몇방 쏘아 보지 못하고 전투에 참가한다니 걱정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근육이 불끈거리는 자기 팔뚝만은 믿고 싶은 민관이였다.
밤중에 두주먹을 부르쥐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리여 갔다.
한 10리 달리고, 이제부터는 포복전진이였다. 포복전진도 처음 할라치니 여간 힘들지 않았다. 그러나 군사 행동이기에 어쩔수가 없었다. 이렇게 기여서 20분 좋이 갔을 때 앞에서부터 전투준비를 하라는 명령이 전달되였다. 어두운 밤인데도 저기 서쪽으로 뉘연하게 뻗어간 산언덕이 어렴풋이 보여왔다. 적들이 바로 저 언덕에 진을 치고있다는것이였다.
앞에서 공격나팔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뜨렸다. 민관이는 나팔소리가 나자마자 벌딱 일어났다. 그리고 보총을 꼬나 들고 앞으로 진격하면서 방아쇠를 당기였다. 귀맛 좋은 총알들이 푱푱 하면서 빨간 포물선을 그으며 저 앞으로 날아갔다. 저쪽에서도 총알이 날아왔다. 한참동안 량쪽에서 총알들이 번개같이 날아가고 날아오더니 뜸하여졌다.
웬 일인지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육박전이 벌어졌다. 민관이는 총자루를 거머쥐고 앞으로 쏜살같이 냅다 나가 달려드는 적놈들의의 대갈통을 까부시기 시작하였다. 바로 동생을 죽인 토비들이라고 생각하니 그 분을 참을수가 없었다.
민관이는 버드나무 뿌리를 파해칠 때처럼 달려드는 놈들을 하나둘 보기 좋게 쓰러 눕혔다. 얼마나 때려 눕혔는지 민관이는 몰랐다. 민관의 눈 앞에는 불이 펄펄 날리였다. 민관이는 앞뒤를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족족 족쳐댔다.
이렇게 정신 나간 사자처럼 앞으로 내닫다가 민관이는 무춤 서버리였다. 뜻밖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만세소리였다.
《만세! 만세! 만만세!》
그 소리에 민관이도 총자루를 높이 들고 만세를 불렀다. 전투에서 승리한것이였다. 전투는 바로 이렇게 하는거구나! 이번 전투에서 민관이는 적군을 6명이나 쓸어 눕히여 첫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2)
민관이네 부대는 길림을 지나 장춘포위전에 참가하였다. 우리군은 장춘을 6개월간이나 포위하고서 장작림부대를 투항하라고 압박하였다. 놈들은 포위되여 식량도 떨어지고 남새도 떨어지고 물도 떨어지고 하여 사기가 형편없이 떨어졌다.
우리부대에서는 이런 상황에 비추어 《함화선전대》를 무엇다. 각 련에서 노래를 잘하는 전사들을 선발하였다. 노래를 잘하는것도 문제지만 목소리가 우렁우렁하여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었다.
민관이는 자보하여 나섰다. 참군하기 전에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노래공부를 배워주지 않았던가! 민관이는 전사들앞에서 《나가자 나가자 싸우려 나가자…》라는 노래를 불러 보았다.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고 감정표현도 괜찮아서 대번에 함화선전대에 가담하게 되였다.
달밤이면 함화선전대는 적들의 진지에 접근하여 간다.그리고 키타를 타고 손풍금도 연주한다. 은은한 악기 소리를 들은 국민당 군인들은 고향을 생각하고 부모처자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군 하였다. 나중에 그런 국민당 군대들에게 독창도 하고 중창도하였다.
민관이네 노래조에서 그 좋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공상당이 없으면 새중국도 없다네
공산당은 진심으로 인민을 위하고
공산당은 진심으로 새중국을 구한다네…
장춘을 포위하여서 6개월만에 국민당 군대들은 총창에 흰옷을 꿰여 들고 두손을 든채 투항하여 왔던것이다. 민관이는 처음으로 노래의 힘을 직접 보게 되였다. 전투는 노래로써도 하는구나 생각하니 노래 부른 자기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랐다.
그리하여 장작림부대는 투항하고 말았다. 민관이는 이 포위전에서 또 함화선전대의 일원으로 장춘포위전 공을 세우고 패장으로 승급하였다.
(3)
장춘이 해방되자 국민당군대는 모래성처럼 무너지여 갔다. 심양도 금주도 손쉽게 해방하였다. 북경은 부자귀가 투항하여 평화적으로 해방되였다. 《만세 》 소리 높이 앞으로 내달리면 국민당 군대는 두손을 번쩍 번쩍 쳐들고 땅에 꿇어 앉았던것이다.
우리군은 승승장구로 남으로 남으로 진군하여 장강에이르렀다. 적들은 장강 남쪽에 진을 치고 우리군의 남진을 가로 막고있었다.
어느날 새로운 보충병이 찾아 왔다. 보충병은 민관이에게 차렷하고 경례를 부쳤다.
《패…장…》라고 하던 전사가 민관이를 알아보며 두눈을 커다랗게 치떴다.
《선생님!》
《아니 이게 누구여?》
《저 리수길임다..》
《아, 수길이!》
민관이는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러나 천자문을 외우지 못했다고 싸리회초리로 짐찔하던 생각이 우렷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 언제 참군했지?》
《한달 전임다. 》
《잘 돼였어. 함께 잘 싸워보자구.》
실로 세상은 넓기도 하고 좁기도 하였다. 한 마을에 살던 수길이가 민관이네 패에 배치되여 온것이 아닌가!
부대는 장강을 건너가야만 하였다. 부대에서는 돛배를 갖출것을 명령하였다. 민관이는 전사들을 이끌고 돛배를 만들 대나무 구하려 다니였다. 하늘 높이 자란 대나무를 손도끼로 탕탕 찍어 넘겨뜨리고 아지를 툭툭 친 다음 둘러메고 련부로 모여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쿵쾅하는 포탄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와 함께 으악! 하는 아츠러운 비명소리도 들렸다. 전사 하나가 파편에 얻어 맞고 땅에 쓰러졌는데 어깨에서 선지피가 콸콸 흘러 나왔다.
《누군가?》
《신임전사 리수길!》
《뭐라구? 수길이가?》
민관이가 허리를 굽히고 찬찬히 살펴보니 파편이 수길의 어깨를 치고 날아 갔던것이다.
《간호병! 간호병, 빨리 처치해!》
민관이는 이렇게 명령하고 수길이를 내려다 보았다. 울상이 된 수실이는 어딘가 가긍하여 보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수길이가 얻어 맞을건 뭐람? 그러니 저으기 미워나기도 하였다. 수길이도 그 눈치를 어느 정도 알아 차리고 두눈을 지긋이 감고 말았다.
민관이는 모여선 전사들에게 명령하였다.
《모두 돛배를 뭇고 수길인 호사들에게 맡기라구!》
민관이는 이렇게 말하고 련부회의로 달려 갔다.
밤중이 되자 어둠을 타서 수천척의 돛배가 어둠을 타고 장강을 건너가기 시작하였다. 적들이 밀집 포격을 가하였지만 우리 부대에서 장강 이북에서 박격포를 쏘아 장강은 불시에 불바다가 되였다.그러나 몇만 대군이 탄 돛배는 서서히 장강을 건너 원쑤놈들을 까부시며 광주까지 밀고 나갔다.
민관이네 패는 앞장 서서 돌진하여 해남도까지 밀고 나아갔다. 《돌격!》하고 함성을 찌르며 내달리면 국민당패잔병들은 너도 나도 손을 번쩍 번쩍 쳐들고 와들와들 떨기만 하였다.
민관이네 부대가 해남도 해변가에 이르렀다.
《동무들! 모두 바다에 뛰여 들어 몸을 씼으라구!》
민관이가 웃으면서 명령을 내리였다. 그러니 전사들은 옷을 활활 벗어내치고 몇달동안 씻지 못한 몸을 씻기 시작하였다.
민관이도 옷을 벗어 내쳤다. 허우대 큰 민관이는 두팔을 폈다 꼽았다 하여 보았다. 근육은 그대로 불끈불끈 일어났다. 그러나 앞가슴에 총알이 비껴간 상처는 마치 인두로 지져 놓은것처럼 번들번들거리였다. 그리고 팔뚝에 떨어져나간 상처자국도 유표하였다. 그러나 이게 뭐 대수냐? 사선을 넘나들면서 싸운 사람이 이만하면 아무것두 아니지!
민관이는 모래톱에 올라 와서 옷을 주어 입고 혁띠를 질끈 띄였다. 그 다음 군모를 단정히 쓰고 푸르른 야자수숲을 배경으로 하고 저 동북쪽 하늘을 향하여 차렷하고 섰다.
민관이는 거수경례를 하며 입속으로 중얼거리였다.
《여보, 청숙이! 난 죽지 않았소. 당신의 남편 민관이가 이렇게 퍼렇게 살아있소! 승리하였소! 할머니와 아버지께 안부 전하여 주오. 그리구 우리 산옥이, 보고싶소. 보고싶은 산옥이! 아 산옥아!》
민관이는 가슴을 치며 울었다. 산옥이가 사무치게 그리웠던것이다. 인제 3살이 된 산옥이! 아버지는 산옥이를 위하여 싸우는거야! 엉엉 민관이는 소리내여 울었다. 전사들이 말릴 때까지 울었다. 그리고 소리 높이 산옥이를 불렀다.
《산옥아, 내 딸아! 아버지 산옥이 보고 싶구나!》
이렇게 흥안촌의 이름없는 농민 방민관이 해방군 패장으로 되여 고향 하늘을 향하여 소리 높이 웨치였다. 그 웨침소리는 푸르른 야자수림에 쩌렁쩌렁 울리여 저먼 고향하늘로 메아리쳐 갔으면 얼마나 좋으랴!
6.아버지에게서 온 선물
청숙이는 등에 산옥이를 업고 마선질을 하고있다. 지난 겨울부터 마을 녀성들이 함께 모여 군복을 짓고있다. 남정들이 옷감을 재단한걸 메여 오면 동네 재봉틀 두대로 드르르르 옷을 박아낸다.
《아주머니, 오늘도 100벌 감 가져 왔습더.》
《팔자랑》이라고 부르는 리수길이 시뚝해서 옷감을 메여 왔다.
《알았스꾸마. 》
청숙이는 건성으로 대답하고 마선에 마주 앉았다. 언제나 시비를 걸고 드는 저 팔자랑이가 아니꼬와 보였던것이다. 군대에 갔다가 팔을 부상당하였다고 쩍 하면 어깨를 드러내놓고 팔자랑을 하여서 사람들은 아예 수길이를 팔자랑이라고들 하였다. 그러나 민병패 패장을 시켜놓았더니 시뚝대며 돌아쳐서 모두다 눈꼴사나와 하였다. 재봉사 둘이 옷을 박아내면 동네 녀성 넷이서 단추구명을 틀고 단추를 달고 군복 번호를 달면 일이 끝나는 셈이다. 하루에 100벌 옷을 짓는다는건 실로 아름찬 일이다.
날마다 정심을 먹고 또 그걸 거두고 아이한테 젖을 먹이고 나면 몇분 늦는건 례사로운 일이였다. 그런데 팔자랑이는 장가도 못 가서 그런지 녀성들이 얼마나 바삐 도는가를 아는것 같지도 않았다.그래서 《늦었다》는둥 《일에 노랑지다》는둥 하면서 벼라별 욕을 다 퍼붓군하였다.
오늘도 녀성들은 옷은 군대들을 위하여 짓지 뭐 팔자랑이를 위하여 짓는가 하면서 일손을 다그치였다.
한참 눈이 아홉이 되여 일하는데 《남청숙이 누굽굽까?》 하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제꾸마. 무슨 일?》
《조선에서 소포가 왔습니다.》
《아니, 조선이라니?》
청숙이는 엉거주춤 일어나 작은 광주리만한 소포를 받아 들었다. 어디서 왔지? 황급히 주소를 보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도장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신의주라는 작은 도장이 박혀 있었다. 누구한테서 온거지? 뭐 조선인민군 제4사 18련대라니? 아, 남편 민관이 한테서 온 소포였다!
청숙이는 부랴부랴 소포들 뜯었다. 소포 속에는 아이옷이 두견지가 있고 웬 일인지 동으로 만든 곰방숟가락 하나, 그리구 무슨 증명서가 있었다. 그걸 읽어보니 인민해방군 군대 증명서였다. 어떻게 되여 인민해방군인데 조선에 갔담? 정말 알고도 모를 일이였다.
이때 팔자랑이가 들이 닥치더니 소리쳤다.
《아니, 군대 보낼 옷인데… 남아주머닌 옷은 안 짓고 뭘하는거야?》하고 반말까지 해대는것이였다.
《뭘 하겠어요. 남편한테서 편지가 왔어요》
《뭐? 남편? 민관이 한테서?》
팔자랑이는 머리를 썩썩 긁으며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가 버리였다.
청숙이는 코방구를 힝하니 뀌고 말았다. 자기 선생님을 보고서도 제 동무처럼 뭐 민관이라고 하는 막된 인간이라구! 청숙이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아기 옷섶을 해치였다. 편지 두통이 있었다. 한통은 시아버지, 로할머니께 보내는 편지였고 다른 한통은 청숙에게 오는 편지였다.
청숙이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 피봉을 따고 항항거리며 편지를 읽기 시작하였다. 옆에서 일하던 아낙네들은 한참 눈여겨 보더니 모두다 제 할 일을 하면서 머리를 가로 젓기만 하였다.
청숙의 눈에는 사랑하는 남편의 글자가 천천히 흘러 지나갔다.
-여보, 청숙이 오래간만이오. 난 당신이 보고 싶소. 아니 산옥이도 보고싶소. 지금이라도 막 달려가서 부둥켜 안고 싶소. 내 마음 알만 하지?
한가지 급한 소식을 알려 주겠소. 지금 편지 쓰는 곳은 중국이 아니라 조선 신의주라는 곳이오. 우리는 해남도까지 쳐나갔다가 하남성 정주라는 곳에 왔더랬소 부대에서 우리 보고 《우리 조선족들은 고향으로 돌아간다.》고하였소.
우리는 너무 기뻐 전쟁도 끝났는데 인제 고향에 가게되는구나 생각하였소. 그리구 호주머니를 털어 가지고 상점에 가서 산옥의 옷 두견지와 산옥이게 줄 곰방숟가락 하나 샀소.
우리는 밤에 짐차를 타고 고향으로 떠났소. 이틀 밤 사흘 낮을 달려 도착한 곳이 어딘줄 아오? 조선의 신의주라는 곳이였소. 우리는 어제 4월 24일 신의주에 도착하였소.
나는 오늘 그 멋진 치머리를 빡빡 깎고 까까머리가 되였소. 히히 여보 한번 생각하여 보오. 그렇게 멋지던 이 민관이가 남북골로 변하였소. 멋있겠지? 그러나 난 청숙의 남편인것만은 변치 않았지 뭐...
우리는 신의주에 도착하자마자 조선인민군에 편입되였소. 이제 리승만 군대와 싸운다오. 그래서 나는 우편국에 나가서 나의 해방군 군대증명서랑 함께 집에 보내오
그런데 어쩌지? 당신에게는 보낼것이 없어서… 그러나 우리 산옥에게 보내는 선물을 잘 전해주오. 전하면서 아빠의 선물이라고 말하여 주오. 인제 말을 알아 듣겠지? 당신에게는 내가 인민해방군의 패장이라는 증명서만 보내면 되지뭐...
여보, 우린 이제 얼마 안지나 또 힘든 전쟁을 하게 되오. 안심하오, 나는 몸이 튼튼하고 힘도 세여 원쑤놈들은 나만 보면 벌벌 떤다우.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을 꼭 기억하오. 이 민관이는 전투영웅이 되여 당신의 품으로 돌아갈거요. 믿어주오!
청숙이, 다시 부르고 싶은 우리 청숙이! 내가 군대 오기 전날밤처럼 우리 다시 한번 서로 뽀뽀.
1950년 4월 25일
청숙이가 편지를 다 읽고 나니 앞가슴은 눈물로 얼룩지였다. 남편의 마디마디 말소리가 청숙의 눈물을 자아냈다. 중국전쟁에서 그같이 고생하고도 또 새로운 조선전쟁에로 나가는 남편에게 뭐라고 이야기해 주어야 안해로서 할 의무를 다 했다고 할수 있을가?
그날 저녁 청숙이는 산옥이한테 아빠가 사보낸 옷을 입혀 가지고 시아버지와 로할머니 앞에 내세웠다. 아직은 말도 잘 번지지 못하는 산옥이는 그래도 《아빠, 아빠》하면서 퐁퐁 뛰여 다니였다.
밤에 청숙이는 남편의 편지를 몇번이나 보고 보고 또보았는지 모른다. 그 웅굴은 목소리가 귀전에 그대로 우렁렁우렁 들리여 왔다.
산옥이한테 곰방숟가락까지 사보낸 남편의 그 뜨거운 마음에 청숙이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리였다. 저녁을 먹을 때 청숙이는 그 곰방숟가락을 산옥의 손에 쥐여 주었다. 산옥이는 《꼬꼬 술, 꼬꼬 술》하면서 자랑하지 않았던가? 술치끝에 동그란 술꼭지가 퍼그나 마음에 드는 모양이였다. 아버지가 사보낸 곰방숟가락이란는 건 아직은 몰라도 산옥이는 그렇게 좋아 하였던것이다.
청숙이는 지금 곰방숟가락을 꼭 쥐고 자는 산옥이를 꼬옥 안고 남편 민관이를 그리면서 꿈나라로 갔던것이다.
7.미운 아버지
청숙이는 산옥이를 데리고 조이밭으로 나갔다. 조이뿌리를 쳐서 땔나무로 하자고 청숙이는 민관이가 쓰던 꽉지를 들고 나갔다.
《엄마, 아빠는 누구야?》
《아빠가 아빠지 누구겠니?》
《그런데 어째 안 오나?》
《음. 그건 나쁜 놈들을 치느라구 전방에 나가서지.》
청숙이는 딸애한테 알아 듣게 말해 줄수가 없어서 무척이나 안타까왔다.
《남의 집 아빠들은 다 제 집에 있는데뭐.》
산옥이는 도무지 리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였다. 청숙이도 리해가 되지 않는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시동생도 군대에 나가 사망되였는데 형도 군대에 나가는건 무엇때문일가? 남편이 집에 있으면 큰일 작은일 다 해주련만…이렇게 생각하다가는 이게 무슨 생각이야, 산옥이보다 못한 생각을 하면서 하고는 일을 시작하였다.
청숙이는 꽉지를 땅에 깊숙히 박고 쭈욱 앞으로 끌고나갔다. 그러면 조이 뿌리들이 한쪽으로 쓰러지며 뽑혀서 번저졌다. 청숙이는 허리를 굽히고 조이뿌리들을 툭툭 털어서 한쪽에 무져 놓았다. 수북히 쌓이는 조이뿌리를 보니 만족스러웠다. 녀자의 몸으로 이렇게 땔나무를 하는건 마을 치고 청숙이밖에 없었던것이다.
산옥이가 다가와서 엄마의 이마에 돋은 땀방울을 닦아주면서 엄마를 들여다 보았다. 어째서인지 아빠가 미워났다. 아빠가 없기땜에 엄마가 이런 고생을 한다고 나어린 산옥이는 생각하였다. 아빠 얼굴도 보지 못했지만 세상 어디 있을 아빠가 어쩐지 미워만 났다. 엄마 돈지갑에 작은 사람 사진이 있었는데 그게 아빠란다. 산옥이는 아버지를 그 정도밖에 모른다.
그러나 지난번 아빠한테서 편지 오고 옷이 온 다음부터 산옥이는 날마다 편지를 쓴다고 야단이다. 아빠를 한번이라도 보고 싶은 산옥이였다. 그런데 눈앞에 나타나지도 않는 아빠가 영 괘씸하기도 하였다.
산옥이는 엄마한테 업히여 야학을 다닌적이 있다. 등불을 켜놓고 어둑스레한 방에 모여 앉아 마을 엄마들이 글을 배웠다. 산옥이는 엄마 등에 업혀서도 남들이 《가갸거겨》하면 자기도 따라 《가갸거겨》하고 남들이 《아야어여》하면 자기도 따라 《아야어여》하였다.
엄마가 연필끝에 침을 발라 가지고 공책에 글을 쓰면 산옥이는 엄마 잔등에 손가락에 침을 묻혀 가지고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써갔다. 그래서 다섯살 나는 산옥이는 우리 말과 우리 글을 어물쩍하게 알게 되였던것이다.
어제도 아빠 한테 편지 쓴다면서 썼는데 《아버지》를 《아부지》로 썼고 《보고싶다》도 《보고십다》로 썼다. 그러나청숙이는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다. 나어린 산옥이가 글을 익혀 가지고 아빠에게 편지 쓴다니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엄마, 내 오늘 정말 아빠한테 편지 쓴다.》
《그래 어디 써 보거라.》
청숙이는 집에서 가지고 온 베보자기에 조이뿌리를 한임 싸이고 엉거주춤 일어났다. 눈치 빠른 산옥이는 조이뿌리 네냇개 들고 엄마 앞에서 타박타박 걸어갔다.
집에 이른 청숙이는 뜨락에 조이뿌리를 널어놓고 집으로 들어갔다. 산옥이는 어느새 밥상을 내려놓고 연필을 쥐고 편지를 쓰고 있었다. 얼마나 대견한 모습인가! 청숙이는 옆에 쭈그리고 앉아 지금 산옥이가 쓰는 편지를 굽어 보았다.
《아부지, 아부지는 누굼까? 편지 바닸슴다. 옷두 입었슴다. 곰방숟기락두 가졌음다. 아부지 보구 십슴다. 엄마도 아부지 보고 시퍼 움다. 엄마는 아부지 때메 일을 죽게 함다. 오늘도 조이뿌리를 캤습니다. 따믈 영 많이 흘리였슴다. 아빠 때메 엄마 따믈 흘림니다. 아부지 한번 왔다. 가문 안됨다? 와서 엄마를 도와 주면 안됨다? 아버지 영 밉슴다. 그치만 또 보구 십슴다. 난 이전 다섯살임다. 아부지 …》
산옥이는 이렇게 쓰면서 눈물을 똑똑 떨구는것이였다.청숙이도 산옥이가 쓰는 글을 보고 눈물을 흘리였다.
이튿날 청숙이는 산옥이가 쓴 편지를 한 글자도 고치지 않고 편지봉투에 넣어 가지고 거리 우체국에 가서 민관이 한테 부쳐보내였다.
8.소학생이 된 산옥이
1953년 7월 27일 조선 전정협정이 체결되였다. 군대갔던 산 사람들은 하나둘 돌아왔다. 그러나 민관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청숙이는 이제나 저제나 민관이가 집문을 떼고 《여보!》하면서 들어오기만을 기다리였다. 그러나 올 사람은 오지 않고 소식조차 없었다.
청숙이는 시아버지와 함께 그 힘든 농사일에 바삐 돌아쳤다. 오늘도 조이밭김을 매느라고 땀동이를 흘리였다.청숙이는 속은 재가 되지만 그 내
색은 꼬물도 내지 않고 집안에서 언제나 웃으면서 할머니를 안위하여 드리였다.
《며늘이, 오늘은 어디서 소식이 없던가?》
《예. 할머니. 애 아버지가 말했어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구요…》
《그래. 그게 옛말이문 듣기나 좋겠다…》
저녁에 산옥이는 령수들 사진을 머리맡에 놓고 혼곤히 잠들었다. 이 사진은 수산아저씨가 사다준것이다 수산아저씨는 토비숙청에 니가 사망된 산옥이네 삼촌과 딱친구였다.
그래서 장거리에 나갔다 올적마다 사탕이랑 과자랑 사다 산옥이한테 주었다. 어제는 수산아저씨가 세계령수들의 채색사진 한질을 사다 주었던것이다. 낮에 산옥이는 사진들을 꺼내놓고 물었다.
《이 사람은 누구?》
《칼.맑스야》
《오, 칼.맑스!》
《이 사진은?》
《모택동》
《아, 모택동!》
산옥이는 령수들의 이름을 익히고 너무 좋아 손벽을 짱짱 쳤다. 산옥이는 어느새 7살이 되였다. 남들은 여덟살이 되여 학교에 붙는다고 면접시험 보려 간단다. 산옥이는 자기도 가서 보겠다고 성화였다. 일곱살이여서 안된다고 하여도 산옥이는 그저 가서 구경하겠다면서 기어이 따라 나섰다.
면접시험은 어렵지 않았다. 아이들 앞에 크레용을 내놓고 가리키며 이건 무슨 색인가 물었다. 어떤 애들은 몰라 대답 못하였다. 옆에서 구경하던 산옥이는 입을 꼭 막고 속으로 《연두색》하고 종알거리였다. 엄마가 마선질을 할 때 연두색천으로 옷을 짓던것이 얼른 떠올랐던것이다.
그리고 령수들 초상을 내놓고 누군가 맞추는것이였다.수염이 더부룩한 사람을 짚으면서 누군가 물으니 아이들은 도리머리를 하였다. 옆에서 구경하던 산옥이가 얼른 《칼 맑스!》하고 대답하였다.
이렇게 되다 보니 산옥이는 면접시험을 보지도 않고 학교에 입학하였던것이다. 그래서 산옥이는 라는 칭찬을 받으며 소학교에 입학하였다.
저녁에 청숙이는 저녁상을 차려놓고 시아버지와 로할머니를 밥상 옆에 모시였다. 그리고 고방에 들어가더니 산옥에게 새옷을 입혀 가지고 나왔다. 새하얀 저고리에 깜장치마를 입은 산옥이! 와,고슬고슬한 고수머리에 복실복실한 얼굴에 아글아글한 초롱눈에 상큼한 키에 정말 예쁜 서양아이 같았다.
《오, 어디 보자, 우리 손녀!》
시아버지가 산옥이를 안아 주었다. 산옥이는 너무 좋아 할아버지의 목을 끌어 안고 할아버지 한테 뽀뽀를 하였다. 로할머니는 산옥이 엉덩이를 다독여주며 어쩐지 눈물을 훔치였다.
《산옥인 인제 소학생이 되였어. 산옥아, 넌 아버지가 선생님으로 계셨던 흥안소학교 학생이 되였어.》
《아니, 울아버지가 선생님이였어?》
《그래. 산옥인 선생님의 딸이야. 그러니 공부 잘 해야 한다. 》
청숙이는 들고 나온 푸른 보자기를 풀어 해쳤다. 거기서 아버지께서 쓰시던 책들이 나왔다. 청숙이는 마분지에 찍은 책을 손에 들었다.
《산옥아, 너 아빠는 학교에서 이 을 배워주셨어.》
《천자문?》
《그래 》
《야-별란거구나》
《산옥아, 너 오늘부터 하루에 두자씩 천자문 배우기로 하겠다.》
《누가 배워줘?》
《내가, 엄마가 배워 줄거야.》
《야 좋아! 그래, 배우겠어!》
개학날 산옥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학교로 떠났다. 깡충깡충 뜀질하는 산옥이를 굽어보는 청숙이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학교로 가는 이런 산옥이를 남편이 보았으면 얼마나 즐거워 하랴 생각하니 더더욱 코허리가 시큼해났다.
9.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산옥이는 공부를 잘하였다. 첫학기에 혼자서 최우등하고 2학년에 올라 와서는 반장이 되고 소선대에 입대하여 중대장으로 되였다. 아빠도 조선군대에 들어가 부중대장으로 되였다더니 산옥이는 부중대장이 아니라 정중대장이 되지 않았는가! 정말 그 아버지에 그 딸이 옳았다.
3학년에 올라 오니 무슨 활동이 많았다. 산옥이는 회의 사회도 여러번 하여 이젠 제법 잘 할수가 있었다. 8.1건군절을 맞이하여 학교에서 전투영웅보고를 청취한다고 하였다. 그때 말을 잘하는 산옥이더러 대회를 사회하라고하였다.
대회는 《제대군인 리수길 전투보고》였다. 리수길? 민병패 패장이 아닌가? 언제나 팔을 걷어 올리고 자랑하며 다니던 팔자랑? 산옥이는 머리를 갸웃거리며 이상히 여기였다. 개뼈대같이 약한 사람이 어떻게 전투하였을가? 《존경하는 선생님들,친애하는 소선대원동무들. 오늘 우리는 리수길아저씨를 모시고 전투이야기를 듣겠습니다. 미제를 반대하고 조선을 원조하고 조국을 지키는 싸움에서 피흘리며 싸우신 리수길 아저씨에게 박수를 보냅시다.》
산옥의 말이 떨어지자 북소리 요란한 가운데 소선대원이 리수길 아저씨의 앞가슴에 붉은 꽃송이를 달아 주었다.
리수길아저씨는 연단에 올라가 꾸뻑 인사를 하고는 에헴 하고 말을 시작하였다.
《존경하는 선생님들, 사랑하는 소선대원동무들. 나는 흥안촌 민병패 패장 리수길입니다. 나는 조선전쟁에 나가서 싸우다가 영광스럽게 부상당하고 돌아온 제대군인입니다. 모두 저를 이로 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어깨쭉지 바로 아래를 부상당한 사람입니다. 나는 이것으로 하여 전투에서 공을 세운 사람입니다. 보십시오》
리수길 아저씨는 팔을 걷어 올리고 인두로 지져 놓은것 같이 반들반들한 상처자국을 자랑하는것이였다. 그리고 그런 상처를 입던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늘어놓았다.
리수길아저씨는 련부 기수였단다. 몸은 비록 약하여도 달리기를 잘하여 기수로 되였단다. 조선전쟁에는 흑인들도 참가하였는데 곰같은 그놈들은 날창이 앞가슴에 박혀도 뒤잔등을 만져보고 총창이 나오지 않으면 계속 용을 쓴다는것이였다. 그러자 학생들이 하하하하 웃으면서 손벽을 쳐주었다. 연설하는 리수길 아저씨는 더더욱 흥이 나서 팔을 내저으며 말을 계속하였다.
어느 전투 때란다. 고지를 점령하는 판가리 싸움에서 최후승리를 위하여 리수길 아저씨는 붉은 기발을 추켜들고 고지를 향하여 돌진하였단다. 거의 고지에 올라갈 때 적탄이 날아오더니 어깨쭉지 아래살을 뭉청 떼가지고 날아났다는것이다. 여기까지 말하니 청중석에서는 박수소리가 더더욱 우렁차게 울리였다. 리수길 아저씨는 두손을 내 흔들며 그만하라고 그만 박수 치라고 만류하였다.
전투보고가 끝난 다음 산옥이는 더더욱 의심이 갔다.이야기 한 사실이 사실인것 같지 않았다. 총탄을 맞고 기발을 그냥 추켜들고 고지에 그냥 달아 올라 갔다고? 쓰러는 안지고?
그래서 반급 토론회의 때 산옥이는 당돌하게 물었다.그때 리수길 아저씨는 마침 산옥이네 학급에 들어 왔던것이다.
《아저씨, 총탄을 맞고 쓰러 안 지였나요?》
《엉? 쓰러는 졌지, 그런데 나는 이를 악물고 일어났지! 승리를 위하여 계속 고지를 향하여 달렸지! 이게 우리 군대야!》
그러자 반급동무들은 또 박수갈채를 보내였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별란 일이 벌어졌다. 학교에서는 산옥이가 중대장에서 떨어지고 마을에서는 쉬쉬한 소문이돌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산옥이랑 청숙이랑 다가가면 사람들은 먼 산을 쳐다보며 슬슬 피해버리는것이였다.
어느날 저녁 산옥이는 엄마와 물었다.
《엄마, 마을에 이상한 소문이 돈다고 해요.》
《누가 그러던?》
《이웃집 철수가 그래》
《무슨 소문이기에?》
《몰라, 물어 보면 고개를 가로 저어》
며칠 지나 산옥이는 철수의 팔을 붙잡고 교실 뒤로 끌고 갔다. 철수는 키 작고 약한 아이였다. 평소에 산옥의 말이라면 뭐나 다 듣는 그런 아이였다.
《철수,말해? 무슨 소문이니?》
《몰…몰라》
《못 말하겐?》
산옥이는 대번에 철수의 목덜미를 거머쥐였다. 우둑지게 생긴 산옥의 앞에서 철수는 기가 죽어 들어갔다.
《너 산옥아! 그럼 다른 사람과 말해선 안된다. 》
《그럴게.》
《마을사람들이 다 그래. 너 아버지가 포로 되여 대만으로 끌려 갔다구…》
《뭐라구?》
산옥이는 철수의 멱살을 활 놓고 두눈을 치떴다. 물론 철수의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철수마저 미워났다. 산옥이는 철수의 귀썀을 한대 갈겨놓고 《엄마-》부르며 집으로 뛰여갔다.
《엄마, 어..마..》
숨이 찬 산옥이는 엄마 치마자락을 잡아 끌고 고방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 로할머니가 두눈을 크게 뜨고 멍하니 바라보니 정주에서 말할수 없다는것도 산옥이는 이젠 알고있었다.
《엄마, 마을사람들이 그런대.》
《뭐라구?》
《우리 아버지 포로 되여…》
《뭐? 포로가?》
《대만에 끌려 갔대요.》
《대만에?》 여기까지 말한 산옥이는 엄마를 부등켜안고 우와 소리내여 울음을 터뜨렸다. 그 소리를 들은 할아버지 로할머니가 방문을 떼고 들어섰다.
《웬 일이냐?》
산옥이는 엄마의 치마자락속에 얼른 숨어버리였다. 엄마는 와들와들 떨며 어쩔바를 몰랐다.
《아버님. 저…저 아무것두 아니꾸마.》
그리고는 두팔을 걷어 올리고 정주칸으로 달려 나갔다. 알고도 모를 일이였다. 청숙이로 놓고 말하면 이 사실을 절대 로할머니와 시아버지에게 알릴수가 없었다. 알리면 절대 안되였다.
그릇을 가시며 그릇을 드비다리며 청숙이는 갈피를 잡을수가 없었다. 민관이가 포로 되였다구? 그건 절대 아니야! 죽으면 죽었지 포로 될 사람은 절대 아니여! 뭐 대만으로 끌려 갔다구? 거기 어디라구? 아니야 대만으로 끌려 가기 전에 자기절로 목숨을 끊을 사람이야!
그날 저녁 청숙이는 산옥이를 옆에 끼고 자리에 누웠다.
《산옥아, 네네 아버지는 절대 포로 될 그런 사람이 아니야! 얼마나 우둑지고 힘이 장산데? 거 팔자랑같은 그런 개뼈대가 아니야!》
《응, 그건 그래!》
《그리구 너 대나무를 알지?》 《대나무?》 《그래 대나무란 참대나무를 말해. 참대나무는 끊어지면 끊어졌지 절대 휘여드는 법이 없는거야.》
《응. 그래 우리 아빠 참대나무야》
나어린 산옥이에겐 아빠가 포로되지 않았고 또 포로되지 않았으니 대만에 절대 끌려가지 않았을것이라고 생각이 굳어지였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니 아빠가 웬 일인지 미워났다. 아빠가 돌아오지 않았기에 엄마는 지금 울고있지 않는가? 할아버지 로할머니가 걱정하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난 학교에서 중대장에서 떨어지기까지 않았는가!
이게 모두 아버지 때문이 아닌가? 나어린 가슴에 이런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산옥이는 속으로 아버지를 욕하였다.나쁘다고 욕하였다. 아니, 아바지가 밉다고까지 하였다.
10.고마운 박수산 아저씨
청숙이는 혼자서 남 모르는 가슴을 태웠다. 시아버지,로할머니에게는 몰리여야 하고 귀여운 산옥에게는 눈물을 보여서는 아니 되였다.
그러나 밤이면 청숙이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였다. 결혼하여 1년밖에 함께 있은적 없는 민관이가 밤이면 밤마다 찾아 와서 아무 말없이 자기를 뚫어져라 굽어보기만 하였다.
소스라쳐 깨여나면 그림자조차 몽땅 걷어 가지고 가버리는 남편이였다. 그때면 속으로 《여보- 당신은 어디 계시나요? 살아 있으면 병신이 되여도 관찮으니 어서 돌아오시고… 아아아 사망되였으면… 정말 사망되였으면 렬사증이라도 어서 보내 주세요.》하고 울부짖었다.
그러면서도 대만에 끌려 갔으리라고는 꼬물도 생각하지 않았다. 대만이란 말만 나와도 청숙이는 이를 악물고 《아니, 아니야! 산옥의 아버진 절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야!》하고 자기절로 부정하고 자기절로 긍정하고 자기절로 결론을 내리였다.
그러던 어느날 수산아저씨가 《계십니까?》하고 찾아왔다. 올적마다 시아버지를 큰아버지라고 불렀다.정관이가 렬사로 된 다음부터 수산아저씨는 정말 이집 아들노릇을 하였다
《큰아버지, 제가 조선 평양으로 떠나게 되였으꾸마.》
《아니, 언제 가기에?》
시아버지는 다가 앉으며 다우쳐 물었다.
《평양에 우리 작은 아버지가 계심다 저두 조선에 나갈가구 그럼다…그래 수속하자구,,,나감다. 큰아버지네 무슨 부탁이 없나 해서 …..》
시아버지는 담배 한모금 뻑 빨더니만 무거운 입을 열었다.
《우리집 큰사람이 조선전쟁에 나갔는데 지금두 살았는지 죽었는지 종무소식이니 어디 가 알아볼데가 있겠소만 조선에 나가면 알아 볼수가 없겠수?》
《글쎄 말임다.》
《전쟁이 끝난지 인제 4년이나 되는데 그냥 돌아오지 않으니 며느리 보기 참 딱하우.》
청숙이도 한걸음 나앉으며 안타까이 물었다.
《삼춘 어떻게 나두 함께 나가면 안되겠습둥?》
《글쎄 친척이면 몰라두 수속 밟기가…》
모두다 안타까이 무슨 뾰죽한 수가 없겠나 하고 수산 삼춘만 바라보았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그것만 알아도 된다는 그런 눈치들이였다. 사람들 말처럼 죽었으면 시원히 렬사증이라두 기다리겠는데 살아서 돌아 못 오는걸 보면 소문과 같이 대만으로 간건 아닐런지? 아니 그럴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조선에 가서 알아 봤으면 하는 그런 기대로 온집 안이 끓어번지였다.
어른들이 주고받는 말귀를 약간이라도 알아차린 산옥이가 냉큼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삼춘, 내가 가면 안 되나요?》
《아니, 네가?》
《예. 제가요!》
산옥이는 가슴 펴고 담차게 말하였다.
《삼촌, 날 조카라고 하고 대려다 주세요. 내가 가서 우리 아버지를 데려 올거예요》
《네가?》
《예. 아버지가ㅡ 살았으면 산 아버지를 모셔오고 아버지가 사망되였으면 사망된 아버지를 모셔올거얘요. 제가 갈거얘요!》
온 집안이 엉엉 울음소리로 차넘쳤다. 나어린 산옥의 옹골찬 목소리에 사람들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다.
《우리 산옥이는 담찬 아이니까 아버지를 꼭 데려 올거요.》
《우리 산옥이가 다 컸구나 네가 가서 아버지를 데려 오너라.》
사람마다 혀를 끌끌 차면서 네 한마디 내 한마디 두둔하여 나섰다. 그때 수산아저씨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큰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주머니…》
모두들 무슨 말이 나오나 수산아저씨의 입만 쳐다보았다.
《여러분. 제가… 제가 산옥이를 데리구 가겠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손벽을 짱짱 치며 와! 환성을 올리였다.《제가 산옥이를 대리고 평양에 가겠습니다. 가서 인민군 총사령부를 찾아 가겠습니다. 사령부에 가서 우리 민관형님의 정황을 알아 오겠습니다. 산옥아!》
수산아저씨는 울면서 산옥이를 와락 끌어안고 뜨거운눈물을 흘리였다. 사람들은 모두다. 박수를 치고 치고 또치였다.
11.아버지를 찾아 나선 산옥이
남양에서 평양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기차는 치익치익 푸욱푸욱 하면서 굼벵이처람 언덕을 톺아 올라갔다. 이렇게 가면 평양으로 언제 갈가? 지금 산옥이는 차창밖을 내다보며 한숨을 호유 내쉬고있다.
박수산은 그런 산옥이를 유심이 훑어보았다. 하얀 저고리에 깜장치마를 입은 산옥이는 나이에 비하여 퍼그나 셈이든 아이였다. 고수머리에 초롱눈을 가진 산옥이는 다른 여느 애들보다도 더 총명한 아이였다. 아홉살 이 나이에 벌써 《천자문》까지 다 통달한 아이다.
《산옥아, 한가지 물어 볼가?》
《무슨?》
《너 이번에 어째 평양 가지?》
《이히, 아저씨두 난 우리 아버지 찾으러 가지 뭐!》
수산이는 머리를 끄덕이며 산옥의 손을 한번 굳게 잡아주었다.
산옥이는 지금 엄마가 만들어준 멜가방을 어깨에 메고있다. 그 가방 안에는 바지하고 적삼, 그리고 수산아저씨가 만들어준 카드 3개가 있다. 첫번째 카드는 《아버지 방민관의 략력》이고 두번째 카드는 《아버지를 찾아 주세요》이고 세번째 카드는 《박수산과 련락방법》등이다.
지금 산옥이는 첫번째 카드를 손에 들고 중얼중얼 그 내용을 암기하고 있었다.
그렇게 느린 기차도 하루반 달리니 평양에 도착하였다. 한창 복구건설 시기여서 곳곳에 기중기가 건축자재들을 집어 가지고 하늘높이 빙빙 돌고있고 거리에는 무너진 집들이 채 정리되지 않아 어수선하였다. 수산아저씨는 평양역에서 내린 다음 산옥의 손을 잡고 걸었다.
《산옥아, 이제 총사령부에 도착하면 잘 말해야 한다. 네가 잘하면 일이 잘 될수 있다. 네가 잘못 하면 일은 그르칠수도 있다.》
《아저씨 어떡하문 잘해요?》
《응… 저 그저 아버지를 찾겠다는 그 마음만 굳게 가지거라. 그럼 방법은 생각 날거야. 그리구 울 땐 울고 떼질 쓸 땐 떼질 쓰고…》
《알았어요. 난 아빠를 꼭 찾을거예요.》
《그럼 두고 보겠다.》
오후 3시경에 산옥이네는 어떤 높은 철창을 두른 높은 집앞에 이르렀다. 보초막에는 총창을 꼬나든 군대아저씨가 서있었다.
《조선인민군총사령부》라는 간판이 산옥의 눈에 안겨왔다.
수산 아저씨가 보초병한테 가까이 다가가 머리숙여 인사하고 무슨 말을 하였다. 보초병은 웬 일인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수산아저씨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이런 말을 하는것이였다.
《확인서(소개신)를 가지고 왔습니까?》
《확인서라니요?》
첫발부터 걸려 들었다. 확인서란 생각지도 못한 것이였다. 확인서? 도대체 무슨 확이서란 말인가? 수산 아저씨는 산옥의 손을 잡고 보초막에서 좀 떨어진 안침진 곳으로 갔다.
《산옥아, 이거 안되겠다. 거 카드를 꺼내라.》
산옥이는 카드 석장을 꺼내 수산아저씨에게 주었다.
《이렇게 하자. 이제부터 네가 힘을 써야겠다. 어른들이 삐치면 일이 성사될것 같지 않아 그런다. 너 보초병하고 이 두번째 카드를 보이며 아버지 찾으러 왔다고 그것두 중국에서 왔다구 그리고 넌 아홉살이라고 하면서 아버지를 찾아 달라고 울어야 해.》
《예.》
《그리구 높은 사람이 너를 만나면 첫번째카드를 보이고 이 세번째 카드는 나를 찾는 방법이다. 내가 없어도 넌 안심하여라 내가 평양에 그냥 있겠으니 아무 걱정 말구. 알았지? 인민군대는 나쁜 군대가 아니다. 꼭 너를 도와 줄거야 울어라. 그리구 떼질 쓰거라. 아빠를 찾자면 울어야 해.》
그리고 수산아저씨는 산옥이를 남겨놓고 어디론가 가버리였다. 갈 때 수산 아저씨는 여러번 뒤돌아 보면서 손을 높이 높이 흔들어 보였다.
12.조선 군관을 만난 산옥이
산옥이는 그 걸음으로 보초막에 다가 갔다. 보초병은 손을 내저으며 다가 오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산옥이는 두번째 카드를 내들고 오지 말라는 보초병 한테로 다가 들었다.
《아저씨 우리 아버지 찾아 주세요.》
《너 아버지란?》
《이걸 보면 알아요.》
그래도 보초병 아저씨는 안된다면서 산옥이를 밀어 내였다. 산옥이는 그 자리에 퍼더버리고 앉아 울기 시작하였다.
《우리 아버진 군대였어요. 난 아홉살이예요. 난 중국에서 왔어요. 아버지 찾으러 왔어요.》
산옥이는 울면서 보초병 아저씨만 쳐다 보았다. 보초병도 사람이니깐 이렇게 말하면 좀 돌아서려니 하였는데 보초병은 먼 산만 바라보며 산옥이를 보는체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번개 치고 우뢰가 꽈르릉 울더니 비가 좌르르 내리기 시작하였다. 산옥이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보초막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보초병도 사람인 이상 비를 피하려고 보초막에 뛰여든 산옥이를 내쫓지는 못하였다.
《아저씨, 높은 군관을 만나게 하면 안되나요?》
《애두 찔긴 아이구나. 어디 보자 아까 보라던 그 카드!》
산옥이는 얼른 가방 안에서 두번째 카드를 꺼내여 보초병 아저씨에게 드리였다.
아버지를 찾아 주세요.
우리 아버지는 방민관이라고 합니다. 원래 중국인민 해방군 패장이였댔는데 1950년 4월에 항미원조 전쟁에 나와서 조선인민군 539군 제4사 18련대에 편입된 부중대장이였습니다.
그런데 전쟁은 끝났는데두 지금까지 소식이 없어서 아홉살 짜리 나어린 제가 아버지 찾으로 조선에 나왔습니다. 고마운 조선 인민군 총사령부에서 저를 도와 우리 아버지를 찾아 주십시오.
중국길림성 연길시 흥안소학교
3학년 1반 방산옥
1955년 8월 2일
보초병은 다시 한번 더 읽어보며 산옥이를 굽어보았다. 그러다가 산옥이 한테 다가서며 산옥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산옥이는 더더욱 슬피 울면서 보초병아저씨의 팔을 꼭 잡고 애원하였다.
《아저씨 우리 아버지를 찾아 주세요.》
《그래, 네가 아홉살이라지?》
《예. 울엄마 매일 아버지를 기다리며 울고있어요 아저씨.》
보초병아저씨는 군용전화 돌리개를 드르릉드르릉 돌리였다. 그리고 산옥이로서는 알아 듣지 못할 말들을 한참하더니 산옥이더러 철창문 안으로 들어 가라는것이였다.
저쪽에서 군관이 마중 나왔다. 금줄 두줄에 별 3개를 단 높은 군관이 나왔다.
《오, 네가 방산옥이야?》
《예》
《중국에서 왔다지?》
《예》
《아홉살이라지?》
《예》
산옥이는 그저 예예 대답하다가 와 울음을 터뜨렸다. 이제 아버지를 찾게 되였구나 생각하니 기뻐서 울었다. 엉엉 울었다.
《얘, 울긴 왜 울어?》
군관아쩌씨는 자기의 손수건으로 산옥의 눈물을 살뜰히 닦아주고 큰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사무실은 학교 교실만큼 널렀다. 사무책상들이 빙 둘러있는데 책상마다에는 어깨에 별을 단 군관들이 앉아 사무를 보고 있었다.
산옥이를 데리고 들어온 그 군관이 산옥이를 데리고 다른 작은 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물도 따라 주고 과자도 내놓고 사탕도 먹으라고 주었다. 산옥이는 목이 꺽 메였다. 눈물부터 났다.
《얘야 너 혼자 왔니?》
《아니, 박수산 외삼촌과 함께 왔어요.》
《박수산이라니?》
《예 이건 비밀임다. 》
《무슨 비밀?》
《중국서 조선 나오자문 바쁨다. 그래서 조선에 친척 있는 박수산아저씨를 저… 정말… 비밀임다. 외삼촌이라 하구 나왔거든요》
《허허허.. 거 비밀이 옳긴 옳구나. 건데 그 사람 어디 갔나?》
산옥이는 세번째 카드를 꺼내여 군관아저씨한테 넘겨주었다.
박수산과 련계방법
방산옥학생의 외삼촌 박수산은 평양사범대학 어문학부 조선어강좌 박선국교수의 조카입니다.
앞으로 방산옥이로 하여 련계할 일이 있으면 박선국교수와 련계하시기 바랍니다.
중국길림성 연길시 흥안향
박수산
1955년 8월 2일
《허허허 심통한 거짓말이구먼.》
《아아 아님다. 정말임다.》
군관은 산옥이를 한참 물끄러미 굽어보더니 입을 열였다.
《이제 부터 시험쳐 볼가?》
《시험? 무슨 시험?》 산옥이는 흠칫 놀랐다. 군관 아저씨는 수첩을 펴놓고 만년필을 꺼내 들었다.
《너 아버지의 이름은?》
《방민관임다.》
《생년월일은?》
《1924년 12월 9일임다.》
《어느때 참군했나?》
《1947년 5월 20일》
《엉? 다 아네》
《그럼 어느 해 조선전쟁에 나오구?》
《1950년 4월!》
《조선인민군 어느부대인것두 알아?》
《예, 조선인민군 539군 제4사 18련대.》
《아아아…정말 대단하구나. 너 아홉살 맞나?》
《예, 1946년 2월 2일 생이니까 아홉살 아닌가요?》
《하하하하 너 시험에서 만점을 따냈구나. 하하하하 너 어떻게 이 모든걸 다 아니?》
산옥이는 가방안에서 첫번째 카드를 꺼내여 군관아저씨에게 주었다.
《이건 수산외삼촌이 나한테 만들어 준거예요. 평양 오면서 기차 칸에서 다 외웠어요.》
어찌된 영문인지 군관아저씨가 발딱 일어났다. 그리고 산옥이를 뎅강 들어 머리우에 높이 쳐들어 올리였다. 《장하구나! 너 산옥이랬지. 너 어버지를 꼭 찾아 줄게! 찾아 주구 말구!》
13.아버지의 행방을 알아낸 산옥이
산옥이가 눈을 떠보니 날은 벌써 희붐히 밝았다. 어제밤에 군관아저씨가 군용모포 두장이나 가져다가 한 장은 깔개로 펴고 다른 한장은 덮개로 덮어주었다. 그리고 밤 잘 자고 좋은 소식을 기다리라고 하였다.
오늘은 어떤 소식이 있을가? 그런데 아침을 먹고 한참 있는데 군관아저씨가 허허허 웃으면서 방에 들어섰다.
《우리 산옥이 잘 잤나?》
《군관아저씨 무슨 소식?》
산옥이는 대답 대신 물음부터 제기하였다. 아저씨는 어둑꺼둑하면서 두손을 마주 비비면서 입을 열지 않았다.
《아저씨!》
《이거 어쩌지?》
《예?》
《너 아버진 중국에서 참군하였기에...》
《그래서요?》
《우리 인민군 사령부에는 너 아버지 당안이 없구나.》
《뭐라구요?》
산옥이 눈앞은 새까맣게 흐려졌다. 그렇다면 이제 어쩌란 말인가?
《너 중국...》
《아… 난 안가요. 난 중국 안가요. 아저씬 찾아준다 하구선 응응 거짓말만 하구...》
《그런게 아니라...》
《그래두 난 안가요. 아저씨 우리 아버지 찾아줄 때까지 여기 있을래요.》
《이 애를 좀 보지. 그런게 아니라 너 중국 대사관에 가서 너 아버지 행방을 알아 보라는거야. 거기두 없으면 너 날 다시 찾아 오너라...》
《예?》
산옥이는 눈물을 닦고 군관아저씨를 바라보았다. 그런것두 모르고 떼질 쓴 자기가 부끄러웠다.
《그런걸 난 또...》
군관아저씨는 다른 군관아저씨를 파견하여 산옥이를 찦차로 중국대사관에 안내하였다. 거기서도 인민군 총사령부에서 하던대로 《시험》을 쳤다. 물론 산옥이는 무사통과되였다. 그 다음 산옥이를 좀 기다리라면서 과자랑 사탕이라 내놓는것이였다.
2시간쯤 지나서 어떤 군관아저씨가 당안봉투를 들고 들어왔다.
《너 아버지 행방이 나졌어.》
《행방이란 뭐얘요?》
《그게, 저어…어떻게 말하면 좋지.… 저, …그건 그렇구…. 너 아버지는 원산전투에서 다리를 부상 당하고 회령군대 병원에서 치료하였구나. 한달가량 치료했다는 내용이야!》
《그럼 우리 아버지 살았다는 말임까?》
《그래 이때 까지는 살아 있었다는 말이야.》
《와! 만세 우리 아버지 만세!》
산옥이는 퐁퐁 뛰면서 아버지가 살았다고 만세를 부르고 또 불렀다.
《얘야, 그런데 여기 자료에 너 아버지랑 함게 싸운 전우 6명의 이름이 적혀있구나. 그분들과 더 물어보면 더 상세히 알것 같구나.》
《어떻게 찾아요?》
산옥이는 군관아저씨를 팔을 잡아당기면서 안타까이 물었다.
《우리 군대 아저씨를 따라 보낼테니 너 회령에 가서 그 아버지의 전우를 찾아 보거라.》
그래서 산옥이는 군대아저씨와 함께 회령에 가서 아버지의 전우를 만나 보았다. 산옥이는 마치 아버지나 만난것처럼 그 두분에게 소선대 대례를 하고 그분들의 품속에 와락 안기였다. 그리고 《아버지!》하면서 울었다. 아버지를 만난 그런 기분이였다.
그러나 그들도 새로운 소식은 더는 없었다. 새롭다면 남들은 상처를 치료하고 모두 중국으로 들어 갔는데 산옥의 아버지는 견결히 전선으로 나가겠다고 하면서 아픈 다리를 끌고 최전방으로 나갔다는것이였다.
《아버지!》
산옥이는 손벽을 짱치고 너무 좋아 어쩔줄을 몰랐다. 남들은 다 중국으로 들어 가는데 우리 아버지는 조선에 그냥 남아 싸운 영웅! 영웅 우리 아버지! 산옥이는 그런 아버지가 돋보였다. 그러니 한때 엄마를 고생시킨다고 아버지를 밉게 본 자기가 후회되였다. 아버지! 아버지는 훌륭한 아버지, 내 우리 아버지를 꼭 찾아 모시고 중국으로 갈래!
산옥이가 찦차를 타고 중국대사관으로 오니 그새 박수산 아저씨도 대사관에 와 계시였다. 아저씨는 산옥의 손을 꼭 잡고 수고했다면서 연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대사관 군관아저씨가 산옥이를 끌어다가 자기 옆자리 에 앉히고 말하였다.
《산옥아, 너 이번 걸음에 성공하였어. 너의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시여. 조선전쟁에 나와서 서울 로량진 전투에서 국기훈장 3급을 탔구, 경상남도 밀양 락동강전투에서 전사영예훈장을 탔구, 조선인민군 제4사 사단 전투모범으로 되였어.》
《우리 아버지가요?》
《그래!》
산옥이는 두눈을 엄청 크게 뜨고 이게 정말인가 자기도 놀라 손벽을 짱 쳤다. 자꾸 치고싶었다.
《산옥아 그런데 너 아버지의 그후의 행방은 아직 모르겠구나. 그러나 너 아버지 사실을 알수가 있는 전우들을 알아냈으니 중국에 들어 가서두 계속 찾아야 한다. 우리두 여기서 노력할테니까. 응 알았지?》
군관아저씨는 나어린 산옥의 손을 굳게 잡고 악수하는것이였다.
이렇게 되어 산옥이는 아직까지는 아버지가 살아있는 것으로 알게 되였다. 그리고 아버지의 4명의 전우가 중국에 지금 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아, 아버지를 찾을수가 있구나! 산옥이는 일루의 희망을 안고 박수산 아씨와 함께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다시 돌아 왔던것이다.
14.전우들의 안타까운 마음
1956년 3월 어느 날이였다. 흥안향 정부사무실에 어떤 손님 둘이 찾아 와서 방민관이네 집을 찾았다. 사무실 접대원은 방민관은 조선전쟁에 나가서 이미 사망되였는지 지금 까지 소식이 없어서 그 집에서는 근심이 태산같다고 하였다.
그러던 접대원이 깜짝 놀라며 덧붙여 말하였다.
《옳습니다. 그집 아이가 평양에까지 나가서 알아 보았는데 지금두 소식을 모른답니다.》
《그 집이 어느 마을에 있습니까?》
《예, 저기 흥안 장거리 옆에 있는데 …그런데 손님들은 어떻게 되는 분이신지요?》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다가 그저 아는 사이라고 두리뭉실하게 말하고 사무실문을 나섰다. 그들은 접대원이 알려주는대로 흥안 장거리로 찾아갔다. 그때 겨릅대 같은 사람이 휘파람 휘휘휘 불며 지나갔다.
《저기 여기 방민관이네 집이 어딘가요?》
《뭐라구요?》
웬 일인지 그 사람이 깜짝 놀라하였다. 그리고선 두사람을 아래우 살펴 보다가 《저… 전… 저… 잘 모릅니다.》하고는 황망히 뺑소니치는것이였다. 참 이상도 하였다.
그 다음 사람들과 물어보고 방민관이네 집은 마을 앞에 자리잡은 헐망한 집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여보 정동무, 어떻게 할가? 직접 찾아 들어갈가?》
《박동무, 이렇게 들어 가기보다 사람들과 정황이나 물어보고 들어가는게 좋잖을가?》
두 사람은 이렇게 약속하고 마을 사람들을 찾아 묻기시작하였다. 늙은 사람들과도 물어보고 젊은 사람들과도 물어 보았다. 듣는 말에 의하면 방민관의 안해 남청숙은 지금도 남편을 기다린다고 한다. 사람들이 소식 없는 남편을 기다려선 뭘하는가? 한살이라도 젊어서 개가를 하라고들 권유하는데 남청숙은 도리머리를 하면서 말은 통 듣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딸애 하나를 키우면서 그애 앞날을 바라보며 살겠다고 다짐한다고 한다. 그것도 자기 남편을 이 세상에 낳아 키워준 홀로 남은 시아버지를 책임지고 모시면서 살겠다고 한단다.
남편을 오늘까지 기다리며 사는 방민관의 안해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한다는 말인가? 딸애 하나를 믿고 사는 방민관 안해에게 어떻게 그런 놀라운 소식을 전한단 말인가?
두 사람은 흥안촌 언덕 우에 올라가 방민관이네 집을 굽어보며 한숨을 후유 내쉬였다. 정말로 안타까운 심정이였다. 마음 같아서는 말하여 주고 싶지만 가족에서 그런 소식을 알고 쓰러지면 그건 또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래도 소식을 모르고 남청숙이 남편을 계속 기다리면서 살게 하는게 낫지를 않겠는가? 둘은 이런 생각을 하고 방민관이네 집까지 찾아 왔다가 돌아서고 말았다.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1947년 5월에 함께 중국인민해방군에 참군하여 장춘전투부터 해남도 전투까지 함께 어깨 겯고 싸운 전우 방민관! 방민관은 그때 패장이였다. 그들 둘은 모두다 반장이고 한 30명을 거느리고 싸운 방민관 패장!
어느날 남하하다가 너무 배 고파 더는 견딜수가 없었다. 해방군에는 《3대규률8항주의》가 있다. 백성들의 물건에 절대 손을 대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허기진 배를 끌어안고 전진하는 전사들을 방민관은 그저 볼수가 없었다.
길 옆에는 기장찬 옥수수밭이 늘어서 있었다. 옥수수대마다 먹음직스러운 옥수수 이삭이 업혀 있었다. 군침이 꿀꺽 넘어갔다. 내가 이렇게 배 고픈데 전사들은 어떠하랴! 방민관은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동전 몇잎이 손에 쥐여졌다.
《제 자리 섯!》
방민관은 갑자기 명령하였다. 맥없이 걸어가던 전사들이 제 자리에 멈춰 섰다.
《지금부터 전사 한 명당 옥수수 두 이삭씩 딸것! 두 이삭 이상 따면 군사처벌! 맨 옆 고랑 옥수수 이삭만 딸것!》
그리고 자기부터 옥수수 이삭을 땄다. 배 곯은 전사들은 어디서 난 힘이였던지 마구 달려 들어 옥수수 이삭들을 따서 껍질을 바르고 막 마구 생옥수수 알을 뽑아 질근질근 씹어 먹었다.
그새 방민관은 어디서 돌들을 주어다가 무져 놓았다.그리고는 종이장을 꺼내여 글을 쓰는것이였다.
《밭주인 어른: 이 돌밑을 들춰 보기 바랍니다. 》
그리고 다른 종이에는 또 이런 글을 썼다.
《밭주인 어른: 우리가 행군하다가 너무 배가 고파 당신네 옥수를 따 먹었습니다. 그 대신 돈을 이렇게 종이에 싸서 두고 가니 돈은 얼마 안 되더라도 량해하여 주기 바랍니다.
패장 방민관 1949년 9월8일》
방민관패장은 방금 쓴 쪽지를 돌무지 밑에 묻고 행군을 계속하였던것이다….
아, 잊지 못할 패장! 전우 방민관! 이런 방민관의 모습이 지금도 그들의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그런데 방민관은 지금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다. 전우로서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았다. 아니, 그의 안해한테 이 소식을 알려 주고 못가는 가슴이 터지도록 아팠다.
그러나 더는 다른 방법이 없는 그들이였다. 그들이 바로 조선전쟁 때 조선인민군 제4사 18련대 부소대장 박광필이였고 다른 한 사람은 조선인민군 제4사 18련대 소대장 정상덕이였다.
15.아버지의 전우를 찾고 쓰러진 어머니
산옥이가 조선에서 돌아온 다음 어머니는 그런 소식이라도 가지고 온 산옥이가 대견하여 어쩔줄을 몰랐다. 나어린 산옥이가 그런 큰 일을 하고 오니 세상에 산옥이만한 딸이 다시 없는줄로 느꼈다.
남청숙은 박수산아저씨가 주는 방민관의 전우들의 이름을 적은 종이장을 차곡차곡 접어서 손에 꼭 쥐고 다니였다.무슨 방법을 대여서라도 살아 남은 4명 전우들을 기어이 찾아낼 잡도리였다.
그래서 이튿날로부터 남청숙은 시정부랑 주정부랑 찾아 다니였다. 이런 일은 민정부문에서 취급한다기에 날마다 민정부문에 출근하였다. 그러면 이름을 써놓구 가라고 하여 써놓구 돌아 왔는데도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어느 금요일 남청숙은 딸 산옥이를 데리고 주 민정국으로 찾아갔다. 혼자 가서는 해결할수가 없으니 학교에 가서 말미를 맡고 산옥이를 앞세우고 갔던것이다. 소학교 4학년 학생이 된 산옥이는 제법 어른스러웠다. 조선 평양 인민군 총사령부에까지 갔다온 산옥이는 자신 만만하여 하였다.
《우리 엄마 제기한 문젠 왜서 안 됨까?》
《무슨 문제길래?》
《아니 지금도 무슨 문젠줄도 모름까?》
산옥이는 화가 나서 반문하고 간부를 째려 보았다. 어디서 이런 간부가 다 있나 하는 그런 태도였다.
《오, 아버지 전우를 찾아 달라는?》
《예! 어떻게 됐슴까?》
간부는 책을 뒤적거리더니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사망 되였으니 좀 더 기다려 보아야 할것 같다고 말하였다.
《울 엄마는 앓슴다. 날마다. 올수 없단 말임다. 며칠 더 기다려야 함까?》
산옥이는 도담하게 다우쳐 물었다.
《여기다가 엄마 주소를 써놓구 가거라.》
《아니, 저의 주소를 써넣겠슴다. 저한테 알리면 오겠음다. 거기 쓰세요. 연길시 흥안소학교 4학년 1반 방산옥》
그리고 산옥이는 엄마와 함께 나와 버리였다.
돌아와서 2달이 지났는데도 감감 무소식이였다. 어디서 이렇게 일하는 간부가 있다는 말인가? 산옥이는 또 어느 금요일 오후 선생님과 말미를 맡고 주정부 민정국을 찾아갔다.
지난번 그 간부가 반색하며 일어났다.
《오, 네가 왔구나. 그렇찮아도 오늘 통지 하자구 하였는데…》
《이게 언젬까? 두달이 다 넘었는데…》
《글쎄다. 여기 이 종이에 너 아버지 전우들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다.》
산옥이는 다급히 그 종이를 받아 보았다. 정말 네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산옥이는 그 어떤 보물이라도 얻은듯 그 종이장을 들고 깡충깡충 뛰여 집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남청숙은 개산툰과 화룡에 있는 방민관의 전우들을 찾아갔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들 모두가 이미 사망되고 이 세상에 없었다.
남청숙은 자기 혼자 다니여서 이렇지 않나 생각하고 공일날 산옥이를 데리고 의란향 구룡촌을 찾아 갔다. 그곳에 아버지의 전우 정상덕이라는 사람이 있다는것이였다. 그 집을 찾아가니 정상덕이라는 분은 자리를 펴고 누워 있었다. 몸져 누운것이였다. 남청숙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저 편치 않은데 이렇게 찾아 와서 미안합니다. 》
《무슨 일로 이렇게…》
《저 방민관이라는 분을 아시지요?》
《예? 방민관?》
정상덕이라는분이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앉는것이였다.
《아니 어떻게 저를 찾아 이렇게…》
정상덕이라는 분은 눈물부터 흘리며 남청숙의 손을 잡고 몸을 와들와들 떠는것이였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뭐가요? 예?》
정상덕이라는 사람은 땅을 치며 통곡부터 하였다. 알고도 모를 일이였다. 산옥이는 겁부터 나서 엄마 등뒤에 얼른 숨었다.
《형수님, 제가 형수님이라구 부르는걸 용서허여 주십시오. 방민관형은 나보다. 한살 이상이니까 이렇게 부르겠습니다. 저…》
정상덕이라는 분은 도무지 갈피를 잡을수 없이 말하였다. 남청숙은 어느 정도 가늠이 갔던지 말을 하였다.
《우리 남편정황을 말하여 주십사고 이렇게 왔습니다. 》
정상덕이란 분은 또 다시 오열을 느끼며 이번에 소리내여 왕왕 울기까지 하였다. 그집 아주머니가 다가 앉으며 그만하라고 만류하는데도 울기만 하였다.
한참 이렇게 울고난 정상덕이라는 분이 수건을 가져 오라해서 눈물을 닦고는 정색하여 앉았다.
《형수님 놀라지 맙소. 저 방민관형님은 이미…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입니다.》
《예? 뭐라구요?》
남청숙은 이렇게 말하다가 점차 얼굴이 새까매지면서 뒤로 벌랑 넘어졌다. 산옥이는 영문을 몰라 쓰러지는 엄마를 얼른 안았다. 엄마는 입에 거품을 물고 끙끙 신음소리를 내였다.
정상덕이라는 분은 아픈 몸으로 일어나서 쓰러진 어머니를 안아 산옥의 무릎 우에 남청숙이를 눕혀 놓았다. 그새 주인집 아주머니는 젖은 수건으로 어머니의 얼굴을 닦아주고 물도 마시게 하였다. 남청숙은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이걸 어떻게 한단 말인가?
16.두번째 확인자
향정부에서 수레를 내여 남청숙을 연길시 병원으로 호송하였다. 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 나니 병세는 차도가 났다. 정신을 차린 남청숙은 좀 괜찮으니까 그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 왔다.
남청숙은 눈물을 닦고 시아버지와 로할머니를 불렀다. 당황해난 로할머니와 시아버지가 남청숙한테 다가 앉으며 눈이 둥그래서 무슨 일인가 다우쳐 물었다.
《아버님, 그리구 할머님 놀라지 마세요…》
여기까지 말한 남청숙은 설음을 이기지 못하여 제부터 울음을 터뜨렸다.
《이게 무슨 일이냐? 어서 썩 말하거라.》
할머니가 손주 며느리를 붙안고 달래였다. 여기까지 보고있던 산옥이는 더는 참을수가 없었다.
《할아버지 로할머니…우리 아버지가 사..사망…되였담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냐?》
로할머니가 뒤로 벌랑 넘어졌다. 남청숙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할머니를 붙안아 일으켰다. 할아버지는 땅을 주먹으로 내리치고는 우와 하고 긴 한숨을 내쉬였다. 산옥이는 이 모든것을 지켜보다가 자기도 할아버지를 안고 와 울음을 터뜨렸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하던?》
갑자기 할아버지가 의문스럽다는듯이 이런 물음을 제기하였다.
《저… 정상덕이라는 분이 말했습니다.》
《아니여, 한 사람의 말을 듣고 어찌 그 말을 믿을수 있나? 또 다른 사람은 없다더냐?》
남청숙은 그 말에 귀가 솔깃하여졌다. 그래 한 사람의 말만 듣고 그런 결론을 어떻게 내린단 말인가?
그래서 남청숙은 이튿날이 월요일인데도 또 산옥이를 앞세우고 걸어서 연길현 태양항 중평부락까지 찾아갔다.
《엄마, 오늘은 또 기절하문 안 되여요. 알았지?》
산옥이는 박광필이라는 분네 집에 들어 가기전에 엄마와 다짐까지 땄던것이다. 박광필이라는 분은 향기업에 출근하고 있었다. 남창숙이가 정상덕이를 찾아간 이야기부터 꺼내니 박광필은 알았다고 하면서 방민관은 1955년 7월 9일에 사망된게 옳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날 전투이야기를 하였다. 방민관이 전사한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더는 미련을 가져서는 아니된다.
남창숙은 떨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맥없이 그 집에서 나왔다. 그러면서 남창숙은 소리 없이 뜨거운 눈물만 흘리였다.
남청숙은 산옥이를 보고 정상덕이를 다시 찾아 가자고 하였다. 그것은 박광필이라는 분이 하는 말이 정상덕이가 산옥의 아버지의 시체까지 묻은 사람이라고 하였기 때문이였다.
17.함께 부른 만세소리
여기는 충청북도 단양무명고지!
한반도 치고서는 높은 산에서부터 낮은 언덕으로 그 다음 점차 벌판으로 내려가는 곳이다. 하기에 남조선 군대들도 이 무명고지를 지키자고 최후 발악을 하고있다.
하지만 북조선 군대가 파죽지세로 남으로 남으로 밀고 나가는 통에 어제 저녁에 괴뢰군은 이 고지를 내버리고 저 남쪽 여기보다 좀 낮은 언덕으로 밀려 내려갔다. 하지만 호시탐탐 이 고지를 다시 빼앗으려고 노리면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오늘 낮에도 숱한 자동차를 동원하여 보충병을 실어오면서 대거진공을 할 차비를 하고있다.
총소리는 없지만 고요한 정적은 이제 닥쳐올 무서운 전투를 예고하여 주고 있다. 방민관중대가 이 고지를 탈환하고 이 고지를 지킬 임무를 맡게 되었다. 어제 저녁 방민관중대장은 소대장들을 불러 놓고 작전 배치를 면밀히 짜고 들었다. 1소대 박광필소대장은 동쪽을 책임지고 2소대 정상덕소대장은 남쪽을 책임지고 3소대 김윤식소대장은 서쪽을 책임지기로 하였다.
밤중에 방민관중대장은 각소대장을 다시 불러 지뢰매설 작업을 비밀리에 포치하였다. 밤중에 적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틈을 타서 산아래로 기여 내려가 5메터 간격으로 지뢰를 매설하기로 하였다.
1955년 7월 9일!
새벽 2시 방민관중대장은 각소대를 돌아 다니며 지뢰매설 작업을 점검하였다. 모두 명령대로 지뢰매설을 잘 하였었다. 중대장은 만족하여 소대장들의 어깨를 뚝뚝 두다려 주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제 새날이 밝으면 놈들이 먼저 박격포로 포격할것이다. 그리고 요즘 새롭게 나타난 쌕새기라는 비행기들이 날아들면서 기총소사를 퍼부을 것이다. 그다음 보병들을 풀어 고지를 향하여 총돌격하여 올라 올것이다.
우리는 이 첫순간을 잘 넘기여야 한다. 그래서 방민관중대장은 땅굴을 팠고 또 바위굴에 중무기들인 중기기관총, 경기기관총 등으로 은페하여 놓았다. 어쨌든 첫순간을 넘기면 승리는 우리것이다.
새벽 4시! 갑자기 박격포성이 하늘땅을 진감하였다. 그리고 쌕새기 비행기들이 날쳐들면서 뚜뚜뚜뚜 미친듯이 기총소사를 퍼부었다. 뒤이어 짐작대로 괴뢰군 륙군들이 《야-》 돼지 멱따는 소리를 찌르면서 우리 고지를 향하여 돌진하여 왔다. 모든것이 짐작대로 움직이였다.
그때 고지밑까지 닥쳐든 놈들이 불시에 불벼락을 맞아 혼비백산하였다. 예서 제서 지뢰가 꿍꽝 꿍꽝 폭발하였다. 폭파소리와 함께 놈들이 천당으로 가는 비명소리가 아츠럽게 울려 퍼졌다. 이런 후과가 있으리라고 생각 못한 놈들은 잠시 후퇴하기 시작하였다.
당황해난 놈들은 후원병을 더 보충하여 우리 고지를 향하여 다시 맹공격을 들이 대였다. 적들은 박격포, 중기,경기를 총동원하였다. 총소리는 하늘을 째고 포탄 터지는 소리는 땅을 진감하였다.미친듯이 쏘아대던 총소리가 뜸해졌다. 아마 우리가 전멸된걸로 착각한 모양이였다.
그때 방민관중대장이 벌딱 일어나며 소리쳤다.
《전투준비!》
이때까지 용하게 참아온 중대장의 벽력같은 명령이다. 전사들은 자기가 파놓은 전호로 번개같이 달려가 방아쇠를 당기였다. 산아래로부터 기여오는 적들이 우리의 불의의 총탄을 맞고 하나둘 나가 둥그러졌다.
총소리 대포소리 더더욱 요란하였다. 단양무명고지는 불바다가 되었다. 포연이 자욱하여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쌕새기들도 적아군이 함께 뒤엉킨 판에 함부로 기총소사를 할 수가 없었다. 기회는 왔다. 이 절호의 기회에 우리는 총탄을 비발처럼 퍼부어야 한다. 적들은 하나둘 너부러져가고 있다. 승리는 눈앞에 닥쳐오는 판이다.
《돌격 앞으로!》
방민관 중대장이 권총을 하늘 높이 번쩍 추켜들고 발딱 일어서며 우뢰같은 명령을 내리였다.
바로 그 순간! 날아오는 저주맞을 총탄이 방민관중대장의 가슴팍에 와서 땅! 맞혔다 아, 방민관은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깜짝 놀란 정상덕은 발딱 일어났다 번개같이 달려갔다 그리고 방민관을 끌어 안았다 가슴에서는 붉은 피가 왈칵왈칵 솟구쳤다
그러나 대답 없는 민관이는 두팔을 축 늘어 뜨리였다
그때 민관이는 꿈틀 온 몸에 경련을 일으켰다
민간이의 해쓱한 입술이 바르르 떨리였다 그리고 벌려진 입으로부터 무슨 말소리가 흘러 나왔다 단말마적 힘으로 .부르짖는 목소리! 그 목소리는 그같이 가느다란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같이 분명한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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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덕소대장은 울면서 따라 불렀다 목터지는 소리로 저 세상으로 가는 전우 민관이와 함께 만세를 불렀다 만세! 만세! 만만세!!
18.아버지의 제사를 지내고 조선정부에 보낸 첫편지 정상덕아저씨는 눈물을 머금고 여기까지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산옥이를 와락 끌어안고 울었다. 슬피 울었다. 이런 딸을 두고 저 세상으로 간 전우가 아니, 친구가 그리워 울고 또 울었다.
《전투가 끝난 다음 나는 전우들과 함께 방민관중대장의 시체를 안고 고지에서 한 15메터 내려와 큰 밤나무 옆에 우리의 방민관 중대장을 뜨거운 눈물을 뿌리며 고이 묻었습니다. 》
남청숙은 어깨를 들먹거리며 울었다. 그러나 소리를 내지 않고 흐느끼기만 하였다. 지난번처럼 졸도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북받치는 감정을 가까스로 눅잦히고 정상덕 아저씨에게 고개숙여 고맙다고 인사를 할뿐이였다.
산옥이는 정상덕아저씨의 말을 되새기며 울었다. 아버지 방민관은 정말로 영웅이다. 그런 영웅의 딸로 태여난 자기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랐다. 그러니 자기를 이 세상에 낳아준 아버지가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아버지가 더는 밉지 않았다. 아버지가 한없이 고마왔다. 아버지가 한없이 존경스러웠다.
이젠 이 세상에 다시 없는 아버지를 찾을 길은 없다. 아버지는 남들 말처럼 포로되여 대만으로 끌려간 그런 못난이는 아니다. 절대 아니다! 우리 아버지는 전쟁에서 자기의 목숨을 바쳐 용감히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한 렬사이다. 아버지의 그 빛나는 이름만은 력사에 영원히 빛나게 하여야 한다. 어떻게 하나 아버지의 렬사증을 찾아와야 한다. 아버지의 딸로서 이 방산옥이는 끝까지 애 쓸것이다.
남청숙은 딸을 데리고 이번엔 구룡대대 신세를 지지 않고 걸어서 연길로 내려왔다. 어쩐지 걸음도 가벼워진 감이 났다. 정상덕아저씨의 말을 들어보면 방민관이 더 위대한 영웅으로 안겨왔다. 몸은 사망되였지만 방민관의 이름은 더더욱 빛나는것만 같았다.
《엄마, 내 오늘 집에 가서 편지 쓸래요》
《어디다?》
《조선 정부에!》
《네가 어떻게 쓴다구 그러니...》
《우린 학교에서 편지 쓰는 방법을 배웠거든요.》
산옥이는 자신 만만하였다. 때마침 편지 쓰는 방법을 배웠기애 신심이 더더욱 생기였다.
《아서라, 엄마가 쓸가 한다...... .》
《아니예요. 소학생 내가 쓰면 조선정부에서두 엄마 쓴것보다 더 중시할거 아닌가요?》
20리 길을 어떻게 걸어 왔는지 몰랐다. 흥안촌에 도착하자마자 청숙이는 산옥이보고 말하였다.
《산옥아, 너 먼저 집에 가거라. 엄만 거리에 갔다 오겠다.》
《그래요, 그럼.》
산옥이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밥상에 마주 앉아 편지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소학교 4학년학생이기에 생각과 같이 그렇게 쉽게 쓸수가 없었다. 어떤 내용을 어떤 순서로 어떻게 써야 하는가? 눈앞이 캄캄하였다.
그러나 《우두한게 범을 잡는다》고 산옥이는 연필을 꼬나 들었다.
존경하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부
나는 소학교 4학년 학생입니다. 아니 나는 방민관아버지의 딸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조선전쟁에 나가서 중대장이였습니다. 단양전투에서 적들과 싸우다가 가슴에 총알을 맞고 희생된 영웅입니다. 어떻게 우리 아버지에게 렬사증을 보내주십시오.
이상 끝.
중국연길시 흥안소학교 4 학년 1반
방산옥 올림
1955년 10월 8일
산옥이는 이렇게 쓰고 엄마를 불렀다. 그러나 엄마는 없었다. 아직 거리에서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였다. 산옥이가 마을에 나가 놀다 오니까 그새 엄마가 돌아왔다.
그런데 엄마는 상에 과자랑 사과랑 사탕이랑 명태랑 차려 놓고 그 상우에 어디서 난 사진인지 아버지의 커다란 사진을 받쳐 놓았다. 엄마가 돈지갑에 넣고 다니던 그 사진을 확대하여 온것이였다.
《엄마, 뭘하는거야?》
《산옥아, 아버진 이제 사망되신게 분명하구나. 그래서 제사를 지내자구.》
엄마는 울먹울먹 하면서 말하였다. 제사를 지낸다구? 전투에서 희생된 아버지…. 그때 산옥이에게는 문뜩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렬사다. 그래 렬사야! 산옥이는 붓과 종이를 얻어다가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천자문을 배울 때처럼 한자로 썼다. 《혁명렬사 …》 바른 정자로 정성을 들여 또박또박 써내려 갔다. 다 쓰고난 산옥이는 그 《혁명렬사 방민관》이라는 네 글자를 가위로 오려 사진 아래쪽에 정히 붙였다. 혁명렬사 방민관, 그 사진은 더더욱 의젓하여 보였다.
로할머니는 제사상 옆에 오른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어서 제를 지내라고 재촉하였다.
먼저 딸 산옥이가 술을 붓고 절을 하며 말하였다.
《보지두 못한 우리 아버지! 혁명렬사 된 우리 아버지! 오늘 이 딸 산옥이가 아버지께 술을 부어 올리고 절을 합니다. 아버지…》
산옥이는 이렇게 말하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엄마도 로할머니도 흐느끼며 울었다.
그 다음 엄마 청숙이가 술을 붓고 절을 올리였다 어쩐 일인지 엄마는 얼굴을 두손으로 감싸 쥐고 어깨만 들먹거리며 울음소리는 꺼이 꺼이 삼키고 있었다.
할아버지만은 《어쩌문 이 애비 먼저 네가 간단 말이냐…》하면서 흐윽 느끼였다.
동네집 때문에 울지 말자던 산옥이네는 그만 울고 말았다. 소리 내여 울고 말았다. 할아버지가 손을 내저으며 그만하자고 하여서야 울음을 그치였다.
밤에 청숙이는 다 큰 산옥이를 꼭 껴안고 울었다. 아버지 없게 된 산옥이가 더더욱 불쌍하였다. 남들이 아버지 아버지 할 때 우리 산옥이는 이젠 어떻게 한단 말인가? 나서 지금까지 자기 아버지를 직접 보고 아버지란 말 한번도 불러 보지 못한 우리 산옥이! 그러니 눈물은 하염없이 흐르고 흐르고 또 흘렀다.
엄마의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던 산옥이가 발딱 일어나 낮에 쓴 편지를 가지고 왔다.
《엄마 다 썼어요 한번 읽을게 들어 보세요.》
산옥이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감정을 내여 읽었다. 다. 읽고 난 산옥이는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아 엄마 눈치를 할끔할끔 살피였다.
《괜 찮구나 어물쩍하다. 그런데 되겠는지...》
그래도 산옥이는 이튿날 엄마와 돈을 달래 가지고 공소사로 달려 갔다. 길고 짜른건 대보아야 한다잖아! 조선정부에서 꼭 회답이 올거야! 산옥이는 일루의 희망을 품고 조선정부에 보내는 첫번째 편지를 우체통안에 집어넣었다.
19.검토된 작전 방안
한달을 기다려도 두달을 기다려도 조선에서 회답이 오지 않았다. 주소를 잘못 써서 회답이 오지 않을가? 내용을 잘못 써서 회답이 오지 않을가? 산옥이는 매일 같이 목마르게 회답편지를 손꼽아 기다리기만 하였다.
이듬해 7월9일 아버지가 사망되신 날 산옥이네는 친척들이 모여서 제사를 굉장히 지내였다. 그 소식도 만장같이 써서 조선정부에 보내였다. 그래도 편지는 오지 않았다.
어느새 산옥이는 소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붙었다. 중학교에 붙는날 반주임선생님이 산옥이를 찾았다.
《산옥아, 산옥의 삼춘은 혁명렬사 옳던데 아버지는?》
《아버지두 렬사입니다.》
《그럼 렬사증이 있나?》
《렬사증? 이제 옵니다.》
《향에 가 물어보니 무소식가정이라구 하던데…》
《아닙니다. 증명하는 사람 둘이나 있습니다.》
《글쎄 삼촌이 렬사이니깐 렬사가족은 옳은데…》
중학교에 올라와서 생각하여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아버지가 렬사인것만은 완전히 옳은데 아직 렬사증이 내려 오지 않았으니 정부에서도 렬사가족으로 승인하기 어려워 하지 않는가? 증명하는 사람두 있는데 그래도 안되는 현실이다.
우리가 그래 애를 썼으면 얼마나 애 썼단말인가? 그런데두 안되는걸 보면 문제가 있는거다. 그래 우리가 할 일을 제대로 다 했는가? 그저 우리 아버지가 군대였고 중대장이였다고 했을뿐 어느 부대인가를 알려주지 않았으니 조선정부에선들 어떻게 우리 아버질 찾아 낼수 있겠는가? 여기까지 생각한 산옥이는 자기의 뒤통수를 빵하고 때렸다.
그래서 엄마와 물어서 아버지의 편지를 둘춰 가지고 아버지의 부대주소를 알리는 편지를 또 조선정부에 보내였다.
그래도 회답은 오지 않았다. 산옥이는 여유시간만 있으면 이미 쓴 편지들을 꺼내여 자꾸 읽었다. 옆에 앉은 짝꿍이가 물었다.
《산옥아, 넌 무슨 편지를 그렇게 자꾸 쓰구 자꾸 보구 하니?》
《나두 몰라.》
《너두 모르면서 자꾸 쓴다구?》
짝궁이 저녁에 집으로 올 때 지꿎게 캐여 물었다.
《무슨 편지야? 말하문 안되나?》
《조선정부에 쓰는 편지야.》
《조선정부에? 너 대단하구나.》
《뭘…》
둘은 함께 걸으면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였다. 산옥이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추려 하고나서 아버지가 조선전쟁에서 사망되였는데 렬사증이 오지 않아 편지를 쓰고있는데 지금까지 회답이 없어서 애가 탄다는것이였다.
짝궁이 듣다 못하여 도대체 어떻게 편지 썼나 따져 물었다. 알고보니 산옥이는 주소도 제대로 모르고 편지를 부쳤고 내용도 제대로 쓴것 같지 않았다. 하기에 우선 편지가 제대로 간것 같지 않고 설사 편지가 갔더라도 무슨 뜻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것 같았다.
《산옥아, 내 우리 아버지와 물어 볼게…》
이튿날 짝꿍이가 산옥이를 찾아 말하였다.
《임마, 너 그렇게 쓰면 안된돼. 우선 편지주소가 너무 롱통해. 그리구 내용도 너만 알게 쓴거야. 너 아버지 어느때 참군하여 어느 부대에 있었고 군관인가 전사인가두 쓰구 이래야 조선측에서 너 아버질 찾을수 있다는거야.》
《나두 여러번 썼는데. 그런 내용은 다 썼어.》
《그리구 말이야. 증명하는 사람이 있다고만 써선 안된돼. 어떤 사람이 어떻게 증명하였는가를 똑똑히 밝혀 써야 한다는거야. 그것두 그 사람이 쓴것대루 보내야 한대.》
《응, 그렇구나. 그런걸 나는 엄마와 같이 가서 들은대로만…》
이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산옥인 령으로 부터 다시 시작하였다. 그래서 공일날 산옥이는 의란향 구룡촌 정상덕아저씨를 다시 찾아갔다. 정상덕아저씬 산옥이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또 무슨 문제 생겼나?》
산옥이는 만년필과 종이를 내놓으며 말하였다.
《아저씨 여기에 우리아버지 사망된 과정을 써주세요. 구체적으로요, 조선에 보내자구요.》
《그래, 그건 얼마든지 써 주지.》
정상덕아저씨는 엎딘채로 줄줄 글을 써내려갔다. 얼마 안지나 자기가 쓴 글을 읽어주면서 이만하면 되겠냐고 물었다. 읽어보니 전후과정이 확연히 드러났다. 산옥이는 머리숙여 꾸뻑 인사하고 구룡에서부터 거진 달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확인서를 가지고 이번엔 선생님을 찾았다. 이렇게 재료를 하면 되냐고 이제부턴 선생님의 도움을 받고 싶었다. 그런데 향정부 증명도장이 있어야 한다는것이 아닌가? 그리고 증명하는 사람에 대한 증명도 있어야 한단다.
더는 할수가 없었다. 공일날 가면 향정부에서 모두 휴식한다. 하여 산옥이는 혼자 금요일 오후 말미를 맞고 또 구룡촌으로 달려갔다. 가서 향정부도장을 맞아왔다.
이제는 재료가 문제 없다고 하기에 그래서 산옥이는 공일날에 학교에 나와 편지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때는 복사기도 없기에 세번이나 베끼였다. 그러니 편지는 3부가 되였다. 선생님도 안타까와 이런 권고를 하였다.
《산옥아, 또 라고 하면 안될것 같아. 이번에 이렇게 해보거라》
《어떻게요?》
《조선정부에 한통, 인민군총사령부에 한통, 그리구 너 아버지의 원래 부대에 한통…》
《아, 옳아요. 왜 이때까지 그런걸 생각 못했을가?》
산옥이는 깡충 뛰면서 손벽을 짱 쳤다.
그날 오후 산옥이는 엄마와 돈을 달래 가지고 이번에는 거리 우편국에 가서 편지를 세통이나 함께 부치였다.
20.대학생이 된 산옥이
산옥이가 고중에 붙었는데도 그때까지 조선에서 회답이 오지를 않았다. 지금까지 편지를 스무통은 너머 보내였다. 그러나 끈질긴 산옥이는 히답이 없어도 시간만 있으면 편지를 쓰고 쓰고 또 썼다.
고중에 올라와서 산옥이는 학생회 선전부 책임을 맡고 학교의 《갈매기》잡지를 편집하고 학교의 12개 흑판보를 꾸리면서 바삐 보냈다.
산옥이는 1반이였다. 2반에 필충극이라는 학생이 있었다. 그 애는 미술을 잘하는 학생이였다. 산옥이가 칠판에 글을 쓰면 필충극이 따라 가면서 그림을 그려 손발이 척척 맞았다.
그런데 이런 바쁜 와중에도 산옥이는 편집실 한칸을 차지하고 짬만 있으면 거기 가서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조선정부에 보낼 편지를 쓰고 또 썼다. 부치지는 못했지만 자꾸 쓰고 싶어서 써냈던것이다. 언젠가 때가 되면 그 모든 편지를 조선에 보내여 조선정부에서 아버지의 렬사증을 보내오려니 그런 욕망은 한시도 버리지 않았다.
세월을 빨리도 흘러 산옥이는 대학입학시험을 추리게 되였다.동창생 전명숙이 시험공부를 같이 하자고 하여 산옥니는 고모네 방에서 둘이 함께 자면서 공부하였다.
그런데 전명숙은 대학에 붙지 못하고 예술학원에 붙고 방산옥은 워낙 물리학을 전공하려고 하였는데 의학원에 붙게 되였다. 그것은 어머니가 향간부를 동원하여 집과 가까운 의학원에 붙도록 조치를 취하였기 때문이다.
시험성적은 대단히 높았는데 이렇게 되다보니 산옥이는 학습에 안착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공부를 하지 않으면 또 아니되였다. 일단 의학원에 붙은 이상 의학에서 성공하고 싶었던것이다
학습이 시작되여 얼마 안 지나 친구들이 산옥이네가 연길에 산다고 토요일마다 산옥이네 집으로 《생활개선》하러 다니였다. 그 가운데 필충극이도 끼여 있었다. 의학원 학생은 아니지만 의학원친구들과 섭쓸어 다니였다. 고중때 벽보를 함께 꾸린적은 있으나 그 이상 별로 친한 사이는 아니였다.
토요일마다 친구들은 이렇게 산옥이네 집을 찾아 다니였지만 산옥이는 가끔 학교에서 집으로 가지 않았다. 산옥이는 또 도서관에 가서 아버지의 자료를 정리하고 편지도 쓰고 하면서 혼자 공일을 보내였다.
당시 국제 정황이 복잡하여 조선과의 편지거래가 힘들었다 산옥이는 이젠 대학생이 된것만큼 이런 정세는 어느정도 파악할수가 있었던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를 찾는 일은 잠시 접고 말았다
어느 일요일 날 산옥이는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에 관한 자료를 정리하였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그리고 곰방숟가락,아버지의 군대증명서,정상덕아저씨와 박광룡아저씨의 증명재료,지어는 조선에 보낸 편지 초고들을 다 정리하여 큰 봉투에 넣고 봉한 다음 서랍에 넣고 자물쇠를 잠구어 버리였다 언제가면 이 재료를 가지고 아버지의 렬사증명서를 꼭 찾아오려고 단단히 윽별렸다
대학교 친구들은 이런 산옥의 실정도 모르고 산옥이가 없어도 산옥이네 집으로 제집 다니듯 놀러 다니였다. 산옥이의 엄마는 이런 대학생들이 싫지가 않았다. 그래서 오면 밥도 해주고 안주도 끓여 주었다.
그 가운데 예술학원을 다닌다는 필충극이 어쩐지 어머니의 눈길을 끌었다. 남들처럼 말도 다사하지 않고 구석에 점잖게 앉아 있다가도 떡을 칠 때면 말없이 일어나 떡을 치고 두부콩을 갈 때면 또 남먼저 다가 앉아 매돌을 돌리는것이였다 .
어느날 어머니는 산옥이를 보고 말하였다.
《얘야, 두구 보니 그 필충극이라는 학생이 듬직하구 착하더구나.》
《그래요?.》
산옥이는 그런 일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이렇게 시큰둥하게 대답하고 어머니의 말을 귀담아 듣지도 않았다
어느날 고중동창생 전명숙이한테서 소식이 왔다 예술학원에서 화극라는 연극을 공연하는데 주역이 전명숙이고 부주역이 필충극이라는것이였다 꼭 한번 구경 오라는 청탁이였다.
그래서 산옥이네 반 대학생들이 여럿이 구경을 갔더랬다. 본보기극이 판을 치는 때라 그만하면 연극도 구경할만하였다. 돌아올 때 어떻게 되여 산옥이는 혼자 남게 되였다. 친구들이 일부러 짜고든것 같았다. 그때 필충극이 산옥이를 보고 자기가 의학원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나섰다.
그날 밤 둘은 함께 걸었지만 별로 다른 말은 없었다. 산옥이는 어쩐지 미안하여 이튿날 필충극한테 편지를 썼다. 어제 자기를 학교까지 데려다 주어 고맙다는 내용이였다.
그런데 산옥이가 보낸 편지 봉투가 봉황새 한쌍이 그려진 봉투였다. 그건 그런 봉투밖에 없어서 그런거지 산옥이가 의식적으로 그런 봉투를 선택한것은 아니였다. 그런데 필충극은 그것을 그저 일로 생각하지 않았던것이다.
21.문화혁명기간에도 아버지를 찾아
대학교에 붙어서 2년 되는 해였다 드디여 문화혁명이 폭발하였다. 전례없는 혁명이란다. 모두 북경으로 떠났다. 친구들이 너나없이 모주석의 접견을 받으러 간다고 떨쳐나섰다
그래서 홍위병 선거를 한다고들 떠들어댔다.는것이였다 산옥이는 별로 그런 일에 관심이 없었다.그런데 한 사람씩 심사하며 내려가다가 산옥이한테 와서 걸려 들었다.
반란파 대장이 산옥이네 아버지는 무소식 군대이고 또 포로라는 말이 있다고 하면서 홍위병에 들이기는 문제가 된다고 하였다.아무 생각이 없이 다른 생각을 하던 산옥이는 옆에 친구가 귀띰하는 판에 그게 무슨 소린가고 발딱 일어났다.성급한 산옥이는 대번에 성부터 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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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옥이는 문을 팡 걷어차고 밖으로 나갔다.그런데 후에 학급의 어떤 친구가 산옥의 삼촌이 렬사이기에 렬사가족은 옳다면서 홍위병 완장을 산옥이 한테 가져다 주었다.그러나 산옥이는 그 홍이병완장을 호주머니에 꿍쳐 넣고 팔에 끼지도 않았던것이다.
며칠 후 산옥이도 친구들과 함께 북경으로 떠났다.그러나 산옥이는 남다른 목적이 따로 있었다.산옥이에게는 모주석의 접견을 받는것보다도 아버지의 행방을 찾는것이 더더욱 중요한 일이였다.
먼저 장춘에 들러 성 정부를 찾았다. 성정부 민정청에 가서 아버지문제를 해결하자고 들었다. 성정부 민정청에 행여나 아버지 자료가 없나 해서 찾아 갔던것이다.
그런데 성정부 민정청에서는 혁명한답시고 문을 닫아 걸고 거리에 뛰쳐나가 대자보를 붙이고 시위행진을 하고 하면서 접대를 하지 않았다.
이틀이나 찾아 갔지만 민정청 책임자를 만나 보지도 못하였다.그래서 안되겠다고 생각한 산옥이는 방법이 없어서 북경 중앙 민정부를 찾아갔다.
민정부에는 당직밖에 없었다. 찾아온 점은 리해할만한데 반란파들이 정권을 탈취하여 사무를 못 본다는것이였다.
또 헛물을 켜고 말았다. 산옥이는 민족학원 외지학생 접대소에서 빵 2개와 짠지 한 봉지를 얻어가지고 연길행 기차에 뭄을 실었다.
문화혁명이란 이 복새통에 어디간들 산옥이를 도와줄사람이 있으며 어디 간들 산옥이를 도와줄 기관이 있겠는가!
22.아버지는 《포로병》, 어머니는《국민당가족》
산옥이는 연길역에 내리자 마자 주먹을 부르쥐고 절반 달아서 학교에 도착하였다. 짐을 대수 풀고 그걸음으로 어머니 보러 흥안촌으로 또 달려 왔다.
흥안소학교에 다가가니 학교운동장에서 투쟁대회가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멀리서부터 구호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계급투쟁을 절대 잊지 말자!》
《류등토를 타도하자!》
《주자파 주덕해를 타도하자!》
《문화대혁명 만세!》... 전국이 지금 떨쳐나 혁명을 한답시고 대란장판이다. 산옥이로 놓고 말하면 이 문화대혁명이란 도무지 리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혁명하던 모든 간부들이 다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집권파란 말인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무산계급문화대혁명이라는게 사람마다 자기의 본질을 그대로 적라라하게 드러내는 그런 혁명인것 같았다.좋은 사람들은 세상이 어떻게 변하여도 좋은 사람 면모를 그대로 드러내고 나쁜 사람은 아무리 감추자고 하여도 자기의 진면모를 그대로 드러내는 그런 혁명이 아닌가!
산옥이는 학교운동장에 들어서다가 무춤 서버리였다. 저 높은 연단에 그래 누가 올라서 있지? 두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아니, 글쎄 산옥의 엄마! 남청숙이가 서있지 않겠는가! 목에다 《국민당 가족》라는 커다란 패쪽을 메고 서있다. 산옥이는 와들와들 온 몸을 떨었다.
《우리 엄마가 왜 국민당 가족이야?》
덕지 큰 산옥이는 사람들을 밀어 제끼고 앞으로 나가려고 서둘렀다. 그러나 사람들이 빼곡히 써있어 앞으로 나가기 어려웠다.
그새 마이크를 입에 댄 개뼈대같은 사람이 악청높이 말하기 시작하였다. 저게 누군가? 저게 그래 산옥이네에게 소학교때 전투이야기를 하던 그 이 안닌가!
《위대한 수령이시며 위대한 도사이시며 위대한 키잡이이신 모주석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계급투쟁은 우리 마을에도 있습니다. 우리 마을 남청숙은 국민당 가족입니다.》 그러자 예서 제서 《계급투쟁을 절대 잊지말자!》를 아우성치며 웨쳐댔다. 거기에 용기를 얻은 그 개뼈대같은 민병패 패장은 더더욱 소리를 높여 가며 고아댔다.
《남청숙의 남편은 바로 방민관입니다. 방민관은 해방전쟁이 끝났는지 오랜데도 지금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죽지 않았으면 포로가 된것입니다. 만약 죽었으면 렬사증이 내려 오지 않겠습니까? 렬사증이 내려 오지 않는것은 죽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럼 어디 갔겠는가? 어디 갈데 있습니까? 바로 대만으로 간것입니다. 국만당에 투항한것입니다. 계급투쟁을 절대 잊지 말자!》
산옥이는 여기까지 듣다가 코웃음을 쳤다. 엉터리 론리추리를 해대는 저 개뼈대가 가소롭기 그지없었다. 오히려 허하하하고 웃음이 나갔다. 세상이 뒤바뀌니 시비판단기준도 뒤바뀌고 가치판단기준도 뒤바뀐 그런 란장판 시대이다.
아니 저게 그래 반란파란 말인가? 일하기 싫어하고 도박만 놀던 저 망나니가 문화대혁명을 한다구 하니 세상은 바뀌여도 엄청 뒤바뀐것이다!
웬 일인지 산옥이가 불시에 어디론가 달려갔다. 산옥이는 자기집으로 달려갔다. 집에 뛰여든 산옥이는 엄마의 농짝문을 열고 물건들을 꺼냈다. 둥근 동고리를 열더니 이것 저것 뒤지다가 곰방술과 편지 한통, 그리고 지난번 의란향 구룡에 가서 받아온 정상덕의 확인서를 가지고 발딱 일어났다. 원자폭탄을 얻은 그런 기분이였다.
산옥이는 그 걸음으로 학교운동장에 달려갔다. 가자 마자 산옥이는 연단에 올라갔다. 연단에 올라간 산옥이는 자기 엄마의 목에서 《국민당 가족》이라는 패쪽을 와락 벗겨서 내동댕이쳤다. 엄마는 너무 놀라 앞으로 쓰러졌다.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여 어쩔줄을 모르고 있다.
그때 산옥이는 마이크를 뺏아 들고 앞에 나섰다. 강굴강굴 고수머리를 뒤로 힌들 제끼고 가슴을 내뻗치고 당당히 나섰다.
《여러분, 제가 바로 혁명렬사 방민관의 딸 방산옥입니다. 남청숙의 딸 방산옥입니다. 뭐 우리아버지가 국민당에 포로 되었다구? 그리구 우리 엄마가 국민당 가족이라구? 허튼 개소리 그만하라! 여기에 증거가 있습니다. 》
산옥이는 자기 호주머니에서 무엇을 꺼내여 머리우에 높이 추켜들었다. 그것은 누런 동으로 만든 곰방숟가락이였다. 곰방술은 해빛에 반짝 반짝 빛나고있었다.
《바로 이 곰방숟가락, 이 곰방숟가락이 우리 아버지가 저한테 물려준 유물입니다. 조선전쟁에 나가서 저한테 보내준 유물입니다. 여기에 그때 곰방숟가락을 보낸다는 편지도 있습니다.》
투쟁을 하던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하였다. 민병패장이라는 그 리수길이라는 자가 다시 소리쳤다.
《그래 조선에 나갔다는게 왜 돌아오지 않는가? 죽었으면 렬사증이 와야하지 않는가? 렬사증이 없는걸 봐서 이건 뛸데 없는 포로가 된거야! 포로가 되였으면 그 때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있었는데 포로가 너무 많아서 모두 대만으로 끌려 갔으니 국민당이 아닌가?》
사람들은 또 다시 술렁이였다. 도대체 어느 말을 믿어야 하는가? 그때 산옥이가 허하하하 사내처럼 웃으면서 다시 앞에 나섰다.
《여러분, 사실은 웅변보다 낫다고 합니다. 문화혁명을 한다는게 이런 거짓말로 사람을 모함한단 말입니까?그래 문화혁명이란게 거짓말 혁명인가? 여러분 여기 증실재료가 있습니다. 의란향 구룡촌에 정상덕아저씨와 태양향 중평촌 박광룡아저씨가 우리 아버지가 총탄에 맞아 쓰러진것을 직접 보았다고 증실하였습니다. 눈깔이 있으면 자기 두 눈깔로 여기 나와서 보란 말이야!》
《거짓말이야! 그럼 렬사증을 내놓으란 말이야!》
《기디려! 렬사증은 이제 곧 내려올것이다!》
투쟁구호소리는 갑자기 허하하하하 웃음소리로 바뀌였다. 사람들은 하나둘 투쟁마당에서 흩어져 갔다. 민병패장은 개를 달아매는 소리를 치면서 《계급투쟁을 절대 잊지 말자1》고 고래고래 구호를 불러댔다.
23.결혼한 산옥이
산옥이는 문화혁명 그 복새판에 1969년도에 대학을 졸업하고 흥안병원에 배치받았다 산옥의 어머니 남청숙의 몸은 날따라 못하여져 갔다. 하루는 엄마가 산옥이를 불러놓고 말하였다.
《산옥아, 너 이 에밀 그만 기다리게 하면 안되니?》
《뭘요?》
《너두 인젠 나이 퍼그나 되였지. 이 에미두 기다리다가 목이 빠져 죽겠다. 나두 사위를 맞구 싶구 손자 손녀두 안아보구 싶구나.》
산옥이는 아무말도 못하고 어머니만 멍하니 쳐다 보았다. 어머니의 소원이다. 내가 무슨 큰 사람이 되겠다구 어머니의 간절한 그 소원두 풀어 못 드린단 말인가?
공부에선 그같이 꼼꼼한 산옥이는 련애와 결혼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별로 생각지도 않았다 그렇게 데면데면하였다 그러나 오늘 어머니의 소원을 풀어 드려야 한다
그래서 산옥이는 어떻게 되여 필충극을 떠올리였다 필충극과의 인연은 실로 우연하게 맺어지였다.처음 고중때 함께 선전 활동을 한적이 있다.다음 대학교 동창들이 산옥이네 집에 을 하러 다닐 때부터 필충극은 따로운 생각이 있은것 같았다. 그 다음 화극를 보고 필충극이 의학원까지 산옥이를 바래다준 일, 그리고 고맙다는 편지를 써서 필충극의 호기심을 자아내게 한 일이다.
하지만 산옥이는 공부만 하면서 이런 일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그러나 필충극은 부지런히 의학원동창들과 함께 산옥이네 집에 드나들었다.1964년 10월 5일 친구들이 산옥이네 집에 왔다가 돌아간 후였다 필충극은 남몰래 다시 와서 산옥이를 불려냈다.
그러나 산옥이는 그게 무슨 말인가 여기면서 확답을 피하고 말았다. 그후부터 필충극은 산옥이네 집에 드나들면서 산옥의 엄마와 말동무가 되여 둘이서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곤 하였다.
어느날 산옥의 외삼촌이 놀러왔다 마침 필충극도 산옥이네 집에 있었다.음식상을 차려놓고 어머니는 외삼촌에게 필충극을 소개하였다.
외삼촌은 어머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뜨고 말았던것이다. 산옥이는 산옥이로서 외삼촌이 필충극이 마음에 안들어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하지만 이렇다 저렇다 말을 안하고 난처한 이 국면을 그저 지나쳐 버리고 말았다.
문화혁명기간에 안쪽의 명문대학 학생들이 연길에 많이 왔었다 그런 대학생들 가운데서도 산옥이 한테 청을 든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그러나 산옥이는 그런 인재들은 졸업하고 모두 안쪽에 배치 받는다고 생각하고 도리머리를 쳤다.아버지도 없는 판에 딸로서 어머니 곁에 있어야 한다고 산옥이는 생각하였던것이다.
필충극은 어떤가? 미술을 전공하는 사람으로 어딘가 꼭 성공할것 같은 그런 사람으로 안겨왔다.그리고 필씨 가문에서 셋째 아들인것 만큼 우리집을 문제 없이 돌보아 줄것 같았다.우리집은 웃음이 없는 집인데 예술을 하는 필충극은 우리집에 웃음을 가져 올수가 있지 않을가? 키도 1메터 72센치, 인물체격도 름름한게 안성맞춤이라고 산옥이는 자기절로 판단하였다.
이것은 순전히 산옥의 판단이였다.어느날 필충극을 찾아보고 온 산옥이가 말하였다.
《엄마, 우리 결혼하기로 하였어요.>>
어머니는 손벽치며 반가와 했다.그러면서 산옥의 손을 굳게 잡고 말하였다.
산옥이는 결혼은 간단히 하고싶었다.뭐 혁명적이라기보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미안하고 시름시름 앓는 어머니가 걱정되였기때문이였다.
그래서 1970년 1월 1일 산옥이와 필충극은 결혼하게 되였다. 벼락결혼이였다. 어머니는 가정형편이 이렇다 보니 무슨 결혼차비에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산옥의 앞에 베 2필을 꺼내 놓았다.그 베는 산옥이가 어릴 때 어머니께서 직접 베틀에 마주 앉아 짠 베였다.
《산옥아, 이건 내가 직접 짠 디딜베야. 지금은 돈을 주고도 살수 없는거여.》
아버지 없이 결혼하는 딸에게 너무 야속하다고 생각된 남청숙은 흑흑 흐느끼기가지 하였다.
《산옥아, 이 에민 한다하는 재봉사였어. 그러나 이 에미는 시집 가는 너한테 옷 한벌 지어주지 못하겠구나.》
《어머니…》
《낸들 왜서 내 손수 너한테 옷을 지어 주고싶지 않겠느냐? 그러나 네가 내처럼 기구한 사람이 될가봐 그것부터가 근심되구 걱정되구 무서웁구나. 너는 절대로 이 에미처럼 살아서는 아니 된다...》
《엄마, 말씀 말아요》
당금 시집 가는 산옥이는 어린애가 되여 어머니의 목을 끌어안고 슬피 슬피 울었다. 어머니와 딸은 옆에 사람들이 있는것조차 아랑곳하지 않고 오래 오래 울다가 서로 서로 대방을 밀어놓고 울음을 그치고 말았다.
우리 결혼식을 위하여 고모가 직접 와서 자기 손으로 과자를 굽고 과줄을 만들었다.일가 친척들 총동원되여 두부도 앗고 찰떡도 치고 하였다.
결혼날 민병패에서 찾아왔다 물론 그 사이 리수길이 도주병이라는것이 판명되여 민병패 패장에서 떨어지고 말았다.그러나 산옥이는 민병패 요청을 밀막아 버리였다. 혁명렬사인 아버질 국민당포로로 취급한 인간들을 성스러운 결혼식에 그림자도 비끼게 하고 싶지가 않았던것이다.
그런데 민병패에서는 결혼식은 혁명적으로 하여야 한다면서 전통적으로 하면 자기네가 와서 반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것이였다.
어머니는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맞서 나섰다.
결혼식날,어머니는 신랑이 걸어 들어올 길에 디딜베를 쭉 펴놓았다.누런 금빛 길이 신랑을 기다리고있었다 그 길로 신랑 필충극은 름름히 걸어 들어왔다.
신랑상에는 입에 빨간 고추를 문 수탉이 놓여있고 돼지고기며 소고기,그리고 고사리 채,록두지짐, 또 꽃과자며 과줄이며 사과며 귤같은 괴일들이 보기좋게 차려져 있었다.이만 하면 한다하는 잔치상으로 손색이 없을정도였다.
남청숙은 신랑이 상을 받게 되자 뜨락에 나서서 민병들이 쳐들어 오지 않나 직접 망을 보았다.만약 민병들이 들이닥치는 날이면 네 죽고 내 죽고 해볼 잡도리였다.그런데 민병들은 그림자도 얼씬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신랑을 평가하기시작하였다.
평가들이 구구하였다 그러나 모두 신랑을 춰주는 그런 소리들이였다.그런 평가들은 대체로 신랑에게 알 맞는 그런 반가운 소리들이였다.신랑은 점잖게 앉아서 처가집에서 부어주는 술을 두손으로 공손히 받아서 시원스럽게 들이 마시였다.그리하여 필충극은 오늘부터 정식 렬사 방민관의 사위로 사랑하는 방산옥의 남편으로 된것이다.
24.인심이 천심
산옥이가 아버지를 찾기 위하여 아홉살에 조선까지 갔다 오고 그 후에는 아버지를 찾자고 사방으로 돌아 다니며 숱한 고생을 한다는 소문이 한입 건너 두입으로 오래 오래 멀리 멀리 파다히 퍼져갔다.
그러던 어느날 50대 손님이 산옥이를 찾아왔다.
《동무가 방산옥이라는 의삽니까?》
《예. 무슨 일로?》
손님은 황호웅이라고 하는 제대군인이였다. 항미원조전쟁에 나갔다가 돌아와서 주량식국에 배치받아 일하다가 5.7간부로 북대촌에 하향하여 로동단련을 하는 분이란다.
《내가 방산옥선생이 아버질 찾아 오래동안 고생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 왔습니다.》
《그래요?》
《들어보니 수고는 많이 한것 같은데 제대로 하지 못한것 같더구만.》
황호웅이라는분은 말차림을 낮추며 관심조로 말하는것이였다. 산옥이는 호기심이 동하였다. 그래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단 말인가? 산옥이는 다가들며 다음 말을 애타게 기다리였다.
《자료가 다 있겠지?》
《자료요?》
《그래 아버지의 일반정황 같은거…례하면 이름 생년월일, 참군한 날자, 조선에 나간 날자, 부대번호, 직무,희생된 고장 등…》
《예 그런건 다 있습니다.》
《그리고 증실재료 같은거……》
《그런거 있었댔는데 모두 조선에 보냈습니다.》
《조선 어디에?》
《조선 정부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회답이 없습니다. 》
《그래 그렇게 보낸게 어떻게 회답이 오냐 말이오?》
산옥의 두 눈은 둥그래졌다. 묘한 수가 있는 모양이다. 도대체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황호웅아저씨가 단번에 쫙 말해 주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싶었다.
그러나 아주 침착하고 점잖은 황아저씨는 하나하나 차견차견 말하는것이였다. 전쟁이 끝난후 제대되여 조선에서 2년간 렬사들의 문제를 취급하다가 돌아오셔였다는것이였다.
편지는 개인과 개인관계로 하여야 하지 이렇게 정부 대 개인관계로 하여서는 아니 된단다. 그럼 누구에게 해야 하는가? 놀랍게도 최용권 보위부상에게 하여야 한다는것이였다. 최용권 보위부상은 중국 황포군관학교 졸업생으로 조선에 나가서 보위부상을 하는 중국통라고 하였다. 그분은 지금 조선 국방부에서 일하는데 꼭 도와 줄것이란다.
여기까지 이야기 한 황아저씨는 이제부터 산옥이를 도와주겠다고 하였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
울음이 헤푼 산옥이는 황아저씨의 손을 잡고 또 눈물을 흘리였다. 그리고 너무 너무 고마와 흐윽 느끼까지 하였다. 황아저씨는 산옥이를 이윽히 바라보았다. 아홉살부터 아버지의 생사여부를 알려고 떨쳐나선 산옥이, 그로부터 30살 넘어 먹은 오늘까지 아버지의 명예를 위하여 앞뒤로 죽도록 달아다니는 산옥이.
이것은 산옥이가 자기의 아버지를 위한 사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목숨바쳐 싸운 혁명렬사를 위한 성스러운 일이다. 그것은 세상에서 더없이 정의로운 일이다. 이런 일을 그래 그 누군들 도와주지 않으리!
《산옥이,인심이 천심이란 말을 들어 보았소?》
《예, 전 이래뵈여두 8살에 천자문을 다 떼였어요.》
《그래!? 산옥이, 사람들은 산옥이를 도와줄거라구. 산옥인 렬사 아버지를 꼭 찾을 거라구!》
《예!? 정말이지 예?》
그 말을 들은 산옥이는 나래가 돋친것 같았다. 이제 앞이 환히 열리는것 같았다.
25.로할머니가 데려간 어머니
그래서 산옥이는 황아저씨의 말대로 의란 구룡에 있는 정상덕 아저씨를 다시 찾아갔다.
《아니, 우리 산옥이가 어떻게 또?》
《정아저씨 이렇게 자꾸 찾아 와서…》
그려면서 산옥이는 다시 찾아 오게 된 까닭을 상세히 이야기하였다 특히 황호웅아저씨의 말을 하면서 신심이 생긴 신옥이였다 정상덕아저씨는 알았다면서 흔쾌히 확인서를 써주었다
확인서를 받아 쥔 산옥이는 정아저씨한테 다가 앉으며 물었다
《아저씨, 혹시 리수길이라는 사람 알아요?》
《리수길?》
《예, 개뼈대 같은 사람…》
《오…알만해. 너 촌 민병 패장이지?》
《예, 그 사람이 글쎄 우리 아버지를 국민당 포로…》
《뭐라구? 다시 말해, 뭐라구?》
《국민당 포로!》
《닥쳐! 우리가 너네 마을을 찾아갔을 때 민병패 패장이라구 하여서 너 집을 물어 본적이 있었어. 어디서 딱 본것같은 사람이였는데…》
《그래서요?》
《집에 와 생각하여보니 그 놈이 바루 도주병이였어!》
《뭐 도주병이라구요?》
정상덕아저씨는 장강을 건너자고 참대로 돛배를 만들 때 우연히 날아오는 포탄파편에 얻어 맞아 어깨쭉지를 상하여 남하작전에두 참가 못한 년석이란다. 후방병원에 남아 전쟁터로 나가지 못하였단다.
우리 아버지네가 해남도까지 갔다가 돌아올 때 찾아보니 병원에서 도주하였더라는것이였다. 아, 괘씸한 놈! 해방전쟁에도 끝까지 참가하지 못한 놈이 뭐 조선전쟁에 참가하였다고 나발 분 놈! 산옥이는 그저 이가 갈리고 주먹이 불끈 쥐여졌다.
방산옥은 오늘 이외의 수확을 얻어가지고 돌아와서 황아저씨와 함께 1972년 9월 8일에 조선에 편지를 띄웠다.
그래도 감감무소식이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판국인가? 엄마는 날따라 건강이 못해간다. 그날 으로 투쟁 맞은 다음부터 엄마는 가끔가다가 깜짝깜짝 졸도하군 하였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아버지를 기다린다. 살아서 돌아 못 오면 렬사증이라도 언제 오나 손꼽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런데 1974년 8월에 조선인민군 우편함 3310에서 할아버지 방만현 앞으로 편지가 왔다. 그렇게 기다리던 편지이다. 28년간 기다리던 편지가 아닌가?
자리에 누웠던 어머니는 너무 놀라 아니, 너무 기뻐 자리를 차고 벌딱 일어나 앉았다.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써있었다.
-방만현님
지금 살아 계신다면 주소를 다시 확인하려 합니다. 확인자 자신의 자필로 아래와 같은 내용을 써보내 주기를 바랍니다.
희생자와의 관계, 희생자와 확인자의 부대관계, 전투에 참가한 년월일, 소속부대에서의 직무, 전투지점, 전사당시 목격내용: 묘지, 장소 등을 구체적으로 써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확인자의 당시 소속, 직위, 직무, 현재소속기관, 당조직의 확인서도 첨부하여 주십시오. 이상 확인서는 3매로 작성하여 우리 3310우편함으로 보내주기 바랍니다. 방산옥은 상기 요구사항대로 밤잠을 자지 않고 자료를 작성하여 얼른 조선에 보내였다. 그래도 소식은 오지 않았다.1974년 로 할머니는 90세를 넘긴 몸으로 그렇게 기다리던 손자의 소식도 듣지 못하고 한 많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버지의 소식을 그렇게 기다리던 어머니도 1974년 10월 15일 끝내 아버지의 소식을 듣지도 못하고 급성뇌출혈로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모두들 로할머니가 어머니를 데려갔다고들 하였다.
아, 고생하였으면 얼마나 고생하시고 속을 태웠으면 얼마나 속을 태운 어머니시던가! 그렇게 기다리던 렬사증, 이제 금방 내려올 렬사증도 받아보지 못하고 떠나가신 어머니, 산옥이는 어머니를 부르고 부르고 또 불렀다. 그러나 어머니는 대답 한마디 못하고 저 화장터의 꿀뚝에서 하얀 연기로 하늘나라로 사라져 가시였다. 한많은 이 세상을 영영 하직하고 말았다.
26.렬사증
드디여1974년 10월 조선인민군 제539부대에서 방민관사망통지서가 날아왔다.
사망통지서
성명:방민관
생년월일:1924년 5월 12일
참군날자:1947년 5월 2일
상기 동지는 영광스러운 항일무장투쟁의 빛나는 혁명전통을 계승한 조선로동당의 혁명적무장력량인 조선인민군군관(3급)으로서 조국보위의 성스러운 임무를 수행하던 중 1950년 7월 9일 전사되였음을 알려 드립니다.
묘지장소:충청북도 단양
조선인민군 제539군부대
1974.10.21
1974년 10월 22일 조선에서 박수산아저씨의 편지가 날아왔다.이게 몇년만인가? 조선에 나간 박수산아저씨가 어떻게 되여 이런 편지를 썼을가? 산옥이는 급급히 피봉을 뜯었다.
산옥이는 편지를 가슴에 안고 통곡하였다.고마운 수산아저씨! 그런데 삼촌이 찾아 뵙자는 어머니가 이미 저 세상으로 가고 말았으니 산옥이는 더더구나 슬퍼서 가슴치며 울고 울고 또 울었다.
1975년도 10월 30일에는 박수산 아저씨의 말대로 그렇게 기디리고 기다리던 방민관의 렬사증이 내려왔다.
렬사증명서
방민관동지는 항미원조전쟁중에 희생된 렬사로 인정한다. 이에 이 증서를 발급하면서 물질적으로 대우한다.
중화인민공화국 민정부
1975.10.30
아, 그렇게 기다리던 렬사증, 로할머니가 기다리다가 못 보시고 가신 그 렬사증,어머니가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가 끝내 못 보시고 간 그 렬사증! 렬사증! 종이 한장으로 된 이 렬사증!
그러나 렬사증, 그것은 방민관이 목숨바쳐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영용히 씨우다가 전사하였다는 증명서이고 렬사증, 그것은 남청숙과 방산옥이 28년간 악전고투하여 찾아온 노력의 결과에 대한 증명서이며 렬사증, 그것은 그렇게 기다리다가 먼저 돌아가신 남청숙에게 남편 방민관렬사가 손수 받쳐 올리는 회보서가 아니겠는가! 아, 렬사증,빛나는 렬사증이여!
* * *
여끼까지 장장 4시간이나 걸쳐 목이 메여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하던 방산옥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로부터 33년 지난 오늘 이제는 일흔을 넘긴 파파 늙은 할머니로 된 방산옥이다. 그 사이 방산옥은 의학전문가가 되여 지금 병원을 차리고 오늘도 보람찬 여생을 빛내가고 있다.
그런 방산옥은 오늘 이야기 할 때 손에 동으로 만든 곰방숟가락을 그냥 쥐고있었다. 울다가도 그 곰방숟가락을 들여다 보고 울음을 삼키고는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지금 그 곰방숟가락을 들고 방산옥은 커피를 타기 시작하였다. 커피를 타면서도 눈에서는 굵은 눈물 방울이 그냥 하염엾이 흘러 내리였다. 덕지 큰 사람치고는 눈물이 퍼그나 헤푼 사람이였다.
그것도 그럴것이 방산옥에게는 이 곰방숟가락이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유일한 유물이였다.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그런 유물이였다. 아버지는 비록 돌아가셨지만 이 유물만은 두고 두고 영원히 기념할 그런 유물이였다.
방산옥은 커피를 탄 물을 젓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얼마나 오래젓는지 나는 의심까지 갔다. 무엇때문에 저렇게 오래 저을가? 그래서 두번째 고뿌에 커피를 탈 때 나는 의식적으로 몇번 젓나 속으로 헤여보았다. 하나, 둘, 셋, 넷…. 아, 28차! 아버지를 찾아 동분서주한 그 28년, 아버지의 렬사증을 찾아 악전고투한 그 28년!
방산옥은 그 28년을 추억하며 아버지를 그리고, 그 28년을 추억하며 어머니를 생각하며 커피를 마시고 마시고 또 마시며 오늘까지 살아 왔다고 하였다.
2017.5.20
방산옥은 그 28년을 추억하며 아버지를 그리고, 그 28년을 추억하며 어머니를 생각하며 커피를 마시고 마시고 또 마시며 오늘까지 살아 왔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