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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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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0    황지우 시모음 댓글:  조회:703  추천:0  2022-09-11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렬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출가하는 새                                                                           새는 자기의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자기가 앉은 가지에 자기가 남긴 체중이 잠시 흔들릴 뿐 새는 자기가 앉은 자리에 자기의 투영이 없다. 새가 날아간 공기 속에도 새의 동체가 통과한 기척이 없다. 과거가 없는 탓일까. 새는 냄새나는 자기의 체취도 없다. 울어도 눈물 한 방울 없고 영영 빈 몸으로 빈털터리로 빈 몸뚱아리 하나로 그러나 막강한 풍속으로 거슬러 갈 줄 안다. 生後의 거센 바람 속으로 갈망하며 꿈꾸는 눈으로 바람 속 내일의 숲을 꿰뚫어 본다.         거대한 거울                                               한점 죄(罪)없는 가을 하늘을 보노라면 거대한 거울, 이다: 이번 생의 온갖 비밀을 빼돌려 내가 귀순(歸順)하고 싶은 나라: 그렇지만 그 나라는 모든 것을 되돌릴 뿐 아무도 받아주지는 않는다 대낮에 별자리가 돌고 있는 현기증나는 거울         재앙스런 사랑                                             용암물이 머리 위로 내려올 때 으스러져라 서로를 껴안은 한 남녀; 그 속에 죽음도 공것으로 녹아버리고 필사적인 사랑은 폼페이의 돌에 목의 힘줄까지 불끈 돋은 벗은 生을 정지시켜놓았구나 이 추운 날 터미널에 나가 기다리고 싶었던 그대, 아직 우리에게 體溫이 있다면 그대와 저 얼음 속에 들어가 서로 으스러져라 껴안을 때 그대 더러운 부분까지 내 것이 되는 재앙스런 사랑의 이 더운 옷자락 한가닥 걸쳐두고 싶구나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한 말은 아무리 하기 힘든 작은 소리라 할지라도 화산암 속에서든 얼음 속에서든 하얀 김처럼 남아 있으리라         거룩한 식사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을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 세상 떠넣어 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뼈아픈 후회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神像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을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고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初經을 막 시작한 딸 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줄 수도 없고 생이 끔찍해졌다 딸의 일기를 이젠 훔쳐볼 수도 없게 되었다 눈빛만 형형한 아프리카 기민들 사진 ; "사랑의 빵을 나눕시다"라는 포스터 밑에 전가족의 성금란을 표시해놓은 아이의 방을 나와 나는 바깥을 거닌다, 바깥 ; 누군가 늘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옷걸리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버리고 싶은 생 ; 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 글쎄,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 먼 눈으로 술자의 水位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폐인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 이리라         거울에 비친 괘종 시계                           나,이번 생은 베렸어 다음 세상에선 이렇게 살지 않겠어 이 다음 세상에선 우리 만나지 말자   ......     아내가 나가버린 거실 거울 앞에서 이렇게 중얼거리는 사나이가 있다 치자 그는 깨우친 사람이다 삶이란 게 본디,손만 댔다 하면 중고품이지만 그 닳아빠진 품목들을 베끼고 있는 거울 저쪽에서 낡은 쾌종 시계가 오후 2시가 쳤을 때 그는 깨달은 사람이었다 흔적도 없이 지나갈 것 아내가 말했었다 "당신은 이 세상에 안 어울리는 사람이야 당신,이 지독한 뜻을 알기나 해? " 쾌종 시계가 두 번을 쳤을 때 울리는 실내:그는 이 삶이 담긴 연약한 막을 또 느꼈다 2미터만 걸어가면 가스벨브가 있고 3미터만 걸어가면 15층 베란다가 있다 지나가기 전에 흔적을 지울 것 쾌종 시계가 들어가서 아직도 떨고 있는 거울 에 담긴 30여평의 삶:지나치게 고요한 거울 아내에게 말했었다:"그래,내 삶이 내 맘대로 안 돼" 서가엔 마르크시즘과 관련된 책들이 절반도 넘게 아직도 그대로 있다 석유 스토브 위 주전자는 김을 푹푹 내쉬고         발작                                                        삶이 쓸쓸한 여행이라고 생각될때 터미널에 나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싶다 짐 들고 이 별에 내린 자여 그대를 환영하며 이곳에서 쓴맛 단맛 다 보고 다시 떠날때 오직 이 별에서만 초록빛과 사랑이 있음을 알고 간다면 이번 생에 감사할 일 아닌가 초록빛과 사랑: 이거 우주 기적 아녀         일 포스티노                                               자전거 밀고 바깥 소식 가져와서는 이마를 닦는 너, 이런 허름한 헤르메스 봤나 이 섬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보라니까는 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으로 답한 너, 내가 그 섬을 떠나 너를 까마득하게 잊어먹었을 때 너는 밤하늘에 마이크를 대고 별을 녹음했지 胎動하는 너의 사랑을 별에게 전하고 싶었던가, 네가 그 섬을 아예 떠나버린 것은 그대가 번호 매긴 이 섬의 아름다운 것들, 맨 끝번호에 그대 아버지의 슬픈 바다가 롱 숏, 롱 테이크되고; 캐스팅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나는 머리를 박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떤 회한에 대해 나도 가도 가해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 땜에 영화관을 나와서도 갈 데 없는 길을 한참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휘파람 불며 新村驛을 떠난 기차는 문산으로 가고 나도 한 바닷가에 오래오래 서 있고 싶었다         당신은 홍대 앞을 지나갔다                        내가 지도교수와 암스테르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커피 솝 왈츠의 큰 통유리문 저쪽에서 당신이 빛을 등에 지고서 천천히 印畵되고 있었다. 내가 들어온 세계에 당신이 처음으로 나타난 거였다. 그것은 우연도 운명도 아니었지만, 암스테르담은 어떤 이에겐 소원을 뜻한다. 구청 직원이 서류를 들고 北歐風 건물을 지나간 것이나 가로수 그림자가 그물 친 담벼락, 그 푸른 投網 밑으로 당신이 지나갔던 것은 우연도 운명도 아닌, 단지 시간일 뿐이지만 디지털 시계 옆에서 음악이 다른 시간을 뽑아내는 것처럼, 당신이 지나간 뒤 물살을 만드는 어떤 그물에 걸려 나는 한참 동안 당신을 따라가다 왔다. 세계에 다른 시간을 가지고 들어온 사람들은 어느 축선에서 만난다 믿고 나는 돌아왔던 거다. 지도교수는 마그리트의 파이프에 다시 불을 넣고 나는 당신을 모른다. 당신은 홍대 앞을 지나갔다. 암스테르담을 부르면 소원이 이뤄졌을지도 모른다. 마그리트 씨가 빨고 있던 파이프 연기가 세계를 못 빠져나가고 있을 때 램브란트 미술관 앞, 늙은 개가 허리를 쭉 늘여뜨리면서 시간성을 연장한다. 권태를 잡아당기는 기지개; 술집으로 가는 다리 위에 자전거가 세워져 있었다. 그친 음악처럼.         소나무에 대한 예배                                      학교 뒷산 산책하다, 반성하는 자세로, 눈발 뒤집어쓴 소나무, 그 아래에서 오늘 나는 한 사람을 용서하고 내려왔다. 내가 내 품격을 위해서 너를 포기하는 것이 아닌, 너 잇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것이 나를 이렇게 휘어지게 할지라도. 제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이 地表 위에서 가장 기품있는 建木; 소나무, 머리에 눈을 털며 잠시 진저리친다         바깥에 대한 반가사유                                  해 속의 검은 장수하늘소여 눈먼 것은 성스러운 병이다 활어관 밑바닥에 엎드려 있는 넙치. 짐자전거 지나가는 바깥을 본다. 보일까 어찌하겠는가. 깨달았을 때는 모든 것이 이미 늦었을 때 알지만 나갈 수 없는 無窮의 바깥; 저무는 하루. 문 안에서 검은 소가 운다.          몹쓸 동경(憧憬)                                   그대의 편지를 읽기 위해 다가간 창은 지복이 세상에 잠깐 새어들어오는 틈새; 영혼의 인화지 같은 것이 저 혼자 환하게 빛난다. 컴퓨터, 담뱃갑, 안경, 접어둔 畵集 등이 공중에 둥둥 떠다니고, 천장에서, 방금 읽은 편지가 내려왔다. 이데올로기가 사라지니까 열광은 앳된 사랑 하나; 그 흔해빠진 짜증스런 어떤 운명이 미리서 기다리고 있던 다리를 그대가 절뚝거리면서 걸어올 게 뭔가. 이번 生에는 속하고 싶지 않다는 듯, 모든 도로의 길들 맨 끝으로 뒷걸음질치면서 천천히 나에게 오고 있는 그러나 설렘이 없는 그 어떤 삶도 나는 수락할 수 없었으므로 매일, 베란다 앞에 멀어져가는 다도해가 있다. 따가운 喉頭音을 남겨두고 나가는 배; 그대를 더 오래 사랑하기 위하여 그대를 지나쳐왔다. 격정 시대를 뚫고 나온 나에게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지루한 것이었다. 맞은편 여관 네온에 비추인 그대 속눈썹 그늘에 맺힌 것은 수은의 회한이었던가? "괴롭고 달콤한 에로스" 신열은 이 나이에도 있다. 혼자 걸린 독감처럼, 목 부은 사랑이 다시 오려 할 때 나는 몸서리 쳤지만, 이미 山城을 덮으면서 넓어져가는 저 범람이 그러하듯 지금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그대는, 이삿짐 트럭 뒤에 떨궈진 생을 두려워하지는 않는지. 신화와 뽕짝 사이 사랑은 영원한 동어 반복일지라도 트럭집 거울에 스치는 세계를 볼 일이다. 황혼의 물 속에서 삐걱거리는 베키오 石橋를 그대가 울면서 건너갔을지라도 대성당 앞에서, 돌의 거대한 음악 앞에서 나는 온갖 대의와 죄를 후련하게 잊어버렸다. 나는 그대 앞의 시계를 보면서 불침번을 선다. 그대 떠나고 없는 마을의 놀이터 그네에 앉아 새벽까지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다. 동경은 나의 소명받은 병이었다. 지구 위에 저혼자 있는 것 같아요. 라고 쓴 그대 편지를 두번째 읽는다.         시에게                                                   한때 시에 피가 돌고, 피가 끓던 시절이 있었지; 그땐 내가 시에 촌충처럼 빌붙고 피를 빨고 앙상해질 때까지 시를 학대하면서도, 딴에는 시가 나를 붙들고 놔주질 않아 세상 살기가 폭폭하다고만 투덜거렸던 거라. 이젠 시에게 돌려주고 싶어. 피를 갚고 환한 화색을 찾아주고 모시고 섬겨야 할 터인데 언젠가 목포의 없어진 섬 앞, 김현 선생 문학비 세워두고 오던 날이었던가? 영암 월출산 백운동 골짜기에 천연 동백숲이 한 壯觀을 보여주는디 이따아만한(나는 두 팔을 동그랗게 만들어 보인다) 고목이 허공에 정지시켜놓았던 꽃들을 고스란히 땅 우에, 제 슬하 둘레에 내려놓았드라고! 産달이 가까운 여자후배 하나가 뚱게뚱게 걸어서 만삭의 손으로 그 동백꽃 주우러 다가가는 순간의 시를 나는 아직까지 못 찾고 있어. 상하지 않고도 피가 도는 그 온전한 시를......         늙어가는 아내에게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주었지 그런 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 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렙토마이신을 한알 한알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곳은 비어 있는 만큼 그대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 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 묻힌 손으로 집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신 벗고 들어가는 그 곳                                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린 독신녀, 그곳에 가보면 틀림없이 베란다에 그녀의 신이 단정하게 놓여 있다 한강에 뛰어든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시멘트 바닥이든 시커먼 물이든 왜 사람들은 뛰어들기 전에 자신이 신었던 것을 가지런하게 놓고 갈까? 댓돌 위에 신발을 짝 맞게 정돈하고 방에 들어가, 임산부도 아이 낳으러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정돈하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뛰어내린 곳에 있는 신발은 생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것은 영원히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다만 그 방향 이쪽에 그녀가 기른 熱帶魚들이 수족관에서 물거품을 뻐끔거리듯 한번의 삶이 있을 따름이다   돌아보라, 얼마나 많은 잘못 든 길들이 있었는가 가서는 안 되었던 곳, 가고 싶었지만 끝내 들지 못했던 곳들; 말을 듣지 않는, 혼자 사는 애인 집 앞에서 서성이다 침침한 밤길을 돌아오던 날들처럼 헛된 것만을 밟은 신발을 벗고 돌아보면,생을'쇼부'칠수 있는 기회는 꼭 이번만은 아니다         두고 온 것들                                               반갑게 악수하고 마주앉은 자의 이름이 안 떠올라 건성으로 아는 체하며, 미안할까봐, 대충대충 화답하는 동안 나는 기실 그 빈말들한테 미안해, 창문을 좀 열어두려고 일어난다. 신이문역으로 전철이 들어오고, 그도 눈치챘으리라, 또다시 핸드폰이 울리고, 그가 돌아간 뒤 방금 들은 식당이름도 돌아서면 까먹는데 나에게서 지워진 사람들, 주소도 안 떠오르는 거리들, 약속 장소와 날짜들, 부끄러워해야 할 것들, 지켰어야만 했던 것들과 갚아야 할 것들; 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세상에다가 그냥 두고 왔을꼬! 좀더 곁에 있어줬어야 할 사람, 이별을 깨끗하게 못해준 사람, 아니라고 하지만 뭔가 기대를 했을 사람을 그냥 두고 온 거기, 訃告도 닿을 수 없는 그곳에 제주 風蘭 한점 배달시키랴?       제주 바닷가를 걸어간 발자국                         요즘엔 신문을 봐도 무슨 천문학자나 고고학자의 새로운 발견 같은, 그런 기사만 눈여겨보게 되대이. 南제주 대정 바닷가에서 5만년 전 舊石器人 발자국을 발견했다는 일면 톱기사를 식탁에서 읽다가 김치 썰던 주방용 가위로 스크랩 해두었어; 그때 한 인간이 빠르게 내 옆을 스쳐 지나가더라고, 어디 먹을 거 없나...... 하는 그런 필사적인 눈을 두리번거리면서 돌칼 들고 5만년 전의 바람 속으로 들어가는데 내가 맡은 바다냄새를 킁킁거리며 그 근처에서 풀을 뜯던 말들이 고개를 돌려 일제히 이쪽을 넘보는 거야 5만년 후의, 유리 깔린 내 식탁으을...... 5만년 뒤 헌 쓰리빠 같은 발자국 화석을 눌러놓은 몸이, 그 한 몸이 다음 몸을 무수히 복제하여 나에 이른 이 냄새, 수저를 들어올리는 손의 이 공기에 대한 느낌; 아, 그 맣은 새들이 내 발자국 주위로 성가시게 내려앉고 아, 살아야 해, 살아야 해!하면서 실은 나는 얼마나 많이 이미 살었등고! 게으르게 밥알 씹다가 뒤집어본 스크랩 뒷면, 전두환씨 아들의 괴자금 170억 사건; 나는 식어버린 된장국물을 후루룩 마셨어. 1952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나 1968년 광주제일고교에 입학했다. 1972년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여 문리대 문학회에 가입,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1973년 유신 반대 시위에 연루, 강제 입영하였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 1981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제적되어 서강대학 철학과에 입학했다. 1985년부터 한신대학교에서 강의하기 시작하였고 1988년 서강대학교 미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하였다. 1994년 한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있다가 1997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로 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沿革)》이 입선하고, 《문학과 지성》에 《대답없는 날들을 위하여》를 발표, 등단하였다.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는 형식과 내용에서 전통적 시와는 전혀 다르다. 기호, 만화, 사진, 다양한 서체 등을 사용하여 시 형태를 파괴함으로써 풍자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극단 연우에 의해 연극으로 공연되었다. 《나는 너다》(1987)에는 화엄(華嚴)과 마르크스주의적 시가 들어 있는데 이는 스님인 형과 노동운동가인 동생에게 바치는 헌시이다. 또한 다른 예술에도 관심이 많아 1995년에 아마추어 진흙조각전을 열기도 하고 미술이나 연극의 평론을 쓰기도 하였다. 《게눈 속의 연꽃》(1991)은 초월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노래했으며《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는 1999년 상반기 베스트셀러였다.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는 생의 회한을 가득 담은 시로 대중가사와 같은 묘미가 있는 시집이다. 이 시집에 실려 있는 《뼈아픈 후회》로 김소월문학상을 수상했고 시집으로 제1회 백석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시는 '시 형태 파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정치성, 종교성, 일상성이 골고루 들어 있으며 시적 화자의 자기 부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호탕하되 편안한 느낌을 준다. 또한 1980년대 민주화 시대를 살아온 지식인으로서 시를 통해 시대를 풍자하고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그 밖에 《예술사의 철학》 《큐비즘》등의 저서가 있고, 《겨울 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 》(1985),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1995), 《등우량선》(1998) 등의 시집이 있다.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1159    루이스 글릭Louise Gluck 시모음 댓글:  조회:982  추천:0  2022-09-11
루이스 글릭Louise Gluck은 미국 시인이자 수필가이다. 1943년 뉴욕에서 태어나 롱아일랜드에서 자랐다. 사라 로렌스 칼리지와 콜럼비아 대학을 다녔다. 1968년 '퍼스트본'으로 등단했다. 퓰리처상, 전국 도서 비평가 협회 상, 볼링 겐상 등 미국에서 많은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꾸밈없는 아름다움을 갖춘 확고한 시적 표현으로 개인의 존재를 보편적으로 나타냈다"라는 스웨덴 한림원의 찬사를 받으며 202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70대 후반을 넘긴 그녀는 이제 미국에서 활동하는 걸출한 서정시인으로 손꼽힌다. 그녀는 Firstborn(맏이), The House on Marshland(마실랜드의 집), The Garden(정원)(1976), Descending Figure(내려오는 사람) (1980), The Triumph of Achilles(아킬레스의 승리) (1985), Ararat(아라라트 산) (1990), 퓰리처 상을 수상한 The Wild Iris(야생 아이리스) (1992) 등의 시집을 냈다. 류시화 시인의 시선집에 「애도」 「눈풀꽃」 등의 시가 소개되었고, 아직 국내에 정식으로 번역된 시집은 없다.     학동들       아이들이 작은 가방을 들고 앞으로 나간다.   그리고 매일 아침 엄마들은   서로 다른 언어들의 단어같이 제각각 빨갛거나 금빛인   때늦은 사과들을 따 모으는 일을 한다.   그리고 다른 기슭에는   큰 책상의 뒤에서 이 헌납을   받는 이들이 앉아 있다.   그들 모두가 얼마나 질서정연한지   ㅡ아이들이 푸른색이나 노란색 오버코트를   걸어놓은 못들.   그리고 선생님들은 조용히 그들을 가르치게 될 것이고   엄마들은 한 방향으로 과수원을 소탕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적은 탄약을 매단 과일나무들의   회색빛 가지들을 끌어당기며. (1975년)       익사한 아이들     여러분 보시라, 그들은 사리분별이 없다.   그러므로 그들이 빠져 죽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   첫째 얼음이 그들을 빨아들이고   그리고는, 그들의 울 스카프들이   물에 빠진 그들 뒤를   겨우내, 마침내 그들이 조용해질 때까지 떠다녔지.   그리고 연못은 그것들을 여러 검은 팔들에게 안겨주었다.   그러나 죽음이 그들에게는 제각각 다가왔음에 틀림없어,   처음 태어날 때처럼.   마치 그들이 항상 눈멀고   무게감도 없었던 것처럼. 그리하여   나머지는 꿈처럼 펼쳐졌다, 램프와   테이블과 그들의 시신을 덮은   깨끗하고 하얀 천들이.   그럼에도 그들은 연못 위로 미끄러지던 미끼처럼   그들이 사용하던 이름들을 듣고 있다.   너희들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니   돌아와, 돌아와, 푸르고 영원한   물속에서 잃어버린 집으로.  (1980)      하강하는 숫자     1. 방랑자들     석양에 나는 거리를 나섰다.   태양은 쇠빛 하늘에 낮게 걸리고   차가운 깃털에 둘러싸였다.   만일 내가 당신에게   이 공空에 대해 쓸 수만 있다면 ……   커브 길을 따라, 한 무리의 아이들이   마른 낙엽 속에서 놀고 있다.   오래전, 이 시간에, 내 어머니도 어린 여동생을 안고   잔디밭 가에 서 계셨다.   모두 가버리고, 나는 어두워진 거리에서   죽음이 너무나 외롭게 만들어 버린   다른 자매와 놀고 있었다.   밤이면 밤마다 우리는 발을 내린 현관이   황금빛 자력의 빛으로 가득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왜 그녀는 불려가지 않았을까?   나는 내 이름이 종종 나를 지나 미끄러져 나오도록 두었다,   그것이 보호되길 바라긴 했지만.     2. 아픈 아이     -레이크스뮈세밈*     한 작은 아이가   아프다, 깨어났다.   때는 겨울, 한밤중을 지난   안트워프**에서, 나무 상자 위에서   별이 빛난다.   그리고 아이는   엄마의 품에서 포근하다.   엄마는 자지 않는다,   그녀는 찬란한 박물관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봄이 되면 아이는 죽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딸아이를 혼자 두는 것 ……   기억도 없이,   외로이 두는 것은 잘못, 잘못이다.   다른 이들이 얼굴에서 검은 페인트를 긁어내며   공포에 질려 깨어날 때.      3. 내 자매를 위하여     저 멀리서 내 자매가 작은 침대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죽은 자매들도 그와 비슷했지만,   항상 마지막은 침묵이었다.   왜냐하면, 제아무리 오래 땅속에 누워 있어도   그들은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나뭇잎들이 떨어트릴 정도의   너무나 작은 나무 바아를 누르면서 불안하게 남아있을 것이니.   그런데, 만일 그녀가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면,   굶주림의 외침이 시작되리.   나는 그녀에게 가봐야 해,   아마 내가 부드럽게 노래한다면   그녀의 피부는 하얗게 바뀌고   그녀의 머리는 검은 깃털로 덮이게 될 터이니  …… (1980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국립 박물관,「아픈 아이」는 밤중에 아픈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를 그린 유화다.   **벨기에의 도시.       가짜 오렌지*      그것이 달이 아니라고 내가 늘 말했지.   마당을 밝히는 것은   이 꽃송이들이야.   나는 그것들이 싫어.   내가 섹스를, 내 입을 틀어막는   남자들의 입, 남자들의   (순간)마비되는 몸뚱아리……   그리고 늘 터져나오는 비명   저열하고 굴욕적인   합체의 전제를 …… 싫어하듯이   그것들이 싫어.   오늘밤 내 마음속에서   나는 듣는다, 오르고 오르다 마침내   옛 자아로, 지친 반항심으로   찢어져 들어가는 하나의 소리로 합해진   질문과 따라오는 대답을. 우리가 속았다는 걸.   너는 아니?   그리고 가짜 오렌지의 향이   창을 통해 흘러들어오지.     내가 어찌 쉴 수 있겠어?   세상에는 아직   그 냄새가 남아있는데   내가 어찌 만족할 수 있겄어? (1985년)     *오렌지를 닮은 과실로 만든 시럽.       환상     나는 지금 중요한 것을 말하려 해, 매일같이   사람들이 죽는다는 것을. 그건 시작일 뿐이야.   매일, 장례식이 있는 집에서는, 새 과부와 새 고아가   생겨나지, 그들은 손을 모으고   이 새로운 삶을 해결하려고 애쓰며 앉아 있지.   그리고 그들은 공동묘지로 가 있지, 그들 중 몇은   난생처음일 거야. 그들은 사람들의 울음소리에,   때로는 울지 않음에 겁먹지. 어떤 이는 몸을 숙이면서,   다음에 어떻게 할지 그들에게 말해주지, 그것은   몇 마디 말을 해주거나, 때때로 열린 무덤에   흙을 끼얹는 것으로 전달되는 것이지.   그리고 그 후에는, 모두 집으로 돌아가서,   거기는 갑자기 방문객들로 가득해진다.   미망인은 카우치에 당당하게 앉아있고,   사람들은 그녀에게 다가가려고 줄을 서고,   때로는 그녀에게 악수를 청하고 때로는 포옹하기도 한다.   그녀는 모든 이들에게 고맙다고,   와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치례를 찾는다.   마음속으로, 그녀는 그들이 가버리기를 원한다.   그녀는 다시 묘지로 환자실로 병원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그녀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유일한 소망,   옛날로 돌아가고자 하는 바람. 그것도 아주 조금,   그녀의 결혼 때쯤으로 돌아가기를, 첫 키스 때까지는 아니더라도 (1990년)       야생 붓꽃     내 고통의 끝에   출구가 있었다.   바깥에서 내 말 들어줘, 네가 죽음이라고 부르던 것   나는 기억해.   머리 위에, 소음들, 흔들리는 소나무의 가지들.   그리곤 없어. 허약한 태양은   메마른 지표 위에서 깜박일 뿐.   검은 당에 묻히어   의식체로   살아남는 것은 끔찍스러워.   그리고 그렇게 끝났어. 즉 당신이 두려워하던 것,   혼령이 되어   말을 할 수 없는 것, 갑자기 끝나는 것, 뻣뻣한 흙이   약간 구부려(열어)주는 것. 그리고 내가 알아챈 것은   나지막한 관목 덤불 속으로 돌진해 들어가는 새들이 되었다는 것.   제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는 길을   기억하지 못하는 당신   나는 말한다, 다시 말해줄 수 있다고.   무엇이든 망각에서 돌아오는 것들은   목소리를 찾아 돌아오는 법이라고.   내 삶의 중심에서 거대한 분수가   솟구친다, 하늘빛 바닷물 위로   감청색 그림자를 드리우며. (1992년)       흰 백합들       한 남자와 여자가 그들 사이에   한 묘상의 별들처럼   정원을 가꿀 때, 여기서   여름 저녁 내내 머물었고   그러다보면 저녁이 그들의 두려움 때문에   추워지곤 했다. 모두   끝날 수 있었다, 파산도 가능했다. 모두 모두   잃어버릴 수 있었다, 향기로운 공기를 뚫고   좁은 기등들이   쓸모없이 솟구치고, 그 뒤로,   휘젓는 양귀비의 바다 ……   쉿, 사랑받았어. 얼마나 많은 여름을   돌아가기 위해 살았는지는 중요치 않아,   이 한 여름 우리는 영원에 들어갔어.   나는 당신의 두 손이   빛을 내뿜도록 나를 매장하는 것을 느꼈어. (1992년)       페넬로페의 노래     작은 혼이여, 영원히 나체인 작은 영혼이요,   내가 명한 대로 해 줘, 선반 같은   가문비나무의 가지 위로 기어 올라가,   그 꼭대기서 보초나 감시병처럼 주의 깊게   기다려봐. 그는 금방 귀가하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 인내심을 갖는 것이   너의 의무야. 너는 어느 쪽으로도 완전히   완벽하진 않았어, 너의 힘들어하는 몸으로   시에서 토론할 수 없는 것들을 해왔어.   그러니 저 트인 물, 반짝이는 바다 위로   헐떡이며 너의 검은 노래   부자연스러운 노래 마리아 칼라스처럼   정열적으로 불러봐. 그가   너를 원치 않을 거라고? 그의 가장 악마적인 식욕에   답할 수가 없어? 곧   그가 얼마 동안 돌아다녔던 온갖 곳에서 돌아올 거야,   머나먼 시간에서 햇빛에 그을린 모습으로,   그릴로 구운 치킨을 먹고 싶어 하며, 아 너는 그를 환영해야 해,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해   나뭇가지를 흔들어야지,   그러나 조심, 조심해   그의 아름다운 얼굴이   떨어지는 수많은 바늘 같은 잎들에 상하지 않도록. (1996년)     고요한 저녁       내 손을 잡아. 그러면 우리는   생명을 위협하는 숲속에 홀로 있게 되지, 거의 즉시   우리는 집에 있지, 노아*는   자라서 떠나갔어, 클레마티스가 수십 년이 지나서   갑자기 하얀 꽃을 피우네.   이 세상의 어느 것보다   나는 이런 저녁들을 사랑해, 우리가 함께 있고   하늘에 아직 빛이 남아있는 이 시간의 고요한 여름 저녁을.   그렇게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의 손을 잡았다,   그를 말리기 위함이 아니라 이러한 평화를   그의 기억에 각인시키기 위해서,   이런 점에서, 당신이 지금 휘저으며 움직이는 고요는   당신을 뒤쫓는 나의 목소리.  (1996년)     *시인의 아들     신생(Vita Nova)*     당신은 나를 구했어, 당신은 나를 기억해야 해.   한 해 중 봄, 젊은이들은 유람선을 타러 티켓을 끊으면서   웃음을 터뜨리지, 왜냐하면 공기가 사과 꽃으로 가득하거든.   잠에서 깨었을 때, 나는 똑같은 느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   나는 그와 같은 소리를 내 어릴 적에서 기억해냈어,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세상이 아름답다는 이유로 내는 웃음   저(젊은이들의) 웃음소리와 같은 것들.   루가노호수**. 사과나무 아래 탁자들.   색 깃발들을 들어 올렸다 내리는 선원들.   그리고 호수 가에서 한 젊은이가 모자를 벗어 물속으로 던진다,   아마 그의 애인이 (프로포즈를) 받아들인 듯.   결정적인   소리와 몸짓들.   더 큰 테마 앞에 놓인 외길 같은   후에는 쓰이지도 않고 묻혀있는,   멀리 떨어진 섬들. 작은 케익 접시를   내미는 내 어머니   ……내가 기억하는 한, 변치 않은   세부들, 생생하고 온전하고 빛에 드러난 적 없는   순간, 그리하여 나는 깨어났다, 고무되어   삶에 굶주린 내 나이에, 완전히 확신에 차서.……   테이블 곁에, 새 풀더미들, 연초록이   검게 현존하는 땅에 조각조각 파고든다.   확실히 봄이 내게 돌아왔다, 이번에는   연인으로서가 아니라 죽음의 사자로, 그러나   그래도 봄이다, 여전히 부드러운 의미를 갖는다. (1999년)     *단테의 최초의대작, 베아트리체에 대한 이상적 사랑을 그리고 있다.   **이태리와 스위스의 경계지역에 있는 호수       세상의 사랑       현시대의 관례들이   그들을 함께 모았다.   한때 무상으로 베풀었지만   자유를 억제하기 위한,   공식적인 제스처로   심장이 꼭 필요했던 (아주 긴) 시간이었다,   즉시 감동을 주지만   어쩔 수 없게 운명 지어진 신성화.   우리가 스스로에게 그러하듯,   다행히 우리는   이러한 요구사항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내 삶이 부서졌을 때   내가 내 스스로에게 상기시켰듯이.   그리하여 우리가 그토록 오래 간직했던 것은   살아있는   다소의 자원봉사였다.   이로부터 오랜 후에나   다른 쪽으로 생각하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인간이다 ……   심지어 선명성울 거부하며,   자기기만의 순간까지 가더라도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우리 스스로를 지키려 한다. 내가 언급한   신성화에서 그러하듯이.   그럼에도, 이 기만의 속에서   진정한 행복은 생겨난다.   그리하여 나는 이러한 실수들을   정확히 되풀이하리라고 믿는 것이다.   또한 내게는    그러한 행복이 몽상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어떤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게   생각되지는 않는 것이다.   그것은 그대로의 실체가 있다.   어떤 쪽으로든 끝이 날 것이니까. (1999년)       *위의 시는 계간『시인시대』「영미시 이야기 5」에서 발췌한 것으로 신원철 시인이 번역한 것입니다
1158    프랑스 현대시 또는 공허의 소명/김정란 댓글:  조회:673  추천:0  2022-09-11
세계시의 현장   프랑스 현대시 또는 공허의 소명/김정란     양차 대전을 직접 체험한 프랑스 시인들은 인간의 야만을 목격한 충격 속에서 시를 통해 현실로 다가가기 위한 직접 통로를 열 수 있기를 원했다. 전후의 시인들은 보다 문학적인 문제로 돌아간다. 시의 언어는 어떻게 실재와 관계를 맺는가? 실재 앞에서 시적 언어란 무엇인가? 늘 관념에 덜미를 잡혀있는 언어라는 것이 과연 관념의 저주를 따돌릴 수 있는가? 시란 가능한가? 언어 자체마저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새로운 말라르메라고 불릴만한 이 지성적인 시인들은 철학과 시론으로 단단히 무장을 하고, 이 가능성 없는 수수께끼 풀기에 도전한다. 언제나 보편의 영광에 이르려 하지만,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언제나 개인적 해결책밖에는 써낼 수가 없는ㅡ그것도 예외적인 몇몇 명석한 시인들이나 성공하는ㅡ시도. 그러나 그것은 현대시의 한계가 아니라, 현대시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계는 이미 초현실주의자들이나 레지스탕스 시인들처럼 공동 전선을 구축하고 싸울 상황이 아닌 것이다. 세계는 미분화되고 다양화되었다. 몇 개의 원칙에 따라 세계를 단순하게 재단하는 시대로부터 시인들은 멀리 와 버렸다. 따라서 시인들은 이제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세계 앞에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다가갈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시를 가지고 세계의 모든 문제 앞에 마주 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관여하는 어떤 특정한 문제에 관해 매우 전문적인 방식으로 대처한다. 그들은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 자신의 기량을 놀라울 정도로 완숙하게 다듬는다. 앙리 미쇼Henri Michaux와 르네 샤르René Char, 프랑시스 퐁쥬Francis Ponge의 뒤를 이어서 이브 본느프와Yves Bonnefoy와 미셀 드기Michel Deguy, 에드몽 자베스Edmond Jabès, 자크 루보 Jacques Roubaud 등이 언어의 실험실에서 치밀한 전략을 수립해내는 데 성공했다.   퐁쥬와 미쇼 이후에 특히 프랑스의 젊은 시인들은 초현실주의가 삶의 차원에서 시와 범벅으로 수용했던 운명의 문제를 시의 문제로 분화시키는 경향을 보인다. 그것은 어느 정도는 다다와 초현실주의의 요란스러운, 그러나 정작 시도 삶도 아무 것도 건지지 못한 종합적 해결 방식의 실패를 지켜보면서 생겨난 반작용일 수 있다. 프랑스 현대시의 주된 전통은 1968년 5월 혁명 이후의 여러 가지 문화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랭보보다는 말라르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어쩌면 차라리 보들레르의 귀환으로 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많은 시인들이 궁극적으로 가지고 있는 관심은 실존의 존재론적 경험이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대중성과 일상성은 프랑스 시를 크게 공략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많은 시인들은 더욱더 세련된 시론을 가꾸어 가며, 시의 근원적인 문제에 접근해 들어가기 시작한다.   당장 그렇게 시의 문제에 본격적으로 덤벼들었을 때, 프랑스 현대시인들을 엄습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언어의 에 대한 자각이다. 이것은 후기산업사회 안에서 시인들의 문화적 정체성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 누가 시인을 뮤즈의 영감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하겠는가. 그는 단지 , 그리고 에 불과하다), 그보다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인문과학의 총아로 등장한 언어학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그 이론의 생산자들의 거의 대부분이 그들의 동국인인 프랑스인들이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미 보들레르가 현대시의 문을 열면서 천재적으로 자각했던, 존재와 언어의 원초적 균열이라는 문제는, 다시 한 번 더, 이번에는 철학적인 긴박감과 더불어 시인들을 강타한다.   모든 명석한 프랑스 현대 시인들은, 그들의 경향이 덜 철학적이든, 더 철학적이든 상관없이, 모두 시 쓰기의 근원적 조건인 언어 문제에 민감하다. 말라르메적이라기보다는 랭보적인 열정에 기울어져 있는 앙드레 프레노André Frénaud 같은  전통의 시인도 프랑스 현대 시인들을 사로잡고 있는 이 무력한 에 강박적인 관심을 보인다. 시인들의 직업은 최초의 공허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하나의 부재로부터 시작되는 경험. 언어의 부재. 말하기의 불가능성. 오르페우스는 언제나 소리 내어 에우리디케를 부르는 순간, 즉 음성화한 기호를 발음하는 순간, 사랑하는 여자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호명된 에우리케는 다시 무無속으로, 캄캄한 지옥의 부재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모든 시인들은 언어가 사물의 부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한 인식이 프랑시스 퐁쥬로 하여금 을 들게 만든 것이다. 그에게 시인의 임무란 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언어의 저주를 따돌릴 수 있는 연장으로 시인이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언어뿐이다. 이처럼 시인은 언어의 매개에 의하여 세계에 맡겨진 채, 실재를 드러낼 수 없는 언어의 무능력을 경험한다. 시인이 된다는 것, 그것은 갈망에 있어서 첨예하며, 그 갈망의 실현에 있어서 무능력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어는 우리가 이름을 부르면서 합류하려고 하는 실재를 살해한다. 도망가는 에우리디케. 그것이 최초의 순간이다. 언어의 공허와 세계로부터의 분리. 로제 지루Roger Giroux는 이렇게 쓴다.     새 한 마리, 바다 위로 날아갈 때,   우리가 숨 쉴 때처럼,   이 하루의 끝에 대지의 기억을, 빛과 사랑의 기억을   실어 나른다. 한 마리 새...     눈들이, 손들이, 얼굴 전체가 만들어 내는 이 작품을 부수지 않고,     어떻게 이것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우리 안의 새와 언어를 죽이지 않고,   얼굴을 붉히지 않고, 침묵하지 않고 어떻게 이것을 말할 것인가...     모든 작품은 낯설고, 모든 말은 부재하는 것,   시는 비웃는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이 욕망을 경계한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을 하나의 공간에 대한 나의 욕망을.   이 명명하는 힘은 공허의 자질이다.     시인은 을 가진 자이다! 또는 아르멩 타르피니앙Armen Tarpinian.     말들의 피는 울부짖는다 소멸되는 의미의   십자가에 매달려   삶은 언제나 불완전한 말들 속에서 비틀거린다   나는 밤이 어둡다는 것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앙드레 뒤 부세 André du Bouchet도 이렇게 쓴다.     이 웅웅거리는 말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등잔불의 광채   투박한 대지   어쩌면 나에겐 참을성이 모자랐던 것일까   머리가 벌써 어두워진다.     그리고 이브 본느프와.     나는 부재에서 시도된 말일 뿐,   내가 몇 번씩 시도하더라도 부재가 그 모든 반복을 파괴하리라,   그렇다, 말에 불과하다는 것은 곧이어 소멸하리라는 것,   그것은 비극적인 임무, 덧없는 대관식     그러나 그들의 선배들이 이 경험을 고정시키는 것으로 만족했다면, 이 젊은 시인들의 대부분은 그 경험을 뛰어넘으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시는 언어의 무력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가장 , 순간의 진실이었으므로, 그들은 시에 기대어 언어의 저주를 따돌리려고 한다. 앙드레 프레노는 『우리의 치명적인 서투름Notre inhabilité fatale』이라는 매우 랭보적인 제목의 시집에서 작가의 목소리가 가지고 있는 을 재현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드러낸다. 샤르는 너무나 아름답게 그 갈망을 이렇게 묘사한다.     시는 분노에 가득 찬 상승이다. 시는 황폐한 낭떠러지의 놀이이다.     또는 본느프와. 그의 진지하고 무겁고 깊은 발성법:     부딪칠 것,   영원히 부딪칠 것 .   문턱의 미혹 속에서.   닫혀진, 문에.   텅 빈, 문장에.   라는 말들만을 일깨울 뿐인   쇠 속에서.     검은, 언어 속에서.     시인들은 언어를 탐험하고, 실험하고, 언어에게 질문을 던지고, 언어의 모든 의미와 모든 비밀을 언어에서 뽑아내려고 한다. 그들은 임의적이며, 애매하며, 다의적이며, 불안정한 언어들을 붙잡고 싸운다. 그들은 그렇게 변증법적으로 . 그 어떤 시인들의 시들보다도 이브 본느프와의 시들은 이 싸움을 깊이, 그리고 찬란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시적 시도는 전시대의 프랑스의 어느 시들보다도 더욱더 진지하며, 더욱더 성공적으로 시와 존재론을 통합하고 있다. 이들의 시적 태도의 근간이 이미 보들레르와 말라르메를 거쳐 마련된 것이라고는 해도, 이들의 시가 보여주고 있는 존재론적인 치열성과 극단적인 명석함을 프랑스 시사에서 유례가 없는 것이다. 엄격한 이론적인 연습에 의하여 정화된, 언어가 부서진 자리에서  방식으로 불리기 시작한 (이 아니라면) 그것은 무력함을 스스로 시인한 자가 부르는 겸손한 노래이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찬란한가.   피콩은 이 시인들의 시가 그렇게 고 진단한다. 이 시인들의 시의 또 다른 특징은 그것이 과 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전통적인 작시법을 포기하고 간결한 호흡의 시를 쓰는 자코테같은 시인들보다는, 비교적 전통적 작시법의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는 본느프와 같은 시인들에게서 더욱더 잘 나타나는데, 이러한 특징은 많은 프랑스 현대시인들이 시 한편 한편의 개별적 완성도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시집 한 권, 또는 일생을 두고 발표하는 시집 여려 권을 통해서 하나의 일관성 있는 세계 이해 방식이나 철학을, 아니면 적어도 자신의 시 세계의 굵은 선을 보이려고 시도한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한 시인들은 이제  또는 을 짓지, 을 짓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 소품 제작에는 별 흥미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그것은 노래 가사를 쓰는 작사가들의 일이지, 시인들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고 프랑스 현대 시인들의 시를 읽으면 무척 혼란스러워진다.   예를 들어서 장 그로장Jean Grosjean의 작품들은 한 편 한 편 읽으면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알 수가 없다. 그가 발표하는 연속적인 시들은 일련의 대화이기 때문에 그 어떤 단편도 우리에게 그 의미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 대화 속에서 시인은 상징들과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사용하여 강자들과 약자들을, 신과 인간을 대치시켜 놓고 있다. 각각의 말은 앞서의 말에 대답하며, 하나의 대답을 찾고, 비난하거나 정당화한다. 즉 그것은 지속되는, 매순간 자기 자신으로부터 태어나는 자신의 시적 정합성 위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심각하며 감동적인 웅변, 그러나 중간 중간 침묵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피콩의 표현을 따르자면 의 웅변. 성서의 어조가 단어의 놀라운 가벼움에 결합되어 있다.   카이로 태생의 유태인인 에드몽 자베스 역시 성서로부터 자양을 공급받고 있다. 모리스 블랑쇼에 의하면, 이 시인은 “행위와 시적 요구, 그리고 뿌리 깊은, 유태인이라는 자신의 소속에 대한 성찰”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이중 구조보다 더 놀라운 점은, 그의 시작품의 전체적인 이다. 『질문의 책Le Livre des questions』은 3부작으로, 그 뒤를 이어서 『야엘Yael』, 『엘리아Elya』와 『아엘리Aely』가 이어진다. 그의 작품 안에는 이야기, 대화, 자서전, 인용, 시, 책에 대한 성찰 등의 다양한 형태의 글쓰기가 들어있다. 잡다한 삶에 대한 성찰과 같은 잡다한 글쓰기? 그가 속해 있는 몇 개의 복잡한 세계를 통합하는 것처럼 장르들을 통합하는 글쓰기? 그리고 그 모든 다양한 갈래들이 궁극적으로 특별한, 계시적인 언어인 라는 의 큰 형태 속에 모여들어 종합을 이루는? 왜냐하면 『책으로의 귀환Le Retour au livre』을 쓴 이 시인에게 결국 모든 글쓰기의 궁극적인 목적은 를 획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시를 읽어 보면, 근원으로부터 뿌리 뽑혀 떠도는 그가 얼마나 통합에 대한 근심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근심의 절박성이 그의 시 전체를 하나의 로 만들게 했을 것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세느 주에 있는 바뇌Bagneux의 공동묘지에는 우리 어머니가 쉬고 계신다. 오래된 도시 카이로의 모래로 이루어진 공동묘지에는 우리 아버지가 쉬고 계신다.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죽은 도시 밀라노에는 내 누이가 묻혀 있다. 내 형이 묻혀 있는 로마에서는 그를 맞아들이기 위하여 그림자가 땅을 파냈다. 네 개의 무덤. 세 개의 나라. 죽음은 국경선이라는 걸 알고 있을까? 하나의 가족. 두 개의 대륙. 네 개의 도시. 하나의 언어. 공허의 언어라는 하나의 고뇌. 한데 모이는 네 개의 시선. 네 개의 실존. 하나의 비명소리. 네 번, 백 번, 만 번 외쳐지는 하나의 비명소리. - 그러면 무덤이 없는 사람은 어쩌지? 라고 랩 아젤이 물었다. - 우주의 모든 그림자들의 비명소리란다. 라고 유켈이 대답했다. (어머니, 나는 삶의 첫 번째 부름에 대답해요, 처음으로 발음된 사랑의 말에 대답해요, 그러면 세계는 당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요)     수학 교수인 자크 루보Jacques Roubaud의 텍스트도 산문과 시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다른 전략을 구사한다. 그의 작품은 로브그리예나 미셸 뷔토르의 작품처럼 구조주의적인 전략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자동 기술적으로 전적인 자발성에 던져져 있지도 않고, 절대적인 책의 구성을 보이고 있지도 않다. 오히려 시인은 작품이 여러 가지 방식의 독서를 버티어낼 수 있도록 작품을 만든다. 예를 들어서 그의 『∑』를 위해서는 네 가지의 독서 방법이 제안된다. 하나는 텍스트들의 집합으로 읽기, 다른 하나는 수학 기호들의 체계들 따라서, 세 번째는 바둑 놀이가 진행되는 방식에 따라서(361개의 텍스트들은 바둑의 180개의 흰 돌과 181개의 검은 돌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네 번째는 하나 하나의 텍스트들을 따로 읽는 것. 그러나 결국 시인 자신이 수립해 놓은 프로그램은 중요하지 않다. 독자 각자가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읽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립 자코테에게로 눈을 돌리면, 우리는 또 다른 통일성의 개념을 만나게 된다. 그에게 진정한 통일성이란 순간적인 결정화 속에서 나타나는 시의 통일성이다.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는 이 시인은 『부재하는 형상들이 있는 풍경Paysages avec figures absentes』이라는 산문집도 출간한 바 있고, 레오파르디와 무질과 릴케의 번역가로도 알려져 있다. 그의 언어는 침묵, 파괴할 수 없는 어떤 것, 또한 시인이 체험한,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것에까지 이른다. 말수 적은, 오랫동안 억제되어 온 깊은 언어가 향수에 어린 가을의 흐릿한 색채 속에서 떨고 있다. 엄숙하면서도 한없이 가벼운 목소리. 빛 쪽으로 성큼 나가지 못하는, 어두움 쪽에서 빛을 향해 서서 망설이는 위기에 가득 찬 릴케적 분위기. 겸손한 실재. 그러나 내면의 깊이 안에서 절묘한 광채를 부여받고 있는,  실재. 그의 시에서는 아주 좋은 의미에서의 상징주의자들의 메아리가 느껴진다. 소박하다는 점에서는 프랑시스 잠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시는 가능할까? 이 모든 진지한 노력들은 표피적이고 가벼운 후기산업주의 문화적 풍경 안에서 어떤 매우 전문적인 게토의 자기 위안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진지함은 그 자체로 인류의 자산이다. 그것이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인류가 멸망하기 전까지는.     김정란 1976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다시 시작하는 나비』 외 평론집 『비어있는 중심-미완의 시학』 외 현 상지대 문화켄텐츠학과교수
1157    이상 전집 1. 시 댓글:  조회:777  추천:0  2022-08-31
이상 전집, 권영민 엮음, 문학에디션뿔, 2009     정식 Ⅲ 웃을수있는시간을가진표본두개골에근육이없다   정식 Ⅳ 너는누구냐그러나문밖에와서문을두다리며문을열라고외치니나를찾는일심이아니고또내가너를도무지모른다고한들나는차마그대로내어버려둘수는없어서문을열어주려하나문은안으로만고리가걸린것이아니라밖으로너는모르게잠겨있으니안에서만열어주면무엇을하느냐너는누구기에구태여닫힌문앞에탄생하였느냐     내 마음에 크기는 한개 궐련 기러기만하다고 그렇게보고, 처심은 숫제 성냥을 그어 궐련을 붙여서는 숫제 내게 자살을 권유하는도다. 내 마음은 과연 바지작 바지작 타들어가고 타는대로 작아가고, 한개 궐련 불이 손가락에 옮겨 붙으렬적에 과연 나는 내 마음의 공동에 마지막 재가 떨어지는 부드러운 음향을 들었더니라.   처심은 재떨이를 버리듯이 대문 밖으로 나를 쫓고, 완전한 공허를 시험하듯이 한마디 노크를 내 옷깃에남기고 그리고 조인이 끝난듯이 빗장을 미끄러뜨리는 소리 여러번 굽은 골목이 담장이 좌우 못 보는 내 아픈 마음에 부딪혀 달은 밝은데 그 때부터 가까운 길을 일부러 멀리 걷는 버릇을 배웠 드니라.   *-삼차각설계도   숫자의방위학 **4 4 4 4 숫자의역학 시간성(통속사고에의한역사성) 속도와좌표와속도 ***4+4 4+4 4+4 4+4 etc    사람은정력학의현상하지아니하는것과똑같이있는것의영원한가설이다, 사람은사람의객관을버리라.  주관의체계의수렴과수렴에의한*오목렌즈.   4 제4세 4 1931년9월12일생. 4 양자핵으로서의양자와양자와의연상과선택.    원자구조로서의모든운산의연구.  방위와구조식과질량으로서의숫자와성상성질에의한해답과해답의분류.  숫자를대수적인것으로하는것에서숫자를숫자적인것으로하는것에서숫자를숫자인것으로하는것에서숫자를숫자인것으로하는것에  (1 2 3 4 5 6 7 8 9 0 의질환의구명과시적인정서의기각처)    (숫자의모든성상 숫자의모든성질 이런것들에의한숫자의어미의활용에의숫자의소멸)    수식은광선과광선보다도빠르게달아나는사람과에의하여운산될것.    사람은별ㅡ천체ㅡ별때문에희생을아끼는것은무의미하다, 별과별과의인력권과인력권과의상쇄에의한가속도함수의 변화의조사를우선작성할것.   *'삼차각'은 수학 용어로서는 부정확한 말이다. 수학에서 말하는 '각(角)'이라는 것은 3차원 이상의 공간에서도 언제나 2차원 평면에서의 '각'이라는 개념으로 규정된다. 그러므로 '삼차각'이란 수학적 개념이라고 하기 어렵다. 다만 세 모서리가 만나는 각을 말하는 것으로 본다면 그 존재를 인정할 수 있다. **본디 위의 시에서 숫자의방위학 다음의 4는 차례대로 동서남북의 네 방향으로 뒤집어져 있으며, 속도와좌표와속도 다음의 4+4 역시 그 방향이 제각각 뒤집어진 채로 쓰여졌다. 이는 숫자 '4'와 같은 방위 표시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시하면 방향이 서로 달라진다는 것을 기호로 표시한 것이다. 또한 4+4의 수식은 물리학의 기본을 이루는 물체의 운동량을 힘(속도)와 방향으로 표시한 것으로 생각된다. ***오목렌즈' 를 시에서는 기호로 표시하였다.   -삼차각설계도    공기구조의속도ㅡ음파에의한ㅡ속도처럼330미터를모방한다(광선에비할때참너무도열등하구나)    빛을즐기거라,빛을슬퍼하거라,빛을웃어라,빛을울어라.    빛이사람이라면사람은거울이다.    빛을가지라.    ㅡ    시각의이름을가지는것은계획의효시이다. 시각의이름을발표하라.    □ 나의 이름    △나의아내의이름(이미오래된과거에있어서나의 AMOUREUSE는이와같이도총명하니라)    시각의이름의통로는설치하라, 그리고그것에다최대의속도를부여하라.     ㅡ    하늘은시각의이름에대하여서만존재를명백히한다(대표인나는대표적인일례를들것)    창공, 추천, 창천, 청천, 장천, 일천, 창궁(대단히갑갑한지방색이아닐는지)하늘은시각의이름을발표하였다.    시각의이름은사람과같이영원히살아야하는숫자적인어떤일점이다, 시각의이름은운동하지아니하면서운동의코오스를가질뿐이다.    ㅡ      시각의이름은빛을가지는빛을아니가진다, 사람은시각의이름으로하여빛보다도빠르게달아날필요는없다.    시각의이름들을건망하라.    시각의이름을절약하라.    사람은빛보다빠르게달아나는속도를조절하고때때로과거를미래에있어서도태하라.   *-건축무한육면각체 **    Ⅰ    허위고발이라는죄목이나에게사형을언도했다. 자태를감춘증기속에서몸을가누고나는아스팔트가마를비예하였다.  ㅡ직에관한전고한구절ㅡ  ***기부양양 기자직지(其父攘羊 其子直之)   나는안다는것을알아가고있었던까닭에알수없었던나에대한집행이한창일때나는다시금새로운것을알아야만했다.   나는새하얗게드러난골편을주워모으기시작했다.   '거죽과살은나중에라도붙을것이다'   말라떨어진고혈에대해나는단념하지아니하면아니되었다.      Ⅱ 어느경찰탐정의비밀신문실에서    혐의자로검거된남자가지도의인쇄된분뇨를배설하고다시금그걸삼킨것에대해경찰탐정은아는바가하나도있지않다. 발각될리없는급수성소화작용 사람들은이것이야말로술이라고말할것이다.  '너는광부에다름이없다'  참고로부언하면남자의근육의단면은흑요석처럼빛나고있었다고한다.     Ⅲ 호외    자석수축하기시작하다  원인극히불분명하나대외경제파탄으로인한탈옥사건에관련되는바가크다고보임. 사계의요인들이머리를맞대고비밀리에연구조사중.  개방된시험관의열쇠는내손바닥에전등형의운하를굴착하고있다.  곧이어여과된고혈같은강물이왕양하게흘러들어왔다.     Ⅳ    낙엽이창호를삼투하여내정장의자개단추를엄호한다.  **** 지형명세작업이아직도완료되지않은이궁벽한땅에불가사의한우체교통이벌써시행되었다. 나는불안을절망했다.  일력의반역적으로나는방향을잃었다. 내눈동자는냉각된액체를잘게잘라내며낙엽의분망을열심히방조하는수밖에없었다.  (나의원후류에의진화)   *'육면각체'라는 용어는 수학에서 통용되지 않는 말이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정육면체나 정사면체는 '삼면각체'에 해당한다. 그러나 여섯 개의 면이 만나는 입체라는 무리한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오일러의 다면체 공식(v-e+f=2)'에 의하면 육면각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무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경우, '무한육면각체'를 여섯개의 면이 한 점에서 만나고 반대쪽으로 무한이 벌어진 입체라고 볼 경우 그 존재의 가능성을 인정할 수 있다. (김명환, , , 권영민 편, 180~181쪽 참조.) 여기서 '육면각체'를 '육면체'로 볼 수 있다면, 수많은 육면체가 결합된 형태로 이루어진 현대건축의 기하학적 모형을 상징하는 말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제목으로 내세워지고 있는 '출판법'은 글자 그대로 인쇄 출판의 방법을 의미하는 이른바 타이포그래피(typography)의 문제를 서술하고 있지만, 출판과 인쇄에 대한 사회적 규제를 의미하는 각종 규범들, 특히 식민지 시대 일본의 조선총독부가 강행하였던 언론 출판에 관한 검열제도(censorship)의 문제를 우회적(迂廻的)으로 비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자로(子路)' 편에 등장하는 구절을 패러디한 부분이다. 논어 원문에서, '其父攘羊 而子證之(기부양양 이자증지)'를 '其父攘羊 其子直之(기부양양 기자직지)'라고 고쳐 써놓았다. 이렇게 고침으로써, '아버지가 양을 훔쳤는데 그 아들이 그것을 증언하였다.'는 뜻에서 '아버지가 양을 훔쳤는데 그 아들이 그것을 바로잡았다.'라는 뜻으로 바뀌었다. 타이포그래피에서는 공자의 말씀에서 강조하고 있는 인간적 도리와 정서 같은 것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조판 과정에서 식자공(植字工)이 잘못 조판된 것을 원고에 따라 교정하여 바로잡는 과정은 엄격성과 정확성을 기본으로 한다.   ****박스 속의 '암살(暗殺)'이라는 글자는 종이에 글자가 인쇄된 모양을 기호로 표시한 것임.   -건축무한육면각체 *   균열이생긴장가이녕의땅에한대의곤봉을꽂음. 한대는한대대로커짐. 수목이자라남.  이상 꽂는것과자라나는것과의원만한융합을가르침. 사막에성한한대의산호나무곁에서돼지같은사람이생매장당하는일을당하는일은없고쓸쓸하게생매장하는것에의하여자살한다. 만월은비행기보다신선하게공기속을추진하는것의신선이란산호나무의음울함을더이상으로증대하는것의이전의일이다.   **윤부전지(輪不輾地) 전개된지구의를앞에두고서의설문일제. 곤봉은사람에게지면을떠나는아크로바티를가르치는데사람은해득하는것은불가능인가.  ***지구를굴착하라.    동시에  생리작용이가져오는상식을포기하라.  열심으로질주하고 또 열심으로 질주하고 또 열심으로질주하고 또 열심으로질주하는 사람 은 열심으로질주하는 일들을 정지한다.  사막보다도정밀한절망은사람을불러세우는무표정한표정의 무지한한대의산호나무의사람의발경의배방인전방에상대하는자발적인공구때문이지만사람의절망은정밀한것을유지하는성격이다.  지구를굴착하라    동시에  사람의숙명적발광은곤봉을내어미는것이어라*     *사실차8씨는자발적으로발광하였다. 그리하여어느덧차8씨의온실에는온화식물이꽃을피우고있었다. 눈물에젖은감광지가태양에마주쳐서는히스므레하게빛을내었다.   *이 작품은 제목에 드러나 있는 '且8氏'에 대한 수많은 해석과 함께 이상 작품 가운데 대표적인 난해시의 하나로 지목되어 왔다. 특히 이 작품을 성적 이미지로 확대하여 해석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상 자신이 그와 가장 절친하게 지냈던 친구의 한 사람인 화가 구본웅(具本雄)을 모델로 하여 그의 미술 활동을 친구의 입장에서 재미있게 그려낸 것이다.  이 작품의 제목에 등장하는 '且8氏'는 구본웅의 성씨인 '구(具)씨'를 의미한다. 아라비아 숫자로 표시된 '8'을 한자로 고치면 '팔(八)'자가 된다. 그러므로 '구(具)'자를 '차(且)'와 '팔(八)'로 파자(破字)하여 놓은 것이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더구나 '차(且)'자와 '8'자를 글자 그대로 아래위로 붙여 놓을 경우에는 그 모양이 구본웅의 외양을 형상적으로 암시한다. 이것은 구본웅이 늘 쓰고 다녔던 높은 중산모의 모양인 '且'와 꼽추의 기형적인 모양을 본뜬 '8'을 합쳐 놓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구본웅을 지시하는 말은 또 있다. '곤봉(棍棒)'과 '산호(珊瑚)나무'가 그것이다. '곤봉'은 그 형태로 인하여 남성 상징으로 풀이된 경우가 많지만, 가슴과 등이 함께 불룩 나온 구본웅의 외양을 보고 이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 말은 '구본웅'이라는 이름을 2음절로 줄여서 부른 것이므로, '말놀이'의 귀재였던 이상의 언어적 기법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가 되기도 한다. '산호나무'라는 말도 역시 구본웅의 마른 체구와 기형적인 곱사등이의 형상을 산호나무의 모양에 빗대어 지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말은 의 '천하편'에서 인유(引喩)한 것이다. 원문은 "윤부전지(輪不蹍地)"이며, 그 의미는 '바퀴의 둘레서 땅에 닿는 곳은 한 점에 지나지 않으며 둘레가 아니다. 그러므로 바퀴는 땅을 딛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풀이한다. 이 작품에서는 '윤부전지(輪不蹍地)'의 '전(蹍)'을 '전(輾)'으로 바꾸어 쓰고 있는데, 그 의미도 '수레바퀴는 땅에 구르지 않는다.'로 변하게 된다. 이 구절을 통해 인유하고자 하는 것은 구본웅의 걸음제라고 할 수 있다. 커다란 중산모를 쓰고 걸어가는 구본웅의 모습을 그의 성씨인 '구(具)'를 다시 파자하여 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且)'와 '8'이라는 글자의 결합은 '且'의 아래쪽에 '8'을 세운 형태가 된다. 여기서 '且'자의 아래에 '8'자를 뉘어놓으면 수래 아래 두 바퀴가 붙어서 땅 위로 굴러가는 모양이 되지만, '8'자가 '且'밑에 서 있는 모양으로 되면 바퀴가 굴러가는 모습을 이루지 못한다. 참으로 재미있게 '문자 놀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 구절의 패러디는 바로 뒤에 오는 "棍棒은사람에게地面을떠나는아크로바티를가르치는데사람은解得하는것은不可能인가."로 이어진다. 구본웅이 걸어가는 모습이 마치 커다란 모자(且) 아래 '8'자가 서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지구의 굴착'은 구본웅이 조각을 하고 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임.   *   **사과한알이떨어졌다. 지구는부서질정도로아팠다. 최후. 이미여하한정신도발아하지아니한다.   *이 작품은 근대과학의 등장을 배경으로 하는 인간 문명이 오히려 인간의 정신을 억압할 수 있다는 점을 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상 문학의 중심적 주제와 맞닿아 있는 문제가 무엇인가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대목은 뉴턴이 발견한 '만유인력의 법칙'에 관련된 일화를 패러디하고 있다. 뉴턴의 '자연은 일정한 법칙에 따라 운동하는 복잡하고 거대한 기계'라고 하는 역학적 자연관은 근대적 계몽사상의 근거를 만들어낸다 출처: https://hichy.tistory.com/entry/이상-전집-1-시?category=478796 [히키의 상상 공간:티스토리]
1156    이상 전집 2. 단편소설 댓글:  조회:715  추천:0  2022-08-31
지도의 암실   - 그는 왜 버려야 할 것을 버리는 것을 버리지 않고서 버리지 못하느냐 어디까지라도 괴로움이었음에 변동은 없었구나 그는 그의 행렬의 마지막의 한 사람의 위치가 끝난 다음에 지긋지긋이 생각하여 보는 것을 할 줄 모르는 그는 그가 아닌 그이지 그는 생각한다.   지주회시(蜘蛛會豕)   - 참 신통한 일은ㅡ어쩌다가 저렇게 사(生)는지ㅡ사는 것이 신통한 일이라면 또 생각하여 보면 자는 것은 더 신통한 일이다. 어떻게 저렇게 자나? 저렇게도 많이 자나? 모든 일이 희(稀)한한 일이었다. - (문학)(시) 영구히 인생을 망설거리기 위하여 길 아닌 길을 내디뎠다 그러나 또 튀려는 마음ㅡ비뚤어진 젊음 (정치) - ...그대는 그래 고소할 터인가 즉 말하자면 이 사람을 어떻게 하였으면 좋겠는가. ... 지금 내가 어떻게 하였으면 좋을까는 누구에게 물어보아야 되나요. 거기 섰는 오 그리고 내 안해의 주인 나를 위하여 가르쳐주소, 어떻게 하였으면 좋으리까 눈물이 어느 사이에 뺨을 흐르고 있었다. 술이 점점 더 취하여 들어온다.   동해(童骸)   *TEXT - "불장난을 못 하는 것과 안 하는 것과는 성질이 아주 다릅니다. 그것은 컨디션 여하에 좌우되지는 않겠지요. 그러니...일러 드리지요. 저는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입니다.  자각된 연애니까요.  안 하는 경우에 못 하는 것을 관망하고 있노라면 좋은 어휘가 생각납니다. 구토. 저는 이것은 견딜 수 없는 육체적 형벌이라고 생각합니다. 온갖 자연발생적 자태가 저에게는 어째 유취만년(乳臭萬年)의 넝마 쪼각 같습니다. 기뻐해 주세요. 저를 이런 원근법에 좇아서 사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  안 하는 것은 못 하는 것보다 교양, 지식 이런 척도로 따져서 높다. 그러나 안 한다는 것은 내가 빚어내는 기후(氣候) 여하(如何)에 빙자해서 언제든지 아무 겸손이라든가 주저없이 불장난을 할 수 있다는 조건부 계약을 차도(車道) 복판에 안전지대 설치하듯이 강요하고 있는 징조에 틀림은 없다.   *전질(顚跌)   - 나는 조심도 할 줄 모르는 야인(野人)이니까 반쯤 죽어야 껍적대지 않는다. ...  "우리 의사는 죽으려 드는 사람을 부득부득 살려 가면서도 살기 어려운 세상을 부득부득 살아가니 거 익살맞지 않소?"  말하자면 굽 달린 자동차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거기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고들 있다.   종생기   - 어머니 아버지의 충고에 의하면 나는 추호의 틀림도 없는 만 25세와 11개월의 '홍안(紅顔) 미소년(美少年)'이라는 것이다. 그렇건만 나는 확실히 노옹(老翁)이다. 그날 하루하루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랗다.' 하는 엄청난 평생(平生)이다.  나는 날마다 운명(殞命)하였다. ...  그러나 고독한 만년(晩年) 가운데 한 구의 에피그람을 얻지 못하고 그대로 처참히 나는 물고(物故)하고 만다.  일생의 하루ㅡ.  하루의 일생은 대체 (위선) 이렇게 해서 끝나고 끝나고 하는 것이었다. ...  나는 내 감상(感傷)의 꿀방구리 속에 청산(靑山) 가던 나비처럼 마취(痲醉) 혼사(昏死)하기 자칫 쉬운 것이다. 조심조심 나는 내 맵시를 고쳐야 할 것을 안다. - 나는 아침 반찬으로 콩나물을 3전어치는 안 팔겠다는 것을 교묘히 무사히 3전어치만 살 수 있는 것과 같은 미끈한 쾌감을 맛본다. 내 딴은 다행히 노랑돈 한 푼도 참 용하게 낭비하지는 않은 듯싶었다. - 넘어가는 내 지지한 종생, 이렇게도 실수가 허(許)해서야 물화적(物貨的) 전 생애를 탕진해 가면서 사수(死守)하여 온 산호편(珊瑚篇)의 본의가 대체 어디 있느냐? 내내(乃乃) 울화가 복받쳐 혼도(昏倒)할 것 같다. ...  나는 내가 그윽히 음모(陰謨)한 바 천고불역(千古不易)의 탕아(蕩兒), 이상(李箱)의 자지레한 문학의 빈민굴을 교란시키고자 하던 가지가지 진기(珍奇)한 연장이 어느 겨를에 뻬물르기 시작한 것을 여기서 깨단해야 되나 보다. 사회는 어떠쿵, 도덕이 어떠쿵, 내면적 성찰, 추구, 적발(摘發), 징벌(懲罰)은 어떠쿵, 자의식과잉이 어떠쿵, 제 깜냥에 번지레한 칠(漆)을 해 내어걸은 치사스러운 간판(看板)들이 미상불(未嘗不) 우스꽝스럽기가 그지없다. - 미문에 견줄 만큼 위태위태한 것이 절승(絶勝)에 혹사한 풍경(風景)이다. ...  왜 나는 미끈하게 솟아 있는 근대건축의 위용을 보면서 먼저 철근철골, 시멘트와 세사(細砂), 이것부터 선뜩하니 감응(感應)하느냐는 말이다. 씻어버릴 수 없는 숙명의 호곡(號哭), 몽골리언 플렉[蒙古痣], 오뚝이처럼 쓰러져도 일어나고 쓰러져도 일어나고 하니 쓰러지나 섰으나 마찬가지 의지할 얄판한 벽 한 조각 없는 고독, 고고(枯稿), 독개(獨介), 초초(楚楚). - 이것은 물론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재앙이다.  나는 이를 간다.  나는 걸핏하면 까무러친다.  나는 부글부글 끓는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 철천(撤天)의 원한에서 슬그머니 좀 비껴서고 싶다. 내 마음의 따뜻한 평화 따위가 다 그리워졌다.  즉 나는 시체다. 시체는 생존하여 계신 만물의 영장을 향하여 질투할 자격도 능력도 없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깨닫는다. ...  누루(累累)한 이 내 혼수(昏睡) 덕으로 부디 이 내 시체에서도 생전의 슬픈 기억이 창궁(蒼穹) 높이 훨훨 날아가나 버렸으면ㅡ.  나는 지금 이런 불쌍한 생각도 한다. 그럼ㅡ.  ㅡ만 26세와 3개월을 맞이하는 이상(李箱) 선생님이여! 허수아비여!  자네는 노옹일세. 무릎이 귀를 넘는 해골일세. 아니, 아니.  자네는 자네의 먼 조상일세. 이상(以上)   환시기   - 태석(太昔)에 좌우(左右)를 난변(難辨)하는 천치(天痴) 있더니  그 불길한 자손이 백대(百代)를 겪으매  이에 가지가지 천형병자(天刑病者)를 낳았더라. - 그야말루 송 군은 지금 절벽에 매달린 사람이오ㅡ. 송 군이 가진 양심, 그와 배치되는 현실의 박해로 말미암은 갈등, 자살하고 싶은 고민을 누가 알아주나ㅡ. ...  그러나 한 사람의 생명은 병원을 가진 의사에게 있어서 마작의 패 한 조각, 한 컵의 맥주보다도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다. - 자꾸 삐뚤어졌다구 그랬더니 요샌 곧 화를 내데ㅡ.  아까 바른쪽으루 비켜서란 소리는 괜헌 소리구 비켜서기 전에 자네 시각을 정정ㅡ그 때문에 다른 물건이 죄다 바른쪽으루 비뚤어져 보이드래두 사랑하는 안해 얼굴이 똑바루만 보인다면 시각의 적능은 그만 아닌가ㅡ그러면 자연 그 블라디보스톡 동경 사이 남북 만 리 거리두 배제처럼 바싹 맞다가서구 말 테니.   실화(失花)   -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 - 꿈ㅡ꿈이면 좋겠다. 그러나 나는 자는 것이 아니다. 누운 것도 아니다. - 적빈(赤貧)이 여세(如洗)ㅡ콕토가 그랬느니라ㅡ재주 없는 예술가야 부질없이 네 빈곤을 내세우지 말라고. 아ㅡ내게 빈곤을 팔아먹는 재주 외에 무슨 기능이 남아 있누. - 꿈ㅡ꿈이면 좋겠다. 그러나 10월 23일부터 10월 24일까지 나는 자지 않았다. 꿈은 없다.  (천사는ㅡ어디를 가도 천사는 없다. 천사들은 다 결혼해 버렸기 때문이다.) - 나왔으니, 자ㅡ어디로 어떻게 가서 무엇을 해야 되누,  해가 서산에 지기 전에 나는 이삼 일 내로는 반드시 썩기 시작해야 할 한 개 '사체'가 되어야만 하겠는데, 도리는?  도리는 막연하다. 나는 십 년 긴ㅡ세월을 두고 세수할 때마다 자살을 생각하여 왔다. 그러나 나는 결심하는 방법도 결행하는 방법도 아무것도 모르는 채다.  나는 온갖 유행약(流行藥)을 암송하여 보았다.  그러고 나서는 인도교(人道橋), 변전소(變電所), 화신상회(和信商會), 옥상(屋上), 경원선(京元線) 이런 것들도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렇다고ㅡ정말 이 온갖 명사의 나열은 가소롭다ㅡ아직 웃을 수는 없다.  웃을 수는 없다. 해가 저물었다. 급하다. 나는 어딘지도 모를 교외에 있다. 나는 어쨌든 시내로 들어가야만 할 것 같았다. 시내ㅡ사람들은 여전히 그 알아볼 수 없는 낯짝들을 쳐들고 와글와글 야단이다. 가등(街燈)이 안개 속에서 축축해한다. - 아스팔트는 젖었다. 스즈란도 좌우에 매달린 그 영란(鈴蘭) 꽃 모양 가등도 젖었다. 클라리넷 소리도ㅡ눈물에ㅡ젖었다.  그리고 내 머리에는 안개가 자옥ㅡ히 끼었다. ...  법정대학(法政大學) Y군, 인생보다는 연극이 더 재미있다는 이다. 왜? 인생은 귀찮고 연극은 실없으니까. - "각혈이 여전하십니까?"  "네ㅡ그저 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치질이 여전하십니까?"  "네ㅡ그저 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  "신념을 빼앗긴 것은 건강이 없어진 것처럼 죽음의 꼬임을 받기 마치 쉬운 경우더군요."  "이상(李箱) 형! 형은 오늘이야 그것을 빼앗기셨습니까? 인제ㅡ겨우ㅡ오늘이야ㅡ겨우ㅡ인제." - '슬퍼? 응ㅡ슬플밖에ㅡ20세기를 생활하는데 19세기의 도덕성밖에는 없으니 나는 영원한 절름발이로다. 슬퍼야지ㅡ만일 슬프지 않다면ㅡ나는 억지로라도 슬퍼해야지ㅡ슬픈 포즈라도 해 보여야지ㅡ왜 안죽느냐고? 헤헹! 내게는 남에게 자살을 권유하는 버릇밖에 없다. 나는 안 죽지. 이따가 죽을 것만 같이 그렇게 중속(衆俗)을 속여 주기만 하는 거야. 아ㅡ그러나 인제는 다 틀렸다. 봐라. 내 팔. 피골(皮骨)이 상접(相接). 아야 아야. 웃어야 할 터인데 근육이 없다. 울려야 근육이 없다. 나는 형해(形骸)다. 나ㅡ라는 정체(正體)는 누가 잉크 짓는 약으로 지워 버렸다. 나는 오직 내ㅡ흔적일 따름이다.'   단발(斷髮)   - 공연히 그는 서먹서먹하게 굴었다. 이렇게 함으로 자기의 불행에 고귀한 탈을 씌워 놓고 늘 인생에 한눈을 팔자는 것이었다. - 사실 그는 무슨 그렇게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있는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악인일 것도 없었다. 말하자면 애호하는 가면을 도적을 맞는 위에 그 가면을 뒤집어 이용당하면서 놀림감이 되고 말 것밖에 없다.  그러나 그라고 해서 소녀에게 자그마한 욕구가 없는 바는 아니었다. 아니 차라리 이것은 한 무적 '에고이스트'가 할 수 있는 최대 욕구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결코 고독 가운데서 제법 하수(下手)할 수 있는 진짜 염세주의자는 아니었다. 그의 체취처럼 그의 몸뚱이에 붙어 다니는 염세주의라는 것은 어디까지든지 게으른 성격이요 게다가 남의 염세주의는 어느 때나 우습게 알려 드는 참 고약한 아리아욕(我利我慾)의 염세주의였다.  죽음은 식전의 담배 한 모금보다도 쉽다. 그렇건만 죽음은 결코 그의 창호(窓戶)를 두드릴 리가 없으리라고 미리 넘겨짚고 있는 그였다. 그러나 다만 하나 이 예외가 있는 것을 인정한다.  A double suicide  그것은 그러나 결코 애정의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는다. 다만 아무것도 이해하지 말고 서로서로 '스프링보드'노릇만 하는 것으로 충분히 이용할 것을 희망한다. 그들은 또 유서를 쓰겠지. 그것은 아마 힘써 화려한 애정과 염세의 문자로 가득 차도록 하는 것인가 보다.  이렇게 세상을 속이고 일부러 자기를 속임으로 하여 본연의 자기를, 얼른 보기에 고귀하게 꾸미자는 것이다. 그러나 가뜩이나 애정이라는 것에 서먹서먹하게 굴며 생활하여 오고 또 오는 그에게 고런 마침 기회가 올까 싶지도 않다. - "...불행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이 제게는 더없는 매력입니다. 그렇게 내어버리구 싶은 생명이거든 제게 좀 빌려주시지요."  연애보다도 한 구(句) 위티시즘을 더 좋아하는 그였다. 그런 그가 이때만은 풍경에 자칫하면 패배할 것 같기만 해서 갈팡질팡 그 자리를 피해 보았다. ... 소녀는 비로소 '세월'이라는 것을 느꼈다. 소녀의 방심(放心)을 어느결에 통과해 버린 '세월'이 소녀로서는 차라리 자신에게 고소하였다.  고독ㅡ그런 어느 날 밤 소녀는 고독 가운데서 그만 별안간 혼자 울었다. 깜짝 놀라 얼른 울음을 끊쳤으나 이것을 소녀는 자기의 어휘로 설명할 수 없었다. - "가령 자기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물을 상 찌푸리지 않고 먹어보는 거 그래서 거기두 있는 '맛'인 '맛'을 찾아내구야 마는 거, 이게 말하자면 '패러독스'지. 요컨대 우리들은 숙명적으로 사상, 즉 중심이 있는 사상 생활을 할 수가 없도록 돼먹었거든. 지성(知性)ㅡ흥 지성의 힘으로 세상을 조롱할 수야 얼마든지 있지, 있지만 그게 그 사람의 생활을 '리드'할 수 있는 근본에 있을 힘이 되지 않는 걸 어떡허나? 그러니까 선(仙)이나 내나 큰소리는 말아야 해. 일체 맹세하지 말자ㅡ허는 게 즉 우리가 해야 할 맹세지." - 운명에 억지로 거역하려 들어서는 못쓴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나는 오랫동안 '세월'이라는 관념을 망각해 왔소. 이번엔 참 한참 만에 느끼는 '세월'이 퍽 슬펐소. 모든 일이 '세월'의 마음으로부터의 접대에 늘 우리들은 다 조신하게 제 부서에 나아가야 하지 않나 생각하오. 흥분하지 말아요. - 저는 결코 오빠를 야속하게 여긴다거나 하지 않아요. 애정을 계산하는 버릇은 언제든지 미움받을 버릇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세월'이오? ... '세월'! 좋군요ㅡ교수ㅡ, 제가 제 맘대로 교수를 사랑해도 좋지요? 안 되나요? 괜찮지요? 괜찮겠지요 뭐? - 단발(斷髮)했습니다. 이렇게도 흥분하지 않는 제 자신이 그냥 미워서 그랬습니다.  단발? 그는 또 한번 가슴이 뜨끔했다. 이 편지는 필시 소녀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인데 그에게 의논 없이 소녀는 머리를 잘렸으니, 이것은 새로워진 소녀의 새로운 힘을 상징하는 것일 것이라고 간파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눈물났다. 왜?  머리를 자를 때의 소녀의 마음이 필시 제 마음 가운데 제 손으로 제 애인을 하나 만들어놓고 그 애인으로 하여금 저에게 머리를 자르도록 명령하게 한, 말하자면 소녀의 끝없는 고독이 소녀에게 1인 2역을 시킨게 틀림없었다.  소녀의 고독!  혹은 이 시합은 승부 없이 언제까지라도 계속하려나ㅡ이렇게도 생각이 들었고ㅡ그것보다도 싹뚝 자르고 난 소녀의 얼굴ㅡ몸 전체에서 오는 인상은 어떠할까 하는 것이 차라리 더 그에게는 흥미 깊은 우선 유혹이었다.   김유정(金裕貞)   - 암만해도 성을 안 낼 뿐만 아니라 누구를 대할 때든지 늘 좋은 낯으로 해야 쓰느니 하는 타입의 우수한 견본이 김기림(金起林)이라.  좋은 낯을 하기는 해도 적(敵)이 비례(非禮)를 했다거나 끔찍이 못난 소리를 했다거나 하면 잠자코 속으로만 꿀꺽 업신여기고 그만두는, 그러기 때문에 근시안경을 쓴 위험인물이 박태원(朴泰遠)이다.  업신여겨야 할 경우에 "이놈! 네까진 놈이 뭘 아느냐."라든가 성을 내면 "여! 어디 뎀벼봐라."쯤 할 줄 아는, 하되, 그저 그럴 줄 안다뿐이지 그만큼 해두고 주저앉는 파(派)에, 고만 이유로 코밑에 수염을 저축(貯蓄)한 정지용(鄭芝溶)이 있다.  모자를 홱 벗어 던지고 두루마기도 마고자도 민첩하게 턱 벗어 던지고 두 팔 훌떡 부르걷고 주먹으로는 적(敵)의 벌마구니를, 발길로는 적의 사타구니를 격파하고도 오히려 행유여력(行有餘力)에 엉덩방아를 찧고야 그치는 희유(稀有)의 투사가 있으니 김유정(金裕貞)이다.    누구든지 속지 마라. 이 시인 가운데 쌍벽(雙璧)과 소설가 중 쌍벽(雙璧)은 약속(約束)하고 분만(分娩)된 듯이 교만하다. 이들이 무슨 경우에 어떤 얼굴을 했댔자 기실은 그 교만에서 산출된 표정의 데포르마시옹 외의 아무것도 아니니까 참 위험하기 짝이 없는 분들이라는 것이다.  이분들을 설복할 아무런 학설도 이 천하에는 없다. 이렇게들 고집이 세다.  나는 자고로 이렇게 교만하고 고집 센 예술가를 좋아한다. 큰 예술가는 그저 누구보다도 교만해야 한다는 일이 내 지론이다.   봉별기   - 금홍이는 겨우 스물한 살인데 서른한 살 먹은 사람보다도 나았다. 서른한 살 먹은 사람보다도 나은 금홍이가 내 눈에는 열일곱 살 먹은 소녀로만 보이고 금홍이 눈에 마흔 살 먹은 사람으로 보인 나는 기실 스물세 살이요 게다가 주책이 좀 없어서 똑 여남은 살 먹은 아이 같다. 우리 내외는 이렇게 세상에도 없이 현란하고 아기자기하였다.  부질없는 세월이ㅡ.  일 년이 지나고 팔월, 여름으로는 늦고 가을로는 이른 그 북새통에ㅡ.  금홍이에게는 예전 생활에 대한 향수가 왔다. - "그렇지만 너무 늦었다. 그만해두 두 달지간이나 되지 않니? 헤어지자, 응?"  "그럼 난 어떻게 되우. 응?"  "마땅헌 데 있거든 가거라, 응."  "당신두 그럼 장가가나? 응?"  헤어지는 한(限)에도 위로해 보낼지어다. 나는 이런 양식(良識) 아래 금홍이와 이별했더니라. - 어디로 갈까.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동경(東京)으로 가겠다고 호언했다. 그뿐 아니라 어느 친구에게는 전기기술(電氣技術)에 관한 전문 공부를 하러 간다는 둥, 학교 선생님을 만나서는 고급 단식인쇄술(單式印刷術)을 연구하겠다는 둥, 친한 친구에게는 내 5개 국어에 능통할 작정일세 어쩌구 심하면 법률을 배우겠소까지 허담(虛談)을 탕탕하는 것이다. 웬만한 친구는 보통들 속나 보다. 그러나 이 헛선전(宣傳)을 안믿는 사람도 더러는 있다. 하여간 이것은 영영 빈털털이가 되어 버린 이상(李箱)의 마지막 공포(空砲)에 지나지 않는 것만은 사실이겠다. - 밤은 이미 깊었고 우리 이야기는 이게 이 생에서의 영이별(永離別)이라는 결론으로 밀려갔다. 금홍이는 은수저로 소반전을 딱 딱 치면서 내가 한 번도 들은 일이 없는 구슬픈 창가를 한다.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굽이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정에 불질러 버려라 운운(云云)."   주석 중 - 活同是死胡同 死胡同是活胡同.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로 나뉘어 있다. 최초의 해석은 이어령 교수가 '사는 것이 어째서 이와 같으며, 죽음이 어째서 같은가. 죽음이 어째서 이와 같으며 삶이 어째서 같은가.' (이어령 편, , 181~2쪽)라고 했다. 김윤식 교수는 '사는 것이 어찌하여 이와 같으며, 죽음이 어째서 같은가. 죽음이 어째서 이와 같으며, 사는 것이 같은가.'(김윤식 편, , 177쪽)라고 이어령 교수와 비슷하게 풀이하였다. 최근 김주현 교수는 이 대목을 백화문으로 보고, '뚫린 골목은 막다른 골목이요, 막다른 골목은 뚫린 골목이다.' (김주현 편, , 154쪽)라는 새로운 해석을 제기한 바 있다. 이 구절이 한문식 독법과 백화문식 독법에 따라 그 의미가 전혀 달라진다는 점을 밝힌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상(李箱) 자신도 바로 이 같은 성질을 활용하고자 의도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구절의 기호적 중의성(重義性)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에 맞춰본다면, '살아 있는 것이 곧 죽은 것이며, 죽은 것이 곧 살아 있는 것이다.'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상 전집 2. 단편소설, 권영민 엮음, 문학에디션 뿔, 2009 출처: https://hichy.tistory.com/entry/이상-전집-2-단편소설?category=478796 [히키의 상상 공간:티스토리]
1155    이상 전집 4. 수필 외, 권영민 엮음, 문학에디션 뿔, 2009 댓글:  조회:838  추천:0  2022-08-31
4이상 전집 4. 수필 외, 권영민 엮음, 문학에디션 뿔, 2009   1부   문학과 정치   : 문학자는 그 생활하는 성격상 생활이 다른 어떤 종류의 부문의 생활양식에 비교하여도 정신적인 고뇌가 훨씬 더 많다고 보는 것이 정당할 것이다.  이래서 그들은 생활의 물질적인 고뇌에 다른 어떤 부문의 누구보다도 강인한 인내력이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니다.  만약 한 문학자가 생활 혹은 그것에 유사한 보통 원인으로 하야 그 자신의 일명(一命)을 스스로 끊었다면 이 비극성이야말로 절대(絶大)하다.  문학자가 문학해 놓은 문학이 상품화하고 상품화하는 그런 조직(組織)이 문학자의 생활의 직접의 보장(保障)이 되는 것을 치욕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현대라는 정세가 이러면서도 문학자ㅡ가장 유능한ㅡ의 양심을 건드리지 않아도 꺼림칙한 일은 조금도 없는 그런 적절한 시대는 불행히도 아직 아닌가 보다.  이런 데서 문학자와 그의 생활 사이에 수습할 수 없는 모순이 생기고 모순으로 하여 위와 같은 끔찍끔찍한 비극도 일어난다.  보면 사회, 아니 문학 한다는 이들까지가 이 비극에 대하기를 '냉담' 한마디에 다한다는 것은 한심하고 참괴(慚愧) 참아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생활난 때문에 일가(一家) 구몰(俱沒)의 보도를 조석으로 듣고 상을 찌푸리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세월에 하나 정신 패배자의 죽음쯤이야 사회적 현상으로 내려다볼 때에 혹은 너무 미미한 것에 지나지 않을는지도 모르나 그 패배의 모양이 정신적인 점, 우리 문학하는 사람들과 친근자인 경우에 좀 더 절실한 무엇이 우리 흉리(胸裏)에 절박하는 것을 아니 느끼고 족히 베길까. X X X 문학자가 제 문학을 거부하지 않으면서 제 생활을 기피하였다는 당대의 비극이 있다.  흔히 있는 또 있어야 할 유서(遺書) 한 장 없으니 더 슬프다.  고 매운 눈초리를 나는 눈에 선-하니 잠시 잊을 수도 없었다. ...  문학도 결국은 투기사업(投機事業)일 것이다. 되든지 안 되든지 둘 중의 하나, 이 냄세나는 '악취미 자극'을 나는 누구에게도 아첨하지 않고 어디까지든지 버틸 결심이다.   실낙원(失樂圓) - 월상(月傷)   : 나는 엄동(嚴冬)과 같은 천문(天文)과 싸워야 한다. 빙하와 설산 가운데 동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나는 달에 대한 일은 모두 잊어버려야만 한다ㅡ. 새로운 달을 발견하기 위하여ㅡ   병상(病床) 이후   : 그동안 수개월! 그는 극도의 절망 속에 살아왔다. (이런 말이 있을 수 있다면 그는 '죽어왔다'는 것이 더 적확하겠다.)  ...  '참을 가지고 나를 대하여 주는 이 순한 인간에게 대하여 어째 나는 거짓을 가지고만 밖에는 대할 수 없는 것은 이 무슨 슬퍼할 만한 일이냐.' ...  '그렇다. 나는 확실히 거짓에 살아왔다ㅡ. 그때에 나에게는 체험을 반려(伴侶)한 무서운 동요(動搖)가 왔다ㅡ.   편지   기림(起林) 형 ... 빌어먹을 거ㅡ세상이 귀찮구려! 불행이 아니면 하로도 살 수 없는 '그런 인간'에게 행복이 오면 큰일나오. 아마 즉사할 것이오. 협심증(狹心症)으로ㅡ. '一切誓ふな(일체 맹서치 마라.)', '一切を信じないと誓へ'(모든 것을 믿지 않는다고 맹서하라.) 의 두 마디 말이 발휘하는 다채(多彩)한 파라독스를 농락하면서 혼자 미고소(微苦笑)를 하여보오. 형은 어디 한번 크게 되어보시오. 인생이 또한 즐거우리다. 사실 전(前)에 FUA '장미신방(薔薇新房)' 이란 영화를 보았소. 충분히 좋습디다. 'ききやかなる幸福' (소소한 행복)이 진정의 황금(黃金)이란 タイトル(주제)는 ア-ノルド  フアンダ(아르놀트 판크의) 영화에서 보았고 'ききやかなる幸福' (소소한 행복)이 인생을 썩혀 버린다는 タイトル(주제)는 장미(薔薇)의 침상(寢床)에서 보았소. 아ㅡ '哲學の限りなき無駄よ' (철학의 끝없는 헛됨이었소.) 그랬오.  '一切の法則を嗤へ?' 'それも誓ふな.' (일체의 법칙을 비웃어라? 그것도 맹서하지 마라.) ... 退屈で、退屈ならない(따분하고 따분해서 견디기 어려운) 그따위 일생도 또한 사(死)보다는 그래도 좀 자미가 있지 않겠소?  연애라도 할까? 싱거워서? 심심해서? 스스로워서? ...  여보 편지나 하구려! 내 고독과 울적(鬱寂)을 동정하고 싶지는 않소? 자ㅡ운명에 순종하는 수밖에! 꾿빠-이   ...구인회는 인간 최대의 태만(怠慢)에서 부침(浮沈)중이오. ...   ...해변에도 우울 밖에는 없소. 어디를 가나 이 영혼은 즐거워할 줄을 모르니 딱하구려! 전원(田園)도 우리들의 병원(病院)이 아니라고 형은 그랬지만 바다가 또한 우리들의 약국(藥局)이 아닙디다.  독서(讀書)하오? 나는 독서도 안 되오. ...  고황(膏肓)에 든, 이 문학병(文學病)을ㅡ 이 익애(溺愛)의 이 도취(陶醉)의......이 굴레를 제발 좀 벗고 표연(飄然)할 수 있는 제법 근량(斤量) 나가는 인간이 되고 싶소. ...  세상 사람들이 다ㅡ제각기의 흥분, 도취에서 사는 판이니까 타인의 용훼(容喙)는 불허하나 봅디다. 즉 연애, 여행, 시, 횡재, 명성ㅡ이렇게 제 것만이 세상에 제일인 줄들 아나 봅디다. 자ㅡ기림 형은 나하고나 악수합시다. 하, 하.   암만해도 나는 19세기와 20세기 틈사구니에 끼워 졸도하려 드는 무뢰한인 모양이오. 완전히 20세기 사람이 되기에는 내 혈관에 너무도 많은 19세기의 엄숙한 도덕성의 피가 위협하듯이 흐르고 있소그려. ...  그들은 이상(李箱)도 역시 20세기의 スポーツマン(스포츠맨)이거니 하고 오해하는 모양인데 나는 그들에게 낙망을(아니 환멸)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들과 만날 때 오직 20세기를 근근히 ポーズ(포즈)를 써 유지해 보일 수 있을 따름이구려! 아! 이 마음의 아픈 갈등이어.  생(生)ㅡ 그 가운데만 오직 무한한 기쁨이 있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이미 ヌキサツナラヌ程(옴짝달싹 못할 정도로) 전락하고 만 자신을 굽어살피면서  생에 대한 용기, 호기심 이런 것이 날로 희박하여 가는 것을 자각하오.  이것은 참 제도(濟度)할 수 없는 비극이오! ... 환멸이라기에는 너무나 참담한 일장(一場)의 ナンセンス(넌센스)입니다. ...  오직 가령 자전(字典)을 만들어냈다거나 일생을 철(鐵) 연구에 바쳤다거나 하는 사람들만이 エライヒト(위인)인가 싶소.  가끔 진짜 예술가들이 더러 있는 모양인데 이 생활 거세(去勢) 씨들은 당장에 ドロ礻ズミ(시궁창의 생쥐)가 되어서 한 2,3년 만에 노사(老死)하는 모양입디다.   한화(閑話) 휴제(休題)ㅡ 차차 마음이 즉 생각하는 것이 변해 가오. 역시 내가 고집하고 있던 것은 회피(回避)였나 보오. 흉리(胸裏)에 거래(去來)하는 잡다한 문제 때문에 극도의 불면증으로 고생 중이오. 2,3일씩 이불을 쓰고 문외(門外) 불출(不出)하는 수도 있소. 자꾸 자신을 잃으면서도 양심 양심 이렇게 부르짖어도 보오. 비참한 일이오.  한화 휴제ㅡ 삼월에는 부디 만납시다. 나는 지금 쩔쩔매는 중이오. 생활보다도 대체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를 모르겠소. 논의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오. 만나서 결국 아무 이야기도 못하고 헤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저 만나기라도 합시다. ... 이러다가는 정말 자살할 것 같소. ... 여기 와보니 조선 청년들이란 참 한심합디다. 이거 참 썩은 새끼조차도 주위에는 없구려!  진보적인 청년도 몇 있기는 있소. 그러나 그들 역 늘 그저 무엇인지 부절히 겁을 내고 지내는 모양이 불민(不憫)하기 짝이 없습디다. ... 조금 어른이 되었다고 자신하오. (중략) 망언(妄言) 망언. 엽서라도 주기 바라오.   ... 저에게 주신 형의 충고의 가지가지가 저의 골수에 맺혀 고마웠습니다. 돌아와서 인간으로서, 아니, 사람으로서의 옳은 도리를 가지고 선처하라 하신 말씀은 참 등에서 땀이 날 만치 제 가슴을 찔렀습니다.  저는 지금 사람 노릇을 못하고 있습니다. 계집은 가두(街頭)에다 방매(放賣)하고 부모로 하여금 기갈(飢渴)케 하고 있으니 어찌 족히 사람이라 일컬으리까. 그러나 저는 지식의 걸인은 아닙니다. ... 살아야겠어서, 다시 살아야겠어서 저는 여기를 왔습니다. 당분ㄱ단은 모든 죄와 악을 의식적으로 묵살하는 도리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친구, 가정, 소주, 그리고 치사스러운 의리 때문에 서울로 돌아가지 못하겠습니다.  여러가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를 전연 모르겠습니다. 저는 당분간 어떤 고난과라도 싸우면서 생각하는 생활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 편의 작품을 못 쓰는 한이 있더라도, 아니, 말라 비틀어져서 아사(餓死)하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지금의 자세를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도저히 '커피' 한 잔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  정직하게 살겠습니다. 고독과 싸우면서 오직 그것만을 생각하며 있습니다. ...  가끔 글을 주시기 바랍니다. 고독합니다. 이곳에는 친구 삼을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3부. 단상 또는 창작 노트   무제 (원문에 제목이 없음)      손가락 같은 여인이 입술로 지문(指紋)을 찍으며 간다. 불쌍한 수인(囚人)은 영원(永遠)의 낙인(烙印)을 받고 건강을 해쳐 간다. * 같은 사람이 같은 문으로 속속 들어간다. 이집에는 뒷문이 있기 때문이다. * 대리석(大理石)의 여인이 포오즈를 바꾸기 위해서는 적어도 살을 깎아내지 않으면 아니된다. * 한 마리의 뱀은 한 마리의 뱀의 꼬리와 같다. 또는 한 사람의 나는 한 사람의 나의 부친(父親)과 같다. * 피는 뼈에는 스며들지 않으니까 뼈는 언제까지나 희고 체온이 없다. * 안구(眼球)에 아무리 해도 보이지 않는 것은 안구뿐이다. * 고향(故鄕)의 산(山)은 털과 같다. 문지르면 언제나 빨갛게 된다. (, 1960, 11, 164쪽, 김수영 역.)   얼마 안 되는 변해(辨解) (혹은 일년이라는 제목) ㅡ몇 구우(舊友)에게 보내는ㅡ    한 개의 임금(林檎)의 껍질을 벗기자 한 개의 배로 되었기 때문에 그 배의 껍질을 벗기자 한 개의 석류(石榴)로 되었기 때문에 그 석류의 껍질을 벗기자 한 개의 네이블로 되었기 때문에 그 네이블의 껍질을 벗기자 이번에는 한 개의 무화과로 되었기 때문에......  걷잡을 수 없는 포학(暴虐)한 질서가 그로 하여금 그의 손에 있던 나이프를 내동댕이쳐 버리게 하였다.  내동댕이쳐진 소도(小刀)는 다시 소도를 낳고 그 소도가 또 소도를 낳고 그 소도가 또 소도를 낳고 그 소도가 또 소도를 분만(分娩)하고 그 소도가 또......   무제 (원문에 제목이 없음)   '오전 4시와 제 1초(秒). 지상의 나변(那邊)에도 나는 있지 않았다.' ... '나는 유모차에 태워진 채로 추락하였다. 기억의 심연 속으로'    무제 (원문에 제목이 없음)   생사의 초월ㅡ존재한다는 것은 생사 어느 편에 속하는 것인가.   무제   만사는 나에게 더욱 냉담한 사념(思念)이 되어간다.  신(神)을 엄습하는 가을의 사색(思索), 그럴 때마다 느끼는 생존의 적막과 울고(鬱苦)에 견뎌낼 수 없다. 나의 전방에 선명한 문자처럼 전개하는 자살에의 유혹.  그러나ㅡ  나의 냉각(冷却)한 피는 이 경(磬)쇠처럼 꽃다운 맥박 속에서 포옹처럼 따뜻해지는 것이었다.   어리석은 석반(夕飯)   별이 나왔다. 일찍이 아무도 촌사람에게, 하늘에서 별이 나온다는 걸 가르쳐준 사람이 없으므로 그들은 별이란 걸 모른다. 그것은 별이 송두리째 하느님에 틀림없다. 더구나 일등성(一等星) 이등성(二等星) 하고 구별하는 사람의 번쇄(煩鎖)야말로, 가히 짐작할 수 있도다. 불행한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 무슨 일이건 다 불쾌하다는 걸 계속해서 생각는 것은 불쾌하다. 그러자 이번은 이웃 방 사람들의 식사하는 소리가 들리어온다. 꼭 개가 죽(粥) 먹을 때의 그 소리다. 인간이 식사하는 것을,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들을 때, 개의 그것과 똑같다는 것을 발견함은 일대(一大)의 쾌사(快事)라 하겠다. ...  이렇게 오고 가는 방향이 서로 어긋나는 생리 상태와 심리 상태는 도대체 어쩌자는 셈일까. 심리 상태가 뭣이든 사사건건마다 생리 상태에 대하여 몹시 노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라면 그 반대일 것이다. 오로지 그렇게밖에 볼 수 없는, 수습할 수 없는 상태며 난국이다. 나는 건강한지 불건강한지, 판단조차 할 수 없다. 건강하다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건강한 사람의 그 누구와도 (조금도) 닮지 않았다. 불건강하다면 이건 얼마나 처치 곤란하리만큼 뻔뻔스러운 그렇게 약해 빠진 몰골인가. ... 암담할 뿐이다. 그러나 개도 개지, 글쎄 아무것도 없는 땅바닥을 열심히 몇 번씩이나 냄세를 맡는 것은 얼마나 우열한 일이뇨.개는 개다. 나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행복하다. ㅡ역시 이런 걸 생각하는 자체부터가 아무것도 없는 땅바닥을 냄세 맡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그러나.    개도 가버렸다. 나는 이제 무엇을 관찰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  그러나 구름이 있다. ... 구름의 존재란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비가 된다고? 나는 아직 한 번도 구름이 비가 된다는 것을 믿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저건 자기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완전히 부운(浮雲)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이 아침의 이 세상의 어느 나라의 지도와도 닮지 않은 백운(白雲)을 망연히 바라보며 인생의 무한한 무료함에 하품을 하였다.   무제   (2) 꽃이 매춘부의 거리를 이루고 있다. ... ......죽음을 각오하느냐, 이 삶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느니라...... 이런 값 떨어지는 말까지 하는 일이 있다, 그러나 개의 눈은 마르는 법이 없다, 턱은 나날이 길어져 가기만 했다.   (3) 가엾은 개는 저 미웁기 짝 없는 문패(門牌) 이면(裏面) 밖에 보지 못한다. 개는 언제나 그 문패 이면만을 바라보고는 분만(憤懣)과 염세를 느끼는 모양이다. 그리고 괴로워하는 모양이다.   회한(悔恨)의 장(章)   가장 무력(無力)한 사내가 되기 위해 나는 얼금뱅이였다 세상에 한 여성조차 나를 돌아보지는 않는다 나의 나태(懶怠)는 안심(安心)하다 (이 대목에서 '안심(安心)'이라는 말은 '근심 걱정 없이 마음을 편안히 가짐.'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보다는 불교에서 말하는 '안심(安心)의 경지' 즉, '불법을 굳게 믿어 어떤 충동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경지에 이른 상태.'를 인유(引喩)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문맥상 자연스럽다. 말하자면, '나의 나태는 어떤 충동에도 고칠 수 없고 변화가 없음.' 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원문 주-)   양팔을 자르고 나의 직무를 회피한다 더는 나에게 일을 하라는 자는 없다 내가 무서워하는 지배(支配)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역사(歷史)는 지겨운 짐이다 세상에 대한 사표 쓰기란 더욱 무거운 짐이다 나는 나의 글자들을 가둬버렸다 도서관에서 온 소환장을 이제 난 읽지 못한다   나는 이젠 세상에 맞지 않는 입성이다 봉분(封墳)보다도 나의 의무는 많지 않다 (여기서 '봉분'은 '죽은 자'에 해당함.) 나에게 그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 고통은 깡그리 없어졌다   나는 아무것도 보지는 않는다 바로 그렇기에 나는 아무것에게도 또한 보이진 않을 게다 비로소 나는 완전히 비겁해지기에 성공한 셈이다   단장(斷章)   죽음은 알몸뚱이 엽서나처럼 나에게 배달된다 나는 그 제한된 답신밖엔 쓰지 못한다. ... 헌 레코드 같은 기억 슬픔조차 또렷하지 않다.   첫번째 방랑   - 출발   나의 이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여행에 대해 변명을 하는 것은 정말이지 나로선 괴로운 일이다. 나는 기차 칸에서도 아무하고도 만나지 않았으면 싶었다. ... 나는 왜 이렇게 피로해 있는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어제는 엊그제 같기도 하고, 또한 내일 같기조차 하다. 나에겐 나의 기억을 정리할 만한 끈기가 없어졌다. 나는 이젠 입을 다물고 있는 수밖엔 별 도리가 없었다.   거대한 바위 같은 불안이 공기와 호흡의 중압이 되어 마구 짓눌렀다. ...    나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지 않으면 아니 된다. 나 자신을 암살하고 온 나처럼, 내가 나답게 행동하는 것조차도 금지되지 않으면 아니 된다.   ... 책을 덮었다. 활자는 상(箱)에게서 흘러 떨어졌다. 나는 엄격한 자세를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나는 이제 혼자뿐이니까.   -차창(車窓) ... 나는 나의 기억을 소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의 정신에선 이상한 향기가 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  적토 언덕 기슭에서 한 마리의 뱀처럼 말라 죽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름다운ㅡ꺾으면 피가 묻는 고대(古代)스러운 꽃을 피울 것이다.  이제 모든 사정이 나를 두렵게 하고 있다. 사람들이 평화롭다는 그것이, 승천하려는 상념 그것이, 그리고 사람들의 치매증(癡呆症) 그것 마저가.  그러한 온갖 위협을 나는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의 침범으로 정신의 입구를 공허하게 해서는 안 된다. ...   아주 딴 방향으로부터 저 하현달이 다시금 모습을 나타냈다. 하지만 그 방향이 다른 것으로 보아 그것은 다른 것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약간 따스함조차 띠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의 사치(奢侈)로 해서 참을 수 없이 빛나고 있다. 참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나에게 표정을 강요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어떤 표정을 짓지 않으면 아니 된다. 나는 기꺼이 표정을 선택할 것이다.  이런 떄, 내가 해야 할 표정은 어떤 것이 제일 좋을까? 어떤 것이 제일 달의 자랑에 알맞은 것이 될까?  나는 잠시 망설인다.   -산촌(山村) ... 그들은 도대체 나한테서 무엇을 탐지하려는 것일까? 내 악(惡)의 충동에 대해 똑똑히 알고 싶은 것이리라ㅡ. 나는 위구(危懼)를 느껴 마지 않는다. 나는 그들의 누구를 보고도 싱글벙글했다. 무턱대고 싱글벙글 함으로써 나의 그러한 위구감(危懼感)을 얼버무리는 수밖엔 없었다. ...  하지만 이제 나는 귀뚜리를 향해 어찌 싱글벙글할 수 있겠는가? 너의 혜안은 나의 위에 별처럼 빛난다. ...  귀뚜리여, 이 사각거리는 소리를 듣기만 해도, 너는 능히 나의 이 모자란 글을 읽어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정녕 선지자 같은 정돈된 그 이지적인 모습을 보면, 나는 그렇게 생각되니 말이다. 그러나 어떠냐, 나는 이렇게 많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얄미운 놈이라고 생각하느냐, 요사한 놈이라고 생각하느냐.  하지만 너만은 알 것이다. 보다 속 깊이 싹트고 있는 나의 악에 대한 충동을, 그리고 염치도 없는 나의 욕망을, 그리고 대해 같은 나의 절망까지도. 그리고 너만이 나를 용서할 것이다. 나를 순순히 받아들여 줄 것이다.    그러나 귀뚜리는 다시 흰 벽으로 옮아앉았다. 그것이 내가 필설로서 호소할 수가 전혀 없는 수많은 깊은 악과 고통마저 알고 있다는 꼭 그런 얼굴인 것이다. 나는 나의 무능함이 폭로되는 것을 생생하게 보았던 것이다. 나는 더욱 깊이 절망할 수밖에 없다.   불행한 계승(繼承)   한여름 대낮 거리에 나를 배반하여 사람 하나 없다. 패배에 이른 패배의 이행(履行), 그 고통은 절대한 것일 수밖에 없다.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ㅡ. 자살마저 허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그래 그렇기에ㅡ 나는 곧 다시 즐거운 산 즐거운 바다를 생각하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ㅡ달뜬 친절한 말씨와 눈길ㅡ그리고 나는 슬퍼하기보다는 우선 괴로워하기부터 실천하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한여름 대낮 거리 사람들 모두 날 배반하여 허허(虛虛)롭고야. ...   2 ... 피해자를 낼 만한 농담은 금해야 할 것이다. 그의 뇌리에 첫째로 떠오르는 금제(禁制)의 소리는 몽롱하나마 그것은 피해자에의 경계(警戒)인 것 같았다. 그렇다, 상의 앞에 피해자는 육안이라는 조건을 가지고 상을 위협하는 포즈를 계속할 것이다. 그것은 괴롭다.  차라리 이렇게 하자. 저 언짢은 그림자의 사나이가 나중에 무엇이라고 나무라든지 아랑곳할 것이 뭐냐.  옳지, 하고 그는 후회보다도 더욱 냉정한 푼돈을 집어 던지고 오뎅집 콘크리트 바닥을 차고 일어섰다.  그리곤 가을바람처럼 비틀거리면서ㅡ노(路)ㅡ  차압(差押)이다. 특히 네놈이 이번엔 지명당하고 있단 말이다. 그런 기세로 상의 속도(速度)에는 시뻘거니 발홍(發紅)한 노여움이 충만해 있었다.   3 불길한 예감에는 그는 무섭도록 민감했다. 불길한 사건 앞에선 반드시 무슨 일에나 불길한 조짐이 그를 괴롭히는 것이었다. 그는 이런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항상 전전긍긍하여 겁을 먹고 있지 아니하면 아니 되었다. ... 이젠 더 내 평생엔 사랑을 한다든가 하는 기회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었단다. 설령 어느 경우 이쪽에서 연연한 연정을 느낀다손 치더라도, 결국은 바닷가 조가비의 짝사랑이 되고 말 것이라고 굳게 체념하고 있었단다. 불긋불긋 녹슨 들판만 아득한 천(千) 리(里)란다.  사귀면 손해 본다. 허나 되레 반갑다. 두세 친구 이외에 내 자살을 만류해 줄 이유의 근원이 있을 턱이 없다.  자넨 혹은, 하필이면 네가 그러느냐 그럴지도 모른다. 허나 난 정당방위 그것마저 준비하고 있었단다ㅡ. 아니지, 어느 경우이건 놀림받기는 싫단 말이야. 그래서 그 손쉬운, 즉 조그마한 희생을 택했던 게야. 이러한 점에서 내가 하수인이라는 책임을 지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 점에서만 말하자면 난 굳이 그 책임을 회피하라곤 하지 않을 작정이다.  아니, 자넨 아주 무관심한 것 같군. 하나의 조소 거리를 얻을 것 같을지도 모르지. 허나,    이런 날에도 어쩌다 떠오르는 추억의 조각 한강(漢江)물 반짝이는 여름 햇살 보누나   4 ... 피하지 아니하면 아니 되는 것. 피해서 안전한 것을 어째서 피하지 아니하였느냐 말이다. 한 줄기의 백금선을 백일(白日)에 드러냈던 때의 후회ㅡ. 아니다ㅡ. 그래 그것은 나중이야, 아니면 정녕 먼저냐? 예감이라니 정말이냐.  허나 분명 얻은 것은 아니다. 무엇인가 송두리째 잃은 것만은 사실이다. 속일 순 없다. 이건 또 치명적인 결석(缺席)이었다.  무엇일까. 누이인 줄 알고 있던 두 가지의 성격을 두 가지의 방법으로 생각했던 그것일까. 아니면, 한꺼번에 십 년 후로 후퇴해 버린 자신의 위치일까. 아니면, 십 년이란 먼 곳에 미소짓는 해변의 소운ㅡ그 친구일까.  아니면, 그것들과는 전혀 다른 무엇일까.   5 ... 자아, 가자구. 그러지 말고 가자구. 고집부리지 말고. 멋꼬라지 없게, 새삼스레, 자아, 자아. 그렇지, 상은 결국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ㅡ전연 손을 내밀지 않는다는 것. 그래, 그렇게 하려고 한다면, 대체 그는 어떻게 하고 있으면 좋단 말인가. 결국 가만히 있는 것. 그런 일은 있을 수 없거든.  가만히 있기는커녕, 정녕 가만히 있진 못하겠다. 이건 또 불가사의한 처지인 것 같았다. 왜 가만히 있지 못한단 말인가?  소운은 집에 가겠노라 했던 것이다. 집에 가서 혼자 조용한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것이었다. 슬픈 심정을 주체스러워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괴로워해 하겠노라고ㅡ.  괴로워해?  그 괴로움이야말로 사람들이 원해도 쉬이 얻을 수 없는, 말하자면 괴로움 같은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닌, 어떤 그 무엇이지 않을까.  조용한 시간만큼 적어도 두 사람에게 있어서 싫은 것은 없을 터이다. 설상 상은 그것이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이었다.  그러나 완전히 외톨이로 남게 되어ㅡ상은 소운의 팔을 잡아끎변서, 절일 만큼의 서러움을 몸에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무슨 수를 쓰든 이 자리를 면하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아니다, 소운으로 하여금 이 '눈물의 장(場)'에서 달아나게 해선 안 된단 말이다.  억지로, 오기(傲氣)로도ㅡ. (혹은 있고 싶지 않단 말이다. 혼자 있는 건 무서워.)  혼자서? 혼자서 있는 것일까 그것이? 그리고 그런 내용을 가지고서의 혼자서 있는 것. 그것이 허용될 수 있는 일일까.  숫자는 3이다. 2와 1이라는 짝 맞춤밖에는 전혀 방법은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무엇을 그렇게 우물쭈물하고 있는 것이냐? 얌전하게 단념해야지ㅡ.  그러고 싶어. 사실은 그래도 좋다곤 생각해. 허나 그저 가만히 있지는 못하겠다 그런 소리일 따름이야. 이걸 달래주는 법은 없을까. ... 절망의 새끼줄을 붙잡고ㅡ이 무슨 멋꼬라지 없는 하룻밤이었던가. 이미 분리된 것을 끌어당긴다는 것은 적어도 비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밤이 밝아온다. 절망은 절망인 채, 밤이 사라져 없어지듯 놓아주지 아니하면 아니 될 성질의 것이다. 날뛰는 망념(妄念) 위에, 광기 어린 야유(揶揄) 위에, 그야말로 희디흰 새벽빛 베일이 덮쳐 오는 것이었다.   6 ... 모든 것은 현관 신발장 께에 구두와 함꼐 벗어던져져 있다. 이제 이 지폐 냄새 물씬거리는 실내엔 고독이란 찾아볼 수가 없다. .... ㅡ그래 웃지 않기는 커녕 입을 열지 않는다구. 그런 아주 색다른, 어쩌면 내일 당장 자살해 버리지나 않을까 싶은 염세형(厭世型)인데,  그러면서도 개성이 강해서 남의 말은 쉬이 들어먹지 않거든.   황(獚)의 기(記)ㅡ작품 제 2번 ㅡ황은 나의 목장을 사수하는 개의 이름입니다. (1931년 11월 3일 명명) ... 기(記) 2 ... 지식과 함께 나의 병(病)집은 깊어질 뿐이었다 ...시간의 습관이 식사처럼 나에게 안약을 무난히 넣게 했다 병집이 지식과 중화(中和)했다ㅡ세상에 교묘하기 짝이 없는 치료법ㅡ그 후 지식은 급기야 좌우를 겸비하게끔 되었다   기(記) 3 복화술이란 결국 언어의 저장 창고의 경영일 것이다 한 마리의 축생은 인간 이외의 모든 뇌수일 것이다   기(記) 4 ... 언제나 나는 나의 조상ㅡ육친을 위조하고픈 못된 충동에 끌렸다 치욕의 계보(系譜)를 짊어진 채 내가 해부대의 이슬로 사라질 날은 그 어느 날에 올 것인가? ... 그래 나는 나의 신분에 걸맞게시리 나의 표정을 절약하고 겸손하고 하는 것이었다 ... 나의 사상의 레터 나의 사상의 흔적 너는 알 수 있을까? 나는 죽는 것일까 나는 이냥 죽어가는 것일까 나의 사상은 네가 내 머리 위에 있지 아니하듯 내 머리에서 사라지고 없다   모자 나의 사상을 엄호해 주려무나 나의 데스마스크엔 모자는 필요 없게 된단 말이다! ... 별들은 흩날리고 하늘은 나의 쓰러져 객사(客死)할 광장 보이지 않는 별들의 조소 ... 한 줄기 길이 산을 뚫고 있다 나는 불 꺼진 탄환처럼 그 길을 탄다 ... 화살처럼 빠른 것을 이 길에 태우고 나도 나의 불행을 말해 버릴까 한다 한 줄 기 길에 못이 서너 개ㅡ 땅을 파면 나긋나긋한 풀의 준비(準備)ㅡ 봄은 갈갈이 찢기고 만다   작품 제3번   2 ... 신(神)은 사람에게 자살을 암시하고 있다...... ... 나의 눈은 둘 있는데 별은 하나밖에 없다 폐허(廢墟)에 선 눈ㅁ불ㅡ눈물마저 하오(下午)의 것인가 불행한 나무들과 함께 나는 우두커니 서 있다   폐허는 봄 봄은 나의 고독을 쫓아버린다 나는 어디로 갈까? 나의 희망은 과거분사가 되어 사라져버린다   폐허에서 나는 나의 고독을 주워 모았다 봄은 나의 추억을 무지(無地)로 만든다 나머지를 눈물이 씻어버린다 낮 지난 별은 이제 곧 사라진다 낮 지난 별은 사라져야만 한다 나는 이제 발을 떼어놓지 아니하면 아니 되는 것이다 바람은 봄을 뒤흔든다 그럴 때마다 겨울이 겨울에 포개진다 바람 사이사이로 녹색 바람이 새어 나온다 그것은 바람 아닌 향기다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묻어버리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나는 흙을 판다    흙 속에는 봄의 식자(植字)가 있다   지상에서 봄이 만재(滿載)될 때 내가 묻은 것은 광맥(鑛脈)이 되는 것이다 이미 바람이 아니 불게 될 때 나는 나의 행복만을 파내게 된다   월원등일랑(月原橙一郞) (츠키하라 도이치로[原橙一郞]. 1930년대 활동했던 일본 시인.)   나의 마음이 죽었다고 느끼자 나의 육체는 움직일 필요도 없겠다 싶었다   달이 둥그래지는 내 잔등을 흡사 묘분(墓墳)을 비추듯 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참살당한 현장의 광경이었다.   공포의 기록(서장)   ... 아, 피곤하다. 그에게 아방궁을 준다 해도 더는 움직일 수 없다. 그는 그렇도록 피곤한 것이다. ... ㅡ자아, 나르자! 저 악취에 싸여 있는 육친의 한 뭉치를 그는 낡은 짐수레에 싣고 날라와야 한다. 노동이다. 그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다. 그는 무엇을 생각한다든지 하는 일 따위는 엄두도 못낼 지경이었다. 성격 파산ㅡ무엇 때문에? 그의 교양은 그의 겉모양새와 같은 꼴이 되어버렸다. 남루. 수염도 텁수룩하다. 거리. 땀. ... 공복ㅡ절망적인 공허가 그를 조소하는 듯했다. 초조하다. 그다음에는 무엇이 왔는가. 적빈. 쓸 만한 넝마는 남의 손에 의해 모두 팔려 나갔다. 그리하여 보다 더 남루한 넝마들이 병균처럼 남아 있다. ...    밤이 되자 그는 유령처럼 흥분한 채 거리를 누볐다. 이제 그에게는 의지할 곳이 없다. 오로지 한 가닥 공복을 메꾸기 위해 행동할 뿐이었다.  성격의 파편, 그는 그런 것은 돌아볼 생각도 않는다. 공허에서 공허로 그는 역마처럼 달리고 또 달렸다.  술이 시작되었다. 술은 그의 앞에서 향수처럼 빛났다.  왼팔이 오른팔을 오른팔이 왼팔을 자꾸만 가혹하게 구타한다. 날개가 부러져서 흔적이 시퍼렇다.  소량의 구조 깃발은 이미 효력이 없다.   공포의 성채    사랑받은 기억이 없다. 즉 애완용 가축처럼 귀여움을 받은 기억이 전혀 없는 것이다.    무서운 실지(實地)ㅡ특기해야 할 사항이 없는 흐린 날씨와 같은 일기(日記)ㅡ긴 일기다.    버려도 상관없다. 주저할 것 없다. 주저할 필요는 없다.    ...  그것도 정말일까. 모두를 미워하는 것과 개과천선하는 일이 양립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다. 개과한다는 것은 바로 교활해 간다는 것의 다른 뜻이다. 그래서 그는 순수하게 미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때는 민족마저 의심했다. 어쩌면 이렇게도 번쩍임도 여유도 없는 빈상스런 전통일까 하고.  하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았다.  가족을 미워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는 또 민족을 얼마나 미워했는가. 그것은 어찌 보면 '대중'의 근사치였나 보다.  사람들을 미워하고ㅡ반대로 민족을 그리워하라, 동경하라고 말하고자 한다.  무어라고 형용할 수 없는 커다란 덩어리의 그늘 속에 불행을 되씹으며 웅크리고 있는 그는 민족에게서 신비한 개화를 기대하며  그는 '레프라'와 같은 화려한 밀탁승의 불화(佛畵)를 꿈꾸고 있다. (lepra. 나병(癩病). 문둥병.) (밀타승[密陀僧]. 일산화연[一酸化鉛]의 별칭. 색상의 농도에 따라서 금[金] 밀타, 은[銀] 밀타 등의 명칭이 있음.)  새털처럼 따뜻하고 또한 사향처럼 향기 짙다. 그리고 또 배양균처럼 생생하게 살아 있다. ... 성은 재채기가 날 만큼 불길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창들의 세월은 길고 짧고 깊고 얕고 가지각색이다.  시계 같은 것도 엉터리다.  성은 움직이고 있다. 못쓰게 된 전자처럼. 아무도 그 몸뚱이에 달라붙은 땟자국을 지울 수는 없다.  스스로 부패에 몸을 맡긴다.  그는 한난계처럼 이러한 부패의 세월이 집행되는 요소요소를 그러한 문을 통해 들락거리는 것이다.  들락거리면서 변모해 가는 것이다.  나와서 토사(吐瀉) 들어가서 토사. 나날이 그는 아주 작은 활자를 잘못 찍어놓은 것처럼 걸음새가 비틀거렸다.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모든 것이 시작될 때까지. 그리하여 모든 것이 간단하게 끝나 버릴 아리송한 새벽이 올 때까지만이다.   야색(夜色)   한꺼번에 이처럼 많은 별을 본 적은 없다. 어쩐지 공포감마저 불러일으킨다. 달 없는 밤하늘은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귀기마저 서린 채 마치 커다란 음향의 소용돌이 속에 서 있는 느낌이다. ...  과연 이 한 몸은 광대한 우주에 비하면 티끌만 한 가치도 없다. 그런데도 이 야망은 어떻게 된 것인가. 이 불안은 뭔가. 이 악에의 충동은 또 뭔가. 신은 이 순간에 있어서 건강체인 나의 앞에선 단연 무력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나는 그 신을 이길 수는 없지만. 그러나 나는 신에 대해 저주의 마음 같은 것은 추호도 갖고 있지 않다. 신을 이기겠다는 의욕도 갖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나의 이 불안감은 끝없는 환희 속에서 신의 의지, 신의 제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곻 나의 이 바윗덩이 같은 우울의 근거는 어디서 오는 것인지 전혀 불명이다. 그 원천이 내 자신의 내부에 있다면 나는 무엇 때문에 나 자신에 의해 고통을 받는 것일까? 그건 우스운 이야기다.    인간 세상이 온통 제멋대로인 것처럼 자꾸만 생각된다. 그것은 사실 신이 관여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 한 몸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고 간섭받지 않는 완전한 자유를 지녔다. 자살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자살에 대해 생각해 본다. 수단, 시기. 유서에 대한 것 등 세세히 냉정하게 생각하는 일에 몰두한다. 그러나 자살하려고 마음먹었다가 자살하지 않고 있는 것도 역시 자유다. 모든 곤란과 치욕을 견더내며 아랫배에 힘을 주고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세상의 많은 자살자들은 모두 자살하는 것의 자유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며 더 큰 고난과 치욕에도 불구하고 뻔뻔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은 자살하지 않는 것도 또한 자유라는 데 대한 인식을 얻은 사람들이다.  ...  이상하게도 그들은 자살하지 않는다. 자살하지 않는다. 그들이 마음 속으로 자살을 생각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들의 토인처럼 검게 탄 얼굴 모습을 일별하면 그들은 결코 단 한 번도 자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런데 나는 뭔가. 자살하는 일 자살하지 않는 일 등을 번갈아 가며 생각하는 데 몰두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공연히 정신 상태를 어지럽게 해서 그 때문에 몹시 비관하거나 실망하는 등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불행한 사람이다.  이런 식으로 나의 일생은 끝나겠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산다는 것이 이 얼마나 불쾌와 고통의 연속인가 하는 것에 아연해질 수밖에 없다.  야색은 권태로운 경치를 한층 더 권태롭고 혼연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방대한 공포의 광경마저 내장한 채 버티고 있다. 이러한 우매한 자연에 대해서 나는 언제까지나 털끝만 한 친밀감도 발견할 수 없다.   단상(斷想)   (1)   나의 생활은 나의 생활에서 1을 뺀 것이다. 나는 회중전등을 켠다. 나의 생활은 1을 뺀 나의 생활에서 다시 하나 1을 뺀다. 나는 회중전등을 끈다. 감산이 회복된다ㅡ그러나 나는 그것 때문에 또 다른 하나의 생활을 잃어버린다. 나는 회중전등을 포켓 속에 집어넣었다. 동서남북조차 분간할 수 없다. 나는 무엇을 해야 좋을지 알지 못한다. 나는 그저 빈둥빈둥ㅡ나의 사상마저 빈둥거리게 하기 위해 회중전등이 포켓 속에서 켜졌다. 나는 서둘러야 한다. 무엇을? 나는 죽을 것인가? 그게 아니면 나는 비명의 횡사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 내게는 나의 생활이 보이지 않는다. 나의 생활의 국부를 나는 나의 회중전등으로 비추어본다. 1이 빼어져 나가는 것을 목전에 똑똑히 보면서ㅡ나는 나에게도 생활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2) 병자가 약을 먹고 있다. 병자는 약을 먹지 않아도 죽기 때문이다. 그것은 건강한 사람은 약을 먹어도 건강하기 때문이다.   (3) 나는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다. ㅡ이 편지 읽는 대로 곧 답장을 보내 주세요ㅡ 단지 이 한마디만을 써서ㅡ 그러자 답장이 왔다. ㅡNo, 이것을 Yes로 생각하세요ㅡ No 이것을 번역하면 '아니다' Yes 이것을 번역하면 '맞다' '아니다'를 '맞다'로 한다면 아무리 '맞다', '맞다'라고 해본들 이 '맞다'는 '아니다'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아니다'나 '맞다'나 매한가지다. 어느 쪽이든 '아니다'인 것이다. 결국 No는 Yes가 있어서 비로소 No가 되며 Yes는 No가 되는 것이다. ...   (9) 여자의 손은 하얗다. 그리고 파란 줄이 잔뜩 있다. 여자는 그 파란 줄 하나를 선택한다. 앞으로 간다 갈라진다. 여자는 그중의 하나를 선택해서 앞으로 간다. 또 갈라진다. 여자는 그중 하나를 선택한다. 앞으로 간다. 역시 갈라진다. ㅡ지팡이로 해봐야지ㅡ 물론 지팡이라도 쓰러뜨려 보지 않는 이상 어떤 지식으로 어떤 감정으로 어떤 의지로 길을 선택할 수 있단 말인가 No와 Yes 두 통의 편지를 써서 지팡이를 쓰러뜨려 봉함에 넣는다. 그리고 또 지팡이를 쓰러뜨려 주소를 쓴다. 그리고 또 지팡이를 쓰러뜨려ㅡ ㅡ당신은 Yes라고 말했군요. 고맙습니다ㅡ ㅡ그치만 그게 정말 Yes인지 아닌지는 이걸 쓰러뜨려 봐야 알지요ㅡ 아ㅡ아무리 쓰러뜨려 본들 무슨 수로 그것을 알 수 있을까?   (10) 누군가가 밥을 먹고 있다. 몹시 더러운 꼴이다. 그렇다. 분명히 밥을 먹는다는 것은 더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 누군가가 라고 하는 작자가 바로 내 자신이라면 이걸 어쩐다?   (11) 나는 매일 아침 양치질을 한다. 나는 또 손톱을 깎아 마당 가운데 버린다. 나는 폐의 파편을 토한다. 나는 또 몸뚱이의 도처가 욱신거린다. 나는 서서 오줌을 갈기면 눈이 녹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또 내가 벙어리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고 소리를 질러본다. 내일이 오늘이 될 수 없는 이상 불안하다. 내일이야말로 정말 미쳐버릴거다 ㅡ나는 항상 생각하며 마음을 들볶기 때문이다.   나는 왜 한쪽 장갑을 잃어버렸을까? 나는 나머지 장갑도 마치 잃어버렸으면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내 마음대로 그것을 없앨 수가 있을까? 나는 욕을 먹는다. 한쪽 장갑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내일은 내게 편지가 오려나 내일은 좀 풍성해지려나 내일 아침 몇시쯤 나의 최초의 소변을 볼 것인가. 출처: https://hichy.tistory.com/entry/이상-전집-4-수필-외?category=478796 [히키의 상상 공간:티스토리]
1154    말테의 수기 -릴케 댓글:  조회:883  추천:0  2022-08-31
말테의 수기 (1) ··· 릴케 9월 11일 툴리에 거리. 그러니까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이 도시로 온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오히려 사람들이 여기서 죽어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밖에 나갔다왔다. 많은 병원을 보았다. 어떤 사람이 비틀거리다가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그 사람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기에 그 후의 일은 보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임신한 여인을 보았다. 그 여인은 따사로운 높은 담을 따라 힘들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마치 담이 아직 거기에 있는지 확인이라도 하듯 그녀는 여러 번 담을 만져보고는 했다. 물론 담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담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도를 찾아보았다. 산부인과 병원. 그래. 그녀는 곧 해산을 하겠지-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 좀더 가니 생 자크 거리가 나오고, 둥근 지붕의 커다란 건물이 나왔다. 지도에는 발 드 그라스 육군병원이라 나와 있었다. 사실 이런 것을 알 필요는 없었지만 안다고 나쁠 것도 없다. 골목길 사방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요오드포름, 감자 튀김 기름 그리고 불안의 냄새를 분간할 수 있었다. 여름이면 모든 도시에서 냄새가 난다. 그 다음 나는 백내장이 낀 듯한 야릇한 색의 집을 보았다. 지도에는 나와 있지 않은 그 집 현관문 위에는 아직는 제법 뚜렷하게 ‘간이 숙박소’라 씌어 있었다. 문 옆에 요금이 붙어 있었다. 읽어보았다. 별로 비싸지 않았다. 그리고 또 무엇을 보았던가? 세워놓은 유모차 안에 있는 아이를 보았다. 그 아이는 통통했고 피부는 푸르스름했으며, 이마에는 오롯하게 종기가 나 있었다. 종기는 거의 다 나아서 이제 아프지 않아 보였다. 아이는 잠을 자고 있었다. 아이는 입을 벌린 채 요오드포름과 감자튀김, 그리고 불안의 냄새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이런 것들을 나는 보았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중요했다. 창문을 열어놓고 자는 버릇을 나는 도저히 고칠 수가 없다. 전차가 미친 듯 경적을 울리며 내 방을 가로질러 달려간다. 자동차는 내 위를 지나간다.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어디선가 유리창이 깨져서 떨어진다. 큰 유리조각들은 걸껄거리고 작은 조각들이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는 갑자기 집 안의 다른 쪽에서 둔중하고 무언가에 갇힌 듯한 소음이 들린다. 누군가가 계단을 올라온다. 누군가가 끊임없이 올라온다. 문 저쪽에 서 있다가, 한참을 서 있다가 지나가버린다. 다시금 거리의 소리. 처녀애가 날카롭게 소리를 지른다. “제발 입 다물어. 이제 충분해.” 전차가 잔뜩 흥분해서 달려와 그 소리를 덮치고, 모든 것을 덮치고 지나간다.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 사람들은 빠르게 움직이고 서로를 앞질러간다. 어디선가 개짖는 소리가 들린다.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개가 있다니. 게다가 새벽녘에는 어디선가 닭 우는 소리도 들린다. 그 소리는 내게 한없는 위안을 가져다준다. 그러고 나서야 나는 불현듯 잠이 든다. 이것은 소리들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소리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 바로 정적이다. 큰불이 났을 때 가끔 극도로 긴장되는 한 순간이 있다. 솟구치던 물줄기들이 사그라들고, 소방관들은 더 이상 사다리를 기어오르지 않고, 아무도 움직잊 않는 그런 순간 말이다. 소리없이 검은 추녀 끝이 위에서 앞으로 밀려나오고, 높은 담이, 뒤쪽에서 불길이 넘실대는 담이 소리없이 무너진다. 모두가 멈춰 서서 어깨를 움츠리고, 눈에다 온 신경을 모아서 끔찍한 일격을 기다린다. 이곳의 적막은 바로 그런 것이다. 나는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모든 것이 내 안 깊숙이 들어와서, 여느 때 같으면 끝이었던 곳에 머물지 않고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지금까지는 모르고 있었던 내면을 지금 나는 가지고 있다. 이제 모든 것이 그 속으로 들어간다. 거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나는 모른다. 오늘 나는 편지를 썼다. 그러면서 내가 여기에 이제 겨우 삼 주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다른 곳에서 삼 주라면, 가령 시골에서의 삼 주라면 하루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마치 몇 년 지난 것 같다. 이제 나는 더 이상 편지를 쓰지 않을 작정이다. 내가 변하고 있는 것을 누군가에게 말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내가 변한다면 나는 당연히 예전의 나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그 무엇이라면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니 낯선 사람들에게, 이제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쓸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이미 말했던가?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그렇다. 나는 보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직 서투르지만 주어진 시간을 잘 이용하려고 한다. 가령 지금까지는 얼마나 많은 얼굴이 있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사람들의 수도 엄청나지만 얼굴은 그보다 훨씬 더 많다. 모두들 여러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 동안 하나의 얼굴만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 얼굴은 닳아버리고, 지저분해지고, 주름살이 잡히고, 여행 내내 끼고 다녔던 장갑처럼 헐거워진다. 이런 사람들은 검소하고 순박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얼굴을 바꾸지도 않고, 한 번 깨끗하게 닦지도 않는다.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누가 그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반증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들도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으니 나머지 얼굴을 어떻게 하는가가 문제다. 그들은 나머지 얼굴은 그냥 보관해둔다. 그들의 아이들이 쓰고 다녀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개가 나머지 얼굴을 쓰고 다니는 일도 있을 수 있다. 안 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어떻든 얼굴은 얼굴이다. 다른 사람들은 끔찍하게도 빠르게 차례차례로 얼굴을 바꿔 금방 낡아버리게 만든다. 처음에는 영원히 바꿔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마흔 살도 안 되어 마지막 얼굴만 남는다. 물론 비극적인 일이다. 그들은 얼굴을 조심해서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 얼굴도 여드레가 못 되어 구멍이 숭숭 나고, 여기저기가 종이처럼 얇아져서 급기야는 점점 밑바닥이, 그러니까 얼굴도 무엇도 아닌 것이 드러난다. 결국 그들은 그런 상태로 돌아다닌다. 그런데 그 여인은, 그 여인은 몸을 숙인 채 두 손에 얼굴을 온통 파묻고 있었다. 노트르담 드 샹 거리의 모퉁이에서였다. 그녀를 보자마자 나는 발소리를 죽여 조용히 걷기 시작했다. 불쌍한 사람들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면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혹시 그들에게 무슨 생각이 떠오를 수도 있으니까.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마침 심심해하던 거리의 공허가 내 발자국소리를 낚아채가서는 마치 나막신이라도 신은 듯 제멋대로 여기저기서 딸까닥 소리를 냈다. 그 여인은 깜짝 놀라서 몸을 을이켰는데, 너무 급하게 일으키는 바람에 그만 얼굴이 두 손에 남아버렸다. 나는 손 안에 놓여 있는, 움픅 들어간 얼굴의 형태를 볼 수 있었다. 그 여인의 손에서 떨어져나온 맨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손만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말할 수 없이 힘이 들었다. 얼굴을 안쪽에서 바라보는 것은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그러나 얼굴이 없는, 상처 난 맨 머리를 보는 것은 더욱 무서웠다. 나는 무서움을 느꼈다. 무서움을 느끼면 그에 맞서 무엇인가 해야 한다. 여기서 병이 들면 정말 끔찍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디외 병원으로 데려가기라도 한다면 나는 거기서 틀림없이 죽고말 것이다. 그 병원은 안락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일각을 다투며 넓은 광장을 지나 병원으로 달려가는 그 많은 마차들에 치일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는 노트르담 성당의 정면을 바라볼 수 없을 정도다. 작은 합승마차들이 계속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도 누군가 죽어가고 있는 이가 이 병원으로 곧장 달려오기로 마음먹었다면 사강 공작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마차를 세워야 할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들은 막무가내기 마련이라 마르티르 거리의 고물상 주인 러그랑의 마누라가 센 강의 시테 섬에 있는 이 병원으로 실려올 경우 파리 시 전체의 교통을 마비시킬 수 있다. 이 고약한 소형 마차의 창에는 몹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반투명 유리가 끼워져 있어서, 그 안에서 아주 화려한 단말마의 고통이 벌어지고 있다고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것을 상상하는 데는 수위의 상상력 정도면 충분하다. 상상력이 좀더 풍부해서 그것을 다른 방향으로 펼친다면 곧 그러한 추측은 한도 없이 뻗어나갈 것이다. 나는 지붕 없는 합승마차가 도착하는 것도 보았는데, 포장을 젖힌 이 마차는 규정된 요금으로 운행한다. 임종의 시간을 맞기 위해서는 2프랑이면 된다. 이 훌륭한 병원은 매우 오래 되었다. 이미 클로비스 왕 시절에도 이곳의 몇몇 침대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지금은 559개의 병상에서 사람들이 죽어간다. 공장에서처럼 대량 생산 방식이다. 이렇게 엄청난 대량생산이기에 각각의 죽음은 훌륭하게 치러지지 않지만 그런 것이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 대량으로 죽어나가니 그렇게 되었다. 오늘날 훌륭하게 공들인 죽음을 위해 무언가 하려는 사람이 아직도 있겠는가? 아무도 없다. 심지어는 세심하게 죽음을 치를 능력이 있는 부자들조차 무관심하고 냉담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자신만의 고유한 죽음을 가지려는 소망은 점점 희귀해진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그런 죽음은 고유한 삶이나 마찬가지로 드물어질 것이다. 맙소사, 이게 전부라니. 사람들은 세상에 와서 기성품처럼 이미 만들어져 있는 삶을 찾아서 그냥 걸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죽으려 하거나 어쩔 수 없이 죽음으로 내몰릴 경우에도 문제가 없다. “자, 너무 애쓰지 마세요. 이것이 당신의 죽음입니다, 선생.” 이제 사람들은 자신에게 막 닥쳐온 죽음을 맞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앓고 있는 병에 딸려 있는 죽음을 맞이한다(사람들이 모든 질병을 알게 된 이래로 여러 가지의 죽음은 인간이 아니라 질병에 속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병자는 아무 할 일이 없다). 의사와 간호사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며 기꺼이 죽어가는 요양소에서 사람들은 그 시설에 걸맞는 죽음을 맞는다. 그런 죽음을 사람들은 좋다고 여긴다. 그러나 집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면 당연히 훌륭한 계층에 어울리는 점잖은 죽음을 선택하는 게 마땅하다. 그러면 죽음과 함께 상류계층의 장례 절차가 시작되고 그들의 매우 멋진 관습들이 뒤따라 이어진다. 가난한 이들은 그 집 앞에 서서 실컷 구경할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격식이 없는 가난한 이들의 죽음은 보잘것없다. 그들은 자신에게 대충 들어맞는 죽음이면 기뻐한다. 죽음이 아주 커서 헐렁해도 상관없다. 사람들은 늘 조금씩 자라기 때문이다. 다만 죽음이 가슴을 여미지 못할 정도로 꽉 끼거나 숨막힐 정도로 옥죈다면 문제이다. 이제는 더 이상 아는 사람이 없는 고향을 생각할 때면 예전에는 달랐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사람들은 열매 속에 씨가 들어 있듯 자신 안에 죽음을 품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또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작은 죽음을, 어른들은 커다란 죽음을 자신 속에 지니고 있었다. 여자들은 뱃속에, 남자들은 가슴속에 죽음을 지니고 있었. 누구나 바로 그런 죽음을 갖고 있었고, 그 사실은 사람들에게 독특한 위엄과 조용한 자부심을 가져다주었다. 나의 할아버지, 늙은 시종관 브리게도 하나의 죽음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었다. 얼마나 대단한 죽음이었던가. 두 달이나 계속되고, 외딴 농가까지도 들리는 그런 요란한 죽음이었다. 유서 깊은 이 널따란 저택도 그 죽음에게는 너무 작았다. 옆에다가 곁채를 하나 더 세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였다. 시종관의 몸이 점점 거대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계속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 주기를 바랐다. 그러다가 아직 하루가 다 가지도 않았는데, 이제 누워보지 않은 방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으면 무섭게 화를 냈다. 결국 하인과 하녀, 그리고 할아버지가 항상 곁에 두셨던 개들이 하나의 무리가 되어 계단을 올라가, 집사가 앞장선 가운데 당신의 어머니께서 임종하신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은 23년 전에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던 때의 상태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이제 모두가 무리를 지어 여느 때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던 그 방으로 밀려들어갔다. 커튼이 젖혀지자 여름날 오후의 강렬한 햇살이 깜 놀라고 겁먹은 모든 사물들을 샅샅이 비추고, 천이 젖혀진 거울에 부딪혀서 서투르게 몸을 돌렸다.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호기심에 가득 찬 하녀들은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했고, 젊은 하인들은 모든 것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나이든 시종들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운 좋게도 마침내 들어와보게 된 이 폐쇄된 방에 대해 들었던 모든 기억을 되살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개들이 모든 사물이 냄새를 풍기는 이 방에 들어오게 되어 몹시 흥분한 것 같았다. 호리호리하고 커다란 러시아산 그레이하운드들은 안락의자 뒤를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마치 춤이라도 추는 듯한 걸음걸이로 몸을 흔들며 방을 가로질러 갔다. 그리고는 紋章에 새겨진 개처럼 일어서서 가느다란 앞발을 백금으로 된 문틀에 걸치고는, 뾰족한 얼굴로 바짝 긴장하여 이맛살을 찌푸리며 마당의 오른편 왼편을 둘러보았다. 누런 장갑 빛깔의 자그마한 닥스훈트는 모든 것이 잘 되어 있다는 듯 만족스러운 얼굴로 가의 널찍한 비단 소파에 앉아 있었다. 털이 불그스름하고 뭔가 불만스러운 듯한 표정의 포인터는 금빛 책상다리의 모서리에 등을 비벼대고 있었다. 그 바람에 그림이 그려진 책상 위에 있던 세브르산 접시가 달가닥거렸다. 물론 이것은 맥놓고 잠 속에 푹 빠져 있던 사물들에게는 끔찍한 시간이엇다. 누군가가 성급한 손길로 거칠게 펼친 책갈피에서 장미꽃잎이 떨어져 짓밟혔다. 자그맣고 부서지기 쉬운 물건들은 누군가가 낚아채어 바로 망가뜨리고는 얼른 제자리에 놓았다. 여러 가지 망가진 물건들을 커튼 아래 숨겨놓거나, 벽난로의 금빛 격자망 뒤로 던져버리기까지 했다. 이따금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양탄자 위로 살며시, 혹은 마룻바닥 위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런데 언제나 소중하게 다뤄지는 데 익숙해 있던 이 물건들은 떨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어디에 떨어지든 쪼개지고, 날카롭게 부서지거나 소리없이 깨져버렸다. 누군가가 이 모든 일들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불안하게 지켜온 이 방의 몰락을 부르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그 대답은 단 하나, 죽음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울스가르 마을의 시종관 크리스토프 데트레프 보리게의 죽음이었다. 크리스토프 데트레프는 시종관의 감청색 제복 밖으로 미어져 나올 정도로 부풀어오른 채 방바닥 가운데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의 커다랗고 낯설기만 한, 아무도 더는 알아볼 수 없게 된 얼굴의 눈은 감겨져 있었다. 그는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고 있지 않았다. 처음에 사람들은 그를 침대 위에 눕히려 했다. 하지만 병이 자라기 시작했던 초기부터 침대를 싫어했던 그는 당연히 이를 거부했다. 게다가 그 방에 있던 침대는 너무 작았기에 그를 양탄자 위에 눕히는 것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래층으로는 내려가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종관 데트레프는 누워 있었다. 이미 숨을 거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개들은 하나씩 하나씩 문틈으로 빠져나가서 불만스러운 얼굴을 한, 털이 빳빳한 개 한 마리만이 주인 곁에 남았다. 넓적하고 털이 텁수룩한 앞발 하나를 그의 커다란 잿빛 손 위에 얹어놓고 있었다. 대부분의 하인들도 이제는 방보다는 한결 환한 바깥의 흰 복도에 나가 있었다. 방에 남아 있는 이들도 때때로 방 가운데 놓여 있는 커다랗고 시커먼 덩어리를 몰래 힐끔거리며 그것이 썩어버린 물체 위에 덮여 있는 커다란 옷에 지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직 남아 있는 게 있었다. 목소리가 남아 있었다. 더 이상 시종관의 목소리가 아닌 목소리, 이미 7주 전부터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게 된 목소리가 남아 있었다. 이 목소리의 주인은 크리스토프 데트레프가 아니고 크리스토프 데트레프의 죽음이었다. 크리스토프 데트레프의 죽음은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 울스가르에 살면서 모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무엇인가를 요구했다.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고 요구했고, 푸른 방으로 데려가라 요구했고, 자그마한 응접실로 그리고 넓은 홀로 가자고 요구했다. 개들을 요구했고, 사람들에게 웃어라, 이야기하라, 유희하라, 조용히 하라고 요구했고 때로는 이 모든 것을 동시에 요구하기도 했다. 친구가 보고 싶다고, 여인들과 이미 죽은 이들이 보고 싶다고 했으며, 자신도 죽고 싶다고 했다. 요구하고 요구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밤이 와서 지쳐버려 파김치가 된 하인들이 먹 잠들려 할 때면 크리스토프 데트레프의 죽음은 조금도 쉬지 않고 소리를 지르고 한숨을 쉬고 울부짖었다. 그 바람에 처음에는 함께 짖어대던 개들도 결국 입을 다물고 감히 다시 몸을 눕힐 생각을 못 하고 길고 가느다란 다리로 서서는 무서움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 덴마크의 광활한 은빛 여름밤을 뚫고 그 죽음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면 마을 사람들은 천둥번개라도 칠 때처럼 일어나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는 그 소리가 그칠 때까지 등잔 주위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해산 날짜가 가까워진 여인들은 가장 구석진 방에 두꺼운 칸막이를 한 잠자리로 옮겨졌다. 그렇지만 거기까지 그 소리가 들렸다. 마치 자신들의 몸 속에 있기라도 한 듯 여인들은 그 소리를 들었다. 여인들은 일으켜달라고 간청하여, 희고 품이 넓은 옷을 입은 채로 나와서는 흐릿한 얼굴을 하고 다른 사람들 곁에 앉았다. 이 시기에 송아지를 낳아야 할 암소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몸을 닫아버렸다. 새끼가 영 나오려 하지 않자 사람들은 암소에서 죽은 새끼를 강제로 꺼냈는데 내장까지도 함께 끌려나왔다. 다가올 밤에 대한 두려움에 그리고 밤에 자꾸만 깜짝 놀라 깨어 있는 바에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피곤했기 때문에 모두들 낮에도 일을 제대로 못 했고 건초를 들여놓는 일을 잊어버리기도 했다. 일요일에 흰색의 평화로운 교회에 갈 때마다 사람들은 이제 울스가르에서 주인이 사라져 주기를 기도했다. 이 주인이 너무 금찍했기 때문이었다. 그들 모두가 가슴에 품고 기도한 것을 목사는 설교단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 목사 역시 밤에 잠을 잘 수 없었고 이러시는 하느님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교회의 종도 똑같이 외쳤다. 그 종은 밤새도록 시끄럽게 울려대는 경쟁자에 맞서 쇳소리를 힘차게 울렸지만 아무리 해도 대적할 수가 없었다. 모두들 그 이야기를 했다. 젊은이들 가운데에는 저택에 들어가서 쇠스랑으로 나리를 찔러 죽이는 꿈을 꾼 이도 있었다. 모두들 매우 흥분했고, 인내의 한계를 느꼈고, 초조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젊은이의 꿈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었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그 젊은이가 실제로 그런 일을 감행할 만한지 가늠해보는 것이었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시종관을 사랑했고 걱정해주던 그 지방의 사람들은 모두들 이제 그 젊은이처럼 느끼고, 그처럼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울스가르에 살고 있는 크리스토프 데트레프의 죽음은 물러가려 하지 않았다. 죽음은 10주 예정으로 와서 10주 동안 머물렀다. 이 기간 동안 죽음은 이전의 크리스토프 데트레프보다 더욱 강력하게 군림했다. 죽음은 마치 후세 사람들이 나중까지 폭군이라 부르는 군주와 같았다. 그것은 수종증에 걸린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시종관이 일생 동안 품고 다니며 스스로 키워왔던 고약한 군주 같은 죽음이었다. 시종관 자신이 평온한 시절에 다 써버릴 수 없어 남아 있던 모든 자만과 의지, 지배력이 이제 그의 죽음 안으로 들어가버린 것이다. 죽음은 울스가르에 눌러앉아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누군가가 이것과는 다른 죽음을 가지라고 그에게 요구한다면 시종관 브리게는 그 사람을 어떤 표정으로 바라보았을까. 그는 자신만의 힘든 죽음을 맞은 것이었다. 내가 직접 알고 있었거나 전해들은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생각해 보아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자신만의 고유한 죽음을 가지고 있다. 남자들은 갑옷 깊숙이 죽음을 지니고 있었다. 죽음은 마치 포로와 같았다. 아주 늙어서 자그맣게 오그라든 여자들은 무대처럼 엄청나게 큰 침대에 누워 모든 가족과 하인과 개가 지켜보는 앞에서 분별 있고 주인다운 죽음을 맞았다. 아이들까지도, 아주 어린아이들까지도 마음을 가다듬어 아이들의 평범한 죽음이 아니라, 지금까지 자라온 자신과 앞으로 자라게 될 자신을 합해놓은 죽음을 맞았다. 아이를 가진 여인이 가만히 서 있을 때면 얼마나 우수에 찬 아름다움이 느껴지는지. 무의식적으로 가느다란 손을 올려놓고 있는 그녀의 커다란 몸 속에는 두 개의 열매가, 아이와 죽음이 들어 있다. 단아한 얼굴에 감도는 진지하고 거의 풍요롭기까지 한 미소는 그들이 자신 안에서 두 개의 열매가 자라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두려움에 맞서서 무엇인가를 했다. 밤새 앉아서 글을 썼다. 이제 나는 울스가르의 들판을 건너 먼 길을 걸은 뒤처럼 피곤하다. 지금은 모든 것이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으며, 그 오래된 저택에 이제 낯선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는 아무래도 믿을 수 없다. 아마 지금도 하얀 다락방에서는 하녀들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무겁고 축축한 잠을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아는 사람도 없고, 가진 것도 없이 달랑 가방 하나와 책이 든 상자 하나만 들고, 아무런 호기심도 없이 세상을 떠돌아다닌다. 집도, 물려받은 물건도, 개도 없는 이런 삶이 대체 무어란 말인가. 적어도 추억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데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이가 있을까? 어린 시절이 추억 속에 있지만 땅 속에 묻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모든 추억에 다시 다다르기 위해서는 아마도 나이를 먹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나이를 먹는 것이 그래서 나는 좋다. 오늘 아침은 아름답고 가을 분위기가 났다. 나는 툴리에 공원을 거닐었다. 동쪽을 향해 서 있는 모든 것들은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햇빛을 받고 있는 것들이 밝은 회색 커튼 같은 안개에 싸여 있었다. 아직 모습을 다 드러내지 않은 정원의 동상들은 밝아오는 희미한 빛 속에서 햇살을 쬐고 있었다. 기다란 화단의 꽃들이 잠에서 깨어나 깜짝 놀란 목소리로 ‘아아 붉은색’이라고 말햇다. 그때 저쪽 샹젤리제 쪽에서 키가 크고 비쩍 마른 남자가 모퉁이를 돌아 다가왔다. 그는 목발을 겨드랑이에 끼지 않고 가볍게 앞으로 내밀고 있었고, 이따금 마치 전령관의 지팡이라도 되는 듯 힘을 주어 소리나게 땅을 짚었다. 그 남자는 기쁨을 억누릴 수가 없는 듯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에게, 태양과 나무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의 걸음걸이는 어린아이처럼 조심스러웠지만 이상하리만치 가벼웠고 이전의 걸음걸이에 대한 추억에 가득 젖어 있었다. 이렇듯 자그마한 달이 못 하는 게 없다니. 달밤에는 주위의 모든 것이 투명하고 가벼우며, 밝은 공기 속에서 있는 듯 없는 듯하면서도 뚜렷하게 보인다. 바로 옆에 있는 것도 먼 빛을 띠고 시야에서 사라져 보이고 손에 잡히지 않는다. 넓이와 관계 있는 것들, 즉 강과 다리와 길게 뻗은 길과 확 트인 광장은 그 거리감이 뒤로 사라져서 마치 비단 위에 그려진 그림처럼 보인다. 그럴 때면 퐁네프 다리 위의 밝은 녹색 마차와 멈추지 않고 지나가는 어떤 붉은 물체와 진주빛 빌딩의 방화벽에 붙은 포스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로 이루 표현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이 단순해져서 마치 마네의 초상화 속의 얼굴처럼 몇 개의 정확하고 밝은 선으로 그려져 있다. 모자라거나 넘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센 강변의 헌책방에서 책이 들어 있는 상자들을 열어 놓는다. 새 책의 선명한 노란색이나 헌 책의 바랜 노란색, 전집 물의 붉은 빛이 도는 갈색, 대형 화첩의 초록색. 이 모두가 잘 어울리고 각자 의미를 지니며, 서로를 보완해 주어서 무엇 하나 빠진 것 없는 완전함을 만들어낸다. 창문 아래로 다음과 같은 풍경이 보인다. 여인이 작은 손수레를 밀고 간다. 손수레 위 앞쪽에 손으로 돌리는 오르간이 세로로 놓여 있다. 그 뒤에는 아기 바구니가 비스듬히 놓여 있고, 그 속에는 모자를 쓴 아주 작은 아이가 기쁜 듯이 두 다리를 버티고 서서 앉으려고 하지 않는다. 가끔 여인은 오르간 손잡이를 돌린다. 그러면 그 작은 아이는 곧바로 바구니에서 일어나 발을 구르고, 초록색 나들이옷을 입은 작은 소녀는 춤을 추면서 창문을 향해 탬버린을 흔든다. 보는 법을 배우고 있는 지금 나는 무엇인가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스물여덟인데 해 놓은 게 아무것도 없다. 다시 말해서 카르파초에 관한 논문을 썼지만 형편없고, 이라는 희곡을 썼지만, 잘못된 내용을 모호한 수법으로 증명해 보이려는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시를 썼다. 아아, 젊어서 쓴 시는 별로 대단치가 못하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평생을, 가능하다면 오래 살아서 삶의 의미와 달콤함을 모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아마도 마지막에 열 줄의 훌륭한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시란 사람들이 말하듯 감정이 아니라 (감정은 이미 젊어서부터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은가) 경험이기 때문이다.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많은 도시와 사람들 그리고 사물을 보아야 하며 동물들을 알아야 한다. 새들이 어떻게 나는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하고, 자그마한 꽃들이 아침이면 만들어내는 몸짓을 알아야 한다. 낯선 지방의 길들과 예상치 못한 만남 그리고 오래 전부터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았던 이별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아직 해명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어린 시절과, 아이를 기쁘게 해주려 했으나 아이가 그것을 알지 못하여 부모가 마음 상한 일과 (다른 아이한테는 분명 기쁜 일이었을 것이다), 아주 이상하게 시작되어 몇 번이나 매우 깊고 무겁게 변화해간 어린 날의 병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고요하고 외진 방에서의 나날들과 바닷가에서 맞은 아침, 그리고 바다 그 자체, 이곳 저곳의 바다들, 하늘 높이 올라가 별과 함께 날아가버린 여행 중의 밤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떠올리는 것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하나하나가 각각 달랐던 사랑의 밤들에 대한 기억과 산고(産苦)의 외침 그리고 산후에 다시 몸을 닫고 가벼워져서 하얗게 잠든 산모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또한 죽어가는 사람 곁에 있어보아야 한다. 창문이 열려 있어 이따금 덜컹거리는 소리가 나는 방에서 죽은 사람 곁에 앉아 보았어야 한다. 그러나 추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추억이 많아지면 그것을 잊어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커다란 인내심을 가지고 추억이 다시 솟아오르기를 기다려야 한다. 추억 자체로는 아직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추억이 우리 몸 속에서 피가 되고 눈짓이 되고 몸짓이 되어 이름을 잃어버리고, 우리와 더 이상 구분할 수 없게 될 때에야 비로소 아주 드물게 그 추억의 한가운데에서 시의 첫 단어가 솟아올라 걸어나오게 되는 것이다. 나의 모든 시들은 이와는 다르게 생겨났다. 그러니 시라고 할 수가 없다. 희곡을 쓸 때에도 나는 얼마나 실수를 했는지. 서로를 힘들게 하는 두 사람의 운명을 이야기하기 위해 제삼자를 등장시켰으니 나는 모방자이고 바보가 아니었던가? 너무 쉽사리 함정에 빠진 것이다. 모든 삶과 모든 문학에 등장하는 이 제삼자는, 실제로는 존재한 적이 없는 이 제삼자라는 율령은 사실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그것을 부정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진작에 알았어야 했다. 이 제삼자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장 심오한 비밀을 알리지 않기 위해 자연이 꾸민 술책 중의 하나다. 진행되고 있는 드라마를 가리고 있는 칸막이와 같다. 실제 갈등은 소리없는 고요 속에서 벌어지는데 그 입구에서 나는 소음이 바로 제삼자다. 문제가 되는 두 사람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지금까지는 모두에게 너무 어려웠다고 할 수 있다. 제삼자는 너무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다루기가 쉬웠다. 그래서 모두들 제삼자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러한 작가들의 희곡에서는 바로 첫머리부터 벌써 제삼자를 등장시키고 싶어하는 초조함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제삼자를 참고 기다릴 수가 없다. 그런데 제삼자가 등장하자마나 모든 것은 순조로워진다. 그가 조금 늦게 나오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지루한가. 제삼자 없이는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못하고, 모든 것이 정지되고, 정체되고, 마냥 기다리고만 있게 된다. 그런데 이런 정체 상태와 마냥 멈춰 있는 상태가 지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을 가정해 보자. 사람들은 대번에 극장이 예술적으로 공허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마치 위험한 구멍이라도 되는양 극장을 막아버릴 테고, 좀벌레 나방들만 특별석의 테두리에서 날아올라 텅 빈 공간에서 나부낄 것이다. 극작가들은 더 이상 고급 주택가에서 살지 못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공공 첩보기관들은 극작가를 위해 그 제삼자를, 줄거리 그 자체이며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는 그 제삼자를 아주 멀리 떨어진 세계 구석구석까지 찾아나설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이는 ‘제삼자’가 아니라 바로 그 부부다. 두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데도 아직 그들에 대해서는 이야기된 게 거의 없다. 그들은 괴로워하고, 행동하고, 서로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고 있는데도 말이다. 우스운 일이다. 나는 여기 이 작은 방에 앉아 있다. 스물여덟이 되었고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나. 브리게가 앉아 있다. 나는 여기 앉아 있고,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이제 생각하기 시작하여, 잔뜩 흐린 파리의 어느 날 오후에 5층 방에서 이러한 생각을 펼친다. 사람들이 지금까지 어떤 진실한 것, 중요한 것도 보지 못하고, 인식도 못하고, 말하지도 않았다는 것이 가능할까? 관찰하고, 숙고하고, 기록할 몇천 년의 시간을 갖고 있엇는데도 사람들은 그 수천 년의 시간을 버터 바른 빵과 사과 하나 베어먹는 학교의 점심시간처럼 헛되이 흘려버렸다는 사실이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수많은 발명과 진보에도 불구하고, 문화와 종교 그리고 세상의 지혜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다만 삶의 표면에만 머물러 있었다고 할 수 있을까? 무엇인가 의미 있을 수도 있는 이 삶의 표면을 형편없는 천으로 덧씌워놓고, 여름 휴가철의 응접실 가구처럼 보이게 하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 그럴 수 있다. 세계의 모든 역사가 온통 잘못 이해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떤 죽어가고 있는 낯선 사람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서 있는데, 죽어가는 사람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모여든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처럼, 역사는 항상 군중에 대해서만 말해왔기 때문에 과거는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 그럴 수 있다.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일어났던 일을 되찾아야 한다고 믿는 일이 가능할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가 이전의 모든 조상들에게서 생겨나온 존재이며, 그것을 알게 되면 그와는 다르게 알고 있는 사람들의 말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설득시키는 게 가능할까? 그렇다, 그럴 수 있다. 이 모든 사람들이 결코 존재한 일이 없는 과거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 모든 현실은 무의미하며, 그들의 삶은 마치 빈 방의 시계처럼 어떤 것과도 연관을 갖지 않고 다만 헛되이 흘러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 그럴 수 있는 일이다. 현실에 살고 있는 처녀들에 대해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게 가능할까? 사람들이 ‘여인들’ ‘아이들’ ‘소년들’이라고 말하지만 이 단어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복수형이 아니라 다만 수많은 단수형만이 있었음을 (아무리 교양 있더라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 그럴 수 있다. ‘신’이라는 말을 언급하면서, 그 말이 누구에게나 동일한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두 명의 초등학생을 보라. 한 아이가 칼을 하나 사고, 옆자리의 아이도 같은 날 똑같은 것을 샀다고 하자. 그리고 일 주일 뒤에 두 아이가 그 칼을 서로에게 내보일 경우, 두 칼에는 비슷한 점이 아주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두 칼은 각기 다른 손 안에서 그렇듯 다르게 변한 것이다 (그걸 보고 한 아이의 어머니는 “너희들은 무엇이든 금방 망가뜨려버리지”라고 말할 테지만 말이다). 아아, 그렇다. 신(神)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다만 마음속에 품고 있을 수 있다고 믿는 일이 가능할까? 말테의 수기 (2) ··· 릴케 그 당시 나는 열두 살, 많아야 열세 살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나를 우르네클로스터로 데려 가셨다. 아버지가 무슨 일로 외할아버지는 방문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두 분은 오랫동안 만난 적이 없었고, 아버지는 브라에 백작이 만년에 이르러 은거한 그 오래된 저택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간 그 기이한 저택을 나는 그 후 두 번 다시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내 어린 시절의 기억에 남아 있는 그 집을 떠올려보면 건물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다. 내 기억 속에 그 집은 온통 분해되어 있다. 여기에 방 하나, 저기에 또 하나, 그리고 두 방을 연결시켜주지 않고 따로 떨어져 단편으로 남아 있는 복도가 있다. 내 머리 속에는 모두가 이런 식으로 흩어져 있다. 여러 개의 방들, 큰 곡선을 그리며 아래로 뻗어 있는 계단, 그리고 어두컴컴한 속을 사람들이 혈관 속의 피처럼 지나야 했던 나선형의 좁은 계단이 있는가 하면, 탑 속의 방, 높게 매달려 있는 발코니, 조그만 문을 밀고 나가면 나오던 예상치 못했던 자그마한 발코니가 있다. 이 모든 것이 내 머리 속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아마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마치 이 집의 모습이 헤아릴 수 없이 높은 곳에서부터 내 안으로 떨어져 내려와 내 속에 있는 밑바닥에 부딪혀 부서진 것과 같다. 내 마음 속에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은 매일 저녁 일곱 시면 저녁식사를 위해 모이곤 했던 그 커다란 방뿐이다. 나는 이 방을 낮에는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창문이 있었는지, 어느 쪽으로 나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족들이 그 방에 들어설 때면 언제나 묵직한 촛대 위에 촛불이 타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시간과 함께 밖에서 보았던 모든 것을 깡그리 잊어버렸다. 이 높다란, 지금 기억으로는 둥그런 아치형의 방은 그 어떤 방보다도 강렬했다. 그 방의 어두컴컴한 높은 천장과 한 번도 온전하게 빛이 비친 적이 없는 구석은 사람들에게서 모든 영상을 빨아들이고는 그것을 대신할 다른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저 멍하니, 아무런 의지도, 생각도, 의욕도, 저항할 생각도 없이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마치 빈 공간 같았다. 이처럼 모든 것을 무로 돌리는 상황이 처음에는 내게 배멀미와 같은 메스꺼움을 불러일으켰던 게 생각난다. 나는 건너편에 앉아 있는 아버지의 무릎에 내 발이 닿도록 다리를 쭉 뻗음으로써 이 기분을 극복할 수 있었다. 아버지와 나 사이의 거의 냉담할 정도였던 당시 관계에 비추어보면 그러한 행동은 자연스럽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이 이상한 행동을 이해해 주었거나 어떻든 아주었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이 접촉을 통해서 나는 길고 긴 식사시간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이렇듯 안간힘을 다해서 견뎌낸 몇 주가 지나가 아이들 특유의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적응력에 힘입어 나는 이 모임의 몹시도 스산한 분위기에 아주 익숙해졌고, 두 시간 동안 식탁에 앉아 있는 것도 별로 힘들지 않았다. 식탁에 자리를 같이한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오히려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도 했다. 외할아버지는 이 모임을 가족이라 불렀고 다른 사람들도 이 표현을 썼는데 이 표현은 별 근거가 없는 것이었다. 네 사람은 서로 먼 친척이기는 했지만 결코 한 집안에 속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내 옆에 앉아 있던 당숙은 노인이었는데 단단하고 검게 탄 얼굴에는 몇 개의 반점이 있었다. 내가 들은 바로는 화약이 폭발해서 난 상처라 했다. 투덜거리며 불만스러워했던 그 당숙은 소령으로 퇴역했는데, 당시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방에서 연금술을 시도하고 있었다. 하인들에 따르면, 그는 1년에 한두 차례 시체를 보내오는 어떤 감옥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면 그는 그 방에 밤낮으로 틀어박혀서는 시체들을 해부하고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시체가 썩지 않도록 처리를 한다는 것이었다. 당숙의 맞은편은 노처녀인 마틸데 브라에의 바리였다. 그녀는 도무지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인물로 내 어머니의 먼 사촌 뻘이었다. 그녀에 대해서는 오스트리아의 한 심령술사와 매우 활발하게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사실이 없다. 놀데 남작이라는 이 심령술사에게 그녀는 완전히 빠져 있어서 사전에 그의 허락이나 더 나아가 축복을 받지 않고는 아무리 사소한 일도 하려 들지 않았다. 당시 그녀는 매우 뚱뚱했는데 부드럽고 느물느물한 덩어리가 밝고 헐렁한 옷 속에 아무럿게나 흘려 넣어져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동작은 피곤해 보였고 부정확했으며 눈에는 언제나 눈물이 괴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는 나의 다감하고 날씬한 어머니를 기억나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녀를 오래 보고 있으면 있을수록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재대로 기억해낼 수 없었던 어머니의 섬세하고 조용한 특징들을 그녀의 얼굴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마틸데 브라에를 매일 보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 아마도 처음으로 어머니의 모습을 제대로 깨달았다고 할 수 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수백 가지 개별적인 인상들이 모여서 이제야 비로소 하나의 모습이 만들어졌다. 그 모습은 그 후 언제나 나를 떠나지 않고 함께 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브라에의 얼굴에는 정말로 어머니의 얼굴과 모습을 특징지어주는 모든 세부적인 요소들이 깃들여 있었다. 다만 두 얼굴 사이로 낯선 얼굴이 끼어들기라도 한 듯, 두 얼굴이 서로 밀려나고 일그러지는 바람에 더 이상 관련을 갖지 않게 된 것 같았다. 이 부인 옆에는 사촌누이의 아들이 앉아 있었는데, 내 또래였지만 나보다 작고 허약했다. 주름 잡힌 옷깃 위로 가늘고 창백한 목이 솟아올랐다가 긴 턱 아래에서 사라졌다. 그 아이의 얇은 입술은 굳게 다물어져 있었으며 콧등이 가볍게 떨리곤 했다. 아름다운 짙은 갈색의 두 눈 중에서 단지 한쪽 눈만이 움직였다. 그 눈은 이따금 구석에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그 눈을 팔아버렸기에 이제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식탁의 끝에는 아주 큼지막한 외할아버지의 팔걸이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 일만을 맡아 하는 하인이 외할아버지가 앉을 때 의자를 밀어 넣어주곤 했는데, 외할아버지는 그 의자의 아주 작은 공간만을 차지하고 앉았다. 귀가 어둡고 무뚝뚝한 이 늙은 주인을 각하나 시종관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고, 장군이라 부르기도 했다. 물론 외할아버지는 그런 직함을 지닌 일이 있었지만 아주 오래 전의 일이어서 이러한 명칭이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 어떤 순간에는 말할 수 없이 예리하다가도 다시금 몽롱해지는 외할아버지 같은 인물에게는 어떠한 특정한 명칭을 붙일 수 없다는 생각이 내게는 들었다. 외할아버지는 때때로 내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더군다나 농담 석인 악센트로 내 이름을 부르면서 당신 곁으로 오라고 했지만 나는 한 번도 그를 외할아버지라 부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모든 가족이 외할아버지에게 존경심과 두려움이 뒤섞인 태도를 보였지만, 꼬마 에릭만은 이 늙은 집주인과 친밀한 관계에 있었다. 그의 움직이는 눈이 가끔 외할아버지에게 재빨리 동의를 구하는 눈짓을 보내면, 이 눈짓을 곧바로 외할아버지의 응답을 받곤 했다. 때로는 기나긴 오후 시간에 두 사람이 으슥한 화랑의 끝에 나타나 서로 손을 잡고 아무 말도 없이, 하지만 분명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이해하면서 어두운 옛 초상화 옆을 지나 걸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하루 종일 뜰이나 집 밖의 너도밤무 숲 또는 들판에서 지냈다. 다행히도 우르네클로스터에는 개들이 있어서 나를 따라다녔다. 여기저기 소작인들의 집이나 목장에서 우유나 빵, 과일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나중의 몇 주 동안은 저녁 모임에 대한 생각으로 불안해하지도 않고, 아무런 걱정도 없이 나의 자유를 누렸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있는 기쁨 때문에 나는 아무하고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만 개들하고는 이따금 짤막하게 이야기를 했다. 개들하고는 아주 잘 통했다. 하기야 과묵함은 우리 집안의 특성이기도 했다. 나는 과묵함을 아버지를 통해 알고 있었기에 저녁식사 내내 한 마디 말이 없어도 별로 놀랍지 않았다. 우리들이 도착한 후 며칠 동안 마틸데 브라에는 말을 아주 많이 했다. 아버지에게 외국의 도시에 살고 있는 친지들에 대해 물어보았고, 아주 오래 전의 인상을 회상하기도 했으며, 죽은 친구들이나 어떤 젊은 남자를 생각해내고는 거의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했다. 그 남자는 자기를 사랑했지만 자신은 그의 간절하고 절망적인 애정에 응할 수가 없었노라고 암시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정중하게 귀를 기울였고, 가끔 긍정의 표시로 머리를 끄떡였으며 꼭 필요한 대답만을 하였다. 위쪽에 앉아 있는 외할아버지는 아랫입술을 꽉 다물고 시종일관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의 얼굴은 마치 가면이라도 쓰고 있는 듯 실제보다 더 커 보였다. 외할아버지도 이따금 말을 했지만 특별히 누군가를 향한 것은 아니었다. 목소리가 매우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홀의 어디서나 잘 들렸다. 그 목소리는 시계바늘의 규칙적이고 무관심한 진행과 비슷한 점이 있었다. 목소리를 둘러싼 적막은 일종의 공허한 반향을 지니고 있는 듯 보였고 어느 음절이나 똑같이 울렸다. 브라에 백작은 나의 아버지의 죽은 처, 그러니까 나의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외할아버지는 어머니는 지빌레 백작 영양이라 불렀고 무슨 말을 하든 어머니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그럴 때면, 지금도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하얀 옷을 입은 젊은 처녀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 처녀가 금방이라도 우리가 있는 곳으로 걸어 들어올 것만 같았다. 나는 또한 외할아버지가 같은 어조로 ‘우리들의 사랑스러운 안나 소피’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어느 날 나는 외할아버지가 특별히 좋아했던 것처럼 보이는 이 소녀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그녀는 콘라드 레벤트로우 재상의 딸로 나중에 프리드리히 4세의 배우자가 되었고 로스킬데에 묻힌 지 150년이나 된다는 것이었다. 외할아버지에게는 시간의 흐름이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죽음은 작은 돌발 사건으로 외할아버지는 이를 완전히 무시했다. 한 번 자신의 기억에 받아들인 사람은 그대로 존재하고 있어서 그들의 죽음 정도는 약간의 변화도 가져오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나고 이 늙은 주인이 죽은 후에 사람들은 그가 미래 역시 제멋대로 현재의 일처럼 여겼다고 서로들 이야기했다. 언젠가 외할아버지가 어떤 젊은 여인에게 그녀의 아들들에 대해서, 특히 그 중의 한 아들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는 당시 첫 아이를 임신한 지 겨우 3개월인 상태였기 때문에 계속 이야기를 하는 노인 옆에서 놀라움과 두려움에 거의 정신을 잃다시피 한 채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 사건은 내가 웃음을 터뜨린 일이 발단이 되었다. 나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고는 억제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저녁에 마틸데 브라에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거의 장님이 되다시피한 늙은 시종은 그녀의 자리에 멈춰 서서는 음식 그릇을 내밀었다. 그는 한동안 이런 자세로 기다리다가 만족한 듯, 그리고 모든 것이 제대로라는 듯 점잖게 다음 자리로 옮겨갔다. 나는 이 장면을 줄곧 관찰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에는 우습게 생각되지 않았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막 음식을 한 입 입에 물었을 때 갑자기 웃음이 터져나와 사레가 들렸고 한바탕 소동을 일으킨 것이었다. 내게도 이런 상황이 불쾌하게 여겨졌고 모든 수단을 다해서 점잖게 있으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계속 웃음이 터져나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나의 행동을 감싸주려는 듯 넓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마틸데가 아픈가보지요?”라고 물었다. 외할아버지는 예의 그 미소를 지으며 짤막하게 대답했는데, 나는 웃음을 참으려고 애쓰는 바람에 주의해 듣지는 않았지만 아마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아니, 단지 크리스티네를 만나고 싶지 않을 따름이야.”그래서 나는 내 옆에 앉아 있던, 갈색으로 그을린 소령이 일어나서는 백작에게 잘 알아들을 수 없게 중얼거리며 양해를 구하고 인사를 한 뒤 방을 떠난 것이 외할아버지의 말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가 집주인의 등 뒤에 있는 문 앞에서 다시 한 번 몸을 돌려서는 갑자기 에릭과 내게 자신을 따라오라고 지시하는 듯한 손짓과 고갯짓을 한 것을 알아차렸을 뿐이다. 그것을 보고 나는 아주 놀랐다. 놀란 나머지 나를 괴롭히던 웃음이 뚝 그칠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그 소령에게 더 이상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나는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 에릭도 그를 무시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식사는 언제나처럼 천천히 진행되었고 막 후식이 나올 때쯤이었다. 그때 나는 방의 뒤편, 반쯤만 빛이 비치는 어두운 곳에서 일어나는 어떤 움직임에 눈이 끌려 숨을 죽이고 그것을 응시했다. 그곳의 늘 잠겨 있는 문이, 중간층으로 통한다고 사람들이 말해준 적이 있는 그 문이 서서히 열렸다. 그리고 내가 호기심과 놀라움이 섞인 아주 기묘한 감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밝은 옷을 입은 날씬한 여이니 문이 열린 어두운 공간에 나타나서는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때 내가 어떤 몸짓을 했는지 아니면 소리를 질렀는지 잘 모르겠다. 의자가 넘어지는 소리가 나서 나는 그 이상한 여인의 모습에서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쳐다보니 아버지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얼굴이 창백해져서는 주먹 쥔 손을 내려뜨리고는 그 여인에게로 가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그 여인은 이런 광경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 우리에게로 한 발 한 발 다가왔다. 그녀가 백작의 자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르자 외할아버지는 벌떡 일어나더니 아버지의 팔을 붙들고 식탁으로 잡아당겼다. 그 동안 낯선 여인은 천천히 그리고 아주 무관심하게 한 반짝씩 걸음을 옮겨, 이제 방해물이 사라진 공간과 어디선가 유리잔이 떨리는 소리만이 들릴 따름인, 형언할 수 없는 적막을 지나서 방의 맞은편 벽에 달린 문으로 사라졌다. 그 순간 나는 이 낯선 여인의 뒤에서 깊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하며 문을 닫고 있는 사람이 에릭임을 알아보았다. 식탁에서 떠나지 않은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의자에 붙박인 듯 앉아 있었기에 혼자 힘으로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면서 한참을 그냥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그 다음에야 아버지 생각이 나서 바라보니 외할아버지가 여전히 그의 팔을 붙잡고 있다. 아버지의 얼굴은 이제 화가 나서 벌게졌으나 외할아버지는 마치 맹수의 흰 발톱과 같은 손가락으로 아버지의 팔을 움켜쥐고 예의 가면과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외할아버지가 무슨 말인가를 한 음절 한 음절씩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말은 아주 깊숙이 내 귀에 박혔다. 2년 전인가 나는 그 말을 갑자기 내 기억의 저 밑바닥에서 찾아내게 되었고 그 후부터는 그 의미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종관, 자네는 너무 흥분을 잘 하고 예의가 없네.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하도록 왜 내버려두지 않나?” 그러자 아버지가 말을 가로막고 소리쳤다.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여기에 있을 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야. 낯선 사람이 아니네. 크리스티네 브라에야.” 그때 다시금 저 이상야릇한 엷은 적막이 솟아올라 다시금 유리잔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몸을 휙 잡아빼서는 달리듯 홀에서 나가버렸다. 나는 아버지가 밤새도록 자신의 방에서 서성이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나도 역시 잠을 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나는 선잠이 들었고 새벽녘에 갑자기 깨어났다. 그리고는 내 침대에 앉아 있는 하얀 물체를 보고는 심장까지 얼어붙을 정도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절망적인 상태에서 나는 겨우 힘을 내어 이불 속으로 머리를 숨기고는 무섭고 난감해져서 울기 시작했다. 갑자기 울고 있는 내 눈 위쪽이 서늘하고 밝아졌다. 나는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고 눈물 고인 눈을 꼭 감았다. 그런데 아주 가까이서 내게 말을 걸고 있는 목소리가 부드럽고 달콤하게 얼굴에 다가왔다. 나는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아차렸다. 바로 마틸데의 목소리였다. 나는 곧 안정을 되찾았지만 완전히 울음을 그친 후에도 게속 그대로 위안을 받으며 누워 있었다. 이러한 친절이 너무 다정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어쨌든 나는 그것을 즐겼고 그럴 자경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주머니”, 마침내 나는 그녀의 흐트러진 얼굴에서 어머니의 특징을 재구성해내려 애쓰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주머니, 그 부인이 누구였어요?” “아”, 마틸데는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는데 그 한숨이 내게는 우스꽝스럽게 여겨졌다. “어느 불쌍한 여자란다. 얘야, 어느 불쌍한 여자야.” 그날 아침 나는 몇 사람의 하인이 방에서 짐을 꾸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가 떠나는구나라고 나는 생각했고 이제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아버지도 아마 그럴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무엇이 아버지를 움직여서 그날 저녁 후에도 여전히 우르네클로스터에 머물도록 했는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우리는 떠나지 않고 그 후로도 8주인가 9주를 그 집에 머물면서 그 집이 주는 기이한 억누름을 참아내었다. 우리는 세 번 더 크리스티네 브라에를 보았다. 당시 나는 그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녀가 아주 오래 전에 두 번째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는 것과 그때 태어난 사내 아이가 자라서 두렵고 끔찍한 운명을 맞이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녀가 죽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열적이면서 매사에 논리적인 것과 분명함을 추구하는 아버지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이 사건을 견뎌내려 생각했던 것일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아버지가 자신과 싸우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고, 역시 왜 그랬는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버지가 굴격 자신을 억제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우리가 크리스티네 브라에를 마지막으로 본 때였다. 이번에는 마틸데도 식탁에 자리해 있었다. 그녀는 평소와 어딘지 모르게 달랐다. 우리가 도착한 뒤의 며칠 동안처럼 그녀는 쉬지 않고 아무 연관도 없는 이야기를 계속하며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러면서 그녀 안에 자리잡은 무언가 육체적인 불안 때문인지 끊임없이 머리며 매무새를 매만졌다. 이것은 그녀가 예기치 않게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서는 뛰쳐나가버릴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 순간 내 시선은 나도 모르게 그 문을 향했다. 정말로 거기에 크리스티네 브라에가 나타났다. 옆 자리의 소령은 짧고 격하게 몸서리를 쳤는데 그것은 내 몸까지 전달되어왔다. 그러나 그는 몸을 일으킬 힘은 더 이상 없는 듯했다. 그는 늙고 반점이 난 갈색 얼굴을 이 사람에서 저 사람에게로 돌렸는데, 입은 벌어져 있었고 혀는 썩은 이빨 뒤에서 뒤틀려 있었다. 갑자기 그의 얼굴이 사라졌는가 싶더니 어느새 식탁 위에 희끗한 머리가 놓여 있었다. 팔은 토막이라도 난 듯 아래로 늘어져 있었고, 어디선가 시들고 반점투성이의 손 하나가 삐져나와 떨고 있었다. 크리스티네 브라에는 단지 늙은 개의 신음 같은 소리가 울릴 따름인 말할 수 없는 적막 속을 병자처럼 천천히 한 발짝 한 발짝 걸어서 지나갔다. 그때 수선화가 가득 꽂혀 있는 커다란 백조 모양의 은꽃병 옆으로 외할아버지의 커다란 가면 같은 얼굴이 암울한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외할아버지는 아버지를 향해 자신의 포도주잔을 들어올렸다. 나는 크리스티네 브라에가 막 아버지의 의자 뒤를 지나가고 있을 때 아버지가 술잔을 잡고 아주 무거운 것이라도 되는 듯 식탁에서 한 뼘쯤 들어올리는 것을 보았다. 그날 밤에 우리는 바로 출발했다. 그렇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그럴 수 있는 일이라면,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라도 무언가 해야 한다. 이러한 불안한 생각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지금까지 지나쳐버린 일을 되잡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설령 그가 그 일에 전혀 적합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다른 사람이라고는 없다. 그래서 이 젊고 보잘것없는 외국인인 브리게가 5층 꼭대기에 앉아서 밤낮으로 써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그는 쓰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그것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말테의 수기 (3) ··· 릴케 국립 도서관에서 나는 앉아서 시인의 작품을 읽고 있다. 도서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책에 몰두해 있다. 이따금씩 책장을 넘기느라 움직이는 것이 마치 잠자면서 꿈과 꿈 사이에 뒤척이는 사람들 같다. 아아,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은 얼마나 좋은가. 사람들은 왜 언제나 이렇지 못할까? 어떤 사람한테 다가가 가만히 건드려 보라. 그 사람은 그것을 전혀 깨닫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일어나다가 옆에 앉은 사람을 조금 건드려서 사과를 한다면 그는 당신의 목소리가 울린 쪽으로 고개를 끄떡일 것이다. 그의 얼굴은 비록 당신을 향하고 있지만 당신을 보고 있지는 않고 그의 머리카락은 잠자고 있는 사람의 머리카락 같은 것이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나는 여기 앉아서 한 시인의 작품을 읽고 있다. 얼마나 대단한 운명인가. 도서관에서 지금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은 대충 삼백 명 정도가 된다. 그러나 모두가 자신의 시인을 갖고 있을 수는 없다(그들이 무엇을 읽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삼백 명의 시인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아마도 가장 초라한 이인 내가, 외국인인 내가 어떤 운명을 가지고 있는지 한 번 보라. 나는 시인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 비록 가난하고, 매일 입고 다니는 옷은 한두 군데 해지기 시작하고, 내 신발에 대해 이런 저런 말을 할 수 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내 옷의 칼라는 깨끗하다. 속옷도 그렇다. 지금 이대로 큰 번화가의 아무 제과점에라도 들어가 이 손을 거리낌없이 과자접시에 내밀어 하나를 집어들 수도 있다. 그래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고 욕하거나 내쫓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내 손은 좋은 가문 출신인데다가 매일 네다섯 번씩 씻고 있기 때문이다. 손톱 밑에는 때도 끼지 않았고 글을 쓰는 손가락에 잉크가 묻어 있지도 않다. 특히 손목이 흠잡을 데 없이 깨끗하다. 가난한 사람들은 거기까지 닦지는 않는다. 이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람들은 깨끗한 내 손에서 무언가 추리해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하기도 한다. 가게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다. 그러나 예를 들어 생 미셸 거리나 라신 거리에는 그런 것에 속지 않고 내 손목을 비웃는 인간들이 있다. 그들은 나를 바라보고는 그것을 알아버린다. 사실은 내가 자신들과 같은 무리인데 약간의 희극을 연출하고 있을 따름임을 아는 것이다. 지금은 카니발 기간이어서 그들은 나의 즐거움을 망치려 하지 않는다. 다만 히죽 웃으며 눈을 꿈벅이는 것이다. 아무도 그것을 보지는 못했다. 그밖의 사람들은 나를 신사처럼 대해준다. 게다가 그들은 누군가 옆에 있기라도 하면 하인처럼 굽실거린다. 내가 마치 모피옷을 입고 뒤에는 전용 마차가 따라오는 사람이라도 되는 듯 대해준다. 가끔 나는 그들에게 동전 두 닢을 주곤 하는데 그럴 때면 그들이 거절하면 어쩔까 하는 걱정으로 손이 떨린다. 그러나 그들은 동전을 받아준다. 그들이 다시금 히죽 웃거나 눈을 꿈벅이지만 않아준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텐데. 그들은 누구일까? 내게 무엇을 바라는 걸까? 그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무엇을 보고 그들은 나를 알아보았을까? 내 수염이 약간은 손질이 안 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내 수염이 아주 조금은, 내게 언제나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그들의 병들고 노쇠하고 바랜 수염을 상기시켜주기는 한다. 그렇지만 수염을 그냥 내버려둘 권리도 내게는 없단 말인가? 일에 바쁜 많은 이들은 수염 손질을 등한시 하기 마련인데 그렇다고 아무도 바로 그들이 내던져진 자들에 속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 생각에 그들은 거지일 뿐 아니라 내던져진 자들임이 분명하다. 아니, 원래는 거지가 아니다. 그 차이를 분명히 해야 한다. 운명이 뱉어버린 인간의 찌꺼기이며 껍질이다. 그들은 운명의 침에 흥건히 젖어 벽과 가로등과 광고탑에 달라붙어 있는 것이다. 아니면 어둡고 지저분한 흔적을 남기며 골목길을 천천히 흘러가기도 한다. 그런데 이 노파는, 단추 몇 개와 바늘이 굴러다니는 침실 탁자의 서랍을 들고 어느 움막에서 기어나온 듯한 이 노파는 대체 내게 무엇을 원했던 걸까? 왜 그녀는 계속 내 곁에 붙어 따라오면서 나를 관찰한 것일까? 짓무른 눈으로 내가 누구인지 알아내려 애쓰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의 눈은 불그스레한 눈꺼풀에 병자가 뱉어놓은 녹색의 가래가 엉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대체 어떻게 해서 그때 그 머리가 허연 작은 여인은 십오 분 동안이나 진열장 앞의 내 곁에 서 있었던 것이었을까. 그녀는 꼭 쥔 지저분한 두 손에서 아주 천천히 삐져나오던 그 기다란 낡은 연필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진열된 물건을 보면서 짐짓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듯 행동했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그녀를 보았고, 알아차렸으면,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 곰곰이 생각하며 서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연필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어떤 신호라는 것을, 내막을 잘 알고 있는 사람끼리의 신호이자 내던져진 자들만이 알고 있는 신호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어디론가 가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그녀가 암시하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정말 무슨 사전 약속이 있으며, 이 신호는 미리 정해진 것이고 이 장면도 사실은 내가 기대했던 것이라는 느낌을 계속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것은 이주일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비슷한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는 날이란 하루도 없다. 저녁 무렵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많은 한낮의 거리에서도 갑자기 작은 남자가 늙은 여인이 나타나서는 고개를 끄떡이고 내게 무엇인가를 내보이고는 모든 임무를 다했다는 듯 다시 사라져버리곤 한다. 언젠가는 그들이 내 방으로 찾아올 작정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분명 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관리인에게 저지당하지 않도록 일을 꾸밀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이 도서관에서는 나는 당신들로부터 안전하다. 이 도서관 안으로 들어오려면 특별한 입장권이 있어야 한다. 이 입장권을 가졌다는 점에서 나는 당신들보다 우월하다.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나는 조금은 두려워하며 거리를 지나온다. 그리고는 마침내 여기 유리문 앞에 이르러서는 마치 집에라도 온 듯 그 문을 열고는 다음 문으로 가서 내 입장권을 제시한다(당신들이 내게 물건을 내미는 것처럼 말이다. 단지 차이점은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고 내가 하는 행동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책들에 둘러싸여 있게 된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당신들한테서 떨어져 나와 나는 여기 앉아 안심하고 시인의 작품을 읽고 있다. 당신들은 시인이 무엇인지 알기는 하는가? 베를렌을 아는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아무 기억도 없다고? 그럴 것이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알고 있는 사람과 그 시인을 구별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들이 아무런 구분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읽고 있는 시인은 다른 사람이다. 파리에 살고 있지 않은 아주 다른 사람이다. 산 속의 조용한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시는 마치 투명한 공기 속에서 울리는 종소리 같다. 그는 자신의 창문과 깊은 생각에 잠겨 사랑스럽고 쓸쓸한 먼 풍경을 투영하고 있는 책장의 유리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행복한 시인이다. 그는 바로 내가 정말로 되고 싶었던 그런 시인이다. 소녀들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소녀들에 대해 그렇듯 많이 알고 싶다. 그는 몇백 년 전에 살았던 소녀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그녀들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중요하다. 그는 그녀들의 이름을 소리내어 말한다. 그는 옛날식으로 둥글게 멋을 부린 늘씬한 활자로 가늘게 씌어진 나직한 그녀들의 이름과, 자기보다 나이가 든 친구들의 결혼 후의 이름, 그 속에 벌써 조금은 운명과 약간의 실망과 죽음이 함께 울리는 그런 이름들을 부른다. 아마도 그 시인의 마호가니 책상 서랍에는 빛바랜 그녀들의 편지며 일기책에서 떨어져 나온 낱장들이 들어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생일이며 여름날의 파티, 생일날의 일이 적혀 있을 것이다. 또는 그의 침실 뒤쪽에 놓여 있는 불룩한 옷장 서랍 안에는 그 소녀들의 봄옷이 간직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부활절에 처음으로 입어본 얼룩무늬 망사로 만든 새하얀 옷은 원래는 여름철의 것이나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으리라. 아아, 물려받은 집의 조용한 방에 앉아서 아주 고요하고 안정된 물건들에 둘러싸여 바깥의 화창한 연녹색 정원에서 갓 자라난 박새들이 처음으로 내는 울음소리와 멀리서 울리는 마을 시계소리를 듣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운명인가. 그렇게 앉아서 오후의 따뜻한 한 줄기 태양을 바라보고 과거의 소녀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아는 시인으로 살아가는 일은 얼마나 행복할까. 이 세상 어딘가의,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그런 숨겨진 시골집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면 나도 그런 시인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방 하나면, 지붕 밑의 밝은 방이면 내게는 충분하다. 그곳에서 오래된 내 물건들과 가족사진과 책과 함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안락의자 하나와 꽃과 개, 그리고 돌길을 걸을 때 필요한 지팡이를 하나 갖고 싶다. 그 밖에는 더 필요한 게 없다. 다만 누런 상아빛 가죽으로 장정을 하고 꽃무늬를 새긴 공책 한 권이면 족하다. 거기에 나는 글을 쓸 것이다. 나는 많은 생각과 많은 이들에 대한 추억을 지니고 있기에 거기에 그 모든 것을 써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와는 다르게 되어버렸다.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의 옛 가구들은 맡겨둔 창고에서 썩어가고 있고 나 자신은 세상이 몸뚱이 하나 가릴 집도 없다. 비가 내 눈 속으로 들이친다. 나는 때때로 센 강변의 작은 상점들 옆을 지나간다. 골동품 가게나 작은 고서점, 동판화 가게의 진열장은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누군가가 그 가게로 들어가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겉보기에 장사하는 것 같지가 않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앉아 있는 게 보인다. 그들은 그렇게 앉아서 아무 근심 없이 무엇인가를 읽고 있다. 내일은 걱정하지도 않으며 성공하려고 초조해하지도 않는다. 그들 앞에는 기분 좋게 발을 뻗고 앉아 있는 개나 적막을 더욱 커다랗게 만드는 고양이가 한 마리쯤 있다. 고양이는 마치 책표지의 이름을 지우기라도 하는 듯 늘어선 책들을 따라 미끄러져간다. 아아, 이것으로 충분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때때로 이처럼 물건으로 가득 찬 진열장이 있는 가게나 하나 사서 개와 함께 한 이십 년쯤 앉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아무 일도 아니야”라고 큰 소리로 말하고 나면 좀 낫다. 다시 한 번 해 본다. “아무 일도 아니야.” 이러면 좀 도움이 될까? 난로에서 다시 연기가 나서 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런 것쯤은 사실 불행이라고 할 수도 없다. 몹시 피곤하고 감기 기운이 있는 것도 대단한 일이 아니다. 하루 종일 골목을 싸돌아다닌 것은 순전히 내 책임이다. 루브르 박물관에 앉아 있었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아니,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기에는 몸을 녹이러 들어온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벨벳을 씌운 긴 의자에 앉아서 난방 장치의 격자 위에 발을 올려놓고 있다. 그 위에 나란히 놓여 있는 그들의 발은 마치 벗어놓은 장화 같았다. 그들은 매우 겸손한 사람들로 주렁주렁 훈장을 단 검은 제복을 입은 관리인이 눈감아주기라도 하면 아주 고마워한다. 그러나 내가 들어서면 그들은 눈살을 찌푸린다. 눈을 찌푸리고 살짝 고개를 끄떡인다. 내가 그림 앞을 이리저리 옮겨갈 때도 그들은 계속 나를 눈으로 뒤쫓는다. 탁하고 무른 눈으로 나를 지켜본다. 그러니 루브르 박물관에 가지 않기를 잘했다. 나는 계속 돌아다녔다. 얼마나 많은 시가지와 동네, 묘지, 다리, 골목을 돌아다녔는지 모른다. 어디에선가 나는 채소 수레를 밀고 가는 한 남자를 보았다. 그는 “꽃양배추우, 꽃양배추우”라고 외쳤는데, “우” 발음을 할 때 아주 독특하게 탁한 소리를 냈다. 그 남자 옆에는 몹시 뚱뚱하고 추한 여인이 걸어가면서 이따금씩 그를 쿡쿡 찔렀다. 여자가 찌를 때마다 그 남자는 외치는 것이었다. 때로는 혼자 알아서 외치기도 했는데 그래봐야 소용이 없었다. 물건을 사줄 만한 집 앞에 다다랐기 때문에 곧바로 다시 외쳐야 했다. 그 남자가 장님이라고 내가 말했던가? 아니라고? 그는 장님이었다. 그는 장님이었고 그리고 외치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만 말하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남자가 밀고 가는 수레를 빼먹고 말하는 것이 되고, 꽃양배추라고 외치는 말을 내가 못 알아들은 듯 말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 일일까? 설사 그게 중요하다 해도 그 일 전체가 내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가 문제되는 게 아닐까? 나는 늙은 남자를 보았는데 그는 장님이었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것을 나는 보았다. 내가 본 것은 그것이다. 그런 집들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믿을까? 아니,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할 것이다. 이버네는 아무것도 빼지 않고, 더 보태지도 않은 사실 그대로다. 내가 어디서 보탤 것을 가져올 수 있겠는가.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지 않는가. 그것을 다들 알고 있다. 집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는 더 이상 그 자리에는 없는 집이라고 해야 한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부서진 집 말이다. 아직 거기 남아 있는 것은 이 부서진 집 옆에 서 있던 다른 집, 이웃의 높은 건물들뿐이었다. 한쪽 측면을 모두 부숴버렸기 때문에 그 집들은 무너질 위험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무너진 집의 바닥과 겉으로 드러난 이웃 건물의 외벽 사이에 타르를 칠한 긴 돛대 간은 기둥들을 비스듬히 걸쳐놓은 게 보였다. 내가 벽을 말하고 있다고 앞에서 이미 말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은 아직 남아 있는 이웃집의 맨 앞쪽 벽이 아니라(그렇게들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서진 집의 마지막 벽이다. 그 벽의 안쪽이 들여다보였다. 여러 층마다 아직 벽지가 붙어 있는 방 안의 벽이 들여다보였고 여기저기 천장과 방바닥의 이음새가 보였다. 이 방의 벽 옆으로 전체 외벽을 따라 지저분하고 희끗희끗한 공간이 남아 있었는데, 그 사이로 화장실의 녹슨 하수관이 벌레가 기어가거나 창자가 꿈틀거리는 것 같은 모양으로 말할 수 없이 역겹게 뻗어 있었다. 전등에 연결된 가스가 지나갔던 자리로 찬장 가장자리에 뿌옇게 먼지 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 흔적은 여기저기 예기치 못한 곳에서 휘어져서는 색칠한 벽 사이, 시커멓게 무참히 뚫린 구멍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러나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벽 그 자체였다. 이 방들 속에서의 끈질긴 삶은 밟혀 없어지지 않았다. 삶은 아직 거기 남아 있었다. 삶은 아직도 박혀 있는 못에 매달려 있었고, 손바닥 넓이만큼 남은 방바닥에 붙어 있었고, 아직도 조금은 내부 모습이 남아 있는 방 모서리 틈새에 숨어 들어가 있었다. 이 삶은 또한 서서히 매년 변해간 색깔 속에도 들어 있었다. 푸른색이 우중충한 녹색으로, 녹색이 회색으로, 누런색이 낡고 퇴색한 흰색으로 변색되며 썩어가는 색깔 속에도 있었다. 그러나 삶은 또한 거울이나 그림, 장롱 뒤의 빛이 덜 바랜 부분에도 남아 있었다. 삶은 거기에다 그 물건들의 윤곽을 새기고 덧붙여놓고 이 숨겨진 곳에서 거미와 먼지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이제 그 부분이 밖으로 드러났다. 긁혀서 생긴 줄무늬에도, 벽지 아래 부분, 습기가 차서 부풀어오른 곳에도 삶은 있었다. 삶은 찢어진 조각에 붙어 나부끼고 있었고, 오래 전에 생긴 더러운 얼룩들에서도 배어나왔다. 무너진 칸막이 벽의 파편으로 둘러싸여 있는 푸르고, 녹색이며 누르스름한 색이었던 이 벽들에서는 삶의 공기가, 어떤 바람도 흩트려놓을 수 없었던 질기고 무거우며 곰팡내 나는 공기가 뿜어 나왔다. 그 속에는 한낮과 질병들, 내뱉은 입김과 여러 해 동안 쌓인 연기, 겨드랑이 밑에서 나와 옷을 축축이 적시는 땀, 입냄새, 썩어가는 발에서 나는 고린내가 들어 있었다. 또한 아주 강한 오줌 지린내와 그을음이 타는 냄새, 감자요리에서 나오는 뿌연 김, 변해가는 식용유의 미끈둥한 악취가 스며 있었다. 거기에는 내팽개쳐둔 젖먹이에게서 나는 달콤하고 긴 여운이 남는 냄새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불안의 냄새, 사춘기 사내애들의 침대에서 나는 끈적한 냄새도 있었다. 그리고 다른 많은 것들이 여기에 섞여들었다. 저 아래 골목 바닥에서 증발해 올라오는 냄새와 깨끗하지 못한 도시의 상공에서 빗물에 녹아 내려오는 냄새들이 섞였다. 언제나 같은 골목에 머물러 있도록 길들여진 약한 바람이 또한 많은 것을 날라왔고 그 밖에도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냄새들도 있었다. 마지막 것만 남겨놓고 다른 모든 벽들은 남김없이 부서졌다고 내가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그 마지막 벽에 대해 나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 앞에 오래 서 있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맹세컨대 그 벽을 알아보자마자 나는 뛰기 시작했다. 그 벽을 알아본 것은 참 끔찍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것들이 바로 내 안으로 들어와 내 안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 모든 일을 겪고 나는 지쳐버렸다. 기진맥진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남자까지 나를 기다리고 있어야 했던 것은 내게는 너무 가혹했다. 그 남자는 내가 계란 프라이를 먹으러 들어간 자그만 간이식당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배가 고팠다. 그런데 여전히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결국 계란 프라이가 나오기도 전에 나는 거리로 뛰쳐나왔다. 거리에서는 사람들의 빽빽한 물결이 내게로 밀려왔다. 카니발 저녁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시간이 넉넉해서 여기저기 몰려다니며 서로들 부대끼고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은 가설 무대에서 비치는 빛을 받아 환했고, 벌어진 상처에서 고름이 흘러나오듯 웃음소리가 입에서 솟아나왔다. 내가 점점 초조해져서 앞으로 뚫고 나가려 할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이 웃음을 터뜨렸고 더 빽빽하게 밀려들었다. 어쩌다가 한 여인의 숄이 내 옷에 걸렸다. 나는 그것을 질질 끌고 다닌 모양이었는지 사람들이 나를 붙들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웃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내 눈에다 콩페티를 한 주먹 던졌다. 마치 채찍으로 한 대 맞은 것처럼 화끈거렸다. 거리 모퉁이는 온통 밀려드는 사람들로 꽉 막혀버렸다. 전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마치 선 채로 성교를 하고 있는 것처럼 나는 미친 사람처럼 찻길가의 사람들 사이로 달려갔는데 사실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내가 가만히 있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조금도 변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눈을 들어보니 여전히 한쪽에는 똑같은 집들이, 다른 쪽에는 가설 무대가 보였다. 아마도 모든 것이 꼼짝 않고 서 있는데 단지 나와 사람들 머리 속에서 현기증을 느껴서 모든 것이 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걸 곰곰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땀으로 흠뻑 젖었고, 내 피 속에 무언가 너무 커다란 것이 들어 있어서 혈관을 잡아늘이며 돌아다니는 것처럼, 마비되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동시에 나는 이미 오래 전에 공기가 바닥이 나서 이제는 내 폐가 뿜어낸 공기를 다시 들이미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나는 견뎌낸 것이다. 이제 나는 내 방의 등불 앞에 앉아 있다. 조금 춥다. 하지만 난로를 다시 피울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난로에서 연기가 나서 다시 밖으로 나가야 한다면 어쩔 것인가? 나는 앉아서, 생각한다. 내가 가난하지만 않다면 전에 살던 사람들의 손때가 잔뜩 묻어 있고, 이처럼 낡아빠진 가구가 있는 방이 아닌 다른 방을 얻을 수 있을 텐데. 처음에는 머리를 이 안락의자에 기대기가 참말이지 아주 힘들었다. 의자의 녹색 커버에는 누구의 머리든 다 들어맞을 것 같은, 기름에 전 잿빛의 움푹 파인 홈이 나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의자에 기댈 때면 머리 밑에 손수건을 놓는 조심성을 발휘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이제 너무 지쳤다. 그냥 앉아보니 그런대로 괜찮고 약간 들어간 부분이 마치 자로 잰 듯 내 뒷머리에 잘 들어맞는다는 것을 알았다. 만약 내가 가난하지 않다면 무엇보다도 좋은 난로를 사고 싶다. 그리고 산간 지방에서 가져온 순수하고 화력이 좋은 장작을 쓸 것이다. 이 한심한 조개탄 같은 것은 절대 쓰지 않을 것이다. 조개탄이 뿜어대는 연기는 숨 막히고 머리를 아주 어지럽게 만든다. 다음으로는 거친 소리를 내지 않으며 난로를 치우고, 내가 필요한 만큼 불을 보살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이다. 십오 분 동안이나 난로 앞에 꾸부리고 앉아서 들쑤석거리고 있다 보면, 가까이 있는 불기에 이마의 피부가 당겨지고 열기가 눈으로 들어와서 하루 종일 써야 할 힘을 온통 소진시켜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면 바로 지쳐버린다. 너무 혼잡할 때면 나는 가끔 마차를 불러 타고 그 옆을 지나갈 것이다. 나는 매일 뒤발 같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리라······ 더 이상 간이식당으로 기어들어가지는 않으리라······ 그런데 그 남자가 뒤발에 가본 적이 있을까? 아니겠지. 그런 곳에서 그 남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을 들여보내지는 않으니까. 죽어가는 사람이라고? 나는 지금 내 방에 앉아 있다. 그러니 조용히 내가 겪은 일을 잘 생각해볼 수가 있다. 아무것도 불분명하게 놔두지 않는 게 좋다. 간이식당 안으로 들어섰을 때 처음에는 내가 자주 앉던 자리를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자그만 조리대 쪽에 인사를 하고 주문을 한 다음 옆자리에 앉았다. 그때 나는 그 남자가 전혀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그의 존재를 느꼈다. 바로 그가 꼼짝달싹하지 않고 있음을 나는 느낀 것이다. 그 의미를 나는 대번에 알아차렸다. 우리들 사이가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나는 그가 놀라움 때문에 굳어버렸음을 알았다. 몸 안에서 일어난 무엇인가에 깜짝 놀라 그의 온몸이 마비된 것을 알았다. 아마도 혈관이 터졌거나 오랫동안 두려워하던 독이 이제 막 심장에 이르렀거나, 세계를 변화시키는 태양과 같은 커다란 종기가 그의 뇌 속에서 부풀어오른 것 같았다. 그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말할 수 없이 힘든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이 모든 것이 단지 내 상상에 불과하다고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벌떡 일어나 뛰쳐나오고야 말았다.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 그는 두꺼운 검정색 외투를 입고 긴장한 잿빛 얼굴을 모직 목도리 깊숙이 파묻고 앉아 있었다. 그의 입은 마치 커다란 힘에 눌린 듯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의 눈이 아직도 무엇인가를 보고 있는지는 말하기 어려웠다. 눈에는 김이 서린 회색 안경이 걸쳐 있고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그의 콧방울은 잔뜩 부풀어 있었고 푹 꺼진 관자놀이 위의 기다란 머리카락은 무더우 l 속에서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그의 귀는 길고 누르스름했으며 뒤에 넓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렇다, 그 남자는 이제 자신이 지금 모든 것으로부터, 사람들로부터뿐만 아니라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 순간만 지나면 모든 것이 의미를 잃어버릴 것이다. 이 식탁, 이 찻잔 그리고 그가 꽉 붙들고 있는 이 의자, 모든 일상의 것들과그렇게도 가까운 것들이 이해할 수 없게 되고 낯설게 되고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듯 그 남자는 거기 앉아서 그런 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아직 저항을 하고 있다. 나를 괴롭히는 이들이 나를 놓아준다고 해도, 나를 괴롭히는 이들이 나를 놓아준다고 해도, 나의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와 있어서 이제 더 이상 살 수 없으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저항하고 있다. “아무 일도 아니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그렇지만 나를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떼어놓기 시작하는 무엇인가가 내 속에서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그 남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죽어가는 사람이 이미 아무도 알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는 말을 들을 때면 얼마나 섬뜩했던가. 그러면 내게는 고독한 얼굴이 떠올랐다. 베개에서 얼굴을 들어올려 무언가 친숙한 것을, 어디선가 한 번이라도 본 듯한 것을 찾아보지만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하는 고독한 얼굴이 떠올랐다. 만약 내 공포가 이렇게 크지만 않다면 모든 것을 다르게 보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그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자신을 위로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두렵다. 이 변화가 말할 수 없이 두렵다. 멋지게 보이는 이 세상에 나는 아직 전혀 익숙해지지도 못했지 않은가. 그러니 다른 세상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내 마음에 드는 의미들 사이에 나는 기꺼이 머물고 싶다. 만일 무언가 정히 변해야만 한다면 적어도 개들 사이에서라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친숙한 세계와 지금과 같은 물건이 있는 개들 사이에서라도 말이다. 아직 한동안은 이 모든 것을 기록하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손이 나에게서 멀어져서 내가 무언가를 쓰려고 하면 생각지도 않은 다른 말을 쓰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해석의 시대가 도래하여 말과 말 사이의 연결이 없어지고, 모든 의미는 구름처럼 흩어지고 물처럼 흘러내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공포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위대한 것 앞에 서 있는 사람과 같은 심정을 느낀다. 전에도 종종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에 이와 비슷한 느낌을 가졌던 게 기억난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쓰는 게 아니다. 내가 씌어질 것이다. 나는 변화해가는 인상이다. 아아, 아직 조금 모자란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것을 다 파악하고 인정할 수 있을 텐데. 단지 한 발짝만 옮기면 나의 이 깊은 비참함이 지극한 기쁨이 될 텐데. 그러나 그 발걸음을 내딛을 수가 없다. 나는 무너졌고 더 이상 몸을 일으킬 수가 없다. 나는 산산이 부서졌다. 그래도 나는 아직까지 어디선가에서 도움의 손길이 뻗어오리라 믿어왔다. 여기 내 앞에 내 손으로 쓴 기도의 말이, 내가 매일 밤마다 드린 기도의 말이 놓여 있다. 그것을 나는 여러 책에서 찾아내어 옮겨놓았다. 늘 내 옆에 두고, 내가 직접 쓴 내 말인 것처럼 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나는 이 문구들을 다시 한 번 옮겨 적어야겠다. 여기 책상 앞에 무릎을 꿇고 옮겨 적으련다. 그렇게 하면 읽을 때보다 더 오래 음미할 수 있고, 다너 하나하나가 더 오래 지속되며, 사라지는 데도 시간이 한참 걸리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에게 불만스럽고 내 자신에게도 불만스럽지만 나는 밤의 정적과 고독 속에서 나를 되찾고 조금이나마 기운을 얻으려 한다. 내가 사랑했던 이들의 영혼이여, 내가 노래했던 이들의 영혼이여, 나를 도와주고 내게 힘을 주오. 세상의 온갖 거짓과 나쁜 악취로부터 나를 지켜주오. 그리고 나의 주, 나의 신이여! 내가 모든 이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인간이 아니며, 내가 경멸하는 자들보다 더 보잘것없는 인간이 아님을 내 자신에게 증명해줄 아름다운 시 몇 줄을 쓸 수 있도록 은총을 내려주소서.” “그들은 본래 미련한 자의 자식이요, 멸시받는 자의 자식으로 나라에서 가장 천한 자이다. 그런데 이제 내가 그들의 노래가 되었고 조롱거리가 되었다. ······ 그들은 나의 앞에 저승길을 터놓았다. ······ 그들이 나를 망치기란 너무도 쉬워서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치 않았다. ······ 이제 나의 넋은 모두 쏟아졌고 괴로운 나날이 나를 사로잡았다. 밤이면 도려내듯이 내 뼈를 쑤셔대는데 나를 쫓는 자는 쉬지를 않는다. 내 질병의 힘은 커서, 옷은 더러워지고 속옷의 깃처럼 몸에 꼭 달라붙는다······ 내 창자는 끓어올라 쉴 줄 모르고 환난의 날은 나를 엄습했나니······ 내 비파는 탄식의 소리가 되었고, 내 피리는 통곡의 소리로 변했구나.”   출처 영혼이 머무는 곳
1153    릴게 시모음 댓글:  조회:943  추천:0  2022-08-31
Rainer Maria Rilke 작별 소녀의 기도 엄숙한 시간 석상의 노래 봄을 그대에게 고독 자신이 직접 쓴 릴케의 묘비명 사랑은 어떻게 당신 말씀의 파수꾼으로 고독한 사람 고아의 노래 살로메에게 바치는 시 존재의 이유 흰장미 사랑의 노래 장미의 내부 삶의 평범한 가치 가을의 종말 사랑에 빠질수록 혼자가 되라 가을날(Herbsttag) 순례의 서 가을 그리움이란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피에타 서시(序詩) 사랑한다는 것과 사랑받는다는 것 고독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서 만년의 밤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1부/ 3편) 과수원 두이노의 비가-제 4 비가 (1-18) *두이노의 비가 ~~~~~~~~~~~~~~~~~~~~ 작별 우리 이제 서로 작별을 나누자, 두 개의 별처럼, 저 엄청난 밤의 크기로 따로 떨어진, 그거야 하나의 가까움이려니, 아득함을 가늠하여 가장 먼 것에서 스스로를 알아보는. ~~~~~~~~~~~~~~~~~~~ 소녀의 기도 그 언젠가 그대가 나를 보았을 때엔 나는 너무도 어렸습니다. 그래서 보리수의 옆가지처럼 그저 잠잠히 그대에게 꽃피어 들어갔지요. 너무도 어리어 나에겐 이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대가 나에게 말하기까지 나는 그리움에 살았었지요. 온갖 이름을 붙이기에는 내가 너무나 큰 것이라고. 이에 나는 느낍니다. 내가 전설과 오월과 그리고 바다와 하나인 것을, 그리고 포도주 향기처럼 그대의 영혼 속에선 내가 풍성한 것을... ~~~~~~~~~~~~~~~~~~~ 엄숙한 시간 지금 이 세상 어디에선가 우는 사람은, 까닭없이 이 세상에서 우는 사람은 내가 슬퍼 울고 있다. 지금 이 밤 어디에선가 웃는 사람은, 까닭없이 이 밤에 웃는 사람은 나를 비웃고 있다. 지금 이 세상 어디에선가 가고 있는 사람은, 까닭없이 이 세상에서 가고 있는 사람은 나를 향해 걷고 있다. 지금 이 세상 어디에선가 죽어가는 사람은, 까닭없이 이 세상에서 죽어가는 사람은 나를 보고 있다. ~~~~~~~~~~~~~~~~~~~~ 석상의 노래 소중한 목숨을 버릴만큼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은 누구일까. 나를 위하여 누군가 한 사람 바다에 익사한다면 나는 돌에서 해방되어 생명체로, 생명체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이렇게도 나는 끓어오르는 피를 그리워한다. 그러나 돌은 너무 조용하기만 하다. 나는 생명을 꿈꾼다. 생명은 참으로 좋은 것이다. 나를 잠깨울수 있는 만큼 용기를 가진자는 아무도 없는가. 그러나 언젠가 내가, 가장 귀중한 것을 내게 주는 생명을 갖게 된다면------ ~~~~~~~~~~~~~~~~~~~~ 봄을 그대에게 갖가지의 기적을 일으키는 봄을 그대에게 보이리라. 봄은 숲에서 사는 것, 도시에는 오지 않네. 쌀쌀한 도시에서 손을 잡고서 나란히 둘이서 걷는 사람만 언젠가 한번은 봄을 볼 수 있으리. ~~~~~~~~~~~~~~~~~~~~ 고독 고독은 비처럼 바다로부터 저녁을 향해 올라 온다. 멀리 외딴 벌판으로부터 고독은 언제나 외로운 하늘로 올라가서는 처음 그 하늘에서 도시 위로 떨어져 내린다 모든 골목길마다 아침을 향해 뒤척일때, 아무것도 찾지 못한 육신들은 실망과 슬픔에 젖어 서로를 떠나 갈 때, 그리고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이 한 잠자리에 들어야하는 그 뒤엉킨 시간에 비 되어 내리는 고독은 냇물과 더불어 흘러 간다. ~~~~~~~~~~~~~~~~~~~~ 자신이 직접 쓴 릴케의 묘비명 장미여, 아 순수한 모순이여, 기쁨이여 그 많은 눈꺼풀 아래에서 누구의 잠도 아닌. Rose, oh reiner Widersprluch, Lust niemandes Schlaf zu sein unter soviel Lidern. ~~~~~~~~~~~~~~~~~~~~ 사랑은 어떻게 그리고 사랑은 어떻게 그대를 찾아왔던가? 빛나는 태양처럼 찾아 왔던가, 아니면 우수수 지는 꽃잎처럼 찾아 왔던가? 아니면 하나의 기도처럼 찾아 왔던가? --- 말해다오 반짝이며 행복이 하늘에서 풀려 나와 날개를 접고 마냥 흔들리며 꽃처럼 피어나는 내 영혼에 커다랗게 걸려 있었더니라 ~~~~~~~~~~~~~~~~~~~~ 당신 말씀의 파수꾼으로 나를 당신 말씀의 파수꾼으로 삼아 주소서. 돌에 귀기울일 줄 아는 자가 되게 해 주소서. 나에게, 바다의 고독을 볼 수 있는 두 눈을 주소서. 양 기슭의 맞부딪치는 소음 속에서 멀리 밤의 음향 속으로 나를 당신의 텅빈 나라로 보내 주소서. 그곳을 지나 끝없는 바람이 불어 큰 수도원의 승복처럼 아직 살아 보지도 못한 삶의 주위에 서 있는 그곳에 어떤 유혹에 의해서도 다시는 그들의 목소리와 모습에서 벗어나는 일 없이 거기서 나는 순례자 쪽에 서렵니다. 눈 먼 늙은이의 뒤를 따라 모르는 사람뿐인 길을 가렵니다. ~~~~~~~~~~~~~~~~~~~~ 고독한 사람 낯선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나는 영원히 귀향길에 있습니다. 그들 식단을 보면 충족된 날들로 가득하지만 내게는 아득한 곳의 모습만 있습니다. 내 얼굴 속에 세상이 스며듭니다. 달처럼 어쩌면 사람이 살지 않는 세상, 그러나 세상은 어떤 감정도 남겨두지 않습니다. 세상의 온갖 언어에는 삶이 끼어 있습니다. 멀리서 내가 가져온 것들은 희귀하게 보이면서, 제몸에 매달려 있죠: 그들의 넓은 고향에서 그들은 짐승이지만, 여기서 그들은 부끄러움을 타며 숨을 죽입니다. ~~~~~~~~~~~~~~~~~~~~ 고아의 노래 나는 아무도 아닙니다. 앞으로도 아무도 되지는 않으렵니다. 지금은 존재하기에도 너무 초라한 몸 그러나 훗날에도 마찬가지일 게요. 어머님들 아버님들이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정말 키워 주신 보람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잘려지는 몸입니다. 아무한테도 쓸모없는 신세입니다. 지금은 너무 이르고 내일이면 너무 늦습니다. 내가 걸친 옷은 이 옷 한 벌뿐 헤어지며 빛이 바랩니다. 영원을 간직하는 옷입니다. 어쩌면 신 앞에서도 지킬 수 있는 영원 입니다. 나한테 남은 것이라고는 이 한 줌 머리카락뿐입니다. (언제까지나 똑같은 것이지만) 한때는 사랑하는 이의 것이었어요. 이제는 사랑이라고는 모르는 그 사람 이어요. ~~~~~~~~~~~~~~~~~~~~ 살로메에게 바치는 시 내 눈을 감기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으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내 팔을 꺾으세요 나는 당신을 가슴으로 잡을 것입니다. 심장을 멎게 하세요 그럼 나의 뇌가 심장으로 고동칠 것입니다. 당신이 나의 뇌에 불을 지르면 그 때는 당신을 핏속에 실어 나르렵니다. ~~~~~~~~~~~~~~~~~~~~ 존재의 이유 아! 우리는 세월을 헤아려 여기저기에 단락을 만들고, 중지하고, 또 시작하고 그리고 두 사이에서 어물 거리고 있소. 그러나 우리가 마주치는 것은 어쩌면 모두가 친한 관계에 있고, 태어나고, 자라고 자기 자신으로 교육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결국 그저 존재하면 되는 겁니다. 다만, 단순하게 그리고 절실하게 말이요. 마치도 대지가 사계절의 돌아감에 동의 하면서 밝아졌다, 어두워 졌다 하며 공간 속에 푹 파묻혀서 하늘의 별들이 편안하게 위치하는 그 숱한 인력의 그물 속에 쉬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것과 같이...... ~~~~~~~~~~~~~~~~~~~~ 흰 장미 너는 죽음에 몸을 맡긴 채 잎새 위에 서럽게 얼굴을 뉘인다. 유령 같은 빛을 숨쉬며 희푸른 꿈을 띠고있다. 하지만 노래마냥 마지막 가냘픈 빛을 띠며 아직도 하룻밤을 달콤한 네 향기 방안에 스민다. 네 어린 영혼은 불안스럽게 이름없는 것을 더듬거리다 내 가슴에서 웃으며 죽는다. 내 누이인 흰 장미여. ~~~~~~~~~~~~~~~~~~~~ 사랑의 노래 당신의 영혼이 내 영혼에 닿지 않은 바에야 어찌 내 영혼을 간직하겠습니까? 어찌 내가 당신 아닌 다른 것 에게로 내 영혼을 쳐 올려 버릴 수 있겠습니까? 오, 어둠 속에서 잃어버린 어떤 것 옆, 당신의 깊은 마음이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는 조용하고 낯선 곳에 내 영혼을 가져가고 싶습니다. 당신과 나의 몸에 닿는 모든 것은 확실히 마치 두 줄의 鉉에서 한 音을 짜내는 활 모양의 바이올린처럼 우리를 한데 묶어 놓습니다. 어떤 악기에 우리는 얽혀져 있는 것인가요? 어떤 바이올리니스트가 우리를 사로잡은 건가요? 오, 달콤한 노래입니다. ~~~~~~~~~~~~~~~~~~~~ 장미의 내부 어디에 이런 내부를 감싸는 외부가 있을까. 어떤 상처에 이 보드라운 아마포 (亞麻布)를 올려놓는 것일까. 이 근심 모르는 활짝 핀 장미꽃의 내부 호수에는 어느 곳의 하늘이 비쳐 있을까. 보라, 장미는 이제라도 누군가의 떨리는 손이 자기를 무너뜨리리라는 것을 모르는 양 꽃이파리와 꽃이파리를 서로 맞대고 있다. 장미는 이제 자기 자신을 지탱할 수가 없다. 많은 꽃들은 너무나 충일하여 내부에서 넘쳐나와 끝없는 여름의 나날 속으로 흘러들어 간다. 점점 풍요해지는 그 나날들이 문을 닫고, 마침내 여름 전체가 하나의 방, 꿈속의 방이 될 때까지. ~~~~~~~~~~~~~~~~~~~~~ 삶의 평범한 가치 이따금 나는 륨 드 세인 같은 거리의 조그만 가게의 윈도우 앞을 어정거리는 일이 있다. 그것은 고물상이나 조그만 헌 책방의 동판화를 파는 가게로 어느 윈도우에나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많이 들어차 있다. 나는 손님이 한 사람도 들어가는 것을 본 일이 없다. 아마 장사를 하려고 가게를 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가게 안을 들여다보면 역시 거기에 사람이 있는 것이다. 앉아서 무엇을 읽고 있다. 정말 한가한 모습이다. 내일을 걱정하는 것도 아니고, 부자가 되려고 억척을 피우는 모습이란 눈곱만치도 없다. 발치에는 살이 찐 개가 배를 깔고 누워 있다. 개가 아니면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는 꽂혀 있는 책에 몸을 비비며 표지의 등 글자를 지우듯이 걸어 다닌다. 그것은 주위의 조용함을 더욱 깊게 하는 것 같다. 아아, 이런 생활에 만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느 가게 하나를, 구닥다리 물건이 차 있는 윈도우를 고스란히 사들여 개 한 마리와 함께 그 안에서 20년쯤 앉아 있을 수 있다면 하고. ~~~~~~~~~~~~~~~~~~~~ 가을의 종말 언제부터인가 눈앞에 만물의 변화가 보인다. 무엇인가 우뚝 서서 몸짓을 하며 죽이고 또 아픔을 준다. 시시로 또 아픔을 달리하는 모든 정원들. 샛노란 잎새들이 차차 짙으게 조락에로 물든다. 내가 걸어온 아득한 길 이제 빈 뜨락에서 가로수길을 바라보면 먼 바다에까지 이어닫는 음울하고 무거운 차디찬 하늘 ~~~~~~~~~~~~~~~~~~~~ 사랑에 빠질수록 혼자가 되라 사랑에 빠진 사람은 혼자 지내는데 익숙해야 하네. 사랑이라고 불리는 그것 두 사람의 것이라고 보이는 그것은 사실 홀로 따로따로 있어야만 비로소 충분히 전개되어 마침내는 완성될 수 있는 것이기에. 사랑이 오직 자기 감정 속에 들어 있는 사람은 사랑이 자기를 연마하는 일과가 되네. 서로에게 부담스런 짐이 되지 않으며 그 거리에서 끊임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 것, 사랑에 빠질수록 혼자가 되라. 두 사람이 겪으려 하지 말고 오로지 혼자가 되라. ~~~~~~~~~~~~~~~~~~~~ 가을날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하였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 후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럽게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Herbsttag Herr: es ist Zeit. Der Sommer war sehr groß. Leg deinen Schatten auf die Sonnenuhren, und auf den Fluren laß die Winde los. Befiehl den letzten Früchten voll zu sein; gieb ihnen noch zwei südlichere Tage, dränge sie zur Vollendung hin und jage die letzte Süße in den schweren Wein. Wer jetzt kein Haus hat, baut sich keines mehr. Wer jetzt allein ist, wird es lange bleiben, wird wachen, lesen, lange Briefe schreiben und wird in den Alleen hin und her unruhig wandern, wenn die Blätter treiben. ~~~~~~~~~~~~~~~~~~~~ 순례의 서 내 눈빛을 지우십시오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으십시오.나는 당신을 들을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을 부를 수 있습니다. 팔이 꺾여도 나는 당신을 내 심장으로 붙잡을 것입니다. 내 심장을 멈춘다면 나의 뇌수가 맥박 칠 것입니다 나의 뇌수를 불태운다면 나는 당신을 피속에 싣고 갈 것입니다 - 릴케가 연상의 여인 루 안드레아 살로메에게 첫사랑을 고백한시 ~~~~~~~~~~~~~~~~~~~~ 가을... 앞이 떨어집니다. 멀리서인 듯 떨어집니다. 하늘의 저 먼 정원이 시든 것처럼 거부하는 몸짓으로 떨어집니다. 밤이면 저 무거운 대지가 모든 별들에서 고독으로 떨어집니다. 우리 모두가 떨어집니다. 이 손도 떨어집니다. 다른 것을 보십시오. 떨어짐은 어디에나 있지요. 하지만 이 떨어짐을 부드러운 손으로 끝없이 맞아주는 누군가가 계십니다. Autumn The leaves are falling, falling as if from far up, as if orchards were dying high in space. Each leaf falls as if it were motioning "no." And tonight the heavy earth is falling away from all other stars in the loneliness. We"re all falling. This hand here is falling. And look at the other one. It"s in them all. And yet there is Someone, whose hands infinitely calm, holding up all this falling. Translated by Robert Bly 조두환 번역 ~~~~~~~~~~~~~~~~~~~~ 그리움이란 그리움이란 이런 것 출렁이는 파도 속에서의 삶 그러나 시간 속에 고향은 없는 것 소망이란 이런 것 매일의 순간들이 영원과 나누는 진실한 대화 그리고 산다는 것은 이런 것 모든 시간 중에서도 가장 고독한 순간이 어제 하루를 뚫고 솟아오를 때까지 다른 시간들과는 또다른 미소를 띠고 영원 속에서 침묵하고 마는 것 ~~~~~~~~~~~~~~~~~~~~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마음 속의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인내를 가지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말라. 그건 지금 당장 주어질 순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 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 줄 테니까. ~~~~~~~~~~~~~~~~~~~~ 피에타 이렇게, 예수여, 저는 당신의 발을 다시 봅니다, 제가 가슴 떨며 벗기고 씻겨드렸던, 그 때는 한 젊은이의 발이었지요. 내 드리운 머리카락 속에 당황하여 서 있던 모습 마치 가시덤불 속에 하얀 야수 같았지요. 이렇게 저는 당신의 사랑 받은 적 없는 팔다리를 봅니다 처음으로 이 사랑의 밤에. 우리는 아직 함께 누워 본 적도 없는데, 이제는 경이로와 지켜볼 뿐이로군요. 그런데, 보아요, 당신의 손이 찢겨 있군요-: 사랑하는 이여, 저 때문에, 제가 찔러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당신의 심장은 열려 있어, 누구나 들어갈 수 있군요: 어찌 저만 들어갈 수는 없었던가요. 이제 당신은 지쳤고, 당신의 지친 입술은 제 슬픈 입술에 아무런 욕구도 없군요-. 오 예수여, 예수여, 우리의 시간은 언제였나요? 어쩌면 기이하게도 우리 둘 다 몰락하는지. Pieta So seh ich, Jesus, deine Fusse wieder, die darmals eines J nglings Fusse waren, da ich sie bang entkleidete und wusch; wie standen sie verwirrt in meinen Haaren und wie ein wei es Wild im Dornenbusch. So seh ich deine nie geliebten Glieder zum erstenmal in dieser Liebesnacht. Wir legten uns noch nie zusammen nieder, und nun wird nur bewundert und gewacht. Doch, siehe, deine Haende sind zerrissen-: Geliebter, nicht von mir, von meinen Bissen. Dein Herz steht offen und man kann hinein: das haette duerfen nur mein Eingang sein. Nun bist du muede, und dein mueder Mund hat keine Lust zu meinem wehen Munde-. O Jesus, Jesus, wann war unsre Stunde? Wie gehn wir beide wunderlich zugrund. ~~~~~~~~~~~~~~~~~~~~ 서시(序詩) 네가 누구라도, 저녁이면 네 눈에 익은 것들로 들어찬 방에서 나와보라; 먼 곳을 배경으로 너의 집은 마지막 집인 듯 고즈넉하다: 네가 누구라도. 지칠대로 지쳐, 닳고닳은 문지방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너의 두 눈으로 아주 천천히 너는 한 그루 검은 나무를 일으켜 하늘에다 세운다: 쭉 뻗은 고독한 모습, 그리하여 너는 세계 하나를 만들었으니, 그 세계는 크고, 침묵 속에서도 익어가는 한 마디 말과 같다. 그리고 네 의지가 그 세계의 뜻을 파악하면, 너의 두 눈은 그 세계를 살며시 풀어준다. . . . Entrance Rainer Maria Rilke (Translated by Edward Snow) Whoever you are: in the evening step out of your room, where you know everything; yours is the last house before the far-off: whoever you are. With your eyes, which in their weariness barely free themselves from the worn-out threshold, you lift very slowly one black tree and place it against the sky: slender, alone. And you have made the world. And it is huge and like a word which grows ripe in silence. And as your will seizes on its meaning, tenderly your eyes let go. . . . (김재혁 / 고려대학교 교수 / 옮김) ~~~~~~~~~~~~~~~~~~~~ 사랑한다는 것과 사랑받는다는 것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오직 타버린다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기나긴 밤을 새운 아름다운 불빛이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스러지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은 영원한 지속이다 Das Geliebtsein heißt aufbrennen. Lieben ist: Leuchten mit unerschöpflichem Öle. Geliebtwerden ist vergehen, Lieben ist dauern. ~~~~~~~~~~~~~~~~~~~~ 고독 고독은 비와도 같은 것 저녁을 찾아 바다에서 오른다. 멀고 먼 외진 들녘에서 오른다. 늘상 고적하기만 한 하늘로 옮겨갔다가 하늘에서 비로소 도시에 내린다. 아침을 향해 골목골목이 몸을 일으키고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 육신들이 실망과 슬픔에 젖어 서로 떠나갈 때,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이 같은 잠자리에서 함께 잠들어야 할 때, 낮과 밤이 뒤엉킨 시각, 비가 되어 내리면 고독은 강물과 함께 흘러간다..... Einsamkeit DIE Einsamkeit ist wie ein Regen. Sie steigt vom Meer den Abenden entgegen; von Ebenen, die fern sind und entlegen, geht sie zum Himmel, der sie immer hat. Und erst vom Himmel fallt sie auf die Stadt. Regnet hernieder in den Zwitterstunden, wenn sich nach Morgen wenden alle Gassen und wenn die Leiber, welche nichts gefunden, enttauscht und traurig von einander lassen; und wenn die Menschen, die einander hassen, in einem Bett zusammen schlafen mussen: dann geht die Einsamkeit mit den Flussen.... ~~~~~~~~~~~~~~~~~~~~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서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서 달아나려 합니다. 박해받으면 갇혀 있는 감옥에서 풀려나려는 듯이 그러나 이 세상은 하나의 위대한 기적입니다. 나는 느낍니다.여기에는 모든 삶이 살고 있다고. 그러나 대체 누가 사는 것이겠습니까? 연주되지 아니한 선율이 하아프 속에 깃들여 있듯이 저녁 어스름 속에 숨어 있는 것들이겠습니까. 물 위에 불어 오는 바람이겠습니까, 신호를 주고받는 나뭇자기겠습니까, 향기를 풍기는 꽃송이겠습니까, 늙어 가는 긴 가로수 길이겠습니까, 오고가는 따뜻한 동물들이겠습니까, 갑자기 떠오르는 새들이겠습니까. 대체 누가 사는 것이겠습니까, 신(神)이여, 당신입니까- 이 "삶"을 살고 있는 것은. ~~~~~~~~~~~~~~~~~~~~ 만년의 밤 밤이여, 오 그대 나의 얼굴에서 깊이 속으로 녹아든 얼굴이여. 그대여, 내 경탄하는 관조의 가장 위대한 과중(過重)함이여. 밤이여, 나의 응시 속에 전율하며, 그러나 스스로 그토록 확고한 ; 고갈되지 않는 피조물, 대지의 잔해(殘骸) 위에 영원한; 저네들의 가장자리의 도피로부터 중간영역의 소리 없는 모험 속으로 불길을 던지는 어린 별들로 가득한; 그대 다만 존재함 자체만으로도, 우월한 존재여, 나는 얼마나 왜소한 모습인가 ― ; 허나 어두운 대지와 한 몸 되어 내 감히 그대 안에 존재하려 하노라. Aus dem Umkreis : N chte Nacht. Oh du in Tiefe gel stes Gesicht an meinem Gesicht. Du, meines staunenden Anschauns gr tes bergewicht. Nacht, in meinem Blicke erschauernd, aber in sich so fest; unersch pfliche Sch pfung, dauernd ber dem Erdenrest; voll von jungen Gestirnen, die Feuer aus der Flucht ihres Saums schleudern ins lautlose Abenteuer des Zwischenraums: wie, durch dein blo es Dasein, erschein ich, bertrefferin, klein ― ; doch, mit der dunkelen Erde einig, wag ich es, in dir zu sein. (SWII 178f.) ~~~~~~~~~~~~~~~~~~~~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1부/ 3편) A god can do so. But tell me how a man 신은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말 해다오. is supposed to follow, through the slender lyre? 어떻게 인간이 가냘픈 수금을 통해 신을 따라갈 수 있는지를? His mind is riven. No temple of Apollo 그의 마음은 찢겨졌다. stands at the dual crossing of heart-roads. 이중의 마음의 십자로엔. 아폴론의 사원이 서 있지 않구나. Song, as you have taught it, is not desire, 노래는, 당신이 가르쳐 준 것처럼. 욕망이 아니다. not a winning by a still final achievement:묵묵한 마지막 성취에 의한 승리도 아니다: song is being. A simple thing for a god. 노래란 존재이고. 신에겐 단순한 것. But when are we in being? And when does he 그러나 우리는 언제 존재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는 언제 turn the earth and stars towards us? 대지와 별을 돌려서 우리에게 향하게 해 줄 것인가? Young man, this is not your having loved, even if 젊은이여, 이것은 네가 사랑을 간직하는것만으로 될 수 없다.비록 your voice forced open your mouth, then – learn 그때, 네 목소리가 네 입을 열도록 만든다 할지라도. to forget that you sang out. It fades away. 네가 불렀던 노래를 잊어버리도록 배워라. 그건 사라질것이다. To sing, in truth, is a different breath. 노래한다는건. 사실은, 또 다른 호흡이며 A breath of nothing. A gust within the god. A wind. 아무것도 호흡하지 않는 것이며. 신 안의 돌풍이고. 바람이기 때문이다. ~~~~~~~~~~~~~~~~~~~~ 과수원 1 내가 만일 빌려온 언어로 그대에게 편지를 쓸 용기를 냈다면, 그것은 아마도 과수원이라는 이 소박한 명사를 사용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나는 그 명사 하나에 사로잡혀 오래 전부터 고통스러워했다. 이 명사가 포함하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하기 위해서 흔들리는 너무나 막연한 하나의 의미나, 또는 그보다 못한 방어하는 울타리라는 의미 중에서 선택해야만 하는 가엾은 시인이여. 과수원 : 오, 너를 단순하게 이름 부를 수 있는 리라의 특권이여 ; 꿀벌들을 매혹하는 비할 데 없는 말, 숨쉬고 기다리는 말... 고대의 봄을 숨기고 있는 명료한 명사, 가득 차 있으면서도 투명한 말, 그 대칭적인 음절 안에서 모든 것을 배가시킴으로써 풍요로워지는 말. VERGER Rainer Maria Rilke 1 PEUT-ÊTRE que si j"ai osé t"écrire, langue prêtée, c"était pour employer ce nom rustique dont l"unique empire me tourmentait depuis toujours : Verger. Pauvre poète qui doit élire pour dire tout ce que ce nom comprend, un à peu près trop vague qui chavrre, ou pire : la cloture qui défend. Verger : o privilège d"une lyre de pouvoir te nommer simplement ; nom sans pareil qui les abeilles attire, nom qui respire et attend ... Nom clair qui cache le printemps antique, tout aussi plein que transparent, et qui dans ses syllabes symtriéques redouble tout et devient abondant. - 릴케전집 3. 「완성시(1906 ~ 1926). 프랑스어로 쓴 시」(책세상 , 2001, 옮긴이 김정란)에서 (원문: "Rilke Werke", Zweite Auflage, Insel Verlag, 1982) ~~~~~~~~~~~~~~~~~~~~ 두이노의 비가-제 4 비가 (1-18) 오 생명의 나무여, 겨울은 언제이뇨? 우리는 한 마음이 아니다. 철새들처럼 그렇게 때를 알지도 못해 뒤쳐지고 늦어서야 우리는 느닷없이 억지 바람을 일으켜 무심한 못 위로 떨어질 뿐이다. 피고 지는 것을 우리는 동시에 의식하고 있다. 어디에선가 당당한 걸음걸이로 가고 있는 사자들은 무기력을 모르련만. 그러나 우리가 서로 아주 하나라고 생각하는 곳에서도 이미 상대편이 필요함을 느낄 수 있다. 적대감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것, 여인들도 언제나 서로 안에 하나가 되어 가장자리로 나아가지 않는다. 거기 아득한 넓이와 사냥과 고향이 약속되어 있건만. 한 순간의 그림을 위한 여기에도 애써 대조의 바탕이 마련된다. 우리가 그것을 보기라도 하듯, 사람들은 아주 분명하게 우리를 아니까. 우리는 감정의 윤곽을 모른다. 아는 것이라곤 밖에서 그것을 형성해 주는 것일뿐. Die vierte Elegie 1-18 O Baeume Lebens, o wann winterlich? Wir sind nicht einig. Sind nicht wie die Zug- voegel verstaendigt. Ueberholt und spaet, so draegen wir uns ploetzlich Winden auf und fallen ein auf teilnahmslosen Teich. Bluehn und verdorrn ist uns zugleich bewusst. Und irgendwo gehn Loewen noch und wissen, solang sie herrlich sind, von keiner Ohnmacht. Uns aber, wo wir Eines meinen, ganz, ist schon des andern Aufwand fuehlbar, Feindschaft ist uns das Naechste. Treten Liebende nicht immerfort an Raender, eins im andern, die sich versprachen Weite, Jagd und Heimat. Da wird fuer eines Augenblickes Zeichnung ein Grund von Gegenteil bereitet, muehsam, dass wir sie saehen; denn man ist sehr deutlich mit uns. Wir kennen den Kontur des Fuehlens nicht: nur, was ihn formt von aussen ~~~~~~~~~~~~~~~~~~~~ 두이노의 비가 내가 소리친들, 천사의 계열 중 대체 그 누가 내 목소리를 들어 주리오? 설령 한 천사가 느닷없이 나를 가슴에 끌어안는다 해도, 나보다 사뭇 강한 그의 존재로 말미암아 나 스러지고 말텐데.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간신히 견디는 무서움의 시작에 다름아니니까. 우리 이처럼 아름다움에 경탄하는 까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천사는 무섭다. 나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어두운 흐느낌의 유혹소리를 꿀컥 삼키는데, 아, 대체 우리는 그 누구를 부릴 수 있을까? 천사들도 아니요 인간들도 아니다. 영리한 짐승들은 해석된 세계 속에 사는 우리가 마음 편치 않음을 벌써 느끼고 있다. 우리에게 산등성이 나무 한 그루 남아 있어 날마다 볼 수 있을런지. 우리에게 남은 건 어제의 거리와, 우리가 좋아하는 습관에의 뒤틀린 맹종, 그것들은 남아 떠나지 않았다. 오 그리고 밤, 밤, 우주로 가득찬 바람이 우리의 얼굴을 파먹어가면, 누구에겐들 밤만 남지 않으랴, 그토록 그리워하던 밤, 모든 이의 가슴 앞에 힘겹게 드리운, 약간 환멸을 느끼는 밤. 밤은 사랑하는 이들한테는 더 쉬울까? 아, 그들은 그저 몸을 합쳐 그들의 운명을 가리우고 있구나. 너는 아직 그것을 모르는가? 우리가 숨쉬는 공간을 향해 두 팔을 벌려 네 공허를 던져라. 그러면 새들은 더욱 당찬 날갯짓으로 넓어진 대기를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봄들은 너를 필요로 할지 모르지. 수많은 별들은 네가 저희들을 느끼기를 바랐다. 과거 속에서 파도 하나 일어나고, 혹은 열려진 창문 옆을 지나갈 때 너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었겠지. 그 모든 건 사명이었다. 그러나 너는 그것을 완수했는가? 모든 것이 네게 애인을 점지해줄 듯한 기대감에 너는 언제나 마음이 어지럽지 않았는가? (네가 그녀를 어디에 숨겨도, 크고 낯선 생각들은 네 가슴속을 들락거리며 밤이면 어김없이 네 안에 머무르는데.) 그리웁거들랑, 사랑을 하는 자들을 노래하라, 하지만 그들의 유명한 감정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리라. 네가 시기할 지경인 그 사람들, 너는 그들이 사랑의 만족을 맛본 이들보다 훨씬 더 사랑스러움을 알았으리라. 결코 다함이 없는 칭송을 언제나 새로이 시작하라, 생각하라, 영웅이란 영속하는 법, 몰락까지도 그에겐 존재하기 위한 구실이었음을, 그의 궁극적 탄생이었음을. 그러나 지친 자연은 사랑에 빠진 자들을, 두 번 다시는 그 일을 할 수 없다는 듯이, 제 몸 속으로 거두어들인다. 너는 가스파라 스탐파를 깊이 생각해 보았는가, 사랑하는 남자의 버림을 받은 한 처녀가 사랑에 빠진 스탐파의 드높은 모범에서 자기도 그처럼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느끼는 것을? 언젠가 이처럼 가장 오래 된 고통들이 우리에게 열매로 맺지 않을까? 지금은 우리가 사랑하면서 연인에게서 벗어나, 벗어남을 떨며 견딜 때가 아닌가? 발사의 순간에 힘을 모아 자신보다 더 큰 존재가 되기 위해 화살이 시위를 견디듯이. 머무름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목소리, 목소리들, 들어라, 내 가슴아, 지난날 성자들만이 들었던 소리를, 엄청난 외침 소리가 그들을 땅에서 들어올렸지만, 그들, 불가사의한 자들은 무릎꿇은 자세 흐트리지 않고, 그에 아랑곳하지 않았으니, 바로 그렇게 그들은 귀 기울이고 있었다. 신의 목소리야 더 견디기 어려우리. 바람결에 스치는 소리를 들어라, 정적 속에서 만들어지는 끊임없는 전언을. 이제 그 젊은 주검들이 너를 향해 소곤댄다. 네가 어디로 발을 옮기든, 교회든 로마든 나폴리든 그들의 운명은 조용히 네게 말을 건네지 않았던가? 아니면 얼마 전의 산타 마리아 포르모자의 碑文처럼 비문 하나가 네게 엄숙히 그것을 명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내게 무엇을 바라는가? 내 그들의 영혼의 순수한 움직임에 가끔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는 옳지 못한 인상일랑 조용히 버려야 하리라. 이 지상에 더 이상 살지 않음은 참으로 이상하다, 겨우 익힌 관습을 다시는 행할 수 없음과, 장미들과 그밖의 무언가 나름대로 약속하는 사물들에게 인간의 장래의 의미를 선사할 수 없음과, 한없이 걱정스런 두 손 안에 들어 있는 존재가 이제 더 이상 아님이, 그리고 자기 이름마저도 마치 망가진 장난감처럼 버리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다. 서로 연결되어 있던 모든 것이 그처럼 허공에 흩어져 날리는 것을 보는 것은 이상하다. 그러므로 죽어 있다는 것은 점차 조금이나마 영원을 맛보기 위한 힘겨움과 만회로 가득 차 있는 것 ―― 그러나 살아 있는 자들은 모든 것을 너무나 뚜렷하게 구별하는 실수를 범한다. 천사들은 살아 있는 자들 사이를 가는지, 죽은 자들 사이를 가는지 때때로 모른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영원한 흐름은 두 영역 사이로 모든 세대를 끌어가니, 두 영역의 모두를 압도한다. 끝내 그들, 일찍 떠난 자들은 우리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으니, 우리는 어느 덧 자라나 어머니의 젖가슴을 떠나듯, 조용히 대지의 품을 떠난다. 그러나 그토록 큰 비밀을 필요로 하는 우리는, 슬픔에서 그토록 자주 복된 진보를 울궈내는 우리는 ―― 그들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 언젠가 리노스를 잃은 비탄 속에서 튀어나온 첫 음악이 메마른 단단함 사이를 꿰뚫었다는 전설은 헛된 것인가, 거의 신에 가까운 한 젊은이가 갑작스레 영원히 떠나버려 깜짝 놀란 공간 속에서 비로소 공허함이 우리를 매혹시키고 위로하며 돕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 Duineser Elegien - The First Elegy - Rainer Maria Rilke Who, if I cried out, would hear me among the angels" hierarchies? and even if one of them suddenly pressed me against his heart, I would perish in the embrace of his stronger existence. For beauty is nothing but the beginning of terror which we are barely able to endure and are awed because it serenely disdains to annihilate us. Each single angel is terrifying. And so I force myself, swallow and hold back the surging call of my dark sobbing. Oh, to whom can we turn for help? Not angels, not humans; and even the knowing animals are aware that we feel little secure and at home in our interpreted world. There remains perhaps some tree on a hillside daily for us to see; yesterday"s street remains for us stayed, moved in with us and showed no signs of leaving. Oh, and the night, the night, when the wind full of cosmic space invades our frightened faces. Whom would it not remain for -that longed-after, gently disenchanting night, painfully there for the solitary heart to achieve? Is it easier for lovers? Don"t you know yet ? Fling out of your arms the emptiness into the spaces we breath -perhaps the birds will feel the expanded air in their more ferven flight. Yes, the springtime were in need of you. Often a star waited for you to espy it and sense its light. A wave rolled toward you out of the distant past, or as you walked below an open window, a violin gave itself to your hearing. All this was trust. But could you manage it? Were you not always distraught by expectation, as if all this were announcing the arrival of a beloved? (Where would you find a place to hide her, with all your great strange thoughts coming and going and often staying for the night.) When longing overcomes you, sing of women in love; for their famous passion is far from immortal enough. Those whom you almost envy, the abandoned and desolate ones, whom you found so much more loving than those gratified. Begin ever new again the praise you cannot attain; remember: the hero lives on and survives; even his downfall was for him only a pretext for achieving his final birth. But nature, exhausted, takes lovers back into itself, as if such creative forces could never be achieved a second time. Have you thought of Gaspara Stampa sufficiently: that any girl abandoned by her lover may feel from that far intenser example of loving: "Ah, might I become like her!" Should not their oldest sufferings finally become more fruitful for us? Is it not time that lovingly we freed ourselves from the beloved and, quivering, endured: as the arrow endures the bow-string"s tension, and in this tense release becomes more than itself. For staying is nowhere. Voices, voices. Listen my heart, as only saints have listened: until the gigantic call lifted them clear off the ground. Yet they went on, impossibly, kneeling, completely unawares: so intense was their listening. Not that you could endure the voice of God -far from it! But listen to the voice of the wind and the ceaseless message that forms itself out of silence. They sweep toward you now from those who died young. Whenever they entered a church in Rome or Naples, did not their fate quietly speak to you as recently as the tablet did in Santa Maria Formosa? What do they want of me? to quietly remove the appearance of suffered injustice that, at times, hinders a little their spirits from freely proceeding onward. Of course, it is strange to inhabit the earth no longer, to no longer use skills on had barely time to acquire; not to observe roses and other things that promised so much in terms of a human future, no longer to be what one was in infinitely anxious hands; to even discard one"s own name as easily as a child abandons a broken toy. Strange, not to desire to continue wishing one"s wishes. Strange to notice all that was related, fluttering so loosely in space. And being dead is hard work and full of retrieving before one can gradually feel a trace of eternity. -Yes, but the liviing make the mistake of drawing too sharp a distinction. Angels (they say) are often unable to distinguish between moving among the living or the dead. The eternal torrent whirls all ages along with it, through both realms forever, and their voices are lost in its thunderous roar. In the end the early departed have no longer need of us. One is gently weaned from things of this world as a child outgrows the need of its mother"s breast. But we who have need of those great mysteries, we for whom grief is so often the source of spiritual growth, could we exist without them? Is the legend vain that tells of music"s beginning in the midst of the mourning for Linos? the daring first sounds of song piercing the barren numbness, and how in that stunned space an almost godlike youth suddenly left forever, and the emptiness felt for the first time those harmonious vibrations which now enrapture and comfort and help us. ~~~~~~~~~~~~~~~~~~~~ - 릴케(Rainer Maria Rilke) 평가 : 열정적인 몸부림과 영감, 충일한 언어로 20세기를 감당하고자 했던 세계문학사의 거장 약력 : 1875년 체코 프라하(당시 오스트리아, 헝가리 영토) 출생 1890년 메리시 바이스키르헨의 육군사관학교 입학 1891년 사관학교 퇴학 1894년 처녀시집 를 발레리의 도움으로 출간 1895년 프라하 대학 입학 1901년 여류 조각각 클라라 베스트호프와 결혼 1902년 출판 1910년 출판 1923년 출판 1926년 장미가시에 찔려 급성 백혈병의 증세로 사망 작가 이야기 열정적인 몸부림과 영감, 충일한 언어로 20세기를 감당하고자 했던 세계문학사의 거장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실존의 불안과 예감의 고뇌 속에서 자신의 영감이 폭풍을 일으키고 그것을 언어로 춤추었던 불세출의 서정시인이요 작가였다. 그는 매우 열정적인 몸부림과 영감 그리고 충일한 언어로 20세기를 감당하고자 했던 세계문학사의 거장이었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 출신의 독일 시인이었던 그는 일찍부터 고향 상실의 비애와 감상에 젖어야 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육군유년학교를 거쳐 예비사관학교에 입학했다가 퇴학한 것도 그의 우수를 더해 주는 요소였다. 군사교육에 대한 지독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그는 그로 인해 잃어버린 어린 시절에 대한 아쉬움을 평생 극복할 수 없었노라고 실토하기도 했다. 뮌헨대학을 졸업하던 22살 무렵 만난 루 살로메와 더불어 러시아 여행을 하면서부터 그의 삶은 사랑과 고독, 방황과 편력, 여행과 발견, 그리고 그에 따른 문학적 탐색의 드라마처럼 전개된다. 릴케의 문학은 정신적 순례를 통해 영혼의 초월을 모색하고자 했다는 특성을 지닌다. 신을 찾고 신에게로 다가서고자 하는 순수 영혼의 열정적인 동경을 형상화한 을 비롯하여 사물의 존재를 관조적으로 성찰한 , 무한한 우주 공간에 던져진 인간의 실존과 고뇌를 그린 , 존재와 세계의 아름다움과 조화 세계를 노래한 등의 시편들로 현대시인으로서의 불멸의 지위를 확보했다. 그의 대표적인 소설인 는 을 집필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에 체류했던 기간에 쓰여진 대표적인 소설이다. 말테라는 청년 주인공의 내면 영혼의 심층을 깊 있게 보여준다. 를 완성하던 날, "마침내 축복받은, 축복받은 듯한 날이 왔습니다"라며 열광적인 편지를 쓰기도 했던 그는 장미 가시에 찔려 그 상처가 깊어져 숨을 거둔다. 51세의 나이로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기쁨이여"라고 스스로 쓴 묘비명 아래 누웠다. 누구의 꿈도 아닌 깊은 잠을 포근히 감싸주는 장미꽃에 덮혀, 그렇게 20세기의 순수 열정과 운명을 마감했다. (우찬제/문학평론가, 서강대 교수) 출처 : 시인 소향{素香}강은혜 플래닛입니다 | 글쓴이 : 데미 | 원글보기 출처: https://hichy.tistory.com/48 [히키의 상상 공간:티스토리]
1152    이상(李箱) - 권태(倦怠) 댓글:  조회:709  추천:0  2022-08-31
 권태(倦怠) - 이상(李箱)    어서, 차라리 어둬버리기나 했으면 좋겠는데──벽촌의 여름날은 지리해서 죽겠을 만치 길다. 동에 팔봉산. 곡선은 왜 저리도 굴곡이 없이 단조로운고? 서를 보아도 벌판, 남을 보아도 벌판, 북을 보아도 벌판, 아아이 벌판은 어쩌라고 이렇게 한이 없이 늘어 놓였을꼬? 어쩌자고 저렇게까지 똑같이 초록색 하나로 되어 먹었노? 농가가 가운데 길 하나를 두고 좌우로 한 십여 호씩 있다. 휘청거린 소나무 기둥, 흙을 주물러 바른 벽, 강낭대로 둘러싼 울타리, 울타리를 덮은 호박넝쿨, 모두가 그게 그것같이 똑같다. 어제 보던 대싸리나무, 오늘도 보는 김서방, 내일도 보아야 할 흰둥이, 검둥이 해는 100도 가까운 볕을 지붕에도, 벌판에도, 뽕나무에도 암탉 꼬랑지에도 내려쪼인다. 아침이나 저녁이나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는 염서(炎署) 계속이다. 나는 아침을 먹었다. 그러나 무작정 널따란 백지 같은 이라는 것이 내 앞에 펼쳐져 있으면서, 무슨 기사라도 좋으니 강요한다. 나는 무엇이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연구해야 된다. 그럼──나는 최서방네 집 사랑 툇마루로 장기나 두러 갈까? 그것 좋다. 최서방은 들에 나갔다. 최서방네 사랑에는 아무도 없나보다. 최서방네 조카가 낮잠을 잔다. 아하 내가 아침을 먹은 것은 열 시 지난 후니까, 최서방의 조카로서는 낮잠 잘 시간에 틀림없다. 나는 최서방의 조카를 깨워 가지고 장기를 한판 벌이기로 한다. 최서방의 조카와 열 번 두면 열 번 내가 이긴다. 최서방의 조카로서는, 그러니까 나와 장기 둔다는 것 그것부터가 권태다. 밤낮 두어야 마찬가질 바에는 안 두는 것이 차라리 낫지―그러나, 안 두면 또 무엇을 하나? 둘밖에 없다. 지는 것도 권태여늘 이기는 것이 어찌 권태 아닐 수 있으랴? 열 번 두어서 열 번 내리 이기는 는 장난이란 열 번 지는 이상으로 싱거운 장난이다. 나는 참 싱거워서 견딜 수 없다. 한번쯤 져 주리라. 나는 한참 생각하는 체하다가 슬그머니 위험한 자리에 장기 조각을 갖다 놓는다. 서방의 조카는 하품을 쓱 하더니, 이윽고 둔다는 것이 딴전이다. 의례히 질 것이니까, 골치 아프게 수를 보고 어쩌고 하기도 싫다는 사상이리가.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장기를 갖다 놓고, 그저 얼른얼른 끝을 내어 져 줄 만큼 져 주면 이 상승장군은 이 압도적 권태를 이기지 못해 제 출물에 가버리겠지 하는 사상이리라. 가고나면 도 낮잠이나 잘 작정이리라. 나는 부득이 또 이긴다. 인제 그만 두잔다. 물론, 그만 두는 수밖에 없다. 일부러 져준다는 것조차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왜 저 최서방의 조카처럼 아주 영영 방심 상태가 되어 버릴 수가 없나? 이 질식할 것 같은 권태 속에서도 사세(些細)한 승부에 구속을 받나? 아주 바보가 되는 수는 없나? 내게 남아 있는 이 치사스러운 인간 이욕(利慾)이 다시없이 밉다. 나는 이 마지막 것을 면해야 한다. 권태를 인식하는 신경마저 버리고, 완전히 허탈해 버려야 한다.    나는 개울가로 간다. 가물로 하여 너무 빈약한 물이 소리없이 흐른다. 뼈처럼 앙상한 물줄기가 왜 소리를 치지 않나? 너무 더웁다. 나뭇잎들이 다 축 늘어져서 허더허덕하도록 더웁다. 이렇게 더우니 시냇물인들 서늘한 소리를 내어보는 재간도 없으리라. 나는 그 물가에 앉는다. 앉아서, 자──무슨 제목으로 나는 사색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 본다. 그러나, 물론 아무런 제목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생각 말기로 하자. 그저 한량없이 넓은 초록색 벌판, 지평선, 아무리 변화하여 보았댔자 결국 치열한 곡예의 역(域)에서 벗어나지 않는 구름, 이런 것을 건너다본다. 지구 표면적의 100분의 99가 이 공포의 초록색이리라. 그렇다면, 지구야말로 너무나 단조 무미한 채색이다. 도회에는 초록이 드물다. 나는 처음 여기 표착(漂着)하였을 때, 이 신선한 초록빛에 놀랐고 사랑하였다. 그러나 닷새가 못 되어서 이 일망무제(一望無際)의 초록색은 조물주의 몰취미와 신경의 조잡성으로 말미암은 무미건조한 지구의 여백인 것을 발견하고, 다시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쩔 작정으로 저렇게 퍼러냐? 하루 온종일 저 푸른빛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오직 그 푸른 것에 백치와 같이 만족하면서 푸른 채로 있다. 이윽고 밤이 오면, 또 거대한 구렁이처럼 빛을 잃어버리고 소리도 없이 잔다. 이 무슨 거대한 겸손이냐? 이윽고 겨울이 오면 초록은 실색(失色)한다. 그러나 그것은 남루를 갈기갈기 찢는 것과 다름없는 추악한 색채로 변하는 것이다. 한겨울을 두고 이 황막(荒漠)하고 추악한 벌판을 바라보고 지내면서, 그래도 자살 민절(悶絶)하지 않는 농민들은 불쌍하기도 하려니와 거대한 천치다. 그들의 일생이 또한 이 벌판처럼 단조한 권태 일색으로 도포된 것이리라. 일할 때는 초록 벌판처럼 더워서 숨이 칵칵 막히게 싱거울 것이요, 일하지 않을 때에는 겨우 황원(荒原)처럼 거칠고 구지레하게 싱거울 것이다. 그들에게는 흥분이 없다. 벌판에 벼락이 떨어져도, 그것은 뇌성(雷聲) 끝에 가끔 있는 다반사에 지나지 않는다. 촌동(村童)이 범에게 물려가도, 그것은 맹수가 사는 산촌에 가끔 있는 신벌(神罰)에 지나지 않는다. 실로 전선주 하나 없는 벌판에서 그들이 무엇을 대상으로 흥분할 수 있으랴. 팔봉산 등을 넘어 철골 전선주가 늘어섰다. 그러나, 그 동선은 이 촌락에 엽서 한 장을 내려뜨리지 않고 섰는 채다. 동선으로는 전류도 통하리라. 그러나 그들의 방이 아직도 송명(松明)으로 어둠침침한 이상, 그 전선주들은 이 마을 동구에 늘어선 포플라나무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 그들에게 희망이 있던가? 가을에 곡식이 익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희망은 아니다. 본능이다. 내일. 내일도 오늘 하던 계속의 일을 해야지. 이 끝없는 권태의 내일은 왜 이렇게 끝없이 있나? 그러나, 그들은 그런 것을 생각할 줄 모른다. 간혹, 그런 의혹이 전광과 같이 그들의 흉리(胸裏)를 스치는 일이 있어도, 다음 순간 하루의 노역(奴役)으로 말미암아 잠이 오고 만다. 그러니, 농민은 참 불행하도다. 그럼 이 흉악한 권태를 자각할 줄 아는 나는 얼마나 행복된가?   대싸리나무도 축 늘어졌다. 물은 흐르면서 가끔 웅덩이를 만나면 썩는다. 내가 앉아 있는 데는 무던히 한가롭다. 어제도 울던 낮닭이 오늘도 또 울었다는 외에 아무흥미도 없다.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이다. 다만, 우연히 귀에 들어왔으니까 그저 들었을 분이다. 닭은 그래도 새벽, 낮으로 울기나 한다. 그러나 이 동리의 개들은 짖지를 않는다. 그러면, 모두 벙어리 개들인가, 아니다. 그 증거로는 이 동리 사람 아닌 내가 돌팔매질을 하면서 위협하면 10마리나 달아나면서 나를 돌아다보고 짖는다. 그렇건만, 내가 아무 그런 위험한 짓을 하지 않고 지나가면, 천리나 먼 데서 온 외인, 더구나 안면이 이처럼 창백하고 봉발(蓬髮)이 작소(鵲巢)를 이룬 기이한 풍모를 쳐다보면서도 짖지 않는다. 참 이상하다. 어째서 여기 개들은 나를 보고 짖지를 않을까? 세상에서 희귀한 겸손한 겁장이 개들도 다 많다. 이 겁쟁이 개들은 이런 나를 보고도 짖지를 않으니, 그럼 대체 무엇을 보아야 짖으랴? 그들은 짖을 일이 없다. 여인(旅人)은 이곳에 오지 않는다. 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도 연변에 있지 않는 이 촌락을 그들은 지나갈 일도 없다. 가끔 이웃마을의 김서방이 온다. 그러나 그는 여기 최서방과 똑같은 복장과 피부색과 사투리를 가졌으니, 개들이 짖어 무엇하랴. 이 빈촌에는 도적이 없다. 인정있는 도적이면 여기 너무나 빈한한 시악시들을 위하여, 훔친 바 비녀나 반지를 가만히 놓고 가지 않으면 안되리라. 도적에게는 이 마을은 도적의 도심을 도적맞기 수운 위험한 지대이리라. 그러니, 실로 개들이 무엇을 보고 짖으랴. 개들은 너무나 오랜동안──아마 그 출생 당시부터──짖는 버릇을 포기한 채 지내왔다. 몇 대를 두고 짖지 않은 이곳 견족들은 드디어 짖는다는 본능을 상실하고 만 것이리라. 인제는 돌이나 나무토막으로 얻어맞아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파야 겨우 짖는다. 그러나 그와 같은 본능은 인간에게도 있느니, 특히 개의 특징으로 쳐들 것은 못되리라. 개들은 대개 제가 길리우고 있는 집 문간에 가 앉아서 밤이면 밤잠, 낮이면 낮잠을 잔다. 왜? 그들은 수비할 아무 대상도 없으니까다. 최서방네집 개가 이리로 온다. 그것을 김서방네집 개가 발견하고, 일어나서 영접한다. 그러나 영접해 본댔자 할 일이 없다. 양구(良久)에 그들은 헤어진다. 설레설레 길을 걸어본다. 밤낮 다니던 길, 그 길에는 아무것도 떨어진 것이 없다. 촌민들은 한여름 보리와 조를 먹는다. 반찬은 날된장, 풋고추다. 그러니, 그들의 부엌에조차 남는 것이 없겠거늘, 하물며 길가에 무엇이 족히 떨어져 있을 수 있으랴. 길을 걸어본댔자 소득이 없다. 낮잠이나 자자. 그리하여, 개들은 천부의 수위술을 망각하고 낮잠에 탐닉하여 버리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타락하고 말았다. 슬픈 일이다. 짖을 줄 모르는 벙어리 개, 지킬 줄 모르는 게으름뱅이 개, 이 바보 개들은 복날 개장국을 끓여 먹기 위하여 촌민의 희생이 된다. 그러나 불쌍한 개들은 음력도 모르니, 복날은 몇 날이나 남았나 전연 알 길이 없다.    이 마을에는 신문도 오지 않는다. 소위 승합자동차라는 것도 통과하지 않으니, 도회의 소식을 무슨 방법으로 알랴? 오관이 모조리 박탈된 것이나 다름없다. 답답한 하늘, 답답한 지평선, 답답한 풍경, 답답한 풍속 가운데서 나는 이리 디굴 저리 디굴 굴고 싶을 만치 답답해하고 지내야만 된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상태 이상으로 괴로운 상태가 또 있을까? 인간은 병석에서도 생각한다. 아니, 병석에서는 더욱 많이 생각하는 법이다. 끝없는 권태가 사람을 엄습하였을 때, 그의 도공은 내부를 향하여 열리리라. 그리하여, 망상할 때보다도 몇 배나 더 자신의 내면을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인의 특질이요, 질환인 자의식(自意識) 과잉은 이런 권태치 않을 수 없는 권태 계급의 철저한 권태로 말미암음이다. 육체적 한산, 정신적 권태, 이것을 면할 수 없는 계급이 자의식 과잉의 절정을 표시한다. 그러나 지금 이 개울가에 앉은 나에게는 자의식 과잉조차가 폐쇄되었다. 이렇게 한산한데, 이렇게 극도의 권태가 있는데, 동공은 내부를 향하여 열리기를 주저한다. 아무것도 생가하기 싫다. 어제까지도 죽는 것을 생각하는 것 하나만은 즐거웠다. 그러나 오늘은 그것조차가 귀찮다. 그러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눈 뜬 채 졸기로 하자. 더워 죽겠는데 목욕이나 할까? 그러나 웅덩이 물은 썩었다. 썩지 않은 물을 찾아가는 것은 귀찮은 일이고── 썩지 않은 물이 여기 있다기로서니, 나는 목욕하지 않았으리라. 옷을 벗기가 귀찮다. 아니! 그보다도 그 창백하고 앙상한 수구(瘦軀)를 백일 아래 널어 말리는 파렴치를 나는 견디기 어렵다. 땀이 옷에 배이면? 배인 채 두자. 그렇다 하더라도, 이 더위는 무슨 더위냐? 나는 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와서 세수를 하기로 한다. 나는 일어나서 오던 길을 돌치는 도중에서 교미하는 개 한 쌍을 만났다. 그러나 인공의 기교가 없는 축류(畜類)의 교미는 풍경이 권태 그것인 것같이 권태 그것이다. 동리 동해(童孩)들에게도 젊은 촌부(村婦)들에게도 흥미의 대상이 못되는 이 개들의 교미는, 또한 내게 있어서도 흥미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함석대야는 그 본연의 빛을 일찍이 잃어버리고, 그들의 피부색과 같이 붉고 검다. 아마 이집 부인 아주머니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것이리라. 세수를 해본다. 물조차가 미지근하다. 물조차가 이 무지한 더위에는 견딜 수 없었나 보다. 그러나 세수의 관례대로 세수를 마친다. 그리고 호박 넝쿨이 축 늘어진 울타리 밑 호박 넝쿨의 뿌리 돌친 데를 찾아서 그 물을 준다. 너라도 좀 생기를 내라고. 땀내 나는 수건으로 얼굴을 훔치고 툇마루에 걸터앉았다니까, 내가 세수할 때 내 곁에 늘어섰던 주인집 아이들 넷이 제각기 나를 본받아 그 대야를 사용하여 세수를 한다. 저 애들도 더워서 저러는구나, 하였더니 그렇지 않다. 그 애들도 나처럼 일거수일투족을 어찌하였으면 좋을까 당황해 하고 있는 권태들이었다. 다만 내가 세수하는 것을 보고, 그럼 우리도 저 사람처럼 세수나 해 볼까 하고, 따라서 세수를 해보았다는데 지나지 않는다.   원숭이가 사람의 흉내를 내는 것이 내 눈에는 참 밉다. 어쩌자고 여기 아이들이 내 흉내를 내는 것일까? 귀여운 촌동(村童)들을 원숭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나는 다시 개울가로 가 본다. 썩은 물, 늘어진 대싸리 외에 아무것도 없다. 그런 나는 거기 앉아서 이번에는 그 썩는 중의 웅덩이 속을 들여다본다. 순간, 나는 진기한 현상을 목도한다. 무수한 오점이 방향을 정돈해 가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생물임에 틀림없다. 송사리 떼임에 틀림없다. 이 부패한 소택 속에 이런 앙징스러운 어족이 서식하리라고는, 나는 참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요리 몰리고 조리 몰리고, 역시 먹을 것을 찾음이리라. 무엇을 먹고 사누. 벌레를 먹겠지. 그러나, 송사리보다도 더 작은 벌레라는 것이 있을까! 잠시를 가만있지 않는다. 저물도록 움직인다. 대략 같은 동기와 같은 모양으로들 그러는 것 같다. 동기! 역시 송사리의 세계에도 시급한 목적이 있는 모양이다. 차츰차츰 하류를 향하여 군중적으로 이동한다. 저렇게 하류로 하류로만 가다가 또 어쩔 작정인가? 아니 그들은 중로(中路)에서 또 상류를 향하여 거슬러 올라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장 하류로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하류로, 하류로! 5분 후에는 그들의 모양이 보이지 않을 만치 그들은 멀리 하류로 내려갔다. 그리고 웅덩이는 아까와 같이 도로 썩은 물의 웅덩이로 조용해지고 말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풀밭으로 가보기로 한다. 풀밭에는 암소 한 마리가 있다. 그 웅덩이 속에 고런 맹랑한 현상이 잠복해 있을 수 있다니──하고 나는 적잖이 흥분했다. 그러나 그 현상도 소낙비처럼 지나가고 말았으니, 잊어버리고 그만두는 수밖에. 소의 뿔은 벌써 소의 무기는 아니다. 소의 뿔은 오직 안경의 재료일 따름이다. 소는 사람에게 얻어맞기로 위주니까, 소에게는 무기가 필요 없다. 소의 뿔은 오직 동물학자를 위한 표식이다. 야우(野牛)시대에는 이것으로 적을 돌격한 일도 있습니다──하는, 마치 폐병의 가슴에 달린 훈장처럼 그 추억성이 애상적이다. 암소의 뿔은 수소의 그것보다도 더한층 겸허하다. 이 애상적인 뿔이 나를 받을 리 없으니, 나는 마음 놓고 그 곁 풀밭에 가 누워도 좋다. 나는 누워서 위선 소를 본다. 소는 잠시 반추를 그치고, 나를 응시한다. "이 사람의 얼굴이 왜 이리 창백하냐? 아마 병인인가보다. 내 생면에 위해를 가하려는 거나 아닌지, 나는 조심해야 되지." 이렇게 소는 속으로 나를 심리하였으리라. 그러나, 5분 후에는 소는 다시 반추를 계속하였다. 소보다도 내가 마음을 놓는다. 소는 식욕의 즐거움조차를 냉대할 수 있는 지상 최대의 권태자다. 얼마나 권태에 지질렸길래 이미 위에 들어간 식물을 다시 게워, 그 시금털털한 반소화물의 미각을 역설적으로 향략하는 체해보임이리요? 소의 체구가 크면 클수록 그의 권태도 크고 슬프다. 나는 소 앞에 누워 내 세균같이 사소한 고독을 겸손하면서, 나도 사색의 반추는 가능할는지 불가능할는지 몰래 좀 생각해 본다.    길 복판에서 6,7인의 아이들이 놀고 있다. 적발동부(赤髮銅膚)의 반라군(半裸群)이다. 그들의 혼탁한 안색, 흘린 콧물, 두른 베두렁이, 벗은 웃통만을 가지고는 그들의 성별조차 거의 분간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여아가 아니면 남아요, 남아가 아니면 여아인, 결국에는 귀여운 5,6세 내지 7,8세의 임에는 틀림없다. 이 아이들이 여기 길 한복판을 선택하여 유희하고 있다. 돌멩이를 주워 온다. 풀──이처럼 평범한 것이 또 있으까? 그들에게 있어서는 초록빛의 물건이란 어떤 것이고 간에 다시없이 심심한 것이다. 그러나 하는 수 없다. 곡식을 뜯는 것도 금제니까 풀밖에 없다. 돌멩이로 풀을 짓찧는다. 푸르스레한 물이 돌에가 염색된다. 그러면 그 돌과 그 풀은 팽개치고, 또 다른 풀과 돌멩이를 가져다가 똑같은 짓을 반복하다. 한 10분 동안이나 아무 말이 없이 잠자코 이렇게 놀아본다. 10분만이면 권태가 온다. 풀도 싱겁고, 돌도 싱겁다. 그러면 그 외에 무엇이 있나? 없다. 그들이 일제히 일어선다. 질서도 없고, 충도의 재료도 없다. 다만 그저 앉았기 싫으니까 이번에는 일어서 보았을 뿐이다. 일어서서 두 팔을 높이 하늘을 향하여 쳐든다. 그리고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 본다. 그러더니 그냥 그 자리에서들 겅중겅중 뛴다. 그러면서 그 비명을 겸한다. 나는 이 광경을 보고 그만 눈물이 났다. 여북하면 저렇게 놀까? 이들은 놀 줄조차 모른다. 어버이들은 너무 가난해서, 이들 귀여운 애기들에게 장난감을 사다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하늘을 향하여 두 팔을 뻗치고, 그리고 소리를 지르면서 뛰는 그들의 유희가 내 눈에는 암만해도 유희같이 생각되지 않는다. 하늘은 왜 저렇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푸르냐, 산은, 벌판은 왜 저렇게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푸르냐는 조물주에게 대한 저주의 비명이 아니고 무엇이랴! 아이들은 짖을 줄조차 모르는 개들과 놀 수는 없다. 그렇다고 모이 찾느라고 눈이 벌건 닭들과 놀 수도 없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너무나 바쁘다. 언니 오빠조차 바쁘다.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노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체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놀아야 하나? 그들에게는 영영 엄두가 나서지를 않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듯 불행하다. 그 짓도 5분이다. 더 이상 더 길게 이 짓을 하자면, 그들은 피로할 것이다. 순진한 그들이 무슨 까닭에 피로해야 되나? 그들은 위선 싱거워서 그 짓을 그만 둔다. 그들은 도로 나란히 앉는다. 앉아서 소리가 없다. 무엇을 하나 무슨 종류의 유희인지, 유희는 유희인 모양인데──이 권태의 왜소 인간들은, 또 무슨 기상천외의 유희를 발명했나? 5분 후에 그들은 비키면서 하나씩 둘씩 일어선다. 제 각각 대변을 한 무더기씩 누어 놓았다. 아아 이것도 역시 그들의 유희였다. 속수무책의 그들 최후의 창작 유희였다. 그런 그중 한 아이가 영 일어나지를 않는다. 그는 대변이 나오지 않는다. 그럼 그는 이번 유희의 못난 낙오자임에 틀림없다. 분명히 다른 아이들 눈에 조소의 빛이 보인다. 아아 조물주여, 이들을 위하여 풍경과 완구를 주소서.    날이 어두웠다. 해저(海底)와 같은 밤이 오는 것이다. 나는 자못 이상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배가 고픈 모양이다. 이것이 정말이라면, 그럼 나는 어째서 배가 고픈가? 무엇을 했다고 배가 고픈가? 자기 부패작용이나 하고 있는 웅덩이 속을 실로 송사리떼가 쏘다니고 있더라. 그럼 내 장부 속으로도 나로서 자각할 수 없는 송사리떼가 준동하고 있나보다. 아무렇든 나는 밥을 아니 먹을 수는 없다. 밥상에는 마늘장아찌와 날된장과 풋고추조림이 관성의 법칙처럼 놓여 있다. 그러나 먹을 때마다 이 음식이 내 입에, 내 혀에 다르다. 그러나 나는 그 까닭을 설명할 수 없다. 마당에서 밥을 먹으면, 머리 위에서 그 무수한 별들이 야단이다. 저것은 또 어쩌라는 것인가? 내게는 별이 천문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시상(詩想)의 대상도 아니다. 그것은 다만 향기도 촉감도 없는 절대 권태의 도달할 수 없는 영원한 피안(彼岸)이다. 별조차가 이렇게 싱겁다. 저녁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보면, 집집에서는 모깃불의 연기가 한창이다. 그들은 마당에서 멍석을 펴고 잔다. 별을 쳐다보면서 잔다. 그러나 그들은 별을 보지 않는다. 그 증거로는 그들은 멍석에 눕자마자 눈을 감는다. 그리고는 눈을 감자마자 쿨쿨 잠이 든다. 별은 그들과 관계없다. 나는 소화를 촉진시키느라고 길을 왔다 갔다 한다. 돌칠 적마다 멍석 위에 누운 사람의 수가 늘어간다. 이것이 시체와 무엇이 다를까? 먹고 잘 줄 아는 시체──나는 이런 실례로운 생각을 정지해야만 되겠다. 그리고 나도 가서 자야겠다. 방에 돌아와 나는 나를 살펴본다. 모든 것에서 절연된 지금의 내 생활──자살의 단서조차를 찾을 길이 없는 지금의 내 생활은 과연 권태의 극 그것이다. 그렇건만 내일이라는 것이 있다. 다시는 날이 새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한 밤 저쪽에, 또 내일이라는 놈이 한 개 버티고 서 있다. 마치 흉맹한 형리처럼──나는 그 형리를 피할 수 없다. 오늘이 되어 버린 내일 속에서, 또 나는 질식할 만치 심심해해야 되고, 기막힐 만치 답답해해야 된다. 그럼 오늘 하루를 나는 어떻게 지냈던가? 이런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냥 자자! 자다가 불행히, 아니 다행히 또 깨거든 최서방의 조카와 장기나 또 한 판 두지. 웅덩이에 가서 송사리를 볼 수도 있고, 몇 가지 안 남은 기억을 소처럼 반추하면서 끝없는 나태를 즐기는 방법도 있지 않으냐? 불나비가 달려들어 불을 끈다. 불나비는 죽었든지 화상을 입었으리라. 그러나 불나비라는 놈은 사는 방법을 아는 놈이다. 불을 보면 뛰어들 줄도 알고──평상에 불을 초조히 찾아다닐 줄도 아는 정열의 생물이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 어디 불을 찾으려는 정열이 있으며, 뛰어 들 불이 있느냐? 없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암흑은 암흑인 이상, 이 방 좁은 것이나 우주에 꼭 찬 것이나 분량상 차이가 없으리라. 나는 이 대소 없는 암흑 가운데 누워서 숨 쉴 것도 어루만질 것도 또 욕심나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다만 어디까지 가야 끝이 날지 모르는 내일, 그것이 또 창 밖에 등대하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다. * 작자 이상(李箱,1910년 9월 14일-1937년 4월 17일)은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이다. 1910년 이발업에 종사하던 부 김연창(金演昌)과 모 박세창(朴世昌)의 장남으로 출생하여, 1912년 부모를 떠나 아들이 없던 백부 김연필(金演弼)집에서 장손으로 성장하였다. 그는 백부의 교육열에 힘입어 신명학교, 보성고보(普成高普),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거쳤고 졸업 후에는 총독부 건축과 기수로 취직하였다.   1931년 처녀시 ‘이상한가역반응’, ‘BOITEUX·BOITEUSE’, ‘오감도’ 등을 에 발표했고, 1932년 단편소설 ‘지도의 암실’을 에 발표하면서 비구(比久)라는 익명을 사용했으며,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발표하면서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1934년 에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여 시 ‘오감도’를 에 연재하지만 난해시라는 독자들의 항의로 30회로 예정되어 있었던 분량을 15회로 중단하였다.    1936년 동인지 의 편집을 맡아 1집만 내고 그만두고, 에 ‘지주회시’, 에 '날개', '동해'를 발표하였다. 이해, 결혼하여 일본 도쿄로 가게 되는데, 그 곳에서 '종생기' ,'권태', '환시기' 등을 쓰고, '봉별기'가 에 발표되었다. 1937년 사상 불온 혐의로 일본 경찰에 유치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하였지만, 향년 만26년 7개월에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객사하였다. 출처: https://hichy.tistory.com/entry/이상李箱-권태倦怠?category=592743 [히키의 상상 공간:티스토리]
1151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댓글:  조회:854  추천:0  2022-08-15
책머리에 (p.331~332) 1902년 늦가을이었다. 나는 빈 신시가지의 육군대학 교정에 있는 늙은 밤나무 아래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얼마나 독서에 빠져 있었던지, 우리 학교 교수들 가운데 유일한 민간인이며 학문에 조예가 깊고 온화한 호라체크 교수님이 내 곁에 와서 앉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교수님은 내 손에서 책을 거두어 표지를 들여다 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집인가?" 그가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그러고는 책장을 넘기며 시를 두세 편 훑어본 다음 생각에 잠긴 눈길로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기숙생 르네 릴케가 시인이 됐구먼." 그리하여 나는 15년 전쯤 부모님에게 떠밀려 장교가 되기 위해 상트펠텐 육군유년 학교에 들어갔던 그 가냘프고 창백한 얼굴의 소년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당시 호라체크 교수님은 학교 목사로 그곳에 근무하셨는데, 지금도 그 기숙생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신다고 했다. 교수님은 그를 조용하고 진지하며 똑똑한 학생으로 묘사했다. 그는 혼자 있기를 좋아했으며, 군대 같은 학교생활을 4년 동안 참을성 있게 견딘 뒤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메리 슈바이스키르헨에 있는 육군실업학교로 진학했다. 그 학교에 들어가고부터 그의 체질로는 군대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으므로,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학교를 그만두고 고향 프라하에서 공부를 계속하기로 했다. 그 뒤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교수님은 모른다고 하셨다. 여기까지만 말해도, 내가 그 자리에서 내 습작 시를 라이너 마리아 릴케에게 보내 비평을 청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그때 채 스무 살이 되지 않았던 나는 내 소질과는 정반대되는 직업을 구하려던 참이었고, 누군가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면 《나의 축제를 위하여》를 쓴 시인에게 이해받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리고 정말 그러기로 마음을 굳히기도 전에 나는 습작 시에 곁들여 편지를 쓰게 되었다. 그렇게 편지로 내 속내를 털어놓은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몇 주가 지나 서야 답장이 왔다. 파란 봉인이 된 그 편지에는 파리 소인이 찍혀 있었다. 들어보니 묵직했다. 겉봉에는 아름답고 단정한 필체로 보낸 이가 적혀 있었고, 본문도 첫째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그와 똑같은 필체로 채워져 있었다 그때부터 나와 라이너 마리아 릴케 사이에는 규칙적으로 편지가 오갔다. 편지는 1908년까지 이어지다가 그 뒤 서서히 시들해져 갔다.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따뜻하고 세심한 배려에서 시인이 애써 만류했던 그 영역으로 내 삶01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 소개하는 10통의 편지이다. 이 편지들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삶과 그가 창작한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할 뿐만 아니라, 자라나는 오늘과 내일의 많은 젊은이들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위대하고 유일무이한 인간이 말할 때 하찮은 사람이여 침묵해야 하리. 1929년 6월, 베를린에서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 출처: R.M. 릴케 / 백정승 옮김 -- 동서문화사   첫째 편지 - 시를 꼭 써야 하는가? (p.333~336) 파리에서 1903년 2월 17일 친애하는 카푸스 씨께, 보내 주신 편지는 며칠 전에야 받았습니다. 편지에서 보여주신 두터운 신뢰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내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군요. 내겐 당신 시의 본질을 분석할 능력이 없습니다. 나는 비평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술작품을 느끼는 데 있어서 비평만큼 쓸모없는 것도 없습니다. 비평은 언제나 많든 적든 그럴듯해 보이는 오해를 낳기 마련이니까요. 세상사란 흔히 믿는 것처럼 그렇게 쉽게 포착하거나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건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으며, 아직 그 어떤 낱말도 들어서지 못한 영역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더욱 표현이 불가능한 대상은, 우리의 덧없는 인생과 더불어 존속하는, 바로 저 비밀로 가득한 존재인 예술작품일 것입니다. 이렇게 운을 뗐으니 이제 다음과 같은 말을 할 수 있겠군요. 당신 시는 개성적이지 않지만, 개성으로 발전할 여지가 있는 싹을 조용히 품고 있습니다. 이런 느낌은 특히 당신의 마지막 시 을 읽을 때 가장 뚜렷해졌습니다. 이 시에는 개성이 시어와 운율로 나타나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레오파르디에게>라는 아름다운 시에는 이 위대하고 고독한 인간과의 친근감 비슷한 것이 자라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의 시는, 마지막 시와 레오파르디에게 부치는 그 시조차도, 아직 독자적이지 못하며, 그 자체로는 미완성에 불과합니다. 시와 함께 보내 주신 친절한 편지 덕분에 나는 당신의 시를 읽으면서 느꼈지만 무어라고 꼭 짚어낼 수는 없었던 여러 결함들을 비로소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쓴 시들이 어떠냐고 묻습니다. 지금은 내게 묻고 있습니다. 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물었겠지요. 당신은 잡지사에 시를 보냅니다. 그러고는 자꾸만 다른 이의 시와 당신의 시를 비교하면서, 혹시나 편집자가 당신이 애써서 쓴 작품을 거절하지나 않을지 걱정합니다. (내게 충고를 부탁했으니 감히 말씀드리건대) 이제 나는 그런 짓을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외부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바로 지금 무엇보다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아무도 당신에게 조언하거나 당신을 도와줄 수 없습니다, 아무도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당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십시오. 당신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찾으십시오. 그리고 그 이유가 당신의 심장 가장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글쓰기를 그만둘 바에야 죽음을 택하겠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무엇보다 한밤의 가장 조용한 시간에 이렇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글을 꼭 써야 하는갸', 그 대답을 찾아 내부로 내부로 파고드십시오. 그 대답이 긍정이라면, 그 진지한 물음에 힘차고 짤막하게 “나는 반드시 써야만 한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그때에는 이 필연성에 따라 삶을 만들어가십시오. 당신의 삶은 가장 무심하고 사소해 보이는 시간까지도 이런 충동의 징표 또는 중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자연으로 다가가십시오. 인류 최초의 인간이 된 것처럼, 당신이 보고 체험하고 사랑하고 잃은 것을 표현해 보십시오. 사랑시는 쓰지 마세요. 너무 흔하고 평범한 형식은 피하십시오. 그린 형식이 가장 어려운 법입니다. 이미 전통적으로 훌륭하고 탁월한 작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영역에서 당신만의 개성적인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위대하고 성숙한 힘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일반적인 주제는 피하고, 일상에서 주제를 찾으십시오. 당신의 슬픔과 소망, 스쳐 지나가는 생각, 아름다움에 대한 믿음을 그려 보십시오. 이 모든 것을 뜨겁고 차분하며 겸허한 솔직함으로 묘사하십시오. 그리고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주변 사물이나 꿈속에서 본 풍경, 또는 추억의 대상을 이용하십시오. 당신의 일상이 보잘것없어 보인다고 그 일상을 탓하지는 마십시오. 비난할 것은 당신 자신입니다. 아직 진정한 시인이 아니기에 일상의 풍요로움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하십시오. 창작하는 사람에게 빈곤한 소재나 감흥을 주지 않는 장소라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벽에 가로막혀 세상의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는 감옥에 갇혔다 할지라도, 당신에게는 어린 시절이라는 왕의 부와 맞먹는 소중한 기억의 보물창고가 있지 않습니까? 그곳으로 당신의 관심을 돌리십시오. 저 먼 과거의 잃어버린 감각들을 되살리려 노력해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개성은 확고해지고 당신의 고독은 더욱더 넓게 퍼져나가 세상 사람들의 소음마저 멀리 비껴가는 어스름한 거처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내면으로 눈을 돌려 자기만의 세계에 침잠하여 시를 쓰게 되면, 당신은 더 이상 다른 이에게 당신의 시가 훌륭한지 물어보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잡지사에 시를 보내어 관심을 끌고자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 시 속에서 당신이 사랑하는 자연스러운 소유물을, 당신 삶의 한 조각을, 당신 삶의 한 가닥 목소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필연성에서 싹트는 예술 작품은 훌륭합니다. 이 기원의 문제야말로 예술작품을 판단하는 기준인 것입니다. 그 밖의 판단 기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친애하는 카푸스 씨, 내가 당신에게 권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입니다. 내면으로 들어가 당신의 삶이 솟아나오는 깊은 근원을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꼭 창작 활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은 그 원천에서만 발견될 것입니다, 답이 나오면 그 의미를 따지지 말고 그대로 받아 들이 십시오, 아마도 당신이 예술가가 될 운명을 타고났다는 답이 나오겠지요. 그러면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 무거운 짐과 위대함을 짊어지십시오. 외부에서 올지도 모르는 보상을 바라지 마십시오. 창조자는 스스로 하나의 세계여야 하며 그 자신과 그가 속한 자연 안에서 모든 것을 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당신의 내면으로, 당신의 고독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뒤 시인이 되려는 생각을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지도 모릅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시를 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고 느낀다면 시를 써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가 당신에게 요구한 이러한 내면의 성찰이 그저 헛된 것만은 아니겠지요. 어찌되었든 이를 계기로 당신의 삶은 그 고유한 길을 찾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그 길이 훌륭하고 풍요로우며 드넓기를 성심을 다해 기원합니다. 이 이상 무슨 말씀을 더 드리겠습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모두 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조언을 드린다면, 조용히 그리고 진지하게 당신의 성장의 길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생각을 외부세계로 향한 채, 그로부터 질문의 답을 얻기를 기대하는 것만큼 당신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없습니다. 가장 고요한 시간에 당신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감정만이 그 물음에 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보낸 편지에서 호라체크 교수님의 이름을 발견하고서 무척 기뻤습니다. 나는 그 경애할 만한 학자에게 큰 존경과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부디 나의 이 마음을 그분께 전해주세요. 교수님께서 아직도 나를 기억하신다니 정말 영광스럽고 고마운 일입니다. 보내주신 시들을 동봉해서 돌려드립니다. 내게 보여주신 크고 진지한 신뢰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보답의 뜻으로, 비록 당신에게 나는 생면부지의 사람이지만, 내가 아는 한 솔직하게 답변함으로써 그 신뢰에 조금이나마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진심 어린 존경과 공감을 담아, 라이너 마리아 릴케 출처: R.M. 릴케 / 백정승 옮김 -- 동서문화사   둘째 편지 - 반어법과 추천도서에 관하여 (p.337~338) 이탈리아, 피사 근교의 비아레지오에서 1903년 4월 5일 친애하는 카푸스 씨, 당신이 보내주신 2월 24일자 편지에 오늘에서야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병에 걸렸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유행성 감기에 걸린 것처럼 무기력증에 빠져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해도 몸 상태가 좋아지지 않기에 이 남쪽 바닷가를 찾게 되었습니다. 전에 한 번 이곳에 와서 몸이 회복된 적이 있거든요. 그렇지만 아직 건강을 되찾은 것은 아닙니다. 편지 쓰기도 힘겹게 느껴집니다. 따라서 그다지 길게는 못 쓰지만, 양해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당신 편지는 언제나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이 점만은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답장은 한참 늦어질지도 모르지만, 부디 너그럽게 봐주십시오. 결국 근원적으로 그리고 가장 심오하고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모두 이름도 없는 고독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조언하거나 심지어 그를 도우려면, 많은 일들이 일어나야 하고 또 많은 일들이 성공해야 하며 행복한 결과를 이루도록 전제적인 주변상황이 조화롭게 하나로 모아져야 합니다. 오늘은 두 가지만 말씀드리 겠습니다.  첫 번째는 반어법(irony)입니다. 반어법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마십시오. 특히 창조력이 빈약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창조력이 넘칠 때는 삶을 포착하는 수단의 하나로써 사용해 보십시오. 그 쓰임이 순수할 때면, 반어법 그 자체도 순수합니다. 그럴 때 반어법을 쓰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만약 반어법이 너무 익숙하게 느껴진다거나 타성에 젖을까 봐 두렵다면, 그때는 위대하고 진지한 대상으로 눈을 돌리십시오. 그것들 앞에서 반어법은 하찮고 초라해질 테니까요. 사물의 깊이를 탐색하십시오. 반어법은 거기까지는 결코 도달하지 못합니다.-그리하여 위대함에 가까이 다가갔다면, 동시에 그런 이해의 형태가 당신 존재의 필연성에서 우러나온 것인지를 음미해보십시오. 만약 그것이 우연에 불과하다면、엄숙한 사건들의 영향력 아래에서 그것은 곧 당신에게서 떨어져나갈 것입니다. 반대로 그것이 당신에게 속하고 선천적으로 내재한다면, 더욱더 강하게 성장하여 진지한 도구로써 당신의 예술을 이루는 데 필요한 수단의 하나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오늘 당신한테 말씀드리고자 하는 두 번째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가진 책 중에서 내게 꼭 필요한 책은 몇 권 되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어디나 가지고 다니는 책은 딱 두 권이지요. 그 책들은 지금도 내 좌우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는 성경이고, 다른 하나는 덴마크의 위대한 시인 옌스 페테르 야콥센이 쓴 책입니다. 당신도 그의 작품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군요. 그의 작품들은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일부가 훌륭하게 번역되어 레클람 출판사의 세계 문고로 나와 있으니까요. 야콥센의 소품집 《여섯 가지 이야기》와 소설 《닐스 뤼네》를 사십시오. 그리고 소품집에 첫 번째로 실린 라는 제목의 단편부터 읽어보십시오. 하나의 세계가, 행복과 풍요로움과 불가사의 한 위대함이 당신을 감쌀 것입니다. 한동안 이 책들 속에 파 묻혀 지내면서, 거기에서 배울 만하다고 여겨지는 가치들을 습득하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책들을 사랑하십시오. 당신이 어떤 인생행로를 걷든지 그 사랑은 천 배 만 배가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장담하건대, 그것은 당신의 존재라는 옷감을 짜는 데 들어가는 경험, 좌절, 기쁨과 같은 모든 실타래 사이에서도 가장 중요한 실 가운데 하나가 될 것입니다. 나더러 창작의 본질과 그 깊이와 영원성에 대해 무언가 깨달음을 준 은인이 누구인지 물으신다면, 내가 말할 수 있는 이름은 단 둘뿐입니다. 바로 위대하고 위대한 시인 야콥센과 현존하는 모든 예술가 중 필적할 자가 없는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입니다. 당신의 인생행로에 늘 성공이 있기를! 당신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출처: R.M. 릴케 / 백정승 옮김 -- 동서문화사   셋째 편지 - 야콥센의 작품에 관하여 (p.339~342) 피사 근교의 비아레지오에서 1903년 4월 23일 부활절을 맞아 보내주신 편지, 아주 기쁘게 읽었습니다. 당신의 여러 면모를 엿볼 수 있어서 매우 좋았기 때문이죠. 또 야콥센의 위대하고 아름다운 예술에 대한 당신의 견해를 들으니, 이전 당신의 삶과 여러 문제들을 이 풍요로운 보물창고로 안내한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닐스 뤼네>를 펼쳐보십시오. 정말 찬란하고 심오한 책입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인생에서 가장 은은한 향기로부터 가장 진한 열매의 풍부하고 위대한 맛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들어 있는 듯 느껴지지요. 이 책에는 이해되지 않거나 파악되지 않거나 경험해보지 않은 것은 들어있지 않습니다. 떨려오는 추억의 여운으로 모든 걸 알아볼 수 있지요. 어떤 체험도 무의미하게 다루지 않으며,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사건이라도 운명처럼 펼쳐집니다. 그리하여 운명 자체가 커다란 직물처럼 느껴집다. 한 올 한 올이 한없이 다정한 손길로 짜여 다른 실 옆에 놓이고 마침내는 수백 올의 실과 엮이게 되는 경탄스러운 직물이지요. 당신은 비로소 이 책을 읽는 행복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진기한 꿈속에 있는 것처럼, 이 책이 주는 무수한 경이로움을 통과해 갈 것입니다. 나중에 이 책을 다시 읽어도 지금과 똑같은 경이감을 느끼리라는 점, 처음으로 이 책을 읽은 사람의 마음을 뒤흔든 그 놀라운 힘이며 옛날이야기와도 닮은 분위기가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점을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독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큰 즐거움과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고, 어떤 의미에서 사물을 보는 관점이 보다 좋아지고 단순해지며, 인생에 대한 믿음이 훨씬 깊어져 그 인생이 더욱 신성하고 위대해질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마리 그룹베의 운명과 동경을 그린 뛰어난 책과 야콥센의 시간집, 일기, 단상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록 그저 그런 번역본이긴 하지만,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음악 속에 사는 듯한 그의 시를 읽어 보십시오 (이를 위해서라도 기회가 되면 이 모든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는 아름다운 야콥센 전집을 구입하기를 권합니다. 라이프치히의 오이겐 디트리히사에서 총 3권으로 출간되었는데 번역이 훌륭한데다 가격도 겨우 권당 5, 6 마르크 정도입니다.) (이곳에 장미가 피어있다면… )-그 섬세함과 형식은 독보적이지요-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그 책의 서문을 쓴 이와 비교해보더라도 의문의 여지 없이 옳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당부 드리고 싶은 건, 가급적 미학 비평은 멀리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글들은 생기 없는 완고한 사고에 갇혀 굳어버린 의미 없고 편파적인 견해거나, 오늘은 이 의견이 이겼다가 내일은 저 의견이 이기는 교묘한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예술 작품은 한없이 고독하기에, 비평에 의존하는 것만큼 거기에 다가가기 어려운 일도 없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예술작품을 포착할 수 있고, 정당하게 다룰 수 있습니다. - 그런 논쟁의 글이나 비평, 해설을 대한 때면 당신 자신과 당신의 감정이 옳다고 생각하십시오. 당신이 틀렸더라도, 당신 안에 있는 생명의 자연스러운 성장이 세월과 함께 당신을 다른 인식으로 서서히 이끌 것입니다. 당신의 판단이 조용하고 흐트러짐 없는 발전을 이루도록 놓아두십시오. 모든 진보가 그렇듯이, 그 발전은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강요한다거나 재촉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지요. 달이 차기를 기다렸다가 분만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모든 인상과 모든 감정의 싹이 온전히 그 자체로 어둠 속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곳에서, 무의식 속에서, 이성이 도달하지 못하는 곳에서 완전히 자라나도록 내버려두십시오. 그러고 나서 깊은 겸허함과 인내심으로 새로운 명료함이 해산할 순간을 기다리십시오. 이것만이 예술가의 삶이라 불리는 것입니다. 예술작품을 이해할 때나 창작할 때나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시간성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해(年)는 어떤 가치도 없습니다. 10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무릇 예술가란 재거나 헤아리지 말아야 합니다. 여름이 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지 말고, 수액의 흐름을 억지로 재촉하지 않고 봄 폭풍 한가운데서도 의연하게 서 있는 나무처럼 성숙하십시오. 그러지않아아도 여름은 오니까요. 하지만 여름은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자들, 마치 눈앞에 영원이 펼쳐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근심 없고 고요하며 마음이 탁 트인 자들에게만 옵니다. 나는 이 진리를 고통 속에서, 그리로 그 고통에 감사하면서 날마다 배웁니다. 인내야말로 모든 것입니다! 리하르트 데멜, 그의 책은(참고로 말하자면, 그 책에 관해서는 조금밖에 모릅니다. 그 사람 자체에 관해서도요) 아름다운 한 페이지를 만났나 싶으면 금세 다음 페이지에서 그 감정이 와르르 무너지는 책이지요. 매혹적인 것들을 보잘 것 없는 것들로 뒤엎어버리면 어쩌나 겁이 날 정도입니다, 당신은 '육감적인 삶과 시'라는 표현으로 그의 특징을 정확히 잘 잡아냈습니다. 실제로 예술적 체험은 그 고통과 열망에 있어서 믿을 수 없으리만치 성적(性的) 체험과 비슷합니다. 두 현상은 동일한 동경과 황홀감이 다른 형식으로 표출된 것에 불과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정열'이라는 말 대신에 성(性) 을 넣는다면-넓고 순수한 의미에서, 곧 교회의 잘못 때문에 부정한 것으로 왜곡되기 이전 의미에서-데멜의 예술은 매우 위대하고 한없이 중요해 질 것입니다. 그의 시가 가진 힘은 위대하며, 원초적 본능처럼 강력합니다. 그 안에는 자유로운 박자가 담겨 있으며, 그의 내부에서 화산이 폭발하듯 터져 나옵니다. 그러나 이 힘이 언제나 솔직하고 가식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창작자가 처하게 되는 가장 어려운 시련 중 하나입니다. 창작자는 자기가 지닌 최고의 미덕을 스스로 의식하거나 예감해서는 안 됩니다. 그 미덕의 순수성을 해치고 싶지 않다면요!) 이 힘이 그(데멜)의 본성을 소용돌이치다가 성적인 것으로 변했을 때, 그곳에서 그 힘은 자신에게 맞는 순진무구한 사람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거기에 진정으로 성숙하고 순수한 세계는 없습니다. 충분히 인간적이지 못하고 단순히 남성적인 성의 세계가 있을 뿐이죠. 욕정과 도취와 흥분에 지나지 않는, 남성이 일그러뜨린 사람을 강제로 짊어진 낡은 선입관과 교만을 업은 세계입니다. 그가 남자로서만 사랑하고 인간으로서는 사랑하지 않는 탓에 그의 성 감각 안에는 무언가 편협하고, 거칠어 보이며, 악의적이고, 일시적이며, 영속적이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들이 그의 예술을 저속하고 모호하며 의심쩍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그의 예술은 오점이 없다고 할 수 없지요. 그의 예술은 시간과 열정으로 특징지워지며, 따라서 그 가운데 오래 살아남을 만한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예술이 그렇습니다!) 그렇다고는 하나, 그 안에 있는 위대함을 깊이 맛보고 즐겨도 무방합니다. 다만 그로 인해 타락하거나 데멜 의 세계를 추종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그것은 간통과 혼란으로 가득한 한없이 무시무시한 세계입니다. 또한 일시적인 고뇌 이상의 괴로움을 안겨주지만 동시에 더 많은 위대함으로 나아갈 기회와 영원을 추구할 용기를 가져다주는, 우리 인간의 참된 운명의 길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 세계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내 책에 대해서 말씀드리 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당신이 좋아하실 만한 책들을 다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내 책들은 일단 출간되면 더는 내 소유물이 아니고, 나는 몹시 가난합니다. 나 자신조차 내 책들을 구매할 수 없는 형편이지요. 늘 그러고 싶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내 책을 받고 좋아할 것이 틀림없는 분들께조차 드리지 못하고 있답니다. 따라서 쪽지에다 최근에 출간된 내 책들(12~13권 정도 되는 책 가운데 최근 것만 적습니다)의 제목(그리고 출판사명을 적어드릴 테니 기회가 닿는 대로 그 중 몇 권을 주문하시라고 부탁드리는 수밖에 없겠네요. 내 책을 곁에 두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당신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출처: R.M. 릴케 / 백정승 옮김 -- 동서문화사   넷째 편지 - 성에 관하여 (p.343~347) 브레멘 근교의 보르프스베데에서 1903년 7월 16일 열흘 전쯤에 파리를 떠났습니다. 몸이 너무나 안 좋고 완전히 지쳤던 터라 드넓은 북부의 평야로 왔습니다. 이 광활함과 적막함과 하늘이 다시 건강을 되찾게 해주겠지요. 그런데 정작 나를 맞아준 건 긴 장마였습니다. 오늘에야 겨우, 쉬지 않고 몰아치던 폭풍우가 누그러지고 청명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이 첫 순간을 이용하여 당신에게 안부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친애하는 카푸스 씨, 나는 당신 편지에 답장도 하지 않고 오래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답장 쓰기를 잊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지요. 당신 편지는 다른 편지들 틈에서 눈에 띄면 또 다시 읽게 되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읽다 보면 당신이 바로 가까이에서 느껴졌지요. 5월 2일 자 편지였는데, 당신도 물론 잘 기억하실 겁니다. 이렇게 도회지를 멀리 떠나 이 커다란 고요 속에서 당신 편지를 읽자면, 삶에 대한 당신의 아름다운 근심에 감동하게 됩니다. 파리에서도 이미 느낀 바 있지만, 그보다 더욱 격렬한 감동이지요. 도시에서는 사물을 뒤흔드는 사나운 소음 때문에 모든 것이 음색을 잃고 사라지고 말거든요. 그런데 이곳, 광활한 땅 위로 바닷바람이 휘몰아치는 이곳에 있으니, 당신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나름의 생명을 지닌 질문과 느낌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 도 없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이처럼 너무나 섬세하고 거의 설명이 불가능한 의미를 전달하고자 할 때는 어김없이 잘못된 언어를 사용하기 마련이니까요. 그렇다고 이 평생 그 물음을 해결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내 눈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는 사물과 비슷한 것들에 의지한다면 말이지요. 거의 눈에 띄지는 않지만, 뜻밖에도 위대함과 무한한 가치를 품고 있는 자연속의 단순하고 소박한 존재들에게 다가간다면, 이런 하잖아 보이는 작은 것들에게 사랑을 품고서 마치 주인을 대하는 하인처럼 이들로부터 신뢰를 얻고자 노력한다면, 모든 것이 당신에게 좀더 쉽고 한결같으며 친근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아마도 그런 일은 놀라서 뒤로 주춤 물러서는 이성이 아니라, 당신의 의식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각성과 앎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당신은 아직 젊습니다. 모든 시작을 앞에 두고 계시니, 되도록이면 이렇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당신 마음속에 있는 풀리지 않은 모든 문제에 인내심을 가지고, 그 물음 자체를 굳게 닫힌 방이나 대단히 진기한 언어로 쓰인 책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곧바로 해답을 구하려 들지 마십시오. 지금은 구하지 못 합니다. 아직 그 해답을 직접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겪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물음에 직접 부딪히십시오. 그러면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먼 훗날 그 해답 안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당신은 내면에 특별히 행복하고 순수한 삶의 형태를 빚어낼 가능성을 가졌는지도 모릅니다. 이를 위해 자신을 갈고닦으십시오. 당신에게 다가오는 것은 크나큰 신뢰로 맞으십시오. 그리고 그것이 당신 자신의 의지에서, 당신 내면의 요구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아무 것도 불평하지 마십시오. 성(性)이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짐 지워진 모든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진지한 것은 대부분 고통스럽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진지합니다. 이 사실을 인식하고 당신 자신에게서 당신의 기질과 본성에서, 당신의 경험이나 어린 시절이나 힘에서 인습이나 관습에 영향 받지 않은) 완전히 고유한 성 관념을 얻게 된다면, 이제 자아를 잃거나 당신이 가진 가장 큰 재산에 스스로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육체의 쾌락은 감각적인 체험으로서, 순수한 시각이나 입안을 가득 채우는 달콤한 과일의 순수한 미각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위대하고 무한한 경험이자, 세계에 대한 하나의 인식인 동시에 모든 인식의 성취요, 영광입니다. 쾌락을 맛보는 일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나쁜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그 경험을 남용하고 허비한다는 데 있으며, 또한 절정의 순간 을 위해 아껴두어야 할 그런 경험을, 인생의 따분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여흥거리로 여긴다는 데 있습니다. 인간은 먹는 일조차 다른 것으로 변질시켜 버렸습니다. 한편에서는 궁핍이, 다른 한편에서는 과잉이 이 식욕의 해맑은 속성을 흐리게 만든 것입니다. 그리하여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모든 강하고 단순한 욕구마저 탁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개인은 그 욕구들을 스스로 맑게 만들어 깨끗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지나치게 의존적인 사람이면 몰라도 고독한 사람은 가능합니다). 고독한 사람은 동식물의 모든 아름다움이 사랑과 동경의 조용하고 영속적인 모습이라는 사실을 잘 떠올리며 식물을 볼 때처럼 동물을 보기 때문입니다. 동물들이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가 기꺼이 한몸이 되고 번식하고 성장해간다는 사실, 그것도 육체의 쾌락이 나 고통에서가 아니라 필연에 따른 행동이라는 사실, 이 필연이야말로 쾌락이나 고통보다 위대하고 의지나 반항심보다 강력한 것임을 잘 알아보기 때문입니다. 아아, 이 지상에 있는 가장 하찮은 존재에 이르기까지 거기에 깃든 이 넘치는 비밀을 인간이 더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더 진지하게 품는다면, 그리하여 가볍게 생각하고 넘기는 대신 그 비밀이 얼마나 두렵고 중대한 것인가를 느끼고 견디게 된다면! 또한 인간의 생식능력이 정신과 육체 둘로 나뉜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겸허한 태도를 지닌다면! 왜냐하면 정신적인 창조도 육체적인 창조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그 본질은 같기 때문입니다. 다만 정신적인 창조는 육체적 쾌락의 더욱 은밀하고 황홀하여 영속적인 반복일 따름입니다. “창조자가 되어 무언가를 낳고 만들려는 생각은 이 세상에서 끊임없이 위대한 증거를 얻고 실제로 이뤄내지 않는 한 허황한 것이며, 사물과 동물의 세계에서 지속적인 동의를 보내주지 않는 한 아무것도 아닙니다. 창조를 즐기는 행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까닭은 바로 그것이 우리가 물려 받는 수백만 번의 잉태와 분만의 기억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자의 머릿속에는 그동안 잊고 있던 숱한 사랑의 밤이 되살아나 그 생각을 숭고함과 고귀으로 가득 채웁니다. 한편 한밤중에 하나가 되어 떨리는 쾌락 속에서 얼싸안은 연인들은 미래의 시인들이 부를, 형언할 길 없는 환희의 노래를 위해 달콤함과 깊이와 힘을 쌓아 올리는 진지한 작업을 하는 셈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이리로 미래를 불러내는 것입니다. 그들이 방황하고 사랑에 눈이 멀어 포옹하는 그 순간에도 미래는 찾아오고 새 생명은 탄생합니다. 명백히 우연의 영역인 듯한 곳에서도 법칙은 눈뜨며, 그 법칙에 따라, 저항력 있는 힘찬 정자가 그를 활짝 맞아들이는 난자를 향해 돌진하기 때문입니다. 겉모습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저 밑바닥에서는 모든 것이 법칙이 됩니다. 그리고 이런 비밀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런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것이 마치 봉인된 편지인 양 자기도 모르게 남에게 넘겨주고 맙니다. 다양한 이름과 복잡한 현상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그 모든 것 위에는 우리 모두가 그리워하는 위대한 모성이 존재할 테니까요. 처녀의 아름다움, (당신의 아름다운 표현을 빌리자면 "아직 아무것도 다하지 않은" 존재의 아름다움은 스스로 예감하고 준비하며 불안과 동경에 전율하는 모성입니다. 어머니 의 아름다움은 섬기는 모성이며, 노파의 가슴속에서 그것은 위대한 추억이 됩니다. 남성에게도 모성이 있으며, 내게는 육체와 정신 두 측면으로 여겨집니다. 남성의 생식 작용도 일종의 분만이며, 내면의 풍요로움에서 비롯된 창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성이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친근한 것이지요. 세계의 위대한 개혁은 남자와 여자가 모든 그릇된 감정과 혐오감에서 벗어나 서로를 대립하는 존재가 아닌 형제며 이웃으로 여기고, 자기에게 부과된 성이라는 무거운 짐을 소박하고 진지하며 끈기 있게 짊어지기 위해 인간으로서 함께 할 때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고독한 사람은 언젠가는 다른 이들도 생각해낼 모든 것을 벌써부터 준비하여 보다 실수 없는 손길로 만들어갑니다. 그러니 당신의 고독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그 고독이 아름다운 탄식의 소리를 자아내며 당신에게 맛보여준 고통을 짊어지십시오. 당신은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멀게 느껴진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이야말로 당신 주위가 넓어지기 시작했다는 증거입니다. 당신 가까이에 있는 것들이 그토록 멀어졌다면, 당신의 지평선은 별들 아래 어딘가에 이를 만큼 광대해져 있을 것입니다. 누구도 따를 수 없을 만큼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기뻐하십시오. 그리고 뒤처진 사람들에게 친절히 대하고 그들 앞에서 태연하고 흐트러짐 없이 행동하십시오. 의심으로 그들을 괴롭히지 말고 그들이 이해 못할 확신이나 기쁨으로 그들을 놀라게 하지 마십 시오. 그런 사람들과도 어떠한 형태로든 단순하고 친밀하게 결합하고자 노력하십시오. 당신만 차근차근 맞춰 긴다면, 굳이 그들과 똑같아질 필요가 없습니다. 비록 낯설지라도 그런 사람들의 삶을 사랑하고, 늙어가는 사람들에게는 너그럽게 대하십시오. 노인들은 당신이 믿는 고독을 두려워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벌어지는 상투적인 갈등에 논쟁거리를 제공하지 않도록 조 심하십시오. 그러한 갈등은 자식의 기력을 크게 소모시키고, 비록 자식을 이해하지는 못해도 언제든 따뜻하게 품어줄 부모의 사랑마저도 좀먹게 합니다. 부모에게 조언을 구하지 말고, 이해도 기대하지 마십시오. 다만 당신에게 남겨줄 유산처럼 쌓아둔 그들의 사랑을 믿으십오. 그 사랑 안에 아무리 멀리 가더라도 벗어나서는 안될 힘과 축복이 있음을 믿으십시오! 먼저 어떤 직업을 갖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직업은 당신을 독립시켜 모든 의미에서 완전히 홀로 서게 하니까요. 당신 안의 생명이 그 직업에 제약을 느끼는지 한번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지켜보십시오. 나는 직업이란 대단히 힘든 것이며, 인간에게 대단히 까다로운 요구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직업에는 거대한 인습이 짐 지워져 있으며, 그 문제점에 대해 개인의 견해가 받아들여질 여지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의 고독이 아주 낯선 상황 한복판에서도 당신이 의지할 곳과 고향이 되어 주겠지요. 당신은 바로 거기에서 당신의 모든 길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나의 모든 소망이 기꺼이 당신과 동행할 것이며, 나의 믿음이 당신과 함께할 것입니다. 당신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출처: R.M. 릴케 / 백정승 옮김 -- 동서문화사   다섯째 편지 (p.348~350) 로마에서 1903년 10월 29일 친애하는 카푸스 씨, 8월 29일자 편지는 피렌체에서 받았습니다. 두 달이 지난 지금에야 그 사실을 알리는군요. 나의 게으름을 용서해주기 바랍니다. 하지만 나는 여행 중에 편지 쓰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편지를 쓰는 데 있어서 내게는 꼭 필요한 도구들 밖에도 약간의 정적과 고독과 너무 낯설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6주 전쯤 로마에 도착했는데, 그때 로마는 텅 비어 한산했고 열병이 속출할 만큼 무더웠습니다. 이런 상황에다가 이곳에 자리 잡기까지 수많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겹치는 바람에, 우리를 둘러싼 불안은 도무지 그칠 것 같지 않았고 타향살이의 무게가 우리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기만 했습니다. 게다가 로마는 (아직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는) 처음 며칠 동안 마음이 무거워지리만큼 서글픈 인상을 풍겼다는 점도 덧붙여야겠습니다. 이 도시가 내뿜는 무기력하고 우중충한 박물관 같은 분위기며, 발굴되고 애써 복원된 어마어마한 과거(그 덕분에 초라한 현재가 먹고사는 셈이지만)며, 학자나 문헌연구가들이 바람을 잡으면 널리고 널린 이탈리아 여행객들이 덮어놓고 맞장구치는, 온통 깨지고 허물어진 물건들을 둘러싼 끔찍한 과대평가가 이런 인상을 부추기는 원인입니다. 하지만 결국 그런 물건들은 우리 삶이 아니며 우리 것이어서도 안 되는 다른 시대, 다른 삶01 빚은 우연한 유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날마다 방어적인 태도로 몇 주를 보낸 뒤 우리는 아직 얼마간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마침내 침착함을 되찾고 중얼거렸습니다. "그래, 여기에 다른 곳보다 많은 아름다움이 있는 건 아니야. 몇 세대에 걸쳐 끊임없이 칭송되고 수선공이 보수를 거듭해온 이 유물들은 아무 영혼도, 가치도 없는 껍데기일 뿐이 야," 하지만 이곳에는 아름다운 것도 잔뜩 있습니다. 어딜 가나 아름다운 것들 천지지요. 한없이 생기 넘치는 물줄기가 고대 수로를 따라 대도시로 흘러들어와, 수많은 광장마다 설치된 하얀 석조 분수대 위에서 춥추고 널따란 수반 안으로 넓게 번지며 떨어집니다. 물줄기는 낮에는 소곤소곤 이야기하고, 밤에는 목소리를 드높입니다. 이곳의 밤은 광활하고 별이 총총하며 감미로운 바람이 불어옵니다. 이곳에는 정원도 있고, 인상적인 가로수과 돌계단도 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고안한 이 돌계단은 미끄러지며 떨어지는 물줄기를 본뜬 것으로, 물결에서 물결이 생겨나듯이 앞으로 기울여 한 단 한 단 폭넓게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인상들을 통해 인간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수다스럽게 지껄여대는(실제로 어찌나 떠들기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 온갖 사물의 호소로부터 자기 자신을 되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사랑 받아 영원 속에 머무르며 조용히 누릴 수 있는 고독이 깃든 몇 안 되는 사물들을 발견하게 되지요. 현재 나는 시내 중심인 카피톨에서 지냅니다. 보존된 로마 예술품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기마상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요. 그렇지만 몇 주 안에 한적하고 아담한 곳으로 옮길 예정입니다. 커다란 공원 깊숙한 곳에 외딴 섬처럼 자리 잡은 집으로, 오래된 발코니가 딸린 방을 쓰게 될 겁니다. 도시의 소음과 소동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이지요. 겨우내 그곳에서 지내며 위대한 고요를 즐길 생각입니다. 그 고요함이 훌륭하고 유익한 시간을 선물해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곳으로 옮기면 차분하게 지낼 수 있을 테니, 자세한 편지는 그때 다시 쓰도록 하지요. 당신 편지에 대해서도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오늘은(진작 알리지 않은 점은 내 잘못입니다만) 당신이 편지에서 말씀하신 그 책을 당신이 무척 공들여 썼다고 했던) 내가 받아보지 못했다는 사실만 알려드려야겠군요. 보르프스베데에서 당신에게 되돌아간 것 아닐까요? (외국으로는소포를 보내지 못하게 되어 있으니.) 정말 그렇게 되었기를, 그리고 그것이 사실로 확인되기를 바랍니다. 분실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유감스럽게도 이탈리아의 우편 사정으로는 분실도 드문 일이 아니지만요. 그 책이 배달되었더라면 (당신의 소식을 대할 때면 늘 그래 왔듯이) 나는 기쁘게 받았을 것입니다. 그 사이에 쓴 시들도 (제게 보내주신다면) 언제든 성심성의껏 읽고 또 읽으며 음미하고 싶군요.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당신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출처: R.M. 릴케 / 백정승 옮김 --- 동서문화사   여섯째 편지 - 직업과 신에 관하여 (p.351~354) 로마에서 1903년 12월 23일 친애하는 카푸스 씨, 성탄절을 앞두고 축제 분위기로 한창인 이런 때, 평소보다 더 큰 외로움을 느끼고 있을 당신에게 어찌 인사말 한마디 보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고독의 위대함을 느꼈다면 그것을 기뻐하십시오. 위대하지 않은 고독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만 합니다. 고독은 단 하나뿐이며, 위대하고 쉽게 짊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흔한 관계라도 좋으니, 뜻하지 않게 맺어진 보잘것 없는 관계도 좋고 아무 가치 없는 표면적 관계라도 좋으니 될 수만 있다면 지금 이 고독과 맞바꾸고 싶다고 바라는 시기가 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가 고독이 성장하는 시간입니다. 고독의 성장은 소년의 성장처럼 고통을 동반하며, 막 시작되는 봄처럼 서글프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결국, 필요한 것은 고독, 오로지 위대한 내면의 고독뿐입니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몇 시간이고 아무하고도 만나지 않는 것--이는 누구나 해낼 수 있는 일입니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자못 중요하고 대단해 보이는 일들에--그 모습이 하도 바빠 보이는 데다, 어린 눈이 어른들의 일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탓이겠지만--얽매여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느꼈던 고독, 바로 그런 고독이 필요합니다. 그러다가 어른들의 일이란 것이 딱하기 짝이 없으며 그들의 직업이 그 자체로 굳어버려 삶과 아무런 관련을 맺지 못한다는 사실을 문득 간파하면, 왜 우리는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과는 달리 그런 모습을 서먹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일까요? 자기 세계의 밑바닥에서, 다시 말해 그 자체가 일이요 지위요 직업인 자기 만의 고독 저 멀리에서 그 모습을 방관하지 않는 것일까요? 왜 어린아이의 현명한 몰이해를 거부와 경멸로 바꾸어놓으려 합니까? 몰이해는 고독을 의미하지만, 거부와 경멸은 일종의 관여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런 수단을 써서 거기에서 멀어지려고도 하지만요. 부디 당신이 내부에 지니고 있는 세계를 생각하십시오. 그 생각을 뭐라고 부르든 그건 당신 마음입니다. 그 생각이 당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이든 미래에 대한 동경이든 상관없습니다. 그저 당신 내부에 떠오른 그 생각에 주의를 쏟으며, 그 생각을 당신 주변에서 보이는 모든 것 위에 놓으십시오. 당신의 가슴 깊은 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당신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을 만합니다. 어떻게든 당신은 그것과 관련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당신의 입장을 해명하느라고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용기를 들여서는 안 됩니다. 대체 어느 누가 당신더러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묻는단 말입 니까? 나는 당신의 직업이 힘들고 당신과 반대되는 성향들로 가득 차 있음을 압니다. 더 나아가 당신이 언제, 어떤 불평을 늘어놓을지도 짐작했었습니다. 그게 현실이 되고 나니 나는 당신을 진정시킬 수가 없군요.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조언은 직업이란 다 그렇다--는 것을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직업이란 본디 개개인에게 온갖 것을 요구하는 법이고, 늘 적대적이며, 입을 꾹 다문 채 뚱한 표정으로 무미 건조한 의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의 증오로 물들어 있는 것이 아닌지 말입니다. 당신의 현재 직업이 다른 직업보다 인습과 편견과 오해를 잔뜩 짊어지고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겉보기에 더 큰 자유를 누리는 직업이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 자체 내에 드넓은 자유로운 공간을 갖고 진정한 삶을 구성하는 위대한 것들과 연결되어 있는 그런 직업은 없습니다. 고독한 개인만이 하나의 사물처럼 심오한 법칙 아래에 놓여 있습니다. 동틀 무렵의 아침 풍경 속을 걸어갈 때, 또는 사건들로 가득한 황혼을 바라볼 때, 그리고 거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느낄 때, 모든 세속적 지위는 마치 죽은 사람에게서 떨어져 나가듯이 삶의 한복판에 서 있는 그에게서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친애하는 카푸스 씨, 당신이 장교로서 지금 겪고 있는 일들은 다른 직업을 택했다 하더라도 비슷하게 겪었을 일들입니다. 심지어 어떤 직업도 갖지 않고 사회와는 단지 가볍고 독립적인 관계만을 맺는다 하더라도 그와 같은 구속감은 여전히 당신을 따라다닐 것입니다.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불안해하거나 슬퍼할 이유는 없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또는 당신 자신과의 관계에서 어떤 유대감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사물에 다가가 보십시오. 사물은 결코 당신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직 밤이 있습니다. 나무 사이를 누비고 수많은 땅 위를 지나가는 바람이 있습니다. 사물들과 동물들은 아직 당신이 관여할 만한 일들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은 당신의 어린 시절 모습 그대로 슬프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합니다. 그 아이들을 보고 당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다면, 다시 그 고독한 어린아이들 틈에서 살아가면 됩니다. 어른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들의 존엄은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어디에나 등장했던 신을 더는 믿지 못하기 때문에,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소박함과 적막감을 떠올리기가 두렵고 고통스러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친애하는 카푸스 씨, 당신이 정말로 신을 잃어버렸는지 자문해보십시오. 오히려 신을 소유한 적이 없다는 말이 더 맞지 않을까요? 대체 언제 신을 가졌었습니까? 어린 아이가 신을 지닌다는 걸 믿습니까? 장정들조차 간신히 짊어져야 하는, 노인들은 숫제 깔아뭉개질 듯이 무거운 그 신을요? 정말로 당신은 신을 가진 사람이 돌멩이를 잃어버리듯이 그렇게 쉽게 신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또는 설사 신을 지녔던 사람이 있다 치더라도, 그가 신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신이 그를 버린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까? 당신의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도 신이 없었음을 인정한다면, 그리스도는 그 자신의 동경이 만들어낸 환상이며 마호메트는 그 자신의 오만함이 만들어낸 속임수라고 느낀다면, 우리가 신에 관해 이야기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깜짝 놀라며 신이 없음을 느낀다면--그렇다면 도대체 왜 당신은 결코 존재한 적 없는 신을 과거에 있었던 사람처럼 그리워하고, 진짜로 잃어버린 것처럼 찾아다니는 것입니까? 왜 당신은 신을 앞으로 나타날 존재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왜 영원으로부터 이제 곧 출현하게 될 존재, 미래의 존재, 우리가 이파리로 달린 나무의 마지막 열매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무엇이 신의 탄생을 미래에 일어날 일로 생각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리하여 당신의 생애를 위대한 잉태의 역사에 담긴 고통스럽고도 아름다운 하루처럼 살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까? 매 순간이 시작임을 왜 보지 않으십니까? 시작 자체가 그토록 아름다운데 그것이 신의 시작이라고는 어째서 생각하지 않나요? 신이 완전하다면, 많고 많은 것들 사이에서 신이 선별할 수 있도록 먼저 신 앞에 하찮은 존재가 없어야 하지 않을까요? 만물을 그의 안에 품으려면 신은 마지막에 오는 존재여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존재가 이미 과거에 있었다면, 대체 우리에게 어떤 존재 의의가 있겠습니까? 꿀벌이 꿀을 모으듯, 우리도 만물 가운데서 가장 달콤한 것을 모아서 신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랑에서 나온 작고 소박한 행동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일, 일에 이은 휴식, 침묵, 작고 고독한 기쁨, 함께하는 이나 따르는 이도 없이 혼자 하는 모든 일에서, 우리는 신을 만듭니다. 우리 조상이 우리를 경험해보지 못한 것처럼 우리 또한 신을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 리의 조상은 이렇게나 오랜 세월 우리 안에 존재합니다.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그들은 우리 안에 여러 가능성으로, 우리의 운명에 지워진 짐처럼, 우리 안에 흐르는 피처럼, 시간의 심연으로부터 솟아오른 얼굴처럼 존재합니다. 그 무엇이 당신에게서 언젠가는 신 안에 머물 날이 오리라는, 가장 아득하고 궁극적인 존재인 신의 일부가 되리라는 희망을 앗아갈 수 있겠습니까? 카푸스 씨, 아마도 그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 는 당신의 삶에 이런 고뇌가 필요하리라 신께서 생각하시는 거라고 믿으십시오. 그런 경건한 마음으로 성탄절을 축하하십시오. 삶의 전환기를 맞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당신 안의 모든 것들이 신을 위해 일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당신이 그토록 숨 가쁘게 신에게 열중했듯이 말입니다. 인내심을 갖고, 불쾌한 기분 일랑 떨쳐 버리십시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해야 신의 도래를 방해하지 않는 것뿐입니다. 겨울이 끝날 무렵, 대지가 봄이 찾아오는 걸 막지 않듯이 부디 기쁨과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당신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출처: R.M. 릴케 / 백정승 옮김 -- 동서문화사   일곱째 편지 - 사랑에 관하여 (p.355~361) 로마에서 1904년 5월 14일 친애하는 카푸스 씨, 지난번 편지를 받고 나서 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나를 너무 원망하지 마십시오. 처음에는 일 때문에, 그다음에는 여러 가지가 거치적거려서, 마지막에는 몸이 좋지 않아서 답장을 쓰지 못했습니다. 차분하고 기분 좋은 날을 잡아 당신에게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제야 기분이 조금 나아져서(이곳에서도 초봄 날씨가 심술궂고 변덕스러워서 고생을 좀 했지요) 이렇게 당신에게 안부도 묻고, 당신이 편지에 쓰셨던 질문들에 대해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성심껏 답해드리고자 합니다. 보시면 아시 겠지만, 당신이 보내주신 소네트를 내 필체로 옮겨 써보았습니다. 아름답고 소박하며 고요한 우아함이 느껴지는 형식미를 갖춘 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읽은 당신의 시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작품입니다. 이렇게 필사본을 동봉하는 이유는, 자기 작품을 남의 필체로 다시 읽는 것이 중요하고도 대단히 새로운 경험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남이 쓴 시라는 생각으로 읽어보십시오. 그러면 그 시가 얼마나 완벽하게 당신 고유의 것인지를 가슴 깊이 느끼게 될 테지요. 이 소네트와 당신의 편지를 반복해서 읽는 일은 즐거웠습니다. 그 두 가지 에 감사드립니다. 당신 안에 고독에서 벗어나려는 소망이 있다고 해서 혼란스러워하지는 마십시오. 차분한 생각을 통해 그것을 일종의 도구로 사용할 수만 있다면 그 소망은 당신의 고독을 드넓은 들판 위로 펼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어려움에 천착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어려움에 부딪힙니다. 자연의 모든 존재는 성장하고 나름의 방식에 따라 스스로를 방어하며, 자신의 고유성을 지키기 위해 온갖 어려움에 맞서 온몸으로 싸웁니다. 비록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어려움을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만큼은 명백한 진실입니다. 고독은 좋은 것입니다. 고독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 어렵다면, 그만큼 더 우리가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늘어나는 셈입니다. 사랑도 좋은 일입니다. 사랑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이야말로 우리에게 부과된 가장 어려운 궁극의 과제이자 마지막 시련입니다. 다른 일들은 사랑을 위한 준비 과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모든 일에 서툰 젊은이들은 아직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혼신을 다해, 그들의 고독하고 수줍으며 높은 곳을 향해 고동치는 심장에 모인 힘을 모두 쏟아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무언가 배우는 기간은 언제나 기나긴 은둔의 시간입니다. 따라서 삶 속으로 깊게 파고든 사랑은 오랫동안 고독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할수록 고독은 더욱 커지고 깊어집니다. 이때의 사랑은 결코 결합이나 헌신이란 이름으로 불릴 수 없습니다. 정화되지 않은 존재, 준비되지 않은 존재, 독립적이지 못한 존재 끼리의 결합이란 대체 무엇01겠습니까? 사랑은 상대방을 위해 자신을 성숙시키고, 스스로를 고유한 하나의 세계로 세우도록 만드는 고귀한 사건입니다. 사랑은 개인에게 부과된 위대하고도 가혹한 요구이며, 그를 머나먼 곳으로 이끄는 부름입니다. 젊은이들은 오직 이런 차원에서, 다시 말해서 스스로를 갈고닦아야 하는(밤낮으로 귀 기울이고 밍치질해야 하는 의무로서 그들에게 주어진 사랑을 이용해야 합니다. 헌신이나 희생, 결합으로서의 사랑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힘을 모으고 비축해야 할 젊은이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평생에 걸친 노력으로도 그런 사랑을 성취하기에는 부족할지도 모릅니다. 그럼 에도 젊은이들은 너무나 쉽게 사랑에 뛰어들고, 또 너무나 쉽게 잘못된 길로 빠져들고 맙니다. 성급함은 젊은이들의 본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그들은 사랑이 다가오면 거기에 자신의 모든 걸 내맡김으로써 온갖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헛되이 기력을 소모해버립니다. 그래서 그 뒤에는 어떻게 될까요? 이른바 그들이 결합이라고 부르는, 또는 그게 가능하다면, 기쁜 듯이 그들의 행복이라, 미래라 부를 그 반쯤 부서진 존재더미와 더불어 삶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상대방을 위한답시고 자기 자신을 잃고, 그다음엔 상대방을 잃고, 급기야는 미래에 찾아올 모든 인연을 잃고 맙니다. 뿐만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의 지평을 잃고 조용히 왔다가 사라지는 예감으로 가득 찬 섬세함을 공허한 당혹감과 맞바꿉니다. 그리하여 이제 환멸과 절망과 빈곤만 남은 그들은 위험한 길목마다 설치되어 있는 공공대피소처럼 우리 인생에 무수히 많이 세워져 있는 관습 가운데 하나로 도피합니다. 인간 경험의 영역에 있어서 이만큼 관습이 잘 갖춰져 있는 영역은 다시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인간들이 고안해낸 온갖 구명대며 보트며 튜브 따위가 구비되어 있습니다. 사회는 이러한 온갖 종류의 피난처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사랑을 쾌락으로 받아들이는 경향 때문에, 사회는 그것을 다른 모든 대중오락과 마찬가지로 쉽고 값싸고 안전한 오락거리로 만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거짓된 사랑을 하는(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을 포기함으로써 더 이상 외롭지 않은) 젊은이들(평균적으로 사람들은 이런 수준에 머뭅니다) 또한 일종의 죄책감을 느끼며, 자신의 개성에 따라 삶을 영위할 수 있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만들기를 바란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본성은 사랑의 문제가 그 밖의 다른 중요한 문제들과 달리, 관습과 같은 사회적인 해결책을 통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이처럼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내밀한 문제는 각 경우마다 새롭고 특수한 해결책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미 제 자신을 관계 속에 던져버린 사람, 자신과 상대방 사이에서 그 어떤 경계나 차이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 그리하여 자신의 고유성을 전부 잃어버린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자아로부터, 자신의 깊은 고독으로부터 빠져나올 탈출구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하나같이 무력하기만 할 뿐입니다. 애써 (결혼과 같은) 눈에 빤히 보이는 관습을 거부한다 해도 그보다는 덜 대중적이지만 치명적인 것은 마찬가지인 또 다른 관습적인 해결책에 빠져들고 맙니다. 결국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관습이기 때문입니다. 섣불리 이루어진 잘못된 결합의 문제를 풀기 위한 모든 시도는 관습적인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혼란에서 비롯 된 모든 상황은 그것이 아무리 비일상적인(다시 말해서 비도덕 적인) 성격을 갖는다 해도 결국 일종의 관습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헤어짐조차도 관습적입니다. 무기력하고 아무런 결실도 얻을 수 없는, 몰개성적이고 우연한 결심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사물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고통스러운 죽음과 마찬가지로 고통스러운 사랑에도 아무런 해명도 해법도 암시도 없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우리가 봉인한 채 가지고 다니다가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게 될 이 두 과제에 대해서 우리는 합의에 기초한 어떤 공통 법칙도 찾아낼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개인으로서 삶을 시험에 들게 할수록 우리 개인은 이 위대한 두 과제를 더욱 가까운 곳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어려운 일이 우리 성장 과정에 제시하는 요구들은 너무나도 버거운 것이어서, 우리 같은 초심자에게는 그것을 감당해낼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견디며 이 사랑을 무거운 짐으로서 또 수련으로서 받아들이고, 보통 사람들이 자기 존재에 가장 절실한 진지함을 피해서 숨어온 모든 값싸고 경박한 놀이에 빠져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다면 먼 훗날의 후손들은 조금이나마 진보와 개선의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결코 무가치 한 일이 아닙니다. 사실상 우리는 개인 간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편견 없이 바라보려 하는 단계에 도달한 최초의 인류입니다. 그래서 이런 시도에 참고할 만한 어떠한 본보기도 갖고 있지 못합니다. 하지만 시대 흐름에 따라 우리의 조심스러운 첫걸음에 도움을 줄 많은 것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자아를 찾는 과정에서 소녀와 부인들은 처음 잠깐 동안에는 남성의 좋은 면과 나쁜 면을 흉내 내고 남성과 똑같은 직업을 가지려 할 것입니다. 이러한 불안정한 과도기가 지나면, 여성들이 그처럼 (종종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수없이 변장하고 변해온 것이 단지 왜곡을 강요하는 남성의 영향 밑에서 그녀들의 본질을 정화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내면에 더욱 내밀하고 내실 있는 형태의 삶을 품고 있는 여성은 삶의 씨앗을 잉태하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삶의 표면 아래로 내려가 본 적이 없고, 오만하고 성급하게 자신이 사랑하고자 하는 대상을 평가절하 해버리는 천성적으로 경박한 남성보다 더 풍요롭고 더 이상적인 인간입니다. 그동안 고통과 수모를 받아 온 이러한 여성의 인간성은 신분변화와 오랜 사회적 관습의 변화와 더불어 마침내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 남성들은 그때 가서 뒤통수를 한 방 얻어맞고 깜짝 놀라게 될 것입니다. 언젠가(지금도 특히 북쪽 나라에서는 그렇게 믿을 만한 조짐 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성이라는 명칭이 단순히 남성의 반대를 의미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독립된 어떤 것을 뜻하는 날이 올 겁니다. 그때는 여성을 생각하면 보충이나 한계 같은 단어 대신 생명, 존재 같은 단어를 떠올릴 수 있게 하는 그런 소녀와 부인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성으로서의 '인간'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러한 진보는 처음엔 뒤처진 남성들의 강한 반대에 부닥칠 테지만, 결국 지금의 온갖 오류로 가득한 사랑의 경험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그것을 성과 여성이 아닌,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로 바꿔놓을 것입니다. 이 더욱 인간적인 사랑 (결합할 때든 헤어질 때든 한없이 사려 깊고 조용하게 선의로써 분명하게 행해질 사랑)은 우리가 뼈를 깎는 고통으로 준비하는 사랑, 곧 두 고독이 서로 지켜주고 서로 한계를 넘지 않으며 서로 인사함으로써 성립하는 사랑과 매우 흡사할 것입니다. 한 말씀만 더 드리 겠습니다. 당신이 언젠가 소년이었을 때 부여받은 그 위대한 사랑이 사라져버렸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위대하고 훌륭한 소망이 오늘날 삶의 기반인 의도가 그때 당신 안에서 성숙해 있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까? 나는 그런 사랑이 당신 기억 속에 강하고 힘차게 남아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 사랑이야말로 당신 최초의 깊은 고독이었고. 당신이 살면서 행했던 첫 내면의 작업이었으니까요. 친애하는 카루스 씨. 모든 일이 뜻한 대로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당신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SONETT Durch mein Lehen sinn chse Klags ohne Seufer rin nefdunkles Weh. Meiner Träume reiner Blürenschnee ist die Weihe meiner stillsten Tage. Öfter aber kreuzt die große Frage meinen Pfad. Ich werde klein und geh kalt vorüber wie an einem See, dessen Flut ich nicht zu messen wage. Und dann sinkt ein Leid auf mich, so trübe wie das Grau glanzarmer Sommernächte, die ein Stern durchflimmert--dann und wann-- Meine Hände tasten dann nach Liebe weil ich gerne Laute beten möchte, die mein heißer Mund nicht finden kann ....... Franz Kappus 소네트 내 인생 사이를 탄식도 없이 한숨도 없이 떨며 지나가는 어둡고도 어두운 고통. 내 꿈들의 청정무구한 눈보라는 내 조용하기 짝이 없는 날들의 봉헌식 그러나 더 자주 커다란 물음이 내 길을 막아서 네, 나는 움츠러들어 깊이를 알 수 없는 깊은 호숫가를 지나갈 때처럼 추위에 떨고 있다네 그때 어떤 슬픔이 마치 별빛이--이따금--가물거리며 새어나오는 어슴푸레한 여름밤들의 잿빛과도 같이 흐릿하게 내 위로 가라앉는다네 그러면 내 손은 사랑을 더듬어 찾네. 내 뜨거운 입이 찾아내지 못하는 소리를 기도처럼 읊조리고 싶어서…… 프란츠 카푸스   여덟째 편지 - 슬픔과 고독에 관하여 스웨덴, 프레디 보레비 고르에서 1904년 8월 12일 친애하는 카푸스 씨, 내 얘기가 당신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잠시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 당신은 그동안 많은 큰 슬픔을 겪어 왔습니다. 그리고 당신 곁을 지나가는 그런 슬픔 들이 힘겹고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고 당신은 말합니다. 그렇지만 그 큰 슬픔들이 오히려 당신 한가운데를 꿰뚫고 지나간 것은 아닌지 잘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 슬퍼하는 동안 당신 안에서 많은 것이 변하지 않았나요? 당신 존재의 어느 부분에서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나요? 슬픔이 위험하고 나쁜 경우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으로 슬픔을 억누르려 할 때뿐입니다. 그런 슬픔은 겉으로만 그럴싸하게 대충 치료받은 질병처럼 잠시 물러났다가 이내 더 무섭게 터져 나옵 니다. 그러고는 인간 내부에 모여서, 삶을 부여받지 못한 채 모욕당하고 타락한 생물이 됩니다. 인간은 그것 때문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지식의 한계와 예감의 외벽을 넘어 조금 더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다면, 우리는 기쁨보다도 슬픔을 더 큰 신뢰감으로 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가 새로운 미지의 무언가가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우리의 감정은 수줍어 쭈뼛거리며 입을 다물고, 우리 내부의 모든 것이 뒷걸 음질쳐 적막이 생겨납니다. 그러면 아무도 모르는 그 새로운 것이 그 적막 한가운데에 머물러 서서 침묵합니다. 우리가 느끼는 거의 모든 슬픔은 긴장의 순간이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우리는 이 순간을 마비라고 느낍니다. 이 순간 우리의 감정은 뒤로 물러선 채 더 이상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내면으로 들어온 낯선 손님과 홀로 대면해야 합니다. 친근하고 익숙한 모든 것이 한순간에 떨어져나갑니다. 우리는 예전과는 더 이상 같은 곳에 머물 수 없는 변화의 한복판에 놓이게 됩니다. 그 슬픔 또한 지나갑니다. 그 새로운 것은 심장 속으로 들어가 가장 안쪽의 심실을 관통하여 사라집니다. 벌써 피 속으로 들어간 것이지요. 그리하여 우리는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쉽게 속일 수 있을 정도지요.  하지만 우리는 변했습니다. 손님이 들어오면 집안 분위기가 바뀌듯이, 누가 왔었는지는 말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영원히 그 손님의 정체를 알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미래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현실이 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우리 안으로 틀어와 그 모습을 바꾼다는 것을 보여주는 여러 신호가 존재합니다. 따라서 슬플 때 고독하고 빈틈없이 지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미래가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은 언뜻 아무런 사건도 움직임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치 외부에서 비롯된 사건인 양 느껴지는 그 순간이야말로 현실에서 일어나는 저 시끄럽고 우연한 순간들보다 훨씬 더 삶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다 참을성 있고 고요해질수록 우리 존재는 슬픔을 향해 더욱더 활짝 열릴 것입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것이 우리 안으 로 깊숙하게, 왜곡 없이 들어올수록 그것은 보다 확실하게 우리의 것이 되고 또한 우리의 운명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것이 일어날 때(말하자면, 그것이 우리로부터 나와 다른 이들에게로 전해질 때), 우리는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자신의 존재를 친밀하게 느낄 것입니다. 이는 꼭 필요한 일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서서히 발전해가는 방향이며, 따라서 우리의 운명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것은 어떤 낯선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우리 안에 있어 왔던 어떤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여러 과정들에 대한 개념을 수정해야만 했습니다. 또한 우리가 운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 내면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외부에서 주어지는 어떤 것이 아님을 서서히 깨달아가겠지요.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서 나온 그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하는 까닭은 그들의 내면에 운명이 남아 있을 때 이를 흡수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막상 운명과 부닥쳤을 때 그 낯설음에 혼란스러워 하며 그것이 지금 막 자기에게로 온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그들로서는 스스로의 내면에서 그와 비슷한 것조차 발견한 적이 없노라 맹세할 수도 있을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오랫동안 태양의 운동에 대해서 잘못 알아왔듯이, 그들 또한 운명의 운동을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카푸스씨, 미래는 굳건히 서 있습니다 . 하지만 우리는 무한한 공간 속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 어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다시 고독에 관해서 말씀드리자면, 인간이 택하거나 버릴 수 있는 것은 사실 하찮은 것임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독합니다. 고독을 얼버무리고 자못 그렇지 않은 듯이 행동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뿐입니다. 그러는 대신, 우리가 고독한 존재임을 명확히 꿰뚫어 보고 차라리 거기에서부터 출발하는 편이 훨씬 현명합니다. 물론 그러다가 현기증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여느 때 우리의 눈이 머물며 쉬던 것들, 우리 가까이에 있던 낯익은 사물들이 사라지고 멀리 있던 것들은 더더욱 멀어 보이기 때문이지요. 자기 방에 있다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느닷없이 산꼭대기로 끌려간 사람이 느끼는 감정과 비슷할 것입니다. 극도의 불안감,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내맡겨졌다는 두려움에 숨이 막혀 오겠지요. 마치 추락하고 있거나 공중에 내동댕이쳐진 듯한, 또는 온몸이 산산조각 난 듯한 기분일 것입니다. 이러한 감각의 상태에 적응하고, 또 이를 납득시키기 위해서 그의 뇌는 엄청난 거짓말을 꾸며 내야 하겠지요.  이처럼 고독한 사람에게는 모든 거리감과 모든 척도가 변하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의 상당수는 갑자기 일어나고, 그 산꼭대기에 놓인 남자처럼 견딜 수 있는 한도를 훨씬 벗어난 듯 보이는 괴상한 공상과 기이한 감각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까지도 경험해야 합니다. 그것이 영향을 미치는 한 그 안에서 우리 존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모든 것이, 전혀 생소한 것까지도 그 범위 안에서는 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유일한 용기입니다. 우리가 마주칠지도 모르는 가장 이상한 것, 기이한 것, 불가사의 한 것을 용기 있게 직면하십시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인류는 이제껏 겁쟁이에 지나지 않았으며, 이는 우리의 삶에 말할 수 없이 큰 해악을 끼쳐왔습니다. 사람들이 기이한 현상이라 부르는 경험들, 이른바 '영혼의 세계, 죽음 등, 우리의 삶과 너무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이 모든 것들이 사람들의 자기방어로 인해 우리의 일상에서 완전히 배제되었으며, 그에 따라 이런 것들을 느끼던 인간의 감각능력마저 퇴화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니 신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불가사의 한 것을 두려워하는 태도는 개개인의 존재를 빈약하게 만듭니다. 더구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커다란 제약이 생겨납니다 . 이는 마치 무한한 가능성의 강바닥에서 아무것도 없는 불모의 강기슭으로 끌어올려진 것과 같습니다. 인간관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단조롭고 구태의연하게 똑같이 반복되는 것이 비단 게으름 때문만은 아닙니다. 새롭고 예측할 수 없는 체험을 덮어놓고 마다하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아무리 수수께끼 같은 것일지라도 거부하지 않을 사람만이 다른 이들과 생동감 넘치는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자기 존재의 맨 밑바닥까지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한 개인의 존재를 방에 비유하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 방의 창가 구석자리나 늘 오가는 동선에 해당하는 작은 공간만을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일종의 안정감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에 등장하는 죄수들이 그들이 갇힌 무시무시한 감옥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 말할 수 없는 공포감의 정체를 조금이라도 알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하며 손으로 벽을 더듬는 그 위험 가득한 불안정함이 훨씬 인간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수가 아닙니다. 우리 주위에는 함정도 덫도 없습니다. 우리를 겁주거나 괴롭힐만한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요소로서의 삶 속에 놓였습니다. 게다가 수천 년에 걸친 적응을 통해 이 삶과 아주 닮은 존재가 되었기에 뛰어난 보호색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과 거의 구별되지 않을 정도이지요.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불신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세계는 우리에게 적대적이지 않기때문입니다. 그곳에 공포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공포요, 심연이 있다면 우리의 심연입니다. 또한 그곳에 위험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늘 어려운 것에 천착하라는 원칙에 따라 살아간다면, 아무리 낯설던 것도 더없이 친숙하고 믿음직스러워 보일 것입니다. 모든 민족의 시초에서 발견되는 오랜 신화, 마지막 순간에 공주로 변하는 용의 신화를 어찌 잊겠습니까. 우리 삶의 모든 용들은 우리가 아름다움과 용기를 조금만 더 보여주기를 기다리는 공주일는지 모릅니다. 모든 공포는 그 가장 깊은 본질에서 보자면, 우리에게 도움을 바라는 무력한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친애하는 카푸스 씨,  여태껏 본 적 없는 커다란 슬픔이 당신 앞길을 가로막더라도 놀라지 마십시오. 불안감이 빛처럼, 구름이 드리운 그림자처럼 당신 손 위를, 그리고 당신의 모든 행동 위를 지나가더라도 놀라지 마십시오.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내면에서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으며, 삶은 결코 당신을 잊지 않았고, 당신은 삶의 손바닥 위에 놓여 있다고 삶은 당신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입니다. 왜 당신은 불안함과 슬픔과 우울함이 당신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것들을 당신 삶에서 쫓아내려 하십니까? 왜 그 모든 것이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지를 물으며 스스로를 괴롭히려 합니까? 당신은 지금 과도기에 있으며, 이런 때에 당신이 바랄 수 있는 건 오직 스스로 변화하는 것뿐임을 잘 알지 않습니까. 당신 삶의 어떤 부분이 병들어 있다 해도, 병이란 유기체가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취하는 하나의 수단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그런 때는 유기체가 병에 걸리도록 도와주고, 완전히 병을 앓고 나면 이번에는 병에서 빠져나오도록 도와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병은 유기체의 성장 수단인 것입니다.  카푸스 씨, 당신 안에서는 지금 대단히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투병 중인 환자처럼 끈기 있고, 회복기 환자처럼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현재 당신 상태는 양쪽 모두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당신은 자기 몸 상태를 감시해야 하는 의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병이든 의사마저도 때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날들이 있는 법입니다. 당신이 자기 몸을 돌보는 의사로서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렇게 기다리는 일입니다. 자신을 너무 꼼꼼히 관찰하지 마십시오. 당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너무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마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지금 당신이 마주치는 모든 일에 얽힌 당신의 과거를 비난의 눈으로 (다시 말해, 도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소년 시절에 저지른 잘못과 소망과 동경 가운데 지금 당신 내면에 작용하고 있는 것은 당신이 기억해내거나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고독하고 무력한 유년시절이라는 특수한 상황은 대단히 어렵고 복잡 미묘하며, 많은 영향을 받는 동시에 모든 실제 생활관계와 동떨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악덕 하나가 그 안으로 침투했다고 해서 그것을 덮어놓고 '악'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대체로 명칭은 조심해서 다루어야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것도 어떤 범죄의 이름이지 이름 붙일 수 없는 개인의 행동 그 자체가 아닙니다. 어쩌면 그런 행동은 인생의 필연성에서 비롯한 것으로, 그 인생이 어려움 없이 받아들인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당신이 힘의 소모를 그토록 크게 느끼는 것은 승리를 지나치게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느끼는 것도 당연하기는 하지만, 승리는 당신이 이루어냈다고 생각하는 위업이 아닙니다. 당신이 기만 대신 그 자리에 놓을 수 있었던 어떤 것, 이른바 참되고 알찬 어떤 것이 이미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이 바로 위업이지요. 그것이 없었더라면 당신의 승리는 그저 의미 없는 도의적인 반응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승리는 당신의 인생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친애하는 카푸스 씨, 내가 언제나 잘되기를 기도하는 당신 인생에 말입니다. 당신이 어린아이에서 어른'이 되기를 얼마나 열망했었는지 기억하시 겠습니까? 나는 이제 그 인생이 더 위대한 사람이 되기를 동경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러기에 삶은 계속 험난할 것입니다. 또한 그러기에 삶은 성장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을 위로하려 애쓰는 이 사람이 당신에게 가끔 위안이 되는 소박하고 조용한 말이나 하면서 쉽게 인생을 산다고는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인생 또한 어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으며, 당신보다 훨씬 뒤처져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당신에게 이런 글을 쓸 수도 없었겠지요. 당신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아홉째 편지 - 감정에 관하여 스웨덴, 욘세레드 푸루보리에서 1904년 11월 4일 친애하는 카푸스 씨, 그동안 편지 한통 쓰지 못하고 보냈습니다. 한편으로는 여행을 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이 바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편지를 쓰는 일이 힘겹게 느껴집니다. 벌써 여러 통을 써야 했거든요. 손이 몹시 피곤합니다. 누군가에게 받아쓰게 할 수 있다면 많은 이야기를 할 텐데 그럴 수는 없으니, 당신의 긴 편지에 얼마 되지 않는 말로나마 답장하는 것을 부디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친애하는 카푸스 씨, 나는 오로지 당신이 잘되기를 기도하며 당신을 생각하곤 하는데, 실은 이것이 당신에게 가장 의미 있고 힘이 되는 일일 것입니다. 내 편지가 과연 도움 될지는 종종 의심스럽습니다. 그렇다고 도움이 된다고 말하지는 마세요. 그저 내 편지를 딤덤하게 받아주세요. 그리고 지나지치게 고마워 하지 마십시오. 그냥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다려 봅시다. 이제 당신이 한 말들에 대해 하나하나 언급하는 것은 별로 소용이 없을 것 을같습니다. 당신이 어떤 회의를 품고 있는지, 외부와 내부를 조화시킬 수 없다고 말씀하셨던 것 그밖에 당신을 괴롭히는 모든 일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제껏 했던 말과 똑같을 테니까요. 괴로움을 묵묵히 참고 견딜 충분한 인내심을 갖기를, 어려움 속에서도 나날이 더 큰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음을 믿으며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는 당신의 고독을 신뢰할 수 있는 내면의 단순성을 발견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런 건 제쳐두더라도, 인생을 그냥 내버려두십시오. 부디 내 말을 믿으세요, 인생은 어떤 상황에서든 옳습니다. 이제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해보겠습니다. 당신의 존재 전체를 온전히 이해하고 고양하는 모든 감정은 순수합니다. 반대로 당신 존재의 일부만을 이해하고 당신을 일그러뜨리는 모든 감정은 불순합니다. 당신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생각하는 모든 것은 좋습니다. 당신을 예전 가장 좋았던 순간의 당신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모든 것은 옳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존재 전체에 퍼지는 것이라면, 그리고 도취나 혼탁함이 아니라 그 바닥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많은 기쁨과 같은 것이라면, 당신을 고양하는 모든 것은 다 옳습니다. 제 말을 이해하시 겠습니까? 당신의 의심도 잘만 다스리면 좋은 자질이 될 수 있습니다. 의심은 지식과 비판적 정신의 힘을 아울러 갖추어야 합니다 .의심하는 마음이 당신 안의 무언가를 파괴하려 들 때마다 왜 그래야 하는지 물어보십시오. 의심에게 증거를 요구하고, 그것을 시험해 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의심하는 마음이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을, 심지어는 발끈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 굴하지 말고, 논쟁을 끝까지 끌고 가십시오. 그런 식으로 번번이 신중하고 철저한 태도로 일관한다면 언젠가 의심이 파괴자로부터 당신의 가장 훌륭한 일꾼이-아마도 당신 인생을 만들어가는 모든 것 가운데 가장 현명한 일꾼이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친애하는 카푸스 씨, 오늘 당신에게 드릴 수 있는 말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이번에 프라하에서 발행된 독일 연구라는 잡지에 실린 저의 짧은 시의 별쇄본을 동봉합니다. 이 시는 삶과 죽음에 대해서, 삶과 죽음이 얼마나 위대하고 강력한 것인지에 대해서 좀더 깊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열번째 편지 파리에서 1908년 성탄절 다음 날에 친애하는 카푸스 씨, 당신에게 멋진 편지를 받고서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이렇게 손에 잡힐 듯 실감 나는 당신의 근황을 전해 듣고서, 참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정말 좋은 소식인 듯 합니다. 사실 이 편지는 성탄절 전날 밤에 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겨울 유난히 많고 끊이질 않는 일에 파묻혀 지내다 보니 이 전통 축제가 어느새 코앞에 와 있더군요. 꼭 필요한 일들을 처리할 시간조차 거의 없었을 정도입니다. 편지 쓰기는 말할 것도 없고요. 하지만 이 성탄절 축제의 며칠 동안 나는 자주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거센 남풍이 산들을 송두리째 집어삼킬 듯이 휘몰아치는 광활한 산속의 외로운 요새에서 당신이 얼마나 조용히 지내고 있을지를 상상했습니다. 그런 소리와 움직임을 품은 고요함은 참으로 거대할 것입니다. 게다가 그 고요에 먼 바다가 선사시대의 그토록 조화롭고 깊은 음색을 더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이제 내가 당신에게 바랄 수 있는 건, 다만 그 거대한 고독이 굳은 믿음과 인내로 당신에게 작용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라는 것뿐입니다. 그 고독은 영원히 당신의 삶과 함께 할 것입니다. 그것은 앞으로 당신이 겪고 행할 모든 일에 숨어서 영향을 끼치며 당신의 삶에서 중요하고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안에 영원히 살아 있는 조상의 피가 우리의 피와 뒤섞여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고유한 요소가 된 것처럼,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삶의 중대한 변화를 맞을 때마다 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당신이 그런 고립된 환경에서 얼마 되지 않는 동료들과 함께 그토록 구체적이고 확고한 존재로 직책과 제복과 직무를 갖게 된 것이 기쁩니다. 그런 환경에서라면 이 모든 것들은 진지함과 필연성을 띠게 되며, 자칫 놀이나 시간 때우기가 되기 십상인 군복무는 주의 깊고 독립적인 의식을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것을 훈련하는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우리의 내면에 작용하고, 때때로 위대한 자연과 대면하도록 이끄는 이런 환경조건이야말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전부입니다. 예술은 단지 삶의 한 가지 형태일 뿐입니다. 그리고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그 생활이 알게 모르게 예술을 위해 스스로를 준비시키는 기간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예술과 가까운 척하는 저널리즘과 대부분의 비평들, 그리고 스스로 문학이라 불리고자 하는 온갖 가짜들과 같이 현실생활과 동떨어진 어정쩡한 직업보다는 현실생활에 밀착된 직업이 오히려 예술과 더 가까운 법입니다, 한마디 로 말해서, 나는 당신이 그런 겉만 번지르르한 직업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그처럼 혐한 현실 속에서 고독하고 용기 있게 살아가기를 선택한 것이 기쁩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그와 같은 생활을 유지하여 더욱더 강건해지시기를 기원합니다.  당신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1150    2015년 신춘문예 시에 대한 소감/심상운 댓글:  조회:689  추천:0  2022-07-27
2015년 신춘문예 시에 대한 소감   신인들의 젊은 의식과 상상이 펼치는 새로운 구조와 미적 감각의 언어                                                                        심 상 운 (시인, 문학평론가)   1. 1925년 에서 처음 실시한 신춘문예新春文藝 제도는 한국현대문학사에서 신인등용新人登龍의 권위 있는 제도로 자리를 잡고 2015년까지 90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신춘문예가 신인 배출의 중요한 제도로 자리를 잡게 된 이유 중 가장 중요하게 인정되는 것은 심사의 공정성公正性이다. 신문사에서 문단의 권위 있는 문인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하고, 공모된 작품을 예심과 본심의 절차를 거쳐 심사하는 이 제도는 오랜 세월 동안 공정한 심사로 운영되어 수많은 문인들을 문단에 내보낸 전통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당선된 작품은 일반 문학잡지들의 신인작품보다 질적인 면에서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공정성은 2000년 이후 문학잡지의 범람과 등단 신인들 작품의 질적 저하低下가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한국문단의 상황에서 신춘문예 제도의 전통으로 매우 소중하게 인식되고 있다. 공정성에 못지않게 중요시 되는 것이 시대를 앞서가는 신인들의 젊은 의식과 상상想像이 산출하는 새로운 의미와 미적 감각의 세계를 수용하는 심사위원들의 안목眼目이다. 신춘문예의 이런 특성은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은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자기의 세계를 확고히 구축하여 한국현대문학을 빛낸 작가와 시인들의 면면이 증명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문인이 소설가 김동리(1935년 동아일보)와 시인 서정주(1936년 동아일보)이다. 그러나 이 신인 발굴의 신춘문예 제도가 심사위원들의 편향偏向된 경향으로 인해 과거처럼 시대의 흐름에 앞장서지 못하고, 미래지향未來指向의 새로운 의미와 미학에 역행한다는 문제점을 거론하고 있는 일부 문인들의 부정적 시각도 무시할 수 없다. 이는 신춘문예 제도의 존속과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서도 깊이 숙고하고 긍정적으로 검토하여 개선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된다. 이런 관점에서 25개 신문(중앙일간지 9개 , 지방일간지 14개 특수일간지 2개)의 2015년 신춘문예 시 작품과 심사위원의 심사기를 대상으로 2015년 신춘시(신춘문예당선시)의 경향에 대하여 나름대로 진단診斷하고 정리를 해보고자 한다.   2. 중앙 9개 일간지의 심사평에서 주목되는 것은 대체적으로 시의 난해성難解性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는 것이다. 그것은 시의 완성도完成度도 중요하지만 신인들의 시가 개척하고자하는 새로운 시의 공간과 미개지未開地의 언어가 만들어내는 암시暗示의 매력도 소중하게 평가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시의 서정성과 대등한 위치에서 난해성을 인정하고 젊은 시인들의 상상력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심사위원들의 경향은 한국현대시의 미래를 위해서 매우 바람직하였다고 판단된다. 이는 삶에 대한 실존적實存的 인식이나 어두운 사회 현상에 대한 도전이나 메시지를 통한 출구의 제시보다는 어두운 사회현상에서 받은 정신적 상처를 상상의 언어로 암시하고 상징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의미보다는 자유로운 상상 쪽으로 시를 유인誘引하는 언어감각의 시편들이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의 시편들은 언어의 유희성遊戱性을 발판으로 언어의 연상聯想이 펼쳐내는 신선하고 새로운 감각과 의미를 담은 이미지의 창출創出이라는 데 가치를 지닌다. 이런 관점에서 “시에서 발견과 발명은 구분된다. 발견이 낯익은 대상에서 낯선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이라면, 발명은 대상과 무관하게 낯선 의미를 빚어내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발견은 소통 가능성(서정시), 발명은 소통 불가능성(비서정시)과 직결되고, 다시 발견은 언어의 투명성(우리), 발명은 언어의 불투명성(나)과 연관된다. 우리 현대시는 발견과 발명 사이에 서식한다.”는 황지우, 이문재, 남진우의 한국일보 심사평과 “시라는 이름의 관행적 작문방식에 갇혀 오히려 생과 세계의 피 흐르는 실상으로부터 시 자체가 유리되는 자가당착을 돌파하는 패기의 글쓰기, 한국어의 갱신과 재구성이 그로부터 시발될 글쓰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것은 무조건 정당한가. 바로 이 오래된 물음을 또한 고통스럽게 치르는 가운데 일종의 시적 윤리성을 확보한 글쓰기이기를 바란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진정한 희망의 새로움이지 ‘새것 흉내’가 아니기 때문이다.”라는 문정희, 김사인의 세계일보 심사평은 한국현대시의 방향을 제시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는 평문評文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런 진보적進步的 경향은 현대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경험적 현실에서 유리遊離된 추상적 개념의 수준에서 영위되는 사고형식인 ‘과학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서 그 반대의 ‘야생野生의 사고’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사고이동思考移動의 현상’으로 이해된다. 20세기 프랑스의 사회인류학자이며 구조주의 철학자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가 말한 야생의 사고는 경험을 중심으로 한 감성적 표현으로 세계를 조직화하는 ‘구체성의 과학’이다. 따라서 과학적 사고가 추상적抽象的인 논리적 틀 속에서 ‘길들여진’ 사고라고 한다면, 야생의 사고는 ‘길들여지지 않은’ 사고다. 그래서 야생의 사고는 미리 정해진 목표가 없으며, 구체적인 재료를 사용해 매번 새로운 의미나 관계를 만들며 어떤 질서를 창조해내는 예술적인 사고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브리콜라주(Bricolage)라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예술기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신춘시의 일부가 야생의 사고에 연관 지어지는 것은 심사위원들이 “낯익은 대상에서 낯선 의미를 찾아내는” 발견의 시로 독자와의 소통을 중요시하면서도 “대상과 무관하게 낯선 의미를 빚어내는 시” 발명의 시를 새로운 시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의 시 쓰기는 21세기 한국현대시의 현장에서 이미지의 집합적 구성, 동적 이미지, 무한 상상의 다선구조多線構造 등을 시론의 기본골격으로 해서 창작되고 있는 ‘하이퍼 시(hyper poetry)'와 연결된다.   3. 더 구체적인 논의를 위해서 당선된 작품을 대상으로 살펴보면, 의 당선작 조창규의「쌈」에는 ‘쌈’ ⟶ ‘동굴 속의 어둠’⟶ ‘스치면 베이는 얇은 종잇장’ ⟶‘어둠의 봉지에 싸인 이 밤’⟶‘구멍난 방충망’⟶‘달의 뒷장’,⟶‘긴 혀’⟶‘보쌈’으로 이어지면서 쌈장 속에 사물과 자연 현상을 포괄하는 다양한 상상의 다선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도 구속되지 않는 시적 화자의 유머가 일상적인 관념을 깨뜨리고 있다. 의 당선작 최은묵의 「키워드」는 우물을 상상의 키워드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죽은 우물을 건져냈다//우물을 뒤집어 살을 바르는 동안 부식되지 않은 갈까마귀떼가 땅으로 내려왔다” 는 1,2연만 읽어보아도 이 시의 우물은 실제의 우물과는 전혀 다른 감성과 상상의 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을 단순한 비유譬喩라고 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재료를 사용해 매번 새로운 의미나 관계를 만들며 어떤 질서를 창조해내는 브리콜라주(Bricolage)의 예술적인 사고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래서 “ ‘죽은 우물’을 중심으로 우리 시대의 음화(陰畵)를 그려내고 있다. 이미지가 지나치게 모호해서 소통이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고도의 암시성은 시에 있어서 결함보다는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나희덕, 정호승의 심사평이 긍정적으로 이해된다. 당선작 김복희의「백지의 척후병」도 소통불가능의 언어가 시적 상상의 공간을 확대하고 있다. “연속사방무늬 물이 부서져 날리고/구름은 재난을 다시 배운다/가스검침원이 밸브에 비누거품을 묻힌다/바닥을 밟는 게 너무 싫습니다/구름이 토한 것 같습니다”라는 이 시의 첫 연에서 ‘가스검침원이 밸브에 비누거품을 묻힌다’는 구체적 행위가 시의 키워드가 되어 ‘구름’⟶‘흰색 슬리퍼’⟶‘뱀’⟶‘전쟁’⟶‘방설림’⟶‘겨울을 측량’⟶‘폭발음’⟶‘인질’ 등의 언어로 연결되는 데, 이 시에도 의미의 생산보다 상상의 확대에 따른 새로운 시적 공간의 형성을 감지하게 된다. 당선작 김관용의「선수들」도 언어의 연상으로 펼쳐내는 이미지의 전개가 의미의 구속에 갇혀 있는 시와 구별된다. ‘전성기’⟶‘인저리타임’⟶‘옆집’⟶‘옛 애인’⟶‘폭설’⟶‘만약이라는 말’⟶‘수비수 두 명’⟶‘성적증명서’⟶‘아름다운 지진’⟶‘지구의 맨 끝’ ⟶‘땅을 잃은 문장들’⟶‘원을 그리며 날던 새들’⟶‘원점⟶전광판⟶유니폼 등 부분 부분 단절된 서사敍事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상상의 다양성이 한 편의 시를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선수들」은 언어와 언어가 충돌하며 파열하는 섬광 같은 것을 뿜어내면서 자기 시를 ’전력을 다해 서 있는‘ 삶의 트랙으로 밀어붙인다. 그리하여 이 시는 시적인 것으로부터의 일탈을 통해 ‘다른 시’를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한 치의 오차도 허락지 않는 이 주밀한 자본의 세계에서 시가 필요한 것은 바로 이 균열과 의외성이다. 트랙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결말을 짐작할 수 없는 것으로의 이 과감한 투신의 성과를 당선작으로 미는 데 우리는 주저하지 않았다.“는 이시영 황인숙의 심사평에 공감하게 된다. 이는 현대시가 독자들에게 의미의 영역에서 벗어나 초현실적인 상상의 즐거움을 주는 언어의 유희라는 것을 인식하게 한다.   4. 2015년에도 대부분의 신춘시들은 의미를 배반하지 않는 시의 영역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서정성의 원리에서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몇몇 심사평들을 제외한 심사평들이 그런 보수적인 시들을 선호하고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굴을 성형한 아이돌처럼 잘 빚어진 시들이 선택되고 있다. 그러나 생기生氣를 잃은 관념으로 치장된 시편들은 의식이 있는 독자들에게 ‘생동하는 반역叛逆의 시’를 더욱 갈구하게 한다. 그래서 2015년의 신춘시를 조감鳥瞰하는 이 글은 의미 불통의 시, 다양한 상상의 이미지에 관점을 두고 긍정적肯定的으로 현재의 신춘시를 진단하면서 미래의 한국현대시를 나름대로 전망展望하는데 초점을 맞춰보았다.   월간 2015년 1월호 발표
1149    도와주다 (외 5수) – 강려 댓글:  조회:479  추천:0  2022-07-26
도와주다 (외 5수) – 강려 혼자 까까머리 된 불치병 걸린 이슬어깨 팔 얹으며   민들레가 박박 깎은 머리 쳐들고 해해해   발 헛딛어 찰방 물에 빠진 솔바람 해누나 내민 해살 잡고 솔솔 냇가에 기여나온다 해님과 실비   도르르 해살 풀어 너비 재는 해님   강아지풀 움츠린 어깨 쪽 폅니다   실비(雨) 살랑 두르며 바람이 둘레 잽니다   가만히 허리 동그랗게 공기 쬐끔 빼는 이슬풍선   그늘 작은 새들  더위 먹지않는건 하늘이 흰구름 펼쳐들고 서있는 까닭이다 해살 내리는 날 나비의 볼 타지 않은 리유는 초롱꽃이 동그랗게 잎을 펼쳐주기때문이다 첫눈   첫걸음마 내딛고 어깨 으쓱 들먹이며 우쭐우쭐   뽀드득 찍히는 첫발자국 보며 동그래지는 눈빛 호기심 읽는데   친구 하고파 가랑잎 팔에 손 얹는 첫인사 수줍다   겨울비   뱅그르 미끄럼 타다가 넘어진 락엽 일으켜 세우곤 무릎에 묻은 먼지 톡-톡  털어준다   길 잃고 우는 겨울 집에 데려다 주고 잘 있어. 손 흔들며 돌아선다   눈사람   해살 내민 손 마주 잡으면   하얀 손등 사르르 녹을가봐   눈빛 반짝이며 눈 인사만 하네   코등이 빨갛게 익은건   홍당무로 빚은 까닭임을   눈동자 뙤록거리던 멍멍이만 눈치채네   2022년 6월 연변인민출판사 아동문학작품집 ”꽃구름”에 실림
1148    여름 (외 3수) –강려 댓글:  조회:461  추천:0  2022-07-26
여름 (외 3수) –강려   하늘하늘 련잎이 발 간지럽히면 청개구리 웃음이 폴짝  뛰여내립니다 가지(枝头)가 하느작 하느작 흔들지마 ! 잠을 잘수없는  매미소리 매앰맴  날아나옵니다 가을비   갈갈갈... 너 여기 있었구나   톡 치는 오리 어깨에 웃음방울 떨어집니다   면봉 (棉棒) 꺼내 촉촉 적셔주는 단풍잎   터진 입술이 빨갛게 익어 갑니다     확대경     동글동글 낮달속 ㄱ ㄴ ㄷ ㄹ 포동포동 살진다.     하얀 덧이 드러내고 뻥긋 웃는 감탄표   강아지풀   꼬리에 해살연필 감아쥐고 사락사락 ...   아뿔싸 빨간 심 (芯)이 톡 부러집니다   잘못 그린 그림 박박박 ...   입에 문 이슬지우개 몽당 닳아집니다     2021년 7월 연변인민출판사 아동문학작품집 ”안개속의 아기나무”실림
1147    하이퍼시 (조명제) 댓글:  조회:616  추천:0  2022-07-11
■하이퍼 시   해 있을 동안 조 명 제   처서(處暑), 백로(白露) 지나자 해가 자꾸 자꾸 한 쪽 지름길로 간다. 대낮인데도 오동잎 같은 해 그늘이 길바닥에 내려앉는다. 짧아지는 해가 우수(憂愁)라는 단어처럼 슬픈 빛깔로 길 위의 모래에 깔린다. 해가 짧아져서 우수가 된다는 걸 까치가 깔긴 똥 보고 낄낄거리던 시절에는 알지 못했다. 매화꽃빛이 눈썹 끝에 와 매달리는데 어쩌구 문자 보낸 이후, 오래 소식 없는 송영희 시인에게 문득 다시 문자를 날려 본다. 어느새 가을빛이 발끝에 차이는 때 영월 깊은 산골 운학리의 농사는 잘 영글고 있으리. 밀꽃도 한창이리. 보내기 전 다시 읽어 보니, ‘메’자를 빠뜨려 먹어 ‘메밀꽃’이 ‘밀꽃’이 되어 버렸네. 밀꽃? 밀꽃! 밀꽃, 밀꽃 이 이쁜 말을 나는 왜 여직 시에 써 먹지 못했을까. 지상에 내리는 한 줌 햇빛이 금싸라기인기여! 산이 고가구빛으로 깊어지면 해 뜨기 무섭게 진다 한들 뉘 이상히 여기리. 농사에는 농사꾼이 박사예요. 이웃밭 할아버지가 메밀씨를 나눠 주며 심으랬지요. 서울 들락거리느라 한 열흘 늦게 씨 뿌렸지요. 할아버지는 마땅찮아 하셨지만, 뭐 열흘쯤 늦은들 어떠리 하였지요. 일요일, 열한시나 돼서야 부, 시, 시 일어난 아내가 거실로 나온다. 티브이의 티브이 보고 있던 남편과 아이들이 입 맞춘 듯 세 입 한 목소리로 말한다. “밥 줘!” 얼굴 넓적한 아내가 반사적으로 대꾸한다. “내 얼굴이 밥으로 보여!” 9월이 오고, 효석(孝石)표 소금을 뿌린 듯 할아버지네 메밀꽃이 환히 피었더랬지요. 보름밤 달빛 아래 누운 맨몸의 메밀밭은 황홀 그 자체였답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되어도 제발 해 길이만은 여름 같아라 한들 무슨 소용이리, 무슨 끝여름 홍천 비발디 파크의 오션월드! 봉이 김선달이 따로 없네. 이집트식 이미지의 온갖 물놀이 기구 만들어 놓고 떼돈 벌고 있네. 옷 같잖은 끈수영복 입은 아가씨들 겨울을 어찌 할꼬. 땡볕 아래 뱀줄로 서서 서너 시간씩 기다려, 뒤틀리는 곡절(曲折)마다 아아아악아아아— 삼사십초 타는 몬스터 블라스터 Monster Blaster! 파도 수영장엔 파라오가 근엄하게 물 좋은 인어떼를 내려다보고 있다. 인어들을 패대기치는 파도는 아무 때나 치지 않는다. 기다려야 한다. 잠시가 긴 시간처럼 느껴진다. 지나간 세월은 아무리 지루했어도 잠시가 되는데. 영화 클레오파트라의 그 위엄 있는 고둥 나팔소리가 부드럽게 심금을 울리자 (아직 파도는 칠 생각을 않고 있는데) 아르르르르— 인어들이 먼저 목소리 기절을 한다. 우리 메밀밭의 꽃도 할아버지를 뒤따라 드디어 까르르르르— 한창으로 피어났더랬지요. 아, 이뻐! 근데 말이지요 선생님, 이게 웬 일? 우리 메밀꽃이 한창일 때, 밤은 다 찌그러든 눈썹달 하나를 띄워 놓는 게 아니겠어요! 조각달과 그믐 사이, 메밀밭 꼴이 어땠겠어요. 여자 속옷 6.25 동란 이래 최대 똥값 처분! 미호천변 옷가게 주인 백, 농사에는 농사꾼이 박사라니깐요! 바다 이야기 터지기 전에 죽어 버린 놈 누구야 엉 누구냐 말이다. 죽여 버린 놈이! 밀꽃 피던 봄에 밀밭 속으로 떠나간 긴머리(한 번 묶은)는 어느 하늘빛이 되었을까. 지중해의 푸른 문을 열고 솟아나오는 금발의 헬레나들이여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할 시간이 많지 않다.       풀밭에서의 저녁 식사     조 명 제   내 살아 있음의 기쁨이여! 이것이 끝물 사랑의 발설법이던가. 해질녘 캔맥주와 줄김밥 사 들고 루비콘보다 아름다운 강변으로 간다. 먼저 온 데이트족들이 자신들의 반짝이는 사랑 넓이만큼씩 풀밭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이름에 알맞은 사랑만큼의 터를 꾸미고 풀잎 위에 앉는다. 날은 아직 훤한데, 저만치 제일 높은 빌딩 허리춤에서 반달이 희미한 얼굴로 삐져나온다. 빡! 캔을 따고 촉촉한 눈웃음 섞어 틱! 부딪치고, 부풀어 오른 사랑의 거품을 쭈욱 들이킨다. 식사와 안주, 하찮은 김밥이 이리 요긴할 줄이야! 저녁의 미풍을 타고 여기저기 어스름이 가등(街燈)을 켠다. 가을을 검색하자 선선한 바람이 분다. 갑자기 고기가 당긴다. 겨울잠에 들어야 할 때가 되었음을 내 몸의 센서가 먼저 알고 일러 주는 것이리. 문화일보 1면 사진 기사가 가을을 전한다. 물두꺼비는 짝짓기 꼴로 동면에 들어 7개월을 지낸다고. 물두꺼비는 좋겠다. 너희들은 지겹지도 않니? 한 사람과 한 평생 산다는 거 지겹지도 않아? 한 5년이나 10년마다 결혼을 갱신해야 하잖겠니? 옥시토신의 유효 기한이 길어야 3년이라잖아! 풀잎 끝마다 멀리 도회의 오색 불빛이 이슬처럼 맺힌다. 맞댄 두 이마 아래의 키 작은 풀잎들이 거짓말처럼 고개를 꺾어 까-딱- 인사을 한다. 저들도 심상찮은 사랑의 공기를 느끼는가. “이 봐! 풀들도 우리 사랑에 경의를 표하는 걸!” “불륜인데두요?” 라고 그네는 말하지 않았다. “불륜의 사랑은 위대한 거야.” “하기사, 세계문학사의 모든 위대한 소설의 사랑은 다 불륜이라고 설파해 왔죠. 당신이 젤루 좋아하는 「닥터 지바고」도 그렇지만요.” 황운(黃雲)을 지나 버스에서 내려서 걷는 광덕사 가는 길은 참으로 호젓했다. 절 문을 지키는 늙은 시조(始祖) 호두나무는 벌써 잎을 다 떨어뜨리고 회갈색의 빛나는 가지로 한 줌이 아까운 햇빛을 받아내고 있었다. 습작시마다 핀잔을 들은 시인 지망생 이쁜 코 미시 제자가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절친한 미쓰 학우 앞에 대고 나 들으라는 듯, “시를 쓰려면 눈물의 뼈도 볼 수 있어야 한대 글쎄!” 한다. 아직 더러 잎 달린 젊은 호두나무숲을 지나 골짜기로 가는 오솔길 향긋한 가을 잡목들이 팔 뻗듯 가지들을 내밀어 시샘하듯 우리의 허리께를 치며 인사를 한다. “이 봐! 나뭇가지들이 우리의 사랑을 반기는 거!” 눈이 작아서 예쁜 여자가 대답한다. “거 참, 신기하네요!” 바빌론강 기슭 거기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우리는 울었도다. 그 언덕 버드나무 가지 위에 우리의 수금(竪琴)을 걸어 놓고서* 밤 강물이 소리 없이 흐른다. 큰 눈의 그네는 풀밭에서의 저녁 식사를 기억하고 있을까. 내 살아 있음의 슬픔이 기쁨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성경』의 「시편」137에서 인용.         목 화 꽃   조 명 제   야크가 만들어 놓은 히말라야의 설산고봉을 철새들이 넘는다. 기류를 타고 힘겹게 힘겹게 넘는 두루미떼 수만년 지층을 날아온 날개의 힘과 고공 기류의 긴장이 깨지면서 더러는 8000 미터의 벼랑 아래로 추,락,한,다. 목숨을 건 비행(飛行), 철새들은 내장에 센서 내비게이션을 달고 머나먼 행로를 따라 비행한다. 설악의 울산바위를 옮겨다 놓은 것 같은 그리스의 마테오르 그 벼랑 꼭대기의 수도원을 곡예하듯 도르레 밧줄을 타고 오르는 검은 망토의 수도사들, 그들은 뼈를 갈아 끼우려고 그 아득한 높이의 가파른 벼랑을 오르는 것일까. 청량산(淸凉山)
1146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끝) 댓글:  조회:774  추천:0  2022-07-11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끝)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11)   5. 상징주의 시인들   1. 보들레르와 교감     샤를르 보들레르(1821~1867)는 어릴 때 아버지를 잃고 재혼한 어머니와 독재적인 양아버지 사이에서 힘든 유년기를 보낸다. 문필가라는 직업을 단념시키기 위해 가족은 19세의 그를 강제로 상선에 태워, 그는 모리스Maurice 섬과 레위니옹Reunion 섬을 유랑하게 된다. 파리로 돌아와 그는 댄디즘의 이상을 추구, 호화판 탐미생활에 빠져들고, 물려받은 재산을 탕진하며 비참한 보헤미안 생활을 한다. 이때 흑백 혼혈의 무명 여배우 잔느 뒤발Jeanne Duval과의 악연을 맺었으며 이는 그가 관능적인 시를 쓰는 계기가 된다.   그는 1841년서부터 1857년에 발간될 의 시편들을 쓰기 시작한다. 1848년 혁명으로 신문에서 정치적 논쟁을 벌이기도 하지만 다시 그는 문학 비평과 예술비평을 쓰기 시작하고, 1860년에는 이라는 산문시를 발행한다.    그러나 그의 은 발간되자마자 소송에 걸리고 6편의 시는 종교와 풍속을 해친다는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으며 삭제명령과 벌금형이 선고되었다. 그는 반신마비와 실어증 상태에서 46세에 사망한다.     은 시인의 탄생에서 죽음까지를 다룬다. 거대한 건축물처럼 일관된 의도로 구성된 이 시집은 원죄의식에 의한 고뇌, 순수미의 추구와 하강과 타락의 취미, 죽음에 대한 의식 등의 심리가 순수하고 애로틱한 사랑과 복잡하게 섞여있다.   내밀한 정신성으로 일관된 은 근대시의 최대 걸작으로 꼽히며 현대를 열어주었다. 초판은 서시 외에 100편의 시를 수록하고 77편, 12편, 3편, 5편, 3편의 5부로 되어있다.   제목 자체가 악과 꽃을 결합시키며 모순어법을 택하고 있는 이 시집은 지옥과 천국 사이에서, 삶과 죽음 사이에서, 이상과 심연 사이에서, 쾌락과 추락의 유혹, 그리고 퇴폐와 증오와 고뇌 사이에서 보들레르의 내면이 겪는 모순의 아픔들을 그리고 있다. 삶이라는 커다란 악 속에서 자아는 모순되게도 삶의 황홀과 '지고의 아름다움'을 찾아 줄타기한다.   간단히 말해 이 시집 전체는 삶의 의지와 죽음의 의지, 그리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분열된 자아의 이원성의 드라마이다. 보들레르는 이렇게 서구시에서 거의 최초로 심연, 즉 심층적 자아 속으로의 탐사를 시화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은 "보들레르의 삶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에도 불구하고 탄생한 것이다"라고(Maynial, 1973:317). 그러나 처절한 분열과 갈등과 모순에 찬 그의 삶과 그의 시는 사실 서로 분리될 수 없었다.    보들레르는 에드가 포우의 훌륭한 번역가로서, 그에게서 언어를 구조화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낭만과, 고답파의 전통에서 벗어나게 되며, 그의 시는 베를렌, 랭보, 말라르메 등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그의 무의식의 심충은 언제나 자신의 섬세한 분석의 대상이 되었으며, 언어의 현실에 대한 그의 비판적 태도와 추종 불가한 감각과 통찰력과 상상력과 미의식은 추상성과 관능성과 음악성을 통하여 혁명적으로 시의 지평을 열었다.       자연은 사원, 거기 살아있는 기둥들은     가끔씩 혼동된 말들을 쏟아낸다.     사람은 거기 상징의 숲을 가로질러 가고     숲은 그를 친숙한 눈길로 물끄러미 보네.     밤처럼 빛처럼 광막하게,     칠흑 속에 깊게 하나 되어,     향기와 색깔과 소리는 어울려 퍼지네.       어린아이 살갗처럼 풋풋하고,     오보에처럼 부드럽고 초원처럼 푸른 향기가 있고,     - 또 썩고 짙고 강렬한 향기도 있어,       용연항, 사향, 안식향, 훈향처럼,     무한한 사물들로 퍼져나가,     저신과 감각의 환희를 노래하네.                                  ()     상징주의 문학이론을 대표할 만한 것으로 '교감(交感 correspondance)'이라는 개념이 있다. 조응 또는 만물조응(萬物照應)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사실 만물 간의 조응에서 출발한다기보다는, 사물인식을 하는 주체인 인간이 여러 감각 간의 내밀한 경계를 허묾으로써 시작한다. 위의 시에서 "향기와 색깔과 소리는 어울려 퍼진다"는 것은 서로 다른 감각들이 하나가 되고 하나가 된 그 무엇이 확산된다는 말이다.    감각들 사이의 의도적인 혼동은 이어서 언어의 관습 허물기, 마침내 인식 대상이나 사물들 사이의 벽 허물기로 이어진다. 이 3단계는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다.   이제 셋째 연에서 향기는 촉감과 소리와 색깔을 지니게 되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공감각 작용을 통한 통합이 일어난 것이다. 이러한 통합은 틀에 박힌 사물인식법과 감각을 바꿈으로서 가능하다. 기존의 이미지나 인식이나 감각의 형식은 이 시에는 이미 허물어져있다.   이러한 교감에는 어떤 가정이 존재한다. 그것은 보이는 현실은 내면에 존재하는 생각이나 감정이나 이상에 비하여 '거짓된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상징시는 이 가상을 허물고, 외면을 이루었던 원소들을 재조합하며 또 다른 차원이나 공간을 제시하고자 한다. 위의 시에 나타난 외적인 지지대, 즉 숲, 사원, 기둥 등은 이미 현실의 기능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구조물이다. 사물들은 이미 눈에 보이는 사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표면 뒤에 자리하는 이상적 형태들의 상징들로서, 거대한 '상징의 숲'을 이루어낸다.   위의 시에 나탄난 감각을 다루는 보들레르의 새로운 방식은 사물에 대한 다른 상상체계를 열어주었다. 사물 인식에 있어서 '감정의 자연스런 유로'라는 낭만주의의 생각을 기본적으로 따르는 것 같으면서도, 그는 사실은 감각들을 분석하고 통합하고 변형하는 작업을 밀고 나간 것이다. 시각, 청각, 후각의 뒤섞임 등, 감각들의 통합과 융해와 감각 차원의 다양화는 대상들의 세계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세계와도 동시에 감응하여 이뤄진다. 그리하여 시인은 '우주적 유추관계'를 파악하기에 이른다. 시인은 관객들의 수수께끼를 읽어내는 '해독자'가 딘다.   향기, 색채, 음향 등 여러 가지 감각 내용들이 등가관계를 이루도록 '수평적 교감'(Marchal, 1993:176)이, 즉 공감각이 이뤄질 때, 시인에게는 다른 공간이 열린다. 세계의 광대한 열림이란 다른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개안(開眼)이 되는 것이다. 열린 감각의 새 차원에서 얻은 통찰력으로 시인은 예언가처럼 사상(事象)의 뒷면을 읽어내고 우주를 해석해낸다.   삶은 이제 더욱 가까이 그 본질을 드러낸다. '혼동한 말들'은 울림과 깊이로 다가오며 그것을 이해하는 자는 '상징의 숲'을 자연스러이 가로질러 지나간다. 이 새롭게 형성된 공간은 존재감이 극대화 될 수 있는 공간이다. '친숙한 눈길'이라는 말은 이해할 수 있는 감각 능력에 도달했다는 말이다. 상징의 새로운 공간에 '사람'이 익숙해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처럼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감각 훈련을 통해 얻은 통찰력과 이해력이다. 시선의 힘에 의해 공간은 확장되고 축소된다. 무한한 확산도 가능하다. 현상적 외견 너머 기호와 상징으로 변한 초자연적 세계 - 감각을 지녔다는 것은 이미 그 통로를 알고 있다는 뜻이다. 소통의 열쇠는 은유와 '아날로지(유추類推)' 속에 있다.   이제 사람은 우주와 "칠흑 속에 깊게 하나 되어" 있다. '칠흑 속에 하나'라는 것은 무의식의 심층까지도 통하는 통일이다. 시인은 하나의 작은 징조로 우주를 알아보게 된다. 이파리 하나로  우주만상을 알고 자연의 비밀스러운 흔적들을 이해할 수 있다.       삶을 내려다보며, 힘들이지 않고     말 없는 꽃들과 사물들의 언어를 이해하는 자여.                                                            ()     여러 감각들 간의 교감이라는 보들레르 시학의 독창적 양상이 두드러지는 시 에서, 시인은 색채와 후각을 음악과 언어와 결합시키는 정교한 모험을 시도한다.       이제 다가오네 줄기 위에 떨며     꽃송이마다 향로처럼 향기 내뿜는 시간이     소리와 향기들은 저녁 공기 속을 떠도나니     우울한 왈츠여 나른한 현기중이여!       꽃송이마다 향로처럼 향기 내뿜고     바이올린은 상심한 가슴인양 전율하네     우울한 왈츠여 나른한 현기증이여!     하늘은 커다란 제단 같아 슬프고 아름답네.       바이올린은 상심한 가슴인양 전율하네     넓고 검은 허무를 증오하는 다정한 마음이여!     하늘은 커다란 제단 같이 슬프고 아름답네.     해는 얼어붙는 제 피 속에 빠져죽었으니 ...       넓고 검은 허무를 증오하는 다정한 마음은     빛나던 과거의 잔해를 모두 거둬들이네!     해는 얼어붙은 제 피 속에 빠져 죽었으니...     내 속에 그대 추억 성체합처럼 빛나네!                                            ()   시인에게 오랜 동안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던 정신적 연인 사바티 부인에게서 영감을 받아 쓴 이 시에서, 그는 내면 차원보다 현실 차원에서 만물조응이라는 기법을 적용하고 있다.   여기서 '조화(調和)'란 '소리와 향기들이 섞여 떠돌면서 연상시키는 색체와 움직임과 형대들('제단', '성체합')의 마술이, 사랑에 대한 회한을 주문처럼 불러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소리와 향기들이  떠돈다'는 것은 소리와 향기가 형태들과 색채로 연결되면서 빚어내는 환기술같은 것으로, 이 환기술은 사랑에 대한 회한과 연결된다.    '팡툼(pantoume)'은 보루네오 지방이나 말라카 반도의 토착적 양식으로 낭만주의자들이 이국적 색채와 지방색을 표현하기 위해 차용해서 쓰던 4행의 시구로 이뤄진 시형을 말한다. 시에서 각 연의 2, 4행은 다음연의 1, 3 행에서 반복되고, 다시 마지막 행은 시의 첫 행을 반복하며 시를 종결시키는 형식이다. 그러나 이 시는 팡툼을 엄격하게 따르지 않아 첫 행이 마지막 행에 나타나지 않으며, 그 변형이라 하겠다.   겉으로 보면 이 시는 소박한 정경 묘사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석양, 꽃향기, 바이올린 소리 등의 몇 개 이미지가 있을 뿐이다. 사실 '빛나던 과거의 잔해'와 마지막의 "내 속에 그대 추억 성체합(聖體盒)처럼 빛나네!" 라는 말이 없었더라면 이 시는 시의 의미와 힘을 다 만들어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의 리듬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독자는 시인의 내적 춤에 동참하게 된다. 이 시에서 반복적 기법은 여타의 움직임에는 무관한듯 시인이 자신의 태도를 견지하고 자족적인 움직임을 되풀이하게 하여, 생각의 원무(圓舞)를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현기증이 의식을 독점한다. 계속되는 반복으로 의식은 비틀거리지만 쉬지 못한다. 소용돌이치며 도는 양식 때문에 주의력은 이리저리 교차하는 여러 움직임들에 이끌리고 어지러워져서 어디에 정착할지 헤맨다.   시의 마지막 행은, 계속 확장되며 피할 수 없는 어지러운 윤무를 벗어날 수 있도록, 전체의 중심을 잡아준다. '그대 추억'이라는 말로써 위의 모든 말들을 확인하고 정리하여 중심을 만든 후에, 같은 생각과 말들을 시 전체로 되풀이하며 확산시키는 효과다. 시적 자아는 잠시 스스로의 생각을 확인함으로써 쓰러지지 않고 원무를 다시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시행들과 음악적 배치는 시의 본질적 테마를 시행 전체로 학산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잃어버린 과거의 행복에 대한 인상을 후각, 청각, 시각을 복합하여 호소함은 자아는 이 세상에 잡혀있다는 상황을 스스로에게나 독자에게 다시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절망의 현기증 나는 되풀이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사로잡힌 자의 날개'라는 생각은 시인 속에 항상 자의식으로 자리하고 있다.       자주 뱃사람들은 장난으로     거대한 바다새 알바트로스를 잡는다.     여행의 무심한 동행으로, 쓰디쓴 심연 위로     미끄러져가는 배를 따라가는 이 새를.                      (---)        '시인'도 이 구름의 왕자와 같아      폭풍우를 넘나들고 사수를 비웃는다.      야유로 찬 땅 위에 그리하여 유배되나니,      거인의 두 날개는 걷지도 못하게 된다.                                  ()     현실에서 이상세계는 실현될 수 없고 시인은 '쓰디쓴 심연 위'를 줄타기한다. 조롱과 경멸 속에 세상과 유리되는 현실적이고 관념적인 분열을 해결하기 위하여, 그는 '인공낙원'을 통하여 위안 받고자 한다,   그의 시는 에서 볼 수 있듯이 감각의 심층을 내보여주기도 하고, 에서처럼 정신의 불분명한 영역을 열어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에서는 현실의 불운을 시로 그린다. 시인은 또 현실과 자신에 대한 절망과 그 속에서의 희망을 피력하기도 한다.       내 청춘은 칠흑의 폭풍우,     여기 저기 빛나는 햇살 스쳐갔으나     천둥과 바람이 어찌나 휩쓸었느니     뜨락에는 몇 개 주홍빛 열매밖에 남지 않았네. (---)                                                        ()     그러나 그에게는 개인적 상징주의보다 초월적 상징주의가 더 큰 부분을 차지한다. 많은 그의 시들은 초월적 국면을 강조하고 현실을 넘어서 이상세계를 통찰하려 시도한다. 사실 에서 그는 과거의 사랑에 대한 추억 뿐 아니라 잃어버린 천국을 비통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대한 향수는 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있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집착은 찬란한 꿈이 되어 빛을 발하기도 한다. 그곳의 고요함과 화려함, 그곳의 맑은 하늘과 질서는 자주 그의 시에서 언급된다. 이상세계는 마치 살아있는 나라인 듯 그려진다.   시인은 이렇게 현실 너머 공간을 들여다보고 그것에 대해 전달하는 존재가 된다. 시인은 '모어'를, 즉 "말 없는 꽃들과 사물들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으나, 이 지상에 추방당한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의 언어는 이 지상과 어울리지 않는 거추장스럽고 필요 없는 알바트로스의 날개처럼, 현실에서 무용하며 무상의 것이다. 그의 시집의 많은 부분은 이처럼 이상세계를 본 자의 희망과 절망을 교차하여 보여준다. 현실은 우울한 지옥과 푸른빛을 동시에 심연처럼 숨기고 있다.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12)   2. 베를렌, 회한의 선물   상징주의는 언어의 내용보다 '언어가 낳는 효과'를 중시하는 문학경향으로, 말을 의미 있게 연결시키기보다는 말이 빚어낼 수 있는 뉘앙스를 드러내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폴 베를렌(1844~1896)은 이라는 시에서 언어의 결, 즉 뉘앙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말의 사용에 음악의 특징을 도입하려 한다. 음악의 섬세한 환기술과 유연성을 시에 도입하여 시어의 해방을  노림으로써, 그는 상징주의 언어를 풍요롭고 새롭게 한다. 관념 속에 머무는 언어가 아니라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삶을 지닌 언어로 빚어내는 것이다.       무엇보다 음악을,     그러기 위해서는 '홀수각'을 택하라.     더욱 모호하게 노래 속에 잘 녹아들며     짓누르거나 멈짓거리지 않는 홀수각을.       또 그대는 오해를 할 수 없도록     말을 선택하려하지 말 것.     '미묘함'이 '선명함'에 뒤섞이는     회색 노래보다 더 귀한 것 없으니                (----)       왜냐면 우리는 '뉘앙스'를 아직도 원하기 때문이다.     '색깔'이 아니라 오직 '뉘앙스'를!     오! 뉘앙스만이 오직 결합시킨다네.     꿈과 꿈을 , 플롯과 뿔피리를! (---)     음악의 리듬과 환기력과 조화의 힘은 언어와 결합하여 사물과 영혼의 서정적이고 섬세한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낸다. '영혼의 상태'를 조성하고 표현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홀수각의 언어와 '회색 노래'는 모호한 미결정의 영역을 열어준다. 그리하여 시는 정형의 풍경이 아니라 풍경의 확산이 된다. 시인은 묘사와 인식의 기존틀을 지움으로써, 풍경을 극복하는 힘을 지니고자 하는 것이다.   베를렌과 더불어 상징주의자들은 시구의 해방을 위한 여러 실험들을 하게 된다. 홀수각의 시에 이어 시구의 다양한 '걸치기(enjambement)', 자유시, 구두점 없애기, 페이지 개념 바꾸기, 산문시 등, 그 시도는 다양한다. 그러나 베를렌은 '자유화시'에 대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운문의 틀을 깬 것은 아니어서, 전통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의 시는 대개의 상징주의 작품처럼 난해하지 않았고 일반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는 것이었다. 그는 '이상'을 그려내는 능력에 있어 뛰어나지 않았다. 그만큼 그는 현재의 삶에 밀착되어 있었다. 밀착이라기보다 자신의 감정에 매몰되어 근본적으로 감정적인 시를 썼다 하겠다. 베를렌의 삶은 랭보와의 일화를 포함하여 저주와 비참함으로 점철되어있디.   베를렌의 알콜중독은 독주 압생트를 즐기면서 시작되었다. 그른 마틸드와의 만남을 계기로 의 시편을 쓰며 안정을 찾는 듯하였다. 그러나 1870년, 17세의 마틸드와 결혼하였지만, 당시 17세였던 랭보가 여덟 편의 시를 베를렌에게 보내왔고 베를렌은 곧 그의 시에 매료되었다. 그는 랭보를 파리로 부르고, 둘의 관계는 모두의 의심을 받게 된다. 그들은 벨기에와 런던에 일시 정착하기도 하였으나, 다른 까닭으로 시를 찾던 두 사람은 방랑 끝에 충돌하기에 이른다. 랭보는 베를렌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베를렌은 랭보를 총으로 쏘고 체포된다. 그들의 만남은 18개월 만에 불화와 상처로 끝나고 베를렌은 벨기에의 몽스 감옥에 있게 된다.      라는 시가 씌어진 시기는 시인의 아내와 랭보 사이에서 이혼문제와 화해의 시도 등으로 흔들리고 있던 기간이었다. 이 시는 처음에는 '무언가'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으나, 라는 동명의 시집 속에서는 '잊혀진 아리에타'라는 제목으로 9편으로 된 연작시 중 첫 번째 시로 실려 있으며, 무제이다.                                                  들판에 부는 바람이                                                숨을 멎는다.                                                           - 파바르Favart                  그것은 나른한 도취,                그것은 사랑의 피로,                그것은 미풍의 애무에 일어나는                숲의 온 전율,                그것은 회색 가지들 쪽으로 퍼져가는,                작은 목소리들의 합창.                  오 가녀리고 무후한 살랑거림 소리!                그것은 속삭이며 소곤거린다.                그것은 물결치는 풀밭이                내뿜는 작은 외침소리 같아---                마치 굽은 물길 아래,                조약돌이 소리죽여 구르는 소리 같아.                  탄식소리 숨긴 채                바람에 젖는 이 영혼,                그건 바로 우리의 넋이지 않니?                나의 넋, 그래, 너의 넋이지 않니?                거기서 이 온화한 저녁 아주 나지막이                초라한 송가가 새어나오지 않니?     랭보의 의도적 착란과 광기, 환각에 사로잡힌 방랑과 일탈과는 달리, 베를렌은 내부의 멜로디를 향해 간다. 랭보의 공격적 주제 선택과는 달리, 그는 석양, 안개, 달, 비, 추억, 노래, 회한 등 소박한 것을 즐겨 소재로 택한다. 이 시는 대부분의 베를렌의 시처럼 여성적인 섬세함이 두드러지며, 시인이 말하는 " '미결정(미묘함)'이 '결정(선명함)'과 뒤섞이는 회색 노래"의 전형적 작품이다.    시간과 공간이 불투명한 풍경으로 펼쳐지지만 그것은 별개의 시공간이 아니라 자아가 행복해하거나 아파하는, 자아의 서정이 투영된 극히 주관적인 풍경이다. 결코 풍경은 자아를 벗어나지 못하고 항상 '영혼의 상태'를 대신 그려낸다. 미세한 소리들은 모두 숨죽여 영혼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 들판이라는 공간 풍경 속에는 바람조차 숨죽이고, 넋은 귀 기울여 존재에 대한 해답을, 즉 자신에게 남아있는 길에 대하여 묻고 있는 것이다.    풍경에서 아무 것도 사실은 완전히 죽은 것도 완전히 살아있는 것도 아니다. 소리와 움직임은 하나가 되어, 완전한 침묵이 아니라 가녀리고 초라하게 떨고 있다. 소리에 대한 묘사가 특징인 이 시는 거의 침묵을 강요당한 영혼에 대해 소리 죽여 외치고 있는 것이다. 소리나 노래의 가능성에 대해 극도로 조심스럽게 물어보고 있다.   베를렌 시의 특징은 이렇게 회색 풍경 속에도 있고 회색의 노래 속에도 있다. 그의 시는 전체적으로 음악에 대해 생각하게 할뿐 아니라, 각각의 시어 또한 소리와 음악에 연결되어있다. 시인의 영혼의 상처는 그대로 소리의 풍경으로 전이된다. 이렇게 그의 시의 기본 요소는 소리라 하겠다. 마치 랭보에게 색깔이, 보들레르에게 향기 그러하듯이.   그가 '색깔이 아니라 오직 뉘앙스를'이라고 외쳤을 때의 뉘앙스란 색깔보다 소리의 뉘앙스이다. 랭보의 색깔과 그의 소리 사이에서 두 시인의 기질의 차이를 읽을 수 있겠다. 랭보와의 관계가 비극으로 끝난 뒤 베를렌은 과거를 지우기 위해 의 시편들을 쓴다.       하늘은, 지붕 위로,     너무 푸르고, 너무 고요해!     나무는, 지붕 위로,     종려잎을 흔드네.          (---)       아니, 이런, 삶이란 저런 것,     단순하고 평온한 것을.     평화로운 웅성거림     도시에서 들려오네.       - 오 거기 있는 너, 넌 무얼 하였지,     한 없이 울어대며     말해 봐, 거기 있는 너, 넌 무얼 하였지,     너의 젊음을 가지고?            ( 1, 3, 4연)     뭉스에서 출감한 시인은 신앙을 엿보기도 하지만, 결국 여전히 폐인상태로 비참한 삶을 마감한다. 많은 사람들은 위의 시에서 종교적 신앙의 자취를 찾아내지만, 우리는 종교적 회한보다 오히려 가슴 치는 통한과 마주하게 된다.   시의 전반 3연들을 모두 마지막 4연에 대비시킴으로써 회한은 거의 오열이 된다. 1연의 나뭇가지의 고요한 흔들림, 여기에는 생략된 2연의 종소리, 3연의 웅성거림 소리는 모두 4연의 울음소리와 대비된다. 시인의 모든 신경은 이 시에서도 소리에 집중되어있다. 1, 2, 3연의 억제된 리듬은 마지막 연의 파격으로, 강렬한 아픔으로 돌변한다.   그러나 이러한 파격에도 랭보의 것과 비교하면 대단하지 않다. 그에게는 랭보식의 대담함이나 공격성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나약하다 할 정도로 그의 시는 결 고운 비단 같다. 랭보가 자신의 일로 인하여 스스로 불타고 연소하는 형이라면, "베를렌의 것은 더 밀도 있고 관대하며 역광의 아름다움 같은 휘귀하고 미묘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랭세, 1984:158)   그는 랭보처럼 강한 자아를 갖지 않았다. 그러나 시어 하나 하나에서 '영혼의 상태'가 실려 있지 않은 것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시어들이 결합되어 빚어내는 풍경은 언제나 마음의 풍경이어서, 좀체 자연과 인간은 분리되지 못한다. 랭보처럼 풍경을 이끌거나, 보를레르처럼  풍경 속을 드나듦이 아니라, 풍경을 아파하는 것이다.       힘 잃은 여명은     들판으로 쏟아붓는다     지는 해의 우울을.     우울은     달콤한 노래로     내마음 흔들어     석양에 나를 잃다,     모래톱 위로 저물어가는     태양비처럼     이상한 꿈들,     진홍빛 유령들이     펼쳐진다, 쉬임 없이 (---)                       ()     그의 공간이란 두 시인들처럼 거리두기가 가능한 공간이 아니고, 장식 있는 배경도 아니며, 자신을 고요히 쏟아붓는 공간인 것이다. 소리, 색, 미세한 떨림이나 움직임, 빛의 변화 --- 이 모두가 오직 하나만을 향하고 있다. 풍경 속에 자아는 반복되어 투사된다. 시각에 따라 변하는 태양빛에 따라 자아도 변한다. 페이르는 이런 베를렌을 '인상주의 시인'이라 하였으며(Peyre, 1976:60), 마르셀 레몽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베를렌은 그 자체가 송두리째 하나의 자연이다. 매우 섬세하고 복합적인 자연, 여라가지 영향들을 이용할 줄 알지만 즉각적으로 주어진 자연, 근원적이며 삶 그 자체에서 직접 자양을 섭취하는 독창성의 자연이다. (Raymond, 1983:31)     따라서 베를렌의 시는 상징주의의 다른 거성들의 작품들과는 달리 난해성을 거의 띠지 않는다. 소박하고 꾸밈 없으며 친밀하고 서정적인 특성들은 그의 구어체 어조에서 가장 빛난다. 그는 많은 상징주의자들처럼 초월을 노래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초월적 상징주의가 결여되어있다는 점은 그이 시의 결함으로 볼 수 있다. 보를레르에게서 볼 수 있는 천국을 만들어내는 상상력의 결여는 그에게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는 사실 그의 개인적 상징주의의 특성이자 장점이라 할 것이다.   그의 명성은 시형의 완벽성이 아니라 가사 없는 노래의 더듬거리는 시들로 더해졌다. 독자에게 호소력이 있었던 것은 리듬의 근저에 있는 끝없이 상처 입는 영혼, 그것의 리듬 있는 넋두리였던 것이다. 모험이란 그에게 숭고한 차원의 것이 아니라 소박한 것이었으며, 문학은 사실은 그의 계획 밖의 것, "소위 문학이라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의 파격시와 그의 음악은 언어의 논리보다 내적 표현을 따르는 형식이었다. 그것은 어떤 유파의 논리에 머물지 않았다. 내면을 따라간 후에야 그의 이론이 있었다.        여전히 그리고 언제고 음악을!                 (--)      그대의 시는 운 좋은 모험이기를,      박하와 백리향을 꽃피워가며      아침 찬 바람 속에 퍼져가는 모험 ---      소위 문학이라는 것은 나머지 것이다.                                                 ()     베를렌이 "짓누르거나 멈칫거리지 않는홀수각"을 택하라고 하는 것은 운문을 형식의 제약들에서 해방시키라는 말이다. 언어의 무용한 중량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홀수각을 택하는 것이고, 종래의 문학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베를렌의 거부는 이론이라기보다는 어떤 몸짓이었다. 그것이 그 나름대로 상징주의에 기여한 공헌이며 프랑스 시를 자연스럽게 전통에서 해방시키는 길이었다. 그는 각운을 완전히 폐기하는 경지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13)   3. 랭보와 '견자'의 길   아르튀르 랭보(1854~1891)는 1871년 베를렌의 초청을 받고 파리에 갔지만, 그들의 관계는 미리 예정되어 있었다.랭보는 결국 1973년 브뤼셀에서 만취한 베를렌의 총에 맞게 된다. 어머니의 농장이 있는 로슈로 돌아온 랭보는 지금까지의 생활을 정리한 것이라 할 수 있는 산문시 을 쓴다. 그러나 베를렌과의 작별에 이어, 1875년경부터는 문학과 작별하며 네델란드, 자바, 북유럽, 독일, 이탈리아, 키프로스 등을 유랑한다.  상아밀매, 무기상, 모피상을 했으며, 이미 문학과는 절연한 것이었다. 1880년에는 일자리를 찾아 홍해의 모든 항구를 찾아다녔으며, 그 후에는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에서 교역에 종사한다. 1891년 관절염으로 프랑스로 돌아오며 아무도 알아볼 수 없도록 변한 채 마르세유에서 37세로 사망한다.       나는 떠나갔네, 터진 주머니에 두 주먹 지르고     외투는 다 헤져 거의 보이지 않았어.     나는 하늘 아래를 갔지, 시의 여신이여!  나는 그대의 신도였다네.     오 랄라! 찬란한 사랑을 얼마나 꿈꾸었던지!       단벌 바지에는 커다란 구멍이 났어.     - 꿈 꾸는 엄지동자처럼 나는 길목마다 시를     뿌려두었지. 숙소는 큰곰자리에 두었고.     - 내 별들은 하늘에서 부드럽게 사르락거렸어.       그래 나는 길 가에 앉아 별들의 소리에 귀 기울였지,     구월 그 아름다운 저녁에. 그때 이마에는     생명수 같은 이슬 방울들이 떨어졌어.       그 저녁, 나는 환상 같은 그림자에 싸여 운을 맞추며,     터진 신발 끈을 잡아당겼네     칠현금인양, 가슴 가까이 한쪽 발을 대고서!                                                ()     발을 칠현금에 비유하고 있다. 걸어가며 어미동자처럼, 에서처럼, 시를 길 어귀에 쏟아둔다. 칠현금 같은 발의 걸음마다가 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자주 회자되는 랭보의 시 중 하나로서, 이미 랭보의 분방한, 인습을 뛰어넘는 자유로움과 공격이 보인다. 베를렌 같은 조심스러움이나 약함은 찾아볼 수 없다. 베를렌이 그를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라고 하였듯이 거침없는 그의 행보와 꿈을 뒤를, 시는 자연스럽게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풍경 속에 각인된 슬픔이라든가 풍경과의 갈등의 조짐은 없다. 이 방랑기는 1970년 말에 씌어졌는데, 랭보의 글쓰기는 16세가 되기 전인 1870년에 시작되어 1875년에 끝난다.   최초의 시를 발표하고 6개월도 되지 않은 1871년 5월에 랭보는 유명한 를 썼는데, 거기서 그는 프랑스 시를 '운을 지닌 산문'에 불과하다고 비난한다. 그의 시는 이처럼 반항으로 시작한다. 그는 모든 것에 대한 반항을 꿈꾼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옛날, 나의 삶은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열고, 온갖 포도주들이 흘러내렸던 축제였다. 어느 저녁 나는 무릎 위에 '아름다움'을 앉혔다.  - 그리고 그것은 쓰디쓰다는 것을 알았다.   - 그래서 그것을 모욕해주었다.     나는 정의에 대항했다.     나는 도망쳤다. 오 마녀들이여, 오 비참이여,  오 증오여, 내 보물은 바로 너희들에게 맡겨졌다.                                                                                                                 ( )     계속되어 이어지는 반어적 문장들과 속도는 시인의 저항과 파괴의 강도를 예측하게 한다. 그는 기존의 가치와 원칙들의 거부에서 출발하며 온갖 신성모욕과 잔혹과 거짓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이 반항은 맹목의 것은 아니었으며, 랭보는 부정의 끝에 하나의 해결점을 제시한다. 그것은 '나는 타자(他者)다'라는 유명한 선언으로 제시된 해법이다. '이다'라는 불어 동사는 1인칭 'suis'가 아니라 3인칭 'est'라는 점을 주목하여야 한다. 시인은 스스로를 객관화하여 뚫어볼 수 있는 '견자(見者)'이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파괴를 통해 객관에 도달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파괴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시인은 모든 감각들의 오래고도 광범위하며 논리 있는 착란에 의하여 스스로 견자가 된다. 사랑과 고통과  광기의 모든 형태들. 그는 스스로 탐색하고, 자신 속에서 모든 독들을 다 소진시켜, 그 진수만을 간직한다. 이는 모든 신념과 모든 초인적 힘을 필요로 하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형벌이다. (---) 왜냐면 그는 미지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 1871. 5. 13.)     그는 '미지'의 세계에 도달한다고 하였다. '미지(未知)'란 보들레르나 말라르메도 추구하던 공통의 목적지로서, 정신과 언어의 새로운 지평을 엶으로써 도달 가능하다. 미지에 도달하는 것은 시인은 '잔의 영혼을 경작하여' '이미 풍요롭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그는 영혼의 단련과 스스로에게 의도적인 형벌을 가함으로써, 즉 모든 감각들의 미리 계획되고 의도적인 착란에 의하여, 이미 이곳에 도달하였다는 것이다.   감각과 내적 훈련을 통한 정신의 해방은 먼저 스스로 '불량소년'이 됨으로써, 즉 종교나 기존 사유체계등, 정신과 감각을 속박하는 모든 것에 대한 주저 없는 파괴와 항거로써 가능하다. 질서와 그것의 구속, 기성의 행복과 사랑, 윤리, 종교, 요컨대 인간 정신의 그 어떤 산물이라도 내적 혁명의 대상이었다.       나에게. 나의 광기들에 가운데 하나에 대한 이야기.      나는 오래 전부터 가능한 모든 풍경들을 소유할 수 있다고 자부하였고, 그림과 현대시의 명성은 하찮은 것이라 여겼다.                                                                                                                                             ()     반항과 거부에 의하여 인간은 변모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베를렌처럼 그 속으로 파묻히거나 사라지는 풍경이 아니다. 자아는 풍경을 소유하거나 버리거나 변화시킬 수 있다.   파괴에는 이를 명령하는 논리가 우선된다. 견자가 되는 것은 의도적 광기와 감각과 정신의 훈련을 통하여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중성적이고 몰아적인 상태에 도달한다. '나는 타자다'라는 말은 주관과 객관적 진실이 서로 모순되지 않을 수 있도록 통일한 경지이며, 인식의 장애물들이 정신의 힘으로 극복된 상태를 말한다. 나와 타자 사이에 아무 구별이 없다.   그래서 랭보는 데카르트의 코기토(cogito)에 맞서는 코기토를 제안한다. 그것은 '나는 생각한다'가 아니라 'on me pense'(1871년 5월, 에게)다. '사람들은 나를 생각한다'이거나 '나는 생각되어진다'이다. 이처럼 나는 타자다.   타자인 나는 나 자신의 생각을 관찰하고 그 전개를 성찰한다. 이 몰아적 정신과 감각의 상태에서, 시는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나아가게 하라는 것이다. 미래의 초현실주의자들은 랭보에게서 이 부분을 읽어내었던 것이다.   그러나 견자가 된다는 것은 시인이 되기 위한 단계지 견자가 시인은 아니다. 말로 할 수 없는 고통 끝에 마치 무병(巫病)을 앓은 후처럼 견자, 즉 '최고의 현인'이 되지만 그것으로 시인은 아니다. 시인은 모음의 탄생을 체득한 자여야 한다. 랭보가 "나는 모음들의 색깔을 만들어내었다"라고 하며 "검은 A. 하얀 E, 붉은 L, 푸른 O, 초록 U"라고 하였을 때, 랭보가 꿈꾸는 것은 언어를 감각적으로 재현하겠다는 단순한 꿈이 아니다. 그는 새롭게 창안한 자음과 모음의 결합으로 빚어질 정신과 언어의 우주, 즉 새로운 창조에 대해 갈망하는 것이다.   시인은 따라서 '잠재된 탄생'을 연금술로써 약속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언어는 '모든 감각에 적용될 수 있는 시어'이다. 이 '보편적 언어'를 찾아내는 일이야말로 연금술사의 소명이다.   랭보는 그러니까 자아의 문제에서 결코 헤어날 수 없었던 베를렌을 만나러 가기 직전에 쓴 그의 비교적 초기의 작품 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개인적 모혐으로 시작하는 여행담이 환상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을 배로 의인화시킨 표류의 이야기나 꿈의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지만, 시인이 그리는 천국에 대한 인상이기도 한 것이다. 랭보의 천국은 모험과 광기 후의 움직이는 공간이지, 보들레르식의 '평온과 호화 그리고 관능'의 도피적 공간이 아니다.   그럼에도 랭보는 모든 것을 알아버린 듯, 심연을 동시에 암시하기도 한다. 모험은 지속되지 못하고 단념 속에 다시 바다의 이면으로, 현실 속의 어두운 물로 돌아온다.       나는 항성 같은 군도를 보았네!  또 착란하는     하늘을 표류자에게 열어주는  섬들을 보았네.     - 네가 잠들고 유배되는 곳은 바닥 없는 그 밤들 속인가,     수많은 금빛 새들이여, 오 미래의 '기운'이여?       그러나 사실 나는 너무 울었다!  '새벽들'은 가슴 에인다.     모든 달은 잔인하고 모든 해는 가혹하다.     쓰라린 사랑은 내게 취할 듯한 무기력을 불어넣었다.     오 나의 용골이여 깨어져라! 바다로 가야겠다!       내가 유럽의 물을 원한다면 그것은     향기로운 저녁 무렵 웅크린 채     슬픔에 찬 아이가 오월 나비처럼 덧없는     배를 띄우는 검고 차가운 물웅덩이다.                                                            ()     랭보는 당시 바다를 본 적이 없었고 보드레르처럼 인생 경험에 대한 기억도 많지 않았다. 상상에 의한 것이었지만 그의 환상은 현실보다 더 현실이었다. 시인은 감각의 훈련으로 절망의 심연을 뚫어보는 능력에도 도달한다. 전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 착란으로 스스로를 견자로 만든 것이다. '모든 형태의 사랑, 고통, 광기들'을 경험하여 흔히 감지되지 않는 '사물들의 언어'를  포착하는 초감각에 거의 도달한 것이다. 그는 말한다.       나는 모음들의 색깔을 만들어내었다!  - 검은 A, 하얀 E, 붉은 I, 푸른 O, 초록 U.                                                                                                               (---)     그것은 처음에는 하나의 연구였다. 나는 침묵을, 밤들을 썼으며,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기록하였다. 나는 현기증들을 고정시켰다.                                                                                                                 (---)     나는 단순한 환각에 익숙해졌다. 나는 공상 대신에 회교사원을 아주 분명하게 보았다.  (---)                                                                                                                      ()      모음들의 색깔을 만들어내었다는 것은 어떤 신비로운 탄생, 즉 자음과 모음의 결합으로 재현될 세계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말이다. 세계란 침묵 뒤의 공간까지 아우르는 세계, 우주적 본질들의 현현(顯現)으로서의 세계다. 이 의지의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언어는 모든 감각에 다 적용할 수 있다. 새 언어에 의해서 착란은 질서로 안착된다.   그가 "나는 단순한 환각에 익숙해졌다. 나는 공장 대신에 회교사원을 보았다"라고 했을 때, 환각 만들기라는 행위는 거부하고 파괴하였던 현실을 다른 방식으로 부활시키는 능력이다.     시란 이제 부정이 아니라 초월을 위한 방법이다. 개인의 한계를 넘어 신비로운 도취 속에서 우주의 원초 속으로 환원되게 하는 말 - 이를 위하여 자아는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모험을 자청하였었다. 이 모두가 관념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그것을 위한 교란의 정도는 가히 파괴적이었고, 모험을 가능하게한 힘은 놀라운 것이었다. 부정되었던 현실이 현실을 되찾는다. 현실이 '미지'가 된다. 랭보는 이 모든 실험을 불과 몇 년 사이에 해치웠으니, 그의 반항의 강도는 엄청난 것이었다.   시인은 '불을 훔쳐온 자'라는 것은 '모든 감각에 적용되는 언어'를 가진 자라는 뜻이다. 이 '보편적 언어' 또는 '우주적 언어'는 향기, 소리, 색채 등 모든 것을 융합하며, '영혼에서 영혼으로' 전달된다. 영혼을 끄는 영혼의 언어를 갖고서, "영혼과 육체 속에 진실을 소유"()함, 시인은 '보편적 영혼'으로 다시 태어난다. 시적 감각은 예언적 감각이 되고, 신비로운 발견의 수단이 되며, 무의식까지 탐사하는 정신의 섬세한 도구로 변한다.   비록 짧은 시간에 행해진 이 모든 시험들은 말라르메도 지적하였듯이 인내심의 결여를 보이는 듯하기도 하지만, 그의 모험의 크기는 사실 알 수 없는 또 다른 인내를 요구하였을 것이다. 그의 일화까지 포함하여 그의 치열함과 그의 감각과 언어 조합력과 추진력은 아직도 신화다.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14)   4. 말라르메와 구도의 여정   말라르메(1842~1898)는 다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열 살에 아버지의 재혼, 이어 여동생 마리아의 죽음 등, 가정적으로 이미 어려서 불행을 체험한 바 있다. 그러나 아들의 죽음과 메리 로랑Mery Laurent과의 관계를 제외하면 이후의 삶은 겉으로는 지극히 평범하여, 시인 스스로가 에서 '일화가 없다'라고까지 말할 정도이다. '포우'를 더 잘 읽기 위해' 런던에 머문 적도 있지만, 평생을 지방에서, 나중에는 파리에서 영어교사로 지냈다. 그 외에는 오직 시작에만 전념하였다. 죽기 2년 전 '시인들의 왕'으로 뽑힌 것, 그리고 파리의 아파트에서 문학모임 '화요회'를 가졌다는 것 외에는, 가난에 시달리기도 하였지만 정말 랭보식의 일화나 사회적 야망은 거의 없이 평온한 삶을 살았다. 퐁텐느블로 인근 발뱅의 시골집에서 삶을 조용히 마감한다.   그는 보들레르를 읽고 지에 시를 발표함으로써 문학적 삶의 결정적 계기를 맞는다. 고답파에서 언어 형태의 완벽성을 배웠고 에서는 자신의 내적 갈등과 비극을 확인한다. 그러나 그의 '창천(蒼天)', 즉 이상에 대한 꿈은 보들레르의 이상과 일치되지는 않는다. 그의 관심사는 도덕적이라기보다 형이상학적인 것이고, 그의 시학은 본질적이며 관념적인 어떤 실체 찾기를 향하여 열려 있다.   "보들레르, 랭보, 베를렌의 시적 경험은 대개 모험이 주는 영감에서 왔다"고 한다. 그러나 말라르메는 시란 우연스런 "영감들의 모음집"이 아니다. 삶의 우연과는 무관한 언어행위라고 말한다.   비록 '일화는 없었다' 하더라도, 시인의 삶은 여러 문학적 시도들로 가득 찼다. 말년의 라는 작품은 그의 모든 언어 실험들의 종합편이자 정수들을 모아놓은 걸작으로,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시언어의 혁명을 촉발시켰다. 사망할 때까지 시인은 절대의 '책(Livre)'을 향하여 매진하였다.   그러나 "1868년과 1898년 사이에 쓴 몇 편의 시는 대단치 않은 것들이며 시인의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하였다"라는 것이 오랜 동안 말라르메를 보는 시각이었다. 20세기 중반 이후로는 시언어의 체계를 정립시킨 자로 추앙받고 있다.   사실 말라르메는 보들레르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말라르메의 절대적 상징주의는 본래 현실에 대한 불만에서 유래되어 나왔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닐 수 있다. 말라르메의 절대 언어에 대한 탐구는 그의 문학을 '절대적 상징주의'라고 불리게 하였지만, 그 출발은 자아와 세계로 분리된 이원성의 인식에서부터다. 아래 실은 은 보를레르의 영향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꼽히는시이다. "이 세상 밖이라면 어느 곳이라도!(any where out of the world!)"를 외쳤던 보들레르처럼, 그도 또한 도망치라고 외친다. 현실이 아닌 이국의 자연이 보들레르에게뿐 아니라 그에게도 계속 '여행 초대'를 하고 있었다.       오! 육체는 슬픈 것, 그리고 나는 모든 책을 읽어버렸다.        달아나자! 저기로 달아나자! 새들은 알 수 없는 물거품과 하늘 사이     있음에 취해있음을 나는 느낀다!     아무 것도, 눈에 비치는 낯익은 정원도     바닷물에 젖어가는 이 마음을 붙들지 못하리     오 밤들이여! 백색이 지켜주는 빈 종이 위에     쏟아지는 램프의 고적한 빛도     아이에 젖 먹이는 젊은 아내도,     나는 떠나겠다!     기선이여 돛을 흔들며     이국의 자연을 향해 닻을 올려라!     잔인한 희망들에 낙담하고도 '권태'는     손수건 흔드는 최후의 작별을 아직도 믿네! (---)    여기까지 보들레르의 시선과 그의 시선은 같은 곳을향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권태'는 보들레르의 '우울'과 색깔이 다르다. 이미 백지에 대한 고뇌가 언급되고 있으며, 생략한 시 뒷 부분에 나오는 파선(破船)의 이미지는 말년의 의 장치로 다시 등장한다.    1864년 말경 그는 이상세계에 대한 꿈 속으로 단순히 도피할 수만은 없음을 깨닫는다. 현실을 대체할 무엇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분명한 논리를 갖는 것이어야 하였다. 그리하여 1864년과 1865년 사이에 그는 와 를 포함하는, 절대시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미 그때 시인은 '정신의 도구인 언어'를 생각했던 것이다. 여기서 말라르메는 보들레르와 구분되는데, 와 다음의 를 비교해보면 두 시인이 얼마나 다르게 각자의 세계를 펼쳐갔는지 알게 된다.        순수하고 경쾌하며 아름다운 오늘은      이루지 못한 비상의 투명한 빙하가      서릿발 아래 서성이는 잊혀진 이 굳는 호수를      취한 날개짓으로 우리에게 찢어줄까!        옛날의 백조는 기억한다      불모의 겨울 권태가 번쩍였을 때      살 수 있는 땅을 찾아 노래하지 못한 까닭에 모습은      찬란하나 벗어나려 하여도 희망 없는 자가 바로 자신임을.        새는 온 목을 빼고 떨쳐버릴 것이다,      공간을 부정하나 공간이 안겨주는 이 하얀 번민을.      그러나 깃털이 묶여있는 땅에 대한 혐오는 떨치지 못한다.        자신의 순수 광휘가 이곳에 부여하는 유령이란 모습,      무용한 유형 중에 자신을 감싸는      모멸어린 차가운 꿈 속에서 굳어져 간다. '백조'는 (Cygne).     이 시는 말라르메 시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의 하나이며, 프랑스 시에서 가장 많이 암송되는 시로 조사된 바 있다. 앞의 시에서 '백색의 방어'해주던 원고지는 이 시에서는 '하얀 번민'으로 나타난다. 하얀 번민이란 원고지를 마주하였을 때 시인이 느끼는 창조의 고뇌이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한 번뇌가 아니라, 자아의 위기, 글쓰기의 부정 등으로 이어지는 존재론적 번뇌다. 시인은 글쓰기의 문제를 시의 주제로 꾸준히 내세우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글쓰기에 대한 번뇌를 시화(詩化)하겠다는 생각은 잃어버린 창조의 의미를 되찾겠다는 욕구에서 나온다. 이 꿈은 낡거나 늙지 않도록 빙하 속에 고스란히 간직되어온 것이다. 그런데 이 꿈에는 절망적인 모멸이 어려있다. 그것은 대중의 모멸이며 동시에 불모인 자신에 대한 모멸이다. 또한 현실 공간에 대한 모멸이며 글쓰기에 대한 모멸이다.   에서는 시인이라는 존재 자체가 조롱의 대상이 되는 현실, 다시 말해 시인의 현실에서의 무능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에서는 '이곳'이라는 공간에 과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과 망설임이 지배한다. 공간의 무의미 때문에 번뇌가 이어진다. 공간은 삶의 공간이자 죽음이 공간이며, 여기에 글쓰기의 공간이 겹쳐 있다.   그러나 이 시는 긍정적인 반전을 숨기고 있다. 백조의 몸은 호수의 물과 마침내 함께 얼어붙어, 하나의 커다란 거울이 빚어지게 된다. 목숨은 이렇게 아름다운 빙하로만 남아야 한다. 완전한 거울이란 개인이 사라져야 생성되는 것이다. 그때 진정한 언어가 탄생한다. 그리하여 최후의 노래는 최고의 노래가 된다.   시는 백조를 뜻하는 대문자의 'cygne'라는 단어로 끝난다. 백조는 '기호'를 뜻하는 불어 'signe'와 같이, 발음이 모두 /sin/이다. 이는 의도적인 것으로, 시인 자신이 언어의 존재론에 집착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인간의 기호에 대한 이러한 집착은 아래 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로잡힌 날갯짓'이다. 그러나 백조의 모습으로 재현된 기호는 상징이자 노래다. 시인 자신이자 인간의 언어다.        오, 꿈꾸는 여인이여, 다할 길 없는 순수한       환희 속에 내가 빠져들 수 있도록,      나의 날개를 정묘한 거짓으로      그대 손 안에 간직하고 있어주오.        황혼의 서늘함이      부채질할 때마다 그대에게 밀려오고      그 사로잡힌 날개짓은      지평선을 살짝 밀어낸다.         현기증! 이제 공간은       큰 입맞춤처럼 전율한다.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면서 태어나려 몸부림치나,      공간은 분출하지도 진정되지도 않는다.        당신은 느끼는가 야생의 낙원이      또한 묻혀버린 웃음이      당신 입가에서 나의 전면적인      주름 밑바닥으로 스며들어버리는 것을!                  (----)       ()     시의 외적 동기는 부채질하는 단순한 움직임일 뿐이다. 이 시에는 신비나 애매한 장치 같은 것은 거의 없다. 부채질이 공간의 전율을 일으킨다는 것은 시인의 관찰이다. 부채질에 따라 지평선이 물러나거나 다가오며 공간이 전율하는 듯하지만, 이는 바람으로 사라질 뿐인 공간,  태어나지 못하고 분출하지도 솟아오르지도 못하는 공간이다. 현상과 내면에 대한 극사실적 형용이다.   부채질이라는 흔한 움직임 속에 지평선을 꿈꾸지만 그것은 곧 매몰되어 없어질 무의미한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도 공간을 소유한 것이 아니며, 사실 공간에 전율하는 것이 아니다. 공간에 대한 헛된 소망이 전율을 일으켰을 뿐이다. 이 모두 '사로잡힌 날개짓'이며 관념의 생성과 소멸의 되풀이다.   2연에서는 지평선을 상상하였다가 3연에서 이는 현실화될 수 없는 공간임을 확인한다. 그리하여 4연에서 낙원에 대한 가정을 거두어들였는데, 생략된 5연에서는 비상의 의지는 '하얀 도약'이었으며, 그것은 무의미하지만은 않았다고 말한다.   움직임은 바람과 숨결의 미세한 움직임이며, 욕망이나 시선의 이동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비록 어떤 희망이, 입술 가장자리로 스미듯 사라지는 웃음처럼 사라질지라도, 순수한 낙원에 대한 가정은 정당하였다는 것이다. 가정임을 알고 있으므로 처음부터 '정묘한 거짓'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5연에서는 다시 부채는 팔찌 옆에 접혀져 놓인다.   집요한 것은 공간 구성에 대한 의지다. 거짓된 희망에서 지평선으로, 빈 공간으로, 낙원으로, 다시 일상으로 이어지는 공간 양상 - 여기에 상징의 모두가 들어있다. 공간 자신은 태어나지 못하고 전율하지만 그것은 겉으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시의 일상적이고 평범한 장치는 상징의 미학을 묘하게 숨긴다. 숨김의 미학은 상징의 맛이 두드러지게 한다.     말라르메는 이렇게 생각 전부를 드러내지 않고 '언어의 효과'를 통해 그것에 대해 환기시키고자 한다. 언어 외적인 것은 시에서 모두 베제시켜서 전적으로 '말들에게 주도권을 양도'하는 것이다. 비인칭 상태, 즉 자아를 지워 텅 빈 상태를 미리 마련해놓고 암시의 기법을 그 위에 사용함으로서, 언어 스스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비인칭화 혹은 탈인성화란 고전주의에서의 그것이 아니라 글 쓰는 주체의 지우기다. 이것을 그는 "시인의 화술적 사라짐"이라 한다. 앞에서 본 백조의 죽음은 시인의 죽음을 뜻한다. 이러한 죽음, 즉 인성의 사라짐에 의해 언어의 기능이 진정 생성되는 것이다.   탈인성화는 또 한편 내면의 '공(空)'을 만들어내면서, 백지상태 위에 정신 스스로가 펼쳐지게 한다.         나는 끔찍한 한 해를 보낸 참이다. 나의 '생각'은 생각 스스로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순수개념'에 도달하였다. 그 결과 이 오랜 번민 중에 나의 존재가 겪었던 모든 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이지만, 다행히도 나는 완전히 죽었다. (---)       다시 말해 내게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이제 비인칭이 되었다는 것, 나는 네가 알던 스테판느가 더 이상 아니며 나였던 것을 통하여 스스로를 보고 스스로 발전해가는, 정신의 '우주'가 지니는 하나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 1867. 5.14:Barbier, 1977,341)     이상이라는 문제를 마주하였을 때 시인은 먼저 세계 저편에는 '무'만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상은 존재하는 것이라는 믿음은 결코 버릴 수 없었으므로 그는 다음의 결론에 이른다. 즉 이상세계는 '허무' 뒤에 있다. '무' 안에 무한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긍정의 전환은 불교와 헤겔의 도움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먼저 현실의 모든 '거짓된 외양'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대상과 자신을, 다시 말해 대상을 바라보는 자신을 자발적으로 비운다. 그 텅 빈 '무' 위에 새로운 긍정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시인은 나는 완전히 죽어, 몰아상태라고 말한다. 이러한 태도는 고답파의 엄정한 중립주의에 도움을 받은 것이기 하지만, 고답파의 객관성과도 다른 것이다. 몰아의 '공' 상태에서 정신과 우주는 자연스럽게 다시 펼쳐진다. 나는 그 전개를 바라보는 하나의 보는 '능력', 즉 시선이다. 시선은 매개체일 뿐, 인칭이 없다.    시인이 이 편지를 쓰고 몇 년 후인 1871년, 랭보는 '나는 타자이다'라고 말한다. 두 시인 모두 주체의 위기에 대해 설파한다. 그런데 이 위기는 '미리 계획된' 것이다. 위기를 전개시키는 방법은 달랐을지라도 상징주의의 이상은 이처럼 의도적 위기와 자아의 정화 후에야만 진정 구축될 수 있는 것이다. 완전한 상징과 상징체계란 모든 것을 자석처럼 끌어당길 수 있고 끌어안아야 한다. 그것을 위하여 스스로를 비우는 절차는 필수적인 것이다. 자아의 부정은 이처럼 새로운 세계의 구축을 겨냥한다. 그리하여 거미줄처럼 사물들의 관계 요소들이 섬세히 그물망을 이루도록 관계의 구조물을 구축하는 것, 혹은 레이스처럼 논리의 실이 면면히 이어지는 것 - 이처럼 탄탄한 체계들만이 무한한 확산력을 지닐 수 있다. 보들레르의 은 "용연향, 사향, 안식향, 훈향처럼 무한한 사물들로 퍼져나가는" 확산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확산을 위하여 랭보에게는 광기와 착란이 필요하였다. 말라르메는 확산을 위하여 감각을 우선 안으로 응축시킨다. 사물에 대한 말들은 겉으로는 모두 지워진다. 아래의 시에서도 주인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죽었거나 몰아상태일 것이다. 이 시는 1868년에 '자신에 관한 우화적 소네트'라는 제목을 쓴 것이다. 그러나 계속 수정하다가 20년이 지난 1887년에야 무제로 출판한다. 완전히 상징들로만 이루어졌으며, 상징주의의 난해성을 대표하는 시로서, 가장 다양하고 많은 주석이 가해졌던 시이다.         그의 맑은 손톱들은 자신의 줄마노를 아주 높이 바치고,       이 자정에 고뇌가 횃대를 떠받치고 있다       골호(骨壺)가 받아들이지 않는       '불사조'에 타버린 저녁의 꿈 몇을          빈 방, 제기단 위에는 아무 소리도 없다        소리 울리는 공허의 폐기된 장식품은,        ('허무'가 자랑하는 유일한 이 물건을 갖고서 '주인'은        '삼도천'에 물을 길으러 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텅 빈 북쪽 유리창 가까이,        물의 요정과 싸우며 불을 내던지는        아마 일각수 장식을 따라, 금빛이 죽어가고 있다.        요정은 벗겨진 채, 죽은 자로 거울 속에 있다        거울 테두리가 감싸고 있는 망각 속에        섬광의 북두칠성이 그렇게 빨리 고정되고 있지만,        ()     이 시에서도 여전히 공간 창조의 고뇌가 문제되고 있다. 여기서는 빈 방과 선반 하나, 그리고 열린 창문의 덧창밖에 없는, 그야말로 텅 빔의 미학적 풍경 자체다.  주인은 삼도천(三途川)에 물 길으러 갔으므로, 그가 실제로 죽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거울 테두리에는 금빛이 죽어가고 있다. 그러니까 빛도 모두 스러져가고 있다. '불사조에 타버린 꿈 몇'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시인이 작품 모두를 불태웠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소리'를 가리키는 "소리 울리는 공허의 폐기된 장식품"이란, 악기이자 글 쓰는 도구이다. 삼도천에 이 악기를 가지고 갔다는 부분에서 오르페우스가 그려진다.  서양의 시에서 이처럼 비어있음만을 주제로 삼고 그것으로써 메시지를 전달하려한 작품은 많지 않다. 극도의 텅 빔이 시 전체를 지배하지만,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열린 북쪽의 덧창을 통해 보일 북두칠성에 대한 언급을 통하여 어떤 희망을 시사한다. 그것은 어떤 조화로운 탄생일 것이다. 이 해석하기 어려운 상징시는 말라르메식 오르페우스를 제시하고 있다.       나는 옛날에 사람들이 '대작'을 만드는 용광로에 불을 때기 위하여 자기 집 가재도구와 지붕 서까래를 불태웠듯이, 모든 허욕과 모든 만족감을 던져버릴 용의를 가지고 연금술사와도 같은 인내심으로, 언제나 다른 것을 꿈꾸고 시도했습니다. 어떠한 대작일지? 말하기 어렵군요. 간단히 말해 여러 편으로 된 한 권의 책, 아무리 경탄스러울지라도 우연히 부딪치는 영감들의 모음집이 아니라, 건축적 구성이며 미리 계획된, 책이랄 수 있는 책 말입니다. 나아가 나는 '책(Livre)'이라고 하겠습니다.       (---) '대지'에 대한 오르페우스의 설명, 이야말로 시인의 단 하나 의무이자 더할 나위 없는 문학 작업입니다. 왜냐면 페이지를 매기는 방법까지도 비인칭적인 동시에  생생할 '책'의 리듬 자체는 이 꿈의 방정식, 혹은 '오드'와 병행하기 때문입니다.                          (, 베를렌에게, 1885년: 말라르메, 1974, 662~66)     오르페우스는 말라르메의 꿈이었다. 오르페우스의 업은 노래하는 것이다. 꿈의 방정식은 오드라고 한다. "대지에 대한 오르페우스의 설명"이 꿈의 방정식의 '해(解)'인 것이다. 해는 대문자의 '책(Livre)'이다. '오드'를 통하여 '책'에 도달한다.  그는 "결국 세상은 아름다운 한 권의 책에 도달하기 위해 존재한다"고(Huret, 1984:80) 말한다. 시인의 꿈은 이토록 소박한 것이었지만 정말 소박한 것은 아니었다. 대지에 대해 설명하겠다는 꿈은 절대의 책을 완성하겠다는 크나큰 야심이다. '책'은 그에게 언어와 정신과 삶이 어우러져 용해된, 인식론적이고 존재적인 어떤 총체, 어떤 '하나'였다. 시인에게 세상의 의미는 그런 것이었다.    보들레르가 교감이라는 사물 인식법으로 새로운 문학을 열어 낭만주의와 고답파를 버리게 하였다면, 말라르메는 그를 계승하면서 언어형식의 또 다른 혁명을 낳는다. 그 결과의 하나가 라는 시다. 시인은 절대의 책을 가정하며 이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페이지라는 형식을 버린다. 대신에 펼쳐지는 책의 (우좌가 아니라) 좌우 페이지를 합쳐서 한 '장'이라고 한다. 이 하얀 화폭 위에는 오직 하늘과 바닷물밖에 그려져 있지 않다. 보들레르가 초대받고 싶어하였던 여행을 그는 거의 마지막 시도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에서 실현시키고 있다. 그곳에는 미학과 철학과 음악과 문자가 하나가 되어 있다.   베르나르는 를 '시와 산문의 종함'으로 보고 있다. (Bernard, 1988:311)       (---) 는 산문시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은 시와 산문을 나누는 칸막이를 깨고 '통합' 예술의 시도에 상응하는 총합의 양식을 발견하기 위해 당시 시인들이 시도하였던 언어 탐구들에 대한 의미 있는  증언이다(Bernard, 1988:328).      에서, "페이지를 매기는 방법까지도 비인칭적인 동시에 생생할 '책' 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을 보면, 가 어쩌면 실험에 그칠지 몰라도, 우선은 절대의 책으로 시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여기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개인의 사고의 질서이자 우주의 질서이며 언어의 질서이다. 인간의 말을 통하여 우주의 신비까지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문자 속의 신비'를 구현하려는 이 다중의 언어 프로젝트를 통하여, 시인은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두텁게 싸여진 상징체계를 생의 마지막으로 완성한다.  언어를 완성하려는 그의 의지는 언어에 모든 것을 바치고 '일화가 없는' 삶을 선택하게 하였다. 시인의 단 하나 의무란 이 땅에 대한 오르페우스식 설명일 뿐으로, 삶의 '일화'는 모두 그속으로 묻히면 되었던 것이다. 발뱅의 시골집에서 후두경련으로 사망하는 시간에까지 그는 아름다운 '책'에 대한 설명을 놓지 않았다. 언어에 몸을 맡긴 그의 이 모든 여정은 사제의 삶에 근접하였다. 여기서 '시라는 종교', 그리고 '언어의 사제'라는 말이 나왔다.  그는 "19세기 후반세기의 위대한 시인들 중 가장 진정한 상징주의자"라는 평을 받기도 하지만(Peyre, 1976:37), 과작(寡作)의 실패한 시인이라는 평이 1950년대까지도 주류였다. 과작은 그가 나태하거나 황폐하여서가 아니라, 상징의 완전한 체계를 만들기 위한 당연한 한계였다. 얼핏 보아도 동양적 성찰에 많이 닿아있는 말라르메의 공간학은 발레리의 것과 색채와 향기가 유사해 보이지만, 그들의 여정과 가닿는 길은 달랐다.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15)   5. 발레리와 지중해의 명증   폴 발레리(1871~1945)는 지중해에서 태어나고 법학을 공부하였으나 1890년대 초부터 시를 발표한다. 이 시기의 시는 후에 (1920년)으로 발행한다. 그러나 발레리는 1892년, '제노바의 밤'이라고 불리는 지적이고 감정적인 위기를 겪고 시를 포기한다. 그는 1894년부터 말라르메의 화요회에 참석하며, 시는 쓰지 않고 철학과 수학, 과학 등에 매혹되면서, 과학적 정신과 예술적 정신의 결합의 상징이었던 다 빈치에 대한 글( 1895년)과 1896년)을 발표한다. 1896년, 오래 글쓰기를 중단하게할 두 번째의 위기를 겪은 후에 발레리는 시로 돌아온다. 기나긴 침묵은 를 발표함으로써 깨어진다. 그는 1912년 앙드레 지드와 갈리마르사의 강력한 권유에 의하여 시를 다시 쓰기 시작하였고, 5년 뒤인 1917년 발표된 는 시인에게 확실히 영광을 가져다주었다. 사이의 침묵의 20년은 개인 비서로 일하면서 삶을 이어갔다.   20세기 초 초현실주의자들이 '자동기술'에 몰두할 때 그는 시인은 건축가가 사원을 짓듯이 시작업으로 시를 건축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시는 영감이 아니라 '구성(composition)'의 산물이라는 생각은 포우의 훌륭한 번역자 보들레르와 말라르메를 따른 것이다. 20세기 시에 고전적 원칙을 복원히켰다는 평을 듣는 그는 수학적 정밀함과 우연을 배제하는 명확성과 객관성과 순수함을 갖춘 시를 쓰고자 하였다. 그의 지적이고 심미적인 시는 건축의 견고성과 음악성과 순수한 시적 이미지들로 넘쳐나고 있다. 그는 또 뛰어난 성찰력으로 학들과 철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쳐 20세기 최고의 지성으로 추앙된다.   발레리는 1945년 사망하여 고향 세트Sete의 해변의 묘지에 묻힌다. 그가 1917년과 1922년 사이에 쓴 시집 속에 발표된 가 가장 사랑받는 작품으로 꼽힌다.     발레리는 제노바에 체류 중 번개 치는 어느 '하얀 밤'에 여럿으로 분열된 자아를 체험한다. 그는 자신의 내면 속에서 감수성과 이성, 육체와 영혼, 무의식과 명철성 사이로 갈라진 심연을 보게 된다. 이 위기 이후 발레리는 지적이고 엄격한 사유를 막는다고 하며 예술활동을 중단한다. 영감이나 정념 등을 버리고 지적 활동과 내적 성찰 속에 침잠하였던 오랜 내성기간을 지낸 후에야 발레리는 심연에서 돌아온다. 그는 조금씩 시를 쓰는 즐거움과 감각적인 현실세계가 주는 새로운 충격을 받아들인다.    발레리는 인간은 감각과 현실세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그의 지적 자아는 감각적 자아를 밖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안의 모든 시는 감각 세계와 지적 세계 사이에서 시적 세계를 전개시키는 문제에 몰두하고 있는 자아를 보여준다.       알갱이들이 과일을 못 이겨     반쯤 벌어진 단단한 석류들이여,     나는 자신의 발견들로 파열한     지고의 이마들을 보는 듯하다!       너희가 견뎌온 햇볕들이 비록,     오 반쯤 벌어진 석류들이,     자존으로 다져진 너희로 하여금     루비의 간막이들를 부수게 하였더라도,       또 껍질의 메마른 금빛이 비록     어떤 힘의 요구를 따라     과즙이 빨간 보석들을 터뜨린다 하더라도,       이 빛나는 파열은     옛날의 내 영혼에게     자신의 은밀한 구조를 그리워하게 한다                                                          ()     말라르메의 부채 연작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상징주의 시는 공허한 이상세계에 대한 그림이 아니다. 시어는 막연한 암시가 아니라 사물에 대한 질긴 관찰이 있은 뒤, 바로 그것에 의해서야 그 위에 상징체계를 축조할 수 있다. 그 탄탄한 구조를 읽어내려면 독자들은 축조과정을 따라가야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상징의 묘(妙)는 여기에 있으며 해독의 어려움도 여기에 있다. 위의 시도 사물에 대한 자세한 관찰로부터 출발한다. 구체성 없는 것은 시가 아니라는 듯이 석류 알갱이의 벌어짐을 천천히 묘사한다.   그러나 시의 1연에서는 '지고의 이마들'이 언급되고 마지막 연은 '은밀한 구조'라는 단어로 끝남으로써 시인의 의도가 드러난다. 금빛 껍질의 루비빛 파열 등은 객관적 묘사일 뿐 아니라, 그의 성찰의 결과이기도 하다.   발레리는 에서 다양한 지식들의 관계와 우주체계를 과학적으로, 즉 최상의 정신력으로 파악한 다 빈치를 모범으로 그리며, 우연으로 찬 외적세계의 논리를 거부한다. 또한 내면 의식을 탐구하여 인간정신의 법칙을 발견하고자한 테스트씨라는 가상의 인물처럼, 스스로 의식을 주도할 수 있는 강력한 지력을 갖고자 하였다. 테스트씨는 감각적 인식을 부인하고 자의식과 지적 인식만을 인정하는 인물로 형상화되어 있는데, 이러한 측면은 발레리의 사상과 작품 속에서 이원적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로 남아있게 된다. 다 빈치와 테스트씨가 '자기 사유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지적 훈련의 표상들이라면, 와 에서는 이 극단성은 화해를 향한다.     는 발레리의 와 함께 시인의 내면 성찰을 시화한 작품이다. 어느 섬에서 여명에 눈을 뜬 파르크는 방금 꾼 악몽을 계기로 자신의 내면과 삶을 뒤돌아보게 된다. 순수와 관능 사이의 갈등을 회상하며 살아보려 하지만 또 다시 광란에 빠져들게 된 파르크는 죽으려 하나 죽지 못하고 아침을 맞이하며, 영혼의 각성에 전율하게 된다.    많은 이미지들과 풍부한 상징의 망, 음악성, 관능의 제시와 그 극복 등은 이 시를 최고의 상징시의 하나로 불리게 하며 독자들에게 많은 충격을 주었다. 여기서의 파르크는 운명의 세 여신 중 막내로 탄생의 신 클로토Clotho를 가리키는데, 생명의 실을 짜는 것이 임무다.   다음은 이 시의 시작으로, 젊은 파르크가 한밤에 깨어 자신을 들여다보는 장면이다. "한밤에 일어나니 모든 삶이 다시 살아나서 자아에게 말을 하고" 있다.       거기 누가 울고 있는가, 단지 바람이 아니라면 이 시간에     혼자서, 지고의 금강석들과 함께?... 아니 누가 울고 있는가     이토록 나의 가까이서 내가 울려는 순간에?     여기서 화자나 화자가 들여다보는 대상 모두 나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나는 두 개의 자아로 분리되어 있다. 울고 있는 것은 바람과 금강석들, 그리고 나이다. 관찰자인 나는 막 울려고 하는 순간이지만 울지 않고 울고 있는 자연과 울고 있는 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의식으로 깨어나 이렇게 자아와 주변을 분석하려 한다.   관찰자인 자아의 눈뜸은 뱀에게 물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의의식과 욕정의 상징인 뱀에게 물림으로 인하여 파르크의 관능적 자아아 성찰적 자아는 동시에 인식된다. 또 하나의 나는 '명철한 정신'으로서, 이들에 대한 관찰이다.       물 굽이치듯 나는 나를 보는 나를 보고 있었고, 시선에서     시선으로 내 깊은 숲들을 금빛으로 칠하고 있었다.       거기서 나는 나를 막 문 뱀을 쫓아가고 있었다.       욕망들이 이 무슨 꿈틀거림인가, 뱀의 기는 모습이란!... 내 탐욕에서     빠져나오는 보석들의 이 무슨 혼란,     또한 명철에 대한 이 무슨 어두운 갈증!                                                     ()     관능적 자아에 가까운,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자아'와 성찰적 자아, 이를 지켜보는 자아 사이에서 자아의 갈등과 분열은 극에 달한다. 그리하여 화자인 나는 "나를 보는 나를 보고 있었다"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말라르메의 앞서 본 편지에서 "나의 '생각'은 생각 스스로를 생각하게 되었다"라는 부분을 상기시킨다. 발레리는 그 자아를 더욱 분석한다.   말라르메가 금욕적 자세로 '공(空)'에 이르는 과정에서 자아의 분열을 체험하였다면, 발레리의 분열은 관능적 자아의 문제가 전면화되어 더욱 미묘하다. '의식하는 의식'은 자아를 점점 의식의 심연으로 밀어넣고, 그리하여 나는 "오 위험하게도 그의 시선의 포로가 될 뻔하였다!"라고 외친다. 의식의 깨어남과 분열의 고통은 마침내 죽음을 선택하게 한다.       그러나 나는 사라진 나의 시선이 보고 있는 바를 안다.     검은 내 한쪽 눈은 지옥의 거소로 난 문턱이니!     나는 생각한다, 시간들은 산들바람에 내맡기고     영혼은 쓰디쓴 관목 숲에서 돌아오지 않은 채 (---)     죽음은 그러나 실제 죽음이 아니라 허구적인 죽음으로, 파르크가 새벽에 어렴풋이 잠에서 깨었을 때, 모든 것은 존재론적 고뇌였음이 밝은 빛 속에서 밝혀진다.       (---) 내가 옷 벗은 채, 두려움 없이     이 바닷가에 와서, 치솟는 거품 들이마시고     드넓고 웃음 띤 쓰라림을 눈으로 마신다면,     가장 생생한 대기 속에, 존재는 바람을 마주한다면 (---)                                                                ()     자아가 죽음에 대한 의식에서 벗어나 바닷바람을 맞으며 삶의 의지를 되찾는 이 풍경은 에서 "바람이 인다! --- 살아보아야 한다!" 라고 외치는 것과 같은 풍경이다. 삶을 초월한 논리적 결론이, 비록 우연을 포함한다 하더라도 삶의 의지를 이기지는 않는다는 것이 시인의 부인할 수 없는 결론이었다. 파르크의 유혹과 망설임은 시인의 자아 부정과 자아를 되찾는 과정의 번뇌를 표현한 것이다. 자아는 이제 지적 탐구와 고뇌를 극복하고, 변화로운 감각세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각성을 따르고자 한다.   다양하고 시간적인 현상과 안정적이고 비시간적인 상태 사이에서 흔들림도 시인의 사고의 두 축에 기인한다. '타고난 시인'(레몽, 1984:200)이었으므로 '지적 유혹과 감성적 자질' 사이에서 줄타기할 수밖 없었던 발레리에게는, 이처럼 이원적 문제를 화해시키는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의 화두로 제시되었다.   발레리의 시간의 이원성에 대한 생각은 무한에 대한 관조의 세계로 다시 재현된다. 1920년  발표된 는 그의 고향 세트의 바다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이에 대해 시인은 일생 중 "처음으로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를 끌어다 쓴 최초의 시"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시인은 자신이 경험하였던 맑고 고요한 감각을 명상 속에서 회상한다.       비둘기들이 걷고 있는 이 고요한 지붕은     펄럭인다 소나무 사이에서 무덤 사이에서     엄정한 자, 정오는 거기 불로써 빚어낸다     바다를, 언제고 새로 시작해있는 바다를!     오 생각 하나에 따른 보상이여,     신들의 평온을 오래 관조하는 시선이여!     여기서 비둘기는 바다에 떠있는 삼각돛을 말한다. 그러니까 지붕은 평화로운 바다를 지칭한다. 이 시에서 내적 리듬은 에서보다 훨씬 안정적이다. 전체적으로 더 자연스럽고 구속을 버렸다는 느낌을 준다. 그것은 시인의 사유의 발전 때문이리라.   그러나 시인은 변하지 않는 절대적 '순수 자아'의 힘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공허 속에서 본질과 영원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다.       오, 나만을 위하여, 나 자신에게만, 나 자신 속에서,     마음 곁에서, 시의 원천에서,     공허와 순수 사건 사이에서,     나는 나의 내면의 위대함이 메아리치기를 기다린다     항상 앞날에 다가오는 공동(空洞)이 영혼 속에 울리게 하는,     쓰라리고 어둡고 소리 울리는 저수조여!     그럼에도 바다 앞에서,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진실 앞에서, 시인은 거부할 수 없이 변화를 인정한다. 인식의 변화를 수용할 수 없었던 시인은 고향의 해변 묘지를  배경으로 자신도 몰랐던 내면의 리듬이 살아남을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시는 시인의 인성이 가장 많이 드러난 시라는 평을 받았다.       아름다운 하늘이여, 진실된 하늘이여, 변화하는 나를 보라!     그토록 대단한 자존 끝에, 이상하나 힘에 찬,     그토록 대단한 무위의 끝에,     나는 이 빛나는 공간에 나를 맡긴다 (---)     가 변화와 불변 사이, 추상과 구상 사이로 찢겨진 자아의 이원성의 드라마라면, 이 시는 드라마의 완결편이라 할 정도로 상대성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파르크도 구체적 현실을 수용하고 삶의 의지를 인정하려 하였지만, 자아는 쉽게 변화를 수용하는  양상은 아니었다. 유사한 장면이지만 수용이 더 자연스럽고 자유롭다.       아니다, 아니다!... 일어서라! 계속되는 시대 속에!     부숴라, 육체여, 생각에 잠긴 이 틀을!     마셔라, 가슴이여, 바람의 탄생을!     바다에서 뿜어나오는 서늘함이     내게 나의 혼을 돌려준다... 오 짜디짠 힘이여!     파도로 달려가, 거기서 생생하게 솟아오르자!                             (---)     바람이 인다!... 살아보아야 한다!     광막한 대기는 나의 책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파도는 가루로 부서져 바위 위에 용솟음치려 하네!     눈부시게 하얘진 책장들이여 날아가라!     부숴라, 파도여! 기쁨을 되찾은 물로써 부숴버려라!     비둘기들이 모이 쪼던 그 고요한 지붕을!                                                      ()     앞에서 글쓰기 불면의 진리만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변화와 현실을 수용하는 글쓰기를 인정한다. 여기 책은 열었다가 다시 닫힌다. 책장들은 날아간다. 현실을 버리는 글쓰기는 없는 것이다. 무한은 현실을 포용하고 펼쳐질 것이다.  생각의 변화는 시의 첫 연에 등장하였던 비둘기에 대한 묘사로도 드러난다. 비둘기는 이제 명상의 평화를 깨는 속된 호기심을 가리킨다고 한다. 비둘기든 돛이든 사실 무의미하며, 생각을 흔들 수 없다. 시가 비둘기에서 시작하여 비둘기로 끝난다는 사실은 닫힘을 말하는 것 같지만, 폐쇄를 넘어선 자존감을 마침내는 보여주는 것이다. 바다의 불안한 고요가 아니라 이제 파도와 마주할 힘을 자아는 되찾는다.  간단히 말해 파르크는 바다 앞에서 격리나 해방이나를 가슴 에리도록 번뇌하는 것이고, 여기서는 묘지와 바다를 앞에 두고 해방의 여지를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이다. 젊은 파르크는 인생의 매혹을 알게 되어 거기에 굴복하는 과정을 고통스러워하는 것이고, 는 영구불변에 매혹되었다가 이에 저항을 느끼는 과정을 기록한다. 결국은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다. 순수와 절대에 대하여 시인이 오랜 시간 쌓아왔던 물음이 에서 어느 정도 답에 도달하는 것이다.  와 모두 바다를 배경으로 택하면서, 시인은 바다의 정화력과 포용력, 재생력을 미리 마련해놓았던 것이다. 격리된 상태 속에 도피하고자 하는 파르크의 자의식적 태도는 말라르메의 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격리보다 중요한 것은 돌아와 자신의 동질성을 되찾는 일이며,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서두에 시인이 다음 같은 핀다로스의 일 절을 소개하는 까닭이다. "오 나의 영혼이여, 영원불멸을 꿈 꾸지 말고, 다만 가능성의 영역을 다 소진시켜라."     말라르메와 같은 곳에서 출발하였지만 두 사람은 이처럼 다른 곳에 도달한다. 발레리의 시가 발레리의 사상의 마지막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들 시를 비교해보면 확실해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말라르메가 사물과 관념과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추상화 단계에 거의 도달하였다면, 그리하여 고유한 상징체계를 축조하는 변함 없는 장인의 인내를 보였다면, 발레리는 다소 다른 양상이라는 것이다. 발레리는 사물에 가까이 있고 싶어한 시인이었다. 그는 사물의 매혹을, 그 구체적 힘을 이길 수 없었고 이기기를 원하지 않았다. 따라서 말라르메가 더 관념적 시인이라 하겠다. 상징주의의 완성에 그가 더 가까이 있는 이유다. 발레리는 새로운 시 형식을 연 "개척자는 아니었다(레몽, 1984:216)"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16)   6. 상징주의와 예술의 다른 장르   1. 상징주의와 음악     음악이 없이는 상징주의 문학의 지금과 같은 형태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상징주의 문인들은 언어가 빚어낸 경계들을 지우는데 많은 관심을 쏟았다. 그것은 감각을 정화시키고 인식이 구획지어지고 이성적인 틀을 버리는 것과 같은 차원의 일이었다. 자연히 예술 영역들 사이의 간막이를 허무는 일에도 주력하였다. 경계들을 넘어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상징체계를 조성하는 계획은 언어만으로 충족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음악을 필요로 하였다.   상징주의가 낭만주의의 막연하고 과도한 감성의 표출에 반기를 들어, 우연에 지배되는 영감이니 모호한 서정주의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은 비록 고답파에 반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고답파의 형식주의적인 면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징주의는 형식을 위한 형식이 아니라, 범우주로까지 확산될 수 있는 상징 논리를 영혼의 각성 위에 쌓아가고자 하였다. 그것을 위한 언어의 정화와 확산은 상징주의자들에게 주어진 기본적 소명이었다.   언어의 정화란 왜곡되고 마비되어 기능을 상실한 언어를 '모어' 상태로 되돌려놓는 일이었다. 그것은 언어의 근원, 즉 노래와 음악이 분리되지 않았던 때의 본래의 언어를 찾아가는 일이었다. 원천의 언어에 도달하기 위하여 언어의 모험가들이 성운처럼 떠오르게 되었고, 상징주의자들은 음악을 천착하였던 것이다.   보를레르는 모어와 수수께끼의 상형문자를 되찾고자 하였다. 베를렌은 음악이라는 기법을 통하여 언어의 확산을 기도하였다. 랭보의 모험은 결국 주술적 언어를 포착하는데 바쳐진 것이었다. 말라르메는 기존의 구문 구성법을 바꾸면서까지 언어의 순수 리듬을 찾고자 하였다. 따라서 기존의 구문법으로는 해독할 수 없는 난해성이 있게 된다.    음악은 시원(始原)의 언어, 즉 무한한 확산력을 가진 언어를 되찾는 가장 중요한 방법의 하나가 되었다. 암시와 모호성이라는 상징언어의 기법이 꽃 피는데 음악은 가장 큰 몫을 하였다. 음악이 상징주의 언어와 소통할 여지가 넓었다는 것은 음악이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물질적 경향을 훨씬 덜 띠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문학의 차원을 고양시키는 것으로 음악과 상징주의의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상징주의 문학은 이어서 음악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를 들어 라벨Ravel은 말라르메가 에서 보여준 탈인성화 이론을 자신의 음악 속에 적용하고자 하였다. 음악가는 거울 속으로 스스로 사라지는 것, 그것이 그의 피아노 조곡 이 도달하려 한 목표였다.   이제 우리는 상징주의 확립과 확산이라는 두 차원에 더욱 크게 기여한 음악가들에 대해 살피고자 한다. 상징주의 언어의 확립에 도움이 된 바그너와 음악에서 상징주의에 근접하였던 드뷔시가 그들이다.   리하르트 바그너   바그너(1813~1883)가 사망한지 2년 후인 1885년 2월에 에두아르 뒤자르댕 등은 을 창간한다. 이미 바그너는 프랑스에서 활발히 연주되고 있었고 상징주의자들 일부는 그에게 종교에 가까운 존경을 표하였다. 그에게서 부각되는 점은 음악 자체보다 사상이었다. 그는 정신예술과 상징예술의 선구자이자 거의 '종교의 창시자'(Marchal, 1988:171)였다.   그리하여 창간호에 상징주의 선언에 유사한 글이 실리는 등, 은 상징주의 운동에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 중 하나가 된다. 1886년 1월 8일 자에는 바그너에게 바친 여덟 편의 시가 실린다. 그들은 말라르메, 베를넨. 르네 길, 스튜어트 메릴, 뒤자르댕 등 모두 상징주의자들이었다. 이 모두는 "상징주의의 공식적 등장을 준비하는"(Marchal, 1993:47) 일련의 사건들이었다.   바그너를 상징주의자들에게 소개하여 상징주의 운동의 촉매가 되게 하였던 보다 앞선 선구자가 있다. 그는 바로 프랑스에서 '바그너주의'의 창시자 중 하나로 꼽히는 상징주의 시인 빌리에 드 릴라당이다. 릴라당은 당시 프랑스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바그너를 1860년(혹은 1861년)에 처음 듣게 된다. 작곡과 성악, 피아노에 능했던 그는 바그너가 프랑스에 알려지기 전에 직접 연주하거나 노래 부름으로써 그를 프랑스 문인 등, 소수그룹에 알려왔다.  카튈르 망데스, 쥐디트 고티에, 릴라당은 1869년 상징주의자들의 메카가 될 바이로이트로의 여행을 처음으로 시도하기도 하였다.   헤겔에 경도(傾倒)되었던 릴라당은 바그너와 직접 만나 그에게 헤겔의 철학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상징주의 운동에 더 많은 영향을 끼쳤던 독일 철학자는 헤겔보다 쇼펜하우어였다. 릴라당은 바그너의 중개로 상징주의자들에게 쇼펜하우어를 소개했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Raitt, 1986:131)   등 릴라당의 극작품은 바그너의 면모와 개혁 모델을 담으면서 극작품의 개혁에 앞장서게 된다. 상징주의자들 사이에 바그너를 유포시킴으로써 릴라당은 상징주의 극을 예감하게 하였는데, 그가 도입하고자 한 것은 바그너극의 신화적 요소 외에도, 구성방식과 음악성과 주제와 감정이었다. 그에게 바그너는 (Marchal, 1988:190).   바그너의 음악과 에술에 대한 개념이 상징주의 미학 발전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음은 누구나 인정한다. 바그너는 당시 상징주의자들의 요구에 여러 면에서 부응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답해줄 수 있었던 것은 구성과 문체 차원 외에도, 정신적 예술과 예술철학에 대한 갈증, 통합예술과 비교미학과 폭 넓은 형태의 연극에 대한 요구 등이었다.   바그너가 예술 분야들의 결합이라는 이상을 주장한 사실은 잘 알려져있다. 음악과 연극을 문학에서 통합하려는 말라르메의 시도, 그리고 신화와 종교의 근원에서 문학을 되찾으려는 그의 시도에 바그너는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그것은 무엇인가 '순수하고 비밀스러운 것'(Marchal, 1988:179), 다시 말해 근원에 대한 탐색을 가능하게 하는 종교와 신비의 기능이었다. 그것은 윈시 예술에 가까운 본원적 예술에 대한 암시였다. 바그너가 이상으로 삼은 예술 장르 간의 결합이라는 꿈은 프랑스에서 결실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바그너의 음악과 신화와 연극의 결합은 민중에게 민중의 근원을 되찾고 무의식 속에 집단의 동질성을 깨닫게하는 것이었다. 그 동질성으로 언젠가 새로운 나라가 세워질 것이라는, 도래할 것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요컨대 연극은 집단 무의식의 바탕 위에 잃어버린 신화의 힘을 부활시키는 것, 예술을 종교적 예찬의 수준에까지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 무엇보다 바그너의 극은 '신화적 상징주의'의 모델을 시인들에게 주입하였다. 바그너와 더불어 신화는 상징예술의 자연스런 지지대가 되었다 (Marchal, 1993:98).     바그너는 그러나 이러한 그리스식 모델을 재생시키려하면서도 민족신화를 초월하지는 못하였다. 말라르메 같은 시인이 보기에는 그에게는 인류에 대한 더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성찰의 면모가 부족하였다. 엄밀히 말하면 "말라르메가 말하는 연극의 음악적 혁신이란 바그너식 모델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상적 연극에 대한 말라르메식 모델이었다(Marchal, 1988:175). 말라르메는 바그너에 대하여, "모든 것은 원초적 흐름 속에 다시 젖어든다. 그러나 그 원천까지 가닿지는 못한다"(말라르메, 1974:544)라고 평한다.   그럼에도 그의 절대의 '책'이라는 개념 속에 극에 대한 개념이 녹아있는 것은, 바그너의 이상적 연극개념과 상상력이 영향을 끼친 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절대의 '책'이라는 개념에는 정신적 연극이라는 개념이 근본적으로 자리한다.   그 외에 바그너의 음악이 상징주의, 특히 후기 상징주의 운동에 끼친 영향은 부인할 수 없다. 종교적 계시와 그 구원,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절대적 사랑 등, 그의 신화적 주제들은 다양한 상상력을 촉발하였다. 화가들은 그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어 자신의 시각으로 다시 해석해내었다. 음악을 사랑하였던  르동은 바그너늘 다룬 판화들을 제작하였다.   클로드 드뷔시   이론적 성향이 강한 말라르메는 미술보다 연극과 음악에 대한 의견을 더 많이 내놓았다. 말라르메가 주재한 화요회에는 그에 열광한 젊은 문학가, 화가, 음악가들이 몰려들었다. 거기에서 그는 언어 탐구에만 집착하지 않았으며 20년 연하인 드뷔시(1862~1918)와도 깊은 교우를 맺었고, 그의 음악에서 영향을 받기도 한다. 이때부터 드뷔시도 시를 쓰기 시작하고 그 시에 곡을 붙이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그가 노래의 가사와 '서정적 산문들'을 썼다는 일화는 언어의 리듬과 음악의 리듬과의 관계, 시와 산문, 음악과 문학과의 관계를 보여준다. 그 글쓰기의 목적은 상징주의의 순환적인 글쓰기에, 모든 형식적인 절차에서 해방된 인상주의를 대립시키고자한 것이었다. 그는 시의 리듬과 음악의 리듬간의 피할 수 없는 갈등에서 멜로디를 해방시키고자 하였다. 그래서 자신이 가사를 쓰면, 즉 더 유연성이 있는 산문을 쓰면, 노래의 멜로디의 굴곡에 더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멜로디를 음악화했을 때 소절의 유연성과 갑작스런 비약, 그리고 느릿한 주문 효과들은 이미 드뷔시 특유의 것이었으나, 가사들은 여전히 상징주의에 대한 과도한 경도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순환구조, 데카당적인 매력, 신조어, 다소 인위적인 표현의 우회 등이었다.   말라르메는 화요회에서 자신의 극시 속에 잠재해있는 유머와 풍자와 감각적인 생명력에 대해서 드뷔시에게 피력한다. 이 시에 곡을 붙인 으로 드뷔시는 음악의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된다. 세련된 울림과 몽환적 분위기, 아름다운 화음 등이 일찌기 이처럼 완벽한 현악 반주 속에 플루트와 오보에가 연주하는 변덕스럽고 난해한 멜로디는 성숙한 드뷔시 작품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 작품을 통하여 드뷔시는 음악에서의 '무언가를 바꾸었고,' 새로운 운율과 새로운 미를 창조한다. 이러한 일은 바그너의 이래로 없었던 일이다. 상징주의자들과 교유하고 있을 초기 무렵에 드뷔시는 바그너의 취향을 벗어나지 못했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바그너가 물려준 소리의 유산을 확대하면서 뛰어넘은 것이다. 리듬의 섬세함, 멜로디의 움직임, 장단조 특성의 폐지, 화음의 자유로운 확신과 연속, 분위기를 빚어내는 재능 등은 미적 감각을 새롭게 하고 감수성과 셈세함을 증대시킨 것이었다.   드뷔시는 말라르메의 그 외의 시 몇 편, 베를렌과 그외 시인들의 시 등, 많은 상징주의 작품에 곡을 붙였다. 보들레르와 릴라당에서 영감을 받아 와 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상징주의 문학과 미술을 자신 속에서 융해시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내려는 그의 특이한 시도는 말년에까지 계속된다. 그 결과 그의 2집으로 된 는 피아노 문학을 완성하였다는 평을 얻게 된다. 음악으로 맺은 암시의 시학의 결실을 이제 역으로 드뷔시가 수용하는 것이다.   드뷔시가 에서 애용했던 침묵기법 또한 암시의 미학을 음악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바그너풍의 음악을 원하던 드뷔시는 모리스 메테를링크의 상징주의 극 를 보고 감명 받아 오페라로 작곡한 것이다(1902). 이 상징주의 극은 "포레, 쉔베르크, 시벨리우스 등 다양한 음악가에게 영향을"(Marchal, 1993:59) 주었다.   과 외에도, 드뷔시의 , , 1, 2집, 피에르 루이스의 시를 작곡한 가곡집 등은 상징주의의 영향을 보여준다.   드뷔시의 음악은 모호하게 암시하는 효과를 위하여 다채롭고 난해한 표현들로 가득 차있다. "나의 음악은 (---) 사람들의 마음 속에 스며드는 것과, 어떤 풍경이나 대상과 동일시되는 것, 이 두 가지 목적만을 갖는다"(타임, 1993:69)라고 드뷔시는 말한다. 그에게 영감을 제공한 것은 '비 내리는 정원', '안개', '달빛' 등, 그의 작품제목에서 볼 수 있는 풍경들이었다.   물 흐르는 듯한 아라베스크 무늬와 영혼의 상태를 재현하는 베를렌풍의 풍경들, 해석을 요구하는 난해한 이미지 들의 이어짐, 또한 이미지들 속을 집요하게 파고들다가 다시 다른 이미지들로 넘나들기 - 이러한 드뷔시의 요소들은 상징주의를 음악의 차원에 도입한 것이었다. 음악에서는 드뷔시의 작품들을 상징주의라고 흔히 칭하지는 않지만, 문학에서는 이러한 상징주의를 '애매한 상징주의' 또는 '제3의 상징주의'(Marchal, 1993:6) 등으로 수식한다.   일반적으로 음악의 '인상주의'는 1900년경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인상주의 음악은 풍부하고 섬세한 음색, 자유로운 형식적 구성, 분명치 않아 보이는 선율과 리듬의 윤곽, 세분화되고 인상적으로 연결된 선율, 그리고 전통적 조성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을 보인다. 회화의 인상주의적 특징과 유사하게, 선율이나 화성의 흐름이 유동적인 형식인 드뷔시의 음악은 인상주의라고 불린다.   그러나 드뷔시는 자신의 음악이 '인상주의'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가벼운 피상성과 일상성을 싫어하기도 하였거니와, 자신이 회화의 인상주의를 음악에 모방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또한 음악은 항상 외적 인상을 내적인 표현으로 변환시킨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음악가는 "낮이나 밤, 하늘과 땅의 매혹을 알아보고, 그 분위기를 깨울 수 있는 선택된 사람"이고, 이 모두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음악이라고 보았다. 인상주의 미학의 한계점인 피상성의 재현을 피하려함으로써 그의 음악은 상징주의의 모험에 근접한 것이다.    보들레르는 문학을 매춘이라고 하였고 랭보는 사기라고 하였다. 드뷔시가 "음악은 거짓 중 가장 아름다운 거짓"이라고 하였을 때, 우리는 '문학은 영광스러운 거짓'이라는 말라르메의 유명한 화두를 읽게 된다.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17)   2. 상징주의와 미술     메시지 전달이 아니라 빛과 색채의 변화를 포착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던 인상주의가 약 10년밖에 존속하지 못했던 이유는 빛과 색채가 변하는 방식에 대한 사고의 차이 때문이었다. 빛과 색채에 대한 자신들의 태도가 나타내고자 하는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상주의자들도 깨닫는다. 르레상스 이래 이어졌던 사실주의의 추구는 더 이상 필요가 없음이 확고해졌던 그즈음에, 영적인 상상력을 통하여 상징으로 예술을 전달하려는 욕구와 꿈과 환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갔다. 그리고 꿈과 상징과 성의 중요성에 대한 프로이드Sigmund Freud의 발견이 발표되었다.   모레아스의 상징주의 선언이 있었던 1886년, 베르나르와 앙크탱이라는 두 화가는 "사상이 회화 기법보다 우위를 차지하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인상주의를 포기한다"(타임, 1993:83)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것은 1880년대 후반의 반예술 운동을 위한 상당히 중요한 결정이었다. 그들은 시각을 통한 분석보다는 감정의 경험에 근거한 예술을 추구했으며, 그림의 주제를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인 감정에서 찾았다(타임, 1993:83).     그리하여 고갱과 고흐 등은 상징주의를 예술의 아방가르드로 부상시킨다. 이러한 1880년대 후반의 반(反)예술 운동은 정신적, 종교적 가치에 대한 상실감과 물질세계와의 구조적 충돌 속에서, 두 세계의 갈등을 해소하고자한 것이다. 상징주의화가들은 부르주아의 물신주의와 대중주의에 혐오를 느끼고 그들의 관습이 예술을 파괴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과학에 대한 맹신에서 시작된 기계적 삶에서 해방되고자 하여, 감정과 욕망과 꿈과 신화를 표현하였다. 인상주의의 한계인 일상성과 피상적 재현을 버리고, 정신세계와 감정을 시각화하였다.   보들레르에게 향기, 소리, 색채는 영혼의 상태까지 전달하는 것이다. 상상력으로 재현되는 환기력 있는 시각 예술은 그에게 내재적 관념과 본질적 실재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을 따라 상징주의 화가들은 자연에 대한 모방주의에서 해방되어, 색채, 선, 형태로써 내적인 아름다움을 고양시키고자 하였다. 또한 이집트, 원시미술, 중세, 근동, 민족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다양성과 직관과 감각을 추구하였다. 원시미술에는 본능, 무의식, 꿈이 자유롭게 표현되어 있었다. 미술은 이렇게 비물질적 세계와 개인의 내면을 중시하며 도덕성의 차원을 넘어섰고, 탐미적으로 흐르거나 '데카당'하게 되었다.   한편 상징주의 문학운동은 스스로를 정당화시켜줄 화가들을 찾게 되었는데, 위스망스는 모로와 르동을 발견하여 이들을 1884년에 발표한 자신의 소설 에 몇 페이지씩 언급한다. 모로는 상징주의를 풍요하게 하는데 선구적 역할을 하여 상징주의 문학의 확립에 기여한다. 르동은 상징주의 이론을 미술에 실현시켜 상징주의 미술의 전형을 만들었고, 그의 작품은 다시 상징주의 문학에 전파되어 문학에서 많은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귀스타프 모로   모로(12826~1989)는 1856년부터 4년간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원시 화가들과 고대의 예술, 모자이크와 비잔틴의 에나멜화에 매력을 느낀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그림은 괴이함과 환상성 등으로 명성을 얻게 된다. 1880년경 유행한 신비로운 동양문화에 대한 동경의 결과, 사람들은 불화(佛畵)와 이탈리아 미술이 결합된 것 같은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띠는 그의 그림에 열광한다.    그는 그림의 기초를 문학, 철학, 고고학, 신지학 등에 두어 신화와 소설에서 주제를 얻었다. 데카당스 문인들은 그의 정교한 그림에서 전설, 신화, 복잡한 상징, 팽창적인 배경과 색조 등을 읽어내고 경탄해 마지 않는다."인도신전의 이미지에서 잔혹하고 엄숙하며 남녀양성으로 보일 만큼 모호하게 그려진 여성들과 지나치게 화려한 실내장식들은 세기말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장티,2002:59) 문예화가라고도 할 수 있는 모로의 그림에 문인들은 매료되어 그것을 시화하거나 소설로 옮겼다.    그러나 모로는 자신이 문예화가라고 불리는 것에 대하여 분개하며, 미술의 본질과 의미에 대헤 다음처럼 한다.          물질의 외피와 피상적인 육체미 밑을 흐르는 영혼의, 정신의, 마음의, 그리고 상상의 움직임을 반영하고, 시간을 초월하여 인류가 느끼는 이들 신성한 욕구에 응답하는 저 미술은 얼마나 감탄할 만한 것인가? 이것은 신의 언어다. (---) 나는 선과, 당초무늬(아라베스크) 등 조형예술에 허용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사상을 환기시키는 일에 전력을 다했다. 이것이 나의 목적이었다(루사-스미스, 1990:68-71)     모로는 여러 가지 조형수단을 통하여 상징과 암시의 예술을 지향한 것이다. 그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의 본질을 그림을 통하여 느끼게 하고자 하였다.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 느끼는 것을 믿고 그것으로 특유의 내면 풍경을 창조하였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풍경의 재현이 아니라 풍경이 환기시키는 꿈과 환상이었다. 그의 인물들이 환기시키는 생각들은 개인의 내적인 섬광들을 촉발시키는 것이다. 그의 환상은 단순한 환상의 재현이 아니라 치밀한 생각과 계획의 결과였다는 점에서도 상징주의적이었다. 르동은 "모로는 생각들의 비약에서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자신의 형식을 다듬어내는 작가와 같았다. 그는 자신의 상상력의 나아감을 놀라운 이성으로써 인도한다(르동, 1961:65)"라고 말하고 있다.    모로는 말라르메로부터 높이 평가받아 상징주의 시운동과 관련되며 상징주의 운동에 중요한 몫을 하였다. 그는 "위대한 신비는 그 스스로를 완성시키고 자연 전체는 이상과 신성함으로 채워져 모든 것이 변형된다."(루시-스미스, 1900:71)라고 하며, 보다 높은 세계를 향한 고양(高揚)을 꿈꾸었고, 그 실현을 위하여 상징주의자들처럼 정교한 계획을 따라 작품을 완성하였다.  사물을 변형시키는 힘과 상상을 촉발시키는 그의 놀라운 능력은 문학을 또 다른 길로 안내하는 지침이 되기도 하였다. 후에 그가 사람들에게 잊혀졌을 때 초현실주의자들은 그를 망각에서 불러낸다. 등에서 그가 형상화해내었던 무의식의 세계에 초현실주의자 브르통은 크게 매료된다. 그는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의 선구자였으며 20세기 회화의 길을 열었던 것이다.  그는 오리엔탈리즘과 기독교와 유대주의와 비교주의를 교묘히 융합하고, 몽상의 동물들과 모세, 프로메테우스, 양성의 존재 등으로 다양한 꿈들을 전한다. 인간의 내적 감각에 대한 절대적 감수성과 문학적 소양으로 상상력을 촉발시켰던 모로는 다수의 시인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졸라는 모로의 상징주의에 대해 다음처럼 요약한다.         모로는 사실주의에 대한 증오로 독창성을 찾고자하는 예술가가 빠질 수 있는 최고도의 기상천외함을 가장 놀랍게 드러낸다. (---) 현대의 자연주의는, 자연을 연구하려는 예술의 노력은 분명 반작용을 초래할 터이었고 이상주의적 예술가들을 산출하게 되어있었다. 상상력 영역에서의 이 역행적인 움직임은 귀스타트 모로에게서 아주 흥미로운 특질을 지니게 된다. (--) 그는 낭만적  정열과 안이한 배색을 경멸하였고 그림자와 빛의 대비로 화폭을 뒤덮기 위해 영감이 떠오르길 기다려 눈을 현혹시키는 붓의 뒤엉킴 따위를 경멸하였다. 그게 아니었다. 구스타브 모로는 상징주의에 헌신한 것이다. 그는 수수께끼 놀이들로 이루어진 조각그림들을 그렸고 태초의 원초적인 형태들을 다시 찾아내었으며 (---) 그의 꿈들은 더 기교적이고 복잡하며 수수께끼 같다 (---) ()     모로의 상징주의에 대한 헌신은 자연주의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자연주의자 졸라 자신도 그 반작용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로는 사실주의와 낭만주의와 인상주의와 자연주의에 반대하면서 상징주의를 풍부하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세기말의 에술과 데카당스의 한 지침이 되었고, 초현실주의를 촉발하는데 한 몫을 하였다. 이처럼 모로는 많은 사조들의 중심되는 경계선 위에 서서, 다양한 예술 사조의 프리즘 역할을 하였다.   오딜롱 르동   르동(1840~1916)은 1879년 석판화집 연작으로 화단에 데뷔하는데, 위스망스는 자기 소설에서 주인공이 숭배하는 예술가로 르동을 그린다. 르동은 1885년 위스망스의 소개로 말라르메와 알게 되어 급속히 친해졌으며, 시인의 사망 때까지 오랜 기간 교유한다.     말라르메는 "대상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시가 주는 기쁨의 4분의 3을 제거하는 것이다", "대상을 '암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시의 꿈이다"(Mallarme, 1974:869)라고 한 바 있다. 르동은 인상주의를 강하게 부정하였으며, 그의 목판화와 석판화는 암시적 기법을 충실히 실현하게 된다.   그는 "나의 데생들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지 정의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아무 것도 결정짓지 않는다. 그것들은 음악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미결정의 모호한 세계 속에 있게 한다."(르동, 1961:27-28)라고 말한다.    말라르메는 르동에게, 화가는 시인과 같은 방식으로 표현하지는 않으나 화가의 상상력과 시인의 환상은 결국 같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음악 애호가였던 르동은 상징주의자들이 문학에서 음악을 사용하였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미술에 음악을 사용하여 상상적인 것들에 논리를 부여하였다.   그의 미학은 그리하여 "시각의 미학이라기보다는 상상력의 미학에"(장티, 2002:53) 가까워지게 된다. 그는 말한다.          암시적 예술은 음악을 불러일으키는 예술 속에 더 자유롭게, 빛나게, 전적으로 존재한다(르동, 1961:26).     암시적 기법은 음악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그는 미리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예술은 현실이 아니라 신비이기를, 혼의 상태와 생각을 자유로이 반영하는 것이기를 희망하였다. 그리하여 르동은 자신의 판화들을 유례 없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그의 판화들은 다양한 장면들이 덧입혀져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표현되어있다. 이미지 안에 이미지가 내포되므로, 신비와 모호함으로 가득하다. 따라서 감상자의 의식과 무의식의 움직임을 촉발한다. 그것은 암시의 미학을 철저히 따른 결과였다.    암시의 미학을 따르는 예술작품은 적극적인 감상을 요구한다. 르동의 감상에 있어서는 감상자의 해석이, 따라서 그의 내면의식이 아주 중요하다. 감상자들은 찬탄하거나 보는 것만으로 그칠 수가 없는 것이다. 화가는 말한다.         (---) 감상자의 정신 속에 파생된 효과는 그를 허구세계로 이끌어준다. 이 허구세계의 의미는 감상자의 감수성과 모든 것을 확대시키거나 축소시키는 그의 상상 능력에 따라, 커지거나 작아진다(르동, 1961:27)     이러한 생각은 예술의 수용 문제를 문학에서 다루고자 하였던 말라르메의 시도를 떠올린다. 말라르메는 또한 문학과 예술에 있어서 사물을 '보는 법'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강조하였고, 이 점에 있어서도 그들은 서로 통하였을 것이다. 르동은 "본다는 것은 사물들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파악하는 것이다"(르동, 1961:48, 62)라고 하였다.   그의 그림들이 감상자들에게 자아내는 신비로운 분위기는 그가 지니고 있던 신비에 대한 감각에 의한 것이었고, 그것은 상징주의 문학에서와 유사한 차원을 가리키고 있었다. 르동이 화가가 되지 않았더라면 상징주의 문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 평자도 있을 정도였다. 모리스 드니도 지적했듯이 르동이 영혼의 상태나 감정의 깊이, 내면적인 비전을 일러주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도 그릴 수 없다고 생각함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는 상징주의 문학에서 신비를 표현하는 방식을 더욱 상상력 쪽으로 밀고 나아간다. 그는 사물에 대한 표현에 그치지 않고 다른 차원의 신비까지를 감상자에게 촉발하고자 하여, 모호성을 극대화시킨다. 그에게 신비란 그림 속에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신비란 관찰자의 '마음상태'에 따라 형성될 어떤 형식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 하였다.   그의 상상력은 조형적 실현 차원을 이미 넘어선 것이었다, "나의 독자성은 보이는 것의 논리를 보이지 않는 것에 가능한 한 적용시켜, 있음직한 것의 법칙을 따라 있음직하지 않은 존재들을 인간처럼 살아있게 만드는 데 있다"(르동, 1961:28)라는 그의 유명한 주장은, 그를 초현실주의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 수긍하게 한다.   르동의 조형적 실현은 무의식의 심연에까지 가닿는 특징이 있다. 이 점에서도 그는 초현실성과 잘 연결된다. 그러나 그의 환상과 몽환의 세계는 뿌리 없는 것이 아니며 그 뿌리는 면밀히 관찰된 현실에 있다. 자연의 대상을 섬세히 포착한 후에 상상적인 것의 재현이 스스로 펼쳐지도록 하는 것이다. 자연은 그의 예술의 원천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말한다.          나는 나 자신을 따라서 예술을 하게 되었다. 나는 가시적 세계의 경이를 향하여 눈을 뜨고 예술에 임하였으며, 또 그것은 누가 무어라 하였건, 자연적인 것과 삶의 법칙에 순응하겠다는 지속적인 관심에 의한 것이었다(르동, 1961:9)     자연과 삶의 법칙에 순응하며 예술을 통하여 우주적 상징으로 나아가는 것은 르동의 자연스런 여정이었다. 그는 " '부호(Code)'는 그것이 우주적 의식의 진지한 표현이 될 때 복음서를 대신할 수 있을 것"(르동, 1961:26)이라고까지 생각하였다. 상징주의 문인들의 궁극적 지향을 대변하고 있는 듯한 부분이다.   신비와 불안과 환상적 분위기를 담고 있는 그의 그림들은 자주 문학화 되었다. 또한 르동은 '에드가 포우에게' 라는 제목으로. 이 시인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6점으로 된 판화집을 발행하고(1882년), 바그너를 다룬 판화를 여러 점 제작하기도 한다. 말라르메에게는 석판화집 을 헌정하고, 의 판화를 제작한다.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18)   3. 상징주의와 연극   상징주의 극 상징주의 소설에 비교했을 때, 상징주의 극은 상징주의의 면모를 상대적으로 더욱 화려하게 구현하였다. 상징주의 극은 바그너와 말라르메 없이는 생각할 수 없도록 그들의 기여가 크다. 말라르메는 연극의 모든 장치를 배제하고 순수 한 이상주의 무대 위로 옮겨놓는 것이다. 이러한, '극 자체의 부정' 혹은 '문학적 반연극(反演劇)'(Marchal, 1993:125)은 1890년 이후의 연극에 대단히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1890년에는 릴라당의 유작 이 공연된다. 이 극은 상징주의, 이상주의, 바그너 등, 모든 기법을 동원한다. 나아가 일부 상징주의 극은 공감각을 무대에서 시험하기도 한다. "라는 극에서는 공연장에 향수가 뿌려지기도 한다 (Marchal,1993:127).      말라르메의 이상주의 연극 미학은 이러한 과도한 시도를 거부하였다. 무대장치는 순수 허구를 그려내려는 목적만을 지녔다. 즉 색깔과 선들에 의한 유추적 효과만을 노려, 무대는 배경과 몇 개의 유동적인 휘장들로 되어있었을 뿐이다.   메테를링크의 는 정신적 연극과 시적 연극을 보여주었다. 여기서는 가스를 나오게하거나 조명의 기술 등을 도입함으로써 물질적 배경들을 부정하였다. 배경은 없거나 있어도 암시적인 것이었다. 극단적인 절제로써 진실주의나 자연주의에 반대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무대는 거의 부호들로 이뤄내고자 하였다. 즉 책의 형태를 닮아가려한 것이다.   폴 클로델의 연극은 상징주의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으나, 정통적 상징주의는 아니었다. 그는 시를 해방시켜서 시적 연극을  펼쳐내고자 하였다. 거기서 그는 내적 탐색을 보여주거나 종교적 신비를 드러내려 하였다.    종합예술   바그너는 통합 예술작품의 시대가 점차 도래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통합적 작품이란 그리스 연극을 모델로 연극과 음악을 결합시켜 하나로 통일된 작품이다.     각각의 예술은 자신의 힘의 한계에 도달하자마자 인접한 예술의 도움을 청하게 된다. (--) 각 예술 속에 깃들어있는 이러한 특이한 성향, (---) 그것을 나는 음악과 시의 관계 속에서 가장 놀라운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여겼다. (---) 이렇게 개별적인 모든 예술들을 포용하며, 그들은 또 각자 개별적으로 완성되게 하면서 그 예술들이 전체를 결합하는 예술작품은 나는 나 스스로에게 제시하려 애썼다(, 1860: Marchal, 1993:159).     에술의 통합을 계획한다는 것은 연극과 음악이 분리되지 않았던 원시 시절의 예술형식을 되찾겠다는 생각이기도 하다. 후에 의 공저자가 되는 에두아르 쉬레는 미래의 예술에 대해 예측한다(1875년). '책, 바카스, 리라'라는 제하의 글에서 그는 다음 같이 말한다. 태초의 세 자매인 시, 춤, 음악은 함께 태어났지만 오늘 날에는 분열되었다. 새로운 결합이 이룩된다면 그것 자체가 하나의 확실한 기호가 될 것이고, 그 속에서는 육체, 영혼, 생각이 조화되며 스스로를 되찾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마지막 통합의 수단이자 목표로, "책은 우리 시대의 주된 목표이자 변별 기호가 되지 않았는가? 그것이야말로 이제 모든 것을 표상하고 흡수하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책'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바그너와 쉬레의 글에서 나타나는 통합예술의 모습은 말라르메의 예술론 이해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그의 통합예술은 의도적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다. 극시 과 를 쓸 때, 그는 극에 대한 야심은 덮어두고 몇몇 장면들에 대한 초안으로 만족하려 하였다. 그러나 극은 그 본질적 특성상 결국 미학적 차원을 넘어서 거의 종교에 닿아있는 현상으로 시인에게 다가오고, 시인은 극시의 완성에 전념하게 된다.   말라르메의 연극 미학은 신화에 기초하며, 또 그는 고전주의의 근원에서 자신의 꿈을 되찾고자 한다. 그 꿈은 쉬레의 글에서 나타난 생각과 많은 부분 유사하다. 고전주의는 넓은 의미의 고전주의였으며, 따라서 그는 바그너에 만족하지 않았다. 바그너의 통합예술은 태초의 근원의 언어에 가닿지 못하는 것으로 시인의 눈에는 보였던 것이다. 그는 바그너가 그리스 신화가 아니라 게르만 신화의 영웅들, 즉 죽은 인물들에서 동기를 찾는 점이 불만이었다.   비인칭 극   말라르메의 극에 대한 개념은 고전주의나 사실주의를 넘어선다. 소품과 장치들로 가득 찬 사실적, 전통적 무대를 그는 거부한다. 무대는 장치들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무대가 '중성적 공간'이 되어야 관객의 정신이 자유롭게 투영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중성적 공간에서 추상적 인물의 전형을 그려내고자 한다. 따라서 영웅주의적인 바그너극과 통속극을 거부한다. 그것들의 일상적 틀은 환기적이고 암시적인 효과를 죽이는 것이었다.   요컨대 그는 '비인칭 극'을 지향한 것이다. 무대 장식을 없앤 중성적 공간에는 본질만이 재현된다. 그는 을 모델로 삼는다. 거기서는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하는 본질적 문제만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연출과 모든 조역들과 단역들이 사라지고 주인공의 환영들만 등장하는 극으로 을 읽는다. 이 모노드라마야말로 그가 추구하는 정신의 극이다. 그러므로 을 제외하고는 어떤 연극도 시인의 생각에 맞지 않았다.   일부 상징주의자들은 말라르메의 생각을 따라 연출의 힘보다는 텍스트에 무게를 두고자 하여, "읽혀지는 희곡이 상연되는 연극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배우들의 역할은 "종종 내레이터 정도로 축소되었고, 꼭두각시로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장티,2002:96-97). 이상주의 극에 대한 이러한 경도는 결국은 극에 대한 거부, 즉 반연극이었다.   극의 물질성을 확실하게 덮어주는 장르는 바로 발레였다. 발레는 모든 장치를 버린 것으로, 말라르메는 그것을 '육체의 글쓰기'라고 하였다. 발레는 백지와 같이 중성인 무대 위에서 행해지는 '간결한 글쓰기'였다.    연극을 정화하는 또 하나의 방식은 '무언극(mimique)'이었다. 무언극은 순수 허구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중성의 공간과 무명의 배우를 결합시킨 '최소의 연극' 이었다.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19)   4. '책'과 문자예술   [그것이]                    수라면 별에서 나온                                   그것이 존재한다면                               빈사의 산란스러운 환시와는 다르게                           그것이 시작한다면 멈춘다면                   부정되었을 때 솟아나오며 나타났을 때 폐쇄되나                                         마침내                                 휘귀하게 퍼트려진 어떤 과잉에 대해                                                       그것이 밝혀진다면                                              하나일지라도 합이 자명함을                                       그것이 비춰준다면     [그것은]                                                    우연     말라르메는 24페이지로 된 라는 시에서 여러 실험을 행하는데, 그 중 하나는 페이지의 개념을 깨고 있다는 점이다. 페이지를 '장(feuillet)'의 개념으로 대치시키면서, 좌측 상단에서 우측 하단으로 이어지는 글쓰기를 한다. 여기에 여덟 가지 다른 활자를 배치한다. 배치는 가장 큰 캔버스가 된다. 위의 시는 아무 부분이나 옮겨본 것이다(좌우 페이지 상단 부분)   이 시, 혹은 극시는 파선의 풍경만을 보여준다. 난파선의 선장은 절망의 상황에서 주사위를 던질 것인가 말 것인가를 햄릿처럼 망설인다는 이야기며, 그밖에 아무런 행동도 이뤄지지 않는다. '시와 산문 종합'(Bernard, 1988:311)이라고도 하는 이 시에서, 활자들은 감각과 생각의 변화에 따라, 명상의 깊이에 따라, 음악의 강약이 표기되듯 크기와 배치가 달라진다. 시행들도 생각과 함께 움직이며, 때로 이탤릭체로 때로 로만체로 변한다.   잔잔한 물결이 흐르듯 작은 글자들로 어느 정도 규칙성을 띠던 시행들은 홀연 사라지고 백지 위에 커다란 단어 하나만 남기기도 한다. 단어의 주변은 커다란 침묵이다. 크고 작은 글자들은 문자의 심포니를 만들어내지만 난파 뒤에 계속되는 정적과 침묵 또한 말을 한다. 한 페이지가 완전한 공백이 되기도 한다.   모든 장마다 시구 주변으로 여백이 둘러싼다. 행간에도 다양하게 여백들이 배치되어, 클로델의 말대로 '여백에 의한 생각의 분리법'(Bernard, 1988:319)을 보여준다. 침몰이라는 절망의 상황을 보여주기 위하여 활자들은 페이지 밑바닥에 파선 조각처럼 침전된 모습으로 배치되기도 한다.   치밀한 계산 하에 사용된 여백의 기법과 다양한 행간두기 등은 시집 전체가 가장 정교하고 창조적인 건축물, 혹은 하나의 미술작품이나 악보집으로 빚어지게 한다. 아폴리네르의 은 이러한 방식을 사용한다. 누보로망에서의 여백두기도 이 방식을 따른 것이다. 해석은 아직 많은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서구 문학사상 가장 혁명적이며 난해한 문법이다.   "한번의 주사위 던지기는 결코 우연을 폐지하지 못하리라"라는 시의 대명제는 가장 굵은 글씨로 시집의 처음과 끝 장 모두를 관통하여 지나간다. 그 주변으로 부속 문장들이 나무의 잔가지처럼, 물결무늬처럼, 거미줄이나 레이스처럼, 악보의 음표처럼 종속된다. 대명제 주변으로 산재한 각각의 문장들은 연계되어 통합적 역동성을 보여주고, 때로 침묵을 때로 폭풍을 그린다.   이 시의 중요함은 시가 닫힌 채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도 있다. 시집의 12장은 펼쳤다 닫혔다 할 수 있는 부채를 상기시키는 구조이다. 대명제가 시집 전체를 가장 큰 문자들로 관통한 후, 시의 마지막에는 작은 문자로 "모든 생각은 주사위 던지기를 말한다"라는 문장이 이전의 시행 전부을 요약한다.   시집 전체는 이렇게 단 두 개 문장으로 이뤄지며, 시집은 닫힌다. 그러나 마치 보들레르가 에서 마지막 행을 통하여 순환구조를 만들어내었듯이, 마지막 문장을 통하여 시는 순환구조를 이뤄낸다. 주사위 던지기는 결코 끝날 수가 없는 것이다. 책도 결코 닫힐 수가 없다. 생각은 다시 계속되는 것이며, 따라서 시에서 구두점은 사라진다. 언어는 확산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이렇게 지니게 된다. 닫아도 그 속에 바람의 가능성은 언제나 지니고 있는 쥘부채와 같다.   '책'과 극 시인은 말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한 권의 '책'에 도달하기 위하여 존재한다"고. 랭보가 자청한 모험은 태초의 모어가 지닌 환기력을 확보하기 위한 가파른 재난이었다면,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여정을  생각하게 된다. 말라르메의 언어는 마지막에야 '책'과 극에 도달한다. 우연이 아닌 언어의 순수역학을 따르는 책, 대문자의 책(Livre)이다.   시인은 이상이 아니라 실재하는 '책'을 꿈꾸었다. '책'을 꿈꾸었다. '책'이라는 의미의 불어는 대문자로 쓰이던 성서를 뜻하기도 한다. 시인은 '책'이라는 '대작(大作)을 구워내는 가마에 불을 때기 위하여 '연금술사처럼 인내하며', 모든 삶의 노력을 경주하였다고 베를렌에게 고백한다. '책'은 관념상의 책이 아니었다. 성서도 존재하는 책이듯이.  '대작'이라는 꿈은 완전한 언어에 대한 꿈으로서, 언어 연금술을 전제한다. 불어로 '대작'이라는 말은 비천한 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연금술사의 화금석(化金石)을 의미하기도 한다. 는 많은 점에서 화금석에 닿아있다. 화금석의 탄생에 의하여 진정한 모어가 우주에 확산될 수 있기를 시인은 꿈 꾸었던 것이다.     '책'의 계획은 '책'의 읽기 계획까지 포함한다. 시인은 시 낭독회에 대하여서도 대단히 특이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책'은 고정되게 제본된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낱장의 페이지들로 되어있다. 낭독자는 책을 낱장별로 따로 읽으며, 낭독한 후에 묶거나 정리함에 넣으면 또 다른 책이 된다. 낱장들은 여러 방식으로 결합된다. 책장들의 무한한 조합을 가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책'은 이렇게 쓰기와 인쇄에 그치지 않고 읽기까지 포함하는 커다란 계획으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글은 쓴 자의 차원을 넘어선다. 쓰기는 더 이상 닫힌 공간에서 자족하지 않는다. 읽기의 확대이자 독자의 공간의 확대 - 이제 수용의 문제가 주요 이슈로 대두된 것이다.    나아가 시인은 극의 요소를 '책'에 도입하고자 한다. 시, 음악, 미술, 춤 등 여러 예술 범주들을 융합해낼 수 있는 극처럼, 진정한 시언어는 여러 범주들이 교감과 통합을 이뤄내며 원시예술처럼 무대 위에 펼쳐져야 한다. 시의 낭독회는 이러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오랜 세월 분업화로 고착된 분열의 예술이 아니라 통합을 시도한 것이다. 분열된 바벨의 언어가 아니라 제례(祭禮)와 예술의 통합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읽기는 이제 정신을 무대에 올리고 연출해내는 작업이 된다. 시적 공간이 재창조되는 작업인 읽기 - 읽기는 내면화된 극이다. 쓰기에서 읽기로 나아가는 것은, 내면의 시를 극적 차원으로 고양시키는 일이다. 읽기는 하나의 의식(儀式)이 된다. '책'은 그리하여 '정신의 도구'이자 '정신적 연극의 장소'로 완성된다. 여기에 시인이 말하는 '문자 속의 신비'가 빚어지는 것이다.      언어는 더 이상 자족적이지 않게 된다. 독자에 대한 의식이 전환되고 그 몫은 무한 확대된다. 독자는 이제 나 야유하는 자가 아니다. 독자는 참여자가 된다. 무한한 교감이 약속된다. 시인은 저주당하거나 추방당한 자가 아니다. 진정 시인은 사회적 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끝)   7. 결론     지금까지 우리는 프랑스 상징주의 운동의 핵심과 주변을 탐사하고 설명하고자 하였다. 그 꽃과 열매는 어떠하였는지, 개화와 결실 후의 역풍은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시들어갔는지, 열매 맺음이 문학과 예술이라는 드넓은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거름으로 어떻게 작용하였는지, 시든 후에도 열매에 열매를 이어주고 있는지, 간략하게나마 상징주의의 큰 길과 소로들을 따라 가보았다.     우리는 상징주의 시의 계보에서 출발하여, 다른 사조로의 전이 양상, 즉 데카당스에서 초현실주의, 현대시 등으로 이어지게 되는 상징주의의 맥락을 살펴보았는데, 상징주의 문학의 구체적 양상은 무엇보다 시 분야에 서 두드러졌다. 상징주의 시에서는 우선 자유화시, 자유시, 새로운 활자배치법, 구두점의 제거, 페이지 개념의 변모 등, 다양한 시 형식의  실험에 주목하게 된다. 그 실험은 시와 산문의 통합이라 할 수 있는 산문시, 장르 간의 경계 넘기, 통합예술 등 여러 형식의 발명들로도 이어졌다. 이처럼 시를 기존의 기능과 형식에서 최대한 해방시키고자 하여, 오늘날의 시의 모습이 있게 한 것은 상징주의의 가장 현대적인 기여의 하나이다. 상징주의는 언어의 해방과 동의어였다.   상징주의는 다양한 예술 방법의 도입과 철학의 영향으로 자신의 영역을 이토록 풍부하게 확충시켜갔지만, 상징주의에 고유한 언어의 완성은 무엇보다 교감, 암시, 상징 등의 방법을 통한 감각과 시선의 해방에서 출발한다.    우선 보들레르의 교감 이론은 상징주의 시학을 주도하면서, 향후 시인들의 사물 읽기에 획기적인 전기를 제공하였다. 랭보의 자유로운 상상과 감각과 환상의 힘은 현대시를 향한 우상파괴적 시선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의 지옥으로의 하강은 초현실주의의 세계를 선구적으로 보여주었으며, 그의 심연은 또 다른 오르페우스를 그려내었다. 그의 화려하고 고통에 찬 하강의 그늘에는, 저주와 자학 속에 완성되는 베를렌의 겸손한 선율이 있었으며, 감각과 음악과 언어의 융해와 교감이 있었다. 말라르메는 언어와 사물과 상징과 신비 등의 관계를 파악하고 그 결과를 섬세히 시로 구현하고자 하였다. 감각과 언어의 재정립을 통한 이러한 길찾기들에 비하여 발레리의 길은 조금 달랐다. 그는 말라르메의 언어철학을 토대로 순수시를 더 밀고 나아가,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언어로 빚어진 관념시를 제시한다. 상징 시인들의 구도의 여정들을 발레리는 지중해적 명증의 시학으로 다시 빚어냄으로써 서구 상징주의의 골격은 완성된다. 랭보의 우상파괴, 발레리의 순수시 등으로 현대시의 세계는 더욱 열리게 된 것이다.   상징주의 시인들은 이처럼 자신의 방법 자체를 끝없이 넘어서려 하였다. 그리하여 음악은 상징주의의 형성에 도움을 주었으며 미술은 그 확산에 기여하였고, 상징주의는 다시 음악과 미술로 구현된다. 또한 상징주의자들은 특정 예술 장르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였다.    이러한 상징주의의 추구는 그러나 무엇보다 언어에 대한 추구였다. 말라르메는 언어의 완성을 절대의 '책'에서 보여주려 하였다. 거기서는 문자와 그림과 음악과 철학이 절묘하게 만난다. 그것은 통합언어를 향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문자예술은 그림문자를 지향하였고 활자법의 혁명을 보여주었다. 전통적 외양의 순수시로 자족하지 않고 일탈과 변모를 통하여 형식의 새로운 열림을 꿈 꾸는 것이다.   언어는 이렇게 통합예술이고자 하였다. 단순한 통합이 아니라 창조이면서 동시에 예술 스스로의 초월이고자 하였다. 랭보의 파괴가 재창조를 빠르게 그려내려 하였다면, 말라르메는 거기서 인내심의 부족을 읽어내었다. 그가 이끈 시형식의 혁명은 현대의 시와 산문들 속에 다시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 의미와 색채가 어떠하든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하나의 언어의 풍경이다. 사람은 '상징의 숲'을 걸어가고 숲은 친숙한 눈길로 그것을 지켜본다. 인간은 언제나 상징을 필요로 하고 빚어내며, 상징은 또 해독되기를 기다린다. 상징주의는 그러므로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 늦게는 중반까지 성행하였던 일시적 조류로 끝나지 않는 것이다.   상징주의는 역사적으로 폐지되었음에도 부정할 수 없도록 존재하는 문학의 태도로서 언제나 의미 있다. 상징은 비록 여러 겹으로 두터워져도,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처럼 들어가는 문을 발견하기만 하면 많은 것에 가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징주의는 여러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효용적 의미에서의 상징주의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적어도 표현의 한 기술이라는 측면에서도 상징주의는 살아있다.   상징주의에 대한 부정론은 상징주의의 발생 속에 배태되었던 것이다. 현실과 관념 사이에서 관념을 현실화한다는 문제는 시작부터 수용할 수 없는, 하나의 수수께끼 놀이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더구나 관념의 외적 형식에 무의미하게 집착할 때, 마침내는 무용한 언어놀이에 이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부정적이든 긍정적 의미이든, 상징주의는 내용상 그리고 형식상 이미 대중과  유리라는 전제조건 하에 출발한 것이었다.   상징주의 선언을 기점으로 전개되었던 협의의 상징주의는 시작한 불과 몇 년 만에 끝나버린 운동이다. 상징주의는 언어에 대한 위선적 조작에 이를 수 있는 허구적 행위로 보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시 언어 혁명의 맥을 놓치지 않고 따라 가보면, 상징주의는 끝없이 스스로를 부정, 수정, 완성시켜가려한 언어 행위였고. 상징주의가 보여주었던 형식의 실험은 오늘날의 문학 행위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 되어있음을 알게 된다.    현실과 이상, 현실과 초현실 간의 대립 속에 오히려 안주하려 하였던 행위로 상징주의를 읽는다면 그것은 상징주의를 다 읽은 것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안주가 지속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통합의 언어로 나아가고자 하면서도 상징주의는 그 의도 자체로 인하여 오히려 시인과 대중과의 유리라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이는 이미 상징주의의 본질적인 한계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타기(唾棄)한 것은 허위로 끝난 상징주의였다 하겠다. 진정한 상징주의는 언어의 혁명 혹은 점진적 수정행위와 더불어 언제나 진행형일 것이다. 발레리의 말대로 상징주의는 어떤 한 '유파'가 아닌 것이다.   상징주의는 또 모레아스의 에서와 같이 같은 소문자의 상징주의와 넓은 의미의 상징주의, 저긴 상징주의, 후기 상징주의 등, 여러 분류가 가능하다. 그러나 진정한 상징주의는 이러한 분류를 넘어서 독자적으로 또는 다른 예술 분야와 통합되기도 하면서 확대될 수 있었고, 있어야 하였다. 모든 상징주의는 빨리 오건 늦게 오건 다시 대해에서 합류하는 것이다.     상징주의가 퇴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한 믿음이 부정할 수 없이 존재해온 것은 언어통합의 욕구 때문이었다. 오랜 세월 분업의 양상이었던  언어의 장르들을 넘어설 언어가 요구되어왔던 것이다. 상징주의가 대통합을 궁극에 그리는 것은 분화된 바벨의 언어를 극복하려는 의지에서였다. 우리는 대문자의 '책'에서 언어에 대한 새로운 계획을 읽을 수 있었다. 상징주의가 남긴 긍정적 몫의 하나이다.   상징주의는 그 진행과정의 필연적으로 반동적 움직임들, 그리고 감각과 언어의 유희 속에 스스로를 한정시키는 내재적 오류들과 부딪히기도 하였다. 의미 없는 신비 추구, 현실에서의 변화와 변혁의 욕구를 거의 도외시한 비현실적인 세계 속의 침잠(沈潛), 지시적 메시지들에 대한 지나친 경도 등은 상징주의 스스로를 이미 새로운 글쓰기를 막는 낡은 굴레로 전환시켜 놓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새로운 형식주의를 버리고, 순수성이나 모호성이 아니라, 생활의 본연과 실상으로 돌아오고자 한 문인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러나 상징주의의 원래 추구하였던 목표는 허구적 조작에 의한 상징의 창조가 아니었다. 베를렌든 말라르메도 발레리도 모로도 르동도 모두 대상에 대한, 그리고 대상들 사이의 관계들에 대한 면밀한 관찰에서 출발함을 우리는 보았다. 그들 스스로 이 점을 여러 번 강조하였으며, 관찰 과정은 작품들 속에 섬세히 구현되었다.   더불어 기억할 것은 신비나 통합예술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더라도 상징주의는 궁극적으로 언어의 탐구라는 사실이다. 고대의 언어, 즉 인간 본연의 언어를 찾는 일이다. 춤과 노래와 재례의식이 분리되지 않았던 태고(太古)의 하늘, 그 언어를 지표로 한다. 바로 그런 까닭에 상징주의는 문학에서의 어떤 변형의 기술로 만족하려 하지 않았다. 말라르메가 "아름다움이 꽃 피는 이전의 하늘"을 그리며, 문제는 "변모시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것"(Mallarme, 1974:880)이라고 말하였듯이, 상징주의에서의 언어탐구는 어너의 변형이 아니라 언어의 창안이고자 하였다.   그 탐구는 한 마디로 모성언어로 회귀하려는 언어의 지향성이다. 언어와 음악이, 제레와 축제가 하나이며, 기표와 기의의 분리를 원하지 않았던, 상징이 꽃 피던 시간, 그것에 대한 믿음과 향수 - 이들이 상징주의를 살아있게 하는 것이다. 주술적 언어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언어 주변을 떠돌고 있으므로  시 언어는 상징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징주의는 불어로 전개되었으나 코스모폴리탄적인 운동"(Richaed, 1978:395)인 것이다.   큰 의미에서 상징주의는 사조를 넘어선다. 잊지 말 것은 상징주의의 언어 화해와 대통합의 작업은 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시대에 따라, 사람 마음에 따라, 겉과 속의 모습을 달리하며 상징주의는 언제고 전개될 것이며, 인간의 상징 또한 영속할 것이다. 인간의 상징은 과거나 미래의 현상이나 희망이나 절망과는 거리를 둔 채, 빠르게 느리게, 섬세하게 때로 거칠게,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의 거대한 페르소나를 바꾸고 또 굴러갈 것이다.  / 연세대학교 출판부​
1145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1~ 10) 댓글:  조회:794  추천:0  2022-07-11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1)   김경란 연세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에서 말라르메의 시간의 시학과 공간의 시학을 연구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어 프랑스 파리 7대학교에서 말라르메의 '무'의 추구 와 글쓰기의 문제를 연구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 서문     상징주의란 무엇인가?   막연히 우리는 상징주의라는 말을 사용하고 접하게 된다. 그것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이며, 또 상징이란 무엇인가.   상징주의라는 말은 이제 지나가버린 사조를 기술하고 정리할 때 쓰는 한갓 하나의 용어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사실 상징주의라는 말은 사실주의나 자연주의라는 용어처럼 오래 전에 문학개념 사전에 확고한 자리 매김을 하였다. 고전주의, 낭만주의만큼이나 보편적인 존재의미를 부여받은 것이다.   그러나 상징주의는 역사적으로 폐기되었음에도 부정할 수 없도록 존재하는 문학의 어떤 양식이자 도도한 흐름이기도 하다. 좁은 의미에서 상징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그것은 표현의 한 방법을 지칭하기도 한다. 상징주의 문학운동이 전개되었을 때와는 다른 의미이지만, 사실주의적 태도에 반대되는 태도를 지칭할 때도 이 용어는 유효하다. 더 중요한 점은, 상징주의가 큰 흐름을 이루든 아니든 적어도 하나의 문학적 태도로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상징주의라는 흐름이 어떻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지, 또 어떻게 남아있게 되는지를 알고자 한다.   어떠한 사조든 그것은 발생 자체 속에 이미 자신의 한계를 지니고서 출발한다. 상징주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상징주의는 어떠한 연유로, 어떠한 양식으로 살아있기도 하는가. 그것은 현금의 문학의 양상들과 어떤 관계를 이루고 있는가. 그것이 존재한다면 가능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어쩌면 출발에 앞서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지 모른다. 상징주의라는 소멸된 조류가 살아있는 조류와 연결되는 것은 '상징'이라는 문학의 어떤 , 가장 작을 수도 커질 수도 있는 이 영원한 도구의 존재 때문이라는 것을. 사물과 언어를, 현실과 생각을 잇는 매개인 상징은 단순한 의사소통 차원을 넘어 이전에도 이후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징주의가 상징에 대한 어떠한 태도와 필연에서 싹 텄는지, 그것은 어떠한 언어체계에 도달하는지, 자라고 꽃 피는 과정이, 열매가 문학과 예술에 어떠한 작용을 하였고 할 것인지를 알아보려 한다. 그러나 여기는 상징 이론이나 의사소통 이론을 다루는 장소가 아니며, 문학의 작은 기법으로서의 상징주의를 다루는 장소도 아니라는 점을 먼저 밝히겠다.     여러 문학 사조들 중에서 '상징주의'는 정의 영역이 넓고 모호하며 영향 범위 또한 아주 넓은 사조이다. 그것이 문학 전반과 예술의 다른 장르에 미치는 상호관계들은 쉽게 개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글 독자들을 위하여 상징주의가 충분히 설명된 경우가 많지는 않아 보인다.   상징주의는 19세기 중반 이후, "고답파(高踏派)와 자연주의의 문학적 유물론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사조라고 정의 내려지기도 한다. 이는 형식적 정의에 지나지 않는다. 상징주의의 내용상의 특징은 무엇보다 언어 자체에 대한 자세와 상징에 대한 태도 속에 있는 것이다. 즉 상징주의란 문자 그대로의 사상(事象)들 너머의 또 다른 현실을 언어로써 환기시키고, 언어를 통하여 그들의 세계를 완성하려 한 태도라 하겠다.   '상징'의 개념 또한 대단히 모호하고 그 영역이 넓다. 상징은 단순히 기호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신화를 지칭하기조차 하는 등, 언어활동의 거의 모든 영역과 연관되기까지 한다. 따라서 상징 자체를 정의내릴 때, 그것은 우선 언어학적 정의와 문학적 정의로 구분되어야 한다. 우리는 후자에 관심을 두면서 상징주의의 여러 현실들을 우리의 언어로 다시 정리하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우리는 상징주의 태동에서 출발하여 상징주의의 막다른 점까지, 전체적인 움직임들을 그리면서, 동시에 그 다양한 양상들을 항목별로 정리하고자 하는데, 그것을 위하여 우리는 여러 용어들의 전문적 세부로 들어가기보다는, 다양한 상징주의의 영역들을 독자들에게 평이하게 요약하여 설명하려 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낭만주의, 고답파 등을 배경으로 하고 데카당스, 초현실주의, 현대시, 누보로망 등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상징주의 운동의 궤적을 간략히 소개하면서, 아울러 이 움직임과 문학 내적이고 외적인 여러 요소와의 관계들을 다양한 차원에서 소개하는 식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상징주의가 포용하는 예술의 다른 영역들, 즉 상징주의의 영향 범주를 따라 가보려 한다. 문학과 다른 예술이 어떻게 만나는지를 살피고자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상징주의는 그것 자체로 결코 닫혀 있으려 하지 않았던 사조였기 때문이다. 궁극에는 예술과 예술과의 경계를 넘고 예술 스스로의 초월을 지향하였기 때문이다. 화가와 음악가와 문인들의 일화들은 그러므로 상징주의의 다양하고 흥미로운 모습들을 드러내준다. 상징주의의 눈에 띄는 특징은 문인들이 다른 예술 속에서 스스로의 길을 찾기를 시도했다는 점에도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춤은 상징주의 언어에 비유되었으며, 상징주의 문학은 가장 완성된 모습을 극 형식을 빌려 구현하고자 하였다. 상징주의는 궁극적으로는 예술들을 통합한 예술에 언어를 통하여 도달하려 하였다. 이러한 의지는 언어에 대한 여러 실험과 활자배치술의 혁명에까지 이어져서, 우리들의 오늘날의 시와 산문에 있어서 가장 첨단적인 모습을 미리 보여주고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이 점은 의외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이제 우리는 이상과 같은 시각으로 상징주의의 면모에 조심스레 가닿고자 한다. 상징주의를 낳은 정신은 결국 어떠한 것이었나, 또 그것은 어떻게 하나의 미학으로 완성되었는가, 우리는 지금부터 이러한 질문과 마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상징주의 문학사를 되풀이하여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지향과 한계를 보여주고자 한다. 문학이 어떻게 위기를 맞이하며, 또 그 위기를 넘어서 것인지를 상징주의라는 척도를 통하여 가늠하고자 한다. 문학이 도달하는 딜레마와 동시에 문학이 제시하는 희망을 따라 가보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여러 의견의 수동적 종합보다는, 미숙하다 하여도 우리의 고유한 시선에 도달하고자 한다.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2)   2. 상징주의의 정의   1. 상징의 어원과 의미   상징이란   '상징(symbole)'이란 말은 희랍어 'sumibolon'에서 나온 말로, 희랍어에서 '상징'은 둘로 나눠진 물건이나, 부호나 표지를 의미한다. 어떤 두 사람이  하나의 물건을 나누어 가지고 헤어졌다가 다시 만났을 때, 각자 나눠가졌던 두 반쪽은 신표(信標)로서, 그들의 친밀관계를 증명해줄 수 있다. 상징은 이렇게 증표의 기능을 한 것이다. 상징은 그 밖에 동일성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물건이나 담보를 확인하는 데 쓰이는 모든 것, 아테네의 판관들이 법정으로 들어설 때 제출하던 출석증, 두 사람 간의 계약이나 두 부로 만들어진 영수증 등을 뜻하였다.    간단히 말해 상징이란 서로 인식할 수 있는 부호에 근거하는 약속과 관련된 것이다. 상징에서는 이처럼 언제나 인식이 문제가 된다. 나아가 상징은 유추적 상응관계에 의거하여 다른 것을 표상하는 그 무엇이면서, 현실을 환기시켜주는 구체적 부호이게 되었다. 예를 들어 '왕홀(王笏)'은 '왕권'의 상징이다. 우리는 보이는 물건인 왕홀에서 보이지 않는 왕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그리하여 상징은 하나의 물건이나 대상이라는 의미를 넘어, "다른 모든 이미지들과 같은 하나의 이미지"(Aquien, 1993:290~291)를 뜻하게 되었다. 따라서 상징은 환유나 제유, 은유 등과 동의어로 쓰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저울은 정의를, 월계관은 명예를 상징한다.   그러나 하나의 상징은 대상의 한 가지 특성만을 지칭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힘이나 아름다움이나 고결함 등, 여러 특성들의 상징이기도 하다"(Morier, 1981:1080).   상징은 또한 하나의 이미지에 그치지 않는다. 상징은 "유추관계나 관습에 근거하여 또 다른 실체를 표상하는 어떤 실체나 개념이나 대상이나 인물, 혹은 어떤 이야기를 가리키기도 한다."(Benoist, 1985:124)   사전에서는 '상징'은 "대상의 주요 특질들 중 어느 한쪽 특질을 의미하기 위해 선택된 구체적 대상"으로 "그 구체적 대상은 언제나 특질들의 총체에 속하며, 그 대상은 무한한 의미 내포력을 갖는다."(Morier, 1981:1080)라고 단순히 정의 내리기도 한다.   상징의 특성   상징이라는 약속의 기호는 물질적인 것만은 아니다. 상징의 영역은 다양하며 무한할 수 있다. 상징의 환기력(喚起力)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의 이행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상징은 자의적 기호와는 판이한 차원의 언어이며, 다양한 정신적 현상을 그리는 언어이게 된다.    상징은 근래에 그러나 오랜 동안, 주로 언어학적인 측면에서 조명되어져왔다. 하나의 언어기호를 이루는 양면, 즉 기표(記標 씨니피앙signifiant)와 기표(記意 씨니피에signifie')는 단절된 상태로 존재 가능하고 인간이 단절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은 동시에 모순되게도 기표와 기의가 합치되는 부호를 갈망한다. 이는 인간 본능에 속한다.   인간은 정신적인 것을 육체적인 것 속에, 보이지 않는 것 속에 투영하려 한다. 문학에서의 상징은 기표와 기의로 나눠진 기호가 그 단절관계를 지워 없애고자할 때 필요한 것이다. 의미와 기능상 언어학에서의 상징과 다른 차원의 것이다.   상징이 가능하고 필요한 까닭은 인간은 육체와 정신이라는 두 체계로 이루어진 복합체이기 때문이다. 상징은 인간의 인식 체계를 보여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욕구의 결과인 것이다. 카시러Ernst Cassirer는 상징주의는 "언어적 현상이 아니라 정신적 현상이다"(Auroux, 1990:2519)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다음의 글은 기호와 상징이라는, 언어를 대하는 두 가지 다른 태도에 대해 요약한다.             소쉬르Saussure의 개념에서 기호는 기표와 기의를 결합시키는 기능을 갖는다. 그리고 기표와 기의의 관계는 무연적(無緣的 immotive)이지만 필연적인 것이다. 반면 상징은 두 기호 사이의 결합이며, 기호들 간의 관계는 유연적(有緣的motive)이지만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Auroux, 1990:2515).     소쉬르의 개념에서 기호는 기호를 이루는 양면의 결합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상징 언어는 기호의 차원을 넘어선다. 어떤 기호 내부의 결합이 아니라 기호들 사이의 결합과 결집인 것이다. 문학에서 상징은 기의와 기표의 동질성을 전제한다. '유연성'은 '동질성'이라는 전제 하에 있게 된다. 그 전제 하에 '조직적 역동성'이 생겨난다. 상징관계는 기호 자체의 자의성 차원이 아니라 정신의 필요에 의해서 빚어지는 것이다.    상징은 요컨대 정신의 구조 위에 작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상징언어는 동일한 대상의 여러 특질을 하나의 관점에서 한 단어로 결집시키고 표현하고자 한다. 상징언어는 따라서 정신의 길이며, 가장 짧은 길이 된다.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인간이 표현하려 할 때 상징은 가장 직접적 수단이 된다. 아무 것도 첨가할 필요가 없다. 개념의 길은 우회적이고 힘들지만 "상징은 바로 들어맞는 기호"(Gouriant, 1991:682). 하나의 기호는 다른 기호들과 자동으로 연결된다. 상징은 "무한의 의미 내포력"을 지닐 수 있다. 상징은 정신의 언어인 것이다.    그 결과 상징 속에는 커다란 개념이 존재하게 된다. 그 의미는 상징 뒤에 숨어있으므로 사람들은 가려진 그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궁금하여 그것을 찾아 나선다. 상징은 사람들을 현상으로부터 생각의 다른 단계로 끌어올리는 힘을 지니는 것이다. 즉 상징체계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최고의 인식체계일 수도 있는 것이다.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3)   2. 상징주의의 의미     "상징주의(symbolisme)' 라는 말에는 여러 의미들이 있지만 문예사조로서의 상징주의란 '고답파(高踏派)'와 자연주의의 유물론적 태도에 대하여 정신주의적이고 관념적인 반동으로 발생한, 문학과 예술의 어떤 특별한 움직임을 말한다.   '고답파(또는 파르나스 le Parnasse)'는 낭만주의 특유의 서정주의와 모호한 동경, 언어와 감정의 과잉에 대한 반동으로 생겨난 문학의 한 경향으로서, 객관주의와 언어의 엄정성과 완벽한 형식미에 집착하며 예술지상주의를 내세웠다. 19세기 후반 소설에서 사실주의의 추구와 일면 유사한 경향을 보이기도 하였던 고답파는 초기에는 현실에서 주제를 찾았으나 고대 그리스 문명과 인도 등, 다른 곳으로 점차 시선을 돌리게 된다. '파르나스'라는 명칭은 카튈르 망데스, 알퐁소 르메르 등이 1866년, 18712년, 1876년 등, 세 차례에 걸쳐 편집, 출판한 동인지 에서 얻은 것이다.1)    고답파의 시운동은 운율의 실험과 소네트의 부흥 등, 언어 형식의 폭을 넓히기도 하였지만, 객관성과 기교의 완벽성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면서 마침내는 텅 비고 굳은 형식과 정신성의 부재만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상징주의는 이에 대한 거부로서 존재하게된 것이다.   상징주의는 언어에 대한 철저한 추구라는 측면에서는 파르나스를 계승하지만, 시어에 대한 전체적 태도를 혁신하려 하였다. 상징주의는 형식을 위한 형식을 넘어 서서, 시어의 체계를 새롭게 구축하려 한 것이다. 나아가 시언어를 절대적 언어의 경지로 끌어올리려 하였다는 점에서 상징주의는 파르나스와 또 다른 정신성을 보여주었다.   상징주의는 낭만주의의 모호한 서정주의를 반대하여 고답파의 일면을 계승하기는 하였지만, 그것이 객관성 추구에로만 지나치게 기울어있는 점을 수긍하지 못한다. 그것의 생명 없음에 대해 반기를 든 상징주의는 자연주의에 대해서도 유사한 이유로써 반대한다. 상징주의자들에게 언어란 사실적 묘사나 객관적 기술이나 지시기능을 넘어서 암시적이고 함축적인 것, 인간의 본질과 관념을 표상하고 넓은 정신 공간을 지향하는 것이어야 하였다. 언어는 더 먼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어 자체에 집착하였다는 점에서 낭만주의와 다르며 파르나스와는 같은 방향이었지만, 언어에 대한 철학과 지향에 있어서는 크게 달랐다.     넓은 의미의 상징주의 운동은 일반적으로 1857년 샤를르 보들레르의 의 출간으로 시작하여, 19세기 말까지, 또는 20세기 초에서 중반까지 확산되는 것으로 되어있다. 폴 베를렌, 아르튀르 랭보, 스테판느 말라르메. 폴 발레리가 대표적인 시인이다.    이밖에도 파리의 카페와 카바레에 진을 치고 보헤미안 문인 생활을 한 자 들이 있었고, 그들은 '쥐티스트'(냉소주의자), '쥬망푸티스트'(오불관언파),2) 동물들처럼 텁수룩하다는 뜻으로 '털복숭이파'3) 등, 이상한 이름으로도 불리었다. 그들 문인, 예술가, 반(反)부르주아들은 비관주의와 반순응주의적 태도로 현실을 조롱하고 시를 숭배하며, 신비주의 취미에 빠져든다. 자유분방하고 무절제한 생활을 하여 '테카당(decadent퇴페주의자)'이라고 통칭되었던 그들은 예술을 물질주의로부터 행방시키고, 전통의 도덕적 굴레를 벗어나려 하였다. 모든 것의 부정의 외쳤던 다다이스트(dadaist)4)들의 태도를 연상시키는 부분이다.   퇴폐주의 운동의 중심 역할을 하였던 평론지 (1886~1889)의 편집장 아나톨 바쥐Anatole Baju는 시를 잡지에 싣는다면 그것은 다만 독자에게 "시의 신들의 무기력과 신들의 체제 붕괴를 보여주기 위한 것"(Richard, 1968:24)이라 선언한다. 바쥐는 '퇴폐'라는 말을 자신의 활동의 표지로 삼아, "우리는 '퇴폐주의자들'이다. 우리 잡지에는 퇴폐의 모든 뉘앙스들이 표현된다. 형식의 퇴폐, 관념의 퇴폐가 순수 퇴폐에 이르도록까지"(Richard, 1968:24)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신조어와 동시에 고풍의 어법, 방언, 통소거에 집착하고 예외적인 것, 미묘한 것, 특이한 것과 신비주의 등을 추구하여 기교에 치우친 경향을 드러냄으로써 그들의 글쓰기와 예술 방식은 '퇴페주의 양식'(style decadence)이라고 형용되기도 한다. '데카당스'의 의미는 확대되어 '세기말(fin du siecle)'과 유사한 뜻으로도 쓰이게 된다.5)   부정적 외양만이 '퇴폐주의'의 진면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무의미한 조롱으로 '퇴폐적'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였지만, 진지한 의미로서의 퇴폐주의는 중요한 사조였고, 이 흐름 속에 상징주의가 배태되어 있었다. 퇴폐주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도 자연주의는 정신성이 결여된 '예술의 민주적 타락'(Richard, 1968:34)에 지나지 않는 것, 또는 바쥐의 표현대로라면 '산업적 문학'(Richard, 1968:34)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 흐름은 상징주의라는 더 큰 발전적 흐름으로 합류한다. 퇴폐주의의 다양성을 표현하기 위해 '상징파'라는 이름이 제시된 것이다. 사실 19세기 후반에 활동하였던 이들 퇴페주의자에 훨씬 앞서서, 퇴페주의의 출발에는 보들레르가 있었다. 또한 베를렌은 퇴폐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고, 랭보와 말라르메, 위스망스도 넓은 의미에서 그 일원으로 꼽힌다   요컨대 퇴폐주의라는 용어에는 단순한 모욕 차원의 지칭과 상징주의의 '예비적 단계'(Richard, 1968:8)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데카당스와 상징주의는 확실히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징주의는 이 모든 퇴폐주의 양식과 시도들을 통합하게 되고 심화, 발전시킨다.     '상징파'라는 명칭은 장 모레아스Jean Moreas가 1886년 9월 18일 지에 '상징주의 선언'을 함으로써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그는 우두머리를 자처하였다. 이 상징주의는 좁은 의미의 상징주의, 소문자의 상징주의이며, 기껏해야 약 15년 내외의 활동기간을 가졌을 뿐이다. 상징주의자들의 탐구영역과 활동기간은 사실은 아주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상징주의'라는 깃발 아래 전개되었던 상징주의의 전성기는 이들 '상징파'만이 점유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 유파에는 시인들이 다양하고 수가 많았지만 상징주의가 평가 받고 영향력을 행사한 부분은 이들 군소 상징주의가 아니라, 보들레르에서 말라르메에 이르는 전기 상징주의 시인들이 구축한 상징주의다. 사실 상징주의를 구획 짓기가 아주 애매할 정도로, 자칭 상징주의자들을 전후하여 4반세기 이전서부터 보들레르, 베를렌, 랭보, 말라르메 등이 대단한 성과들을 이룩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대단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상징주의'라는 용어가 없었다. 이들이 상징주의자들이라고 일찍이 불리지 못하였던 것은 상징주의 초창기에는 미학이 확립되지 못하였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징주의의 '신호탄'격인 보들레르의 은 고답파의 거장 테오필 고티에Theophile Gauiter에게 헌정되었고, 말라르메는 라는 고답파 동인지를 통하여 데뷔하는 등, 당시의 상징주의 시인들은 고답파 시인들과 시단을 공유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모레아스가 주창한 미시적 개념의 상징주의와 대조되는 거시적 상징주의6)는 가리키는 폭이 넓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성경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아니 적어도 보들레르에서 시작하여 말라르메, 베를넨, 랭보에게서 그 정점에 이르는 넓은 의미의 상징주의를 칭하거나, 아니면 낭만주의와 초현실주의 사이의 시적 현대성을 간편히 칭하여 일컫는 말일 수도 있다."(Marchal, 1993:5)     미시적 상징주의와 거시적 상징주의 외에 제3의 상징주의가 있는데, 그것은 1880년과 1914년 사이에 자연주의와는 별도로, 문학뿐 아니라 미술과 음악 작품에서 본질을 포용하려는 이상주의적 시대 분위기를 말한다.7) 빌리에 드 릴라당, 마르셀 프루스트, 폴 고갱, 오귀스트 로댕, 오딜롱 르동, 귀스타브 모로, 리하르느 바그너, 클로드 드뷔시 등이 이들 범주에 속한다(Marchal, 1993:5-6).   이러한 다양한 상징주의의  정의와 개념 때문에 어떤 평자는 다음 같은 제안을 하기도 하였다.       소문자로 쓰면 '상징주의'라는 단어는 상당히 폭 넓은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그것은 어떤 사물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다른 것을 매개로 해서 간접적으로 그 사물을 지칭하는 것이면, 그 어떤 형태의 표현 방법도 가리킬 수 있다. 그러므로 '상징주의'라는 단어의 의미는 그것이 비평의 어휘로서 어떤 의미를 지니려면 반드시 그 한계가 좁혀져야 한다.(체드윅, 1983:1)     그밖에 불어에서 '상징주의'라는 말은 문예사조만을 가리키지 않고 더 일반적인 단어로도 사용된다. 이때 상징주의란 예술작품은 인간의 생각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라고 해석하는 경향을 말한다. 상징의 차원을 구분하는 말로 '상징계'나 '상징성'이라는 말도 있다. 해의 '상징계'라고 하면 해가 암시하는 상징적 관계들과 해석 가능한 영역들을 폭넓게 내포한다. 반면 해의 '상징성'이란 어떤 한 보편적 특성을 겨냥하여 영역이 한정적이다.   1) '파르나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예술의 신 아폴론과 시의 신 뮤즈가 살았다고 하는, 아폴론 신전이 있는 파르나소스山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2) '쥐티스트(zutiste)'란 1883년 샤를르 크로Charles Cros가 사용한 단어. 체념과 분노와 무관심을 뜻하는 '쥣(zut 이런, 제기랄!)' 이라는 감탄사를 앞세우고 크로 주변에 모인 시인들을 말함. '쥬만푸티스트', 또는 '쥬망피쉬스트' 란 '난 개이치 않아' 라고 무관심을 표현하는 자들. 3) 퇴폐주의자들은 진보에 반대되는 태도를 취하였다. 바쥐는 진보의 결과 20세기에는 텁수룩하거나 수염 기른 자들은 흔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털복숭이란 그러므로 문명 세례를 받지 않은 자유인과, 그들의 진보에 반대하는 태도를 상징한다. 4) 1차 세계대전부터 전후에 걸쳐 유럽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반문명적인 예술문화 운동, 기존의 가치관과 도덕과 미학과 전통을 일체 부정하고 파괴하는 데서 출발하였다. 5) 일반적으로 '세기말'은 '프랑스에서 시작하여 1890년대 유럽에 퍼진 정신의 퇴폐주의' 라고 정의된다. 회의주의, 유물주의, 비관주의, 신비주의, 현실 도피 등의 여러 특성을 지닌다. 그러나 이는 또한 낭만주의의 유물로 1850년대 문학에서부터 이미 표현되었던 태도로서, 현실은 환영이며 관습이나 진보 등 모든 것은 허망한 것이라고 단정한 태도이다. 6) 마르샬의 용어임. 1993 참조 7) 이라한 분류와는 일치하지 않으나, 상징주의를 3단계로 나눠보는 또 다른 견해가 있다. 1850년경부터 1880년경까지를 전기 상징주의, 1880년경부터 1900년경까지를 상징주의 전성기, 1900년경 이후를 후기 상징주의로 보는 관점이 그것이다. (김기봉. 2000. 56~57)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4)   3. 상징주의 운동      '위대한 선구자'라고 불리는 보들레르가 1857년을 기점으로 열어놓은 넓은 의미의 상징주의 문학운동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기까지 전개된다. 베를렌, 랭보, 말라르메는 보들레르를 계승하면서도 각자의 개성과 감각으로 상징주의의 또 다른 문들을 열어놓는다. 보들레르 시 과 베를렌의 시 (1882)은 상징주의 운동의 기본 강령을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들은 뚜렷하게 시대를 구분지울 수 있을 만큼 확실한 문학선언이나 운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상징주의는 19세기 말까지 펼쳐지고 20세기에 와서 쇠퇴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쇠퇴는 사조로서의 상징주의에 한한다. 사실 상징주의는 이후에 소멸한 것이 아니라 20세기에 와서 개인의 상징주의는 더욱 성숙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폴 발레리와 마르셀 프루스트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프루스트는 (1913-1927) 라는 '의식의 흐름' 수법의 내면소설을 통하여 상징주의 소설을 완성시켰으며, 발레리는 상징주의의 정신과 언어를 더욱 발전시켜서 '순수시'라는 양식으로 완성시킨다.그의 와 은 1917년과 1922년에 출판된다.   대체적으로 상징주의는 19세기 말에 끝난다고 개관하지만 사실은 세기를 넘어서도 계승되고 변모되어,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 개화하였던 것이다. 이는 문학사에서 연대기적 분류가 무의미해지게 하는 면모이다. 이렇게 상징주의에는 사조사(思潮史)보다는 개인의 어법(語法)이 더 의미 있는 경우도 있다. 또한 19세기에서 20세기에까지 펼쳐졌던 대시인들의 활동을 보면, 협의의 상징주의 운동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을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19세기의 문예사조를 개관할 때, 프랑스 대혁명의 영향으로 나타나게 된 낭만주의가 19세기 전반을, 19세기 중반의 약 30여 년은 사실주의와 고답파가, 상징주의는 19세기 후반 30여 년을 주도한다고 흔히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 또한 다음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절대적이지 않다.        "19세기 중반에는 시단을 주도해왔던 (---) 고답파 시인과 보들레르, 베를렌느 등 후에 상징주의의 거성으로 칭송되는 한 잡지에 시를 같이 발표하는 등 문학적 이념의 갈등이나 마찰을 일으키지 않았다. 이로 미루어 보아 상징주의의 성립기에는 그 확고한 이론과 미학이 정립되지 못한 채 고답파와 시단을 공유하고 있었던 셈이다."(김기봉, 200:54)     사실주의적인 고답파 시는 현실과 세계의 구체적 아름다움의 실현을 목표로 하면서 객관세계를 완벽하게 형상화하는 일을 지나치게 중시하여, 상징주의라는 일종의 반동을 불러왔다. 그러나 고답파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외침으로서, 즉 예술 이외의 것은 모두 예술에서 배제시키려고 함으로써, 초연하고 명상적인 새로운 예술의 토대를 동시에 마련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새로운 예술가들, 즉 상징주의에 속하는 대표적인 인물들은 상징주의라는 용어를 쓰기를 매우 조심스러워하였다. 르네 길Rene' Ghil처럼 유파를 형성한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를 거절하였다.   보들레르, 베를렌, 말라르메, 랭보는 특정한 유파나 소위 말하는 상징주의 운동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특정 유파로 통칭되는 것을 혐오하였다. 말라르메는 "나는 유파들을 혐오한다.  또한 이와 유사한 그 모든 것을"(Mallame', 1974:869)이라고도 하였거니와, 1890년대에 젊은 작가 그룹이 '상징주의' 라는 호칭을 즐겨 사용했을 때에, 보들레는 이미 오래 전에  사망하였고, 랭보는 파리의 작가 그룹과는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방랑을 끝맺는 중이었다. 말라르메와 베를넨은 각자의 작품 중에서 흥미로운 부분들을 많은 부분 완성해놓은 상태였다.     이들 '위대한 상징주의자들'과는 대조적으로 '군소 상징주의자들'은 1880~1890년 사이 상징주의 운동에 활발히 참여하고 '상징주의'라는 표지를 확실하게 수용한다. 이러한 수용의 배경에는 실증주의와 반실증주의, 유물론과 정신주의, 그리고 정치와 역사 등의 대립적 요인들이 있었다.   1870년대 말에 1880년대 상반기, 즉 에밀 졸라의 (1877)과 (1885)이 출간되는 시기에는 자연주의가 전성기에 달했다. 당시는 또 위스망스의 (1884)가 반자연주의의 교과서로 널리 영향을 끼치고 있기도 하였다. 또한 졸라의 실증주의와 유물론에 맞서서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글이 정신적 소설이 힘을 보여 주고 있었다8)   1870년 보불전쟁이 있기까지 프랑스를 지배해온 사상은 사회주의, 실증주의, 과학만능 사상이었다. 1789년의 대혁명 이후 프랑스 사회가 정치적 역사적 격변을 체험하면서 발전시킨 진보적 사상들은, 경제발전과 유토피아가 건설 가능하다는 낙관론을 안겨주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들에도 불구하고 어떤 강한 페시미즘이 정신을 피폐화시켜가기 시작하였다. 전쟁에서 참패한 후 프랑스 사회에는 현실에서 이상향을 제시해주리라 여겨졌던 사회주의와 실증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회의론이 주도하게된 것이다. 이상을 현세에서는 구현할 수 없다는 한계가, 다시 말해 기존 가치의 붕괴와 텅빈 공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1870년대의 패배는 군사적 패배 뿐만 아니라 문명의 종말을 보여주었다.    또한 당시의 "자연과학의 진보는 인문과학의 진보와 결합되었다"(Marchal,1993:37). 생물학, 고생물학, 고고학, 문헌학의 발전은 글쓰기의 진실과 가톨릭의 교조주의와 실증적 사고를 시험대 위에 놓게 된다.   쇼펜하우어의 철학도 여기에 가세한다. 1877년에 번역되기 시작한 그의 페시미즘은 많은 작가들에게 비극적 관념을 심어주었다.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 라는 그 유명한 아포리즘은 "반자연주의적 반동의 철학적 근거"(Marchal,1993:38)가 되어주었던 것이다.    이처럼 가치체계의 붕괴에서 오는 정신적 공황은 극단적 회의론, 퇴폐론, 그리고 유미론(唯美論)을 낳았다.   이러한 정신적 무정부 상태와 가치붕괴를 넘어서서 새로운 가치체계와 문학이념을 제시하고자한 것이 상징주의 운동이다. 그러므로 상징주의는 본질상 이미 반현세적인 태도를 지니고 관념적 이상주의의 성격을 띠었다.   8) 마르샬, 위의 책. p.34 참조   4. 상징주의 선언     모레아스는 파리에 결집하였던 다양한 문학적 보헤미안들, 퇴폐주의자들을 '상징파'라고 명명하였다. 이 명칭은 그가 1886년 지에 을 발표함으로써 사용되기 시작한다. 이 선언에 의하여 미시적 상징주의 운동이 결집되었던 것이다. 퇴폐주의를 비난하는 지의 기사에 응답하면서 모레아스는 1885년에 이미 '퇴폐주의자'라는 칭호를 훨씬 환기적인 용어인 '상징주의자'로 바꿀 것을 제안한 바 있다.   그는 에서 상징주의자는 그것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고 하며, 교훈성이나 웅변술, 진실주의를 거부하였고, 시란 현상이 아니라 본질을 추구하고 유추와 상징을 통하여 '관념(idee)'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낭만주의는 반항이라는 소란스런 경종들을 모두 다 울린 후에, 영광과 전투의 나날들을 다 보낸 후에, 자기 힘과 영광을 잃어버리고, 영웅적이었던 참신함을 포기하였으며, 회의적이고 상식만으로 가득 찬 채, 마침내 길들어져버린 것이다. 또한 낭만주의는 고답파들의 명예로우나 인색한 시도 속에서도 허위로운 재생을 꿈꾸었지만, 유년기에 무너져버린 군주처럼 이제 마침내 스스로의 몸을 자연주의에다 위탁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 자연주의는 시류에 아첨하는 몇몇 소설가의 무미건조함에 맞서는, 정당하나 또 오도된 항의라고밖에는 진실로 어떠한 의미도 부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예술선언을 기다려왔던 것이다. 그것은 필연적이며 피할 수 없는 것이다. (---)       우리는 예술에서의 창조적 정신이 보여주는 현재의 경향을 온당히 지칭할 수 있는 유일한 명칭으로 상징주의라는 명칭을 이미 제  안한 바 있다. (----)       교훈과 과장된 묘사와 허위의 감수성과 객관적 묘사에 맞서는 적이라 자처하면서, 상징주의 시는 '관념'을 어떤 감각적 형식으로 빚어내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은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전적으로 관념을 표현하는 일을 하면서, 거기에 복종하는 것이어야 한다(Marchal,1993:135-137에서 재인용).     모레아스는 낭만주의와 고답파와 자연주의를 비판함으로써 상징주의의 길을 밝히고 있다. 그것은 거짓 감수성과 교훈성과 과장된 수사에 대한 거부, 객관적 묘사라는 것에 대한 거부이면서, 자연주의의 무의미에 대한 반동이라고 그는 설파한다.   동시에 그는 상징주의는 언어의 창조성과 진정한 감수성을 되찾으려는 시도라고 주장한다. "상징주의 시는 '관념'을 어떤 감각적 형식으로 빚어내고자 한다"라는 그의 말은 상징주의의 언어와 철학, 또는 형식과 내용이라는 두 차원을 요약하여 설명하고 있다. 상징주의는 틀에 박힌 언어와 형식에서 자유를 찾고자 한다. 그러므로 직관과 감각이 지시하는 언어에서 길을 찾는다. 또 한편 상징주의는 현실의 거짓된 외양과 감각적 현상들을 관념에 대립시키면서, 현상에 존재이유를 부여하는 본원적 관념을 암시한다. 감각적 형식을 다시 넘어서야 하는 것이다.   거부의 근저에는 이렇게 플라톤적 관념론이 자리하고 있었다. 자연주의와 고답파의 문학적 물질론에 대한 관념적 반동으로, '상징'을 결집의 기치로 내세우고 있는 이 '엄밀한 의미의' 상징주의, 협의의 상징주의는 그러나 겨우 10년 너머 지속되었을 뿐이다. "오늘날의 박학자들의 호기심이나 끌 정도의 의미일 뿐"(Marchal,1993:5)이라는 평을 받기도 하는 이 문학운동은 큰 수확 없이 끝났다.   '상징주의 파라독스'란 상징주의 운동이 자신의 공식을 발견하자마자 바로 소멸되어버린 것을 말한다.(Forest, 1989:117). 이 상징주의는 직접 상징주의 선언을 하였던 모레아스 자신이 1891년 '로마파'를 창시하면서 분열되기 시작한다. 로마파는 고전주의 정신의 장점을 재발견하고 고대 로마의 제도나 정신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여 신고전파로 분류되었다. 모레아스의 이러한 '요란한 상징주의'를 베를렌은 이미 상징주의(symbolisme)가   아니라   '심벌즈   때리기(cymbalisme)'(Marchal,1993:6)이라고 평해놓았었다.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5)   3. 상징주의의 방법   1. 상징주의 정신   이상주의, 정신주의   1891년 말라르메는 상징의 신비란 "영혼의 어떤 상태를 보여주기 위하여 조금씩 어떤 대상을 환기시키거나, 아니면 반대로 한 대상을 선택하여 일련의 해석 과정을 거쳐 영혼의 어떤 상태를 이끌어내는 데에"(Mallarme, 1974:869)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글자 그대로의 현실이 아니라 '영혼의 상태'를 빚어내는 데에 몰두한다 함은 정신주의적이며 이상주의적인 지향을 요약하는 말이다. 상징주의는 근본적으로 물질주의에 대한 항의인 것이다. 물질주의는 졸라의 자연주의나 고답파적 사실주의로 드러나고 있었다. 상징주의는 이에 반대하며 반불질주의와 반자연주의로, 즉 관념과 이상이라는 정신 우선주의로 기울었다.    자연이라는 개념도 상징주의에서는 정신적 조화의 문제와 상관되는 것이었다. 조화를 언어의 세계 속에 구현하는 것, 즉 시 속에 내적이고 우주적인 질서를 다시 빚어냄으로써, 언어와 자아와 우주가 하나로 포용되는 상태, 그것이 상징주의의 이상이었다. 고답파의 무관심에 가까운 '무심' 자체는 상징주의에서는 무용한 것이었다. 내적 상태에 몰두하였지만 그것은 개인의 차원 너머에 관심을 두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것이었다. 초월을 위하여 '탈인성화(d'epersonnaliser)가 요구되었으므로 낭만주의와도 구별된다.       낭만주의는 우주의 중심을 주관적, 개인적 자아에 두고서 그 자아의 본질을 감성과 심정을 통해 파악하고자 하고, 상징주의는 우주의 중심을 인간까지를 포괄하는 우주 자신에게로 환원시키고 그 우주의 본질를 감각과 이념을 통해 파악하고자 한다.(김기봉, 2000:113)     이상이라는 것은 막연하 동경이 아니었으며, 감각이나 감정 속의 안주가 아니라 스스로를 우주적 질서 속에 합일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상징주의는 낭만주의와 자연주의와 달랐다. 더구나 자연주의에서의 자연은 자연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었다.   상징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자연주의 담론이 제시하는 생경하고 거친 현실로 축소될 수는 없다는"(Marchal, 1993:8) 저항감을 내포하고 있었다. 상징은 현실의 것을 기계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거칠고 절망적인 현실 '저 넘어'의 현실을 환기하는 것이 상징의 중요한 존재의미였다.       이제 현실의 것은 적이 되고, 철학적인 것이든 종교적인 것이든 저 너머 세상은 모두 기꺼이 수용되었다. 무엇보다, 다른 나라들이기 때문이다.(Marchal, 1993:8).     상징주의는 따라서 자연스럽게 철학을 동반하고 필요로 하게 된다. 쇼펜하우어와 헤겔과 니체의 철학은 상징주의의 바탕이 되어주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철학 외에도, 기존의 진리에 의문을 표시하고 새로운 가치의 기준을 만들려 하였다는 태도 자체에서도 상징주의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이와 아울러 신비와 신비주의는 상징주의 미학의 이상적 모습이자 '가장 세련된 형태'로서 '유행 현상'이 되기도 하였다. 이제 문학은 영혼, 정신, 이데아, 본질이란 개념에 집착한다. 또한 자연주의 소설에서 드러나는 것과 같은 생경하고 과장된 현실보다는신화와 전설에서 가능성을 찾아 나선다.   문학의 자율성   자연주의에서처럼 문학과 과학이 접목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주의는 언어 외적인 모든 범주를 떨쳐내고자 한다. 이는 고답파의 예술지상주의를 계승한 측면이다. 언어는 스스로 자율성을 확보하기에 주력한다. 문학과 언어 자체를 되찾고자 한다. 샤를르 모리스는 1891년 상징주의의 차별성을 다음처럼 강조한다.       그러나 심리학은 문학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생리학이나 지리학이나 역사는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되면 문학에 어떤 특이한 혼동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도구가 가져다주는 혼동이다. (---) 사람들은 도덕이 도덕론자를 유인했던 논리적 결론을 시인들에게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시란 '아름다움' 외에 다른 본질적이고 자연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Huret, 1984:94).      도구와 목적의 혼동이 자연주의의 부정적인 면의 원인이 되었거나 그것을 증대시켰던 것이다. 문학이란 문학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언어의 자율성과 미적 독립을 위하여 문학 외적인 목표는 모두 문학에서 배제해야 한다. 문학은 언어 자체만으로써 내적인 긴밀한 구성을, 즉 건축물처럼 '미리 계획된' 구성의 완성을 지향한다. 이러한 지향은 원래 에드가 알렌 포우Edgar Allan Poe를 계승한 보들레르의 지향이었다 이러한 지향은 말라르메로, 발레리로, 다시 이어진다.   문학은 문학 자체로 존재의 근거를 지닌다. 아름다움은 진실되거나 선한 것과 구별된다. 이러한 신념은 고답파에 이어 상징주의가 문학에 가져다준 가장 큰 공헌 중의 하나다. 이미 도래한 문학의 상징주의 시대에, 문학이 시장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하는 문학이 이제 모순되게도 절대적으로 긍정되고 있는 것이다. 시집은 자비로 출간되었고, 스스로에게 비상업적인 가치를 부여하였다. 말라르메는 말한다.       어쩌면 팔리면 안 될 것을 거래한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더구나 그것이 팔리지도 않을 때에는.                                                                                     ( : Mallarme, 1974:378)     팔리지 않는 문학이란 다시 말해 정신의 목적에 봉사하기를 희망하는 문학이었다. 어떤 목적이나 종속을 거부하였던 문학, 다시 말해 대중과의 유리(遊離)라는 위험까지 자청하였던 문학은 1857년 이후 세기말까지 "이상과 절대에 목마른, 대부분은 신을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거의 신앙을 대신"(Marchal. 1993:10)해주고자 하였다. '문학의 사제' '문학이라는 종교'라는 수식어들은 이러한 현상에서 나온 말이다.   비교주의, 난해성   사실주의 시대에 소설은 대량 인쇄권을 얻어 거대한 대중이라는 문학시장을 형성하게 된다. 상징주의자들은 이에 대한 반동으로 내밀한 시 속에서 "정신의 마지막 피난처를 찾았으며, 입문자들만이 다가갈 수 있는 비교주의(秘敎主義)의 성역을 찾고자"하였다(Marchal. 1993:10). 비교주의란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지 않은 종교의 태도를 말하므로, 상징주의는 일종의 정신적 귀족주의에 닿아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다수의 문인들이 신비주의의 결사에 가입했다는 연구와 자료들이 있다. 상징주의 주변에 탄생한 데카당스도 반(反)대중주의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    상징주의자들은 일종의 '선민의식'(Marchal. 1993:10)을 지니고 비교주의에 탐닉하여 새로운 시 언어에 대한 탐색에 나선다. 그들은 고대어를 차용하거나 신조어를 만들기도 하며, 신문이나 연재소설의 일상어와 구별되는 순수한 언어의 탐구에 전념한다. 기존의 구문 구성법을 해체하거나 그것에 대한 새로운 시도 등으로도 이어지는 이러한 자세는 상징주의 문학에 필연적으로 난해성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들은 논리적 근거 하에 시작하여, 필요불가결한 것이었다.   난해함은 그들에게는 극복 가능한 것이었다. 난해성은 "독자의 준비 부족이나, 시인의 준비 부족에서 온다"(Mallarme, 1974:869)고 상징주의자들은 생각하였다. 그러나 구문 구성법과 단어 선택 등의 난해함, 거기에 더해지는 상징 자체의 난해함, 반대중주의, 비교주의, 이 모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새로운 상아탑이었고, 결국 비난과 오해를 동반하며 상징주의 쇠퇴의 중요 요인이 되기까지 이른다.   이러한 언어추구의 양상 외에도 우리는 보들레르의 댄디즘과 에서 상징주의가 일반 대중과 유리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댄디즘(dandysme)'은 19세기 영국에서 발생한 일종의 문학적 태도로서, 타협하지 않는 예외적 삶의 양식을 통해 사회적 권위를 얻으려는 태도를 말한다고 되어 있다.   보들레르는 댄디즘과 나르시즘을 연관지어 보았다. 그에게 댄디즘은 "정신주의와 국가주의에 닿아있는" 것으로, 영혼의 초월적이고 순수한 체험을 위한 것이었다. 알코올과 아시슈(haschisch 인도 삼에서 뽑은 마약)라는 인위적 방법으로 실현된 창조의 상태인 '인공낙원'을 그가 그리는 것도 이러한 체험과 상통한다. 그것은 시적 창조의 원동력인 상상력의 인공 공간을 버리는 일이어서, 시인은 어쩔 수 없이 대중으로부터 유리되어갔다.     이러한 자세는 귀족주의보다는 고립주의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언어탐색과 난해성, 비교주의 등은 예술과 정신의 독자성 추구에 필연적으로 동반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물질주의와 이성론과 엄정한 객관적 묘사나 무감동에 맞서서 정신의 '불확실한 영역' '미지의 영역' '불확정성'을 찾는다는 것은, 굳어버린 토대를 지우고 정신의 자율성과 자유를 추구하는 일이었다.   상징세계는 그리하여 냉엄한 질서에 맞서서 유동성과 환상이 빚어낼 새로운 조화의 세계를 가리키고 있었다. 기존 예술에 대한 부정은 그러므로 생성과 삶을 위한 움직임이었으며, 환상은 환상을 위한 허황된 것이 아니었다. 상징주의의 이상은 일탈이나 격리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 현실, 현상, 사실의 세계를 끊임없이 초월항 '영혼의 상태'와 이상, 관념, 절대의 세계를 추구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징주의가 설혹 현실과 사실의 세계를 떠나고 벗어날지는 모르되, 현상의 세계 자체까지를 버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상징주의는 (---) 반드시 현상을 통해서 관념과 현상 그것에 여일하게 실려서 현상 및 존재와 관념 및 본질이 조화롭고 아름다운 결합 내지 통일을 이루기를 꿈꾼다(김기봉, 2000:110~111)      상징주의가 필연적으로 추구하는 내재성과 독자성은 이렇듯 고립이 아니었다. 그것은 현상과 본질의 조화를 위한 것이었고, 궁극적 통합을 향해있었다. 통합이란 현상에서 출발하여, 현상과 이상의 모순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초월이란 허황한 구름잡기도, 세상 모두를 버리는 일도 아니었다.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6)   2. 상징주의 미학     상징주의는 그러므로 도피 자체를 위한 이상 추구가 아니었다.현실에서 출발하지만, 현실의 대안으로 이상과 절대적 관념과 형이상학을 미학의 세계로 전환시키는 것, 즉 '지고의 미'를 표현하고 창조하는 것이 상징주의의 진정한 목표였다.     그 결과 "모든 인식 대상은 하나의 상징 현상이요 상징적 존재"(김기봉, 2003:32)이게 된다. 즉 현상은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상징계로서, 그것이 감추고 있는 본질적 실체에 다가서는 것이 상징주의 철학의 요체였다.    말라르메에 의하면 대상들의 현재의 외양 자체는 진실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본질을 숨기고 있는 것이며, 우리에게 그것을 전달하고자 한다. 현상은 관념을 표방하고 있거나 함축하고서 그것을 끝없이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보들레르에게 이 세계는 상징들이 거대한 덩어리, 상징의 숲으로서, 인간은 그것을 바라보고 읽고 그것을 체험한다. 현상은 끊임 없는 해독을 요구하는 본질의 전언자(傳言者)인 것이다. '이 세상'이 아니라 '저 세상'을 현상에 대한 관념을 불러일으킨다. 시인에게는 상징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러나 '관념'이 예술로 형상화하지 못한다면, 철학이나 사상에 머물고 말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상징주의는 언어 자체의 미학이었다. 일반 언어가 아니라 환기력 있는 언어의 추구였다. 문학은 사실적 산문을 넘어서서 상징적, 함축적, 암시적일 수 있는 힘, 즉 순수한 환기력을 빚어내고 간직하지 않으면 존재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언어의 이러한 힘을 위하여 상징주의는 언어에서 굳어버린 관습을 지우고자 한다. 굳어진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이러한 언어탐구의 과정을 시인들은 "연금술"에 비유하였다. 그것은 언어의 금과 은을 만드는 방법이었으며, 하나의 의식(儀式)이었다. 현자의 돌이나 지모(地母)나 절대의 언어는 동일한 신성성(神聖性)을 목표로 하였다.    상징의 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감각의 정화작업과 동시에 언어의 정화가 요구되었다. 본질적 관념의 세계를 그리기 위해서는 언어의 새로운 사용법이, 그 세계의 자연스런 유로(流露)를 위해서는 암시의 기법이, 암시를 위해서는 음악의 기법이 필요하였다.   교감   새로운 질서의 공감을 빚어내고 읽어내기 위해서는 감각의 정비가 필요하다. 감수성을 신선한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낡은 감각들을 버려야 한다. 이러한 부정, 즉 어떤 논리적 필요와 근거 하에 기존의 감각체계를 뒤흔들고 지우는 행위를 랭보는 "모든 감각들의 오래고도 광범위하며 논리 있는 착란:(폴 드무니에게 보낸 편지)" 이라고 설파한다.   이는 감각의 틀을 단순히 새 것으로 바꾸자는 차원이 아니었다. 랭보는 스승이었던 이장바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시인은 착란에 의하여 '미지의 세계'에 도달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시인은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세계를 촉지하고, 그곳에로 나아가야 한다. 낡은 시선으로는 볼 수 없고 예언자의 통찰력을 가져야한다고 하였다.   이 '보는 힘', 즉 정신의 참되고 아름다운 새 질서를 완성하는 능력의 소유자를 랭보는 '견자(見者)라 하였다. 그것을 위하여 감각의 오랜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착란을 통하여 견자가 되는 것, - 이는 마치 무병(無病)을 앓고 난 뒤에 신통력을 얻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견자 -시인은 스스로 자신의 제어력를 벗어나고 자신을 버린 상태에 도달한다. 이때 그는 "나는 타자(他者)"라고 말한다. 나는 죽은 것이다. 말을 하는 자는 나의 넋이 아니라 다른 자의 넋이다.   이토록 무의식의 바닥으로까지 내려가 만나고자 하였던 감각과 인식의 또 다른 차원을 보들레르는 일찍이 랭보보다 앞서, 이란 시에서 열어주었다. 랭보가 말하는 '모든 감각들의 착란'이란 보들레르에게서는 감각과 감각의 경계선이 없어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예를 들어 청각과 시각이 통합되는 것,9) 즉 '색깔 있는 청각' 등으로, 감각이 섞이며 새로운 감각으로 변하여 또 다른 '영혼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감각과 정신의 해방되어 맞는 낯선 상태, 즉 '미지(未知)'에 대한 추구를 말해준다. 그곳의 '가장 새로운, 보장된 높은 자유"(Mallarme, 1974:3632)를 위하여 무구(無垢)한 감각과 시선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제 감수성과 시선의 혁명이 없으면 언어는 세계를 창조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떤 감각이 다른 영역의 감각까지 불러일으키는 증상," 다시 말해 '공감각(共感覺)'은 요컨대 질서를 다시 빚어내고자 하는 욕구의 결과이다. 이 교감(交感)은 감각과 감각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교감의 세계에서는 주관과 객관이 섞인다. 그리하여 자아조차 버린다. 나는 나를 벗어나 나를 바라본다. 자아가 아니라 타자 - 자아인 상태에서 "자신의 생각이 발현하는 것에 동참"한다고 랭보는 말한다. (). 자아의 바깥에서 자아의 발현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 행복한 격리에 대해 말라르메 또한 말한다. "나는 이제 비인칭(impersonnel)이 되었다." "네가 알던 스테판느가 더 이상 아니며", 우주적 합일을 향하여 가는"하나의 능력일 뿐이다"라고(). 논리와 언어의 우주적 합일을 위하여 그는 개인의 감성을 버리고자 한다. 그것을 시인은 '탈성인화'라고 한다. 일체의 감성적 여건으로부터 비인칭화 됨으로써 거짓된 감성의 한계를 초월하고, 현상의 모순을 극복할 논리를 수용한다.   말라르메와 랭보는 결국 같은 곳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탈인성화나 자아의 의도적 위기를 통하여 그들은 정신과 언어의 격을 바꾸고자 하였다.     암시와 모호성  '암시(suggestion)'의 기법은 문학, 음악, 미술, 춤, 연극 등, 상징주의의 모든 작품에서 필요로 하는 기법이다. 상징주의자들은 대상을 묘사할 때 객관적인 언어로 윤곽 있게 선명하게 그리는 일은 대상을 죽이는 일이라고 보았다. 말라르메는 "오직 암시만 있어야 한다"(Mallarme, 1974:869)고 말한다.        어떤 대상을 명시하는 것은 시가 주는 기쁨의 4분의 3을 제거하는 일이다. 시의 기쁨이란 조금씩 점쳐보는 데 있다. 대상을 암시하는 것, 바로 이것이 시의 꿈이다(Mallarme, 1974:869).     조금씩 점쳐본다는, 상징이 주는 기쁨의 여지는 지시적 언어로써는 바랄 수 없는 것이다. 꿈이나 수수께끼를 풀어가듯이 대상에 대한 관념을 예감하며 대상의 양상들을 따라가는 것이 언어가 주는 기쁨이다. 대상을 '통째로 취한다'는 것은 마치 사진을 찍는 것처럼 기존 언어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모든 생성을 전적으로 막는 일이다.       고답파 시인들은 사물들을 통째로 취하여서 그것을 제시한다. 따라서 신비감이 부족하게 되는 것이다. (---) 어떤 대상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시가 주는 기쁨의 4분의 3을 제거하는 것이다. 기쁨이란 조금씩 풀어 나가는데 있는 것이다. 대상을 '암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시의 꿈이다(Mallarme, 1974:869).     "신비야말로 상징을 이루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신비가 없으면 생성 자체가 불가능하였다. 신비야말로 생성의 영역이다. 사물을 명명하는 것은 상징의 목적에 반하는 일, 즉 신비로운 상상작용이나 유추작용, 환기작용을 막는 일이다. 그것은 언어에 대한 꿈과 언어가 주는 기쁨을 가로막는다.    베를렌이 음악이 그려내는 모호한 영역에 집착하는 것은 같은 이유에서다. 그는 음악에서의 '뉘앙스'를 시에 이식시키고자 한다, 베를렌의 모호함에 대한 추구는 랭보의 '감각들의 논리 있는 착란'이 겨냥하는 바와도 통한다. 모두 다 대상에 대한 굳어있는 의식 지우기에서 출발하여, 열린 감각과 질서를 향하겠다는 의지를 따른다. '회색 노래'란 서정적 노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인 지향이었다.      또 그대는 오해를 할 수 없도록    말을 선택하려하지 말 것.    '미묘함'이 '선명함'에 뒤섞이는    회색 노래보다 더 귀한 것 없으니.      그것은 너울 뒤의 아름다운 두 눈,    정오의 이글거리는 태양빛,    미지근한 가을 하늘에    밝은 별들의 푸른 뒤엉킴이어라!      왜냐면 우리는 '뉘앙스'를 아직도 원하기 때문 (---)                                                   ()     암시기법은 그 특성상 미술에 손쉽고 직접적으로 적용되었다. 미술에서 암시는 신비와 거의 동의어였다. 암시의 기법은 신비의 해석이라는 작업에 함께 참여하도록 감상자를 더 쉽게 청할 수 있었다. 자유로운 상상과 무의식이 개입되는 감상 - 이로써 감상자는 적극적인 해석자가 된다.       르동은 암시적인 기법이란 사유를 자극하면서, 그것이 조명하고 예찬하려는 꿈들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숭고한 조형 요소들을 결합시켜 빛을 발산시키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모호란 형식들을 통해 '감상자'에게 적극적인 역할을 하도록 유도했다(장티, 2002:92-93).      암시는 그러므로 단순한 하나의 기법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전통적 표현기법에, 그리고 사실주의의 허상에 맞서는 일이다.    그것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태양광선 아래 사물을 새롭게 보았던 방식과도 어쩌면 상통한다. 빛이 인상주의자들에게 해주었던 역할을 상징주의자들은 암시의 기법에서 기대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감각과 언어의 쇄신과 병행하는 것, 새로운 사물읽기와 같이 가는 것이었다. 암시법은 다르게 보는 것을 요구하였다. 이제부터 상징주의는 한 마디로 다르게 보는 법이었다.       (---) 새로운 시 의식을 갖게 된 것은 상징주의자들 덕이다. 인상주의가 회화를 재현의 틀에서 분리시킴으로써 현대회화를 고안해내었듯이, 언어를 상징기법에 우위를 두면서 동시에, 말을 부호만이 아닌 또 다른 무엇, 완전한 권리를 가졌으며 향후로 확고부동해질 어떤 예술, 즉 시의 -화가에게 색채 같고 음악가에게 소리 같은 - 특수 재료로 만들면서, 우리에게 다르게 읽는 방법을 가르쳐준 것은 바로 상징주의이다(Marchal, 1993:30).     인상주의 회화에서 빛의 발견과 같은 의미를 지닐 정도로, 상징주의에서 중요한 발견은 서술이나 묘사나 설명이 아니라, 암시와 상징을 통해 제시하는 방법이었다. 단지 정확하거나 사실적인 기술 또한 함축적이거나 웅변적이기만한 기눙에 머물러서는 이제 시의 언어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지지어와 지시대상과의 자의적 관계를 넘어서서 본질을 향하고 다른 우주를 창조해내야 한다. 창조가 이뤄지는 때에야말로 '문자 속의 신비'가 존재하는 것이다. 진정 순수한 '허구'가 실현되며, 글쓰기의 의미를 되찾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기본적으로 세계라고 하는 상징현상을 해독해내는 '번역자'이면서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특이한 상징적 기능을 지닌 언어를 빚어내는 '언어의 연금술사'가 되어야 한다"(김기봉, 2000:40). 시인의 소명이란 상징을 읽어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징들을 통해 본질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음악   베를렌이 이라는 시에서도 강조하였듯이 음악은 상징주의 시의 바탕을 만드는데 언어 다음으로 중요한 요소이다. 말라르메는 "음악에서 우리 자신을 되찾아오는 것"이 문학이라는 예술이라고 하였다.   그에게 음악은 현악기나 목관악기의 소리 등, 음악의 기초 재료로서의 음악이 아니라, "모든 것 속에 존재하는 관계들의 총체"로서 마치 기악편성이나 교향악과 같은 것이다.   이 밖에도 음악은 상징주의 언어에서 여러 의미를 지닌다. 음악은 암시의 기법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의 신비를 빚어내는 일에 조력자 역할을 한다. 또한 음악은 시에 유연성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역동적 움직임을 주도하기도 한다.   음악은 나아가 마치 글쓰기의 직접적 도구나 재료인 것처럼 사용된다. 말라르메의 작품 에는 문자들이 악보의 음표들인 듯 배열되어 있다. 소리의 강약처럼 문자들이 크게 작게, 여러 다른 활자들로써 다채롭게 배치된다. 음악에서 휴지나 중지가 있듯이 백지와 여백이 텍스트 전체를 주도하기도 한다. 그가 를 악보처럼 생각하고 썼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새롭게 창조될 상징들의 조화로운 세계, 즉 언어가 빚어낼 '새로운 환경'을 위해 이처럼 음악의 도입은 필수적이다. 상징주의 시에서처럼 철저히 음악을 사용한 문학은 없다. 음악에 문학을 근접 또는 접목시키려는 시도는 상징주의자들에게 공통된 것이었다.    보들레르는 음악을 이라는 시에 이미 차용하고 있다. 라는 시는 언어와 음악과 춤의 구체적이고 정교한 융해를 보여준다. 이들은 단지 언어의 기교 차원만이 아니라 시의 원론에 음악을 사용하였고, 음악의 구체적인 사용법들을 보여준다. 음악의 모방 차원을 이미 넘어, 말라르메는 '시는 더할 나위 없는 음악'이라고까지 하였다.   음악을 더욱 현실적으로 언어에 적용한 예는 베를렌에서 찾을 수 있다. 베를렌은 "여전히 그리고 언제고 음악을!"이라고 에서 외쳤다. 그는 음악을 시 속에 실현시키는데 있어서 거창한 야망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음악사용은 소박하지만 능란한다. 리듬의 도입은 그의 시에서 아주 자연스러워서 음악과 시의 리듬은 구별할 수 없도록 거의 하나가 되어있다. 이것이 그의 서정시를 완성시켜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그의 시에서는 언어와 감정과 음악이 완전히는 분리되지 않는다.   9) 흔히 말라르메의 이라는 시에 나오는 '푸른 알제뤼스(삼종기도) 종소리' 같은 예를 들기도 한다.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7)   3. 상징주의의 언어     말라르메가 "시를 만드는 것은 생각들이 아니다. 그것은 말들로써 이뤄지는 것이다" 라고 르동에게 설명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지금은 평범하게 들릴지 모르나, 여기서 시인은 문학에서 문학 외적인 것을 분리하고, 상징주의는 결국 언어탐구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언어는 마침내 그것 자체로 '살아 있는 존재'여야 한다고 하였다. 언어가 살아있는 것은 대부분의 언어는 죽은 언어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것은 문학어의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말라르메는 언어를 두 개의 층위로 구분한다.       우리 시대의 떨쳐버릴 수 없는 욕구 중 하나는 한편으로는 날 것 혹은 직접적인 상태와, 다른 한편으로는 본질적인 상태로, 마치 서로 다른 기능을 하기 위해서인 것처럼, 말의 이중적 상태를 분리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 : Mallarme, 1974:368)     직접적 언어나 날 것의 언어라는 말은 자연적 언어라는 뜻이 아니다. 여기 우리들이 사용하는 관습에 젖은 일상어를 말한다. 일상어가 혁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따라서 시인은 언어를 '분리시킨다'는 말을 쓰고 있다. 언어를 '불완전한 언어들'과 완전한 언어로 구분한다. 본질적이고 이상적인 언어, 즉 보들레르가 말하는 '모어母語'를 빚어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여기가 아니라 '저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곳의 언어는 날 것이며 언어 연금술의 대상이다. 두 언어는 기능이 다르다.       서술하거나 가르치기거나 묘사하는 것까지도 괜찮다. 더구나 사람의 생각을 주고 받으려면 말없이 타인의 손에서 동전 한 잎을 가져가거나 건네주는 것으로 어쩌면 각자에게는 충분할 것이다. 언어의 이러한 일차적 사용법은 보편적인 '보고'의 임무를 맡고 있으며, 현대에 씌어진 글의 종류들은 문학만 제외하고 모두 이러한 성격을 지닌다().     문학어는 일상어와는 다른 이차적 언어이다. 일차적 기능과 그것이 전달해주는 허위의 현상들은 지워야만 언어가 '새로운 환경' 속에서 본질에 대해 암시할 수 있다.   '순수개념'이라는 말은 '관념' 혹은 '이상'이라고 번역된 '이데(idee)'10)와 많은 경우 동이어로 쓰이는데, 다음 글에서는 기존의 생각으로 굳어지지 않고 본원적 진실에 가까운 개념이나 생각을 말한다. 그 '순수 개념'의 유로流露를 희망하여 이차적 언어가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나 전율하면서 거의 사라져가는 자연의 한 현상을 말의 작용에 의하여 옮겨놓는다는 기적은 대체 어디에 소용되는 것인가. 눈 앞에서의 구체적 환기라는 제약을 넘어서, 순수개념이 거기서 유로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한 송이 꽃! 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의 목소리가 꽃의 어떠한 윤곽도 다 지워내버리는 망각의 저 밖에서, 내가 알고 있던 꽃받침보다 다른 그 어떤 것으로서, 모든 꽃다발이 부재하는 꽃이, 꽃에 대한 그윽한 생각 자체가 음악처럼 솟아오른다.                                                                                                               ()     기존의 생각과 언어는 모두 지워버린 상태인 빈 마음 위에, 대상에 대한 생각이 새로이 환기되도록 하는 것이 이차적 언어의 기능이다. 대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거나 지시하고 명명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지의 매개체인 시어들이 대상을 환기시키고 유추하게 함으로써 마음 속의 이미지를 독자가 깨닫게하는 것이다.       발음된 말은 그 말의 주위를 진공 상태로 만들고, 감각세계에서 온 일체의 비전을 제거하며, 그리하여    (---) 순수하고 외롭고 성스러울 만큼 무용한 관념 그 자체를 환기할 수 있는 위력을 보유하게 된다(레몽, 1983:36)     이러한 힘에 비해 직접적 언어는 소통의 관습적인 도구로만 쓰인다. 동전을 조용히 타인의 손에 쥐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기능일 뿐이다. 의사전달에 쓰이는 언어는 일단 의미가 이해되고나면 공허한 것으로, 실질이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없다. 반면 본질적 혹은 본원적 언어는 영혼을 감동시키고 영혼 속에서 몽상들의 생성을 유발시킨다. 그것은 이제 언어 이상의 하나의 '존재', 즉 유기체다. 다시 말해 언어에 의하여 솟아나는 이미지, 소리, 색채, 울림, 그리고 '은밀한 친화력'(레몽, 1983:36)이 결합된 어떤 생성이라고 하겠다.   말라르메의 말대로, "언어는 생명을 내포하고 있는 유기체에 가까워짐으로써 모음과 이중모음 속에 일종의 살과 같은 것을 드러낸다." 언어의 '살' 즉 실질을 지닌 살아있는 언어라는 존재는 상징들의 더 큰 '관계망'을 만듦으로써, 나아가 태초의 질서를 복원시키는 힘까지 갖게 된다. 상징주의자들이 말하는 언어의 진정한 효용성이다. 이 효용성은 거의 마법에 가까운 힘이다. 언어의 이러한 신비란 신비주의가 아니라 언어에 최대의 '효율성'이 주어지는 양상을 말한다.   순수와 긴장에 의하여 빚어지는 언어의 이 압도적인 힘은 거의 본질을 발현시키는 신비로운 가능성이다. 직접적 언어인 일차 언어는 현실의 언어, 기능언어인 데 비하여, 이 본원적 언어는 우리 삶에 새로운 유동성과 자유를 부여하는 언어이다. "타락되고 모양이 일그러진 것들을 온전한 모습으로 환원시키고 원초적인 무죄의 상태로 복원"(레몽, 1983:37)시키기 위해 존재하여야 하는 이 언어는 그러나 현실에서는 무용한 무상의 언어이다.     이런 종류의 시학에 있어서 난해성은 불가결한 요소임을 이제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러나 난해성과 신비주의 경향을 띠며 상징주의 시인들이 대중과 유리된 것은 글자 그대로의 귀족주의는 아니었다. 그것은 상징주의 언어가 갖는 피할 수 없는 속성이었다. 그 속성은 나아가 이제 시 언어와 산문 언어를 차별화하기에 이른다. 시와 산문은 형태상으로만 구별되는 것이 아니었다. 산문을 논하는 것처럼 시를 논할 수 없도록, 시 개념에 대한 새로운 차원이 마침내 열리게 된다.     발레리는 에서 시와 산문을 구분하여, 산문은 걷기처럼 어떤 목표를 갖는 것이지만, 시는 춤을 추는 것처럼 그 자체만을 목적으로 하며 다른 목적을 갖지 않는다고 한다. 시는 목적에 산문은 수단에 가깝다. 시의 대상은 분명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노리는 것은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것의 드러난 목표는 오히려 사물에 대한 스쳐가는 듯한 인상이나 기억일 수 있다.       산문과 마찬가지로 걷기는 하나의 확실한 대상을 노립니다. 그것은 무언가를 지향하는 하나의 행위이고, 우리는 그것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     춤, 이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분명 이것도 어떤 행위들의 체계입니다. 그러나 그 행위들은 자신 속에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춤은 아무 곳으로도 가지 않습니다. 그것이 어떤 대상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른 하나의 관념적 대상, 하나의 상태, 하나의 황홀, 꽃에 대한 하나의 환영, 삶의 하나의 극한, 하나의 미소 -- 텅 빈 공간에다 그것을 갈구하던 자의 얼굴 위에 마침내 솟아오르는 미소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말라르메가 언어를 관습적 언어와 본원적 언어로 구분하였듯이, 발레리는 산문언어와 시언어로 구분하면서, 상징언어의 속성에 대해 설명한다. 실용언어와는 달리 시언어를 표현하고 해독하는 것은 내적 감수성이나 '영혼의 상태'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관계와 본질과 생성의 언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와 산문은 그러니까 우리의 신체와 신경의 유기체 속에서 결합되고 해체되는 어떤 결합관계들과 연상관계들의 차이에 의해 구별되는 것입니다. (---)     나의 의도, 나의 욕구, 나의 명령, 나의 의견을 표현하기 위해 방금 내게 소용되었던 언어, 제 의무를 다한 이 언어는 도달하자마자 사라집니다. (---)     반대로 시작품은 살았다고 해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명백하게 그것은 잿더미에서 재생하도록, 그리하여 좀 전의 자신으로 끝없이 되돌아 갈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산문언어는 언어의 목적지에 닿는 순간 효용이 다하지만, 시언어는 결코 소멸하지 않으며 본질 속에 끝없이 재생한다. 아무 곳으로도 가지 않는다. 언어는 이렇게 실질을 지니게 된다.   '관념(이데)'의 특질은 일상어로는 포착할 수 없는 것이다. "부분을 전체로, 이미지를 현실로" 보이도록, 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의 힘을 빌려 빚어내도록 하는 것이 상징의 기능이다. 이것이 바로 시언어이다. 시언어는 현실적 교환이나 지시가 목적이 아니라 스스로가 목적이다. 그러나 실용언어는 근본 속성상 바로 다른 것으로 변하는 것이다.     시언어는 변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재생하는 것이 바로 언어에 대한 시인들의 꿈이다. 말라르메는 그것을 '불사조에 타버린 꿈'이라 하였다. 그 언어는 클로델 Paul Claudel의 말대로 '앎의 상태'를 넘어서 '기쁨'의 차원을 지향한다. 보들레르의 '상징의 숲'은 일상어의 초월을 통하여 창조되는 언어의 신세계를 가리킨다.   그리하여 관습적 언어를 정신의 필요에 의해서 영혼의 상태를 그려낼 수 있도록 거의 비의적인 방법으로 정화하는 일, 그것 때문에 언어의 난해성이 있게되는 것이다. 본질로 환원된 언어를 통하여 언어와 정신의 어떤 통합에 도달하는 것 - 그 일을 랭보는 '언어의 연금술'이라고 하였다. 그의 시 은 연금술에 의한 신비로운 언어의 탄생을 그린 것이다.   10) 관념으로 번역되는 '이데'는 대체적으로 대문자로 쓰이는데, 원래 시적 관념, 내적 관념, 형이상학적 관념 등을 가리키며, 그 범위가 '상징' 만큼이나 넓다 (Marchal, 1993:174 참고)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8)   4. 상징주의의 전개   1. 상징주의의 계보   자유시, 산문시, 순수시   상징주의는 19세기 중엽에서 말까지 성행하였고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프랑스를 중심으로 그 성숙한 성과를 보여주었던 문예사조로서, 고답파의 객관주의에 의한 반동이며, 이성이나 추론에 의하여 포착할 수 없는 주관적 감정을 파악하고 표현하기 어려운 직관들과 사고의 표현을 목표로 하여, 기존 문학형식에 많은 혁신을 가져왔다.   그 혁신은 무엇보다 언어에 대한 태도에서 두드러진다. 본질언어에 대한 탐색은 시언어, 즉 상징언어에 대한 추구였다. 그리하여 상징주의는 위고Victor Hugo의 낭만주의에서 고답파에 이르렀던 프랑스 당대의 시 전반에 새로움을 가져다주었다. 이 새 바람은 자유시와 순수시를 낳게 된다. 관념적이던 상징주의자들이 공략한 것은 시, 그중에서도 자유시 부분이었다.   베를렌은 자연스럽게 전통 시구의 갱신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자유화시' 또는 과격시는 각운에 대한 전통적 규율에서 해방된 시를 뜻하지만, 정형시의 전통적 율격을 더 철저히 따름으로써 '자유시(vers libre)' 와는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랭보는 베를렌의 (1874)보다 앞서, (1873) 등의 시에서 베를렌과 유사한 시도를 보여주었다.   베를렌의 자유화시는 자유시의 초석이 되었으나, 각운에서 완전히 해방되지는 못하였다. 시를 외형적 율격에서 진정으로 해방시켜 자유시, 곧 오늘날 현대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상징주의의 가장 현대적인 기여의 하나다.      자유시는 음절 계산을 넘어선 시로서, 생각, 호흡, 음악성의 요구에 따라 시가 흐르는 대로, 때로 완전히 자의적인 방식으로까지 변조되는 시이다. 시를 해방시킨 것은 상징주의이다(Marchal, 1993:177).    1886년 7월에는 귀스타브 칸Gustave Kahn이 자유시의 창안자로 나선다. 베르트랑 마르샬은 쥘 라포르그의 원고를 친구 칸이 발표시기를 늦추어 한 달 뒤인 8월에 발표함으로써, 그 우선권을 탈취한 것으로 보고 있다(Marchal, 1993:52).11) 라포르그는 두 달 뒤 마약과 폐결핵에서 헤어나지 못하여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마르샬 이전에 이미 리샤르는 칸은 오히려 시의 '절(storphe)'을 시의 가장 핵심적 기본단위라고 생각하였다고 하면서, 칸이 자유시의 창안자라는 점에 의문을 표시하였다(Richard, 1978:380). 모리에 등은 일반론대로 칸을 그 창안자로 기술하였다(Morier, 1981:1168).   이제 시의 리듬은 기존의 정형에서 많은 변모를 보인다. 상징주의 자유시는 "의미 있으며, 소리 들리는 부호이자, 영혼의 움직임의 상징들인 리듬들을 채택하고자 하였다"(Morier, 1981:1168). 그것은 '언어의 공식적 리듬'에 비하여, 정신의 '새로운 모험'(말라르메)을 가능하게 하여, 시의 형태를 놀랍도록 변모시켰다.    자유시는 칸과, 언어의 음악성과 순수시의 중요성에 대한 생각을 끝까지 밀고 '악기파'의 제창자 르네 길Rene Ghil 같은 시인 등을 중심으로 더욱 발전한다.    상징주의 시는 자유시에서 더욱 나아갔고 그 결과 산문과 유사한 형태의 시가 널리 퍼지게 된다. 보들레르, 로트레아몽, 랭보, 말라르메 등은 알로이시우스 베르트랑(1807~1841)이 시작한 산문시를 더욱 발전시킨다.     너무 엄격한 형식에 대한 반동으로 탄생하였던 산문시는 대체적으로 베르트랑이 죽은 다음 해인 1842년 간행된 그의 가 시작한 것으로 본다. 보들레르는 베르트랑에서 영감을 받아 산문형식을 빌려 '소산문시'를 발표함으로써(1855~1867) (사후에 이라는 제목으로 간행된다), 상징시의 또 다른 문을 열어주었다.    산문시는 "자유시가 나타난 뒤 사라지게 될 한 전위적 형식이 아니라, 새로운 시 언어를 창조하려는 노력"(Bernard, 1988:771)의 일환이었다. 또한 산문시는 표현의 무한한 다양성과 유연성을 지닌, 인간의 내적 자유를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장르로 부각되었다.    산문시의 시도는 그리하여 초현실주의 시인들과 현대 시인들의 광범위한 시도로 끝없이 계속되게 된다. 베르나르의 8백 페이지를 넘는 방대한 저서의 결론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자유와 반항의 장르인 산문시는 (---) 시형식을 갱신하려는 하나의 단순한 시도 이상이다. 정신의 욕구, 즉 인간이 운명에 대해 영원히 다시 시작하는 싸움에서의 한 양식이었다.(1988:773)     산문시의 가장 큰 성과는 이렇게 시를 해방시켰다는 데 있다. 상징주의 시는 이렇게 언어의 외적 형식의 소박으로부터의 자유, 즉 언어의 해방과 동의어였다. 동시에 내면이 해방의 동의어로서, 시에 대한 이상적인 이미지를 동시대인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확고히 각인시켜주었다. 향후 프랑스 시는 정형시와 자유시로 나뉘게 되며, 상징주의는 자유시와 같다는 생각이 당대인들의 머리에 확고히 새겨졌다.     음악의 특질들을 시에 수용하고자 하였던 '순수시'는 프랑스 상징주의가 빚어낸 것이다. 이것은 원래는 "산문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시의 이상을 정의 내리는"(Marchal, 1993:175) 말이었다.  이야기나 서술, 개념적 사고 등, 시의 요소 이외의 것들은 모두 시에서 배제하고자 하였던  이 순수시는 말라르메로부터 시작된 생각으로, 음악적 암시의 순수한 효과를 중시하였다. 순수시는 극단적으로는 "언어이긴 하지만, 감각적 언어 혹은 음악적 언어였다"(Marchal, 1993:176). 이러한 상징주의의 순수시는 일체의 사회적, 현실적 관심을 떠나서 서정의 세계만을 대상으로 하고자 하는 넓은 의미의 순수시와는 구별된다.   말라르메의 생각을 '순수시'라는 말로 제시한 시인은 발레리였다. 그는 고도의 지적 세계를 이미지와 감정의 결정체로 조화롭게 빚어냄으로써, 순수시의 영역을 더욱 확충시킨다.   자유시와 산문시와 순수시의 확립에서 볼 수 있듯이, 상징주의는 이전의 문학을 부정하고 새로운 양식을 추구하겠다는 의무를 스스로에게 이미 부여하고 출발한 것이다. 문학은 전위적이 되었고 다양한 유파와 문학선언이 이어졌다.   상징주의의 계보   상징주의 운동에는 세 스승, 즉 감정의 탁월한 양식을 빚어내었던 베를렌, 감각 인식의 새 지평을 연 랭보, 지성의 언어관을 구축한 말라르메가 확고하게 자리한다. 각기 다른 성향을 낳았던 상징주의의 거대한 움직임들의 정점에는, 감각과 시형식과 상징술과 사상의 위대한 선구 보들레르가 있었다. 그의 은 서구 현대시를 낳은 가장 거대한 뿌리였다.   베를렌은 음악적으로 완벽한 순수 서정시를 썼으며 그 감정적인 어두운 면, 원죄의식 등은 데카당스로 이어진다. 주술과 환각으로까지 이끄는 랭보의 언어와 감각은, 환상적 시세계를 개척하였으며, 초현실주의를 열어주었다.   말라르메의 언어의 정화와 형식의 혁신 작업은 상징주의 이념의 체계화의 결과였다. 말라르메의 순수시와 절대시의 체계는 19세기에 그치지 않는다. 발레리는 그의 업을 확실히 계승하여 20세기 최고의 상징시이자 지성시의 탑을 쌓는다. 말라르메는 소네트를 완성시켰다는 평을 듣기도 하지만, 또한 전통을 넘어서는 활자법을 개발하여 시행이 해체된 시를 창안하였고, 오늘날의 다양해진 활자배치술을 미리 시사하였다.    상징주의는 세기를 넘어서도 훌륭한, 개인적인 개화들을 보여주었다. 발레리와 더불어 20세기 대표적 시인의 하나인 폴 크로델, 상문에 있어서 마르셀 프루스트와 앙드레 지드도 사징주의 범주에 들어간다.   협의의 상징주의, 또는 미시적 상징주의는 약 15년 내외에 걸친 활동으로 1890년경이 전성기였다. 장 모레아스, 트리스탕 코르비에르, 귀스타브 칸, 쥘 라포르그, 알베르 사맹, 프랑시스 잠, 에두아르 뒤자르뎅, 르네 길, 조르주 로당바크, 에밀 베르아랑, 아리 드 레니에, 프랑시스 빌레-그리펭, 사를르 모릿, 르미 드 구르몽, 등 많은 시인이 여기에 참여하였다. 상징주의 선구자들의 창조적 혁신은 구스타브 칸의 자유시와 르레 길의 '악기파'의 창시로 다시 꽃핀다. 그러나 이 짧았던 상징주의는 문학적 기여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보들레르의 시적 혁명, 말라르메의 이론적 체계화, 원죄의식의 베를렌, 감수성의 랭보 - 이 선구자들의 새로운 문학에 비하여 협의의 상징주의는 결국 이에 필적할 만 영향력 있는 대시인은 낳지 못한 것이다.   그밖에 후기 시에 깃든 병적인 악몽의 세계에 빠진 로트레아몽이 있다. 일명 이지도르 뒤카스의 (1868년, 1869년)는 '파괴적 아이러니'(Marchal, 1993:23)와 비현실적 내용과 형식의 독창성이 결합된 장편의 미완 산문시로, 후에초현실주의로 부활한다.   11) 참고로, 1886년은 상징주의 운동에 있어서 중요한 한 해가 된다. 모레아스의 랭보의 과 르네 길의 발간 외에도 칸과 라포르그의 자유시의 원년이었고, 쇼펜하우어의 가 불역된 해이기도 하다.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9)   4. 상징주의의 전개   2. 상징주의의 반향   상징주의의 다른 장르   말라르메는 위스망스의 소설 에서 세련되고 완벽하며 압도적인 시인으로 소개되었으며, 젊은 문학가 예술가들은 그를 정신적 사표로 삼았다. 파리의 로마로(路)에 있는 그의 아파트에서는 화요일마다 소박한 문학 모임이 열렸는데, 여기서는 시와 문학뿐 아니라 음악, 미술, 춤, 연극 등, 예술 전반에 대한 폭넓은 의견 교환이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베를렌, 지드, 발레리, 클로델, 피에르 루이스, 프루스트, 구르몽, 레니에, 모리스 바레스 등의 많은 프랑스 문인뿐 아니라, 해외에서까지 널리 알려져서 오스카 와일드 등도 참석한다. 그 외 르동, 고갱, 로댕, 드가, 마네, 모네, 르느와르, 드뷔시 등, 현대 프랑스의 많은 위대한 예술가들이 줄을 잇게 된다. 이 모임은 예술의 여러 분야에 상징주의의 새로운 미학을 전해주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화요회의 영향은 프랑스뿐 아니라 유렵 여러 나라에까지 미쳤다.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은 현실 너머 세계의 창조에 몰두한다. 상징주의는 극도 이상주의에 몰두하여, 1865년경 말라르메는 운문극 혹은 극시 와 를 쓰기 시작하는데, 이 작품들은 현실을 떠난 듯 신비로운 분위기를 보였다.   또한 18세기 마지막 4반기에 바그너의 영향은 프랑스 연극에서 사실주의를 버리고 시적 언어로 신비주의를 그리도록 하였다. 1885년 의 창간은 이미 행사하고 있던 바그너의 영향력을 더욱 크게 하였다. 빌리에 드 릴라당, 모리스 메테를링크, 폴 크로델이 그 가장 활발한 성과를 보여주었다.12)   상징주의의 출발과 본령은 무엇보다 시에 있었다. 그러나 시에서 보여주었던 이상과 관념과 절대에 대한 추구는 다른 장르들에도 영향을 주었고 특이한 양상으로 완성되면서 상징주의의 영역을 더욱 확충시켰다.   이상주의는 소설에서도 부족하지 않았다. 릴라당의 소설들이 손꼽힌다. 몰락한 귀족 출신이었던 그는 유창한 콩트 작가로서 주로 물질주의에 맞서 정신적인 절대의 세계를 동경하는 이야기들을 썼다. 그의 영향으로 많은 상징주의자들은 외부 세계의 현실에 등을 돌리고 절대적 이상주의라는 고통스런 모험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결국 그의 모험은 '절대적 페시미즘'에 도달하였고 다수의 상징주의자들도 같은 길을 갔다(Rait, 1986, 261~262).  위스망스의 (1884)는 주인공 데 제생트라는 귀족이 퇴폐적 미학을 추구하며 외부와 단절한 채 삶보다 예술에 빠져 다양한 실험을 행한다는 이야기로, 보들레르가 그렸던 이국적이고 인공적인 세계를 탐미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이 긴 독백형식의 소설에서 주인공은 미적 쾌락 속에서 고통의 출구를 찾는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자연적 대하소설 를 썼는데(1913~1927), 여기서 그는 이상을 찾아 의식의 심층을 탐사하고 있다. 이 소설은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문학청년인 나, 마르셀이 기술해가는 7편으로 된 1인칭 고백형식의 소설이다. 이 대하소설은 그러나 기존의 서사적 소설이 아니다. 서사적이라면 자아의 내면에 대한 서사라 하겠다. 이 소설은 어떤 이야기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어떻게 소설이 탄생하는가에 대한 내적 이력을 탐사한 소설이다.   마들렌느를 먹는다. 그러면 유년의 어떤 추운 겨울, 홍차에 곁들여 먹던 조가비 모양의 이 작은 과자에 대한 기억과 더불어, 일리에에서 보낸 유년기가 시간의 흐름에 의하여 순화되고 결정(結晶)이 되어 살아난다. 홍차와 마들렌느가 촉매가 되어 자아는 무의식의 심층 탐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마치 태양계의 조직처럼 화자의 의식이 태양인"(Marchal, 1993:121)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화자의 시선에 의해 세계가 재구성되지만 여기서의 세상은 내면화된 세상이다.   말라르메가 에서 꽃다발의 부재와 더불어 언급하였던 언어의 환기적이고 암시적인 기능은 이제 프루스트에게 와서 표층의식 저 멀리, 그리고 사실주의적 현상 너머로, 또 다른 하나의 현실을 광범위하게 그리는 데에 쓰이는 것이다. 이제 자아는 사실주의 공간이 아니라 '되찾은 시간'의 새로운 매혹에 빠져든다.   이처럼 프루스트의 는 "19세기의 세계 중심적 소설을 다시 통합하여"(Marchal, 1993:121), 자아 중심의 상징주의 소설의 전형을 창조하며 동시에 성숙시켰다. 따라서 프루스트의 소설은 상징주의 범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보들레르가 시작한 의식의 심층탐사를 소설이라는 장르 속에서 더욱 천착하여 무의식의 영역을 탐사함으로써, 이미 상징주의를 넘어섰다고 평가 받는다.   상징주의의 전이   이상이 상징주의의 횡적인 반향의 양상이라면, 우리는 또 문예사조의 전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초현실주의를 낳게 한 상징주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일찍이 보들레르가 에서 시도하였으며 로트레아몽과 랭보가 추구하였던 환상, 그리고 베를렌의 퇴폐주의(데카당스)는 초현실주의의 초석을 놓게 된다.   현실을 버린 것은 아니었지만 상징주의는 현실에서 출발하여 그 너머의 새로운 조화의 공간을 창조하려 하였다. 이에 비해 1900년경부터 시작되었던 '초현실주의'는 보들레르의 로트레아몽, 그리고 랭보의 환각적이고 주술적인 언어에서 시사 받고 현실의 배후로, 현실과 의식의 밑바닥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둘 다 모두 의식의 다른 곳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같은 출발이다. 그러나 앙드레 브르통을 위시한 초현실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은 점들에 있어서 상징주의와 다르다.       즉 목적보다는 수단에 강세를 두고, 이렇게 해서 달성된 초현실의 본질보다는 비합리적인 수단의 사용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또 음악보다 회화에 더 집착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체드윜, 1981:65)     초현실주의는 초현실만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현실을 꿰뚫어 배후의 현실 속으로도 향하였고, 반면 상징주의는 초현실을 향하기도 하였다.   한편 19세기 상징주의는 순수 조형적 구성이라는 차원에서도 주요 역할을 한다. 상징주의는 '세기말'과 '아르누보(Art nouveau)'가 복합되어 널리 파급된다. 글자 그대로 새로운 예술이라는 뜻의 아르누보는 전통과 단절하려는 의지와 새로운 양식을 창조하려는 의지에 의해서 상징주의와 같은 궤라고 할 수 있었다. 이들은 미학적으로 또 형식적으로 유사한 예술운동으로, 아르누보는 1893년에서 1905년까지 주도되었으며, 기존의 역사주의 양식에서 벗어나 근대 세계에 맞는 새로운 양식 창조를 목적으로 하였다. 그리하여 아르누보는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결합된 진정한 생명체로서의 주거환경이라는 유기적인 개념 차원에서 구조와 장식 간의 구분을" 없애고자 하였다(장티, 2002:9).   상징주의 활동은 산문에서는 제임스 조이스 뿐 아니라13) 슈테판 게오르게에게 직접 영향을 끼쳤으며, 라이너 마리아 릴게의 시에도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 파울 첼란, 예이츠, 오스카 와일드, 기욤 아폴리네르, 프랑시스 퐁주, 자크 루보, 레몽 크노, 이브 본느프와, 미셀 드기 등, 현대의 무수한 작가들에 영향을 끼쳤고, 그 영향은 간단히 말할 수 없는 것이다.   12) 제드윜, 1983, p.62 참조 13) David Hayman, 1956을 참고할 것.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10)   3. 상징주의의 퇴조     이상과 관념을 지향한다는 것은 정신의 갈망에 대한 현실의 충족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결핍감을 줄 때 더 성행하는 현상이다. 가치체계의 흔들림은 그러나 가치의 위기를 잠재울 수 있을 현실적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20세기에 본격적으로 접어들면서 '세기말병'이라는 병리현상도 물 밑으로 가라앉고 경제적 안정이 찾아옴으로써 이상과 본질이라는 두 명제의 문제도 사람들의 뇌리를 떠나게 된다.   그러나 드레퓌스 사건, 파나마 사건, 모로코 사건, 식민지를 얻기 위한 열강들의 각축 등, 세기 말과 초의 역사적이고 격동적인 사건들은 사람들을  또 다른 혼란과 위기의 와중으로 밀어넣었다.   상징주의는 현실에서 출발함에도 불구하고, 생래적인 특성상 현실 변화들에 초연하려는 의지를 중시하고, 실제로 초월을 꿈꾸었다. 역사의 격동기에도 초연히 유지되는 상징주의 상아탑은 현실 감각의 결여를 가져오지 않을 수 없었다. 예를 들어 말라르메는 오해일 수도 있겠지만, 현실에 대한 활발한 참여나 견해 표명이 부족하다고 지금도 비난받는다.     관념주의, 순수에 대한 집착, 언어 자체의 모호성, 언어의 지시대상의 모호성, 유희로까지 전락하였다는 비판을 동반하였던 현학 취미, '신조어에 대한 집착과 체계적 난해성'(Richard, 1978:393), 그리고 합리적 정신으로는 수용할 수 없었던, 일부 상징주의자들의 비교술(秘敎術)과 신비주의에 대한 집착은 상징주의가 시대착오로 전락하게 하였다.   신비주의, 이상주의, 암시적 기법, 교감, 언어와 문학의 절대화, 난해성, 선민의식 등은 상징주의의 고유한 세계를 열었고 광범위한 문학 공간의 구축과 내용과 형식의 혁신에 기여하였지만, 바로 그 특성들로 인하여 상징주의는 대중과 시대의 요구에서 유리된다.   더구나 상징주의가 대중을 외면하고 작은 잡단의 변두리 속에서 칩거하며 그들의 시집을 자비로 출판하고 있었을 때, 자연주의 소설들은 대량 출판의 시대를 맞고 있었던 것이다. 일상적 삶과 단순성과 명확성을 멀리하였으며, 현실의 다양한 욕구들을 수용할 수 없었던 상징주의는 쇠퇴를, 적어도 수정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프랑스의 대륙적 합리주의라는 그릇은 상징주의를 한 없이 담아둘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모호하고 난해한 영역에 대한 집착, 즉 "명석성과 합리성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전통적인 정신을 여유 있게 포괄하지 못한 상징주의의 그 반(反)정통성"(김기봉, 2000:53)으로 인하여, 상징주의의 쇠퇴는 미리 예정된 것이었다. 상징주의로서도 마침내 시대를 수용하지 못하였으며, 또 프랑스라는 공간도 상징주의를 결국 거부한 것이었다.   암시와 상징을 통한 모호한 영역의 환기, 그리고 비교주의와 언어의 연금술이라는 것, 이들 모두는 상징주의가 벗어나고자 하였던 낭만주의의 성향에 오히려 가까운 것이었다. 상징주의가 향후에도 남아있게 된다면 그것은 시의 가장 모호하고도 보편적인 영역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막연하고 구체적이지 못한 언어와 관념의 유희는 더 이상 주류일 수가 없었다.       기실 상징주의는 시를 통해서 순수하고 고도한 정신의 수정 같이 아름답고 별처럼 고결한 영혼 가꾸기라는  관념적인 유희의 소산이었던 것이다. (김기봉, 2000:53)     클로텔은 정신적이고 종교적인 필요에 의하여, 가톨릭적 상징주의에 여전히 머무를 수 있었다. 그러나 발레리는 1892년 '제노바의 밤'이라는 위기를 겪고, 문학을 '처단'하였다고 하며, 시 쓰기를 포기하게 된다. '자아'의 문제에 몰두하며 그는 20년이 넘는 동안 침묵에 빠진다. 앙드레 지드는 북아프리카를 여행하고 삶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일에 몰두한다. 프루스트는 문학의 변모를 보여주게 된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이들 대부분은 상징주의의 유업을 이어받고 있거나 변모시키거나 장차 발레리처럼 더욱 완성시키게 된다.   이에 반하여, 상징주의의 용도페기를 선언한 다양한 조류들이 상징주의의 뒤를 잇게 된다. 상징주의를 선언했던 모레아스는 현실과 관념 사이의 "전이전 현상에만 관심을 갖는 상징주의는 죽었다"고 하며, 1891년 '로마파' 선언문을 지에 게재함으로써 스스로 신고전주의로 복귀함을 알렸다.   '본연주의', '전일주의', '미래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선언 등으로, 문학계도 역사적 격동의 현장에 동참한다.   본연주의는 19세기 말, 고답파와 상징주의에 반기를 들어 연금술적인 언어 만들기와 추상화를 거부하며, 자연의 단순성과 풍요를 구가하려 하였던 예술과 문학의 주장이다. 그것은 꿈과 관념보다는 일상과 세계를 겸허히 받아들이고자 하는 태도였다. 1897년에 있었던 모리스 르 블롱의 본연주의 선언보다는, 앙드레 지드의 이나 아나 드 노아이유와 프랑시스 잠에게서 그 취지가 더 잘 표명되었다.   쥘르 로맹은 1905년 전일주의를 제창하여, 집단의 초개인적 일체감을 중시하고 이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전일주의는 공동체적 생활에서 체험하는 집단의식과 감정의 진실성을 내세웠다.   이탈리판 입체파 운동이라 할 수 있는 '미래주의'는 1909년 마리네티의 미래주의 선언으로 표명된 것으로서, 속도의 아름다움을 새로운 형태의 미로서 내세웠다. 기계의 위력으로 출현한 새로운 세계를 환영하고, 움직임과 시간의 본질을 추구하여 과거에 대한 모든 집착을 거부할 것을 주장하였다.   '다다이즘'은 모든 것을 부정하며, 기존의 사회적, 도덕적 속박에서 해방된 개인의 진정한 근원을 찾고자 하였다. 1913년에서 1922년 사이 스위스, 프랑스, 독일 등에서 일어났던, 일체의 현실을 부정하는 반문명이고 반(反)합리적이었던 예술문화 운동으로, 초현실주의 운동의 모태가 되었다.  
1144    2019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모음 댓글:  조회:705  추천:0  2022-06-07
2019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모음     강원일보 당선작-동시 류병숙/걸어가는 신호등     누나 손잡고 막대사탕 빨며 학교 가는 서준이   건널목 건너며 사탕 든 손 치켜든다   - 야, 막대사탕 신호등이다 버스도 서고 자동차도 서고   달콤한 아침이다.     [경상일보신춘문예당선작]새놀이(동시)-최류빈       겨드랑이를 벌리면 새가 돼요 새가 될 때면 쿵쿵 점프해도 괜찮아요 점프를 해도 그저 날아가는 동안이니까   새 놀이를 하면 날갯죽지가 아파와요 저 멀리 프랑스 파리 조그맣게 보이는데 기웃기웃 창문 밖 빨강, 파랑, 하얀 빛 프랑스 만국기처럼 들어와요   짹짹거리는 울음소리를 내 주어야 해요 그래야 꼭 날고 있는 기분이니까요   너무 멀리 떠나와 둥지를 잊었어요 여섯시 반이면 애벌레 찌개 코끝을 찔러요 찌르르르 하며 몸을 감싸는 달콤한 냄새, 흔적을 찾아가야 해요   한 점씩 떨어뜨려 놓은 새의 깃털. 그담엔 저 바람을 느끼는 거예요   가득한 냄새들 깃털 속에 품고 돌아와서는 주머니를 홀랑 비우고 세모 부리 뻐끔이는 거예요 그곳이야말로 포근한 둥지예요       [2019 대전일보 동시 당선작]       오늘 학교에서 매듭 놀이를 배웠다   영철이와 한 조가 되어 팔자 매듭도 만들어보고 고리 매듭도 만들어보고 십자 매듭도 만들었다   함께 맸다가 풀었다가 하다 보니 가끔 영철이 손가락이 얽히고설키는 매듭처럼 내 손가락을 휘감기도 하고 내 손가락이 영철이 손가락을 휘감기도 했다   마음도 매듭 놀이를 했는지 집에 왔는데도 자꾸만 영철이가 생각난다 무슨 매듭인지 알 수 없는 풀리지 않는 매듭 하나 생겼다.       [2019 매일신문 동시 당선작] 액자 속의 나/ 박지영       언제부턴가 엄마가 날 보고 잘 웃지 않아요 나를 보며 웃는 엄마 얼굴이 보고 싶을 땐   반짝이는 금박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요   태권도 발차기를 하는 미술대회에서 그림을 그리는 피아노 콩쿠르에서 연주를 하는 영어 상장을 든 귀여운 아이 옆에 슬며시 다가서요     [2019 조선일보 동시당선작] 모래시계/모래시계     어느 날 들어가게 된 유리병 안 ​때부터 난 시간이 되었어 날 보는 사람들은 여러 모습이었어 급하게 어디론가 뛰어가는가 하면 가만히 지켜보기도 했어   어느 날은 한 아기가 다가오더니 아래로 다 흘러내리기도 전에 뒤집어 놓기도 했어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은 조금씩 변해있었어 아기는 훌쩍 소년이 되었지   그땐 날 뒤집지는 않았어 대신 나를 오랫동안 바라보더군 그리곤 뭔가 중얼중얼….   자세히 들어보니 10분 동안 자기를 소개하는 거였는데 듣다가 깜짝 놀랐어 내 이야기가 나오는 거야   ‘아주 어릴 적 저는 모래시계를 가지고 놀았습니다 시간은 되돌려 놔도 쉬지 않고 흘렀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붙잡을 수 없는 게 시간이란 걸 알고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2019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가족 ver.2’/ 김성진]     엄마가 너무 바빠 엄마를 새로 주문했다 그리하여 엄마2호   엄마1호는 열심히 회사 다니고 집에 오면 열심히 잠을 잔다   내가 너무 바빠 아들을 새로 주문했다 그리하여 아들2호   나는 열심히 학원 다니고 집에 오면 열심히 숙제하다 잠에 든다   우리가 이러는 동안 엄마2호 아들2호는 집에 남아 같이 밥도 먹고 소소한 대화도 나눈다 가끔은 산책을 가기도 한다   그리하여 우리 몫까지 열심히 가족이 된다 진짜 가족이 된다
1143    【 2022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모음 】 댓글:  조회:1571  추천:1  2022-06-07
【 2022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모음 】 가루        - 정준호 / 매일신문 당선작     할머니는 평생 밀가루 반죽을 빚으셨어 칼국수와 수제비를 잘 만드셨지 할머니는 고맙다고 절이라도 하듯 점점 구부정해지셨어 봄엔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으셔서 기침을 하셨어 기침 소리에 놀라 작은 꽃잎들 떨어질까 봐 조용조용 입을 가리셨어 쪼끄만 땅 짐승 놀랄까봐 발 소리를 줄이다가 점점 가벼워지셨어 작아지고 조용해지고 가벼워져서 할머니는 이제 희고 둥근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셨어 무섭지만 나도 손을 넣어 만져보았어 흰 가루가 담긴 항아리 속에서 지금도 따뜻하셨어 박수를 치면서 가루 묻은 손을 털었어 하늘에서도 반기듯 밀가루 같은 할머니 가루 같은 눈이 내렸어 펑펑 내렸어     심사평   동시도 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포기하지 않으면 길은 열려" 심사위원: 박승우(동시인), 임수현(시인)   올해 동시 응모작은 941편이었다. 작년에 비해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분이 동시 부문에 응모했다. 동시 창작가가 늘고 있는 점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응모작을 읽으며 동시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지울 수 없었다. 소재의 빈곤, 발상의 신선함, 사유의 깊이를 갖지 못한 작품이 다수였다. 신춘문예는 새로운 목소리의 탄생을 기대하는 열망이 있다. 자기 목소리를 담으려는 치열함이 엿보이지 않고 '동시'라는 고정된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기본적으로 동시도 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똑똑', '수학자의 탄생', '찾았다', '연못 배꼽이 작아질 때', '치치', '뒷면', '가루', '1+1', '갈매기', '마침표'까지 10편이었다. 최종적으로 '갈매기', '가루' 두 작품이 남았다. '갈매기'는 발상과 시적 태도가 새로워서 좋게 읽었다. 다만 간결하고 힘 있는 전개에 비해 쉽게 결말에 닿은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조나단 리빙스턴의 '갈매기의 꿈'의 기시감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점도 지적되었다. 독창적인 시선으로 더 치열하게 시적 대상을 밀고 가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좋은 시인으로 다시 만날 것 같다.     ------------------------------------------------------------------------------------------------------------------------------------------     매미 날리기                     - 유인자 / 강원일보 당선      꼼짝없이 공부를 했더니 귀에서 매미 소리가 난다. 맴맴맴맴맴맴, 맴맴맴맴맴맴, 농구대에 공을 넣으며 매미를 한 마리씩 꺼낸다. 맴,맴,맴,맴,맴,맴. 맴,맴,맴,맴,맴,맴. 귀에서 놀던 매미들이 다 날아간다. 귀가 뻥 뚫렸다.         심사평   코로나로 어려운 때임에도 응모작이 많았다. 아동문학에 대한 열정에 변함이 없어 기쁘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 중 끝까지 겨룬 작품은 이정희의 ‘손우물', 신영순의 ‘봄비', 이윤정의 ‘뿔', 유인자의 ‘매미 날리기'였다. ‘손우물'은 동심이 담겨 있는 귀엽고 깔끔한 작품이었으나 메시지가 약했고, ‘봄비'는 비슷한 이미지의 동시가 여럿 있어 낯익은 느낌이, ‘뿔'은 주제를 드러내 닫혀 있는 마무리가 아쉬웠다. 유인자의 ‘매미 날리기'는 청각적 이미지를 잘 살리고 있고 시의 구조가 단단해 당선작으로 올리는 데 이견이 없었다. ‘매미 날리기' 외 다른 작품도 빼어나 시인의 역량을 가늠케 했다. 경쟁과 속도의 시대, 공부라는 짐에 꼼짝없이 붙잡혀 있는 어린이들을 위로하는 시인의 시심을 높이 평가했다. 단순 명쾌하며 절묘한 은유도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어린이 정서에 밀착한 공감각적인 동시로 많은 생각과 웃음을 준다. 동시 단의 새로운 길을 열어 가리라 믿는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이창건·이화주 아동문학가     ------------------------------------------------------------------------------------------------------------------------------------------     비행운           - 조현미 / 경상일보 당선      비행기가 지나간다 높푸른 하늘에 밑줄 좍 ── 그으며 멀리멀리 날아간다 고추 따던 식구들도 비행기를 따라간다 할머니는 제주도 고모 집으로 외숙모는 바다 건너 베트남으로 내 마음은 말레이시아에 계시는 부모님을 찾아간다 비행기는 매일매일 바다를 건너는데 높고 넓은 하늘길을 쉬지 않고 나는데 코로나 19가 바닷길을 막았다 하늘길을 막았다 식구들 마음처럼 고추는 붉게 익고 외숙모 목은 한 뼘 더 길어졌다 혼자서만 가는 게 미안했는지 비행기도 …… 말 줄임표를 남긴다 잘 지내시나요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 식구들 마음에 밑줄 쫙 ── 긋고 간다   ■심사평-전병호 / 힘든 시대에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 예심을 거쳐 본심에 넘어온 작품은 8명의 28편이었다. 이름도 없고 번호로만 표시된 원고를 한 편 한 편 새겨가며 읽는데, 문득 그동안 응모자들이 당선의 영예를 얻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밤을 홀로 새웠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보이지는 않지만 작품마다 응모자들의 열정과 갈망이 뜨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작품의 수준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 자기만의 목소리가 없거나 치열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기성 시인들의 작품을 흉내 내는데 그치거나 뒷심 부족이 느껴지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놓칠까 까치는’은 시를 웬만큼 써본 분의 작품이었으나 이 작품의 소재, 주제 역시 많이 다루어 온 것이다. 소재는 같더라도 자기만의 시선으로 이미지와 메시지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엄지척’도 눈길을 끄는 작품이었으나 중심이 되는 시상은 기성 시인의 것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어서 가장 먼저 탈락시켰다. 최종적으로 151번의 ‘비행운’과 ‘괜찮아요, 라는 말’이 남게 되었다. 이 중에서 ‘비행운’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결혼 이민자인 외숙모는 코로나19로 인해 하늘길이 막혀 고향을 오고 갈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외숙모를 동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시적화자의 마음이 시대적 상황과 관련지어 많은 힘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며, 큰 동시 나무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     단풍잎           - 이경모 / 조선일보 당선     단풍잎 떨어진 길을 맨발로 걸으면 살짝살짝 달라붙는 단풍잎들.   내 발이 아플까 봐 나무들이 신겨주는 가을빛 가득 물든 단풍잎 신발.   걸으면 엄마, 엄마, 부르는 소리가 나는 아기 꽃신같이   걸으면 걸을수록 자꾸만 방글방글 웃음이 나는 누구나 딱 맞는 신발.     심사평   수많은 응모작들을 읽으면서 동시에 대한 뜨거운 열기와 사랑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수준은 향상되었으나 새롭고 참신한 작품이 눈에 띄지 않아 아쉬웠다. 신인에게 바라는 것은 신인다운 패기와 참신함이다. 기존의 소재라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면 새롭게 보인다. 동심의 눈으로 관찰하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세계를 단순 명쾌하면서도 신선한 시적 표현으로 담아내기를 당부한다. ‘꽃바구니 따라간 나비’는 봄날의 정경을 아름답게 형상화했다. 그러나 기존 동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낯익은 비유라서 참신성이 떨어졌다. ‘눈물 한 방울’은 말 한마디가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작품이었으나 결말이 밋밋하게 끝난 것이 단점이었다. ‘금속의 몸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금속활자의 탄생을 의인화하여 새롭고 참신하게 표현하였다. 그러나 조금 더 생략되고 함축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들꽃 교실’은 시골 학교의 아이들을 들꽃에 비유하여 정감 있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하지만 너무 시상이 소박하고 단조로웠다. ‘단풍잎’은 소품이지만 빨간 단풍잎처럼 곱고 예쁜 작품이었다. 단풍잎 떨어진 길을 맨발로 걷는 감흥과 설렘을 산뜻한 비유와 경쾌한 리듬으로 표현하였다. 동심적인 생각을 잘 살려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간결하고 단순 명쾌하게 표현한 점이 미덕이었다. 자연과의 교감을 신선한 비유와 의태어의 느낌을 살려 정감 있게 그려냈다. 오롯이 아이의 생각과 느낌으로 쓴 작품이라서 흐뭇하고 아름다운 동심에 젖게 하는 점도 좋았다. 함께 보내온 작품들도 수준작이라서 역량에 신뢰가 갔다.   이준관·아동문학가     ------------------------------------------------------------------------------------------------------------------------------------------     가루약 눈사람                    - 전윤리숲 / 한국일보 당선     감기는 다 나았니   나는 녹지 않았어   발자국도 나지 않았어   아직 다정한 어른은 되지 못했지만   가끔은 아빠처럼 우체국 커다란 창문 앞에서 잠자고   엄마처럼 기념품 가게에서 일해   너의 청록색 엄지장갑을 심장 자리에 넣어두는 걸 깜빡했는데도, 오늘은 춥지 않더라   무려 스무 날 전 네가 내 볼에 붙여주었던   귤껍질에서는 보물상자 냄새가 나   가끔 크게 웃고 있어   네가 생각나면     심사평   눈이 내리자 SNS에 눈사람 사진들이 올라왔다. 큰 동그라미에 작은 동그라미를 얹은, 전통적인 눈사람뿐 아니라 이글루, 눈 토끼,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엘사와 올라프 등 일상의 예술 작품이 속속 게시됐다. 아이스크림 스쿠프처럼 생긴 장난감으로 만든 ‘눈오리’의 행렬도 따듯하고 사랑스러웠다. 코끝이 얼어가며 만들었을 눈사람들로 세계는 잠시 ‘동화’의 나라가 됐다. ‘동화같다’고 흔히 표현되는 낭만성이 아동문학의 전부는 아니고 종종 아동문학을 왜곡하지만 아동문학의 한 조각인 건 분명 사실이다. 아동문학은, 동시는, 눈사람의 세계를 노래한다. 내가 굴려 쌓은 눈 뭉치가 눈 ‘사람’이 되어 나를 돌봐주고 지켜주는 세계, 양 볼에 귤껍질을 붙여준 다정하고 가난한 마음이 오래도록 서로에게 보물로 남는 세계.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역시 눈사람의 세계와는 달라서, SNS에는 누군가 일부러 발로 차고 손으로 뭉개 죽어버린 눈사람의 사진들이 곧이어 올라왔다. 그렇다면 동시는 이 세계를 어떻게 노래할 수 있을까. 동시는 생각할 게 많은 장르다. 단숨에 휘 읽을 수 있고 많이 애쓰지 않고도 쓸 수 있어 보이지만 장르 자체에 대해 늘 고민하게 된다고, 동시를 쓰는 시인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눈사람이 태어나는 세계와 눈사람이 죽는 세계, 어느 쪽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게 여러 생각거리 중 하나의 결론이기도 하다. 마치 “발자국도 나지 않았어”라는 짧은 문장에 눈사람이 죽는 세계를 알아채고 외면하지 않는 시선을 담아놓듯이. “다정한 어른은 되지 못했지만”이라는 시행이 ‘당신은 과연 다정한 어른인가요?’라고 어른 독자에게 넌지시, 종이에 베인 손끝에서 날카롭게 아려오는 통증처럼 묻고 있듯이. 올해도 높이 쌓인 응모작들을 읽으며 역시 가장 중요하게 발견되는 건 동시라는 장르에 대한 생각과, 어린이가 살아가는 두 세계를 오롯이 살피는 시선이었다. 많은 작품이 동시의 익숙한 외양을 갖추고 있어 반가운 한편 그 생각과 시선이 뚜렷이 보이지 않을 때 또 한 번 한없이 내려앉기도 했다. 그중 '가루약 눈사람'에서는 엄지장갑 없이도 더 이상 춥지 않아 하고, 크게 웃으며 끝내 ‘약’이 되는 눈사람의 절망과 희망이 투명하게 빛났다. 툭툭 터뜨리며 자유로이 오가는 문장 사이 스며든, 바싹 마른 귤껍질의 잔향 또한 전에 없이 새로웠다. 가뿐하고 기꺼운 마음으로 소개하는 만큼 좋은 동시를 오래 써 주시길 부탁드린다.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 김개미 시인 
1142    곶감/피귀자(기법/의인화) 댓글:  조회:713  추천:0  2022-05-30
곶감/피귀자(기법/의인화) 옷을 벗었다. 호흡이 불규칙하고 맥박이 빨라진다. 알몸위로 지난날이 출렁인다. 천둥과 장대비를 맨몸으로 견뎌낸, 유년의 기억들이 또렷이 남아있는 집과 이제 이별이다. 내 자신이 내게서 아주 멀리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다. 무수히 많은 말을 몸으로 뱉으며 순순히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바람이 목덜미를 스친다. 짜릿하다. 간택이 끝나고 주홍빛으로 밀려나오는 속살을 드러내는 수모, 새댁이 된다는 건 여린 살갗이 찢기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 낯설게 다가오는 내 모습이 익숙해질 때까지 바람과 햇빛과 수시로 내통하리라. 이제 나의 시간은 바람과 햇빛이 좌우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세찬 바람이 불어와 내 몸을 때린다. 가느다란 신음 뒤에 가벼우나 날카로운 촉수들이 돋아난다. 온몸의 세포들을 깨우는 일은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렵다. 부드러운 미풍과 단물을 꿈꾸던 풋풋한 젊은 날의 꿈들은, 달콤한 또 다른 삶을 위해 과감히 버려야 한다. 세상의 이치를 깨치며 세월의 무게를 짊어지다보면 두루 뭉실한 아낙이 되리라. 그리고 적당히 그을린 결 고운 피부로 환생하리니.   가을이 익어가기를 기다린다. 등이 따뜻해져 갈수록 물기는 빠져나가고 모서리는 더욱 둥글어지리라. 내장까지 보일 것 같은 날씨 속에서 내 몸도 추억처럼 익어 간다. 오랜 시간 아픔을 묵묵히 감당해내며, 감칠맛과 향을 내던 할머니처럼 단아하고 깊은 맛을 낼 수 있으리라. 부드럽고 따뜻한 맛은 줄어들지만 굳은살이 깊어질수록 마침내 오묘한 단맛을 내며 삶이 완성되리라. 외로운 시간 자신과의 싸움만이 시련을 이겨낼 수 있다. 사람들의 부담스러운 눈빛에 가슴을 가리고 몸을 비틀어 보지만 구경꾼들의 시선은 끈적거린다.   이따금 어둠 속에 침잠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빈자리의 그늘만큼 눈 밑의 그림자도 짙어가고 사라지는 하루하루를 견디면 짜릿한 역전의 시간이 오리니. 긴장과 이완, 길들여진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중용의 도를 지키는 일은 쉽지 않은 일. 덜 마르면 쉽게 변하고 너무 마르면 질겨서 먹지 못하는 법. 그런가 하면 내 몸은 사람의 손이 닿으면 딱지 앉은 상흔처럼 색깔이 검게 바뀌고 만다.   감으로 한 생을 살아내고 또 다른 삶을 이어가는 곶감의 생은 얼마나 혼곤한가. 인고의 세월이자 형벌과 같은 기다림의 세월이기도 하다. 세상과 통하는 지혜를 배우는 나의 일생은 여자의 길!   한숨 같은 흰빛이 희미하게 피어 오른다.
1141    담쟁이덩굴 - 김광영 댓글:  조회:668  추천:1  2022-05-26
담쟁이덩굴   김광영     담쟁이는 홀로 서기를 못한다. 줄기 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악착스레 기어올라야 한다. 원래 담쟁이가 설 자리는 담벼락인데 나무를 타고 오르는 별종도 있다. 제자리를 타고 오르면 눈길이 곱지만, 나무를 타고 오르면 짐으로 보이기도 한다.   낙엽송의 둥치에 담쟁이가 타고 오른다. 어깨에 매달린 식솔도 많은데 담쟁이까지 붙어서 살려고 한다. 줄기로는 목을 조이고 부착 근으론 수액을 빨아먹으며 염치없는 짓을 한다. 하지만 낙엽송은 살갑게 봐주는 듯하다. 어쩌면 낙엽송의 우직한 성격이 나풀나풀한 담쟁이를 좋아했지 싶고, 매달리는 손을 뿌리칠 만큼 야멸치지도 않아 연을 맺었는가 싶다. 몸 붙일 곳을 찾은 담쟁이는 미끈한 둥치를 기어올라 상큼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하늘거리는 잎들의 율동. 그 잎에 흐르는 자르르한 윤기는 낙엽송에겐 더없이 사랑스러운지 그윽한 그 눈빛을 보내 담쟁이의 기를 살려 놓기에 충분하다. 뼈대 없는 가문에서 자라 듬직한 둥치를 안고 살 수 있는데 무엇이 두렵겠는가. 낙엽송의 마음을 차지한 담쟁이의 기세가 가관이다. 비록 기대어 살지만 홀로서기로 살아가는 싸리나무들을 눈 아래로 본다. 깔밋한 몸에 성질까지 깐깐하여 융통성이라곤 없다고 무시하는 듯하다. 비바람에 모든 잡목들이 휘청거릴 때도 든든한 둥치만 휘감고 있으면 무사한데, 능력도 없으면서 고매한 척 살아가는 여린 나무들을 아둔하게 보는 눈치다. 담쟁이의 반질거리는 잎들을 보면 자신이 아주 지혜롭게 한 세상 살아간다는 듯하다. 담쟁이는 요구조건이 합당치 않으면 간간이 낙엽송의 속을 썩이기도 한다. 생글거리던 웃음도, 귀여운 몸짓도 죄다 거두고 절개도 아닌 절개를 과시한다. 이미 담쟁이의 맛에 길들여진 낙엽송은 ‘어디에서 이 외꽃 같은 웃음과 야들한 자태를 볼 것인가’ 해서 무릎을 꿇고 만다. 비록 더부살이를 하지만 어진 동반자를 만나 성깔을 한껏 부리면서 살아간다. 한편 싸리나무들은 남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걸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 한다. 자존심 하나로 살아가는 그들에게 그런 삶은 용납이 될 수 없다. 둘은 근본부터 다르다. 담쟁이는 요령껏 남의 등골을 빼먹고 살고, 싸리나무들은 궁핍하지만 곧은 절개를 으뜸으로 친다. 그래서 쉽게 살아가는 담쟁이덩굴이 곱게 보이질 않는다. 뼈대 있는 나무들의 모임엔 절대 끼워주지 않고 신분을 구분하며 무시해 버린다. 왜소하고 초라하지만 내면에선 품위를 지니려고 애를 쓴다. 무성한 칡덩굴보다는 나약한 잡목을 높이 보는 무리들이다. 물질보다는 정신을 앞세우고 후세에게 누가 되는 흠집은 남기지 않으려 애를 쓰며 살아간다. 낙엽송의 능력은 한계가 있다. 넘쳐흐를 땐 무리가 없는데 가뭄에는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정든 담쟁이를 뗄 수도 없어 애초에 뿌리치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는 눈치다. 담쟁이가 누구인가. 어디에 기대고 살아볼까? 요 궁리 저 궁리하며 눈치 하나로 살아가는 덩굴식물이 아니던가. 약삭빠른 담쟁이는 스스로 떠나주는 것만이 상책이라 생각하고 때마침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타고서 슬슬 떠날 채비를 한다. ‘모든 것은 필요에 의해서 존재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로 작별인사를 하며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 풍채 좋은 낙엽송의 둥치에 얼기설기한 줄기들이 지저분하게 남아서 품위를 추락시킨다. 하지만 그 흔적은 뼈대 없는 후예들을 거두어 먹인 후덕한 처소이기에 미워하지 말아야 하리라. 설 자리를 아는 건 지혜로운 일이다. 고샅길 돌담 위에 초록 레이스를 덮어씌우듯 뻗어나가는 담쟁이덩굴은 살뜰한 형이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돌담을 운치 있게 꾸며서 발길을 불러들이는 재주꾼이다. 조석으로 피워 올리는 굴뚝의 연기를 마시며 소박한 꿈을 꾼다. 고택의 이끼 낀 기와담장을 덮어줄 꿈이 아니라 오막 집을 그림같이 채색할 아름다운 꿈이다. 허황된 부를 탐내기 보다는 나에게 주어진 자리를 반짝거리게 가꾸는 형이다. 해묵은 은행나무가 뜰 안에 우뚝 선 대가의 담장에도 빛깔 깊은 담쟁이덩굴이 엄전케 덮고 있다. 번잡하게 드나드는 손님들을 맞이하며 조신하게 담벼락을 지킨다. 엄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싶은 생뚱맞은 생각도 가끔 있지만 대가의 체통을 위해 마음을 삭이곤 한다. 명문가가 그냥 되는 게 아닌 것을 체험으로 배우며 자리를 지킨다. 낙엽송을 휘감던 담쟁이! 그는 어물전 망신을 시킨 꼴뚜기다. 두 갈래 길목에서 헷갈린 판단으로 설 자리를 못 찾은 실수한 삶이다. 격을 잃어버린 담쟁이. 그를 마음 깊은 담쟁이들이 와락 껴안으며 시멘트벽이라도 벽을 타고 오르라 한다. 그의 눈에 이슬이 맺힌다. 쓰디 쓴 후회의 눈물인가.([수필시대] 2012. 7/8)   ∣작법 공부∣   수필의 다중(多重)적 구성법 구조   문예작법은 삼라만상만큼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 창작문예수필의 기본 작법은 크게 세 가지로 발견되고 있다. 소재에 대한 비유(은유․상징)창작, 서사구성법의 창작, 시적 발상의 산문적 형상화. 이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법은 번과 번을 합친 구조의 창작이다. 「담쟁이덩굴」은 일견 번 서사구성법의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종결문단의 “그는 어물전 망신을 시킨 꼴뚜기다.”를 담쟁이덩굴에 대한 비유(상징) 창작으로 본다면 + 형태의 구성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의 다중적 구성법은 소설이나 희곡 등에서는 흔하게 발견되지만 수필작품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작법이다. 이 작품의 소재는 ‘담쟁이덩굴’이다. 그런데 이 작품이 소재로 선택한 담쟁이덩굴은 한 가지가 아닌 세 가지이다. 첫 번째 담쟁이덩굴은 낙엽송에 붙어서 기생하는 담쟁이, 두 번째는 고샅길 돌담 위의 담쟁이, 세 번째는 대가의 담장을 터로 잡은 담쟁이. 이 세 가지 담쟁이 중에서 낙엽송에 붙어서 기생하는 담쟁이덩굴 이야기를 작품의 중심무대로 삼고 있다. 구성법이란 사건과 사건의 관계설정과 그 관계에서 발생하는 이야기(사건)를 어떻게 전개해 갈 것이냐의 문제가 기본 작업이 된다. 이 작품의 중심 구성법은 낙엽송에 붙어사는 담쟁이덩굴과 그 주변 환경과의 다중적 관계 구조로 짜여져 있다. 첫째는 담쟁이덩굴과 낙엽송과의 관계다. 두 번째는 싸리나무와 비교되는 삶의 양상의 관계다. 세 번째는 고샅길 담쟁이와 대가집 담쟁이와 비교되는 삶의 양상의 관계다. 이 같은 다중적 구성법을 통해서 형상화하고 있는 주제는 “그는 어물전 망신을 시킨 꼴뚜기” 같은 삶이라는 것이다. 이곳의 ‘꼴뚜기’는 말 할 것도 없이 어떤 인물 유형의 상징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창작문예수필의 세 가지 기본작법 양상 중에서 번과 번을 합친 고차원적 구성법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의 중심사건과 두 개 이상의 보조관념 사건과의 다중적 관계를 얽어 짜서 구성하는 작법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은 TV 드라마이다. a남자와 b여자 관계라는 중심사건에 a남자의 가정 이야기와 b여자의 가정 이야기, 그리고 a와 관계가 있는 c와 d의 이야기, 다시 b와 관계가 있는 e와 f의 이야기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가운데 중심 사건인 a남자와 b여자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 거의 모든 드라마의 구성법이다. 그럼에도 시청자는 다음 회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며 방송극을 시청한다. 그런데 그런 방송극 시청자들에게 수필을 읽으라고 하면 방송극만큼 손에 땀을 쥐고 읽겠는가? 읽기는커녕 “수필도 문학이냐?”고 손가락질하고 있지 않은가? 왜 수필이 이 지경이 되었는가? 창작론이 없는 글쓰기를 무려 1백년이나 하여왔기 때문인 것이다. 수필문단이 이 작품 같은 다중적 구성법을 할 줄 알게 된다면 앞으로 10년쯤만 지나도 떠나갔던 수필독자들이 다시 돌아 올 것이다. ([창작문예수필 - 작품과 작법 8 ]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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