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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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씨 수상록 (4) 살아가는 자세
2014년 01월 02일 08시 38분  조회:6051  추천:0  작성자: 최균선
                                                             살아가는 자세
 
                                                                최 균 선
 
     어떻게 늙어야 하는지 아무도 모르듯 어떻게 살아야 바람직한 인생자세일지 누구나 묘망하리라. 고서에《인정세태 숙홀만단 불선인득태진 (人情世太倏忽万端 不宣认得太真)라는 글귀가 있었는데 인정세태가 변화무상하므로 너무 진짜로 알지 말라는 뜻으로 리해된다. 아닌게 아니라 반칙이 다반사인 인생유희인데 매사에 너무 정색해 림하면 제근심, 남의 근심을 다 끌어안기가 십상이니 백번도 지당한 말이다.
    늘 이렇게만 문제를 본다면 번뇌와 잡념을 풀수 있다는 고인의 훈계를 명심하지만 인의는 기죽어 한숨쉬고 리욕만 얼씨구, 북장단치는 시대에 의로운 일은 가물에 콩싹나듯 하고 비정은 우후죽순인 세상을 그저 긍정적으로만 보려한다면 자기 속임이 되지 아니할가? 걱정이다. 내가 눈이 비뚤어서인가?
    송조때 소옹(邵雍)이란 유생이《석일소운아 금조각시; 부지금일아,유속후래수 (昔日 所云我, 今朝却是伊;不知今日我又属后来谁?)》라고 개탄했는데《어제의 내가 오늘 남이 되였으니 오늘의 내가 래일 또 누구에게 속할지 어이알랴》라는 뜻인듯 싶다. 어두운 방에 알몸으로 홀로누웠을 때를 내놓고는 자기 본연을 살짝 감추고 돌아가는 상황이나 분위기에 맞게 제2의, 혹은 제3의 인격을 내세워야 하니 자기 자신조차 알길없는데 남이야 더구나 알수 있겠는가?
   변덕많은 4월의 날씨처럼 가늠할수 없는 인정세태를 용케 맞추어가며 말썽없이 살아가려면 자기의 본연은 아예 접어두고 내가 아닌 나를 내세우는게 현명할듯 싶다. 돈이 웅변하는 시대, 진리는 입다물고 인정은 점점 더 사막화되고 세속은 갈수록 오리무중이다. 덕행은 시무룩해서 한켠에 비켜서있고 비행은 쌕스폰이랑 불며 내노라 행진한다. 해로운 짓을 하면 칭찬을 받고 착한 일을 하면 위험하고 우둔한 소행으로 간주되는 속세에서 산다고 길이 개탄헸던 쉐익스피어가 그때 벌써 오늘까지 내다보 았다는 원견에 탄복이 앞설뿐이다.
    내 본시 아둔해서 인생을 거의 살면서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정답을 못찾았다. 일생을 무난하게 살다가 고종명하는것은 참으로 축복받은 인생이겠지만 시끌벅적한 인생현장에서 무풍지대가 어디에 있으며 바람새 세찬데 고요히 서있을 나무가 과연 있을것인가? 조금 사는듯싶게 살자니 국외인으로 살수 없고 더구나 진공상태에서 살수는 없으니 부딪치고 넘어지고 피터지고 상처속에 고름을 짜내며 인생의 비탈길을 아득바득 톺아오르게 생겨먹은게다.
    등산길은 신명이 나기에 앞서 숨찬 생명운동이라는것을 절감하게 된다. 잘 닦아놓은 길로 가마에 앉거나 자동차에 앉아 오르고도 남들과 같이 환성을 내지를수 있지만 두발로 허위단심 올라야 산에 오르는 진정한 멋과 맛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가장 낮은 골짜기에서부터 오른자가 제일 높이 오른 자라는 도리도 잘 먹히지 않는다.
   산에 오를 때 정상에만 눈을 팔지말고 발밑을 살피고 정상이 아득할수록 마음을 느슨하게 하는것이 요긴하다. 성급함이 결코 걸음을 가볍게 해주지 않는다. 내닫지도 말고 쉬지도 말라. 일등에 몸이 달면 잠시 앞설수는 있지만 뒤따르는 사람보다 안전 도는 훨씬 낮다. 인생길도 마찬가지다. 밑바닥 인생길도 나름대로의 고봉에 이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랑만적일가?
    생명은 촉박하고 세월은 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러나 참고 견딜줄 알라. 인내야말로 운명을 좌우지한다. 인내란 무거운 짐을 지고 빨리 걸으면서도 말이없는 나귀의 미덕이지만 우리가 갖추어야 할 미덕이기도 하다. 인내심도 모든 고난의 적설을 녹일수 있다. 진정 강한자는 끈질기고 초조함으로 기다림을 달랠줄 아는자이다. 참는다는것과 견뎌낸다는것은 의미의 차이만이 아니라 태도의 차원문제이다.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 희망이 깨지면 인내를 지속시키라. 만약 당신이 꽃지는 현실에 참을수 없다면 결실의 미래도 잃을것이다. 허리아픈 김매기를 참아 내지 못하면 가슴이 뻐근한 풍년가을을 맞지 못할것이다. 자기가 갈수 있는 길, 자신 에게 주어진 길을 따라 굳건히 내처 걷는다면 꽃피는 새 마을에 이를것이다.
    인생은 죽을 때까지 무엇인가 배우며 가는 길이다. 속담에 무식이 상팔자라고 하지만 아는것이 힘이라는 베이컨의 말은 퇴색하지 않았다. 평생을 따스한 마음으로 책을 읽되 찬눈길로 세상을 투시하는것도 중요하다. 성거리는 의혹이 우유부단을 낳을수 있지만 데카르트는 영원히 선각자이다. 의심할줄도 알라. 의혹이 만사통은 아 지만 적어도 투시경에 초점이 될수 있다. 무지는 맹종을 낳고 맹종은 자기상실을 의미한다. 화복이 무상하다고 하는것은 세상만사에 호불호가 상대적이라는 말이다.
    성실이 손해의 대명사로 되고 성실한 사람이 바보취급을 받는 현실이지만 자기 인생서마저 허구할수는 없다. 거짓된 세상에 살더라도 자신에게는 성실해야 한다. 자기 약점이 드러날 때처럼 속상한 일은 없지만 자기 결함에마저 성실함으로써 오히려 강해질수 있다. 자기에게 충실해야만 남을 사기치지 않을수 있다. 자기마저 잘 기만하는자들만이 다른 사람을 기만하는것을 락으로 삼는다.
    성실의 뒤면은 선량이다. 자초에 인간은 착하디 착했을것이다. 인류는 진화하면서 선량함을 뒤로 밀어내고 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선량함은 인격력량에 기본핵이다. 죄악적행각으로 자기 욕망을 만족시키려고 선량을 잃는다면 인간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니다. 성실과 착함으로 웃음속에 칼을 갈고있는 자의 내심까지 읽을수는 없지만도그러나 필요없이 너무 많은 내막을 알려하지 말라. 그러면 누구나 꺼리는 사람이 될것이다. 세상도는 형편에 눈이 어두워도 안되지만 알지도 못하는 새 노래에 손벽을 치는 싱거운 짓도 삼가해야 한다.
    신을 신고 발바닥을 긁느니 차라리 입은 닫아두고 마뜩치 않은 눈길을 나름대로 배배 꼬아보는것이 지각있는 사람의 본심이 아닐가싶다. 물론 처사에 진중하지 않을 수 없으나 너무 각박해서도 안되며 때와 장소를 참작해서 좋도록 처리해야 스스로 딱한 궁지에 빠지지 않는다는 중용철학도 있거니와 투시불명의 인정이요 미궁같은 인생현장을 헤쳐가려면 리해와 관용을 앞세우는만큼 량책이 없겠지만 일신에 절실한 실리앞에서 누가 번번이 그런 사치스러운 생각을 떠올릴 여유가 있을소냐?
    인생에는 유모아도 있어야 한다. 유모아가 없는 생활은 사막과 같고 물이없는 저수지와 같다. 유모아를 모르는 남자는 련애에는 맹꽁이 될것이다 유모아가 없는 생활은 기름이 떨어진 등잔과 같다. 유모아는 지혜의 명함장이요 사상의 불꽃이다. 유모아는 여유로운 마음이 없으면 지어내지 못한다. 유모아감은 지성인들의 일종 풍도이다. 유모아는 웃기는것이 아니라 웃음속에서 찔림이 있게 하는것이다. 눈물머금은 유모아야말로 유모아의 수석대표이다.
   헤겔은 말한다. 나비에게는 나비의 세계가 있고 까마귀에게는 까마귀의 세계가 있듯이 삶도 각자 믿는바에서 정신의 기둥이 될 세계를 가지고있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마음과 상관없는 곳에서 헤매고 있다면 자기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고, 내가 살아가면서 혹 실수와 실패에 처할지라도 너무 자책하거나 좌절하지 않는것도 일종 지혜이고 슬기이기도 하다. 락심인즉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인생자세가 된다고 하겠다. 그러니까 살아있고 살아가야 한다면 열심히 살자는 말이다.

 
                                                    2008년 3 월 19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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