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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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진담(최균선)
2011년 07월 31일 21시 39분  조회:12054  추천:3  작성자: 최균선

취중진담
 

최 균 선
 
                          
1. 기우

 
점점 걸음이 촉박해진 9월의 해가 서산마루에서 얼굴을 붉히고있었다. 지각한 그 사랑에 얼굴을 붉히는가, 다하지 못한 그 무엇이 아쉬워 식어가는 미소를 던지는가? 피빛석양이 별스레 가슴을 클클하게 해준다.

낡은 자전거가 내는 듣그러운 소리를 체념해 버리려고 공연히 신경을 쓰며 슬슬 지친 다리를 옮기여 밀수집사대 부근에 이르렀을 때 부르하통하 개바닥에 듬성듬성 일구어놓은 뙉밭머리에서 웬사람이 청승맞게 불어대는 새납소리가 발목을 꽉 잡았다. 거의 음치에 가까운 나로서는 구슬픈 선률에 담긴 사연을 전혀 알길이 없었으나 그저 스치고 지날수 없을만큼 마음이 끌렸던것이다.

 나는 오래 동안 씻지 않은 자전거도 씻을겸해서 강바닥으로 내려갔다. 밭둔덕에 두다리를 뻗고앉아서 무슨 독주회라도 하듯 열심히 새납을 부는 사람은 부리부리하게 하게 생긴 50대 중반이나 됨직한 전형적인 한족사내였다. 그는 사람이 오건말건 아랑곳없다는듯 그냥 자기 비애에 잠겨있었다.
 자전거를 얼핏 씻고나서 그에게로 슬금슬금 다가간 나는 그의 애상을 깰가봐 아무소리도 내지 않고 애달픈 음조에 취해서 말없이 지켜만보았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이마에 깊숙히 건너간 주름살이 눈길을 끌었다. 그것은 갖은 풍상고초를 겪은 사람들에게서만이 볼수 있는것으로서 그가 성숙하고 매우 로련한 사내라는것을 말해주고있었다. 새납의 음을 짚으며 오르내리는 손가락들은 길고도 힘있어보였는데 매개 관절이 그렇게 날렵할수 없었다.

갓 면도질한듯한 두볼은 구레나루터로 험상궂어보이기까지 했다. 이윽고  새납불기를 멈춘 사내는 난데없는 불청객이 점도록 지켜보는게 어색했던지 얼굴을 돌려 힐낏 건너다보았다. 비상한 의력이 간직되여있는듯한 크고 검은 눈에서 침착하고 기민한 빛이 번뜩이고있었다.

어느모로 보나 확신과 참을성이 있고 좀해서는 충동하지 않을 매우 고집스러운 개성을 보여주는 얼굴 전체에서는 불혹의 나이를 넘긴 장년들에게 고유한 자부심과 오만성도 보였고 사나이답게 정중하고 드놀지 않는 사람이라는것이 력연히 나타나고 있었다.

흔상자가 나이가 퍽 지숙한 늙은이여서인지 그가 먼저 푸접좋게 말을 걸어왔다.
 《로인님, 여직 내 새납소리를…아니 혹시 저 모아산아래 마을서 살던 그 로추이가 아닙니까? 》
 무척 귀에 익었던 목소리다. 다시 뜯어보니 오래동안 녹쓸어있던 기억의 대문이 찌쿠덩 열리는듯 싶었다. 맞다! 30여년전 내가 살던 룡산5대에 지식청년으로 내려왔던 그 괴퍅한 성미의 조화성이였다.

 《아니?! 화성이가 아닌가?》어마지두에 큰소리치며 그의 손을 와락 부여잡는 순 간에 잔뜩 무디여진 내 기억이 흘러간 세월의 갈피를 후르륵 넘겼고 그 갈피마다에 꼭 박혀있던 한 애된 청년의 모습이 우렷이 떠올려졌다.
 《참 여기서 최형을 만난다구야, 그후 최형이 영성에서 선생질을 시작했다는 소문을 들었고 명동인지 하는 산골중학에 조동해갔다는 풍문까지 듣고는 더 행방을 알수 없었는데…》
 《응, 하긴 그럴거야, 거기서 떠나 도문에도 가있었고 나중에 여기 연길에 오게 되였어, 사범학교서 앞당겨 교단에서 물러났고 지금 사립학교에서 담배벌이나 하면서 나날을 보내네. 아무튼 하잘것없는 내 이야기를 하자면 장편소설도 되지, 이러지 말고 우리 어디가서 술잔이나 기울이면서 천천히 회포를 나누자구》

 그리하여 우리는 5원짜리음식점 구석에 마주앉았다. 워낙 잘 먹지 못하는 술이였지만 슬슬 잘도 넘어갔다. 서로 잔을 부딪치노라니 정말 감구지회가 깊었다. 살다 보면 많은 일들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잊혀지기 마련이지만 이 화성이만은 내게 잊혀지지 않는 존재였다. 
 
                               

2. 이왕지사
 
그 시절 사회에서 완전히 소외당한 존재였던 나로 말하면 집체호청년들과 어울 릴수 없었다. 게다가 류향복이라는 조선족처녀애를 내놓고 말짱 한족학생들이여서 더 구나 차지도 덥지도 않게 보낸 처지였다. 그러나 다만 이 화성이만은 내게 있어서 몰래 정을 주고받은 유일한 청년이였다.

 그는 조선말을 꽤나 하고있었다. 무슨 뜻이 있어 그랬던지 그렇게 격리시키느라 눈들을 밝히는 살벌한 나날에도 나의 《실락원》을 찾아와서는 조선말을 배우느라고 열성이였던 화성이다. 그렇게 서로 마음이 얽혀서인지 매번 나를 비판투쟁하는 마당에서 다른 애들처럼 각박하게 굴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그날 전공사당원들을 핵심으로 한 천명군중이 모인 비판대회에서 은근슬쩍 나를 보호해주던 그 화성이를 잊지 않고있었다. 그날 지식청년들을 부식 시키려 시도했다는 그 엉터리죄를 승인하고싶지 않아 그들의 말대로 퍼그나 《로실》 하지 못했던 나에게 집체호청년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주먹질 발질할 때에 화성이 끼여들어 누구보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성토하면서 급선봉친구들을 얼렁뚱땅 한쪽으로 밀어내였었다.

 그날 그 화성이의 엄정한 비판발언이 아니였더면 아마 내 갈비뼈가 두어대쯤은 금이 갔을것이다. 그후부터 나는 드러내놓고 그와 친하지는 못했지만 진심으로 그를 좋아하게 되였다. 죄는 지은데로 간다고 그 지랄의 년대에 내내 나를 잡아먹지 못해 처처에서 애먹이다고 마침내 전공사당원현장비판대회까지 소집했던 고향친구 장산호씨가 그 이튿날 치보주임에게 불려가고 얼마후 집체호에 유일한 조선족처녀애인 향 복이를 강간한 죄로 20년도형을 받게 되였다.

 일이 이렇게 되자 집체호녀성청년을 어쩌구했다는 루명이 절로 벗겨지게 되였고 사람들이 보는 눈길이 저으기 부드러워졌다. 화성이가 내 사람 됨됨이와 인품을 은근히 자기 친구들에게 이야기해주었던지 한족애들도 그렇게 적대감을 가지고 기시하지 않게 되였다. 그런 화성이를 30여년만에 우연히 만나게 된것이다.

통쾌하게 몇잔 굽을 내더니 신세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최형도 알다싶이 나 ㅊ광산에 추천받아 올라갔지 않우?》
《그래, 기억하고있지, 그때 화성이가 보위과장으로까지 승급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후 어떻게 되였나? 그 광산도 완전히 파산되지 않았어? 》

《맞소, 하지만 그 썩 전에 그 빌어먹을 고장을 떠나게 되였소. 어떻게 되여서인가구? 이 화성이가 명이 나쁜탓이겠지, 그 광산우두머리가 노는 꼴이 어찌나 눈에 거슬리던지 어느 날 그만 술에 취해서 권총을 그의 가슴에 들이댔다가 분을 이지지 못해 공중에 한방 쏘아버렸소, 내가 그때 무슨 정신으로 그랬던지…결국 그 친구에게 톡톡히 빚을 물게 되였지, 갱으로 내려가라는 명령을 받았소.
그렇게 갱부생활을 하여서 몇달 안되여 갱이 무너지는 사고가 생기게 되였소. 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때 죽지 않고 살아남은게 기적이라면 기적이지. 결국 목숨은 구했지만 다리뼈를 상해서 절름발이가 되였던거요. 아까 내가 살룩거리는걸 형도 보았겠지만, 형이 화가 복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말을 배워준적이 있지?

나 그 지겨운 갱에서 영영 벗어날 기회가  생겼지뭐요, 죽은 사람도 몇이 되지만 상한 사람도 적지 않소. 그래서 사고처리를 하고 보상을 한다더군, 그래서 요구가 뭔가고 물을 때 아예 연길 어느 공장에 보내달라구 떼질썼소, 그래 온곳이 연길 농구창이였소, 그런데 제길할 내 운명이라구야, 이야기가 지루한데 한잔 비우구 더 하던지 합시다.

결국 거기서 쌰강공인이 되였다오. 그날은 비가 구질구질 내렸는데 늘 걷는 출근길이였지만 어쩐지 기분이 찜찜하더라구요. 갱의실에 들어가니 언제나 웃고 떠들어치던 친구들이 머리를 푹 떨구고 들숨만 쉬고있지 않겠소? 나는 어떤 불길한 예감에 가슴에서 널장이 뚝 떨어지는것 같더군요. 아닌게아니라 직공대회에서 이렇다하는 해석도 없이 온 공장이 파산되였으니 집에 돌아가라는것이였소.
《짠먼 꿍렌 유리량》이라지만 쌰강하라면 쌰강이지 어데가 해볼데가 있겠소? 별수없이 입던 작업복과 비품들을 주섬주섬 거두어가지고 내 후반생이 꽃피여날가 기대하였던 공장과 결별하였지. 비는 여전히 내리는데 내 얼굴을 때리는 그 비방울이 어찌나 아프던지…아마 마음이 아파서 더 아프게 느껴졌겠지.

집에 돌아오니 안해와 두아이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더군요. 나는 새삼스레 내 행복이 가꾸어지던 집안을 둘러보았소. 두칸방에 눈에 띄이는것이란 아무것도 없었소. 17촌짜리 흑백텔레비와 구식랭장고나 값이 가겠는지, 그것들도 탄광이 한창 경기가 좋을 때 사놓은것이였소.

정말 앞길이 막막했소. 산입에 거미줄이야 치겠소만 초중을 담방 졸업할 딸애와 소학을 졸업하게 될 아들애의 학비를 댈 걱정이 태산같았소. 내게는 이 자그마한 집을 내놓고 의지할 곳이 없다고 생각하니 나를 믿고 사는 세 목숨이 안스러워서 그만 땅에 주저앉아 꺼이꺼이 울고말았소.

울고있는 나를 실넋한듯 보고섰던 안해는 문가에 아무렇게나 팽겨친 내 작업복과 다른 비품들을 번갈아보더니 그만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군요. 그날 점심은 네식구가 아무도 밥을 먹지 않았소. 안해는 언녕 흐물흐물해진 자그마한 가두공장에 출근하였는데 월로임이 2백원 남짓했지요. 내가 공장에서 죽기내기로 일했대야 한달에 겨우 6백원 남짓했소. 네식구가 8백원을 가지고 살려면 늘 빠듯했지만 아껴먹고 아껴입으면서 그래도 단란하게 살아갔지요.

기실 우리보다 못하게 겨우겨우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라구요. 그래도 우리에겐 웃음이 있었소. 그런데…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되였으니 마치 하늘을 받치고있던 기둥이 무너져내린것 같았소. 생활이 쪼들리기 시작했소. 손을 털고나앉아 공기만 마실수는 없었소. 사처에 연줄을 달아 일자리를 구했지만 문화정도가 초중인데다가 아무 특장도 없이 그저 힘밖에 없는 나로서 그 힘마저 쓸 자리가 없었소.

그렇게 속썩은 한숨으로 나날을 보내던 어느 하루 저녁은 거리에 나가 정처없이 걷고걷다가 어느새 철남의 야시장에 들어섰소. 불빛이 휘황한데 길량켠에 벼라별 장사군들이 도시의 밤생활을 즐기는 유한계층들을 소리쳐부르고있더군. 술을 마시는 사람들, 손에 손잡고 야경을 구경하는 사람들. 비디오앞에서 돼지멱따는듯한 소리를 뽑는 사람, 아무튼 들끓었소. 나는 어떤 계발을 받고 집으로 달려와 안해에게 나의 계획을 말했더니 물에 빠진놈 짚오래기라도 잡듯이 대뜸 대찬성이였소.
나는 취사도구들을 사들이고 밥상과 걸상들을 얻어가지고 야시장에 나가서 이것저것 해서 팔았습니다. 처음엔 체면이 깎이는것 같아서 큰 소리로 사구려를 부르지 못하였고 작식솜씨도 서툴러서 손님을 끌지 못했지. 그러나 날이 차츰 가면서 음식이 손님들의 구미에 맞게 되고 담도 커져서 요란하게 손님을  불러들이게도 되였습니다. 장사가 잘 되기 시작했소. 어떤 달엔 천오백원씩 벌때도 있었소. 우리 집은 다시 화기애애해졌소.

그러나 좋은 꿈은 빨리 깨여지는법이라든가. 한창 장사가 잘되여가던 어느 날 새벽 네시쯤해서 막 걷어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때였소. 정거장쪽에서 무리지어 오던 뒤골목삽살개들이 나의 난전에 들어앉더니 이것저것 청해서 먹고 마시고 질탕거렸소. 그러나 나는 그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면서 성의껏 모셨소. 장사군에게는 인간쓰레기들도 왕으로 여겨지는판이죠.

그런데 놈팽이들이 고기 한사발 다 쳐먹고 제에미를 욕한다더니 싱겁소. 짭소. 맵소, 하면서 음식이 어른들의 건강을 해쳤다고 걸구드는게 아니겠소? 결국 돈을 안내려는 수작이였소. 칠규에서 피가 쏟아져나올것 같더군. 몇마디 좋게 말하고 결산받으려고 했더니 무지막지하게 주먹과 발길이 막 날아드는게 아니겠소? 그렇게 맞다가 나도 그 동안 어데다 풀길없어 끙끙 쌓아두었던 울분과 미움과 분노가 솟구쳐 자기를 도저히 억제할수 없었소.

나도 주먹을 날리고 발길질했지요만 중과부적이였소. 막다른 골목에서 나는 칼도마우에 칼을 쥐여들고 대적하는수밖에 없었소. 그자들의 손에 언녕 비수가 들려있어서 자칫하면 목마른 죽음을 당할것이 뻔했지요. 그제야 그자들은 슬슬 꽁무니를 빼려 했소. 그러나 난전이 엉망진창이 되였지 얼굴에서 피가 질벅하게 흐르고 있지 해서 나는 발광하기 시작했소.

제일 우줄거리던 놈팽이에게 달려들었소. 그런데 겪고보니 겉으로는 거센체하는 그런 놈들은 기실 굴종하는 약자들과는 제멋대로 굴지만 악지세게 나오는 사람들은 십분 무서워하는 비겁하기 짝이 없는 그런 개망나니들이더구만.

나는 들고 뛰는 그놈의 살진 엉덩이에 칼을 박았소. 리성을 완전히 상실한 나는 끝장을 보려고 아저씨, 아저씨하며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는 그자의 가슴에 칼을 박으려고 눈에 쌍불을 켰소. 그때까지 놈들의 발길에 채여서 사색이 다되여있던 안해가 달려와 내팔에 매달렸소. 그러는 사이에 놈팽이들은 다 도망갔소.

결국 그자들이 경찰들의 손에 잡혔지만 나도 병원에 스무날이나 누워있게 되였고 나오는 길로 다시 구류소신세를 지게 되였소. 정당방위의 계선을 넘어섰다는가? 쳇 개부랄같이… 에익, 세상에 그런 인간쓰레기들에게도 인도주의를 베풀어야 한다니 사회주의가 좋긴 좋지. 허허허…참 최형이 뭐 글을 쓴다니까 시시껄렁한 신변잡담을 하는건데 지루하지 않소?》
《아니, 내가 듣고싶었던 얘기구먼. 자, 이잔 내구  계속 말하라구, 잘 들을께》
 


3. 취중진담
 
뱀에게 물린놈 쌔끼오래기를 보아도 놀란다고 나는 다시 야시장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소. 놈팽이들의 단짝들이 복수한다고 야시장을 휩쓸고 다녔다는 소리에 지레 겁이 나더군. 그렇게 내 운명에 막다른 장벽이 생겼소…》

나는 그에게 담배를 건네면서 한숨을 내쉬였다. 아주 감명깊게 들었다는 말없는 응대이기도 했고 계속 듣고싶다는 암시이기도 했다.

《그후 다시 살길을 찾아야 했소. 가만히 살펴보니 거리에서 양고기뀀을 구워파는것이 성본도 그리 들지 않고 밥벌이가 될듯 싶어서 그것을 시작했소. 며칠 집에서 굽는 련습을 한다음 번화가의 E학교부근에서 장사를 벌렸소. 로임을 착착 탈때는 몰랐는데 돈벌이가 정말 쉽지 않았소. 바람이 부는 날엔 연기에 눈물코물이 범벅이 되였으니 내꼴이 뭐이겠소? 하긴 갱에서 쇠돌을 캘때도 그꼴이였지만, 어떤 날은 한꼬챙이도 못팔고 내내 보초를 섰소. 소리치느라 목이 마르고 다리가 해나른했지만 눈길은 한시도 게으름부릴수 없었소. 성시관리일군이나 세무소사람들이 들이닥치면 눈치 빠르게 제꺽 철퇴해야 하니까.

하지만 내 옆에서 하는 신강사람의 난전에는 사람들이 경쟁이라도 하듯이 다투어 사먹는데 정말 복장이 터질 지경이였소. 진패사가 신강사람으로 화장하고 양고기뀀을 팔던 소품이 얼핏 생각나더군. 그래서 문공단에서 일하는 사촌동생에게서 위글족 모자를 빌어오고 머리를 지지고 수염을 길렀소. 신강사람으로 둔갑하여 다시 나섰지. 정말 웃기는 판이지? 하하하…

성이 나도 절대 《어허!》소리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소. 모든 의사는 손짓과 턱짓, 고개짓으로 통했소. 벙어리신강인이 된셈이지요. 양고기뀀을 사먹는 사람들이 대부분 소년소녀들이였기에 절대 값을 가지고 흥정하지 않았기망정이지.

사람들이 진짜 신강사람인줄로 알구 있었지요. 장사가 괜찮게 되여서 어떤 달엔 한 5백원을 벌기도 했소. 그러다가 작년에 누이벌 되는 친적이 자기가 해남도에서 바다고기를 운반하는 일을 해서 돈을 벌었다면서 구슬리는 바람에 무작정 따라갔더니 계단식판매에 끌어넣으려 하였던것이지요. 지금은 정말 누구를 믿기도 어렵습니다. 소품에 신문에 날자를 내놓고 죄다 가짜라더니…

어디 그뿐인줄 아우? 광주역에 나서니 악마구리끓듯 하였는데 정신이 다 어질어질하더군. 누이의 목에서 목걸이를 잡아채여 가지고 여유작작하게 걸어가는 놈팽이를 눈을 펀히 뜨고 바라볼수밖에 없었소. 개판이지요. 기실 해남도에 간다는건 얼리기 위해 한 말이고 광주가 목적지였소, 아이구, 광주의 변두리에 싸구려려관이야 말로 도깨비굴이였소. 동서남북의 오가잡탕들이 다 모여들었는데…참 말두 마오.

처음엔 내친 걸음에 어떻게 해볼가 하다가 누이가 하는 꼴이 미워서 한달 있다가 돈만 팔고 돌아오고 말았소. 제길헐놈의 세상이야, 지금은 정말 편안한 백성이 되였소. 채소값도 좀 남기구 살림에 보탬이 될가 하구 아까 본 뙉밭을 일구어 마음이나 안정시키고 있는 판이요,》

술 한병이 어느새 굽이 났다. 그도 취기가 도고했다. 말도 막나오기 시작했다.
《형님, 작가라고 했지? 우리 같은 정리실업자들의 고충과 재취업의 실생활을 소재로 소설을 쓰려고 생각한다구? 허, 그게 잘 되겠소? 형님이 무슨 심리체험과 감수를 가지고 쓴단 말이요? 문화대혁명때 농촌에서 뒤몰리던 묵은 얘기나 쓰면 잘 될런지 몰라두, 우선 형님은 실업당하지 않았고 집에 형수님도 실업당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 아픔을 가슴으로 느낄수 있겠는가 말이요?

배부른 사람은 배고픈 사람의 그 쓰라린 마음을 알수 없소. 영원히! 허구와 상상으로 쓴다구? 나는 무식해서 문학적으로는 말할수 없지만 이렇게 비유해서 말해봅시다. 만약 내가 얼음구멍에 빠졌다고 할 때 형님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얼음을 깨고 뛰여들어 구하지 않으면서 그저 언덕에 서서 “사람 살리시오, 사람 살리시오,” 하고 소리만 친다면 내가 형님에게 감지덕지할것 같소?

우리 공장의 대문앞의 선전란에 《오늘 노력하지 않으면 래일 일터를 찾느라 애쓸것이다.》라는 표어가 있었는데 당시엔 말하지 못했지만 순전히 개방귀같은 헛소리였소. 형님은 그래 우리 쌰강당한 사람들이 모두 일을 착실히 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였다고 생각하오? 물론 그중에는 아무짝에도 못쓸 게으름뱅이들이 끼여있는건 사실이지만 뭐 우리 로동자들속에만 그런 껄렁한 놈들이 있다는거요?

우리 공장은 싹 마사져서 그렇지만 내 친구들이 있던 다른 공장들에서 아무리  소처럼 일해도 웃어른께 한번 잘못 보이면 의연히 정리실업당하더라구요. 물론 일을 잘 하지 않는다는 죄명을 달아서 내쫓지. 기실 흥성하는 기업이 있다면 그게 훌륭한 령도들의 아래에 제구실을 착실히 하는 로동자들이 있다는 설명이 아니겠소?

큰일 작은 일 다 저희들끼리 결정해버리고는 왜 죄없는 로동자들이 일을 잘 하지 않은 탓인것처럼 자기네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고 뻔뻔스럽게 말하는가 말이요. 가령 내가 반년간 출근하지 않아서 공장에 경제손실을 주었다해도 그들이 쩍하면 고찰이요 하고 외국려행을 하고 명산대천을 구경하느라 써버린 돈에 비하면 새발에 피일거요.

아니, 온 공장이 생산을 중지한다 하여도 그들이 머리가 뜨거워져서 망탕지휘 하는 바람에 밑진 거금에 비하지 못할것이요. 나 원래 광산에 있을때부터 밸이 꼬이는 일이 있으면 참지 못하는 성미여서 불평불만이 제일 많은 사람이였지, 헝!

 공장이 문을 닫게 되였을 때 로동자들을 탓한다면 그게 무슨 개량심들이요? 참 형님이 오늘 내가 취해서 마구 내쏟는 말들을 다 소설에 옮길 담량이 있소? 그럼 더 험한 말을 막 하지. 흥, 뭐 로동자는 공장의 주인공이라고 입이 반지르르하게 말들 하지만 우에서 임명해 내려보낸 공복이 무능력자이든 속이 먹통같은 놈팽이든 무조건 접수하고 령도받아야 하는 로동자들이 주인이라구?

 나는 책은 많이 읽지 못했소. 하지만 노복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주인이 마음 대로 내쫓는다는 말은 들었지만 소위 공복이 수많은《주인》들을 내쫓는다니 말이 되오? 참 우습지. 제밥통이 날아날가봐 전전긍긍하는판에 공복을 선택할 권리가 있겠는가 말이요. 흑백이 전도된 일을 어찌 한입으로 다 말할수 있겠소? 그리구 말해봤대야 제입이나 아프지.

 공장을 제집처럼 사랑하고 전심전의로 맡은 일을 잘하라는 표어도 그렇지. 젠장 그래, 우리가 그렇게 해오지 않았단 말이요? 공장이 흥성하면 영광이고 공장이 망하면 수치라고 말은 간지럽게 해내싸지만 틀려도 한참 틀린 말이라구. 그래 집에서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 한발로 차내던지면 어쩐단 말이요? 로형이 밖에 나가 바람도 피우지 않았고 도박도 놀지 않았는데, 그리구 더구나 집벽도 파괴하지 않았는데도 집에서 요구하지 않는다면 어쩌겠소?

 십몇년, 지어 몇십년을 땀흘려 일하면서 먹고 자는걸 내놓고 모든 잉여가치를 집에 바쳤는데도 밥마저 먹을 권리도 없게 되였지요. 공장이 쇠망하면 확실히 우리들 의 수치요. 그 말은 맞소. 그런데 왜 우리 로동자들만 수치스럽고 그들에게는 아무 일도 없는가 말이요?

나라가 어려움이 있고 공장이 잘 되지 않으니 실업해야겠지. 그러나 흑백은 전도 하지 말아야 할게 아니요? 뭐, 재취업의 길은 광활하고 치부할수도 있다고요? 웃기지 말라구 하시오. 》
…취중진담이라도 너무 직설이여서 마음이 조금 불안해지 시작했다. 역어빠진 화성이가 내 마음을 읽은 모양으로 정통을 푹 찔렀다.

《쳇, 그것 보라우, 형님 소설인지 문학인지 싹 걷어치우오. 그냥 간지러운 소릴 할게면 낯뜨겁게 나 작가요, 하구 무슨 빌어먹을 소재발굴이니 할게 없이 잠자쿠 책이나 읽으면서 마음이나 달래보던지.

불행이 소설을 낳는다는 말을 나도 읽어서 알지, 그래서 나도 주제넘게 소설이나 써서 울분이나 토해볼가구 생각한적이 있소, 허지만 그게 뭐요? 조선글로 나오는 소설은 어떤지 몰라도 요즘 젊은애들이 쓰는 무슨 현대소설인지 하는걸 두어편 읽어보면 배부르고 편안해서 잠꼬대나 하는것 같아서 밸이 뒤틀린단 말이요.

나도 소설이라고 한편 써놓은게 있소. 제목은 《6호병실》이요, 체호브의 소설제목을 본딴것인데 나딴엔 황당수법으로 된 풍자소설을 쓰려구 했던거요. 흥미있다면 언제 한번 형님이 보오, 그러나 발표할 생각은 없소. 할말을 다할수 없는 인생마당이 아니지 않소. 자, 마지막 한잔으로 우리의 기우를 기념합시다….

그날 나는 몹시도 취해서 자전거도 못타고 비칠거리며 힘겹게 걸었다. 흐릿한 가로등에 비친 내 그림자는 나 자신보다 더 취한듯 이리비칠 저리비칠하였다. 술마시고 취하는 멋이란 이런것인가? 그러나 인생은 취생몽사가 아니다. 취생몽사가 아니면 어쩔텐가? 모두가 취했는데 홀로 깨여있는 사람은 더구나 고달픈 법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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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못생긴 나무에 걸어둔 잡념 2012-04-13 0 7959
19 담배,신분 및 기타 2012-03-28 0 9655
18 표절과 인용 2012-03-05 0 8698
17 (교육칼럼) 자식은 피조물이 아니며 부모는 주물공이 아니다 2012-02-23 5 10433
16 (교육칼럼)학위와 능력의 삼각지대 2012-02-17 8 10538
15 진언련시조 (1) 2012-02-09 0 8418
14 (교육수필)꼭 이리 되여야만 할가 ? 2012-02-06 3 10447
13 (교육칼럼)싱거운 걱정 한마당 타작해본다. 2012-01-21 0 9524
12 (교육칼럼)인격배양문제초고 2012-01-12 2 9483
11 현대시의 곤혹 2011-11-08 5 11312
10 잠타령 2011-08-25 0 10061
9 인생수사학 2011-08-05 2 8586
8 편지를 쓰시라 (최균선) 2011-08-04 1 10091
7 취중진담(최균선) 2011-07-31 3 12054
6 [수필] 인생의 철길따라 2011-07-26 3 9365
5 2008-02-09 42 7503
4 못생긴 아모르 2008-01-29 32 8011
3 시조묶음 (2) 2007-10-08 39 7804
2 시조묶음(1) 2007-10-08 40 6073
1 문학리론 (출판본) 2007-09-19 22 8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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