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혁의 문화시론 5]
소울메이트
소울메이트는 령혼 (soul)과 동료 (mate)의 합성어로 서로 뜻이 잘맞는 사이를 지칭한다. 문학, 예술, 스포츠, 비즈니스 등 분야에서 큰 성공을 한 사람에게는 흔히 도타운 솔메이트의 존재가 있다.
그 일례로, 독일 고전주의 문학의 대가 괴테와 실러를 들수 있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깊은 리해를 바탕으로 한 자극과 격려를 통해 독일 고전주의 문학을 완성해나갔다.
두 예술가의 우정은 베토벤과도 이어졌다. 두 문호를 존경했고, 이들의 작품에 큰 령감을 받은 베토벤은 두 사람의 작품에 곡을 붙였다. 소울메이트들끼리 단순한 우정을 넘어 예술사에 한 획을 긋는 일을 유발시킨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와 동생 테오는 또 한쌍의 유명한 소울메이트이다.
동생 테오는 괴퍅한 성격을 가진 형의 재능을 알았고 힘들게 번 돈으로 형을 위해 생계비를 대며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고흐가 자살한 뒤, 애달픈 나머지 테오는 여섯달만에 형의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지금 형제의 묘는 함께 나란히 놓여 있다.
겨레가 애대하는 민족시인 윤동주에게도 생사를 함께 한 소울메이트가 있었다. 바로 송몽규이다.
둘이는1917년 파평 윤씨네 가문에서 석달을 차이 두고 태여났다. 송몽규는 윤동주의 동갑내기 고종사촌형이 된다. 명동학교도, 룡정의 은진중학교에 함께 다녔다.
송몽규가 열여덟 어린 나이에 서울의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꽁트 “숟가락”이 당선되자 이는 윤동주에게 큰 자극이 되여 자신의 작품에 날자를 표기하기 시작했다.
둘은 또 경성의 연희전문에 나란히 합격했고 학교에서 함께 문학동아리들의 잡지 “문우”를 펴냈다. 당시 “문우”에 실었던 윤동주의 시 “새로운 길”이 그의 룡정자택 장례식에서 랑송되였다.
두 사람은 또 일본류학을 함께 떠났다가 반일운동의 죄목으로 일제경찰의 마수에 떨어져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였다. 일제의 잔인한 생체실험으로 의문의 주사를 맞고 윤동주는 1945년 2월 16일 절명했고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송몽규는 그 며칠 뒤인 3월 7일 윤동주를 따라갔다.
후쿠오카 화장장에서 재로 변한 윤동주의 시신은 고향 룡정으로 돌아와 룡정 동산의 교회 묘지에 묻혔다. 가족에서는 “시인” 윤동주 지묘”라 비석을 새겼다.
송몽규의 시신도 명동의 장재촌 뒤산에 묻혔고 “청년문사(文士) 송몽규” 지묘”라는 비석을 세웠다.
1990년 4월 그들을 기리는 이들에 의해 송몽규의 묘는 룡정 동산 윤동주의 묘쇼곁으로 이전했다. 불과 몇메터 가까이 손잡힐듯한 곳에 둘이는 묻혔다. 두 사람은 그야말로 삶과 죽음을 온전히 함께 한 벗이였다.
오늘날 윤동주는 겨례 시인으로 높이 추앙되였다. 그런데 유감스러운것은 오래전에 등단한 문사이자, 철저한 반일지사인 송몽규에 대해 아는이는 적다. 그러나 차라리 숙명의 동반자였던 윤동주가 옆에 있어 그는 외로웁지 않을것이다. 두 사람은 삶과 죽음을 온전하게 나눈 진정한 소울메이트였으니깐.
“연변일보” 2015년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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