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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도 알 수 없는 시, 그저 한때 소나기였으면 … "에 대한 반론/심상운
2019년 03월 01일 21시 08분  조회:887  추천:0  작성자: 강려
 
“시인도 알 수 없는 시, 그저 한때 소나기였으면 … ”에 대한 반론 
『시가 있는 아침』 출간회 모인 시인•평론가 30여 명 말하다 
 
 
 
          
                                                                     심  상  운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한국시단의 상황에 대해 나름대로 진단하고 근본적인 문제점을 몇 가지 짚어보았다. 먼저 짚어본 것이 “시가 감동적이어야 한다.”는 명제(命題)다. 시에 대한 이런 견해는 너무 당연한 것 같다. 시는 언어예술이고 감동은 예술이 존재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에서 감동(感動)은 “크게 느끼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풀이 하고 있다. 이 말을 분석하면 먼저 어떤 대상과의 관계에서 느낌이 발생하고 그 느낌에 의해서 마음의 움직임이 생기는 것이 감동이다. 따라서 감동에는 주체와 대상과의 관계에 따라 형이하학적 감각으로부터 오는 즉물적(卽物的)인 감동, 가슴으로부터 오는 정서적(情緖的)인 감동, 형이상학적인 지적(知的)인 감동, 종교적인 영혼(靈魂)의 감동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여기서 느낌은 주관적인 지각(知覺)이다. 그래서 어떤 대상에 대해서 “나는 느낌이 오는데 너는 왜 느낌이 오지 않느냐?” 라고 비난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위가 된다. 느낌은 강요나 관념적인 당위성에 의해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느낌은 과거의 경험을 재생해주는 대상에서도 오지만, 새로운 현상이나 경험에서 더 강하게 분출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선한 느낌’과 ‘감동’은 과거시제보다 현재시제의 것이 된다. 과거시제의 느낌을 상투적, 구태의연한 느낌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점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가슴의 정서’ 속에만 갇혀있는 서정파(抒情派) 시인들이 “시는 감동적이어야 한다.”는 명제를 새로운 시대의 지성, 감각, 정서, 영혼을 담고자 하는 ‘미래파(未來派)’ 시를 폄하하는 무기로 사용한다면, 그것은 시대의 변화에 둔감한 것만이 아니라, 현대시의 즉물적 이미지가 주는 신선한 감동을 비롯하여 독자들에게 정신적 전율을 주는 수준 높은 지적감동과 영혼의 감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만족의 좁은 울타리에서 활개 치는 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시를 머리로 쓰지 말고 가슴으로 쓰자는” 것은 18,19세기의 낭만주의적(浪漫主義的) 경향의 시 쓰기이다. 낭만주의 시는 당시에 금기(禁忌)였던 구어체(口語體)의 시어를 사용함으로써 영국의 시단을 혁신하는 새로운 시운동으로 부상하였다. “콜리지와 워즈워스의 서정민요집(抒情民謠集, Lyrical Ballads,1790) 제2판(1800년)의〈서문 Preface〉에는 시가 '강렬한 감정의 자연스러운 넘쳐흐름'이라는 워즈워스의 유명한 정의와, 시는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언어로 쓰여져야 한다"는 그의 이론을 담고 있다.”(브리테니카 백과사전) 
  
이 운동은 당시 귀족적인 고전주의(古典主義) 시의 틀을 부수는 강한 동력이 되었으며, 시를 귀족의 언어에서 평민들의 언어로 바꾸어 놓았다. 이런 성과로 해서 낭만주의 시는 영국에서 진취적이고 개혁적인 시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낭만주의 시의 “자연, 사랑, 인생의 안일한 가정생활과 전원풍경, 소박한 시어와 운율형식”(안영수, 「형이상학시와 모디니즘 시: 신비평읽기」,<시문학> 2009,8월호)과 정서과잉의 상투적인 언어는 독자들에게 식상함을 주어서 이를 혁신하려는 시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것이 20세기 대표적인 시인 T.S 엘리엇과 에즈라 파운드 등이 중심이 된 모더니즘 시 운동이다. 이 모더니즘 시 운동은 정서위주의 주관적인 서정시를 ‘객관적이고 지적(知的)인 사유(思惟)의 시, 이미지의 시’로 바꾸는 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19세기의 유물론과 관계 깊은 사실주의를 개인정신의 부자유라는 측면에서 배격하고, 시의 영역을 인간의 의식세계에 한정하지 않고 내면의 무의식(無意識) 세계로 확장했다. 이와 함께 초현실(超現實)이라는 개념을 포용하여 시를 의미로부터 해방시켜서 자유롭고 무한한 상상의 영역을 시에 부여하였다. 
  
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모더니즘(초현실주의 포함)으로 변화해 온 시의 역사에서 변화의 원동력이 된 것은 과거의 시에 대한 개혁(改革)이다. 이 개혁 속에는 시대정신과 사회의 변화에 대응하고, 의미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되려는 시의 독자적인 생명력이 들어있다
 
20세기 초엽 근대화의 과정에서 서구의 시를 받아들인 한국 현대시 100년의 역사도 서구시의 역사와 궤도를 같이 한다. 정지용, 김기림, 이상, 조향, 김춘수, 문덕수 등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한국 모더니즘 시의 계보가 그것이다. 그것은 현대 한국인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이 과거의 조선시대로 회귀할 수 없는 것과 같이 한국 현대시의 변화도 19세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21세기 한국 현대시는 <중앙일보> 신준봉 기자가 기사에서 지적한 것처럼 ‘신구충돌’의 와중에 있는 것 같다. 과거의 인습적인 사유나 관념에 대한 거부, 간접적이고 추상적인 것보다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것을 선호하는 젊은 시인들이 시단의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일부의 실험적인 젊은 시인들은 김남조 시인이 지적한 것처럼 ‘해부칼로 인체를 갈라 보여주는 것 같은’ 충격적인 장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보여주기(showing)’는 과학적인 관찰을 통해서 사물성의 세계에 접근하여 시를 관념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방법이다. 추상적인 개념에서 벗어나서 구체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혁신적 표현의 중심에는 
대상을 실제의 상태로 인식하고자 하는 사실주의의 객관적 시각과 디지털적 감성(영상성, 현재성, 정밀성)이 들어 있다. 
  
 디지털적인 감성(感性)은 가상현실의 세계로 시의 영역을 확장하기도 한다. 가상현실은 컴퓨터의 사이버 공간같이 현실과 비현실을 통합하는 제 2의 새로운 공간이다. 그래서 19세기적 자연발생의 서정시와는 전혀 다른 시적 공간을 형성한다. 이런 점에서 새로운 시적 공간의 시는 구시대의 관념에 안주하는 보수적인 서정시인 들이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시가 되기도 한다. 
  
‘시의 난해성(難解性) 문제’는 21세기 한국 현대시에서 ‘서정파 시인들’이 새로운 형식, 표현, 사유의 시를 공격하는 무기의 하나다. 난해성 때문에 독자와의 소통이 단절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서정시인 들이 사용하는 난해성이라는 단어 속에는 시는 ‘해석의 대상’이라는 시에 대한 그들의 태도가 들어있는 것 같다. 
  
시를 해석한 다는 것은 시를 분해하여, 시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시를 그 의미의 망(網) 속에 가두는 것이다. ‘이 시의 소재는 무엇이고 형식은 어떠하며, 주제가 무엇이라고’, 시를 지식화(知識化)하여 의미를 고정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지식을 시험문제로 출제하여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발랄하게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정답 아닌 정답을 고르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왜 난해성을 시의 본질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가? 시는 해석(解釋)의 대상이 아니라 감상(鑑賞)의 대상이며, 의미보다는 상상력(想像力)이 우선되는 언어예술(言語藝術)이라는 것을 왜 외면하려고 하는가? 
   
미당(未堂) 서정주 시인의 대표작 「동천(冬天)」은 현대시가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暗示)하고 있다.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나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동천(冬天)」전문 
   
이 시의 공간은 현실에서 벗어난 상상의 공간이다. 그리고 눈썹, 새, 하늘 등의 언어들은 실체와 관계없는 언어 기호일 뿐이다. 따라서 시인의 상상(심리적 이미지, 형이상학적 판타지)은 상상 자체일 뿐, 실제의 사실과는 전혀 상관을 맺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시의 가치는 해석보다는 감상에, 의미보다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의 영상세계 그 자체를 맛보고 즐기는데서 더 찾아질 수 있다. 따라서 의미의 난해성이 이 시의 생명력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가 산문처럼 명백한 논리와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면, 시의 예술성(藝術性)이라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 예술성은 난해성 속에 들어있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생명력이기 때문이다.
   
“시를 머리로 쓰지 말고 가슴으로 쓰자는” 것을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한국의 서정시인 들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주관적인 사고방식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감정 독백적인 시에 대한 객관적인 성찰을 거부하고, 매스컴의 비예술적 대중영합주의의 옹호를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매스컴은 대중성에 영합할 수밖에 없는 매체다. 그러나 이런 매체가 앞장서서 시의 무한한 가능성과 예술성을 무시하고 새로운 감각의 젊은 시를 공격하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그것은 매스컴의 횡포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중앙일보> 2010년 1월 18일자 “시인도 알 수 없는 시, 그저 한때 소나기였으면 … ”은 시의 무한한 변화의 가능성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답답함을 안겨 주는 독선적이고 편향적인 기사였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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