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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시의 현실과 하이퍼시 / 심 상 운
2019년 03월 02일 18시 04분  조회:914  추천:0  작성자: 강려
 변화하는 시의 현실과 하이퍼시
심  상  운
                                                                                    
 
 
 
1.
21세기 한국현대시의 현장에서 젊은 시들의 변화는 필연적인 현상으로 인식된다. 기성세대가 관념시, 낭만적이고 독백적인 서정시, 사회적 이념의 시를 고수하려고 해도 젊은 시인들은 과거의 인습적인 사유나 관념에 대한 거부와 함께 간접적이고 추상적인 것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김남조 시인이 부정적으로 지적한 “실험적인 젊은 시인들이 해부칼로 인체를 갈라 보여주는 것 같은 충격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것”(2010,1, 18<중앙일보>)과도 연관된다. 이 ‘보여주기(showing)’는 과학적인 관찰을 통해서 사물성의 세계에 접근하여 시를 관념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방법으로 이해된다. 
추상적인 개념에서 벗어나서 구체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혁신적 표현의 중심에는 대상을 실제의 상태로 인식하고자 하는 사물시(事物詩)의 객관적 시각과 디지털적 감성(영상성, 현재성, 정밀성)이 들어 있다. 디지털적인 감성(感性)은 하이퍼 시에서 가상현실(假想現實)의 세계로 시의 영역을 확장한다. 가상현실은 컴퓨터의 사이버 공간같이 현실과 비현실을 통합하는 제 2의 공간이다. 그래서 그 공간은 이미지들이 관계를 맺는 순간의 상황에 따라  변화가 이루어지는 창발적(創發的)인 공간이 된다. 
21세기 현대철학에서 ‘창발론(創發論)’을 제창한 승계호 인문학 석좌교수(미국 택사스 대학교)는 2007년 대우재단과 조선일보사가 공동 주최한 <제9회 석학연속강좌>에서 그의 논문「마음과 물질의 신비」를 발표하였는데, 그는 그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모든 분자는 분리 불가능한 속성을 가지므로 창발적 존재자이다. 분자들이 결합하여 세포를 형성할 경우, 이 또한 창발적인 작용이다. 단세포들이 결합하여 하나의 유기체를 형성할 경우에 다세포 유기체가 창발한다. 그런데 창발은 물리적이거나 유기적인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동차나 시계도 창발적인 생산품이다. 이들 기계는 그 부분들이 분리되어 작용할 경우에는 수행할 수 없는 기능을 수행한다. 모든 예술 작품들 또한 창발적이다. 아름다운 그림은 그 부분들의 단순 합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음악은 그 음악을 구성하는 개별적인 소리들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속성을 갖는다. 모든 사회적인 조직도 핵가족이 되었건 국가가 되었건 간에 창발적이다.” 
 
이 글에서 단세포를 보통 시의 단선구조의 이미지로 다세포를 하이퍼 시의 다선구조의 이미지로 바꾸면 창발적인 구조의 하이퍼 시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단절된 이미지들의 집합적 결합과 연결을 시의 기본 구조로 하는 하이퍼 시는 창발론과 연계된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그 이미지들이 지향하는 사고(思考)의 공간은 20세기 프랑스의 사회 인류학자이며 구조주의 철학자 레비스트로스 (Claude Lévi-Strauss)가 말한 ‘야생적 사고의 세계’와도 연결된다. 그 연결은 디지털 시의 모듈(module) 이론을 대신하여 질 들뢰즈((Gilles Deleuze) 가 펠릭스 과타리(Félix Guattari )와 함께 저작한『천개의 고원』에서 큰 줄기가 잘못되면 전체가 위험한 수목형의 반대 유형으로 제시한 뿌리 형의 사고-땅속에서 부단히 증식하면서 다른 
뿌리줄기와 마주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면서 온갖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식물의 뿌리-를 의미하는 리좀(rhizome) 이론을 중심이론으로 설정한 하이퍼 시의 이론과 미리 정해진 목표가 없는 미지(未知)를 지향하는 야생적 사고와의 만남이다. 야생의 사고는 경험을 중심으로 한 감성적 표현으로 세계를 조직화하는 ‘구체성의 논리적 사고’이면서도 기호적(記號的) 사고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술적 기법에서 구체적인 재료를 사용해 매번 새로운 의미나 관계를 만들며 어떤 질서를 창조해내는 기법이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에서는 그런 예술기법을 브리콜라주(Bricolage)라고 한다. 
 
따라서 문명적이고 과학적 사고가 추상적(抽象的)인 논리의 틀 속에서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길들여진’ 사고라고 한다면, 구상적(具象的)이고  야생적 사고(신화적인 사고)는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길들여지지 않은’ 사고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젊은 시인들이 이미 길들여지고 정해진 관념에 기대지 않고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 길들여지지 않은 고도의 암시성(暗示性)의 이미지를 창출하려는 시적 경향은 하이퍼 시가 지향하는 다선구조의이미지 세계와 동반적(同伴的)인 관계(關係)가 된다. 
2.
이런 변화의 양상은 2015년 신춘문예 당선시의 심사평에서 드러난 현대시의 난해성(難解性)에 대한 이해에서 발견된다. 일부 심사위원들은 시의 완성도(完成度)를 중요시하면서도 신인들의 시가 개척하고자하는 새로운 시의 공간과 미개지(未開地)의 언어가 만들어내는 암시(暗示)의 매력에 대한 평가도 인색하지 않게 하고 있다. 그들은 시의 서정성과 대등한 위치에서 난해성을 인정하고 젊은 시인들의 상상력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그것은 어두운 사회현상에서 받은 정신적 상처를 상상의 언어로 암시하고 상징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의미보다는 자유로운 상상 쪽으로 시를 유인(誘引)하는 언어감각의 시편들에 대한 인정이다. 이런 경향의 시편들은 언어의 유희성(遊戱性)을 발판으로 언어의 연상(聯想)이 펼쳐내는 신선하고 새로운 감각과 의미를 담은 다선구조의 이미지 창출(創出)을 보여준다.
 
이런 관점에서 “시에서 발견과 발명은 구분된다. 발견이 낯익은 대상에서 낯선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이라면, 발명은 대상과 무관하게 낯선 의미를 빚어내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발견은 소통 가능성(서정시), 발명은 소통 불가능성(비서정시)과 직결되고, 다시 발견은 언어의 투명성(우리), 발명은 언어의 불투명성(나)과 연관된다. 우리 현대시는 발견과 발명 사이에 서식한다.”는 황지우, 이문재, 남진우의 <한국일보> 심사평과 “시라는 이름의 관행적 작문방식에 갇혀 오히려 생과 세계의 피 흐르는 실상으로부터 시 자체가 유리되는 자가당착을 돌파하는 패기의 글쓰기, 한국어의 갱신과 재구성이 그로부터 시발될 글쓰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것은 무조건 정당한가. 바로 이 오래된 물음을 또한 고통스럽게 치르는 가운데 일종의 시적 윤리성을 확보한 글쓰기이기를 바란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진정한 희망의 새로움이지 ‘새것 흉내’가 아니기 때문이다.”라는 문정희, 김사인의 <세계일보> 심사평은 한국현대시의 방향을 제시하는 시대의 흐름에 어울리는 평문(評文)으로 주목되었다.
나는 쌈을 즐깁니다 
재료에 대한 나만의 식견도 있죠 
동굴 속의 어둠은 눅눅한 김 같아서 등불에 살짝 구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낱장으로 싸먹는 것들은 싱겁죠 
강된장, 과카몰리* 등 다양한 <쌈장 개발의 기원>
봄철, 입맛이 풀릴 때
나는 구멍이 송송, 뚫린 배춧잎을 새로운 쌈장에 찍어먹습니다
달콤한 진딧물 감로를 섞어 만든 장
어떤 배설물은 때로 훌륭한 식재료가 되죠
두꺼운 것들은 싸먹기 곤란합니다
스치면 베이는 얇은 종잇장에도 누명과 모함은 숨겨 있죠 
적에게 붙잡히면 품속의 기밀을 구겨 한입에 삼켜요
무덤까지 싸들고 가는 비밀도 있습니다
어둠의 봉지에 싸인 이 밤
구멍 난 방충망은 경계가 소홀합니다
누군가 달의 뒷장에 몰래 싸놓은 알들
나는 긴 혀로 나방을 돌돌 말아먹는 두꺼비를 증인으로 세웁니다
사각사각, 저 달을 갉아먹는 애벌레들
수줍은 달을 보쌈해간 개기월식 
삼킬 수 없는 과욕은 역류되기도 하죠 
보름달을 훔쳤다는 나의 누명이 시간의 부분식으로 벗겨지고 있습니다
--- 조창규「쌈」전문
*아보카도를 으깬 것에 양파, 토마토, 고추 등을 섞어 만든 멕시코 식 쌈장 
<동아일보>의 당선작 조창규의「쌈」에는 ‘쌈’ ⟶ ‘동굴 속의 어둠’⟶ ‘스치면 베이는 얇은 종잇장’ ⟶‘어둠의 봉지에 싸인 이 밤’⟶‘구멍난 방충망’⟶‘달의 뒷장’,⟶‘긴 혀’⟶‘보쌈’으로 이어지면서 쌈장 속에 사물과 자연 현상을 포괄하는 다양한 상상의 다선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도 구속되지 않는 시적 화자의 유머가 일상적인 관념을 깨뜨리고 있다. 
죽은 우물을 건져냈다
우물을 뒤집어 살을 바르는 동안 부식되지 않은 갈까마귀떼가 땅으로 내려왔다
두레박으로 소문을 나눠마신 자들이 전염병에 걸린 거목의 마을
레드우드 꼭대기로 안개가 핀다, 안개는 흰개미가 밤새 그린 지하의 지도
아이를 안은 채 굳은 여자의 왼발이 길의 끝이었다
끊긴 길마다 우물이 피어났다, 여자의 눈물을 성수라 믿는 사람들이 물통을 든 채 말라가고 있었다
잎 떨어진 계절마다 배설을 끝낸 평면들이 지하를 채워 나갔다
부풀지 못한 뼈들을 눕혀 물길을 만들면 사람들의 발목에도 실뿌리가 자랄까
안개가 사라진다 흰개미가 우물 입구를 닫을 시간이다
우물은 떠나지 못한 자의 피부다
---- 최은묵 「키워드」전문
 
<서울신문>의 당선작 최은묵의 「키워드」는 우물을 상상의 키워드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죽은 우물을 건져냈다//우물을 뒤집어 살을 바르는 동안 부식되지 않은 갈까마귀떼가 땅으로 내려왔다” 는 1,2연만 읽어보아도 이 시의 우물은 실제의 우물과는 전혀 다른 감성과 상상의 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이 시의 ‘우물’ 이미지는 이 시대의 우울한 상황과 결부된 암시적 비유(譬喩)라고 말할 수 있으며, 발상(發想)의 측면에서는 구체적인 재료를 사용해 매번 새로운 의미나 관계를 만들며 어떤 질서를 창조해내는 브리콜라주(Bricolage)의 예술적인 사고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따라서 “ ‘죽은 우물’을 중심으로 우리 시대의 음화(陰畵)를 그려내고 있다. 이미지가 지나치게 모호해서 소통이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고도의 암시성은 시에 있어서 결함보다는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나희덕, 정호승의 심사평이 신선하게 감지된다.
 
12월,눈발에 꺾여
소리가 유턴한다
시비월
시비시비 걸면서 월월월
개들이 짖는다
노을을 향해 짖는다
철도노조 위원장
코스닥판 김선달
갓 삶은 행주로 흘러내리는 붉은 해를 닦아내야 하는지
검푸르게 녹스는 수평선 청동거울을 내버려야 하는지
是非是非是非
月月月
동굴이다
개기일식이다
묵은 친구 묵은 체증 묵은똥을 갈무리한다
일단 그냥 가자
正正正
정월이 온 뒤에
U턴을 해야겠다
-김예태 「U턴」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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