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형태를 추구하는 젊은 시 운동-‘하이퍼시’
-기존관념에서 해방, 자유로운 상상력의 발현, 우주적 개안開眼
심 상 운
「시문학」에서 2008년 5월부터 2009년 7월까지 4회에 걸쳐 특집으로 엮은 김규화, 오남구, 심상운의 <특집 하이퍼시> 60편, 2009년 11월부터 2010년 2월까지 3회에 걸쳐 기획특집으로 발표한 <확산 하이퍼시> 57편(참여시인 19명)을 비롯하여 하이퍼시 운동의 추진력으로 작용한 이슈의 숲길 <하이퍼텍스트 지향의 동인지/심상운, 김규화 대담>과 <종이 하이퍼텍스트/전자 하이퍼텍스트-문덕수>, <하이퍼시와 디카시/오남구, 이상옥 대담>, <하이퍼시의 가능성/신진, 조명제 대담> 등은 21세기의 감각과 문화현상에 대응하여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형태를 추구하고 구현하려는 젊은 시 운동의 치열한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
하이퍼시는 한국현대시를 오래 동안 지배해온 단선구조의 틀을 다선구조의 틀로, 시인의 독백적 서술을 객관적 이미지로, 정적 이미지를 동적 이미지로, 시인을 시의 주체에서 이미지의 편집자로, 고정된 관념에서 다양하게 확산되는 상상으로, 읽고 생각하는 시에서 보고 감각하고 사유하는 시로 바꾸어보려는 현대시의 개혁운동이다.
이런 개혁성으로 인해서 하이퍼시는 고정관념에 묶여 있는 일부 시인이나 독자들에게 당혹감과 거부감을 안겨주고 ‘소통疏通의 단절, 자기들만의 만족’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하이퍼시의 이론을 긍정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시인들과 독자들의 호응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이 추세趨勢다. 이 호응에는 젊은 감각을 선호하는 독자들과 시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들은 일상생활에 밀착된 사실적인 이미지와 환상적이고 초월적인 이미지의 뒤섞임을 즐기고자 한다. 이 뒤섞임은 그들에게 관념이나 의미를 넘어선 비약飛躍의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경향傾向은 과거의 인습적인 사유나 관념에 대한 거부,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이고 환상적인 디지털의 감각을 선호하는 현대시의 변화로 파악된다.
변화는 하이퍼시의 생명이다. 이제까지 하이퍼시는 영화의 몽타주 기법과 같은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을 시구조의 바탕으로 하였다. 그래서 장면을 연결하는 링크를 당연한 기법으로 인정하고 그것을 하이퍼시의 특징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링크를 답답하게 여기고 링크를 클릭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과격한 성향의 텍스트도 등장하고 있는 것이 하이퍼 시의 현장이다. 나는 ’상상의 클릭‘이라는 개념을 하이퍼시에 넣어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하이퍼시의 기법은 컴퓨터의 영역으로부터 벗어난 독립적인 현대시의 기법으로 논의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이퍼텍스트 시에서 텍스트를 빼고 하이퍼시로 명칭을 정한 이유의 일부도 거기에 있다.
2006년 나는 <디지털시의 이해>라는 시론에서 ‘디지털 감각’ ‘가상현실(virtual reality)’ ‘모듈(module)’, ‘샘플링(sampling)’ 등의 용어를 검증절차 없이 과감하게 디지털 시의 이론에 도입하여 시인들을 어리둥절하게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보여주기(showing)의 ‘디지털 감각’이나 ‘가상현실’은 개념의 일반화 과정에 들어간 것 같으며, 모듈 이론은 하이퍼시에서 리좀 이론으로 언어만 바뀌었을 뿐, 그 중심개념은 그대로 살아있다고 생각된다. 샘플링 즉 견본추출이라는 개념도 ‘시와 현실의 관계’를 논의할 때 쓰일 수 있을 것 같다. 탈관념, 링크, 클릭 등의 용어도 현대시의 이론 속에 흡수되어서 새로운 기법의 용어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탈관념은 기존의 관념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로워지자는 것이지, 시에서 관념을 아주 없애자는 무관념이 아니다. 기존관념에 집착하지 않을 때 더 큰 세계가 열리게 된다. 그것이 살아 움직이는 탈관념의 세계이며, 현실과 상상이 결합된 새로움으로 가득한 하이퍼(hyper)의 세계다. 따라서 하이퍼시에서 중요한 것은 기존관념으로부터 과감한 탈출과 창의적인 상상력의 발현이다. 거기에는 우주적인 개안開眼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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