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를 말한다
심 상 운
오토바이가 달린다
푸른 오토바이가 달린다
푸른 소리를 사방에 뿌리며
무너진 건물 속에서 나온 피 흘리는 시신들이
흰 천에 덮여 있는
바그다드 한복판을 달린다
빨간 오토바이가 달린다
엉덩이에서 하얀 물보라를 뿜어내며
여름 바다 위를 달린다
해변의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뛰어 온다
하얀 오토바이가 달린다 산맥을 넘어
붉은 토마토 즙을
온 몸뚱이에 바른 벌거숭이 사내들이
떼를 지어 뛰어가는 도시 위를 달린다
노란 오토바이가 달린다 혼자서 신나게
비가 갠 들판을 달린다
“어이, 저거 봐, 오토바이가 무지개 허리 위로 올라가고 있어.”
시골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소리치고 있다
<그때 그는 손에서 리모컨을 아주 놓아버린 것이다>
현실에서 해방된 대상의 이미지 시
나는 이 시에서 하나의 운동 이미지 속에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려운 ‘시적 현실’을 구현하고자 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시를 언어예술로 인식하고 새로운 창조적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철학적인 관점에서 가상세계에 대한 무한긍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시는 현실에서 해방된 대상의 이미지 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때 시의 대상은 아무런 현실적 의미가 없는 순수성을 가진다. 그 순수성은 무한한 상상과 디오니소스적인 도취의 세계를 열어 주는 바탕이 된다.
독자들은 이 시에서 푸른, 빨간, 하얀, 노란 등 오토바이 앞에 붙은 색채에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그들에게 이 시에서는 ‘의미’보다 이미지라는 시각적(예술적) 영역에 더 관심을 두고 있을 뿐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이 시는 ‘보여주는 시’ ‘연출된 시’ ‘또는 ’사이버성의 이미지의 시’ <하이퍼 시>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의미는 진리로 들어가는 문틈이 되지만, 니체가「힘에의 의지」에서 말한 것같이 ‘예술은 진리보다 더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은 발명의 영역이 되고 진리는 발견의 영역이 되는 것이다. 이 시의 ‘오토바이’가 일상적인, 합리적인 목적에서 해방된 초현실주의 시의 오브제(objet)와 같은 예술적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런 오브제를 통한 ‘자유연상’의 방임된 시상은 시의 영역을 확장하는 기능을 발휘한다. 이 시의 첫 연 바그다드는 현실과 연결되지만, 둘째 연부터는 점층적으로 현실에서 이탈하는 ‘현실이탈의 지향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끝 연 “그때 그는 손에서 리모컨을 아주 놓아버린 것이다”는 현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방임상태의 표현이 된다. 이 방임상태는 현실에서의 해방(자유정신)이라는 관점에서 21세기 현대시에서 새로운 감성적 영역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새로운 감성 영역의 시인들은 소크라테스적인 이지적 경향의 시인들과는 대조적인 위치에서 전위적인 시 창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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