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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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나의 좌기(坐驥)
2006년 07월 18일 00시 00분  조회:4643  추천:78  작성자: 김관웅
나의 좌기(坐驥)

김 관 웅


며칠 전, 나는 학교로 가다가 한 아파트 단지에서 살고 있는 나의 제자 마금과(馬金科)를 만났다. 한국 충북에 있는 제천대학 중문학과에서 중국어를 배워주는 객원교수로 있다가 여름방학에 휴가차로 올아 온 터였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나서 내가 자전거를 끌고 가는 모습을 보고는 무람없이 한어로 롱담을 걸어왔다.

《선생님의 좌기(坐驥)는 여전하십니다. 허허허》

좌기(坐驥) - 앉을 좌(坐)자에 천리마 기(驥)자의 합성어이니까 타고 다니는 천리마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보통 인간들이 타고 다니는 비루먹은 말이나 조랑말 따위가 아니라 옛날 무사들이 전장에서 종횡무진으로 타고 다니는,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는 전마(戰馬)를 일컬을 때 쓰는 고색(古色)이 창연한 낱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제자의 롱담에 응수를 했다.

《암 여전하구말구, 내게는 이 좌기(坐驥)가 관운장의 적토마(赤ꟙ馬)요, 동키호
테의 로시난테란 말이야, 허허허》

아마도 누구라 없이 자가용을 끌고 다니는 한국의 교수님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여서 이런 롱담을 한 것이리라. 한국에서 교수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요, 또 어쩌면 사치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치를 부릴 수 있는 곳이 바로 연길이고 연변대학이 아닌가 한다.

작년 내가 한국 대전의 배재대학에 객원교수로 있을 때의 광경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교수들만이 아니라 학생들도 적잖케 자가용을 끌고다녀서 학교의 캠퍼스는 말그대로 승용차 천지였다. 때로는 학생들이 교수님들의 전용주차장에 주차를 시켜서 말썽이 생기기도 하였다. 이런 갈피 없는 생각에서 잠겼다가 문득 끌고 가는 내 자전거를 내려 보노라니 12년 전을 회상하게 되였다.

큰 딸애가 17살 초중을 마치고 연길시 2중에 입학하게 되였을 무렵이였다. 연변1중에 지망했지만 단 5점 차이로 1만 2천원을 내야만 연변1중에 입학할 수 있었다. 1만 2천원을 내놓겠으니 연변1중에 가겠는가고 딸애에게 물었었다. 제힘으로 안 되는 일을 엄마, 아빠의 억울한 돈을 팔아가면서는 절대 안 하겠다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나는 큰 딸내미가 대견스러웠지만 집사람은 기어코 돈을 팔면서도 가라고 설복하려고 했으나 막무가내로 안가겠다고 뻗쳤다. 큰 딸내미는 고집스러운 점만은 나를 꼭 빼닮았다. 1만 2천원을 안 쓰게 된 우리 부부는 그 대신 자전거라도 좋은 걸 사주려고 그때 600백 원을 호가(呼價)하는 제일 좋은 소형 곤차(坤車 )-녀자용 자전거를 사주었다. 자전거바퀴의 대소에 따라 중국에서 자전거는 28, 26, 24로 나뉘는데 큰 딸애의 자전거는 제일 작은 24이다. 아이들의 장난감 자전거보다 바퀴가 좀 더 클 따름이다.

큰 딸내미가 고중을 다니던 3년 동안을 타다가 외지대학에로 가고 작은 애가 자전거를 탈 나이가 되였지만 왼손잡인지라 자전거도 왼쪽에 써서 끄는 꼴을 보니 하도 안돼서 언니자전거를 물려주는 것을 내가 오히려 말렸다. 까마귀 날자 배떨어진다고 마침 내가 술 먹고 자전거를 잃어버리다 보니 큰 딸내미의 소형 곤차(坤車)는 내가 물려받게 된 것이다. 그 때로부터 장장 9년 동안 큰 딸내미의 소형곤차는 나와는 떼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어 나의 애지중지하는 좌기(坐驥)로 되였다.

173cm의 키에 80kg의 체중을 가진 내가 자전거를 탄 모습은 사실은 적토마를 탄 관운장이나 로시난테를 탄 동키호테에 비기기보다는 땅딸막한 나귀를 탄 뚱보 산쵸 빤싸에 비기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마누라도, 제자들도 교수의 체신에 맞지 않는다고 타고 다니지 말라고 했으나 체신이고 뭐고 돈 안들고 편리하기만 하면 그만이 아닌가.

나의 좌기(坐驥)는 적어도 땡전 몇 푼이 안 들고 아무런 품도 안 들어서 좋다. 내가 이 좌기를 타고 다닌 9년 동안 자전거 수리방에 가본지 거퍼 서너번 번도 안 된다. 길거리에서 바람을 넣느라고 20전만 팔면 무난하게 두어주일씩은 타고 다닌다.

부대에서 나는 마부노릇을 하면서 말을 많이 타보았기에 말타기가 얼마나 거치장스러운지 잘 알고 있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여물을 먹이고, 물을 먹이고, 마구간에서 분뇨를 쳐내고, 매일마다 털을 빗겨주고, 정기적으로 말발굽을 깎아내고 철을 신겨야 하고 .... 정작 타고 출타를 하려면 말안장을 올려야 하고 자갈을 물려야 하고 참으로 거치장스럽기 그지없다. 어디 이뿐인가. 군마(軍馬)가 하루에 먹는 여물 값은 우리 병사들이 화식대보다 서너 배나 더 많았다.

나의 좌기(坐驥)는 돈 안 들고, 품 안 드는 리점만 있는게 아니다. 또 내 좌기(坐驥)는 무공해 교통수단이다. 이 지구에 단 한점의 유독가스도 방출하지 않으면서 매일 가장 효과적인 신체단련을 한다. 캠퍼스 안에서는 물론이고 시가지에 나가도 나는 언제나 내 좌기를 타고 다닌다. 페달을 힘차게 밟으면 량쪽 귀전과 량 볼로 시원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그렇게 시원하고 상쾌할 수가 없다. 자가용 안에서 에어컨을 틀어놓았다고 해야 이렇게 시원하고 쾌적할 수 있을까?

요즈음은 우리 연변대학에도 자가용바람이 세차게 불고있다. 내가 소속된 조선-한국학 학원에만도 이미 4명의 교수가 자가용을 굴리고 있다. 캠퍼스 안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자가용 안에서 내가 내 좌기를 타고 다니는 것을 건너다보면서 미소를 짓군 한다. 아마도 대부분은 선의적인 미소들일 것이다. 하지만 개중에는 시대의 발전에 뒤처져서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나를 비웃는 웃음도 섞여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웃든 말든 나는 내 사랑하는 좌기(坐驥)와 더불어 10년 이상은 연변대학 캠퍼스를 더 누벼야 할 것 같고, 30년 이상 사랑하는 연변 땅을 더 누벼야 할 것 같다.

금년에 90세인 나의 아버지는 지금도 자전거를 거뜬히 타시고 연길의 거리거리와 골목골목들을 누비시지 않은 데가 없으시다. 만주국시절 전 만주국의 사이클 챔피언의 당년의 름름한 모습을 재현하기라도 하듯 작년에는 홀로 자전거를 타시고 연길에서 도문까지 하루 동안에 거뜬히 왕복행을 하기도 하셨다. 기니스북에 오를만도 한 장거(壯擧)이니 자식된 나로서는 자랑스럽기 그지없다.

나의 아버지만큼 자전거를 타고 건강하게 살려면 아직은 34년이라는 긴 세월이 더 흘러야 한다. 하지만 다른 것은 아버지를 이어받지 못하더라도 자전거사랑만은 이어받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내 사랑하는 좌기(坐驥)를 타고 내 고향 연길의 거리를 신나게 달리고 있다.

2006년 7월11일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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