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석의 위험과 빙벽의 미끄러움 때문에 온신경을 쏟아부어야만 했던 스릴과 모험을 동반한 이틀 동안의 피로가 풀리지 않아
원두커피 한잔을 내려 든채 난 지금 컴퓨터에 마주 앉았다.
머리속에는 온통 흰눈이 살짝 덮혀있던 첩첩한 산봉우리들과 흐름을 멈춘채 흰룡처럼 길게 뻗어있던 두만강의 정경만이 꽉차 있어 어떻게 이 글을 시작해야 좋을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현대 촬영기술이 아무리 발달되였다 하더라도 우리가 이틀동안 산과 바위를 누비면서 눈과 마음에 담았던 그 절경을 제대로 다 담아낼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필자의 글재간으로는 순간순간의 감동과 감탄과 감수를 표현하는데 제한이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여 우선 조기 조선시대 학자셨던 매월당 김시습의 시 <저물무렵>으로 지금 이 시각 필자의 감수를 표현해보려 한다.
천봉우리 만골짜기 그 너머로
한쪼각 구름밑새로 돌아오누나
올해는 이 절에서 지낸다지만
다음해는 어느산 향해 떠나갈거냐
바람자니 솔그림자 창에 어리고
향 스러져 스님의 방 하도 고요해
진작에 이 세상 다 끊어 버리니
내 발자취 물과 구름 사이에 남아 있으리
2005년 이틀 동안 설악산 완주를 마치고 하산길에 백담사에 이르렀을 때 우리 배낭속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지어는 휴지 한장도 남아있지 않았다. 전두환이 실각후 2년간 머물었다는 백담사를 둘러 보던중
사찰의 정중앙 돌비석에서 이 시를 발견했었다.
시를 읽고 난후 우리가 걸어 내려온 설악산을 뒤돌아 보면서 이 시구가 가슴 깊은 곳에 화살처럼 박혀오던 순간의 감동을 잊을수가 없다. 그로부터 십년이 흐른 오늘 그 감수가 기억의 갈피를 뒤집고 가슴속에서 새록새록 솟구쳐 오른다.
연길에서 출발한 차가 화룡투도에 이르렀을 때 깃털같은 눈송이가 시야가 흐려질 정도로 거세게 날려 내렸었다.
최초의 목적지인 숭선까지 무사히 도착할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수 없는 일이였다.
차를 운전하는 하루님은 물론이였지만 나머지 4명도 은근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차가 선경대를 지나 눈깔린 령을 넘어서야 모두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두만강과 홍기하가 만나는 합수목에서부터 우리의 장정은 시작되였다.
처음으로 오른
군함산은 먼곳에서 바라보면 똑마치 출항을 기다리는 대형 선박을 닮아 있었다.
산세는 그닥 높지 않았으나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남녀가 마주 앉아 있는듯한 {사랑바위}가 가장 인상이 깊었다.
눈깔린 도로위에 차를 세워놓고 싸가지고 간 도시락으로 점심을 에때운후 두번째로 오른 산은 산세가 범상치 않았다.
범위가 너무 광범하여 두팀으로 나뉘여 량면으로 오르기로 결정하였는데 목장님과 헬스님이 한조였고
우라님 하루님 청풍님이 한조가 되였다.
오르는 당시에는 누구도 이 산을 어떻게 부르는지 몰랐었는데 이튿날 아침 하루님과 헬스님이
다시 그곳의 부락을 찾아 촌민들에게 탐방하여
(箭)살밭갈이라 부른다는걸 알게 되였다.
아마도 창끝같은 산봉우리가 헤아릴수 없이 많아서일 거라고 생각된다.
산세가 험하고 바위가 불안정하여 하산길에 말할수 없는 고생을 겪었지만
량팀이 동시에 정상에 올라 깊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소리로 만나던 타이밍의 절묘함과 성취감은
언어로 다 표현내 낼수 없을 것이다.
헬스님의 안배로 남평정부 초대소에서 산행의 피로를 회복할수 있게 편안한 하루밤을 지낼수 있던 점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안개가 짙게 낀 관계로 이튿날 산행은 9시에 시작되였다.
두만강변을 따라 험준하고 가파르게 높이 솟아있는 산 두개를 선택했는데
그 중 하나는 연변산행인들 거의가 알고있는
독수리봉이다. 다른 하나는 마을이름을 따서
가마바위산으로 우리가 명명하였다.
천태만상을 이루고있는 산봉우리들과 바위들의 풍경은 독자들이 사진으로 잘 감상하기 바란다.
정월 초사흩날과 초나흘에 이루어졌던 등산 대장정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것은
어느 산을 오르나 두만강을 끼고 우리의 고국이였던 조선을 굽어 볼수 있었던 점이다.
지금은 겨울이여서 흐름을 멈추고있으나 두만강은 우리 겨례의 한과 정을 담고 긴 세월 흘러온 력사의 강이다.
상류에서 바라본 두만강은 강폭이 너무 좁아 고향에서 흐르는 보통의 강과 흡사했다.
그것이 나라와 나라를 구분하는 국경이라는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조깅길에 아무때나 오를수 있을거 같은
그런 가까움과 친밀감이 드는 건너편 산이 조선이라는 점이 믿겨지지 않았지만 현실은 그토록 준엄하고 랭정하였다.
산하의 흐름에는 경계가 없다고 어느 작가가 말했지만 정치적 현실은 역시 어쩔수 없는가 보다.
마지막 한방울의 체력까지 탕진해가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안전산행을 견지하여 주신
우라님 목장님 헬스님 그리고 긴시간 운전을 사고없이 멋지게 해주신 하루님께 나의 이 미흡한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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