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주는 예로부터 《동남불국(东南佛国)》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는데 특히는 송나라 황실이 수도를 하남개봉 (河南开封)에서 항주로 옮긴 후 항주의 크고작은 사찰이 480여 개에 달하였다. 그중에서 고려사(高丽寺)는 령은사(灵隐寺), 천축삼사(天竺三寺) 등과 함께 세세대대로 세상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있다.
불교에서는 만사만물이 생겨나고 환멸되는 모든것이 인연(因缘) 때문이라고 한다. “前缘相生 因也: 现相助成 缘也.” 어찌보면 오늘날 항주서호변의 울창한 수림속 한가운데에《혜인고려사(慧因高丽寺)》라는 편액을 높이 걸고 조용하게 서있는 고려사(高丽寺)의 모든것도 다 인연(因缘)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오늘 잠간 고려사(高丽寺)에 얽힌 그 인연(因缘)들을 풀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고려사는 기원 927년(后塘天成2년) 오월왕 전류(钱鏐)에 의해 최초로 세워졌으며 당시에는《헤인선원(慧因禅院)》라고 불리웠다. 고려사는 전류(钱鏐)가 오월국(吴越国)을 정식으로 창립하고 제일 처음으로 진행한 대규모적인 사찰공사였으니 뢰봉탑(雷峰塔)보다는 48년이 앞서였고 륙화탑(六和塔) 보다는 43년이 앞서였다.
사서(史书)의 기록들에 보면 오월국 왕실과 조선반도와의 인연(因缘)이 각별했는바 당시 조선반도 북쪽에 새로 나라를 세운 고려국(高丽国)과 조선반도 남쪽의 후백제 견훤왕 사이의 세력다툼 중재(仲裁)를 오월국에서 서주었다고 하니 서로간에 사절단 및 민간적인 교류는 더 말할나위 없이 빈번했을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원 1055년, 고려왕 문종왕휘(文宗王徽)의 넷째아들로 태여난 의천법사(义天法师)가 어려서부터 중국에 와서 불법(佛法)을 구할것을 꿈꾸면서 당시 항주일대에서 유명했던 정원법사(净源法师) 등과 서신왕래를 해오다가 기원 1085년에 끝내 송나라 상인 고림녕(高林宁)의 상선에 몰래 올라타고 바다를 건너 중국에 오게된다. 뒤늦게야 소식을 알게 된 고려왕실에서 왕자의 신분에 맞는 격을 차려서 사절단을 배동시켰는데 송나라 조정에서도 매우 큰 중시를 돌리고 특별 배동관원을 파견하여 의천법사가 중국에서 널리 불법을 구할것(游方求法)을 허락하였다. 중국과 조선반도사이의 불교교류는 당나라시기의 견당사를 포함하여 오래전부터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여 왔는데 그중에는 후세에 중국불교 4대보살 중의 하나인 지장보살(地藏菩萨)로 추대된 신라왕자 출신의 김교각(金乔觉)을 비롯하여 항주지역에 발자취를 남기고 간 고대한국의 유명한 승려들만도 근 30여 명에 이르른다.
송나라 황궁에서 철종(哲宗)황제를 배알한 의천법사는 이미전부터 서신왕래가 있던 정원법사(净源法师)를 찾아 항주 혜인사(慧因寺)에 와서 정중하게 제자례의(弟子礼仪)를 차리고 머물면서 본격적인 화엄경전(华严经典) 연구를 시작하고 정원법사(净源法师), 유성법사(有诚法师), 변재법사(辩才法师) 등 여러 종파 유명한 고승 50여 명과 친분을 쌓고 인연(因缘)을 맺었으며 나중에 고려국에 돌아가서 현재 한국불교의 중요한 한 교파인 《천태종(天台宗)》을 창시하게 된다.
혜인사(慧因寺)가 고려사(高丽寺)로 세상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것이 바로 의천대사가 다녀간 후 의천대사와 고려왕실에서 선후로 《화엄경(华严经)》3부 170권을 혜인하사에 증송했고 또 백금 이천냥을 보내와 화엄경장경각(华严经藏经阁)과 보살상(菩萨像)을 세우도록 한 다음부터 이다. 중국 당조말년부터 시작된 전란으로 중국내의 불교경전들이 많이 소실되였었는데 의천대사가 증송한 불교경전으로 혜인사는 《화엄제일도장(华严第一道场)》으로 중국에서 명성을 떨쳤으며 점차적으로 고려사(高丽寺)로 널리 불리우기 시작하였다. 특히 고려왕실과 왕자출신 의천법사의 도움에 보답하기 위하여 사찰안에 특별히 고려왕사(高丽王祠)가 세워졌으며 그렇게 고려사는 송(宋) 원(元) 두 조대를 거치면서 근 300년동한 흥성기를 계속하다가 명(明) 청(清) 두 조대를 거쳐 근대에 이르러서는 여러 인연(因缘)으로 점차 몰락하게 된다.
항주의 향간(乡间)에서는 고려사가 점차 몰락하게 된것을 소동파(苏东坡)와의 인연(因缘)과 연관된다고 전해오고 있다. 기원 1089년 의천법사하고 친분이 깊었던 정원법사(净源法师)의 원적(圆寂) 1주년을 맞으며 의천대사가 특사를 파견하여 금탑2두개를 공납하면서 정원법사의 사리(舍利)를 구하려고 하였는데 당시 항주지사(杭州刺史)로 있던 소동파가 송나라 황실과 고려국과의 교류를 극구 반대하는 상서(上书)를 올리고 의천대사의 특사들을 억류하는 악연(恶缘)이 있었으며, 후에는 또 소동파가 서호보수공사를 하면서 호수바닥에 깔린 갯벌을 모아서 제방을 쌓으려고 하였는데 갯벌흙들이 너무 물렁하여 근본 제방을 쌓을수가 없었다. 소동파는 자신의 몸으로 고려사를 보호한다(以身护法) 약속을 하면서 고려사의 승려들이 사찰의 풍수(风水)를 파괴한다며 극구 말리는것도 마다하고 끝끝내 고려사앞의 적산(赤山)을 파내리고 그 흙으로 서호에 제방을 쌓은것이 바로 오늘날 항주서호의 소제(苏堤)이다.
불교에서 윤회(轮回)를 많이 말하는것처럼 당년에 소동파와 고려사 사이에 악연(恶缘)이 맺어졌다면 지난 구십년대 중반에 이르러서 고려사 옛터가 흔적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현대식호텔이 지어지기까지 하였다가 결국엔 또 그 소동파와의 인연(因缘)으로 인하여 고려사가 세상사람들 앞에 선듯 다시 다가서게 된다. 1996년 2월 초에 고려사옛터에 세워진 화가산장(花家山庄)호텔 시공과정에서 큰 석상(石像)이 출토되였는데 나중에 고고학자들의 검증을 거쳐 그것이 바로 당년에 소동파가 이신호법(以身护法)할것을 약속하며 고려사에 만들어졌던 소동파의 호법상(护法像)이 였음이 확인되였다. 그때가 한창 항주시정부에서 서호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준비사업을 의사일정에 놓고 서호의 자연경관뿐만 아니라 서호에 관련된 모든 역사문화유산도 재발굴하고 보호하는것을 중요시 할 때 였으니 당년에 항주시시장으로 있으며 서호의 복구사업에 큰 심혈을 기울였던 소동파와 그와 연관된 고려사 또한 정부에서 큰 중시를 돌리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이밖에도 고려사의 복구사업에 은근히 큰 힘을 기울인 또 다른 인연(因缘)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의천대사의 고향땅으로부터 온 한국 사회과확원 고(故)김준엽(金俊烨) 원장을 비롯한 인연(因缘)들이다. 김준엽선생은 젊은시절 일본군에 징병되여 중국에 왔다가 산동전선(山东战线)에서 탈출한 후 천신만고를 거쳐 중경에 도착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찾은후 한국광복군총사령관 리청천(李青天)의 부관으로 임명된다. 그곳에서 어려서부터 항주에서 성장한 민영주(闵泳珠) 여사와 결혼하게 되는데, 민여사의 부친이면 유명한 독립운동가인 민필호(闵弼镐) 선생이고 민필호선생의 장인이면 중국 신해혁명시기부터 손중산(孙中山) 진기미(陈其美) 등과 친밀한 관계를 가져오던 신규식(申奎植) 선생이다. 당년에 신규식선생은 “고려사류제(高丽寺留题)”란 시까지 쓰고 모금운동을 하면서 고려사복구에 노력하였다가 전란으로 어쩔수 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1945년 광복을 맞은 후 한국에 돌아간 김준엽선생은 후에 고려대학 제9대 총장까지 지내면서 한국에서 많은 사회활동과 학술활동에 심혈을 기울이며 직접 《한국중국학회》,《한국공산권연구협회》를 설립하고 회장으로 지녔으며 《한국국제정치학회》명예이사장,《한국사회과학원》원장 등을 력임하였다. 그러다가 한중수교가 이루어지자마 곧바로 중국의 북경대학 남경대학을 비롯한 십여개 대학교에 한국연구소를 설립하는 일을 추진하였는데 그중에서도 1993년 항주대학(현 절강대학)에 한국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절강성과 항주시의 유관 정부관계자들하고 고려사복구사업, 대한민국임시정부 항주기념관설립 및 당년에 대한민국임시정부 외교부부부장까지 지냈던 민제호(김준엽선생 부인 민여사의 큰아버지)선생의 항주서호변의 묘지를 찾는 일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수많은 인연(因缘)들로 오늘의 고려사는 근근히 사찰만이 아닌 중한 정치, 문화, 종교 교류의 장으로 이곳 강남땅에서 그 자리를 꿋꿋하게 지켜가고 있으며 또 새롭게 항주땅에서 생활의 터전을 다져가고 있는 우리 민족 후세들의 긍지와 자랑으로 세세대대로 이어져 갈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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