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학교 교가는 우리 민족교육의 우수한 문화유산입니다. 그러나 1990년대말부터 많은 학교가 페교되면서 안타깝게 교가도 함께 소실되고있습니다.” 일전 기자는 조선족중소학교 교가를 수집하기 위해 심양에 도착한 한국 전남대학교 안병삼교수를 만났다.
안병삼교수가 조선족중소학교 교가에 관심을 갖게 된것은 2010년부터다. 당시 전남대학교 세계한상문화연구단에서 중국조선족문화부문 연구를 맡고 중국내 조선족신문잡지의 목록을 수집, 정리하던중 우연하게 《중국조선족교육》잡지 뒤면에 실린 교가를 본 그는 그때부터 교가수집에 들어갔다. 2년 동안 이미 길림성(연변주 140여수, 기타 20수)과 흑룡강성(40 수)에서만 교가를 모두 200여수 수집하였다. “중국조선족학교집”(흑룡강민족출판사)에도 교가가 소개되지 않았으며 일제시기부터 현재의 교육내용들이 반영된 “조선족교육집” (7권)에도 교가가 빠져 연변대학 허청선교수도 아쉬워했다고 한다.
조선족교육연구에 있어서 교가가 연구되여야 할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홀시되여왔다는것이다. “20세기초 한반도에서 지금의 동북3성지역에 와 정착한 우리 민족들은 생계조차 어려운 렬악한 환경속에서도 교육의 중요성을 느끼고 학당을 세우고 자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때부터 교가도 생겨났는데 당시 교가에는 강한 반일정신으로 독립사상을 고취했었다. 그뒤 신중국이 창립된 뒤 70년대 동북3성내 조선족중소학교들이 우후죽순마냥 설립되여 80년대부터 교가가 생겨났다 한다.
교가 수집과정은 이미 많은 학교들이 페교된 상황이라 간거한 작업이였다. 어떤 학교는 교가가 아예 없었고 어떤 학교는 교가가 여러수 있었다. 또 어떤 학교는 교가가사가 현관에 씌여있었는데 그것을 촬영했고 오상조선족사범학교의 경우에는 학교가 합병되였기에 교가를 다른 한 조선족교원한테 알아서 1절만 수집하였다. 연변대학 교가는 1984년 당시 정판룡부교장의 지시로 만들어져 배움을 강조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교가에는 단군과 주덕해 같은 인물도 나오는데 당시 시대특색이 짙었다. 60년대 집안조선족학교 교가를 보면 “문혁”의 내용이 반영되여있었다. 교가는 보통 학교 음악교원이나 시인에 의해 많이 창작되였으며 남영전시인이 쓴 교가만 세수 수집하였다고 했다.
“교가에는 학교의 리념과 교육목표가 담겨있어 강한 민족의식과 시대적색채를 반영하고있습니다. 지금 그 누군가가 이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학교 소실과 함께 교가는 영원히 사라지게 됩니다. 교가의 악보와 가사를 함께 수집하여 민족문화유산으로 후세대들에게 남겨주려 합니다.” 안병삼교수는 이번에 료녕성내 수집을 마치면 계속 내몽골, 북경, 청도 등 지역에 가서 교가를 수집할것이라면서 조선족중소학교 교가를 갖고 계시는 분은 자신에게 직접 련락(이메일: bayusansan@hanmail.net)해주시기 바란다고 부탁하였다. 오지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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