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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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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보르헤스를 읽는 밤 / 김지헌 댓글:  조회:726  추천:0  2018-12-24
보르헤스를 읽는 밤                                      김지헌   문장이 자꾸만 길을 잃는다 때로 의식을 끌어당기는 어둠을 직시해가며 보르헤스를 읽는 밤   늙은 역사가의 호기심으로 제국의 흥망사를 논하듯 무한천공에는 오합지졸 같은 별들만 제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이따금 미시령터널 쪽으로 헤드라이트 불빛이 서둘러 사라지고 나면 또다시 절해고도,   아기 고라니 울음소리가 단단해진 어둠을 흔들어 깨뜨린다 북풍이 나무의 결기를 흔들어댄다 패잔병 같은 혹독한 겨울의 잔해들 속 바짝 말라 기억의 회로가 끊긴 겨울나무들조차 이곳에선 눈이 먼 보르헤스를 추종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전사들처럼 나이테 속에 바벨의 도서관*을 새긴다   이곳 내설악엔 겨울이 일찍 도착해서 오래도록 질기다     *바벨의 도서관: 보르헤스가 기획하고 해제를 단 전 세계 작가 40인의 작품 모음집                 김지헌은 이방의 천재작가 보르헤스를 읽고, 필자는 김지헌을 읽는다. 아니다 필자는 김지헌의 눈으로 보르헤스를 읽는다. 아니다, 김지헌 시에 내포된 보르헤스적 요소를 읽는다. 아니다, 김지헌 시에 내포된 보르헤스적 요소를 제외시키고 읽는다. 아니다, 김지헌 표본을 도출해 내기 위해 보르헤스적 요소를 분석한다.   김지헌의「보르헤스를 읽는 밤」의 구조와, 김춘수의 의 구조를 비교해 보자. 김춘수는 감성에 호소한 서정시를 썼다. 김춘수의 시가 단일구조인 반면, 김지헌의 시는 다시점 구조다. 현재진행형-과거완료형-현재완료형-과거추적형-현재진행형 시간의 환타지를 시로 엮어낸다. 김춘수의 시는 샤갈의 그림 을 텍스트로 하였고, 김지헌은 ‘보르헤스’를 텍스트로 하였다. 정반합의 원리처럼. 시간의 환상을 좇던 보르헤스처럼. 위의 시 4연을 살펴보자.     아기 고라니 울음소리가   단단해진 어둠을 흔들어 깨뜨린다   북풍이 나무의 결기를 흔들어댄다   패잔병 같은 혹독한 겨울의 잔해들 속   바짝 말라 기억의 회로가 끊긴   겨울나무들조차 이곳에선   눈이 먼 보르헤스를 추종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전사들처럼   나이테 속에 바벨의 도서관*을 새긴다     ‘상식을 벗어나 정신의 오지탐험’을 추구한 ‘보르헤스’라는 이방의 시인을  초대하였다. 시와 철학과의 만남은, 종교와 철학의 만남처럼 이질적이면서 동질적 요소를 함의하고 있다. 철학이 과거에서 불어온 바람을 현재에 숙성시킨 것이라면, 시는 미래의 환타지한 상상력을 현재로 끌어내어 성숙시킨 맛깔스런 바람이다.   감정에서 시작하여 감성으로 마침표를 찍는 시의 원리. 감성에서 시작하여 감각적 미의식을 가진 이성으로 마침표를 찍는 시의 원리.   ‘아기 고라니 울음소리가 어둠을 흔들어 깨뜨리듯, 북풍이 나무의 결기를 흔들듯이(4연 1-3행)’에 잠들어 있는 보르헤스파의 지성을 흔들어 깨우고 싶었을까? 겨울밤, 먼 이국에서 후대의 시인은 홀로 과거의 천재시인에 대한 추모식을 거행하는 밤. 냉정과 열정 사이. 이성과 지성 사이. ‘내설악에 겨울바람’이 불어온다.  
53    나무의 장례 /권순자 댓글:  조회:796  추천:0  2018-12-24
나무의 장례   권순자     한 사내가 나무의 가슴을 스윽 벤다   나무의 이름과 나무의 얼굴과 나무의 이야기가 잘려나간다 춥고 더웠던 따스하고 정겨웠던 날들 나무의 몸 안에 갇혀있던 언어들이 우르르 톱밥으로 날았다 뚜벅뚜벅 걸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수천수만의 햇살을 타고 가볍게 날았다   아, 얼마나 기다려온 순간인가 매이고 매여서 놓여나지 못하던 몸이 한 번 발을 내디디니 천길만길 가볍게 날아갈 수 있는 것을   무거운 기억들이 허공으로 뜨고 몸속에 갇혀있던 말들이 우르르 쏟아져 사내가 내민 수화에 말문이 터져 사방이 소란스럽다   소리의 뼛가루는 몸이 가벼워 저들끼리 부딪치고 엉기며 구화를 나눈다 꾹꾹 눌러온 속을 풀어헤친다   물결치는 바람 폭설에 몸 귀퉁이 빌려주었다가 내려앉은 어깨는 이제 썩어서 쉽게 부서져 내렸다 너를 사랑한 푸른 마음은 붉은 죄가 되어 내 몸도 창백하게 병들어갔다   푸른 몸에 품었던 열망은 심장에 울음을 쟁이고 울음은 추워도 얼지 않는 눈물이 되었다   눈물도 이제는 환한 바람으로 발효되고 있는 중.       시가 작가의 무의식적 발현이라면 위의 시는 시의 기본에 충실하다. ‘1연 -나무의 가슴을 벤다, 2연- 나무의 이름과 나무의 얼굴과 나무의 이야기, 3연- 몸이 한번 발을 내 디디니, 4연- 기억, 몸, 말, 5연- 구화, 6연- 꾹꾹 눌러온 속, 7연- 심장, 울음, 눈물, 8연- 눈물의 발효’ 등 모든 연에서 의인화기법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의인화 기법은 시에 생동감을 주며,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느낌을 만든다. 는 한 개의 아름다운 의자가 되어, 또 누군가의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다.    위의 시, 1-8연의 등장인물과 시적 구조를 살펴보자.  1연- 시적화자와 나무를 베는 사내가 등장한다.  2연- 잘려나간 나무, 나무의 몸에 갇혀 있던 언어들이 자유를 찾는다.  3연- 움직이지 못하던 나무의 몸이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4연- 갇혀있던 나무의 말이 쏟아진다. 사내의 수화에 말문이 터진다.  5연- 소리의 원소들이 서로 구화를 나누며 속을 풀어낸다.  6연- 바람과 폭설에 주저앉고 썩은 나무의 몸.       내 몸이 병든 이유는 허락받지 않고 너를 사랑했기 때문  7연- 나무의 열망은 심장에 쌓여 울음과 눈물이 됨.  8연- 눈물의 발효.   ‘한 사내가 나무를 벤다’는 간단한 사실에서 출발한 시는, ‘나무의 자유로운 몸’과 ‘나무의 말’과 ‘소리의 원소들의 결합’까지 유추하여 입체적 시로 형상화하고 있다. 또한 바람과 폭설에 나뭇가지가 썩어나가도 어찌할 수 없는 나무의 운명적 비애를 ‘너를 사랑한 푸른 마음은 붉은 죄가 되어/ 내 몸도 창백하게 병들어갔다(6연 4-5행)’고 의인화하여 사랑의 원죄의식까지 깊이 도출해내고 있다.   그러나 6연은 나무의 관점에서 출발했던 ‘사물시’가 갑자기 인간화자인 ‘나’의 관점으로 급선회하여 당황스럽다. 작가의 무의식이 반영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나’와 ‘너’라는 직접적인 화자의 등장은 시 속에 갑자기 작가의 의식이 뛰쳐나와 생경하게 끼어든 느낌이다.   ‘푸른 하늘을 사랑한 푸른 마음은 죄가 되어/ 나무의 몸은 창백하게 병들어갔다’라고 수정해보면 어떨까? ‘사물이 말하게 하라’는 시적원리를 벗어나지 않고, 관점이 흩어지지 않는다. 관점과 시점이 혼동된 다선구조의 시는 분명한 의도성을 가지고 시도되지 않으면 해석에 혼란을 준다.   그러나 직접적인 ‘고백’이 독자에게 미치는 파급효과는 크다. 모든 시는 ‘그리움’과 ‘외로움’에서 출발한다. 시가 외롭다는 것은 시인이 외롭다는 증거다. 상상력의 확장을 보여주는 권순자 시인의 ‘나무’는 그 파장이 크다.
52    인생 / 한연순 댓글:  조회:847  추천:0  2018-12-24
인생                              한연순     식탁에 놓인 수저 한 벌이 외롭다 식탁에 놓인 수저 두 벌이 외롭다 식탁에 놓인 수저 세 벌이 외롭다 식탁에 놓인 수저 네 벌이 외롭다   도금을 할수록 외롭다   같은 수저 집에 있으나 다른 영혼을 꿈꾸며 마치 헤어져 바라보는 사랑의 아픔처럼   잠깐씩 식탁과 식기 세척 통에서 바쁘게 눈 맞추다가 강물처럼 멀어져간다         한연순의 시 「인생」은 확장된 사물시의 진수를 보여준다. 만약 제목을 「식탁풍경」이나 「밥상 앞에서」등으로 하였다면 제목은 안정적이지만, 해석의 범위가 한정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인생’이라는 광범위하고 관념적인 제목이 왜 관념적이지 않고 직접적이며 사실적일까? 그것은 시 내용이 철저하게 사물시 쓰기 방법론을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물이 말하고 사물이 생각하고 사물의 관점에서 재해석하였다. ‘외롭다’는 반복어도 당위성을 가지며 촌스럽지 않은 것은 ‘수저’라는 사물성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외롭다고 직설하면 시는 격이 떨어진다.   2연의 ‘외롭다’도 ‘도금을 할수록 외롭다’ 고 직관과 재해석을 하였다. ‘외롭다’는 말은 ‘참’이라는 명제로 반성적 국면과 숙연함을 준다. 수저 한 벌이 밥을 먹어도 외롭고, 두 벌이 모여 밥을 먹어도 외롭고, 세 벌이 모여 앉아 밥을 먹어도 외롭고, 네 사람이 마주보고 둘러앉아 다정하게 밥을 먹어도 외롭다.   ‘같은 집에 있으나 다른 영혼을 꿈꾸며 눈 맞추다가 멀어져 가는’ 현대의 가족군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외롭다’는 현대인의 표어다. 현대인의 슬로건이다. 시를 쓴 시인이나, 시를 읽는 독자나, 제왕도 신하도, 시장상인도 막노동꾼도, 술집여자도, 손님도 외롭지 않은 인간은 없기 때문에 ‘외롭다’는 호소력이 있으며 힘을 갖는다.   위의 시는 관념은 실패한다는 시적 진리를 거부한다. 과감하게 시도하여 정확하게 결과를 얻어냈다.  짧고 명쾌하고 간결하다. 그 파장이 크다. 한연순의 대표시로 손색이 없다. 예술은 방법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방법론을 만드는 것이다.    
51    하릴없이 / 이기와 댓글:  조회:878  추천:0  2018-12-24
하릴없이     이기와     오리를 데리고 개울가로 간다 오리를 안아보니 속이 빈 구름이다 구름이 허공에 잠기지 않는 건 마음이 없기 때문인가 무심(無心)한 오리가 개울물에 구름처럼 종이배처럼 떠 있다 오리의 유쾌한 목욕을 반나절 지켜보고 있는 나를 누군가 불쾌하게 지켜보며 혀를 찬다 그렇게 할 일이 없냐고, 생을 가벼이 살아서야 되냐고 방울달린 혀가 내 심심(深深)한 생각의 수면에 방울을 던져 소음의 파문을 일으킨다 오리와 내가 저속(低俗)에 빠지지 않고 물 위에 떠 있는 일 말고, 더 나은 비중(比重)의 일이란 어떤 것일까 아무리 무게를 실어 깊게 잠겨보려 해도 물은 공을 차듯 오리를 물 밖으로 튕겨낸다 물과 놀아도 물에 젖지 않는 오리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렇게 할 일이 없냐고, 생을 가벼이 살아서야 되냐고           위의 시는 ‘오리’를 바라보는 ‘나’와, 나를 바라보는 ‘그’라는 3단 구조를 가지고 있다. 내가 바라보는 ‘오리’에 대한 관점과 나를 바라보는 ‘그’의 관점은 정 반대이다. ‘오리가 물 위에 떠 있다’라는 단순한 사실을 오랫동안 시인은 관찰하고 있다. ‘무심(無心)한 오리가 개울물에 구름처럼 종이배처럼 떠 있다(4행)’라는 구절을 건지기 위하여. 이처럼 시는 ‘관찰’로부터 시작된다.   ‘오리의 유쾌한 목욕을 반나절 지켜보고 있는 나를/ 누군가 불쾌하게 지켜보며 혀를 찬다/ 그렇게 할 일이 없냐고, 생을 가벼이 살아서야 되냐고(5-7행) ‘오리와 내가 저속(低俗)에 빠지지 않고 물 위에 떠 있는 일/ 말고, 더 나은 비중(比重)의 일이란 어떤 것일까(10-11행)’     위의 두 시행들은 두 물음이 대조적으로 교차하고 있다. ‘관조’와 ‘소속감’이라는 말로 정의한다면 ‘도인’과 ‘생활인’의 견해차이다.   소설을 엉덩이로 쓴다는 말처럼 시는 눈으로 쓴다. 시각적인 그림이 그려지는 시가 잘 된 시라는 말은 ‘이미지’의 중요성과 함께 표현의 선명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시를 쓰는 일은「하릴없이」룸펜처럼 방바닥을 뒹굴어야 시상을 얻는다. 바쁘게 분초를 다투고 살면 돈은 벌지 몰라도 시와는 멀어진다. 시는 ‘여유’ 라는 ‘생각의 비’를 맞고 자라는 초목이다. 무심한듯 흘러가는 구름과 바람은 초목을 살리는 절대필요 조건이다.   그러므로 ‘하릴없이 무심함’이야 말로 시의 절대구성조건이다. 하늘을 바라보고, 사람과 숲과 들과 강을 무념무상으로 바라볼 때 직관적으로 슥 시가 들어선다. 물론 세밀화 기법의 시도 있다. 논리적이고 이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정밀화 기법의 시는 구성력은 탄탄하지만 확장의 폭이 적다. 그 이유는 작가가 이미 다 지정하고 말해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오리도 반나절 동안 물장구만 치고 논 것은 아닐 것. 몸을 물 밖으로 지탱하기 위하여 물 아래에서는 열심히 발을 움직이고, 생을 지탱하기 위해, 물속 먹이를 잡아먹기 위해, 몸을 거꾸로 쳐들고, 목을 길게 물속으로 집어넣고 수고하였을 것.   ‘아무리 무게를 실어 깊게 잠겨보려 해도/ 물은 공을 차듯 오리를 물 밖으로 튕겨낸다(12-13행)’처럼, 프로이드는 시인을 사회화에 실패한 집단으로 분류하였다. ‘시인’과 ‘시’는 무릇 세상에 속하지 못하고, 멀리 ‘지나가듯’ 생을 바라본다. ‘물’과 ‘오리’처럼 세속에 젖지 않고 고상하게 사는 것이 시다.   위의 시는 대학강사를 하다가 복지학으로 바꾸어 고아원 설립을 꿈꾸다가 화천에 를 설립하고 자연주의 음식을 손님들에게 극진히 대접하며 명상기법을 가르쳐 세상을 선하게 인도하려는 이기와 시인 자신의 일상 같다. 산수 좋은 강원도까지 떠밀려간 시인의 삶을 반영하는가? 세상에 속하되 세상에 속하지 않는 아름다운 삶을 본다.  
50    꽃밭에서 / 최은하 댓글:  조회:803  추천:0  2018-12-24
꽃밭에서     최은하     휘돌아온 바람으로 네 비로소 자리하여 하늘 가장 가차이 춤을 추는 몸짓으로 너는 꽃으로 피고 나는 별빛으로 남아 네 향기속에 내 이름 사르련다 우리 땅 한가운데 너 혼불의 새야             시간과 공간의 파노라마 그림 그리기 기법       최은하의「꽃밭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수놓는 그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다. 현실에서 자연상태의 ‘꽃밭’의 이미지는 ‘울긋불긋’ 여러 꽃들이 화려한 이미지를 그린다.   ‘꽃’에 대한 시는 수많은 시인들이 언급하여 더 쓸 것이 없을 것 같지만, 여전히 ‘꽃’은 시인들에게 사랑받는 제목이다. 최은하의 ‘꽃밭’의 특징은 ‘꽃’이라는 한정적인 작은 ‘사물 이미지’를 꽃밭 주변의 ‘바람, 하늘, 별, 향기, 새’ 등 넓은 자연의 이미지로 확장하고 있다. 또한 그 이미지에 ‘정’과 ‘동’이 뒤섞이며, 움직임을 주었다. ‘휘돌아온 바람(1연 1행), 춤을 추는 몸짓(1연 4행), 꽃으로 피고(2연 1행)’ 등에서 사물의 형태에 동작과 움직임을 주어 정적인 ‘꽃밭’에 생생한 숨을 불어넣어 시의 공간을 넓혀준다. 땅의 공간에 속한 꽃들에게 허공과 하늘과 바람을 이동시켜 시에 역동하는 힘을 준다. ‘이름을 사르련다(2연 4행)’와 ‘우리 땅 한가운데 너(3연 1행)’ 시행에서도 ‘이름’이라는 추상명사에 움직임을 주고, 사랑의 대상인 ‘너’를 ‘우리 땅 한가운데’로 이동함으로써, 대상을 우주적인 개념으로 확장하고 있다. 사물을 ‘공간이동’과 ‘시간이동’을 하여 흔들어주면 시가 답답하지 않고 시원하게 된다.   위의 시의 구조를 살펴보자.   1연은 대상의 사랑을 얻기까지의 어려움, 배경적 구조를 갖는다. 2연은 대상에게 사랑과 헌진을 다짐함, 행위를 동반한 사건의 구조, 3연은 구원의 대상으로 사랑을 승화함. 사랑의 구원관이다. 그러므로 위의 시는 서론, 본론, 결론, 3단구조, 또는 기․승․전․결 4단구조로 분류할 수 있다.(단 4단구조일 때는 1연을 1-2행과 3-4행으로 2분함) 3단 구조의 내용을 살펴보자.   1연은 사랑의 시련과 고통으로 ‘배경’ 부분으로 분류할 수 있다. 2연은 사랑의 실현이며 결합이며 행위다. ‘꽃’과 ‘별빛’으로 사랑의 대상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네 향기’속에 ‘내 이름’을 사르며 영원한 사랑의 헌신을 맹세하고 있다. 2연은 내용에서 구체적으로 인간의 ‘행위’가 들어갔다. 사람에게 ‘이름’은 그 사람의 실체이며, 영혼을 의미한다. 이름을 불사른다는 의미는 이름을 걸고 하는 맹세보다 크다. 자아를 ‘무’로 없애는 경지까지 각오한 ‘희생’이며 영구한 ‘결합’이다. 3연은 구원관이다. 삶의 과정에서 겪는 ‘희노애락’이 ‘혼불의 새’로 새로운 차원의 사랑으로 ‘승화’다. ‘솟대’의 ‘새’와 같이 ‘혼불의 새’는 샤머니즘에서 종교적 구원관을 의미한다. 또한 ‘불’의 이미지는 육체적인 욕망의 분출을 의미한다. 옛날 멜로영화에서 정사장면에는 자주 불꽃이 활활 타는 벽난로가 등장했다.       누구나 자신의 사랑은 우주적 느낌과 지혜자의 설법처럼 대단하고 상징적인 것. 다만 그 의미화 작업인 시로 표현하는 일은 현실적인 과업이다.   최은하의 「꽃밭에서」는 사랑의 대상인 ‘너’는 ‘꽃’과 ‘바람’과 ‘향기’와 ‘혼불의 새’로 치환하여 확장하였다. 확장된 공간이미지와 시간이미지는 많은 사건과 사랑의 비밀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그 사랑은 ‘치졸’하거나 ‘색’이 제거된 담백하고 서정적이며 지혜자의 사랑이다.   꽃으로 대표되는 이 시가 일제 강점기에 발표되었다면 대단한 애국시로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1연은 국가의 위기와 혼란, 애국 투사들의 독립운동 고난, 2연은 애국심의 발현과 행위, 다짐, 3연은 구국의 민족혼 등으로 분류되어 교과서에 실렸을 수도 있다. 80년대에 발표되었다면, 1연은 노동자와 민주투쟁을 하는 민중들의 애환과 고난, 2연은 신나를 몸에 끼얹고 ‘이름’과 ‘몸’과 ‘영혼’을 불사르며 죽음을 선택한 애국열사의 행위, 3연은 민족혼을 걸고 구국투쟁을 계속하자는 ‘메시지’로 읽힐 수 있다. 2000년대 현대 정보화시대는 ‘개인’을 중시한다. 개인이 국가며 왕이다. 2013년에는 시어와 단어 자체에만 집중하여 분석하는 표현주의 경향이 강하다. 기교에 치중하여 내용이 빈약하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위의 시가 여러 방향으로 해석이 가능하고 그 내용적 해석의 폭이 광대한 것은 좋은시라는 반증이다. 좋은 시는 어느 시대, 어느 때와 장소에도 진정성을 갖는다.
49    역학 / 신세훈 댓글:  조회:758  추천:0  2018-12-24
역학     신세훈       깊은 잠속에서 영혼의 아이는 깨어 울고 추운 울음은 여름꽃나뭇가지에 매달려 핀다 봄철로 돌아가는 나뭇잎의 예감, 여름내내 숨어 살던 눈송이가 떨어진다           신세훈의「역학」은 짧지만 넓고 긴 학문서 같은 광활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중국의 고전인 「주역」과 한국의 ‘성리학’, ‘음양이론’이 공존하며,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을 다루고 있다. 또한 율곡과 원효사상이 들어있다. 무위자연론과 서경덕이 성리학에서 주장하는 ‘인본주의’까지 내포하고 있다. 세상은 ‘음양’이 만나 반대적인 기운으로 버티고, 밀고 당기며 화합한다. 사랑도 그렇고 하늘과 땅의 이치도 그렇다. 모든 사물과 사물의 현상들은 유기체적인 관계성을 맺고 있다. ‘관계성’은 실존이며 사실이다. 불이 활활 타다 식으면서 그 열기가 공기 속으로 퍼져 공기를 따뜻하게 하고, 인간의 몸을 덥혀준다. 몸의 온기는 활동에너지가 된다. 다시 나무를 패고 아내와 아이들을 따뜻하게 한다. ‘나무가 불에 탄다’는 사실은 인간가족과 사회에 이로움을 주며 영향력을 갖는 이치다.   한국 사람들이 중국의 영향을 받아 그런지 모르지만, 우주를 정복한 지금도 ‘역학’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역학적 관계는 삶의 원동력이다. 짧은 단어와 시어들을 살펴보고 그 원동력의 중심을 들여다보자.   1-2행의 ‘깊은 잠’과 ‘깨어’남은 음양이론으로 인간생명의 반대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잠’과 ‘깨어남’은 철학과 종교의 기본 틀이다. 지혜자가 되거나 순교자가 되거나 ‘깨달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2행의 ‘영혼의 아이’라는 말을 주목하여 보자. ‘영혼’이 깨어나면 통찰력과 성찰력을 갖게 되며 ‘도’를 득도하거나 ‘성불’하거나 ‘신’이 된다. 영혼의 파장은 크다. 그런데 ‘영혼의 아이’는 깨달음의 ‘어린 알갱이’다. 순수한 ‘진리’의 ‘결정체’다. 다른 말로 하면 우주의 ‘근본’이며 ‘근원’이다. 가난한 영혼이 수천만 번 울어야 득도를 할 것이다. 득도의 완성을 ‘꽃을 피운다’로 해석과 상징을 하고 있다.   3-4행에서처럼, ‘추운 울음’의 강을 수만 번 건너야 ‘여름꽃나뭇가지’에 꽃이 필 터. 진리가 완성될 터.   5행, ‘봄철로 돌아가는 나뭇잎의 예감’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봄철은 절기의 시작이다. 시인은 웅변하지 않고 ‘순환의 원리’를 ‘나뭇잎의 예감’이라고 명징하게 표현하고 있다. ‘봄철로 돌아가는 나뭇잎의 예감’은 ‘죽었다가 살아나는’ 기독교적 ‘부활’이다. 또한 불교의 ‘윤회’다. ‘인연’이다. 또한 자연과학에서 말하는 ‘생성’과 ‘소멸론’이다.   7행의 ‘여름내내 숨어 살던’ 부분을 눈여겨 보자. 7행은 위의 시에서 가장 인간적인 부분이다. 그래서 가장 시적인 부분이다. 왜냐하면 ‘행위’를 넣었기 때문이다. ‘숨어살던’ 주체적 자아가 존재한다. 바로 ‘눈송이’다. 그런데 그 주체는 약하디 약한 존재다. 햇빛이 비치면 곧 사라질, ‘눈송이’다. 눈송이는 덧없고 허무한 존재로 주체성을 강력하게 주장하지도 못하고 곧 며칠 뒤 사라진다. 첩살이하는 시앗과 같이, 감옥에 갇혀 있는 도둑과 같이.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주인이 아니다. 자연과 우주 앞에서 무상한 존재인 인간의 모습이다. 노장사상이 녹아있다.   8행의 ‘눈송이가 떨어진다’는 표현이 압권이다. 만약 ‘물이나 낙엽이 떨어진다’라고 하면 어떨까? 꿈이 없다. 이 시가 형이상학적 수준을 끝까지 유지하는 이유다.   눈은 희고 깨끗하고, 세상 더러운 것을 모두 덮는다. 또한 별빛처럼 자체발광을 하며 빛을 낸다. ‘눈송이’는 봄, 여름, 가을 동안 숨어있다가 ‘겨울’에 다시 ‘살아났다’가 다시 떨어진다.       만물생성의 원리를 짧게 압축하여 이보다 더 절실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음양이론과 철학, 종교론을 시의 배경으로 깔아놓고, 시에 행위를 집어넣었다. 형이상학인 ‘이’를 배경으로 깔고, 형이하학인 ‘기’를 넣어줌으로써 화룡점정으로 그림이 살아난다.   의성이 고향인 신세훈은 안동 유학파의 피를 직간접적으로 수혈하였을 것이다. 그의 시에서 보여주는 ‘역학’적 깊이와 넓이가, 만물의 기운 속에서 꽃으로 피어난다.  
48    무슨 색깔이 나올까 / 조병무 댓글:  조회:741  추천:0  2018-12-24
무슨 색깔이 나올까 조병무 저 바람을 손아귀에 쥐고 꼬옥 짜면 무슨 색깔이 나올까 저 하늘을 양손에 쥐고 더욱 꼬옥 짜면 무슨 색깔이 나올까 그러나 그러나 저 사람의 말씀을 마음으로 눌러 짜면 또 무슨 색깔이 나올까 사랑하는 사람끼리 그 사랑을 사랑으로 짜면 정말 무슨 색깔이 나올까   조병무의 시 「무슨 색깔이 나올까」는 1-4연을 똑같은 무게감으로 병렬기법으로 질문을 던진다. 을 ‘꼬옥 짜면/ 무슨 색깔이 나올까’라는 짧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나 그 질문은 유치하지 않다. 간단하고 단순한 물음이 근원적 의미의 질량을 가지고 무겁게 진정성을 추구하고 있다.   1-2연의 질문은 ‘자연의 섭리’에 대한 물음이다. ‘바람’은 변화와 성장을 준다. ‘하늘’은 사색과 우주적 꿈을 심어준다. 남여상렬지사를 바람에 비유하는 것을 보면 바람과 인간의 삶의 근접성을 알 수 있다. 바람은 반란이지만 소통이다. 바람이 없다면 열매를 얻을 수 없다. 바람은 답답한 일상에 주는 활력소이다.    하늘을 바라보고 한번이라도 감격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거대한 그림을 끊임없이 그리고 있는 하늘은, 웅변하지 않고 그 자체로 예술작품이다. 우주의 섭리가 하늘에 있다는 것을 현대과학이 밝히고 있다.   3-4연의 질문은 ‘말씀’과 ‘사랑’으로 ‘인간의 섭리’를 다루고 있다. ‘인간관계의 문제제기’라고 본다. ‘말씀’으로 빚어지는 ‘사랑’의 배반과 의문에 대하여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사실 그 ‘말씀’과 ‘사랑’의 색깔이 모두 밝혀진다면 ‘종족 번식 의식’이 지장을 받을 것이다. 인류의 증식에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조병무의 시에서 굳이 질문만 던지고 대답이 없다. 이 시가 확장된 ‘의미화’와 시적 매력을 갖는 것은 선문답처럼 ‘질문 기법’으로 답을 지웠기 때문이다. 시인이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을 하는 많은 시들은 싱겁고 심심하다. 기교적으로 1-4연에서 보여주는 똑같은 질문이 무게를 갖는 것은 조병무 시인의 역량이다. 처럼, 미완의 아름다움이다.   
47    마지막 본 얼굴 /함동선 댓글:  조회:780  추천:0  2018-12-24
마지막 본 얼굴   함동선   물방앗간 이엉 사이로 이가 시려 오는 새벽 달빛으로 피난길 떠나는 막동이 허리춤에 부적을 꿰매시고 하시던 어머니 말씀이 어떻게나 자세하시던지 마치 한 장의 지도를 들여다보는 듯했다 한 시오리 길이나 산과 들판과 또랑물따라 단숨에 나룻터까지 달렸는데 달은 산과 들판을 지나 또랑물에 먼저 와 있었다 어른이 된 후 그 부적은 땀에 젖어 다 떨어져 나갔지만 그 자리엔 어머니의 얼굴이 늘 보여 두 손으로 뜨면 달이 먼저 잘 있느냐 손짓을 한다         황해도 연백 출생인 함동선 시인은, 월남한 후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를 써 왔다. 『꽃이 있던 자리』『눈 감으면 보이는 어머니』『고향은 멀리서 생각하는 것』『짧은 세월 긴 이야기』등 그의 여러 편의 시집에는 ‘어머니’와 ‘그리운 고향’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담고 있다. 분단의 서러움을 몸으로 겪은 그의 시들은 진정성과 한이 서려 있다.   함동선의 시의 특징은 ‘분단의 아픔을 객관화된 서정성으로 표현하여 파장과 울림이 크다. 위의 시도 함동선 시의 특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 본 얼굴」은 제목이 객관화되어 있다. 1-3연 ‘물방앗간 이엉 사이로/ 이가 시려 오는/ 새벽 달빛’은 황해도 연백의 차가운 날씨와 ‘새벽 달빛’을 치환하여 그림처럼 서늘한 풍경을 그린다. 또한 화자의 마음도 그와 같이 서늘함이 시를 읽는 이에게 전달된다. ‘이가 시려 오는 새벽 달빛’은 거짓이지만, 정서는 참이기 때문에 객관화가 성립된다.   「마지막 본 얼굴」은 서사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위의 시를 4연으로 구분하여 보았다.  으로 내용중심으로 나누어 보자. 1연은 고아하고 조용하고 차가운 심미적 이미지로 화자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2연은 급박한 사건들이 위기감을 조성한다. 3연은 위기를 넘긴 뒤의 고단한 심경을 진정성 있게 그리고 있다. 4연은 현재의 그리움을 담고 있다. 어머니가 살아 있다면 평생 막내아들의 안위를 걱정했을 것이다. 그 말은 “잘 있느냐” 4음절로 축약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아들이 어머니에게 묻고 싶은 말도 같을 것이다. 50년 세월 동안 모자가 함께 살았다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질문과 대답이 있었을 것인가? 그 짧은 물음 밖에 할 수 없는 절대상황의 진정성이 아프게 전달된다.   아직도 분단의 아픔은 계속되고, 서러움을 가슴에 묻고 사는 이들의 한이 달빛을 차갑게 식히고 있다. 함동선의 시련은 개인적으로 안타깝고 아픈 체험이지만, 그 아픔이 한국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리움과 고독은 시의 화두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절절한 화두는 ‘이별’이다. 이 시는 머리로 쓴 시가 아니라 몸으로 쓴 시다. 함동선의 시는 분단의 아픔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분류되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다.  
46    가을의 노래 / 이수화 댓글:  조회:853  추천:0  2018-12-24
가을의 노래   이수화        잎이 진다. 이 가을에는 오래 살아온 생가(生家) 아궁이에 낙엽을 지피고 축복(祝福)처럼 하루를 살고 싶다.    지금은 여름내 풀을 뜯던 일소들도 시나브로 살이 찌는 아롱사태와 그리고 깊은 산곡(山谷)에 피는 도라지꽃 그 고요한 목숨의 한때를 생각하기 위하여 나의 사유(思惟)는 이 가을에 수정알처럼 빛나야겠다.    잎이 진다. 아침을 나서는 생활의 문턱에도 이름 모를 일년생(一年生) 초본식물(草本植物)이 잎을 떨구고, 가족들의 정갈한 내의(內衣)는 초록(草綠)의 스킨다브스 잎보다도 두터워졌다.    지금은 한갖 사라진 영화(濚華)로움도 언제나 오뇌(懊惱)하던 젊음의 밤들도, 그리운 추억처럼 소중한 때이려니 잎이 지는 산자락 나무숲에 흙이 되어서, 나는 은총(恩寵)의 따사로운 섭리(攝理)이고 싶다.    잎이 진다. 이 가을에는 우리가 살아갈 누리에 낙엽이 져도 나의 기도(祈禱)는 낙엽과 더불어 흙이 되리니- 아아. 지닌 것이 없어도 충만(充滿)한 가슴이여. 이 가을 오래 살아온 생가(生家)아궁이에 낙엽을 지피고, 축복(祝福)처럼 하루를 살고 싶다.          시인이라면 누구나 생애 단 한편의 대표작을 남기고 싶어 한다. 이수화의「가을의 노래」는 프랑스 시인 폴 베를렌의 감상주의적인「가을날」이나, 릴케의 기도 시「가을날」과는 다른 품격과 내용, 철학, 시적 표현 방법으로 변별력을 갖는다.   이수화의 「가을날」은 위의 시들보다 날선 감각과 표현이 있다. 또한 반성적 철학과 지혜를 갈구하는 시인의 진정성이 선명하게 살아있다. 1-5연에서 보여주는 아래 구절들은 ‘가을 이미지’를 ‘철학’과 ‘사유’로 승화시켰다.   1연- ‘이 가을에는… 축복(祝福)처럼 하루를 살고 싶다’   2연- ‘나의 사유(思惟)는 이 가을에 수정알처럼 빛나야겠다’   4연- ‘잎이 지는 산자락 나무숲에 흙이 되어서, 나는 은총(恩寵)의 따사로운 섭리(攝理)이고 싶다’   5연- ‘나의 기도(祈禱)는… 축복(祝福)처럼 하루를 살고 싶다’        아래에 제시한 2연과 3연의 감각적 미의식과 날카로운 직관적 표현은 압권이다.   2연- ‘지금은 여름내 풀을 뜯던 일소들도 시나브로 살이 찌는 아롱사태와 그리고 깊은 산곡(山谷)에 피는 도라지꽃 그 고요한 목숨의 한때를 생각하기 위하여’   3연- ‘가족들의 정갈한 내의(內衣)는 초록(草綠)의 스킨다브스 잎보다도 두터워졌다’     아래에 제시한 4연과 5연은 자연의 섭리에 무조건 순응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갈등과 항거를 통해 배운 순리를 깨달은 자의 지혜가 번뜩인다. 가난도 아름다운 비움의 철학으로 빛난다.   4연- ‘지금은 한갖 사라진 영화(濚華)로움도 언제나 오뇌(懊惱)하던 젊음의 밤들도, 그리운 추억처럼 소중한 때이려니 잎이 지는 산자락 나무숲에 흙이 되어서’   5연- ‘지닌 것이 없어도 충만(充滿)한 가슴이여’     이수화의 「가을날」은 시인의 하늘로 높게 솟은 아름다운 ‘백발’처럼, 그의 내면이 범상치 않은 ‘개성’과 칼칼한 ‘직관’을 그의 ‘시의 눈’에서도 볼 수 있다. ‘시는 그 사람이다’라는 등식을 확인한다.   천상병의 「소풍」이나, 릴케의 「가을날」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쉽고 간절한 진정성과 삶의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김춘수의「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도 ‘잉걸불’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여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수화의「가을날」도 매력적인 ‘표현주의’ 적 기법이 맛깔스럽다.
45    쉿 /최지하 댓글:  조회:616  추천:0  2018-12-24
쉿   대본: 최지하   M: 달빛이 차구나 D: 뿌리를 내린다는 것이 불가능 할까요 선인장 처럼요 M: 머리를 빗자 D: 물을 마셔야겠어요, 끈적끈적하게 내 몸을 흐르는 외로움을 씻어내야죠 M: 너를 거치지 않은 그리움이 어디 있느냐 D: 그가 뜨거운 그림자에 젖어 달에 잠긴 모래 위를 걷고 있어요 M: 사막에 아마란스가 피었단다 D: 그의 발바닥에서 방황하는 사막의 흔적을 지워줘야겠어요 M: 여러 개의 슬픔중 하나쯤은 떠나보내는 기쁨으로 채워보아라 D: 난 그의 안에서 잉태되었어요 M: 핑계 삼아 그 사막으로 너의 귀를 보내거라 D: 그의 꿈을 다 먹어버려 나를 몰라볼지도 몰라요 M: 너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어둠이냐, 그림자이냐, 생각이냐 D: 개구리비가 올까요 그러고 나면 한 쪽 세상은 텅 비워질까요 M: 생각하는 것과 느끼는 것은 천국과 지옥의 차이와 같단다 D: 자꾸만 내 생각과 눈이 마주쳐요 M: 길목을 돌아갈 때 어느 쪽으로 가면 바다 일지 생각해 보았니 D: 내 발은 늘 붉었죠 M: 돌아갈 땐 늘 생각은 지난 일이 되어 사라진다 D: 누구를 탓하지는 않아요 M: 돌아올 땐 누구나 길에서 묻은 것들은 버리고 돌아온다. 그래도 길은 흩어지지 않는다 D: 여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로 가득해요 M: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며 어둠을 손질하며 내일을 기다리지 마라 D: 계절이 지날 때마다 헛되게 버린 구두가 너무 많아요 M: 너의 발자국은 아직 너와 이별하지 않았어, 괜찮다 D: 그래요, 난 자주 아팠지만 절망이든 기대감이든 매끈한 것은 지루했어요   D: 저 바람에 모래가 들 것 같아요 문을 닫아야할지 결정해야겠어요 M: 곧 아침이 올 터인데 M,D: 수직으로 출렁이는 어둠, 부케,        최지하의 시는 엄마와 딸의 대사로만 이루어지는 2인 시극이다. 낯설게한 언어들이 파노라마처럼 곡선과 직선, 포물선을 그리며 무수히 흩어진다. 초현실주의 그림처럼. 이미지의 덩어리들이 만나고, 뭉치고, 헤어진다. 마치 일상의 연인들의 이별처럼. 오래전 떠난 정서적으로 엄마를 떠난, 딸의 독백처럼. ‘Image Show’ 를 한다. 상상력의 공간이 확대될수록 갈등이 증폭된다. 그러나 엉뚱한 이야기 전개와 작위적인 단어연결과 이미지 충돌을 한 행에서 다 보여주고 있지만 내용이 허황되거나 산만하지 않다.  그 이유는 ‘상상력의 객관화’를 시에서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질서정연하게 ‘질문’과 ‘대답’이 교차적으로 오가기 때문에 독자들은 시의 선을 따라 ‘의식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위의 시는 상담심리치료에서 문학치료-‘시 치료’의 한 패턴으로 인지할 수 있 수 있다. 모녀의 갈등상황을 객관적으로 제시하는 방법은, 심리치료에서 ‘역할 바꾸기’ 상담치료 기법과 그 맥락이 같다. 극은 갈등에서 시작된다. 그 갈등을 증폭시켜 ‘상황극’으로 ‘보여주기’ 한다.   1연 첫행에서 ‘M: 달빛이 차구나’라고 엄마가 먼저 말을 건다. 무차별적 대화를 ‘핑퐁’으로 주고받다가, 2연에서는 상황을 정리한다.     D: 저 바람에 모래가 들 것 같아요 문을 닫아야할지 결정해야겠어요   M: 곧 아침이 올 터인데   M,D: 수직으로 출렁이는 어둠, 부케,     딸은 엄마의 ‘수용’할지 망설이고 있다. 마음의 문을 열어놓은 상태다. 곧 엄마를 수용할 것이다. 엄마도 ‘곧 아침이 올 터인데’ 라며 희망메시지를 전한다.   2연 마지막 행에서는 ‘M,D: 수직으로 출렁이는 어둠, 부케,’ 상황종료다.    ‘딸’과 ‘엄마’가 동시에 현재의 상황을 ‘어둠’으로 인식한다. 상담심리치료에서 ‘직면화’라고 하는데 ‘어둠’의 현재를 ‘인식’하고 ‘직면’한다는 것은 ‘문제’를 인정한다는 거다. 문제를 인정하고 ‘치료’단계로 진입한다.   ‘부케’는 자기 구원의 꽃이다. 부케는 한 송이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십 개의 꽃을 목을 잘라서 철사를 끼우고, 리본과 잎사귀, 구슬로 장식한다. ‘상처’와 ‘아픔’이라는 이름의 ‘꽃’에게 찬란한 ‘박수’로 치장하는 것이다. 상담심리치료의 완성, 치유의 단계다. 상처도 꽃이다. 시의 영원한 주제다.   갈등의 구조, 엇갈리던 ‘질문’과 ‘대답’이 비로소 해결이라는 국면을 맞이한다. 문학치료는 라깡의 ‘자아의 타자화’ 이론과 같다. 자아를 내려놓고, 냉철하게 분석하고 바라보는 것이다. 시인은 3일 동안 거울을 바라보는 자라고 하였다. 냉정하게 자신을 바라볼 때 객관화된 시가 써진다. 그 사건 속에 풍덩 잠겨서 허우적거린다면 ‘토로시’나 ‘서정시’를 쓰게 된다. 아직 ‘감정몰입’ 중이기 때문이다. 또한 시에서 ‘설명’을 완벽하게 제거한다면 ‘토막난 단어들의 연결’로 귀결될 것이다. ‘면서, 며, 고서, 고, 아서, 아’ 설명형 어미들은 시를 설명적 패턴으로 만든다.     위 시에는 순례자의 기도 같은 ‘명상시’의 요소가 있다. 명상시의 조건은 ‘본질과의 만남’ 이다. 시에서 금기어인 ‘외로움, 방황, 천국, 내일, 이별’등 관념어가 자주 등장하여도 구태의연하지 않은 것은, 언어충돌 효과로 문장을 비틀어놓았기 때문이다. 또한 지구상에서 가장 밀접한 관계지만, 가장 갈등의 관계인 ‘딸’과 ‘엄마’를 대조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둘의 관계는 영원한 숙제다.     최지하의 극시의 매력은 엄마와 딸의 ‘진실대담’이다. 일상적인 언어를 걸러내고 영혼의 대화를 한다면 아마도 저런 대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44    입맞춤 / 권 혁 모 댓글:  조회:852  추천:0  2018-12-24
입맞춤                 권 혁 모   삐치고 치켜 올린 선과 선이 다시 살아 연초록 혹은 연분홍 나래가 되기까지 허공을 마냥 날아서 너를 만나기까지.   진정 황홀 앞에선 천지도 눈을 감네 사랑은 길고 긴 날을 상형문자로 건너와 저것들 몸부림 끝에 새 별 하나 안더니.   고단한 삶이었네 당겨놓은 힘줄이 빛의 충돌이 일어나 보석으로 눈뜨는 밤 이제야 다 버렸으니 나와 단 둘이구나.           ‘입맞춤’이나 ‘포옹’이라는 제목을 읽으면, 조각상이 생각난다. 워낙 로댕의 조각작품이 유명하기도 하다. 시에서 실제적인 상상력의 그림이 그려지면 객관화되었다고 믿어도 된다.   권혁모의 입맞춤은 상상력과 회화적 조각적 형상화가 만나서 환타지 현상을 재현하고 있다. 시각, 촉각적인 느낌과 재해석이 달콤하고 쌉싸름하고 뜨겁다. 화가나 조각가의 미술작품을 앞에 놓고 시를 쓰면 자주 이런 환타지한 시가 탄생한다. 시가 미술의 시녀라고 누군가 말한 것은 옳은 말이다. 언어는 가장 추상적인 상상력의 과학이다. 미술은 직관과 재해석이다. 상상력에 직관과 재해석이 들어가면 사유의 힘이 커진다.   ‘삐치고 치켜 올린 선과 선이 다시 살아’(1연 1행) 부분에서는 고궁의 높은 기와지붕, 처마와 처마가 만나는 날렵한 선이 비상하는 이미지를 준다. 2행의 ‘연초록 혹은 연분홍 나래가 되기까지’부분은 입맞춤이라는 달콤한 행위에 공상과 상상이 가미되어 ‘환타지’한 느낌을 살렸다. 그러나 객관화된 문장은 아니고 공상의 범주에 든다. 3행의‘허공을 마냥 날아서 너를 만나기까지.’ 부분에서는 이 시를 읽는 사람은 누구나 가슴이 두근두근 마음속에 숨겨둔 ‘첫사랑’이든, ‘불륜’의 대상이든 실제적인 ‘사람’이 마음속으로 다가온다.   이 시는 1연에서 이미 공상과 상상의 모든 요소를 성공시키고 있다. 2연은 ‘상형문자- 몸부림’이라는 등식이, 곧 혀들의 몸부림을 형상화시킨 시의 백미다. 3연의‘당겨 놓은 힘줄, 빛의 충돌, 보석’이라는 중심어는 이 시를 보석처럼 반짝이게 한다. 3연의‘ 이제야 다 버렸으니 나와 단 둘이구나.’부분은 영화의 대단원 부분이다. 피어리어다. 3연 3행의‘놓음’과 ‘버림’은 관념을 말로 하지 않고 ‘그림으로 그린’ 관념이다.    이 시는 시를 배우는 이들에게 교과서로 권할 만큼 시에서 필요한 감각적 미의식과 형상화기법, 이미지, 공상과 상상력의 범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있다. 시인들이 시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대부분 객관화의 문제다. 그 이유는 ‘사물’에서 출발하지 않고 ‘상상’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시는 상상력의 ‘그림 그리기’작업이지만 그 상상력은 사물성에 근거하여 출발할 때만 객관화가 쉽다. ‘환타지’도 ‘귀신이야기’도 사물에서 출발한다. ‘별’이라는 존재가 있어야 환타지 영화가 탄생하는 원리다.    권혁모의 시는 첫사랑 첫입맞춤처럼, 달콤하고 맑고, 새콤하고, 뜨겁다. 원초적 DNA를 다룬 성애 시는 대부분 성공적 결과물을 낳는다. 그 이유는 시인이 밀접하게 접근하고 있는, 생활 속에서,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자신의 몸을 사용한 현실적인 재료이기 때문이다. 권혁모는 시에서 요구하는 직접적이고 절실하며 뜨거운 요소를 잘 알고 있다. 그것을 부드럽게 포장하고 냉정하게 재단하는 객관화 기법까지 완벽하다.  
43    새벽강 / 강정화 댓글:  조회:782  추천:0  2018-12-24
새벽강      강정화        어둠에 단잠 못 이룬 밤    벅찬 삶의 무게에 짓눌려    눕지 않은 그림자로 가부좌 틀고    아득한 외로움에 면벽하다    앉은자리 저편으로 두런 두런    훌쩍거리는 물의 혼령 만났네        길 찾는 머나먼 행군으로    잠들지 못한 물들의 속앓이    낮게 몸 낮추어도 기죽지 않고    입다문 침묵으로 속내 나누면    느리지만 서두르는 법 모른 채        분노에도 일어서지 않는 낮은 자세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둠속에서도 돌고 돌아    꺾이어 상처 나도 혼자 이겨내며    여명의 새날 기다리며    차디찬 이슬로 이마 훤히 씻은    의연하게 흘러온 장한 물결 맞이할 때    서둘러 달려나가    장한 모습 버선발로 맞이하리라.              강정화의 「새벽강」은 시인이 시와 접신하는 과정을 거짓없이 보여준다. 1연은 이라는 시가 자연 발아하여 터지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2연 3-5행에서는 시인의 기질을 본다. ‘낮게 몸 낮추어도 기죽지 않고/ 입다문 침묵으로 속내 나누면/ 느리지만 서두르는 법 모른 채’ 지치지 않고 시에 탐닉하는 시인의 모습을 본다.     3연은 1-6연을 주목하여 보자. ‘분노에도 일어서지 않는 낮은 자세/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둠속에서도 돌고 돌아/ 꺾이어 상처 나도 혼자 이겨내며/ 여명의 새날 기다리며/ 차디찬 이슬로 이마 훤히 씻은/ 의연하게 흘러온 장한 물결’ 부분에서는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시인이 겪는 심리상태와 시작과정의 어려움이 절절하다.         시인의 나라는 불면의 밤을 지나, 외로움의 새벽강을 건너, 홀로 도착하는 그리움의 숲이다. 어두운 밤바람이 스산하게 분다.   숲에서 여우가 금방 튀어나올 것 같은 밤. 별빛 한 줌 나뭇가지에 걸려 그림자 얼비춘다.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에 잠을 못 이루는 밤에, 시가 첨벙첨벙 강물을 건너온다. 비로소 시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밥보다 외로움이 맛있어야 시인이다.
42    별 닦는 나무 / 공광규 댓글:  조회:783  추천:0  2018-12-24
별 닦는 나무     공광규     은행나무를 별 닦는 나무라고 부르면 안 되나 비와 바람과 햇빛을 열심히 별을 닦던 나무 가을이 되면 별가루가 묻어 순금빛 나무   나는 별 닦는 나무가 되고 싶은데 당신이라는 별을 열심히 닦다가 당신에게 순금물이 들어 아름답게 지고 싶은데   이런 나를 별 닦는 나무라고 불러주면 안되나 당신이라는 별을 열심히 닦다가 당신에게 순금물이 들어 삶이 지고 싶은 나를               시인이 원하는 시의 정점은 어디인가? 작품이 대중에게 사랑받고, 시인에게 인정받고, 평론가에게 선택되는 것. 또한 문예사조와 역사에 거론되는 것. 작가 사 후 50년 백년이 지나도 석박사 논문으로 조명하고 연구되어지는 것. 쉬운 시, 감각적 미의식이 있는 시, 진정성이 있어 대중들이 유치하지 않은 시. 무기교의 기교, 은밀하게 기교를 숨긴 작품성 있는 시를 지향할 것이다.   어제 새벽 4시 20분쯤 잠이 깨어 창밖 하늘을 바라보았다. 무수히 많은 별가지들이 휘늘어져, 나의 방,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지는 별 사이로, 밤벚꽃처럼 하얗게 피어나는 별꽃을 보았다. 앞집 빌라, 수능을 코앞에 둔 입시생도 잠든 시간. 모든 사물이 숨죽인 공간, 홀로 별꽃 피어 빛나고 있었다. 빛이 어둠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어둠이 빛을 밝히는 걸 목격했다.   공광규 시인의 『별 닦는 나무』는 대중이 좋아할 여러 요소를 가지고 있다. 우선 대중이 좋아하는 ‘사랑 시’라는 거다. 쉽다. 진정성이 있다. 시인이 읽어도 유치하거나 작품성이 떨어지지 않는다. 석박사 논문으로 연구될 새로운 구조와, 문예사조를 바꿀 표현 기교를 가지고 있는 반전 있는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대중의 지지와 인기를 얻을 작품이다.      이시의 백미는 1연의 ‘은행나무를 별 닦는 나무라고 부르면 안 되나’ 부분이다. 은행나무와 나를 치환하고 있다. 이 시의 또 다른 매력은 ‘진다’라는 주제어다.    ― ‘뜨는 별’은 당신에게 양보하고, 나는 ‘지는 나뭇잎’을 택하겠다는      공광규의『별 닦는 나무』를 여러 번 다시 읽는다. 순수하다. 여과된 사랑의 감정이 느껴진다. “이 사람, 사랑을 하나?” 작품과 작가가 오버랩된다. 그 대상이 아내라면 더욱 좋겠지만, 남의 아내라고 하여도 불륜이라는 이름으로 비난할 수 없다. 그 사랑은 별처럼 서로를 빛낼 것이므로. 흔들리지 않는 은행나무가 되어, 큰나무가 되어 별처럼 빛나는 내 여자의 길을 닦아 주고 싶은 것. 더 반짝거리게 하고 싶은 것. 질투하지 않는 사랑.   용문사 은행나무를 인터넷으로 검색만 하고, 필자는 졸시『보들레르와 은행나무』를 썼다. 몇 년 뒤, 가을에 용문사를 찾아 대웅전 앞 천년 은행나무를 찾아갔다. 시에게 미안해서다. 하늘을 찌르는 은행나무는 감탄과 감동이라는 말로 부족했다.   신성을 느꼈다. 그 은행나무를 먼저 만났다면, 다른 시를 썼을 것이다. 그 시는 매우 짧을 것임. 서양풍의 세련되고 감각적인 긴 ‘고백록’이 아니다. 천년 동안 삭제한 나뭇가지. 지우고 지운 몸, 은행나무 그 여백의 지혜를 배울 것.   공광규 시인의 ‘별 닦는 나무’를 용문사 은행나무 ‘답사기’, 또는 ‘감상문’ 이라 이름하여 본다. 조지훈과 박목월처럼 화답가를 쓰고 싶은 욕구. 소곤소곤 대화 같다. 밤에 쓴 부치지 않은 편지. 답장을 하고 싶은― 짧고 아름다운 시, 결코 쉽지 않은 언어장치. 진정성이 주는 멋스러움.  
41    인간학 개론 4. -말 ․ 말 ․ 말 /이오장 댓글:  조회:826  추천:0  2018-12-24
인간학 개론 4. -말 ․ 말 ․ 말   이오장   뛰어가며 한 말 빠르다고 진실은 아니다 바람탄 말 물에 젖기 쉽고 입으로 물어온 말 뱉는 순간 부서진다 똑같이 한 말도 속삭였다고 가깝지 않고 강 건너 온 말 귓가에 잡으려면 많은 메아리를 재워야 한다 마주보고 한 말 눈으로 전했다고 색깔이 없을까 믿었다고 하는 대답 눈웃음이다 산 하나 넘을 때마다 울림으로 퍼지다가도 합쳐지질 못하고 휘돌아도 사그라지지 않고 퍼져가는 말. 말. 말 콩 심은데 콩, 팥 심은데 팥 혼자서 한 말도 굴러가면서 번져 말 심은 곳에 허물 돋는다       시인은 ‘말’로 ‘시’를 쓴다. 말을 못하는 갓난아기가 하는 ‘말’은 생존에 필요한 ‘요구’와 ‘요청’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어른들의 ‘말’은 생존의 요구보다는 ‘설득’과 ‘변명’과 ‘거래’의 수단으로 발전하였다. ‘시인’의 ‘말’인 '시'는 더욱 발전하고 고품격화하여, ‘비유’와 ‘이미지’로 진화하였다. ‘다의성’과 ‘모호성’으로 점철된 시인의 말은 ‘사실’과 ‘사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우화적이고 함축된 ‘시’의 ‘언어유희’는 몇 껍질 ‘의미 벗기기’를 하여 수수께끼처럼 ‘말’을 해독해야 한다.   소쉬르는 말을 ‘기의’와 ‘기표’로 분리하여 정의하였다. 다른 말로 하면 ‘사물’에 옷을 입힌 것을 ‘이름’이라고 본 것이다. ‘이름’은 단지 ‘기호’라고 보았다.  ‘사물에 옷을 입혀 관념의 옷을 벗겨’ 감각적 미의식을 살려야 좋은 시로 인식된다. 대중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관념시’를 좋아하지만, 시인에게 관념은 독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성경구절은, 태초에 ‘사물’이 먼저 존재하고 이름이 붙여졌다는 뜻일까? 구약성서 에는 하나님은 사물을 짓고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이미지의 시대인 현대에는 단어는 이미지를 대신한다. ‘강, 바람, 산, 꽃, 구름’이라는 단어를 나열하면 사람들은 기분이 좋아진다. 계곡이나 강으로 여행을 가고 싶어진다. ‘바다, 파도, 갈매기, 돛단배’라는 단어가 나열되면 여름바캉스를 떠나고 싶어진다. 언어는 이제 ‘사물+느낌+행동욕구’까지 함의하고 있다.   한국어, 프랑스어, 일본어, 중국어가 지시하는 ‘사랑’이라는 말은 한 ‘사실’을 가리킨다. 그러나 ‘사랑해’ ‘I LOVE YOU’ ‘愛’ ‘쥬뎀므’ 는 한 단어를 지칭하는 말이지만 느낌이 다르다.   ‘사랑해’라는 말도 ‘사랑해’라고 아기가 엄마에게 말하면 애교로 인식된다. 여고생 딸이 아빠에게 말하면 ‘용돈’을 더 타내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청년이 젊은 처녀에게 말하면 그 말은 ‘키스해도 돼?’라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다. 노인이 노파에게 ‘사랑해요’라고 말하면 ‘맛있는 밥을 줘서 고마워요’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   한국말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다. 말의 다의적인 측면을 잘 나타난 말이다. ‘사물’ 앞에 서서 ‘이것’이라고 지시하며 가리켜도, 각각의 사람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오장의 시에서 ‘말 ․ 말 ․ 말’은 ‘전달’과 ‘해석’의 오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작가의 해석적 시각으로 말을 분류하였다. 말은 사람의 수만큼, 아니 각 사람의 생각의 갈래만큼 여러 가지로 저마다 해석이 다를 수 있다. 위의 시에서도 ‘뛰어가며 한 말, 바람탄 말, 입으로 물어온 말, 뱉는 말, 똑같이 한 말, 강 건너 온 말, 메아리, 마주보고 한 말, 눈으로 한 말, 믿는다는 말, 눈웃음 말, 퍼져가는 말, 혼자서 한 말, 등 여러 말의 실례가 제시되고 있다.   위의 시에서는 마지막 행에서 ‘말 심은 곳에 허물 돋는다’는 부정적 결론을 내리고 있다. 말에 대한 여러 정황을 제시하고 있지만, 결론은 간략하다.   말의 종류는 ‘색깔’과 ‘맛’의 종류보다도 복잡하고 많은 것 같다. 위의 시를 발상의 전환을 하여 보면 어떨까? 혜안을 지닌 노시인의 눈이 아닌, 사춘기 소년의 시안으로 ‘말’에 대한 시를 썼다면 어떤 내용이 될까? 상상만으로도 재미있다. 소년이 마음을 교환한 사랑하는 소녀에게 보내는 시라고 상상해 보라. 소년에게 ‘말’은 ‘믿음+신뢰+희망’이다. 말은 ‘호기심+친밀함+사랑’의 감정이다. 소년에게 있어서 말은 어른보다 천배, 만배 긍정적인 힘을 가질 것이다. 소년이 가진 ‘말’의 ‘상상력’과 ‘환타지’는 우주까지 뻗어나가리라. 그 시는 분명 긍정적인 시가 될 것이다.   어린이 때는 ‘눈빛 언어’도 호소력이 강하다. 그러나 청년기를 지나고 기성세대인 어른이 되면 ‘습관성’과 ‘의도성’이 과다 표출되어 ‘말’은 ‘신비주의’의 옷을 벗는다. ‘냉정’과 ‘배반’과 ‘모순’으로 상대를 ‘공격’하며 ‘폭력성’을 갖는다.   이오장 시를 읽으며 심도있는 자성의 질문을 해 본다. 말의 ‘매력’과 ‘마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말이 ‘호기심’과 ‘매력’을 잃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40    君子三樂* / 우 원 호 댓글:  조회:779  추천:0  2018-12-24
君子三樂*     우 원 호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   양친이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번째 즐거움이요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왕도王道를 바랐던 이천 년 전의 맹자孟子의 말씀이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   부모를 향한 효심과 형제간에 우애가 깊지 않음이 첫번째 즐거움이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은 삶을 버림이 두번째 즐거움이요   후학後學들 모두에게 존경尊敬받지 않는 삶을 사는 일이 세번째 즐거움이다   '오늘날의 군자君子는 자본가로 성공한 사람을 일컫는다'라고   역사가들이 말할 것이므로……   *군자삼락君子三樂:  중국 전국 시대의 사상가인 맹자(孟子 B.C. 372~B.C. 289)가 《맹자(孟子)》〈진심편(盡心篇)〉에서 이른 말로 君子有三樂(군자유삼락)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부모구존 형제무고 일락야)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이락야) 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득천하영재 이교육지 삼락야).           군자2 (君子)     [명사] 1. 행실이 점잖고 어질며 덕과 학식이 높은 사람. 2. 예전에, 높은 벼슬에 있던 사람을 이르던 말. 3. 예전에, 아내가 자기 남편을 이르던 말. [유의어] 남편1, 현자1, 대인1     우원호 시인은 군자라는 말이 사라진 시대에, 군자를 언급하고 있다. 문학에서 ‘정치’나 ‘돈’을 언급하는 것은 고상한 시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것 같아 터부시하는 주제다. 80년대 독재에 저항한 ‘인권운동’이 NGO 활동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상태다. 그런데 우원호는  ‘시’에서 외면당하는 정치이야기와 ‘관념’의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인륜’과 ‘사도’와 ‘사회문제’에 집중관심조명을 하고 있다. 패륜의 시대에 살고 있는 불쌍한 ‘시’, 우원호의 용기있는 ‘발언’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군자’라는 단어가 사양어가 된 것은, 현대문명사회에서 ‘군자’라는 존재가 사라졌다고 추론할 수 있다. 먼저 위에 제시한 ‘군자’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 첫째 어질고 덕성과 학식이 높은 사람, 둘째 높은 벼슬을 한 사람, 셋째 남편을 지칭한다고 되어 있다. 벼슬을 한 사람은 어질고 덕과 학식이 높다는 명제가 생긴다. 어질며 덕과 학식이 높은 사람이 예전에는 벼슬을 한 것이 사실이다. 예전 아내는 ‘군자의 자질과 조건’을 갖춘 남편과 살았다는 가설도 성립된다.  군자가 사라진 뒤에 ‘선비’라는 단어가 그 뒤를 이었다. ‘선비’라는 단어에는 ‘꼬장꼬장하고 뜻을 굽히지 않는 고집, 문학의 깊이를 가진 학식, 인간적 품위를 가진 인성’이 함의되어 있다.   현대는 선비라는 단어도 사라지고 ‘선생’이 난립한다. 모두 사장인 시대에 모두 선생이다. 좋은 일이다, 선생이 많으면 배움과 지식을 갈구하는 희망사회가 될 것이니까. 그러나 현대의 ‘선생’이라는 단어는 ‘컴퓨터 선생, 테니스 선생, 바이얼린 선생, 발레 선생, 미술 선생’ 등 기술적인 분업강사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예전에 그 단어는 ‘선생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권위를 가진 때도 있었다.     맹자의 ‘군자삼락君子三樂’은 ‘인성, 덕성, 지성’을 갖춘 선비정신을 가진 존경받는 사람을 지칭한 단어였다. 그러나 ‘경제’와 ‘문명’과 ‘자본’의 원리가 현대사회의 최우선 구성요소가 된 이후로 선생도 돈으로 사는 시대가 되었다. 사립학교 교사 자리에 수천만원이 오가고, 강사와 교수 자리에 수억이 거래된다는 얘기가 신문지상에 올랐다. 비례대표 국회의원 자리가 수십억에 거래된다는 얘기도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금권시대다.   물론, 핵가족 사회에서 이혼하지 않고 살려면 부모 형제와 독립하여 ‘아내’에게 충실하여야 한다. 처와 자식을 충실히 부양하는 가장이 되려면 기회주의자가 되어야 경쟁력이 있을 것이다. 제자를 좋은 대학에 입학을 많이 시켜야 명문고다. 물론 대학도 취업준비를 위한 수련장이다. 좋은 대학친구의 우정은 기관에 포진하여 나눠먹기식 공생공존을 한다.     우원호의 ‘무기교의 기교’ 시가 나른한 삼복더위에 한방 시원하게 펀치를 날린다. 잘 먹고 잘 살던 ‘시’가 주눅이 든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얼싸 반갑다고 껴안고 웃는다.
39    분꽃들 / 최서진 댓글:  조회:760  추천:0  2018-12-24
이선의 시 읽기- 최서진 분꽃들 최서진 떨고 있는 새들의 늦은 오후가 풍금소리처럼 모인다 비로소 피어나는 분꽃들 엄마의 독백이 화단으로 흘러가 비를 맞는다 무거운 침묵이 꽃밭을 가득 메울 때 왼쪽으로 꺾이는 얼굴 엄마는 화단으로 실현될 수 있을까 엄마 가지 마세요, 우리는 아직 꽃일 뿐 꿈을 조절할 수 없어 목이 자랐고 비가 내리지 않는 오후에는 벌레처럼 서로를 갉아 먹었다 언니들은 풀처럼 빨리 자란다. 엄마를 닮아가기 위해 짙어지고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별들은 여러 각도에서 몸을 부딪쳐 왔다 나는 어두운 화단을 걸어 나가고 싶은 얼굴로 날마다 분명해진다 꽃잎이 모르는 단어처럼 흩어진다 쓸쓸한 화단 끝에 매달려 잘 발음되지 않던 꿈 풍경을 기억하던 잎들이 하나 둘 떨어져 질문처럼 쌓인다 언니들의 얼굴로 발음해 봐 다섯 시에 피는 배고픈 꽃 분꽃이 지는 쪽으로 여름과 저녁이 태어나고 나는 분꽃으로 중지 된다 최서진은 위의 시에서 새로운 패턴을 제시하며 자신의 의 변화를 시도하였다. 10연으로 구성된「분꽃들」은 ‘낯설게하기’를 실현하며신선한 감각적 자극을 준다. 그러나 연과 연들은 분리되지 않고 라는 대상을 ‘분꽃’으로 치환하여 연결시키고 있다.   위의 시의 중심어를 살펴보자,   1연- 엄마의 독백, 분꽃   2연- 엄마, 화단   3연- 엄마 가지 마세요, 우리는 어린 꽃   4연- 서로를 갉아 먹었다   5연- 언니, 풀, 엄마를 닮아 짙어지고   6연-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7연- 나는 어두운 화단을 걸어나가고 싶다   8연- 꿈, 질문   9연- 언니들 얼굴, 배고픈 꽃   10연- 나는 분꽃으로 중지된다   로 이어지는 ‘가난’과 ‘분꽃냄새’는 멜로적 요소를 가지며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짐작할 만한 뻔한 가족사가 진부하지 않은 것은 시의 품격이 받쳐주기 때문이다. 묘사력과 사유, 사실을 바탕으로 한 진정성이 주는 힘이다.  묘사- ‘떨고 있는 새들의 늦은 오후가 풍금소리처럼 모인다’(1연 1행)  사유- ‘꿈을 조절할 수 없어 목이 자랐고’(4연 1행) ‘분꽃이 지는 쪽으로 여름과 저녁이 태어나고’(10연 1행)  진정성-‘비가 내리지 않는 오후에는 벌레처럼 서로를 갉아 먹었다’(4연 2행)  당위성- ‘나는 분꽃으로 중지 된다’(10연 2행)      객관화된 소설의 묘사기법을 사용한 피동적 고백체 문장도 눈길을 끈다.   ‘떨고 있는 새들의 늦은 오후가 풍금소리처럼 모인다/ 엄마의 독백이 화단으로 흘러가 비를 맞는다’(1연 1, 3행) ‘풍경을 기억하던 잎들이 하나 둘 떨어져 질문처럼 쌓인다’(8연 2행)       위의 시는 애매성과 모호성의 원리를 잘 적용하였다. 그러나 문장들은 산만하지 않고 일맥상통하게 읽힌다. 그 이유는 복합 문장구성을 하고 있지만, 각 문장들이 객관화되었기 때문이다.
38    페르시안 인체신경총 / 김백겸 댓글:  조회:632  추천:0  2018-12-24
 페르시안 인체신경총                                   김백겸     페르시아 의사들이 온 몸을 해부해서 그려놓은 고 대의 인체신경지도를 보았다   노란 장기들과 파란 핏줄들을 배경으로   붉게 그린 신경들은 가슴을 발화점으로 피어오른 불꽃이었다   온 몸을 의식으로 채운 불꽃들은   몸을 용광로처럼 태워 그 빛을 사방으로 보내고 있 었다     빛이 닿는 범위가 나였다   나의 빛은 눈과 귀와 입과 항문과 정수리에서 닫히 고 매듭으로 꼬여 세계와 나의 분별을 만들어냈다   이 빛들이 매듭을 풀고 세계의 끝까지 실패의 명주 실처럼 풀려나가는 날   몇 억 광년 밖의 별들의 소식이 풀잎 같은 떨림으로 내 가슴에 전해지는 그 때   나는 곧 세계가 될 것이었다         김백겸의 『기호의 고고학』시집은 경전이다. 예언서다.   칼릴 지브란이 윤회하여 폭포수 아래서 다시 들려주는 외침이다. ‘물소리’와 뒤섞인 ‘진리의 소리’를, ‘듣는 자’가 ‘언어의 기호’를 가려내어 해독해야 한다.   ‘시’와 ‘부처’와 ‘태양’과 ‘인간’이 하나인 빛의 세계. ‘욕망’과 ‘육욕’과 ‘문명’이 하나의 DNA인 어둠의 세계. 작가는 신의 혜안으로 ‘인간현세’와 ‘내세’와 억만년 전 ‘전세’를 처럼 요약하고, 재해석하고 있다.     작가의 의식은 항상 깨어 ‘온 몸을 의식으로 채운 불꽃들은’(1연 6행) ‘그 빛을 사방으로 보내고 있’(1연 7행)다.   ‘나’는 ‘빛’이다.(2연 1행)   ‘나’는 곧 ‘세계’다.(2연 8행)   작가는 세상을 구원하는 ‘신’의 입장으로 거대안목으로 시를 쓴다.     작가의 의식은 자연의 섭리를 관찰하고, 인간본질을 관찰한다. 자신을 법안으로 꿰뚫는다.  ‘나의 빛은 눈과 귀와 입과 항문과 정수리에서 닫히고/ 매듭으로 꼬여 세계와 나의 분별을 만들어냈다’(2연 2-3행) 작가가 말하는 ‘분별’은 ‘진리’를 득도한 상태다. ‘눈’은 혜안, 지식과 지혜다. ‘귀’는 ‘들어주는 마음’으로 임금의 백성을 향한 열린 마음과 연민이다. ‘항문’은 욕망이다. ‘항문’을 닫는 것은 ‘욕망의 절제’다. 욕심과 욕망을 절제할 수 있다면 이미 ‘성인’이나 ‘신’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정수리’는 몸의 ‘중심’이다. 머리는 몸의 가장 윗부분, 이상과 현실을 중재하는 곳이다. 이 모든 이치를 ‘매듭으로 꼬’아 (2연 3행) 분별하는 ‘나’는 바로 신이다.   위의 시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 ‘빛’인 진리는 작가가 현실과 시에서 추구하는 테마다. “나”는 ‘데미안’이며, 부처며, 예수다. 작가의 삼라만상을 관통하는 ‘예지는 영원하리라’고 믿는다. 스케일이 큰 예언서 같은 작품에서, 고대인들이 고인돌 앞에서 갖는 경건함을 느낀다.  
37    플라스티네이션 4 -조용한 증인 / 김해빈 댓글:  조회:686  추천:0  2018-12-24
플라스티네이션 4  -조용한 증인                                                  김해빈    빛을 삼켜버린 전시실   창백한 남자 그리고 나  거리는 1m도 되지 않았다    두근거리며 피를 내뿜던 심장과 날카롭던 시신경 그를 둘러싼 미세한 세포들  모두가 한 발 건너 조용한 증인으로 섰다    웃음이 빠져나간 텅 빈 두개골과 횡간막 사이  남자의 목소리는 납덩이로 굳어있다  어느 기억을 가리키는지 손끝은 하늘을 향하고  중추신경과 말초신경마저 끊어버린 몸짓은 완전한 균형이다    수만 번 손끝으로 요일과 날짜를 새던 그의 네트워크  쏟아지는 정보를 찾아 시신경보다 빠른 마우스를 클릭하고 있는지도 몰라    주검 앞에 껍질을 벗어 버린  그의 선홍빛 근육에서 자유에너지가 불끈 솟구친다      * 플라스티네이션: 인체 플라스티네이션(Plastination)은 1977년 독일의 해부학자 "군터 폰 하겐스" 박사에 의해서 처음 연구 개발되었다. 시체에서 수분과 지방을 깨끗이 제거하고 실리콘 고무 에폭시나 플라에스테르 합성수지 등을 주입해 통통하게 살아있는 듯 그 상태로 영구 보존하는 방법을 말한다.                 김해빈의 시는 구조화에 집중하고 있다. 1-5연의 시들이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객관화되어 있다. 또한 연과 연의 ‘낯설게하기’에 주목하여 보자. ‘사물’과 ‘사실’ 사이에 객관화된 ‘상상력’이 내재되어 있다.   화자인 ‘나’는 ‘1m 거리’(1연)방경 내에서 대치하고 있는 ‘플라스티네이션 남자’를 증언한다. 혹은 변명하고 싶은 것일까?   시인의 무의식은 ‘창백한 남자’(1연 2행)의 현존했던 삶을 재생시켜 구조화하고 있다. 그 남자가 살아있을 때의 실재적인 몸- 피, 심장, 세포(2연), 두개골, 횡간막, 중추신경, 말초신경(3연), 시신경(4연), 껍질(살갗), 근육을 상상력은 재현한다.   또한 그 남자의 생활도 복원해 본다. ‘마우스를 클릭하고 있는/ 손끝’(4연 1-2행)과 ‘자유에너지’(5연 1-2행)를 인지한다. 5연에서 화자인 ‘나’의 ‘플라스티네이션 남자’를 향한 욕망을 읽는다.     주검 앞에 껍질을 벗어 버린   그의 선홍빛 근육에서 자유에너지가 불끈 솟구친다’(5연 1-2행)      과학이 재현한 인물, 즉 ‘대상’에 대한 관찰과 관심은 시의 본질이다. 또한 죽은 남자를 향한 연구와 분석은 시인의 ‘대상’을 향한 연민과 사랑이다. 여기에 ‘욕망’과 ‘욕구’를 결합하여 주면 ‘시적 에너지’가 증폭된다. 비록 ‘주검’으로 변한 인간, 무생물화하여 단지 ‘사물’인 인간도 관심을 받으면 ‘생명력’과 ‘에너지’를 갖고 힘을 얻는다.   뼈대가 단단한 김해빈의 시를 읽으면 남성적 에너지가 느껴진다. 무리하지 않은 수사가 ‘현실’과 ‘현재성’을 강조하며, 생장하는 힘을 느끼게 한다.      
36    장자론壯者論 / 차영한 댓글:  조회:811  추천:0  2018-12-24
장자론壯者論   차영한     지리산에서 줄 없는 낚싯대로 떡갈나무 숲 가실거리는 파도 사이 농어를 낚고 있다 짙푸른 절정의 깊이에서 한없이 헤엄치는 물살 쪽으로 내던져 흔들리는 만큼이~나 휘어진 낚싯대를 힘차게 끌어당기는 좌사리, 치리섬들 산머루 같은 눈매로 달려온다. 가뭄에 탄 골짜기가 소낙비를 마시듯 얼큰한 내 술잔 안에서 파닥이는 지느러미 오호라 저것 봐 내뿜는 눈부신 꽃 비늘 튄다. 컥컥 미늘을 물어뜯는 욕망덩어리 떼 공중으로 날아올랐다가 흥건한 땀방울 맺힌 생소금에 툭툭 떨어진다. 이것 봐 석쇠에 굽고 회를 치는 칼빛 웃음소리 내 콧구멍을 벌름거리게 하는 새빨간 아가미 다시 짓누르는 하늘 한 자락 들썩이다가 갑자기 내 숨소리를 빼앗아 먼 산맥 굽이치게 파도 소리는 떡갈나무 숲 물고기 떼를 휘몰아 펄떡펄떡 뛰며 가로질러 헤엄치고 있다          위의 시는「장자론壯者論」이라는 제목과 시 내용에서 장자의 ‘이도관지以道觀之’의 범신론적 자연주의 향내가 물씬 풍긴다. 또한 ‘이미지의 극점’을 만난다. 시각과 청각과 미각을 동원하여 오감을 자극하는 ‘공감각적 이미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지리산 단풍과 가랑잎이 바람에 쏠려 구르고, 떠다니는 모습을 로 이미지화하였다. ‘나’라는 화자는 무아지경의 풍경 속으로 감정이입 되어 무아지경이다. 시 제목과 ‘산’과 ‘나’와 ‘물고기떼’가 하나로 선경을 이룬 모습이 조화롭다.   차영한의「장자론壯者論」의 구조는 ‘지리산-나-나와 지리산’ 이라는 3부 구성으로 되어 있다. 1부 1-10행(감상자 시점), 2부 11-15행(적극적 개입자 시점), 3부 16-19행(나와 자연의 합치)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차영한의 ‘장자론’은 장자의 ‘자연주의’에서 진일보하였다. ‘자연’을 향한 ‘나’의 적극적 개입을 주목하여 보자. ‘나’라는 주체는 식물성이 아니라 동물성이다. 생존과 번성을 위하여 약육강식을 하는 ‘욕망’ 덩어리다. ‘지리산 물고기 떼’ 이미지를 감상하는 모습도 적극적이다. ‘눈’으로만 감상하는 시적거리가 먼 ‘관찰자 시점’이 아니다. ‘입’으로 ‘먹음’으로써 더 직접적으로 자연에 개입한다. ‘생소금…, 석쇠에 굽고, 회를 치는’ (13-14행) 감상방법은 얼마나 감각적이고 육감적인가? 이보다 더 멋진 적극적인 자연감상 자세가 있을까?   3부에서는 적극적으로 풍경을 먹다가 평정심으로 돌아간다. 나를 자연에 풀어놓고 있다. ‘내 숨소리- 파도소리- 물고기 떼'가 합치된다.      짓누르는 하늘 한 자락 들썩이다가    갑자기 내 숨소리를 빼앗아 먼 산맥 굽이치게    파도 소리는 떡갈나무 숲 물고기 떼를 휘몰아    펄떡펄떡 뛰며 가로질러 헤엄치고 있다     차영한은 위의 시에서 이라는 제목에 맞는 시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의 바다를 헤엄치다가 풍랑에 휘말려 독자도 함께 표류한다. 장자의 무아지경의 자연에 합치된 나. 이미지가 맛있다. 지리산을 꼭 한번 먹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35    무성의 입술 / 위상진 댓글:  조회:714  추천:0  2018-12-24
무성의 입술   위상진   석고상은 붉은 입술로 일렁거리는 말을 한다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 아무 말이나 좀’   잠에서 깨어나자 그는 링거 줄을 뽑아 던진다 회색 피가 흘러나오는 제라늄 화분 그는 입술을 더듬어 본다 ‘좋은 말을 해본지가 오래 되었어’   낮에도 밤은 여러 번 찾아왔고 휘어지는 길을 따라 아침은 사라졌다 간호사들은 오늘 죽은 사람의 생일 케잌을 우물거린다 ‘나는 내 맘에 들고 싶어’   밧줄에 묶인 채 거꾸로 올라가는 간판 창밖의 검은 태양은 바닷물 색을 울컥 울컥 쏟아내고 간판이 있던 자리 공중에 걸린 둥지 하나 어린 새의 솜털이 묻어 있다   구름그림자를 덮어쓴 간판은 그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해 주지 않는다 ‘내가 벗어둔 집에게 인사를 한 적이 없어’   그는 유리창 위에 입술을 벙긋거린다 한 단어 한 단어 말의 입김이 번진다         필자가「무성의 입술」을 논평하는 이유는, 필자가 주장한 시론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완벽한 시론은 ‘연과 연의 낯설게하기, 행과 행의 낯설게하기, 한 행에서 단어와 단어의 낯설게하기, 어절과 어절의 낯설게하기, 제목의 낯설게하기’를 완벽하게 실현하여, 자기 이름의 상표를 창조하여야 한다는 필자의 시론을 이미 밝힌 바 있다. 또한 시를 쓸 때 ‘제목, 단어, 표현, 비유’에서 닮은 표현을 피하기 위한 고민을 필자도 한다. 누군가의 시에서 읽은 것을 ‘무의식적 표절’을 할까 두려워 새로운 ‘표현’을 버리기도 한다.   위상진 시인은 그럴 때 ‘인터넷 검색’을 하여 검증의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위상진 시인의 시 특징은 사동보다는 피동적 표현기법이 주조를 이룬다. 그러나 위의 시에서는 그 경향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위의 시에서 6개의 연들은 모두 다른 이야기를 하며 ‘낯설게하기’를 극대화하고 있다. ‘연과 연의 낯설게하기, 행과 행의 낯설게하기, 제목의 낯설게하기, 행 안에서의 단어의 낯설게하기’를 실현하고 있다.『그믐달 마돈나』에 실린 다른 작품들처럼, ‘한 연 내에 여러 개의 파생된 보조관념’이 등장한다. 부채살처럼 여러 개의 보조관념이 마디마디 퍼져 있다.      은 1980년대부터 양준호가 ‘젝슨 플록’의 페인팅 기법을 도용한 ‘단어 흩뿌리기’ 표현기법을 구사하여 ‘행과 행’, ‘연과 연’의 ‘낯설게하기’를 이미 보여주었다. 그러나 위상진은 ‘객관화’와 ‘재해석’ 특징을 추가하였다.   또한 표현주의를 추구하지만, 감각적 미의식과 진정성이 엿보인다. 아래의 대사는 거짓이 아닌 참이다. 작가의 목소리든, 화자의 생각이든, 3인칭 타자의 무의식을 차용하였든, 진정성이 있다.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 아무 말이나 좀’(1연)   ‘좋은 말을 해본지가 오래 되었어’(2연)   ‘나는 내 맘에 들고 싶어’(3연)   ‘내가 벗어둔 집에게 인사를 한 적이 없어’(5연)     자동기술기법으로 연과 연을 단절하고, 흐름을 끊어주지만, 객관화에 집중하였다. 또한 ‘제목’과 ‘마지막 끝연’의 ‘끝행’에서는 반드시 객관화를 실현하고 있다.   의식적으로 지나치게 집중한 ‘낯설게하기’가 산만하거나 복잡하거나, 통일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중의적, 다의적 ‘표현주의’ 기법은 새로운 ‘심미적 미의식’을 만들고 있음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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