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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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28. 달리 보는 우공이야기 댓글:  조회:2796  추천:100  2008-06-01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28달리 보는 우공이야기 허명철 연변대학 교수"우공이 산을 옮겼다(愚公移山)"는 이야기는 중국인의 끈질긴 근면성을 잘 보여주는 우화로 사람들은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고심해 보면 이 우화를 통해 우리는 보다 많은 중국문화를 접할 수 있다. 그러한즉 명색이 로완퉁이라 또 한번 비뚤게 풀이하고자 한다. 먼저  "愚公移山"의 우화를 통해 지식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알 수 있다. 이 우화에서의 대결은 아둔한 영감--愚公과 지식인 영감--智叟 사이 펼쳐지는데 지수가 조롱의 대상이 된다.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愚에는 공公을, 지智에는 수叟를 달고 있다.) 다음 사람이 많으면 그 무엇이나 해낼 수 있다는 人定胜天론을 보아낼 수 있다. 우공은 자기가 죽으면 아들이, 아들이 죽으면 손자...대대손손 파헤친다면 산을 옮길 수 있다고 미신한다. 여기에서 또 중국문화에서 남성우월주의관념을 엿볼 수도 있겠다.(하필이면 아들이요 손자요 하지, 딸이요 손녀요 하지 않고) 그 다음, 자연생태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수준이다.  우공이 산을 파 옮길려고 결심을 내린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산이 자기 집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 뿐이다. 자기의 편리를 위해, 혹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 자연생태환경을 파괴한다면 그 후과는 상상도 못한다. 50년대 우리는 전민이 강철을 제련한다고 얼마나 많은 자원을 낭비했고 파괴했던가, 80년대초 향진기업을 발전시킨다고 또 얼마나 많은 생태오염을 야기시켰던가... 그리고 과학적 방법론의 결여이다. 끈질긴 정신도 좋지만 만약에 과학적인 방법론이 안받침되어 있다면 더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우공도 순간적이나마 궁리를 달리하여 만약 산 너머로 이사 갈 생각을 했다면 굳이 산을 파 옮기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가.영웅이나 선진인물을 모델로 하는 시대를 살아온 우리들에게 있어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비판해야 하는가를 선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글 올렸습니다. 
37    24. 학생들 교육에 대하여 댓글:  조회:2577  추천:77  2008-06-01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24학생들 교육에 대하여      허명철 연변대학 교수새학기가 시작되니 학생문제, 교육문제가 다시 화두로 되고 있다. 특히 미성년범죄현상이 날로 증가되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 미성년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객관적으로 놓고 볼 때 우리는 한시도 미성년에 대한 관심을 소홀하지 않았고 학교, 가정, 사회가 총동원하여 미성년에 대한 사상도덕건설을 진행해 왔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미성년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사회문제로 나서고 있다. 이는 우리들이 여직껏 진행해 왔던 미성년교육이 내용이나 혹은 방식에 있어서, 또는 교육대상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뭔가 잘못되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누구도 교육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미성년문제가 말밥에 오르게 되면 습관적으로 그 원인을 객관(외부)에 돌리고 있으며 주관적 원인에 대한 반성은 오직 미성년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고 교육을 바싹 틀어쥐지 않았다는 것이 고작이다. 자기의 동년시절을 추억해 보면 알 수 있듯이 학교 혹은 사회에서 진행한 인격적인 수양과 기본적인 인성교육은 모두 천편일률적인 영웅 따라 배우기와 혁명전통교육을 통해서였다. 이것마저도 오늘은 이 영웅을, 내일은 저 모범을, 1년내내 영웅과 모범을 따라 배우다 나니 결국 자아를 잃게 되었고 개성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스스로 "나는 도대체 누구냐"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사실 우리의 교육대상은 말 그대로 미성년이다. 이들은 자기의 동심이 있으며 동심에 맞는 생활과 배움을 바라고 있다. 왜서 많은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지겨워하고 PC방을 찾고 있는가를 우리는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한다. 학업에 영향받는다고 PC방에 다니지 못하게 하고, 안전이 보장받지 못한다고 산이나 강가에 가지 못하게 하고, 세계관이 형성되지 않았다고 교회출입을 엄금하고....이와 같이 외부와의 접촉을 모두 차단시키고 학교란 울타리에 가두어 넣고 동심과 천진함을 앗아가는 유토피아적인 도덕설교와 사상교육을 되풀이하고 있으니 결국 교육의 신성함과 흡인력을 잃어가게 된다. 일례로 매번 방학 때 학교에서 규정된 수칙을 보면 교회에 다니지 못한다는 내용이 꼭 들어있다. 헌법에는 분명히 신앙자유로 쓰여 있지만 단지 미성년들은 나이가 어리고 세계관이 성숙되지 않았다는 원인으로 종교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엄금한다. 그렇다면 세계관이 성숙되지 못한 어린 학생들에게 매일 넥타이를 매고 공산주의후계자로 될 것은 선서시키는 것 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인젠 우리도 현실을 직시하고 미성년들의 어깨에 지워진 무거운 멍에를 벗겨 버리고 동심을 즐길 수 있게 해보자. 교육자의 입장에서 미성년들을 인간으로 키워가는 것이 기본이지 그 어떤 정당이나 혹은 이념의 투사를 배양하는 것을 목표로 선정해서는 안된다.
36    23. 과거와 나의 삶 댓글:  조회:2571  추천:73  2008-05-31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23과거와 나의 삶     허명철 연변대학 교수오래전 중앙음력설야회에서 공연했던 소품 "어제, 오늘, 내일"을 다시 보면서, 그리고 아직도 여운을 남기고 있는 3.8절행사를 돌이켜 보면서 뭔가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바가 있어서 적어본다. 가정과 사회에 있어서 그러하듯이 한 개인의 인생살이에 있어서도 피치못하는 것이 어제, 오늘, 내일이다. 바로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하나로 이어지면서 한 인간의 인생행정을 엮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인생에 있어서 구경 어제가 중요할가, 아니면 오늘 혹은 내일이 중요할가? (ㅎㅎㅎ, 오늘은 과거만 이야기해볼께요) 어제, 즉 지나온 과거가 중요하다고 한다면 과거는 오늘을 살고 있는 나에게 어떠한 존재일까. 일례로 우리는 왜서 3.8절을 쇠야 하고 또 해마다 기념행사도 해야 하는가. 오늘의 업적을 기리고자 뽑은 10대녀걸도 무슨 "3.8붉은기수"라고 명명하는데 이들과 3.8절은 무슨 관련이 있는가. 단순한 여성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3.8절을 기념하듯이 단순한 기념적이 자세로 과거를 대한다면 나의 눈앞에는 수많은 영웅 혹은 위인들이 떠오른다. 이런 위인과 영웅들의 존재는 나에게 분발할 수 있는 동력으로 될 수 있겠지만 이들에 비해 자신은 너무나 보잘것 없는 존재라는 위측감도 동반한다. 그렇다고 이들을 본보기로 나의 인생을 설계하면 결과적으로 "죽은 자가 산 자를 설계하는" 비극적인 인생이 될 소지도 충분하다. 그리고 과거가 나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존재라고 한다면 상이한 인생길을 선택했고 상이한 환경에서 자란 타자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존재로 될 수 있을까? 역사적인 존재든 현실적인 존재든 나의 존재와는 다른 것이다. 타인의 성공담이 나를 무작정 성공에로 이끌 수는 없는 것이다. 비록 지난 과거를 오늘에 응용하여 오늘을 다시 과거로 만드는 것이 인간이라고 할진대 과거에 집착하고 과거를 위해 살 수는 없지 않는가. 특히 과거지향적이기보다 미래지향적인 사고방식과 삶의 자세를 요구하고 있는 치열한 시장경쟁 속에서 성공하려면 어떠한 자세로 과거를 대할것인가를 다시 한번 사색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가요.
35    22. 진정한 사랑이란 댓글:  조회:2963  추천:89  2008-05-30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22진정한 사랑이란     허명철 연변대학 교수인간 개개인 혹은 사회에 있어서 제일 고상하고 성스러운 것이 사랑이 아닐까요. 서로를 아끼고 위하며 정을 베풀어가는 그러한 사랑심이 있기에 인간은 순수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심은 인간뿐이 아닌 동물을 비롯한 자연계의 모든 존재에 베풀어지며 모든 존재를 포용하고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 사랑의 본연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혼인을 목적으로 한 이성간의 사랑은 인간자체생산이란 남다른 특수한 의미를 갖고 있다. 보편적인 의미에서 사랑은 베풀어가는 것이지만 혼인을 목적으로 하는 남녀간의 사랑은 소유라는 성격이 더 두드러진다. 때문에 결혼 후 서로 상대를 자기의 소유물로 간주하고 있으며 또 그것을 당연시하는바 이와 같은 의식은 "내 남편" 혹은 "내 안해"라는 표현에서도 잘 나타난다. "내 남편" "내 안해"라는 낱말에서 상대가 "내 것", 즉 나에게 속한다는 소유의식과 소유자로서의 권위의식을 강하게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소유의식은 특히 성에서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그 상징성적인 기호가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조라고 할 수 있다. "정조를 바친다"는 것은 "나는 이제부터 당신의 것이야"하는 메시지와 같고 "정조를 지킨다"는 것은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에게 속하는 것이 아닌 당신에게 속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지배할 수 있는 권리를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정조라는 기호의 배후에는 강한 소유의식이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잠재의식 때문에 인생길에서 남편(안해)아닌 또 다른 사모할 수 있는 이성을 만났을 때 사람들은 행복감 못지않게 죄의식을 느끼게 되며 고통 속에 모대기게 된다.    정조를 단순 육체적인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자기의 첫 순정을 사랑하는 애인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첫 순정을 받아들이는 남자(여자)는 그 당시 어떠한 심리현상이 일어날까요. 만약 결혼 전 여자가 다른 남자를 사모했었다면 사실상 마음의 정조를 이미 타인에게 준 것인데 육체보다 마음을 더 강조하는 우리는 오히려 마음의 정조의 상실에 대해 별로 개의치않게 생각한다. 그것은 마음의 정조를 우리가 감지할 수 없고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마음의 정조는 치료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혼인상대에게 대해 "과거를 묻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단지 마음의 정조에 대한 것뿐이지 육체적인 정조는 거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런한 정조관념을 의식하고 있는 우리들이기 때문에 최근에는 정조의 대명사로 되고 있는 처녀막회복이라는 기술까지 발명되어 정조를 지켜가는데 일조하고 있다. 처녀막수술을 통해 자기의 결백함을 보여 줄려는 사람이나 이런 방식을 통해서라도 결백함을 보여주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우리의 혼인문화풍토나 정조관념은 얼마나 허위적이고 가소롭기 짝이 없는가.    그리고 한가지 실례를 든다면 가령 한 여자가 인공수정의 방식으로 자식 둘을 낳았다고 하자. 그러면 그 두 자식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들은 결국 배다른 형제일 뿐 진정한 의미에서의 친형제는 아니다. 왜서일까? 아버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놓고 본다면 얼굴도 모르는 두 남성과의 간접적인 성관계를 통해 자식을 낳았을 따름이다. 이렇게 태어난 자식은 비록 어머니의 피줄은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아버지와는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 부양자식관계일 뿐이다. 이럴 경우 어머니는 남편을 상대로 정조를 지켰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한발 물러나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발생했다면 불륜이라고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모두 용납되지 않고 있지만 인공수정은 일종의 특수한 "불륜"이기에 법적인 보호를 받는다.    사랑을 자체의 본연을 상실하게 하고 협애한 소유로 타락시켜버리고 있는 이른바 정조관념 때문에 우리는 결혼을 "사랑의 무덤"이라고까지 표현하면서 저주하고 있다. 인간사랑이란 경지에서 놓고 볼 때, 사랑은 본질적으로 베푸는 것이라고 할 때, 결혼은 사랑의 종착이 아니며 무덤은 더욱 아니다. 인간사랑은 보다 높은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설사 남녀간의 사랑이라 할지라도 더 이상의 경지가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그러한 최고경지는 구경 무엇일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별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하고 이별할 줄 아는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사랑심의 소유자만이 진정 사랑을 논할 수 있는 자격을 갖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면 그 희생이 엄청하고 비극적인 사랑인 것 같지만 사랑의 본연적인 차원에서 보면 제일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감이 주장하고 싶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지기(知己)를 만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이성지기(红颜知己)를 만난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인생의 동반자와 사랑의 동반자가 합일체될 수 있는 이러한 이성의 지기(红颜知己)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행운스럽고 복한 인생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본연적인 의미에서의 사랑을 이성간에 키워갈려면 인생도 함께 하고 사랑도 함께 할 수 있는 红颜知己를 만날을 때 이루지지 않겠는가.
34    21. 진정 필요한 것은 최선이다 댓글:  조회:2506  추천:82  2008-05-28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21진정 필요한 것은 최선이다     허명철 연변대학 교수현대의학의 혜택으로 광명을 찾게 된 맹인부부의 첫 인사말이 매우 흥미롭다. 남편: 처음 뵙겠습니다. 안해: 네, 그 동안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부부간에 난생 처음으로 상면하게 된 이들에게 있어서 인젠 부부생활을 포함한 모든 것이 생소한 이 세상에서 갓난 애기가 걸음마를 타듯이 인생을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꿈에도 그리던 광명을 찾게 된 이들은 평생의 소원을 이루었다고 할지라도 살벌한 생존경쟁이란 각축장에서 겨룸하고 나면 본의아니게 맹인으로 살아왔다는 것이 불행뿐만 아니고 눈을 떳다 해서 행복한 것만 아님을 의식하게 될 것이다. 실명이란 경험도 없이 항시 눈을 뜨고 살아온 우리들도 실생활에 존재하는 일부 현상에 대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어 눈을 감거나 외면을 선택하지 않는가. 때문에 눈을 뜨거나 감는다는 자체도 중요하겠지만 주어진 여건이나 생존의 환경과 관계없이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그러한 삶의 자세와 운명에 도전하는 용기가 어찌 보면 더 필요하고 우선시해야 할 사항이 아니겠는가.
33    16.연변관광산업발전을 위하여 댓글:  조회:1940  추천:73  2008-05-28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16연변관광산업발전을 위하여    허명철 연변대학 교수7월에 들어서면서 연변은 관광성수기를 맞게 되었다. 연변 6대 기둥산업중의 하나인 관광산업은 우리 주 경제건설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연변의 관광업을 놓고 보면 여러 가지로 어수선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도로, 차량, 호텔 등 상황은 설사 일시적인 자금난으로 빠른 시일 내에 개선을 가져올 수 없다 해도 관광객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연성환경건설은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물며 년초에 이미 관계부문의 어르신들이 매체를 통해 공개 승낙을 했음에랴.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최선의 서비스를 연변에 찾아오는 관광객에게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다. 중앙영도가 왔다 하면 모든 관광차량들은 길옆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했고 그 대기로 하여 당일 전반 일정이 뒤죽박죽이 되기도 한다. 특히 사전에 예약해 놓았던 호텔방이 우에서 온 어르신들에게 양보해야 하는 어이없는 일도 종종 발생하는 것이 우리 관광산업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여기에 가이드들이 터무니없이 들씌우는 “바가지”를 가한다면 정말 다시는 되돌아보기 싶지 않는 관광지역임에 손색이 없다.   시설이 낙후한 상황에서 우리들의 봉사태도가 열정적이지 못하고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마저 따라가지 못한다면 종국에 가서는 우리의 손으로 관광객을 밀어내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혹자는 백두산이 있기에 관광객은 절로 찾아올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당초 많은 외자기업들을 연변에서 떠나보내던 아픔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동북아 금삼각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연변에 왔던 외자기업들은 오히려 하나 둘 연변을 떠난다. 왜서일까요?   연변의 관광사업이 오늘까지 지탱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백두산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백두산관광은 연변만의 소유가 아니다. 현대그룹이 조선측 백두산관광을 시작한다면, 통화에서 헬기를 통한 백두산관광을 시작한다면 연변에 다녀올 관광객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제 백두산이란 독점적인 우세가 사라지게 된다면 연변의 관광산업은 말 그대로 옆에서 “관광”할 수밖에 없게 된다.
32    15. 형식보다 내실을 키우는 학습을 댓글:  조회:2183  추천:94  2008-05-26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15형식보다 내실을 키우는 학습을    허명철 연변대학 교수오래지 않아 선진성교육을 받아야 하기에 이미 발급받은 학습자료를 뒤적거리면서 이번에는 어떻게 학습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또 엉뚱한 썩궁리 해본다. 사실 전에도 이런 저런 명목의 학습을 많이 해왔다. 멀리 소학교시절에는 홍소병에 가입해서 “로3편”을 학습했고 “문화대혁명이 좋다”는 노래도 힘차게 부르면서 모주석을 따라 문화대혁명을 끝까지 할 것을 다짐하기도 했다. 근데 후일 보니 문화대혁명이 잘못된 것이었다. 샘물처럼 맑졌던 동심은 처음 얼룩투성이가 되었고 누가 나의 동심을 강간했는가 하는 고민도 처음 해보게 되었다.(ㅎㅎㅎ, 이땜에 더 호된 비평을 당했지므) 커서 공부도 많이 하게 되었고 세상물정을 안다고 스스로 자부하면서 당시 총서기였던 호요방 주위에 굳게 뭉쳐 사상을 해방하고 개혁개방을 심화시키라는 당의 호소를 적극 받들었다. 근데 나중에는 뭐 호요방이 자산계급자유화를 주장했다고 하니 호요방 주위에 굳게 뭉친 것이 잘못된 것 같았다. 이번에는 새로운 총서기 조자양 주위에 굳게 뭉치라고 해서 뭉치고 보니 결국 조자양도 나쁜 사람이었다. 뻥뻥해 있는데 위에서 강택민 주위에 뭉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세 가지 대표사상이랑 학습하면서 그럭저럭 13년이란 시간을 흘러 보내는데 이제는 호금도 총서기 주위에 또 뭉쳐야 했고 선진성교육을 통해 새로운 총서기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줘야 할 것 같다. 하지만 학습을 앞두고 여러 가지 의혹을 금할 수 없다. 당내에서 진행하는 선진성교육에 왜서 정부 재정을 움직여야 하는지? (지난번 모 시에는 정부재정 몇십만원을 필기책 등을 통일하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선진성교육을 진행하는 우리가 왜서 당시대 선진문화의 상징인 컴을 사용해서 타자하면 안되는지?  백성을 위한다는 정부직원들이 정상적인 엄무를 제쳐놓고 모여 앉아 학습만 해야 하는지?   치안상황이 좋지도 못한 연변에서 공안 경찰들이 일주일 두세날 안건을 제쳐놓고 선진성교육을 받으면 치안이 과연 좋아질런지? ............... 나는 마르크스주의 변증유물론자가 되기를 원한다. 형의상학적이고 형식주의적인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나는 등소평리론대로 쥐를 잡을 수 있는 훌륭한 고양이가 되기를 원한다. 지령에 따라 쥐를 잡는 고양이가 싫다.   나는 시대와 더불어 전진하면서 창신의식을 키워가고 싶다. 시키는대로만 살아가는 꼭두각시 같은 삶을 살고는 싶지 않다.
31    14. 교원 예찬에 대해서 댓글:  조회:2144  추천:91  2008-05-22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14교원 예찬에 대해서    허명철 연변대학 교수현재 사회적으로 흔히 교원을 "신근한 원예사" 혹은 "인류 영혼의 공정사"라고 부른다. 저 역시 비록 교원사업을 하고는 있지만 솔직히 내심으로 이러한 호칭에 거부감이 생긴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원예사는 자기의 심미기준에 따라 화초와 나무를 가꾸면서 서로가 조화되는 조경을 이룩하는데 "눈에 거슬리거나" "모난 가지"를 잘라버리기도 한다. 원예사는 화초나 나무를 키우지만 교원은 인간을 키운다. 인간의 첫째가는 권리가 개성을 존중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교원--이른바 원예사들은 집단의 영예을 내세우면서 학생들의 개성, 즉 모난 가지들을 아무런 고려없이 잘라버린다. 때문에 학교에서 배양한 학생들을 보면 행위나 사유나 성격이나 거의 천평일률적이다. 한발 물러나서 원예사는 그래도 자기의 심미적인 주장이 있고 이러한 주장에 따라 조경을 이룩한다. 그러나 우리의 교원들은 상급의 지시에 따라 (그것도 진정한 상급이 도대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그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오야지 노릇을 할 뿐이다. 진정 인간을 키워가는 원예사로 될려면 "모난 가지"를 "모난"쪽으로 씩씩하게 자랄 수 있게 하여야 할바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인류 영혼의 공정사라고 할 때 영혼을 설계하는 소위 공정사라는 사람들이 영혼이 있는지를 먼저 묻고 싶다.(자기의 영혼을 외부적인 힘에 빼앗긴 채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과 과연 영혼 혹은 인생을 담론할 수 있는지)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참된 이해와 건전한 추구가 없는 사람이 영혼을 설계하고 인간을 키워간다면 진정 인간으로 키워갈 수 있겠는지 참 의문스럽다. 교원이라면 우선 전문적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고상한 인격의 소유자로서 인격적인 매력과 감화력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교원이란 이름에 걸맞게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감당해야 하며 사회를 관심하고 참여한다는 사명의식이 있어야 한다.(교원 = 연박한 학식 + 고상한 인격 + 사회적 책임) 교원이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것도 바로 이때문이다. 반대로 현재 교원들이 사회로 부터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원인중 하나가 바로 사회에 대한 참여가 부족하고 인격적인 매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보아진다.
30    13. 국가와 민족사이 댓글:  조회:2216  추천:109  2008-05-18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13국가와 민족사이    허명철 연변대학 교수 전에 한국인으로부터 “중국과 한국이 축구시합 한다면 어느 쪽을 응원하겠는가” 하는 질문을 받을 때 괜히 사람을 괴롭힌다고 생각하면서 그냥 웃고 지나갔다. 그러나 요즘 나는 스스로 비슷한 질문을 자기에게 던져보군 한다. “국가와 민족에서 선택하라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고. 사실 나도 국가와 민족에 있어서 어느 것이 우위냐 하는 형의상학적인 질문은 던지고 싶지 않다. 그것은 조선족의 일원으로 중국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 있어서 국가와 민족이 모두 배반할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발생한 일들이 내 몸에서 흐르는 민족에 대한 애착과 긍지와 부딪치는 순간 나는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상기와 같은 질문을 던져보지 않을 수 없다. -- 청명절 날 해내외 한족들은 자기 조상이라고 황제릉을 찾아 조상제를 지낼 수 있지만 민족이주사의 한 페지를 기념하고자 세웠던 사이섬(간도) 기념비는 모습을 감추어야 했고 민속촌에 모셔져 있었던 우리민족 조상 단군할아버지 동상도 자취를 감추어야 했다. 우리는 왜서 민족지역자치법의 보호를 받는 자기 민족조상의 동상도 보유하지 못하고 있는가? -- 연변의 3만을 헤아리는 조선족기독교신도들은 우리 글로 된 성경책을 구하기가 힘들다. 한어로 된 성경책은 이미 국내에서 인쇄출판을 했었는데도 그 어느 조선문출판사에서는 왜서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을가? [현재 조선족신도들 수중에 있는 것은 한국에서 출판한 성경책이다. 하지만 그 어떤 개인이나 단체에서 종교서적을 국내에 반입한다면 이는 정책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국인이 갖고 와서 조선족들한테 나눠준다면 이는 종교침투로 인정되어 법적인 제재를 받을 수 있다.] -- 외국에 있는 조선족들이 여러 가지로 불이익을 당했을 때 그 나라에 주재한 중국대사관에서 과연 조선족을 자국민으로 대하면서 조선족의 권익을 보호해 주고 있는지? 그리고 한국국적에 가입한 조선족은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분명히 화교 혹은 화인인데 이들이 중국에 친인척 방문할 때 과연 해외 거주하는 한족 화인 화교들과 같은 대우를 받고 있는지? ............. 현실로부터 오는 곤혹과 허탈 속에서 벗어나 헌법이 규정한 권리와 지위와 자유를 한족처럼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헌법이상의 그 “권리”가 사실상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 이른바 소수민족우대정책이라는 “우대”의 진정한 함의도 깨닫게 된다. 법보다도 정책 또는 관료에 의해 좌우되는 사회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생존논리, 내가 추구해야 할 의의세계는 과연 무엇일까? 마음속으로부터 나오는 답안에 나의 심정은 무거운 십자가 벗어던지듯이 한결 개운해진다.
29    10. 새해에는 신의와 근면으로 댓글:  조회:1930  추천:88  2008-05-18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10새해에는 신의와 근면으로    허명철 연변대학 교수 이제 구정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또 하나의 희망을 꿈꾸게 하는 새로운 한해가 시작된다. 새해의 시작을 앞두고 누구나 한번쯤을 자기의 이상을 그려보며 소원성취를 다짐한다. 그렇다면 한 개 공동체로서의 조선족사회는 무엇을 지향하고 어떤 목표달성을 이룩해야 하는가. 물론 전반 사회경제를 발전시키고 민족구성원들의 물질문화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이 급선무이고 인구 감소, 민족교육 위축, 집거구 해체, 민족문화 보존 등 현실에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 역시 중요한 사항이겠지만, 민족의 지속적인 발전과 찬란한 내일을 위해서는 격변하는 시대에 생존할 수 있는 의식양성을 목표로 하는 한차례 문화계몽운동 또한 필요한 것 같다. 이러한 계몽운동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가치의식을 키워가며 잃어버렸던 자신과 자존을 되찾고 조선족의 위상을 새롭게 세워야 한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조선족이 '불법이민'으로부터 '합법공민'으로 되기까지 확실히 중국을 자기의 새로운 삶의 고장으로 간주하고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자아'를 지켜왔으며 동북을 건설하고 보위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헌신하였다. 조선족은 자신의 노력으로 중국사회의 믿음과 존경을 받았고 이국에서의 합법적인 공민으로서 자리매김하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조선족은 대내외적으로 '신의위기'를 겪지 않으면 안되었다. 지난해 연변에서 진행되었던 "역사관, 민족관, 조국관" 교육은 이를 단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으며, 한국언론에서 노출되고 있는 비난도 역시 이런 맥락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개별인들 혹은 소수 단체들에서 저지른 소행은 결국 전반 조선족사회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고 이러한 불신은 결국 조선족사회의 발전에 커다란 걸림돌로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중국 소수민족정책의 혜택을 받아오면서 정부에 대한 의뢰심을 키워오게 되었고 이러한 의뢰심은 결국 오늘날 시장경제에서 제일 보귀한 창신의식과 근면정신을 잠식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으며, 아울러 한국과의 교류에서도 항상 수혜자의 입장에서 그 어떤 바램을 앞세운 것이다. 앞으로 중국사회는 WTO의 가입을 계기로 정책적, 제도적 차원에서 국제관례를 따르게 될 것이며 대외적인 개방템포도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멀지 않은 장래에 우리들은 진정 지구촌의 일원으로 살아가게 될 것인바 이를 대비해 우리는 새로운 문화계몽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현재 우리는 아직도 많은 면에서 농경문화의식에 물젖어 있음이 분명하다. 법적관념보다 도덕의식을, 계약보다 인정을 앞세우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유행되고 있다. 이는 전통문화를 지켜가고 보존한다는 차원에서 긍정할 바이지만 발전이 없는 보존은 제창할 바 못된다. 한국과의 교류에서 빚어진 여러 가지 갈등들은 물론 현실적인 이익충돌에 의해 초래된 것이라고 하겠지만 그 심층을 분석해 보면 농경문화의식과 산업문화의식간의 충돌에 의한 것이라고 보아진다. 개방된 세계에서 지구촌의 일원으로 살아가려면 우리는 신의를 보다 소중히 여기고 돈독히 하면서 상호교류를 추진해야 하며 또한 과거의 타자에 대한 의뢰심과 기대감에서 벗어나 자기의 근면한 노력으로 자기의 생활을 엮어가야 한다. 미국에 살고 있는 화인, 화교들이 미국사회에 적극 진출함과 동시에 조국(중국)의 현대화실현을 위해 자기의 힘을 이바지하고 있는 것처럼 중국의 조선족들도 중국사회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또한 고국(한반도)의 통일과 한중교류를 위한 디딤돌로 될 때 조선족은 세인의 존중을 받을 수 있고 따라서 지속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된다. 내일의 아름다운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새해부터 신의와 근면을 앞세운 새 출발을 하면서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손잡고 만들어보자.
28    9. 조선족교육의 개혁안을 두고 댓글:  조회:2221  추천:80  2008-05-18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9조선족교육의 개혁안을 두고   허명철 연변대학 교수 지난 1986년에 있은 조선족대학생에 대한 "추적조사"를 계기로 시작되었던 연변조선족교육의 개혁문제는 최근에 와서 재차 전사회의 관심을 끌고 있다. 길림성정부[2003]9호 문건, 연변주위, 주정부에서 반포한 "조선족교육개혁과 발전에 관한 약간의 의견"의 기본정신과 내용에 근거해 보면 이번 개혁논의의 주제는 총적으로 조선족(소수민족)의 미래의 생존과 발전을 위하여 "雙語人"을 배양해야 하며 이를 위해 조선족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두 가지 언어교육"을 가일층 심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가지 언어교육"에 있어서 연변의 방침은 "精化朝鮮語, 强化漢語, 優化外國語"이다고 볼수 있다. 이러한 방침하에 여러 가지 구체 시행방안들이 제기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주요한 것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조선어교수시간을 줄이고 대신 한어교수시간을 늘이며 "先文後語"에서 "先語後文"으로 전환한다. 2) 중학교단계에서는 기타과목의 교수용어도 가능한 한어를 사용해야 하며 교수용어가 "두 가지 언어"로 할 수 있는 조선족학교는 2010년에 50%에 도달해야 한다. 3) 한어교육의 질을 제고하기 위하여 조선족학교에서 한족교원을 초빙할 수 있다. 4) "두 가지 언어교육"의 실시와 보조를 맞추어 조선어문교과서와 한어문교과서를 새롭게 편찬해야 한다. 5) "두 가지 언어교육"에 적응할 수 있는 교원대오를 양성한다. 그리고 이번 길림성정부의 9호문건을 보면 민족교육의 새로운 학과목체계를 세운다는 점이 새롭게 느껴진다. 즉 민족특색이 있는 민족역사, 민족음악, 민족체육 등 지방학과목을 개설 한다는 것인데 학생들의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하여 상기 과목들을 "두 가지 언어교육"에 적용한다는 것이다. 이번 조선족교육의 개혁안에 대하여 현재 학계에서는 찬반의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한어를 배워야 한다는 점, 교과서를 새롭게 편찬해야 한다 등 면에서는 일치한다. 그러나 한어교육을 강화하기 위하여 조선어강의 시간을 줄인다거나 특히 한족교원을 초빙한다는데 대해 비교적 강한 반발을 보이고 있다. 필자는 이번 조선족교육의 개혁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쟁론을 보고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우선, 언어기능에 대한 이해와 언어교육의 실행이다. 언어는 교제도구로서의 실용성이 있는 반면 민족문화의 주요한 구성요소이며 민족적 정감을 전달하는 매체이기도 하다. 현재 중국의 상황을 놓고 보면 전국적인 범위에서 사회생활과 교제에서 응용성이 제일 강하고 보편적인 언어는 한어이다. 비록 자기민족언어와 문자를 갖고 있다해도 상당수 소수민족간부들은 한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한어자체도 이미 장기적인 역사발전과정을 거쳐 객관적으로 중화민족의 "통용언어", "공공언어"로 부상하였다. 한어는 이미 단순한 "한족의 언어"범주에서 벗어났다. 중국 국내에서 99%이상의 출판물이 한어문으로 되어 있다. 한어를 익숙히 한다는 것은 결국 국내 정보량의 99%를 접수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거대한 자원이다. 이 자원을 장악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민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때문에 실용적인 면에서 한어를 장악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다. 단 조선어에 대해서는 현재 로서 실용성보다 민족성을 강조하는 것이 적실한 것 같다. 다시 말하면 학교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두 가지 언어교육"에서 한어는 실용도구 차원에서, 조선어는 민족문화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언어는 필경 교제도구인만큼 교제가 가능한 곳에서 모두 배울 수 있다. 즉 학교뿐만 아니라 학원, 가정, 사회, 지어 텔레비죤, 비디오 등 매체를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 이에 대한 치밀한 조사를 토대로 학교에서 수업시간을 조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다음, 조선족학교에서 한족교원을 초빙하는 문제이다. 현재 연변의 경우를 보면 조선족학교에 이미 초빙된 한족교원이 270여명에 달한다. 문제는 이들이 한어과에만 종사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교육, 수학, 영어, 지어 체육과목까지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한족교원이 조선족학교에 초빙될 경우, 그 만큼 조선족교원의 취직이 힘들어지게 될 것이며 따라서 조선족사범교육도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현재 한어교육의 질이 낮은 것은 과연 조선족교원들의 한어수준문제인지 의심된다. 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교원은 단순한 지식전수보다 師表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한족교원들이 조선족학생들에게 어떠한 문화적 심성을 키워주겠는지, 예하면 교과서내용에서 언급되고 있는 역사지식 같은 것에 대해서도 어떠한 해석을 가해줄지 관심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한족교원 초빙문제는 보다 심중했으면 하는 바램이다.셋째, 교과서편찬문제이다. 국가와 성의 중소학교 새로운 학과목계획에 따라 우리는 조선족 역사교과서 편찬과 기타 민족문화관련 교과서를 편찬하여 학생들에게 민족지식을 전수하고 민족의 심성을 키워주어야 한다. 어찌 보면 민족교육을 체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가능하면 한어로 편찬하여 한어도 배우고 민족문화지식도 배울 수 있게끔 한다면 학생들의 부담도 경감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이번 개혁이 단순한 "두 가지 언어교육"에서의 돌파에 그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조선족교육은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점에 봉착하고 있다. 예하면 학생래원의 감소; 부모들의 해외나들이 혹은 관내진출에 따른 單親 혹은 無親(결손 가정) 자녀의 급증과 이들에 대한 심리건강교육문제(개별학교의 결손가정 자녀수는 이미 80%에 달했음); 조선족학교 교원대오가 불안정; 조선족학교 교육질의 전반적인 저하 등이다. 이런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고 조선족교육의 질적인 비약을 시도하지 않고 "언어교육"에만 집착하는 개혁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조선족교육의 목표는 중국만을 생존무대로 하는 "雙語人"의 배양이 아니라 지구촌을 무대로 생존할 수 있는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조선족을 양성하는 것이며 이러한 목표달성에 유조한 교육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오늘날 개혁의 내용으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27    8. 모두의 힘과 지혜를 합쳐 댓글:  조회:1958  추천:63  2008-05-18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8모두의 힘과 지혜를 합쳐  허명철 연변대학 교수지난 2001년 11월 헌법재판소에서 현행재외동포법에 대한 헌법불일치판정이 내려진 후 규정된 시안인 2003년 12월 31일까지 재외동포법개정을 위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왔고 많은 단체와 개인들이 오늘 이때까지 열심히 일해왔고 나름대로의 주장을 펼쳐왔다. 특히 여러 가지로 얽혀 있는 현실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제기되고 서로간의 이익관계를 달리함에 따라 그 어려움도 한층 증가되고 있다. 하지만 그 동기여하를 불문하고 조선족성원과 한국시민단체 혹은 종교단체가 서로 손잡고 함께 노력을 경주해왔다는 점에서 긍정하고 싶다. 특히 조선족사회의 입장에서 놓고 보면 동포법개정추진운동도 좋고 국적회복(포기)운동도 좋고 아마 처음으로 되는 주체적인 자각이 겯들은 실천행위인 것 같다. 그러나 그 어떤 주장과 실천행위도 명분상 중국내 조선족사회의 생존과 발전을 위하여 고국과의 연대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하여, 나아가서 전 민족의 공동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 한번 냉정하게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과연 우리가 현재 취하고 있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고 조선족사회의 발전에 절대 이로운가를. 일례로 강제추방을 회피하고자 “국적회복” 혹은 “국적선택권리 찾기”라는 명목으로 단식투쟁까지 벌리고 있는 행위에 대해 한번쯤은 심사숙고해 보아야 한다. 국적문제는 재외동포법제정시 이미 민감한 사항으로 되어 있었고 현재 재외동포법에서도 제외되고 있다. 그리고 중국정부에서 이중국적을 승인하지 않는다는 것도 누구나 상식적으로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적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그것도 단체적인 행위로 등장시키고 있는 것은 과연 동포법개정안의 적극적인 추진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저지시키고자 장애물을 설치하려는 것인지 진정 그 동기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한심한 것은 이제까지 국적포기운동을 주도해 온 장본인인 서경석목사가 “오마이뉴스”와의 대담에서 “국적포기를 한 적도 없고 다만 언론의 주목을 받기 위해 기획했다”고 한 것이다. 중국대사관을 찾아 “국적을 포기시켜 달라”고 농성을 했고 또 “국적을 회복시켜 달라”고 단식운동까지 밀어 부친 것이 그래 단지 언론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였는가. 한 걸음 물러서서 서경석목사가 바랬던 것은 언론의 어떤 주목이었는가? 귀국동포들이 세관에서 봉변을 당하고 있고 그 가족들도 여러 가지로 불편을 겪고 있다는 설이 항간에 떠돌고 있는 시점에, 며칠 전 동포 한 명이 서울 한복판에서 동사한 이 마당에 와서 “국적포기를 한 적은 없다”고 발뺌하고 현재는 아예 출국까지 해서 자취를 감춰버리고 있다. 여기에서 “한국에 있어서 통일이 첫째이고 탈북자가 둘째이며 조선족은 어디까지나 세 번째로 밖에 되지 않는다”고 조선족사기피해자들이 모인 장소에서 역설하던 서경석목사를 다시 연상하게 된다. 이 사람이 과연 진정으로 조선족의 이익을 대변하고 성스러운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목사가 옳은지 아니면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참 의심스럽다. 국적포기도 국적회복도 희망사항으로 되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이번 농성에 참가한 5천여 명, 그것도 대다수가 4년이상 체류자로 모두 강제추방대상자인 이들의 내일이 참 걱정스럽다. 이는 절대 노무현대통령의 한차례 위문을 통해 해결을 볼 사항이 아니다. (물론 서경석목사는 여기에 만족을 느낄 수 있겠지만) 사실 대다수 조선족들은 평생 한국에서 3D업종에 종사하면서 근근득실로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으며 설사 한국국적이 주어졌다해도 한국국민으로서의 의무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자세가 갖춰져 있는 것도 아니다. 강제추방을 면하고자 시간벌이를 하고 있음을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이점에 대해 서목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매듭을 풀려면 매듭지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 여기에서 서경석목사의 각성과 결단을 다시 한번 기대해보고자 한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더 이상 눈앞의 이익을 위하여 민족적인 대의에 어긋나는 행위를 거듭해서는 안된다. 시간이 급하고 상황이 복잡할수록 우리는 냉전한 판단력을 확보하고 서로의 지혜와 힘을 합치면서 함께 난관을 타개해야 한다. 재외동포법개정을 위해 전개되고 있는 전반 과정을 지켜보면서 약간의 도움이 되고자 개인적인 소감을 몇마디 적어본다. 우선 우리는 대상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재외동포법개정은 단지 조선족을 상대로 개정되는 것이 아니다. 헌법불일치가 나온 것은 기존의 동포법에는 중국, 러시아 및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동포들이 제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재외동포법개정을 논의함에 있어서 전반적인 국면을 돌보아야지 불법체류, 강제추방과 같은 조선족사회 구성원들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문제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된다. 다음 동포법문제개정은 현재 국적포기운동의 영향으로 이미 중한 양국간의 외교적인 이슈로 부상되어 있고 이 점에 대해 중국정부도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정부간의 대화가 불가피적인 것으로 되고 있다. 때문에 진정 동포법개정을 쟁취하고 또 이에 동참하고 있는 모든 단체와 개인들은 정부간의 대화를 통한 원만한 결실을 위해 동조해야 하고 극단적인 행위를 삼가야 한다. 그리고 이번 운동을 계기로 조선족사회의 심각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많은 빚을 지면서 한국행을 선택했고 또한 요행을 바라면서 밀입국까지 시도했던 사람들, 양심으로 자신의 처사를 반성해 보았으면 한다. 인제 와서 모든 책임을 한국정부에 혹은 한국인에게 떠밀고 부모님 고향을 간절하게 그린다는 명목으로 한국국적을 요구한다는 언사를 입에 담기에 너무나 부끄럽지 않는가를. 자식들의 이러한 행실을 돌아가신 부모님도 용서치 않을 것이다. 더욱이 조선족사회의 중추로, 리더로 자부하고 있던 지성인들도 한번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민족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이제라도 우리가 차분이 앉아서 서로의 희망사항에 대한 의견교환을 통해 최선의 노력과 방도를 강구하여 우리들의 바램이고 일차적인 목표였던 동포법개정안을 통과시키기에 힘을 모아야 한다. 이는 단순한 편견을 벗어나 세계화 시대, 동북아 시대 우리 민족의 발전전략에 보조를 맞추어 나간다는 전략적인 시각에서 관심을 가져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조선족과 한국인 사이 서로간의 알륵을 풀어가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눈앞의 이익과 불쾌함을 가지고 이번 일을 대한다면 우리는 장차 민족의 죄인으로 낙인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민족이 번영하여야 개인도 잘 살게 된다. 서울88올림픽 당시 조선족들은 얼마나 긍지를 느꼈던가. 그러한 긍지는 동족이라는 의식의 발로가 아니겠는가. 우리가 이러한 자발적인 동족의식을 법적인 차원에서 그 연대성을 강화하고자 동포법을 제정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민족적인 지혜를 모아봅시다.
26    7. PC방 자원을 유용하게 활용하자 댓글:  조회:1949  추천:54  2008-05-16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7PC방 자원을 유용하게 활용하자  허명철 연변대학 교수지난 5월 연길에서 중학생 3명이 한 학생을 살해하고 시체까지 분해해버린 끔직한 사건이 발생하여 사람들을 경악케 하였다. 놀라운 것은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문책의 대상이 된 PC방이 곤혹을 치르게 된 것이다. 관계부문에서 실시한 집중단속에 의해 미성년을 출입시켰거나 영업시간이 자정을 넘긴 48개 PC방은 영업중지를 모면하지 못했다. 90년대 말기 연길에 처음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던 PC방은 불과 몇 년 사이에 급속히 늘어나 주요한 공공영업장소의 하나로 되었으며 사람들이 컴퓨터를 익히고 전 사회에 컴퓨터문화를 보급하는데 일조해왔다. 그러나 PC방에 드나드는 단골 중 상당수가 중소학교 미성년학생들이고 최근 들어 미성년의 위법범죄행위가 상승세를 긋고 있는 것은 이들이 PC방에 다니는 것과 연관되며 학업에 열중하지 않는 것도 역시 PC방에 다니는 것과 연관된다는 사람들의 인식이 만연되기 시작하면서부터 PC방은 완전히 미성년을 부식시키는 장본인으로 낙인되었고 전 사회의 질타의 대상으로 찍혔다. 때문에 방학 때 학교에서 내보내는 주의 사항에도 교회버금으로 PC방에 다니지 못함이라고 적혀있다. 이번에 발생한 사건도 어느 정도 PC방과 관련되어 있기에 PC방은 당연히 관계부문의 엄격한 단속과 사회적인 질타를 면치 못한다. 물론 현재 PC방은 관리상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미성년들을 출입시키고 불량인터넷을 접속시키는 것은 모두 비난받아야 할 행위이다. 2003년도 공안부문에서 나포한 미성년범죄혐의자는 전체 범죄협의자 총수의 21%에 달했는데 미성년 위법, 범죄중 80%가 인터넷접속과 연관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감투를 PC방에 들씌우고 정보화시대를 주도해 나가야 할 후대들이 컴과 마주할 수 있는 주요한 루트를 원천 차단한다는 것은 어쩐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현재 우리는 자연공간 속에서의 삶을 살아야 할뿐만 아니라 사이버 공간에서의 생존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때문에 학교에서도 자질교육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컴퓨터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컴퓨터는 량적으로 한정되어 있고 수업용으로밖에 활용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개개인이 컴을 갖추기는 아직 무리다. 연길시의 경우 개인이 컴을 갖춘 비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하지만 그것도 특정 계층에 한정되어 있다. 상당수의 학생들, 특히 농촌에서 온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 컴지식을 활용할 수 있고 사이버 공간에서의 생존능력을 키울 수 있는 곳이 현재로서는 대중화한 PC방뿐이다. 어느 한 조사에 따르면 초중, 고중 학생중 피시방에 간적 있는 학생은 90%에 달하며 경상적으로 다니는 학생은 40%에 달한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PC방을 다니고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취하는 조치는 매우 단순한바 무조건적인 “NO”이다. 정보화시대에 대비해 실시하고 있는 자질교육은 당연히 컴을 떠날 수 없다. “컴지식을 장악해야 한다. 하지만 PC방에 다녀서는 안된다.” 폐쇄된 교육행위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PC방의 존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이률배반적일 수밖에 없다. 이률배반적인 논리에서 탈출하고 학생들에게 올바른 교육을 시도하려면 우선 학교의 治績을 위하여 상급의 지시를 집행하기에만 급급했던 우리의 교육행위, 설교에 가까울 정도의 이데올로기적인 도덕교육, 학업성적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학생평가제도는 과연 합리적이었는가를 진정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한다. 청소년들은 비록 성숙치 못하지만 나름대로의 사회를 보는 시각을 갖고 있으며 행위판단의 기준을 갖고 있다. 생리적 년령에 맞지 않게 성숙되어 가고 있는 미성년들의 심리에 대한 연구가 따라가지 못하고 이념주입식의 도덕설교를 계속 진행한다면 “5일과 2일 싸움”에서 패자로 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이 학교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학업보다 컴에 열중하고 학교보다 PC방을 선호하게 만든 진정한 장본인은 어찌 보면 “돈에 눈이 어두운” PC방 업주가 아닌 이른바 성스러운 교육자들이다. 그리고 PC방에 대한 인식과 평가도 올바르게 해야 한다. PC방 경영자도 납세인이다. 그 만큼 그들의 노동도 존중을 받아야 하며 법적인 보호를 받아야 한다. 현재 학교와 사회 다수 성원들에게 있어서 PC방은 완전히 온역과 같은 존재이지만 사실은 우리가 보다 많이 활용해야 할 자산이지 기피해야 할 온역이 아니며 범죄를 부축이는 온상은 더구나 아니다. 특히 현재 학교마다 경비가 부족하여 학생들에게 충분한 컴활용공간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자원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현재 규정에 따르면 학교정문 200메터 이내에 PC방을 경영하지 못한다고 되어 있는데 필자는 오히려 학교 정문옆에 PC방을 꾸려 학교와 손잡고 학생들에게 컴퓨터공부도 시키고 관리도 강화하여 학생들이 건전한 컴퓨터문화를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 어떤 시행착오는 여러 가지 수단으로 가히 그 손실을 최대한 줄이거나 혹은 미봉할 수 있으나 교육에서의 시행착오는 만회할 수 없다. 그 어떤 治績이나 안일을 위한 교육은 결과적으로 자라나는 세대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학교는 응당 PC방 업주와 손잡고 직접관리에 참여하여 학교학생들에게 보다 훌륭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야 한다. 단순한 영업중지 혹은 미성년출입금지라는 원천봉쇄는 미성년들에게 또 다른 에너지분출구를 찾게 할뿐이다.
25    6. 다시 반성해 보는 미성년교육 댓글:  조회:1978  추천:71  2008-05-16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6다시 반성해 보는 미성년교육 허명철 연변대학 교수지난번 중학생들의 살인사건이 발생한 후 최근 들어 연변에서는 전 사회적으로 미성년을 관심하고 미성년에 대한 사상도덕건설을 강화하는 고조를 일으키고 있다. 객관적으로 놓고 볼 때 우리는 한시도 미성년에 대한 관심을 소홀하지 않았고 학교, 가정, 사회가 총동원하여 미성년에 대한 사상도덕건설을 진행해 왔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미성년문제는 날로 심각해지고 범죄률도 점차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우리들이 여직껏 진행해 왔던 미성년교육이 내용이나 혹은 방식에 있어서, 또는 교육대상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뭔가 잘못되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누구도 교육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얼마 전에 실린 신문기사의 관련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성년위법행위의 산생원인에 대하여 시장경제 실시 이후 사회적으로 만연되고 있는 퇴폐적인 가치추구의 영향, 날로 늘어나고 있는 결손가정과 가정교양의 홀시, PC방의 유혹 지어 종교침투까지 지적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현재 실시하고 있는 학교 교육자체에 큰 문제가 있음을 승인하지 않는다. 때문에 미성년문제가 말밥에 오르게 되면 습관적으로 그 원인을 객관에 돌리고 있으며 주관적 원인에 대한 반성은 오직 미성년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고 교육을 바싹 틀어쥐지 않았다는 것이 고작이다. 자기의 동년시절을 추억해 보면 알 수 있듯이 학교 혹은 사회에서 진행한 인격적인 수양과 기본적인 인성교육은 모두 천편일률적인 영웅 따라 배우기와 혁명전통교육을 통해서였다. 이것마저도 오늘은 이 영웅을, 내일은 저 모범을 따라 배워야 했었고 청명날엔 열사기념비를 찾아 “공산주의위업을 위한 항상 준비”를 선서해야 했다. 완전히 성인들을 상대로 진행해야 할 교육을, 공산당원에 대한 요구를 우리가 미성년들에게 강요해 왔던 것이다. 사실 우리의 교육대상은 말 그대로 미성년이다. 이들은 자기의 동심이 있으며 동심에 맞는 생활과 배움을 바라고 있다. 왜서 많은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지겨워하고 PC방을 찾고 있는가를 우리는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한다. 학업에 영향받는다고 PC방에 다니지 못하게 하고, 안전이 보장받지 못한다고 산이나 강가에 가지 못하게 하고, 세계관이 형성되지 않았다고 교회출입을 엄금하고....이와 같이 외부와의 접촉을 모두 차단시키고 학교란 울타리에 가두어 넣고 매일과 같이 진행되고 있는 현실과 대상을 이탈한 메마른 사상교육과 유토피아적인 도덕설교는 결국 호소력과 흡인력을 잃어가게 된다. 혹자는 중국이란 교육체제와 환경에서 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구조적인 모순과 체제의 벽에 부딪치게 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최소 영혼의 공정사이고 사회의 양지로 불리우고 있는 지식인으로서의 최소의 책임마처 감당하지 못하고 상급의 지시를 따르고 권력에 좌우되어 치적공정에만 열중한다면 교육자가 아닌 어용설객으로 되고 만다. 일례로 매번 방학 때 학교에서 규정된 수칙을 보면 교회에 다니지 못한다는 내용이 꼭 들어있다. 헌법에는 분명히 신앙자유로 쓰여 있지만 단지 미성년들은 나이가 어리고 세계관이 성숙되지 않았다는 원인으로 종교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엄금한다. 그렇다면 세계관이 성숙되지 못한 어린 학생들에게 매일 넥타이를 매고 공산주의후계자로 될 것은 선서시키는 것 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인젠 우리도 현실을 직시하고 미성년들의 어깨에 지워진 무거운 멍에를 벗겨 버리고 동심을 즐길 수 있게 해보자. 교육자의 입장에서 미성년들을 인간으로 키워가는 것이 기본이지 그 어떤 정당이나 혹은 이념의 투사를 배양하는 것을 목표로 선정해서는 안된다. 경제는 전면적인 시장경제로 나가고 의식은 여전히 계획경제대로 나간다면 토대와 상부구조의 이탈은 결과적으로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야기시킬 뿐이다. 경제구조가 급변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가 여전히 과거의 모습대로 미성년들에게 사상도덕교육을 진행한다면 이 역시 마르크스주의학설과 위배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24    5. 중국동포사회는 어디로 댓글:  조회:2208  추천:80  2008-05-16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5중국동포사회는 어디로 허명철 연변대학 교수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동포사회는 자기민족의 언어와 문자 및 풍습을 거의 완벽하다고 할 정도로 고이 간직해 왔었고 또한 마을마다 기념비가 세워져 있을 정도로 거주국의 혁명과 건설에 많은 기여를 해왔다.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 민족 중 유일하게 거주국에서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고 거주국에서 문화소질이 종합1위로 자리매김하면서 자기의 정치적, 문화적 위상을 빛내왔었다. 뿐만 아니라 중한수교를 계기로 상당기간 한국기업의 중국진출, 한국산품의 중국시장 개척을 위해 명실공히 홍보관 역할을 해왔었으며 남북간의 민간적인 접촉을 위해 가교적 역할도 해왔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거주국으로부터는 "문제"꺼리로, 모국으로부터는 "두통"꺼리로 되었고 불신의 대상으로 되어버렸다. 중국의 동포사회의 튼튼한 뒤심이 되어야 할 모국과 거주국으로부터 신임을 잃어가고 있고 우세가 되어야 할 "이중성"이 점차 불신을 자초하는 부담으로 되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동포사회구성원들의 정신적 각성과 실천적 자각마저 없다면 우리들의 미래는 말 그대로 "암담"해질 수밖에 없다.필자의 이러한 느낌은 지난 러시아고려인이주 140주년행사에 참석하면서 더욱 강열해 진다. 러시아고려인이주 140주년행사에는 한국에서 재외동포재단 이광규이사장, 열린우리당 이부영의장, 그리고 송월주스님을 비롯한 지명인사들이 대거 참석했고 “양만춘호”함대까지 합세할 정도로 모국에서 중시해왔다면 러시아정부에서도 특파원을 파견하고 지방 행정관료들, 각개 민족대표들이 참석하는 등 고려인에 대한 깊은 배려를 보여주었다. 행사과정에서 한국 및 러시아관원들을 선두로 도보행진까지 진행했고 연해주 각개 민족대표들의 축하공연 및 전통음식잔치까지 펼쳐져 고려인사회의 위상이 한결 돋보였다. 이는 지난 2002년에 있은 연변조선족자치주성립 50주년기념행사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주급 행정단위라 중국정부에서 별로 중시하지 않았었고 한국측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만 사실이다. 더욱 부끄러운 것은 노들강변과 같은 우리민족 민요도 중국어로 부르고 자치주 주장의 축하연설에서도 외국 적대세력들의 침투방지를 강조해야만 했던 행사의 전반 분위기는 너무나도 "정치"적이었고 조선족의 축제가 아닌 당의 민족정책을 홍보하는 마당으로 되었다. (물론 자치주성립기념행사인만큼 순수한 조선족의 축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변명할 수는 있겠지만.) 그리고 이번 걸음에 한국의 유지인사들이 모금하여 세워진 신한촌 기념비, 우정촌 기념비, 그리고 중국조선족교육의 한 폐지를 장식한 이상설기념비를 참관하면서 우리들은 응당 세워야 할 기념비는 세우지 못할망정 기존에 세워놓은 기념비마저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있음으로 하여 부끄러움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모종의 객관적인 원인도 있겠지만 200만 동포사회는 자기의 권익을 지키기 위하여, 자기의 역사와 미래에 대해 책임지자고 어떠한 노력들을 기울려 왔는가를 다시 한번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젠 과거의 영광 속에서 깨어나 새로운 영광을 창조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우리는 같은 민족임을 내세워 한국국민과 정부를 향해 자유왕래와 같은 여러 가지 요구를 제기할 용기가 있다면 중국에서도 국민의 권리를 당당하게 행사해야 한다. 소수민족만이 아닌 떳떳한 국민의 자세로 자기의 권익을 수호해야 한다. 정부를 탓하기에 앞서 소수민족정책에서 혹은 민족지역자치법에서 제창하고 보호하고 있는 것마저 우리는 잃어가고 있으며 지어 민족역사, 민족예술, 민족체육 등 학과목들을 설치하라고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족학교들에서는 아직 보급시키지 못하고 있다. 세계화와 시장화는 개인에게 무한한 생존무대를 제공해 줄 수 있지만 공동체의 생존에 대해서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 현실에서 개개인의 삶도 중요하겠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존재와 삶이다. 한 개 공동체의 존속은 그 소속 성원들의 의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개개인이 개인적인 삶을 초월한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고 실천해 나간다면 우리들의 미래는 밝아 올 것이다. 중국뿐이 아닌 세계를 무대로 생존의 진로를 모색해야 하는 오늘날 서로의 물리적 공간거리는 멀어질 수 있겠지만 공동체를 지향하는 영적인 혹은 심적인 거리는 축소되어야 하는바 200만 동포사회를 상상의 공동체가 아닌 명실공이 실존하는 공동체로 영위해 나가기 위하여 운명을 함께할 수 있는 네트워크구축을 가속화해야 한다.
23    4. 소중한 순간은 댓글:  조회:1906  추천:59  2008-05-16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4소중한 순간은허명철 연변대학 교수우리는 매일 매일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와 교제 속에서 해야 할 일들을 마무리하면서 하루 일과를 마친다. 그런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 만나게 되고 원하던 원치 않던 해야 할 일들을 하다 보니 대체 무엇이 소중한 존재이고 무엇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식도 가지지 못한 채 채바퀴 돌듯이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이런 삶을 습관적으로 되풀이 하고 당연시하다 보면 주변 사람들의 존재를 소중히 여기지 아니하고 서로의 따뜻한 인정도 가꾸지 아니하여 점점 메마르게 되며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무감각하다. 즉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매 순간과 매 사람, 그리고 내 인생에서 꼭 해야 할 일들을 모두 망각한 채 뭔가에 끌려다니는 피곤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사실 우리 개개인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 순간순간들이 아닐까. 즉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바로 이 순간이며, 인생을 함께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바로 이 시각 나의 옆에 서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이 사람들을 위하여 내가 이 순간 해야 할 일들을 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가장 귀중한 시간에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위하여 응당 해야 할 일들을 하는 것 또한 가장 현명한 것이며 이 또한 인생의 낙을 즐기고 인생을 가치 있고 의의 있게 장식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22    3. “젖소도 알아보는 견학”을 보고 댓글:  조회:1921  추천:48  2008-05-16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3“젖소도 알아보는 견학”을 보고허명철 연변대학 교수  얼마 전 한국뉴스채널인 YTN에서 “중국에서 새마을운동을 배우러 한국에 35만 명을 파견”한다는 뉴스(2006-06-12)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35만 명 연수단, 13억을 웃도는 인구대국으로서는 적은 숫자라고 할 수 있겠지만 국내 연수도 아닌 국외 연수단이라고 할 때 이는 엄청 방대한 대오가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로 중국정부에서 현재 3농문제(농촌, 농업, 농민)의 철저한 해결을 위한 굳은 의지와 그 대안으로 내놓은 향진도시화방안에 대해서도 긍정하고 싶다. 하지만 굳이 35만 명이란 방대한 대오를 한국으로 연수를 보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은 가셔버릴 수 없다.   한국의 새마을운동이 우리들의 농촌건설에 있어서 하나의 모델로 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농촌의 지역적 분포, 농촌산업경제구조, 농촌인구의 기본소질과 자원우세 등등의 구체 실정을 고려해 볼 때 새마을운동은 유일한 대안이 아닌 단지 하나의 선택 가능한 성공사례일 뿐인데 과연 이처럼 방대한 연수단을 파견할 필요성 내지 효과성이 있는지에 대해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리고 이 35만 대오에 합류할 연수단 성원은 어떤 기준에 의해서, 어떤 사람들이 선발될지도 걱정스럽다. 80년대 중반 미국에서 열린 천문학방면의 국제학술회의에 중국에서는 10여명의 대표단을 파견했지만 결국 학자는 고작 3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시청의 행정 관료들이 학자로 변신해서 국내 한 유명학자가 분노를 터뜨린 적 있었다. 이번 연수단은 비록 농업공무원으로 구성한다고 하지만 국내 위탁 여행사를 통해 순번으로 한국에 나간다고 할 때 이 같은 불미스러운 일들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또한 비록 같은 동양권에 속한다 하지만 한국은 나름대로의 민족적인 정서와 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한국의 언어와 문화에 익숙하지도 못한 연수단성원이 단지 통역에 의해서 7일 연수와 3일 견학이란 짧은 시간 내에 진정 새마을운동의 성공비결을 전체적으로 소화해낼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여기에서 북경시위 모 영도가 어느 한 대회에서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내용인즉 유고슬라비아의 한 젖소농장을 참관방문 갔더니 그 농장 일군들이 하는 이야기가 “농장의 젖소들도 인젠 중국손님들을 알아본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대표단이 참관방문을 갔었으면 농장의 젖소들마저 중국방문단을 알아본다고 하겠는가?   물론 타인의 성공경험을 허심히 배우는 자세를 갖추는 것은 필요하고 몸소 현지에 가서 성공담을 겸허히 배우는 것도 비난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견학이나 연수를 명목으로 국비관광 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젖소마저 알아볼 정도로 방문단은 그칠 새 없었지만 국내 젖소산업에 과연 얼마나 큰 비전을 가져왔는지 그 견학결과에 대한 평가를 한번 묻고 싶다.   사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라면 견학뿐만 아니라 전문가를 초청해 지도를 받을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에게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바로 16차 당대표대회에서도 누차 강조했던 창신의식이며 이러한 창신력을 바탕으로 한 우리의 현실에 알맞은 原創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특색을 강조하는 우리가 왜서 구체사업에 있어서는 자기의 특색을 띤 개혁방안과 원창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가? 특색이 단지 우리의 과실을 변명하는 방편으로만 된다면 이는 특색이 아닌 “특색”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진정한 중국특색의 새농촌건설을 위해서 우리의 견학문화도 좀 더 실제적이고 효과적으로 활용했으면 하는 바램일 뿐이다.   한가지 부언한다며 진정 새마을운동을 할려면 禁書로 된 “중국농촌조사”부터 광명을 보게 해야 하며 찬송가가 아닌 진실한 농촌의 어려운 사정을 전국민이 알게 하여야 하며 또한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이 과연 무엇인가도 알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전국민의 주인다운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고 새마을운동도 성공으로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21    2. 의사표현과 인적관계 댓글:  조회:1962  추천:60  2008-05-12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2의사표현과 인적관계허명철 연변대학 교수누군가 “음식은 정성이고 마음이다”고 했다. 하지만 정성을 바쳐 만든 음식도 입맛에 맞지 않아서 고객의 불만을 자아내는 경우가 가끔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를 접한 고객 또한 상이한 태도를 보여준다. 어떤 사람은 수저를 놓고 조용히 나가고, 어떤 사람은 그런대로 식사를 마치고, 또 어떤 사람은 주인을 불러 야단친다.    우리들이 사회생활에서 주고받는 대화도 어쩜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말하는 사람은 혹간 본의 아니게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거나 혹은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을 해서 실수를 범할 때가 있다. 이럴 경우 대화가 계속 유지되느냐 하는 것은 듣는 사람의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 그 사람이 화를 내거나 또는 떠나 가버리면 대화는 끝난다. 반면 그냥 참아가면서 대화를 이어간다면 말을 실수한 사람이 사과할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고 나아가서 인간적 유대관계를 계속 끈끈이 이어갈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말하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이 수준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리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이라 해도 상대가 알아듣지 못하거나 접수하지 못한다면 진짜 “소귀에 경 읽기”가 된다. 반면 질서 없고 논리가 떨어진 이야기라 해도 듣는 사람이 수준이 있으면 금방 상대의 의도를 포착한다.    갓난 애기들이 울면 어른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쉽게 짜증을 낸다. 따지고 보면 말할 줄 모르는 애기는 울음이란 자신의 대화방식으로 어른들과 대화를 요청했고 자기의 요구를 제기 한 것인데 어른들이 알아듣지 못하니 더 큰소리(울음)로 호소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애기의 메시지를 독해 못한 자신을 탓하기에 앞서 애기한테 짜증을 내기가 일쑤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애기를 잘 본다는 보모는 따지고 보면 애기의 울음을 독해 잘할 뿐이다. 다시 말하면 울음이란 대화방식에 비교적 익숙하기에 쉽게 애기를 달래고 애기의 요구를 만족시켜 줄 뿐이다.    그러므로 보다 윤활한 인적관계를 유지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려면 자기 의사를 알기 쉽게 조리 있게 표현하는 능력도 키워야 하지만 타인의 말을 들을 줄 아는 능력도 키워야 한다. 즉 자신의 듣는 수준을 제고하기에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20    현시대에 있어서 민족종교의 의미 (허명철) 댓글:  조회:2516  추천:91  2008-04-01
현시대에 있어서 민족종교의 의미 허명철 (연변대학교 민족학연구소) Ⅰ. 인류문화와 종교    주지하는바와 같이 인류사회의 형성과 더불어 탄생한 최초의 문화형태는 종교이다. 인간이 창출한 초기의 종교문화는 비록 자연의 위력에 대한 敬畏意識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지만 인간의 영혼을 啓示하여 참된 삶을 지향한다는 종교의 본연적인 취지를 드팀없이 실천해 왔었고 또한 이러한 궁극적인 목표의식과 실천행위를 통하여 인류역사와 문명의 맥을 끈끈히 이어오게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종교를 인류역사발전의 창조적인 원동력이자 전반 인류문화의 발상지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역사적으로 놓고 보면 우리는 하늘을 숭상하고 인간의 생명과 양심을 비롯한 모든 가치ㅢ 근원으로서 하늘의 인격성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를 창조해 왔었으며 나아가 하늘과 땅과 조화를 이루는 天地人 三才의 同格性을 바탕으로 한 사고의 틀을 형성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전통은 경천사상, 인간존중사상, 생명존중사상, 조화정신 등 문화적 기틀을 형성, 유지해 오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1) 따라서 우리는 하늘을 도덕적인 양심의 근원으로 생각하였고 하늘을 인간생명의 존재근거로 삼았으며, 하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을 삶의 가장 존귀한 가치로 간주하여 왔다.    이로부터 우리 민족의 근원적인 사상인 “인간중심”사상, 즉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사상[홍익인간 사상]은 곧 하늘의 뜻을 받드는 것이 된다. 하늘이 만물을 낳아 기르지만 그 중에서 인간만이 하늘의 그 뜻, 사랑과 애정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하늘은 곧 사람을 통하여 그 똣이 존재할 수 있게 되며, 사람을 통해서 그 뜻을 지상에 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하늘과 인간은 뜻으로 통하는 존재이며, 하늘과 인간은 同格이 되는 것이며, 하늘의 뜻을 받드는 것이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 되며,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이 곧 하늘을 받드는 것이 된다. 이러한 사상은 근대 민족종교운동의 효시로 되고 있는 동학에서 인내천으로 표현된다.   아울러 근대화 물결의 충격과 외세의 무력침략에 의해 민족문화는 물론 주권마저 유린 당하는 수난기에 있어서 우리 민족의 전통사상은 여러 민족종교단체들에 의해 계승되어 인존사상, 선민사상, 해원상생사상, 후천개벽사상 등 형태로 그 맥을 이어왔으며 또한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국권회복과 민족자존을 위한 주체적인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는바 이러한 운동은 단순한 민족운동의 차원을 초월한 天道로써 어지러은 인간세상의 질서를 바로 잡고자 하는 평화운동이요 상생운동이기도 하였다.    이제 하나의 지구촌에서 공생공존해야 하는 인류는 평화의 소중함을 ㄷ욱 실감하고 있지만 물질적인 생존과 번영을 위한 민족 간, 국가 간의 치열한 경쟁은 또한 피치 못할 것이며 그에 따른 민족문화의 생존을 위한 이른바 문화전쟁도 역시 피치 못할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들이 경제적인 성장을 추구는 것도 바람직하지만 문화적인 성장과 가치추구도 홀시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이제 있게 될 문화전쟁에서 살아남아 우수한 문화를 재창출하고 인류의 행복에 이바지 하고자 한다면 우선 전통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있어야 하며 전통문화 특히 도덕문명으로써 인류평화를 실현하여 진정한 지상천국을 건설하는데 그 궁극적 목적을 두고 있는 민족종교문화에 대해서도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 여건으로 현재까지 우리는 자체민족문화유산의 중요한 부분이며 또한 오늘날 우리들의 현실생활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민족종교의 근본정신에 대한 정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학문적인 차원에서 놓고 볼 때 사실 조선족사회의 민족종교운동연구는 일제시기 조선(한)민족종교운동에 대한 종합연구에 있어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며 해외 조선(한)민족종교운동사연구에 있어서도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지난 일제시기 조선족사회에서 활발히 전개되었던 민족종교운동에 대한 연구가 오늘날 조선족사회의 민족적인 삶의 질 향상과 민족정체성 확립에도 유조하다고 할 때 이러한 작업은 더욱 절실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놓고 보면 우리의 先人들은 경제적인 삶의 어려움 때문에 중국동북지역으로 이주해 왔었다. 그 만큼 경제적인 풍요로움에 대한 추구가 조선족사회에 있어서 일차적인 목표로 되어왔던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단순 경제적인 삶에 만족을 느끼지 않았으며 보다 높은 삶의 경지를 지향하는 정신적인 기둥이 있었고 추구가 있었던 것이다. 모종 의미에서 말하면 이 같은 정신적인 기둥이 바로 전통문화를 통해 우리들의 삶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종교적인 신념이었다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바로 이러한 정신적인 支柱, 문화적인 바탕을 근대 격변기에 탄생했고 민족의 자주적 독립과 평화의 실현을 위해 줄기차게 진행해 왔던 민족종교운동에서 찾아보고자 하며 지난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활발히 진행되었던 민족종교운동과 그 사상에 대한 총체적인 고찰을 토대로 오늘날 물질주의, 향락주의, 실용주의가 합리화되고 있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우리들이 하나의 공동체로 살아가고 나아가 인류문명의 진보와 문화창달에 기여할 수 있는 그 도경을 찾아보는데 중점을 도고자 한다.  Ⅱ. 조선족사회형성에 있어서의 민족종교의 역할      우리 민족이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 중국 땅에 이주해 오게 된 동기를 요약해 본다면 정치적, 경제적, 시대적 원인 등으로 다양하게 구분된다. 경제적인 삶을 위해 이 땅에 건너온 파산된 농민이 있는가 하면 정치적인 원인으로 동북지역으로 건너와 민족사상의 함양, 배일정신의 고취, 독립운동기지 건설, 무관학교의 설립 및 반일무장단체 조직에 주력해온 독립운동가들도 있다. 물론 우리가 현재 주목하고자 하는 민족의 전통문화도 解放欲求나 革新欲求나 再生欲求를 반영하는2) 신생한 민족종교단체들에 의해 이 에 전파되었다.     신생한 민족종교가 빠른 시일내에 동북지역에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만주라는 신천지에서 “神人”, “眞人”이 강림하고 출현한다는 당시 사람들의 소박한 종교적 심성과 관련된다.3) 이들은 대부분 생활난으로 이주하였지만 그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讖言說의 “眞人”과 “勝地”가 동북지역에 있다는 소문을 믿고 월강한 사람들이다. 이러한 현상은 자연재해로 인한 사회적 불안 속에서 생존의 출구와 구원을 갈구하는 민중들이 삶에 대한 희망을 “他者”로부터 얻으려 하는 욕망과 욕구를 반영하는 종교적 심성의 표출로서, 이러한 종교적인 심성에 의한 그 어떤 “預言에 대한 盲信”은 일종의 행위동기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4) 여기에 외국 선교사들과 민족종교단체들에서 선교 혹은 반일을 목적으로 이 지역에 이주한 민족구성원들을 주목하게 되고 상당수의 독립운동가들 또한 “宗敎救國論”에 입각하여 종교적 형식을 사회결사의 모체로 간주하게 됨에 따라 종교는 조선인 사회의 응집력을 결집하는 일종의 유대역할을 하게 되었고 宗立학교는 민족의식과 독립 정신을 함양하고 민족계몽교육운동을 전개하는 전초지로 되었다.    이와 같이 이주민들이 소유하고 있던 초기의 소박한 종교적 심성은 종교단체와 독립운동가들이 뚜렷한 목표의식과 실천동기를 부여함에 따라 이들의 삶 자체도 단순한 경제적 목표를 초월한 나라와 민족을 위한 공동체적 삶의 의의세계를 구축하게 되었고 개인적인 신앙생활도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의 신앙생활을 놓고 보면 민간신앙을 비롯하여 기독교, 천주교, 불교, 유교 이외에 조선에서 유입된 천도교 ․ 시천교 ․ 청림교 ․ 대종교 ․ 증산교 ․ 원종교 등 각종 민족종교들이 있었는데 이러한 민족종교는 당시 조선족사회에 정신적 기탁으로 되고 삶의 희망을 심어주면서5) 그들이 삶의 터전을 닦고 민족공동체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조선족사회에서의 종교적 생활은 동학운동의 영향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동학운동을 효시로, 민족종교에서 주장했던 “事人如天”의 평등사상과 “後天開闢” 등 사상은 망국의 서러움을 겪고 있는 민족에게 희망을 안겨주었으며 “하느님”(시천주)을 誠, 敬, 信을 다하여 지성껏 모시면 신통하여 “無極大道”를 크게 깨달아 현존사회를 개조하여 후천개벽을 실현하여 지상낙원을 건설할 수 있다는 주장은 당시 일제의 식민지통치 하에 있는 우리 민족의 염원을 반영하였는바 이러한 교의나 주장의 내면에 안받침 되어 있는 사상은 현존의 “일제식민지통치는 멸망하고 조선은 독립된다”는 반일민족독립사상이었다.    당시 민족위기의 역사적 상황에서 동북지역으로 망명한 애국지사와 독립운동가들은 국권회복의 수단으로써 종교전도와 애국계몽교육을 결합시키면서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는 기틀을 마련하고자 하였으며 이 지역에서 진행된 민족종교운동도 개인적인 신앙의 차원을 넘어 민족문제, 국권회복과 민족독립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종교적 저항으로 전환되었다.    특히 민족종교단체들에서 설립한 종립학교는 반일민족교육운동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면서 민족정신을 환기시키고 평등과 자유와 같은 근대적 민주의식을 키우는 역할을 하였다. 그 결과 무장독립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사상적 ․ 조직적 및 대중적 기반을 마련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1919년 기독교 ․ 천도교 ․ 청림교 ․ 공교회를 중심으로 용정에서 일어난 “3.13만세운동”을 효시로, 4월 말까지 만주지역 조선인들은 약 80여회의 집회를 거행하였고 117,450명이 참가하였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동북지역에서 일어난 우리민족의 만세시위운동에는 민족종교지도자 및 단체들이 앞장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다. 6) 뿐만 아니라 동북지역에서 독립운동이 점차 무장투쟁으로 전환되던 시기에도 역시  종교계에 몸담고 있던 민족주의자들이 무장투쟁을 주도하였는데 각 독립운동 단체의 구성원들 가운데 상당수는 종교인이었다.7)    일제시기 적극적으로 민족운동에 참여했었고 또한 이미 학계의 연구작업을 통해 널리 알려진 대종교는 민족종교인 동시에 반일독립운동단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며8) 대종교에서 진행한 반일독립운동은 중광단 ․ 흥업단 ․ 정의단 ․ 군정부, 그리고 북로군정서와 서로군정서의 활동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이미 많이 연구가 되어 있기에 본문에서는 생략하고자 한다. 구체 내용들에 대해서는 大倧敎總本司에서 펴낸『大倧敎重光60年史』, 1970]    대종교 외에 동북지역에서 적극적으로 반일투쟁을 벌린 민족종교단체로는 청림교를 들 수 있다. 20세기 초 동학과 단군신앙으로 민족의식과 민족혁명전통을 보존, 계승하여 설립된 청림교는 1919년부터《야단》을 조직하여 반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으며 1920년 5월에는 “민족의 번영과 조국의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각 독립운동단체의 연합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끼고 당시 “전 민족이 신뢰하는 대한군정서와 합병”하기로 결정하였다. “야단”은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와 연합하여 반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청림교신도들을 동원하여 각 반일독립단체에도 병력과 군수품을 공급하였다. 1920년 봉오동전투시 청림교는 신도들을 동원하여 병력과 군수품을 지원하였으며 그해 10월에 있은 청산리전역에서도 북로군정서와 연합하여 일제침략군을 타격하였을 뿐만 아니라 많은 병력과 군수품을 지원하였다.9) 그뒤 반일독립무장투쟁이 저조기로 진입하게 되자 청림교는 1920년대 후반기부터 단군을 비롯한 조선의 역대 개국시조를 신앙대상으로 삼고 용정에 영모전을 건축하고 개국시조들의 공덕구석비와《유태묘결명》비사까지 세워놓고 장기적으로 “멸왜기도”를 드리면서 광범한 신도들에게 반일민족독립사상을 선전하였다.10)    결론적으로 말하면 민족종교는 다양한 동기와 목적으로 중국동북지역에 건너온 온 이주민을 중심으로 하나의 민족공동체사회를 결성함에 있어서 하나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으며 전반 조선족사회가 정신적 ․ 실천적으로 반일민족교육운동과 무장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중추로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즉 특정 종교를 배경으로 조직된 각 독립운동단체 구성원과 조선족들은 종교를 통하여 하나의 신앙공동체를 형성하였고 나아가 사회적 ․ 경제적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11) Ⅲ. 현시대에 있어서의 민족종교의 의미      세계의 냉전질서가 무너지고 통신기술과 교통수단의 발달로 하여 인류역사는 이미 一日生活圈이라는 지구촌시대에 접어들게 되었으며 조선족사회 개개 성원들의 생존무대도 단순 집거지역 내지 거주국이 아닌 지구촌 곳곳으로 펼쳐지고 있다. 장시기 동안 동북지역에서 삶의 터전을 영위해 왔던 조선족들은 거주국의 개혁개방 정책의 실시 및 시장경제체제의 도입에 힘입어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으로 진출하시 시작하였으며 이주시기 조선(한)민족의 디아스포라에서 현재는 조선족사회자체의 디아스포라를 연출하고 있다. 물리적 공간의 디아스포라는 그래도 나름대로 경제적인 삶의 향상을 위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것이 민족공동체적 응집이 결여된 정신적인 디아스포라로 이어진다면 참말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가에서는 흔히 재중동포사회 혹은 조선(한)민족 자체를 유태인과 비교하면서 동방의 유태인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물론 나라를 잃고 지구촌 곳곳에서 디아스포라식 삶을 살아왔다는 점에서 우리는 유태인과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겠지만 정신적인 삶에서는 단연 명백하게 구분된다. 종교적 심성이 안받침 되어 있는 유태인들의 정신적인 결속력은 세인이 공인하는 바이다. 유태인들은 자체의 민족종교를 바탕으로 하는 정신세계를 갖고 있으며 자체민족의 지혜를 집대성한 “탈무드”로 후대들에게 계몽교육을 실시한다. 다시 말하면 유태인들은 물리적 공간에서는 디아스포라이지만 정신적인 삶에서는 그들만의 신앙세계가 있는 것이다.     전반 이주시기(광복이전까지 -- 필자 주)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조선족사회에서는 민족의 지성인들과 선각자, 종교단체들에 의해 나름대로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지켜왔고 민족의식과 민족의 얼을 간직해 왔다. 이 같은 종교적인 목표의식과 실천행위는 조선족사회의 형성과 발전과정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조선족사회의 간판으로 되어 있고 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민족교육도 바로 종립(宗立)학교인 서전서숙이 그 효시로 되고 있으며 민족역사의 한 폐지를 장식하고 있고 민족의 긍지로 되고 있는 “3.13”반일시위에도 종교단체와 종교인들이 주력으로 앞장에 나섰었다. 따라서 당시 중국 동북지역에서 일어났던 종교운동, 특히 민족종교운동은 조선족사회의 공동체적 문화의식의 형성과 정신적인 삶의 추구에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는 것은 이미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민족교육은 서전서숙의 교육이념을 이어오지 못하고 근근이 우리말로 강의하고 우리글로 된 교재를 사용한다는데 그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민족학교들에서 배양된 후대들은 자체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지 못한 채 사회에 진출하게 된다.  만일 우리들 스스로가 주체적인 자각으로 민족문화를 지켜가고 민족의 얼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을 적극 모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정 정신적인 디아스포라가 되고 말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현실적으로 전혀 극복할 가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제시기 우리는 민족종교운동을 통해 민족문화를 지켜왔으며 나라와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위한 힘을 키워왔으며 민족의 개개 성원들에게 정신적 기탁으로, 마음의 고향으로 되었었던 소중한 경험들이 있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공간도 우리들에게 민족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현대적인 기술 수단과 자유로운 사이버 공간을 제공해 주고 있다.    비록 세계화시대가 도래되고 지구촌이념이 형성되기 시작한지는 불과 몇십년에 이르지만 국경과 이념을 초월한 정신적인 일체화는 기독교나 불교와 같은 세계적인 종교의 탄생과 함께 이미 실천되어 왔던 것이다. 국경과 민족을 초월한 종교적 신앙생활은 공동한 신념으로 보편적인 삶의 가치를 추구하고 지향하는 사람들을 일체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이 하나로 될 수 있는 가능한 도구도 종교적 신념차원의 정체성확립을 통해 가능하지 않을까? 만약 우리들이 공동체적 삶을 영위하면서 민족적 정체성을 지켜가면서 민족의 대의를 추구해 간다면 우리는 진정 통합된 민족으로 될 수 있을 것이며 그 어떤 기적도 창조해 낼 수 있는 것이다. 거족적인 “3.13반일시위”와 “청산리전역”은 이 점을 충분히 설명해 주고 있다.    민족의 화합과 발전을 위하여, 세계의 평화와 공존을 위해서 우리는 小我가 아닌 大我가 될 수 있는 자체 민족의 얼을 키워야 한다. 얼빠진 민족은 국경이 무의미해 지고 있는 지구촌 시대에 존중을 받는 지구촌 일원으로 될 수 없으며 지구촌의 평화와 발전에 기여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Ⅴ. 향후의 과제      한 개 민족공동체로서 조선족사회에서 지켜가야 할 민족정신은 바로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행정 속에서 면면히 이어내려 오면서 고스란히 지켜온 민족의 얼임은 자명한 것이다. 이러한 민족정신 내지 민족의 얼이 담겨 있는 그릇은 그 민족의 심성에 자리잡고 있는 종교적 신념이 아니겠는가? 종교를 삶의 궁극적 가치에 대한 추구라고 할 때 우리는 나름대로의 종교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가치의식의 혼돈으로 삶의 사거리에서 방황할 때 자각적인 종교적 정서와 정신적인 추구가 더욱 필요시하다. 이러한 종교적인 삶은 단순 단체적인 생활을 떠나서 개개인의 심성수련을 통해서 진행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개체적인 삶의 경우에는 가능할진대 내가 민족공동체에 소속되고 한 개 민족의 성원이라고 할 때 그럼 민족적 존재로서의 나의 삶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여기에는 공동체적인 삶의 자세와 추구가 수요되는 것이다.    종교는 초월적인 것이 아니라 초월적인 형식으로 세속적이고 원심적인 생활자체를 반영하고 있었으며 사회통합성의 절대형식인 것이다. 종교의 원초적인 삶으로 하여 인간이 일종의 일치성으로 형성된 응집 ․ 결속인 것이다. 개인과 집단의 관계가 “승화 ․ 헌신 ․ 충성을 합일화한 특징”을 지닐 때 이것이 바로 종교성적인 관계로 되는 것이다.12)    우리가 오늘날 자본이 지배하는 현실생활 속에서 경제적인 삶을 위해 도시로 진출하고 해외로 나가는 것은 응당 긍정할 바이다. 하지만 단순 경제적인 삶에 만족을 느낀다면 오히려 삶의 빈곤을 의미하게 된다. 우리는 인구이동으로 해체되고 있는 기존의 집거구역은 도시에 새로이 일떠서고 있는 코리안타운으로 대처할 수 있지만 물리적 공간에 일떠세운 코리안타운 역시 점점 상실되어 가고 있는 정신적인 삶의 집거구역을 대체해 주지는 못하고 있다. 우리가 단 한번만이라도 “내가 누구인가?”, “우리 민족은 대체 어떠한 민족인가?” 하는 궁극적인 질문을 던져 본다면 우리는 이 같은 정신적 허무를 실감하게 된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해 갈려면 21세기 지구촌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자아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민족문화교육이 새롭게 시작되어야 하며 개개 성원들에게 민족의 얼을 심어주는 것이 급선무로 되고 있다. 특히 근대 이주민족으로 다민족국가에서 생존하고 있는 재중동포사회에서는 그 동안 단절되었던 민족적인 것을 발굴 정리하여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족공동체적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따르고 있는 것만 사실이다. 특히 종교에 대한 인식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전반 사회적 분위기에서 조선족사회에 필요한 것은 形態化한 종교보다도 민족정체성을 간직하고 공동체의식을 키워가는 그런 종교적 신념과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참고문헌 황룡국:『조선족혁명투쟁사』, 요녕인민출판사, 1988 김  양:『압록강류역의 조선민족과 반일투쟁』, 요녕민족출판사, 2001 朴昌昱:『中國朝鮮族歷史硏究』, 연변대학출판사, 1995 김춘선:『延邊地區朝鮮族社會的形成硏究』, 길림인민출판사, 2001 오경환:『종교사회학』, 서광사, 1979 강돈구:『한국 근대종교와 민족주의』, 집문당, 1992 라인홀트 니버 엮음, 김승국 옮김:『맑스 ․ 엥겔스의 종교론』, 아침, 1991 박환:『만주한인민족운동사연구』, 일조각, 1991 金勳:『韓國新宗敎的源流與嬗變』, 宗敎文化出版社, 2006 G. simmel 저:『現代人與宗敎』, 中國人民大學出版社, 2003 사) 한국민족종교협의회:『겨레얼 연구논총』제1집, 2005 사) 한국민족종교협의회:『한국민족종교운동사』, 2003 사) 한국민족종교협의회:『한국민족종교』, 2005 최봉룡:『만주국의 종교정책과 재만 조선인 신종교의 대응』,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6 고병철:『일제하 재만한인의 종교운동』,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19    “수입명절문화”와 우리의 민속문화 댓글:  조회:2130  추천:103  2008-01-10
“수입명절문화”와 우리의 민속문화허명철 연변대학 교수요즘 거리에 나가보면 완전히 명절분위기이다. 이제 곧 다가올 새해맞이 행사가 다양하게 펼쳐지고있는것도 하나의 중요한 원인이겠지만 이러한 명절분위기를 장식해나가고있는 장본인은 그래도 크리스마스인것 같다. 몇해전까지만 해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성탄카드를 통해 서로의 축복을 주고받으면서 조용히 지냈던 크리스마스는 언제부터인가 신앙차원을 떠나서 제법 대중화한 하나의 명절문화로 받아들여지고있다.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오색찬연한 성탄수들이 도시의 밤거리를 장식하는것은 물론 상가들에서도 여러가지 이벤트행사를 벌리면서 고객들에게 고마움을 전달하는것은 이제는 하나의 관례로 되고있다. 이처럼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하나의 명절문화로 자리매김하고있는것은 단순 크리스마스뿐만아니다. 쵸콜레트와 장미를 상징물로 하는 2월 14일 련인절도 역시 년령층을 넘어선 자발적이고 대중적인 명절축하행사로 되고있다. 이처럼 련인절이나 크리스마스와 같은 “수입명절”이 많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하여 하나의 명절문화로 되고있는 반면 우리들의 전통민속명절은 오히려 많이 위축된 상황에 놓여있다. 연변의 경우 명색이 조선족자치주이고 한개 소수민족문화로서의 조선족문화는 민속놀이문화를 포함해서 현행 법률의 보호도 받고있지만 조선족문화의 주체자인 우리가 자체 민족의 민속문화에 대한 중시가 역부족하고 새로운 력사시기에 있어서 민족문화창달에 너무나 안일한 자세를 보여주고있는것 같다. 일례로 해마다 단오절이면 우리는 단지 시장에 나가서 쭝즈 (粽子)를 사먹는데 그칠뿐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단오명절놀이인 그네뛰기나 민속씨름 같은것은 더이상 찾아볼수 없게 되였다. 단오, 추석은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4대 명절에 이름이 올라있다. 하지만 이제 명색만 남았을뿐 그 어떤 이벤트도 없이 소리없이 자나간다. 그뿐만아니다. 언제인가 모아산민속촌에 모셔져있던 단군할아버지동상도 가뭇없이 자취를 감추었는데 어디로 옮겨졌는지, 아니면 없애버렸는지? 누구도 묻지 않고 관심하지도 않는다. 우리들은 이미 세워져있던 조상의 동상도 지켜내지 못하였으며 따라서 공동체적인 청명절문화행사도 그 맥을 이어갈수 없게 되였다. 조선족은 비록 이주민이기는 하지만 필경 자체민족의 조상이 있었고 기타 민족과 마찬가지로 조상숭배문화전통을 갖고있는것이다. 우리 조선족들에게도 청명이면 자기 조상한테 제를 지낼 권리가 분명 있지 않는가? 사실 대중성, 오락성, 상징성을 띠고있는 민속문화는 우리 민족 문화의 중요한 구성부분으로서 민족공동체를 결속시키고 구성원들간의 친화력을 강화시키며 민족총체의식을 제고시키는 주요한 경로이기도 하다. 만일 우리가 점차 사라져가고있는 민속문화를 창달해나가지 못하고 일상생활에서 체현시키지 못한다면 아무리 조선족민속문화박람회를 조직한다 해도 그것은 단순 일회적인 이벤트행사에 불과할뿐이며 조선족문화를 지켜간다는것도 하나의 구호에 불과한것이다. 현재 국가차원에서 청명이나 단오, 추석 같은 전통명절을 공식휴가일로 제정하고 래년부터 실시한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우리는 민족적인 정서가 다분한 민속놀이문화를 되살려 진정으로 조선족자치주다운 문화모습을 세인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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