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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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인간성문제
2013년 09월 20일 15시 12분  조회:11751  추천:1  작성자: 최균선
                                                        인간성문제
 
                                            ㅡ  생활은 희극화되여 있지않다.
                                                  생활은 소설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생활속에서 소설을 읽었다 ㅡ
 
                                                              최 균 선
 
                                                                       1
 
    ××학원의 한국어연구쎈터에 네사람은 나이가 지숙하여 인정이 통하고 호흡도 잘맞아돌았다. 모두 연길에서 왔고 학벌의 높고낮음을 불문하고 다같은 “품팔이군”인 지라 각자 제맡은 학과에만 몰두하보니 쉬틀릴 일도 없었다. 하여 가족들도 친척처럼 보내면서 색다른 음식이 나지면 서로 돌렸을뿐아니라 륜번으로 식당놀이도 하여 이웃에 한족교원들이 부러워할정도로 화기애애하게 지냈다.
    그렇게 첫학기를 무난하게 보냈는데 3월, 새학기에 들어와서 생각밖에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동방언어학계 선두주자인 진교수가 제남의 어느 사립대에 있다는 공선생을 자기 후임으로 추천하려하자 기초부에서 온 미련선생이 웬일인지 한사코 반대하고 나섰다. 공도일선생이라면 30여년전 일면지교가 있어서 생면부지의  선생이 오기보다는 낫겠다고 생각하는데 왜 그녀가 한사코 말리는지 알수 없었다.
ㅡ 선생님두 참, 그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줄 몰라서 데려오겠다고 애씀니까?
ㅡ 성격이 좀 그렇지 전문가 아니요. 명성도 있고…사업은 사업이니까.
ㅡ 그가 무슨 사람이든 우선 인품이 돼먹야지요. 아시겠지만 그와 어울리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자기 동창들은 물론 제스승과도 드잡이를 하는 괴짜인것을 정말 몰라서 그램까? 그 선생님이 오면 한달도 채안되여 교연실에 말썽이 생기지 않는가 보세요. 화목하던 사무실이 시끌해질것이고 먼저 선생님이 피해를 볼거예요
    둘사이에 오고가는 말을 들으며 무척놀랐다. 예로부터 문인상경이라해도 각자 량심에 부끄럽지 않게 제앞에 노릇이나 잘하면서 돈이나 벌면 될텐데 서로 찡낼일이 무어란말인가? 녀자셋이 모이면 덕대우에 사발이 덜렁거린다는 말은 있지만 남자들 끼리야 두루맞춰가면 되는데 서로 티각태각할 일이 생기랴,  
   사람은 그가 무엇을하고 어떻게 이름이 혁혁하든 우선은 인간이다. 제아무리 학벌높고 명성이 뜨르르하여 젠체해도 인간성이 제로이면 그외는 별볼일이 없는것이다. 소처럼 시키는일만 꾸벅꾸벅하면서 세상과 다투지않기로 작정하고 산설고 물설은 이 황도에 온터이니 남의 사돈이야 가든말든 내알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소식통인 허선생의 말에 의하면 면접시험을 보고나서 맥총장의 마음에 들지못했다고 한다. 원래 세상만사 부불통지요 무소불위인듯이 남이하는 학과는 시답지않게 보는터라 돌아가며 부정하고 나무리는 본색이 금방 드러나서 하늘이 낮다하고 도고한 맥총장을 노엽혔다는 말도 있다고 하였다.
ㅡ그것 보세요. 그 본질이 어디가겠습니까? 아니받는다니 백번 잘된일이예요.
     내가 혼자있을 때 허선생이 전혀 믿기지않는 말을 해주었다.
ㅡ공선생이 차일선생님을 뭐라했는지 압니까? (저사람이 그런 수준으로 어떻게 대학선생질을 한단말이요. 나참,)라고 하지 않겠어요. 한반에 동창까지 내리깎는 그런 사람입니다. 나도 그 선생의 학생이긴 하지만 좋다는 제자들이 하나 없답니다…
    나는 미련선생이 사람을 보는 눈이있고 대바른 녀자라고 다시보았다. 그런데 열 길물속은 알아도 한길물속은 모른다는 옛말그른데 없었다. 때에 북경의 모대학에서 금방 퇴직한 문교수가 오려한다는 말이 돌았다. 나도 선성은 많이 들은 사람이였다. 청도의 ××대학에 재직이면서 겸직교수로 와있는 리박사가 담배를 피우면서 한담삼 아 자기가 한창 힘쓰는중이라고 넌지시 털어놓았다.
     실력있는 사람들이 모이면야 나쁠것이 없고 은근히 기대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가 오는일이 나와 련계될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어느날, 점심먹으러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서 허선생이 어찌생각하고 그랬는지 뚱단지같은 소리를 했다.
ㅡ 최선생님이 기초부로 가십시오.
ㅡ 그건 무슨 생소나무가지를 부러뜨리는 소리요?
ㅡ 북경에 문교수님이 오게 되면 자리를 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닌밤중에 홍두깨를 내밀어도 유만부동이다. 인사과장도 아닌 사람이 감놔라 배놔라하니 단통 속에서 열불이터졌다. 챙김없었던말이 거칠게 튕겨나갔다.
ㅡ 거 무슨말이요? 문선생이 오는데 나와 무슨상관인데? 그리고 허선생 뭔데 나를 오라가라 한단말이요? 굴러온돌이 박힌돌을 많이 빼지만 내가 왜?
내가 너무 과격하게 나오니 대뜸 김이빠졌는지 허선생이 더 긴말하지 않았다. 무엇을 대꾸한단말인가? 만약 한마디 더한다면 정말 박살을 먹일 거친 내성미였다. 그날이후 나는 허선생의 인격소질을 다시 저울질하였고 서로의 마음에 그렇게 앙금이 갈앉게 되였다.
    며칠후, 공선생이 다시 온다는 소식이 있는차에 북경에 문교수도 면접보러 왔다. 저녁,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되였는데 공교수도 여기에 오고싶어한다는 말이 오갔다. 그런데 두사람은 한반동창이지만 소닭보듯하는 사이란다. 동창모임에도 어느 한사람 이 있으면 서로 피하는 정도라니 불구대천인것같았다. 문교수가 마음을 돌렸는지, 아니면 진교수가 더 맥을 썼는지 4월달에 공교수가 먼저 부임하였다.
    뭉툭한 체형에 좀 치째진 눈, 그 이상 평범할수 없는 생김새인데 성미가 괴짜라니 겉이자 속이란 공자님 말씀이 빗나가는것은 아닌지, 안하무인격의 타잎은 별로 변하지 않은것 같았다. 그와 악수하며 불현듯 얼마전에 연길에 한 지기가 모쪼록 메일을 보내여 공선생은 제밖에 없는체하여 평판이 좋지않은 사람이여서 어디가서나 평지풍파를 잘일으키니 알고대하라고 충고하던 일이 떠올라 공연히 서먹서먹해졌다.
    말이 질주하는 길에 황소도 느렁느렁 걷기마련이니 혹 부딪칠수도 있겠으나 무작정하고 걸고드는 사람이 세상이 있을가, 하기사 세상에는 태생병처럼 공연히 남을 깎아내리기 좋아하는 괴짜들이 있긴한데 먹물을 먹고 내노라하는 사람이 간대루야 그렇게 막되고 야비하게 놀지는 않겠지하며 왼고개를 비틀었다.
    나는 거목도 아니고 가지가 무성해 질투의 바람을 불러올만한 존재도 아니고 모아산 돌틈에서 애일배일 자라난 못생긴 가둑나무에 불과하다. 청송홍송은 가둑나무와 섞이지않는 수림의 군자이다. 황차 우물이 강물을 범하지않고 강물이 우물을 범하지 않듯이 각자 제할일을 하면 될것이니 부딪칠일도 없다. 황차 우리는 전공부문이 다름에랴, 그런데 까마귀날자 배떨어진다더니 허선생의 말처럼 과연 예상치않던 돌개바 람이 일어 먼지지를 말아올리듯 평온하던 교연실에 일장풍파가 일었다.
                                 
                                                                               2
 
    결국 약한다리에 침질이요 강판길에서 조심해 걷다가 오히려 넘어져서 코를 깨는격이랄가, 때는 바로 학생들이 졸업론문을 쓸때였다. 내가 지도한 학생가운데 소이 연이란 녀자애가 있었는데 천주교신도여서인지“중국에서의 천주교의 박해사”라는 과 제로 론문을 집필하였다. 이건 원쑤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격도 아닌데 일이 생길라고 그랬는지 내가 지도한 9명학생은 론문을 공교수께서 론문답변자격을 가늠하는 심사위원이 되여 초심하였는데 생뚱같이 문제가 발생했다.
    그날, 남쪽책상가에서 신경질적으로 벌컥벌컥 종이장을 번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두툼한 론문고를 책상에 탕내려놓으며 하는소리가 유달리 자극적이였다.
ㅡ저거 썬머화야? 엉? 꿍찬당탠쌰 페이양 썬마렌차이야? 쩌부쓰쐔양 쭝죠마? 헝, 쩌, 쩌거 썅화마? 쩐쓰더…또디 썅깐 썬머야? ……
    소이연은 연구과제 선택목적을 밝힐 때 자기는 천주교신도여서 일정한 료해가 있기에 이 연구과제를 선택했노라고 언명했다. 그리고 감사의 말을 쓸 때 참고재료랑 제공해준 왕신부에게 감사드린다고 특히 밝히였다. 신앙자유의 시대인지라 나는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고 나름대로 수정해주고 바치게 하였는데 고명하신 공교수님이 문제거리로 삼은것이다. 그의 정치신경이 어느정도로 민감한지 그리고 얼마나 높은 지는 모르고 또 흥미를 가질바가 아니지만 제견해란 별로없이 두루두루 조합한 학생 론문을 두고 정치성에 배양취지까지 들먹거리는것이 너무 어거지라 한마디했다.
ㅡ지금 어느때입니까? 종교신앙이 자유라고 헌법에 번듯하게 적혀있는데 왜 그렇 게 쌍강쌍샌하는지 알고도 모르겠군요. 그리고  론문을 어느 공개간물에 발표할것도 아니고 나중에 다통과시키고나면 저기 책장뒤 구석에 그대로 처박힐것인데 사회성을 따질계제가 됩니까? 게다가 녀자애가 천주교에 물들면 얼마나 물들었겠습니까?
    내가 시비조로 걸고들자 코방귀만 힝힝거리며 들은체도 하지않았다. 저녁에 당 직이여서 사무실에 나와보니 진교수가 나를 들으라는 책략인지 계주임 왕씨에게 하는 전화내용이 귀에 딱걸렸다. 내용인즉 낮에 회보한 론문상에서 발생한 엄중한 문제를 혼자 깔고앉으면 후과가 좋지않으니 즉시로 상급에 보고하라고 독촉하는것이였다. 마음씨가 착하고 대바른 학자형의 진교수가 갑자기 왜저렇게 나올가 생각하면서도 무엇인가 예감되였다. 이게 어느때라고 문화혁명때의 묵은 화약내를 풍기는가싶었다.
ㅡ 교수님 들을라니 저와 관련된 말씀같은데 대관절 어찌된 일입니까?
ㅡ 당신이 지도한 그 학생의 론문에 엄중한 정치문제가 있다이, 그래서…
ㅡ 거기에 문제있다구요? 설사 그렇다고칩시다. 그러면 사전에 여사여사하다고 하면 고칠것은 고치겠는데 먼저 위에다 말하면 어쩌자는것입니까? 고발입니까? 생면 부지의 저를 천거해주시여 고맙지만 이건 아니지않습니까?사람을 데려다놓고 이렇게 하는것은 골탕을 먹이는것이 아닙니까 그럴분이 아닌데 정말 유감스럽습니다.
ㅡ최선생이 정치에는 아주 유치하구만. 내가 보건대도 정치문제가 성립될듯도 하고… 이게 다 선생을 위하는것이 아니겠소? 유감스러운것은 오히려 나란 말이요.
ㅡ그 말씀 한번 괴상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한국어를 겨우 배워가지고 여기 저 기서 베껴다가 조합하는 사립대학생들의 론문에 정치사상성이 있다면 얼마나 있다고 문장을 지으려 합니까? 죽이풀어져도 가마안에 있다는데 같은 조선족들끼리…
    그러다보니 서로 정서가 격앙되였고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지 않아도 공교수가 오면서부터 진교수가 조금 이상하게 변해간다고 생각하며 그 까닭을 알듯싶었는데 암튼 문서가락이 있는게 분명했다. 나는 은혜를 원쑤로 갚는격이라 생각하면서도 곁을 쳐서 복판을 울릴심사로 격한 감정그대로 쏟아내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그날밤, 혼자 풀풀거리며 뜬눈으로 새우고나서 소이연을 아침일찍 불러내여서 교연실주임에게 론문을 보이고 계주임을 찾아가서 해명하라고시켰다. 점심때 이연이 가 찾아와 자초지종을 알려주었다. 교연실주임이 먼저 론문을 자세히 읽고 별문제 될것없다고 하면서 왕주임에게 자기의 견해를 설명했단다. 한국어를 전혀모르는 계주임이 다듣고나서 내린판단은 그래도 객관적이고 공정하더란다.
    종교신앙은 자유이기에 정치문제로 보는건 객관적이 아니지만 신도라해도 아직 학생인만큼 종교문제에 료해가 깊지못할것이고 잘못다루면 시끄러움이 생길수도 있으니 차라리 다른 과제를 선택해서 쓰는게 좋겠다고 하더란다. 결국 상부에 고발하여 나를 골탕을 먹이자던 그 누군가가 닭쫓던개 울쳐다보는격이 된셈이였다. 그런데 론 문답면이 사흘남았는데 조합하는 론문을 엮자고해도 쉬운일이  아니였다.
    녀자애는 울상이되였다. 이미 개판이 된판에 책대로 한다는것 자체가 현실적이 못되였다. 그래서 김만중의“구운몽”을 론제로하고 쓰기로 합의했다. 다른애들의 론문도 결국 거의다 교원이 주물러만든것이지만 이연이의 론문은 말바른대로 내가 대필할수밖에 없었다. 결국 론문은 무난히 통과되였다. 그러나 나는 쓴웃음이 나왔다. 태산명동에 서일필이란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하는 말인가? 그렇게 수선을 피우고나 서 아이들이 아글타글 쓴 “걸작”들은 뒤구석에 처박아두면서도 공연히 형식을 피워대는 그런 작태들에 감개무량하다고해야 할런지…
    그런데 내가 인간관계에 락제생이여서 또 문제가 생겼다. 쓸데없이 삐치지말라는 구두어가 또한번 적중하다는것을 깊이느낀 사건이 터진것이다. 교연실주임이 맡은 한 녀학생이 퇴근때가 다되였는데 낮에 공교수에게서 두마디 안짝에 퇴자를 맞 고 울먹이던 녀자애가 도와달라고 나에게 청들었다. 그렇찮아도 말썽이 많은판에 지도교원도 아닌 내가 중뿔나게 지도해주면 교원들 사이가 딱해진다고 사절했더니 금방 눈물을 가득머금고 사정사정하는것이였다.
ㅡ 우리 선생님도 어떻게 고쳤으면 좋을 모르겠다며 교수님을 찾아가라고해서…
ㅡ 정말인가요? 글쎄 지도교원이 알고있다면 문제가 다르긴한데…
    내가 유예미결하고있는데 녀자애는 울면서 말했다. 자기는 제남시의 교외에있는 농촌에서 왔는데 아버지가 두달전 자동차사고로 지금도 병원에 누워있고 방정맞게도 온마을이 허물리게 되여 엄마혼자 속태우고있단다. 게다가 사흘후엔 요행 구한 직장에 출근해야 하는데 초심에서부터 걸렸으니 어쩌면 좋으냐고 어깨을 달싹거렸다.
    나는 감동되였다. 결코 녀자의 눈물은 웅변이요 무언의 명령이여서가 아니였다. 사립대라도 졸업해서 운명을 바꾸려는 녀자애의 방울방울의 눈물이 너무너무 맑았다. 그래서 저녁을 먹을생각도 접어두고 론문수정에 달라붙었다. 맞춤법이 틀린곳에 붉은 원주필로 고추밭을 만들어놓았다. 한국어를 몇년배운 학생들의 론문에서 맞춤법같은 것이 문제가 아니다. 컴퓨터에 입력해놓고 최후 심사때 교정을 보면 끝날일이다.
    오히려 졸업논문은 과제의 가치, 의의, 현실성이 전제이고 론리결구랑, 론거의 객관성, 합목성 등이 요긴한것이 아니던가?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소근거리는데 교연 실주임이 건너왔다가 보면서도 아무말도 없었다. 묵인하고 있는셈이였다. 마침내 론문을 비슷하게 수개한후 내가 방조했다는 말을하면 안된다고 당부했다. 어려움에 처한 학생을 도와주지못할 리유가 없었지만 실은 그리 마음편하게 가질일이 아니였 다. 아닌게아니라 그것은 나혼자의 아름다운 생각이였지 다른 선생들의 눈에는 쓸데 없는 일에 삐치는 일로 인지되였다는것이 증명되였다. 이튿날, 그 녀자애가 새로 찍어낸 론문을 공교수에게 바치였다.
ㅡ 교수님, 저의 론문을 다 수개했는데 합격을 주세요.
ㅡ 엉? 밤새에 다 수개했다구? 니쯔지 까이마?
ㅡ 네, 아니, 저, 저…다른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만…
ㅡ 쓰쎄이야, 어느 선생님인데??
ㅡ 누구라는것을 꼭 말해야 합니까?
ㅡ 또디쓰 쎄이 께이니 쓔까이야? 콰이숴야!
ㅡ 저뒤에 최선생님이…그러면 안됩니까? 우리 지도교원도 허락했는데요.
ㅡ 뿌싱, 워 이징 께이니 뿌지걸, 나ㅡ넝 께이니 허걸? 니쯔지 충씬까이바!
ㅡ 논문이 잘 고쳐졌습니다, 저의 집에 딱한 사정이 있어서 그래요. 잘 봐주세요.
ㅡ 뿌우씽, 워숴 뿌싱 쮸뿌싱, 쩌 뿌쓰 니쯔지 까이더, 삐쉬 충씬까이!
ㅡ 제수준으로는 더이상 못고칩니다. 내일모레 뽀도하지않으면 직장이…
ㅡ 나쓰 니 쯔지더 쓰칭, 워 메이씽취, 나 니 칸저빤바…
ㅡ 교수님 정말 이렇게 하깁니까? 잘 보시지도 않고 벌써 몇번째입니까?
    마침내 산동계집애들의 성깔이 솟구쳤는지 얼굴이 검으락푸르락해졌다. 학생이 자기선생과 다퉈봐야 맨발로 바위차기이다. 그애가 나에게 청원의 눈길을 돌리는 순 간 더시비하지말고 옆방에 지도교원을 찾아가라고 눈짓했다. 애가 나가서 인차 지도 교원인 조주임이 들어왔다.
ㅡ 공교수님, 어제 얜얜의 논문을 주시고 수개한 이 논문을 심사하세요.
  공교수가 알은체도 하지 않자, 조주임은 책상귀퉁이에 쌓아놓은 론문들을 뒤적 여 그애의 원론문과 바꿔놓는 모습이 눈결에 보이였다.
ㅡ 교수님, 어제 논문을 가져갑니다. 새건 여기 놓았습니다.
ㅡ 니 께이워 짠주, 니 쩐머 수이밸 나쩌우?
ㅡ 어째 안된다는 말입니까?
ㅡ 나쓰 쩡쥐야,
ㅡ 쩡쥐? 썬머이쓰? 이게 무슨 증거란 말입니까? 누굴 기소라도 하나요?
ㅡ 내가 이미 불합격을 준것은 불합격이란 증거요. 쩐머? 니예 유의잰마?
   한족처녀로서는 워낙 성미가 보통내기가 아닌 조주임이 가만히 있을리 없었다. 왜 안되느냐? 하고 따지고 들다보니 자존심이 하늘에 가닿은 공교수도 지고들리 만무 했다. 그러다보니 교연실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언성이 높아졌다. 결국 불씨는 내게서 튕긴것인지라 앉아있기가 조마조마했다. 만약 내가 끼여들어 해석하려들면 공선생이 더구나 천정이 낮다하고 길길이 뛸것이였다.
    그냥 듣고만 앉아있을수 없어서 담배피우러 나가는데 “니쏸 로지야?.” 하는 고음이 귀청을 때렸다. 사태가 이정도로 번져진것이 안되였지만 (나이깨나 먹은 사람이 젊은이들의 자존심을 엿가락처럼 여겼으니 저런 박대도 받게 되는구나)하며 허구프게 웃었다…지금 책대로 되는일이 어디있는가? 운명을 고쳐보겠노라고 학비가 엄청난 사립대에라도 와서 애쓰는것을 보기만해도 불쌍한데 저렇게까지 각박하게 굴어서 뭐 먹을알이 있단말인가? 정규대학에서는 책대로 하는지? 지구는 둥글고 세상사는 서로 랑패나지않게 하면 안되는가…하고 생각하니 담배맛도 유별나게 쓰거웠다.
   일은 그로써 그치지 않았다. 전날 교연실에서 벌어진 대전의 전후과정을 모르고 있던 진교수에게 공교수가  공소했는지 진교수가 다짜고짜 나를 힐난했다.
ㅡ 최선생은 왜 늘 그모양이오? 정말 둬꽌쌘썰이라더니…
ㅡ 미안합니다. 현상적으로 쓸데없는 일에 참견한것이 되겠지요. 하지만 학생이 하도 울면서 사정하길래 도와주었다는 사실자체로는 저 꿀릴데가 없습니다.
ㅡ 남이 퇴자를 놓은것을 당신이 합격시키려한다면 공교수를 허수애비로 만들어 버린게 아니고 뭐요? 그리고 지도교원이 알면좋다고 하겠는가 말이요?
ㅡ 글쎄요, 결과적으로는 불편한 일이 벌어졌지만 학생을 위한 일에 무슨 네자 존심, 내자존심입니까? 사실 거절할수 없었습니다. 나도 앞뒤를 재여보고 한일이지만 반성하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누구를 허수아비를 만들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공교수가 퍼러딩딩해서 말했다.
ㅡ 가만히보니 당신은 쓸데없는 일에 삐치기 좋아한단 말이요, 혼자 다하는체…
ㅡ 내가 혼자 다하는체 하는거라면 구체적으로 무얼 말합니까?
ㅡ 다말해야 알겠소? 당신을 찾아오는 따좐반학생들이 도대체 얼마요? 사무실 이 안정할새없이 아이들을 뒤에다 달고다니고 대체 뭐이 그리 대단하오?
진교수도 한마디 께끼였다.
ㅡ 내본건대도 그렇두만, 다 당신을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그 많은아이들의 론 문을 일일이 고쳐주느라면 정력이 얼마나 들겠소? 본과생들만 책임져도 버거운데…
ㅡ 고맙습니다만. 그게 어째서 나와 관계없는 학생들입니까? 전과반학생들은 이 뚱위시에 학생들이 아닙니까? 게다가 150여명 전과학생들의 습작을 내가 자청한겜 니까? 본과학생들까지 260여명도 더되는데 자연히 찾아오는 학생들이 많기마련이 아닌가요? 사실 애들이 교연실에 한번 오자면 큰마음을 먹어야 하는데 그 심정들이 오죽하겠습니까? 나를 믿고 찾아오는 학생들을 거절할 리유가 없습니다.
ㅡ 흥, 그럼 전 뚱위시애들의 졸업논문을 당신 혼자 다할께나…
ㅡ 공선생님, 그 말씀은 너무 극단이 아닌가요? 내가 무슨 명예를 날리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림시채용교원으로서 게바라올라가자는것도 아니고 내가 맡은 학생이니 그저 자신의 책임을 다하자는것뿐이데 그게 무슨 못할짓이라도 된다는겁니까?
ㅡ 쏸라바, 하겠으면 하든지말든지, 그러나 좀 자기를 아는게 좋을것같소.
ㅡ 그러지 않아도 자기를 잘알려고 합니다. 너무 신경들을 써주어서 말입니다.
현상을 보면 이 연구실에서 말썽꾸러기는 학벌도없고 로임도 제일낮은 나인듯 싶 다. 그러나 누구마따나 하늘우러러 한점 부끄러운 마음은 없었다. 이튿날 공교수가 누구의 론문을 보고 그러는지 또 쨩!소리나게 책상에 둘러메치며 화를 내였다. 또 어느 불쌍한 애가 닥달질을 당할고? 하는데 내이름이 그에 입에서 튕겨나왔다.
ㅡ헝, 유쓰 추이쮠싼, 쩌 하이쓰 룬원마? 짼즈쓰 후숴빠도, 따쟈 라이 칸칸바, 쩌거 쐬성 쐔양 황써땐잉아. 쩐쓰더…써후이주의따쇠리 페양 썬머양더 런차이야?
    내입에서 저도모르게 헛김이 피씩!새여나왔다. 저자식은 뭘달라한적도없고 가진적도 없는데 왜저리도 못잡아서 야단인가? 자치동갑이지만 스승이라고 꼬바꼬박 존대말을 붙여주니 너무하지 않은가? 내이름이 무슨 반동명단에라도 올랐단말인가? 옛날 공사판에서 굴러먹던 그때 성미대로라면 언녕 주먹이 그의 코등을 깠을것이다.
    역시 교연실조주임의 학생이였다. 며칠전, 남자애 하나가 한국영화발전사에 대해 쓰겠다고 하는데 자기는 한국영화를 많이 접촉못해보았고 더구나 발전과정같은것은 깜깜이니 학생에게 필요한 재료를 찾아줄수 없느냐고 청들었다. 비록 한족이지만 같 은 연변내기고 좀 괴짜인데는 있어도 성미가 괄괄하여 나는 그를 인간적으로 좋아하는터였다. 그저 재료를 찾아주는데 무슨죄되랴싶어서 찾아주었던것이다.
    그러나 결국엔 마감에 손을 봐준 론문이여서 서언부터 결말까지 내머리에 똑똑히 씌여있었다.절대 내이름을 언급하지도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이자식이 감사의 말을 쓸때 나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써넣은 모양이였다. 그러거나말거나, 학생이면 다같지 네학생, 내학생이 따로있는가? 흥, 개는 짖어도 기차는 달리기만 하더라.
문제의 구절은 이러했다. “한국영화는 다방면적으로 발전하다보니 제재발굴에서도 금구가없다. 심지어 색정적인것도 대담하게 탐색하고있다…” 이게 무슨문제란 말인가? 사실대로 썼는데 황색적인 영화를 선양하는게 론문의 목적인가? 상식이 통하 지않는 독선이다. 베끼고 조합이 기본인 학생들의 론문치고는 망태기는 아닌것이다. 공선생의 근엄한 학술태도라고 생각하기에도 너무 비린 발상이다.
    나의 역반심리는 극에 달해서 더는 그의 눈치를 보지않기로 작심했다. 관영이라는 녀자애는 벌써 스믈두번째나 퇴자를 맞고있었다. 노루도 악이나면 문다던가? 키가 훨쩍 크고 헐치않게 생긴 전형적인 산동녀자애가 마침내 대항성적으로 나왔다. 두 손을 허리에 척 올려놓고 공선생을 찍어보며 시비를 캐는데는 기세가 자못 흉흉했다. 내가 그러지 말라고 눈치질하고 밖에나와 담배를 피우는데 녀자애가 따라나왔다.
    녀자애의 공소를 들으니 민망스러웠다. 스므페지가 넘는 론문을 스물두번이나 복사하면 그 돈만도 적지않거니와 자존심인들 얼마나 상했을것인가는 짐작하고도 남았다. 나는 그애의 요청을 들어주기로 마음먹었다. 밤도와 수개한것을 스물세번 째로 찎어서 바쳤는데 역시 퇴자를 맞았단다. 이번엔 내가 진짜 자존심이 상했다. 팔 을 걷어부치고 대수술을 했다. 마침내 론문이 통과되였다면서 내가슴에 얼굴을 묻고 아이처럼 엉엉울었다. 얼마나 마음상했으면 이러랴싶으며 마음이 쓰르르해졌다.
    론문을 다읽어보지도 않고 맞춤법부터 먼저보고 불합격을 준 논문이 많다보니 다른 부문에 교원들이 지도한 론문이“불”자 맞은게 많았다. 그래서 공교수에게 의견 들이 많았다. 독불장군이다. 조주임이 조장을 맡은 조에서는 공교수가 지도한 학생의 론문에 퇴자를 놓고 공교수의 조에서는 내학생은 물론 조주임의 학생론문이 “챵비”당 하는 웃지도울지도 못할일이 벌어지고말았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지만 나로서는 새우싸움에 등이 터진 머저리고래격이 되였다.
    나는 공선생에게서 퇴자를 맞은 아이들이 청들기만 하면 작정하고 밤도와가며 수개해주어 제2차답변에 참가하게 하였다. 공선생의 독선을 비웃어주려는 마음보다 그것이 애들을 위한 일이라고 여겼다. 한국에 교환생으로 나가있다가 부랴부랴 날아 왔다가 그만 답변에 불합격이 되는바람에 비행기표까지 무효가 될판인 왕녕이라는 애의 론문도 그랬다. 결국 돌아돌아 나를 찾아온 그애가 불쌍해서 수개해주었다.
    장백산문화가치를 백두산문화가치라고 해야 하는데 한국인의 시각과 관점을 그대로 옮겨쓴게 문제였다. 밤도와 고쳐주어 두번째 답변에 참가여 합격받고 제때에 한국 에 돌아갈수 있었다. 젊은이들의 심장은 진정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새기고있다. 남들 이야 뭐라든 눈물이 글썽해서 좋아하는 애들을 보며 나는 일종의 보람과 미묘한 쾌감 을 느끼였다. 결토 내가 누구보다 아량있고 가슴이 따스해서가 아니다.
    그런데 론문을  너무 잘고쳐주어도 문제였다. 왕혜라는 녀자애는 청도의 한국회사에 취직했는데 중국에서의 한국기업의 발전상황에 대한 론문을 썼다. 회사사장이 경제전문가이고 마음씨고운 지성인이였던지 회사를 경영해 온 재료도 제공하고 통계 표도 그대로 내주어서 아주 전업성이 강한 론문이 되였다. 그런데 결구상에서도 그렇고 한어문재료번역에서도 어수선한데가 많아서 마음먹고 잘고쳐주었다. 그러다보니 어데서 절취한것이 아닌가 의심을 받게 되였다.  분명 한국사람이 대신 써준게 아니면 학생이 한국어를 이렇게 잘구사할수 없다는게 공동한 의론이였다.
     눈치를보니 말썽이 일것같아서 애를 가만히 만나서 다시한번 론문의 재료출처와 표절여하를 확인해 보았다. 초고를 보며 자신이 낑낑거리며 조합한게 느껴진대로였다. 그래서 답변시 준비할 골자를 알려주며 심리준비를 잘시켜놓았다. 그애의 부탁대로 제일 마지막 사람으로 답변하게 만들어놓았는데 그런데 질문이 점점 까다로워지고 깊어가자 너무 긴장해서 말도 제대로 못하더니 급기야는 교단에 쓰러졌다. 마음이 안정된다음 계속 답변을 진행할것인가가 문제였다.
    역시 내가 주제넘게 사람까지 쓰러졌는데 통과시키는게 좋겠다고 의견을 내놓고 애들더러 숙소로 데려가라고시켰다.  정신을 차린 녀자애는 자기론문을 통과시킨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엉엉울며 나갔다. 심사위원들이 마무리작업을 하고 교실을 나오는 데 한 녀자애가 다가와 귀속말로 왕혜가 위생실에 들어갔다가 쓰러진것을 금방 발견 하고 남자애들이 학교위생소로 데려갔다고 알려주었다. 
    비록 내학생이 아니지만 내가 공연한 짓을하여 애를 더 난처하게 만들었다고 생 각하니 그냥 스쳐지날수 없었다.  위생소에 찾아가니 점적주사를 맞고있었다. 론문답 변에 통과되였으니 시름을 푹놓고 안정하라고 당부하고 돌아서서 나오는 내마음이 참으로 별스러웠다. 학생애들로 말하면 졸업장을 타느냐, 4년 공부가 나무아미타불이 되는냐 하는 운명과 직결되는 문제였던것이다.                                  
 
                                                                             3.  
 
    자승자박이라할가, 그동안 내가 학교유관부문의 “요시찰인물”이 된 사건들이 한두가지 있었다. 첫학기에 기말시험지를 채점할 때 손에 쥐이는대로 푸른 색원주필로 채점했는데 별탈이 없었다. 다음학기에 학교독도조에서 시험지를 매기는 요구를 개혁 하였다는것을 모르고 그냥 푸른원주필로 점수를 매겨나가는데 교연실조주임이 와서 반드시 빨간색으로 고쳐매겨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다보니 시험지가 얼룩덜룩해졌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되여서 계주임이 호출했다. 시험지가 이렇게 어지럽고서야 상급에서 내려와 검사할 때 어떻게 내놓는가고 핀잔하였다. 무어라 해석할가 하다가 성근하게 접수하고 다음부터는 각별히 주의하겠노라고 다짐했지만 결국 좋은인상을 주지못한것이 분명했다.
    사람은 어디에서 무슨일을 하든 상급에에 잘못보인다는것은 명랑한 일이 아니다. 아닌게아니라 학기말에 나의 아량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이 생겼다. 원래 나의 시험지에서 문제가 발견되였던것이다. 뒤에 작문에서는 28점이라 매기고 시험 지머리에 성적종합란에 26점이라고 쓴것이 하나이고 점수를 합할 때 76점을 78점 으로 올린게 용납못할 엄중한 착오였다.
교연실주임이 찾아와서 이건 학교에서 엄중하게 처리하는 문제여서 반성문을 써 야 한다고 하였다. 한심했다. 반성하면 끝인가했더니 그저 반성으로 끝나는것이 아니 라 벌금해야 하는데 약2천원은 될것이라고 하였다. 서로 시험지를 바꾸어 검사 하면서 최후로 핵실해야 한다는 규정대로 차선생이 나의 시험지를 검사했지만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였기에 역시 검토서를 써야 한다고 하였다.
ㅡ 여보, 차선생, 문제는 내게서 생긴것이니까 그따위 반성문인지 검토서인지 절대 쓰지마오. 아무리 따궁하러 온 사람이라고 왕창 더럽게 보고있잖은가? 헝!
    마음이 워낙 어질고 참해서 법이없이도 살사람인 차선생은 그저 허구프게 웃고나서 검토서를 쓰느라고 끙끙거리는것이였다. 나도 쓰기로 작심했지만 검토서가 아니 라 의견서였다. 역시 한어수준이 두둑한지라 정작 쓰자니 말이 잘어울려지지 않았다. 이렇게 쓴것을 보면서 더구나 우습게 볼것이였다. 그러나 후퇴아니면 돌진이다.
    후과를 고려하고 작심하고 쓴것을 바쳤더니 새로온 녀자계주임이 나를 불렀다. 무슨검토를 이렇게 하는가고 힐난했다. 나는 독도조에 바치는 검토가 아니라 교장이 나 총장이 보라고 쓴 건의라고 언명했다. 내가 너무 강경하게 나오자 장주임이 타협조로 나왔다. 벌금은 자기가 협상하여 면제하도록 노력하고 안되면 상징적으로 할터이니 문제를 크게 만들지 말자고 하였다. 새로온 령도에게마저 처음부터 득죄할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하고 사업에 근엄하지 못하여 차질이 빚어진 부분은 책임지며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반성했다.
    원래있던 계주임인 왕씨가 왜 영어계로 옮겨갔는지 몰라도 내게는 불행중다행이였다. 황당무계한 일로 왕주임과 대전한후 사이가 껄끄러웠댔다. 지난학기말이였다. 기말시험사업회의에서 학생들이 기말시험담보서를 썼는데 본과학생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아래에 날인하지 않았다면서 사작규칙을 모른다는것은 불가사의하다고 하였다. 실용사작과는 왜설치했냐며 사작교원에게도 일정하게 책임이 있다고 하였다.
    비록 이름을 찍지 않았지만 분명 나를 두고하는 비평이였다. 대학3학년생들이 날자를 써야한다는 상식을 몰라서 쓰지못했다는 말은 비론리적이다. 생각할수록 속이 부글거렸지만 참았다. 밸대로면 당장일어나 대성질호하고 싶었지만 여러사람앞에서 령도를 존중하지 않는다것은 되돌아와 나의 인격문제이기도 했기때문이다.
    회의가 끝나서 왕주임이 한 얘기가 나를 두고한것이 아니냐고 확인해 보았다. 모두 그렇게 리해했다고 하였다. 허선생은 롱담삼아 (어떻게 사작지도를 해서 대학생들이 날자를 쓸줄도 모르게 만들었는가?)고 시까슬렀다. 사람이 늙으면 노여움이 많아 진다니 진짜 노여워서 안정할수 없었다. 온밤 생각해보아도 속이 내려가지않았다. 나는 왕주임과 대전하기로 작심했다. 그저 그런것처럼 당할수가 없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등교하여 학생들한테서 정황을 료해했다. 어제 교원대회에서 있었던 일을 간단히 말하고 왜들 그랬느냐고 했더니 아이들이 웃었다. (교수님, 웃기 지마세요. 그게 어째 선생님 잘못인가요? 학기마다 그런 형식적인 각서를 쓰는것이 시끄러워 고의적으로 안썼는데요…) 하면서 참으라고 말렸다. 내가 문제를 깨야 한다며 그길로 왕주임의 사무실로 쳐들어갔다.
ㅡ 미안하지만 어제 회의에서 그런 말을 한 론리가 무엇입니까?
ㅡ 엉? 선생이 팅리가 차해서 잘못들은것이지 선생을 땐밍해서 한말이 아닌데. 보통교원이 이렇게 계주임실로 쳐들어오면 됩니까? 정말 가소롭군요.
ㅡ 가소롭다구요? 왕주임을 인간적으로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나도 정말 가소롭습니다. 당신이 계주임이지만 이 학교에서의 분공일뿐이고 별로 대단할것도 없습니다. 다같이 따궁하는데 피차일반이 아니겠습니까? 인격은 동등한것입니다.
    내가 하도 험악하게 나오니 왕주임은 내가 잘못들은게라고 한발 물러섰다. 그쯤하면 심리작전의 목적에 거의 도달했으니 하급으로서 너무 각박하게 나갈필요가 없 었다. 나는 엎지른물을 담듯이 례의적으로 사과하고 교연실로 돌아왔다. 미구에 왕 주임이 공선생을 데려갔다. 진교수가 건강관계로 공선생에게 자리를 내주고 귀향하 다보니 공교수가 선줄군교수로 군림하였다. 왕주임에게 갔다온 공교수 힐책했다.
ㅡ 왕주임칸에 쳐들어가서 노했다면서? 사람이 령도를 존중할줄 모르면 그게 어디 례의를 아는 사람이오?
ㅡ 글쎄요, 미안하긴 한데, 그날 당장에서 말할것을 참은 나입니다. 령도도 먼저 사람이지요 사람이 인격존엄을 내놓고 존재할 리유가 없지않습니까? 나도 심리작전의 각도에서 벌린일입니다. 뭐, 먹고살데가 없는 령감쟁이가 빌어빌어서 선생질하는것도 아닌데 뭘 꿀릴일이 있다구, 조선족이라고 우습게 알지말라구 한번 침을 놓았을뿐…
ㅡ 그런들 칼자루 쥔 사람이 이기지 당신이 이길같소? 결과가 좋지 않다이
ㅡ 결과가 어떤데요? 나도 각오하고 있습니다. 기껏해야 계약을 파하고 사퇴시키 기는것밖에 있습니까? 아따, 그만두라면 그만두면되지 하늘 무너질일이라구, 그렇지 않아도 정이 싹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내가 사업착오를 범하지 않는이상 먼저 계약을 파괴하지 못합니다. 내가 배상금을 받아내려 할테니까요
    그런 일이 있은후 왕주임은 영어계로 넘어갔던것이다. 아무튼 나로서는 나쁜일이 아닌데 새로온 장주임에게마저 득죄하게 되였으니 “내 전도”가 스스로 내다보이였다.
   …년말에 가서 벌금이 체현되는가 어쩌는가 지켜봤더니 과연 로임에서 벌금을 뗀 흔적이 없었다. 벌금은 당하지 않았지만 다른데서 봉창을 당하였다. 역시 칼도마위에 고기는 주인이 베기에 달린것이다. 새학기 첫달로임명세표에서 기본로임이 60원 줄어있었다. 차선생도 50 원이 줄었다면서 두덜거렸다. 칼자루 쥔놈이 이긴다고 하지만 이건 단순히 일년에 720원을 손해보는 문제가 아니였다. 뒤통수를 맞아도 까닭을 알고 맞아야 어째서 아픈지 알게 아닌가
    계주임을 찾아 원인을 따지니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하였다. 아마 독도조에서 평의하고 교무처에서 정한것이 아니면 인사처에서만 할수 있는 일이라고 발뺌했다. 차선생도 상급을 찾아가면 함께 가자고 하면서 묻어나섰다. 인사처의 간능한 녀과장 은 자기도 모르는 일이라고 하였다. 아마 계에서 정한것이 아니면 독도조에서 결정 한것을 재무처에서 실행한것 같다고 하였다.
    역시 올리밀고 내리밀고 회피하는 판이였다. 속에서 주먹같은것이 울컥 치밀었다. 비록 3년합동을 하였지만 평양감사도 제싫으면 그만이라는데 이건 무슨 감사자리도 아닌데 그만두면 끝이지하고 성이 독같이 올라있었다. 하지만 명철보신하며 교묘하게 둘러맞추는 인사과장을 나의 한어수준으로는 이길수 없었다. 저절로 한심해졌다.
    결국 구체적으로 로임지불규정을 밝히지도 않은 계약서에 서명한 내가 어리석었다. 이제 와서 법률적 근거를 찾을수도 없었다. 그렇게 해먹은 사람들이 우둔할리 없었다. 그래서 기껏 했다는 소리가 단순히60원문제가 아니라 인격과 존엄문제이고 학교측의 신뢰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들이 가려워나 했으랴, 결국 나만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으로 락이찍혔을것이고 형식이 다르게 벌금을 봉창한 그들이였다.  
 
                                                                          4.
 
    2010년 상학기가 거의 끝나가서 학생들은 졸업론문을 준비하느라 바삐돌고 연구생시험을 칠 학생들이 바지런히 사무실을 찾아들었다. 어느날 참고참느라 배배꼬 여있던 밸이 활풀리며 끝내 분노로 터져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그날, 연구생시험을 준비하는 리몽이란 녀자애가 나를 찾아왔다. 왜소한 몸집에 총명하게 생긴 그애는 싹수가 보이는 우수생이였다. 시간마다 제일앞자리에 앉아서 한국문학사강의를 받으며 때론 내학식으로는 당장 대답할수 없는 까다로운 문제를 들이대군해서 저으기 괘씸하게 여기기도하던 애였다. 그런데 후에 그애의 작문을 읽고나서 그애에 대해 호감을 가지게 되였다. 그래서 이것저것 돌봐주었고 방학에 집에 돌아갈때마다 낡은옷보따리서껀 챙겨보내기도 했다. 조선족애들같으면 자존심이 상해 고깝게 생각하련만 엄마. 아버지가 잘입겠다고 고마워하는 그런 순진한 애였다.
    유방시의 시교에서 온 애였는데 아버지는 매일 집수리를 하는 집들을 찾아다니며 모래마대랑 메여올리며 푼돈을 벌어서 아이의 소비돈을 마련하는 처지였다. 자기도 여름방학이면 아버지를 따라가서 모래마대랑 춰주며 아버지가 어떻게 인생고에 모대 기는가를 페부로 느끼고 연구생까지 나와서 성공하려고 결심했다고 하였다. 워낙 공부를 잘해서 3년내내 장학금을 타서 공부하고있었다. 내가 그런 가정형편으로 연구 생공부까지 할수 있겠느냐고 걱정했더니 장학금을 타서 공부하며 한국어를 철저히 장악하겠노라는 기특한 처녀애였다.
    그러던 리몽이가 며칠째 수심이 가득한것을 발견했다. 무슨 어려움이 있는가고 캐여물으니 청도대학에서 조직한 정치보도반에 보명비가 300원이고 보도받는 기간 려관에 들어야 하는데 학교서 내준다는 장학금이 나오지 않아서 근심이라고 했다. 나는 먼저 점심이나먹고 사무실로 오라고했다. 나의 정성이라며 돈천원을 건네주었다. 사양사양하다가 천원까지는 필요없다며 먼저 5백원을 빌려쓰고 장학금이 나오면 꼭 갚겠다는것을 억지로 밀어주었다. 마음이 여린 녀자애는 그만 눈물이 글썽해졌다.
그런 사연이 있는지라 리몽이는 나를 각별하게 따랐고 혼자 해결할수 없는 문제 이면 서슴없이 찾아왔다. 그날도 “춘향의 인물성격의 의의”라든가 “카프문학의 문학 사적 지위”라든가 하는 문제를 300자이내로 함축해달라고 찾아왔다. 해답을 거의 작성하는데 공교수님이 다가왔다.
ㅡ 리멍, 니 깐썬머라이야,
ㅡ 네, 한국문학사에서 모를 문제가 있어서 최교수님을 찾아…
ㅡ 아이야, 리멍,니야니야, 니쩌양쒜시 쩐머코쌍 앤쥬성아? 쒜시야 잉가이 쯔시마, 하이유, 샌자이쓰 치머코스라, 치머코스치잰 쒜성 뿌넝 수이밸 진쬬앤스, 니메이 칸잰 먼상테더 즈툐마? 깐콰이 추취, 뿌요 짜이라이, 쯔도마?
    기말시험 때 학생들이 교연실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것은 틀리지않는다. 졸업 생은 먼저 시험이 끝나서 아래학년 학생들의 기말시험과 관계없는 상황이다. 그러면 자기를 찾아오는 학생들에게는 왜축객령을 내리지않는가? 제무안에 취해 울상이 되 여있던 리몽이가 교연실을 나갔다. 공교수가 왜그렇게 나오는지 모르는바 아니지만 참기로 했다. 그런데 허선생이 오래동안 벼르던 말인듯싶은 느닷없이 내뱉은 말이 나의 분노의 화약고에 불을달았다.
ㅡ 그래 선생님은 학생들이 다 선생님을 찾아오니 영광스럽습니까?
    그야말로 자다가 남의 다리를 긁는격이였다. 어감에 둔감한 내가 아니였지만 한동안 실어증에 걸린듯 어안이 벙벙해졌다. 마침내 감각을 되찾았다. 곱게 생긴데라 곤 한군데도 없는 얼굴, 공자가 겉이자 속이니라했는데 남자의 생김새가 성격을 내비친다면 녀자의 생김새는 태생적성품을 말해준다고 할수 있겠다. 막생긴 얼굴처럼 심사도 비틀어져있다는것은 슬픈일이다. 잘나지 못해도 품성 하나로 사랑스러운 녀자는 확실 히 많다. 그러나 동시에 나쁘게 변해버린 녀자는 나쁜남자보다 더 나쁘 다. 과연 저런 녀자를 두고 하는 말인가?
ㅡ 그게 무슨말이요? 그래 학생이 선생을 찾아오는게 비정상인가? 그래 내가 학생들을 찾아오라고 사탕을 주며 유혹해서 오고 광고해서 찾아온단 말이요? 하긴 교원출신이 아니니까 잘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하는게 아니오. 정말 그렇게 안되여서 그렇지 교원으로서 학생들이 많이 찾아오는 영광과 보람이 또 있을것같소?
ㅡ 조용히 시험지를 매기겠는데 시끄러워서 그럼다.
ㅡ 시끄럽다구? 그럼 학생들이 허선생을 찾아올때는 어떻소?
    그 무슨 개뜨물먹는소릴 하는가? 라는 말이 튀여나오다가 입술에 걸렸지만 복창이 터질노릇이였다. 분위기가 점차 험악해지자 공교수님도 차선생도 약속이나 한듯이 정말 시끄럽게 느껴지더라고 집중공격을 해댔다. 오랜 지기였던 차선생마저 그렇게 나오는데는 실망이였다. 나는 떨리는 주먹을 주체못하고 사무상을 내려쳤다. 쾅- 하는 소리에 모두 와뜰했다. 사무상위에 놓은 5미리메터짜리 유리가 덜러덩했다.
ㅡ 왜들 모두 개×같이 노우? 너무 그러지맙시다. 보자보자하니 공선생님이 내가 함수출신이라고 없신여기는것 같던데 당신들 그리 높이계시여 해내싼 일이 뭔데요? 사람마다 제특장대로 이런저런 성과들을 올리지만 그래 내가 당신들과 높이를 겨 누오? 자리를 다투오? 다같은 연길서 와가지고 왜들 가만히있는 사람을 잡지못해 지랄이요? 티각태각하면 저옆칸에 한족교원들이 비웃는다이. 놀아두 더럽게…
ㅡ 당신이 누구를 감히 개×같다고 욕하는게요?
ㅡ 바루 당신같은 사람을 개×같다고 했소, 함수때 스승이라구 존중해주었더니 바루 대단한것처럼, 나이는 자치동갑이라구, 뭐가 그리잘나서…계약이 끝나면 더러 워서도 갈것이니 콱 잘해 먹으시게나. 그러나 가기전까지는 너무 그러지맙시다.
    나는 제분을 못이겨 목이 꽉메면서 말을 더잇지못하고 문을 차고나서니 학생몇몇과 옆간에 조주임이랑 문가에 서있었다. 대문밖에 나가서 련거퍼 두대를 피워도 분이 삭아지지 않았다. 대노한다는것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가지고 자신에게 성풀 이하는것을 의미하지만 언제 그런 사치한 철학까지 풀것인가? 다시 교연실에 들어와 허선생에게 따졌다.
ㅡ 허선생, 아까 한말을 다시 해보오, 뭐 영광스러운가구? 영광이란게 뭔데?
    내가 너무 험상궂은 얼굴로 들이닥쳐서인지 허선생은 대꾸를 하지않고 시간보러 총총히 나가버렸다. 나도 교수청사앞 련못가에 나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교정내에서 담배를 피우다 들키면 200원을 벌금하지만) 방금 있었던 일들과 자기의 인간상을 돌이켜 반성해 보았다. 내가 좀 과격하고 거칠게 나온것은 있지만 원인제공도 생각해 보면서 자신을 변명해보기도 하였다.
    나로서는 분노에 리유가 있다고 자기를 변명하지만 충족한 리유는 아닌것이다. 일은 왕왕 분노로 시작되여 자괴감으로 끝나는 법인줄을 모르는 내가 아니다. 분노 속에서도 온화함을 잃지 않는 사람은 확실히 현자이리라. 그러나 나는 현자가 아니다. 누구나 세가지 성격이있다. 드러내고있는 성격, 가지고있으나 드러내지않은 성격, 자기가 가지고있다고 생각하는 성격 이 세가지인데 나는 드러내지 않은 성격을 로출 시킨것이라면 허선생이나 공선생은 원래부터 드러내고있는 성격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뒤집어진 부아통을 바로 잡을수 없었다. 아무튼 나의 내심의 독립왕국이다.
    나는 퇴직3년을 앞두고 기구간정인지 뭔지에 걸려 학교에 밀려나온후 7년남아 연길시내에 사립학교들을 전전하며 저희들 마음에 들지않는 교원을 쫓아내는 학생 들도 보았고 산지사방에서 초빙된 교원들 사이에서 음으로 양으로 벌어지는 알륵도 겪어았지만 공선생같은 사람은 처음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만나서 소중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고 이러저러하게 섞인것을 후회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지만 말이다.
   후에 아이들한테서 들었지만 그날 리몽이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책상에 엎디여 한시간이나 소리내여 울었다는것이였다. 자존심이 한창 살얼음같은 녀자애가 그렇게 상심하였다는것은 이상할것 없었다. 일심불란 공부하는데 “그렇게 공부하고 어떻게 연구생이 되겠는가?”고 한 한마디가 된서리를 안겼을것은 당연하다.
    원래 록취점수가 높은 해양대학인지라 다른 애들은 신심이 없었던것도 있었지만 리몽이 하나만이라도 붙으라고 밀어주었다. 그런데 공선생과 허선생은 그래도 깊은 골을 쓰는데는 남자가 낫다며 연변대학에 지망까지 낸 조수란 남자애를 설득해서 지망을 바꾸게 했다. 조수도 리몽이와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는 우수생이였지만 한학 교내에서 경쟁자를 만드는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였다. 보다못해 한마디했다.
ㅡ 글쎄 남자에게 우점이 있을수도 있으나 리몽이 하나만이라도 붙겠는지 알수 없는 판에 한학교에서 경쟁자를 내세우는것은 잘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오.
허선생이 나의 말을 되받아쳤다.
ㅡ 리박사에게 조수를 제자로 받으라고 청탁했더니 같은 값이면 분홍치마라고 남자면 더 좋다고 합디다. 그리고 될수록 돌봐달라고 했더니 그러마하고 답복했는데 리몽이만 해양대학에 가야 한다는 법이 있습니까?
나는 그렇게 나오는 허선생과 더할말이 없어 토를 달지않았다. 범이 제흉을 하면 온다더니 그런판에 조수가 들어왔다. 자기를 적극천거하는 허선생인지라 자주 찾아 와서 조언을 듣군하는터였다.
ㅡ 문학에 관한문제는 다른 선생을 찾을것도 없이 저 차교수에게서 지도받으면 되고 어법은 공교수에게서 지도받으면 돼요. 알아들었어요?…
    내가 한국문학사를 강의하고 사작과랑 맡았다해서 꼭 나만이 문학과를 지도해야 한다는법은 없지만 작심하고 공공연히 나를 무시하는것이 분명했다. 아녀자와 다투면 사내대장부가 아니렸다. 아무나 붙으면 좋은일이니 내명예, 네명예를 따질필요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다 사심이있다. 내가 리몽이를 밀어주는 사심이나…                             
     인간의 마음이란 물과 같은것이여서일가? 공교수가 오는것을 그렇게 반대하던 허미련선생은 녀자의 간능한 처세술로 어느새 령도분이 된 공교수와 단짝이 되여졌다. 그러는 양자를 보며 인간의 마음이 아무리 무상하다해도 왼고개가 비탈리여 바로 볼수 없었다. 그것이 사는데 제일 기술인지 나는 모른다. 다만 표리부통과 아첨하는 성질은 인간의 넋중에서 가장 너절하고 가련한 넋이라는것만을 알고있을뿐이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래동안 들여다 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 보게될것이다.ㅡ니체 ”
 
                                                                            5.
 
    또 말썽많을 졸업론문답변을 할 날자가 코앞에 다가왔다. 해마다 7-9명이 차례졌는데 이번에도 말썽이 나자고 그랬는지13명이나 되였고 론문초심도 공교수님이 친히 맡으셨다. 달걀에서 가시라도 찾아낼 심사인 공교수가 심열하는 론문에서 차질이 발견되지 않으면 오히려 비정상이다. 역시 동작은 같았다.
ㅡ헝, 쩌쓰 썬머화야? 찐쓔웨? 김소월도 모르는 주제에 무슨 론문을 쓴다구?
    말썽이 된 론문은 흑룡강 이춘에서 온 풍첩이란 녀자애의것이였는데 이미 석가장에서 직장을 찾아서 출근하고있었다. 표지에 오타가 나타난것은 확실히 엄청난 실 책이다. 변명으로 들릴지 몰라도 내가 소홀한것도 아니였다. 표지를 찍고 장정하여 심사위원회에 바치는것은 학생의 몫이였다. 창피한대로 다가가보니 한자 “金素月”은 제대로 썼는데 아래 한국어번역이 “김수월”로 되여있었다.
ㅡ 이애가 잘못한것은 사실이지만 학교에 남아있는 친구에게 부탁하여 찍는다고 하더니 이런 실수가 생겼군요. 다 내가 소홀했던 탓입니다. 하지만 론문에는 김소월 이 김소월로 되여있는데 그렇게 말하면 결국 내가 김소월도 잘모르면서 론문지도를 했다는 뜻으로 들리는군요. 작정하고 한말이라도 그렇게 말해서야 되겠습니까?
ㅡ 그래 내가 없는 사실을 말했소? 지도교원은 뭐하고?
ㅡ 알다싶이 학생이 론문을 찍어 먼저 심사조장에게 바치게 되여있지 않던가요? 그다음 지도교원에게 나누어주고….아직 나의 손에는 들어오지 못해서 표지가 어떻게 되였는지 보지 못했습니다. 이건 선생님도 알지요?
ㅡ 어쨋든 읽어보나마나 형편없는 논문이오, 그 학생을 오라고 해서 다시 찍소
ㅡ 표지를 몇장 찍는건 간단한데 석가장에서 일하는 애를 차비를 팔며 왔다가라 는것은 무리입니다. 하루 앞당겨 오라고 전화는 하겠습니다만은…
ㅡ 당신 똥집대로 하구려.
     내가 공교수를 들으라는듯 성내며 하루앞당겨 오라고 호통쳤더니 풍첩이가 밤차를 타고 헐레벌떡 달려왔다. 학생이야 어떻게 오해하든 공선생이 듣는데서 호되게 닦아세웠다. 내가 전에없이 콩팔칠팔하는 속심을 풍첩이가 꿰뚫어보았다면 아마 웃다 가 눈물이 다 나왔을것이다. 첫장부터 나쁜인상을 준 론문이 무난하게 통과되게 하려고 풍첩에게 잘 반성하라고 일렀다. 깜찍하게 생긴 그대로 애교를 발라올리며 사정 사정했지만 엄연한 도사님의 표정은 종시 풀리는것 같지않았다.
    아닌게아니라 풍첩의 론문은 답변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짐작이 갔지만 그 원인을 물었더니 어처구니없었다. 답변할 때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성근하게 답복하지 않 았을뿐만 아니라 태도가 나빠서 젊은교원들의 의견대로 통과시키지 않았다는것이 였다. 풍첩에게 물어보니 밸은 났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단다.
ㅡ 아니, 답변시 학생의 태도가 인상문제이지 론문자체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것 입니까? 뭐, 꿍관쑈제를 뽑습니까? 론문의 질을 심사합니까?
ㅡ 나혼자 결정한 일이 아니오? 젊은교원들이 다 안된다는데…
시비해봐야 벽을 마주하고 소리치는 격인지라 더말하지 않고 소위 태도를 보았 다는 젊은교원들을 찾아가 캐여보니 자기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결국 풍첩이는 며칠후에 있게 되는 보충답변을 위해 석가장에 갔다가 다시오지 않을수 없었다. 사리에 밝은 교연실주임이 작정하고 그번에는 공선생을 참녜시키지 않고 자 신이 조장을 맡아 심의하였다. 사실 론문자체는 문제가 없어서 우수를 맞았다…
    …연구생시험이 끝나는날 리몽이가 신심이 있다면서 집에 돌아가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전화를 걸어왔다. 비록 내명의하에 학생은 아니지만 부디 붙어줍시사하고 속으로 빌었다. 방학을 앞두고 교연실에서 회식을 하던 날이였다. 어느새 아홉시가 다되였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이밤에 누가 전화하는가고 의아쩍게 생각하며 받아보니 은방울을 굴리는듯 고운목소리가 귀속을 파고들었다. 리몽이였다. 인터넷에서 찾아 보았는데 여덟번째 성적으로 록취되였다는것이였다. 나는 너무 기뻐서 전화도중에 좌중에 희소식을 전했다.
ㅡ 희소식이오. 리몽이가 여덟번째 성적으로 해양대학에 록취되였다오!
그런데 모두 들었는지 말았는지 아무도 반응이 없었다. 내가 맹물에 명태대가리 놀듯이 혼자 찧고까불어댄셈이다. 자신이 애써가꾼 나무가 꽃이 피지않아 심통이 났 더라도 그만한 신분들이면 아량들이 있어서 겉치례라도 “아무튼 잘되였구만!”하고 말하려니 했는데 웬걸, 무슨 헛소리를 줴치는것으로 간주했던지 덤덤해있었다.
    너무 한심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누가붙으나 모두의 기쁨이고 자랑이 아니겠는가? 사립대에서 명성이 뜨르르한 해양대학연구생, 그것도 한국어 전공의 연구생이 나온것이 여간한 일인가? 나도 그들을 시까슬러주고싶었다. 이튿날 낮에 걸어도 될것을 그 전해에 해양대학연구생으로 된 조경연이란 녀자애에게 전화 를 걸었다. 리몽이란 후배가 연구생으로 가게 되였으니 언니처럼 잘돌봐주라고 하지 않아도 될 부탁을 했던것이다. 역시 얄팍하기로는 그나물에 그밥인 나의 심사이다.
조경연이란 녀자애는 첫해에 영어성적이 3점 모자라서 록취되지 못했는데 청도 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다시 복습해서 붙은 아이였다. 그애가 록취되였다고 소식을 전해왔을 때 내딸년이 성공한것처럼 기뻣다. 집에갔다가 돌아와서 인사드리겠노라고 하던 그애가 어느날 무엇인가 꽉 채운 커다란 비닐주머니를 들고 집을 찾아왔다
    락화생이였다. 할머니가 가꾼것인데 한알한알 골라서 넣은것이라며 맛을 보라는 것이였다. 눈물이 찔끔 나올번했다. 하남성의 먼 시골한끝에서 뻐스타고 기차를 갈아 타며 오다보니 비닐주머니는 볼품없이 더러워져있었다. 조선족처녀애들, 더구나 대학 졸업생이라면 말만 들어도 천정에 나붙을 일을 조경연이란 처녀애가 한것이다.
    늘 옷차림이 수수하고 얌전해서 겉볼바엔 조금 어리숙해 보이지만 당당한 대학생이다. 녀애가 남의 눈치도 보지않고 락화생주머니를 들고 찾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감동시키고도 남았다. 자기가 연구생이 된데는 내덕분이라고 했지만 기실 내가 해준 일은 별로 없었다. 인정이란 주고받는것이요 그 어떤 대가를 바라고 주는것이 아닌것이다. 인정많은 녀자애들이 많지만 경연이가 더 각별하게 가슴에 새겨졌다.
    이야기가 될라고 그러는지 새록새록 사건들이 터졌다. 아니, 터진게 아니라 바보스러운 내가 엮었다고 해야 더 적합할것이다. 신년차야에 맥총장이 교내의 로교수님 들을 위로한다면 학교초대소에서 연회를 차렸다. 미구에 료리들이 들어오고 주연이 시작되였다. 칸칸이 돌아다니며 술을 붓고 오는지 총장께서 들어오더니 내옆에 빈자리에 앉았다. 수장어른을 모신지라 모두 어줍은 표정들을 짓고있었다. 술이 몇순배 돌자 맥총장이 이 기회에 좋은 건의들이 있으면 제기해달라고 하였다.
    아무도 감히 입을 열지 못하고 서로 눈치들만 보았다. 선줄군의 보직에 오르기전까지는 학교의 이런저런 일이 다 눈에 차지않는듯이 불평불만이 제일 많던 공선생쯤 해서는 건설적인 건의를 말씀드릴듯 싶기도한데 만면춘풍이 되여 좋은소리만 하고 있었다. 아첨기가 줄줄 흐르고있었다. 돌고돌다가 맥총장이 인사치례로 나에게 몸을 돌리며 좋은건의가 있으면 서슴치말고 제기하라고 하였다.
    물론 내가 나설자리는 아니지만 아무도 말하지 못하는 문제를 내가 말하리라 작심하고 썩잘하는 중어를 답새기였다. 첫째는 뒤에서 의견이 방치같은 집세문제였 다. 당초 초빙할 때 가족을 데리고 오면 단독으로 숙소를 제공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정작 오고나니 40평방의 집은 107원을 내고 가외로 물세, 전기세, 취난비도 다 내게 되였다. 그렇고 그런 세상이니 내라는대로 다내며 살았다. 그런데 갑자기 집세가 네배로 올라서 430여원이 되고 취난비도 엄청나게 부쩍 올려버렸던것이다.
    두번째는 무어냐고 하기에 매일저녁 자습전에 보통화훈련을 하는데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시간을 한국어훈련을 시키면 좋겠다고 하였다. 리유가 무어냐고 바투들이대니 말이 좀길어졌다.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언어환경이란 과당수업 45분밖에 없으니 문법지식이랑 괜찮지만 대화는 아주 차한즉 보다더 한국어를 잘하려면 한국어 훈련환경을 창조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아이들마다 엠피싼으로 한국노래도 듣고 또 학교의 어음실에서도 한국 어훈련을 하고있다고 했다. 총장이 그렇게 나오니 더 할말이 없었다. 기색을 보니 그리 밝지 않았는데도 마지막까지 말씀하시란다. 결과야 어찌되든 이미 빼든칼이니 그대로 거둘수는 없었다. 외국어는 본토언어를 많이 듣는게 좋으니까 매일 듣게 하는 뉴스시간을 한시간만 덜어서 한국텔레비를 볼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총장은 들었는지 먹었는지 열정적인 반응이 없더니 인차 자리를 떠나버리였다. 혼자 잘난체하고 입바르게 논 자신이 머절싸하게 느꼈지만 엎지른 물을 다시 담으랴, 애들의 한국어수준을 어떻게 제고시킬것인가 하는문제는 나같은 비둘기패가 관여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게 내마음이고 내생각인데야 어쩌랴, 다행히 세가지 건의에서 한가지는 채납되였는지 새학기에 수요일마다 보통화훈련대신 한국어훈련 시간을 안배했다. 학생들을 위해선 잘한 일이나 입덕은 내가 입었다.
 
                                                                          6.
 
    봄이 왔다. 겨우내 회색꿈을 꾸던 교정이 깨여났다. 여기저기 잔디밭이 푸르러지고 나무들에 새싹이 돋는듯싶더니 어느새 연록을 물들이고있다. 교정의 곳곳이 부드 러운 연초록빛속에 생기를 띠고있다. 미구에 복숭아꽃이 피고 살구꽃이 하얗게 흐드 러지고 정향, 옥란, 무궁화, 사꾸라가 만개하여 향기롭다. 연못가에 다시 영어, 일어, 한국어 단어를 외우는 학생들이 랑랑한 글소리가 귀맛좋게 들린다.
    봄은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계절이지만 주어진 생명이 또 한해 단축되는것에 민감한 로옹에게는 구십춘광도 그저 그렇다. 더구나 내일생에서 생각하지 않게 제일 재수없는 봄날이라 할가, 두눈을 펀히 뜨고 최면술에 걸린듯 완전히 바보가 되여진 봄이기도 하였으니말이다. 물론 그들로서는 스스로 멋스러웠을지도 모른다.  
    하루는 공선생이4월 23일에 길림신문사 “한국어촌”편집부에서 청도에 와서 백일장을 한다고했다. 이상했다. 그동안 “한국어촌”에20여편의 학생작문을 발표시 키다보니 편집들과도 련계가 잦은데 나에게는 왜전화하지 않았을가? 명색이 사작 교원이니까 결과적으로 내게 임무가 차례질터이지만 속이 찜찜했다.
    2년전, 청도대학에서 있었던 첫번째 백일장에서 죽쩡이농사도 못지은 바람에 한편 부담이였고 한편 봉창을 하여 구겨진 체면을 세우고싶기도했다. 그때 어찌된 일이냐고 계주임어른이 싫은소리를 하던 일을 생각하면 공연히 속이 곯는판이였다. 그런데 별스러운것은 사작교수와는 아무상관도 없는 허선생이 열성을 내는것이였다. 숭어가뛰니 망둥이도 뛰는격인가? 아니면 달리깨비 춤추니 베졸배도 춤추는격인가? 아닌게아니라 공선생과 오가는말이 점입 가경이였다. 그러다가 말말간에 장을 빌듯이 첫번 백일장에는 어떤 제목이 났으며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가고 물었다.
ㅡ 첫번에 빈탕치고나니 나도 파악이 없수다.
ㅡ 그때는 그게 어디 선생님이 잘못인가요? 전미가 사작교원을 한것인데요.
    하긴 그랬다. 나는 오던해 학기에 한국개황과 한국문학사를 강의하다보니 학생들의 글짓기수준에 대한 료해가 없었다. 그래서 월수대학에 리선생이 한국어를 배우는 대학생들의 작품집을 출판하자고 할 때 응낙하였지만 원고래원은 사작과를 맡은 전미 선생과 열독과를 강의 하는 진교수가 추천한 23명의 학생작문을 주물러서 보냈다. 그탓에 백일장에 내가 지도교원으로 가게 되였다. 명액이 하나인것을 잘하노라고 한명 더 달라고해서 둘을 데리고 갔는데 그만 하나도 걸리지 못하였었다.
    나는 바보처럼 학교에서 먼저 선발대회를 하고 선수를 뽑는게 좋겠다고 속생각 을 말해버렸다. 그게 무슨 계시가 되였던지 며칠후 교내작문경연이 있다고 하였다. 내가 직접 책임질일인데 내가 너무 순진했다. 어느날, 계주임이 경연에 참가할 학생 들이 다왔는데 뭐하냐고 공선생과 허선생을 재촉했다.
    그때까지도 편애와 객관성을 보장하느라고 아무상관없는 허선생에게 책임는 가하고 생각하며 작문지가 나오면 나에게 가져오려니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웬걸, 경 연이 끝나서 허선생이 작문지를 자기가방에 쑤셔넣는게 아닌가? 그제야 무슨 감투끈 인지 어렴풋이 알아챘지만 하회를 더 기다려보기로하고 참았다. 분노와 불안에 대한 최고의 대책은 판단을 늦추는것이라 하였거늘…
    이튿날, 드디어 공선생과 허선생의 고명한 작전방안이 드러났다. 명색이 사작교원인 나를 왕따시켜놓고 저희들끼리 할 작정이였던것이다.
ㅡ 차선생님, 바쁘신대로 이 작문들을 보시고 골라내보세요. 그리고 공교수님도 이걸 보세요. 나혼자 온밤 읽어보았지만 그나물에 그밥같아서 결정못했어요.
    나에게는 눈길도 돌리지 않았다. 그때까지 얼빤한 놈처럼 눈만 뒤룩거리던 나는 속에서 주먹같은것이 치밀었다. 그러나 참았다. “그래 잘들 해봐라” 아무일도 하지 않으면 공로는 없지만 적어도 말썽들을 일은 없다했거늘, 말썽이 많은 이 학교에서 차라리 잘되였다고 생각하니 분이 저으기 가라앉았다. 굿이나 보다가 떡이나 얻어먹을 일도없이 수수방관이 상책이 아니겠는가? 작문들을 심열하시는 모습들이 참 가소 로웠다. 이틀지나 생각밖에 허선생이 종이뭉치를 내책상우에 놓으며 지시했다.
ㅡ 선생님은 따좐반학생들의 작문을 보고 선수를 골라보세요.
잔뜩 밸이 꼬여있던 내입에서 고운소리가 나올리 없었다.
ㅡ 내가 왜 따좐반을 보아야 하지?
ㅡ 선생님이 따좐반을 가르치지 않았는가요?
ㅡ 내가 언제? 내가 맡았던 애들은 이미 졸업시험을 다치고 직업찾으러 뿔뿔이 헤여졌다는 사실을 몰라서 하는 말이요? 결자해지라했으니 시작한 어른들이나…
ㅡ 그래도 작문선생이 아닙니까? 자기 책임은 다해야 하지요
ㅡ 무슨 개가 풀을 뜯어먹는 소리를 하는거요? 언제는 괄호밖이더니 지금와서는 작문교원리라구? 사람을 뭘로 보는거요? 난 싫으니 능자들이 알아서 하시지요.
ㅡ 이게 우리가 결정한게 아니라 계주임이 그렇게 안배한것입니다.
ㅡ 그래요? 그럼 계주임더러 선발하라고 하시지요.
    …그러나 바보같은 나는 끝까지 고집을 부리지못했다. 손자놈을 소학교3 학년까지만 한족학교에 다니게 하여 한어를 제대로 배우게 하고 세번째 수필집이나 출판할 돈을 마련할가하는 욕심에 한 3년 더하려고 생각하던차 너무 삐딱하게 나오는것도 명지하지 못하였다. 20여편의 작문에서 두편을 골라내고 아래층에 전과반선생들을 찾아가 학생에 대해 료해했다. 과임들은 왕명명이란 애는 알지만 작문을 잘쓰는지 어 쩐지는 잘 모르겠다고했다.
    담임을 찾아가니 아이가 학생회간부로서 공부도 잘하고 총명령리하다고 하면서 아이를 불러왔다. 곱살스럽게 생긴건 둘째치고 말하는 품을 보니 상상력도 괜찮은듯 싶어서 그애의 정황을 허선생에게 회보했다. 며칠지나서 무슨 꿍꿍이판인지 본과반 남자학생 하나와 전과반 명명이의 작문을 지도하라고 하였다. 수필한편도 발표해보지 못한 허선생이니 지도능력은 불보듯 뻔하니 벌써부터 물러설 역은 궁리를 하는 역은 수작이라고 비틀어 생각하며 두마디안짝에 여지없이 면박주었다.
ㅡ 싫수다, 선수는 당신들이 뽑았으니 잘하시는 분들이나 하이소. 죄는 도깨비가 짓고 벼락은 고목이 맞는다고 성적을 따내면 다 당신들이 지인지감이 있어 성과를 따냈다고 할것이고 아무성과도 없으면 싫은소리는 고스란히 나한데 돌아올것이 뻔한 데 내가 무슨 넘쳐나는 바보인가? 처음부터 관계하지 않은게 불행중다행인데…
    …그러나 결국 나는 작문교원으로서의 책임을 벗어나지못했다. 스스로 참 불쌍한 놈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임무를 맡기로했다. 역시 어떨궁이 사람을 죽인다고 혹시나 성적을 따내여 땅바닥에 떨어진 위신을 살릴수도 있겠다고 다시 검토해보았던것이다. 그들이 골랐다는 학생을 보니 그동안 신문에 작품이랑 발표하였고 개성이 강한만큼 사유도 독특하다고 점찍었던 대련태생 증효욱이란 녀자애는 후선인 명단에도 없었다. 그애를 제기하니 그래도 남자애들이 현장발휘능력이 있다고 우기였다.
    작문지도란 속전속결로 해결할 일도 아닌지라 성과를 따내고보자는 야심으로 씹어서 먹여주기로 했다. 부르기좋은 개똥녀처럼 거의 공통제목이 된 “어머니”,“나의 친구”, “내고향”같은것을 씌우고 윤색해서 암송게 하였다. 그리고 시기가 봄인만큼 “봄”이라는 큰틀안에서 여러편 짓게하고 수개해주었다. 매학생이 열편도 넘게 썼다. 이만하면 먹은소 똥누듯 할것같아서 기대심을 잔뜩 부풀리고 청도에 건너갔다.
     이튿날, 작문제목이 공포되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본과반에는“봄날의 약속”외에 “내고향”이 났고 전과반에는 “내친구”가 첫제목이였다. 명명이가 쓴“나의 친구”는 착안점이 새롭고 주제도 선명해서 그럴듯하게 잘 다듬어주었던것이라 2등쯤은 가능하겠다고 혼자 좋아했다. 그러나 기대란 언제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법이다.
    공든탑이 무너지랴는 속담이 나를 비웃었다. 셋중에서 가작상에도 걸린애가 없었던것이다. 령도신분으로 간 공선생을 보기가 창피했다. 말은 교원탓인가 하면서도 “뭐, 네밑천이 그뿐인데 뭘어쩐다고…”하는듯싶기도 해서 식탁이 넘치도록 차려놓은 료리가 내입으로 들어가는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도 몰랐다.
    기대에 못미치여 죄송하다는 아이들에게 무어라 말할수도 없었다. (나자신이 몸만 늙은게 아니라 창신정신도 볼장을 다봤구나…)하고 생각하니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는 속담을 떠올릴 리유도 없었다. 저절로도 한심해졌다. 학교에 돌아와서 공선 생이 어떻게 회보했는지 계주임이 즉시 나를 부르지는 않았다. 다행인가?
    이튿날 여느때처럼 문학사를 강의하는데 별스레 긴장한 기색으로 이상한 눈짓을 하는 애들이있어 뒤쪾을 살펴보니 미리 아무연통도없이 영어를 하였다는 독도조에 녀선생과 역시 영어계출신이라는 장원장(내부적으로는 원래의 계를 학원이라 불렀 다)과 공교수님이 근엄하게 앉아계시는게 아닌가? 기분이 이상해지면서 심상치않은 징조를 련상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간, 죽으라고 소리질러도 무슨말인지 알아듣지 못할 사람들이 기껏 본대야 교수태도나, 수업분위기나 가늠할것이니 문제는 공선생이 그들에게 강의가 여사여사하다고 회보할탓에 달린일이였다.
   느닷없는 참관교수를 공선생이 획책했는지 원에서 기습적으로 들이댔는지 알수 없었지만 공선생이 나에 대해 좋게 말할리 없다는것은 뻔하다. 다만 교원의 량심으로 공정하게 말해주기만 바랄뿐이였다. 마음은 그렇게 다잡았지만 심리준비가 없었던차 라 좀 당황한 가운데서 지어먹은 열정을 내였고 한마디 한마디에 근신하였다. 강의를 듣고 무슨 소득이나 있는지 그냥 나가는 그들을 보는 내마음은 씁쓰레했다.
    까마귀날자 배떨어진다는 속담이 맞는지는 모르나 생각하지 않은 결과가 나온것은 사실이다. 이튿날 장원장께서 나를 오시라는 전갈이왔다. 별로 접촉이 없었지만 공연히 시뚝해하는 자태를 별로 곱게보아오지 않던 나이고 그녀도 나에게 일종 선입 견을 가지고 있었을게 분명한지라 차겁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내가 쏘파에 엉덩이를 붙이기전에 본론적인 대화가 시작되였다.
ㅡ 최교수님은 금후 무슨 타산을 가지고 있는지요, 말하자면 계약이 이번학기에 끝나는데 더 연장해서 할 생각인지요?
ㅡ 글쎄요, 뭐 내가 더하자고해서 더할수도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ㅡ 아, 그러니까 더 있고싶다는 뜻인가요?
ㅡ 그렇다고 할수 있지요, 학교에서 수요한다면 말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여기에 온 개인적목적은 손자에게 한어를 잘 배울 기회를 만들어주려는것이였습니다. 유치원 3년을 다녀서 일반대화에 막히지 않고 글자도 적잖게 장악했으니 한족 소 학교에 붙어도 잘 따라갈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ㅡ 아, 그건 선생님의 개인사정이고 우리 학교에서는 수요에 의해서 최교수를 더 초빙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재초빙을 신청하지 않겠다는…
ㅡ 그런가요? 그럼 그러세요. 학교좋을대로, 할말이 끝났는가요?
ㅡ 최교수는 왜 그렇게 잘 격동합니까?
ㅡ 하긴 내가 격동할 일도 아닙니다만. 그만하시죠, 그렇게 알고 가겠지만 한마 디만 하고 갑시다. 로동합동법에는 계약이 끝나기 두달전에 알리기로 되여있는데 넉 달이나 앞당겨 알리는 의도가 무엇입니까? 나 계약을 다시 맺지않는다는 그런 서명같 은걸 안합니다. 계약기가 지나면 자동해제되고 경제결산만 제대로 하면 끝인데 무슨 형식주의를 피우고 있습니까?
ㅡ 너무 정서적으로 나올필요는 없fmg것 같습니다. 아무튼 맡은바 교수임무를 잘하기를 바람니다. 그리고 서명은 안하여도 본인에게 이미 알렸으니 됐습니다.
ㅡ 공연한 근심이군요. 안나가겠다고 생떼질 쓸것같아 보였던가요?웃기지 마시오. 그리고 정서를 가지지 말고 공작을 잘하라는 말은 무른 론리입니까? 나는 학교에 책 임지는 각도에서 맡은 일을 끝까지 잘하려는게 아니라 학생들을 위해서 량심껏 잘 할 자신이 있으니 그런 부탁은 공연한것입니다. 잘해보십시요.
    하긴 솔직히 말하면 나는 자존심이 무척상해 있었다. 사실 그동안 있는정력, 없는힘을 다내며 심혈을 쏟았건만 나중에 학벌이 없다는 조건을 내대니 입이 쓰거워질 뿐이였다. 엎친데 덮친다고나 할가, 하루건너 불쾌한 일이 련달아 터졌다. 새학기 교재를 합동하는 때여서 교연실조주임이 내대신 사작과를 맡는다는 허선생에게 사작교과서는 무엇으로 합동하겠는가고 물었다.
ㅡ 최교수님이 그만두지만 이 선생님이 사작교재가 곧 나온다니 같은값이면…
허선생의 대답이 참으로 서리차고 맹랑했다.
ㅡ 난 그런 책을 쓸 생각이 없소. 어디 책이 없다구, 쌔구버린게 작문교과선데…
ㅡ 그래도 이 학교에 있던 선생님이고 잘아는 사람이 쓴것인데…
공교수님이 진지한 말씀이 계시였다.
ㅡ 쪼주런나, 쬬커수마, 잉가이 런커로쓰 쯔지 쇈저야, 쩌쓰 타더 쵄리마…
ㅡ 조선생, 그만두시오, 싫다면 말구,
    내가 볼부은소리를 하였다. 허선생이 자기 수요대로 교재를 선택하는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소위 작자를 앉혀놓고 그렇게 나오는것은 나에 대한 로골적인 무시였다. 너무 인정머리없다고 해야 하는가? 죄지은놈 볼기를 쳐도 사정을 본다는데 이건 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려고 작정한 그의 언동은 자신이 얼마나 빈충맞고 아둔한가를 드러냈을뿐이다. 똥이 무서워 피하냐? 참기로 작심하였다.
    그러나 더 분통이 터질일은 그후에 있었다. 3년간 사작강의를 하면서 얻은 체험으로《한국어글짓기지남》을 집필하였는데 흑룡강출판사에서 출판하기로 하고 출판 합동서까지 받아둔 상황인데 생각밖에도 책을 출판하지 못하겠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소식이란 참 빠르기도 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학교를 그만두게 되였다고 알린적이 없는데 그들이 어떻게 벌써 알았을가? 사람은 떠나가니 차물도 식는다더니…
    출판합동서를 쓰자고 먼저 제출한것도 출판사인데 그렇게 나오면 법률적책임을 진다는것을 모르느냐고 했더니 사정을 좀 봐달란다. 원인을 물으니 이것저것 문제가  많다는것이였다. 좋은원고를 주어서 감사하다고 말하던 그입으로 그렇게 말할수 있 냐고 바투 들이댔더니 경제효익을 고려하지 않을수 없다고 한다. 참으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였다. 결국 내가 교단에서 물러난다는 소식이 충격이였던 모양이다.
    자존심이 상하여 분한 마음같아서 당장 법정놀음을 벌리고싶었지만 상급에서 동 의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출판하려고 올리뛰고 내리뛰고 한 자기의 진심을 생각해서라 도 부디 소송을 걸리지 말아달라는것이였다. 나는 출판법을 잘모르지만 마음만 먹으 면 얼마든지 꼴을 먹일수 있고 일정한 경제보상도 받을것은 뻔했다. 청도, 북경 등 지에서 변호사로 있는 옛제자들에게 문의해보니 무상변호를 해주겠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조선족끼리 말썽을 일구면 설사 내가 판결에서 이기더라도 별로 광채로운 일은 아닐것이다. (에라, 지는 놈이 이기는 놈이라던가) 나는 구겨진 자존심과 억울한 마음을 다리미질하다가 마음을 접었다…사람이 늙으면 무슨 일을 벌리기가 싫고 두려운법이다. 게다가 대단하지도않은 책을 가지고 남새스럽게 분주를 떨필요도 없 으니 한번 기편당한셈치고 소송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러나 백일장에 갔을 때 여러대학의 한국어선생님들에게 책이 곧나오니 많이 주문해달라고 청탁까지 한 나는 황통쟁이가 되였고 교내에서도 실속없이 으시댄꼴이 되였으니 맹랑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빈해에서 더 교학하지 못하게 되였다는 소식을 득달같이 전해주고 내책에 그렇게 관심을 쏟아준 자상한 분이 누군지 궁금했다.
   꽃이 싫다면 닢에서 자고가지…하는 시조가 있던가? 사람은 자존심때문에 별짓을 다하는 법인지 교주에 있는 “明天学院”찾아갔다. 부원장이란 사람이 단마디에 받 겠노라며 면접강의를 시켰다. 85평짜리 집도주고 로임도 교수급으로 주겠다고 선선 히 응낙했다. 그런데 학교를 나오며 보니 근처에 소학교같은것이 전혀 보이지않았다. 주변의 마을에 들려 알아보았더니 애들이 통학뻐스를 타고 시내학교에 다닌다고했다. 내가 산동에 더 있으려는것이 손자의 한어공부때문이지만 이건 아니였다.
    연태에 무슨 학원이 있다는 광고가 그럴듯하기에 전화로 련계했더니 와보라고 해서 부랴부랴 찾아갔다. 연태시의 정치, 경제, 문화중심지에 위치했다더니 웬걸, 택시기사도 들어보지 못한 학교란다. 아닌게아니라 중심은커녕 먼교외의 한적한 곳에 조그마한 교수청사가 있었는데 “동방한국어학원”이였다. 제공할수 있다던 집은 보이지도 았았다. 신성한 교육의 기발아래 돈만 추구하는 타락한 교육에 실망했다.
    황도에서 륜도(轮渡)로 가는길 어디어디에 무슨학원이 있다고해서 찾아갔더니 길을 알려주는 한족령감이 황이난지 오랜 학교라며 광고를 믿지말라고 충고했다. 상품광고만이 아니라 교육광고도 기편성이 많다는것을 철저히 깨달았다. 위해의 무슨 학원에서 와보라는것도, 대련 어디에 무슨 학교에서 련락이 왔지만 마침내 나는 이사짐을 꿍지였다…유감이야 어찌없으랴만 고향으로 돌아간다니 헛욕심을 다털었다.
    메돼지마냥 앞으로 돌진하고 사자마냥 효률을 따지고 황소처럼 끈질고 고양이처럼 사람이 좌우지하지 않게 하고 개들마냥 무리들과 협조할줄 알고 원숭이처럼 기민령활해야 하며 매화록처럼 근신해야 한다는 인생지남이 있더라만 희비극이 연출되는 인생마당에서 각자가 각색하는 인간성문제가 내게는 내내 난제일것이다. 
 
                                               2011년      8월 20일 초고     2012년 8월 20일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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