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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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의 풍경구
2015년 06월 01일 20시 10분  조회:5306  추천:0  작성자: 최균선
                                 홀로의 풍경구
 
    흔히 더불어 살며 둥글어 온 이 세상이란다. 옳다. 저마다 나름대로 느끼고 사 고 할줄 알게 되면서부터 인간의 심령세계에 적막과 고독이라는 홀로의 풍경구가 그 어지게 되였다면 신의 은총을 받은 인간의 정신풍경구가 아니면 반갑지 않은 심리오구라 할가?
    쉐익스피어는 고독한자는 야수가 아니라 신령이라했다. 그리고 진짜 야수는 심산계곡에 있지 않고 사람들이 욱실거리는 곳에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니 누군가 스스 로 잠겨보는 고독한 세계라면 야성에서 잠간 해탈되여《신》의 경지에 이른것이라해도 어페는 아닐것이다. 그만큼 고독이라해서 다 공허가 아니며 더구나 무료함은 아니라는 말이 된다.
   여유로운 어느 한때 산마루에 앉아 락조를 바라보노라면 펼쳐지고 모여오늰 상념도 피같이 진하게 물드는듯싶은데 지각한 사랑처럼 아쉬운 석양이 잔뜩 클클해지는 가슴에 한오리 고독의 연기를 피여올리고 갑자기 절해고도에 떨어진듯 짜릿한 감구지회가 어떤 성스러움에 받들려질것이다.
   혹 갈길은 먼데 날은 저물어 그냥 갈가말가 주저주저할제 산기슭 외딴집에서 새여나오는 한가닥 불빛은 때아니게 당신을 고독감에 푹 절어들게 할것이다. 혹 어느 려관방에 하루밤을 기탁한 타향나그네의 차거운 베개가에 꿈마저 서러울제 적막과 고독은 쌍으로 찾아들것이다. 그럴때엔 확실히 마음속에 어두운 골짜기가 깊숙히 패인다.
   그러나 그 모든 감각은 대단할것 없는 수의적반응으로서 작막이자 곧 고독이 되겠지만 일단 새로운 자극속에 잠기면 바람에 실린 쪼각구름처럼 정감의 고개너머로 사라져버릴것이다. 이런 환영같은 적막, 고독과는 다른 차원의 정신풍경구가 있거니, 비록 한바구니에 실려갈지라도 도저히 엉킬수 없는 모래알같은 개체심령일바 하고는 가끔씩 혼자 있어보는것도 멋진 인생자세게 될수 있다는것을 당신은 믿는가?
   혹시 너무 오래되면 세상이 나를 완전히 망각하고나 있지 않을가싶은 위구심이 생길수도 있겠지만 걱정할것 없다. 아무 방해없이 저 혼자의 정신경계를 가능껏 확충해갈수 있는 그 자의식의 절정ㅡ홀로의 정신풍경구에서 벌거벗은 자신을 포옹할수 있기때문이다. 그런 자성적인 독릷성안에서 인격력량의 승화를 기약할 때 또 한가지 정신향수가 아니겠는가?
    이른바 침묵속에서 수련하고 고독의 세례속에서 또 하나의 지혜의 쪽무을 열고《나는 왜 이 세상에 왔는가? 지금 어디까지 왔는가? 이제 어데로 가려는가…》하는 인생숙제를 풀어간다면 자신이 더없이 근엄해질것이다. 이렇듯 지성인에게는 적막, 고독이 반성과 재선택의《련옥》이 되고 자기를 고스란히 지키는 정신보루가 될 때가 있다. 도시의 화단에서는 초라해보이는 영춘화가 심산속 벼랑가에 고즈넉이 피면 제격이듯이 홀로의 의미에 스스로 자긍할수 있다.
   늘 쫓기듯 공리에 불안하고 누군가와 내기라도 하듯 조바심치는 마음에는 그런 고차원의 정신풍경구가 펼쳐질 빈자리가 있을수 없다. 그러나 바로 그때문에 그런 사 람들은 조금 적막하거나 고독하면 풀이 죽어 맥살을 못춘다.
   고독했던 니체의 고백이말로 너무 인상적이다.
  《나는 추종도 염오하거니와 남의 길잡이도 싫다. 복종? 아니다. 통치? 절대 아니다. 나는 지배하는것도 싫고 충돌도 싫다. …야수처럼 무변광야에서 소요할것이다.》
   이는 물론 천재나 위인들만이 할수 있는 적막이였다. 고독은 확실히 숙명이기도 하였다. 니체나 바이론같은 인간세상의 큰 별들은 끝끝내 세속의 리해와 용납을 받지 못하고 한가닥 눈부신 호광(弧光)을 남기고 총총히 세상을 떠났지만 살아서는 초인간적인 지혜와 고독으로 세속에 대한 천재식의 격분과 저주와《잔혹한 격정》을 쏟아낸 혜성들이 아니였던가?
    지구는 돌고 광음은 재촉한다. 현시대 생활절주는 눈이 아찔하도록 급촉해졌고 저저마다 팽이처럼 돌아치며 공리에 다사분주하고 자극을 찾다보면 고독같은것은 고루한 샌님네의 막무가내한 피난소쯤으로 생각해버릴것이다. 그건 그들의 자유이다. 인생길은 제각기 걷는 방법이 다른 법이 아니냐?
   우리는 우리대로 지성인들의 홀로의 풍경구로 돌아가자. 적벽가에 배띄워놓고 생황의 은은한 소리에 취한 소동파나《동쪽, 담장가에 국화꽃 따면서 남산을 유연히 바라보노라.》하고 읊조리며《도화원》의 리상세계를 동경하던 도잠어른의 높은 지조를 뉘라서 따를손가, 그들로 말하면 고독과 적막속의 또 다른 초탈은 절반은 고달픈 현실이였지만 절반은 신선의것이였거늘 어이 경이롭지 않으랴.
   자고로 자재적인 지성 인들은 량지의 빛발아래 자신을 투시하면서 적막, 고독을 자기생명의 씨앗을 움틔우는 가원으로 삼아왔다. 가령 한 지자에게서 적막의 청정함과 고독한 성찰의 자유를 빼앗아버린다면 그 령민한 두뇌속에서 사색의 기계는 더는 지혜의 불꽃을 튕기지 못할것이다. 루쏘의《참회록》은 고독한 령혼의 부르짖음이 아니였으며 발자크의《인간희극》은 적막과 고독의 난산아가 아니였던가?
   달리는 개꼬리를 밟으며 허둥대는 개구쟁이들은 적막과 고독의 경지를 알지 못한다. 사람은 어른이 되여서야 외로움을 느끼고 보다 성숙의 언덕우에서만 홀로의 정신풍경구가 어떤것인지 알수 있다. 그래서 정감상에서 고독한자는 인정세계가 광막한 황야로 느껴지군 한다.
   사색의 왕국에는 적막이 드리워있고 고독만이 있다. 성가시고 까다롭고 피로한 삶의 현장을 잠시 떠나서 편한대롤 혼자 앉았을 때의 그 모습이 진정한 제모습으로서 체험하고있는 현실을 투시하는 리성자각의 기제를 찾음으로써  당신은 최고의 정신경계에 들어섰음을 기쁘게 느낄것이다. 한것은 그때야말로 리성의식이 크게 신장되고 자아에로 완전히 환원될수 있기때문이다.
   끝내 자기를 알지 못하고 이중인, 삼중인으로 자신을 각색해나갈수밖에 없을 때 그것은 우리 인간의 원초적이고 또한 종국적인 비애가 아니겠는가? 늘 욕망과 유혹에 끌리여 방종하면서 뜬구름같은 마음으로 세상이 영원히 파하지 않는 연회장이 되였으면 하고 바란다면 어디까지나 가면구를 써야 하고 꼭두각시극을 놀수밖에 없다.
   농가의 처마밑에서《아침회의》를 하는 소란스러운 참새들은 기껏해야 좁쌀을 얻어먹을 의논에 시끌벅적할뿐이요 절벽강산에 고독을 잠재우고 만리창공을 오연히 날아예는 수리개의 슬기를 불가사의하게 여길것이다. 늘 수선을 피워대는 참새떼도 가긍하거니와 모는대로 떼지어 다니는 양떼들의 삶은 얼마나 비애로운 삶일가?
   인생광장앞은《대동세계》여서 떠들썩하여 사는 멋이 무더기로 쏟아지는상싶다. 그러나 삶의 진실한 의미는 적막하고 고독한 인생의 뒤뜨락에서 반추되는 법이다. 그렇지 않으랴!동서고금의 모든 학자는 고독했고 적막속에서 로력적이였으며 바로 그런 홀로의 풍경구에서 인류문화의 정품이 창출되였던것이다. 더우기 고독, 적막의 주인은 예이제 철학자였다는것을 세인이 알고있다.
   현대사회에 적막과 고독의 풍경구가 소실된다면 그것은 이 사회가  감각자극병이 들었다는 하나의 징표가 아닐수 없다. 신이 자초에 아담의 고독에 마음이 쓰이여 그이 갈비뼈로 만든 이브를 안겨준것은 잘한 일이기도 하지만 뱀이 이브를 꾀여 감각의 첫대문에 들어서게 한 그때로부터 그네의 후손들의 느낌은 곁길로 빠져버렸던바 이는 인간의 원죄의 시작이였다.
   적막한 절간에 도승처럼 저마다 념주를 세며 적막을, 고독을 달래라는 말이 아니다. 홀로 있으나 세상과 대화하고  홀로있으나 온 세상을 품고있는 그 아량고 흉금을 아무나 가지는것은 아니다. 그냥 밖으로만 박고있던 눈길을 안으로 돌려 자신을 향해 투시해보라. 그것을 결코 자신을 자신속에 가두어두는 외로운 세계가 아니라 고독한 그속에 인격이 여물어가는 진실된 정신풍경구이다. 그래서 나는 고독을 찬미한다.
   자족이 주는 쾌락과 안일이 주는 라태에서 헤여나와 사색세계의 부지런한 로동자로 되여보라. 감성적인 자기와 리성속의 자신을 마주앉혀놓고 진실한 대화를 나누는 현자의 모습이 얼마나 우러러보일것이냐?
 
                         2002년 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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