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때에 온 땅이 하나님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이 땅에 모든 생령들을 멸하기로 결심하고 의인 노아에게만 방주를 지으라하고 그속에 모든 정결한 짐승 암수일곱씩, 부정한것은 암수둘씩을 취하게 하고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 씩을 취하여 넣게 하여 장차 일으킬 홍수를 피하여 살아남게 함으로써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 하였다.
마침내 홍수가 지여 물이 일백오십일을 땅에 창일하니 땅우에 모든 생물이 다 죽었다. 륙백일년 이월이십칠일에 땅이 말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가라사대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자부들로 더불어 방주에서 나오고 너와 함께한 모든 혈육있는 생물 곧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모든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고 무릇 생물은 너희들의 식물이 될찌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 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되는 피채는 먹지 말것이니라….
이는 성경전서에 쓴 얘기이다. 하지만 노아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당부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동물들을 잡아먹기 시작했다.그런 와중에도 동물계는 흥성하여 세월의 흐름선으로 인간들에게 미식거리를 제공하였다. 그것은 인간의 특권이였다. 현대에 이르러 마침내 수많은 물종들이 멸종되였고 바야흐로 멸종될 동물들이 많게 되였다. 자초에 노아의 방주에 의하여 인간과 함께 살아남았지만 결국 인간이라는 동물에 의해 씨를 말리우게 되였으니 신의 돌이킬수 없는 대실책이라고 할가,
인류의 가장 친밀한 동물로는 우선 개를 꼽아야 할것이다. 수천년을 내리 개를 비하하고 학대하고 잡아먹었다. 인간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천한것의 대명사도 개이 다. 버릇이 나쁘면 개버릇이라 한다. 이는 인간의 자가당착이다. 개는 낯설면 사납게 짖지만 익숙해지면 곧 꼬리를 젓는다. 그게 개의 성격이다. 개는 도적을 알아봐서 짖는것이 아니라 본성이 그렇게 시킨것이다.
누가 인간답지 않거나 미우면 개같은 놈이라고 욕하는데 기실 인간들속에는 개보다 못한 패류들이 많고도 많다. 차라리 개보다 더 못한 놈이라고 욕해야 맞는 말이다. 개들은 자기를 길러준 정을 안다. 자고로 주인에게 충성하여 의리를 지켜온 개의 미담이 얼마이던가? 그러니 부생모육지은도 모르는 패덕자들은 개를 형님이라 불러야 할것이다. 사람들이 길러준 개 발뒤축을 문다는 속담을 만들어냈지만 인간들 속에 개보다 못한 망나니들이 적던가?
개들이 인간에게 충성하면서도 우러러 보지 않는다는 설도 있다. 개눈에 사람이 낮아보이는것은 눈이 옆으로 치째졌기때문이라 한다. 마른 뼈다귀를 놓고도 서로 으르렁거리는 개들을 가소롭게 여기지만 인간들속에 그것을 비웃을 자격조차 없는 리기주의자들이 얼마이랴. 짖지 않는 개가 더 아프게 문다고 숨어서 암해하는 인간이 더구나 지독하게 사람을 잡는다. 그래서 짖지 않는 개를 경계하라는 말은 친구가 어려운 일에 부딪쳤을 때도 명철보신하는 알량한 친구들이 잘 기억해야 할것이다.
개는 똥먹는 버릇을 못고친다는 속담도 현대의 개들에게는 맞지 않는다. 개들도 문명시대의 혜택을 받게 된것이다. 잘사는 집에 애완견들을 보라. 비단조끼를 입고 호식한다. 세월이 하도 좋아서 애완견병원이 다 섰다. 그와 미묘한 대조로 가난한 사람은 병원문앞에서 저승사자에게 덜미를 잡혀간다. 그럴때 돈뭉치를 내흔들면 저승 사자도 너그럽게 회생의 길을 틔워줄지 모를일이다
육축중에서 가장 충직하고 근면한 짐승은 황소이다. 소는 훌륭한 집짐승이지만 선천적성격과 유전인소로 하여 고난과 도살이라는 운명을 면치못하게 되였다. 만약 소들이 말할줄 알아서《소고대회(訴苦大会》를 연다면 인간에 의한 그들의 고역사는 만국동물들을 울리고도도 남을것이다. 소가 너무 충직하지 말라는 유촉을 남긴다면 우리 인간들은 붊어진 얼굴을 어데 둘데가 없으리라.
순한 둥글이는 짐도 더 많이 끌어야하거니와 채찍질도 더 많이 당해야 한다. 인간의 심사는 그렇게 고약한것이다. 애비없이는 살아도 소없이는 못산다는 황소의 전성기는 옛말이 되였다. 이제는 소들의 존재리유가 식탁에만 서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사회적으로《황소정신》이 우습게 여겨지는 풍조이다. 소의 끈덕진 근면보다 입만 까고앉은 약삭빠른 이들이 득세의 원리를 더 잘 증명하고있음에랴,
흉맹스러운 호랑이를 산중대왕으로 천거한것은 인간의 아량이였던가? 호랑이는 사람이 개처럼 보일때 잡아먹는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은 인성을 잃지 않았을 때 사람을 잡아죽인다. 호랑이가 사냥물을 노리고있을 때 엎드린다. 그러나 그 동작이 절을 하는것이 아니라 덮치기전의 자세라는것을 모르는 약소동물들이 많다. 그것은 그것들의 숙명적인 비애이다.
범을 등에 업고 위세를 부린 여우를 질책하기전에 범의 죄를 물어야 할것이다. 고아내가 제애비의 권세를 등대고 악랄하게 놀아댄것을 그냥 고아내의 인간됨됨이로 질타할수는 없다. 횡포무도하게 놀아나도록 버릇을 굳힌것은 바로 건달출신이였던 그 애비 고태위의 죄악적행각이다. 우리 주위에도 현대판고아내들이 많은데 범이 시라 소니를 낳았다고 한걸음 물러서서 말할수 있지만 결국 그 애비에 그 아들이라고 단정해도 전혀 근거없는 말은 아닐것이다.
위풍이 산을 울리던 산중대왕이 죽으면 무대랑도 감히 걷어찰수 있을것이다. 이 말에서 우리는 모종의 사회현상을 련상할수 있다. 이를테면 권세가 하늘에 새도 떨 어뜨릴수 있는 권력자가 재위할 때는 큰방귀도 감히 뀌지 못하다가 일단 비리가 드 러나서 계하수로 된 다음에는 기자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어 시야비야 하며 부정부패 를 폭록하기에 열을 올린다. 하긴 산범을 맨주먹으로 때려잡은 무송같은 영웅을 사회비리를 강타하는 마당에서 찾는다는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긴 하다.
노아의 방주에 승냥이도 올랐는지 모르지만 인간은 흉악무도, 잔인함의 상징물로 승냥이를 추천하였다. 승냥이는 이발을 모조리 뽑아놓아도 양을 잡아먹을 생각을 버리지 않을것이다. 승냥이의 울음소리는 똑마치 큰아이가 애절하게 우는 소리같다. 하지만 승냥이가 아이들처럼 애절하게 호곡하기에 양들이 더구나 기겁할지 모른다.
승냥이에게는 양우리를 지키는 충견이 철천지 원쑤다. 그래서 늘 양가죽을 얻어 쓸 계획을 세우고 산다. 양가죽을 얻어쓴 승냥이는 인간들속에 위군자를 떠올리게 한다. 아닌게 아니라 승냥이가 양가죽을 쓰고 엉구렁을 써도 양이라고 믿어줄 인심이 된 현시대라 승냥이의 계획은 실현가능하게 되였다.
흔히 무리승냥이가 제일 위험하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들속에도 무리승냥들보다 더 흉악한 무리들이 있다. 승냥이는 양을 만나면 양을 잡아먹었지만 사람은 수억마리 의 양을 잡아먹었다. 승냥이는 본능으로 살생하고 인간은 고매한 인성으로 살육한다. 인간은 목이 마르므로 락타를 잡는다. 그리고 짐을 지고 터벅터벅 걸어간다. 그게 인간의 본성인것이다.
사람들은 교활한 인간을 보면 곧장 꼬리가 호함진 여우를 련상할것이다. 여우가 강하지 못하기에 교활해진것은 생존본능이였다. 여우는 저주를 받음로써 동물계에서 더구나 명성을 얻었다. 무턱대고 여우를 탓하는것은 여우로서는 대단히 억울할것이다. 늙은여우에게 궤계가 본능이듯이 악착한 음모술수는 야심가들의 기본공능이 되고 있지 아니한가? 여우는 생김새로만도 닭들을 충분히 소름끼치게 할수 있다.
여우가 그렇게 밉광이여도 우리 인간들에게 유익한 계시를 주고있다. 말하자면 여우가 여우를 제일 잘 안다는 도리인데 나를 제일 잘 아는 친구가 나를 가장 몸서리 쳐지게 해칠수 있다는것이다. 여우의 가치는 나중에 피물장사가 결정하게 되여있다. 따라서 인간사회에는 공은 닦은대로 가고 죄는지은 대로 간다고 여우처럼 교활하고 악렬한 패류들도 도덕법정이나 심판대에서 그 인간성이 판결되는 법이다.
탐욕의 상징물은 돼지로 되여있다. 돼지가 탐욕스러운가? 탐욕스럽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결과는 인류를 위한것이다. 돼지는 그렇게 천덕꾸러기지만 자아희생정신만은 우러를만해서 온몸에서 버릴것 하나없이 인류에게 봉헌한다. 탐관오리들이 탐욕스 러운것은 오직 자기와 자기 가족을 위한것이다. 탐욕방면에서 량자의 우렬이 다르게 자리매김되지 않는가? 이런 사람들은 돼지를 두고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는것이다.
사람들은 돼지를 루추하다고 하지만 돼지가 스스로 원한것은 아니였다. 자초에 힘장사 곰아저씨와도 감히 맞서는 멧돼지를 초모하여 산을 내리게 한후 야박한 인간들이 용사의 기백과 야성을 단번에 꺾어놓기 위해 측간옆에다 숙식을 마련해 준탓 이다. 환경이 모든것을 지배한다는 진리를 잘아는 인간들이니 깨끗함을 숭상 하는 인간도 흙탕에서 구을면 문명을 내세울 체면이 서지 않을것이다.
동물과 인간을 함께 론하려면 반드시 인류의 선조인 원숭이네를 빼놓지 말아야 할것이다. 류인원이 원숭이류에서 기원되였다고 하는데 인류가 억천만년의 진화사를 쓸때 원숭이들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오히려 인간을 흉내내기에 열중하니 조물주의 선택에서 도태된 물종이여선가? 가장 아름다운 원숭이라도 사람에 비하면 루추하다. 원숭이가 아무리 흉내를 잘 내여도 인간으로 둔갑할수 없다 원숭이는 비단조끼를 입어도 더 고귀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면에서 인간의 스승이 되고있다.
인류진화사에서 많은 일들에서 인간은 금수를 모방하고 따라배운 소학생으로 되였다. 왕거미의 은빛거미줄에서 천짜기를 계발받았고 제비들에게서 집짓는 기술을 터득했고 백조와 꾀꼬리한테서 노래부르기를 배웠다. 고도로 문명한 현대인일지라도 개미공화국과 꿀벌왕국의 질서와 분배제도를 반드시 참고해야 할것이다. 그러니 모든 생령을 좌지우지하는 고급령장동물일지라도 동물들과 조화롭게 살아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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