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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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씨 수상록 (12) 바람과 산과 물과 꽃
2014년 01월 21일 19시 46분  조회:6099  추천:1  작성자: 최균선
                                                          바람과 산과 물과 꽃…
 
                                                                        진 언
 
    자연은 만물의 총집합이라고 말한다. 웨놀쯔는 자연은 우리들의 일체 관념이 생기는 원천이라고 말한다. 자연이 창조하는것은 가치이지만 그것을 운용하는것은 인간이다, 대자연은 세계의 예술이다. 대자연의 가장 랑만적인 풍격은 아마 바람이라 해 야 할것이다. 바람은 하늘이 부는 휘파람소리이다.
    봄바람은 처녀바람, 여름바람은 농부의 바람, 가을바람은 세월의 한숨이라. 찬바람이 오면 더움이 가니 시절의 변화는 음양의 엇바뀜이다. 봄바람은 꽃놀이에 제격이고 여름바람은 김철에 고맙고 가을바람은 늙은이들의 가슴에서 슬픈 휘파람을 분다. 바람불면 구름이 걷히여 하늘 맑고 소낙비 멈추면 남산에 무지개다리 눈부시다. 
 
                      나 바람이고싶었다.
                             무형의 속박에 숨막히던 그 때는
                                  거칠것 하나 없이 항시
                                          갈길 드바쁜  나그네처럼,
 
                      산허리에 묵은 덤불을
                            진달래꽃불로
                                  활활 싸지르는
                                       바람, 바람이고싶었다.
 
                      지겨운 저 비구름의
                            살찌고 축축한 등을
                                   써ㅡ억 밀어내고
                                         하늘을 파랗게 날리는,
 
                            사래긴 콩밭김에
                                  땀으로 절어든 호미자루도
                                        건뜻이 말려주고
                                              이삭도 알차게 채워주고
 
                            풀벌레도 헐떡이는
                                  숲에 갈앉은 침묵을
                                       한바탕 휘저어 내쫓으며
                                             소란도 피우고싶었다.
 
                            잠자던 심술통도 터져서
                                  찬서리 하얗게 몰아다가
                                         산에 들에 불을 질러놓고
                                              익어가는 성숙을 알리고싶었다.
 
                            가도 가진것 하나없이
                                 빈몸으로 날려가는ㅡ
                                       와도 가질 마음 하나없이
                                              빈가슴으로 날아드는ㅡ
 
                             마냥 굳어져버려
                                  늑장부리는 계절이여,
                                        한을 터쳐 열매를 맺는
                                             바람, 바람이고싶었다.
 
    자연계에 일고잦는 바람은 때론 너무나 무시무시하지만 인간사회에 불어친 역풍은 더구나 살벌하더라. 바람은 결코 돛을 따르지 않는다. 돛이 바람안고 돌면 그게 순응이란것이다. 창망한 바다에서 폭풍은 훌륭한 항해사에게 던지는 시험지이다. 그 시험지는 초인간적인 의지와 신념으로써만 풀어갈수 있다.
    자연계에서 가장 거룩한 기념비는 산봉들이다. 산은 높다해서 으시대지 않고 낮다해서 기죽지 않는다. 그것이 산의 지조이다. 바다에 가면 바다에 감탄하고 산에 가면 산을 찬탄하는것이 인간심사이다. 산은 말이 없다. 다만 사람들이 산의 의미를 해석하느라 시끌벅적할뿐이다. 봄산은 꽃놀이 터로. 여름산은 피서지로, 가을산은 단풍구경으로 사랑받는 산이라고…봄에는 새소리, 여름에는 매미소리, 가을에는 벌레소리, 겨울에는 눈오는 소리가 바로 산향의 서정시이다. 그러나 아서라. 속깊은 산의 마음을 어찌 겉보기로 다 알았다고 말할수 있으랴,
    산은 아무리 높아도 등산자의 발밑에 있다는 말은 산의 립장에서 사유를 한것이 아니다. 산이 아량으로 받아주는것이라고 역향사유를 할 필요가 있다. 난쟁이가 높은 산에 올라도 그 자신이 키가 높아지지 않는다. 산이 하늘을 치받고 치솟아 있는것은 인간에게 과시하려는것이 아니다. 벽해상전이 아니면 산은 결렬을 모르고 산다.
    산이 없는 곳에서는 언덕도 명소로 부상시키는 얄팍한 인간심사이다. 산은 명산이라 소문나는 그날부터 재난은 시작된다. 어진자 산을 즐긴다고 하였지만 등산이 풍조로 된 지금 그 많은 등산자들이 다 어질다고 말할수는 없으리라. 험준한 산봉에 오르기 좋아서 등산한다기보다 정복욕에서 산세의 험악함이 오히려 찬미되는것이다.  
    산정에 뿌리내린 키낮은 활엽수들은 아무리 높아도 자기 발아래에 있노라고 산을 깔보며 도고해할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에 그보다 더 가소로운 일이 있으랴. 등산자의 오기도 그와 비슷한것이 아니랴 싶다. 산이 넓은 품을 열어 받아안는것이요 바위와 칡넝쿨이 톺아오르라고 팔을 내밀고있다고 생각하면 안되는가? 인간은 백사에 자기중심주의로 출발하기에 자기들이 산에 어떤 배려를 돌린다고 생각한다.
    시골의 청계천가에 발을 잠그고 청산을 바라보느라면 록수도 청산못잊어 울어네여 가는가? 하고 애탄하던 황진이가 생각난다. 주절주절 갈길을 재촉하느라 뒤한번 돌아보지 않고 흐르는 벽계수는 령넘어 도시로!도시로 날아가는 현대시골처녀들의 마음과 같다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그러면서도 어정쩡하게 시골에 남아 한숨을 말아 피우는 로총각님네들 청산의 푸른뜻으로 록수의 정을 지켜내지 못하는 무위무능도 개탄하지 않을수 없다. 흘러가는 물이나 도시로 흘러드는 인심이나 피장파장이다.
   물은 생명의 원천이고 문명의 요람이다. 세상에 더러운 물이란 원래 없었다. 인간들이 더럽혀놓고 오수(汚水)라고 이름한것이다. 물은 아름다운 동경을 싣고 산을 떠났을 때 굽이마다에서 오염될줄 몰랐으리!공자님 가라사대 지혜로운자 물을 즐긴 다 하였지만 물은 지혜로운자를 알아보지 못한다. 역시 인간의 주관념원일뿐이다. 물이 모였다해서 다 못이 되는것도 아니다. 세상엔 구지레한 시궁창도 많거니...
    물은“혼탁한것을 받아들여 깨끗하게 하여 내보내니 사람을 착하게 변화시킴과 같다. 그릇에 부으면 반드시 평평하니 정(正)과 같고 넘쳐도 깎기를 기다리지 않으니 법도와같고 만갈래로 굽이쳐도 반드시 동쪽으로 꺾이니 의지와 같다. 이런 까닭에 군자는 큰 물을 보면 반드시 바라보는것일뿐이니라."라고 절창도 내놓았다.
    물이 흐렸다면 누가 우에서 흐려놓았는가? 승냥이의 미식거리가  된 어린양인가? 웃물이 맑아야 아래물도 맑다는 속담이 자녀교육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문제로 되여질 때 물아래에 사람들만이 외워야 하는게 아니다. 인심의 원천을 민초들이 차지한적이 종래로 없었거니 나라의 기강인지 하는것이 문란해지고 민심이 혼잡해진것은 물아래 사람들에게 고양시킬 문제가 아니란 설명이 되겠다.
    대저 내물이 끝없이 모여들어도 바다는 호한함을 출렁대지 않는다. 맑은 물이든 탁류이든 흘러도 흘러들어도 억만겹을 지켜온 바다의 품격을 개변시키지 못하였다. 그러나 바다를 찜쪄먹을만큼 호한한 인간의 욕망의 바다는 흐려진지 오래다. 비유해 말한다면 도시의 인해(人海)는 더구나 혼탁해지고 시끌벅적해졌다.
    술이 있는 강산에는 걸사가 많다고 산좋고 물이 맑은 청산에는 산꽃들 많더라. 피기를 기다려 다소곳한 산꽃들의 꿈을 뉘라서 해석할수 있으랴, 봄날은 모든 꽃들의 호시절은 아니다. 국화꽃 가을의 정취를 사랑하고 매화는 눈서리속에서 더 어여쁘고 어여뻐도 봄빛을 다투지 않거늘, 나리꽃은 만록총중에 일점홍은 아니여도 그 청초함으로써 이채롭더라.
    산의 숙녀는 나리꽃일가? 방목군의 검은 손에 꺾이였어도 백합은 여전히 희다. 화중지왕인 모란꽃 향기없다는것을 패덕한 미녀들에게는 하나의 계시가 될것이다. 그리고 뭇꽃들은 푸른 잎에 받들려 피지만 진달래는 꽃핀연후에 잎을 요청하는 그 오묘한 생명철학을 터득할 필요가 있으리, 그러나 꽃의 화사한 언어는 나비가 아니라 꿀벌들이 더 잘 알아듣는 법이다.
   꽃과 바람은 대자연속에서 맺어진 련인이다. 그러나 흔히 마음맞지 않는 련인들 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런가? 바람에 지는 꽃을 바라보며 이렇게 읊조려 본다.
 
                                               불고가는 바람을
                                                  탓해서 무엇하랴!
                                                     꽃은 그래서
                                                         한자리에 다소곳이 피고
 
                                              꽃피고 잎지는 사연
                                                  알아서는 무엇하랴!
                                                     바람은 그래서
                                                        오고감이 스스럽다.
 
                                              하건만 멋모르는 새들은
                                                 스러지는 꽃이 서러워
                                                     락화의 한을
                                                        바람에 묻는다.
 
                                              꽃과 바람은
                                                  마음 맞지 않는
                                                      불행한 련인이라고
                                                          누가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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