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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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함과 납함
2015년 04월 26일 07시 00분  조회:5392  추천:0  작성자: 최균선
                                     고함과 납함
 
   사람은 일단 정서가 격해지면 폭발되기 마련이다. 그 폭발형식의 하나가 바로 고함인데 생리상의 자연적반응으로서 그만큼 충동적이고 순발적이다. 하지만 고함속에 담긴 감정색채는 다종다양하다.
  우선 환희에 넘쳐도 고함을 칠수 있다. 례하면 거액의 유상권에 담청되였을 때 희출망외(喜出望外)로 터지는 고함이든가 수준급의 축구경기에서 선꼴을 넣은 선수가 운동장을 휘쓸듯 내달리며 지르는 열광에 뜬 괴성이라든가 담밖의 꽃에 혼신이 빠진 남자가 돈뭉치를 안겨줄 때마다 애젊은 녀자가 터뜨리는 애교어린 감탄성이라든가 훔친 사랑의 유희가 고조에 이를 때 정부가 짜는 열뜬 비명소리 등등이 다 이에 속하는 고함이라 할수 있다.
  그런데 랭담과 무정은 남아돌고 인간애와 관용은 빌어와야 하는 인생현장에서 흔히 격분을 참지못해 내지르는 고함소리를 더 많이 듣게 된다. 이를테면 붐비는 뻐스안에서 아들애의 학비로 가지고왔던 소중한 돈을 도적맞히고 통분해서 웨치는 농촌아주머니의 고함소리는 뭇가슴을 찌르는데 누구에겐가 발을 밟힌 멋쟁이 아가씨가 길길이 뛰며 뽑아내는 욕지거리는 귀청을 찢는다.
  권커니 작커니 사이좋게 술을 마시던 친구끼리 무슨 일에 심통이 비틀어졌는지 식당이 들썽하도록 다투며 질러대는 고함소리는 공중의 귀를 어지럽히고 부부간의 언쟁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남편이 위엄을 떨치느라고 뽑아올리는 돼지멱따는 소리는 동네를 부산하게 하고…
  사람은 공포에 질려도 고함을 치게 된다. 밤골목에서 강탈당하게 된 녀인이 구원을 청하는 처절한 고함소리는 의례히 의로운 손길을 불러와야 하련만 사람들은 흔히 청맹과니가 되고 귀머거리가 되는게 보통이다. 정의에 나가서는 약자라도 강해진다는데 어쩌면 불의앞에 그렇게 차디찬 얼음덩이가 될수 있을가?
  그래서 인생현장은 귀맛좋은 화음보다는 듣그러운 불협화음으로 더구나 시끌벅적한다. 고함이란 거개 자아중심주의 심리에서 인기된 불만의 발설이거나 무단적이고 일방적인 항변이여서 비록 격정은 다분하나 호소력은 약하며 데시벨은 높지만 감화성은 별로 없다.
   언쟁할 때 치는 고함은 대방에게 어떤 위압감을 줄는지 모르지만 바람직한 대화의 방식은 아니다. 흔히 도리에 말문이 막힌 사람이 대방을 압제하려 하는데 기실 인간의 취약성의 표현이다. 목소리가 더 높은 사람에게 꼭 도리가 있는것은 아니기때문이다.
  경우야 어찌되였든 희로애락으로 반죽된 세상을 살아가니만큼 고함치고싶으면 고함을 치시라. 자갈을 물려놓은 말도 내키지 않으면 울부짖는데 황차 자유언론의 시대에 열린 입을 가지고 사는 인간임에랴!고함은 결코 그 무슨 권위자나 강자에게만 부여된 특권이 아니다. 체호브의 명구가 있다.《큰 개가 짖으면 작은 개도 짖는다. 큰 개가 짖는다 해서 작은 개가 짖지 않는것이 아니다. 모든 개는 다 짖을 권리가있다.》
   비유가 너무 야하고 빗나갔는지 모르나 인용의 저의인즉 사람은 누구나 다 말하고 소리칠 권리가 있다는것이다. 사람은 천태만상의 세계에서만 사는것이 아니라 온갖 소리속에서 산다. 소리없는 인간세상을 상상할수 있을가? 침묵은 곧 세계의 훼멸을 표징할지도 모른다. 지구촌은 소리가 있기에 활력에 넘치고 사람은 사람소리를 함으로써 자신이 살아있음을 즐겁게 환기할수 있는것이 아니랴.
   그런데 자고로 상급은 무슨 일이 여의치 않으면 별잘못도 없는 하급에게 공연히 고래고래 고함치며 닥달하는게 관례이고 아래사람은 억울해도 참고 듣는게 례의라고 생각하는 노예근성이 거의 관습으로 되였다. 강자가 약자에게 기탄없이 고함지르며 횡포를 부려도 약자는 유구무언(有口无言)이라면 인간의 숙명적비애가 아니겠는가?
  우리 말에 고함과 같은 뜻의 납함이라는 말도 있는데 쓰임에서는 구별점이 있다. 납함은 의지적이고 리성적이며 적극적인 항쟁의 의미에서 많이 쓰인다. 따라서 그 발성방식도 다르고 의의와 작용도 다르다. 납함도 가양각색이다.
  화형장에서《…지구는 의연히 돌것이다.》라고 부르짖은 부르노의 견정한 웨침이 과학의 새아침을 열어젖히고 무지몽매를 찢어버린 세기적거변이 납함이였다면 이 진리의 수호자를 이단자라고 재판한 종교재판관들의 격노는 무지를 고집한 미친 고함질이였다.
  링컨의《흑인노예해방선언》이나 맑스의《공산당선언》은 인류발전사에 새 편장을 펼친 납함이였다. 그러나 알프스산을 넘으면서《나는 알프스산보다 더 높다》고 한 나뽈레옹의 호언장담은 과대망상에서 온 고함이였고 게르만족의 우월론으로 국민을 오도하며 세계제패를 고취한 히틀러의 고함은 살인마의 예고된 파멸을 선고한 단말마적인 광란이였다.
  1907년, 화란의 헤그에서 열린 만국평화대회에서 밀사로 파견되여 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자기의 배를 갈라 항의한 애국지사 리준의 절규는 배달민족의 자주독립과 해방을 호소한 비장한 납함이였으며 조선강점을 획책한 원흉인 이또 히로부미의 앞가슴에 저주의 총탄을 안긴 안중근렬사가 웨쳤던《조선독립만세!》는 력사의 대하에 격랑을 일으킨 의로운 납함이였다.
  하지만 민족수난의 시대, 맥국매족의 추행으로 하여 영원히 치욕의 기웅에 못박힌 민족의 망나니들도 많았다. 악명이 자자한 리완용 등《을사오적》들은 더 말할것 도 없고 당시 문단의 일인자라던 춘원 리광수가 도처에서 소위《황국신민》을 선양하며 조선청년들을 한사코 일제의 대포밥으로 내몰려고 한 그 악선전은 놈들의 발바닥을 핥을 가증한 주구의 미친 뇌까림이였다.
  하지만 리광수류의 어용문인들과는 달리 지조높은 자태로 납함한 열혈의 작가들이 더 많다. 《뺴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고 통탄하며 조국의 광복을 호소한 리상화나 허위와 요사와 게으른자들을 옹호하고 용납하는 이 제도를 더구나 그저 둘수 없다고 웨친 반항의 작가 최서해의 납함은 암흑한 사회에 대한 투사식의 도전이였다.
  《원쑤의 폭격 불타는 거리에서…죽은 엄마를 붙잡고 우는 이 나라 어린애의 눈물을 걸쳐, 모든 어머니들과 안해들의…눈물을 걸쳐 이 글을 쓴다.》고 부르짖은 조기천의 납함은 삼천만의 가슴들은 물론 평화를 사랑하는 전 세계의 선량한 마음을 울린 강음이였다.
  력사가 증명하다싶이 모든 위대한 문호들은 다 진리를 위해 웨친 납함자들이였고 납함한 이들은 모두 인의지사들이였다. 단떼를 선두로 몰리에르, 쉐익스피어, 바이론, 쉘리, 유고, 뿌쉬낀, 체호브…누구하나 사회비리와 인간의 렬근성에 대해 납함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최대의 악의로써 중국사람들을 추측하기 꺼리지 않은》로신선생은 참담한 인생에 두려움없이 직면하여 납함한 제1투사였다. 반대로 한적한 문인 주작인류의 문인들은 꽃과 새와 풍물을 두고 뇌까리기에 자족했다. 그 역시 일종 삶의 자세이기고 살아있음에 대한 자기식의 환기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들 무엇이 달라진단 말인가?
  지금 세상은 많이 달라졌고 살기가 퍽 좋아졌다. 그래서 납함의 시대는 영영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는가? 아니다. 아직도 우리의 인생현장엔 어둡고 더러운 구석이 너무많고 거짓이 하얀면사포를 쓰고 활개치고있으며 정의와 사악의 팽팽한 대결은 무승부로 남아있다. 부익부 빈익빈의 비정한 현실은 사람들을 점점 더 상심하게 하고있다.
   물론 아직도 사회의 약세력인 문인들의 납함이 기고만장해진 비정한 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지는 못하겠지만 큰 길에 나선 쥐이라도 필경은 정신이 아찔하여 갈팡질팡하기 마련이다. 쥐는 어쨋든 쥐로서 갑자기 슬기나 황가리가 될리없다. 고층아빠트에까지 진주하기는 하지만…   
  억조창생이 얽혀도는 이 세상은 온갖 생명들의 호흡과 소리들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것이 아니랴, 대자연의 교향악엔 산토끼의 간담을 찢는 사자의 포효도 있고 산중왕인 호랑이의 강음도 섞여있으며 피의 향연을 갈망하는 승냥이의 호곡성도 있다. 늘 희소식을 전하노라 꽁지를 달싹거리는 까치의 잡음도 있고 여름내 서늘한 노래만 부르느라 목이 쉬여버린 매미의 단조음도 한몫 끼이고 밤새껏 불러대도 곡조가 맞지 않아 소란스럽기만 한 개구리합창도 있다. 오직 성대가 없어 끽소리 한번 못내본 기린만이 유달리 긴 목을 빼들고 막무가내한 침묵을 자랑할뿐이다.
  문학세계도 기실 소리의 세계이다. 목청은 간드러졌지만 별내용도 없는 사연에 혼자 신나하는 꾀꼬리같은 문인들도 있고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버리고 제 설음을 우는 뻐꾸기같이 무병신음하는 문인도 꽤 있다. 앵무새같이 흉내는 내면서도 젠체하는 문인도 있으며 시골의 긴긴 밤을 울어대는 부엉이처럼 무미건조하고 지리멸렬한 얘기를 엮는 이야기군도 있다.
   어쨋거나 자기 상아탑속에서 옛풍월이나 읊조리며 낡은터에서 이밥먹던 얘기를 하든 모두 제 잘난멋이고 아무튼 소리를 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대견한 일이라 하리라. 그리고 아지랑이 피는 봄날에는 버들피리소리가 제격이지 마른 천둥소리가 좋을리 없으리라.
  그러나 우리의《머리우에 별흐르는 하늘과 마음속에 도덕이 있기에…(칸트)》아직도 납함이 수요된다.세상을 마주하여 납함할 일이 어디 한두가지냐? 민주법제와 인권존엄을 위해, 사회부조리와 날로 심각해지는 반부패전을 위해 납함이 필요하다. 작가적량지와 용기로 더 밝고 살기좋은 복지사회건설을 기리여 우리함께 납함도 해보자.
   고함이 개체생명의 격렬한 언동이지만 어떤 목적성을 가지고 다함께 웨칠때면 함성이 되는것이고 대지를 진동할것이다. 뇌까림이나 잠꼬대는 혼자만의 목에서 새여 나오는 너무 여린소리라서 아무도 그 전파를 기대하지 않을것이요, 산들바람에도 곧 사라질것이다.
  소리를 하며 살바엔 하품이 나오는 혼자소리만 하지 말고 한가슴 터지도록 고함이라도 질러보라. 비록 납함은 아니라도 되맞쳐오는 어떤 회음(回音)이 있을것이다. 그리고 제 가슴에도 메아리칠것이다.
 
                            2004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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