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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산옥 성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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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내가 차버렸습니다》
2016년 12월 19일 07시 51분  조회:1160  추천:0  작성자: 방산옥
《이번엔 내가 차버렸습니다》
아주 비좁은 진료소는 아니지만 내가 꾸린 진료소는 매일 수많은 환자들로 하여 늘 비좁은감을 느낍니다. 오늘까지 인젠 20일도 다 되여가는데 왜 영호는 오늘도 안 오는가? 환자들을 보면서도 이제나 저제나 기다려집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집니다.(아무튼 그 애는 꼭 올거야) 나는 영호가 꼭 올거라는 마음을 버리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불안한 심정을 감출수 없었습니다. 10시가 넘자 나의 마음은 바질바질 타기 시작했습니다. (병이 재발한 것은 아닌가? 혹시 또 다른 비극이라도 발생한 것이 아닐가? 아니, 십상팔구는 그렇지 않을거야, 그런데왜 나는 도저히 안정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환자들을 보면서도 수시로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보던 환자도 마다하고 원주필을 손에 쥔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출입구로 향했습니다. 영호가 막 진료소에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나는 반가움에 그를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우리의 감격적인 상봉 장면에 환자들은 의아쩍게 여기는 눈치였습니다. 그제야 쑥스러움을 느낀 영호는 나의 품에서 빠져나오며 내 손을 꽉 잡았습니다.<<선생님, 몹시 기다렸지요? 미안합니다>> 영호는 나를 끌어 진찰실 쏘파에 앉혔습니다. 그때까지도 환자들은 의혹을 품고 우리를 여겨보고 있었습니다. 영호는 주위를 쭉 훑어보더니 아주 장한 일을 한 듯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선생님, 나는 퇴혼했습니다.>> <<퇴혼이라니?>> 그의 대범한 거동과 어울리지 않는 이 말에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그럼 또 채웠단 말이요?>> 나는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퇴혼>>은 영호에게 얼마나 큰 심리고통을 주었던가? <<대체 무슨 일이 발생했소? 병이 재발하였단 말이요?>> 나는 나 자신을 극력 진정시키려 애썼으나 목소리는 어느새 심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영호는 황망히 <<아니, 그런것이 아닙니다. 채운 것이 아니라 이번엔 내가 그녀를 차버렸습니다. 선생님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였습니다. 나는 신심과 희망으로 번뜩이는 그의 정기도는 눈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한입으로 말할수 없어 급해난 모양이였습니다. <<차버리다니? 이 애가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가?>> 나는 영호의 얼굴만 뚫어지게 쳐다보았습니다.
<<선생님, 채우는 일도 고통스럽지만 차버리는 일 역시 고통이였습니다. 그녀는 좋은 여성이였습니다. 이런 여성과 헤여지는 일이 어찌 고통스럽지 않겠습니까? 선생님도 아시다싶이 나는 음위증을 치료하고 결혼하려고 준비했던 돈을 다 써버리고 부림소까지 팔았지만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하고 결국 2년이나 사랑을 속삭였던 여인과 갈리질 때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내 인생이 보잘것 없어 보였고 무슨 낯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랴는 심정에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나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길을 택했습니다. 헌데 이 일이 어머니를 죽음에로 몰아넣게 될줄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어머니는 외동아들을 앞세우고 이 세상에 살아 무엇하랴 아들 먼저 내가 죽어야지 내가 죽은 후에 네가 죽더라도 나 먼저는 못 죽는다고 하시며 대성통곡했습니다. 큰 비극이 발생하려는 때에 그녀가 우리 모자를 구원해주었습니다. 비록 두살짜리 여자애들 가진 과부였지만 마음은 착했습니다. 성생활이 없어도 됩니다. 그저 하나밖에 없는 딸을 잘 키워주면 만족하겠다는 여자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녀와 결혼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결합은 결코 사랑을 밑바탕으로 한 것이 아님을 알았지요.
나는 여전히 삶에 대해 신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선생님을 만나 나의 삶을 되찾은 것입니다. 지금 나는 진정한 남자로 되였습니다.>>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똑마치 그 무엇을 자랑이라도 할 듯이. 그는 다시 쑥스러운 듯이 목을 쑥 빼보이고는 다시 앉았습니다. 퍽 부끄러운 모양입니다. 그는 말을 이었습니다. <<선생님, 내가 어찌 동정을 기초로 결혼을 해야 한단 말입니까? 나는 사랑이 필요됩니다. 이는 동정이 해결할 수 없는 귀중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그녀에게 다시 한번 더 동정하여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다시한번 더 나를 동정하여 나더러 영원한 사랑을 찾아 남자답게 살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녀는 끝내 동의하였습니다. 선생님, 축복해주십시오. 건강한 사내로 된 나는 잃었던 생명도 잃었던 사랑도 모두 찾아오렵니다. 사랑은 생명보다 더 중요합니다.>>
어느새 나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습니다. 남성과 의사로서의 보람을 뿌듯이 느꼈습니다. 남성들에게 육체적건강을 회복시키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더우기는 친어머니가 줄수 없는 영원한 사랑을 찾아주는 사업에 나의 일생의 정력을, 일생의 모성애를 부어넣었다고 생각하니 나의 마음은 더없이 후련하고 기뻤습니다.
영호와 같은 운명을 지녔던 환자들은 모두 부러운 눈길로 영호를 쳐다보았습니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압니다. 나는 영호와 같은 불행을 지닌 사람들에게 새 생명, 새 사랑 영원한 행복을 안겨주는 <<어머니>>로 되리라 굳게 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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