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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기 / 김유선
2018년 12월 24일 17시 47분  조회:705  추천:0  작성자: 강려
보자기
 
김유선
 
 
보자기는 싸기 위해 비어있다
감싸주기 위해 종일을 비워놓는 그녀
온종일을 기다려서
무엇이든 감싸주는 그녀
찌든 감정도 더러운 시간도
도망치고 싶은 주둥이 긴 길도
네 귀퉁이 아귀 맞춰 꽃잎으로 묶는 그녀.
 
<이선의 시 읽기>
 
               여백과 압축, 사유의 사다리 오르기 관점
 
  김유선의 시를 읽으면 들국화 가득 핀 들판에 서서, 별을 보며 심호흡을 하는 소녀의 싱싱한 다리가 생각난다. 그의 시에는 화려한 미사여구나 겉치레가 없다. 건강하고 씩씩한 힘이 있다. 김유선의 손이 닿으면 관념도 아름다운 꽃이 된다.
  김유선 시의 관념은 인간과 인간성 회복이다. 그 관념은 사람의 향기를 품고 있다. 대중이 좋아하는 목적성과 시인이 좋아하는 표현주의,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시인이다. 위의 시도 지하철역에 전시하여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싶은 시다. 또한 안방 침실 위에 걸어 놓고 외우고 싶은 시다. 치솟는 가슴속 불길을 다독이며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리는 하얀 손. 다소곳한 손.
 
  도망치고 싶은 주둥이 긴 길도(6행)
  네 귀퉁이 아귀 맞춰 꽃잎으로 묶는 그녀.(7행)
   위의 시는 ‘여백과 압축, 사유의 사다리 오르기 관점’으로 그녀의 삶을 펼쳐놓고 있다. 위의 시 6-7행 두 줄은 대하드라마보다 긴 스토리를 함축하고 있다. 재해석된 짧은 문장, 짧은 행, 짧은 여백의 공간에 숨어 있는 날카로운 상처. 흰 치마, 흰 고무신 내 어머니들의 삶이.
  나무 사다리를 꼭 붙들고 밑을 내려다보지 않고, 위로만 올라가는 위기의 삶을 살아낸 여인의 도전이 보인다. 과정을 포기하고 자식을 버리고 이혼하였더라면, 오늘의 ‘나’와 ‘우리’는 없다. ‘여자’보다 위대한 ‘어머니’를 선택한 그녀. 오늘 과정을 포기한 여자는 내일의 결과(열매)를 알 수 없다. 흔들리는 사다리 위에서 얼마나 절망하였을 것인가? 어지러움과 위기를 견딘, 그 종착지에는 아름다운 박꽃이 별빛에 반짝일 터. 하얀 박덩이가 어서 따가라고 넌지시 말해 줄 터.
 
  찌든 감정도 더러운 시간도(5행)
  무엇이든 감싸주는 그녀(4행)
 
시인의 자서전을 읽는 것처럼 경건하게, ‘네 귀퉁이 아귀 맞춰 꽃잎으로 묶은 그녀의 보자기’를 펼쳐본다. 긴장되는 손. 눈. 마음.
  아귀가 딱 맞는 아름다운 마음꽃 보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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