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은 아직도 춥다
박소향
흘러도 흘러도 누가 뭐랄 것 없는 새벽 강에서
꽃들의 떨리는 입술을 만났다
언제나 먼저 다가서게 하는 꽃들의 눈을 보았다
가끔은 그리운 사람의 이름으로 서 있기도 하다가
조용히 제 이름을 내려놓는다
꽃들은 저마다 제 몫을 다하여 삶을 누리다 간다
그러나 잊히는 것은 아니리
그 어디에 향기로 남아
문득 바람으로 바다로 섬으로 울음을 참았으리
보라 저 만발한 들에
띠를 두른 꽃들이 종종걸음으로
기어코 볓빛 하나 따라 나선다
질러가던 바람도
배고픈 달빛으로 누웠다
꽃들은 아직도 춥다
<이선의 시 읽기>
박소향의 전원시는 겸손하고 따뜻하다. ‘그대, 너’는 ‘자연, 신, 님, 절대자’로 치환하면 의미가 증폭된다. 생을 터득한 지혜자의 눈빛이 고요하다. 맑은 신앙과 명상 뒤에 체득한 소박함이다.
전원생활을 하며 직접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전원시집’ 한 권 내고 싶은 소망이 있다. 일찍 밭에서 삽질을 해 본 시인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농사를 지어 본 사람은 안다. 자연이 주는 힘은 단순함이다. 먹고 자고 땅 파고, 벌레 잡고 풀 베고.
위의 시에는 ‘느림의 미학’이 있다. ‘버림의 미학’이 있다. 꽃처럼 귀하게 대상을 존중하는 ‘존재의 미학’이 있다. 춥고 배고픈 날의 가난을 향한 ‘그리움’이 있다. 꽃의 향기처럼 아름다운 사람의 향내를 가리어 내는 ‘소박한 정열’이 있다. 위의 시는 마지막 연이 이 시의 주제어다.
꽃들은 아직도 춥다
생의 ‘허기, 욕망, 열정, 좌절, 인내, 희망…’ 여러 감정과 정서를 내포하고 있다. 마지막 한 행의 시어는 어떤 ‘관념’도 성립시킬 수 있는 무한한 ‘확장적 의미어’ 구절이다. 이 짧은 시어 한 구절이 긴 대하소설 분량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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