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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 한연순
2018년 12월 24일 20시 27분  조회:854  추천:0  작성자: 강려
인생 
 
                         
한연순
 
 
식탁에 놓인 수저 한 벌이 외롭다
식탁에 놓인 수저 두 벌이 외롭다
식탁에 놓인 수저 세 벌이 외롭다
식탁에 놓인 수저 네 벌이 외롭다
 
도금을 할수록 외롭다
 
같은 수저 집에 있으나 다른 영혼을 꿈꾸며 마치 헤어져 바라보는 사랑의 아픔처럼
 
잠깐씩 식탁과 식기 세척 통에서 바쁘게 눈 맞추다가 강물처럼 멀어져간다
 
 
<이선의 시 읽기>
 
  한연순의 시 「인생」은 확장된 사물시의 진수를 보여준다. 만약 제목을 「식탁풍경」이나 「밥상 앞에서」등으로 하였다면 제목은 안정적이지만, 해석의 범위가 한정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인생’이라는 광범위하고 관념적인 제목이 왜 관념적이지 않고 직접적이며 사실적일까? 그것은 시 내용이 철저하게 사물시 쓰기 방법론을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물이 말하고 사물이 생각하고 사물의 관점에서 재해석하였다. ‘외롭다’는 반복어도 당위성을 가지며 촌스럽지 않은 것은 ‘수저’라는 사물성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외롭다고 직설하면 시는 격이 떨어진다.
  2연의 ‘외롭다’도 ‘도금을 할수록 외롭다’ 고 직관과 재해석을 하였다. ‘외롭다’는 말은 ‘참’이라는 명제로 반성적 국면과 숙연함을 준다. 수저 한 벌이 밥을 먹어도 외롭고, 두 벌이 모여 밥을 먹어도 외롭고, 세 벌이 모여 앉아 밥을 먹어도 외롭고, 네 사람이 마주보고 둘러앉아 다정하게 밥을 먹어도 외롭다.
  ‘같은 집에 있으나 다른 영혼을 꿈꾸며 눈 맞추다가 멀어져 가는’ 현대의 가족군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외롭다’는 현대인의 표어다. 현대인의 슬로건이다. 시를 쓴 시인이나, 시를 읽는 독자나, 제왕도 신하도, 시장상인도 막노동꾼도, 술집여자도, 손님도 외롭지 않은 인간은 없기 때문에 ‘외롭다’는 호소력이 있으며 힘을 갖는다.
  위의 시는 관념은 실패한다는 시적 진리를 거부한다. 과감하게 시도하여 정확하게 결과를 얻어냈다.  짧고 명쾌하고 간결하다. 그 파장이 크다. 한연순의 대표시로 손색이 없다. 예술은 방법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방법론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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