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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멸치 / 우 애 자
2018년 12월 25일 14시 28분  조회:794  추천:0  작성자: 강려
은빛 멸치
 
우 애 자
 
제 속에 바다를 가둔 은빛 멸치
바다의 비린 정을 놓지 못해
몸을 안으로 구부린다
 
잊히지 않는 깊은 생을 끌어안고
등 굽어지고 은빛 비늘이 벗겨져도
감지 못한 눈은 푸른 바다를 향해 달리고 있다
 
은빛 멸치는 어두운 상자 안에서
오래도록 아픈 꿈을 꾼다
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데
끊임없이 길을 만들었던
찬란했던 시절만큼 가슴 시린 시간,
 
소금기에 하얗게 굳은 멸치
아픈 그림자를 지우며
은빛 비늘로 푸른 바다를 부른다
 
 
<이선의 시 읽기>
 
  시는 ‘반어’와 ‘역설’로 만든 ‘구조물’이다. 거기에 ‘비유’의 꽃을 매달아 독자를 구인한다. 수필보다 솔직하지 못한 시는 ‘은유’로 병풍을 치고 시인의 감정을 숨긴다. 독자들은 그 위장술을 해독하며 즐거워한다.
  우애자의 시에는 반어와 역설이 있다. 부정과 긍정의 미학이 실재한다.
  아래 두 그룹의 시어들을 비교하여 보자. 첫 그룹의 시어들은 ‘절망’의 단어로 구조되어 있다. 삶은 ‘멸치’나 화자인 시인에게 모두 버겁고 어두운 절망이다.   
   등 굽어지고 (2연 2행)
   비늘이 벗겨져도 (2연 2행)
   감지 못한 눈 (2연 3행)
   어두운 상자 안에서 (3연 1행)
   아픈 꿈 (3연 2행)
   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데 (3연 3행)
   소금기에 하얗게 굳은 (4연 2행)
   아픈 그림자 (4연 2행)
   저 은빛의 아득함 (4연 4행)
 
  그러나 다음 시구에서는, ‘반어와 역설’로  ‘희망’을 이야기한다.
   생을 끌어안고 (2연 1행)
   푸른 바다를 향해 달리고 (2연 3행)  
   끊임없이 길을 만들었던 (3연 4행)
   찬란했던 시절(3연 5행)
   아픈 그림자를 지우며 (4연 2행)
   은빛 비늘로 푸른 바다를 부른다 ( 4연 3행)
   내 안의 푸른바다 (5연 1행)
 
  시인은 작은 것, 슬픈 것에 자신의 감정을 덧씌운다. 프로이드는 시인의 무의식을 읽는다. 시인은 사물의 무의식을 읽는다. 독자는 사물을 통하여 시인의 무의식을 읽는다.
  먹이사슬구도에서 희생된, 멸치가 먹은 미미한 사물― 멸치 뱃속에서 소화를 기다리는 음식찌꺼기들의 무의식도 읽어낸다. 소화불량을 앓는 바다와 어부의 24시간도 읽어낸다. 그물에 걸리는 순간부터-건조되기까지.
  우애자의 시에는 ‘멸치’라는, 자신이 새벽경매에서 매일 만나는 건어물에, 자신의 생을 위장하여 반어적으로 숨겨 놓았다. 멸치는 시인 자신의 인생이다. 건조되어 가는 과정에서 등이 굽고, 은빛 비늘이 벗겨지고, 눈을 감지 못하고 죽어가는 부정의 순간. 그러나 그 눈은 푸른 바다를 향하고 있다.
  시인을 아는 지인들은 비유를 확장하여 그 행간에 숨은 인내와 눈물을 해독해 낼 것이다.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창의성은 문제해결력이다. 우애자의 시는 배반적 감정을 긍정적으로 재결합하여 ‘문제해결’을 하고 있다. ‘첫 부정’과 ‘끝 긍정’이 조화하여 ‘승화’를 이루었다. 인내하며 용기있게 사는 것은 창의적인 일이다. 삶에서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는 것은 힘이다. 시창작은 창조행위다. 시인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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