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시인
이영식
내 머리맡에 놓인 시인이라는 이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불알 두 쪽은 달렸는데 남자가 없다, 대쪽 같은 기개가 없다
한 때는 사상이니 이념이니 더운피 개천에 풀어 저자거리에 이름값이라도 한 모양인데, 요즈음은 신변잡기 파리채 놀음이나 다름 아니다
作爲만 있고 行爲가 없다, 活語(?)라면 살 저며 등뼈 내놓고 초고추장이라도 튀어야할 게 아닌가
가끔 언어를 비틀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성찬을 베풀기도 하지만 돌아서면 어느새 개다리소반에 찬밥이다
시인의 모자를 쓰고 보니 어깨가 자꾸 움츠러든다, 걸음걸음이 조심스럽고 그림자조차 낮은 곳으로 눕는다
언제부턴가 나는 한 마리 풍뎅이가 되어간다, 목 비틀린 채 땅바닥에 헛바퀴를 돌고 있는 외뿔풍뎅이다
세상의 저녁, 어느 한 불빛이 내 시를 읽고 있는가? 우리가 상한 날개 껴입고 헛춤을 추는 것은 아직도 추락할 꿈이 남아있음이라.
<이선의 시 읽기>
이영식의「백치시인」을 읽으면 시인이라는 이름에 대하여, 시인이라는 직업에 대하여 자괴감이 든다. 어느 집단이나 직업군이나 나름의 애환이 없겠는가? 그러나 정신과 정서가 예민한 시인은 늘 오감이 깨어 있다. 같은 상황이라도 더 아프게, 더 슬프게, 더 절절하게 느낀다. 시인은 유난히 자의식과 피해의식이 강하다. 그 자의식은 불편한 마음을 갖게 하는데, 이 심기불편함이 또한 시를 밀어붙이는 힘으로 작용한다. 시의 아이러니다.
이영식이 자평한 시인론을 살펴보자. 7연의 짧은 문장들로 재해석하여 요약적 보여주기를 하고 있다. 시인으로서의 불만족과 불편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1연- 남자다운 기개가 없다.
2연- 내용이 사상이나 이념이 없다. 신변잡기를 쓴다.
3연- 생각만 많고 추진력이나 행동력이 없다.
4연- 언어유희로 성찬을 베풀지만 내용은 빈약하다.
5연- 시인은 위축되고 소심해진다.
6연- 목이 비틀린 채 누워있는 풍뎅이처럼 같은 자리를 맴돈다.
7연- 상처로 쓰는 시는 추락하는 꿈을 향하여 춤을 춘다.
이영식의 7가지 시인론을 읽으면 콧등이 시큰해지고 머리가 멍멍해진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시인과 시에게 냉정하게 다음의 질문을 던진다. 시인이여, 10가지 질문에 정직하고 솔직하게 맘속으로 대답하여 보라.
나는 매너리즘에 빠진 시에서 비상할 돌파구를 찾고 있는가?
내 시는 나를 구원하는가?
내 시는 독자를 구원하는가?
내 시에는 새로운 철학이 있는가?
내 시는 새로운 표현기법을 사용하고 있는가?
내 시는 지루하지 않은가?
나는 시를 쓰는 작업이 재미있고 행복한가?
내 시는 역사를 바꿀 힘이 있는가?
내 시는 나만의 상표로 분류할 수 있는가?
내 시는 후대에 새로운 이즘으로 탄생할 수 있는가?
시인이여,
늘 속이 답답한 시인이여,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달리기만 하는 시인이여,
그대는 영원히 꿈꾸는 이상주의자다. 현재의 자신의 등급보다 늘 자신을 더 높게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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