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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 김예태
2018년 12월 25일 15시 53분  조회:803  추천:0  작성자: 강려
해바라기
 
 
김예태
 
 
지하철에 앉아 색종이를 접던 여자의 손가락에서 해바라기가 피어났다
 
“이번 역은 동작 현충원역입니다”
여자가 주섬주섬 해바라기를 들고 내린다
(햇살 부서져 내리는 강물을 건너와 여자는 어디로 가는 걸까?)
 
피웅피웅
총알들이 햇살의 레이더망처럼 날아다니고 있다
 
베티고지* 낙동강 전투에서 승전보를 전하고 쓰러진 병사들이
노란 철모를 벗어 푸른 하늘에 푹 찔러 넣고 무리지어 외치고 있다
“우리는 꽃 같은 색시를 두고 왔슴다”
 
소피아로렌이 해바라기 가득 핀 들판을 걷고 있다**
 
묘역에서 병사들이 걸어 나와 해바라기를 배경으로 소피아로렌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6.25때 35명으로 중공군 800여 명을 물리친 최고의 승전 전투지역
** 영화 해바라기의 한 장면-신혼에 소집영장을 받은 남편과 비극적인 이별을 한다
 
 
 
<이선의 시 읽기>
 
 
 
김예태의「해바라기」는 다음의 여섯 가지 특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제목 ‘해바라기’가 주는 원형성- 태양을 상징한다. 태양을 향한다는 이미지다. 이 시에서는 전쟁에 징집당한 어린 병사들의 무조건적인 격한 애국심이 해바라기와 일맥상통한다.
 
둘째, 1-6연의 연들은 각각, 모두 제목 ‘해바라기’ 와 연계되어 있다.
1연- 해바라기를 접다.
2연- 해바라기를 들고 내린다.
3연- 햇살 레이더망(원형 컷 사진 같은 해바라기 이미지)
4연- 꽃 같은 색시
5연- 해바라기 들판
6연- 해바라기 배경 기념사진 촬영
 
셋째, 두 사건이 현재라는 한 시점에서 행위가 일어나는 동시다발성 현재형 시점이다. 1-2연의 여자의 행위는 현재형이다. 그런데 3-6연의 행위도 현재형이다. 6. 25 사변 때 일어난 행위가 순간이동 기법으로 같은 시간대에서 일어난 듯 착각하게 한다.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그림이 포개진다. 이러한 방법은 영화에서 오버랩 기법으로 많이 등장한다. 과거회상 씬에서 처리하는 영화기법을 시에 도용하였다.
 
넷째, ‘전쟁과 젊은 병사의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아래의 표현들이 서정적으로 부드럽게 만들고 있다. 전쟁 내용이라기보다 사랑 시 같은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제목-해바라기
1연- 색종이접는 여자- 손가락에서 해바라기가 피어났다
2연-(햇살 부서져 내리는 강물을 건너와 여자는 어디로 가는 걸까?)
4연- 노란 철모를 벗어 푸른 하늘에 푹 찔러 넣고
5연- 소피아로렌이 해바라기 가득 핀 들판을 걷고 있다
6연- 병사들이 해바라기를 배경으로 소피아로렌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특히, 6연에서 젊은 병사들이 모두 죽었다고 사실적 표현을 쓰지 않고, ‘묘역에서 병사들이 걸어나와 해바라기를 배경으로 소피아로렌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는 표현이 압권이다. 상상력의 공간이 몇 개의 시뮬레이션을 동시에 보여주며 시를 하이퍼적이게 한다.
 
다섯째, 러너기능과 리좀- 시가 촘촘하면 답답하다. 각 연들이 건너뛰기를 함으로써 공간의 여백이 장면전환을 하며 답답하거나 지루함을 덜어준다. 그물처럼 얽힌 사건과 해바라기 이미지가 하이퍼시의 리좀 기능을 하고 있다.
 
여섯째, 주석의 효과-시를 설명적이지 않게 한다. 만약 시의 내용으로 이야기식으로 주석 내용의 사건을 펼쳤다면, 분명 시는 지루하고 설명적일 것이다.
 
시는 표현예술의 꽃이지만 내용에 철학적 질문과 인생의 극한 상황을 표현하는 이슈가 없으면 말장난이 되기 쉽다. 김예태의「해바라기」는 감각적이며 가벼운 터치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언농으로 가볍지 않은 것은 내용의 비중 때문이다. 6.25 전쟁과 어린 병사의 죽음이라는 절대적 위기상황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시는 내용인가, 표현인가?’라는 화두를 오늘 다시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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