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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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 녀자들의 질투는 무섭다
2006년 04월 12일 00시 00분  조회:4967  추천:79  작성자: 김관웅
.잡문.

녀자들의 질투는 무섭다

김 관 웅


서양에서는 질투를 검은색과 흰색으로 나누는데, 전자는 상해(傷害)적 질투이고 후자는 경쟁적 질투이다. 질투의 감정은 남녀를 불문하고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녀자들사이의 질투에는 흰색의 질투보다는 검은색 질투가 많고 아울러 그 비례도 남자들에 비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녀자들의 질투는 끈질기고 무섭다.

한고조(漢高祖) 류방(劉邦)의 황후인 려후(呂侯)--려치(呂雉, ?—기원전 180년)는 질투심이 강한 녀자로 중국력사에서 소문이 높다. 류방에게는 8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려후가 낳은 아들은 병약(病弱)한 류영(劉盈)뿐이였기 때문에 그녀는 자기가 낳은 아들 류영의 황태자 자리를 지키기 위해 다른 부인들과 왕자들을 몹시 경계하였다. 기원전 195년 류방이 죽고 류영이 즉위하여 황제의 옥좌에 오르기는 했으나 려후는 뒤일이 근심스러워 류방의 다른 일곱 아들들을 차례로 죽였다. 이중에서도 척부인(戚夫人)에 대한 려후의 박해는 그야말로 지독하기 그지없다.

류방은 생전에 총비(寵妃)인 척부인의 소생 조왕(趙王) 여의(如意)를 황태자로 책봉하려고 타산했었기 때문에 려후는 여의를 독살하고 척부인의 네 손발을 자르고 돼지굴에 처넣어 이른바 사람돼지—인시(人豕)로 만들어 버렸다. 류영이 재위 7년만에 콜콜 앓다가 죽으니 후궁의 아들 소제공(少帝恭)을 옥좌에 올려 앉힌 뒤에는 아무리 보아도 탐탁치 않아 소제공도 죽이고 다른 후궁의 아들 항산왕(恒山王) 홍(弘)을 세워 자신이 정권을 친히 틀어 쥔다. 그 뒤 려후는 공공연히 자기의 친정집 사람들을 요직에 올려 앉혀 류씨황실이 외척인 려씨에게 눌리고 만다. 려후가 죽자 란을 일으키려 하던 려씨일족을 조정의 대신들인 태위 주발(周勃)과 승상인 진평(陳平) 등 한고조의 공신들이 진압하여 려씨일족을 멸망시켰다.

여기에서 특히 주목되는것은 척부인에 대한 려후의 질투이다. 려후는 류방이 패(沛, 지금의 강소성 회음현)라는 지방에서 정장(亭長)이라는 쥐꼬리만한 벼슬을 할 때 얻은 마누라였기에 인물이나 여타의 면에서 류방이 황제로 등극한 뒤에 얻은 척부인에게 대면 발뒤꿈치에도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남편인 류방의 사랑을 한 몸에 독차지 하다 싶이 하니 려후인들 어찌 질투가 불붙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질투를 해도 너무 했다. 네 손발을 다 잘라 버린것도 성차지 않아 돼지굴에 처넣기까지 하다니….

력사는 재연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절대적인것은 아니다. 우리는 강청을 현대의 려후(呂侯)라고들 하는데, 여기에는 그럴만한 리유가 있다. 강청이 장개석정권을 뒤엎고 새로운 정권인 중화인민공화국을 창건한 모택동주석의 부인이라는 점은 려후가 항우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천하를 얻고 한나라라는 새로운 조대를 일으킨 한고조 류방의 부인이라는 점과 상당한 류사성이 있다고 해야 할것이다. 그리고 더욱 류사한 점은 강청이나 려후는 모두 정치야심이 크고 녀성 특유의 질투심도 대단하였다는 점에서도 서로 꼭 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 당대 정치사에서 <<문화대혁명>>은 특기할만한 대사건이다. 이 와중에서 국가주석인 류소기의 부인 왕광미에 대한 강청의 질투가 <<문화대혁명>>을 더 한층 비극의 심연에로 끌고 갔음은 주지하는 바이다.

그러면 강청은 어떤 녀자인가?
강청(1913—1991)은 산동성 주청현 출신이다. 미천한 가정에서 태여난 강청은 어려서 리혼한 어머니를 따라 천진의 담배공장에서 녀공으로 일한 경력도 있다. 1929년부터 자그마한 류랑극단에 들어가서 배우로 전전하다가 1934년부터는 상해에 들어가 영화배우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그 가운데서 중국공산당에 입당하고 1937년에는 일본군대가 점령한 상해를 탈출하여 연안으로 갔다. 연안 로신예술학원에서 모택동의 강의를 듣는 과정중에서 모택동과 접근할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모택동과 부인인 하자진 사이에서 감정상의 갈등이 생긴 틈에 1939년 모택동과 동거하게 된다. 그러나 강청과 모택동의 부부관계는 명매정취(明媒正娶)의 관계가 아니였기에 강청은 오랫동안 합법적인 도경을 통해 맺어진 류소기와 왕광미의 관계처럼 공중들앞에서 떳떳할 수가 없었다.

해방후, 특히는 60년대이후 왕광미는 국가주석의 부인의 신분으로 늘 출국방문길에 올라 국제적인 뉴스인물로 부상하여 세계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였다. 워낙 자기가 해야 할 만인이 경모하는 제1부인의 행세를 왕광미가 하고 다니니 강청이 어찌 질투가 나지 않았으랴.

왕광미는 비단 외모가 강청을 추월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수준이나 덕성도 심지어는 가정출신마저도 강청의 질투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왕광미는 천진의 대부자집의 고명딸로서 부친은 일찍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뒤에는 농상부 공상사장이라는 높은 벼슬까지 지낸 분이다. 모친은 천진의 부유한 상인의 가정에서 태여나서 북양녀자사범대학을 졸업한 녀수재이다. 이런 훌륭한 가풍을 가진 가정환경에서 자라난 왕광미는 천부마저 뛰여 나서 대학시절에는 수학녀왕으로 불리웠고 중국의 첫 원자물리학 녀석사졸업생이다. 게다가 류소기와는 찰떡궁합이여서 자식들을 줄느런히 두고 있기까지 하니 강청의 질투는 극에 달할 수 밖에 없었다.

왕광미에 대한 강청의 이런 질투가 문화혁명중에서 대단한 변수로 작용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려후가 척부인을 박해한 것처럼 네 손발을 잘라내고 돼지굴에 처넣지는 않았지만, 강청과 그 일당들은 류소기를 박해해 죽이고 왕광미를 12년동안이나 감옥에 가두어 두었으니 그 질투심이 결코 려후에 비해 손색이 간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려후와 강청이 다른점은 그 끝장이 많이 다른 것이다. 즉 려후가 죽은 뒤에 류방의 공신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과는 달리 강청의 경우에는 아직 퍼렇게 살아있는데 엽검영 등 로일대의 혁명가들이 일어나서 강청과 그 일당을 일거에 숙청한 것이다.

강청은 1976년 10월달에 감옥에 갇혀 사형 잡행유예 23년의 선고를 받았다가 1991년에 감옥에서 자살했다. 기자 양란(楊瀾)이 <<강청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습니까? 강청은 왕할머니와 불구대천의 원쑤지간이니 말입니다.>>하고 물었을 때 왕광미의 대답은 생각밖으로 대답은 평담했다.

<<이것은 완전히 개인적인 원쑤라고만 할 수 없어요….그녀(강청)가 어째서 자살했는지에 대해서 나도 남들한테서 전해 들었을뿐이오. 강청은 양말을 찢어서 길게 이은 끈으로 목을 매여 죽었다는구만. 아마도 절망했던거겠지.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던거겠지…..>>
아마도 왕광미는 이미 녀인의 질투 같은 것은 초개같이 보는 초월적인 경지에 들어선 것 같았다.

1966년 왕광미가 아직 중남해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이 6세밖에 안되는 왕광미의 딸애에게 류소기를 타도하자는 아동가요를 왕광미 앞에서 배워 주었다고 한다. 기자 양란이 그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가 물으니 왕광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난 그 사람을 추궁할 생각이 없소. 추궁하게 되면 그 사람은 잘못 되는 거요.>>

남에게 박해를 받아본 사람만이 궁지에 빠진 인간의 가련한 처지에 대하여 리해할수 있게 되는 법이다. 남을 용서해 줄줄 아는 그러한 너그로운 마음이 왕광미의 여생에 자유와 안녕을 가져가 준것 같다. 중앙령도간부들중에서 왕광미의 자식들만큼 잘된 자식들도 흔치 않다. 류소기의 원혼도 아마 구천에서 이 한점에 대해서만은 만족해 할것이다.

물론 왕광미가 강청이 죽었으니 말이지 만약 살아 있었다면, 그런 초연한 태도를 취할 수있었을까?녀권주의의 <<바이블>>라 평가 받는 <<제2의 성>>의 작자인 시몬느 드 보봐르는 <<녀자 손님>>이란 소설에서 녀자들 사이의 질투에 대해 그것을 녀자의 본능적인 본질로 파악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전야에 피에르와 그의 애인 프랑소아쯔는 동정심 때문에 크싸웨르라는 외성의 불쌍한 처녀를 자기들이 사는 집에 데리고 온다. 이 이녀일남 세 사람은 참신한 애정과 우정의 관계를 건립하려고 한다. 처음에는 그래도 하모니를 이루는것 같던 <<삼중주>>에는 미구하여 차츰 비협화음이 끼여들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두 녀인 사이에 질투가 생겨서 메울래야 메울수 없는 갈등의 곬이 패이기 시작한다. 전쟁이 일어나자 피에르는 참군하여 전선으로 나가고 집에 남은 두 녀인은 끝내 불구대천의 원쑤로 된다. 어느날 깊은 밤, 프랑소와쯔는 크싸웨르가 한창 자고 있는 침실에 가만히 들어와서 가스코크를 틀어 놓는다.

우리 민족의 속담에 남자를 두고 벌어진 녀자들사이의 질투와 싸움을 두고 <<씨앗싸움에는 돌부처도 돌아 앉는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특히 녀자들의 질투는 흔히 살인을 부를 정도로 무서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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