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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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장군기념사업관에 혼신을 쏟는다
2012년 04월 20일 13시 39분  조회:2139  추천:0  작성자: 오지훈

김좌진장군기념사업관에 혼신을 쏟는다   2007/06
김좌진장군의 손녀 김을동을 만나

일전 기자는 심양한국주기간 심양을 잠간 방문한 독립운동가 김좌진장군의 손녀인 한국탈랜트 김을동녀사(63세)를 심양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는 해림에 세운 김좌진장군기념사업관의 인테리어건때문에 해림에 들렸다 전원주선배를 만나로 심양으로 오는 길이였다.
장군의 손녀, 김두한의 딸, 성공한 탈랜트, 《국민스타》의 엄마 등 누구보다 화려한 경력을 갖는 그녀였지만 녀장부다운 건장한 체구외에는 보통사람과 별반 다름이 없었다. 장군의 손녀로 기념관을 세워놓으니 당당하다》고 허두를 뗀 그녀는 려로의 피로도 잊고 기자에게 김좌진장군기념사업관과 자기일가에 대한 일화를 자상히 들려주었다.
김좌진장군기념사업관과 《청산리구국대장정》
김좌진장군기념사업관은 목단강지역 해림시에 위치해있는데 김좌진장군이 피살된 곳이라한다. 이 사업관은 김을동씨가 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를 만들고 1999년부터 중국정부의 지원으로 흉상건립 및 생가복원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하여 지난 2005년말에 개관하였다. 기념관의 16,000여평되는 부지는 해림시정부에서 무상제공받았고 박물관과 복지관 두동의 건물로 구성되였다. 박물관에는 현재 한국독립기념관에도 없는 문물이 전시돼있는데 당시 동북지역에서 활동하던 독입운동가들의 업적이 수록돼있다. 중한 력사학자들이 공동발굴한 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관련 등 항일무장투쟁사적과 한국인과 중국인 항일투사 각 15명의 개인사적들이 전시되여있다. 소개에 의하면 김좌진장군은 군자금을 마련하고저 정미소를 운영하다 41살에 피살, 그는 일찍 청산리전투, 봉오동전투를 지휘하여 대승전을 거두었다. 김좌진장군기념사업관은 일명 중한우의공원이라도 하는데 독립운동유적지로 되여 해마다 적잖은 참관자들의 발길이 잇고있다. 지난해 단체손님만 400여명, 올해는 5천여명에 달할것으로 본다. 지금은 해림의 관광코스로 되여 목단강에서 해림으로 가는 직승비행기가 개통되여 20분이면 도착할수 있다.
복지관은 숙박장소외 식당과 례식을 할수 있는 장소로 만들 계획, 살아있는 민족문화의 례식, 환갑잔치 등을 이어나가는 공간, 또한 세미나를 할수 있는 공간 마련으로 한중우호관계의 컨셉으로 만들고싶다고 했다.
그는 현재까지 사재를 털어가며 투자한 자금이 2500만원에 가까운데 그 과정에 사기를 당하는 등 원인으로 공사가 계획보다 많이 지연되고있지만 이 곳에 김좌진장군기념사업관을 고집한데는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것도 있지만 자라나는 후세대들에게 민족의 얼과 넛을 심어주고싶었다고 했다. 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의는 련속 6년째 해림조선족실험소학교(김좌진장군이 생존에 지은 학교라고 함)에 장학금을 지급, 이미 100여명이 장학금을 받았으며 래년 5월에는 전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할것이라 했다.
동시에 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의는 지난 2001년부터 한국의 대학생을 모집해 해마다 《청산리구국대장정》을 펼치고있다. 초기 심양을 경유했지만 후에는 단동에서 배를 타고 와서 집안의 환인, 이도백화, 연길 봉오동과 청산리전투지역, 다시 발해지역에서 김좌진장군기념관, 할빈731부대, 할빈역 등 로정으로 10박이상의 대장정을 한다. 특히 봉오동전투나 청산리전투지에 갈때면 독립가를 부르며 12킬로를 걸어가서 주먹밥을 먹으며 당년 독립군들의 생활을 체험한다.
《다음 세대들에게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교육시키고 애국애족의 정신과 민족정신을 함양시키는 일에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하고싶다》며 오로지 외고집으로 오늘까지 왔는데 참으로 감회깊다고 했다.
《주몽이 엄마》
김을동 자신도 한국에서 성공한 탈랜트. 그러나 최근 아들 송일국이가 출연한 한국드라마 《주몽》이 뜨면서 《일국이 엄마》, 《주몽이 엄마》로 더 각인되고있다. 그는 아들이 성공해서 기분이 좋다며 그러나 내아들이 잘나서가 아니라 선조들이 잘 보살펴준 덕분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청산리구국대장정》 1회때부터 송일국이는 이 대오에 합류하여 환인 오녀산성에 가서 999개 층계를 올라 참배한적 있는데 누가 꿈에라도 주몽역을 맡으리라 생각이나 했겠는가?
또 세상에 우연일치라는 말이 있듯이 2005년 10월 29일, 김좌진장군기념사업관이 준공하는 날 일국이는 금정(金鼎)호텔 선물가게에 가서 활 하나를 사와서 kbs 소품실에 갖다놓겠다 말한적 있는데 5개월후 그는 주몽역을 맡게 되였다고.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일국이도 사극에서 성공하였는데 그가 맡은 역은 《해신》에서 장보고를 죽이는 염장이라는 악역, 여기서 성공하면서 그는 kbs신인상, 우수연기상을 수상하여 스타로 뜨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주몽》에서 주몽역을 맡았을 때 주변의 사람들이 거의 반대하였다. 그 리유인즉 사극에 편중하면 탈렌트로 성공하기 어렵기에 여러가지 드라마에 출연해야 한다는것이다. 그러나 김일동씨는 어머니로서 력사적으로 최고의 인물을 재연한다는것은 그 누구도 상상할수 없는 대단한 일이라며 적극적으로 지지해나섰다. 일국이가 주몽이 형들에게 하마트면 진흙탕에 생매장당할뻔한 장면을 찍고나서 집에 들어왔는데 그 흙탕물이 푹 밴 옷을 자신이 손구 며칠이나 빨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북핵문제로 남북정세가 긴장하던 시기, 민족대표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한 김을동씨는 평양 동명성왕릉에 참배하는 가는 기회를 갖고 주몽의 릉앞에 일국이 사진을 갖다놓고 현재 일국이가 대박이 터지고있으니 끝까지 성공할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빌었다.
김을동씨는 원래 압구정동 현대 아파트 55평에 살던 집과 가산을 김좌진장군기념사업관과 청산리구국대장정에 투자하다보니 월세 100만원짜리 집에 들었다가 쫓겨날 무렵 일국이가 대박을 터뜨려 가긍한 신세를 면하게 되였고 일국이도 기념관사업에 적극 지원하고있다고 했다.
그는 성공한 배우를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으로 비유하면서 외교관 수백명이 하기 어려운 일을 성공한 욘사마가 해낼수 있었다며 《국민의 스타》로 뜨고있는 아들에게 호의호식이 아니라 나라에 기여하는것을 항상 잊지 말고 행동거지에 조심하라고 타이르고있다한다.
《각본없는 드라마》
김을동씨는 할아버지가 세상뜬지 100년만에 손녀가 흉상을 모셔놓았고 거기에 한국 국회의원과 한국인들이 와서 참배하고 또 일국이가 국민스타로 성공했으며 한 방송사에서 다큐맨타리로 할아버지, 아버지, 본인과 아들 4대가 나왔으니 가히 《극본없는 드라마》라고 했다.
할아버지 김좌진장군은 한 대가가문의 둘째로 태여났으며 17살 되던해 한국사상 처음으로 35명의 노비문서를 불사르고 재산을 전부 무상으로 나눠주면서 가노를 해방시켰으며 문중 어른들의 반대에도 아랑곳않고 99칸이나 되는 집에 호명학교라는 학교를 열어 신학문을 가르쳤다. 그는 일본 경찰에 쫓겨 만주에 가서도 가는 곳마다 학교를 세웠다. 특히 독립군사령으로 몸소 지휘한 청산리전투는 청산리대첩으로 일본의 간담을 서늘케 하여 독립운동의 빛나는 한페이지로 길이 남아있다.
아버지 김두한도 한국에서는 전기인물이다. 그는 김좌진장군의 아들이라는 리유로 일본경찰에 쫓기며 살았고 대담하게 일제에 항거했다. 특히 그가 한국 국회에서 오물을 투철한 이야기는 후세사람들에게 그가 얼마나 대의를 주장하고 불의를 타매하였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을동씨에 의하면 그때 한국정치가 정경유착으로 판을 치자 김두한은 탑골공원(순국선렬공원) 화장실에서 똥물을 퍼다 국회에 부으면서 선렬들의 응징리라고 했는데 이것이 국제적으로 잇슈가 되였다. 그리하여 군사독재시절 김두한은 국회의원 빠지를 빼앗겼으며 국회에서 제명당했다. 김을동씨는 부친이 국회의원을 했지만 김두한이라는 이름으로 재산등기한적 없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었으며 자신은 생활이 그처럼 검소했는데 국회의원치고 그렇게 어려운 가족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김두한의 출생 자체가 한편의 로맨틱한 드라마다. 김을동씨에 의하면 서울에서 일본경찰에 쫓기여 도주하던중 어느집 담장을 뛰여넘어들어갔는데 거기서 한 착한 녀자를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되고 임신하여 김두한을 낳았으며 그뒤 그 녀성은 김두한이 여덟살되던 해 일제본경찰의 심한 고문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들 일국이는 《주몽》의 역으로 《국민의 스타》로 뜨고있고 자신은 스타다큐맨타리에 출연, 또 무지하다고 할 정도로 김좌진장군기념관사업을 추진하고있으니 말이다.
그는 심양은 옛날 아버지가 머문적 있었던 봉천이여서인지 더 정이 든다며  《재중동포는 글로벌시대 한국의 엄청난 자원이다. 한국인이 중국에 무난하게 진출할수 있은 원인중 동포들이 가교역할을 해준데 있다. 중한 량국간 윈-윈관계를 이룰수 있는 사업들을 통해 중국에서 우리의 말과 우리의 문화를 지키며 살아가고있는 중국동포들에게 현대식 한국문화 보급 및 교육과 장학사업 지원, 한국의 학생과 기업인들의 동북 3성 지역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오지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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