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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인생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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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계절은 겨울부터 시작이다 댓글:  조회:2468  추천:0  2009-05-16
진달래가 피면 봄이 본격적으로 승리의 함성을 올린다고 하지만 동북의 동장군은 완고하기 짝이 없다. 5월의 해빛이 따스한 손길로 대지를 부드럽게 만져주고있지만 산과 들엔 아직 겨울의 찬기가 싹 빠지지 못했다. 이른 아침이면 산기슭을 따라 감돌던 물김이 나무잎사귀나 풀잎들에 봄의 은구슬을 빚으려는듯 싸늘한 이슬방울들을 대롱대롱 달아매놓고 집집의 처마기슭이 가랑비를 맞은듯이 축축히 젖어버리도록 물안개가 대지공간을 유유히 감돈다. 동녘이 훤해와서야 해살이 애기풀을 마구 키스하면서 제노란듯이 쪽잠에 든 이슬을 흔들어 깨운다. 때는 바로 1979년 5월중순의 어느날 아침이다. 도회지사람들은 아침을 치른지 이슥해도 아직 일찍하다며 손발을 비비고있을 때 그리 크지않은 키에 퍽 다부지게 생긴 중년사나이 하나가 오솔길옆에서 도전적으로 이슬을 담뿍 담아들고 흐늘대는 잡풀들을 와락와락 떨쳐버리며 산발을 따라 산을 오르고 있었다. 바지가랭이는 어느덧 물에 푹 잠그었다가 나온듯 화락하게 젖어있었다. 신을 신었다고는 하지만 긁이나 뾰족돌을 방비하기 위해서 필요할뿐이지 바지가랭이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기가 양말을 푹 적시여 신안은 벌써 끈적끈적하였다. 감도는 안개속에 푹 빠진 산은 오만상을 찌프리고있어 범접하기가 여간만 어렵지 않았다. 그래도 문어발처럼 내리뻗친 산발을 하나를 타고 올랐다가 다른 하나를 타고내리면서 산마루까지 올라갔다가는 또 다른 산마루의 산발을 타고 오르내리자면 아침 일찍 서두르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대체 이 사나이는 누굴가, 왜서 봄의 이른아침부터 찬이슬을 헤치며 산발을 주름잡고있는걸가? 그가 바로 이 글의 주인공이며 그때 당시 룡정현대외무역국의 부국장이였던 김석륜이다. 그는 지금 일상적인 생각으로는 전혀 보배로 칠수도 없는 도라지따위의 산나물을 <<정탐>>하고있는것이였다... 1 룡정시(당시엔 현이였음)대외무역국은 1979년도에 성립되였다. 성립초기엔 1976년도에 세운 룡정현공급판매합작사의 대외무역조에서 사업하던 김석륜(조장), 정증봉, 최성률 등 세사람으로 구성되였다. 금방 <<가정>>을 꾸릴 때만 하여도 그들은 처참할 정도로 적수공권이였다. 원래 쓰던 판공실 한칸을 빌려쓰고있었는데 낡아빠진 책걸상에 자그마한 서류궤가 전부의 <<가장집물>>이였다. 말그대로 말짱 령으로부터 시작하는 가난뱅이 신세였다. 성립초기 이 대외무역국의 사업성질은 사실상 성대외무역국의 룡정판사처격의 작용을 하는데 불과하였다. 성대외무역국에서는 로임과 약간의 활동비용만 줄뿐이지만 그들의 수입은 몽땅 성의 명목으로 넘어가는판이였다. 일년내내 땀흘려 임무를 완수 또는 초과완수한다고 했댔자 고작 차례지는것은 얼마안되는 로임뿐이였다. 얼마나 불공평한 대우인가. 너무나 혜택없는 노릇이였고 보람없는 일이였다. 김석륜의 마음은 세차게 갈기질하였다. 현대외무역국을 성립할 때 그는 자기로서의 아름찬 타산이 있었댔다. 현공급판매합작사의 대외무역조에서 몇년간 조장사업을 해온 그는 한번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 보람찬 일을 해내려고 하였던것이다. 지난날 우리는 너무나 의뢰생활에 중독되여 국가의 혜택을 노력없이 눅거리로 받으려고만 했다. 자조자급의 훈련이 너무나도 결핍했던것이다. 왜서 자기의 두손으로 창조할수 있는 재부를 게으름으로 외면해버린단 말인가! 쉽게 산다는것은 기실 허무한 삶을 의미한다. 보람없이 슬슬 무의미한 세월이나 죽여가면서 국가월급이나 제때 타먹는 기계적인 직업인이 되기보다는 보다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취하여 세월의 갈피갈피에 고통과 희열을 끼워넣으면서 노력, 분투, 창업의 땀을 흘리는 성실한 기업시민이 되는것이 훨씬 바람직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그는 성대외무역국에서 주는 임무를 적대적으로 완수하는 전제하에서 좀 자체경영도 하기로 하고 성대외무역국에 제기하였다. 그런데 성에서는 그들이 자체경영을 하는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수입도 계속 몽땅 상납하게 하였다. 그는 그들과 여러번 시비했으나 강에 돌을 던지는격이였다. 김석륜은 끈질기게 성대외무역국과 계속 입씨름을 하는 한편 이듬해에는 직접 자체경영을 밀고나갔다. 지루하고 번쇄한 시비만을 비생산적으로 되풀이할것이 아니라 행동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했던것이다. 성대외무역국에서 맡기는 임무만 해도 그들 다서사람(이땐 이미 다섯사람으로 불었났음)으로서는 퍽 아름찬것인데 자체경영까지 한다는것은 그렇게 식은죽먹기가 아니였다. <<우리는 지금 가난하고 말끔한 가정이요. 우리절로 이 가난의 때를 벗자면 사람마다 간고하게 창업하는 정신이 있어야 하고 고락을 함께 나누는 의리가 있어야 하오. 일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한거요.>> 김석륜은 늘 종업원들에게 이것을 강조하였으며 그 자신이 언제나 모범적인 실천자였다. 그 어떤 일이든 다랄붙기만 하면 그들사이엔 국장이 다르고 희계가 다르고 수매원이 다른 그런 계선이 없었다. 모두가 탐사원이자 조직원이고 기술원이자 수매원이였다. 고사리철이 되면 저마다 맡은 구역의 산을 답사하고 농민들한테 기술을 전수해야 했으며 또 농민들이 고사리를 캐오면 뿌리를 끊고 잎이 핀것을 가려내고 등수를 매긴다음 끓인 소금물에 절이는 등 가공을 직접하면서 농민들을 세세하게 지도해야 하였다. 그저 농민들한테 맡겼다간 기술이 숙련되지 못하기에 등수를 잘 가리지 못할수도 있었고 또 어떤 농민들은 사실 제일처럼 그렇게 알뜰하게 하지 않는것이였다. 조금만 소홀히 해도 같지 않은 등수가 뒤섞이거나 깨끗하게 정선하지 않아 불합격품이 될수 있는것이였다. 그런데 아무리 세심하게 한다고 해도 일차적으로 깨끗하게 하지 못하는 때가 많았다. 농민들을 직접 지도하여 정선했다고는 하지만 거두어온후 다시 검사해보면 요구에 도달하지 못한것이 많았다. 그럴때면 미처 다른 사람들을 동원할새가 없어 그들 몇사람이 밤늦게까지 눈을 쥐여뜯으며 다시 처리하여야 하였다. 날이 새면 언제 눈을 붙일새가 없이 또 그것을 실어보내야 하는것이였다. 8-9월의 송이버섯철이면 더 바삐 돌아쳐야 했다. 야들야들한 생송이버섯은 모래가 잘 달라붙기에 하나하나 솔로 털어내야 한다. 그런데 농민들은 그 많은 송이버섯을 그렇게 하나하나 솔로 빗질할리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는수 없이 그런대로 등수만 갈라서는 돌아와서 다시 하나하나 정선해야 하는것이였다. 다른 산나물도 마찬가지로 모두 수매요구가 있기때문에 그들은 산나물철이 되면 한시도 서성거릴새없이 바삐 돌아쳐야 했다. 그들에겐 잠자리도 고정된 곳이 따로 없었다. 오늘은 삼합에서, 래일은 지신에서, 모레는 명동에서... 어떤 땐 옷을 입은채로 새우잠을 잤으며 48시간을 하루로 보낸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삼합 북흥강역이 산나물이 많이 나는 중심지역이므로 옛날 우리 선조들이 살길을 찾아 보따리짐을 지고 넘어왔던 오랑캐령을 얼마나 넘나들었는지도 헤아릴수 없었다... 1982년 2월에 고배상과 윤만길이 광주로 가서 몇가지 일을 처리하게 되였다. 단위의 경제형편을 잘 알고있는 그들은 려비를 절약하기 위해 경석차표를 끊었다. 꼬박 사흘밤을 걸상에 꼿꼿이 앉아 끄덕끄덕 <<기도>>를 드리며 가고나서 광주역에 내렸을 땐 온몸의 힘줄을 쏙 뽑아낸듯했고 그저 아무데서나 한잠 실컷 자고싶은 생각뿐이였다. 그들은 먼저 주숙할 곳을 찾았다. 그곳에는 괜찮은 려관들이 있었지만 려관비가 너무 비쌌다. 서류가방을 든 많은 <<공무인원>>들이 국가돈을 쓰고 국가일을 하는데야 하고 배포유해서 그런 호텔을 드나들었지만 일전이래도 아껴쓰는데 습관되다싶이한 그들에겐 1원이 10원으로 여겨졌기에 아예 좋은 려관들은 바라보는것조차 단념하고 지나쳐버리였다. 마침내 그들은 삼사십명이 함께 투숙할수 있는 통칸방이 있는 초라한 려관에 짐을 풀었다. 점심때가 되자 그들은 만두를 사다가 가지고간 고추장, 짠지따위에다 대충 먹고는 벌렁 자리에 누웠다. 맨 널바닥에 짚방석을 깐 잠자리였지만 눈두덩이에 피곤이 무겁게 축 드리운 그들한테는 제법 푹신한 멋이 있어 눕자마자 깊은 잠에 골아떨어지고말았다. 그러나 얼마지나지 않아 온몸이 오싹오싹 해났다. 난방시설이 없는 남방의 2월은 낮게 드리우는 찬김에 이불마저 축축할 지경이였다. 그런것에는 아랑곳없이 이튼날부터 그들은 사처로 달아다니며 갖고간 일처리에 다랄붙었다. 보름이 지났다. 가지고간 고추장, 짠지들이 모두 거덜이 났다. 그들은 편이국수나 빵으로 끼니를 에웠으며 부대를 찾아가서 사업증을 보이고 사정해서 가마를 구해다가 드문드문 죽은 고기를 사서 끓여먹었다. 광주사람들은 모두 산고기를 사먹기에 죽은고기는 퍽 헐값이였다. 두달을 막 잡아서 갔던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려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갈 때 무엇이든 돈이 될만한것을 구입해 가지고 가려 했다. 비록 그들은 떠날 확정적인 구입임무는 맡지 않았지만 이것은 지도부에서 제창하는 창업신이였고 또 그들이 가는곳마다에서 행동에 옮기는 고상한 기풍이였다. 허나 인제 려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무얼 해간단말인가? <<듣자니 우리 고장에서는 고무장판이 한창 인기를 모은다더구만>> <<그런데 우리한텐 인제 려비도 얼마 안남았는데요.>> <<글쎄...>> 그들은 한동안 말없이 난처한 얼굴로 마주 쳐다보았다. <<우리 한번 외상으로 사정해볼가?>> <<우리같은 생면부지한테 외상으로 주기나 하겠습니까?>> <<한번 부닥뜨려 보지. 창피당할셈치고. 뭐 우리가 여기서 살겠나.>> <<글쎄요, 그래보지요. 밑져야 본전일텐데.>> 이튿날 그들은 어느 한 고무장판공급판매부를 찾아갔다. 그들은 제잡담 사업증과 단위소개신을 내보이면서 찾아온 경위를 말하고 제발제발 사정하였다. 헛일삼아 찾아간 그들인지라 별로 큰 기대같은건 걸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렇게도 수월할변이라구야. 하늘이 도왔던가, 그들이 하도나 진지하고 성근하게 청을 들어 그랬던지 아니면 그곳 책임일군이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여서 그랬던지 그들의 청을 들어주었던것이다. <<하지만 돈은 돌아가서 인츰 부쳐야 합니다.>> <<그러지요, 그건 에누리없으니 념려하지 마십시오.>> 연신 머리를 끄덕이며 감사를 드린 그들은 어찌나 기뻤던지 두달이 거의 차는 객지생활에서 몰킨 고달픔이 순간적으로 말끔히 가셔지는듯싶었다. 그들은 그곳의 은행돈자리를 적은다음 사업증과 소개신을 <<저당>>하고 고무장판 팔천메터를 구입하여 연변에 부쳤다. 그리고는 그들도 그날로 돌아오는 기차를 잡아탔다. 이번길에 그들은 고무장판을 팔아 만여원을 수입하였다... 그들의 끈질긴 노력은 마침내 성대외무역국의 긍정적인 시선을 끌어왔다. 1982년, 성대외무역구에서는 마침내 룡정현대외무역국의 자립능력을 인정하고 그들이 자체경영을 하는것을 허락하였다. 2 그해에 김석륜이 국장 겸 경리로 되였다. (이때에 와서 그들은 대내적으로는 의연히 대외무역국이라고 했지만 대외적으로는 대외경제무역공사라고 하였다.) 기막힌 가난을 굳센 자립의지로 풀어버린 그는 한바탕 더욱 통이 크게 해제낌으로써 일상성의 공간을 초월하여 치부의 문을 두드려 열려고 윽별렀다. 이때는 바로 전 사회적으로 개혁, 개방의 물결이 높아가고있던때라 생활의 일상성속에 묻혀버리는것을 달가와하지 않던 그로 말하면 그야말로 순풍에 돛을 단 격이 되였다. 게다가 환난을 함께 겪어오면서 일심동체로 뭉쳐진 직원들의 드높은 상승심이 정신적인 집합력이 되여 뒤받침해주었다. 1982년부터 1984년까지 그들은 해마다 2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1983년도에 그들은 세칸짜리 판공실을 새로 마련하였다. 이듬해에는 그 집을 팔고 성과 주에서 지원을 받아 건평이 600평방메터인 창고와 450평방메터에 달하는 지금의 판공청사를 지었다. 그런데 워낙 인간에게 있어서 삶을 참답게 산다는것 자체가 아픔을 당하는것이였다. 1985년 이전까지만 해도 대외무역경제공사는 아무런 명성도 없어 누구도 오려하지 않았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룡정현에 대외무역공사가 어느 골목에 있다는것을 아는이조차 많지 못했었다. 그런데 1985년도에 그들이 변경무역을 시작하면서부터 대외경제무역공사는 <<총각>>들한테 외면당한 <<처녀>>로부터 일약 열렬히 흠모하고 사랑하고 추구하는 대상자로 주목되였다. 삽시에 많은 <<중매군>>들이 문턱이 닳도록 찾아들었다. 사회상에 류행되고있는 인간관계의 충격파가 드세게 그들을 충격하였다. 김석륜은 실무상의 애로가 아닌 인위적인 도전에 골머리를 앓게 되였다. 워낙 도리보다 세속을 중요시하는 인정세태인지라 그렇게 쉽게 맺고 끊을수 없는 일이였다. 게다가 이런 <<중매군>>들은 거개가 사회명성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면 그런 사람들과 천갈래만갈래로 련줄이 있는 사람들이였다. 그러기에 자칫하다간 순소비적인 시비에 빠져 사업을 망쳐먹을수 있는것이였다. 인간은 본래 자기의 운명을 자기절로 조종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 인간의 운명의 실타래를 마음대로 감았다 풀었다 할수 있는 무서운 힘이 사회에는 확실히 존재하고있는것이다. 그때문에 참답게 산다는것이 참으로 어렵고 고통스러운것이며 때로는 목적과 결과의 배반을 초래하여 소나무처럼 억센 사나이도 졸지에 물거품이 되여버리는수가 있는것이다. 그는 몽매와 문명, 인정과 사업, 질투와 분발, 봉건의식과 현대의식의 치명적인 대결이 안겨주는 뼈저린 진통을 온몸으로 절감하였다. 소비의식으로 삶의 공간을 찾는 사람들은 채 익지않은 과일도 마구 따먹으려고만 생각한다. 그래 우리가 그런 인간들을 먹여살리자고 이때까지 애면글면 피땀을 흘려왔단말인가?! 순간 그의 가슴속에는 더없는 서러움이 처량한 가을비처럼 부실부실 내리면서 알알이 외로움이 매달렸다. 그 외로움을 툭툭 털어줄 사람은 누구도 없는듯싶었다. 도리여 그들을 용납하지 않은것이 죄이기나 한것처럼 여기는것이였다. 어떤 권세인들은 은근히 자기의 권력과 그들의 사업을 련관시켜 암시를 주었고 어떤 못난이들은 자기들이 의탁하고있는 <<구세주>>를 왕패로 내들고 진공해왔다. 그들을 너무 매몰차게 내몰아도 안되고 그렇다고 오는대로 무작정 받아줄수도 없는것이였다. 아, 때와 장소에 알맞는 감정을 표현하면서 산다는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일반적으로 상대방의 지갑의 크기에 지나친 관심을 가지고있는자는 십중팔구는 무사한 습관에 길들여사는 게으른자들이다. 그들에게는 할일없이 밥얻어먹는것이 제일 리상적인 목적이다. 그들은 그 누가 선구적공적을 쌓아놓으면 떡심좋게 그 우에다 자기의 리상적인 생활을 설계하는 파렴치한 위인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받는다면 우리가 수립한 보귀한 창업정신이 개척을 모르는 게으름뱅이의식에 희석되여버리고말것이다. 게으른 질투, 포부없는 야욕은 인재를 라태와 무위도식에로 이끄는 가장 위험한 적이니깐. 결코 그렇게 할수 없다. 그는 생기발랄하던 <<함선>>이 인정관계의 넝쿨에 걸려 무참히 침몰당하는것을 얼마든지 보아왔던것이다. 하기에 그는 대외경제무역공사라는 이 <<함선>>의 키가 자기한테 쥐여져있다는 아름찬 력사의 무게를 새삼스레 느꼈다. 그는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워낙 평범한 생활에 조용히 몸담그려 하지 않았던 그였기에 모든것이 결코 자기의 뜻대로만 되리라고 천진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던것이다. 그에게는 어려운 시기를 밝은 미래를 당겨오는 계기로 삼는다는 신조가 있었다. 오직 드팀없는 신념으로 자기가 확신한 목적을 향해 맹렬히 전진할 때 또 그것이 순수 개인적인 목적추구가 아니라 한 집단 나아가서는 사회의 근원적인 목적추구와 본질적으로 직결되는것일 때 어느때는 꼭 자기에 대한 몰리해가 발전적으로 해소될것이라고 믿어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어떤 사람이든 또 어떤 사람이 소개한 사람이든 오직 하나의 선택표준을 내세웠다. 그것은 곧 대외경제무역공사에서 맡겨주는 모든 일을 막힘없이 떠멀수 있는 사람이라야 등용한다는것이다. 한편 그는 이런 번쇄하고 비생산적인 시비의 소용돌이속에 자기를 내버린것이 아니라 입방아찧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입이 부르트도록 시비를 하든말든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을 빈틈없이 밀고나갔다. 3 1985년도부터 시작된 변경무역은 그 무역액이 시초의 몇십만원으로부터 몇백만원, 지금은 최고 2천만원까지에 도달하였다. 무역액이 커갈수록 무역의 성공여부는 집체와 국가의 경제손익에 뚜렷한 도표를 그려주었다. 그런데 몇년래 적지않은 현, 시의 대외무역단위들에서 순차와 역차의 평형을 잡지 못하고 교역물의 상대적가격차와 시장수요를 계산적으로 정확하게 추산하지 못한 탓으로 실제상 많은 경제손실을 빚어냈다. 계약상으로는 얼마만큼의 무역을 했소 하고 소문을 크게 냈지만 적지 않게는 순차가 너무 빈번하여 텅텅 빈 장부를 끌어안고 키스하는 형편이였고 은행의 리자돈을 제대로 갚지 못하여 리자만 잔뜩 불어났다. 무역령역의 이런 실태를 알고있고 그 자신 또 여러번 고배를 마셔본 김석륜은 원칙적으로 최대가능한 정황에서 직접교환을 주장하였다. 자기의 물건을 현지에서 상대방에게 확인시키고 자기도 상대방의 물건을 직접 확인한후 날자를 확정하여 량측이 동시에 물건을 교환하는것이였다. 이렇게 하니 순차를 줄일수 있었을뿐만아니라 돌아올 때 빈차가 뛰는 량비도 없앨수 있었고 물건이 적치되는 현상도 방지하였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룡정대외경제무역공사에서 차를 띄워 물건을 실어갔다가 올 때에 요구한 물건을 실어오려 하였는데 상대방에서는 물건을 마련하지 못했으니 후일 꼭 자기네가 직접 실어보내겠다고 하였다. 그들은 몹시 불만스러웠지만 할수 없는 일이라 우스개를 하고말았다. <<보낼 물건이 마련되지 못했으면 돌이라도 두차 실어주십시오.>> 이 몇년래 그들이 최대의 노력으로 신용을 지켰기에 상대방에서도 백방으로 그들한테 신용을 지키려 애썼다. 변경무역이 시작되자 연변내 여러 무역단위들사이에는 치렬한 경쟁이 벌어졌다. 개혁, 개방이 본격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경쟁의식은 국가성장의 필연적인요청으로 나서게 된것이다. 그런데 그런 경쟁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사회주의상업이라는 본질적인 규정성을 무시하고 오직 자기에게 유리하기만 하다면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혀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어떤 수단이든지 가리지 않는 페단도 적지 않게 나타났다. 1987년도에 조선측에서는 운동복천을 대량으로 요구하였다. 이 정보를 남먼저 손에 쥔 룡정대외경제무역공사에서는 인차 그들과 협의를 달성하였다. 그런데 얼마 안되여 많은 대외 무역단위들에서 낌새를 채고 늦어도 죽물이나마 마실수 있다고 여겼던지 주린 배를 안고 달려들었다. 그러자 김석륜은 제꺽 거기에서 손을 떼고 나앉았다. 한가지를 성숙시킬 때 그는 벌써 다른 한가지를 은근히 무르익히고있었던것이였다. 그는 조선에서 흰광목천을 대량적으로 요구한다는것을 알고 그들과 계약을 맺은후 이미 주백화공사와 흰광목천합동을 해놓았다. 그런데 어느새 그 기밀을 낚아챈 어느 한 대외무역단위에서 그들 몰래 백화공사를 구슬려서 룡정대외무역공사보다 12전씩 더 주기로 하고 중간에서 슬적 채버렸다. 그리고는 조선측에 룡정대외무역공사엔 그런 현물이 없는데 자기들한테 얼마든지 있다고 하였다. 하여 조선측에서는 실물이 없으면서도 있다고 한 룡정대외무역공사를 신용이 없다고 하면서 멀어젖히고 그들과 계약을 맺어버렸다. 그러자 공사의 직원들과 일부 지도자들도 분해서 펄펄 뛰였다. 너무나 비도덕적이다. 자기의 경제리익을 위하여 남을 해치는것조차 꺼리지 않다니! 이건 한 인간으로 말하면 너무도 억울한 인격모욕이다. 직원들은 그들과 한바탕 해내고 상대방에 그들의 허울을 발가놓으며 지어는 그들보다 더 높은 가격을 주더라도 그런 파렴치한 사람들한테 중간랑패를 보아선 안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김석륜은 견결히 반대하였다. <<우리가 하는것은 사회주의상업이요. 사회주의상업은 정당한 경쟁을 허용할뿐이요. 수단을 가리지 않고 남을 헐뜯거나 암살적으로 남을 해치는것은 모두 비렬한 짓이요. 남이 그따위로 한다고 해서 자기도 그런 구렁창에 빠진다는것은 더없이 미련한 짓이요. 그리고 이제 그들을 까밝힌다고 해서 우리에게 결코 리로운점이 크게 없을뿐더러 오히려 전체적인 형상을 더럽힐뿐이요.>> 승벽심이 강하기로 전혀 남한테 굽어들줄 모르는 그는 요만한 일로 옴니암니 다투느라고 아까운 시간만 덧없이 죽어버릴수 없었다. 그는 종래로 맺고끊는 성미였고 앉아있을줄 모르는 불같은 사람이였다. 그는 진짜 경쟁의식은 상승적심리를 바탕으로 하는것이지 남을 해치는 질투심리를 바탕으로 한것이 아니라고 인정하였다. 그따위 남의 경제성장을 질투하고 해치는 이른바의 <<경쟁의식>>으로는 사회나 국가성장의 설명이 한점도 가능할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새로운것에 초점을 맞추는것이 아니라 흔히는 남이 이미 이룩해놓은것을 <<훔치>>거나 <<략탈>>하는것이기때문이며 곰이 옥수수따는격으로 사회나 국가로 놓고말하면 결국 하나를 얻고 하나를 잃는것에 지나지 않기때문이다. 게다가 흔히 잃은것이 더 귀중하고 발전적인것이다. <<우리는 시장동태에 좀더 밝아야 하오. 백방으로 남보다 앞서 정보를 장악하고 소뿔을 단김에 빼야 하는것이요.>> 이듬해에 대외경제무역공사에서는 조선과 목재수입자동차수출계약을 맺었다. 조선에서 목재무역을 하자면 목재운반용차가 대량적으로 수요된다는것을 알았던것이다. 김석륜은 사람을 사처로 띄워 115, 141형 해방표자동차를 <<수집>>하였다. 아직 남들이 미처 정신차리기전에 그들은 <<수집>>할수 있는 해방표자동차는 거의 다 끌어왔는데 산동, 하남 등지까지 뛰여다녔다. 그런데 조선과 계약을 맺을 때까지만 해도 141형 해방표자동차 한대에 값을 2만 9천원을 매겼댔는데 그 사이에 국내에서 한대의 값이 3만 4~5천원으로 껑충 뛰여올랐다. 한대에서만도 6~7천원씩 믿지는 셈이였다. 다른 물건과 바꿔서는 도저히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였다. 그래서 김석륜은 꼭 목재라야 바꾼다고 고집하였다. 상대방에서는 워낙 목재를 위주로 하면서 일부는 다른 물건을 끼우려고 했던것인데 할수 없이 그의 드틸수 없는 요구에 응하였다. 그들은 지난해 한해에만 해방표자동차를 도합 202대나 수출하였으며 목재 3만립방메터나 수입하였다. 시장동태에 대한 파악의 투명도는 그들에게 치부의 길을 넓혀주었을뿐더러 경제적손실도 미연에 방지할수 있게 하였다. 송이버섯은 그들이 다년래 해오던 득점수가 높은 <<장사거리>>였다. 주로 일본에서 많이 요구했는데 생생한것은 톤당 18만원까지 올라갔고 (1986년도엔 최고로 20만원까지 올랐었다)절인것도 12만원씩 하였었다. 일본사람들은 송이버섯에 대한 요구가 매우 엄격했는데 연변의것이 질이 더 좋다고 인정하면서 될수 있으면 연변의 생생한 송이버섯을 많이 사가려하였다. 그런데 연변엔 송이버섯이 그렇게 많지 못하므로 대부분은 운남 등지에서 수매해오는것이였다. 그래서 일본사람들이 점차 송이버섯에 대한 흥취를 잃게 되자 송이버섯값이 대폭 떨어지게 되였다. 1988년도엔 절인 송이버섯은 톤당 4만원도 받을수 없는 형편이 되였다. 이런 시장동태를 미리 장악하고 또 연변의 송이버섯수매량이 많지 못한것을 계산적으로 따진 그들은 1988년부터 송이버섯무역을 아예 딱 끊어버렸다. 그런데 이런 정황을 모르고있던 일부단위들에서는 이왕의 좋던 경기에 기억을 걸고 이해에도 맹목적으로 운남으로부터 톤당 10만원좌우씩 주고 대량의 절인 송이버섯을 들여왔다. 결국 물건을 가져가려는 주인이 나타나 주질 않아 지금 룡정시에만도 237톤에 달하는 송이버섯이 창고에서 기약없는 발송을 기다리고있다. 4 <<우리가 하는 일은 사회주의상업이다>>. 이것은 김석륜의 사업좌우명이다. 이것이 또 그 누구와도 다른 그만의 모습을 그려낼수 있는 정신적색갈이다. 1986년도에 룡정화학공업공장에서는 푸르풀알콜생산에 원료로 쓰이는 옥수수이삭속대가 딸려 쩔쩔 매였다. 농촌에서 도거리를 실시한후로 옥수수이삭속대가 그렇게 많이 집중된곳이 없었고 또 농민들은 그까짓 몇푼안되는 돈을 위해 옥수수이삭속대를 수레에 싣고 공장까지 찾아가려 하지 않았다. 게다가 외지에서는 맞돈이래야 주겠다는것이였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김석륜은 지도부성원들을 모여놓고 토론하였다. <<옥수수이삭속대는 조선에서 얼마든지 들여올수 있소.>> 그러자 한 지도일군이 말했다. <<그걸 무역해서야 수지가 맞지 않습니다. 신고스레했대야 우리한텐 크게 떨어질게 없질 않습니까?>> <<그건 나도 아오. 헌데 지금 화학공업공장에선 확실히 곤난에 봉착했소. 옥수수이삭속대 래원이 끊어지는 날이면 공장이 막대한 경제손실을 보게 되오. 우리가 하는것은 사회주의상없이지 개인상인이 아니란 말이요. 지방공업을 부축이는것도 우리가 응당 해야 할 일이요.>> <<옳소, 지방공업이 망해빠지는것을 보고도 가만 있는다면 우리는 더 큰 리익을 보았다 해도 속이 편안하지 못할것이요.>> 언제나 그를 받들어주고 지지해주는 남두형이 이번에도 선참 그를 두둔해나섰다. 그러자 다른 지도부성원들도 동감을 표시했고 나중에 그 지도일군도 동의를 표시하였다. 다년래 이 지도부는 누구한테 도리가 있으면 견결히 지지하고 가결이 없으면 사정없이 쟁론하는 기풍을 수립해왔다. 그리고 일단 결정된 일이면 누구 하나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 없이 일심동체로 결정을 집행해나갔다. 이해에 그들은 조선으로부터 옥수수이삭속대 2천톤을 수입하여 룡정화학공장에 원료로 제공해주었다. 이렇게 시작하여 그들은 1988년에 공장측에서 원료공급을 자체로 해결할수 있게 될 때까지 련속 3년간 별로 리득이 없는 무역을 해주었다. 룡정기계수리공장에서 생산하는 바이스제품은 이미 국제수준에 도달하여 국제시장에 대량적으로 진출하고있지만 국내 생철값이 너무 비싸서 원료공급이 큰 문제였다. 이런 딱한 사정을 알게 된 김석륜은 또 공사지도부성원들과 토의하고 1987년부터 룡정기계수리공장에 바이스생산원료로 청진제강소로부터 해마다 600~700톤의 생철과 반제품을 수입해주었다. 1986년에 40만원, 1987년에도 40만원을 시재정에 상납한 그들은 1988년도에 원래는 50만원만 상납하면 되였다. 그런데 하루는 한창진시장이 몸소 대외경제무역공사로 찾아왔다. <<김경리, 시정부에서는 지금 로간부활동실문제때문에 골머리를 앓고있습니다. 그래서 당신들이 시재정에 상납하는 돈을 상납하지 않고 거기다 좀더 보태서 2년동안에 로간부활동실을 지어줄수 없겠는가고 상론하러 왔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남동무, 당신생각엔 어떻소?>> 김석륜은 그만한 승산은 있었다는듯이 아무런 주저도 없이 대답해버리고는 그제야 머리를 돌려 옆에 앉은 남두형한테 웃으며 물었다. <<대답은 제가 이미 해놓구선 나더러 반대하라는건가?>> 남두형도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좋습니다. 이제 로간부활동실이 당신들의 이름으로 버젓이 일떠서는 날이면 당신들도 룡정시 인민들앞에 큰 면목이 서게 될것입니다.>> 한창진시장은 소탈하게 웃으며 그들의 손을 힘있게 잡았다. 그래서 대외경제무역공사에서는 1988년도에 70만원, 1989년도에 70만원 해서 도합 140만원을 투자하여 2년내로 로간부활동실을 지어주기로 하였다. 그런데 건축시공이 시작되여 얼마후에 한창진시장이 또 느닷없이 그들을 찾았다. <<경제때문에 집을 2년씩이나 짓는다면 집도 못쓰게 되고 또 경제적으로도 도리여 손실을 보게 됩니다. 이미 할바엔 1년내에 후닥닥 해치우는것이 좋지 않습니까?>> <<하하하, 시장어른도 한술한술 뜬느 전법을 쓰시는군요. 그럼 어떻게 한다, 우리에겐 아직 그럴만한 여유자금이 없는데. 아니, 그렇게 하지요. 리자돈을 내서라도 금년내로 완공하지요.>> 김석륜은 한시장의 딱한 처지를 헤아려 그를 난처하게 하지 않으려고 역시 쾌히 응낙하였다. 이리하여 그들은 은행으로부터 먼저 리자돈을 내여 그해에 한꺼번에 146만원을 투자함으로써 당해에 건평이 2천평방메터에 달하고 주체부분이 5층으로 된 로간부활동실을 덩실하게 세워주었다... 경제적계산으로는 도저히 리해할수 없는 이런 일들을 놓고 대외에서뿐만아니라 공사내의 일부 사람들도 이러저러하게 의론이 없는것은 아니였다. 지금세월에 돈을 벌어 남을 공짜로 먹이는 사람이 몇이나 되기에 그러는가 하는것이였다. <<인간에겐 덕성이 있어야 하오. 덕성이야말로 그상한 인간과 자사자리한 인간을 차별놓는 시금석이요. 사람들은 흔히 자기가 한 일에 대한 후회보다는 하지 못한 일에 대한 후회가 더 많은 법이요.>> 김석륜은 사회주의상업이 지방공업을 위하는것은 응당한 것이며 로인(로간부)들을 위하는것은 결코 게으른 소비자들을 위하는것과는 다르다고 인정하였다. 로인과 어린이들은 영원히 전 사회의 봉사대상이라고 생각하였다. 5 사회성장을 부축여주고 국가진흥에 기여함을 기업발전의 첫째로 되는 목적으로 삼고있는 김석륜이였지만 종업들에게 치부의 혜택을 안겨주려는것도 미룰수 없는 책임으로 알고있었다. 자력으로 가난을 밀어내고 치부의 대문을 두드려 여는 사람들의 신통하게 맞물려지는 경험이 대개가 그러하듯이 이 몇년래 그들은 간고하게 창업하고 <<린색하게>> 소비를 계산하였으며 경영확대에 자본을 축적하였다. 사실 그들은 국가에 장려금세만 바치면 한해에만도 종업원들마다 엄청난 장려금을 탈수 있었다. 그러나 김석륜은 그렇게 하는것은 한치보기의 하루살이식생존방식으로서 개인이나 집체나 다 성장적으로는 아무런 혜택도 없이 비생산적인 순소비만 잔뜩 늘굴뿐이라고 생각하였다. 지금 적지 않은 조선족이 사는 농촌들에서 바로 이런 하루살이식생존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가을수확을 두고 돌아오는 해를 계산해보는것이 아니라 명년은 명년이라는 계산을 그어놓고 양력설이요, 음력설이요, 보름이요 하는 명절들을 쭉 줄세워 온 동네가 돌개술문화로 일년내내 번것을 탕진해버린다. 그래서 돌아오는 해면 또 빈 털털이로 생산대부금을 맡는것이다. 이렇게 하고서는 연자를 돌리는 나귀신세를 종내 벗어날수 없다. 창업을 하고 치부를 하자면 우선 있으며 나눠먹자는 원시적인 분배의식을 뽑아버려야 한다. 돈이라는건 써버리면 그만이다. 그건 전혀 성장이 알리지 않는 소비이고 광주리에 물담기이다. 그러나 또 한몫씩 담당한 그들에게 전혀 아무런 혜택도 없다면 그들의 적극성을 불러일으킬수 없다. 가치창조가 자아향상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면 누군들 그렇게 몸을 내번져 땀을 흘리려 하겠는가. 과연 그럴 경우면 차라리 국가적 담보가 든든한 곳에 가서 울급 제때에 타는 쟁정로임팀에 몸을 담는것이 훨씬 안전하고 멋스럽다고 할것이다. 어떻게 하면 종업원들에게 주는 혜택이 개인, 집체, 사회(국가)를 동시에 상징할수 있게 할가. 이것이 풀어야 할 문제이다. 이러한 계산으로부터 김석륜은 종업원아빠트를 건설할 타산을 세우게 되였던것이다. 이 몇년래 그의 <<부하>>들은 신심으로 가득찬 신념을 안고 하나같이 그의 두리에 뭉쳐 고락을 함께 하면서 만부하작업을 하였다. 자기한테 배당된 일은 그 어떤 핑게의 리유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완수하였다. 사실 그들도 남들과 같은 가정을 가지고 살기에 춘하추동 가정적으로 풀어야 할 일들이 수두룩하였다. 배급, 석탄, 가을채소에 이르기까지 많은 일들은 필수적인 생활문제로 가정마다에 제기되는것이다. 그런데 년시년말로 출장이 잦다보니 그 볼기를 그들 가족에서 맞아야 하였다. 김석륜 자신도 포함하여 그들이 공사의 일로 하여 가족에 첨가시킨 부담을 공상에 대한 간접적인 공헌으로 계산하면 결코 간과할수 없는 수자일것이였다. 만약 종업아빠트를 짓는다면 많은 가정적문제를 집단적 힘으로 쉽게 풀수 있는것이다. 그렇게 되면 종업원들은 집근심없이 일심정력으로 맡은 일에 몸을 내번질수 있을것이다. 말하자면 산재식생활을 청산하고 튼튼한 안식처를 마련해주는것도 결국은 그들에게 최대의 활력을 심어주고 전체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안정과 성장의 질서를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에 또 그들의 자존과 성취의 기쁨도 거짓없이 스며있는것이다. 사실 자신의 삶의 터전을 튼튼히 확보하고자 하는 이러한 꿈은 인생살이하고 있는 사람들의 가장 소박한 꿈이면서도 또 흔히는 저의 힘으로는 이루기 힘든 꿈이 아닌가! 1988년 5월에 룡정고중 정문 길맞은켠 기지에서 종업원아빠트건설공사가 착공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또 김석륜과 대외경제무역공사에 운명적인 풍운을 몰아올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1989년 9월에 종업원아빠트가 기본적으로 완공할 무렵에 시당위와 시인민정부에 고발이 들어갔다. 시대외경제무역공사에서 집체돈으로 개인집을 <<호화롭게>> 지었다는것이였다. 10월에 시당위에서 조직한 련합조사조가 대외경제무역공사에 진출하였다. 장춘에 회의참석차로 갔다가 금방 돌아온 김석륜은 아닌밤중에 홍두깨 내밀듯 어정쩡하게 <<피고석>>에 앉은 <<피고>>로 변신하였다. <<누가 이 집을 짓는걸 결정했습니까?>> <<접니다.>> <<당신한테 그럴 권리가 있습니까?>> <<한개 기업소의 경리가 그래 자기 기업소 종업원들의 복리를 결정할 권리조차 없다는겁니까?>> <<당신은 집체자금으로 그렇게 호화로운 집을 짓는것이 정책에 어긋난다는것을 모릅니까?>> <<무엇이 호화롭다는겁니까? 당신들도 국무원에서 내놓은 <쑈캉(小康)수준>이란 무엇인지 알고있겠지요? 등소평동지도 먼저 부유해지고 후에 부유해지며 공동히 부유해져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집체자금으로 주택을 짓는것을 통제한다는것도 국가재정이나 생산자금같은것을 마구 람용하는걸 두고 말하지 우리같이 종업원들의 장려금이나 초과수입금으로 종업원주택을 해결해주는걸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우기 우리는 지금 국가재정으로부터 로임담보를 받고있는 단위가 아닙니다.>> <<그러나 집면적이 국가에서 규정한 표준을 초과하였습니다. 나라에서는 지금 한창 렴정건설을 하고 간고하게 창업할것을 제창하고있습니다.>> <<우리가 이 집을 지을 때 국가에서 상품집을 어떤 규격으로 지어야 한다는 규정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너무 작고 현대생활구조에 맞지 않게 짓는걸 반대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집을 설계할 때 우리의 요구는 건평이 천팔백평방메터이고 4층이였는데 실제 지은것이 이천오백평방메터에 5층으로 되였습니다. 이건 순전히 시도시건설규획의 요구와 건축공사의 상품집판매표준에 의해 설계된것이지 결코 우리의 본의는 아니였습니다. 두번째로 렴정건설이라는것이 부패를 반대하고 공금을 람용하는것을 반대하는것이지 결코 할수 있고 해야 할 복리사업마저 하지 말아야 한다는것은 아닐것입니다. 그러고 만약 우리 자신이 번 돈이라 해도 어느 개개인 지도자들의 집을 짓거나 한다면 또 문제로 서겠지만 전체 종업원들의 복리를 해결하는거야 무슨 잘못이 됩니까?>> 치렬한 설전은 오래도록 진행되였다. <<피고석>>에 앉은 김석륜의 태도는 너무나도 당돌하고 도전적이여서 전혀 <<죄의식>>을 느낄수 없었고 오히려 개척을 모르는 사고방식이 초래하는 력사의 비극과 씨름하는 창조적이고 개척적인 인간의 드팀없는 지조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조사조는 떠나면서 최종결론이 있기전에는 그 집에 들지 못한다는 봉인령을 내렸다. 그로부터 얼마후 시당위규률검사위원회에서는 그들을 내부 통보비판을 하고 김석륜더러 검토서를 쓰라고 하였다. <<연변일보>>에도 보도가 실렸다. <<정말 엉터리군, 우린 그래도 돈을 벌면 먼저 사회와 국가를 생각했소. 지방공업을 부축여주고 백사십륙만원이나 투자하여 로간부활동실도 지어주었소. 이제 또 백오십만원이나 투자하여 교육을 부축여주기로 했는데 그래 우리는 자기가 피땀으로 번 돈으로 요만한 혜택조차 볼수 없단말이요? 좋소, 그럼 우리도 인젠 공헌이고 뭐고 싹 걷어치우기오. 우리가 응당 해야 할 일이나 하면 그만이지.>> 여기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1989년 새해를 맞으며 한창진시장이 그들한테 위문을 왔다. <<김경리, 나는 시인민정부를 대표하여 당신들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며 우리 시를 위해 큰 공헌을 한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사실 우리 힘으로서는 언제가야 로간부활동실을 지을지 막연합니다.>> <<그거야 우리가 응당 해야 할 일이지요. 시정부의 재정곤난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가만 있는다면 우리도 마음에 걸리지요.>> 김석륜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또 한가지 상론할 일이 있습니다.>> 한창진시장은 퍽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렇지 않아도 난 당신이 꼭 <호의>를 품고 오지 않았으리라 짐작했습니다.>> 김석륜은 소탈하게 웃으면서 우스개를 하였다. 그러자 한창진시장도 웃으면서 말했다. <<등쳐먹을바에야 끝까지 해야지. 저 김경리도 알겠지만 1983년도에 국가에서는 거액의 투자를 하여 룡정고중에 새 청사를 지어주지 않았습니까?! 그때 새 청사 락성식에서 이 학교 교장선생이 시정부 지도자한테 실험문제를 제기했댔는데 그때의 지도자가 해결해주겠다고 대답하였댔습니다. 그런데 그후로 시정부의 지도자가 몇기 바뀌도록 해결해주지 못해 오늘 내가 그 보따리를 걸머쥐게 되였습니다. 이 학교 교장선생이 이 일로 몇십번도 더 나를 귀찮게 구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또 김경리의 등을 치려고 찾아왔습니다.>> <<그 좋은 청사에 실험이 없으면 백마에 안장없는격이지요. 우리가 토론해봅시다.>> 이리하여 지도부의 토론을 거쳐 룡정고중 실험실건설에 백만원을 투자하기로 하고 한족고중인 제3중학교에 또 오십만원을 주기로 했던것이다.... 김석륜의 가슴은 불도가니처럼 끓어번졌다. 겉으로 정의와 진리를 외우면서 속으론 시기와 질투를 품고있는자는 언제든 남이 잘되는걸 배아파 보고만 있지 못하는 법이다. 그런사람들은 자기의 무능을 탓할 대신 천방백계로 사회여론과 일부 선광능력이 결핍한 지도자들을 꼬드겨 남의 일을 망가뜨리려 하는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에겐 또 좋은것보다도 나쁜것을 더 쉬이 믿어버리는 악습이 있고 흙속의 진주보다 옥에 티를 더 쉬이 발견하는 변태적인 심리습관이 있다. 하여 인간의 판단력은 얼마나 처참하게 또 자주 사실의 진상과 삐여져나가는지 모른다. 그사이 사회에는 대외경제무역공사에서 정책을 어기고 집을 지었다느니 김석륜이 착오를 범하여 대외경제무역위원회 주임에서 떨어졌다느니 하는 발없는 말들이 입을 통해 재빨리 류통되였다. 어처구니 없는 노릇이였다. 그가 주임에서 해임된것은 대외경제무역위원회를 정부기관의 행정단위로 하고 대외경제무역공사는 순수 기업소로 하여 정식으로 갈랐기에 대외경제무역위원회 주임을 내놓고 대외경제무역공사 경리를 맡은것이였다. 과연 덕행은 고의로 홍보하지 않으면 그만이 가장 절감하지만 추문은 어쩐지 류통성이 강해서 삽시간에 사방 몇십리에 강한 울림을 일으키는것이였다. 워낙 인간이란 그렇게 타인을 헐뜯는데는 적극적으로 잘 발동되는 본질을 갖고있는듯하다. 그래서 요언이란것도 뿌리없는 나무여서 종내는 시들어버리고 마는것이지만 그전까지는 과연 놀라운 속도로 전파되면서 요언의 대상을 여지없이 짓뭉개놓는것이다. 그러고보면 한 인간의 성장과 요절은 결국 그 자신만이 책임질수 없을만큼 자연, 사회, 인간 등 다방면의 비살같은 충격과 타격 그리고 부축임을 받으면서 결정이 되는것이다. 그러나 김석륜은 필경은 삶의 일상성에서 초탈하여 창조적 행위에 몸을 내번진 개척형의 인간이였다. 끈질긴 실험정신과 강한 돌파의식이 이런 사람들의 사유주체이다. 그는 직접 주당위 리덕수서기를 찾아가서 사실의 시말을 낱낱이 회보하였다. 회보를 다 들은 리덕수서기는 즉시 룡정시당위에 몇가지 지시를 주었다. 그 내용은 대개 이 몇년래 룡정대외경제무역공사는 지방과 사회를 위해 큰 공헌을 했다는것, 집은 이미 지은것인데 대외경제무역공사를 내놓고는 자기돈으로 살수 있는 단위가 없다는것, 면적초과부분은 개인이 안아야 한다는것 드이였다. 이로써 그처럼 회오바람마냥 기승부리던 집풍파가 대뜸 가라앉아버렸다. 그러나 김석륜의 가슴은 좀체로 평온을 찾을수 없었다. 어째서 우리의 어떤 지도일군들은 흙속에서 진주를 찾으려 하는것이 아니라 옥에서 티를 발견하려고만 애쓰는가. 6 룡정대외경제무역공사는 낡은 책상걸상에 자그마한 서류궤 하나로 <<가정>>을 꾸려서부터 어언간 십년의 <<가정사>>를 써왔다. 그들이 걸어온 십년은 실로 자립의지로 간고하게 창업한 십년이였으며 진짜 자기것으로 산 삶의 흔적을 력력히 찍어온 십년이였다. 거기엔 아직 이 글에서 소개하지 못한 많은 사연들이 적혀있다. 1986년 8월 31일 륙도하물이 불어서 륙도하 제방이 밀려가고 립암교가 뭉턱 끊어지자 종업원들이 총동원되여 삼합에서 거둔 송이버섯을 어깨로 메여서 강을 건넌 이야기(생생한 송이버섯은 정선, 포장하여 2~3일내로 일본에 도착되게 해야 한다), 30명 종업원 모두를 대학과 중등이상의 문화수준을 갖추게 한 이야기, 체육경기마저 무엇이나 하면 끝을 보는 상승심을 키우는 훈련장으로 삼게 한 이야기... 그 어느 이야기속에도 이 <<가정>>을 꾸리고 키워온 김석륜경리의 <<세대주>>다운 영상이 은근히 비껴있는것이였다. <<가정>>의 성원들에 대해 그토록 엄격한 그였지만 또 언제나 선구적 실천자였기에 그들의 존경과 애대를 몹시 받고있는것이였다... * * * 피땀으로 써내려온 십년사를 되번져보노라니 김석륜의 머리에는 무사한 습관에 길들여 평범한 삶을 살던 직업인때엔 전혀 피해왔던 생각의 골목들이 한줄한줄 뻗어나갔다. -라태, 질투, 게으름과 비속한 인정만 론하는 <<무식관중>>이 많은것이 삶의 일상성을 초월하여 분투하는 사람에게는 최대의 위험이다. -형식적인 도덕주의는 국가성장과 인민소질제고의 가장 큰 장애로 되고있다. <<좁쌀 한줌이라도 나눠먹는다>>는 도덕의 허울을 쓰고 게으름뱅이의식과 극단적평균주의가 정신적질곡으로 되고있다. -우리의 권력담당자들은 좀더 선광능력(캐낸 광물중에서 가치가 적거나 없는것을 골라내는 능력)을 키워야 하고 <<모험가>>(개척자)들이 실착했거나 요언과 야유의 과잉속에서 헐떡거릴 때 권력으로 보호해줄줄 알아야 한다. -개인적인 차원(내지 가정적인 차원), 집체적인 차원 및 사회적인 차원(내지 국가적인 차원)을 동시에 느끼는 바로 거기에서 거대한 힘이 분출하는것이며 또 그것이야말로 가장 완전완미한 경제집단의 립체적조직결구라고 할수 있는것이다. 김석륜이 지금 가장 관심하고있는것은 어떻게 하며 종업원들이 좀더 혜택을 보고 집체가 더욱 부유해지며 사회나 국가에 더욱 큰 공헌을 하겠는가 하는것이였다. 그는 창업의 길이 험난한것이지만 치부의 길도 결코 평탄하지 않다는것을 잘 알고있다. 남보다 앞서 치부의 문을 두드려 열고 리상적인 삶의 설계도를 그리기 위해 <<현지답사>>를 하는 사람에겐 언제나 아픔과 위험이 뒤따르기 마련인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창문가에 서서 기승부리는 동장군을 바라보면서 입가에 느슨한 미소를 띄우고있다. 아, 계절의 시작은 과연 봄이 아니라 겨울이다. 춥고 매운 계절, 정이 없이 모든걸 얼구어죽이는 계절이지만 그것이 오히려 푸르싱싱한 새 생명을 싹틔우는 봄아씨를 맞이하기 위해 온갖 비난을 달갑게 받아안으면서 모든 잡동사니들을 동봉해버리는것이 아니겠는가!
54    금강과 하나의 해동국 댓글:  조회:2455  추천:0  2009-05-16
      세계 제일을 자랑하는 금강산이 <<남문빗장>>을 굳게 닫아버리고 이남의 주인들마저 외면해버리더니 이제 그 문을 활짝 열고 온 세상에 그 아름다움을 수줍게 드러내보일것 같다. 민족의 비운을 가셔버리고 룡왕의 뜻이 다시 동그랗게 이루어질듯한 기쁨속에 두해전에 금강산을 탐승하던 정경이 새삼스레 어떤 민족적인 소망과 아픔과 함께 눈앞에 선히 떠오른다... 일제의 구두발에 짓밟혀 만신창이 되여 신음하던 한반도는 독립투사들의 선혈로 상처를 씻었으나 마침내는 세계정치세력의 대결의 희생품으로 두동강이 나고말았다. 세계지도우에서 한반도는 38도선이라는 지리학적인 위도선을 남북동포 서로가 넘을 수 없는 38선이라는 사회장벽으로 다시 그려넣었다. 그리하여 서해안쪽은 지리학적인 38도선보다 조금 내려와 그어졌고 동해안쪽은 지리학적인 38도선보다 조금 위로 올라가 그어졌다. 하나의 강원도가 38선에 의해 쪼개지면서 금강산과 설악산마저 한 산맥의 정기를 타고났음에도 전장의 망루마냥 서로를 경계하며 대치하고 서있는듯싶다. 아니 세계렬강들은 그 높은 장벽을 허문대도 넘을 수 없는 무형의 <<38선>>을 그어놓았다. 그런데 그 무형의 <<38선>>이 세계 렬강들의 낙서로 그어졌다해도 평화의 반성시대에 들어선 오늘 우리의 자세는 또 어떠한가. 하나의 반도에서 살면서도 생리별의 비극적 삶을 살아가는 리산가족들, 다 같은 금강의 정기를 타고났고 금강산맥을 혈맥으로 금강의 맑은 물이 피로 흐르면서도 서로가 반목하고 적대시하는 해동국의 후예들, 우리는 지금까지 렬강들이 정치대결로 낙서한 <<38선>>을 민족의 숙명적인 운명선(命運線)처럼 받아들이고 렬강들이 심어놓은 이데올로기적 대결의식과 눈금자로 서로를 가늠하면서 천하에 용서할 수 없고 포옹할 수 없는 원수처럼 대항적인 눈총을 쏘면서 서로를 비난하고 배척하고 강박하고 괴롭히고 탄핵하고 매를 들면서 대결해왔다. 가정적 의미를 매겨보면 꼭 친형제간에 원수치부해온 것이다. 오, 우리는 천륜을 어긴 대역무도(大逆無道)의 악과(惡果)를 빚고있다. 까마귀도 공문저문날 반포할줄 안다는데 하물며 효로 세상을 경탄켜 한 우리 민족이 한 피줄을 타고난 형제가 반목하는 비극을 공연하고 있으니 이 세상 수치가 아닐손가! 그런대로 지금은 금강산의 <<남문빗장>>을 열고 남북이 손을 잡고 금강산을 개발하고 있으니 이제 그 문을 활짝 열고 주인만 아닌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세계 제일금강, 아니 유일금강의 아름다운 용태를 자랑하게 되리라. 그러나 아직도 이남의 주인은 금강의 진정한 주인이 아닌 여객일뿐이다. 순위차로 여객선에 올라 무형의 <<38선>>을 에돌아가야만 하는 여객아닌 <<여객>>들의 마음은 얼마나 시리고 아플가. 과연 자연의 극치에 감동하는 희열을 안고 돌아올 수 있을가. 전설에 따르면 산천을 나라마다 나누어주는 바다룡왕의 창고에는 원래 여덟개의 금강이 있었는데 해동국의 사람들은 마음에 티끌하나 없고 무궁무진한 슬기와 용맹을 지니고 있기에 바다룡왕은 열길 깊은곳의 모래알 하나까지 헤일 수 있는 맑은 물과 하늘을 날아오를 듯한 천태만상의 메부리들로 천하 제일경을 이룬 제일 금강을 해동국에 주었다고 한다. 바다룡왕이 남은 일곱 금강은 어느 나라 사람이든간에 마음이 보석처럼 다듬어진 다음 찾아오면 내주겠노라고 하였으나 금강산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 산천의 정기를 타고난 해동국의 후예들이 금강산과 설악산사이에 서로 넘나들 수 없는 높은 장벽을 쌓아놓았다. 룡왕님이 준 복을 서로가 나누지 못하게 둘로 갈라진 해동국, 그것이 안스러운지 금강산과 설악산의 봉이봉이마다에는 그냥 바다룡왕이 한숨으로 토해낸 입김이 자오록이 감돌고있다. 하긴 그래서 바다룡왕이 나머지 일곱 금강은 아예 어느 나라에도 주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이제 금강산은 천하에 요행 남은 둘도 없는 제일의 절경이 아닐 수 없다. 아, 행운이라고나 할가. 비록 금강산과 설악산을 하나의 코스로 이어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나는 한반도의 북단에서 금강산까지, 남단에서 설악산까지 려행하는 자랑을 한 몸에 지닐 수 있었다. 그 중에서 뭐니뭐니 해도 금강산 려행은 복 받은 민족의 긍지와 릉욕의 민족적 아픔이 교감하는 력사적 체험으로 가슴에 깊이깊이 새겨진다. 그것은 신선세계에 온 듯한 황홀한 경치와 민족의 분단이라는 현실이달고 쓴 맛이 되는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냥 밝은 마음과 경탄의 심정으로 려행을 할 수 있은 것은 금강산은 과연 세상에서 제일가는 명승이고 이런 산천의 정기를 타고난 <<해동국>>의 후예들은 틀림없이 자기의 무궁무진한 슬기와 깨끗한 마음을 동원하여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금강산의 기상으로부터 확인받을 수 있었기때문이다. * * * 우리 일행 넷이 금강산을 찾은 것은 1996년 6월 중순이였다. 우리가 금강산 휴양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해가 잠자리를 찾아 서쪽산길을 막 넘어선 때였다. 우리는 방에 짐을 내려놓기 바쁘게 베란다로 달려갔다. 아직 잔빛이 하늘을 밝혀주고 있어 저 멀리로 붓끝처럼 생긴 문필봉이 금방 금강산의 전설을 쓰고난듯 신비를 실은 부드러운 재빛 안개속에 검푸르게 서있고 그 서쪽으로 하관음봉이 팔을 쫙 뻗친 관음련봉의 기상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베란다에 서서 금강산에서의 첫 샤타를 눌렀다. 휴양소터가 있는 온정구역은 금강산탐승의 중심지로 되여 있어 이제 전설적인 금강산탐승은 여기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먼 려로에 지치고 허기진 몸들이였지만 이날 저녁식사는 모두가 그냥 길을 재촉하는 나그네의 심정이였다. 밥술을 놓자 누구도 방으로 가려는 생각이 없는듯 약속도 없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휴양소앞을 지나는 포장도로를 건너 숲을 빠져나오니 만상계, 한하계를 거쳐 동쪽으로 흘러가는 온정천이 맑은거울처럼 누워있는데 물속의 모래알마저 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정갈했다. 우리는 신을 벗고 바지가랭이를 걷어부치고 온정천에 발목을 잠궜다. 맑고 시원한 온정천은 장딴지를 적시는 정도로 얕았으나 그대로 금강산의 정기를 실어 우리의 마음을 부풀게 하고 정신을 분발되게 하였다. 우리는 이날 밤, 래일의 명승지탐승에 흥분된 마음을 달래지 못한채 그만 잠을 설때리고 말았다. 방을 같이 한 나와 임선생은 둘 다 애주가들인지라 아예 기분을 잡아 술을 마시며 밤을 밝혔다. <<자, 이선남이 금강산을 찾아 밤새도록이 술을 즐기노라.>> 임선생의 풍치있는 말이였다. <<래일 금강산에 또 이선암이 생기겠네요.>> 내가 슬쩍 받아물었다. 둘은 즐겁게 웃었다. 이튼날 아침, 탐승을 맡은 녀안내원이 우리한테 소개되였다. 장씨성인 녀안내원은 동방 례의지국의 녀성답게 곱게 머리숙여 인사했다. <<그냥 안내원동무라고 불러주셔요. 오늘 하루종일 탐승하느라면 몹시 지칠거예요.>> 부드러우면서도 <<금강산처녀>>답게 상쾌한 목소리였다. <<저희들을 위해 수고하시겠습니다.>> <<좋은 이야기 많이 부탁합니다.>> <<처녀동무, 우리팀에서 이 친구가 유일한 총각이니 많이 보살펴주십시오.>> 임선생이 나를 가리키며 하는 롱담에 녀안내원은 손으로 입을 가리우고 웃더니 활발하게 롱을 받아넘겼다. <<아니, 저가 보건대는 총각이 아닌것 같은데요. 총각이면 더구나 할 수 없구요.>> <<건 왜서요.>> 모두들 어리둥절해 하는데 내가 한마디 했다. <<참, 선생님도 한심합니다. 다 되는 밥에 물붓기가 아닙니까.>> <<건 또 무슨 말인데?>> <<제 보건대 말입니다, 안내원동무도 처녀는 아닌것 같은데요.>> 그러자 녀안내원은 또 입을 가리우며 웃었다. 얼굴표정을 봐서는 알아맞춘듯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이까지 있는 녀자였다. 그런데 금강산의 산수가 좋아서인지 나이보다는 퍽 어린모습이다. <<아하, 젊은 사람들끼리 맞추는 눈길이 다르구만.>> 알아맞춘다는 뜻인지 애매한 말로 탐복하는듯한 걸직한 롱지거리에 모두들 웃었다. 탐승은 이렇게 출발전부터 유쾌한 기분이였다. 탐승길에서 녀안내원이 천하절승 금강산에 대해 소개하면서 우리한테 들려준 첫 전설이 <<타무왕의 금강산려행>>이였다. 긴 이야기를 간추려보면 이렇다. 이 세상에 나라가 처음 생겼을 때 먼 남방의 어느 한 바다가 나라의 왕 타무가 신하로부터 멀고도 먼 해동나라 조선에 금강산이라는 천하제일 명승이 있다는 말에 려행길에 올랐다가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풍치가 다 펼쳐진 것을 보고 산천을 나누어준 바다룡왕을 찾아가 불공평을 항의하자 룡왕은 <<뜨는 해의 빛이 있어 노을 곱듯이 깍듯한 례의범절만이 맑은 아침과 일맥상통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고 하면서 제일금강은 해동국에 주었으나 아직 일곱개의 금강이 남아있으니 어느 나라 사람이든간에 마음이 보석처럼 다듬어진 다음 찾아오면 기꺼이 내주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세월이 흘러 해와 달이 수억만번 바뀌였어도 금강산은 아직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고 한다. 인간세상에 하나밖에 주지 않은 금강산은 그야말로 아름다움의 극치요, 그런 천하절경을 받은 우리 민족은 복 받은 민족임을 자부하는 이야기이다. 조물주의 창조력을 집대성한듯 천태만상을 이룬 기암련봉, 필필이 비단을 풀어내리는 폭포, 현란한 진주보석을 담은듯 조약돌이 깔린 맑고 푸른 담소, 그리고 서늘한 바람에 가슴 깊이까지 흘러드는 푸른 숲의 싱그러운 향기는 과연 선경에 들어선듯한 느낌이다. 보석같은 마음이 있어야 가질 수 있다는 천하절승을 자랑하는 민족, 그 산천의 정기를 타고나 무궁무진한 슬기와 용맹을 떨치는 민족이다. 그럼에도 한편 나머지 일곱개 금강을 더는 인간세상에 주지 않은 바다룡왕의 마음은 무엇일가 하는 궁금증도 마음 한구석에 찾아든다. 녀안내원이 계속하여 들려준, 신계사의 종소리와 요지경같이 천변만화하는 금강산의 황홀한 경치에 앞못보던 소경이 빛을 보고 적막강산이던 귀머거리가 소리를 듣고 <<꿀먹은 벙어리>>가 마음을 열 수 있게 되였다는 <<극락고개전설>>, 박씨로인이 만냥산삼을 캐여 그 돈으로 밭을 사고 과수원을 마련하여 금강산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도왔다는 <<만냥골에 깃든 이야기>>, 금강산도사가 욕심사나운 공지주놈을 망하게 하고 그가 만들어보낸 매가 지금도 금강산으로 들어오는 첫 입구에 있는 낮은 봉우리에 앉아 오가는 사람을 유심히 살피고 있다는 <<매바위전설>>들은 금강산은 마음이 보석처림 깨끗하고 신선한 생령들만 살고있는 성스러운 곳임을 말해주며 금강산을 찾은 속세의 인간들에게 모든 영욕과 욕심을 버리고 금강의 정기를 받아 보석처림 깨끗한 마음을 가질 것을 예쁘게 일깨워준다. 찾아온 사람마다 금강의 성스러운 기상을 보고 가슴우에 손을 얹게 되는 것이니 동해국 사람들의 수정같이 깨끗한 마음을 헤아려 제일 금강을 보내준 바다룡왕이 더는 인간세상에 금강을 주지 않은 결론에서 어떤 실착감같은 것을 읽을 수 있을듯 싶어 괜히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련주담의 물처럼 맑고 깨끗한 목소리로 금강의 폭포처럼 거침없이 쏟아내는 녀안내원의 금강산전설을 듣노라니 우리는 그냥 선경을 거니는 황홀한 기분이였다. <<저기 저 옹달샘이 망장천옹달샘이래요.>> 녀안내원이 갑자기 손을 들어 깎아지른듯한 바위를 가리키는 바람에 우리의 시선은 그리로 쏠렸다. 바로 앞에 깎아지른듯한 바위가 초병처럼 앞을 막아섰는데 그 바위중턱의 틈사이로 수정같이 맑은 물이 새여나와서는 옹달샘을 이루고있었다. 여기에는 먼 옛날 금강산에서 쇠바위라는 총각과 어여쁜 옥분이라는 처녀가 백년가약을 맺고 살다가 어느덧 일흔살이 되여 허리가 굽고 다리힘이 빠져 지팽이를 짚게 되였는데 이 옹달샘을 마시고 다시 청춘이 되여 함께 오래오래 잘 살았다고 하는 <<지팽이를 잊어버리게 한 샘>>이라는 유명한 전설이 있다. <<아, 우리도 젊어져 본다.>> 우리는 네 한모금 내 한모금 맑고 시원한 샘물을 받아마셨다. <<자네같은 젊은이가 마시면 아예 어린애가 되고 말텐데.>> 임선생이 나를 놀려주었다. <<괜찮습니다, 그냥 동심이 되고싶은 마음인데요.>> 세속의 때를 다 씻어버리지 못할바엔 차라리 다시 깨끗한 동년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그러다가 자네 안해가 알아주지 않을라구.>> <<동심을 찾은바에야 그냥 여기서 살지요, 인간세상에 내려가면 또 오염되고 말겠으니 말입니다.>> <<지금은 옥분이같이 예쁜 처녀도 없는데 그러다가 총각으로 늙으면 어쩔라구.>> <<안내원동무도 한모금 하시지요.>> 나는 임선생의 롱을 슬쩍 피해 능청스럽게 안내원한테 롱을 걸었다. <<그러다가 어린애가 되면 어쩔라구요.>> <<하하, 자네가 그만 김치국부터 마셨구만.>> 임선생은 내가 보기좋게 꼴먹었다고 손가락질 했다. <<아니, 그런데 선생님은 벌써 흰머리가 없어지고 이마의 주름살도 펴졌습니다. 이거 야단났네요. 집에 돌아가면 사모님이 문을 열어주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네 한마디 내 한마디 우스개를 하면서 다시 길을 재촉했다. 옥류동의 입구인 <<금강문>>에 채 가지전에 휴식터가 있어 우리는 여기서 잠간 숨을 돌렸다. <<저 앞에 바라보이는 것이 세존봉인데 웅긋쭝긋한 봉말기마다 기암괴석이 여러가지 모양을 나타내고 있어요. 저기 저 바위가 무슨 모양을 나타내는지 어디 한번 맞춰 보세요.>> 녀안내원이 남쪽으로 바라보이는 바위 하나를 가리키며 우리 일행에 물었다. 이 사람 저 사람 여러가지로 맞춰보았으나 그냥 맞춰내지 못했다. 이리저리 뜯어보던 내가 어쩌면 토끼같네요 하자 녀안내원이 손벽을 쳤다. <<맞았어요. 하긴 젊은분이 다르시군요.>> <<제가 망원경을 걸었지 않았습니까>> 나는 내가 건 안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머리쪽은 토끼처럼 두 귀가 뻘쭉한데 몸은 거부기처럼 넙죽하여 신통치가 않군요.>> 그런데 나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녀안내원은 손벽을 치며 탄복했다. <<정말 관찰력이 좋으시네요. 여기엔 <처벌받은 토끼>라는 토끼바위전설이 있어요.>> 그러면서 녀안내원은 우리한테 이 바위에 깃든 그럴듯한 전설을 재미나게 들려주었다. 금강산이 천하절승이라는 소문이 하늘 나라에까지 전해져 선녀들이 팔담에 내려 목욕을 하고 옥녀세두분에서 곱게 얼굴을 다듬고 돌아오는 것을 보고 성미 급한 토끼가 옥황상제한테 절절한 소원을 터놓아 마침내는 승낙을 받았는데 금강산에 내려온 토끼는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르고 그만 보름달이 되기전에 돌아오라는 옥황상제의 명을 어기고 말았다. 그리하여 대노한 옥황상제는 예전에 달리기에서도 룡궁의 거부기한테 진 토끼를 거부기몸집에 토끼머리모양을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대개는 이러한 전설이였다. 청산류수마냥 거침없이 이야기를 하고난 녀안내원은 이렇게 말끝을 맺었다. <<토끼는 옥황상제의 처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달나라에서 고달프게 절구를 찧고있는 것보다는 절승경개 아름다운 금강산을 보는 것이 더 즐겁다고 생각했어요. 그리하여 세존봉중턱에 꿇어앉아 금강산의 경치에 심취된 토끼는 날이 가자 그냥 그대로 하나의 바위로 굳어지고 말았어요.>> 너무도 그럴듯한 전설에 우리는 손벽을 치며 찬탄했다. <<참 멋지군 그래.>> <<그러고 보니 과연 머리는 토끼처럼 귀가 뻘쭉하고 몸은 거부기처럼 넙죽하구만.>> 옥류담, 련주담, 비봉폭포, 무봉폭포, 구룡폭포, 구룡연, 만물상, 삼선암, 보는 것마다 가관이지만 그중에서도 상팔담은 과연 자연미의 극치였다. 상팔담을 보려면 전망대인 <<구룡대>>에 올라야 하는데 산세가 매우 험하고 가파로왔다. 위태롭거나 길을 내기 어려운 곳들에는 쇠사다리를 고정해놓았으나 어떤 곳은 계단이 많고 가파로와 손잡이를 붙들고 올라가도 다리에 힘이 뻗쳤다. 우리 일행에서 내가 제일 젊은지라 다른 사람보다 앞섰으나 60살을 바라보는 임선생도 등산에는 만만치가 않았다. 묘향산관광에서도 다른 사람들은 아예 손을 들었으나 임선생만은 나와 함께 비로봉중턱에 걸려있는 이선남폭포까지 올라갔는데 별로 숨도 차하지 않았다. 금강산을 제집 나들듯하는 녀안내원도 전혀 얼굴조차 붉어지지 않고 선녀런듯 가볍게 발을 디뎠으나 뒤에 떨어지는 사람들을 보살피느라고 우리들과 떨어졌다. <<이러다가 좋은 귀동냥을 다 놓쳐버리겠습니다. 우리도 걸음을 좀 늦춥시다.>> <<괜찮아, 오금도 바로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언제 이야기를 들을 경황이 다 있겠어. 빨리 올라가서 쉬였다가 차분한 마음으로 듣는게 더 좋지.>> <<참 선생님은 아직 근력이 좋으십니다.>> <<그러게 집에서도 내가 일주일에 사흘방아는 문제없다고 하지 않았어.>> <<글쎄요, 이렇게 힘들 때는 지팽이로도 쓸 수 있겠습니다.>> <<아직은 숨차지 않아.>> 나와 임선생이 구룡대에 올라 한참을 쉬여서야 뒤에서들 숨을 헐떡이며 올라왔다. 전망대에 늘인 사슬을 잡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발밑에 아찔하게 내려다보이는 절벽사이로 골짜기가 깊숙하게 패였는데 그 밑바닥에 구슬같이 맑고 파란 물을 담은 크고 작은 소들이 한줄로 구슬을 꿔여놓은듯 이어져 있었다. 구름사이로 얼굴을 내여민 해빛에 상팔담은 그대로 령롱한 구슬이 되여 반짝거렸다. 황홀하고 신비하기만 했다. 그런데 갑자기 상팔담 웃쪽의 산허리에서부터 뽀얀 우유빛 안개가 서리더니 아래쪽으로 내려오면서 상팔담의 신비를 덮으려는듯 엷은 면사포를 펼쳤다. 깊은 골짜기는 순식간에 안개속에 사라져버렸다. 뽀얀 안개속에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전망대에 서있는 우리는 구중천에 둥둥 떠있는 것만 같았다. 이윽고 안개는 서서히 상팔담의 물구슬이 비단필을 짜는 구룡폭포쪽으로 밀려가고 골짜기는 다시 자기의 신비를 드러냈다. <<야, 과연 장관이로구나.>> <<야, 이렇게 흩어지는 안개속을 뚫고 아득하게 내려다보니 과연 내가 신선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든다니까>> <<참, 뭐라 형용할 수 없이 그야말로 선경이로구나.>> <<너무 흥분하지 말고 안전에 주의하세요.>> 녀안내원이 각별히 주의를 주었다. <<아, 날개라도 있었으면 그냥 저 담소로 날아내리고 싶다니깐.>> 참으로 그랬다. 너무도 특이한 경치는 이거 신선나라에 온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저 황홀하기만 했다. 나의 무딘 필력으로는 묘사한다는 것부터가 오히려 그 아름다움에 손색이 갈듯했다. 세상에 유명한 <<금강산팔선녀>>전설도 바로 여기에서 펼쳐지거늘 인간세상에서 하늘의 선녀가 반해버릴만한 곳을 또 어디에서 다시 찾을 수 있겠는가. 자연은 참으로 아름답다. 인간과 요원한 곳일 수록 티없이 깨끗하고 풍요롭다. 옥류담, 련주담, 비봉폭포, 무봉폭포, 구룡폭포, 구룡연, 상팔담, 이루다 형용할 수 없는 신비의 절승. 거룩하신 조물주여, 우리 <<해동국>>에 이처럼 세상에 둘도 없는 자연의 극치를 창조해주셔서 두손모아 감사하나이다. 금강산은 하루이틀에 다 돌아볼 수 없는 천하절승이다. 만이천봉우리마다 전설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경치를 가지고 있으니 아마 만이천날을 두고 돌아보아도 다 볼 수 없을 것이다. 소나무 소나무 잣나무 잣나무 바위바위를 돌아서니 물물 산산 가는곳마다 신기하구나 릉파루다락에서 글깨나 한다는 량반들의 허황한 빈소리를 듣고 지었다는 김삿갓의 즉흥시는 달리 더 표달할 수 없는 생동한 시어로 금강산의 자연미의 특징을 일괄하였다. 과연 금강산의 나무와 바위와 물과 봉이마다가 신기하기만 하다. 바다룡왕이 인간세상에 하나밖에 주지 않았다는 금강산, 보석같이 티없이 깨끗하고 선녀같이 신선한 생령들만 살 수 있다는 금강산, 그것이 우리의 산이니 우리는 보석처럼 마음이 다듬어진 민족인가. 과연 이 민족이 모든 영욕과 욕심을 버리고 금강의 정기로 보석같이 깨끗한 마음을 가졌다면 바다룡왕이 나머지 일곱 금강을 인간세상에 주지 않은 것은 인간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제일 금강을 준 민족에 대한 유일한 선택과 믿음때문이리라. 그러나 웬 일인지 오늘까지도 나는 그 때 금강산의 녀안내원이 들려주던 옥황상제바위에 깃든 전설 <<감투 빼앗긴 옥황상제>>를 자주 머리에 떠올리게 된다. 삼복더위에 금강산의 만이천봉우리를 돌아보고난 옥황상제는 금강산의 천백개의 벽계수보다 더 맑고 아름다운 구룡연을 보자 하늘의 상제라는 체면도 잊고 벌거벗은 몸으로 소에 뛰여들어 목욕하다가 선녀의 날개옷같은 관을 빼앗기고 벌을 받아 세존봉중턱에 맨머리채로 굳어져버렸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깨우쳐야만 할 것 같다. 례의도덕에 어긋나고 욕심을 부리면 하늘의 옥황상제라도 금강신의 문죄를 받게 된다. 금강의 정기를 타고난 금강의 주인들, 이런 <<주인 의식>>을 한번쯤은 키워보자. 우리는 보석같이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을 찾아 인간세상에 하나밖에 주지않았다는 금강산의 주인이다, 우리는 보석같이 티없이 깨끗하고 선녀같이 신성한 생령들만 살 수 있다는 금강산의 주인이다, 우리는 수정같이 맑고 모든 영욕과 욕심을 버리게 하는 금강의 망장천옹달샘에 마음을 헹구어낸 인간세상 유일금강의 신성한 주인이다. 이제 그런 주인의식으로 우리의 마음을 정리하고 룡왕을 감동시켜 제일금강을 가졌던 <<해동국>> 선민(善民)의 통합의지와 금강의 맑은 물을 피로 통하는 하나의 륜리를 되살려보자. 인제 세계렬강들의 패권다툼과 이데올로기의 치렬한 부딪침으로 우리의 옷에 묻었던 더러운 피자욱과 우리의 몸에 난 깊은 상처를 성스러운 금강산의 맑은 물로 깨끗이 씻어버리고 용맹과 합심과 근면과 창조적인 민족의 정기를 되살려 진정 금강의 주인된 통일민족의 밝은 모습을 온 세상에 자랑해보자. 금강산으로 간다, 금강의 정기를 받는다, 보석처럼 티없이 깨끗한 마음을 다듬어 과연 제일 금강, 아니 유일 금강의 신성한 생민이 된다. 바다룡왕이 제일 금강을 인간세상에 나누어줄 때는 한반도가 하나의 <<해동국>>이였다.
53    조선족문학의 특수성 댓글:  조회:2519  추천:0  2009-05-16
문화의 특수성으로 본 중국 조선족문학의 력사적 사명   우리 삶의 총체성에서 통찰해보면 우리의 문학은 한국문학과는 문화의 공동분모를 가진 문학임을 확인해주면서도 이질적인 사회와 문화토양에 의한 문화의 변이 내지 새로운 접목에서 초래되는 사회내용적인 분리를 부인할 수 없게 한다. 삶의 총체성에서 종합진단할 때 인간의 모든 생명활동 내지 목적추구는 궁극적으로 그가 처한 사회와 문화의 질서속에서 확립되고 펼쳐져야 한다. 그만큼 문화는 인간의 생명활동과 가치창조의 결정적인 한 조건이다. 문학도 결코 그 문화바탕을 떠나서는 옳은 해답을 얻을 수 없다. 문학이 그 자체의 본체론적 법칙을 가지고 있고 또 전 인류적인 창조력을 공동분모로 하면서도 국가적인 또는 민족적인 단위로 구분되게 되는것도 바로 국가나 민족에 따라 문화발전과정과 그 성질이 다르기때문이다. 어느 구체적인 문학이 지도우에서 그 문화의 현주소를 찾을 수 없다면 그 문학은 과연 뿌리없는 나무처럼 곧 시들어버리고 말것이다. 한국문학과 중국 조선족문학이 확실하게 문화의 공동분모를 가지고 있음에도 현시점에서 의심할바 없이 교류라는 비교학적 방법이 가능한것도 바로 국가를 단위로 하여 문화의 이질성이 엄연하게 존재하기때문이다. 이에 따라서 문화의 이질성 내지 변이성을 밝혀보는 것은 문학교류의 지도원리를 확인하는 가장 선차적이고도 바람직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전통문화의 력사적인 관성과 계승성을 떠올릴 때 단일민족국가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는 한국의 문화에 대한 진맥보다는 한국과 문화의 뿌리를 같이 하면서도 이질적인 사회와 문화토양에서 변이 내지 변질되고 있는 중국 조선족문화를 조명해보는 것이 훨씬 빠른 길이라 하겠다. 그럼 과연 중국 조선족문화의 특성은 무엇인가? 우리는 중국의 개혁개방을 전후로 하여 그 전의 특성과 그 후의 변화 내지 변질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그 전의 특성을 살펴보면 이런 몇가지로 귀납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중국 조선족문화의 이중성이다. 이중성은 또 두가지 측면에서 조명해볼 수 있는데 하나는 문화의 성격으로부터 중국 조선족문화는 중국문화권에 있는 조선족문화라는 것이다. 이런 특성으로 하여 중국 조선족문화는 확실하게 근대 조선의 문화를 그 근간으로 하고 있음에도 그대로 조선문화의 정립과 발전이였다고는 할 수 없다. 문화를 인간의 창조력에 의한 물질과 정신의 발전과정이라고 함축해보면 중국 조선족문화는 어차피 중국의 대문화의 지배하에서 중국 사회의 정치, 경제 등 제 방면의 관념형태를 접수 내지 강요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중국 조선족문화의 뿌리로 되는 조선문화는 부단한 변이 내지 새로운 접목으로 하여 연변특산의 사과배처럼 새로운 특성을 가진 문화의 나무로 성장하게 되였다. 그것은 또 중국 사회의 정치, 경제 등 제 방면의 직접적인 제약을 표방하는 중국의 소수민족문화의 한 형태로 자리매김하게 되였다. 이중성의 다른 하나는 지역적으로 중앙문화와 멀리 떨어진 변두리 소수민족문화라는 것이다. 우선 변두리문화 자체가 벌써 중앙문화의 전파성에 힘입어 발전하는 것인데 소수민족문화는 그 발전이 곧 중앙문화에로의 동화를 의미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우기 극단적인 봉페주의를 주장하던 시기에 소수민족문화는 다만 중앙문화에로 통하는 외나무다리외엔 다른 접촉이나 출로란 있을 수가 없었다. 례외없이 조선문화를 근간으로 하는 중국의 조선족문화도 자기의 바로 옆에 그 문화의 발원지를 두고도 수원이 끊어진 늪처럼 바닥을 드러내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둘째는 중국 조선족문화의 봉페성이다. 극단적인 봉페주의는 변두리문화나 소수민족문화에 중앙문화를 대표로 하는 중국문화에로 통하는 외나무다리만 놓아주고 문화발전의 주요한 도경 내지 법칙인 외래문화와의 접촉이나 수용을 밀막아버렸다. 그리하여 중국 조선족문화는 외래문화는 물론 그 근간으로 되는 조선문화와도 근 반세기동안이나 담을 쌓지 않을 수 없었다. 중앙문화의 통치적지위와 방대한 중국문화의 동화력에 중국 조선족문화는 민족문화의 외피만 걸친 앙상한 나무로 말라들고 말았다. 셋째는 계획경제시기 국가조달에 의한 문화의 의뢰성이다. 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국가보호적인 또는 국가제도적인 민족자치와 국가의 계획적인 조달에 의하여 그럭저럭 혜택을 받으며 평균주의사상에 주체적인 노력이 없이도 <<근심걱정없이>> 살아갈 수 있었다. 매일 부모가 주는 소비돈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난하면서도 만족스럽게 살아왔다. 어느덧 줄 것만 바라는 변태적인 심리습관이 자라서 운명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지혜를 잃었고 하나의 운명을 가진 공동체의 건강에 관심은 높으나 그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엔 게을리하고 말았다. 상기 세가지 측면에서 개혁개방의 이전 즉 80년대이전의 중국 조선족문화의 특성을 살펴보았다면 그 이후로 중국 조선족문화는 그 세가지 측면에서 모두 커다란 변화 내지 변질을 가져왔다. 첫째는 리념적 대립의 약화 내지 소실과 더불어 민족문화의 개성적 발전도 밝아졌다. 중국 조선족문화는 여전히 이중문화의 성격을 띄고 중국문화권내의 하나의 소수민족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민족주의를 비판하고 계급투쟁을 기본고리로 하던 극단정치가 물러가면서 보다 독립적이고 개성적으로 자기의 문화권을 확립하고 발전시킬 수 있게 되였다. 둘째는 나라가 개혁개방정책을 실시하고 세계의 정상급문명과 세계적감각을 시대적 요청으로 받아들이게 되자 우리의 문화권의 범위와 위치가 뚜렷이 높아지고 외래문화의 접수 내지 수용이 훨씬 직접적일 수 있게 되였다. 더우기 한중수교를 하나의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하여 중국 조선족문화권은 변두리문화로부터 일약 중국문화와 한국문화의 교차점에 놓이게 되였고 따라서 어느정도 두 문화의 교량이 되였다고 할 수도 있다. 셋째는 상품경제가 사회의 주되는 경제행위로 되고 다성분의 소유제가 병존하는 시대에 국가는 절대적인 가부장제적 대가정으로부터 상대적으로 가정성분이 훨씬 단순하고 책임이 훨씬 직접적인 핵가정으로 세분되였다. 절대적으로 국가제도적인 보호와 계획적인 조달에 힘입던 민족문화의 기틀이 적자생존의 치렬한 경쟁시대에 미처 자기의 자활력을 키우지도 못하고 그대로 도태당할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 그러나 제도적 장치에 의한 보장이 부모가 아이들한테 용돈을 나눠주는 정도이고 보면 비록 국가제도적인 보호가 약화되면서 동화의 우려와 위기가 박근하고 있지만 민족의 자활력과 창조적인 주체정신의 정립에 각성과 도전의 기회를 마련해주기도 하였다. 요는 우리가 거족적인 생명운동에서 어떻게 문화의 광장에 민족문화의 번화한 거리를 형성하고 부단히 자활력과 끈질긴 생명력을 키워가는가에 달려 있다. 상기 중국 조선족문화의 특성에 대한 진맥으로부터 우리는 중국 조선족문학의 특성 내지 력사적인 사명을 쉽게 읽을 수 있다. 물론 문학은 그 자체의 본체론적 특성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고 그리하여 우리 작가군 전체에 어떤 주제론이나 소재주의를 강요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중국 조선족문학이 토대로 하는 문화가 이중문화이고 피지배적인 문화라는 한계성에 의하여 거족적인 문화보존 내지 민족보존을 앞세운 조직론의 립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민족문학으로서의 시대적인 또는 력사적인 사명감을 들먹이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조선족문학의 군체는 하나의 거대한 민족지성인의 군단이며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민족문화의 정립과 민족의 미래를 지향하는 생력군이다. 그런만큼 우리의 문학은 민족정신의 훈련장이다. 이것이 중국 조선족문학의 특성이다. 우리의 문학인은 붓끝에 민족의 정열이 타올라야 하며 민족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민족사회에 적극적인 참여의식을 보여주어야 하며 민족의 현실적인 운명을 직시해야 한다. 시대적인 인식도 발전적인 것이지만 그러나 민족적 공감과 각성도 민족의 력사의식의 증대이며 시대에 따르는 정신의 움직임이다. 오직 자기 중심적인 리해를 넘어 하나의 조직력이나 문학정신을 통하여 민족의 량심과 넋을 대변할 때라야만 우리의 문학은 앞시대와 맥을 이을 수 있으며 하나의 문학사를 형성할 수 있다. 피상적으로 세계적 절주라는 보편적인 개념속에서 자기를 상실하고 자기가 발딛고 선 삶의 현주소를 잊고 현실도피적인 립장에서 이른바 세계적 의식을 수립하려는 망동에 가까운 충동적인 행위는 문화적 토양의 현격한 차이와 빛의 생명력을 잃은, 태양아닌 형광등의 변질된 밝음속에서 민족의 정신적 기틀마저 상실한 창백한 문학세계를 펼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문학은 우리 민족의 정신적 구원이 되여야 하며 현실적 삶의 질서에서 우리 민족이 겪고있는 갈등을 보편화된 주제로 하여 우리의 문학속에 우리 민족의 역동화심리와 거족적인 극복의 체험을 아프게 묻어주어야 한다. 역시 자신의 경험세계에 대한 민족적 인식의 회복만이 우리 민족의 문화와 미래를 불 밝힐 수 있다. 우리의 문학은 민족정신의 훈련장이다. 이 훈련장에서 우리는 우리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과 자활력을 키워야 하며 시대의 도전에 대응하는 각성과 건강을 회복하여야 한다. 우리 문학의 이와같은 복합적 의미는 역시 우리의 삶의 현주소와 문화의 이중성에 의하여 확인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문학교류가 문화의 공동분모를 가진 민족문학의 다양성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52    문학은 민족정신의 훈련장 댓글:  조회:2300  추천:0  2009-05-16
리태수(소설가 룡정시 문화국 창작실) 방룡남(<<문학과 예술>>지 편집)       방: 안녕하십니까? 선생님을 오늘 처음 뵙습니다만 선생님의 작품과는 퍽  << 구면>>인데요.   리: 오시느라 수고 많았겠습니다. 방: 사무실 형편을 볼라니 선생님들도 얹혀사는것 같군요. 여러모로 불편한 점 많으시겠습니다. 리: 네. 나라살림이 유족하지 못하니깐 할수 없는 일이지요. 청빈하고 선량한것이 우리 나라 선비들의 정신인가 봅니다. 하긴 학자는 산속에서 나고 철인은 목동의 오두막에서 난다고 했으니 청빈이 작가들의 재산이기도 한것 같습니다. 방: 돈의 힘이 날로 강해지는 지금에 선생님은 직업선을 잘못 잡았다는 생각 안드십니까? 리: 아니요. 저는 수두룩한 직업선에서 달려보았습니다. 교원, 군인, 로동자, 농민, 사무원, 과수재배원 등 다양한 사회배역을 맡았더랬습니다. 충분한 체험후에 선택한것이고보면 숙명으로 받아들이는것이 편할것입니다. 방: 아마 그런 풍부한 신변체험과 생활경력이 선생님을 다산 작가로 되게 하신것 같군요. 리: 다재가 무재라는 말 있잖아요? 이것저것 주무르다나니 어느것 하나 신통한것 없습니다. 방: 겸손한 말씀입니다. 리: 사실 제가 다산이 되게 된것은 그런 경력에 앞서 직업의 종합성때문이라 할수 있습니다. 창작실의 첫째가는 임무는 가사나 극본창착이 아닙니까. 소설창작은 저의 개인직업이나 다름없는거죠. 방: 그러니 선생님의 지향하고는 좀 거리감이 있는 직업이 아닙니까. 리: 저는 가사나 극본을 소설하고는 별개의 창작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우선 문학은 모체예술로서 모든 예술의 토대로 됩니다. 문학적기질이나 적어도 높은 문학흠상능력을 갖추지 못한 극작가나 무용안무가는 필연코 멋진 구상을 할수 없습니다. 이에 반하여 소설가는 가사나 극을 알아야 치밀한 묘사, 함축 세련된 대화를 쓸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복잡다단한 생활은 백화점에서 상품마다 진렬위치가 정해진것처럼 가사, 극, 소설 등의 소재로 될 객관성을 창작자에게 <<강요>>하는거지요. 방: 과연 그렇지요. 생활에 대한 깊은 체험이나 리해가 없다면, 그리고 사회 일반에 관계하여 신변적으로 체험하고 깊이 탐구하지 못한다면 무게있고 생활에 핍진한 작품을 창작할수 없지요. 지금까지의 창작상황에 대해 좀 말씀해주십시오. 리: 기자선생의 말대로 다산이다보니 이렇다할 성과작은 없어도 이것저것 <<잡동사니>>는 적잖습니다. 단편소설 40여편, 중편성인소설 3편, 중편아동소설 2편이 있고 단행본은 전광화와 합작한 <<세계동물운동회>>를 1984년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출판하고 <<체포령이 내린 강도>>를 1986년도에 역시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출판했으며 <<춘삼월>>을 1987년도에 료녕민족출판사에서 출판했습니다. 이외 가사 120여수, 장막극 1편, 대형가극 1편, 씨나리오 1편, 텔레비죤소품 3편, 재담, 만담, 소형극 등이 20여편이 있습니다. 방: 참으로 다산작가이십니다만 그중 적지않은 작품들이 성, 주급의 상을 받았더군요. 리: 성급 2등, 3등, 주급 1등을 한것이 13편이고 전번에 <<진달래>>상을 탄것이 한편입니다. 방: 선생님의 작품, 특히 소설작품들을 살펴보면 선생님은 사실주의 창작방법으로 자신의 창작자세를 굳히신것 같더군요. 리: 보수적이고 봉페적이 아니라는 전제가 붙는다면 그 견해에 동의됩니다. 사실 저는 그 어떤 기성된 틀에 속박되는것을 원하지 않으며 그런대로 창작주장을 말할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수법을 쓰든지간에 인간사회의 희로애락을 쓰면 된다는것입니다. 오직 이것을 쓴다면 수법에서의 종종별별, 형형색색의 창작을 모두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 한 사물에 대해 다각적인 풀이가 가능하고 사람들의 심미의식이 보다 활발해지고 사회에 대한 판단과 참여가 훨씬 개성적인 시대이니깐 더욱 그렇겠지요. 리: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누구도 이설을 누를 결정적인 학설은 내놓지 못하는거지요. 이런때에 자기의 창작자세를 기준하여 다른 사람의 창작자세를 비난하는것은 가장 미련한 짓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는 꽃밭에 만발한 뭇꽃중에서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꽃만 남기고 다른 꽃은 죄다 꺾어버리는것과 같은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한편 세계적절주와의 보조맞춤이라는 미명하에 문화환경, 민족심미특성 및 사유방식의 이질성을 타산함이 없이 형식의 새로움이라는 고립적인 언어장난에 지나치게 재미를 붙이는 경향을 경계하지 않을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방: 작가의 문학선택과 독자의 열독심리 내지 민족의 심미의식의 내재적일치성을 강조하는 말씀이겠지요. 리: 그렇지요. 이런 경향이 우리 문단의 흐름을 형성할 때 저는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맹목적인 무절제한 모방은 소극적인 동화에 불과하기때문입니다. 방: 지당한 말씀입니다. 저도 민족의 현실상황을 외면한 문학은 그 진실성과 문학사적가치에서 의문받기가 십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세계는 의연히 여러민족의 독자적인 노력에 의해 축성되여가고있으니깐요. 가령 당대의식이란것이 세계적의식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매개 민족에게 접수 혹은 수용될 때 필연코 민족의식의 조명을 받지 않을수 없는거지요. 리: 바로 그거죠. 그러기에 문학은 민족정신의 훈련장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구경 당대의식이란 무엇이냐 하고 바투 들이대면 나로선 확정한 리론적 정의를 내놓을수 없지만 번쩍 순간적으로 뇌리를 치는것이 당대의식이란 결국 상품의식을 그 기본핵으로 하는것이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한 장소에서 당대의식에 대해 제 나름의 토배기식해설을 한적 있습니다. 어느 한 마을에 밭머리샘이 하나 있었는데 50년대에는 사원들이 일밭에 가고오면서 갈한 목을 축이는 자연 그대로의 샘물이다가 60년대에는 논을 적셔주는 관개수로 전변되였다가 80년대에 들어와서는 그것의 진짜 가치가 발견되여 약수로 <<승급>>하였습니다. 방: 그러니깐 하나의 샘이 인간의 의식의 각성에 의해 인간본능을 충족시키는 자연적샘으로부터 생산수단으로서의 관개수로 되고 오늘엔 상품화된 약수로 되였다는거죠. 참으로 원시적 생명의식, 농경의식, 상품의식의 질적비약과정을 아주 생동하게 그렸습니다. 리: 그러므로 당대의식이란것은 결국 인간의 생명의식의 질적비약이라 할수 있지요. 방: 살겠다는 본능형의 생명의식으로부터 잘살겠다는 리상형의 생명의식에로의 비약이라는 말씀이지요. 리: 그렇습니다. 하기에 당대의식을 수립한다는것은 꼭 전통의식이나 민족의식을 부정하는것과 맞물림할수 없는것입니다. 물론 당대의식을 수립하자면 진부한 전통관념이나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민족의식은 버려야 하지만 결국은 민족의 떳떳한 자태로 세계에 낯을 보여야 하는것만은 틀림없지요. 그것은 당대의식을 수립못하면 세계대오에서 떨어져 멸망할 위험이 있는것도 사실이지만 민족의식을 상실한다면 그날부터 벌써 그 민족은 존재조차 하지 않기때문이죠. 방: 참 지당한 말씀입니다. 그럼 선생님의 창작자세 주장에 대해 좀 더 말씀해주십시오. 리: 아까 이미 말씀드린바이지만 저는 인간사회의 희로애락을 쓰고 인간이 승화와 성장을 꾀한다면 어떤 수법으로 쓰든지 다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자신을 말하면 기본상 사실주의적 창작방법에 몸을 기댔다고 할수 있지요. 지나친 편애때문인지는 몰라도 저는 문학선택은 자유로운것이지만 력사에 남을것은 그래도 사실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오늘까지도 사실주의적창작방법의 피복률이 으뜸이라는 뜻에서뿐만아니라 인간세태와 현실생활에 대한 자세가 퍽 순응적이라는 뜻에서도 그렇지요. 방: 선생님의 귀중한 시간을 많이 가져서 미안합니다만 선생님의 창작경험에 대해 간단히 말씀해주십시오. 리: 별로 경험이라고 할만한것이 없습니다만 한마디로 저는 글을 쉽게 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말은 접수자의 각도에서보다는 창작자의 각도에서 하는 말입니다. 뜻인즉 생활에 익숙하고 인물에 익숙해야 한다는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작가의 성숙을 신변체험소설로부터 순수 객관소설로 넘어가는것이라 하는데 딱 맺힌 주장이 못된다고 봅니다. 아무런 체험도 없이 순수 귀동냥, 눈동냥으로 글을 쓰면 얼마나 쓰겠습니까. 풍부한 체험이 있어야만 생동하고도 세련된 글을 쓸수 있는거지요. 물론 작가적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념두에 두고 하는 말이지요. 방: 지금 어떤 창작타산을 가지고 계십니까? 리: 공화국창건 40돐에 헌례하려고 장막극과 텔레비죤극을 무르익히고있습니다. 그리고 <<9.3>>을 전후로 <<조각달 둥근달>> 속편으로 소설 <<둥근달 하현달>>을 쓸 타산입니다. 방: 네. 오늘 보귀한 말씀 많이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럼 선생님의 창작성공을 미리 축원합니다. 리: 고맙습니다. 잡지에 발표한다니 기자선생을 통해 독자들과 선생님들의 조언을 부탁합니다.
51    천치의 의미지 댓글:  조회:2072  추천:0  2009-05-16
 도덕과 질서가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질문은 옷이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질문처럼 전혀 해답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기성된 도덕과 질서가 계속 사회구축의 구조적요소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계산적인 리기주의의 사치한 도덕적방패로 변질하고있는가 하는 문제는 사회현실적으로 던져진 부진이냐 발전이냐 하는 선택의 질문이다. 달리 풀어말하면 인간의 행위를 규제하는 계률로서의 도덕이 허상과 실상의 사이에 등식이 성립될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질문은 인간성을 해방하느냐 속박하느냐 하는 인간탐구의 가장 원색적인 문제이다. 허련순의 소설 <<슬픈 계률>>(<<천지>>1992년 4호)은 계산적인 리기주의에 복무하며 인간성을 외면하고있는 기존도덕적인 성륜리의 허위성을 고발하고있다. <<그녀>>로 등장하는 녀주인공은 <<처녀때 너무 못생겨서 청혼하는 남자가 없었다>>고 한다. 서른살에 선택여지도 없이 한 홀애비와 결혼했으나 아들 하나 남기고 죽어버리는 결핵병환자였었다. 후에 남의 소개로 아이 셋을 둔 남자한테 시집갔으나 남편아이들이 어찌나 이악스레 나오는지 자기 자식이 주눅이 들어 기를 못펴는것이 가슴에 걸려 일년만에 리혼을 하고 나와버렸다. 그뒤 떠돌이 세방살이로 수모를 받으며 살다가 신계촌에 홀로 사는 홀애비가 좀 부실하기는 하나 일은 제대로 하고 집 하나를 쓰고 산다는 말을 듣고 자청하여 김부실댁으로 들어왔다. <<남자에 대해선 애초부터 큰 기대같은걸 품어보지 못했던 그녀로서는 사랑이고 뭐고 단지 피곤한 몸을 담을수 있는 처지면 된다>>고 생각했고 <<아들애 하나만 눈치밥 안 먹이면 족하다>>고 생각하였다. 실로 생존본능의 가장 원색적인 추구인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명의 원색적인 추구마저 이른바 주위의 <<정상인>>들에 의해 여지없이 허물어진다. 부실이한테 시집온 근거로 같은 부실이 취급을 당하고 정상적 인간성의 욕구마저 망측한것으로 비난받으며 지어는 <<온갖 랭대와 멸시도 넉넉하게 받아당하는것>>도 <<그녀>>가 <<부실하기때문에 치욕을 못느끼는거라>>고 놀림받는다. 사실 이처럼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권과 인간성을 위협당하는 사실에 천착하는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행위인것이다. 외적으로 부족한 <<그녀>>와 내적으로 좀 부실한 김부실의 생존본능의 추구는 이른바 사회 <<정식성원>>들의 인위적인 비난과 압제로 하여 부서지고마는것이다. 이것은 실상 생활의 바탕과 인간성을 멀리 떠나버린 관념도덕의 허위적인 위장을 가장 효과적으로 벗겨버리고있는것이다. 자기들은 오장륙부가 하나도 세탁이 되지 않고서도 남을 헐뜯는데는 부쩍 열을 올리고 약한자, 부족한자를 억지로 인간대렬에서 밀어버리려는 인간추악상이 적라라하게 드러나고있다. 못난것, 부실한것이 잘못일수는 없고 악의 근원일수는 더구나 없다. <<잘난것>>, <<똑똑한것>>이 너무 잘난체, 똑똑한체 할 때 비로소 악은 생기는것이다. 특히 일잘하고 돈 잘 버는 시동생을 하루새에 <<그녀>>한테 훌떡 빼앗겼다는것이 김씨댁의 분노를 불러일으켰을 때 악은 바로 김씨댁과 같이 리해관계를 함께 하는 인간들의 너무나도 계산적인 리기주의에 비롯하여 산생되는것이였다. 그들이 새살림을 꾸렸음에도 김씨댁은 아예 두 사람 다 손아귀에 넣고 부려먹으려 한다. 그래서 머리 쓴것이 <<경제권을 틀어쥐는 방법>>이였다. <<농사수입이고 남새 판 돈이고 모두 바쳐야 하고 돈을 쓸 때는 맡아내가고 밥쌀을 한주일에 한번씩 내가야 한다는 규정을 세웠다>>. 못난것, 부실한것이라는 근거로 생활자립권마저 박탈하고 그들을 노예로, 지어는 말할줄 아는 로동도구로 취급해버린것이다. 김씨댁이 자기의 이런 행위를 정당하게 위장하는 수단이 바로 자기 몸에는 그냥 더러운 똥집을 달고있으면서 남이 똥누는걸 흉보는 인간들의 몰렴치하고 루추한 심태로서 <<그녀>>와 시동생을 아주 자립할수 없는 천치로 확정해버린것이였다. 인간의 상정으로 말하면 시동생이고 동서이기에 김씨댁은 그들을 몰렴치한 인간들의 비난과 타격에서 구해내고 감싸줘야 할 보호인격이여야 하는것이다. 그런데 공짜로 부려먹을수 있다는 계산적인 리기주의는 그녀로 하여금 악의 수단을 서슴치 않고 행하게 한다. 그럼에도 이런 계산적인 리기주의앞에서 기성도덕은 과연 얼마만큼의 치유력을 갖는것일가. 관념도덕은 벌써 계산적인 리기주의자들의 사치한 장식품 내지 지어는 인간성을 속박하는 도덕적방패로 변질하고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라도향의 <<벙어리삼룡이>>에서의 천치의 이미지를 재확인하게 된다. 그것은 가장 철저한 인간탐구를 위한 인간성의 이미지이다. <<그녀>>나 김부실 역시 바보와 무지의 개념으로서 일상적, 상식적 또는 병리적차원에서의 천치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과 성실의 환상적차원에서의 천치이다. 이때의 천치는 인간을 타락과 허위에서 구제하는 천사의 얼굴이다. 약자에 대한 학대, 형식으로만 제약된 도덕이 그 앞에서 여지없이 몰골을 드러내고있지 않는가! <<그녀>>와 김부실의 생존본능에의 가장 원색적인 추구마저 이른바 주위의 <<정상인>>들에 의해 여지없이 허물어지는 현실에 대한 천착이야말로 가장 진지한 인간탐구가 아니겠는가! 실로 소설<<슬픈 계률>>은 관념적인 도덕이나 륜리를 따지기전에 인간임을 긍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운 인간선언이라 할수 있다.
50    사회적 빈곤이냐, 철학적 빈곤이냐 댓글:  조회:2159  추천:0  2009-05-16
평론을 할라치면 종종 작가의 사상 내지 주장을 포착했느니 못했느니 하는 시비가 생긴다. 나중에 타협한다는것이 주제의 다각성으로부터 평론가는 얼마든지 다른 초점에서 문제를 잡을수 있다는것이 그런대로 적극적인 태도이고 소극적이래도 평론가는 평론가대로 일가지견을 내놓을수 있다는 태도이다. 그런데 문제는 실제로 작품을 놓고 작가의 경향이 어느것인가 하는 판단에 따라 그 작품의 가치가 긍정 내지 부정되는것이니 허투루 대할수 없이 <<인명>>(작품의 운명)에 관계되는 일이겠다. 만병통치의 약이 없는 한 병을 옳게 진단하는것은 병을 치료할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상식적인 요구조건이다. 필자가 김일의 근작 단편소설 <<빈곤>>(<<장백산>>1992년 2호)을 읽으며 봉착한것이 바로 이 점이다. 풀어말하면 작가의 경향 내지 주장을 이렇게 봐도 좋고 저렇게 봐도 좋은 일이 아니라 이렇게 보면 소설이 실패한것이고 저렇게 보면 소설이 성공한것이라는 판단이 내려진것이다. 필자가 이 소설에서 쉽게 잡은것이 사회적빈곤과 철학적빈곤이다. 달리 말하면 작가가 사회적빈곤을 썼을수도 있고 인간의 철학적빈곤을 썼을수도 있다는것이다. 작가가 사회적빈곤을 썼을 경우 문학작품으로서의 가치와 매력은 퇴색해진다. 돈 있는자의 정신적빈곤, 글 읽는자의 물질적빈곤, 그것이 이 사회 객관 내지 일반으로 설명되는 경우 치원이나 김일의 형상은 자기의 <<비극적운명>>으로 그런 사회적빈곤을 폭로하고 호소하기에는 너무나도 가냘프고 자살적이다. 틀림없이 비극이란 불가항력적인 힘에 의한 미의 훼손이다. 그런데 치원이의 경우 그는 그런 불가항력적힘의 강타를 받기에 앞서 그 자신의 인생에 대한 철학적빈곤으로 하여 스스로 정신질환을 앓고만다. <<상점에서 나와 가게방 뒤벽에 대고 오줌을 솨솨 내갈기>>고 <<한달 로임을 봉투채 밀어넣>>는 행위는 결코 <<금전만능의 인격론>>이란 현대문명병과는 전혀 무관한 미개병이다. 사실 그의 모대김과 신음소리는 사회적빈곤에 대한 대항적인 비명인것이 아니라 물가의 모래탑처럼 너무너무 쉽게 씻겨내리는 그 자신의 허탈한 령혼을 두고 부르는 영탄곡이다. 김일의 형상은 어떤가. 얼핏보면 그는 글읽는자로서 물질적빈곤에 모대기고있다. 그러나 <<아버지가 사준 단색텔레비죤까지 팔아먹구>> <<그 돈으로 사흘마작>>을 논 김일, <<그저 하두 심심하니 친구들끼리 좀 놀구 또 뚜드려 먹구 소일하>>는 김일의 형상은 물질적빈곤을 호소하기에는 너무도 멀리 정신이 벌써 시들어버린것이다. 그러고보면 돈 있는자 치원의 정신적빈곤, 글 읽는자 김일의 물질적빈곤이란것은 일종의 가면에 지나지 않고 결국은 두 정신질환자가 같지 않은 가면을 쓰고 같은 극을 표현하고있는것이다. 이처럼 령혼이 방황하는 <<철학적빈곤증>>은 사회적빈곤을 폭로한다는 주제를 약화시킴에 반하여 무병신음하고 고독한체하는 인생실패자의 넉두리라는 주제를 뚜렷이 떠올리는것이다. 이런 초점에 렌즈를 맞추면 치원이와 김일의 형상은 또 얼마나 생동하고 신랄한가. 물론 그들의 고통 내지 넉두리의 근원은 그런대로 사회에 있다고 볼수도 있을것이다. 사회학적진단을 하면 경제발전기에 과연 여러가지 페단과 부식작용이 훨씬 맹렬한것이다. 이것은 계절이 바뀔 때의 발병률이 많은것과 같은 도리일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매개 사람들의 신체소질과 항역능력을 간과할수 없다. 특히 특정된 환경이 아니라 일반적인 환경에서 누구나 다 거치지 않으면 안되는 고험을 통해 승패의 두 부류가 있을 때 우리의 가치판단은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하는것일가. 사회적빈곤 즉 돈 있는자의 정신적빈곤과 글 읽는자의 물질적빈곤은 류행성감기균으로서 수시로 사람들을 질병에로 몰아가고있다. 그다음 제기되는것이 개체의 <<철학적빈곤>>이다. <<철학적빈곤>>자는 오뉴월고뿔도 쉽게 걸리고마는것이다. 불가항력적이 아니라 얼마든지 이겨나갈수 있는 충격앞에서 그 자신의 취약성때문에 허리꺾이고말 때 우리는 거기에서 얼마만큼의 비극성을 눈물머금고 읽을수 있을가. 자신의 라태, 무지, 무능을 덮어놓고 일방적으로 억울한체, 슬픈체, 고독한체 지어는 인류의 위기감같은것까지도 느낀체하는 어리광대같은 연기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성장을 위한 사회의 모진 진통을 절감할수 있는것이다. 아무튼 돈 있는 치원이든 글 읽는 김일이든 한바탕 허무맹랑한 광란적인 배설을 거쳐 그래도 나중엔 저들의 <<철학적빈곤>>을 깨달은것이 주제밝힘에도 명랑하지만 그보다 먼저 변화된 사회 내지 사회적빈곤에 도전하는 적극적이고 발전적인 인생자세도 보여주었다고 할수 있겠다. <<어느날 아침 꿈속에서 깨여나면...>> <<술 안먹고 마작도 안놀리...>> <<우리는 잃어버린 리상을 찾자.>> 이것이 바로 작가의 호소가 아니겠는가!
49    엉뚱한 수법의 시도 댓글:  조회:2190  추천:0  2009-05-16
-소설 <<생활의 흐름>>을 읽고 소설이란 생활과 같아야 한다. 그럼 생활의 정체는 어떤것인가. 우선 사회적 정치적 력사적 등 제관계적 립장에서 투시해보면 직선적으로 쉽게 얻어지는 해답은 틀림없이 <<슈제트>>가 명확하고 규칙이 엄격하며 약속이 상투적이라는것이다. 때문에 인간개체의 표상적인 생활도 역시 슈제트도 있고 규칙도 있고 약속도 있는것이다. 이런 요소가 갖추어진 인간은 마음이 편하고 생활에 여유가 있는것이다. 그러나 인간학적 심리학적 또는 주체적인 판단의식의 위치에서 보면 이런 표상적인 생활흐름은 개체심리활동과 생사판가리의 불꽃조차 튕기고있는것이다. 그런데 이런 개체심리활동이 리성의 다듬음을 거쳐 반항의식 혹은 대항의식으로 질변하여 표면화되지 못할 때 그것은 그냥 그대로 잠재의식이란 의식의 원시상태에서 화석화되고만다. 원시상태의 잠재의식은 아직 미의 옷을 입지 못하고 벌거벗은 그대로 루추한 몸뚱아리를 드러내고있는데 그것은 태아나 갓 태여난 영아가 새 생명의 상징이면서도 아름다움은 주지 못하는것과 같은것이다. 소설 <<생활의 흐름>>의 주인공인 <<그>>는 바로 이와같이 사회와 개체의 불합속에서 리지적인 대항과 원시적인 반항에 헐떡거린다. 그 하나하나의 교전속에서 읽는이들은 사회적인 허위와 비리와 부진을 괄목상대하게 된다. <<재해를 입었어도 감산되지 않고 의지가 약해지지 않았다>>는 향당위서기의 상투적인 호언장담, 인위적으로 빚어진 재해임에도 자연재해라고 책임을 인자하고 너그러운 하느님께 슬쩍 밀어버리는 그의 위선적인 령도예술, 진수성찬으로 <<어사>>를 매수하는 농업현장의 교활한 응부술책, 진실한 보도임에도 활자화시키지 못하는 신문사주필, 유모아적인 생활도 엄숙한 정치적자각으로 대하고 류언비어에 의심병을 키워가는 문예부주임, <<죽은 닭이 산 사람보다 낫다>>는 격으로 한구럭의 뢰물에 순순히 조동을 시켜주는 학원당위서기, 제돈 아낀 체면유지로 남이 산 닭에 군침만 흘리고도 높은수양인체 사양하다가 기회를 엿보아 고양이 고기덩이를 훔치듯 닭의 뼈도 안남긴 <<대문학가>>들, 허위적인 보고에 <<문명>>의 계관을 씌워주는 관료기풍, 양대가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파는 영화포스터, 성감적이고 현세희롱적인 광란의 춤, 이런것들이 생활의 모퉁이 모퉁이에서 울려나와 하나의 거칠은 불협화음을 형성하고있는것이다. <<그>>는 리지적으로 주필이나 주임과 맞서 겨루어보았지만 주먹으로 바위를 치는 격으로 고배만 마신다. 삶의 현장을 정리하기엔 <<그>>의 힘이 너무나 미약했다. 그래서 <<그>>는 리성적인 대항보다 무의식적인 심리배설로 삶의 현실을 조롱한다. 거짓회보로 따온 <<문명향>>간판에 대고 오줌총을 쏘고 광고에 얼리워 엉터리 영화를 본 밸풀이로 영화관에서 큰소리로 욕설을 퍼붓고 문화궁에서 공연관람을 하다가 비닐사이다병을 쥐여뿌리며 지어는 시에미역정에 개배때기차는 격으로 안해가 기르는 고양이를 휘둘러 뿌리친다. 이쯤 풀이하고보면 작품의 뜻풀이는 되지만 <<그>>의 형상의 진실성문제가 아직 의문부호를 벗어나지 못한다. 대학생이였고 학원의 교원이였으며 신문사 기자인 <<그>>의 신분과 <<그>>의 행위는 너무도 엄청나고 믿을수 없을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다. 사실 <<문명향>>간판에 오줌총을 쏘는 등의 행위는 일정한 수양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공개적으로 할수 없는짓거리이다. 이렇고보면 우리는 문법적인 해석공간이나 사실적인 행위규범에서 벗어나 창작수법상에서 작가의 시도를 추적해야만 명확한 답안을 찾을수 있을것이다. 보건대 작가는 많은 경우에서 <<그>>의 원시적인 잠재의식과 심리활동을 행동화하여 표현하고있는것이다. 잠재의식이나 심리활동의 측면에서는 <<그>>의 그런 <<행위>>(행위화된 잠재의식 내지 심리활동)가 가능한것이며 또 긍정될수 있는것이다. 거짓말회보와 관료기풍에 대한 분개를 그것의 산물인 <<문명향>>간판을 보자 오줌이나 콱 쏴나라 하는 생각으로 표달할수 있는것이다. 그럼 작가는 무엇때문에 <<그>>의 잠재의식이나 심리활동을 행동화하여 표현하였는가? 제나름의 분석을 해보면 첫째는 그런 극단적인 <<행위>>는 사회적인 허위와 비리와 부진에 대한 비판의식을 더 강하게 나타내고 둘째는 그런 사회적고질의 뿌리깊음과 개인적대응의 무기력함을 보여주며 셋째는 리성의 정리를 받지 못한 잠재의식을 그대로 행동화하여 그것의 루추한 몸뚱아리를 드러내보임으로써 리성적인 사유와 진지한 삶의 자세만이 보람찬 인생을 창조한다는것을 보여줄수 있는것이다. 아마 그래서 작가는 소설을 끝마치면서도 로파심에서 <<그>>를 위한 변호를 선후 다시 계속하여 <<그>>가 안해와 함께 지난 생활을 반성해보고 사회적질문으로부터 자아에 대한 질문에로 환원하여 새출발을 다지는것으로 매듭을 지었을것이다.
48    금전만능, 향락주의, 참 사랑 댓글:  조회:1634  추천:0  2009-05-16
-단편소설<<나쁜녀자>>를 읽고 로.윌크쎈은 스코틀랜드의 작가이며 방송원이며 연설가이다. 그의 저작은 많은 나라들에서 발표되였다. 지금 그의 단편소설은 영국, 미국, 화란, 벨지끄, 프랑스, 독일 및 기타 일부 나라들의 잡지에 실리고있다. 그의 단편소설 <<나쁜녀자>>는 안해와 남편의 정부, 남편과 정부와의 대화로 엮어진 소설이다. 편폭이 크지 않고 사건교대가 대화에 기대고있지만 인물의 모순갈등이 고조에 이르러 피할길없이 부딪치게 된 설전(언쟁)을 펴보임으로써 인물들의 성격, 수양, 도덕풍모 등을 생동하고도 함축성있게 보여주고있다. 세상만사가 돈에 복종하는 금전만능의 사회에서 돈의 힘에 의하여 비탈려진 애정, 사내대장부의 위세나 풍모도 돈의 유혹에 기운을 잃고마는 현실, 비천한 출신속에 감겨있는 참사랑, 이것이 우리의 청각에 울려오는 이 소설의 메아리이다. 노르마와 라리프의 결합은 그 애초부터가 애정의 열매가 아니였다. 노르마의 경우에는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린다는 금전만능의 신념으로 제보다 젊고 유능한 사나이를 고른데 불과하고 라리프의 경우는 향락적인 생활에 인생을 절이려는 자기의 향락주의를 성공한데 불과하였다. 하기에 그들 부부간의 관계는 사랑에 대한 충성으로 매여져있는것이 아니라 부자가 빈자를 지배하는 다시말하면 경제적폭리에 따른 인격에 대한 돈의 지배로 유지되고있었다. 그러나 정부인 메라의 경우는 이와 달랐다. 비천한 출신속에 깊고 숭고한 사랑을 담고있는 그는 아무런 외적요소의 보탬도 없는 순수한 사랑 그 자체에 충성한다. 오히려 자기의 참사랑을 위해서라면 그 사랑에 붙어오는 외적부담(<<사랑하기만 한다면...외팔이 누이동생, 혹은 위궤양, 혹은 가짜이발, 무엇이든 좋아요.>>하고 메라는 말했다)도 달갑게 받아안으려 한다. 바로 그러했기에 그녀는 그녀의 사랑에 대한 충성을 리용하여 그녀의 사랑을 편취하고 그녀를 노리개로, 갱년기가 지난 안해에게서 받을수 없는 본능적만족을 충족시킬수 있는 성도구로 간주해온 정부 라리프를 결코 용서할수 없었던것이다. 여기서 사랑의 사기군은 라리프이다. 그는 향락적생활을 위하여 노르마한테 장가들었으나 그녀가 자기보다 나이 많기에 일찍 본능억제란 부부생활의 위기에 빠진다. 그러나 그래서 그가 선택한것은 사랑이 아니라 그 본능억제를 풀어줄수 있는 <<성도구>>였다. 갱년기에 이른 노르마로선 이것쯤은 허용할수 있었던 모양이다. 젊고 유능한 남편이 본능억제에서 해탈되는것은 되려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훌륭한 보양제였기때문이다. 물질욕이 강한 남편이 자기의 금전유혹을 벗어날수 없음을 확인한 까닭에 이런 엉뚱한 자비를 베푼것이다. 그래서 메라의 방세까지 대주었다. 그러나 <<방탕녀>>로 안 메라가 숭고한 애정과 사랑에 대한 충성으로 그들의 부부관계를 위협하자 그녀는 또 자기의 신념인 금전만능으로 메라를 위협한다. 그녀의 목적은 메라를 자기가 죽을 때까지 남편의 정부로 되게 하고 그래서 젊고 유능한 남편을 영원히 자기의 사랑의 <<노예>>, 아니 사실은 금전의 노예로 되게 하려는것이였다. 금전과 사랑의 충돌, 이것이 이 소설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현실적의의이다. 특히 소설이 세 인물의 대화로써 이같은 거창한 주제를 생동하게 보여주고있다는데 그 예술적매력이 짙게 담겨져있다.
47    전통의식, 당대의식 및 민족의식의 관계 댓글:  조회:1665  추천:0  2009-05-16
자기가 발딛고 선 사회와 문화의 성격을 올바르게 리해하고 접수하여 후세에 력사로 기증할 현재를 사회발전의 흐름에 맞게 꾸미려는것은 모든 학문, 적어도 사회과학의 거창한 주제이며 기본과제이다. 그만큼 지금 전 사회적으로 온양되고 다듬어지고있는 관념갱신과 당대의식의 탐구도 무게있는 력사적 의의와 현실적 의의를 담고있다. 과연 이런 사명감을 념두에 둘 때 우리 문단의 모지름도 만삭의 임신부가 겪지 않으면 안될 산전진통임이 틀림없다. 비록 한족문단에 비하여 지루한 침묵의 연장선을 그어왔었지만 오히려 그로 하여 엄숙성과 과학성에 담보를 얻을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담보가 차라리 남의 흉내만 내지 말고 한족문단에 대해 찬히 살펴보고 제나름의 사변적 연구를 할 때에만 가능할텐데 우리 문단의 현실태를 두루 살펴보면 남이 부른 구호를 뒤늦게나마 따라 부르는 페단이 퍽 활기를 띠고있는것이 민망스럽다. 자기의 두뇌를 움직일새도 없이 남의 뒤를 따라 덩달아 웨치는 그런 <<구호웨침식>>으로는 도저히 우리 문단의 미래를 불밝힐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한족문단의 지나간 페지를 다시 번져보면 민족의 렬근성을 찾던 나머지 민족의식으로는 안된다느니, 서방으로부터 당대의식을 받아들여야 한다느니 하는식의 주장들이 적지 않은 페지를 차지하였었다. 또 지금도 민족의식과 당대의식을 병렬 혹은 대립시키면서 민족의식이냐 아니면 당대의식이냐 하는 극단적인 선택에 네니 내니 하고 얼굴을 붉히고있다. 유감스러운것은 오랜 침묵을 지키던 우리 문단도 대개는 이러루한 주장들로 은근히 끓고있는 그것이다. 풀어말하면 이런 주장들과 견해들의 그 제기법에 한해서는 전혀 아무런 의심도 던짐이 없이 다만 어느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질문에 전투적태세를 취하고있다는 말이다. 사실 우리는 어느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질문에 앞서 이런 제기법부터 과학적이 되느냐 하는데 질문을 던져야 할것이다. 첫째, 만약 민족의식과 당대의식을 병렬 혹은 대립의 위치에 갈라세운다면 벌써 민족의식은 당대의식이 아니라는 상식적인 결론이 내려지지 않을수 없다. 그리고 당대의식이란 그 정의를 내리기에 앞서 벌써 현대인의 사고범주에서 산생되는 의식을 말함은 지극히 자명한 일인데 이에 따르면 우리의 민족의식은 현대인의 사고범주밖에 놓여야 한다는 황당한 결론을 내리게 된다. 둘째, 민족의식에는 조상세대가 유구한 력사의 흐름속에서 다듬어놓은 전통의식과 현대인인 우리가 다듬고있는 의식이 포함됨도 의심할바 없는것인데 전통의식과 구별되여야 할 후자를 구경 무슨 의식이라고 하는가 하는 웃음거리 비슷한 질문도 필요하게 된다. 셋째, 전통의식이나 당대의식이나 모두 시간적차원이라는 동질적근원을 갖고있다. 그런데 그들이 전통의식을 포섭한 민족의식을 당대의식과 병렬 내지 대립시킴으로 하여 전통의식과 당대의식은 각기 다른 두개의 의식에 주소를 붙이게 된다. 그렇다면 전통의식은 민족의식을 시간적차원에서 쪼갠 종개념이라 할 때 당대의식은 어떤 의식을 시간적차원에서 쪼갠 종개념인가 하는 질문이 던져짐을 막을수 없다. 네째, 민족의식이란 결국 민족의 미래를 도안하는 주체의식이다. 어떤 민족이든지간에 오직 민족의 미래를 도안하면서 끈질기게 민족의 자활력을 키우는데 은근한 야심을 품고있다면 그 민족에겐 틀림없이 유일 체계적인 민족중심의 자주의식이 기본 물줄기를 이룰것이다. 이런 민족은 외래의 의식도 그대로 받아넘기는것이 아니라 자기의 주체의식을 튼튼히 굳힌 배경하에서 가치판단에 의한 취사선택을 하여 주체적으로 리용하는것이다. 이것은 결코 이질적인 마구바꿈이 아니라 역시 자기 전통에 대한 발전적이고 계승적인 개편 또는 재편이며 현대적 민족의식의 창조인것이다. 사실 매개 민족의식은 그 사회적배경에서부터 자연환경에 이르기까지 워낙 동근일원(同根一元)적인 것이 아닌데 어떻게 외래의것을 그대로 받아들일수 있겠는가? 그리고 한 민족이 자기 민족의식의 체계밖에 이른바 없어선 안된다는 다른 의식의 체계를 세워 병진시킨다는것은 더구나 상상할수 없는 일이다. 민족의 확대된 시점에서 세계를 정시할 때 전통에 대한 검토이든 새 질서에 의한 창조이든 외래요소에 대한 비판적 수용이든 모두 결국은 성장을 기탁한 민족의 미래에 선물할 새로운 <<전통>>을 창조하는것이다. 즉 당대의식이란 결국 민족의식의 현대적표현이며 미래의 전통이라는것을 의심할 필요가 없는것 같다. 사실 우리가 관념을 갱신한다느니 당대의식을 키운다느니 하는것은 우리 민족의 현실사회를 대변하고 삶의 현실에 대응되는 의식체계를 세우려는것이다. 역시 민족의식의 현대적주소를 찾으려는것이다. 때문에 당대의식을 키우고 관념을 갱신한다는것은 개척을 모르는 고루한 사고방식이나 진부한 관념을 개변하는것이지 결코 전통을 외면하는것이 아니며 민족의식과는 더구나 저촉될수 없는것이다. 만약 당대의식이 민족의식의 현대적 표현이라는 제기법이 그런대로 성립된다면 현대적 민족의식으로서의 당대의식은 곧 미래의 전통이 아닐수 없다. 때문에 우리 민족의 삶의 내용을 담은 당대의식을 키우려면 모름지기 민족전통에 발을 붙이고 조상세대와 피줄을 끊지 말아야 한다. 하나의 민족으로서 자기의 정신적 기틀로 되는 문화전통이 없다면 그 민족은 벌써 령혼을 잃은 육체나 다름없이 분해되고말 운명일것이며 자기의 얼굴을 가지지 못하고 외래의 유혹에 저마끔 열사람이 열한개의 반응을 보여주는 민족은 사실 벌써 민족으로서의 참된 함의를 잃고만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의식이 력사의 범주에 속하는것이지 결코 력사가 의식의 범주에 속하는것이 아니다. 풀어말하면 력사의 흐름에 따라 의식은 부단한 선택과 다듬음이 있게 되는것이다. 바로 우리의 전통이 유구한 력사의 흐름에도 흩어지지 않고 우리 세대까지 전해질수 있은것은 시대에 따르는 갱신과 변질이 끊임없이 시도되여 왔기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에 들어와서 많은 전통들이 시대의 요청을 받지 못한다고 하면 그것은 조상세대의 잘못이 아니라 바로 새로운 시대의 요청에 따르는 갱신과 변질을 꾀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세대의 잘못인것이다. 오늘을 예견못한 조상세대에 죄를 씌운다는것은 과분한 처사이다. 오히려 우리가 조상들이 용케 물려준 전통을 미래에 전해지도록 현대적주소를 찾아주고 잘 가꾸어가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벗기 어려운 죄가 아닐수 없다. 확실히 우리는 흔히 전통을 다만 발생시간적차원에서 대상하였기에 미래지향적인 안목에서 전통에 대한 재창조를 기도하는것이 아니라 회고적인 자세로 마치 썩은 감자와 성한 감자를 고르듯이 기성되 형태자체에 대한 가치판단에 그만 주저앉고있다. 이런 틀린 자세는 전통연구를 골동품을 만지는것과 같은 취미에 빠지게 하는바 미래를 위하여 과거의 맥박을 찾는것이 아니라 단순한 말타고 꽃구경식의 감상에 머무르게 한다. 우리의 문단을 살펴보면 이는 아주 뚜렷한 흠집으로 나타나고있다. 이른바 민족특성을 나타낸다는것이 현대성을 몰린대로 <<전통적>>인 복장, 풍속, 성격, 기질, 륜리도덕 등만을 민족적인것으로 잘못 확신하면서 조금이라도 옛날의 것과 어긋나는것이면 곧 민족특성에 맞지 않는다고 도장찍는다. 즉 삶의 내용은 새로운 광장에서 변했음에도 여전히 조상세대의 전통을 물려받은 그대로 주장하는것이다. 이것이 의식면에서는 민족의식을 다만 전통의식으로만 생각하게 하는 페단을 초래하였다. 하기에 이른바 당대의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고루한 전통을 배격하는것과 민족의식을 비난하는것을 혼동시하고있는것이다. 이 모든것은 그네들이 전통문화의 본질적특성에 대한 몰리해에서 기인된것이다. 전통문화의 본질적특성은 바로 부단한 발전연변성 또는 계승성과 상대적인 응고성 또는 력사적관성이다. 이는 문화는 인류로동의 창조물이라는것과 근원적인 인과관계를 맺고있다. 즉 문화는 인류의 로동성장의 반영물로서 거기엔 어차피 부단히 자기를 확장시키고 완성시켜 최종적으로 자연상태에서 완전히 탈피하려는 인류의 향상심과 함께 또 자기가 마련한 질서와 체계를 유지하면서 자기가 발딛고 선 자연환경, 사회환경의 현실상황에 미덥게 적응되려는 점착력이 두개의 힘이 되여 모순운동을 형성하고있다. 바로 이와 같은 공제성과 가변성으로 하여 전통문화의 공제계통은 자아공제계통과 자아조절계통으로 이루어진다. 하여 전통문화는 력사의 흐름속에서 결코 무작정 본원적 혹은 발생적인 형태 그대로 후새대에 강요되는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광장에서 여로모로 자활능력과 존재적가치를 검험받게 된다. 이때 전통문화는 자아공제계통을 통하여 극력 이미 굳혀온 생활방식, 법률, 도덕규범 등으로 사람들을 단속하는 한편 자아조절계통을 통하여 새로운 력사시대의 요구에 만족을 주기 위하여 내적인 조절과 변질을 꾀한다. 그런데 인류문화가 저급단계에서 고급단계에로 발전함에 따라 특히는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하고 시간적, 공간적으로 세계가 좁아지면서 전 지구촌을 단위로 하는 현대화 문화의 가능성이 날로 현실화됨에 따라 민족의 전통문화는 자기의 자아공제계통을 엄격히 단속하고 약화시키는 한편 자아조절계통을 훨씬 강화함으로써 수용, 융합, 다듬기 등 창조적기능을 활발히 키워 민족의 확대된 시점에서 외래의 선진적문화도 적극 섭취하면서 기성된것에 부단히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현대적주소를 찾아주는것이다. 현대적주소를 찾았다는것은 론의할나위조차 없이 그것이 새로운 내용으로 현대사회를 대변하며 삶의 현실에 대응된다는것을 뜻하는것이다. 또 인간의 삶의 흐름을 봐도 그럴수밖에 없다. 인간력사는 결코 이어달리기처럼 한세대 한세대의 계선이 선명한 련계로 되여있는것이 아니라 3대 혹은 4대가 일정한 자연환경과 시대배경하에서 함께 삶을 엮어간다. 하기에 자신은 그 시대에 살지 않았더라도 그 시대를 넘어와서 그와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전세대가 혈연의 끈이 되여 결코 그더러 과거로부터 완전히는 독립해서 존재하게 하지 않는것이다. 이렇게 후세대는 어차피 전세대에 의하여 마련된 환경, 즉 전통의 제약속에서 살게 되는것이다. 하지만 삶의 공간이 달라졌음에도 삶의 내용은 여전히 그대로라면 거기에 벌써 동시대로부터의 락후가 찾아드는것이다. 하기에 시대적요청으로부터 후세대는 어차피 전통의 변질을 꾀하게 되며 전세대도 시간적, 공간적 이질감으로부터 결국 전통을 반성하지 않을수 없게 된다. 이로부터 전통에 대한 현대적의미매김이 가능하게 된다. 이때 도저히 현대적주소를 찾아줄수 없는것은 자연도태될수밖에 없는것이고 새롭게 창조된것, 외래적인것 등이 그 공간을 보충해주면서 미래에 새로운 환경을 마련한다. 력사는 이렇게 세대세대로 이런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흐른다. 보다싶이 민족의식은 전통보다 훨씬 넓은 의미에서 설명되여야 하며 민족의 미래를 도안하는 의식의 총체로 확인되여야 한다. 풀어말하면 민족의식이란것도 결코 최종적으로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민족의 삶의 현장에서 새로운 생활원리에 대한 발견과 실천을 통하여 사회의 본질적파악에 병행되는 의식의 부단한 창조과정인것이다. 그런데 이와같이 현대적 삶의 매듭을 풀어나가는 과정에 산생되는것이 바로 당대의식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당대의식을 민족의식과 병렬 혹은 대립시키고있기때문에 흔히는 전통에 없거나 때지난것을 민족의식에 없는것으로 잘못 인정하여 그것을 이른바 민족의식의 밖에서 찾고있는것이다. 이처럼 전통을 민족의식으로 확대하여 리해하는것은 기실 민족의식은 조상세대들이 창조하여 물려준것이 전부이고 우리는 그것을 보충, 창조할 가능성이 없다는것으로도 풀이된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지금 말하는 전통도 력사의 흐름에 띄워놓고 살펴보면 결코 한날한시에 창조된것이 아니고 전세대의 전통에 후세대의 창조와 다듬음이 끊임없는 가운데서 가지를 쳐왔다는것을 당연하게 발견할수 있으며 그로부터 우리도 전통에 대한 보충과 새로운 창조가 가능한것은 물론 력사가 벌써 그만한 한토막을 다름아닌 우리한테 부탁하고있다는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이와같이 민족의식의 내용의 전부가 전통뿐이 아니라고 할 때 오늘 우리가 처한 시대에서의 민족의식은 구경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민족의식의 현대성을 빼놓고는 전혀 대답이 완전할리 만무하다. 또 민족의식의 현대성을 말하자면 당대의식을 몰리고는 도저히 설명이 되여지지 않는다. 즉 우리가 발딛고 선 삶의 마당을 참으로 미더웁게 꾸며가자면 반드시 그 삶의 내용을 대변하는 당대의식을 세우지 않으면 안되는것이다. 쉽게 풀어말한다면 내가 사는데는 에누리없이 내 나름의 사고방식이 있어야 한다는것이다. 조상의것도 내것으로 만들고 남(외래)의것도 내것으로 되게 하여야 한다. 사실 당대의식이란 개념이 언제부터 제기되였느냐 하는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한다면 시대적요구로서의 관념갱신, 당대의식의 정립은 인류문명사를 발전시켜온 원동력임을 승인하지 않을수 없다. 어느 민족의 어느 시대의 문화적발전이든지 모두 자기의 원래의것을 반성하고 외래의것을 수용하며 새로운것을 창조하는 이 세가지 경로를 밟지 않은것이 없음을 력사는 증명하고있다. 이는 문화발전의 필연적인 객관법칙이기도 하다. 우리의 전통도 이런 경로를 거쳐왔음이 틀림없고 거기엔 결코 고유한것만이 아닌 외래적요소가 포함되여 있음도 확연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하나의 민족적전통으로 확고히 굳혀질수 있었음은 바로 어떤 경로를 통하여 어떤 변화나 변질을 겪었든지간에 그것이 하나의 핵, 즉 민족의 주체성에 의해 유기적으로 통일되였기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당대의식을 민족의식과 병렬 혹은 대립시킨 나머지 당대의식을 단면적으로 서양의식의 탈바꿈으로 잘못 알고있다. 민족의식의 밖에서만 찾자고 하니 그럴수밖에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이런 착오를 진리로 알고있는 사람들은 서양의 철학, 서양의 사상, 서양의 그 무엇에 그대로 당대성의 탈을 씌워가지고는 이를 수용하는것이 곧 당대의식이요, 관념갱신이라고 우겨대고있다. 그들한테서는 당대의식과 서양의식이 동의어로 되고있다. 하여 그들은 당대의식을 수립하는가 안하는가 하는 표준을 서양의식을 접수하는가 안하는가 하는것으로 삼고있다. 우리 문단을 살펴보아도 작가들이 관념을 갱신했는가, 당대의식을 수립했는가를 진단할 때 흔히는 모더니즘문학을 대표로 하는 서양의것을 접수하는가 안하는가, 지어는 한 작가의 <<의식의 흐름>>소설이 서양의 <<의식의 흐름>>소설파의것과 일맥상통한가 안한가 하는것을 놓고 아니어니하고 시비할 정도의 페단까지 나타나고있다. 조금이라도 다르면 가짜라고 비난하고 이른바 서양의것을 접수하지 않고 사실주의문학을 견지하면 보수적이요, 시대의 락오자요 하는 질책까지 들이댄다. 왜서 이처럼 극단적인 주장들이 문단에서 춤을 출수 있는가. 여기엔 얼핏 보기에 그럴만한 리유가 주어지는것이다. 그것은 오늘의 우리 국정으로부터 살펴보면 자연과학의 새로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고속도의 세계적절주와 발걸음을 함께 하려면 도저히 서양을 외면할수 없으며 서양에 수용적 자세를 취하지 않을수 없음은 너무나도 자명한 현상태이기때문이다. 서양이 현대적물질문명의 창조와 함께 그 근거로 되는 동등수준의 관념을 세운데 반하여 우리는 물질문명의 근대적 행군과 함께 어느정도로는 그 원인으로 되는 의식의 세기적변질에 모대기고있는것이다. 그만큼 서양의 충격은 세계의 접근에 따르는 충격으로서 결코 일시적인것이 아니라 지속적인것이며 요청적인것이 아니라 강압적인것이며 우연적것이 아니라 필연적인것이다. 허약한 경제를 살찌우려면 무엇보다도 정신적성숙이 앞서 요청되는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지간에 수용이란것은 결코 서양의식을 그대로 당대의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과 맞물림을 이루지 않는다. 오늘 서양의 발전과 우리의 락후라는 이 특정된 현상태에서 당대의식을 세우려면 틀림없이 문화발전의 세개의 도경-반성, 수용, 창조가운데서 수용이 뚜렷한 요청으로 나서고있을뿐이지 결코 이것으로 민족적인것을 대체할수는 없는것이다. 그것이 어느만큼 중요성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비중을 점하든지간에 에누리없이 우리를 위해 다듬어진다는데 목적성이 있는것이다. 가령 우리가 전통의 내용과 특점을 분석함도 없이 죄다 고루한것으로 도장찍어 내동댕이친다면 또 서양의식에 대해 근본적의미조직에 대한 깊은 리해와 파악도 없이 그 허울도 벗기지 않은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특히는 새로운 문화의 형성을 우리 민족의 주체적발전이란 시각에서 파악하고 추구하는것이 아니라 맹목적으로 변화의 물결에 자기의 운명을 내맡기고 밖에서 밀려오는 도전에 스스로의 힘을 분산한다면 우리는 긍정코 얻은것이 잃은것을 보상할수 없는 비극을 표현하게 될것이다. 맹목적인 수용태세 자체가 벌써 문화의 창조를 저애한다. 맹목적인 수용은 옮겨옴이지 창조가 아닌것이다. 자기의 몸에 맞게 치장할줄 모르고 남의 흉내에만 바쁜 인간, 그와같이 정신적기틀을 뿌리뽑힌 사람의 삶의 비극이 너무나도 처참하다면 민족성을 상실한 민족의 운명은 또 어떨가?! 순간의 선택이 십년을 좌우지한다고 한다. 특히 변혁의 기운이 세차게 감도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명석한 두뇌를 가져야 한다. 인젠 근본적생각을 정리하고 정처없는 방황을 결산할 때다. 적어도 우리는 인간의 주체성을 높이 웨치듯이 문화의 발전과 창조에서의 민족의 주체성에 대해서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실 오늘에 들어와서도 세계사라는것이 틀림없이 각기 다른 민족들에 의해 그 페지를 적어가고있다는것을 념두에 두고보면 민족문화의 문제는 바로 세계사의 문제외의 다른것이 아니기때문이다. 비록 세계가 시간적, 공간적으로 축소되고 민족들지간의 동질성이 뚜렷이 성장되고 지어는 융합의 대문에 들어선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매개 민족의 필연적인 성장의 결과로 되자면 틀림없이 매개 민족의 주체적인 노력을 전제로 하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그러므로 민족전통의 계승, 발전문제는 여전히 우리가 지향하고있는 현대화작업의 구심점 내지 정신적기반임이 틀림없는것이다. 그런데 계승은 반성을 전제로 할 때 바람직한것이고 발전은 창조를 외면할 때 앞길이 막힌다. 이때 반성과 창조의 요청을 받는것이 곧 수용이다. 우리는 삶의 현장에 떳떳이 서서 부단히 확대재생산되는 문화의 원동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흐트림없는 자세로 자기식의 길을 개척하여야 한다. 오직 우리의 문화적특질을 현대적의미에서 재확인하고 부단히 새로운 시대의 감각에 맞게 재창조하는 과정에 외래의것을 리해, 평가하고 수용함으로써만 비로소 민족의 밝은 미래가 미덥게 기탁되는것이다.
46    인간의 본능과 인간성 댓글:  조회:1585  추천:0  2009-05-16
-단편소설 <<새벽새는 울고있다>>에서 본다 <<새벽새는 울고있다>>. 그것은 이 새벽에 목을 매달고 지옥의 대문안으로 성큼 들어가버린 궁재씨를 슬퍼하여 우는것일가. 물론 살아있는 사람한테는 죽음이란것이 언제나 소름이 끼치는것이고 어두운 색갈일수밖에 없다. 그러나 바로 다니엘 띄포가 <<한 사람에게는 구원의 길로 되던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파멸의 원인으로 될수 있다>>고 했듯이 죽음이란것도 어떤 사람에게는 고통과 불행일수 있으나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과 해탈일수 있는것이다. 그렇다면 궁재씨의 죽음은 어떤 색갈의 것일가. 그것을 알기 위해 궁재씨의 생활종적을 추적해본다. 우선 궁재씨는 련속 두 안해를 잃은 외토리이다. 사랑하는 짝을 잃는것이 죽음 다음으로 가는 고통이라고 하는데 특히 남성에게 있어서는 사랑을 잃는것이 생명을 동시에 쫓아내는거나 다름없다고 한다. 하물며 궁재씨는 련속 두 안해를 잃었음에랴. 어찌보면 이것이 가난과 함께 궁재씨를 타락의 심연에 떠밀어 넣은 원인일수 있는것이다. 중년상처에 대들보가 휜다고 하지 않는가! 밤늦게 돌아가도 <<몸열기로 이불속을 따뜻이 덥혀놓고 기다려줄 녀편녀도 없는>> 너무나 차가운 기운에 묻혀있는 오두막집에 꽉 들어찬것은 가난이란 재산뿐이여서 <<내집이구나 하는 따뜻함과 위안>>이란 도저히 가질수가 없다. 녀자의 손길이 닿지 못한 집에 생기가 돌수 없었고 모든 생활이 계산적일수 없었다. 다음 궁재씨는 너무도 가난에 익숙해져 있었다. 두 안해의 병을 치료하느라고 <<숱해 걸머진 빚때문에 너무 주눅이 들고 가난구덩이에 빠진>>것이다. 옷은 입은지 몇십년이나 되는지 <<제법 이를 기르기가 맞춤하>>였고 해마다 쌀돈으로 그럭저럭 살아가면서 치솔질도 소금물로 하는 형편이다. 남들은 화학비료농사를 짓는다고 하지만 그는 남의 흉내를 내기도 힘든 처지였고 자기에게 소없고 수레없어 남의걸 삯내여 쓰는 형편이였다. 큰아들은 그 또래에서 혼자 <<왕바신>>을 신는 신세였고 고중진학시험에서 성적은 괜찮았으나 뒤를 대줄 돈이 없어 학교를 못갔다. 외손자마저 에미한테 업혀 외할아버지집에 설쇠러 왔다가 급성페염에 걸렸으나 제때에 치료를 받지 못하여 죽고만다. 모든것이 가난때문이다. 실로 가난이 죄였다. 게다가 그한테는 서로 위안하고 의지할 안해마저 없다. 궁재씨는 이런 가난과 고통과 불행에서 해탈되고 잊어버리는 처방을 술에서 찾으려 했다. 코를 찌르는 싱긋한 술냄새에 짜릿한 흥분과 쾌감을 느끼며 괴로운 세월을 죽였다. 인젠 <<밥 안먹고는 살아도 술 안먹고는 못살>>지경이다. 그만큼 그는 일년내내 외상술을 마시지만 그 외상술값만은 달마다 어김없이 물군하는것이였다. 하루에 적어서 한근, 한달이면 30원의 돈이였다. 쌀돈에 망하는걸 모르는바 아니지만 오히려 인젠 술없인 못사는 형편이 되고만것이다. 궁재씨가 그 지루한 세월을 죽여주는 다른 한 처방은 화투놀이다. 일년에 할수 없어 짓는 농사외엔 하는 일 없이 화투판에 붙박힌다. 점심을 넘겨도 배고픈줄 모를 정도로 화투귀신이 돼버렸다. 물론 꿈속에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명월이년>>과 즐기는 장면도 구을려본다. 정말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른다. 궁재씨의 비극은 이로써 시작된다. 최종적으로 술과 놀음을 이기지 못하는 자는 멋없이 자기의 일생을 무덤을 파는 과정으로 만드는 자이다. 왜냐하면 마음이 흐트러지고 게으름병이 생기게 되기때문이다. 물론 인간에게는 환경을 이길수 없는 운명이 주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에 운명이란것이 과연 있는것이라고 해도 한 인간의 운명의 극치는 의지와 리성의 노력에 의해 밝혀진다고 해야 옳을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의지와 리성은 이른바 어쩔수 없다는 역경도 물리치는 수가 있는데 운명이란 전혀 돌려세울수 없는것이기때문이다. 객관적 필연성만 탓하면서 불행속에서 더 큰 불행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할 대신 자기 육체를 멋없이 소비하고 자기 정신을 의의없이 마취시켜버리는것은 지나치게 계산적인 숙명론이 아닐수 없다. 때론 큰 재난이 사나운 짐승처럼 물어뜯으려고 무섭게 달려들어도 삶의 의욕으로 완강하게 맞선다면 혹 기가 죽어 달아나버리는 수도 있지만 때론 타락과 게으름으로 하여 사소한 일이 어쩔수 없는 큰 재난을 가져올수도 있는것이다. 이런 도리가 어리무던한 궁재씨같은 사람에게는 너무도 비현실적인 고차원의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문제는 작품에서 궁재씨의 비극적 결말이 두 세대의 대항적 충돌로써 초래되였다는데서 그런대로 제기할 수밖에 없다. 시대적 인식을 위한 현실적 비판이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왜냐하면 의식의 차원에서 보면 궁재씨의 경우 삶의 의의보다는 삶의 의미, 즉 인간본능으로서의 생존욕구가 더 강하게 내비친다면 영호나 영철의 경우에는 삶의 의미보다는 삶의 의의, 즉 인간성으로서의 가치추구가 더 짙게 내비치는것이기때문이다. <<자기생활에서 장래와 현재에 아무런 의의를 찾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인간성을 상실한것이 아니고 무엇이랴>>(리기영) 궁재씨의 타락은 그만의 파멸을 의미하는것이 아니라 후세대까지를 재난에 빠뜨릴수 있는것이다. 라태는 원래 7대악의 하나로서 자기의 일생뿐만아니라 후대까지 재난에 빠뜨리게 되는 생활의 가장 큰 죄악이다. 그는 노력과 분발, 지어는 발악적으로 가난을 털어버리려고 한것이 아니라 새 빚으로 낡은 빚을 메꾸어버리는것으로 세월을 멋없이 흘러버렸다. 그런데 둘째는 돈이 없어 학교에 못가고 큰아들은 <<왕바신>>신세를 벗지 못했지만 일년내내 술값만 떨구지 않는다. 그래서 두 아들은 더는 참지 못하고 아버지와 대항해 나섰다. 한창 젊음이 파랗게 자라나는 나이인데다 문명의 세례를 보다 생활적으로 접수한 그들이 도저히 죽음을 기다리며 사는 아버지의 삶을 본뜰수는 없는것이였다. 그런데 아직 학생이고 공부에 포부를 기탁하고있는 둘째는 단연히 집을 뛰쳐나가지만 이미 농촌일에 몸을 잠근 큰아들은 자기가 처한 환경에서 제나름의 방식으로 대항해나선다. 바로 자기 삼촌한테 억지당한적 있고 또 <<본가집에 왔다가 아이를 죽인 죄로 시집에서 쫓기워 와있는>> 이붓 동갑누이를 억지 강요하여 데리고 살려하는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너무 창졸하게 사회관념도덕을 전달하는데 그치거나 극단적인 흑백론리로 영호의 행위에 대해 도덕적 재단을 할수 없다. 왜냐하면 영호의 행위는 결코 그 행위자체에 의미가 매겨지는것이 아니라 바로 강한 삶의 욕구로 자기의 인생을 개척한다는 그 시점의 상태를 확대시키고있다는데 자리매김을 주고있기때문이다. 일찍 가난은 영호를 실련의 <<선수권소유자>>로 되게 하였다. <<왕바신 신세>>, <<시계 한번 못차보구...>>. 워낙 자부심이나 자존심이란것이 다만 정신적인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외형적인것 이를테면 먹고입는것이나 기타의 물질적인 것과도 관계된다. 바로 영호의 자존심은 가난때문에 여지없이 꺾이웠던것이였다. 그 많은 꿈이 좌절되고 수정되여버리는 사이에 영호도 관념도덕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찢어지는 마음의 쪼각들을 인내와 침묵으로 주어맞추면서 도덕의 가죽으로 만든 방패로 자기의 들뛰는 마음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그도 끝내는 남과 부럽지 않게 살아보겠다는 생의 욕망과 최저한의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마저 실현할수 없다는 현실앞에서 도저히 참을수 없어 발악적인 비명을 지르고야 만것이다. 단순히 가난때문만이 아니다. 아들한테 신 한컬레, 아니 치솔약 한통도 안사주면서 일년에 삼백륙십여원이란 술값만은 눅거리 쌀돈을 가져와서라도 물어대는 아버지 궁재씨의 타락때문이였다. 정에도 한도가 있는것이고 례에도 한도가 있는것이다. 현실성을 배제한 마음만의 정이나 례는 가식밖에 남을것이 없다. 영호와 궁재씨의 관계는 인젠 다만 가부장제적 봉건례의도덕의 사슬에 매여 유지되고있을뿐 전혀 화해의 접점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마저 궁재씨가 자기의 인생은 마비되여가지고도 도덕적방패를 들고 그를 죽음에로 협박(피를 보면서도 부삽을 들고 그한테 달려든다)할 때 더는 지탱할수 없게 되였다. 이제는 전혀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되는 경우에 인간은 오로지 자기의 의지대로 하지 다른건 전혀 돌보지 않는다. <<니 능력있어 다른 놈들은 다 련애하는데 나는 못한다. 니는 <보토리>질해라. 나는 안한다. 내하구 살자는 녀자가 없으니까 봉녀하구 잔다. 어째? 니덕에 우리 둘다 거지다. 거지끼리 사는데 어째?...>> 이것이 영호가 궁재씨를 구박하면서 악에 받쳐 웨쳐댄 말이다. 인간은 동물적 본능도 자기의 리익에 복종시킨다. 어찌보면 실련의 <<선수권소유자>>인 영호와 한번 당한적 있고 또 시집에서 쫓기워 온 봉녀가 결합되는것이 훨씬 계산적이고 경제적이며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어떤 일의 해결에서 언제나 그 리해관계를 같이 하는 자가 가장 적극적인 참여자일것은 당연한 리치이기때문이다. 다리부러진 노루 한굴에 모인다고나 할지, 혹은 영호의 말대로 <<거지끼리 산다>>고 할지. 하여간 둘다 자기의 처지에 맞는다는 리해를 가질수 있는 경우인것이다. 사실 궁재씨의 경우에도 그처럼 길길이 뛴것이 자기 동생이 조카딸을 강간하던 때와는 다른 뜻에서일것이다. 즉 그것은 강간으로 인정되여서보다 어쨌든 이붓 오랍누이로 한집에서 함께 자란 사이라는데서 충격받는 전통적인 륜리관념의 관성때문이였을것이다. 하기에 영호가 결코 일시적인 본능욕구의 충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생의 욕구내지 생육을 목적으로 하는 결혼까지를 추구한다는 사실의 힘에 눌려 자기의 도덕적 방패를 던져버리고 만것이다. 그는 아들의 행위를 리해하고 량해하고있는것이다. 그는 자기의 허무한 삶에 대한 뼈저린 참회와 함께 그들 둘의 장래를 기도한다. 비록 그의 생명으로 보면 그의 참회는 때늦은것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어느때나 참회가 있는 죽음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느끼지 못하고 경망스럽게 홀대했던 삶의 참뜻이라던가 철저한 인생반성을 흔히는 그런 죽음의 마당에서 깨닫는수가 있기때문이다. 잃은 물건은 되찾을수 있어도 잃은 시간은 되돌아올수 없는바 이미 허무한 세월속에서 인생의 진이 다 빠지고 삶의 터전을 놓쳐버린 궁재씨는 이 시각 죽음의 수단으로써 자식들한테 속죄하는 충실감을 맛보고있는것이다. 영호의 지나친 행위에 도덕의 말매를 안겨야 할지는 모르나 그러나 궁재씨 자신으로 말하면 문명과는 너무도 멀리 떨어졌던 릉욕의 한 세대를 조용히 잠재우는 비장한 행위를 한것인지도 모른다. 아, 그래서 <<새벽새는 울고있다>>!
45    변질된 밥사발의 질서 댓글:  조회:1576  추천:0  2009-05-16
--<<혼사날의 별곡>>에서 본다 원래 가정에서의 밥사발의 질서는 너무나 단순하고도 엄격하였다. 할아버지까지 함께 있다면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나, 안해, 아이 하는 순서로 배렬하면 되는것이다. 그것은 그때는 밥사발의 질서를 세우는데 오직 혈연적인 세대관계란 조건 하나밖에 없었기때문이다. 그만큼 어린아이들까지도 그 순서를 알수 있는 가장 <<천진>>한 륜리적 질서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어쩐지 사회에서뿐만아니라 가정에서까지도 그 밥사발의 질서가 깨여지고 새로이 복잡하고 미묘하며 황당하기 짝없는 밥사발의 질서가 원래의 자리순서를 망그러뜨리고 인간가치를 변질시키고있다. 그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날로 팽창되고있는 상품시대와 함께 밥사발의 질서를 제약하는 조건이 상업인간이란 새로운 개념의 뚜렷한 확립과 함께 변질되고있는것이다. 상업인간을 우리 나름대로 통속하게 인생이나 인간관계를 상업화하는 인간이라고 리해한다면 그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권력과 돈일것이다. 권력의 위력이란 대단한것이다. 그것은 한 사람이 천만사람을 지배할수 있는 힘이다. 그만큼 그것은 사회의 허위와 아첨을 낳는다. 푸짐한 술상에서 권력의 대소와는 상관없이 륜리적인 년령순서대로 술을 부었다고 자랑하는 사람조차 도리여 얼마나 권력의 중압에 지긋하게 눌리웠으면 그렇게 평범한 행동을 비장한 결심을 내리고 했겠는가 하는 련민이 앞서는것도 이때문일것이다. 혼사날에 촌뜨기 친가편보다 뜨르르한 시내간부인 외가편을 상빈으로 보내는것이 체면이 선다고 생각하는것을 그 집의 가풍이 더럽다고만 보기에는 이 사회가 벌써 그만큼 비뚤어져있다. 돈의 위력도 대단하다. 비렁뱅이가 가난뱅이를 구제한다는 말도 있지만 이 사회에는 억만이 아니라 단 몇장의 지페때문에 자그마한 꿈마저 산산히 깨여지고 사회적 인간가치가 여지없이 떨어져버리는 수가 푸술하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를 모시는 전제조건을 신체가 튼튼하고 상당한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는 금전주의로 내세우는 경우도 억이 막히는대로 현실에서 식은죽 먹듯 찾아볼수 있다. 그러고보면 삼촌되는 사나이가 조카딸의 혼사날에마저 가문의 좌상대우는 커녕 상빈으로도 가지 못하는 홀대를 받는것이 그 가문의 가풍탓이라기에 앞서 그 자신이 가난한 탓이라고 하는것이 퍽 당연해보인다. 가치표준이 변질된 <<진실>>이다. 그런데 이제 <<정채>>롭고 볼만한것이 밥사발의 륜리적인 질서를 파괴하고 가치표준을 변질시키는 쌍둥이-권력과 돈의 맞겨룸이다. 두 힘의 맞겨룸, 그것은 마치 범과 사자의 대결처럼 생사판가리이다. 그러면 구경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일가? 얼핏보면 <<돈>>이 승자이다. 가난때문에 좌상대우도 못받고 그래서 분김에 잔치집을 뛰쳐나오고 말았던 사나이가 조카의 잔치에 석탄 한 자동차와 고급세탁기를 잔치<<부조>>로 내치자 온집의 사람들은 혼이 다 날아날 지경으로 경탄을 금치못했고 <<대통령>>이란 최고권력도 <<손쉽게>> 획득한다. 과연 돈이 날개다. 그 돈이 <<대통령>>이란 권력까지 사버렸으니 그가 승자임은 당연한것이다. 하긴 어떤 물건이나 다 살수 있는것이 돈이고 상급에겐 비굴한 아첨을 보내고 하급에겐 상대방의 인격이나 재능보다는 안면과 지갑의 크기에 더 관심하는 즉 위세나 풍모가 더 큰 권력이나 돈앞에서 기운을 잃고마는것이 권력이고 보면 그 승패는 벌써 결정된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만 않다. 그들은 둘다 패자였다. 남몰래 슬그머니 잔치집에서 사라져버린 두 사나이-권력의 덕택으로 외가편이지만 언제나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 되여 최혜를 받던 자기가 그 권력이 돈앞에서 기운을 잃어 한낱 <<검둥이>>의 홀대까지 받게 되였음을 통탄하며 뻐스에 오르는 <<공회주석>>, 돈으로 마침내는 권세부리던 자를 내리누르고 <<대통령>>의 보좌에까지 올라앉았으나 돌아갈 차비마저 없어 걸어가면서 허무와 비통에 눈물뿌리는 <<사나이>>, 그들은 왜 패자였을가? 그것은 영원히 령혼하고는 같이 살아있을 인간자신의 가치를 추구하는것이 아니라 변질된 가치, 풀어말하면 벽의 그림자처럼 있다가는 없고 하는 권력이나 돈과 같은 외부적 힘에 의해 자기를 실현하려 했기때문이다. 일단 그 외부적 힘이 눈석임같이 녹아버리자 기탁점을 잃은 그들의 정신은 여지없이 허물어지고만것이다. 실로 불쌍하고 의미짙은 배우들이다. 하긴 우리 모두가 사회란 무대우에 나선 배우들인것 같다. 그래선지 그들한테서 어쩌면 자기의 그림자도 찾아본듯싶어 가슴이 알짝지근해난다. 허욕을 허위로 웃고 허위로 우는 배우, 아, 그것이 진정 인간의 참모습은 아닐텐데...
44    문학정신과 문화반성 댓글:  조회:1643  추천:0  2009-05-16
1. 력사적착오, 문화적반성-<<<볼쉐위크>의 이미지>> 문학이 인간경험을 다룬다고 하는데 인간경험에서 력사적 경험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삶의 현장과 멀어진 과거형으로서 일종 전통성 내지 습관성을 강하게 나타낸다. 그런데 그것은 또 그런 전통성 내지 습관성에 힘입어 과거의 현재적 존재성을 잃지 않고 있는것이며 그만큼 력사의 질곡조차도 아직 력사와 현재가 반성적 의미에서의 구조적 단절을 철저히 하지 않았을 경우 현실의 련쇄반응을 통해 새로운 력사의 질곡을 만들어낼 수 있는것이다. 력사의 체험적 아픔을 문명의 발전적 차원에서 재인식하는것은 그래서 필요하다. 정세봉은 소설 <<<볼쉐위크>의 이미지>>(<<장백산>> 1991년 2호)에서 력사의 한 세대를 오늘의 의식의 현장에 옮겨놓고 한 참다운 인간이 어떻게 외곡된 력사에 조종되여 자아가 변형되고 지어는 거세되여버렸는가를 보여줌으로써 체험적 인생의 재조명과 반성을 꾀하고 있으며 력사의 질곡에 대한 공동의 책임을 묻고있다. 주인공 윤태철은 이데올로기에 투철하고자 몸부림쳤던 그 시대 인간들의 상징으로 되고있을뿐더러 변화된 시대에 적응하려고 무작정한 순응주의적반응을 보인 과거형 인간의 상징으로도 되고있다. 일상성의 생활조차 정치적 오염으로 하여 숨막혔던 그 당시의 력사적 상처 내지 비극은 우선 개인적 차실이기전에 벌써 사회적, 집단적 차실이였다. 다시말하면 차실자체가 객관적으로 불가항력적일 때 리성은 오히려 한 개인만이 아닌 그 시대자체가 상실하고 있다는 비평이 성립되는것이다. 적대적 투쟁의 승리를 쟁취하였으나 아직 적대세력이 존재하고 있고 특히 신생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진영의 겹겹한 포위속에 있다는 현실적 의식과 판단은 우리 당으로 하여금 계급투쟁확대화를 범하게 하였다. 타도된 적대세력이 저들의 세계적 세력에 힘입어 잃어버린 <<천당>>을 되찾으려 한다는것은 리치에 맞는 판단이다. 그런데 결국 이런 판단은 쉽게 <<싸리그루에서 싸리가 난다>>는 과잉판단을 인출하였다. 그리하여 봉건사회의 련좌법이 꺼리낌없이 살판쳐 일상성의 생활조차 인정이 메마르고 지어는 피로 얼룩지고말았다. 이에 순응적으로 착취와 피착취, 압박과 피압박, 통치와 피통치의 체험적 인간인 윤태철이가 인식적, 행위적으로 이런 계급투쟁확대화를 긍정, 채납할수 있고 인정에 매이지 않고 기치선명하게 투쟁의 선두에 설 수 있으며 지어는 생명이 다 하도록 이데올로기에 충성, 복종할 수 있는 것은 그런대로 그의 인생의 목적에 의하여 당위성까지를 확인받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만약 윤태철의 인생의 목적에 대한 정리를 잘 한다면 쉽게 그의 비극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을것이다. 첫째, 윤태철은 지주의 압박과 착취를 받은 계급대항의 사회에서 생활하였다. 그만큼 그가 혁명에 참가한 초기의 목적은 바로 지주를 타도하고 땅을 분배받아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것이였다. 그것은 계급적 대항, 즉 직접 지주계급과 맞겨룸하는 혁명이였던만큼 지주계급은 그의 직접적인 적이였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그는 <<계급투쟁을 기본고리>>로 하던 세월에 지주, 부농분자와 가장 철저하게 맞서서 <<독재>>를 진행할 수 있었을뿐더러 지어는 <<싸리그루에서 싸리가 난다>>고 그들의 자식과도 철저히 <<계급계선>>을 나누어야 철저한 <<혁명성>>을 지켜나갈 수 있다고 믿어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력사에 투철한 현실인식은 천륜의 문제에조차 철저한 <<혁명성>>을 강요함으로써 아들 윤준호와 순정이의 애정비극을 초래하는 것이다. 천륜의 문제는 분명 정치이전의 문제, 사상이전의 문제이다. 더우기 윤준호와 순정이 사이에는 윤태철과 허수빈 사이와 같은 그런 직접적인, 체험적인 계급갈등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한고향에서 오손도손 함께 자란 향토적 정이 오가고 있는 것이다. 극단으로 대결했던 아버지세대에 비해 자식의 세대는 이미 그 대결의식이 희미해졌거나 사라져버린 것이다. 더는 착취와 피착취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 계급적 존재와 갈등이 객관적으로 해제될 것은 자명한 일이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사이에는 사랑까지도 스스럼없이 묵인 내지 추구할 수 있는 것이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윤태철한테는 접수될 수가 없었다. 반동의 자식과 혁명자의 자식이 결합된다는 것은 철저한 <<혁명성>>에 대한 모독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의 인생의 본적지를 념두에 두면 이것은 그 당위성이 승인되는 력사적 인식이다. 어찌보면 부자와 빈자라는 력사적 문벌의식이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재단하는 시대에 정치적 계급의식으로 자리바꿈한 것이리라. 여기에서 윤태철은 기성된 력사인식에 집착하는 과거형인간이라면 윤준호는 싹트는 현실의식에 눈뜨는 미래형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윤준호를 구태여 현재형인간이라고 하지 않고 미래형인간이라고 하게 되는 것은 그의 반역정신이 과연 론리사유적인 현실의식에 립각한 것이 아니라 기성된 력사세대와 체험론적으로 력사적 인식차이를 갖고있는 세대의 현실감각적인 감정발로에 다름아니기때문이다. 이것이 오히려 시대적 합리성을 보여주는 인물형상일 수 있다. 왜냐하면 새로운 현실인식은 체험론적으로 력사적 인식차이를 갖고 있는 두세대사이에서 틈서리가 생기는 것이지만 그것은 론리체계적인 충돌로 인발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일상성에서 현실감각적으로 생성하는 것이기때문이다. 윤준호의 형상은 새로운 력사적 인식을 가진 인간의 생성을 암시하고 있을따름이다. 그만큼 사회는 아직 완숙한 현재형인간을 배출하기에는 시기상조한 것이였다. 둘째, 윤태철의 소박한 혁명성과 력사적 인식과 함께 그의 락후한 농민출신의 신분적 제한성이 인과적으로 금그어준 현실파악과 문화적 자아실현의 한계성을 홀시할 수 없는것이다. 어찌보면 이것이 그의 삶의 인격을 정립시켜준 가장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요인으로 될 것이다. 가난이 선물한 무식함은 그를 경험-유전형의 인간으로 키워왔기에 론리-사유형의 인간과는 너무나 아름찬 거리를 두고있다. 이것은 필연코 그의 사회에 대한 인식과 자기 자세에 대한 조절 내지 규범에서 모호성과 전통성 및 의뢰성을 나타내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특히 이런 비자각적인 문화바탕으로서는 우리 당의 사상리론체계에 대해 령혼적으로 올바르게 해득할 수 없는 것이다. 하기에 그는 다만 우리 당은 인민을 이끌어 통치계급을 뒤엎고 인민을 나라의 주인이 되게 한 위대한 당이라는 극히 소박하고 거의 상식에 가까운 긍정으로부터 출발하여 상급의 말만 들으면 틀림없다는 심리적 자세를 갖춘것이다. 하기에 사실상 그의 모든 사유와 행위는 그 자신의 자치적 노력보다는 관념적인 것을 모방하고 색맹이 되도록 정치에 훈련된 의뢰적인 것이였으며 그의 인생적 자세조차 적극적이고 자각적인 목적추구가 아니라 다만 시키니 한다는 심리로 삶을 조직한 순응주의적인 것이였다. 이처럼 그의 력사적인 현실참여가 표면적으로는 희극적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벌써 비극적인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이다. 가난이 선물한 무식함이란 치명적인 결함이 있음에도 문명이 고도로 발전한 사회의 구축을 위해 혁명한다는 균형잃은 자세가 허영 내지 맹종의 근원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허영과 맹종이 개인적인 충동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 시대의 력사적 면모의 한 양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데 사회력사적 문제성은 심각히 제기되는 것이다. 우리는 력사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개혁개방의 시대가 열린 벽두에 새로운 인생무대에서 다시 자기의 생활능력을 실험코자 애쓰는 윤태철의 창백한 모지름에서 사회와 인간의 균형잃은 갈등을 재확인하게 된다. 비록 시대가 어느정도로 력사의 한 물결에 휩쓸렸던 개인들에게 심각한 사고와 자아발견적인 각성의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음에도 윤태철은 우리 당이 자기의 오유를 철저히 반성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자 도리여 자기 모멸감과 무력감을 느끼면서 정신적으로 완전히 파산당하고 만다. 다만 <<<볼쉐위크>적 오기>>로써 <<자신에 대한 력사의 희롱을 달갑게 받아안으리라 했고 아들놈 앞에서 주저치 않고 <두뇌없는 순복도구>질 하리라 했다.>> 그렇게 가냘프던 정신조차 허물어져버린 윤태철에게 남은 것은 행위 외엔 아무것도 없다. 행위자 목적이요, 행위자 동기요, 행위자 인생이였다. 하기에 그는 다만 <<흘러간 력사에 대한 울분>>과 <<아들놈한테 향하여진 <볼쉐위크>적 오기>>때문에 허수빈네를 도와주는 것을 <<삶의 내용>>으로까지 여겨 <<그가 새롭게 걸아나갈 인생의 길인것처럼>> 느끼는 것이였다. 인젠 자기 몸을 주체하기도 바쁜 로인이면서도 그 육체를 허물어서라도 새로운 인생무대에서 기어코 훌륭한 배역을 담당해보려는 거기에 정신적 공허와 창백함이 드러나고 있으며 자아희생적으로 자기의 약점을 표현하는 비극성이 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달리 풀어말하면 생리적 년령은 이미 인생의 황혼빛을 띄고 있으면서도 비여있는 정신적 공간때문에 쇠약한 육체만을 소비하지 않으면 안되는 여기에 그의 인과적인 희생이 확정되여 있는 것이다. 새로운 사회와 사회구성원간의 균형잃은 갈등이라는 시점에서 소설의 주제에 접근할 수 있으며 또 이런 주제적 포착은 문화반성적 의미에서 시사해주는바가 많은 것이다. 2. 우물안의 개구리, 닫힌 공간-<<새벽새는 울고있다>>, <<어제도 오늘, 오늘도 래일>> 오직 주어진 울타리안에서 자급자족에 만족하거나 지어는 초근목피로 육체적인 생명만을 연장하는 원시적인 삶에 불편함이 없이 안주할 때 가엾게나마 평화와 행복과 화목과 인정이 넘칠 수 있었다. 그런데 옹근 지구덩이가 인젠 인류에게 주어진 울타리로, 지구촌으로 좁혀진에 따라 그런 닫힌 공간과 원시적인 삶은 우승렬패의 치명적인 충격에 존재위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였으며 상승적 경쟁력이 외면된 원시적인 평화와 행복과 화목과 인정은 문명의 발전과 인간의 승화를 저애하는 게으름과 무지에 동조하게 되였다. 조광명의 소설 <<새벽새는 울고있다>>(<<문학과 예술>> 1991년 3호) 에서의 궁재씨의 죽음은 바로 상술한 바와 같은 의미확대를 훌륭히 형상하였다는데서 문화적 반성의 무게를 크게 한다. 궁재씨는 가난과 고통과 불행에 너무도 어색해진 인간이다. 그런데 그는 노력과 분발 아니면 발악적으로라도 가난을 털어버리려고 한것이 아니라 새빚으로 낡은 빚을 메꾸어버리면서 술과 화투로 세월을 멋없이 죽여준다. 둘째는 돈이 없어 학교에 못하고 큰아들은 아직 <<왕바신>>신세도 벗지 못했지만 일년내내 술값만은 떨구지 않는다. 한창 젊음이 파랗게 자라는 나이인데다가 문명의 세례를 생활적으로 접수한 그들이 도저히 죽음을 기다리며 사는 아버지의 중독된 삶을 본뜰수는 없는것이였다. 둘째는 집을 뛰쳐나가고 큰아들 영호는 마침내 아버지와 대항해 나선다. 일찍 가난은 영호를 실련의 <<선수권소유자>>로 되게 하였다. <<왕바신신세>> <<시계한번 못차보구...>>, 워낙 자부심이나 자존심이란것이 다만 정신적인것만이 아니다. 바로 영호의 자존심은 가난때문에 여지없이 꺾이웠던것이였다. 단순히 가난때문만이 아니다. 아들한테 신 한컬레, 아니 치솔약 한통도 안사주면서 일년에 360여원이란 술값만은 눅거리 쌀돈을 가져와서라도 물어대는 아버지 궁재씨의 타락때문이였다. 그 많은 꿈이 좌절되고 수정되여버리는 사이에 영호도 관념도덕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찢어진 마음의 쪼각들을 인내와 침묵으로 주어맞추면서 도덕의 방패로 자기의 들뛰는 마음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그도 끝내는 남과 부럽지 않게 살아보겠다는 생의 욕망과 최저한의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마저 실현할수 없다는 현실앞에서 도저히 참을수 없어 비명을 지르고야 만것이다. 정에도 한이 있는것이고 례에도 한이 있는것이다. 현실성을 배제한 마음만의 저이나 례는 가식밖에 남을것이 없다. 이제는 전혀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되는 경우에 인간은 오로지 자기의 의지대로 할뿐이다. 바로 자기 삼촌한테 억지당한적 있고 또 <<본가집에 왔다가 아이를 죽인죄로 시집에서 쫓기워와 있는>> 죽은 계모의 딸을 억지강요하여 데리고 살려하는것이다. 그런데 그것마저 궁재씨가 자기의 인생은 마비되여가지고도 도덕적 방패를 들어 막으려하고 지어는 죽음에로 협박할 때 화해의 접점이란 전혀 존재할수 없게 된다. <<니 능력있어 다른 놈들은 다 련애하는데 나는 못한다. 니는 <보토리>질해라. 나는 않한다. 내하구 살자는 녀자가 없으니까 봉녀하고 잔다. 어째? 니덕에 우리 둘다 거지다. 거지끼리 사는데 에째?...>> 이것이 영호가 궁재씨를 구박하면서 악에 받쳐 외쳐댄 말이다. 인간은 동물적본능도 자기의 리익에 복종시킨다. 어찌보면 실련의 <<선구권소유자>>인 연호가 한번 당한적이 이써고 또 시집에서 쫓겨난 봉녀와 결합하는 것이 훨씬 계산적이고 경재적이며 현실적이라고 행각했음직한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너무 창졸하게 사회관념도덕을 전달하는데 그치거나 극단적인 흑백론리로 영호의 행위만 뽑아 도덕적재단을 할수 없다. 왜냐하면 영호의 행위는 결코 그 행위자체에 의미가 매겨지는것이 아니라 바로 강한 삶의 욕구로 자기의 인생을 개척한다는 그 지점의 상태를 확대시키고있다는데 자리매김을 하고있기 때문이다. 그의 성행위의 의식심층에는 억압당한 삶에의 갈구가 눈물져있다. 성은 륜리이고 더덕이기 전에 생명이라는 원색적인 인간선언이라 할수 있는것이아. 하기에 궁재씨는 영호가 결코 일시적인 본능욕구의 충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생의 욕구내지 종족보존의 생육을 목적으로 하는 결혼까지를 추구한다는 사실에 눌려 자기의 도덕적방패를 던져버리고만것이다. 그는 자기의 허무한 삶에 대한 ㅃ저린 참회와 함깨 그들 둘의 장래를 기도한다. 찌들어버린 육체, 창백한 령혼, 술에 절은 인생, 이 모든것이 그한테 필연적인 죽음의 가능서만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죽음의 현장에서 부활의 의미를 읽에 된다. 말하자면 종족보존의 체계에서 아들은 아버지의 생명연장이므로 아버지의 무의미한 소비인생의 종말은 곧 아들의 강렬한 창조적인생의 모지름을 통해 새롭게 바람직하게 부활하리란는것을 묵시하는것이다. 이처럼 그의 죽음이 생명력을 고양시키는 력사적교체라는 의미매김에 감동된다. 궁재씨는 문명과는 너무도 멀리 떨어졌던 릉욕의 인생을 조용히 잠재우는 비장한 행위를 한것이다. 그이 죽음을 통해 우리의 삶의 좌표와 현주소가 확인되고있다. 장혜영의 소설 <<어제도 오늘, 오늘도 래일>>(<<흑룡강신문>>1992년 4월 25일)은 황페하지 않은 농촌에서 황페화의 길을 걷는 농민들의 현실을 해부하고있다. 민수는 주어진 자연적인 생존공간에서 고정불변적인 생물과정 즉 어제 오늘, 미래가 무의미한 반복만 거듭하는 소비적인생에 지치고 변질해가고있다. 도거리농사가 농민들에게 아름차게 한가한 시간을 가져다주었지만 민수랑한테는 그 한가한 시간을 죽여주는 일이 훨씬 지겨운것이였다. 농사지어 밥먹기란 너무도 쉬운 일이였고 1년 365일에서 절반도 넘는 시간을 타산없고 할일없어 쩔쩔매였다. 너무도 단순하고 쉽게 사는 인생이였다. 기실 쉽게 산다는것이 허무한 삶을 의미한것이다. 자기를 승화시키고 참된 인생을 고양시키는 정신적독방이 없고 따라서 조금의 문화적투자도 없이 단지 생명연장의 생물과정내지 자연과정으로만 머물러있을 때 얼마만큼이나 인간성의 참된 모습을 찾아볼수 있겠는가. 더우기 현사회는 그 문명발전의 주기성으로 하여 개체의 사회화를 일생의 과업으로 제기하고있으므로 우리는 자기의 인생에 대한 문화적인 신변정리에 게으를수 없게 되였다. 생산성문화의 퇴화내지 답고, 생활문화의 고갈내지 빈혈증으로 질병을 앓고있는 민수의 형상은 교체시대의 시자로에서 갈팡질팡하는 사회구성원의 앓는 모습이기도 하다는것으로 주제적확장은 가능한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예술적측면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것은 <<새벽새는 울고있다>>가 비극적인 모순갈등으로 주제를 날카롭게 날세우고있는데 반하여 이 소설은 아무런 자극적인 사건이나 비극적인 결말도 없이 퍽 시시껄렁해보일 정도의 일상성의 생활로 꾸며지고있다는것이다. 그럼에도 소설은 그 일상성의 생활현장에서조차 문화반성적의미를 조명해낼수 있다는 작가적안목에 힘입어 그 심미적가치가 그런대로 무겁다. 이처럼 예술성보다 생활현장감을 강조하는 형식의 거칠음에는 모름지기 생활에 더 살바투 접근하려는 의도적추구가 안받침되여있을것이다. 그만큼 반성문학은 인간을 그린다는 인식보다는 인간을 해보한다는 휴머니즘에 더 집착하는것 같기도 하다. 3. 산업시대의 뿌리뽑힌 인간들-<<빈곤>> 격변기에 있어서 문제의식을 사회의 기본적인 사유형태로 자리잡게 된다. 사회의 돌변적인 변화, 발전은 기성인들의 체험론적인 경혐내지 전통적인 사유형식의 준확성이나 지어는 존재적가치를 여지없이 충격하였다. 매기 사회성원마다가 전통적인 기성인식과 존재적인 현실인식, 그리고 리상적인 미래인식 사이에서 선택의 아픔에 모지름쓰며 신음하고있다. 긺일의 소설 <<빈곤>>(<<장백산>> 1992년 2호)은 바로 이처럼 농경사회로부터 산업화사회로 과도하는 격변기에 기성가치규준의 변질과 함께 뿌리뽑힌 인간들이 허물어지든가 변질해가는 비평적인 형상을 통하여 변종하는 사회에서의 인간상실의식을 꼬집어 일깨우고있다. 돈있는자의 정신적빈곤, 글읽는자의 물질적빈곤, 극덧이 사회객관내지 일반으로 설명되여야 할 경우 치원이나 김일의 형상은 자기의 <<비극적운명>>으로 그런 사회적빈곤을 폭로하고 호소하기에는 너무나도 가냘프고 자살적인것이다. 틀림없이 비극이란 불가항력적인 힘에 의한 미의 훼손이다. 그런데 치원이의 경우 그는 그런 불가항력적힘의 강타를 받기에 앞서 그 자신의 인생에 대한 철학적 빈곤으로 하여 스스로 정신질환을 앓고만다. <<상점에서 나와 가게방뒤벽에 대고 오줌을 쏴쐬 내갈기>>고 <<한달 로임을 봉투채 밀어넣는>> 행위는 결코 <<금전만능의 인격론>>이란 현대문명과는 전혀 무관환 미개병이다. 사실 그의 모대김과 신음소리는 사회적빈곤에 해한 대항적인 비명인것이 아니라 물가의 모래탑처럼 너무너무 쉽게 씻겨져내리는 그 자신의 허탈한 령혼을 두고 부르는 영탄곡이다. 김일의 경우 얼핏보면 그는 글읽는자로서 물질적빈곤에 모대기고있다. 그러나 <<아버지가 사준 단색테레비죤까지 팔아먹고>> <<그 돈으로 사흘마작>>을 논 김일, <<그제 하두 심심하니 친구들끼리 좀 놀구 또 뚜드려먹구 소일하>>는 김일의 형상은 물지적빈곤내지 사회적빈곤을 호소하기에는 너무도 멀리 정신이 먼저 시들어버린것이다. 그러고보면 돈있는자 치원이의 정신적빈곤, 글읽는자 김일의 물질적빈곤이란것은 일종의 가면에 지나지 않고 결국은 두 정신질환자가 같지 않은 가면을 쓰고 같은 극을 표현한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것이다. 물론 그들이 고통내지 넉두리의 근원은 그런대로 사회에 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사회학적 진단을 하면 경제발전기에 과연 여러가지 페단과 부식작용이 훨씬 맹렬한것이다. 이것은 계절이 바뀔 때의 발병률이 많은것과 같은 도리일것이다. 특히 농경사회로부터 산업화사회로 넘어들어오면서 사회에는 인격론에에서조차 상대방의 지갑의 크기에 절대적인 긍정을 보내는 현대문명병이 류행성감기처럼 성행하고있다. 그럼에도 여기서 매개 사람들의 신체소질과 항역능력을 간과할수 없다. 특히 특정한 환경이 아니라 일반적인 환경에서 누구나 다 거치지 않으면 안되는 고험을 통해 승패의 두 부류가 있을 때 우리의 가치판단은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하는것인가. 사회적빈곤 즉 돈있는자의 정신적빈곤과 글읽는자의 물질적빈곤은 류행성감기균으로서 수시로 사람들을 질병에로 몰아가고있다. 이는 객간적현실이다. 그다음 제기되는것이 개체의 <<철학적빈곤>>이다. <<철학적빈곤자>>는 오뉴월 고뿔도 쉽게 걸리고마는것이다. 불가항력적이 아니라 얼마든지 이겨나갈수 있는 충격앞에서 그 자체의 취약성때문에 허리꺾고말 때 우리는 거기에서 얼마만큼의 비극성을 눈물머금고 읽을 수 있을까. 자기의 라태, 무지, 무능을 덮어놓고 일방적으로 억울한체, 슬픈체, 고독한체, 지어는 인류의 위기감같은것까지도 느낀체 하는 어리광대같은 연기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희생을 밑거름으로 하여 성장하는 사회의 모진 진통을 절감할수 있는것이다. 4. 사치한 도덕과 계산적인 리기주의-<<슬픈계률>> 도덕과 질서가 필요한가 하지 않은가 하는 질문은 해답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기성된 도덕과 질서가 게속 사회구축의 구조적 요소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계산적인 리기주의의 사치한 도독적 방패로 변질하고있는가 하는 문제는 사회현실적을 던져진 부진이냐 발전이냐 하는 선택의 질문이다. 례컨대 부담거리로 여겨 홀로난 부모를 시집 혹은 장가를 보내거나 반대로 재산을 넘겨보고 극력 시집 혹은 장가를 가지 못하게 하는 계산적인 리기주의앞에서 기성도덕은 과연 어느만큼의 치유력을 갖고있는것인가 등등>> 허련순의 소설 <<슬픈 계률>>(<<천지>> 1992년 4호)은 이른바 자기는 사회의 <<정신당원>>이고 정상인이라는 월등감을 스스로 가지고 자기보다 약하거나 어딘가 좀 부속품이 모자란 사람을 악마처럼 억지로 인간대렬에서 밀어내려하는 김씨댁 등의 형상을 통하여 자기들은 오장륙부가 하나도 세탁되지 않아가지고 남을 험담하는데는 열을 올리는 인간추악상과 계산적인 리기주의에 복무하며 인간성을 외면하고있는 기존도덕적인 성륜리의 허위성을 고발하고있다. <<그녀>>로 등장하는 녀주인공은 <<처녀때 너무 못생겨서 청혼하는 남자가 없었다.>>고 한다. 서른살에 선택의 여지도 없이 한 홀애비와 결혼했으나 아들 하나 남기고 죽어버리는 결핵병환자였었다. 후에 남의 소개로 아이 셋짜리 남자한테 시집갔으나 남편아이들이 어찌나 이악스럽게 나오는지 자기 자식이 주눅이 들어 기를 못펴는것이 가슴에 걸려 일년만에 리혼을 하고 나와버렸다. 그뒤 떠돌이 세방살이로 수모를 받으며 살다가 신계촌에 홀로 사는 홀애비가 좀 부실하기는 하나 일은 제대로 하고 집 하나를 쓰고 산다는 말을 듣고 자처하여 김부실댁으로 들어왔다. <<남자에 대해선 애초부터 큰 기대같은걸 픔어보지 못했던 그녀로서는 사랑이고 뭐고 단지 피곤한 몸을 담을수 있는 처지면 된다고 생각했고 아들애 하나만 눈치밥 안먹이면 족하다고 생각하였다.>> 생존본능의 가장 원색적인 추구인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명의 원색적인 추구마저 이른바 주위의 <<정상인>>들에 의해 여지엾이 허물어진다. 부실이한테 시집온 근거로 같은 부실이 취급을 당하고 정상적인 성의 욕구마저 망측한것으로 비난받으며 지어는 <<온갖 랭대와 멸시도 넉넉하게 받아당하는것>>마저 <<그녀>>가 <<부실하기때문에 치욕을 못느끼는거야>>라고 놀림을 받는다. 그야말로 살아도 밉고 죽어도 밉다는식의 철저한 버림을 당하고있는것이다. 이런 버림은 첫째, 자기 몸에도 그냥 더러운 똥집을 달고있으면서 남이 똥누는건 흉보기 좋아하는 인간들의 몰렴치하고 루추한 심태에서 조성되고 둘째, 김씨댁과 같이 리해관계를 같이 하는 인간들의 너무도 계산적인 리기주의에서 조성되는것이다. 일 잘하고 돈 잘버는 시동생을 하루새에 <<그녀>>한테 빼았겼다는것이 김씨댁의 분노를 불러일으킨것이다. 그들이 새살림을 꾸렸음에도 김씨댁은 아에 두 사람 다 손아귀에 넣고 부려먹으려 한다. <<그래서 머리쓴것이 경제권을 틀어쥐는 방법이였다. 농사수입이고 남새판 돈이고 모두 바쳐야 하고 돈을 쓸 때는 맡아내가고 밥쌀을 한주일에 한번씩 내가야 한다는 규정을 세웠다.>> 못난것, 부실한것이라는 근거로 생활자립권마저 박탈하고 그들을 노예내지 지어는 말할줄 아는 로동도구로 취급해버리는것이였다. 김씨댁이 자기의 이런 행위를 정당하게 위장하는 수단이 바로 자기몸에도 그냥 더러운 똥집을 달고있으면서 남이 똥누는건 흉보기 좋아하는 인간들의 몰렴치하고 루추한 심태를 리용하여 <<그녀>>와 시동생을 아주 자립할수 없는 천치로 확인시켜버리는것이였다. 인간의 상정으로 말하면 시동생이고 동서이기에 김씨댁은 그들을 몰렴치한 인간들의 비난과 타격에서 구해내고 감싸주어야 할 가장 자격적인 보호자인것이다. 그런데 공짜로 부려먹을수 있다는 계산적인 리기주의는 그녀로 하여금 악의 수단마저 서슴치 않게 하였던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계산적인 리기주의앞에서 기성도덕은 또 과연 어는만큼의 치유력을 갖는것일가. 외적으로 못생긴 <<그녀>>와 내적으로 좀 부실한 김부실의 본능에의 추구와 그것을 비난하고 헐뜯고 제약하고 압제하는 김씨댁을 비롯한 주변인간들의 소행은 실상 생활의 바탕과 인간성을 멀리 떠나버린 관념도덕의 허위적인 위장을 가장 효과적으로 벗겨버리고있다. 이처럼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권내지 인간성까지를 위협하는 사실에 천착하는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행위일것이다. 그만큼 휴머니즘에 철저한 문학일수록 인간경험에 해한 반성적의미가 깊을수밖에 없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여기서 라도향의 <<벙어리 삼룡>>에서의 천치의 의미를 재확인하게 된다. <<그녀>>나 <<김부실>>은 결코 바보와 무지의 개념으로서의 일상적, 상식적 차원에서의 천치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과 성실로서의 환상적차원에서의 천치이다. 이때의 천치는 인간을 타락과 허위에서 구제하는 천사의 얼굴 바로 그것이다. 약자에의 학대, 형식으로만 제약된 도덕이 그앞에서 여지없이 몰골을 드러내고있지 않은가. 그리고 또 인간의 버림을 당하면서도 죽지 않고 필사적으로 살아온것은 아들을 위해서였다는 여기에서 우리는 본능에 다름 아닌 가장 원색적인 모성애를 눈물겹게 확인하는것이다. 자기의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 되여가지고 잡초처럼 살아가면서도 아들을 위해 생명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여기에 어머니로서 인간버림을 자기만의 수단으로 한정시키기 위해 절망적인 치욕의 목숨이나마 이어간다는 론리가 성립되는것이다. 참으로 눈물겹도록 진지한 인간탐구이다. 말하자면 소설 <<슬픈 계률>>을 과념적인 도덕이나 륜리 이전에 인간을 파악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인간선언이라 할수 있다. 이상에서 문화반성적의미라는 좁혀진 구역에 립각하여 문학정신의 한 기질적측면인 비평정신을 진단확인해보았다. <<문학은 인간탐구이다>>라는 명제에 의하여 인간의 본질과 인간성의 밝힘은 문학의 첫째가는 작업으로 되는것이다. 그만큼 문학가의 선도적역할과 희생적모험은 불가피면적이다. 왜냐 하면 그것은 문학은 구체적으로 인간경험을 다루는것이고 인간경험은 거듭나는 침적을 통하여 거의 구조적내지 제도적으로 규제력을 갖고있으므로 거기에 반성적의미까지를 매길 때 자칫하면 사회반역의 십자가조차 멜수 있기때문이다. 그러나 또 그만큼 문학가는 인생투자에 바람직한 정보내지 가치판단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해주고있다. 문학이 인간경험을 다루는것은 바로 인간을 원색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43    인간성의 고발 댓글:  조회:1424  추천:0  2009-05-16
-허봉남의 중편소설<<피와 불>>에서 본다 소설이란 허구를 리용하는것이고 그래서 소설창작에서 인물, 사건, 환경에 대한 합리한 허구가 시도됨은 틀림없다. 그럼에도 허구로 읽은 소설이 현실감각이 짙게 느껴질 때 우리는 소설의 작품적성공을 긍정함과 동시에 예술적진실과 사회적현실사이에서 필연적인 련계를 찾고 사회현실에 대한 반성에 은근히 신경을 모으게 된다. 허봉남의 중편소설 <<피와 불>>(<<아리랑>> 제38기)은 바로 현실감갈이 짙은 에술적진실로 우리로 하여금 사색적으로 사회현실과 인간자신을 반성하게 하고있다. <<피와 불>>은 인간의 본성을 캐고 인간성의 본질을 찾는 인간탐구의 문학정신에 철저히 립각하여 인간의 본질과 인간의 속성 즉 감성, 오성(기쁨, 노여움, 욕심, 두려움, 근심) 및 리성에 대한 적라라한 해부와 시대적투시를 주저없이 들이대고 인간의 정신적생태평형의 파괴를 사회적, 시대적 및 문화력사적으로 고발하고있다. 이 소설의 실험목적이 인간성의 본래의 모양을 밝히고 그 인간성이 어떻게 사회 혹은 시대적 제약과 염색을 받고있는가를 돌출히 하는데 있다는것을 확인하면서 작자가 그 실험을 가장 악렬한 환경에서 진행하고있는데 퍽 주목이 돌려진다. 바꿔말하면 작자는 인간성이 (최대가능성으로 사회제약에서 탈피하여) 그 본래의 모양을 드러낼수 있는 전형환경을 실험공간으로 설정하고 와중에 삶에 대한 갈구를 공동한 욕망으로 삼고 자연과의 박투속에서 죽음에 반항하는 세 인물을 실험대상으로 등장시킨것이다. 세 인물은 신분이 각기 다르고 산속에 들어온 동기도 서로 다르다. 림장기술원 심대식은 육모지를 돌아보던중 수림언저리에 피여오르는 불길을 발견하고 달려온것이고 림장사무원 현우현은 자기의 안해를 가로챈 <<원쑤>> 심대식을 불길속에 처박아넣으려고 달려온것이며 림장 제3작업소 소장 정만룡은 남에게 알릴수 없는 일로 산불에 갇히게 된것이다. 동기가 어떻든 그들 셋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는 산불에 갇혀 죽음의 신한테서 벗어나려 판가리하는 똑같은 처지였다. 인생의 쪽배가 침몰의 위기에 처한 이 시각, 그들은 <<그 어떤 개인의 타산이나 원도 없이 공동한 욕망 즉 삶에 대한 갈구>>로 환난지기가 되지 않을수 없었다. 짐승들조차 서로 다른 존재에 관심을 돌릴 여가가 없는 순간이였었다. 불만 피하면 된다는 한가지 본능에 지배되여 사람곁을 스쳐지나는 한무리의 쥐, 사람이 있는 곳이 안전하다고 여긴듯 그들곁에 와서 멈춰선 몇마리 재빛토끼, 지어는 새끼를 죽인 보복으로 사납게 달려들던 승냥이마저 흘끔거리면서 그들쪽에서 멀지않은 곳에 멈춰섰다. 자연의 도전에 모든 생령들이 <<피해의식>>을 절감한것이다. 그러나 이제 자연의 평화가 다시 찾아들면 승냥이는 역시 사나와질것이고 쥐는 역시 도적질에 나설것이며 토끼는 역시 두려움을 안고 피해다녀야 할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바로 여기에 작자의 <<엉큼한 시도>>가 있는것이다. 토끼와 같은 심대식, 승냥이나 쥐와 같은 현우현, 정만룡 어쩔수 없이 이런 대비판단이 뇌리를 친다. 사실 인간은 자연의 도전앞에서도 일단 잠시적이나마 평화가 찾아들기만 하면 원래의 심리공간을 회복하고 <<정상적인 사유>>를 계속 굴리게 된다. 보복의식에 떠밀리워 산불을 보고도 도리여 불속에 찾아든 현우현은 때때로 심대식에 대한 보복으로 치를 떨고 출세욕을 버리지 않고 재화속에서도 정만룡소장한테 아첨하기를 잊지 않는다. 제집을 살려내고 퀴퀴한 뒤를 덮어버리려고 불속에 든 정만룡은 심대식이나 현우현을 자기가 살아나가기 위한 도구나 노예로 간주할뿐이다. 이런 인간들과 함께 있는 심대식이기에 <<자기 처지가 세사람중에서도 제일 고단한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그의 머리속의 현우현은 <<정만룡의 앞에서는 도시 등심뼈가 있는것 같지 않으나 말랑한 안해나 아래사람에게는 도리보다 우격다짐을 앞세우는>> 사람이였으며 정만룡은 <<뜨락또르를 동원하여 제집을 구하는데 쓰>>고 <<떠벌려 공금을 탕진하>>며 <<권세를 부릴줄 아는 사나이>>였다. 그러고보면 자연의 도전앞에서 짐승은 제 본성을 잃었지만 인간은 도히려 순수한 인간성을 발로한셈이다. 바꿔말하면 재난에서 벗어나면 짐승은 제 본성을 되찾을것이나 인간은 순수한 인간성을 상실하고 말것이다. 이것이 사회를 사는 인간의 비극이다. 워낙 정만룡이나 현우현은 렬화속에서 정신적인 구원을 받았어야 했다. 그러나 살아나가려는 그 자체가 그들한테 권세에 대한 미련이 끊어지지 않았음을 암시해준다. 확언하면 사회적인 권세욕이 이미 그들의 인간성을 제약하고 염색해버렸던것이다. 사실은 과연 그러하다. 재난에서 벗어난 현우현은 <<정만룡을 여론계에 소개하는데 큰 힘을 들>>였고 정만룡은 제집을 림시로 림장사무실로 내놓아 대번에 실화문학의 주인공으로 된다. 그러나 <<자기들은 살기 위해서 버둥질쳤노라>>고 실속대로 말한 심대식은 <<작풍이 나쁜데다 다른 사람을 헐뜯기까지 한다는 평판을 듣>>고 <<직함평의에서까지 밀려>>났다. 정만룡과 현우현의 합심무함에 든셈이다. 자연의 평화는 비탈린 현실을 재현시킨것이다. 소설의 결말에서와 같이 <<대식이는 문득 자기가 지금도 불길속을 걷고있는듯한 생각이 들었다. 살아간다는 자체가 불길속을 헤쳐나가는것 같이 느껴졌다.>> 그렇다. 상업적인 관심만으로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속에서 인간성이란 전혀 존재할수 없는것이며 이러 인간들이 인간성을 지켜사는 사람들 주위에 재난의 불길을 지펴놓고있는것이다. <<피와 불>>에 등장하는 앞의 세 인물외에 도선향도 얼비친다. 도선향은 직접 작품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원쑤>>치부하는 심대식과 현우현의 사유공간을 빌어 간접적으로 비치는 영상이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것은 작품의 도선향은 정정당당하게 재가하는 과부도 아니고 매매혼인이나 소개혼인으로 하여 감정마비증에 걸린 녀인도 아닌 그 자신이 빚은 자작극에 사랑의 고배를 마시는 녀인이라는것이다. 과부재가도 이러쿵저러쿵 시비가 많은데 그 자신이 두 남자한테 추파를 던져 비극을 초래한것이니 관념적인 평가는 당연히 도선향을 더러운년, 심대식은 량심없는자, 현우현은 괄시당한 사내일것이다. 이것이 야단이다. 사회상 정치적으로는 잘못이 있으면 고치면 된다지만 도덕적으로 허물이 나면 영원히 지울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남성들은 문화행위에서 최대한의 자유를 향수할수 있지만 녀성들은 대부분 문화행위에서 향유자도 주체자도 아닌 언제나 소비적인 희생물로 전락된다. 실로 형식적인 도덕주의가 끼치는 해를 입는것은 보통 녀성이다. 왜냐하면 문화력사에서 륜리도덕적으로 유독 녀성들에게만 정조라는 <<월계관>>을 씌워주었기때문이다. 물론 작풍이 문란한 경우를 대변하려는것은 아니지만. 이성간의 사랑은 사회에 대한 리해, 감정세계의 미성숙 등등으로 착오적 선택이 있을수 있고 또 사회현실로부터 볼 때 문화력사적인 관성과 사회 제관계의 제약으로 인한 착오적(노예적, 수동적) 선택도 있을수 있다. 그런데 문화력사적인 도덕관념에서 유독 녀성만은 그 어떤 착오적선택도 영구히 지켜나가야 고상하고 순결하고 아름다운 행실로 인정된다. 이는 남성사회가 녀성들에게 강요한 <<진리>>이다. 바로 이와같이 남성사회의 삐여진 도덕관념과 도선향의 연약한 감정을 리용하여 현우현은 가장 비루한 수단인 처녀성을 돌파하는것으로 그녀를 손아귀에 잡아넣었던것이다. 현우현에게 있어서 도선향에 대한 추구는 미모의 이성에 대한 절대적인 점유인바 그것은 사욕과 성욕이지 결코 순결한 애정은 아니다. 명예가 더럽혀질가봐 착오적인 선택을 눈물로 고집하면서 싫은 음식 삼키듯이 병적인 가정을 그런대로 영위해나가던 그녀가 즉시적반항을 보여주지 못했던 과거를 저주하면서 뒤늦게나마 관념도덕의 노예적멍에에서 벗어나려고 버둥질치게 된것은 바로 가치균등의 순결한 애정에 동화하려는 심리적지향때문이였다. 관념도덕의 노예로 그냥 착오적인 한점 공간을 차지한다는것은 자아갱신의 흐르는 삶이 아니라 송장을 붙안고 통곡하는 굳어버린 삶이 된다는것을 깨달은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주인과 노예라는 억울한 차이를 무너뜨리고 애정의 새로운 가치질서를 세우려는 애모쁜 반항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그러나 행복이란 이름은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차례지지 않았다. 그녀는 새로운 삶이 희미하게나마 약속되자 마음의 재더미에서 다시 켜졌던 희망의 등불을 꺼버리고 가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사랑의 비극 하나를 미연에 해소시킨셈이다. 왜냐하면 외곡되고 비틀린 현실은 그녀를 심대식이와 함께 문화력사의 관성으로 관념도덕의 <<단두대>>에 올려세우는것이기때문이다. 인간성은 여기 성애의 화원에서도 소외되고있다. 이와같이 <<피와 불>>은 자연의 도전앞에서의 인간들의 조화, 생령들의 조화, 자연의 평화속에서의 인간들의 불합을 통하여 사회적인 제약과 염색으로 퇴화되고 매몰된 참된 인간성에 대해 안타깝게 부르짖고있으며 인간들의 비리적인 반목과 투기적인 생활태도를 질타하고있다. 소설을 덮으면서 작자의 예술적성공을 다시 긍정하게 됨과 동시에 인물의 내심세계에 대한 적중한 색출이 잘 되지 못하고 도선향의 심리적성격에 대한 함축의 론리적타당성이 결핍하며 언어 특히 대화가 작자자신의 유모아적기질에 대비해서도 벌써 너무나 평범하고 일반적이며 매개 인물의 개성적특성이 잘 나타나지 않음을 아쉽게 생각한다.
42    력사적 착오 문화적 반성 댓글:  조회:1774  추천:0  2009-05-16
-<<<볼쉐위크>의 이미지>>에 대한 평론 몇편과 함께 오랜 침묵속에 얼굴을 파묻고있던 작가 정세봉이 갑자기 큼직한 <<돌멩이>>를 호수에 던져 끝없는 파문을 일으켜놓았다. 무려 팔구만자에 달하는 중편소설 <<<볼쉐위크>의 이미지>>는 한동안 잠잠하던 우리 문단에 커다란 충격파를 주었던것이다. 뒤골목에서 시야비야하거나 현대화도구에 목소리를 담는것도 인간이란 원래부터 새로운것에 대해 명확한 태도보다 먼저 수군수군 의론하기를 즐긴다는 전제하에서는 나쁠것이 없지만 그래도 사명이니 임무이니 의무이니 하는 책임감을 지니고 간행물을 통해 력사니 현실이니 인생이니 미적감수니 이미지니 하고 얼굴을 붉히며 <<티각태각>>하는이들이 퍽 대견스럽고 보배롭다. <<배우>>는 <<관중>>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관중>>이 없는 <<배우>>란 연기의 영원한 실패자이다. <<이미지>>가 발표된지 인제 4개월밖에 안되는 사이에 5편의 무게있는 평론들이 여러 간물을 통해 발표되였다. 그중 <<문학과 예술>>지에 발표된 두편은 대담히 쟁명에 응하여 나선것이다. 필자는 그들의 대범함에 힘입어 주제넘게 바로 그들의 평론을 상대로 감놓아라 배놓아라 하고 시비를 걸고든다. 이 두 평론은 아주 공교롭게도 하나는 절대격, 또 하나는 토를 달았다는 부동한 형식의 동일한 제목으로 되여있다. 그러나 내용면에서는 서로 아주 접근된 주장이 있는가 하면 또 아주 현격한 이질성도 있다. 평론 <<력사 현실 인생>>의 경우 평론가는 전반 글에 거쳐 <<당원으로서, 인간으로서, 강자로서 자기의 량심과 직분을 잊지 않았으며 자기의 생명을 마지막까지 힘차게 연소시키려고 노력>>한 <<한 숨쉬는 인간의 진실하면서도 복잡한 감정>>을 분석하고있으면서도 나중엔 <<이미지>>는 력사의 반성과 현실의 파악을 시도한 작품이란 <<어떤 사람들>>의 견해를 부정하면서 <<실리주의적인 관점으로 분석해보면 쌍디아고나 윤태철의 거동은 아무런 실제적인 가치도 없는것이다. 오직 미적인 관점에서 분석하여야만이 정확한 결론을 도출해낼수 있는것이다>>라고 결론짓고있다. 분석과 결론의 이률배반에 빠진것 같다. 사실 평론가 자신이 글의 서두를 <<인간들의 정신활동은 이미 력사로 되여버린 어제날의 매듭에서 언제나 떠날수 없다>>고 떼고있을뿐만아니라 계속하여 <<력사는 가능하게 생활의 표면현상에서는 그 자취를 감추었지만 현실생활의 밑바닥에서는 계속 암류로 흐르고있다. 때문에 많은 문학작품들에서는 현실생활에서의 모순을 제출하면서도 거기에다가 력사의 종적인 궤적을 립체적으로 교차시킨다. 이리하여 력사와 현실의 모순충돌속에서의 인간의 가치와 인생의 발로를 묘사한다.>>고 쓰고있다. 평론가 자신이 력사란 골동품이 아니며 력사란 오직 문화창조에 노력하는 인간에게만 유의미한것이며 문학은 바로 그러한 창조적인 문화행위라는것을 밝히고있는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차피 창조적문화행위란 각도에서 문학작품의 창작, 교환, 분배, 소비와 관계해서 그 문화적가치를 계산해보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이것은 문학작품이 그 한 공간에서 력사의 모든것, 사회의 모든것 또는 인간 모두를 등장시킬수 없는것만큼 선택적으로 취사함으로써 일반성에로의 확대가능성을 모색하게 된다는 특성으로 보아도 성립될수 있는것이다. 즉 다시말하면 우리는 도식적이거나 관념적인 류형 내지 전형을 반대하지만 개성적 인간이 어떤 시대적공간이나 문화적인 환경에서 부득불 류형적인 자아로 되여 그 시대의 한 문화류형의 상징으로 된다는것을 부인할수 없으며 그만큼 우리는 작품의 주인공에 대해서 그의 운명에 관심이 쏠리는 동시에 그 주인공이 시대적으로 갖고있는 문화적의미에서도 아주 큰 흥미를 가지게 되는것이다. 이것은 력사, 현실, 인생의 시각에서 보아도 틀림없는것이다. 왜냐하면 력사의 현실을 미래지향적인 기본방향에서 재검토하는것은 인생을 련습할수 없는 우리로서는 현실을 보다 합리하게 꾸밀수 있는 바람직한 수단이기때문이다. 선인들의 경험교훈이 우리의 인생투자를 조금이라도 줄여준다면 그것으로 우리는 행복할수가 있는것이며 선인들에게 감사할것이다. 과거의 상처와 오늘의 삶과의 관계를 외면하고 력사를 다만 골동품으로만 삼을 때 우리는 자칫하면 그 틀림을 이어받을수 있는것이다. 그리고 또 과거의 현재성, 즉 력사의 계승성과 인간자체의 의식의 제한성으로 하여 사회발전의 굴절의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수 없다는 상황에서 력사에 대한 진지한 검토와 문화반성은 의연히 필요한것이다. 문학은 이러한 사명을 훌륭히 완성하고있다. 문학은 직설적인 론리와 사변적인 분석으로 이런 사명을 완수하는것이 아니라 상기 평론가가 결말에서 쓴바와 같이 <<문학은 변화다단한 생활속에서 인간들의 감정이 생기게 된 가장 합리한 예술적근거를 만들어낸다. 이럼으로써 소리없이 현실생활에 의하여 단절된 거의 력사적인 련계를 잊어버린 의식심층의 심령활동을 재현하면서 과거, 현실, 미래를 의식의 심층에서 한곳에 단단히 이어놓는것이다.>> 그럼 <<이미지>>의 주인공 윤태철은 어떤 형상이며 그의 공헌과 오유는 어떤 문화적의미를 띠고있는가. 평론 <<력사 현실 인생>>이나 <<력사와 현실 그리고 인생>>에서 모두 윤태철은 <<외형상에서 강자의 기질을 가졌을뿐만아니라 정치상에서도 강자이다>>, <<쟁쟁한 쇠소리가 나는 중국공산당 당원이였으며 또 훌륭한 아버지였다>>고 인정하고있다. 나중에 평론가 일언은 윤태철이 <<허수빈일가에 독재를 실시하고 그의 일가로 하여금 장기간 수난을 겪게 하고 아들이 그렇게도 사랑하는 순정이를 죽음에로 몰아간 오유도 그렇고 더우기는 <당의 말을 앵무새처럼 받아외우고 당의 지시대로 로보트처럼 움직여온> <두뇌없는 순복도구>로 되여 구룡대대 농민들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준 오류도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 불가피면적인것이며 련습할수 없는 인생길에서 필연적인 오유였던것이다.>> <<윤태철의 오유는 력사적으로 빚어낸 오유이며 광범한 인민의 량해를 받을수 있는 오유이며 그가 인민을 위해 기여한 공헌과 융합된 오유이다.>>라고 결론짓고있다. 그런데 이처럼 최대의 량해를 주고서는 인차 소설의 결함을 지적할 때에는 또 <<윤태철의 반성은 정치적시각에서는 철저하지만 도덕적, 문화적, 심리적, 당성 측면에서의 반성은 아주 없거나 매우 얕다.>> 고 질책하면서 인격심리요소, 봉건적인 가장제적작풍, 사회변태적도덕 등 면으로부터 윤태철을 철저히 부정해버리고있으며 나중엔 상급의 지시를 앵무새처럼 외우고 농민들에게 피해를 주게 된것은 당의 실사구시라는 우량한 작풍과 언제나 실제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상로선 혹은 인식로선을 떠난 결과이며 언제나 자기의 눈앞의 기성리익을 지키려는 소생산자의 편견이 장난친 결과이며 성실성의 결핍, 독립인격의 부족때문이라고 지적하고있다. 한 대상에 왜서 이토록 엄청나게 이질적인 가치판단이 내려지게 되는가? <<쟁쟁한 쇠소리가 나는 당원>>과 <<성실성이 결핍하고 독립인격이 부족한 당원>>, <<훌륭한 아버지>>와 <<봉건적인 가장제적작풍이 장난치고 사회의 변태적인 도덕이 장난치는 아버지>>, 아무리 <<공헌과 오유가 융합된 인간>>이라 해도 이와같이 불과 물처럼 전혀 상극인 이질적성격을 한몸에 지닐수야 없지 않는가! 필자는 이런 페단이 생기게 된 주되는 원인은 평론가가 주인공의 구체적인 문화심리와 그것을 토대한 인격과 가치추구에 대해 깊이 해부할 대신 급급히 력사에 대한 총체적인 판단을 내리고 그것을 근거로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론리적인 결론에 떨어졌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달리 말하면 그때는 그럴수밖에 없었다는식의 공식을 도출해낸데 불과했던것이다. 이렇게 되면 력사는 문학소재로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것이다. 왜냐하면 윤태철이든 김태철이든, 또는 그들이 공헌을 했든 오유를 범했든 죄다 그때는 그럴수밖에 없었다는 공식에 맞춰넣으면 그만이기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문학감상을 할 때 확대된 시점-- 즉 한시대의 문화환경 내지 문화형태라는 보다 넓은 시점에서 주인공의 형상가치를 따져보아야 하지만 결코 주인공 자신의 인격적체험과 문화본위를 떠나서는 도저히 진실을 파악할수 없는것이다. 우리가 만약 윤태철에 대한 신변정리를 잘 한다면 쉽게 그때는 그럴수밖에 없었다는 공식에 앞서 벌써 그때 그는 그럴수밖에 없었다는 공식을 도출해낼수 있는것이다. 첫째, 윤태철이 혁명에 참가한 초기의 목적은 바로 지주를 타도하고 땅을 분배받아 가난에서 해방되려는것이였다. 그것은 계급적대항, 즉 직접 지주계급과 맞겨룸하는 혁명이였는바 그만큼 지주계급은 그의 직접적인 적이였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림성이 평론 <<<볼쉐위크의 이미지>의 이미지>>(<<연변일보>> 1991년 7월 4일 제3면)에서 지적하다싶이 윤태철은 <<<계급투쟁을 기본고리>로 하던 그 세월에도 <성분유일론>이 아니고 <분자>와 자식을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고 정책적으로 그렇듯 명확히 규정해왔건만 <싸리그루에서 싸리가 난다>고 나라를 전복시킬 위험이 그래도 성분이 나쁜 그 사람들한테 있다고 여기면서 철저히 <계급계선>을 나누고 <독재>를 강화해야 철저한 <혁명성>을 지켜나갈수 있다고 생각한것이다. 둘째, 그때의 사회력사적환경 역시 윤태철의 상술한바와 같은 심리적자세에 충분한 근거를 제공하고있었다. 당시에 비록 계급적대항의 제도가 뒤엎어졌지만 피통치자의 위치에 있던 계급이 통치자의 위치에 오르고 통치자의 위치에 있던 계급이 피통치자의 위치로 전락되였다는 자체, 혹은 적어도 원 통치계급의 <<분자>>와 현실적으로 만나고있다는 사실 자체가 사실적 아니면 감각, 인식적으로 계급적대항성의 마당을 형성하였을것이다. 바로 우리 당이 그 자신이 령도한 위대한 혁명의 승리로 하여 사회주의제도가 건립되고 그와 함께 인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여 계급존재의 사회적의미가 시대의 변화속에서 부정되고있음에도 계속 투쟁을 기본고리로 하여 계급투쟁확대화를 초래하게 된것도 상기한 사회력사적원인때문이였다. 더구나 직접 계급적대항의 사회를 체험해온 윤태철이고보면 특히 <<계급성분>>문제에서 그처럼 강경할수가 있는것이며 당의 계급투쟁확대화도 쉽게 옳은것으로 받아들일수가 있었던것이며 지어는 자각적으로, 철저하게 <<혁명>>할수 있었던것이다. 셋째, 윤태철의 소박한 혁명성과 사회력사적환경과 함께 그의 락후한 농민출신의 신분적제한성이 인과적으로 금 그어준 현실파악과 문화적자아실현의 한계성을 홀시할수 없는것이다. 어찌보면 이것이 그의 삶의 인격을 정립시켜준 가장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요인으로 될것이다. 가난이 선물한 무식함은 그를 경험-유전형의 인간으로 키워왔기에 론리-사유형의 인간과는 너무나 아름찬 거리를 두고있다. 이것은 필연코 그의 사회에 대한 인식과 자기 자세에 대한 조절 내지 규범에서 모호성과 전통성 및 의뢰성을 나타내지 않을수 없게 하였다. 특히 이런 비자각적인 문화바탕으로서는 우리 당의 사상리론체계에 대해 령혼적으로 옳바르게 해득할수 없는것이다. 하기에 그는 다만 우리 당은 인민을 이끌어 계급적대항의 사회를 뒤엎고 인민을 나라의 주인이 되게 한 위대한 당이라는 극히 소박하고 거의 상식에 가까운 긍정으로부터 출발하여 상급의 말만 들으면 틀림없다는 심리적자세를 갖춘것이였다. 하기에 사실상 그의 모든 사유와 행위는 그 자신의 자치적노력보다는 관념적인것을 모방한 의뢰적인것이였으며 그의 인생적자세조차 적극적이고 자각적인 목적추구가 아니라 다만 시키니 한다는 심리로 삶을 조직한 순응주의적인것이였다. 이것은 력사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개혁개방의 시대가 열린 벽두에 새로운 인생무대에서 다시 자기의 생활능력을 실험코자 애쓰는 윤태철의 창백한 모지름에서 재확인하게 된다. 비록 시대가 어느 정도로 력사의 한 물결에 휩쓸렸던 개인들에게 심각한 력사적사고와 반성 및 자아발견적인 각성의 계기를 마련해주고있음에도 윤태철은 우리 당이 자기의 오유를 반성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자 도리여 자기 모멸감과 무력감을 느끼면서 정신적으로 완전히 파산당하고만다. 다만 <<<볼쉐위크>적 오기>>로써 <<자신에 대한 력사의 희롱을 달갑게 받아안으리라 했고 아들놈앞에서 주저치 않고 <두뇌없는 순복도구>질 하리라 했다.>> 그렇게 가냘프던 정신조차 허물어져버린 윤태철에게 남은것은 행위외엔 아무것도 없다. 행위자 목적이요 행위자 동기요 행위자 인생이였다. 하기에 그는 다만 <<흘러간 력사에 대한 울분>>과 <<아들놈한테 향하여진 <볼쉐위크>적 오기>>때문에 허수빈네를 도와주는것을 <<삶의 내용>>으로까지 여겨 <<그가 새롭게 걸어나갈 인생의 길인것처럼>> 느끼는것이였다. 인젠 자기몸을 주체하기도 바쁜 로인이면서도 그 육체를 허물어서라도 새로운 인생무대에서 기어코 훌륭한 배역을 담당해보려는 거기에 정신적공허와 창백함이 드러나고있으며 자아희생적으로 자기의 약점을 표현하는 비극성이 조명되고있는것이다. 달리 풀어말하면 생리적년령은 이미 인생의 황혼빛을 띄고있으면서도 비여있는 정신적공간때문에 쇠약한 육체만을 소비하지 않으면 안되는 여기에 그의 인과적인 희생이 확인되여 있는것이다. 오늘 우리 당이 경제건설을 중심위치에 놓음과 함께 당원들의 리론수양과 문화자질에 각별한 중시를 돌리고있는 자체가 이런 력사적교훈과 시대적요청을 웅변적으로 전달하고있는것이다. 필자가 <<<볼쉐위크>의 이미지>>에서 받은 계시도 바로 이런것이였다. 상술한 분석으로부터 필자는 <<윤태철의 철저한 반성>>을 강요하는 평론가 일언의 주장에 수긍되지 않는다. 사실 평론가가 지적한 결함 자체가 바로 윤태철형상의 특징으로 되고있는것이며 그것에 대한 몰자각으로 하여 그 자신이 의연히 차디찬 정신적방랑을 하고있으면서 <<무엇인가 억울한것만 같았고 그러한 평가가 도저히 납득이 되질 않았>>는데 기어이 그더러 직접 철저히 반성하라고 하는것은 생활적으로나 론리적으로나 도저히 합리성을 찾을수 없다. 그렇게 되자면 이 소설의 전반 이야기성에 질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지 그렇지 않을 경우 작가가 에누리없이 개념화, 도식화에 깊이 빠지고말것이다. 우리가 평론에서 력사의 소용돌이속에 비극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인물을 분석, 비평하는것은 그때를 그는 그렇게 살수밖에 없었다는것을 부정하려는것이 아니라 어제의 오늘, 오늘의 력사라는 련속성에 립각하여 경험적인 삶에서 현실적인 삶을 확인하려는것이다. 즉 현재적합리성에 목적한 나무람일따름이다. 다음으로 <<정치색채가 아주 농후한 이 소설에서 윤준호의 정치태도같은것은 거의 무시되고있다>> <<그의 모든 말과 짓이 순정이에 대한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고있다>>는 지적에도 도저히 수긍이 가질 않는다. 우선 이 소설이 <<정치색채가 아주 농후하>>다는 견해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필자도 림성의 견해와 같이 이 작품은 <<40여년에 걸친 우리의 력사에 대한 반성을 안겨주는 의의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력사의 흐름속에서 우리 매개인이 갖춰야 할 자세에 대한 사색적제시가 다 크다고 생각>>되며 력사적착오에 대한 문화적반성에 력점이 놓이고있다고 확신하기때문이다. 윤태철의 아들 윤준호와 지주아들 허수빈의 딸 허순정의 사랑의 훼멸이 소설의 갈등과 슈제트발전의 계기로 되고있으며 윤태철 자신의 심리적모순, 정신적곤혹, 량심적회심이 전반 작품을 관통하고있다. 그다음 <<윤준호의 정치태도같은것은 거의 무시되고있다.>> <<그의 모든 말과 짓이 순정이에 대한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고있다.>>는 견해에도 반기를 들지 않을수 없다. 단도직입적으로는 왜서 윤준호의 정치태도가 꼭 표현되여야 하는가? 왜서 그는 꼭 말과 짓에서 순정이에 대한 생각을 벗어나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수 없다. 작품에서 보면 사랑의 억압과 훼멸은 윤준호로 놓고말하면 개인의 삶의 전체에 절망적인 비극의 요인으로 작용하고있다. 삶의 절망까지를 느낀 뼈에 새겨진 상처, 그 상처가 주는 참을수 없는 아픔, 되돌아가 그 아픔때문에 잊을수 없는 사랑인데 기어이 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것은 인간상정에도 어긋나는것이다. 더구나 씨앗까지 뿌려 미구에 열매를 보게 되였던 황홀한 사랑이고보면 꿈에조차 잊을수 없을것이다. 그리고 윤태철과 윤준호의 갈등이 그 내용적확장이 몇십년의 력사에까지 미치든지 아니면 전반 사회에까지 관계되든지간에 우선 그것은 가정내부의 부자갈등, 지어는 어떤 사람을 <<새사람>>으로 맞아들이는가 하는 갈등의 형식으로 표현되고있는만큼 윤준호가 꼭 아버지한테 나는 력사를 정치적으로 어떻게 보오, 현실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보오 하고 태도표시해야 할 생활적흐름의 합리성을 찾아볼수 없다. 특히 그 사랑을 억압하고 훼멸시킨 장본인이 아버지일 때 가부장제적독단에 훨씬 더 분개하게 되는것이며 갈등의 초점이 그것에 모여지기 마련인것이다. 그가 당소조장을 질책한것도 진짜 충고도 있고 야유, 조소도 있지만 기실은 아버지에 대한 울분을 터뜨린것이다. <<시어머니역정에 개배때기를 찬다>>는 격이다. 사실 작가 자신도 결코 작품에서 정치관념상에서의 세대적갈등을 반영하려는것이 아니라 사랑마저 정치적우박의 피해를 받지 않을수 없었던 인정이 메마른 특정된 사회상을 부각하려는것이다. 인물형상분석에서 작품의 얽음새에 따르는 매개 인물의 자세로부터 그 인물의 성격을 파악해야지 저 인물의 성격에는 이런것이 있는데 이 인물의 성격에는 이런것이 없다는식으로 허물한다면 오히려 개성있는 성격을 부각할수 없을것이다. 그리고 이런 류의 사람은 이럴 때 이러는것이다 하는식의 주장은 도식화, 개념화로서 그렇게 되면 작가는 생활적인 인간을 부각하는것이 아니라 론리적인 인간을 제조하게 될것이다. 사실 생활현실에서 보면 이 사람은 이러해야 하는데 이렇지 못한것이 이 사람의 성격의 거치른 면이 되고 저 사람은 저러해야 하는데 저렇지 않은것이 저 사람의 성격의 개성적인 면이 되는것이다. 이상에서 나어린 글쓰기 열성자로서 두분 평론가선생님을 비롯한 여러분들의 가르침을 믿어의심치 않으면서 설익은 관점을 가지고 하루강아지 범무서운줄 모르는 행위를 개시했다. 학술적으로 다각적풀이가 가능한 시대인만큼 개성적으로 일가지언을 주장함은 중요하지만 남을 이설이라고 억누르는것은 언어도단일것이다. 그만큼 자기의 관점만을 책임지고싶다.
41    사회적 착오 자아의 탈출 댓글:  조회:1418  추천:0  2009-05-16
에텐동산을 떠나기전의 아담과 이브는 자연인으로서 거의 동물적인 생존욕구로부터 일하고 먹고자고하였다. 그러나 악마의 지배자인 사탄이 그들을 꼬드겨 지혜의 금과를 따먹게 한후로부터 인간의 원죄는 시작된다. 고고성을 울리며 태여난 어린애는 아직 자연인으로서 동물적인 생존욕망에서 먹고자고한다. 그러난 어린애는 점차 자라는 과정에 문화인으로 성장하면서 혹은 훌륭하게 혹은 나쁘게 혹은 밝게 혹은 어둡게 인생의 일기를 적어간다. 적어도 인간의 원죄란것도 결코 생명본체에 원초적으로 내함되여있는것이 아니라는 설명이 된다. 그렇다면 인간의 원죄의 근원은 무엇인가? 사람을 고급동물이라고도 하고 또 사회동물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으로도 사람의 속성은 드러나는것이다. 말하자면 사람이란 바로 사회속에서만 독립할수 있는 동물이라는것이다. 그러므로 일정한 사회는 일정한 형태의 사람들을 제조해내는것이다. 즉 인간의 모든 회로애락과 선과 악은 모두 사회적생장물이다. 리화숙의 <<인생실습>>은 바로 이와 같은 인간학적 또는 사회학적 문제를 떠올리고 <<나>>와 그 주위의 인간군에 대한 형상적묘사를 통하여 그네들이 삶을 펼쳐놓은 사회를 재조명하고있다. <<나>>는 원래 머리를 수굿이 하고 일만 하는 <<누른한 소>>였다. <<신문사에 배치받은 그날부터 국제시사부에서 번역만 하다보니 인간관계테두리가 딸년의 팔목걸이만큼도 안되였다.>> 그래도 <<나>>는 <<나>>대로 누구에게도 원망없이 <<나>>에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왔다. 그러나 <<나>>의 진실성과 솔직성이 얼마나 허망했고 또 막연하게 믿어왔던 법칙이 얼마나 령활한것이였던가를 <<내>>심장이 아프도록 절실하게 감수했다. 람용되는 권력, 미꾸라지는 살고 <<누른한 소>>가 채찍받는 불공평한 세월, <<나>>는 다년간 80여원의 로임에 네식구가 목을 달아매고있지만 배치돼온지 3년도 안되고 글재간은 손톱여물만치도 없는 관계학우등자에겐 주임자리를 주고 새 아빠트를 배당해주는 원통한 현실, <<실로 너무도 밑지는 인생이고 너무도 억울한 신세였다.>> 오직 권력과 아첨만으로 할수 있는 일을 <<나>>는 어떻게 할수 있겠는가? 죄도 바로 한가지 생각에만 골몰하는데서 일으켜지는것이다. 이와 같은 기형적인 사회현실이 청춘의 반항을 불러일으켰다. 네가 권력으로 사람을 압제하고 희롱한다면 <<나>>는 <<부정기풍사냥군>>이 되여 너의 기염을 꺾어놓아 사나운 사자를 온순한 양으로 만들고말테라는것이다. <<내>>가 처음 이런 못된짓을 시작한것은 전적으로 <<내>>가 당한 억울함과 고통에 대해 복수하고싶은데서였다. 그러나 얼마 안되여 그것이 원인이 되여 3%로임조절에서 보살핌을 받고 또 신문사 보도주임의 요직에까지 바라오르게 되자 <<나>>는 <<승리의 희열>>에 도취되여 영원한 악의 미궁에 빠져들어갔다. 비밀현장을 쥐고는 농촌사람을 도시사람으로 변신시키고 앓는 놈을 군대에 내보냈고 통신원을 기자로도 만들어보았다. 그 수고비로 들어오는 돈은 슬쩍 눈감고 아닌보살했다. 하여 수입은 가관으로 불어갔고 승직도 번개식속도였다. 워낙 인간은 일단 악에 마음잡히면 야수보다 침략성이 더 강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본성은 아니다. 그것은 일정한 사회거나 사회환경이 키워준 생장물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또 모종의 생존의식 내지 생명의식의 극단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남처럼 살아보겠다는것이 소박한 생존의식이라면 남보다 더 잘 살아보겠다는것에는 벌써 어느정도 화약냄새조차 풍기는것이고 악마의 그림자가 비껴있는것이다. <<살아있어도 소리칠수 없는 사람>>인 <<내>>가 소리치며 살려면 <<나>>한테 소리치는 권세자를 <<소리칠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믿었던까닭에 그처럼 교활하고도 루추한 방법을 착안해냈던것이다. 물론 목적의 정당성을 내걸고 수단의 악을 미화할수는 없는것이다. 악의 수단을 쓰게 된것은 정당한 목적을 위해서였다는 변명은 악에도 좋고나쁨이 있다는 언어도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때면 악의 정체도 모호해지고마는데 바로 <<나>>와 같은 권력지향의 인간들은 그런 모호한 정체의 악을 리용하여 자기의 정당성을 변호하는것이다. 인간의 삶은 과정이 곧 목적이라야 한다. 풀어말하면 참된 삶은 참된 삶의 과정을 통해서만 이룩될수 있다는것이다. 참된 삶에 악의 과정 내지 악의 수단이 필요하다는것, 그것은 도저히 맞물릴수 없는 론리이다. 그럼에도 삶의 현장에선 왜 이런 론리가 성립되는듯싶은 실례들을 찾아볼수 있는가? 여기에서 우리는 생명본체의 자연적이고 본성적인 민주, 평화와 평등이 파괴되고 인권이 권력의 억압과 유린을 당하고있는 구속의 현실을 새삼스럽게 체험할수 있다. 지금도 우리는 원시적자연환경을 배경으로 하고 살고있는 미개한 민족들로부터 아무런 인위적인 요구나 구속이나 착취도 없이 환경의 요구에 따른 자기식의 생활을 하는 원시적인 민주와 평화 내지 생의 만족을 엿볼수 있다. 또한 력사를 뒤져보면 인류는 기원전 4천년 내지 3천년에 이르러 자신이 생리적으로 수요하는것을 훨씬 초과하는 필수품을 생산할 능력을 가지면서부터 빼앗고 훔치고 착취하는 등 후천적인 침략본성이 자라나게 되였고 원래는 그 부속물인 노예, 군대, 정부, 전쟁, 등급 등이 잇따라 산생되였던것이다. 따라서 동물적인, 자연적인 민주는 소실되고만것이다. 물론 이런 동물적이고 자연적인 민주가 인류의 리상으로 될수는 없다. 인류의 조상이 금과를 따먹은후로 무궁무진한 지혜를 갖게 된 인간은 부단한 창조로써 하느님이 가르쳐준 미의 세계를 구축하는것이다. 바로 인류가 풍부한 물질적토대우에서 생리적수요를 초월한 절대적인 향수를 누릴수 있는 새로운 민주와 평화를 제조하는 과정에 력사는 굴곡적인것이다. 그러나 될수 잇는한 인류는 이 과정의 곧음을 위해서 끊임없이 자기를 시험하고 자기를 다듬어야 하는것이다. 그런데 지금 바로 진실과 순결이 <<나>>에게 참다운 삶과 그에 정비례되는 생활환경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데 비극적인 운명이 있다. 여기엔 구체적으로 말하면 권력담당세력의 청렴성이 제기되는것이지만 총괄적으로 보면 우리가 꾸며온 력사를 총결산해본 사회정치문화적의미가 담겨져있는것이다. 권력담당자에 대한 해부로부터 착수해보면 자기의 능력을 초과하는, 권세욕에 눈이 어두워 상급에겐 비굴한 아첨을 보내고 하급에겐 상대방의 인격이나 재능보다는 안면과 지갑의 크기에 더 관심하는 권력람용자들, 위세나 풍모가 더 큰 권력이나 돈 앞에서 기운을 잃고마는 위선자들, 명철보신하면서 사리사욕만 채우는 무능한 권세자들을 우리의 생활권내에서도 얼마든지 볼수 있다. 권력담당자란 한사람이 만사람을 지배하는자이다. 그만큼 청렴한 몸에 지혜가 깃들면 만사람이 복을 받게 되고 추악한 몸뚱이에 놀라운 재능이 깃들면 만사람이 해를 입게 되는것이다. 이런 얼굴을 우리는 김사장의 형상에서 보고있다. 자신은 아주 청렴하고 사원들의 리익을 위해 힘다하는듯이 자처하면서 <내>>가 <<어쩌다 한번 식료품공장의 보도기사 한편을 써주고 과자상자 한개를 받은것을 갖고 뭐 위성이나 발견한것처럼 떠들어대면서 못살게 굴었다>>. 그러나 자기는 도리여 기자들한테 사진기를 사주고는 상점측으로부터 과자 한상자가 아니라 과자상자에 넣은 5천원이란 거액의 감사료를 받아먹었던것이다. 그리고 <<머리를 수굿하고 일만 하는 나>>에겐 그냥 손해만 주고 <<배치받은지 3년도 안되고 글재간은 손톱여물만치도 없는 관계학우등자>>에겐 주임자리를 주고 새아빠트를 배당해주었던것이다. 새로 부임된 양사장도 그랬다. 다만 김사장보다 더 교활하고 음특할뿐이다. 겉으로 보기엔 그는 <<손톱눈만한 부정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사람이였다. 그래서 거의 오만할만큼 도고했다. 안해나 자식까지도 그의 사업열정과 자아의 관철에 얼마 소용되지 않는것 같았다.>> 허나 그 <<평화로움은 오히려 정상적이 아니>>였다. <<지나친 그 평화속에 부글부글하는 분렬의 암류가 잠재>>되여 있었던것이다. 굴레벗은 말처럼 날치는 <<나>>를 손아귀에 잡아쥐기 위해선 <<미인계>>조차 꺼리지 않는 위선적이고 음험한 자였다. <<나>>와 같은 많은 사람들이 진실과 순결속에서 이런 권력담당자들의 인위적이고 추악한 권력중압에 지지리 눌리워 한탄과 원망과 저주와 실망의 십자가를 메고 인위적이고 불필요한 인생고행을 겪고있는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마비된 상태에서 기계사람이 돼버리고 혹자는 가망없는 소경의 헛막대질로 분노와 항의를 거듭하고 혹자는 <<나>>처럼 어둠이 깃든 자아에서의 허위적이고 절망적인 탈출을 시도하는것이다. 그러나 그 어느 경우든지 결과는 모두 허황하고 비참한것이다. 마비된 사람은 자살적으로 리상과 전도를 동댕이친 사람이고 헛막대질하는 사람은 스스로 혹을 더 다는것뿐이며 <<나>>처럼 자아에서 탈출한 자는 사회와 도덕의 비바람을 막아낼수 없는것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진단과 처방은 어떻게 되여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꾸며온 력사를 재결산해보고 사회정치문화적의미를 다시 매겨보는것이다. 왜냐하면 복합적으로 결정되는 사회현상을 단일한 인과관계로 급급히 설명해버리는것 자체가 칼로 부추베듯 문제의 화근을 덮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뿐이기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이와 같은 권력담당자들의 부패상은 결코 개개인의 일부 사람들에 의해 조장된 인간도덕문제인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타락의 요람을 마련해준 사회적착오의 반영인것이다. 여기에서 그것을 일일이 설명할순 없지만 간추려보면 그들이 타락하고 게으름을 피울수 있는 원인은 첫째로 사회발전(적어도 한 집단의 발전) 과 그들의 승강이 엄격한 련관을 갖지 않고있기때문이고 둘째로 경제적리해관계(경제적책벌도 포함)가 그들의 공과 죄와 아무런 관계도 발생하지 않고있기때문이며 셋째로 민주(선거와 해임을 포함)가 그들의 승강과 아무런 관계도 발생하지 않고있기때문이다. 든없고서는 게으름을 피울수 없다. 여기서의 <<돈>>을 <<마음의 여유>>라고 한다면 사회발전과 경제적리해관계와 민주의 중압이 가해질 때 게으름을 피울수 있겠는가?! 바로 <<나>>와 같은 진실하고 순결한 인간들이 권력담당자와의 씨름에서 도저히 이길수 없는것도 다만 그 권력때문에 아니라 그런 권력의 공고성을 담보해주는 사회적고질때문이다. 집단의식의 미명하에 명령과 복종을 원칙으로 하여 절대적인 조건반사를 요구하는 사회에서 창조적인 인간은 비극배역을 맡을수밖에 없는것이다. 상술한 리해를 앞세우고 <<인생실습>>을 곰곰히 씹어보는것이 문학을 통해 삶과 현실을 읽어내는 옳은 방법이라고 믿어진다. 그렇지 않고 다만 김사장이나 양사장이나 <<나>>를 한꼬챙이에 꿰여가지고 비렬하다느니 어떻다느니 하는 사건적인 타매에 급급해한다면 그저 사회의 도덕결론을 전달하는데 그치고만다. <<나>>가 권력의 중압에 못이겨 나중엔 그처럼 비렬한 수단을 썼음에도 읽은이의 동정과 지어는 환심까지 사게 된것은 <<나>>가 복종에 중독되든 분노하고 반항하든 자아에서 허위적으로 탈출하든 모두 진정한 자아를 찾을수 없고 최종적승리를 안아올수 없으며 도덕의 질책에서 벗어날수 없다는것, 또 그만큼 <<나>>가 개인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는 도저히 이길수 없는 사회적착오와 씨름하는 필패의 씨름군 즉 절대적인 비극운명의 주인공이기때문이다. <<인생실습>>은 일인칭수법을 리용하여 <<나>>가 권력의 중압에 못이겨 자아에서의 허위적인 탈출을 시도하면서 일어난 일련의 내면갈등--긍정과 부정, 량심적질책과 사회적변호, 도덕적반성과 사회비판 등을 현실감각이 짙게 보여주고 삶의 현장감을 뚜렷이 느끼게 함으로써 읽는이들로 하여금 적극적인 참여의식에 몸달구게 한다.
40    [해란강아 말하라]의 역사적 진실성 댓글:  조회:1658  추천:0  2009-05-16
장편소설 <<해란강아 말하라>>(김학철)는 연변 연길현 해란구 버드나무골을 주요무대로 하여 연변인민들의 항일투쟁력사의 비장하고 거세찬 흐름중의 한물결, 즉 혁명의식이 싹트고 성숙되던 시기였던 1931년-1932년의 력사를 예술적으로 재현시킴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9.18>>사변, 추수투쟁, 춘황투쟁 및 항일무장투쟁의 력사를 돌이켜보게 한다. 소설은 이런 력사사변들을 통하여 혁명투쟁의 간고성, 장기성 및 필승의 진리를 밝히고있다. 력사적진실감은 이 작품의 흡인력을 짙게 한 가장 중요한 예술적특징이다. 작자는 생활감정에 필을 푹 묻혀가지고 력사적현실을 보다 미더웁게 예술적진실과 불가분리적으로 통일시키려 애쓰면서 형식적으로만 추구되고 정형된 도식과 정치적으로만 강요되고 굳어진 관념상의 지나친 리상화에서 벗어났기에 생활정취가 짙고 력사감과 진실감이 물씬하며 당시 생활에 동반되였던 흙냄새와 초연냄새가 사실주의적으로 짙게 풍긴다. 주지하다싶이 력사사건을 제재로 한 작품에서 력사적진실감은 무엇보다 먼저 그 작품의 운명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된다. 력사의 페지에 따라 고통은 고통으로, 웃음은 웃음으로 직시해야만 독자들의 력사적상상력을 촉발시켜 넓은 공감대를 형성할수 있는것이다. 력사적현실을 외면한채 순수 관념상에서 추구되는 리상화는 벌써 허위로 되고만다. 그러나 예술의 진실은 생활을 그대로 복사하는데서 담보되는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려과시킨후의 <<현실생활>>로써만 긍정된다. 이것은 력사적현실과 예술적진실의 모순을 유기적인 통일로 전환시킴에 의거해야만 력사소설의 성공이 완성된다는것을 의미한다. 그럼 장편소설 <<해란강아 말하라>>에서 어떻게 력사적현실과 예술적진실을 유기적으로 통일시켰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이 작품에서 진실성은 인물형상의 성격창조에 앞서 주제와 제재면에서 벌써 짙은 력사적진실감으로 밝게 체현되고있다. 주제면에서 보면 소설은 일련의 력사적사변들을 통하여 민주혁명투쟁의 간고성, 장기성 및 필승의 진리를 밝히고있으면서도 작자는 이런 주제의식을 이미 승리한 혁명력사에 대한 관념적리상화로써 표현한것이 아니라 작자의 기억속에 생생히 자리잡고있는 경험세계, 즉 민주혁명력사시기의 사회생활과 인민들의 피로써 얼룩진 투쟁을 력사의식의 현실적체험속에서 예술화하여 실감있게 보여주고있다. 다음 제재면에서 보면 소설은 연길현 해란구 버드나무골을 주요활무대로 하여 연변인민들의 항일투쟁력사중에서 혁명의식이 싹트고 무장투쟁의 첫 봉화가 타오르던 때인 1931년-1932년의 력사를 반영하고있다. 작자는 여기에서 지나친 랑만을 추구한것이 아니라 흘러간 력사를 제재로 한다는 특수성으로부터 출발하여 예술적진실과 력사적현실과의 내재적통일을 완성하기에 애썼다. <<동만 전역이 그러하듯이 32년 늦은 봄에서 겨울에 걸치여 해란강일대의 농민들도 역시 암담한 검정구름의 그늘아래서 세월을 보내였다.>> 일제는 <<9.18>>사변후 저들의 식민지화음모와 파쑈적통치로 하여 야기된 여러 민족 인민들의 반일정서와 반항투쟁을 진압하기 위해 혈안이 되여 날뛰였다. 인민들의 애국의식과 반항투쟁은 반동의 선불맞은 고조기를 휘몰아온것이다. 일제는 저들의 식민지통치를 하루속히 실현하기 위하여 중국공산당의 손길이 아직 인민들속에 확고한 신심과 신념을 키워주기전에 그 싹을 베여버리려 시도하였다. 1932년 한해에만도 일제는 연변에서 4천여명의 무고한 군중을 학살하였다. 1932년 부터 1933년사이에 일제는 연길현 해란구에 대하여 선후로 94차의 <<토벌>>을 발동하고 천칠백여명의 혁명자와 백성들을 살해하여 피로 물든 <<해란강대참안>>을 빚어냈다. (<<조선족간사>> 100~101페지) 작자는 소설에서 이런 력사적현실의 어려움과 참혹성을 관념속에서 분해시켜 리상화로 염색해버린것이 아니라 력사적사변을 원형 그대로 예술적진실과 유기적으로 통일시키려고 애쓰면서 사건본질속에서 비장한 주제의식을 발굴해내고있다. 작자는 이런 비장한 주제의식을 제재다룸에서 선과 악, 정의적인것과 비정의적인것에 대한 작자 자신의 선명한 인민적태도로 체현시키고있을뿐만아니라 보다 개성화된 인물성격창조에 믿음을 주어 부동한 계급성, 부동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의 부동한 인식적대화를 통하여 그것을 힘있게 완성해나가고있다. 인물형상창조에서 작자는 우선 밝은 성격의 창조와 그들의 건전한 정서적발전에 예술적공간을 넓게 주고있는바 이런 밝은 넋들의 힘찬 움직임은 작품에서 재현된 비극적인 력사사건으로 하여금 주제를 위한 로파심에 찬 과잉해석이 없이도 비극속에 새로운 전환요소를 다분히 내함하도록 함으로써 전반 작품의 정서적흐름을 비애적으로가 아니라 비장하고 전투적인 분위기로 차넘치게 하고있다. 또한 바로 이런 인물형상군들의 적극적인 투쟁자세와 질적으로 밝은 삶의 추구로 하여 비록 소설이 사건적비극으로 막을 내리우고있지만 그러나 독자들이 가슴뿌듯이 체험하게 되는것은 전혀 혁명에 대한 실패의식이나 정서적어두움인것이 아니라 승리에 대한 아름다운 믿음과 희망이며 주인공들에 대한 동정과 사랑이다. 이것은 작품의 력사적진실감이 작품의 주제의식과 주인공의식과 독자의식을 미학적인 정서흐름에서 맞물림을 이루어주었기때문이다. 소설에서 림장검의 형상은 비교적 성공적이다. 소설은 그의 성격발전에 알맞는 무대를 꾸며주고 력사적현실의 진감속에서 그의 개성적기질에 맞게 량적성장에 따르는 질적변화를 실감짙게 밝혀주고있다. 인간의 사랑을 일찍 잃은 고통우에 강한 반항의식을 키워온 그는 불같은 성격을 가진 강한 의지형의 인간이다. 무슨 일이나 마음적으로 긍정되여진 일이면 자기의 능력을 의심하거나 가능성을 꼬물꼬물 계산함이 없이 맹호같은 폭발력으로 후닥닥 해치우고만다. 그만큼 성공에 믿음이 깊고 실패에 교훈이 크다. 때문에 매 한가지의 체험적사건에서 그의 의식은 폭발적이고 비약적인 전변을 가져온다. 그러나 아직 혁명에 대해 실천적으로 깊이 체험하지 못하고 특히 관념적사유에까진 성숙되지 못했을 때 그의 의식의 전변은 언제나 리성적이고 관념적인것이 아니라 그의 약삭빠르고 총명한 본성적성격에 토대하여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감성적이고 감각적인것이였다. 때문에 반항의식이 달구지사건으로 폭발점에 이르러 박승화네 집을 뛰쳐나온 그는 <<나두 사람이다>>라는 심리적반응에 흥분되고 인간가치에 대한 순박한 자각의식에 삶의 자세를 바꾸면서도 박승화와의 갈등을 다만 개인적인 모순으로만 여기고 이를 계급적의식의 이질성에서 초래되는 본질적인 대립으로는 자각하지 못한다. 그리고 갓 혁명에 몸잠그었을 때도 각성된 의식의 자각적인 분투보다는 의연히 자기의 신변생활에 대한 강렬한 불만정서에 사로잡혀 자각적인 의식의 락관이 아니라 맹목적이고 자발적인 본성적성격의 락관에 퍽 흥분되여있다. 혁명자들과의 접촉, 혁명에 대한 실천적체험, 일제의 <<간섭>>으로 인한 신변생활의 공간적확대, 박승화의 로골적인 반공활동, 이런것들로 하여 장검이의 환상적인 꿈은 산산히 부서지며 눈앞에서 펄럭이던 붉은기폭도 훨씬 멀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혁명에 대한 환멸의식이 아니라 혁명의 간고성과 장기성에 대한 동통이 심한 자각증상이였으며 보다 리지적인 의식의 눈트임과 함께 새로운 깨달음에 도달하면서 내면에 아프게, 그러나 미더웁게 흘러가는 심리적반응이였다. 이와같은 의식의 질적전환에 대한 내적모습의 조명은 후에 장검이가 혁명투쟁속에서 나타낸 강한 의지형의 행위에 성격발전의 론리적합리성을 안받침해준다. 또 이와 같은 불밝은 성격발전으로 하여 장검이의 죽음은 혁명의 실패감과 정서적어두움을 비껴주는것이 아니라 그가 자각한바의 혁명의 간고성 장기성을 가슴저리게 실감적으로 보여주는것이다. 이밖에 버드나무골 농협의 지부책임자 한영수, 농협위원 왕남산, 대소사불문하고 언제나 적극적인 참여의식으로 할말은 허리부러지게 하고 투쟁에서 대중일반속에 코기러기처럼 앞장서는 박화춘, 사랑을 토대로 하여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한 무조건적인 방조와 지지로부터 점차 혁명의 도리에 대해 소박하고도 생활적인 리해를 가져오면서 개인적인 목적추구를 계급의 근원적인 목적추구와 련결시키는 허련하, 영리하고 오돌찬 한영옥, 총명하고 지혜롭고 용감한 삐오넬 성길이 등의 인물형상들을 통해 의식의 이질감, 성격의 다양성으로 저마끔의 뚜렷한 개성과 심리적반응차이 및 그에 따르는 행동적반응차이를 보이면서 또 계급의 동질성속에서 밝은 투쟁세력의 복합적형상을 창조함으로써 작품의 주체의식을 예술적으로 감각되게 하고있다. 혁명투쟁의 간고성, 장기성은 또 대상적의미에서 원쑤의 교활성, 잔인성과 강대성을 동반한다. 만약 이를 부정한다면 그것은 벌써 혁명의 간고성, 장기성을 부정하는것이며 선렬들의 피어린 투쟁을 부정하는것이다. 왜냐하면 대상적의미에서 어느 한쪽을 과장할 때 모름지기 다른 한쪽도 과장되고말기때문이다. 이것으로써 작품에서 부정인물형상의 진실성은 긍정인물형상의 진실성과 상호경쟁적작용으로 거의 대등한 예술적가치를 나타낸다는 설명을 대체할수 있을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박승화의 형상이 퍽 성공적이다. 버드나무골의 툰장인 그는 천성적인 음험한 교활성과 유산자의 극단적인 리기주의가 골수 가득 흐르는자이다. 리기주의는 그의 인생관, 세계관이였고 교활성은 그의 생존수단이였다. 나라를 버릴지언정 내것을 잃을순 없다는 이런 인생목적은 그의 교활성에 어떤 수단으로든지 내게 유리하게만 되면 된다는 지시등을 켜주어 가장 지독한 음험성과 잔인성까지를 서슴치 않고 받아들이게 한다. 그러나 교활한마큼 기후에 민감한 그는 환경의 변화에 자기를 곧잘 적응되게 할수 있었다. 소작농들이 자기를 응당한 주인으로 바라보고 아직 새로운 의식과는 낯설어할 때 그는 자기를 선량한 구세주로 분장하고 너그러운 인품과 위엄있는 권력으로 그들을 얽어매고 등쳐 간빼먹는 수단으로 그들을 착취하면서도 극력 자기의 삶의 질에 도금칠을 하였다. 그러다가 소작농들의 불만의식이 쌓여 나중엔 반항의식을 두드려 깨우고 그에게 점점 깊은 적의를 품게 되자 그의 교활성은 위선적인데로부터 음험한데로 탈바꿈을 하고 마침내는 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진폭이 큰 력사적사변의 강렬한 진감속에서 보다 음흉하고 잔인한것으로 로골화된다. 이처럼 그의 성격은 객관적충격앞에서 그 자신의 성격적특성에 맞게 주관적선택을 하면서 성숙된다. 이밖에 술과 녀색, 금전과 명예에 오금을 꺾어 빈고농출신을 배반하고 박승화의 충실한 졸개로 충당되여 악한짓을 락으로 삼는 승냥이마냥 잔인한 최원갑, 개를 추겨 사람을 물어뜯게 하고 독약을 풀어 혁명자의 일가를 몰살한 대지주 호가, 계림촌의 부농 리범도, 리범식형제 등의 형상들도 그 각자의 개성적특징을 나탄내면서 반동의 잔인성, 극악성을 여실히 드러내고있다. 이처럼 잔인하고 교활한 적들을 대상으로 한 혁명투쟁이였기에 막대한 피의 대가를 내지 않을수 없었고 많은 력사의 페지를 번지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해란강아 말하라>>는 이와같이 력사적현실과 예술적진실의 통일속에서 긍정인물의 밝은 성격 및 정서적발전과 부정인물의 잔인하고 교활한 성격 및 정서적발전의 불꽃튀는 겨룸을 통하여 혁명투쟁의 간고성, 장기성과 필승의 진리를 실감적으로 밝혀주고있다. 끝으로 의식의 대립적전환을 가져온 김달삼이의 형상과 의식의 질적전변을 보여주지 않은 정적인물인 류인호의 형상도 주제의식을 밝힘에 적극 참여하면서 그 성격들의 력사적진실감으로써 전반 작품의 진실성을 한몫 담당하고있다는것을 홀시할수 없다. 달삼이는 워낙 버드나무골의 농협선전간사이며 사립학교 교장이였다. 비록 한영수의 영향으로 혁명에 몸담은터이지만 그의 마음 구석구석에는 소지식인의 연약성과 배부른자의 리기심이 장난치고있었다. 이것들은 가볍게나마 받아들인 혁명의식과 상호경쟁적인 힘이 되여 수시로 의식의 심리적맞겨룸을 일으켰다. 그것의 힘의 크기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 오르내리였다. 아직 반동의 세력이 그닥 강하지 못할 때 그의 혁명의식은 그래도 미약하게나마 그의 행위를 지배할수 있었다. 그러나 반동의 세력이 사나와지고 자기의 생명이 직접적인 위협을 받게 되자 그의 마음은 대뜸 추워났고 내몸을 위하여야 겠다는 일념이 일체를 좌우지하였다. 하여 박승화의 위협공갈과 유혹앞에서 끝내 공허한 삶의 의식에 몸부림치면서 표면적으로나마 유지해오던 옳은 가치균형을 깨여뜨리고 부정적힘에 절대적행위권을 주고만다. 마침내 그는 변절자로 되여 유격대행동계획을 밀고하며 자기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련락원을 살해한다. 그러나 그의 광열적인 삶의 욕망은 적의 류탄에 맞아 끊어지고만다. 소설에서 달삼이의 형상은 폭넓은 심리갈등을 통해 연약성과 리기심의 자극적인 발전을 심리본질에 맞게 펴보임으로써 비교적 완정한 성격을 완성하고있다. 소설은 이와같은 달삼이의 형상을 통해 배반행위가 혁명에 얼마나 막대한 손실을 가져다주는가를 보여주면서 다른 한 각도에서 혁명투쟁의 간고성과 장기성을 밝히고있다. 류인호의 형상은 또 다른 한 각도에서 주제의식을 실감케 한다. 소설에서 성격과 의식의 질적전환을 꼬물만치도 가져오지 못한 정적인물로 묘사된 그는 보수적이고 리기적이며 노예근성이 짙은 인간이다. 그는 대중투쟁에서 언제나 현실도피적립장을 취하고 습관된 소작농생활에 오히려 믿음을 주면서 설익은 인생을 그대로 살아가려 한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심리본질의 부패가 아니라 굳은 의식과 새로운 의식의 모순에서 초래된 락후였다. 사실 훨씬 수량 많은 군중일반은 몇마디 선동이나 행위를 통해 비약적으로 의식의 관념적전변을 가져올수 있는것은 아니다. 그들은 순결한 가치에 동화하려는 적극적자세를 갖추고있으면서도 문화의 제한성과 관습을 굳게 지키는 맹목적인 삶의 신조가 가장 돌출한 원인이 되여 자기의 생활과 의식에 새롭게 뛰여드는 모든것에 대해 경계하면서 청각만을 믿고 쉽게 새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이처럼 두 의식이 서로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들한테 퍽 효과적인 자극은 감각되는 객관적충격이다. 그러나 이런 객관적충격도 그들로 하여금 새것의 신선함을 실감케하는것일 때라야만 그것을 자기의 삶의 질적추구로 긍정하게 되는것이고 그렇지 않고 객관적충격이 그들로 하여금 새것의 가능성에 어려움이나 묘연한감을 느끼게 할 때 그들은 곧 주저하고 동요하며 그것에 한사코 몸잠그려하지 않는다. 소설은 류인호의 형상을 통하여 이런 대중적심리를 반영하면서 그들의 의식을 각성시켜 투쟁세력을 키우는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어려운것인가를 밝히고있다. 총적으로 소설 <<해란강아 말하라>>는 주제, 제재 및 인물형상에서 력사적현실에 퍽 접근하면서 짙은 력사감과 진실감으로 흡인력을 높이고있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결함도 없지 않다. 특히 이 글에서 론의된 력사적현실과 예술적진실의 유기적통일을 완성하는 문제에도 뚜렷한 흠집이 웅크리고앉아 작품의 예술성에 손색을 끼치고있는것이 퍽 아쉽다. 작자는 이야기엮음에 지나치게 열중한탓이였던지 성격창조에서 인물형상에 예술적의복을 못다 입힌채로 막을 내리우고말았다. 말하자면 사건발전과 결과에 따르는 인물성격발전의 내재적완정성이 완성되지 못하였다. 소설에서 비교적 성공된 형상이라 할만한 장검이의 형상마저 정신적인 성숙보다는 행동의 용감한 반복을 굵게 보이면서 성격발전의 근원적탐색은 고작 겉을 더듬었을따름이다. 그리고 추수투쟁, 춘황투쟁에 궐기한 버드나무골사람들을 보면 마치 외부적충격력, 이를테면 <<9.18>>사변과 다른마을 사람들의 투쟁에 감염되여 순전히 자발적인 반항에 떨쳐나선듯한 인상을 준다. 이것은 한영수를 비롯한 혁명자들과 열성자들이 농민들과 직접적으로 살바투 접촉하지 못하고있기때문이다. 다같은 소작농이란 이 점에서만도 그들은 생활에서 어차피 만나지 않을수 없을텐데 혁명자들은 혁명자들끼리만 생활하고 활동하기에 군중을 상대로 격세감이 없지 않다. 야학만 보더라도 황아장수의 입을 통해 버드나무골학교가 공산당에 장악되여 있다고 밝혀지었음에도 <<겨울>>이란 옹근 한장을 통해 대중의식을 각성시키는 활약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있다. 이런것들은 작자가 력사적현실과 예술적진실의 유기적통일을 완성하려고 애썼지만서도 끝내 채 완성하지 못하고 예술적종합처리에서 남긴 흠집이라고 보아진다. 그러나 소설은 어쨌든 력사적현실에 대한 사실주의적태도와 개성짙은 인물형상군의 창조로 하여 예술의 천평을 무게있게 누른다.
39    서로 마음의 <3.8선>을 지워라 댓글:  조회:1602  추천:0  2009-05-16
짐승은 먹이를 놓고 싸우고 인간은 마음때문에 싸운다. 그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주인의 발뒤굼치를 따르면서 서로 사이좋게 비비고 핥아주던 개들이 하나의 뼉다귀때문에 으르렁거리면서 피를 보지 않고는 물러서지 않을듯이 싸운다. 인간도 하나의 생명체이면서 역시 동물과는 구별되는것이 바로 생각, 즉 사유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것이다. 범처럼 용맹하지 못하고 사자처럼 포악하지 못하고 소처럼 힘이 세지 못하고 원숭이처럼 날렵하지 못하고 날아다니는 새처럼 빠르지 못한 인간이 만물의 령장으로 이 세상에 군림하여 그 모든 천지만물을 주재할수 있는것이 바로 인간은 다른 생명체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마음을 독유하였기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또 바로 그 생각하는 마음때문에 그 어느 동물보다도 더 쉽게, 지어는 본의 아니게 서로가 반목하고 헐뜯고 싸우고 판가리한다. 물론 인간도 먹고 입는것과 같은 물질적인 욕구때문에 서로가 반목하고 질투하고 지어는 판가리를 하는것이 피상적으로는 동물의 싸움과 다를바 없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궁극적인 동력은 역시 인간의 움직임을 지배하는 마음의 자세인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그렇게 그림을 그리듯이 투명하게 들여다 볼수 있는것이 아니다. 오직하면 인간 자신이 경험으로 확인한 속담에도 열길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고 하였겠는가. 그만큼 우리는 인간에 대한 판단에서 어떤 류형, 어떤 경우, 어떤 차원에 따라 획일적인 결론을 내릴수 없다. 다 같은 목사라지만 이분은 확실히 하나님의 독실한 신도로서 인간의 마음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모시나 저 사람은 지극히 계산적인 마음에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인간을 희롱하고 있는것이다. 한국에는 사장님도 많더니 무리로 중국에 쓸어들어 미담과 함께 많은 시비거리를 만들고 있다. 어떤 분은 자기의 주머니를 털어서까지 중국의 조선족지역사회의 발전과 민족문화의 정립을 위하여 여러모로 사랑의 손길을 내밀고 있으나 어떤 사람은 백두산이다, 윤동주생가다 하면서 유람차로 신선놀음을 와서는 마치 중국 동포들을 도우려고 온것처럼 한바탕 사장의 호기를 부리고 실속없는 약속을 락서처럼 란발하고는 선량하고 유치한 중국 동포들의 푸짐한 대접에 룡트림을 하면서도 짐짓 조선족들의 랑비벽에 가슴 아픈듯 제쪽에서 핀잔까지 주고는 꼬리를 사려버리고 어떤 놈은 가난하고 무지한 중국 동포들의 황금몽을 장사거리고 알고 본국의 국법조차 무시하고 위장결혼, 가짜초청에 쁘로까로 나서서 엄청난 리익을 챙기고 지어는 사기군으로 전락되기를 서슴치 않고있다. 하여간 다 같은 사장님이래도 좋은 분, 사귈만한 사람과 미운 놈은 있는것이다. 다 같이 한입처럼 고국, 고국 하고 한국을 친절하게 부르는 중국 조선족이지만 역시 그 마음자세는 같지 않다. 반세기를 넘어오면서 친혈육마저 생리별을 해야만 했던 리념의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인제 세계 선진국으로 부상하는 고국과 고국의 유지들의 동포애에 기대여 우리의 조선족지역사회와 민족문화를 미래지향적으로 튼튼히 다져갈수 있다는 긍지로 민족의 운명과 직결되는 공익사업에 헌신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위장결혼, 초청장위조, 밀입국 등 불법수단으로 고국에 들어가서는 고국의 법과 질서를 외면하고 사기와 매음과 도박으로 자신을 망치는 사람도 있다. 한국사람 죽일놈이요, 중국동포 나쁜놈이요 하고 획일적인 흑백론리로 어느 일방을 타매할 일이 아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법과 질서가 있는것이고 법으로 다스리고 제도적인 질서로 약속하는것부터 벌써 이 한무리나 저 한무리의 인간들속에는 모두 좋은 분도 있고 사귈만한 사람도 있고 미운 놈도 있음을, 한마디로 말하면 바로 죄가 있어 법이 있음을 반증하는것이다. 백사람이면 백가지 성미요, 같은 신분, 같은 차원, 같은 형상을 한 사람이라도 사람마다 그 나름이라는것은 바로 사람의 마음자세가 서로 다르기때문이다. 그렇게 정분이 짙던 친구지간에 트럼프 놀다 말다툼에 손찌검이 나는것처럼 놀음이 고름이 되는것도 역시 사람의 마음의 넓이가 다르기때문이다. 생각하는 동물, 마음을 굴리는 동물, 사유로 판단하는 령적인 동물이기때문에 인간은 항상 마음을 깨끗이 세탁하여 서로가 오갈수 있는 열린 마음의 공간을 마련하여야 너나가 함께 어울려 평화롭게 살아가는 인간세상을 꾸밀수 있다. 그러나 리념적인 갈등이나 정치학적 인생관의 차이에서 오는 대결은 그렇게 봄이 되여 눈이 녹듯이 쉽사리 풀릴수 있는건 아니다. 다른 동물들과 본직적으로 확연히 구별되여 인간에게만 있을수 있는 대결, 그것은 물질적인 충돌이 아니라 바로 인간에게만 있는 정신의 대결이요 그것도 집단의식의 대결이다. 극단적인 정신적 대결이 인간들에게 주는 파괴력은 그 무엇보다 강력하다. 한반도를 보라. 전설에 의하면 산천을 주재하는 바다룡왕이 인간들중에서도 마음이 티없이 깨끗한 신성한 생민에게만 준다는 제일금강을 우리 민족한테 주었다고 하니 아마도 그 때 이 세상에서 우리 민족이 제일 슬기롭고 용감하고 마음이 깨끗했으리라. 그런데 그후로 바다룡왕이 이제 더 마음이 깨끗한 인간들이 있으면 그때 주리라던 남은 일곱개의 금강을 더는 인간세상에 내주지 않은건 무엇때문이였을가. 우리 민족 말고는 이 세상에 더는 마음이 깨끗한 민족이 없었기때문이였을가. 그 복받은 민족이 동족상잔의 비극을 출연하였고 지금까지도 금강산과 설악산을 보루로 그 사이에 남북의 한 민족 서로가, 아니 한 피줄을 타고난 친 혈육마저 넘나들수 없는 <<3.8선>>이라는 긴 장벽을 쌓아놓았다. 얼마나 많은 리산가족들이 한탄과 설음과 저주의 마음으로 인간이 만들어놓은 <<3.8선>>을 자유로이 날아넘는 새들을 부러워 하였던가. 만물의 령장이 되느니 차라리 창공을 마음대로 비행하는 하나의 새가 되였으면 얼마나 좋으랴. 우리 민족이 비운, 물론 따져보면 그것은 계급각성에 따른 리념대결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세계렬강들의 정치대결의 희생품임에 틀림없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격이다. 그러나 아무튼 베를린 담벽이 허물어진 이후로는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민족분단의 상징물인것만은 사실이다. 혹시 바다룡왕이 그래서 남은 일곱금강을 더는 인간세상에 내려주지 않은것은 아닐가. 믿는 도끼에 발등 깼다고 생각해서. 아마도 그래서 바다룡왕이 토해낸 한숨이 안개되여 금강산과 설악산에 서리서리 감도는것이리라. 인제 강성했던 하나의 해동국, 복받은 하나의 민족임을 자랑해야 한다. 동족을 적대시하고 세계를 외면했던 금강산과 설악산의 <<빗장>>을 벗기고 문을 활짝 열어 온 세상에 그 아름다움을 자랑해야 한다. 민족의 비운을 가셔버리고 룡왕의 뜻이 다시 동그랗게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그것은 진정 민족의 대영합일것이며 또 그래야만 과연 슬기로운 우리 민족이 민족혈연의 통일문화를 다시 지향함을 의미할것이다. 그러자면 무엇보다도 먼저 제도와 의식의 대립과 정치학적 이질성에 의한 대결에서 한걸음 물러나 하나의 민족과 문화라는 공동분모에 의하여 다시 혈맥을 이어가는, 열린 마음공간을 마련하는 작업으로부터 시작해야 할것이다. 이는 리념과 제도에 의한 이질성을 극복하고 민족과 문화라는 동질성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며 민족대영합의 바탕을 마련하는 미래지향적인 작업이요, 평화통일의 실천적 일환이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세계적인 리념대결이 공존공생의 평화원칙으로 순화되면서 우리 민족의 정감에도 미묘한 변화가 생기고 있다. 반세기 넘어 생리별의 아픔을 앓으면서 하나의 민족이 만남이 없는 두줄기의 레루처럼 한 곳을 병행하면서도 서로가 거리를 두고 이질적인 의식구조로 모습을 달리해온 분단력사를 떠올리면 민족의 현실과 극복의 의지라는 열린 인식에서 출발하여 리념적 대결과 제도적 분립과 정치학적 인식의 갈등에서 한걸음 물러나 열린 마음공간을 마련하고 민족의 혈맥을 다시 잇는것이 역시 평화통일을 위한 기초공정이라 할것이다. 만물의 령장으로서 다른 동물과는 달리 마음으로 살아가는 인간은 인간들 서로간에 열린 마음공간이 있어야 평화로울수 있다. 역시 종이장도 맞들어야 가볍고 손벽도 마주쳐야 소리나는 법이라 분단의 아픔을 앓고있는 우리 민족은 서로 마음의 <<3.8선>>을 허물고 민족혈연으로 이어지는 열린 마음공간을 마련하여야 통일의 서광을 맞아올수 있다.
38    내 마음에 <하나님>을 모셔라 댓글:  조회:1759  추천:1  2009-05-16
성경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은 빛과 하늘과 땅과 물과 낮과 밤을, 그리고 생물과 짐승과 새들을 그 종류대로 내여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진후에야 비로소 자기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여 천지만물 모든것을 다스리게 하였다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지키게 하면서 동산에 있는 각종 나무의 실과를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였으나 이브가 간교한 뱀의 꾀임에 들어 끝내는 그 선악의 실과를 따먹고 나중에 아담도 먹게하여 갑자기 눈이 밝아져 마침내 선악을 알고 부끄러움을 알게 되였다 한다. 부끄러움을 알게 된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낯도 피해버려 노한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그들을 쫓아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고 선악을 알게 된 그들이 이제 또 생명나무의 실과도 따먹고 하나님과 함께 영생할까 저어되여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그들이 드나들수 있는 생명나무의 길을 막아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은 범과할수 있는 인간의 육체를 백이십년으로 한계했다고 한다. 만약 하나의 육체에 선과 악의 두 마음을 함께 한, 그래서 언제든지 범과할수 있는 인생이 무한이였다면 인간은 더는 죄를 두려워하지 않았을것이고 아무런 속죄의식도 가지지 않았을것이다. 인간이 선악을 알게 되여 하나의 육체에 선과 악의 두 마음이 함께 자리를 잡음으로 하여 이 세상 인간이 있는 곳에 언제나 선과 악이 쌍둥이처럼 뒤따르게 되고 사람은 마음에 생각할때, 계획할때, 계산할때, 판단할때 언제나 스스로 선과 악의 선택에 몸살을 앓게 된것 같다. 또 부끄러움을 알게 된 인간은 옷으로 몸을 가리우던데로부터 선과 악의 대결속에서 점차 언어와 행위로 마음조차 가리우게 된것 같다. 그런데 부끄러움때문에 가리우는것을 알게 된 인간이 마음에 자리한 악을 가리울때 그 사람은 그가 몸 담고있는 사회와 주변의 인간들에게 시한폭탄과도 같은 큰 파괴력으로 잠재하게 될것이다. 종교의 신자는 아니더라도 하나님은 인간을 죄악에서 구제해주는 령혼의 구세주를 상징한다고 확인할때 하나님은 인간 스스로가 선을 선택하고 령혼을 세탁하는 심상(心象), 곧 마음에 세우는 우상이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하나님이 자기가 만든 인간을 저주하면서 모든 생명을 홍수로 밀어버리면서도 의인이고 당세에 완전했던 노아를 살려준것을 보면 마음에 선을 선택하고 령혼을 세탁하는 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곧 스스로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자이리라. 령안으로만 볼수 있다는 옥상과 같은 하나님을 확실하게 보았다는 신도가 생활일상에서 지극히 리기적이고 계산적일때 그가 과연 어느만큼이나 하나님을 믿을가 회의하면서 정녕 마음의 악을 스스로 징벌하지 않고 다만 교리에 몸을 감추고 객관적으로만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자>>는 어떤 강박관념이나 리해타산에 지나치게 민감한것이라고 넘겨짚게 된다. 오직 육체와 함께 하는 마음에 <<하나님>>을 모신 자만이 악을 단속하고 선을 내세워 스스로 원초적인 욕심에 자갈을 물리고 외부적인 유혹이 불러일으키는 과잉반응을 억제할수 있는것이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지만 그러나 한길 사람속은 몰라도 한치 자기 마음속을 모른다고 할수는 없지 않은가! 어떤 집단리념 내지 정치학적 인생관에 삶의 전부를 내맡기는 사람은 인간성을 거세당한 로보트같은 존재일뿐이다. 아니, 그게 아니고 다만 타력이나 객관적인 장치에 순종하는 자는 사실 마음 한 구석에 타인이나 객관을, 결국에는 자기를 속일수 있는 계산장치를 버리지 않고 있는, 그래서 겉과 속이 수박처럼 다른, 역시 그래서 누구보다 더 간교하고 사악한 인간일수 있다. 권력에 아부하는것은 권력에 기대여 타인을 누르거나 그 자신의 권력욕을 만족시키려는 계산일수 있고 어떤 집단리념이나 신앙의 절대적인 추종자인듯이 자처하는것은 정치학적 인생관에서 출발하여 선택한, 지나치게 현실순응적인 대응방식일수 있으나 역시 양머리 걸고 개고기를 파는 식으로 지나치게 계산적인 마음의 <<치부>>를 감추려는 요사한 미용술일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그는 바로 로보트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범에게 물려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이 있듯이 내 마음에 선이 설수 있는 정신적독방을 마련한 자만이 노아의 방주에 오를수 있을것이요, 신앙이나 인생관이나 도덕적 행위에서 실천적 리성에 의하여 삶의 자세를 바로잡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자률적인 인간성을 완성해갈수 있을것이다. 인간의 선이나 인간성을 살리기 위한 제도적 장치나 도덕규범이 때로는 도리여 인간의 선한 마음에 상처를 주고 인간성을 억압할수도 있는것이 바로 인간의 한계이다.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는 먼저 선불금을 내야 입원이 될수 있다. 그런데 먼저 입원을 시키고 나중에 입원비를 가져와야 할 딱한 급성환자나 뜻밖의 사고를 당한 환자도 있다. 그러나 먼저 입원을 시키면 나중에 치료비를 질질 끌어대는 환자에 질겁한 병원측은 천편일률로 제도를 고집하려 한다. 이런 경우가 있으나 저런 경우도 있으니 과연 제도를 내세우는것도 당연하다고 해야 할것이다. 자식교육에서 아이더러 하루 일정을 사전에 부모한테 이야기할것을 요구하나 때로는 아이들한테도 계획외 활동이나 사정이 생길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조차 부모는 속으로는 묵인하면서도 아이한테는 어떤 경우라도 사전에 부모한테 알리는 습관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번 두번 먼저 일을 보고 나중에 청가맡다보면 그저 그렇다 싶어 담이 커져서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수 있기때문이다. 아직 식별능력이 없는 아이들은 리유만 충족하게 세우면 먼저 알리나 후에 알리나 별문제더라고 확인한 나머지 사실을 꾸며 부모를 얼려넘기는 거짓말까지 배워내게 되는것이다. 그리하여 그런 틈서리를 주지 않기 위하여 부모는 절대적인 원칙으로 아이를 교육하는것이다. 하나의 육체에 선과 악의 두 마음이 함께 하는 까닭일가. 그래서 암세포를 떼낸다는것이 그만 주변의 산 세포까지를 베여내는것과 같으리라. 특히 악의 제거를 위하여 악의 수단이 필요할 때 그 악의 제거와 함께 선마저 악의 수단에 상처를 입게 되는것이다. 바로 악의 수단을 요청할때 악의 제거를 위하여서는 선의 희생도 불가피하다는 당연성을 내세우기때이다. 쥐를 치려다 쌀독을 깨는 경우, 그래도 그 동기만은 정당한것이다. 그러니 타력에 의한 강박관념이나 내 마음밖에 존재하는 <<하나님>>은 도저히 하나의 육체에 선과 함께 공존하는 악을 완전히는 베여버릴수 없는것이다. 오직 내 마음에 <<하나님>>을 모셔야만 <<하나님>>은 내 육체를 타고 다니면서 언제 어디서나 시시각각으로 내 령혼에 침투하여 기회를 노려 머리를 쳐들려는 악을 눌러버리고 선이 굳세게 일어설수 있도록 뒤를 받쳐줄것이다. 선과 악이 한 육체에 자리를 잡고있다지만 열심히 령혼을 세탁하여 그 마음의 지옥에 악을 가둬넣고 선이 령혼과 육체를 집정할때 그래도 그는 한 선인이 될수 있다. 죽음을 앞에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자기를 뉘우치고 인정에 목이 메는것은 인간들 서로가 악의 마음까지 동원하면서 쟁탈하던 모든 영욕이 육체와 함께 하는것임을 깨달은 때문이리라. 그런데 죽은 자의 덕성을 칭송하는 산 사람의 마음도 과연 죽음을 앞에 두고 새삼스럽게 그 모든 영욕이 육체와 함께 사라지는것임을 깨달은 때문일가. 산 사람의 육체에는 선과 악의 두 마음이 함께 자리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를 완승할수 없는 불행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천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고 한다. 그냥 선한 마음뿐이라면 그 마음이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그러나 알수 없는게 인간의 마음이라지만 하나의 육체에 동거하여 생사를 함께 하는 선과 악만은 그 육체에 담긴 마음의 건강상황을 알것임은 분명하다. 마음에 길을 물어라고 하는것은 바로 이런것을 두고 하는 말일것이다. 그 마음의 건강상황이 모든 인생판단과 현실선택의 정확여부를 결정할것임은 당연한것이다. 인간대 인간은 서로의 감옥이라고 하는것은 물론 하나의 육체에 선과 악의 두 마음이 함께 함을 어쩔수 없이 승인하는 말이겠으나, 그러나 그런 말을 시러베장단 치듯 일상용어로 스스럼없이 쓰면서 친구나 형제나 지어는 부부사이를 가볍게 스친 마찰에마저 적용하려는 사람들을 볼작시면 그것은 역시 내 마음에 비추어 타인의 마음을 꼬집는것이요, 그러면서도 짐짓 자기는 관조자의 립장에 서서 이웃의 싸움에 두쪽이 다 잘못이 있다고 지적하듯 공정한체 하는 사이비신사의 처세철학임에 다름아니다. 내 마음의 건강을 지켜주어 악을 전승하고 선을 주장하게 하는것은 오직 내 마음속에 모신 <<하나님>>뿐이다. 그 <<하나님>>은 나의 육체와 마음과 더불어 생사고락을 함께 하고 언제 어디서나 시시각각으로 나의 마음에 길을 가리켜 줄것이다. 계산적이고 리기적인 장사군의 속궁리로 죄를 사면받거나 복을 얻기 위해 <<하나님>>과 흥정하려고 하는 자는 썪은 바줄을 타고 하늘을 오르려는 호랑이와 같다고 해야 할것이다. 그냥 아무런 구구계산이 없이 정신건강에 인생의 전체적인 의미를 자리매김해줄 때 그는 과연 한 선인이다.
37    망각의 미학 댓글:  조회:1779  추천:0  2009-05-16
 몇년전에 대학의 동창생 서영빈씨가 수필<<실수의 미학>>을 써서 수상한적이 있다. 그때 그의 수필을 읽고 마음으로 크게 동감했었다. 인간이 한 자연인으로 태여나 부모의 손을 잡고 걸음마를 배우면서 한 사회인으로, 문화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번식과 생존이라는 본능적인 동물성에서 삶과 존재라는 리성적인 인간성에로의 변질과정이다. 그 과정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길을 잘못 들어 에돌아 가고 얼마나 많은 실수로 발목을 접지르거나 타인의 구원을 요청하게 되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타인의 관용하는 마음에 기댈수 없거나 구원을 요청할수 없는 인간은 고독한 인간이고 사회와 무리에 외면당하고 버리워진 인간일것이다. 이는 대개 자기중심적인 리해타산과 지극히 보수적인 인간자세를 취하는 인간들이 받게 되는 대접이다. 그 자신이 남을 너그럽게 읽어주지 못하고 타인의 실수나 잘못을 용서해주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때문에 받게 되는 보응이라고 할수밖에 없다. 민족과 나라의 운명까지 결정하는 극한의 대항, 이를테면 전쟁과 같은 퇴로가 없는 생사의 선택에서는 악에 맞서는 악의 수단이 필수부가결(必需不可缺)할수도 있을것이다.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조차 관용과 너그러움과 참을 인자를 지켜야 한다고 하면 이는 강도가 로략질을 해서는 되고 당하는 자는 반항해서는 안된다는 강도리론임에 다름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피값은 피로 값는다>>는 <<명언>>을 너무나 선택없이 우리의 일상에 활용하고 있다. 친구사이에, 이웃사이에, 지어는 형제사이에마저 조그마한 알륵을 가지고 한 하늘을 이고 살수없는 철천지 원쑤처럼 이를 사려물고 어떤 갚음에 악의 수단까지 서슴치않는다. 우리의 일상에 많은 알륵은 어떤 실수나 오해에서 기인된다. 그럼에도 그것이 풀리지 못하고 그냥 서로가 반목하고 시기하고 마침내 <<피값은 피로 값는다>>는 악의 수단까지 동원하게 되는것은 벌써 내 마음에 관용과 너그러움이 없기때문이다. 타인의 마음을 읽고 자신의 마음자세를 정리하는것이 아니라 그냥 나는 어떤데 네가 어떻다는 식으로 자신의 정당성에 타인의 잘못을 확인하려 든다. 무작정 네가 잘못했으니 빌어야 용서한다는 일방적인 자기본위주의 앞에서 누군들 마음이 개운할수 있고 너그러운 관용을 보일수 있겠는가! 아직은 사회문화적인 문명이 미숙한 사회나 민족일수록 인간들지간의 관용과 너그러움이 결여하고 풍속이나 도덕적 규범에 의한 책벌이 악렬하고 지어는 대항정서와 악의 수단이 범람하는것이다. 소학교시절에 읽은 책이고 또 워낙 책가위가 떨어져나가고 갈피들이 보풀이 일대로 인 책이여서 제목은 떠올리수 없는데 하여간 량산의 이족부락사회를 쓴 책이였다고기억된다. 이쪽 부락의 처녀가 저쪽 부락의 총각한테 시집갔는데 결혼식날에 식장에서 누가 방귀를 뀌는바람에 처녀가 부끄러움을 못이겨 자살하고 만다. 그것이 두 부락이 <<피값은 피로 값는다>>는 동족상잔의 피바다를 만드는 발원이 된다. 두 부락은 서로가 친가로부터 원쑤가 되여 엄청난 피의 대가를 치른다. 승부를 가를수 없이 상잔에 상잔을,살생에 살생을 거듭하다가 나중에 그래도 담판으로 화해를 가져온다. 아직 문명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고 다만 풍속과 절대적인 도덕률에 의해 인간을 약속하고 규제하는 그런 사회에서는 아주 작은 실수라도 용서할수 없는 죄악으로 락인받을수밖에 없는것이다. 사회적으로 극단적인 집단리념과 정치학적 인생관이 한 개인의 삶을 절대적으로 간섭하던 때 우리도 흑백리론과 단순한 가치판단에 숨가삐 살아왔었다. 어떤 집단리념에 충실하고 정치적각성에 인간성이 외면당할때 우리의 눈에 보이는것은 다만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좋은 일과 나쁜 일, 옳은것과 그른것, 원칙적인것과 무원칙한것, 찬성할것과 반대할것, 긍정할것과 부정할것 등 극단적인 판단일뿐이다. 이성지간의 애정, 결혼은 지극히 천륜적인것인데 얼마전까지도 늙은이들의 재혼은 망발에 가까운 망칙한 짓거리로 비난받았고 마음과 마음의 결실인 결혼에 사랑이 부재하고 성격을 비롯한 여러가지가 상충하는 상황에서 결혼이 오히려 인생선택의 실수일수 있고 리혼은 각자의 인생을 존중하고 인격을 세워주는 해탈일수 있음에도 사회는 덮어놓고 그 도덕성을 문책하고 신변의 인간들은 기어이 어느 일방의 잘못을 확인하려 든다. 붐비는 차안에서 발등을 밟는것과 같은 실수는 너만이 아닌 나도 늘 범할수 있는 실수임에도 마치도 고의적인 침해를 받은것처럼 눈을 부라리거나 지어는 드잡이까지 하려 든다. 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줘야 내 마음도 편안할수 있다. 타인의 실수를 용서하고 가볍게 웃으면서 <<놀려주면>> 어느땐가는 나의 실수가 타인의 웃음속에 용서받을수 있다. 타인의 마음을 읽을줄 알고 너그럽게 용서할줄 알려면 우선 자기의 마음을 비울줄 알아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망각의 미학이라는 개념을 떠올려본다. 군체동물인 인간이 서로 어울려 살아가노라면 어떤 실수거나 오해거나 무의식적인 언행에 의해 마음에 상처를 입을수 있고 지어는 한때의 알륵때문에 고의적인 침해를 받을수도 있다. 세월의 빛이 바래짐에 따라 이런 마음의 상처나 알륵을 기억의 쪽대문에서 끄집어내여 망각의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것이 바람직할것 같다. 몇년전에 이사짐을 싸면서 잡동사니들을 정리하다가 소학교 일학년부터 대학까지 쭉 써오던 일기책을 끄집어내게 되였다. 이것저것 펼쳐보노라니 문득 마치도 이미 팽개쳐버렸던 낡은 장부를 다시 들춰보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누가 내 마음에 어떤 빚을 졌던가, 누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던가, 누가 어떤 실수를 했던가, 누가 어떤 망신을 했던가, 누가 누구를 어떻게 헐뜯었던가, 누가 누구를 어떻게 해쳤던가...이십년, 삼십년을 두고 전혀 기억에 잊혀졌던 일들이 남의 비밀을 훔쳐본듯이 새삼스럽게 마음의 빈자리에 내려앉았다. 공연히 마음이 불쾌하고 번거로워졌다. 제발로 스스로가 만들어놓은 오물구덩이에 뛰여든것 같은 그런 기분이였다. 서로 만나면 반갑고 형제처럼 따뜻한 정을 주고받는 동창들과 친구들을 두고 기어이 내가 허물을 찾고 있는것만 같았다. 내 마음을 비우지 않고서야 어찌 타인의 마음을 받아들일수 있겠는가! 물론 일기라는것이 빚문서처럼 어느때든 진 빚을 받아내기 위해 기록하는것이 아니고 또 그때 그때 있었던 일을 적으면서 자기의 마음자세를 바로잡는 작업을 하는것만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어쨌든 세월의 쪽배에 실려 기억속을 멀리 떠나가버렸던 일들을 먼 후날 다시 새삼스럽게 기억의 우물속에서 떠올릴수 있다는것만으로도 마음이 석연치가 못했다. 꺼꾸로 되는 이야기지만 자기가 나서 자란 고향을 사랑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있던 사람이 먼 후날 다시 고향을 찾았을때 모진 생활고에 찌든 고향친구들과 생기없이 시들어가는 고향모습을 보고는 그냥 마음속에 아름다운 고향모습을 간직하기보다 못했다고 아프고 쓸쓸한 심정을 토파할때 추억도 역시 아름다움을 위해서만 필요할뿐이다. 바로 그 추억속에 내 마음을 쓸쓸하게 하고 슬프게 하고 아프게 하는 모든 일들을 망각하려는 추구가 있는것이다. 소학교시절, 중학교시절, 대학교시절...이미 오늘과 아득히 멀어진 지난시절의 추억을 더듬을때 우리는 그냥 어떤 그리움과 아름다움과 애틋한 정을 담아올린다. 그만큼 인간은 자기와 멀어진 일과 인간에 대해서는 충분히 너그러움과 관용과 용서로 마음의 여유와 인간애를 되찾을수 있는것이다. 산 사람이 죽은 자의 덕성을 기리는것은 산 사람의 인격론리로 자리매김하고있다. 인제 그런 인격론리를 산 사람사이에서 펼쳐야 한다. 서로를 믿어주고 서로를 사랑해주고 서로를 너그럽게 관용하는 인간애를 키워가야 한다. 지구촌의 인구가 몇십억은 되는데 내가 알고지내는 사람은 요만큼밖에 안된다는 안타까움에 그들과의 우정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의 인정속에서나마 내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찾는것이 자기를 위해서도 바람직할것이다. 잔치집에 가서 기뻐해주고 제사집에 가서 슬퍼해주려 해도 나와의 인연이 없으면 문밖이다. 산속의 고독보다는 무리속의 고독이 더 큰 고독이다. <<함께 하는 세상>>에 서로가 아픔을 나누고 기쁨을 함께 즐기려면 열린 정신공간을 마련하고 투명하게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여러권의 일기책을 몽땅 처분해버린것은 나의 극단적인 행위 내지 순간적인 충동일수도 있겠으나 그러나 아무튼 나는 그때로부터 어떤 무거운 짐을 부리운듯 마음이 홀가분해졌고 무위의 경지에서 모든 영욕을 버리려는 정신적독방을 마련하고 참된 인생수련에 고심할수 있었다. 득달이 아니라 고심이다. 인생을 마감하면서도 득달은 못하겠지만 고심 그것만으로도 마음은 유족하다. 사람은 그래도 잊으며 살아야 한다. 마음에 맺혔던것, 타인에게 가졌던 한을 세월의 빛바램속에서 기억의 저 뒤안길에 던져버리고 서로를 사랑하는 인간애를 키워갈때 망각의 아름다움을 만끾하게 될것이다. 실수가 생겼을때, 오해가 생겼을때, 알륵이 생겼을때 망각을 위한 악수를 나누라.
36    동물의 성으로 본 인간의 본성 댓글:  조회:1947  추천:0  2009-05-16
         동물의 성생활에 대해 관찰한 연구결과를 보면 령장목의 으뜸으로 치는 인간의 본래의 모습-동물적인 인간의 본성도 엿볼수 있더라. 그중에도 인간과 같은 영장목에 속하는 성성이과에서 고릴라가 가장 인간과 닮아있다고 하는데 그것들의 가족구성과 성의 추구를 보면 저것이 인간의 태초의 모습이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고릴라사회는 철저하게 <<일부다처>>의 가족으로 구성되였는데 <<가장>>은 성에서조차 절대적인 지배권과 소유권을 가진다고 한다. 다 성장한 가족성원들은 <<가장>>의 성행위를 보면서 자위를 한다고 한다. 그래도 금번에 외면당했던 암컷은 다음번에는 <<가장>>의 사랑을 받을수 있으나 수컷은 완전히 성의 소외자가 되여 자위행위로 애타는 가슴을 달래고 마침내는 독립생활에 나선다고 한다. 가족에서 당한 성억제때문인듯 독립생활에 나서는 첫 행위가 짝을 얻는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고릴라사회에서 중매결혼이란 있을수 없는 일이고 직접 <<처녀>>와 련애하거나 랍치하는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하는짓이 다른 가족에서 <<엄마>>의 젖먹이를 빼앗아 <<엄마>>를 유인하는것이라고 한다. 젖먹이를 찾는데 가족성원들은 나서지 않고 <<엄마>>만이 하늘끝까지라도 찾아간다고 한다. 결국 젖먹이는 죽음을 당하고 <<엄마>>는 총각의 아내가 되고만다고 한다. 젖먹이를 죽이는것으로 <<엄마>>의 미련을 철저히 없애고 새로운 욕망만을 남게하는 극단적인 악의 수단이라 할것이다. 조물주가 생명을 만들때 생명보존의 법칙을 성의 결합으로 만든것이 잘못일것이다. 고릴라가 죽은 아기에 대해 단념하고 다시 성적결합으로 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명보존내지 종족번식도 성을 우선하지 않으면 안되는것이 조물주의 희롱이 아닐수 없다. 프로이드가 인간의 모든 행위를 성으로 풀이한것은 동물적인 인간의 본성으로 볼때 지극히 원색적인 파악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문명이 인간들의 삶에 아름다운 옷을 입힌 오늘에도 의식주는 역시 삶의 기본적이고도 우선가는 욕구이다. 그러나 생명이 성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보면 인간 역시 고릴라처럼 성의 욕구가 가장 기본적이고 본원적인 욕구일수밖에 없다. 죽음의 동굴속에서 두 남녀가 재생의 등불이 꺼져버린 상황에서조차 성의 희열을 만끽하였다는 이야기는 전설이 아니지만 다만 오늘에 와서 성이 더는 종족보존을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 삶의 윤활제와 같은 역할도 하기때문에 그것에 본능적인 행위자체보다는 더 심각한 사회적인 인식적의미가 매겨졌을뿐이다. 인간의 본성을 두고 성악이니 성선이니 하고 시야비야하는것은 어찌보면 순소비적인 입씨름에 지나지않을것이다. 관념적인 립장에서 자기의 정당성을 립증하려는 목적만으로 이런 시비를 한다면 그냥 동물의 본성을 관찰하는것만으로도 결론을 얻을수 있을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시비가 사회적인 화제로 떠오를수 있는것은 인간은 오랜 세월을 진화해오면서 이미 동물의 세계를 떠나서 그들을 정복하고 주재하는 주인으로 군림하여 광활한 지구마저 하나의 작은 촌락으로 전락시킨 총명과 문명때문이다. 뇌의 고도로 되는 발달은 상품포장처럼 인간을 극히 위선적이게 하였다. 그로하여 인간은 동물의 사회보다 더 교활하여 혹은 동물보다 더 잔인하게 동류상잔하고 혹은 더 지혜롭게 질서를 잡아나간다. 강간, 살인, 폭력은 약육강식의 동물의 본성이 인간사회에 존재하는 형태일것이다. 길을 가는 사람은 직행로에서 급회전하여 사냥물을 찾는 택시나 십자거리에서 신호등을 무시하고 종횡무진하는 차들을 보고는 미개인취급을 하며 욕설이지만 급한 일로 차를 기다리는 사람은 도리여 감사한 마음이다. 인간의 사치한 리기심이다. 기차역같은 공공장소에서 정탐처럼 기둥뒤에 숨었다가 침을 뱉거나 담배꽁초를 던지는 사람을 죄인 잡듯 덜미잡아 벌금을 안기는 관리일군을 교활하다거나 치사하다고 욕하는 사람은 많지만 너나가 공공위생을 지키면 그들도 <<하강(下崗)>>을 면치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다. 동물적인 본성을 인간성으로 순화시키는 장치가 바로 도덕과 법과 질서이다. 인간의 상호관계가 언제나 욕망충족에 지배된다면 그것은 동물성에 다름아니다. 인간 특유의 체면과 도덕적구실과 법에 의한 질서확립은 인간이 평화를 찾기위한 수단이고 역시 자아보존을 위해서도 요청되는 장치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단지 류혈싸움만이 아니라 한치의 혀로도 타인을 죽음에로 몰아갈수 있기때문이다. 강간, 살인, 폭력의 피해가 타인의 일로만 생각될수 있겠는가. 때문에 법과 도덕과 질서는 인간 일반에 대한 약속력이다. 그러나 인간은 또 관념도덕대로만 살수 없고 법의 질서조차 그냥 변할수밖에 없는것은 그것이 결코 확실한 가치기준이 아니라 다만 불특정인간들이 지켜야 할 게임법칙에 지나지 않기때문이다. 이른바 객관적이고 시대적인 집단의지로 어떤 가치를 강요한다는것은 다만 피해의식 내지 강박관념만을 절감시킬뿐이다. 축구에서의 황패, 홍패벌칙은 대항적경기에서 폭력적피해를 방지하고 게임을 게임으로 끝내기 위해서 필요한것이다. 그저 그럴뿐이다. 그런 게임법칙이 없으면 도저히 게임을 할수가 없고 폭력적피해를 내가 입을수 있다는 판단에서 선수들은 그 게임법칙을 합리하게 받아들이는것이다. 그러고보면 인간은 기성틀을 마스기 위하여 새로운 틀을 만드는것이다. 법, 도덕, 질서의 변화 즉 기성틀 마스기는 그 기성적인것의 시대적 한계성에 기인하는것이다. 다시말하면 그런 기성적인 틀이 사람들의 자각에 의해 지켜지고 그리하여 그 기성적인것들의 고루함이 사회적인 보편화제로 되였을때 틀마스기는 불가피한것이고 사회비판층의 승리는 비로소 새로운 틀을 구축할수 있는것이다. 한밤중에 교통경찰이 자리를 비운때에도 신호등에 따라 움직이는 차들이 많아지고있는것을 보면서 교통규칙위반으로 내는 벌금도 적어졌겠다고 생각했다. 백두산의 쓰레기줏기를 보면서 오래지않아 공공장소에 포장이 고운 쓰레기통만 놓으면 벌금을 노리는 관리원은 <<하강>>하게 될것이라고 생각했다. 하긴 서울에 가면 벌써 공공버스에 차장이 없어도 승차권을 속여먹는 사람은 볼수 없는것이 우리의 어두운 삶의 현장을 반성하게 하는 현실이다. 오늘날에 와서 <<목각남편>>을 모시면서도 재가하지 못하는 오청화는 없고 남녀칠세부동석을 도덕기준으로 삼으려는 사람도 없다. 기성의 틀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틀이 자리잡는 과정은 인간이 자아완성과 인간성해방을 실천해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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