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보아왔던 모든 인터뷰중에서 제일 감동적인 대화이다.몇번이나 보고 또 보아도 눈물 나는 감동을 주는 신호범교수님의 인생역전이야기..많은 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수많은 시련을 모두 이겨낸 교수님의 인생이야기를 들으면서지금의 내 삶을 조금 더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by 희망사항 --------------------------------------------------------------------험난했던 어린 시절, 거리소년 신호범
4살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마저 집을 나가 고아가 된 신호범 의원, 그는 돌봐주는 사람 하나 없이 서울로 올라와 서울역을 전전하며 노숙생활을 시작, 깡통을 들고 구걸에 나서야 했다.
6.25전쟁으로 한국에 주둔해 있던 미군과의 인연으로 거의 나이 15살이 되던 해 미군 부대 하우스보이 생활이 시작되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으로 밤마다 별을 보며 눈물을 흘리던 어느날 따뜻한 가슴으로 어린 신호범을 안아주었던 한 미군장교는 그를 양아들로 삼았고 이후 미국에서 제2의 인생이 시작되었다.배고팠던 나라,외로웠던 나라,사랑을 못받던 나라 한국......
<이제는 내가 너를 버리겠다> 생각하며 신호범 의원은 한국을 뒤로 한채 미국으로 향했다.
Impossible 이 아닌 I'm possible
'Impossible' 불가능이라는 말이 너무 싫어 하루는 사전을 찢었다. 그리고 얼마뒤 다시 붙이려 보니 Im 다음 부분이 찢겨있었다. 불가능이라는 의미의 'Impossible'이 <나는 가능하다>라는 I'm possible 로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언어도 문화도 다른 미국에서의 생활 역시 녹록치 않았다.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수소문을 해봤지만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19살 소년 신호범을 받아주는 학교는 없었다. 결국 그는 하루 3시간 이상 자지 않고 공부한 끝에 대학 입학 검정고시를 1년4개월만에 통과했다.
군 시절 백인만이 들어갈수 있었던 식당에 들어가 쫒겨나야만 했던 그는 '정치인이 되어 인종차별에 대한 법을 바꾸겠다' 다짐하게 된다.
그가 처음 워싱턴주 하원의원에 출마한 곳은 백인이 90%이상 거주하는 공화당 지지지역! 동양인이라는 사실과 민주당 소속이라는 불리한 여건속에서 운동화 네컬레가 닳아 없어질 만큼 하루 11시간씩 걸으며 2만 9천여 유권자의 집을 직접 찾아다니며 문을 두드렸다. 그 결과 공화당 우세지역에서 26년만에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는 이변을 만들었다.
정치인으로서 성공을 이루고 생활이 안정되자 그는 친아버지를 찾았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친아버지와 조국에 대한 원망으로 살아왔지만 그는 아버지를,, 아버지의 나라 한국을 용서했다.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입양아들과 이민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으며 장차 미국 50개 주마다 한인 정치인 1명씩을 만들어 이만사회에서도 떳떳하게 살수 있고 봉사할수 있기를 꿈꾼다는 신호범 의원...
<<출처.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