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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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냐?
2014년 03월 27일 13시 37분  조회:5487  추천:1  작성자: 최균선
                                                              정말이냐?
 
                                                               최 균 선
  
   우리들의 일상대화에서 사용빈도가 많은 말이《정말이냐?》라는 말이다. 속담집에《정들었다고 정말 말라》《야단났다 야단났다 하면 정말 야단만 난다》도 있거니와 자신의 말을 확신시키려고 할때도《너를 정말 사랑해. 》,《큰일 났네, 정말! 》,《차후로는 다시 다투지 맙시다. 정말! 》라고 말하기가 일쑤이다.《그 말이 정말이냐?》하고 반문하는데는 사람들의 말에 정말보다 거짓말이 너무 많다는 반증인가? 낯선사람은 말고라도 친구, 가정식구들 사이에서도《그게 정말이냐?》라는 확인을 위한 물음이 일상용어로 되였다. 습관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정말 (正말)이란 사전식으로 1. 거짓이 없이 말 그대로임. 또는 그런 말. 2 (‘정 말은’ 꼴로 쓰여)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한 사실을 말할 때 쓰는 말. 3 (‘정말이지’ 꼴로 쓰여) 자신의 말을 강하게 긍정할 때 쓰는 말. 련관어로 정말로, 진짜, 참말 등이 있다. 사람들이 이 말을 쓸 때 사전의 의미해석을 일일히 새기고 쓰지는 않지만 “정말”에 담긴 또 다른 숨은뜻은 별 쓰잘것 없는 사색을 청해들인다.
    중국어에도《真的吗?》라는 의혹을 앞세운 말이 입버릇처럼 외워지고있다. 이는 믿을것인가? 하는 문제를 단면적으로 보여준다. 신임은 서로 합작하는데 바탕이 된다. 그렇지만 오늘날 중국에는 우리들로 하여금 믿지 못하게 하는 불신의 토양이 도처에 있고 또한 매우 비옥하며 경계심이 잔뜩 무성해있다.
    낯선 사람에 대한 불신은 당전의 심리문화로 되였다. 불신이라는 고강도의 장벽은 사회각군체와 각개 각색자들 사이에 존재하며 정부와 국민, 가난한 사람과 부자사이에 거주하고있다. 중국의 항간에는 “자고로 백성을 로백성이라고 하였는데 지금은 “로불신(老不信)”이 되였다는 류행어가 떠도니 두말해 무엇하랴,
    사실 우리는 두개 세계에서 살고있다. 현실속에서 일체 낯선사람을 믿지 않으며 명철보신하여 담담한 표정으로 침묵한다. 집집마다 도적방지문이 꽁꽁 닫겨있고 맨 아래층의 집들에서는 창문에 쇠살창을 달았다. 아이들이 셈이 다들어도 혼자 학교에 보내지 못하고 학교문앞에는 경찰이 질서를 유지하는 등 일체에 경계심을 늦추지 못하고 산다. 자신을 내놓고 또 누구도 믿지못하는 사이비풍경선이다.
    오늘날 무작정의 “불신정서”는 이미 국인들의 생활속에 속속들이 젖어들었다. 이런 공통된 의심병에 걸린것은 진짜보다 가짜가 더 많고 더 당당한 판이라 처처에서 회의를 앞세우지 않을수 없기때문이다. 어이하여 인간관계는 이리도 소원해지고 입은 웃어도 눈은 웃지않는 인정의 만화가 그려진걸가? 리해득실앞에 불신이 앞서고 비교에서 질투심리가 앞장서기에 영원한 믿음이 뿌리내리기 어려운것이다. 
    그야말로《일체를 의심하라》인가? 원래 이 말은 진리를 찾기 위한 기초로 되였다. 데카르트는 일체를 회의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자기의 존재마저 회의하게 되였지만 어떤때는 일종 진보가 된다. 회의심리와 경계심은 이미 국인의 생활방식으로까지 되였지만 그것들은 별개의 문제이다.
    현대사람들은 너무 허위적이라고 말하는데 모종 각도에서 많은 허위는 본의가 아니라 핍박이 창출한것이라고 말할수 있다. 이런 허위는 처세함에《신중함》으로서 리론과 실제, 말과 행동, 책과 생활, 리상과 현황사이에 거대한 반차가 있다는것을 마침내 발견하고나서 총화해낸《지혜》와 생존의 방편이라 해야 할것이다.
    보편화된 회의심리는 이미 우리 사회의《정신질환》으로 되였다. 그리하여 가짜를 믿지않거니와 진짜도 의심하는 정도이다. 믿을만한것은 순결무구한 어린애들이였는데 그마저 절대적이 아니다. 거짓과 가짜가 횡행하는 어른들의 사회에서 아이들도 나름대로 너무 빨리 어섯눈을 떠버렸기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냥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면 안된다”고 엄포를 놓기가 일쑤인데 그마저 진짜인지 두고봐야 할 일이다.
    현재 국인들에게 모자라는것은 밥도 아니고 옷도 아니고 자률정신이다. 사람들 사이에 소통은 있되 진정성이 결여되여 있다면 실상 막혀있는것과 같다. 사람마다 자기 고집과 아집때문에 처처에서 불신이 조장되는것인가? 우리는 지난날에 배는 고프게 살았지만 집집에 문은 잠그지 않았고 울바자넘어 따스한 인정이 오고가고 사람냄새 풋풋해서 팍팍한 살림살이에도 지금처럼 각박하게 굴지않았다. 이것은 고도로 발달한 물질문명시대와 대조되는 그리운 풍경이다.
    사람들 마음이 극도로 메말라 먼지가 풀풀 나는 지경이라면 지나친 비유가 되는지 모르겠다. 비유가 틀릴지라도 너무 삭막하여 사막한가운데 홀로 서있는듯이 허망함을 느낄때가 종종 있다. 인간은 감정, 정서, 의리, 인문정신때문에 동물과 구분되는 법인데 말이다. 일일이 례를 들지 않아도 비일비재하는 실망스러운 사실을 이미 듣고 읽어서 인정의 사막지대가 도처에 널려있음을 부인하지는 못할것이다.
    사회결약도 담보되지 않음으로 해서 신뢰란 일종 사치품이 된 시점이다. 우리는 어찌하여 서로를 불신하게 되였는가? 하고 묻는다면 우문일것이요 나는 우문일진대 현답을 할 사람도 많지는 않으리라. 아니면 어찌하여《정말이란데두, 믿지 않은면 말구》하고 자기 말에도 그루를 박고《그말 정말이지?》하고 다시한번 다짐을 받고서야 뒤말을 들으려는가? 리해득실이 일체를 주재하다보니 “믿음의 사회”가 무너지고 이른바의《불신사회》에 들어선것이다.
    력사적측면에서 생각하면10년동란시기 불신운동의 후유증이 채낫지 않은탓인것 같다. 오늘날 불신정서와 지난 몇십년 동안의 맹신은 동전의 앞뒤면과 같다고나 할가, 그때는 이웃, 친구사이에 반목하고 부부, 부모자식도 소위 립장, 견해차이로 원쑤가 되여졌는데 겉보건대 맹신에서 인기된 맹동같지만 심층적으로는 도덕, 사회도덕률의 붕괴였다. 그것은 공리주의리념에 뿌리를 두었기때문이다. 사회결약의 미보장상태에서 신뢰니 믿음이니 하는것을 아무리 론해도 공리공담이 될수밖에 없다.
    신임의 위기는 신앙의 위기에 뿌리를 두고있다. 지금도 신앙은 있으되 신앙에 그칠뿐이다. 지페로 받들어 모시는 예수님을 믿어도, 황금칠을 한 불상님앞에 무릎을 꿇어도 모두 허황한 일이다. 진정한 신앙이란 내심에 깊이 그어진 위도(纬度)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신앙을 내심의 향도로 삼을 대상이 누구며 충실한 신도가 누구인가? 이 모든 근원은 물신숭배주의, 금전만능주의에서 기인된 필연의 악순환이다.
    중국에 손해보는것이 복이라는 말대신 서양에는 속히운 사람이 속인 사람보다 더 강하다는 말이 있다. 신임은 단순히 개개인의 도덕문제가 아니라 옹근 사회, 한 국가 의 생사존망과 관계된다. 물론 세상에는 아직 지평선이 존재하고 태양은 매일 동쪽에서 웃으며 솟고 여전히 눈부시다. 아직도 이 세상에는 진,선,미가 씨를 말리지 않았고 사랑이 숨쉬고있으며 그래서 둥글둥글 돌아가는것이고 가슴에 따스함을 간직하고 인정의 사막지대에서 용케도 오아시스를 찾아갈 희망을 버리지 않고있다.
    내말이 정말이냐고 다짐둘 필요는 없다. 혹여 틀릴수는 있어도 “정말”이다. 거짓말도 백번하면 정말이 된다고들 하지만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정말을 하기싫으면 입다물고 눈으로 말해도 좋고 손을 홱 내저어도 속심을 모르게 하는 좋은 제스츄어로서 거짓말을 천번 하기보다 힘이 덜들어 좋을것이다. 앉을뱅이가 절름발이를 비웃듯이 나는 정말 늘 이런 생각을 하며 허위단심 인정의 터밭을 매지만 정말이지 그냥 잡초가 무성하니 정말 면괴하다.

                                                       2012년 1 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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