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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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개의 얼굴을 가지고 살아야 할가?
2015년 09월 02일 06시 19분  조회:5181  추천:0  작성자: 최균선
        몇개의 얼굴을 가지고 살아야 할가?
 
                                       진 언
 
   사람은 누구나 표정관리를 하며 처세에 림하기 마련이다. 말하자면 두세가지 얼굴, 혹은 그보다 더많은 얼굴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말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영원히 알수 없는 나만의 비밀이 있게 되는데 이런 량면성은 실제적인 생존수단인만큼 정상적이라 아니할수 없다. 리해득실을 따지며 살아야 하는 인간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하나의 얼굴만으로는 안된다는것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이중성을 가끔 방편으로 삼는것이 정신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하지만 시종일관 진실된 인간이기를 지향하는 관념상 보편적으로 이중성격으로 인지되기에 부정적이기도 하다. 인간의 량면성을 좋게 말하면 자아보호의식의 본성이고 처세의 예술성으로서 사람으로 거듭나는 근본이라 한다. 그래서 누구나“변형금강”이 되는게 아니랴싶다. 그러한 여러개 얼굴가운데서 오직 하나의 얼굴만 진실한 자기 얼굴이고 나머지 얼굴들을 가면이라 이름하지만 그런 얼굴도 제얼굴이고 저런 얼굴도 다 제얼굴로서 어느 얼굴이 진정한 자기것인지 모른다.
   동방인들의 경우, 유교적인 체면문화가 뼈속 깊숙히 박혀있어 겉다르고 속다른 처세술을 익혔는지도 모른다. 밑구녕으로 호박씨를 깐다고 욕하지만 투명인간이 어디에 있으랴, 이처럼 이중적이라고 하면 비렬하다고 힐난할수도 없는 나와 너 그리고 우리들인 인간군이다. 그러니 복잡다단한 인간관계, 변화부단한 현실생활에서 진정 하나의 얼굴을 가지고 살수 있을것인가는 인생에 또 하나의 난제이다.
   부부나 자식들 앞에서나 친구간에도 진실한 제얼굴로 마주하기 어려운 때가 많기때문에 처세의 방편으로 두세개 “얼굴”을 가지지 않을수 없다. 때로는 자신조차 생각치도 못한 다른 모습을 보고 끔찍해 할 때도 있으니 인간이란 얼마나 딱한 체면동물인가? 그것을 사람의 속은 깊고 오묘하기때문이라고 할것인가? 리득을 볼 친구앞에서는 신의가 넘치는 얼굴, 련인앞에서는 가장 완미한 얼굴, 낯선사람 앞에서의 정인군자의 얼굴, 그리고 혼자 있을 때 초라하고 취약한 본연의 얼굴 등등.
   바꾸어 말하면 단면적인 인성관이란 당초 있을수 없다.“성선론(性善论)이든 “성악론(性恶论)”이든, 자사론(自私论)이든 “리타론(利他论)”이든, 리성주의든, 공리주의든 영원히 상대적일뿐이다. 천연적이고 보편적인 인성이란 없다는 설명이 되겠다. 열길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속담은 가장 터득하기 어려운 관계학의 시점에서 보면 가장 실용적이고 또한 섬뜩해지는 인생철학이기도 하다.
   인간의 이중성은 인간이 동물들에게 없는 리성때문일가? 동물적본능이 유전자 깊숙히 자리잡혀 있는데 그것을 리성으로 자꾸 억제하고 사회적통념으로서 자유로울수 없으니까 남들 앞에서 자신을 감출수밖에 없는걸가? 아무튼 속으로는 그러지 말자 고 자기단속을 하면서도 내심의 생각과 처세에서의 표상은 언제나 일치하지 않는다. 한것은 노하면 으르렁거리는 짐승과도 전혀 다르게 사람은 교묘하게 본연을 숨길줄 아는 본능을 가지고 있기에 겉이자 속인 사람이 된다는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어에 “어떤 때는 고양이 면상을 하고 어떤때는 개면상(一时猫脸,一时狗脸)”을 하고 다른 사람의 체면을 고려하면서도 자기체면도 세워야 하는 경우“무슨 사람을 보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보살을 만나면 무슨 향불을 피운다 (见什么人说什么话,见什么菩萨烧什么香)”거나 “사람을 만나면 사람말을 하고 귀신을 보면 귀신말을 한다거나 선생을 만나면 책이야기를 하고 도부수를 만나면 돼지이야기를 한다(见人说人话,见鬼说鬼话”、“见着先生说书,见着屠夫说猪)”는 등 말은 참으로 실용적이다.
   인간의 추상적심리에서 보더라도 가면구는 인간교제의 수요에서 제조되는것이다. 서로간의 진정한 내속을 알수 없는 상황속에서 행동거지에 조심해야 한다는 경계심은 표면적인 례절 내지는 바람직한 이미지를 추구할수밖에 없기때문이다. 더 부언한다면 모종의미에서 인간은 개개가 곧 자신이 쓰고있는 가면구의 총화일수밖에 없다.
   가면구를 쓰더라도 철면피를 공중에 내댈 머저리가 있을가? 있다. 있어도 너무 많이 나돈다. 진면모가 드러나지 않았을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내심으로 “지금 내가 떨고있니?”하고 자문하였을것이다. 일단“락마관”이 되고나서야 사람들은 경악한다. 락마관들은 형형색색이지만 그네들의 통용적인 얼굴은 크게 “부모관의 얼굴”, “렴결봉공의 얼굴”, “애국애민의 얼굴”세가지로 개괄할수 있다.
   이런 세가지 면상으로 개혁개방의 기치를 내들고 열변을 토하면서 한편으로 염낭이 아니라 거대한 금고를 메우고 사상을 해방한다는 미명하에 온갖 루추한 행각을 벌리며 자신을 개혁개방의 선두주자로, 사상해방의 용사로 분장한다. 그리고 그 뒤에서는 저저 색마의 얼굴이고, 그러니 비록 현대에 살지만 봉건시대 부패관리들의 본성과 행각과 전혀 다를게 없다.
   쩍하면 반부패연설을 하기 좋아해서“인민들이 우리에게 준 권력을 잘 써야 한다. 권력이란 쌍날검으로서 잘쓰면 사업에 리기(利器)로 될수 있지만 일단 잘못쓰면 자신을 상하게 할수도 있다.”“돈이란 날때부터 가지고 온것이 아니고 죽어도 가지고 갈수 없는데 그리 많은 돈을 해서는 뭘하겠는가?”“나는 광서에 아직도 몇백만 군중이 가난때를 씻지 못하고있는데 주석으로 된 나는 정말 밤잠도 제대로 잘수 없다.”고 말할때 어떤 얼굴이였을가? 그런데 4000만원을 후무린 대탐관이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났을 때 어떤 얼굴이였을가? 그런데 근간에 락마한 “호랑이”들에 비하면 성(成) 씨도 새끼무당의 푸닥거리에 불과하니 염라전을 들부실 원귀가 될지도 모른다.
   하긴 목까지 물에 잠그고 있을 때는 잘 모르지만 일단 물밖으로 나오게 해서야 누가 발가벗고 물장구를 쳤는가가 드러러나는 판이니 이런 위군자가 어찌 개인 일탈이고 극소수이겠는가? 그의 뒤를 잇는 부지기수의 위군자들은 앞에서는 좋은 말 이란 좋은 말을 다 엮어대고 뒤에 가서는 나쁜일이란 돌아가며 하다가 마지막에 가지게 되는 진면모는 처참하다. 계하수로 되여 눈물코물을 쥐여짤 때 도무지 체통이 없으니 인간의 원래의 얼굴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가? 국외에도 입에 민생을 걸고다니면서 제옆채기는 톡톡히 챙기는 두얼굴의 정인군자들이 많던데 모두들 심보은페술, 표정관리의 대사들이라 하겠다.
    결국 자리ㅡ권좌가 얼굴을 거듭나게 하고 자리가 일락천장하게 하여 랑패상을 짓게 하는것이다. 과시 착한 얼굴로 떠올라서 악한 면상으로 무너지는격이 아니겠는가? 락마관들의 두세개 얼굴은 탐욕스러운 마음의 외재적“형상”과 보충설명이 되지만도 이건 참으로 너무 별로인 얼굴들이다. 이렇듯 세로보든 가로보든 인간의 량면성이란 리성과 감성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량면성과 자연계의 량면성 물과 불의 관계와 같은 그런 량면성이 문제시되는것은 아니다.
   어찌되였든간에 “가면구”는 어디까지나 가면구속에 그 사람을 증명하기 위해서라고 말할수도 있겠다. 다들 인간이니까 그럴수도 있겠지만도 “가면무도”에 날이 새는줄 모르다가 백일천하에 맨얼굴이 드러나게 되면 그 랑패상은 참으로 앙증스럽다 하리라. 다만 쪽제비도 낯짝이 있다는데 그럴수가…!물론 보통사람들도 생존수요로 “변형금강”이 되지 않을수 없지만 아닌보살도 유분수라고 형편없는 파렴치한, 후안무치라도 한두해도 아니게 정인군자로 분식하고 백성을 우롱하는것은 량면성문제만이 아니다. 하다면 우리는 대체 몇개 얼굴을 가지고 살아야 할가?       

                                  2014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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