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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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백성과《부모관》
2015년 09월 08일 13시 16분  조회:4686  추천:1  작성자: 최균선
                              로백성과《부모관》
 
    백성이란 봉건시대에 황권관위(皇权官位)에 상응한 일종 칭호로서 인민을 이르던 말이다. 백성은 민중, 민서(民庶), 서민과도 통한다. 서민이란 백성의 무리라는 말이 된다. 서민은 평민, 보통사람, 일반백성, 일반대중, 서인, 하민, 범민 (凡民) 등으로도 해석되고있다.
    고증에 따르면 고대에는 “로백성”이라는 기록이 없고 다만《백성》이라는 말이 있었다. 전국시대전에는“백성”이란 성씨가 있는 사람을 가리켰다고 한다. 그때 성씨가 있는 사람은 모두 왕공귀족들로서“백성”이란 곧“백관”을 가리켰던것이다. 일반 평민은 려민(黎民) 혹은 서민(庶民)이라 할수 있었다. 전국시기후 귀족과 노예계급 사이에 성씨를 가진 귀족도 아니고 노예도 아닌 계급이 출현되였고 수자가 귀족 계급보다 더 많아지면서 스스로 백성이라 자칭하게 되였다고 한다.  
   고서에는 백성앞에 “로”자를 달아서 이른적이 없었다. 1963년판 “사해”에도 로백성이란 단어가 없다. 해석을 보면 고대에는 귀족에 대한 총칭이고 전국시기이후 평민들을 이르는 통칭이라고 하였다. 보다싶이 로백성이란 말은 봉건시대로부터 류전되여 온것이다. 따지고 보면 “로백성”이란 말에는 관본위사상 냄새가 짙게 풍기고있다.
   원래 중국에는 존중하는 의미에서 로예(老爺), 로자(老子), 로조종(老祖宗), 로반(老板)》등이 앞에 늙을“로(老)”자를 붙이기 좋아하는 고루한 문화관념이 있었는데 상층계층들앞에서는 늘 소인을 개여올리며 죽어지내야 하였던 백성들도“로백성”이라 자칭함으로써 자기 위안을 찾은것이라 할런지, 그나마 백성들 사이에서만 구김없이 말할수 있었다고 한다.
   약세군체인 백성앞에“로”자를 붙이면 마치 기세를 돋구어주는것 같다. 하여 평민들은 자아도취에 빠져 루루천년을 살아왔다. 비록 로자가 붙었지만 력사상 무권 리한 약자들로서 사회저급서렬의 범주이다. 개성이 없고 아무 사회지위가 없다는 특점을 현대문명에 대비하면 한참 비틀려진 개념이다.
   더 부언한다면 내함과 외연이 뒤죽박죽이 된 칭호이다. 로백성이란 말은 관위에 있는 인사들이 입말이기도 하고 서면어이기도 한바 로백성의 근심을 덜어주고 곤난을 해결해 준다는 말을 곧 잘 하는데 많은 경우 귀맛을 돋굴뿐이다. 수천년 중용지도에 매여 개성이 상실되여버린 중국문화배경에서 백성들도 자칭 “우리 로백성”은 어쩌고 하는것은 자아를 가련하게 여기는 자비심리로서 자기 인격에 대한 폄하이다. 이런 집체무의식은 백성들의 심미관의 무서운 침몰이다.
   한때 중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영화《재상류뤄궈 (宰相 刘罗锅)》의 주제가 에《천지간에는 저울대 있다네. 저울추는 로백성, 저울대는 강산을 뜬다네》 라는 구절이 있는데 로동인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의식이 체현되고있다.
   현재 혹은 건국후 모든 사람들을 백성이라 해야 마땅할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특권사상, 관본위사상이 존재하고 있기에 기업관리층, 상업계의 정영들, 문예체육계의 명인 등등은 마치 이미 백성이 아니고 신분이 특수한 계층으로 자인하면서 백성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으로 자처하고있다. 이런 시점에서 백성이란 말에는 지위의 함의도 담겨있다고 할수 있다. 어떤 관원들이 로백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때 자각 적 혹은 비자각적으로 로백성에 속하지 않는것으로 자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방자산계급혁명중에서 “천부적인권”이 강조되여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공민”권을 향수하도록 되였다. 그러나 중국, 조선반도에서 백성이란 곧 권세도 없고 돈도 없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것을 문화적으로 인민이라고 할뿐이다. 또한 일종 무력함에서 기인된 자기원망과 자아위안심리도 반사되여있고 강권과 등급제도의 현실에 대한 도피심리도 슴배여있다. 이것은 심미취미의 타락이고 일종 병태적이고 비틀어진 미학현상이다. 즉 원망하면서도 감히 노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자기련민, 자고자대, 자비가 얽힌 잡심리이다.
   “로백성”이란 말에는 몇가지 숨은 가치가 있다. 위정자들이 로백성이라고 불러주면 달콤하게 들릴것이고 예술상에서 분식하고 심리상에서 마취되고 생활상에서 도피하는 등등이다. 로백성이란 말에는 몇가지 공능도 있다. 때론 호신부가 되고 때론 수치심을 감추는 낯가리개가 되며 때론 광영방이 되고 때론 면전패(免战牌)가 된다.
   관리층의 위치에서 국민, 공민, 시민, 촌민, 납세인 등 칭호를 쓰지 않고 기어이 로백성이라고 호칭하는것은 회색유모아이다. 관리들속에는 백성들속에서 나온 사람이 대부분이기에 스스로 로백성이라고 말하기 좋아한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할 때 일종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을것이다. 듣기엔 그럴듯한 로백성이라는 이 말의 뒤에는 막무가내함, 굴욕감, 개탄이 숨겨져있는지 모른다.
   일언이페지하고, 어떤 사람들이 백성들의 질고를 잘 아는가? 관직을 잃고 실세한 사람들이 가장 백성의 질고를 잘 안다. 높이 앉아 내려다 보고 체험한것이 아니라 백성들속에 깊이 침투하게 되면서부터 백성의 이루형언할길 없는 백성의 질고를 가장 일찍 체험한 사람은 아마 굴원일것이다.《리소》에는《긴 한숨에 눈물 훔치며/백성의 간난질고 슬퍼하노라》는 시구가 있는데 초회왕에게 내침을 당하여 울분을 품고 류랑하면서부터 절실히 느낀것이 도탄속에 빠진 백성들의 처절한 인생고였던것이다.
   이런 현상은 동서고금의 력사에 적지 않다. 쉐익스피어의 비극《리어왕》에 리어왕도 광야를 헤매며서 비로소 자기 통치하던 국도에서 백성들이 얼마나 힘들고 비참 하게 사는가를 뒤늦게 알게 되였다. 하여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광야에서 홍수에 궁전 이 있는 성곽이 잠기고 훼멸되라고 저주를 퍼붓었던것이다.
   봉건관리들은 재직에 있을 때 백성이야 죽든말든 아랑곳없었다. 민생고를 헤아리려 한것이 아니라 황권을 위해 량지를 버리고 눈을 감아버리가 일쑤였다. 원나라 때 장양생이란 고관대작이 있었는데 관직을 떼우고 사회저층에서 전전긍긍하여서야 백성의 질고를 똑똑히 보아냈다. 뜻을 잃고 우사모를 벗고나서 갑자기 백성의 질고에 눈을 뜨게 되였고 마음상에서 심절히 동정하게 되였다고 한다. 속담에 제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따가운줄 안다고 했던가,
   언제부터인가 “인민의 공복”이라는 말과 상대되는 “부모관”이라는 관방적인 통용어가 생겨나서 민중의 귀맛을 돋구어주었다. 관원이 백성들에게는 진정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같이 친밀한 존재가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있으랴만 부모관이란 제기법도 우습거니와 그나마도 잘 안되기에 진정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고 렴결봉공을 제창하게 되였으니 앞뒤가 전혀 들어맞지 않는것이다.
   과거에 지방관원들이 “부모관(父母官)”자칭한것은 대개 송조초였다고 한다. 이 말은 관리가 백성을 위해 전심하지 않을게면 집에 돌아가 고구마를 구워팔기보다 못하다는 의미의 “민주”관념이 담겨있다. 관원이 부모처럼 된다면 당연히 백성을 아들딸로 여기고 멸사봉공해야 할것이다. 물론 그것은 봉건시대의 관민관계를 말하 고 당시 관원들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한 벼슬의식이라 할수 있다.
   자유민주를 제창하는 현시대에도 기어이“부모관”이라는 칭호를 선호한다면 응당 “부모의 관리”로 해석되여야 도리에 맞을것이다. 말하자면 백성을 부모처럼 여기면서 백성을 위해 권리를 행사해야 할것이다. 신식말로 인민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말이 되겠다.
   더 부연한다면 마땅히 인민군중이 관원의 부모와 같아야 한다. 자본주의 나라인 일본에서 공무원이나 공공복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기 불찰로 시민에게 어떤  불편을 조성했다면 고두백배하며“죄송”을 개여올린다는데 이들의 의식은 우리들이 반드시 좌표로 삼아야 할것이다. 헌데 우리 여기서는 무엇을 좀 한다하는 사람들이 인민군중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권좌에 앉아있으니 당연히 틀을 피워도 무관하다는 의식이 골똑 찼음을 알수 있다. 기실 그들 자신도 웃을 유치한 의식이 아닐수 없다.
   한국에서나 일본에서 공무원들은 자신들이 인민군중의 세금으로 먹고 산다는것을 상식으로 알고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오히려 관리가 백성을 먹여살리고 선덕을 하사 하는 구세주인가 착각하는 관념이 굳어져있으니 우습지 아니한가? 시대는 평등과 민주화에로 발전하고있는데 그냥 관본위를 고집한다면 자타를 위해서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수 었다.
   일찍136년전《빠리공사》의 성원들은 자신을 인민의 공복으로 자처했다. 건국후 중국백성들도 관원을 인민의 공복이라고 부르는데 습관되였다. 그런데 봉건냄새가 물씬 풍기는 부모관이라는 칭호가 류행되였으니 력사적인 유모아라 할수밖에, 하긴 선전매체에서 관원들을 홍보할 때 부모관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사용하자 유관부문에서 공중보도에“부모관”이라는 칭호를 쓰지 말라고 명문으로 규정했다.
   그런데도 보도매체나 당사자가 “부모관”이라는 칭호에 애착을 가지고 의연히 쓰고있다. 매체측으로 말하면 아첨끼가 흐르는 언동이고 당사자로 말하면 아닌보살을 하는것이다. 세계적인 위인 등소평도 자신을 인민의 아들이라고 말하였지 부모관 이라고 하지 않았다. 전 중국의 만백성을 가난속에서 헤여나오게 한 력사적업적으로 말하면 그야말로 명실공히 백성의“부모관”이라 칭송할수 있다.
    백성을 등급관념으로 상대하여 “부모관”이 어쩌고 하는것은 시대에 떨어져도 한참 떨어진 봉건사회의 잠꼬대이다. 민주의식이 날로 신장되고있는 국민들은 무슨 부모관이니 공복이니 하는 말에 대해 너무나 잘 분석하고 있으며 정영이니 초민이니 하는 량극분화현상을 곱지 않게 보기에 다만 신성한 공민이 되기를 원할뿐이다.
   공민이라는 칭호에는 근근히 국민이라는 의미만 내포하고 있는것이 아니라 평등 의식과 독립의식, 참여의식이 담겨있고 초민이니, 신민이니 천민이니 하는 봉건적인 노복의식을 배제한 근대국민의식이 체현되여있기때문이다. 하기에 이른바 민초들이나 정영들이나 오직 “공민”이라는 하나의 평등한 명칭만이 가당할뿐이다.
 
                   
                       2007 년 11 월 20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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