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서 수필은 독자들에게, 젊은 후진들에게 문학이나 철학의 나의 생각을 전달하는 메가폰이기도 하고, 우주와 인생에 대한 나의 느낌을 이야기하는 대화의 수단이기도 하고, 또 사회의 부조리를 까밝히고 비판하는 투창이나 비수 같은 무기기도 하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수필은 또 나 자신을 비추어보는 하나의 거울이기도 하다. 수필의 이상의 여러 가지 기능들 중에서 이 마지막 기능이 가장 중요하다고 나는 늘 생각해 왔다.
허구를 허용하는 소설이나 여러 가지 표현기법을 활용하여 갖은 재주를 다 피우는 시에 비해 수필의 주인공은 영원히 남이 아닌 나요, 또 작자인 나의 개성이 적라라하게 드러나야만 수필로서 매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는 수필이 은페하거나 모호성 속에 가릴 수도 있는 기교적 장치를 지니지 않고 드러나는 것을 당연시하는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격이 도야(陶冶)되고 개성이 멋들어서 품위 있는 김학철 선생 같은 분의 글은 개성이 로출된다고 하여 나쁠게 하나도 없지만, 아직 인격적으로 완성되지 못한 천박한 나 같은 사람의 글에서는 개성의 로출이 치명적인 결함으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거울 앞에 앉히고 자기의 성격적이거나 인격적인 결함을 바라보고 또 드러내는 글을 쓸 엄두를 감히 내지도 못했다. 남들앞에서 자기의 유식함을 자랑하거나 자기가 아닌 사회에 대해 비판의 투창을 날리기는 쉽지만 거울에 비낀 자신의 추한 모습을 정시한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고 그렇게 개운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 혼자서 스스로 자기를 미추(美醜)을 가늠해보기 위하여 방안에서 거울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으나, 자기의 《심적 라상(心的裸像)》을 수많은 독자들앞에 적라라하게 드러낸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자기를 알라》고 했고, 중국의 옛 사람들도 《인간에게서 가장 귀중한 것은 자기를 아는 명석함이 있는 것이다(人貴有自知之明)》라고 했으리라.
나는 2년 전 심심풀이로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서 내가 운영하고 있는 문학 홈페지에다 회상록을 시리즈로 올려보았다. 그중에서 《나의 카인콤플렉스》라는 나의 심적 라상 드러낸 보인 글 한편을 《도라지》에 보냈고, 그 글이 미구에 실리게 되였는데 독자들로부터 나의 자기 드러내기의 솔직성에 찬사를 보내는 이메일편지들을 적잖게 받았다.
나는 이로부터 수필은 자기의 심적 라상을 솔직하게 드러낼 때야만 독자들의 공명대(共鳴帶)를 울려놓는다는 것을 체득하게 되였다. 그래서 앞으로 남보다는 자기를 엄하게 해부하는 수필들을 많이 써보려는 생각을 그때부터 가지게 되였다. 그러나 이것도 그리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 루쏘의 《참회록》이나 파금의 《수상록》처럼 자기의 치부를 드러내는 용단은 그리 쉽게 내려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필은 나에게 있어서는 갈수록 심산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수필 쓰기가 점점 두려워지고 점점 어려워짐을 절실하게 느낀다. 내 마음의 창문을 열어서 독자들에게 모든 것을 진솔하게 드러내 보이고 자신을 날카롭게 해부하는, 또 그래서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그런 감동적인 수필을 정말로 써낼 수 있겠는가 늘 자신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전전긍긍 수필을 써가는 요즈음이다.
내게 있어서 수필이란 내 자신의 《심적 라상(心的裸像)》을 비추어보는 거울이라는 것을 리성적으로는 분명히 깨닫고 있으면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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