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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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가난, 억압 그리고 사랑
2006년 04월 04일 00시 00분  조회:4606  추천:54  작성자: 김관웅
수필

가난, 억압 그리고 사랑

김 관 웅



우리 집 칠남일녀 팔남매중에서 이미 셋은 박사학위를 땄고 둘은 지금 박사학위를 따려고 국외에서 류학을 하고있는중이다. 말하자면 항렬로 셋째인 나와 넷째인 호웅이는 연변대학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땄고, 다섯째인 철웅이는 일본 고찌대학에서 의학박사학위를 땄으며, 여섯째인 영웅이와 일곱째인 정웅이는 각각 한국의 서울대학과 일본의 대학에서 채육학박사와 정치학박사 코스를 밟고 있는 중이다.

한 로동자가정의 칠형제 대학생중에서 박사가 다섯이나 나왔다고 국내외의 신문, 방송이나 텔레비죤 기자들로부터 여러 번 인터뷰를 당하였었다. 그럴때마다 기자들이 이른바 《우리형제들이 성공한 비결》을 묻군했으며 또 그럴때마다 우리들은 명쾌한 대답을 하지 못하군했다.

지난 섣달그믐날에도 한국 KBS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역시 대답을 못해 우물우물할 수 밖에 없었다. 아직 해놓은 일이 별로 없고 갈 길이 아직 멀고도 먼 우리 형제들을 두고 《성공했다》고 표현하는것은 당치않은 것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시점까지는 상대적으로 탈없이 잘 크고 공부를 열심히 해온 것만은 사실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KBS 기자들과의 인터뷰가 있은 뒤의 이 며 칠 동안에는 이른바 그 《성공의 비결》에 대해 여러 모로 정리해 보았다.

우리 집은 결코 세세대대의 학문적인 전통이 있는 선비집안도, 돈 많은 부자집안도, 떵떵거리는 고위급간부집안도 아니다. 그리고 우리 형제들은 결코 남보다 뛰여 난 머리를 타고난 것도 아니다. 이른바 《성공의 비결》을 억지로 총화를 하라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네 가지가 아니겠는가고 귀결해 본다.

첫째는 건강한 몸,
둘째는 가난했던 가정살림,
셋째는 정치적인 억압과 그에 따르는 심리적 고통,
네째는 부모형제들 사이의 뜨거운 사랑

바로 이 네 가지 조건이 주어졌기에 우리 형제들은 그 어려운 역경속에서도 오늘날까지 배움의 길을 꾸준히 걸어올 수 있은것 같다.

금년에 85세인 나의 부친은 지금도 저전거를 씽씽 타고 다닐만큼 근력이 좋으시다. 젊은 시절에는 위만주국 전국 자전거 전능우승을 련거퍼 3년이나 확보한 챔피언이였으며 위만주국에서 선정한 1940년 동경올림픽의 종자손수였다. 물론 이것은 그 무슨 나라에서 의도적으로 양성해서가 아니라 일본인이 경영하는 약방의 약배달부로 어려서부터 자전거를 익힌 덕분이였고 타고난 건장한 체질 덕분이였다. 우리 아버지가 우리 칠형제에게 준 가장 귀중한 유산은 건강한 몸이였다. 하기에 우리 칠형제들은 그 엄혹한 가난의 시련속에서도 감기 한번 크게 앓지 않으면서 몇 십 년을 하루와 같이 학업에 정진할수 있게 되였다. 병들고 벌레 먹은 꽃나무가지에 아름다운 꽃송이들이 만개할수 없듯이 병치레만 하는 집안에서 심신이 건강한 자식들이 속출할수 없음은 정해진 리치가 아니겠는가.

나의 부친은 조실부모하고 소학교문전에도 다보지 못하고 사회의 최하층에서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노가다판의 뜨내기로, 료리집의 심부름꾼으로, 약방의 약배달부로 그야말로 소갈데 말갈데를 가리지 않으셨다. 일생을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을 배우려는 목적으로 위만군 운수부대에 들어가서 자동차운전기술을 배운 것이 밑천이 되여 평생의 밥통으로 되기는 했지만 그것이 죄로 되여 해방후 계급투쟁을 기본으로 했던 수 십년 동안의 세월속에서는 혹독한 정치적 박해를 받아야만 했으며 우리 팔남매에게까지 련루되였다. 남들이 다 드는 소선대나 공청단 심지어는 홍위병이나 홍소병에마저 들여주지 않고 성적이 높아도 제가 원하는 학교에 입학할수 없는 억울함으로 인해 속으로 피눈물을 흘려야 하는 심리적 고통을 우리 형제들은 너무도 일찍이 또 너무도 많이 당해 보았다.

그때는 이 모든 것들이 죄다 원망스럽기만 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이런 역경은 사실 우리 칠형제의 의지의 칼날을 시퍼렇게 갈아주는 숫돌같은 기능을 수행했던 것이다. 우리 칠형제들은 그 계급투쟁의 엄동설한속에서 많은 것을 잃었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얻었다.

온실의 꽃들은 온실밖으로 나와 한번 서리바람을 만나게 되면 그 순간에 죽어버릴 수밖에 없지만 엄동의 시련을 겪은 풀들은 봄이 돌아오면 소생하게 되는 법이다. 우리 칠형제는 극좌로선이 살판치던 정치적인 겨울을 이겨낸 자그마한 일곱 포기의 야초에 비길 수 있다.

싸움이 없는 곳에 승리가 없듯이 시련이 없는 곳에 값진 성공은 있을 수 없다.

복(福)은 쌍으로 오지 않지만 화(禍)는 흔히 쌍으로 겹쳐서 온다. 우리 집은 부친의 70원 남짓한 월급으로 열 식구의 입을 막아야 했다. 6억 인구에서 3천만명이 굶어죽은 지난 세기 60년대초에 우리 집 열 식구중에 한명도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영양실조로 인한 간염같은 병에도 걸리지 않고 전원이 무사했다는 것은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기적 같은 일이 아닐수 없다.

부모가 주신 건강한 몸과 부모님들의 눈물 나는 자식사랑이 우리들을 살려냈다. 어머니는 연길시 근교의 모아산 등지의 후미진 산자락에 가만히 밭을 일구어 열콩, 옥수수, 감자같은 것을 심어 식량을 보태였고 철따라 산에 가서 산나물 뜯어다 반찬감을 마련했으며, 가을이면 우리 형제들을 이끌고 콩이삭, 벼이삭, 감자이삭, 고구마이삭 줍기에 나섰다. 겨울철이면 복장공장으로부터 단추구멍 틀고 휘갑을 감치고 실밥을 따는 등 바느질감을 목이 부러지게 이여다가는 밤늦도록 삯바느질로 푼전을 벌기도 하시였다.

그때 우리 팔남매는 모두 한창 자랄고비인지라 언제나 허기진 배를 가누기 어렵던 때였다. 하루 세끼 돌이라도 삭이는 우리 팔남매에게 시래기를 가득 썰어 넣은 콩장이나 호박풀데기죽이나마 건데기로 퍼주고나면 어머니는 언제나 허여멀건 국물이나 철없는 우리들이욕심을 부려서 먹다가 남긴 것이나 거두어 자시는 것으로 끼니를 때우시군 했다.

그때 나는 열서너 살이여서 지각이 전혀 없은 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어머니가 배를 주리는 줄 알면서도 그나마 얌얌해서 제 몫은 다 먹고는 어머니에게 약간이나마 남겨진 국물마저 훌훌 빼앗아 먹어 버리는 얌체 짓을 저지르 군 했다.

그러던 중에 어머니가 하루는 갑자기 마당에서 졸도하여 들것에 실려 연변병원 구급실에 옮겨지는 장면을 울면서 따라가서 지켜본 후에야 차츰 이런 얌체 짓을 하지 않게 되였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담배와 술도 끊으시고 한평생 반반한 양복 한 벌 입어 보시지 못하고 우리 형제들의 공부 뒤바라지에 모든 정성을 쏟으셨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을 먹고 자라났다. 정작 먹을 것이 떨어져도 우리 집에는 언제나 명랑한 웃음소리가 끊일 줄 몰랐으며 엄혹한 정치적 억압이 몇십년 계속되여도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학교에서 소외당하고는 울면서 하소연하는 우리들을 부등켜 안고 통곡하시다가도 옥수수죽이나마 대수 요기하시고는 언제 통곡하셨더냐듯이 전등불밑에 쪼크리고 앉아 밤새도록 바느질을 하셨던 어머니였다. 그러면 철든 형님과 누나는 어머니를 위로하려는 마음에서 밤늦도록 실밥을 따고 단추구멍을 틀면서 어머니의 일손을 도왔다. 우리집 부모형제들은 바로 이렇게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그 기나긴 가난과 정치적인 억업을 이겨내 왔다.

집살림이 가난하고 정치적으로 억업당하기만 해서도 안된다. 가난과 억압이 있으면서도 부모형제간의 우애와 사랑의 후더운 정이 흘러 넘쳐야만 자식들이 주눅이 들지 않고 잘 자랄 수 있다. 가난과 억압만 있으면 쭈그러든다. 곱다곱다 어루만지기 하면 자식들은 버릇이 고약해지고 의지가 약해진다.

잘 먹고 잘 입어서 키는 장대처럼 크고 인물도 희여멀끔하지만 철이 들지 않고 응석이 데룽데룽 달린 나의 자식들을 보면서 나는 늘 《젊어서 고생은 금을 주고도 못 바꾼다》는 우리 속담을 되뇌이군 한다.

물질적인 가난과 정신적인 고통은 사랑과잉으로 자라나는 요즘의 신세대들에게는 더욱 절실한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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