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시키는대로 실말을 한다면 내가 땅에 대한 최초의 소감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막무가내와 그에 따른 미간의 찌프림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벌레들이 기어나오고 산천이 파란 숨을 쉬는 계절만 되면 나는 홀로 엄마의 조수가 되어 땅과 더불어 땀통이 되어 씨앗을 뿌려야 했고, 벼들이 유아기를 벗어나 소년기에 들어서면 거머리한테 피를 빨리우면서도 논밭의 가운데 서야 했다.
그리하여 늘 비오는 날이 그리웠다. 비가 오면 땅에 앗겼던 자유를 찾아올 수 있다. 비만 오면 친구들 속에 끼어앉아 내 동심보따리를 풀어놓는 한없이 빛나는 시간을 가질수도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비오는 날이면 논밭에 나가지 않아도 되고, 밭고랑을 타고 앉아 고추밭 잔풀을 뽑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이 좋았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지 비가 오는 날이면 땅과 멀리할 생각을 남몰래 작은 가슴에 묻기 시작했고 종국에는 그 극단적 이상을 따라 땅냄새를 떠나는 역사를 쓰고 말았다.
돌고 돌아서 돈이라고 하지만, 돌고 돌아서 세월이 되기도 하는가보다. 얼마전부터 나는 가끔 뙈기밭이 한마지기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유기농을 제창하는 웰빙 시대의 숨소리에 맞추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장거리버스에서 느낌한 감동이 마음에 새 충동을 심어준 것이라고 자의한다.
때는 늦은 봄이다. 시아버님 병문안을 가는 차에 앉아 차창밖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노라니 자석에 끌린듯 땅에서 눈을 뗄수가 없게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파름파름 애곡식들이 산들산들 봄바람에 속삭이듯, 재롱부리듯 춤추는 모습은 정녕 갓 걸음마 타는 아기의 귀여움이 깃들어 있어 금방이라도 달려가 안아주고 뽑뽀해주고 싶은 생각으로 가슴 한 구석이 설레인다.
보면 볼수록 가슴에 즐거움이 이 고여왔고 그 즐거움이 만들어낸. 행복이 웃음짓는다. 세상에 태어난지 얼마된다고 저렇게 행인의 시선을 채워줄까! 넉나간 모습을 하고 그들에게서 시선을 못떼고 있다가 익숙한 깜둥이얼굴을 알아봤다. 그것은 내가 지겨워서 떠났던 땅이었다. 그는 가슴을 풀어헤치고 젖을 먹이고 있는 젊은 엄마의 얼굴에 흐르는 진한 행복의 그림자를 닮았다. 그는 사경을 넘어온 산모가 제몸에서 갈라져나온 생명을 바라보는듯한 한없이 부드러운 눈길을 닮았다. 나는 그 황홀경에 빠져버렸다. 천년 산삼을 캔 가난한 부자처럼 미칠것 같은 희열에 온 몸을 달구었다.
열한 번 째 예술을 익혀 질주하고 있는 차를 멈춰놓고 땅의 품에 안겨 그 거룩함을 만끽해보고 싶은 충동이 마음에 가득해졌다. …
세상에 땅같은 존재가 있다니, 좀처럼 믿어지지가 않는다. 농부의 희망을 담고 예리해진 보습날에 전신이 토막되면서도, 제 몸을 잘라서 씨앗을 품어주고 전망을 약속해준다 자신의 헌신으로 무르익은 곡식들이 제품을 떠나 밑빠진 인간의 배안에 들어가는 생리별 가을이 언젠가는 올 줄 알면서도 궂은 내색 모른다. 늙그막 자식 키우는 정성과 사랑으로 만들어진 심장인지!
태초부터 어머니가 사랑의 대용으로 인간에 머무르고 땅은 참된 인간이 생의 의욕을 이루어내는 광장으로 자연에 머물게 되었을 것이다. 바다같은 흉금과 하늘 같은 사랑이 모성의 구조물이라면 땅의 원조는 인간삶의 미래가 영구히 숨쉬게 하는 덕성의 꽃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를 보면 태양이 늙어도 자기를 위한 욕구가 뭔지도 모른다. 농부들의 땀 스민 봄타령 한 곡조에 최대의 만족을 알고 가을 바람타고 시집 장가가는 성숙의 향기 속에 최상의 보람을 맛본다. 땅의 가족원은 인간에 무한한 은혜를 베푸는 세습을 제도로 알고 그것을 칼날같이 지킨다. 일년의 수확을 남김없이 선물하고 허허벌판에 짐을 푼 고독과 한몸이 될 때도 배신의 원한을 모르고 보복의 칼을 갈지도 않는다. 다만 또다시 자신을 고스란히 바칠 그날을 기대하면서 한겨울 침묵 속에 비옥한 몸이 되고자 고요히 잠들어 있는다.
이처럼 땅은 자기의 본분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본분 뒤에다 이치의 자를 숨기고 있다. 그래서 부지런하고 성실한이에겐 풍요로움의 복을 주고, 게으름에 빠진 이에게는 미풍에도 날려갈 쭉정이만 내준다. 인간의 침묵에 위대한 언어가 들었다고 한다면 그것 역시 땅의 침묵이 준 가르침일 것이다.
땅은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변함을 모르고 만물을 포용할 힘으로 세상을 살 것이다. 그는 참된 덕성을 한몸에 지니고 있다가 필요한 인간이 나서면 뿌리채 환원해주는, 한없이 넓고 깊은 신화적 존재이다. 그는 참된 생명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는 자연의 불후의 걸작이다. 겉으로 보기엔 무덤덤하고 거지같고 화려하지 않지만 실속은 억대의 갑부로 산다.
그래서 인간은 그를 가장 믿음직한 생명의 벗으로 삼게 된 것이겠지! 그의 몸에는 무시로 삶의 도리를 말해주는 백과사전이 있고, 자연을 잉태하는 힘이 있고, 기적의 풍경을 만들 수 있는 우주가 있다. 땅의 가슴에 귀를 대면 행복의 집을 짓고 사는 천사의 노래소리가 또렷이 들려온다.
가령 땅의 영혼을 커룽해내는 기술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혹시 변신술이 있대도 괜찮을 텐데. 그러면 그의 원심에 파고 들어가 오고가는 잡귀신 소리에 심란해진 마음을 정화시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하다.! 좋은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땅의 좋음을 구가하는 내 목소리가 건물들의 콩크리트 밑에 깔리는 경작지들의 슬픈 하소연과 합성이 되어 정상 청각으로는 분별키 어려운 별개의 소리로 부각이 되고 있다. 좋지 않은 느낌이 마음을 잠식한다. 그래서 그런지 땅의 아름다운 독창이 신변에 머물던 시절이 사무치게 그립다.
1999년 4월 완성
발표내역: <파아란 들녘의 꿈>( 2000년 12월 당대중국조선족녀류작가 수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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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3 ]
3 작성자 : 남춘애
날자:2015-02-06 21:11:24
게사니님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2 작성자 : 게사니
날자:2015-02-06 20:22:47
좋은 수필 단숨에 읽고 갑니다. 16년전에 벌써 이렇게 좔 좔 내리흘렀군요...좀 많이 올려주세요... 님의 수필을 좋아하는 남자입니다..
1 작성자 : 남춘애
날자:2015-02-06 20:15:10
이 글의 원래 제목은 <땅에 대한 사색>입니다.
돌아보는 느낌은 다 좋은 것만 아닌가 합니다. 내가 언제 이런 글을 다 썼지 하는 생각에 흐뭇해지려 하던 마음이 여물지 못한 글귀들 앞에 금방 무거워 옵니다. 지금이 어제보다 좋다는 얘기가 되겠지만 지금으로 오는 어제의 글공부가 얼마나 서툴었더냐가 먼저입니다. 배움에는 종착역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예전 글을 옮기면서 얻어 낸 영양가 괜찮은 나름의 소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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