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춘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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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자기를 찾아가는 길
2023년 01월 27일 20시 20분  조회:181  추천:0  작성자: 남춘애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살다가 사람으로 죽는 과정에 울음은 인간 내면의 가ㅏㅇ 진실된 정감을 대리한다. 젖먹이 때가 그런가 하면 짜개바지 소시적에도 조금만 본인 마음에 맞지 않다 싶으면 다짜고짜 울음으로 마음표정을 보인다. 말귀를 알아듣는 때가 되여도 상황 대처력의 기본은 역시 울음이 우선이다.

     그렇다고 매사가 꼬일 때마다 울 수 없는지라 사람은 또 그것을 이겨내는 새 대륙을 개척하게 된다. 그의 이름은 참을성이다. 소리도 안 들리고 보이지도 않는 가슴으로만 울음을 하는 참을성이다. 울음이 마음을 후줄근하게 절이는 짠물을 밖으로 내보낼 수 있게 하는 최고의 장치라면 참을성은 인생의 길 우에 지지 않는 꽃을 가능하게 해주는 만능의 신약이라 하겠다.
 
     그러나 참을 줄 아는 법을 배워낸다는 것은 참으로 조련찮은 일이다.  자라는 길 전부에 수없이 많은 극복의 자국을 찍어서야 참아내는 법을 깨닫게 된다. 거의다가 그렇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나는 어릴 때 울보로 동네방네에서 유명했다고 한다. 심지어 방바닥에 내려놓기만 하면 자지러지게 울어제껴서 잘 때까지도 업고 자야 했다고 내 두 언니는 지금도 말해준다. 엄마가 일로 바빠서 나는 두 언니의 잔등에서 먹고 자면서 자랐다. 내가 죄꼬만 입을 삐죽거리며 울면 언니가 엄마한테 혼이 날가봐서 “울지 마. 개눈깔사탕 사줄게 응?”하고 따뜻하게 달랜다. 그러면 나는 울으이 꽉 찼던 작은 빙산을 탁 깨버리고는 해시시 웃었단다. 사탕을 못 얻어먹어 훌쩍거리다가도 “뒷산 호랑이 내려와 잡아가면 어쩔라구”하면 금방 비겁쟁이가 되어 량팔소매로 눈물코물을 찍어내면서 소리를 꺼버리곤 했단다. 어떤 때는 엉덩이 한대 얻어맞고 앙앙대다가도 “그만 뚝 그치지 못해?”하는 엄마같은 큰 언니의 회초리 하나면 울음을 홀라당 씹어먹었단다.

     인생토막이 끊김없이 질긴 것은 세월에 녹아있는 울음과 참음의 기억들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 기억들은 삶의 만가지 맛을 먹고 자란 엿기름에 삭아져 아름아운 추억으로 거듭났다. 자랑스럽게 꺼내보는 보물이 되었다. 가슴앓이의 눅거리들이 이제 몇십년을 발효하여 심신의 량약인 참을성의 밑거름이 되고 만사에 여유로울 수 있는 너그러운 성품이 되였다는 것에 오늘도 고맙고 놀랍다.

      참을성이란 자아를 이기기 위한 련습이다. 어릴 때부터 그 토대를 단단하게 쌓아온 덕을 취학해서부터 톡톡히 봐 온 것이다. 취학 후에는 옆집 아이처럼 엄마 젖 무덤을 파고 응석을 부리는 늦둥이질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코풀래기 친구들이 발차기를 놀 떄 엄마의 작은 손이 되어 벌떡가마솥에 돼지죽을 끓이는 조수가 되였다. 숙제를 완성 못한 날에 선생님표 회초리에 손바닥을 몇개씩 맞을 때가 꽤 있었지만 나오는 울음을 그대로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다.  깨물고 씹어서 마음의 자루에다 참을성으로 챙겨담았다. 손바닥 몇대 맞았다고 선생님 가슴에 불 지르는 일도 아예 생각 못해봤다.

    지금에 와서 삶의 농짝들을 들춰보면 울음이 아니라 웃음이 터져나온다. “머절싸해서 그랬겠지 뭐’하고 꼬집는 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멍청함 속에는 울음을 웃음으로 바꿔내는 신령함이 산다는 것을 나는 내 경험으로 안다. 물론 그 선생님이 미워서 별명을 붙여놓고 키득거리는 일을 벌이긴 했었지만 손바닥을 맞는 순간만 빼고는 선생님 훈시 덕분에 분발하고 노력하며 자랄 수 있었다는 감사만 차곡차곡 곱게 남아있다. 그래서 선생님께 쫓겨 학교 뒤 방공호 안에 엎드려 숙제를 쓰는 한이 있더라도 집에 가서 어머님께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하지 않는 작은 어른이 일직 되여버렸다. 그러다가 마흔 고개를 넘기고 늦깎이로 공부 마당에 나서서 스무살 아래의 청춘들과 같이 숨쉬며 배워가는 과정에서도 이 참을성은 커튼이 되여 창피함을 막아주고 당당함을 주었다.

     인간은 늘 이렇게 마음의 힘줄이 끊어지는 크고작은 좌절의 아픔들을 이겨내면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모든 좌절에는 안위의 사탕이 필요하다고들 하지만 일단 사탕을 다 삼키고 나면 가벼워졌던  아픔이 여전히 심기를 꼬집어 피나게 하는건 마찬가지다. 림시 해결은 마음의 심처까지 상해한 병뿌리를 뽑아내는 일을 대신해주지 못한다. 그러니 깨끗하고 단아했던 마으의 밭에 잡초가 우거지고 해충이 우글거릴 때는 그 밭을 삶에서 지워버리는 일부터 해야 한다. 그리고 원래의 자기를 찾아가는 길에 나서서 정신력 기반의 재건축에 두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나에게 심장이 가루가 되여 대성으로 통곡할 천지간의 최고 난사가 생겼다. 한주의 컴퓨터 작업이 순식간에 날아가버린것이다. 심장의 박동소리 대신에 억장이 무너지는 아우성 소리가 숨통을 꽉 막아버렸고 명치 끝은 빳빳하게 일어서서 가슴벽을 찔러댄다. 나오는 한숨에 령혼의 불이 꺼지려 한다. 탁자 우의 모든 책을 확 쓸어버리거나 맨주먹으로 유리를 치는 행위를 답습하고 싶은 충동이 불끈거린다. 리성이 백기를 내드니 참을성도 선자리에서 폴싹해버린 것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려 하나 용서로 포용하고 갈 길은 이미 치솟는 자기 질타에 막혀있는 상 싶다.

    돌멩이도 가루낼 듯한 한숨 한탄을 수없이 토헤냈다. 이른 아침이란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큰소리를 연거퍼 질러도 보았다. 소리를 칠 때마다 눈물은 쏟아지려 뽐프질을 하고 괴로움은 백만배로 퍼져나간다. 쑥대밭이 되여버린 마음의 지옥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 선자리에서 뺑뺑이만 돌린다. 실수를 건지기 위한 억가지 회한도 주저앉은 나를 일으켜 세울 기적의 로켓은 끝내 띄워주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까맣게 재가 되고 있을 때 조깅 나갔던 남편이 들어왔다. 마무 말 없이 실내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하였다. 평소보다 일찍 깬 아들녀석도 나의 캄캄해진 표정을 한눈에 알아보고 침대에 누운채 꼼짝 안 했다. 이미 폭발하기 시작한 이 화산을 가라앉히는 그들만의 노하우였을것이다. 정말이지, 그때 누가 한마디 말만 걸어왔더래도 난 절망의 도화선을 타고 굉음으 내며 거침없이 미쳤을 것이다.
 
     위기를 건질 수 있는  관건 한걸음은 리성이다. 천길벼랑으로 곤두박질쳐버린 리성조각들을 빨랑 찾아다 하나하나 붙여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번쩍하고 두 눈에 보인다. 먼저 속깊이의 숨을 내쉬면서 경악에 팽팽해진 심장의 바람을 밖으로 쏟아냈다. 그리고는 동그라미를 크게 치고 그속에다 천만배 심각한 경우에 맞띠운 물들을 그려넣어본다. 그 상황에 비해 희망의 팥고물이 묻어있는 현재의 나를 서서히 발견하기 시작한다....
  
     일락천장이 일약만장으로 일변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통채로 죽어버린 듯 막형ㅆ던 마음의 창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공기가 흘러들고 ㅅ원한 바람이 지나가고 따뜻한 해빛이 비쳐 들어왔다. 잇달아 스스로의 마음을 주제할 만한 힘이 조금씩 솟아나기도 했다. 한뉘를 아래를 향해 흐르면서도 거침이 없이 노래를 부르는 강물의 품위를 따르려니 멀리 가버렸던 버팀목이 다시 달려와 정신력을 고여줬다. 마음의 숨통으로 초극의 지혜가 솟아나왔다. 참음으로 잃어벌 뻔한 나를 찾아왔다.
   
     엉망의 사태가 왔다고 하여 다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가끔 쳐들어온 절망을 겪으면 발자국 하나없던 최악의 사막을 이겨내는 길문이 열리기도 한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바이러스 부스레기들의 장난에 다쳤던 심경의 뒤길로 알릴 듯 말 듯한 선의의 아지랑이가 피여오른다. 나는 한눈에 그것을 알아봤다. 대비해두는 습성을 키워뒀더라면 오늘 같은 우스운 살인 식의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천금같은 순간이다.
 
      삶의 행복이 뽀시시하게 발려있는 것이라면 하나같이 울음을 이겨내는 인생수업을 거지지 않은 것이 없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사업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의 실수가 참으로 고맙다. 그는 실수 앞에서 쩔쩔 매는 나에게 울음을 구겨박는 지혜의 처방전을 적어주고 갔다.
 잃을뻔했던 자신이 보인다. 가슴에 원상복귀된 후의 평온함이 깃든다.
 
 
 

 
                                 



                                        발표내역: <장백산> (2021년 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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