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춘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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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수필] 꽃자매의 홀로 서기 댓글:  조회:323  추천:0  2023-02-24
      꽃과 대화를 해본 사람이면 알것이다. 그들과 마주보면서 미소를 주거나 잎을 만져주면서 칭찬의 말을 하면 꽃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쁨의 배낭을 확 풀어서 베풀기를 한다. 애무의 손느낌을 주면 꽃들은 하나같이 자르르하게 윤기화장을 하고 잎을 죽죽 편다. 그들은 이런식으로 행복 락원의 한 자락을 내어 준다.     집에서 키우는 꽃은 비록 화분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바람도 새소리도 없이 살지만 자연의 속성은 오롯이 갖고 있어 투정질 없이 그대로를 받아들이는데 익숙해 있다. 해가 유리창을 뚫고 꽃을 찾아 비쳐들 때나 해가 기울어져 그늘이 져 있을 때나 하나같이 영양분 나누기를 공유하면서 자라기에 정진한다. 그들이 생의 찬가를 쓰는 최고의 방식인 것이다.      오늘도 바쁜 시간의 꼬리를 잘라 거기에 한가한 시간옷을 갈아입히고 꽃들과 함께 한다. 이제 그들과의 대화는 내 삶에 정기를 받아오는 작은 여정이 되었다. 가장 신경이 쓰이는 쌍둥이 알로에가 잘있나 몸을 굽히고 보니 꽤 튼실하니 귀염상스럽게 자라고 있다. 옆으로 꽤 힘있게 뻗은 잎들에는 수분이 탱탱하니 차있고 잎을 지키는 톱니초병들도 꽤 촘촘히 박혀서서 꽃주인의 존엄을 살리고 있다. 나는 손애무로 그둘의 마음가까이에 다가갔다. 그런데 빤히 올려다보는 쌍둥이의 표정에 애원이 들어있었다. 좀더 가까이에서 눈여겨 살펴보니 두 그루가 키높이를 하느라 꽃잎들이 맞닿아 있기도 하고 아지끼리 비틀려 감겨 있기도 했다. 나는 일단 그들의 아픔을 다칠세라 조심조심 풀어주었다. 그리고 한 화분에서 거의 일년을 같이 살아온 그들을 갈라서 단독 거처를 마련해 주기로 마음 먹었다.      일단 꽃집에 가서 알로에의 성장에 알맞는 부식토부터 구해왔다. 원래의 화분에서 그 둘의 몸을 갈라내기 위해 물을 채웠다. 물을 먹고 마르고, 마른 흙이 다시 물을 먹고 하면서 한없이 견고해진 원래의 집터를 허물려니 시간이 필요했다. 그 틈에 크기나 색상이 비슷한 화분을 준비하고 화분의 물구멍을 막을 작은 돌을 찾았다. 한참이 지나니 화분의 흙이 슬슬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물은 부드러움의 화신이라 그의 앞에서는 머리숙이지 않는 완고함이 없는 것이다.     알로에를 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리 쉽지 않았다. 흙은 고집을 버리고 부드럽게 겸손해졌으나 두 그루의 뿌리가 구불구불 화분 밑바닥까지 하나로 엉켜있었다. 서둘러 몸에 감긴 뿌리를 풀어주고 뿌리를 지켜주던 흙을 작은 힘으로 살살 털어냈다. 어떤때는 작은 힘이 큰 힘을 초과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뿌리를 풀면서 보니까 조금 더 늦어졌다면 그 뿌리가 성장의 밑보장이 아니라 걸고 넘어지는 무심한 심술쟁이가 될 뻔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뿌리들이 정직함으로 곧게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일 것이다. 사계절의 세례를 거의 피해가는 화분꽃이어서 그랬을까!      일단은 두 그루를 감고 있는 긴긴 뿌리를 가위로 잘라주었다. 그리고 쌍둥이로 살던 꽃자매의 몸체를 살살 얼리면서 갈라주었다. 그들 역시도 생명인만큼 함께 있던 온기를 다시는 느끼기 어렵게 된 마당에 독립하는 설렘과 함께 헤어지는 아픔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각자의 뿌리에서 긴 부분은 잘라냈다. 뿌리가 다시 곧게 자라기 위해 분발해야 하는 리유를 깔아주었다. 그리고 꽃의 맨 아래 떡잎을 살짝살짝 정리해주니 녹색이 짙어지고 싱싱함이 살아나 훨씬 활기차 보였다. 이제 그둘은 이제 완전 각자가 되었다. 이제 그들은 삶의 새 장정길에 나섰다.      양 화분에 옮겨심고 보니 크기 차이가 훨씬 분명히 안겨왔다. 같은 화분에 같은 영양을 똑같이 공급받았는데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은 것이 이상하다. 분명 한날에 나온 아지가 젖을 떼자마자 한날에 옮겨 심었는데 말이다. 생명이니 차이라는 륜리앞에서는 머리를 숙였을 것이다.           이 자매꽃은 나에게 그냥 꽃이 아니다. 고향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5년전에 어머님을 고향 내몽골집에 모셔다 드리고 눈물을 휘뿌리며 기차를 탔을때 로모가 떠나는 기차역까지 달려와 주신것 이다. 딸에게 알로에를 닮아 건강하길 바라는 엄마의 축복이 숨쉬는 꽃이다. 그들은 자리를 옮겨서도 생명의 연속을 잊지 않고 죽을 힘을 다해 꽃을 피우고 새끼를 낳았다. 가끔 비실비실할 때도 있었으나 시간이라는 약을 먹고 자라가는 생명건강은 회복이 되였다.      엄마꽃의 새끼가 이제 어른이 되어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아직은 서로 의지하면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 보따리를 차고 있을것이나 위로를 앞세우고 그대로 둘수는 없다. 꽃자매의 서운한 표정에 걸리면 그들의 미래를 포기하는 셈이 된다. 그들이 세월의 물을 건너고 산을 넘어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갈라놓기와 홀로세우기일 것이다. 이제부터 함께 했던 소곤소곤 귀속말의 따뜻함도 혼자된 썰렁한 가슴에 추억으로 새겨야 할 때가 되였다. 치유의 중임은 시간에 맡겨야 할 것이다. 시간이 정지하지 않는한 그들이 그 이별의 서러움에서 해탈될 길도 갈수록 넓어질 것이라 믿는다.                                          발표내역: (2022년 3월)
39    [수필] 희망과의 악수 댓글:  조회:315  추천:0  2023-02-24
      동동주를 마셨을 때처럼 마음은 지금 흥분의 옷을 입기 시작했어요. 봄은 사람들의 두터운 옷 단추를 벗기고 따뜻해진 얼굴을 갖다 대며 귀여운 애교를 부리고 있지요. 그 이쁨 나누어 보고자 외로운 마음의 정박소가 된 인터넷의 문을 열어요. 그리고 함께라면 무엇이든 좋아지는 친구에게 봄의 문안을 적어 보내요. 학위논문이 바빠도 봄의 요청장을 받고서 모르는체 하지 말자고 약속을 기대해요. 큰 사람 되는 언젠가도 자연의 품안에 머물며 살 인간이니 모든 욕심 해볕에 널어버리고 잠시 쉬여가는 한 페지를 쓰자고 포인트를 보내봐요. 봄의 잔치에 자리를 비우는 일 없이 사는것도 멋진 인생이 아닐가고 잔소리까지 붙여서 메시지를 띄워요. 그랬더니 “봄이 언제 왔어요?” 라는 물음표가 찍힌 마음의 소포가 다시 내 컴의 집에 와 기다리고 있었어요. 방구석 청지기가 된 그 친구 불러 내 올수 있을가 하는 깔끔한 생각도 함이 없이 거저 '올 때 되였으니 우리 곁에 찾아왔겠지요' 하며 아무쪼록 귀한 손님을 섭섭히 보낼 순 없으니 파티약속이라도 하자고 했었죠. 파티라면 공부에 빠져 사는 나에게나 문자의 생리를 새롭게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그 친구에게나 굉장한 축제의 날이거든요. . “그랬구나 나는 봄이 온줄도 모르고…” 그 친구는 봄이 온 줄도 모르고 office에만 살았다는 이야기 였어요.     자연의 죄꼬만 티끌이나 별다름 없이 살다가 가는 인간이 만물에 기회와 삶의 시작을 주는 봄이 옴에도 두문불출 연구에만 빠져있다는 그 사실에 저는 정말 슬펐어요.. 박사논문 때문에 마음의 가락을 흐트려 놓으면 안될 일이라고 하는 그 말에도 어쩐지 이해심을 보이고 싶지 않아지는 않았어요.      인간에게 있어 성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확실한 기준치는 자신에게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 같애요. 돈을 많이 버는것을 성공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은가 하면 이름을 세상에 날리는 것을 성공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구요, 또 이쁜 안해나 handsome한 남편을 만나 알뜰살뜰 행복을 만드는 것을 성공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요. 나의 그 친구에게 있어 봄이 인간의 집 대문을 활짝 열고 서서 환한 웃음을 하는데도 눈길 하나 못 주는 그 박사학위가 성공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돼요. 다른 얼굴을 하고 다른 말을 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하나하나 결박해서 자기곁에 두는 것이 바로 성공의 원 이미지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가끔은 하면서 살아요.      희망이란 아름다운 이름을 만들어놓고 생명의 에너지 전부를 조금도 아까와 하지 않고 성공의 통장에 적금하며 사는 속에 자기 삶의 그라프를 그려가는 것이 바로 인간의 원초가 아닌지 모르겠어요. 하긴 우리가 말하는 행복이 바로 이런것일지도 모르죠. 행복은 때때로 슬픈 얼굴로 다가오기도 한다는 말이 왜 생겨났는지에 대해 조금은 통하는 마음이 되여지네요. 슬픔의 집에서 세간 나갈수 없게 만들어진 인간의 길이 아닐가요.     아이리스 머독이란 현존 여류작가가 한 소설 지문에서 적고 있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적어봅니다. “나의 행복은 슬픈 얼굴을 하고 있다. 너무 슬퍼서 오랫동안 나는 그것을 불행인줄 알고 내던졌었다” 이 구절을 읽으며 가령 성공이 사람들이 말하는 복의 개념이라면 그 역시 때때로 슬픈 얼굴로 다가온다고 할수도 있지 않을가 싶네요.      그러니 슬픈 얼굴로 고통과 실패의 모습으로 우리곁을 다가오는 것이 바로 성공이 주는 메시지 이겠죠. 인간은 그러한 체험과 늘 같이 하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그러니 힘듬을 견디어 나갈 때, 많이 넘칠 때보다 모자랄 때, 그 속에 진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사는 사람이 될 때 그는 바라는 성공과 한몸이 될수 있다는 말이 된답니다.     슬픈 얼굴 너머의 행복을 볼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무엇인가를 위해 자신을 투자하며 살게 되고 그것이 이른바 바램의 대안에다 꽃다발을 놓고 기다리는 인생으로 꾸며 줄 것 인지도 모르죠. 하지만 자연과 한 식구가 되여 봄의 품에 잠시 안긴다고 한들 그 아이디어의 그릇이 깨여지는 것은 아닐 것인데......     아파트 앞에 소담스레 피여있는 하아얀 목련꽃 보며 봄을 다시 한번 느껴봐요. 소망이 생겨나요. 멈추어가는 시간을 갖는 인간이 되고 싶어져요. 쉬지 말고 갈 길만 재촉하는 지금의 삶의 템포에 여유를 불어넣고 싶어져요. 마음의 보따리를 풀어놓고 인생이라는 식탁에 둘러앉아 봄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가지고 싶어져요. 그러면 다른 한 삶이 눈 떨수도 있을테죠.     쉬기 위해 쉬는 인생이 인간이 필요한 충전과 휴식을 기대 이상으로 줄수 있는줄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쉬임없이 달리기만 하다가 고장난 기계가 서듯 어쩔수 없이 멈추는 경우가 만들어 지면 나머지 인생의 노트에는 후회와 회한만이 아픔을 늘여 갈 것이라고 생각하게 돼요.    희망을 파는 자동 판매기가 따로 있나요? 자연이 주는 선물을 누리면서 다음 계절을 기다리는것도 희망과의 악수라는 생각이 들어요. 벗꽃이 축복을 내린 꽃길을 거닌다면 책을 읽는 즐거움보다 훨씬 더 큰 수확을 할지도 몰라요. 서로의 마음에 숨겨진 비전을 발견해 주는 사람이 될수도 있고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따스한 봄볕은 소중한 우리의 꿈에다 키돋움 날개를 약속해 줄지도 모르죠. 나누고 느끼고 눈물짓고 다짐하며 자기 세상의 지도밖으로 행군을 하게 됨이란 늘 아름다운 일이지요.. 봄을 알리는 자연의 긍지감에다 피곤해진 마음을 기대면 청춘의 미소와 아름다움을 느끼게 될지도 몰라요.     봄은 그 어느 누구를 위해 늘 기다리지 않아줘요. 봄이 왔을 때 같이하고 마음의 집에다 봄의 영혼을 입혀주는 재주를 봄에게서 배워 두길 바란다면 봄의 계절을 지나치지 말아야 하는 이치임이죠. 고운 꽃도 피는 계절이 있는지라 사람의 꽃이라고 어찌 늘 피여 있을가요. 가슴의 귀를 세우고 자연의 말을 들어봐요. 자연은 말을 해요. “스스로의 생에다 쉼표를 찍어주며 사는 인생을 만들어 가세요. 이것이야말로 군이 만드는 지혜의 극치랍니다.”라고요.    나의 그 친구도 봄의 충고를 듣고 나와 함께 봄 축제의 파티에 일원이 되였으면 하고 기대해 보며 이 글을 마감해요.                                    2005년 4월 초순 창작                             원제목:                             발표내역: 2006년 3월호 
38    [수필] 새 족속 댓글:  조회:455  추천:0  2023-02-24
                                   시험 시즌이다. 한 과목의 시험이 끝났다. 방금 시험장을 나온 학생들이 시험 본 상황을 서로 의논하는 소리가 도란도란 들려온다. 시험끝 종소리가 날때까지 붙어 앉아 골똘하는 친구를 기다리는 한 여학생이 안절부절 복도를 누비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마침종소리와 함께 기다리던 친구가 문어구에 나와 서기 바쁘게 던지는 그 학생의 말이 자주 쟁쟁하니 들려온다.         친구 보고 다른 사람의 것을 조금도 아니 보고 썼다고 인간축에도 못드는 바보라고 이름지어주는 그 말, 땀흘려 공부하고 진심으로 자아실력으로 시험보는 친구를 바보행렬에 세우고 있다는 사실 앞에 내 심정은 놀라움에 덜미를 잡혔다. 음식을 잘못 먹었을 때 소화불량으로 하여 배안에서 나는 요동소리 비슷한 것이 마음의 문을 통하여 들려왔다. 유보도를 걷는 사람에게 흙탕물을 확 덮씌우고 지나는 얄미운 자동차가 생각히운다.  누가 듣거나를 막론하고 스스럼없이 튕겨나온 학생의 그 말은 아무런 가식의 옷도 걸치지 않은 사상의 본모습 그대로의 발로다. 어쩐지 만근짐을 맨 듯 어깨가 엄청 무거워진다. 교육자라는 신분이 지워주는 의무감과 사명감일것이다.       매학기말 기말고시 후 학업의 수준을 말하는 성적표가 나올때마다 여기저기서 불평의 소리가 커지고 얼굴이 어두워지는 학생이 생겨나는 원인이 얼마간 자명해지는 거 같다. 또한 어색한 낯빛이 되어 몸둘바를 몰라하는 그 표정들이 감추고 있는 밑바닥에 숨쉬는 얄궂은 참뜻을 이젠 얼마간 알만해진다. 곡식을 아니 심고 거둔다는 자체만해도 너무 풀기 어려운 난제인데 또 알곡을 많이 수확할 수 있는 경우도 있게 되는 거짓말같은 진실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으니 가슴이 숨넘어가려는 사람처럼 갑갑해난다. 그리고 땀흘려 농사를 지었는데도 휘파람이나 불고 있다가도 때가 오면 손을 내밀어 수확을 자기 주머니에 덥석 집어넣는 일군을 알아보고 나니 가슴은 자연 아려난다. 두손에 털이 나도록 게으름을 피워도 넉넉하게 사는 사람을 능력자로 초대해주고 또 이러한 사람이 귀한 신분이 되기도 하는 야릇한 도리의 본가집이 어딘지가 어렴풋이 마음에 그려진다.       로동한 자만이 얻을 수 있다던 인류의 영원한 진리는 기력이 없어졌는지 아니면 그 미덕으로 알려진 로동의 령혼을 새롭게 바꿔줘야 할 시기가 왔는지..... 심중은 착각의 란장판이 되여버린다. 로동이 사람의 마음터전에서 정배살이를 갈 순 없다고 늘 자신을 위안해오던 것이 흔들리고 있음을 스스로도 놀랍게 느낀다.     사실 아니하고 먹는 방법이 지금이나 예나 늘 우리 신변의 도사리고 있었다. 하지만 공부도 아니하고 시험성적을 얻는 것은 내가 보건데 신생사물이 아닐 수가 없다.   이 세상바닥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공부라는 성스러움의 공지에도 부패족이 속출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금 부패한 탐관오리를 받아 주는것으로 경제 리익을 도모하는 길을 모색하고 있는 나라가 많아 서방의 어느 한 국가에만4,000 여명의 탐관이 집거해 살고 있으니 전세계에 늘려있는 탐관의 수량을 합계한다면 놀라운 수가 나올것은 뻔한 일이다. 그들은 탈세를 하거나 또는 나라의 국고를 제집 곡물창고인 줄 알고 막 퍼 가는데 습관이 된 사람들이다. 그들의 사상륜리는 국고가 빌 때까지 훔치지 않으면 자리가 아깝다고 여기는 족속들이다. 세상사람들에게 부유함을 자랑하며 살다가위기의 기미가 보이면 족속들을 거느리고 해양건너 타국에 잠수해 버린다. 헤아릴수도 없는 거액으로 별장을 사고 상상못할 사치를 누린다. 이러한 무리들은 소비라는 매개물을 이용하여 사회에서 소멸된지 오래되는 계급을 만들어내고 있고 사회인들의 심중에 불평의 씨앗을 심어주고 사회의 넓은 가슴에 불안정 요소를 만들고있다. 공부를 하지 않아도 한 사람에 비해 더 높은 성적을 올리는 일 또한 이같은 부패함과 얼마나 멀까! 시경에는 란 식구가 있다. 이 말은 하지 않고 잘사는 착취계급의 본성을 밝히는 예리한 명언으로 전해져 내려왔다. 하지만 착취계급이 소멸되었다고 하는 지금 세월에는 이 시구를 어디다 써야 맞춤할지 행방이 궁금하다.       시험감독을 하는 와중에 객관성 선택문제 답안을 베껴 친구에게 전해주는 쪽지 하나를 앗았다. 그 쪽지에는 전달해주는 정답 말고도  라는 장담까지 곁들여 적혀 있었다. 어이없다는 말의 진의를 나는 그때 알았다. 의젓하지 못한 도움이 친구를 진탕물에 처박아넣고 있다는 사실이나 또 자기의 행위가 어느 정도의 수치를 동반하는지를 전혀 념두에 두지 않고 있다. 평소엔 놀자거리에서 빈둥거리다가 관건대목엔 한박 떠는 ‘땡땡이행운’자들이라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그런 ‘고명한 과학’ 앞에서는 말이 무색해진다. 검은 것을 희다고 우길때나 흰것을 검다고 소리 높일 때는 어떠한 말로도 그것을 바로 잡아주기가 어렵게 된다.        학생들은 학기말시험이 아닌 글짓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 통로를 통해 숙제 완성을 하는 것이 보인다. 기성 작문집을 보면서 문구와 어휘같은것을 본따는가 하면 문장의 서두는 이 문장에서, 몸뚱이는 저 문장에서 따오기를 참으로 묘하게 한다. 그들은 소리도 없이 멋있게 둘러맞추는 재주는 보편 가지고 있는듯 하다. 이러한것도 학업의 로동이라 할 수 있다면 할수록 흉년이 드는 농사라는것을 알고나 하는지! 하긴 박사후 지도선생도 자료의 해양속에서 알맹이를 찾아 라렬한다는 사실과 비기면 아무것도 아니긴 하다.     교육자로서의 관념이 녹이 슬어서인지, 새로운 시대사상의 충전이 모자라서인지, 그렇지 않으면 제힘으로 사는 사람은 바보라 불러주는 시대가 도래했는지. 어떤땐 약이 엄청 과했을때처럼 멍청해지기도 한다. 옳고 그름의 계선이 희미해질대로 희매해졌다. 지금 세월에는 옳고 그른것이 따로 없고 다만 자기 리익에 걸맞는 일이기만 하면 천만지당한 것으로 인식이 되어간다는 시대용어에 얼마간 리해가 생기기 시작한다. 나도 시대의 병에 오염되기 시작했음이 분명하다.      부모 자식간의 사랑도 일에서 난다는 말은 정말 시대에 떨어졌다는 착각도 가끔은 한다. 로동으로 낟가리를 태산같이 쌓아놓고 환희에 빠진 사람보다 손끝 하나 알랑하지 않고 배가 나오는 사람을 엘리트라고 부르니 시비곡직은 이 시대의 삶에서 몰아낼 때가 왔는가 착각할때가 많다. 물론 시대에 따라 낳는 병이 있기 마련이다. 지금 이 시대의 병은 악종 바이러스인걸 봐서 인간의 도덕령역에도 바이러스가 침투되었다로 리해하면 어떨런지?!      로동의 미덕이 본색을 잃고 충성의 바탕이 통째로 정배가버리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정직함이란 아름다움의 옷을 그냥 입혀 줄 수가 있을까?! 답을 못찾겠다. 우려심이 파놓은 우물에 빠져 허우적거릴뿐이다.                     미발표작. 2023년 2월 24일 창작
37    [수필] 행복의 만찬 댓글:  조회:291  추천:0  2023-02-24
                           나는 일찍 감자와 깊은 인연을 가졌습니다. 먹걸이가 턱없이 부족 해서 배불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살아야 했던 어린 시절에는 배를 불려 주는 먹거리 해결사가 다름 아닌 감자였던 연고 때문입니다.       해마다 감자가 여무는 계절이 되면 나는 더 없이 바빠집니다. 감자 이삭을 주어와서 나를 포함한 식구들의 허기를 달래는 일을 할 시즌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에는 어른들은 들에 나가서 정노동으로 일하였고 학교에 갔다가 방과 하고 집에 오는 아이들은 집 오래에 있으면서 집에 보탬이 되는 일을 했었습니다. 특히 자식은 많고 일꾼이 적은 집에서는 더욱 그러했었습니다. 나는 후자에 속했습니다.       감자 이삭을 줍는 시간에 나는 항상 행복과 한 식구가 되어 있었습니다. 가난한 세월이긴 했어도 식구들이 배를 채울 수 있는 감자이삭을 주을 수 있어 마음 한 구석이 풍성하게 채워지는 기쁨의 크기와 깊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행복과 기쁨은 이삭을 줍는 내내 나의 동반자가 되어 마주 보고 웃었습니다.       그나마 감자이삭이라도 주어서 가족의 생계에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은 그 시절의 가진 것 없이도 넉넉했던 생산대 대상의 덕분이라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일의 품질에 평가 여부는 대장의 말 한마디로 정평이 나던 세월이 였으니까요! 생산대에서 첫물로 감자를 수확해 가면서도 나와 같은 이삭쟁이에게 재수확의 기회를 남겨주는 것은 소홀이 하지 않았습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감자 이삭 줍기는 요즘 말로라면 기능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자 포기를 정확히 찾아내여 그에 네발삽을 대고 오른발로 힘껏 힘주어 깊숙이 땅속을 파뒤지면 까만 흙보자기에 싸여 있던 감자들이 네댓개씩 또글또글 귀엽게 걸어나옵니다. 감자는 단체성이라는 넋을 가지고 있어 혼자로 되는 것을 싫어합니다. 우리 겨레의 민족성을 닮은 데가 좀 있다고 해야겠지요! 그래서 집단성이 좋은 이 감자들은 나름의 딴 살림을 차려서 분가하지 않는답니다. 그래서 여러개의 형제 감자들이 주렁주렁 한포기의 젖꼭지에 달려 대롱대롱 함께 세상 밖으로 나온답니다. 그리고는 세상의 일인자인 사람의 입맛 채우는 것으로 일생의 의미를 마무리합니다.        감자이삭은 줍는 대로 손빠르게 포대에 담아야 합니다. 이삭줍기라고는 하지만 한포대를 채우는데 그리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감자 수학을 하는 어른들이 재벌 수확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 여지를 남겨두 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감자 포대를 머리에 이고 삐뚤삐뚤 두 다리를 후들거리며 집에 오면 일터에서 귀가하신 엄마는 내가 문을 떼고 들어설 때 쏙 들어간 자라 목이 되어 있는 이 딸의 상황보다 감자 포대에 먼저 눈길을 주십니다. 먹을 것이 귀한 시절인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새끼가 올망졸망하여 입이 많으니 엄마의 그 절박한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듯도 했습니다. 그래서 왜 딸보다 감자가 더 먼저냐고 하는 식의 투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집에는 양쪽 소매가 콧물에 가죽이 된 코풀래기 두 동생이 배고픔을 참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엄마는 내가 이고 간 감자 포대를 주방바닥에 내려서 눕혀놓고 두손 재빠르게 먼저 큰 놈과 작은 놈을 정확히 가름하십니다. 그리고 큰놈은 밥 대용으로 윤기 반지르르한 까만색 밥솥에다가 떡대(평안도방언 =찜대)를 걸쳐놓고 그 우에 가지런히 놓고 쪄 좋습니다. 그때 감자는 온갖 식물 보약을 먹고 자란 지금의 것과는 달리 익으면 껍질이 토실토실 여러갈래로 터집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터져 있는 갈래대로 감자를 몇 조각씩 쪼개서 먹곤 했습니다. 자연과 한몸이라 그때 감자는 익어서도 인간의 심성에 맞춰 껍질 처리의 편리까지 주는 아량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참 고맙기만 한 감자의 배려였습니다.          감자를 식사 대용으로 할 때는 반찬이 없이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감자는 우리에게 밥이자 반찬이었기 때문입니다. 반찬이라고 굳이 내세우자면 집에서 엄마가 만드는 강된장에서 우러나오는 노란 엄마표 간장인데 거기에 금방 검은 가마솥에 쪄낸 감자를 살짝 찍어서 먹으면 일미가 따로 없었답니다.       그런데 그 천하일미는 것도 한 두 번에 걸쳐 먹었을 때 하는 맛의 느낌인것 같습니다.  세월을 먹고 자라면서도 끼마다 감자만 먹고 자라서인지 차츰 감자의 진맛을 못 느끼게 되었습니다. 찐 감자는 꼴도 보기 싫어졌습니다.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러한 느낌들이 몇 십년 세월을 뒤로 보낸 요즘에도 찐 감자라고 하면 벌써 오만상부터 찡그려부칠 정도로 나의 식단에서 감자는 둘도 없는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타임즈에서 감자를 만능의 식품이라는 왕좌에 앉힌지도 오래 되었지만 그가 숨겨둔 영양의 완벽함과는 달리 감자에 대한 입맛은 변함이 없어 지금도 식탁에서 감자와 만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감자를 채썰어서 볶는것이나 찐 감자를 으깨여 만든 것이나 구운 것이나 제아무리 천변만화의 변신을 이루어도 감자라고 하면 나는 두 눈을 감고도 알아 봅니다.         그래도 찐 감자로는 그런대로 배를 채울 수 있었던 기억입니다. 그런데 겨울의 유린을 받아 영혼이 없어진 감자는 생김생김부터가 꼴불견입니다. 고 모양은 아프리카의 최고급 흑인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까맣게 죽어얼었습니다. 엄마는 언 감자 한 톨도 버리는 일 없었습니다. 봄의 햇빛이 대지에 찾아들기 바쁘게 그 언 감자들을 배불룩이 독단지를 채운 물에 담궈 놓습니다.  그리고 이삼일 지난 후 다시 건져서 껍질을 벗깁니다. 얼었던 감자는 물속에 들어가면 껍질의 존엄을  세울 수 있는 기력이 조금도 없어 사지를 뻗고 맙니다. 그래서 물을 먹은 언감자는 껍질 따로 몸 따로 놀게 되는데 껍질을 벗기는 데는 저그만치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언감자는 령혼은 까맣게 죽었어도 베품의 넓은 아량은 여전히 살아 있었나 봅니다.       엄마는 일단 손질된 언감자를 독에 담고 하루에 한번 물갈이를 해 주면서 물에 오일 정도 불궈놓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묵직한 돌로 눌러 줍니다. 그래야 추위의 유린을 당해 얼게 되었을 때 생긴 독성이 그 놀림에 무릎을 꿇고 슬금슬금 기여 나간다고 하셨습니다.        엄마는 손질 된 흑색 언감자를 헛간 지붕우에 널어 말리웁니다. 널어놓은 감자는 봄의 꽃샘 추위에 표층이 꾸득꾸득 마르는가 싶어도 속은 얼음의 한을 품고 있습니다. 그 한을 풀어주려면 연자방아 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것을 엄마는 그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연자 방앗간까지 이고 가서 연자 돌판우에 놓고 갈고 갈아 가루를 내는 일에 달라붙어야 했었습니다. 연자 방아는 나귀가 돌립니다. 그런데 방아간 부림에 순순히 따를 수 있는 나귀는 잡아 오기도 참 쉽지가 않았습니다. 어떤 때는 생산대 마굿간에 한마리도 없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들판 자유를 누리고 있는 나귀를 찾아서 잡아와야 했습니다. 그때에 제일 필요한 것이 꼬맹이 대장부들의 도움이다 보니 동년 시절에는 고추 달린 남자 친구가 꽤 많았던 기억입니다. 함께 나귀도 타고 함께 돼지 몰이도 하면서 친하게 지냈던 동년의 코풀래기 친구였습니다.  그렇게 남자애들과 친하게 지내는데 익숙해진 나는 어린 시절에 많이는 오빠가 다니는 전쟁놀이터를 자주 따라 다니며 나무총을 쏘군 했었습니다. 고추가 달린 아이만 가질법한 그런 기억이 지금도 자주 내 눈앞에 선하답니다. 가난은 했었으나 자연의 의미를 그만큼 터득하면서 동년을 살았다는 것은 배고픔의 기억보다 행복의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연자방아로 갈아낸 언감자가루는 다시 까만 언 감자떡으로 거듭납니다. 약간 쫄깃해서 먹기에 무리가 없긴 하지만 그 많은 감자가 한자리에 오구구 처박혀 함께 얼어서인지 언감자떡에는 언제나 특유의 냄새가 슴배어있었습니다. 나의 혀는 아직도 그 맛을 확연히 기억합니다. 미끄덕미끄덕 사암사암 쿵큼하면서도 은근한 구수한 그 맛이 봄마다 두려웠지만 배가 소리 야단을 치면 그것을 먹어주면서 달래는 수밖에 없었던 언감자떡이었습니다.        식용유가 턱없이 부족했던 그 시절에는 아무리 큰 감자일지라도 채썰어 볶아 먹는 건 자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감자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이 좀 남아 있다면 작은 놈으로 하는 감자장졸임이었습니다. 엄마는 앞마당 채소밭의 풋고추를 따다 함께 넣고 마당에 임시로 만들어진 로천 주방에 걸려있는 커다란 가마솥에다 장졸임을 해 주셨습니다. 돼지 비게를 졸여 돼지 기름을 식용유 대용으로 먹다보니 기름이 빠지고 난 돼지고기 기름깡치까지 섞여있었지만 고기가 턱없이 그립던 시절이라 그것을 기름 대신으로 넣곤 했었는데 그것마저 칠 형제한테 나누어지는 것이라 한번만 당첨되어도 참 맛있게 씹어 먹었던 기억입니다. 그 고소함이 어찌 지금의 참기름인들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 와서 학문적으로 표현해 보면 가난 속에도 행복은 린색 하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에는 어떤 경우에도 반찬이 지금처럼 화려하지가 않습니다. 결혼 경사가 있는 집에도 최고급 반찬이 돼지 잡고 소 잡고 해서 푹푹 삼고 썰어서 소금 간장에 찍어 먹는 수육 음식이었던 기억입니다. 그때 우리 집은 끼마다 반찬공황이 들어 아침에도 감자, 점심에도 감자, 저녁에도 감자였습니다. 감자가 제일 화려하게 변신 할 때는 싱싱한 감자를 강판에 갈아서 만든 하얀 감자떡이지만 품이 너무 많이 ㄷ는 리유로 엄마는 그 많은 식구가 먹을 감자떡을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엄마는 우리 집 정로동력이었습니다. 엄마가 생산대의 공수(점수기록을 하여 년말에 분홍을 함)를 한푼이라도 더 많이 벌어야 년말 분홍 때 빚을 지지 않기 때문에 엄마는 등잔 밑 시간 마저 우리들의 꿰여진 옷을 깁군 하셨습니다. 두 언니가 시집 갈 나이가 되었을 때도 공수를 벌어야 한다는 한가지 집념에 잡혀 엄마는 음식의 개량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래 그렇게 나는 감자덕분에 건강하게 자라 쉰 인의 오번출구 앞까지 왔습니다만 감자로 살았던 시절이 괴롭거나 고통스럽지 않았습니다. 쌀밥이 그리워 내내 설만 기다리던 기억이 또렷또렷하게 살아있지만 지금은 그것이 행복으로 거듭나고 있다는데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삶의 색채가 단색이라는 것에 불만을 하지 않고 삶의 마당에 닥쳐온 생활의 본연의 적응하며 사는 곳에 삶의 의미가 살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올해도 나는 8월의 서막이 열려오기 바쁘게 행복의 지름길로 통하는 감자들을 한알 한알 가슴에 담고 고향으로 향하는 7035 푸른색 골동품 느린뱅이 열차에 몸을 싫었습니다. 어느덧 내 눈앞에는 내가 고향의 집 앞에만 도착하면 발목까지 오는 긴 검정앞치마를 두르고 고추 따던 자세로 삽작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 딸을 보며 환히 웃으시는 엄마가 선히 떠오릅니다. 고향 집 안마당 담장 안에 맏이를 등에 없고 둘째를 이끌고 선 옥수수들이 엄마의 키운 정에 고마움을 표하고 있는 모습들도 선하게 안겨옵니다. 여름 내내 태양과의 사랑에 빠져 있던 해바라기가 제법 영글어진 까만 뾰족열매를 잉태하고 토담우로 무거운 몸을 드리우고 서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리고 푸름의 절정에 서서 빨간 미소를 짓고 있는 고추밭의 고추들이며 홀로서기 련습을 위해 엄마의 몸에서 솟기를 시작한 마늘밭의 마늘쫑들, 탱글탱글 열매를 품고 하얀 꽃 몽골몽골 귀엽게 피우는 감자꽃도 보입니다.        아, 고향과 설레임과 그리움은 언제나 한 가족인가 봅니다. 고향을 향한 내 마음에는 향토의 내음이 듬뿍 스민 그림이 그려집니다. 인생 기억의 집을 꽉 채워주는 감자의 향기가 내 이 가슴에다 행복의 만찬을 차리고 있습니다!                                                                           원제목:                                                                                                                               발표내역: (2019년 제 5기)
36    [수필] 바다 밖은 하늘인데 하늘 밖은 무엇이냐! 댓글:  조회:231  추천:0  2023-02-11
     내가 몸 담고 숨쉬며 살아가고 있는 살림집이 바다를 내다보고 있다 보니 내 생활에 쉼표를 딱 찍고 가야 할 고비에 걸리면 만경창파 바다의 품에 안겨 하소하는 데 제일 편해진듯 하다. 자투리 시간이건 큼지막한 휴식시간이건 바다라는 이 자연의 수용소만 찾아갔다 하면 그는 조건부 없이 세상멋을 다 담은 몸짓으로 철렁 철썩 맞이해준다. 신발을 벗고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고 자꾸 벌어져 터지려는 입을 간신이 억제하면서 그 푸른 피부에 살을 대는 순간부터 일이라는 짠물에 폴싹 죽어버린 몸뚱아리가 령단묘약을 먹은 것마냥 쭉쭉 펴지고 불과 1초도 안되는 사이에 혼신이 젊음의 활력을 흠씬 머금게 된다.          그리고 활짝 열린 바다의 가슴에 안기기만 하면 덤으로 다가오는 선물 또한 막는 수 없다. 제일 귀여운 것이 바로 고놈의 새 희망이다. 그렇다! 그는 밀물로 번민을 밀어내고 썰물로 번민에 젖었던 자리를 설겆이해간다. 그리고는 사람마다의 마음의 길을 활짝 넓혀주고는 만능의 코드로 알려진 희망이란 배터리를 재주스럽게 마음의 단추구멍에 착착 끼워 맞춰준다. 그런가 하면 그 심금을 잡아주는 철썩임으로 몸자세를 한번씩 바꿀 때마다 나에게 듬뿍듬뿍 생의 새 우주를 하나씩 내여주니 이 즐거운 마음과 행복해지는 넋은 또 어디에 기대면 좋겠는가!     시야를 들어 저 멀리 지평선으로 무한히 펼쳐진 바다 우를 바라보노라니 심청이 효심의 대가로 바다에 몸을 날리고 그 효심이 전화위복이 되여 룡왕의 부인으로 거듭났다는 옛이야기가 반짝반짝 물 우를 수놓으며 흘러가고 있는 듯하다.      실은 나도 오늘은 로모의 거처가 마음의 목에 걸려 효의 정답을 얻어보고저 하는 아픔을 안고 이리로 왔다. 그삼의 막이 터져 짜개지고 피고름이 나는 상처투성이 나의 고민을 바다물 우에 띄워 저 멀리 실어보낼가 해서 왔다. 바다는 오늘도 여느때와 같이 광대무변한 앞가슴을 철렁이며 나를 품어주었다. 행복에 등 밀려 이곳을 찾아오면 몇배의 행복을 더해서 넘치게 챙겨주고 아픔의 송곳을 품고 이곳에 걸음하면 아픔을 여는 열쇠를 손에 쥐여주던 저 바다가 오늘도 나에게 상처난 마음을 잘 어루만져줄가? 납덩이를 품은 듯 내 마음은 깊이를 모르는 푸른 물으르 닮아 나락의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나에게는 년세 높은 87세의 로모가 계신다. 그이는 오는 다음달에 한국행 비행기를 타시게 된다. 자식이 많아 마냥 든든하다면서 로후를 대비해 마련해드린 집마저 돈으로 바꾸어 어려운 아들을 구제하셨던 로모가 이제는 몸 담을 곳이 없게 되여 그야말로 게릴라식 삶의 길에 오르고 말았다.          로모가 정해진 곳 없는 세월 우를 걸으신 지도 벌써 5년이 흘렀다. 고향의 흙집을 떠나 훨훨 도시로 날아가버린 자식들의 집으로 짐을 푸시기는 했지만 어느 자식의 집이든 한참 있으시면 고향이 그리워나서 어느 하루 고향에 가겠다고 말씀하지 않는 날이 거의 없다. 고향에는 친구도 있고 고향 길도 눈 감고도 찾아가고 변신한 고향의 길에는 흙먼지도 없고 고향의 양국은 약도 가지가지라며 말주머니와 밥주머니에 모두 고향 노래를 채우신다. 그래서 그 노래에 곡을 달아주고저 혼신의 힘을 다하여 고향에 장사보따리를 푼 새끼한테로 이동해 가셨지만 그 곳에선 또 멀리에 두고 떠나온 그 새끼가 그립고 그래도 몇째네집이 좋았다며 끊임없이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르신다. 그러다가 그 노래에 지치셨는지 료양원에까지 생활의 범위를 넓혀보시겠다며 로년 삶의 새 가사를 지어놓고 매일 노래를 하신다. 이에 여기저기 흩어져 삶의 현장에서 뛰며 사는 새끼들은 그 노래만은 정녕코 들어드릴 수 없다며 결사 도리질을 한다. 이에 로모는 자신이 이제는 자식들의 아이가 되여 힘없어진 것을 알아내시고 품안에서 날아가버린 새끼들의 옷자락을 잡기로 하셨다며 결국 한번도 함께 한 적 없는 한국의 새끼 집으로 발걸음을 하시겠단다.        누구나 엄마의 자궁세계를 떠나 속세에 왔을 때 그에게 처음 차례진 인생수업은 걷기이다. 인간은 걸으면서 웃고 우는 인생사를 겪는 것이다. 그러다가 모르는 사이에 인생의 막바지까지 가게 되는데 나의 로모에게 남은 것이 바로 이 막바지 수업을 잘 풀어가는 길이다. 로모께서는 얹혀사시는 삶의 예술들을 잘 기억해두셔야 만년을 즐겁고 무난하게 보낼 것이라 생각하셔서 부지런히 마음수업을 해두셨던 것 같다. 오금이 쑤실 때도 언제든지 짘줄 수 있는 의료지킴이에 의뢰하시고 또 반자식 사위가 해주는 음식ㅇ라면 맛없는 음식도 맛있다고 드시겠단다. 그리고 타향에서 남 못지 않게 벌어먹겠다고 새벽 나간 새끼한테 짐으로 업히려 하시지도 않으시겠단다. 잡숫고 싶으신 것이 있으면 참읏ㅆ다가 장이 설 때마다 당신 스스로 걸음하시는 데 습관하시겠단다. 그리고 마디가 쏘거나 속이 안 좋거나 하면 고향에서 보따리로 해가신 것들을 들춰서 해결해보시겠다고 하셨다.       내가 어릴 때 엄마와 잘하겠다고 약속할 때처럼 지금은 어른이 된 어린 것들과 엄마도 아이가 되여 한번 잘해보겠다고 다짐을 하시는 것 같다. 엄마의 그 말들은 길다란 대못이 되여 내  가슴의 바닥에 하나 또 하나의 구멍을 뚫으며 박힌다. 나는 래일이면 저 바다 건너 타향의 자식을 찾아 가실 엄마께서 당신 스스로 말씀하신 로년의 인생수업을 잘하시고 그 곳에서 정평을 받으셨으면 하는 쓰리고 아린 바람으로 오늘도 기도해본다. 바다의 트림질이 일구는 물로바 때문인지 아니면 부모님을 외국으로 모셔야 하는 막무가내에 젖은 슬픔의 향연 때문인지 비뚤비뚤한 두개의 일자가 량볼에 내리그림을 그린다.        만능이란 원래부터 없는 존재인가보다. 다만 인간이 인생사에서 열 수 없는 자물쇠 같은 일에 맞띠우면 만능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기대의 옷을 입혀 그의 파워에 기대고 싶을 뿐이다. 그러니 한계를 모르고 산다는 바다도 만능은 결코 아닌 듯하다. 자책과 불효로 꺼져들어간 내 심경을 일으켜세우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괴로움에 절은 세포들을 활력으로 불어넣어 주지도 못했다. 시세를 따르는 현시대 근성을 지니고 있어 행복한 자에게는 플러스를 해서 넘치게 채워주지만 시름의 구정물에 빠진 자에게는 만능은 련마했으나 오늘의 내가 그처럼 바라고 믿고 찾아온 바다도 만능은 아닌가 보다. 아름다운 저녁노을에 비친 바다는 황혼으로 물들어가는 구름송이들을 사진 찍는 것에만 전념하고 내가 띄워보낸 인생 숙제에는 아무 답도 보내오지 않았다.     나는, 우리 형제들은 왜 한 마을에 살던 동년배 로년친구들이 모여서 재미있게 지내고 있다는 그 료양원을 가시려 하는 로모의 뜻에 따르지 못할가에 다시 생각의 모를 박아본다. 정말 형제들의 말뜻 따르면 로인네가 료양원에서 만년을 보내는 일이 천륜을 거스르는 막된 짓이 되는 것인가? 그래서 그들은 내내 ‘엄마는 뚱딴지 같은 소리만 하고 그래요?’라는 말로 엄마의 생각길을 막았던 것인가? 그렇다면 엄마가 자기의 뜻을 꺾으시고 새끼들의 고집에 따라 이국타향으로 걸음을 하는 일이 과연 완벽한 것일가? 자식들이 거의 이사를 가서 동네마냥 모여사는 곳이라 하여 비록 때묻은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고향 아닌 고향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 곳에 가셔서는 무난무탈하게 하루하루의 달력장을 넘기실 수 있을가? 아이들이 커가면서 독립생활을 위해 홀로서기를 배울 때처럼 로모가 가시는 길에도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다시 홀로서기의 련습장에 들어가셔야 하는 건가?     조선을 대표하는 저명한 작가 조명의의 속의 한토막 대화가 떠오른다. 이 짧은 구절로 지금 막 사막화되여가는 가슴에 한점이 오아시스라도 만들어보고저 꺼내본다. 작품에서는 자식을 키워 공부시켜놓으니 새 사회를 갈망하는 주의주장에 빠져 남자들의 틈바구니에 끼여 사는 하나 밖에 없는 딸에게 아빠는 이런 말을 한다. “우리가 백정까지 해가면서 뭐할라꼬 니 공부시켰노? 다 니 덕 볼라꼬 안 그랬나?” “아베는 뭐 돼지 키워 덕 보듯이 나를 덕 볼라꼬 키웠능교? 내사 모르겠다, 내 갈란다 구마!”라고 하는 녀혁명가로 성장된 딸 로사의 말. 새로운 제도의 도래를 위해 자신과 가족을 희생하는 한 녀자의 목소리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사회발전을 위해 자신을 바치고 부모님에 대한 효도를 다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 자식들은 지금 혁명을 위해 부모보다 국가를 먼저 택해야 하는 형편 앞에 온 것도 아닌데 무엇을 위해 부모님을 끝까지 보내드리지 못하고 마감인생을 혼자 서게 하는 건가!     번뇌의 물에 절여진 내 마음을 저 바다물에 실어보냈건만 답을 담은 배는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그 배는 어디로 갔는가? 그 배는 어디에 있는가? 그 배가 간 곳은 어디인가? 어두움이 내리자 바다는 검은 표정으로 무섭게 출렁인다. 바다의 끝을 보고저 눈을 멀리로 보내니 하늘과 바다가 붙어버리는 듯하다. 바다 밖은 하늘인데 하늘 밖은 무엇인고?! 아, 내 아픔의 너머에로 고름의 강이 흐르고 있다.                                                                          발표내역: 2019년 3기                                                           2020년 1기-                                                           제 25호, 2021년 10월 
35    [벽소설] 몽매 댓글:  조회:259  추천:0  2023-02-02
   초인종이 왂짜하게 우리더니 친구 영옥이가 불쑥 찾아들었다. 들어서기 바브게 뚱단지같은 소리한다. 점치러 가잔다. 내쪽 반응이 없자 안가겠으면 그만두라는듯 스프링처럼 탱하고 일어선 영옥이.      나도 일전에 할머니 한분이 하루밤새에 신을 업었다는 희기한 소문은 들은적 있다. 환자들의 아픈 곳을 척척 만져주면 병이 다 낫는단다. 그런데 오늘 대하기절에 입당까지 했다는 영옥이에게 끌려갈줄은.      우리가 점쟁이 집 문을 열고 들어설 때는 10여명이나 대기하고 있었다. 눈알을 굴래굴래 굴리는 그들은 마치 암시장에서 가짜표를 도매하는 사람들처럼 모두가 긴장한 표정들이다.       영옥의 첫 감수는 였다. 단번에 손바닥에 장지지듯 짜글짜글한 감각에 잡혔다. 자욱한 김에 습습한 정주 한구석에 놓인 긴 걸상에 걸터앉았다.  안방에서는 아침먹는 수저소리와 함께 띠염띠염 말소리도 섞여나왔다.       말그대로 잡담이였다. 점치는 칸에 들어가니 쉰이 퍽 넘어보이는 녀인이 이를 쑤시고 있었다. 관골이 툭 비여져나온 네모난 얼굴은 좀 퍼랬다. 다섯이 함께 들어갔는데 년세 많은분이 먼저다. 아들 며느리가 만나기만 하면 싸운단다.  늙은 것이 말려도 개방귀만큼도 여기지 않는다며 눈물코물 짠다.     영옥의 차례가 돌아왔다. 생년월일을 말하니  한다.   구름이 끼는 영옥의 얼굴. 다시 펴이는 영옥의 얼굴. 그는 점쟁이의 말을 한마디라도 빠칠새라 부지런히 필을 놀려 기록했다. 사람들은 신의 가르침에 감동된듯 한결같이 50원짜리 인민페를 수지 버리듯 놓고 나간다. 잠간사이에 인민페는 자그마한 언덕을 이루었다.       신수를 보고 온지도 어언 일주일이 지났다. 일루의 희망을 걸고 공바친 영옥이건만 남편의 무직업은 마찬가지여서 그의 가슴에 재만 앉았다. 그래도 점말만 나오면 80%는 맞다며 우겨대는 영옥이.     하루아침 영옥이가 금목걸이에 보석을 반짝이며 찾아들었다. 남편이 T셔츠 상사에서 일확천금했단다. 점쟁이의 말 그른데 없단다. 나도 진심으로 기뻐하였다.     그런데 불과 며칠후에 그의 남편이 도박판에 나들다가 일락천장할줄은.  영옥이는 또 나를 찾아왔다. 첫마디가 신경을 아프게 자극해왔다. 또 점치러 가잔다.            나는 도도히 말하는 영옥의 얼굴에서 몽매라는 두 글자를 읽어보게 되었다.                                                  발표내역: 료녕조선문조 (1996년 10월 19일 )  
34    [수필] 파아란 꿈을 안고 댓글:  조회:243  추천:0  2023-02-02
     현대인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있는 21세기에 임한 오늘, 사람들은 부지런한 개미마냥 삶의 터전을 제나름대로 꾸며가고 있다. 나의 부모님과 우리 칠남매중 오남매는 호미자루에 매달려 살아왔지만 개혁개방덕에 옛 농군의 꾀죄죄함을 벗어던지고 여유작작함을 누려가고 있다 하지만 나만은 변함없이 궁한 때자국 그대로이다. 형제들의 윤택 흐르는 사림에 부러움과 질투를 악물면서도 “나도 한번”하는 식으로 뛰여나가 볼념을 종내 굳히진 못했었다. 직업병이 몸에 스며들어 이미 뽑아버릴수 없는 고약한 “암”이 도사렸기때문이라고 한스러움도 터놓아본다. 허나 그런 상념은 사냥군 만난 재빠른 토끼의 자취마냥 거저 언뜰 할뿐이다.       15년전이다. 내가 애티나는 오또기얼굴로 교육터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정경은 아직도 눈에 삼삼하다. 순박하고 열정적인 선생님들의 모습과 더불어 원시적 북대황의 진펄과 같은 서글픔도 가슴 아프게 안겨왔었다. 46원이 고작인 매달 봉급에 목숨을 걸어야 했다. “교원인가-, 아?” 하며 얕잡아 보는 야릇한 표정에서 사회의 최하층임도 쓰겁게 핥을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고리타분한 지식분자의 울타리에서 몸부림쳐볼 역사상을 내미는 사람은 중대가리우의 머리칼과도 같았다. 나도 마찬가지 였다. 어쩌다 연구생시험에 걸린 젊은이가 머리를 추켜들고 가슴을 내밀었다가도 “NO”하는 신호앞에서 당금 말 잘 듣는 애숭이가 되여 다시금 백묵으로 생활의 구석구석을 본장하여 갔었다.         파란 수박을 짜개보면 빠알간 속살이 드러난다. 한가지 무형신념에 마음을 전당잡히운 교원들이야말로 수박의 됨됨이를 숭상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듯도 싶다. 그들은 키돋움하고 있는 미래 주인에게 매일같이 자신의 진한 영양즙을 뽑아 고루고루 나누어주곤 휘청거리는 걸음세속에 넘쳐오는 장한 감과 생의 봉우리에 서있는 청춘감에 취하여 산다. 지식의 대분가에 서성거리고 있는 철부지들에게 밝음을 가져다주는데서 삶의 원동력을 얻고 차오르는 신생감속에 래일을 보며 산다.         등잔불은 작아도 어둠을 쫓는다. 그것은 심지가 곧고 수요되는 시각엔 서슴없이 배속기름을 발산하는 인격적고상함을 갖우었기 때문이 아닐가! 물론 찰나적유혹에 깜똘 아둔해지는 때도 없지 않다. 시들시들한 생활의 초목에 무성한 잎을 피울가 하여 사막의 금광 찾아 아프리카에 출동했다가 귀로를 잃은이도, 자가용몰고 삶의 다른 한 봉우리를 톺고 있을 때 어찌하여 무연한 흑토길에 진땀만 뿌리며 하냥 심어야 하고 가꾸기만 해야 하는가고 원망하는이도, 외국의 달만 쳐다보며 올리뛰고 내리뛰는 사람이 부쩍 늘고있을 때에도 배움에 빠진 아기의 기진한 모습에서만 자신의 희로애락을 찾아보아야 하는가오 짜증부리는이도, 왜 나에게도 갓난아기 남의집 문간에 던져버릴수 있는 랭혹함과 지독함이 없는가고 부르짖는이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나도 간혹 밀물마냥 갈마드는 이런 생각때문에 자아가 보이지 않는 천길 자비의 심연속에 굴러떨어져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허나 이러루한 회색자비는 밥지을때의 뜬김마냥 리성의 문짬을 통해 귀신마냥 날아가 버리고 심중에 똬리를 틀고 앉는것이란 두눈 또렷해 설치는 야들야들한 초목들에 대한 미련과 애착과 신성불가침의 책임감뿐.        해는 빠져도 서쪽하늘을 물들이고 새날아침의 찬란함을 기약하는 법이다. 나는 오늘까지도 뭇사람들의 권고를 물리치고 교원이란 직업에 몸을 적셔왔음을 다행으로 안다. 한그루의 나무를 가꾸어 놓으면 그 그늘밑에 앉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를 통해 만들어지는 무색한 오늘이 래일엔 노을이 되여 해빛이 되여 인민교사란 이름에 다이아몬드의 광채를 입혀주지 않을까!...     나는 이런 내일이라는 희망에 물든 파아란 꿈을 하얀 삶의 천에다 한뜸한뜸 수놓아가며 산다.                                         발표내역 (2001년 1월 5일 압록강 6면  
33    [수필] 치사랑 댓글:  조회:261  추천:0  2023-02-02
    내가 버스에 올라 내몽골 커얼치초원에 있는 친정을 향하고 있을 땐 4월의 어느 해솟는 아침이였다. 밤새 려로에 부대낀 몸이라 삶은 시래기가 되었건만 도무지 눈을 붙일수가 없었다. 초원의 칼칼한 아침바람, 동년의 빨간 꿈을 책가방에 챙겨담고 오가던 흙먼지길, 바람에 먹히울듯 길섶에서 몸부림치는 포플라, 365일 세면을 안한 것 같은 초원 사람들의 먼지 쓴 검붉은 얼굴들......  이 익숙한 고향경물도 근심 무지가 된 나의 심정을 환하게 가셔내지는 못했다. 집과 가까와 갈수록 가슴은 태산이라도 품은듯 고통속으로 꺼져들어갔다.         아무리 앞뒤를 재여보아도 모를 일이다. 아들 셋을 둔 어머니가 몸둘 곳 없어 가슴쳐야 하다니,, 현성에 있는 두 오빠는 단칸방에서 사는 송구한 형편, 그래서인지 어머님은 사흘을 못 지나 뱅소니친다 젊은것들만 불편한가, 나도 불편하지,   초가라도 너른 제집ㅇ; 천하제일이란다. 그러면 효성이 지극한 오빠네는 열흘이 멀다하게 보약꾸러미를 받쳐들고 어머니 문안가군 한다. (둘째는 자식이 아닌가요 뭐?)하며 시어머니 시중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둘째며느리, 그 마음만은 갸륵하다면 손군을 맡아봐주는 어머니.        기실 어머니는 좀 딴속이 있었다. 막내아들옆에서 여생을 보낼 생각을 벌써부커 굳혀왔었다. 셋째오빠도 땅변을 내서라도 3간집 지어놓고 어머니를 모실수 있는 조건이 되거던 결혼하겠노라 옹근 2년반을 끌었다. 그러다가 출국바람에 밑천 다 사기당하고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어머니의 믿음의 전당도 허물어졌다.없던 근심이 이 구석 저구석에서 살아나왔다. 무엇보다도 홀애비가 우후죽순마냥 늘어나는 농촌 현실에서 아들의 일생을 망칠가 년려되였다. 혼자 오두막귀신이 돼야 할 가긍한 신세지만 생무쇠쪽같은 마음먹고 막내의 등을 밀어줬다. 딴 살림을 내줬으니 부모의 임무는 완성한 셈.        어깨가 가벼워져야 할 어머니지만 마음속의 귀한 것을 통채로 들어낸듯 텅빈 허공속에서 백발이 되여간다. 어찌보면 랭혹한 사회요, 무능한 이간인것 같다. 누더기를 걸쳐도, 조밥에 된장을 먹으면서도 삼, 사대가 동고동락하던 지나간 그 시절이 그립다.         다행히도 어머니는 개명하신 분이였다 하면서 서글픈 웃음을 짓는다.        어머니는 아들들이 하나하나 자기곁을 떠나갈 때 진정 무엇을 생각해 보았을까! 동정의 눈물은 함께 흘려도 구원의 출로는 펴줄수 없는 무기력한 자식들.     외   기러기가 된 어머니를 뒤에 두고 모질게 돌아온지도 어언 한달반. 허나 내 가슴속엔 그 수심이 고인 물이 되여 곪아가고있다.        걸음이 빨라지는 시대의 맥박, 퍼서널(微型)로 질주하는 세상살이의 새 이미지를 마음으로 받아들일것을 강요하는 사회상이 미워난다. 자식의 사랑을 피가 뚝뚝 떨어지게 썩둑 베여주고 돌아서는 어머니의 마음속 배이에다 신생과 부활의 원천을 부여해 주는 만능적인 로봇은 없을까!?   아, 어머니, 고독한 우리 어머니!                               발표내역:  료녕조선문보 (1996년 5월 25일 제 4면)
32    [수필] 보라색 꽃너울 댓글:  조회:204  추천:0  2023-02-02
      다섯 송이의 도라지꽃이 창턱 위 사이다병에 새로이 뿌리를 내리고 새 주인의 진정을 떠보려는듯 나를 지켜보고 있다. 그러다가 학문의 문만 열리고 대화의 창은 닫힌 서책더미 속의 고독함에 묻힌 이내 삶을 가엾게 여겼는지 다시 연한 보라색 미소를 보내준다. 한마디 말도 없이 담담한 시선에 스민 그 다감함에 나는 흠씬 매료되어 들어갔다.         삶터의 원전을 떠났건만 잠시 여행 떠난 여행자처럼 씩씩해 보이는 그 자태 때문인지 초라한 꽃병에서 신기한 매력이 풍겨온다. 이사를 했건만 자리 옮김이나 생존의 조건부 따위는 별로 트집하지도 않는듯 하다. 이것은 생의 본능을 지키고자 가능한 허리펴고 서있는 장한 그 모습이 전해주는 참 느낌이다. 심신이 보내오는 휴식의 강권을 받고 모처럼 시간을 내여 도라지꽃과의 만남을 가진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제발로 찾아왔다. 한복 옷고름 마냥 단아한 몸매로 나에게 보내오는 도라지의 정기는 내 마음의 빈 데에  활기를 채워주기에 족하고 넘친다.        나는 입구가 비좁은 그 사이다병이 우아한 도라지꽃과는 너무도 짝이 기우는 것 같아 다시 그에게 좀 넓고 편안한 자리가 될 수 있는 유리컵에 옮겨 꽂아주었다. 다섯 송이 중 가장 화려하게 웃고 있는 두 송이의 꽃이 내 애틋한 사랑의 시선에다  도장을 찍었다. 자세히 보니 그 두 송이는 지극히 짧은 시간에 두 번씩이나 원치 않는 이동을 당했건만 원망의 내색 조금 없이 스스로에게 마련된 현재 삶에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도라지꽃이 고유한 아련한 미감은 또한 흘러드는 해빛을 받아 사뭇 황홀한 자세를 자랑하였다. 그는 거울 속에 비춰진 자신의 미모에 도취된 미인의 얼굴인양 긍지감에 폭 취한듯 하다. 만물의 생리가 다 그러하듯 언젠가는 해빛의 밥으로 아침이슬 되는 날이 오련만, 현재만이라도 꽃답게 피여 나만의 삶을 살겠다는 그의 당당함에 무수한 보라빛 무지개가 반짝인다. 이처럼 아름다운 도라지꽃의 향은 어떠할까싶어 코를 대어 보았으나 전혀 무향이다. 아니, 무향이라기보다 무향으로 내면적 자아을 지키고자 하는 그의 심적 소양의 한 단편이겠지!       지금 막 피고 싶으나 어쩐지 주인이 낯설어 피기를 망설이는 다른 두 송이의 도라지가 다시 내 시선을 끌어간다. 생존의 옛 고향을 강제 하직하고 갑작스런 이주와 마주서게 된 꽃의 마음은 고민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나 보다. 좀전까지만 해도 아버지 산과 어머니 숲으로 끝간 데 없는 그 넓은 품에 안겨 해빛 받아 웃기만 하면 내 인생 부족한것 없었는데, 이 컴퓨터 내음만 진동하는 이 곳에 왜 내가 밸도 없이 히물거려야 한단 말인가 하는 원망찬 질문소리를 가슴으로 들었다. 그렇겠지, 눈에 좋으면 좌우를 살펴보지도 않고 꺾어가버리는 문명인의 손에 넘어가 자리까지 옮겼으니 어찌 놀라지 않았으랴. 지금 그에게는 그 놀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 시간적 여백이 필요 할 것이다. 아마도 그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변화라는 시대의 거인이  달갑지 않은가보다. 그러기에 한참이 지난 후에도 사색에만 잠겨 있을 뿐, 피기를 주저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는 두 송이 자매를 보니 이제 막 찾아온 삶의 변화를 오로지 평온함밖에 모르던 옛 삶에 강요된 좌절이거나 죄인취급을 할가봐 은근히 두렵다. 그러나 아닐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지 살아있는 동안은 세상에다 예쁨을 자랑하는 것이 자기네 가족의 신조임을 그가 어찌 모르랴! 옆 친구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때맞춰 피어 보려  잠시 엉거주춤하는 그 모습에서 나는 또 도라지꽃의 진한 매력을 읽어본다. 어쩌면 심사숙고하는 그의 참한 심성은 성숙된 인간의 심장을 닮았을 지도 모르지. 이미 생기를 꺽어버린 마지막 한 송이의 도라지꽃에로  눈길을 돌렸다.  그는 바뀌어진 터전에서 거듭 태여날수 있다는데 대해선 한 눈도 팔지 않고 상실의  아픔에 절어있었다. 어깨를 맥없이 떨구고 고개를 90도로 꺾어버리고 서있다. 그 울상 앞에 서니 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젖어들어오던 기쁨조각들은 연기처럼 간데가 없다. 그야말로 사랑의 물을 한없이 베풀어주겠다는 서약을 맺는다 해도 재생과는 담을 쌓고자 굳힌 그 한마음 단정코 돌려 세울순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원상복귀를 애걸하거나 슬픔의 눈물같은건 보여주지도 않았다.           잠시  마음자락에 연민의 정이 매달린다. 피어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두었을 걸, 그러면 지금도 자연의 품에서 웃고 떠들며 세상사는 축복을 즐길지도 모를걸…       아무튼 그 자세를 보아하니 새 주인의 묻지마 행위에 큰 충격을 먹은 나머지 삶의 의지를 싹 접어버렸나 보다. 새 것도 변화도 그에겐 꼬물만한 인기도 없는듯 하다. 그의 폴싹해진 모습은 분명 만사가 귀찮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로 보아 그에게  자생자멸의 자연밖에 두 번째 길은 없을 것은 자명하다. 그의 그러한 모습은 나로 하여금 상심한 나머지 사상의 지킴이를 찾아가도록 밀어주었다.       원전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살았을 그의 본 모습이 무엇보다 궁금해진다. 현란하지는 못 할, 그렇다고 생생하지도 않을 그러한 꽃으로 산 것은 아니였는지, 다만 꽃나무에만 매달려 꽃인체 사는 가련상으로 살지는 않았는지… 나름대로의 짐작이 마음에 머문다. 거울이 크다해도 스스로의 진상을 비춰보지 못할 때는 원상태 그대로를 고집하기 마련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고집의 집에서 이래도 한평생 저래도 한평생인데 힘들여 이리저리 뜯어고칠 필요가 무언가 하며 팔자타령을 부르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피여있는 꽃, 피려는 꽃, 그리고 쓰러져버린 꽃!  인간은 그 어느 누구든 이러한 꽃송이의 피조물 일지도 모른다. 인간도 꽃이라 함이다. 토양과 종자가 다를 뿐. 삶의 들판에 피여있는 꽃이란 종의미는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이고 당신은 또 누구인가? 이러한 당혹스러움 때문에 스스로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어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아시다싶이 인간에서 정답이란 것이 없어진지도 퍼그나 오래다. 분명한 것은 인생은 항상 공사 중에 있다는 것이다.       사실 심산 속에만 피는줄 알았던 도라지꽃이 시가지의 포장도로 길가에 피여 산다는 것은 눈으로 보지 않고는 믿음 불능이다. 그래서 피어있는 도라지꽃을 가리키며 주인장님께서 재배하신건가고그 가든의 주인님께 물어보는데까지 갔다. 재배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니 지금 내 침실의 꽃병 속에 자리잡은 이 다섯 송이 도라지꽃은 분명 꽃씨들이 가을 여행을 택해 자율적으로 삶터를 옮기는 행렬을 따랐다는 증언이다. 산이 아닌 주택가나 길가에서도 장미꽃이나 월계화 못지 않게 한 송이의 꽃으로 필 수 있다는 자신의 꿈을 생에다 옮기는 마당에 나선 것이다. 그들은 그 꿈을 펴보기까지 수없이 많은 세월의 오리들을 휘여 잡았을 것이다. 새로운 자신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얻었는지 가끔 고민도 하였을 것이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어지기 마련이고, 얻어지는 것이 있으면 잘려나감이 있게 됨은 자연이 준 평행의 이치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도라지꽃은 늘 이러한 자연의 심성에 미소로 대할 수 있는 마음 준비가 되여 사는 삶에 익숙해 있었다고 해야 하겠지!  그래서 그들은 내 꽃병에로 이사한 후에도 핸재 삶에 후회 않고 재량껏 삶을 폈을 것이다. 인간이 그들의 우아함에 반해 지성을 아끼지 않는 이유를 알만도 하다.       아랫턱에다 손을 고이고 고개를 숙이면 인간도 한 송이 꽃과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찾아온다. 그는 마음 심처에 부활의 힘을 품고 넘치는 사랑수로 스스로를 가꾸어 만드는 리성과 정의 꽃나무로 산다. 그 또한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유리컵에 꽂힌 도라지 꽃마냥 하루에 10년사를 대서특필할 수 있는 영혼의 꽃나무로 살 수도 있다. 그래서 인간을 영장이라고 이름하겠지만, 인간이 삶을 가꾸어가는 길에서  도라지꽃의 그 웰빙 단백소는 필요이상으로 필요하다. 잔잔히 흐르는 물 위에다 돌맹이를 하나 뿌려 던져 튕겨나오는 물방울에 옷을 적셔보고, 일찍 없었던 큰 소리로 자신을 찾아 보았을 때 우리네 삶에는 쪽문이 아닌 대문이 열릴 것이다. 그리고 그 대문으로 아름다운 차량이 드나들 수도 있고, 대문가에는 소박한 코스모스를 심어둘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삶의 정원은 한결 아담하게 꾸며질 수도 있을 것이다.                                                         발표내역: (2007년 6월)      
31    [수필] 애끓는 기다림 댓글:  조회:217  추천:0  2023-02-02
       사람은 기다려봐야 신경을 야금야금 씹어들어가 로쇠를 불러오는듯한 지루함의그 진저리를 느껴볼것이다.  오늘 필대를 거머쥐고 곰곰히 지나온 나날의 뒤엉킨 실마리를 찾아 풀어나가노라니 나의 생활엔 기다림의그림자가 도사리고 앉아 소리없이 내 인생의 방향을 바로잡아주며 지휘봉을 휘둘러왔음을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      한것은 나의 기다림은 봄프마냥 무궁무진한 활력과 희망의 생생함을 마음속깊이에 가득 불어넣어주는 파아란 존재였기에. 나의 기다림은 엄동설하을 모르는 박달같이 땡땡 굳은것. 그것은 시체녀성들이 개도 안먹는 금전에 대한 극적인 점유옥에서 오는 비극적 기다림도 아니요, 핸드폰 들고 자가용 몰고 으시대고 다니는 주머니 불룩한 남편에 대한 의심에서 생기는 근심의 기다림도 아닌것. 그것은 속세녀성들의 펑 구멍 뚫어진 밑창없는 허영심을 채워주기에는 족한 호화로운 별장도 아니다.         나의 기다림은 쓴것의 외의를 입고 단맛의 별미를 한껏 꿈꾸어보는 싱싱한 이미지. 가문 땅에 비내리기를 축복하며 어깨짐으로 억세게 관개하는 순박한 농부의 보람찬 로동의 기다림, 엿을 꼬는 어머니의 충실한 조수가 되여 아궁이에 빨간 불을 지폊며 지루함의 괴로움을 달콤하게 핥아보는 꿈속의 기다림이다. 나의 기다림은 무색무형이지만 항시 찬연한 순간순간으로 세상끝까지 수놓아가려는 연록색치마에 그윽하게 새겨진 새파란 세계. 나는 이 기다림속에 파묻혀 숨쉬면서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내 꿈의 무딘 날을 바지런히 갈아가고 있다. 빠개놓고 보면 양파처럼 깨끗하나 수박속처럼 달콤하지는 못한것. 나의 기다림의 프리미엄(보수)은 다만 땀과 분투의 쓴맛속에서 탈나적인 행복의 세계를 담뿍 누려보려는 아, 나의 작품이 문단에 데뷔하는 그 작은것이련만......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정성찬 가꿈은 알맹이 수확을 기약하는 법. 지금도 나는 이 말의 무게를 믿고 내꿈의 무딘 날을 힘껏 갈며 마음속 심처에 추구와 분투의 씨앗을 끊임없이 심어가고 있다. 코구멍한 단칸방에서 뜬김과 파리와 한식구가 되여, 성에와 친구간이 되여가지고도 그 기다림의 웨침소리 따라 한발이라도 더 앞을 짚어보겠노라 온몸의 힘 다 빼고 벅찬 웃음을 날리던 내 모습이 이제도 새롭게 안겨온다.        정녕 기다림은 나에게 한점의 따뜻한 불꽃을 반짝여주는 거대한 삶의 등대였어라. 이 힘은 내 마음속에 항시 꺼지지 않는 용광로를 마련해주었고 로케트의 위력을 은근히 심어주었다. 아, 내 인생의 행정은 이렇게 기다림속에서 꽃피고 열매맺어나가는것. 설사 풍성한 결실을 못따온데도 나는 한이 없겠다.        하는 참소도 나는 나를 떠밀어주는 뒤힘으로 듣어 마음 한구석에 간직하고 싶다. 사람마다의 추구는 인체의 세포마냥 다양한 것, 중이 머리기른데도 내 꿈의 날개인 마음속 기다림에는 곰팡이 한점 끼지 못하게 가꿀것이다. 나는 이 기다림의 부름속에서 생의 교향곡을 흔상하며 인간숭ㅂ의 페지페지를 내나름대로 엮어나가련다. 내 필끝에 푸른날이 설 그날을 내다보며 차곡차곡 알차게.        누군가 한 명언이 생각난다. 아직은 태어나지 못한 아이가 나를 숨못쉬게 발질한더라도 나는 그 아픔을 꾹 누르고 변함없이 내 꿈의 훌륭한 매니저가 되어 그의 출생을 위해 영양분을 한껏 빨아들이며 만단의 준비를 해두고 기다릴것이다. 이부자리도, 꼬까옷도, 오또기도 마련해두고...                               이 글은 본인의 수필로서의 처녀작임을 밝힌다.                                     발표내역: (1992. 9.12)
30    [수필] 초여드레날 댓글:  조회:211  추천:0  2023-01-29
                             초여드레날입니다. 은행에 가서 처리할 일이 생겨서 시내로 나갔습니다. 설 연휴를 마치고 공식적 출근날이 정월 초이레날인 곳도 많아 오늘은 설전의 원상이 복귀되어 있는 듯했습니다. 길거리에는 예나 다름없이 오가는 차량들이 답답할 정도로 도로의 곳곳을 누비질하고 있었고 눈에 익숙한 울긋불긋한 인파들 또한 밀려가고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붉은 중국색이 유난히 눈길을 끕니다. 붉은 색으로 만들어 놓은 놀이터나 길 양옆나무들에 대롱대롱 빨강초롱, 그리고 중국결(中国结)이 길거리에 서 있는 모든 것들에 매달려서 한창 아침의 바람 그네를 타고 있었습니다. 관공서들의 정문에도 도로변의 전선대에도 달리는 차량들에도......  행인들의 시야를 단번에 붉은 색으로 길들여 놓기엔 참으로 충분한 중국홍 붉은색의 바다를 이루었습니다. 이같은 새해 분위기는 정월 대보름까지 이어지는 것이 우리 고장의 인지상사로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들은 우리 삶의 여유로움에 대한 어울리는 자랑같기도 하고 또 그 여유로움을 자랑하는데만 취한 귀여운 망발같기도 합니다. 그것이 자랑이든 망발이든 우리의 몸과 마음은 이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져서 행복한 생활의 한 구석이 되었습니다.         아침 일찍 서두를때는 좀 귀찮았는데 은행에 도착하고 보니 너무도 편했습니다. 은행 로비에는 대기하는 사람이 없는데다가 대 여섯 명의 은행 종업원이 일을 보고 있어 입장하자마자 하고자 하는 일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순번 대기표를 뽑아 들고 한없이 기다려야 하는 사이에 인정사정 모르고 쉬임없이 달려가는 아까운 시간에 아무리 바빠도 애간장을 태우면서 숨을 안으로 모으고 체하고 앉아 차분히 기다려야 했던 때를 생각하면 기분은 그저 좋기만 했습니다. 하나를 주면 두개를 바란다고 나는 은행 서비스가 내내 이러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램이 생겼습니다. 최소한 손님을 창구앞에 모셔 놓고 자기네끼리 한담을 주고 받는 일들이 보이지 않아서 살맛이 납니다.         나는 은행과는 별로 친하게 지내지 못하는 월급쟁이입니다. 샐러리맨은 정해진 운명의 관계로 세상이 조금만 얼굴색을 달리 해도 조건없이 따라하게 되어 있는 세상 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요즘 들어 몇 번씩으나 껑충껑충 뛰어오른 대출금리가 또다 시 인상된다는 소식을 확인하러 왔습니다. 걱정담긴 마음을 체면으로 꽉 눌러놓고 은행원이 출력해 주는 확실한 명세표를 받아서 보니 이번 한 해에도 허리띠 또한 졸라매지 않고도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홍치마를 입은것처럼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생명으로 지구에서 숨쉬는 이를 무작정 죽으라는 법은 없다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좋은 일이 이렇게 줄을 서기 시작한듯합니다.        나는 날듯한 기분으로 귀가길에 올랐습니다. 도로에 차량이 많긴 해도 그나마 밀리지 않아 불편없이 주행하는데 갑자기 차체가 진동하는것 같더니 연이어 터지는 ‘대포폭죽소리’가 주위만방을 흔들었습니다. 폭죽의 굉음과 함께 세상에 뛰쳐나온 연기의 뭉치는 뭉게뭉게 하늘을 진회색으로 뒤덮기 시작했고 주행 중인 모든 차량이 겹겹으로 휘싸여 버렸습니다. 그런데도 대포를 닮은 폭죽의 터침 소리는 쉬임이 없었습니다.  길바닥은 터지는 아픔으로 순식간에 온 몸이 산산 쪼각으로 찢어진 대형 폭죽들의 시체나부랭이들이 금방 두툼하니 덮혔버렸습니다.        그 폭죽의 ‘연회석’을 뛰쳐나와 매캐한 연기를 헤가르고 간신히 신호등 가까이에까지 달렸습니다. 차 안에는 이미 폭죽 특유의 내음이 진동을 하였습니다. 신호등을 지나 거의 50미터쯤 갔을 때 전방에선 또 열배 백배 더한 ‘대포폭죽’의 ‘쿵, 후훙웅 따당’ 하는 소리가 귀청을 찢었습니다. 주위는 삽시에 다시 연무의 왕국 속으로 승승장구해 들어갔습니다. 폭죽의 잔치에 제물이 된 차량들이 비상등을 깜빡깜빡하며  엉금엉금 간신히 서행했습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거나 짙은 안개가 뭉쳐내리거나 솜덩이 눈이 펑펑 내릴때에 차량들이 굼뱅이 걸음을 해도 청정한 공기가 있어서 느림이 주는 지겨움을 참아낼 수 있지만, 일월창천 대낮에 겪는 폭죽의 소리고문과 연무 세례 앞에서는 참을성이 무너져내려 할말마저 잊어버렸습니다.          빨간 폭죽의 함성이 부동산 업체나 은행이나 백화점들에는 새해의 복을 청해오는 소리로만 듣겼으면 좋겠는데 느낌의 진실은 그것이 아니였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꼬맹이초처럼 생긴 작은 폭죽을 흙속에 세워 놓고 심지에 불을 달아놓고 즐겁게 멀리로 뛰어 도망하다 나면 ‘꽁’하고 터지는 그 꼬맹이 폭죽이 원조였다면, 현재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있는 것은 분명 원조가 유전자대변형을 이루어서 독을 품은 새 모습으로 태어난 듯합니다. 어렸을때 스릴 넘치는 재미로 ‘꽁’ 호하하 하며 재미로 즐기던 폭죽의 심장은 조금도 닮지 않았습니다. 폭죽소리가 단순하여 따뜻한 자극에 담긴 축복소리로만 알려졌던 그때는 폭죽 터치는데 대해 별 거부감이 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요즘에 터치는 폭죽은 둔갑과 만갑을 한번에 하여 폼을 내는 대용물의 하나로 전락이 된듯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그믐의 밤에 터치는 폭죽소리는 축복이나 귀신을 쫓는 것이 아니라 돈태우기의 내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세계를 깡그리 허물어버리려 작심을 하고 덮쳐든 악마들의 연회인것 같기도 합니다.        폭죽과 축복은 원래 한식구였지만 축복의 원초적 의미는 이제 폭죽의 집에서 분가를 한듯합니다. 그야말로 새 기분을 만들어 새 한해를 만들어보겠다는 본연의 의미가 억만배 과장이 되어 폭죽소리따라 날아가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러니 한것은 집집마다 폭죽 터치기를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일과 소리를 좋아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다가 폭죽의 세례가 끝난 다음 매캐한 냄새와 세상 천지에 나 뒹구는 폭죽의 배설물 또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오물일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매년 이맘때가 되면 점점 더 극성을 떨고 있습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폭죽의 전쟁 마당을 겨우 뚫고 집에 들어왔습니다. 집안에도 주변 폭죽들의 침습을 당해 후각이 힘들어졌습니다. 이러한 마음의 느낌을 기록하고자 지금 나는 컴앞에 앉았습니다. 내가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시간이 오전 10시 40분을 가리키고 있는데도 먼 거리에서 폭죽터지는 소리가 의연히 은은하게 들려옵니다.        폭죽은 경사와 축복과 사악한 귀신을 쫓는다는 의미들의 베일에 쌓여서 천대 만대를 누려갈 기세로 아직도 우리들 삶의 곁에서 잘살고 있습니다. 그의 소리와 냄새는 이제 우리 삶에다 우리가 바라지 않는 딴 의미를 남기고 있는듯합니다. 물론 인간이 폭죽을 만들때의 초심은 복을 바라고 평안을 바라고 행운을 기원하는 것이였겠지만 지금은 독을 품은 요사한 물건의 모습도 갖추게 되었습니다.        福는 얼핏보기에 한 글자에 불과하지만 실은 아닙니다. 그에게도 자신이 령혼세계가 있을겁니다. 그 역시 심장이 있고 예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하는 정도여부를 봐서 축복을 주거나 화를 주거나를 정하는 이성적 존재라 하겠습니다. 연기로 숨을 못 쉬게 하고 소리로 우주를 뒤집는 안하무인의 주인들에게 과연 복이 찾아와서 문을 두드릴수 있을까가 우려됩니다. 우리는 청산과 록수야말로 금산이고 은산임을 잘 압니다. 생태계의 자제력을 파괴되는 일에 기대는 것은 삶의 땅에 하자를 만들어가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이제 그의 소리와 연기와 배설물들을 다 쓸어 담아놓고 차분히 개량하여 새 문화의 새날개를 고양해야 할 세월이 문앞까지 도래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행운에 달아주는 꼬리표를 바꿔야 할 때입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2023년 1월 29일 (정월 초여드레) 씀
29    [수필] 자기를 찾아가는 길 댓글:  조회:229  추천:0  2023-01-27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살다가 사람으로 죽는 과정에 울음은 인간 내면의 가ㅏㅇ 진실된 정감을 대리한다. 젖먹이 때가 그런가 하면 짜개바지 소시적에도 조금만 본인 마음에 맞지 않다 싶으면 다짜고짜 울음으로 마음표정을 보인다. 말귀를 알아듣는 때가 되여도 상황 대처력의 기본은 역시 울음이 우선이다.      그렇다고 매사가 꼬일 때마다 울 수 없는지라 사람은 또 그것을 이겨내는 새 대륙을 개척하게 된다. 그의 이름은 참을성이다. 소리도 안 들리고 보이지도 않는 가슴으로만 울음을 하는 참을성이다. 울음이 마음을 후줄근하게 절이는 짠물을 밖으로 내보낼 수 있게 하는 최고의 장치라면 참을성은 인생의 길 우에 지지 않는 꽃을 가능하게 해주는 만능의 신약이라 하겠다.        그러나 참을 줄 아는 법을 배워낸다는 것은 참으로 조련찮은 일이다.  자라는 길 전부에 수없이 많은 극복의 자국을 찍어서야 참아내는 법을 깨닫게 된다. 거의다가 그렇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나는 어릴 때 울보로 동네방네에서 유명했다고 한다. 심지어 방바닥에 내려놓기만 하면 자지러지게 울어제껴서 잘 때까지도 업고 자야 했다고 내 두 언니는 지금도 말해준다. 엄마가 일로 바빠서 나는 두 언니의 잔등에서 먹고 자면서 자랐다. 내가 죄꼬만 입을 삐죽거리며 울면 언니가 엄마한테 혼이 날가봐서 “울지 마. 개눈깔사탕 사줄게 응?”하고 따뜻하게 달랜다. 그러면 나는 울으이 꽉 찼던 작은 빙산을 탁 깨버리고는 해시시 웃었단다. 사탕을 못 얻어먹어 훌쩍거리다가도 “뒷산 호랑이 내려와 잡아가면 어쩔라구”하면 금방 비겁쟁이가 되어 량팔소매로 눈물코물을 찍어내면서 소리를 꺼버리곤 했단다. 어떤 때는 엉덩이 한대 얻어맞고 앙앙대다가도 “그만 뚝 그치지 못해?”하는 엄마같은 큰 언니의 회초리 하나면 울음을 홀라당 씹어먹었단다.      인생토막이 끊김없이 질긴 것은 세월에 녹아있는 울음과 참음의 기억들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 기억들은 삶의 만가지 맛을 먹고 자란 엿기름에 삭아져 아름아운 추억으로 거듭났다. 자랑스럽게 꺼내보는 보물이 되었다. 가슴앓이의 눅거리들이 이제 몇십년을 발효하여 심신의 량약인 참을성의 밑거름이 되고 만사에 여유로울 수 있는 너그러운 성품이 되였다는 것에 오늘도 고맙고 놀랍다.       참을성이란 자아를 이기기 위한 련습이다. 어릴 때부터 그 토대를 단단하게 쌓아온 덕을 취학해서부터 톡톡히 봐 온 것이다. 취학 후에는 옆집 아이처럼 엄마 젖 무덤을 파고 응석을 부리는 늦둥이질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코풀래기 친구들이 발차기를 놀 떄 엄마의 작은 손이 되어 벌떡가마솥에 돼지죽을 끓이는 조수가 되였다. 숙제를 완성 못한 날에 선생님표 회초리에 손바닥을 몇개씩 맞을 때가 꽤 있었지만 나오는 울음을 그대로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다.  깨물고 씹어서 마음의 자루에다 참을성으로 챙겨담았다. 손바닥 몇대 맞았다고 선생님 가슴에 불 지르는 일도 아예 생각 못해봤다.     지금에 와서 삶의 농짝들을 들춰보면 울음이 아니라 웃음이 터져나온다. “머절싸해서 그랬겠지 뭐’하고 꼬집는 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멍청함 속에는 울음을 웃음으로 바꿔내는 신령함이 산다는 것을 나는 내 경험으로 안다. 물론 그 선생님이 미워서 별명을 붙여놓고 키득거리는 일을 벌이긴 했었지만 손바닥을 맞는 순간만 빼고는 선생님 훈시 덕분에 분발하고 노력하며 자랄 수 있었다는 감사만 차곡차곡 곱게 남아있다. 그래서 선생님께 쫓겨 학교 뒤 방공호 안에 엎드려 숙제를 쓰는 한이 있더라도 집에 가서 어머님께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하지 않는 작은 어른이 일직 되여버렸다. 그러다가 마흔 고개를 넘기고 늦깎이로 공부 마당에 나서서 스무살 아래의 청춘들과 같이 숨쉬며 배워가는 과정에서도 이 참을성은 커튼이 되여 창피함을 막아주고 당당함을 주었다.      인간은 늘 이렇게 마음의 힘줄이 끊어지는 크고작은 좌절의 아픔들을 이겨내면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모든 좌절에는 안위의 사탕이 필요하다고들 하지만 일단 사탕을 다 삼키고 나면 가벼워졌던  아픔이 여전히 심기를 꼬집어 피나게 하는건 마찬가지다. 림시 해결은 마음의 심처까지 상해한 병뿌리를 뽑아내는 일을 대신해주지 못한다. 그러니 깨끗하고 단아했던 마으의 밭에 잡초가 우거지고 해충이 우글거릴 때는 그 밭을 삶에서 지워버리는 일부터 해야 한다. 그리고 원래의 자기를 찾아가는 길에 나서서 정신력 기반의 재건축에 두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나에게 심장이 가루가 되여 대성으로 통곡할 천지간의 최고 난사가 생겼다. 한주의 컴퓨터 작업이 순식간에 날아가버린것이다. 심장의 박동소리 대신에 억장이 무너지는 아우성 소리가 숨통을 꽉 막아버렸고 명치 끝은 빳빳하게 일어서서 가슴벽을 찔러댄다. 나오는 한숨에 령혼의 불이 꺼지려 한다. 탁자 우의 모든 책을 확 쓸어버리거나 맨주먹으로 유리를 치는 행위를 답습하고 싶은 충동이 불끈거린다. 리성이 백기를 내드니 참을성도 선자리에서 폴싹해버린 것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려 하나 용서로 포용하고 갈 길은 이미 치솟는 자기 질타에 막혀있는 상 싶다.     돌멩이도 가루낼 듯한 한숨 한탄을 수없이 토헤냈다. 이른 아침이란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큰소리를 연거퍼 질러도 보았다. 소리를 칠 때마다 눈물은 쏟아지려 뽐프질을 하고 괴로움은 백만배로 퍼져나간다. 쑥대밭이 되여버린 마음의 지옥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 선자리에서 뺑뺑이만 돌린다. 실수를 건지기 위한 억가지 회한도 주저앉은 나를 일으켜 세울 기적의 로켓은 끝내 띄워주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까맣게 재가 되고 있을 때 조깅 나갔던 남편이 들어왔다. 마무 말 없이 실내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하였다. 평소보다 일찍 깬 아들녀석도 나의 캄캄해진 표정을 한눈에 알아보고 침대에 누운채 꼼짝 안 했다. 이미 폭발하기 시작한 이 화산을 가라앉히는 그들만의 노하우였을것이다. 정말이지, 그때 누가 한마디 말만 걸어왔더래도 난 절망의 도화선을 타고 굉음으 내며 거침없이 미쳤을 것이다.        위기를 건질 수 있는  관건 한걸음은 리성이다. 천길벼랑으로 곤두박질쳐버린 리성조각들을 빨랑 찾아다 하나하나 붙여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번쩍하고 두 눈에 보인다. 먼저 속깊이의 숨을 내쉬면서 경악에 팽팽해진 심장의 바람을 밖으로 쏟아냈다. 그리고는 동그라미를 크게 치고 그속에다 천만배 심각한 경우에 맞띠운 물들을 그려넣어본다. 그 상황에 비해 희망의 팥고물이 묻어있는 현재의 나를 서서히 발견하기 시작한다....         일락천장이 일약만장으로 일변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통채로 죽어버린 듯 막형ㅆ던 마음의 창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공기가 흘러들고 ㅅ원한 바람이 지나가고 따뜻한 해빛이 비쳐 들어왔다. 잇달아 스스로의 마음을 주제할 만한 힘이 조금씩 솟아나기도 했다. 한뉘를 아래를 향해 흐르면서도 거침이 없이 노래를 부르는 강물의 품위를 따르려니 멀리 가버렸던 버팀목이 다시 달려와 정신력을 고여줬다. 마음의 숨통으로 초극의 지혜가 솟아나왔다. 참음으로 잃어벌 뻔한 나를 찾아왔다.          엉망의 사태가 왔다고 하여 다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가끔 쳐들어온 절망을 겪으면 발자국 하나없던 최악의 사막을 이겨내는 길문이 열리기도 한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바이러스 부스레기들의 장난에 다쳤던 심경의 뒤길로 알릴 듯 말 듯한 선의의 아지랑이가 피여오른다. 나는 한눈에 그것을 알아봤다. 대비해두는 습성을 키워뒀더라면 오늘 같은 우스운 살인 식의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천금같은 순간이다.         삶의 행복이 뽀시시하게 발려있는 것이라면 하나같이 울음을 이겨내는 인생수업을 거지지 않은 것이 없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사업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의 실수가 참으로 고맙다. 그는 실수 앞에서 쩔쩔 매는 나에게 울음을 구겨박는 지혜의 처방전을 적어주고 갔다.  잃을뻔했던 자신이 보인다. 가슴에 원상복귀된 후의 평온함이 깃든다.                                                                                   발표내역: (2021년 6기)
28    [수필] 자연을 닮은 사람은...... 댓글:  조회:222  추천:0  2023-01-21
       여름이 저 멀리를 향해 걷고 있다. 그는 자기의 온기에 쌀쌀함을 견뎌내고자 했던가을의 부탁을 거절한 채 걷고 있다. 가을은 그러는 여름이 야속해났다. 그리하여 가고 있는 여름의 마음을 되돌려보려고 저 매미에게 노래도 그만하라고 부탁하고 밤샘을 하면서 머리를 짜고 대책을 생각해냈다.         일단은 처음 여름과 만날 때와는 달리 자기의 표정부터 랭랭하게 변하기로 했다. 자기의 변화가 여름의 동정심을 살 수가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며칠간 시험을 거듭해봤으나 여름은 가을의 얼굴을 봐서 펴정바꾸는 노력 조금도 없이 떠나기로 작심한 걸음을 한걸음 두걸음 옮기고만 있다. 가을은 실망하지 않고 몇배 쌀쌀해진 랭기와 충만된 소슬바람으로 여름이 가는 길을 막아내고저 나무잎을 한잎 두잎 떨어뜨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름은 자기의 따뜻한 몸콩에 가을랭기를 받아 챙기고  시훵해진 자세로 있을 곳을 향해 거침없이 걸어갔다. 이에 좀 화가 난 가을은 찬바라으로는 여름의 옷섶을 들추고 비물로는 바지가랭이를 적시고 하여 이젠 가냘파진 여름의 몸을 추위에 떨게까지 했다. 그리고는 택한 길을 계속 가는 여름의 그 아련한 뒤모습을 보면서 얼마쯤 지나면 내 전략에 못이겨 돌아설거야 생각하며 흐뭇해하기까지 했다. 가을은 자기으 품으로 돌아와 온기를 나누어줄 여름이기를 바라며 그 품을 못내 그리워했다.         그리하여 가을은 추위로 안색이 짙게 변해가는 여름의 가여움에도 추호의 동정을 보내지 않고 자기의 파워로 기어코 그를 돌려세우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래서 여름이 온 생ㅇㄹ 바쳐 이루어놓은 푸른색을 노랑으로 빨강으로 바꾸고 여름이 생명으로 가꾸어놓은 나무잎들을 싹뚝싹뚝 잘라 떨어뜨리고 그것도 모자라 구질구질 질척질척 을씨년 비까지 양푼으로 퍼서 쏟아부었ㄷ. 그리고는 련민 없이 가는 여름의 등 뒤에 대고 고래고래 웨쳤다. 좀더 천천히 가라고, 나와 마주앉아 커피라도 한잔 하면서 한해 동안 쌓였던 회포라도 풀어보자고! 그러나 여름은 정한 생애의 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그는 가을의 정을 느끼지 못해서가 아니다. 단 자기에게 속한 길을 가을이 대신 걸어줄 수 없다는 사실을 속깊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은 갔다. 가을은 추위와 한식구가 도여 살 것을 생각하니 앞길이 막막해났다. 뼈속 깊이 싫었다. 원망스럽기만 했던 여름의 길을 자기도 똑같이 걷게 된다고 생각하니 나날이 으스스해졌으나 그것을 초극할 방법은 딱히 없다. 그래서 인류에 의해 만들어진 온난화에 흐망을 걸어봤으나 지혜의 정상에 사는 인간이 그렇게 얼석을 리가 없다. 틈이 안 보이게 자연의 매락을 착착 관리하고 짚어가는 인간에게 눈을 흘겨봤자 가을은 역시 자기의 운명을 만구할 수가 없게 되였다. 상강을 지나니 가을의 얼굴에 소름 끼치는 덕지된 서리가 내돋았다. 해빛의 애무를 받아 정오가 되면 가을의 얼굴이 한없이 찬란하나 다음날 아침을 맞이하면 엯 또 그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그 무서워지는 서리의 뿌리를 뽑으려 몸부림치다보니 가을의 맥이 갈수록 진해져 가슴엔 차츰 겨울이 잉태되여버린다.        사실 가을은 자기의 려정이 시잘될 때 황금옷만 걸쳐입고 넘실 더덩실 춤출 생애만 남았는줄 알았다. 그런데 가을도 어느새 밖으로 비집고 나오려는 뼈대를 겨우 감싸안고 휘적위적 가는 길을 걷고 있다. 그도 여름에게서 배워 자기를 따라와 바람술이라도 한잔 하고 가라는 겨울의 손을 뿌리치며 앞으로만 쥉쥉 가고 있다.그는 가는 길에서도 겨울한테 칼날식의 야박한 자세를 서슴지 않았다. 련민 담긴 눈길 한번 더 주는 것으로 새 생을 맞아올수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럴 바 하고는 겨울이 자기 절개를 더 잘 지킬수 있게 하는 것이 배려라 사료되여서 그랬는지 모른다.        겨울은 자기를 무시하고 가는 가을에게 불만 불평을 들이댈 사이도 없다. 세상에 조금씩 널려있던 생기의 흔적들을 싹싹 설겆이 하느라 그럴 정신이 없다.  이미 말라 비틀어져 아무 용맹도 없는 나무잎까지도 빡빡 긁어내려야 한다. 눈에 보이느ㄴ족족 꽁꽁 얼궈내야 한다. 자기의 일에 걸림돌이 되는 태양의 위협을 좀 느끼다가도 그가 집에 쉬러 간 사이에 밤샘을 해가면서 얼궈붙이는 일에 집착한다. 그이 하루의 일정은 단 하가지 일로 점철되었다. 녹지 않게 하는 일이다. 만물이 녹기 시작하면 그는 자기의 파워에 얼룩이 간다고 생각한다. 그가 이를 사려무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어쩌면 겨울은 좀 유치한 면이 있는지 모른다. 자기가 무서워하는 것에 숨어있는 희망의 꿈틀거림을 도무지 발견하지 못하는 걸 보면 말이다. 여름은 종당에 가게 되지만 자기가 살아있을 때는 한가지 꽃만 피운 것이 아니라 백만가지를 피워놓고 간다. 가을 또한 그러하다. 그는 드문드문 내구력이 지극히 강한 국화 같은 꽃을 피우기도 하고 자연을 한 색으로가 아니라 여러가지 색으로 단장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겨울은 자기가 내내 승리만 하는 동장군인 줄로만 안다. 고개를 조금만 갸윳하면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희망의 씨앗들이 잉태되여있어 어느날 인가 자기가 갈 때가 되여도 희망을 남겨놓았다는 것을 알아내겠지만 왕고집 겨울은 곁눈 한번 팔지 않는다. 여름과 가을을 거치면서 자생된 악종 바이러스들을 다 죽여내야 한다는 사명감 하나만을 가슴에 품었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다행한 것은 얼음투성이 얼굴을 돌리고 갈 때는 겨우내 짝사랑 편지를 보내오던 생명의 봄을 인간에 돌려주는 배포가 있는 것이다. 보기에는 뚝하기를 그지없어 봄의 윙크에 알은 체 않으려고 노력하는것 같아도 봄의 생애에 량면의 고수라는 오범이 찍힐가봐 그냥 꽃샘바람을 변장하고 봄과 얼굴을 비비고 갈 길을 완성한다. 겨울은 수확과는 십만팔천리지만 수확을 지켜주는 지킴이로 만족을 하면서 이것이 바로 자기다운 삶이라고  생각하고 충성을 다한다.      여름이나 가을이나 겨울은 생명이 있는 한 성심을 다해 주인답게 살다가 가는 것을 철칙으로 지켜냈다. 말하자면 인간의 만방을 비춰주는 것으로자기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꽃은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단풍은 세상을 화사하게 하고 얼음은 세상을 정화한다. 이렇게 큰일들을 하면서도 그들은 누구 앞에서 자기의 멋을 자랑하고저 우쭐대는 법을 모른다. 자기의 무대가 오면 해야 할 바에 충심을 다 바친다. 누구의 감시도 필요 없고 누구의 격려도 바라지 않는다.        자연을 어머니로 알고 있는 사람의 생명 또한 자연을 반받았음이다. 그 역시도 주어진 삶에 충실하면서 살다가 가는 것이다. 지위나 신분이나 성별과는 아무런 상관 없이, 젊음의 나이든 제 나이대로 살았던 것과 무관하게 모두가 가게 되는 한가지 길을 갖고 있다. 자연은 자기의 계절을 어떻게 살았던지에 무관하게 무한 순환의 곡선을 긋는 생명을 갖고 있어 갔다고 오고 왔다가 가느ㄴ일을 거듭한다. 그러나 인간의 생은 직선적이고 일회적이라서 갔다가 오는 길이 열려져 있지 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자연은 있는 그대로를 인간에게 다 헌시난 것은 아니였다. 그는 인간을 사랑하여 무조건으로 바치며 살지만 생명의 순환법만은 물려주지 않았던 것 같다.         순환의 생애가 없는 인간은 그가 어떻ㄱ 살았느냐에 다라 사회적인 평가값이 매겨지고 그에 따라 그가 남겨놓은 령혼의 무게가 저울질된다. 생을 달리한 후에도 계속 우리곁에 남아있는 사람이면 그는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사회의 위화감을 소멸하기에 혼신을 쏟아붓고 더불어 살다가 가는 것으로 삶의 가치고库를 채운 사람이라 하여 영원히 살아있게 된다.         베풀며 사는 사람들을 자무 만나고 있다 그들과의 만남을 다리로 하여 나문의 함다운 의미를 새겨보게 되고 삶의 무대가 빛나게 하는 이런 저런 알짜 법을 배우게도 된다. 멋지게 생긴 사람을 보면 우리는 눈길을 더 주게 된다. 그러나 더불어 살아가는 길에다 실제적 배려심을랑 듬뿍듬뿍 주는 사람을 보면 마음에 담아두게 된다. 그리고는 존경심으로 잘 포장하여 간지갛게 도는 것이다. 그들은 행복 만들기 법을 내내 실천하며서도 내색하지 않는다. 묵묵히 말이 없는 자연이 모습을 닮았음이다.                                                    발표내역: (2021년 6기)
27    [수필] 못난귤(丑橘) 댓글:  조회:253  추천:0  2023-01-20
      집들이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음식은 그럭저럭 준비해두었지. 그래서 3월의 꽃샘추위를 무릅쓰고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과일가게로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전에 우리가 살던 동네에서는 본적이 없는 이상한 과일 한가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귤의 족속이긴 한것 같은데 면상이 두꺼비 껍질을 뒤집어쓴 곰보딱지이고 모양새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서있는것이 도무지 꼴불견이었습니다. 그 크기로 보면 감귤보다 조금 더 크고 색상은 죽은 오렌지색이였습니다.       내가 호기심이 터져 점원게게 다가가 무슨 과일니냐고 물었더니 못난귤(丑橘)이라고 짤막하게 이름자를 말해주었습니다. 내가 그 이름자에 좀 소름이 끼쳐서 맛은 어떠냐고 덧물었더니 가게주인이 답하기도 전에 한창 과일을 비닐주머니에 골라 담고있던 손님이 잠간 눈길을 나에게로 주며 “진짜 먹을만한 과일”이라고 강력 추천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내 눈엔 분명 한라산 봉우리를 닮은 한라봉인데 한라봉이라고 부르지 않고 못난귤이라고 부르니 부쩍 더 구미가 동했습니다. 아무리 사는 지방이 달라서 생긴 호칭이라 할지라도 극에서 극에 해당되는 차이를 가진 이름이였습니다. 나는 큼직한 놈 두개를 골라 들었습니다. 8원50전입니다. 수입에 비하면 비싼 가격대였지만 신기한 마음에 넙죽 샀습니다.         과일주머니를 들고 찬 기운에 기죽은 손을 불며 집에 오니 오전 내내 이사짐 정리에 고생한 남편과 집들이 도우미로 오신 오빠가 쏘파에 앉아 브레이크타임을 보내고있었습니다. 나는 못난귤을 칼로 예쁘게 잘라서 과일판에 담아 방안에 들여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이랍니까! 그것의 맛은 이름과 생김새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습니다. 오빠는 참 맛있다고 하시며 몇조각을 금방 드셨습니다. 남편은 미식 연구나 하듯 천천히 음미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고 눈을 우로 올리더니 “오렌지보다 신맛이 좀 강하긴 해도 먹을만하다”고 평판내렸습니다. 이어 내가 맛볼 차례입니다. 한족각을 먹어보는데 그만 그 맛에 경탄을 금할길 없어 젊은 처녀애들처럼 호들갑을 떨며 “와”하고 환성을 올리고말았습니다. 과즙이 담뿍한데다가 신맛과 단맛이 최선의 조화가 이루어져있는 환상의 맛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입안에서 살살 녹는듯하던 과일 알갱이들이 탱글탱글 구강안을 뛰여다니며 혀끝의 식세포를 자극하는 그 기분 좋은 식감 또한 못난 외모를 쥐꼬리만큼도 닮지 않았습니다.         어쩐지 나는 과일에도 나름의 심장이 있을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못난귤의 호칭을 위해 잠시 정의의 사자가 되여 불평들을 토해냈습니다. 남편은 그러는 나를 보더니 “또 우리집 상림아주머니가 시작하셨구먼”하는 기색을 “피씩”하며 일어서더니 다시 짐꾸러미의 정리에 달라붙었습니다. 저 역시 인내심 말라붙은 멋대가리 없는 남편들의 태도에 익숙해진 녀자중 한 사람이라 남편의 그러한 태도에 개의치 않고 못난귤의 이름으로 하여 늘어나는 생각을 따라갔습니다.         누가 왜 그런 이름을 달아주었을가가 우선 궁금해졌습니다. 먼저그 과일의 맛을 몰라서 그랬을수도 있겠다고 너그럽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것도 같았습니다. 그 과일이 과일세계의 식구가 된후 평생 달고있을 이름을 정해주는 사람이 그 맛을 보지도 않고 왈가왈부하다니 어디 될법한 말입니까! 그가 삿갓을 쓴 과농이든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농학이든 맛을 보지 않은채 나무에 열려있는 겉모습만 보고 이름을 달았을리는 만무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과일맛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호칭을 더럽게 붙임으로써 팔이 긴자가 살짝 하나씩 따먹고싶어도 못난 이름을 알고는 재수없을가봐 따먹지 못하게 하기 위한 지혜의 예술품이였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나는 내 마음의 사이즈에 맞춰서 생각을 입히다보니 못난귤이 아니라 감귤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상싶은 맛때문에 그 외모에 대한 언짢음을 일시에 물러갔습니다.         이름이 맛과 걸맞게 하는 법은 이 과일의 속마음을 알아보는 일입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겨울철을 잘 대비하느라 온몸으로 항거하다보니 맛은 안으로 모이고 겉은 험상궂게 일그러진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흉한 몰골은 결과적으로 속맛과 향을 지켜내는데 둘도 없는 든든한 보호자 역할을 한셈이 되였지 뭡니까! 못난귤은 12월에서 3월에 이르는 제철 과일이기에 그가 겪어야 하는것은 겉모습이 아름다운 과일들이 죽었다 깨여나도 상상 못할 지옥의 고통이었을겁니다. 그가 몰인정한 동장군앞에 꿇어앉지 않고 영양소 그득한 고유의 제  맛을 지켜내는데 성공했으니 이 또한 천하 가상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과일사회에도 계급이 있다면 어떤한 지역에서든 이 못난귤은 분명 현명한 정치를 하는 멋진 통령이 되기에 손색이 없을겁니다. 자기가 상대한 겨울이 아무리 매섭고 무서워도 쩔쩔 매지도 않고 추호의 변심도 없이 만분의 의지력으로 차례진 삶을 기껍게 가꾸어가고 있으니 그 성품 또한 일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생명으로 이루어진 세상의 리치도 이에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세상이든 동물천국이든 과일세계든 사는 법도는 다 거기서 거기이니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못난귤의 무언에도 사람의 냄새가 물씸 풍깁니다. 그것은 자기를 지키고 자리를 지키며 인내하는 것이 삶의 지존위치에 있는바 지키는 일이 힘들 때 지켜내는자야말로 비로소 진정한 삶의 강자이기 때문입니다.                                                         발표내역:   2016년 제 1기  
26    [수필]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며 댓글:  조회:232  추천:0  2023-01-19
        우리는 흘러간 세월의 이야기로 지은 집을 보통 추억이라 부른다. 그런데 인생살이는 지나간 일을 되살리는 일을 하는 이 식량을 떠나 도저히 버텨내기가 불가능하다고나 할까, 나이와는 무관하게 삶의 터전에 예상치 못한 난이 들이닥치거나 하면 인간은 힘이 담긴 어제의 영양으로 충전하고 새 삶의 그림을 그려보는 일에 착수하게 된다. 그래서 과거는 현재속에 살아있고 현재는 미래속에 살아간다고 하는 말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고 보이지도 않고 마닐수도 없는 추억이 과연 무엇인니가 궁금해진다.          추억은 인간이 주는 신호에 따라 존재의 역을 달리한다. 제아무리 좋은 추억감이라도 해도 우리의 마음가짐이 어두울 때는 괴물로 나타나 심기를 괴롭힐것이고 마음을 확 열고 있을 때는 찜통더위의시원한 바람이 되여 마음의 습기를 확확 몰아낸다. 이처럼 추억은 어떤때는 인간을 울리는 일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사람의 마음에 영양을 공급하는 예스맨으로 산다. 그래서 지나간 일이긴 하지만언제나 우리곁에 머물면서 필요할 때마다 힘이 되여 가벼운 표정을 짓고 나타나주는 것이 그 이름의 숨은 뜻이 아닌가싶다. 우리가 매일매일 열어봐도 낡을줄 모르는것도, 또 그래서 전혀 지겹지가 않은것도 다 이때문일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새파란 왕초보삶의 길에 있거나 황혼을 업고 누른 가을길에 있거나를 불문하고 누구든 그의 집에서 한숨씩 쉬여가게 되여있다. 그에게는 릴레이하는 재주가 있다. 열아홉 꽃시절에는 대여섯살 소꿉놀이 떠올려게 하고 이립에는 꽃나이때의 아름다움을 떠올려보게 하며 볼혹에는 이립의 땀을 밑거름으로 딛고 지천명으로 비틀거림없이 행진하게 떠밀어준다. 이처럼 그는 엄마의 약손같은 성품이 있다. 그가 있기에 인생의 지적밧데리가 늘 충전이 도ㅕ있는데 인생 예순이라 칠순에도 이는 변함이 없다. 바로 그가 숨쉬고있음으로 하여 무병장수 100세 시대에 사는 우리가 백발 팔순이 되여서도 꿈과 꿈너머 꿈을 곁에 두게 되는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인생의 씨나리오는 그가 만들어 띄워주는 동풍을 타고 바야흐로 여물어가고 완성작으로 세상에 남겨지는 것이 라 하겠다.          이 신비의 집은 설맞이를 할 때면 평소에 비해 퍼그나 많은 식구들이 생겨서 지난 한해의 세상만사 이야기식구들로 충만된다. 그리고 새 한해를 맞으면서 설계했던 인생의 새 공사들이 한해를 마치는 순간 다시 그의 집에 찾아든다. 재산을 마다할 사람 없듯이 누구나 추억으로 변신한 옛 인생사는 조금도 마다함 없이 액면 그대로 다 받아들인다. 뿐만아니라 월세전세없이 무료로 그 식구들을 재워주고 먹여주고 영생을 누리게 한다. 그리고 인간이 필요하면 그는 아량을 베풀어 자기 식구들을 한번씩 나들이시켜주는 셈치고 무료제공을 해준다. 이 큰 재산을 마음껏 누리는건 인간이니 이 얼마나 대운대복이 터진것인가! 지구촌이 다할때가지 우리가 필요할때마다 언제나 냉큼 찾아와주는 이축복의 면전에서 우리는 잠시나마 량반 상놈 없이 똑같은 문명인의 자격증을 소유하게 된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지난 세월에 지어놓은 추억의 집들에 행복이란 두 글자를 크게 써놓고 영생할 수 있는 권리를 향유하는데 습관이 되였다.            인간으로 말할진대 세월우선의 리치를 따른다. 그래서 물리적시간에 일단 먼저 예속된후에야 비로소 나름의 마음시계를 자작할수가 있게 되는 법이다. 그러니 지난 한해의 희로애락을 다 챙겨담게 하고 새 한해의 좌판을 펼치게 하는 설이란 물건은 세월의 배를 타고 인간에 왕림하여서는 가장 큰 손님으로 추억의 집에서 거듭 난다.      인간에는 옛것이란 구식옷을 입어도 팔 벌려 반겨주는 추억의 집이 있으니 천차만별의 마음으로 만별천차의 자헤로 새날을 맞이하는 일을 끊임없이 하여 천추만대를 이어갈수 있게 되는것이다. 앞으로만가면 옛것으로 된 뒤일들은 알아서 챙겨담아주는 그 그릇의 크기를 우리는 다 알길이 없다. 낡은 것은 고스란히 쌓여서 령혼의 보물로 거듭나게 해주는 해결사가 있고 새것에 대한 추구심이 시키는대로 힘주어 달리면 된다. 이것이 이른바 인간이 갖고 있는 마음의 지평이 이루어지는 일개의 룰일것이다. 그리고 이 지평선우에는 종착역이 없고 지정된 모양새가 따로 없어 언제나 천만개의 새 과거들로 수북히 쌓여가게 되는것이다.       어쨌거나 이 천사는 차곡차곡 쌓여서 언제나 한 모습으로 우리의 곁에 머문다. 당신의 삶이 칙칙하다면 아름다운 색옷을 입혀줄것이고 당신의 삶의 길에 기쁨만 펼쳐져있다면 그 기쁨이 오래오래 갈 수있도록 겸손함을 심어줄것이다. 당신이 갈팡질팡 사거리에서 헤메고 있다면 그는 온고지신하라며 마음의 축을 잡아줄것이다. 당신이 오늘의 삶이 여의치 않다고 한탄한다면 현재 향유하고있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것인지를 깨우쳐줄것이다. 당신이 실수쟁이라면 그는위안보다는 침묵으로 묵묵히 지켜봐주면서 당신에게 넘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인내력과 극복의 의지를 심어줄것이다. 그래 그렇게 천신만고 무릅쓰고 일년내내 지키고섰다가 다음 설을 맞이할 떄가 되여 당신이 새것을 디자인하는 축제마당에도 기꺼이 함께 해줄것이다.         그는 이렇게 언제나 옛이야기 짐을 내려놓고 새로운 한페이지를 만들고저 행장을 하고 나선 인간을 따라서는 존재이다. 월급 46원으로 코구멍같은 월세집 시절에도 따라나섰었고 배부르고 넘쳐나 이제는 세상천지가 산 허물고 바다매립의 공사장이 되여버린 시절에도 그는 우리를 멀리하지 않는다. 이러한 절개는 거의 만신창이 된 지구가 건강을 되찾는 날이 오든, 인간이 우주로 이사를 가는 날이 오든 변함이 없을것이다. 그야말로 모든 인류가 하루아침에 맛있는것이 없어지고 먹고싶은것이 없어지고 가지고싶은것이 없어지고 하고싶은것마저 없어져서 인간이야기가 종말을 고한다고 해도 한번 먹은 마음 변함이 없을것이다.         세월의 흐름을 타고 또 하나의 설을 금방 넘기게 되었다. 나이를 한살 더 먹고나니 어쩐지 이처럼 우리를 위하는 그 추억이란 이름의 본연이 더더욱 궁금해진다.   사전을 펼쳤다. 사전에는 “지난 일과 기억이 한덩어리로 되여 사람 사는 동네에서 이리저리 쓰이는것”이라고 풀이되여있다. 그 해석이 그가 행하고있는 일에 비해 어딘가 좀 창백하고 지극히 소박하기만 했지만 그나마 마음에 차악 와닿는 맛이 있어 그리 싫지는 않다.          아무쪼록 고마운 흉금의 소유자다! 인간 삶의 조각들을 남김없이 챙겨담은 후 거기에 무한 류통기한이란 옷을 입혀주는 일에 만족해하지 않고 금전을 저울삼지 않고 누구나 필요하다고 신호 보낼 때마다 아름다운 얼굴 내밀어 즐거움을 선물하는 복주머니와 같은 존재가 바로 추억이다.!          참말로 그렇다! 오늘도 나는 어떤 과거의 이야기를 담아줘도 만족심 하나만으로 반겨주는 그의 집문을 열어본다. 파릇파릇 따끈따끈한 바닥에 청춘이 흘러간 자국이 예쁘게 그려져있다. 거기엔 물고기 밸 따던 손에 받아들었던 대학입학통지서가 웃고있는가싶더니 또 첫하랑의 편지를 받아들고 캠퍼스 앞마당에 선 모주석동상뒤로 몸을 숨기며 콩콩 뛰는 가슴을 진정하던 옛 청춘의 랑만이 흐로고 있다. 그가 있어서 새치머리 고개에 선 이 마음은 새들의 노래잔치에 미소짓고 새싹이 봉긋 웃는 봄의 환호소리를 듣는다. 아, 인생의 고운 조각들이여!                                          발표내역: < 장백산>  2016년 4월         
25    [수필] 기다림의 미학 댓글:  조회:243  추천:0  2023-01-17
       지난해 7월 중순에 학회차로 충칭을 가게 되었다. 비행 시간이 4시간을 날아야 하는 거리때문인지 직항이 없었다. 별수 없어 대련-린이-충칭선으로 된 남방항공 Cz2864 항공편을 선택하였다.      시간에 맞추어 탑승 수속을 무난히 마치고 안전검사를 받기 시작했다. 국내선이라고는 하지만 항공편을 이용하는 여객들은 기차역을 방불케 했다. 그러다보니 줄서서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일은 여객들의 통과의례가 되었다. 나도 30여분쯤 기다려 탑승장으로의 안전체크인을 하는데 들고 있던 물병이 문제가 되었다. 물병을 쓰레기통에 버리라는 요구에 따르긴 했다만 마음통로 턱 막히는듯했다. 방금 내 앞에 선 아줌마가 가정용 물컵에 물이 담긴대로 통과하는 것을 보고 내 물병도 괜찮을라나 희망을 품은것이 문제가 되였다. 희망은 어떤때는 거품을 담는 그릇이 되기도 한다. 희망이란 상상의 안목엔 가득찬 것 같으나 육안으로 보려고 하면 종적도 없이 사라지는 그런것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만나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예우는 다른 법인가 봅다.        비행기에 탑승했다. 9시에 리륙한다던 시간 약속이 거의 90분 지났지만 꿩을 구워먹었는지 아무소식이 없다. 그럼에도 기내에는 테블릿 pc로 드라마를 보는 사람, 휴대폰으로 게임하는 사람, 비행장의 활주로에서 날개를 접으넣으며 높이로 상승하는 비행기에 조준하여 사진을 찍는 사람, 신문을 뒤적이는 사람, 동행자와 말을 주고 받는 사람들로 평온한 기분이 흐른다. 리륙이 딜레이되는 리유에 대해 궁금해하는 여객은 한사람도 없는듯하다. 입술가에까지 이른 질문을 표정으로 포장해버린 것인지 다른 사람에 의해서 정답을 받을 수 있다는 자기보호식 처사법을 따름인지 알길이 없다.       시간은 조급해하는 내 마음을 못본체하고 그냥 제갈길을 갔다. 탑승권에 명시된 리륙시간과 무관하게 비행기는 당당하게 정지상태를 지속하였다. 이때 VIP 좌석에서부터 쏟아내는 문의소리가 터졌다. 일반석에서도 호응하는 소리가 일어났다. 그에 승무원들의 답은 ‘현재 공항의 상공에 불명 비행물이 날아다니고 있어 리륙을 못하고 있습니다’였다. 단, 대체로 리륙시간이 언제가 될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미래는 손에 잡히지가 않는 물건이다. 우리는 ‘불청객’들이 물러가기만을 빌며 그냥 기다림의 자세를 지속했다.         마음의 보따리밑에 깔린 불만을 확확 털어내고 느긋함으로 바꾸어넣기 시작했다.  만사에는 다 때가 있으니 때가 되면 리륙하겠지. 이렇게 생각하며 나는 주최측에서 보내온 호텔이름과 위치 등을 재점검하면서도 구역구역 옆구리로부터 가슴으로 기여올라오는 걱정을 물리칠수가 없어서 나름 힘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행선지 도착시간이 밤으로 될지도 모른다. 초행길인데다가 인구 천만이 넘는 슈퍼도시라 찾아가는 길에 차질이 생길까 우려된다. 그래도 애써 불안의 티는 싹 감추고 모든 일은 풀리게 되어있으니 마음의 준비만 있으면 된다는 주문을 외우고 또 외웠다. 불안한 마음을 감출양으로 나는 앞좌석의자 뒷주머니에 껴서 삐죽이 내민 신문지를 꺼내들었다. 기내에서 파는 초고급 화장품에 대한 설명문들이 깨알같이 박혀 있었다. 내가 안경을 걸고 그걸 읽노라니 여자 승무원이 언제 봤는지 내 옆으로 다가오며 친철한 어투로 물어온다. 관심을 보인것이 아니라 심심풀이었다고 넘기고는 다시 책 한권을 꺼내들었다. 요즘 나는 이 책에 부쩍 재미를 붙였다. 수필형식을 빌어 쓴 두만강류역의 력사문화론이라 평가받는 책인데 백두산맥과 두만강을 둘러싸고 흘러온 력사의 현장들이 숨쉬는 글들이다. 작가의 의혹과 통찰의 수사학이 함께 하고 있어 참 읽기가 멋스러운 글이다. 이렇게 내가 마음을 잘 길들이고 즐기고 있는데 여객기 이륙 안내 방송이 나오고 뒤어어 비행기는 둔중한 몸뚱아리를 가누고 방향을 잡아 질질걸음을 하기 시작했다.           비행기는 한시간을 날아 산동성 린이시 공항에서 잠시 쉬었다. 20분 뒤에 다시 충칭으로 출발하니 탑승권을 잘 챙기라고 하는 방송을 들으며 내림계단을 내려서 휘휘 둘러보니 멀미멀리까지가 허허벌판 황폐했던 옛날의 린이 대신 하늘과 높이내기를 하는 건물들이 시야를 채워줬다.    환승을 위한 우리 일행이 대기실안으로 들어가는데 탑승객들이 줄을 서서 떠밀고 떠밀리우면서 발을 밟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뒷몸에 붙어 얹혀 쏟아져나왔다. 춘절 교통의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장면을 공항에서 보기는 처음이다. 탑승장에 대기하는 여객선이 없다면 버스정류장이라 오해할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이 정겹기만 하여 휴대폰카메라를 열었다.                  린이의 탑승대기실에서  20분 후에 탑승한다고 했던 원 시간표는 장난표가 되었다.   리유는 비행기의 기름이 부족하여 주유를 하는데 조금 지체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출발 시간은 아직 모른다고 했다. 나는 기다림의 만능칩을 꺼내 다시한번 가슴 바닥에 깔아야 했다.       공항대기실에는 빈 좌석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기웃거리다가 5번 탑승구 가까이에서 다행히 앉을 자리를 하나 얻었다. 의자팔걸이끄터머리에 큐알코드가 박혀 있었다. 그 옆에는 ‘휴대폰 위쳇비자루로 한번 슬쩍 쓸어만 주면 안마가 가능합니다’라는 내용이 찍혀 있었다. 어디를 가나 육신의 고단함을 풀어주는 장치들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는 것은 이곳의 문화중 문화가 되었다. 몸을 만져주면 통한다는 중의의 철학이 빛을 받은 것이다. 미국서 96세에 별세한 손경령은 하루 생활에서 몇시간쯤은 안마에 투자한다고 한다. 온몸의 나사들이 윤활하게 잘 돌아가 몸의 건강샘을 깊에 파준 것인가보다. 내 친구 한사람도 동인당 약국을 열었는데 가보니 역시 안마가 주를 차지하였다.         허리마사지가 하고 싶어졌다. 15분에 20위엔이니 부담스럽지도 않다. 새벽 다섯시에 기상하여 조찬도 못먹고 공항으로 달려갔고 거기서 거의 네시간을 보내고 한시간을 비행하여 이제 린이까지 달려왔으니 피곤이 켜켜히 쌓여있다. 그런데다가 정해진 탑승시간이 언제까지인지를 모르니 육신윈안이 훨씬 절실했다. 나는 큐알코드를 스켄했다. 제시어가 떴다. 15분에 20원 또는 30분에 40원이라에서 15분을 선택하였다. 의자에 온몸을 맡긴지 5분도 안되었는데 충칭행 비행기탑승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나는 나머지 시간을 누구에게 양도할 생각도 못하고 부랴부랴 탑승객들과 함께 줄을 섰다.         기내에 들어가 좌석을 정하고 앉으니 이제부터 두 시간 사십분쯤 지나면 곧 충칭에 도착하게 된다고 방송하였다. 그 짧은말은 내 마음에 품고 있던 모든 의문부호들을 쭉 펴줬다. 각종 음료수가 비치된 기내 손밀차가 내곁에 와 섰다. 커피한잔을 요구했다. 유난히 정신차 려야 하는 출장길이라 커피가 제격이다.       의례대로 음료수를 마셨으니 식사가 나올 차례다. 점심시간이 훌쩍 넘겼는지라  배속에는 꼬르륵난타모임이 한창이다. 군침 돋구는 음식의 냄새가 코의 냄새샘을 자극했다. 그것들을 담은 밀차가 식사칸에서 앞으로 나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이때다. 기내 방송이 울렸다. ‘여객 여러분, 아주 죄송합니다만 우리가 탄 여객기는 현재 상공에서 비행 연습이 진행되고 있어 리륙이 늦어짐을 알립니다. 인내심으로 잘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좌석대기 메시지를 전했다. 금방 밀고 나오던 식사차들은 되돌아 들어갔다. 내 앞좌석의 뚱뚱한 남성이 소리 높여 물었다.  ‘밥은 언제 주지요?’ ‘비행기가 이륙해야 식사가 가능합니다.’라는 종업원의 답이다. 순간 힘의 주머니를 지탱하고 있던 바람은 단방에 새어나갔다. 비행기의 리륙과 여객들의 식사가 이렇게 밀접한 관 계속에 있을 줄은 생각해 본적이 없다. 비행기가 뜨지 않으면 식사는 없다. 리륙시간이 아무리 연장되어도 밥은 없다. 기다리면서 밥이라도 먹으면 지겹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말하자면 비행기가 아직 일을 안하고 있으니 밥벌이가 못되어서 이렇게 하는 것인가!         아까 탑승전 한 아가씨가  언제일지 모르는 재탑승을 기다리며 터렁크를 밀고 와 내옆에 앉아 라면을 먹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 나는 라면을 후루룩 거리는 그녀를 보고 ‘기내식이 나올텐데’라고 했었다. 그때 그녀는 ‘배고파서 더는 못기다리겠어요’ 라고  하며 라면을 맛있게 먹었다. 똑똑한 처사라는 것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일에 닥치면 판단을 하고 그에 따라 추진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일에 끌려서 가다보면 끌려가다가 그야말로 암흑속에 굴러떨어질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 시골 아가씨의 라면 한그릇으로 이를 깨달았다.         여객들은 역시 아무 내색없이 조용히 기다렸다. 65분만에 비행기는 린이공항활주로를 떠올랐고 우리는 밥을 먹을 자격을 갖게 되었다. 기내밥이 별미라는 비밀은 이렇게 알아 내고 말았다.  비행기는 공중에 떠 있을때가 생의 전승기를 사는것인가보다. 공중에 뜨지 않았을 때는 기다림덩어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오늘의 경우는 기다리지 않으면 다른 선택은 없다. 그것을 개변시키지 못할 때 마음다스림으로 적응하며 가는 시간에 실려 기다렸다. 그랬더니 행선지까에 갈수가 있었다.  일상의 삶 또한 그러하다. 뛸때는 죽을 힘을 다해 뛰더라도 현재보다 좋아지기를 기다리는 넉넉함이 받쳐져야 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는 기다림으로 보냈다. 하루 종일 원망 담은 마음의 시선으로 보내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스러웠다. 살아가면서 느끼고 만들어낸  또 하나의 선물이었다.                                                                                          2021년 9월 씀 
24    [수필] 10월에 쓰는 편지 댓글:  조회:236  추천:0  2023-01-17
      적삼속을 한들한들 들추는 바람입니다. 색저고리 차려입은 풀포기 끝에 살풋이 달라부은 물이 핥아먹고 쨍쨍한 볕속에 뺑소니치는 건조함입니다. 뚝뚝한 땅엄마의 젖을 빨아먹다 숙성해진 제 모습 읽어보고 얼굴 붉히며 고개 숙이는 이삭입니다. 노오란 얼굴 꼰지 화장 짙은 고운 얼굴로 겨울려행 준비하는 단풍입니다. 인간생활의 구석마다에 넘치는 풍요로움 부어주는 삶의 절찬입니다. 10월입니다. 10월이 왔습니다. 10월은 봄날의 기앧입니다. 10월은 황금의 품입니다. 10월이 내곁에 찾아오면 고향부모님께 편지 띄우는 습성 이어갑니다. 내 생활의 아름다운 디테일을 차곡차곡 적어보내는 나에게만 있는 프랜차이즈입니다.         알곡이 곡간바닥을 꽝꽝 채우고 있을 고향집의 번영하는 경상을 기분좋게 필끝에 실어봅니다. 피로에 젖어든 육신에 마사지 바라실 어머님 심경에 한알의 신약이 되여줍니다. 벼이삭 떨굴세라 꼬랑할머니 되어 논바닥 눈빗질 하시던 어머님 알뜰한 삶의 이미지 마음속에 새겨봅니다. 10월은 고향어머님 생신입니다. 축복 한토막, 효성 한페이지. 강산이 제모습 잃고 이 세월이 어디까지에 가든 부모님께 드리는 빛바래지 않을 10월의 편지입니다.          10월의 편지에다 어머님 생신상 차립니다. 삶은 사과 한알, 곶감 두개, 명태찌게에 모두부 한 모타리. 세월은 가도 입맛은 남는다시던 어머님 구입니다. 생신선물 받으시고 주름살 쫙쫙 펴시는 어머님 기쁨에 잠긴 모습 가슴 따뜻이 살려봅니다. 만물이 성장이 려행을 마감하고 있는 10월이 오면 내 마음속 그리움은 하늘을 바라고 무작정 날개를 펼치는 연이 됩니다. 어머니 곁에 꼭 붙어 고생 먹으며 살던 옛시절이 사무치게 그리워입니다. 겨울이 오면 식량난 해결코자 입쌀자루 등에 지고 30여리길 도보로 걸어걸어 중국인마을에 가시는 어머님 동행자 되여 줍니다. 잔뼈가 여물지 않은 나도 입쌀 한근에 좁쌀 두근씩 바꿔 곱으로 불어난 쌀자루 어깨짐 만들어가지고 엄마따라 집을 오면 성에사람 되여버리던 그 무겁고 추운 기억 어제같이 생생합니다. 해바라기대 이삭 주어 집에 오면 하루 굼불 땔 근심은 잘러버린 내 기룩함을 닭알지짐으로 어루만져주시던 어머님 그윽한 사랑 살아납니다. 여름이면 돼지풀 찾아 키작은 곡식밭을 누비며 돼지머기를 해가지고 이고 옵니다. 목이 자라목처럼 쏘옥 들어가 한참은 괴로움 먹어야 풀어지는 안달이 되여도 어머님의 가식없는 칭찬 한마디면 얼굴은 인참 꽃송이가 됩니다. 하고 또 해도 끝이 없는 일, 하고 또 해도 피지 않는 생활. 그 시절엔 어찌하여 할 일이 그렇게도 많았던지 아직도 미결입니다. 매일을 일에 쫓기며 살았던 나는 학교를 가면 회초리에 손바닥 맞는 첫사람이 되여 버립니다. 나머지생공부에 잡혀있으면 돼지죽 삶으라는 엄마의 부름소리에 선생님도 귀가를 허락합니다. 그러다가 중학시절엔 집에 와 일찍농군이 되라는 엄마의 기막힌 독촉을 피해가며 기숙사에 기숙사에 숨어박혀 용돈 꿔쓰고 의복 빌려 입어가며 뻗치던 외고집쟁이 아다모끼 되여 공부책만 꼭 그러쥐고 돌던 나입니다. 대학교승학이 되였다는 소식 들으시고 빨간 고추 따던 어머님, 검정보따리인채의 모습으로 강뚝길 달려오시며 손저으시던 그 정겨움 이제도 마음의 땅 떠밀고 파란옷 펼쳐 입습니다.      10월이 오면 나는 어머님 옆에 꼭 붙어 살았던 그 시절로 되돌악ㅂ니다. 고나 많고 찌들려도 그 행복했던 맛만은 고스란히 남아 먼지낀 내 추억의 세계에 청신제 다분히 뿌려주는 옛시절입니다. 시대의 패러다임이 글로벌, 디지털화로 바뀌고있는 요즘에도 나는 그 시절 이야기 내 기억의 페지에서 지워버릴 수 없는 자세가 되였습니다.      나도 이젠 한 아기의 엄마가 되였습니다. 어머니란 세글자 바로 쓰기 이리도 힘겨운줄 미처 몰랐습니다. 밭머리 보따리 하여 가지고 쉴참 오면 저희들 헤여진 옷 기워주던 어머님 고달픔에 리해가 만들어집니다. 일곱살난 내가 부뚜막 타고 지은 설익은 이밥 맛나게 잠수시던 어너민 그 소행 이제도 눈물겹습니다. 엄마되여 사는 감각 이다지 행복한줄 미처 몰랐습니다. 마을잔치에 가실 어머님 모시고 머리단장 해드릴 때 어머님 얼굴에 피였던 환한 웃음의 뒤에 숨겨있는 그 이미지에 납득이 갑니다.      13년이날 세월의 흐름속에 한시도 그침이 없는 어머님의 노래를 엮으며 나는 살아왔습니다. 힘겨움에 시들다가도 “hvoe agood day”를 웨치며 학교가는 아들의 모습에서 싱싱하니 살아납니다. 올해도 10월은 왔습니다. 자연의 계절은 의연하건만 가슴에다 돌멩이 눌러주는 아들애의 변함입니다. 코플레기인줄로만 알았던 아들애에게 오늘 첫 편지 써보냅니다. 경제적 모순때문에 이 엄마와 얼굴 붉히고 소리 높이며 학교 간 아들애의 고약함입니다. 단전수입도 없는 작작가 매달 용돈 삼십원에서 오십원으로 인상해달라는 기막힌 사연입니다. 눈섶에 불이 붙었습니다. 내 사색의 외선은 어느새 또 옛날ㄹ로 감겨들어갑니다. 내가 자라던 그때는 돈때문에 엄마 속마음에 재가루를 얹어본적 없는 깨끗한 기억입니다. 동전 10전이면 형제끼리가 어울려 사탕 나뭐 사먹고 웃음넘치는 즐거움에 빠졌던 그 시절입니다. 그때의 사탕은 엄청 달았습니다. 한알을 깨여먹기 아까워 반나절 빨았습니다.      별스럽게 변모해가는 아들애입니다. 다른 친구 몇몇은 매달 오십원 용돈인데 나는 왜 이렇게 적은가를 짜개놓고 제기해옵니다. “나도 함께 해주면 좋겠습니다”하는 간절하고 야박한 청구앞에선 죽으려는 사람처럼 말문이 막힙니다. 통제력으로 커버를 해봐도 인츰 구멍이 펑 뚤허지는 심경이 되여 버립니다. 마음은 집을 못찾는 사람이 벌판을 헤매는 무행방감에 잡힙니다. 실련의 아픔도, 부부의 위기도 자식의 엉망에 대면 한결 가볍습니다. 입안이 모래알로 가득찹니다. 엉덩매를 안겼습니다. 그랬다고 아침 모든 용돈 톡톡 털어 봉지만들어 되돌려 놓고 어른마냥 기세사납게 해가지고 학교간 아들애입니다. 판가리청사니었습니다. 쩔쩔 매는 엄마가 되었습니다. 나의 아이디어를 검토해보며 돌이 된 아들애의 마음녹이고저 편지를 보냅니다. 하학하고 돌아온 아들애 고개를 숙여옵니다. “오늘 아침 잘못했습니다.”하고 곱살 차협해옵니다. 눈물이 예고없는 홍수마냥 얼굴에 강을 이룹니다. 이 시각 어머님 내곁에 계셨다면 그 따듯한 품에 기대여 슬기로운 가르침 받을겁니다. 헌데 피뜩 나도 어머니라는 생각에 잡힙니다. 자식의 교양을 떠메야 한다고 약해지는 정감의 오래기를 손목에 걷어잡으며 굳셈으로 달래봅니다. 아들애의 눈에 이슬이 맺혀 똘롱 떨어집니다 . “나도 이젠 철이 들었습니다”하고 보내오는 신호입니다.   “오십원이면 고중생 한달 용돈인데 소학생이 무슨놈의 그 많은 돈을. 틀려먹었어! 공부하러 학교자지 돈 쓰는거 비기러 학교가? 돈만 물쓰듯 하는 애 공부 잘 하는거 몇돼?” 하고 땅땅 얼러매며 아들의 순두부같은 여린 마음에 굵은 소금치고 칼 박아넣던 어투를 오늘 편에선 꿀을 섞었습니다. 학생이 학업을 비기고 공부에서 제보다 나은 사람을 부러워해야지 돈 많이 가지고 다니는걸 눈 크게 뜨고 지켜보기 시작하면 큰 사람 못된다......  아들애에게는 이 편지가 어느 정도 깊은지는 몰라도 얼마간 심장을 치는 감각을 가졌는가 봅니다. 돈을 비기는 자기가 천만 잘못이었다고 서면으로 반성을 하여 왔습니다. 엄마 속 썩이는 아이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나는 이겼습니다. 그랬건만 마음속에 그득하니 고여오는 감각은 기쁨인지 아픔인지 분간할바 없습니다. 우리가 자랄 때는 어머님한테 이런 깊은 교육을 받은적이 없습니다. 귀한 자식 매 하나 더 안긴다고 조금만 잘못해도 어머님 손에 쥐여진 비자루꽁지가 말합니다. 그럴지언정 우리는 원망이 없이 컸습니다. 엄마보고 말대답질 했다간 하늘이 무너지는 날로 압니다. 철부지 되고 싶습니다.              못난 로파심이 얼굴을 내빕니다. 근심이 츤근만근으로가슴귀퉁을 눌러옵니다. 아들애도 성장이 되여 언젠가는 자식을 거느린 어른이 됩니다. 자녀를 앞에 두고 오늘에 내가 했던 일깨움의 채찍을 이어 높이 들수 있을가 미진해지는 마음입니다. 인류가 하늘나라에 가 살든, 땅을 파고 지하세계를 만들어 살든 인간이 존재하는 한 가리킴은 영구한 주제입니다. 오늘의 이같은 타이름이 언젠가 요절할까 은근히 저어됩니다.      돈에 묻혀가는 세월입니다.                                발표내역: (압록강 9면) 2001년 9월 28일 
23    [수필] 과정의 미학 댓글:  조회:241  추천:0  2023-01-16
          대단한 성공 또는 성대한 잔치는 항상 사람들에게 회자된다. 그러나 일상으로 삶의 장을 펴가는 사람들이 대단함을 향하여 무거운 행장을 짊어지고 행진하는 모습은 사람들의 가슴에 적혀지지 않는다. 가끔 적혀지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희미하여 알아볼 수 없을 정도에 머물기가 십상이다. 기다림의 아름다움이 점점 우리와 멀리하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결과가 나오는 시대의 기를 받아 사람들은 결과를 우선시한다. 이로하여 과정이 홀대시되고 이것이우리들 사유방식의 바탕에 습성이라는 카펫을 고정시켜버렸다. 이것이 바로 현대 인간들의 삶의 버전인지도 모른다.          련이어 불어오는 새 바람들이 이러한 옛풍토를 허물고 있어서 다행이다. 창의력이 주도되면서 최고급 결과물이 오는 길에서의 바람과 비와 눈보라 또는 태풍들도 하나하나 부각이 되고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아울러 여러 역경들을 다 뒤로 하고 끝내 결과를 만들어낸 일군의 사람들에게 존경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또한 많아졌다. 그들의 목표 달성의 길에 늘려있는 이야기들은 우리 삶의 스토리로 거듭나서 방황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받침과 추진의 힘으로 되고 있다.      조곤조곤 세인들에게 공유해 주는 그 이야기들에는 땀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론리에 대한 이야기도 있을 수 있지만 평화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땀이 한결 더 울릴 것이다. 왕희지가 서예가로 남았지만 그가 몇톤의 먹물을 붓끝에 소화시켰는 알길이 없다. 이때 게으름피우지 말고 한번만 시간을 내어 상상의 나라로 여행을 난다면 정답이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선인들의 이야기가 그러했다면 후세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 역시 공동의 분모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삶이라는 버전은 천변만화를 거친다고 해서 억만번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는 하나 과정적인 것에는 별반 다를바 없다.  미래학자에 의하면 30년만에 만들어진 빵을 먹으면 30년동안 밥을 안 먹어도 된다고 하지만 30년동안 빵을 만들기 위해 들여야 하는 노력은 얼마이며, 먹어서 30년되도록 밥을 안 먹는 이 빵을 구매하기 위해 그는 얼마나 많은 돈을 모아야 했겠는가? 생활이란 여전히 수수께기 풀기식이라 멈춤은 없는 것이다.        족발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길을 알고 먹는 사람은 몇이 없을 것이다. 여기에는 알려고 하지 않거나 알 필요가 없거나 또는 알 길이 없는 등의 요소가 있지만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음식으로서의 족발의 맛만을 따질뿐 그것이 식락으로 되는 길에서의 이야기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만든 사람은 그러한 이야기를 마음에 적어두고 적당한 시기에 족발이란 음식에 도금을 하는 장식으로 이야기를 할 것이다. 이러한 것에 대해 일단 이야기를 듣고 그 음식을 먹으면 그 음식맛이 훨씬 더 좋아질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 족발음식이 갖고 있는 이야기인 것이다.         문의를 해서 그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아보는 것은 류사한 음식을 만드는 식당을 꾸리고자 하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할 수 있으나 그것을 만든 주인장이 기회를 살짝 만들어 음식소비자들에게 작은 이야기를 곁들이는 것은 음식물의 격을 올리는 주인의 지혜가 될 것이다.         학업의 과정 또한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우리가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에 진학하기까지는 공부선에서 오는 모든 어려움을 이기면서 12년을 참고 견디면서 공부에 노력해해야 하는 긴긴 땀의 터널을 거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인간으로 태어난 후 마치도 삶의 통과의례나 된듯 당연하게 생각할지도 모르나 내부를 들여다보면 바다를 이루고도 남을 땀이 슴베여있는 것이다.         회고를 할 때 ‘나는 그때 왜 다른 친구들처럼 그렇게 노력하지 못했을까’가 먼저 가슴의 문을 두드린다면 당신은 후회라는 구정물속에 들어갔음을 판단해야 한다. 다행한 것은 구정물이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릴때 보면 엄마는 쌀뜨물이나 야채를 씻고난 구정물은 모두 마당의 채마밭에 쏟아던지셨고 겨울에는 그 위에서 에다리스케트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구정물얼음은 봄이 되면 밭을 촉촉히 녹였고 가물었던 내몽골에서는 그 역할 또한 톡톡했다. 회고록에서 노력하지 못한 아쉬움을 깨닫는 것이 노력을 위한 시작인 것이다. 사람 ‘인’자를 봐도 이 도리는 자명해지낟. 사람 ‘人’ 자를 보면 가운데 중추의 고임이나 받침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좌우 양쪽의 틈새 없는 결합으로 중심이 있는 세움을 이루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본다. 제쪽만 고집하던 두 개의 자모가 하나로 되기 위해 흘린 땀이 몇톤이나 될까?!                                                 2020년 12월 28일 씀                 창장경위: '대련조선족문학회'라는 이름의 첫 글자를 따서 수필짓기를 한것임을 밝힌다.  
22    [수필] 태양골(太阳沟)의 락엽 댓글:  조회:261  추천:0  2023-01-16
     빨갛고 노랗고 파랗고가 어우러진 화장기 진한 가을의 얼굴을 하고 있는 태양골을 거쳐 지나게 되었다. 행사를 마치고 단체행 버스로 이동중이던 우리는 이곳 가을의 미모에 매료되어 잠시 그에서 쉼표를 찍고 가기로 했다. 차에서 내리니 락엽의 향을 담은 바람이 반갑에 달려와 우리의 옷섶에 매달렸다. 나뭇들의 파란 피가 말라가는 마가을이긴 하나 자연이 부여한 사명감을 끝까지 짊어지고 가는 가을의 표정을 읽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태양골이라는 이름값을 하기 위한것인지  태양광이 훨씬 유난한듯 했고, 그 빛의 애무를 받으며 삶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나뭇잎들 또한 한결 윤택해 보였다.      태양골이라는 땅에 발을 내려서 디디고 보면 단지 자연풍광으로만 이름짜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알게 된다. 당신의 눈이 내주는 길을 따르느라면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줄을 지어 시야에 넘치게 안겨오고 그에서 전해내려오는 내력이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은 곳임을 깨닫게 된다.  대련시려순신도시소재지의 다른 이름으로 대외대내로 다 태양골이라고 불리우고 있지만 당신이 그가 품고 있는 역사 무게를 저울질해본다면 이 이름에는 중국근대사를 한몸에 소장한 말없는 견증자라는 의미가 베어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태양골에는 근대의 이름표가 달린 것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러시아와 일본이 려순을 각각 제나라 제집의 앞마당으로 착각하고 배포주머니를 풀었던 엉망의 시기 에서부터 재정러시아 최고의 군사행정기구인 러시아도독부를 시작으로 일본의 대화 여관 등 해당나라의 대표적 스타일을 자랑하는 건물들이 이곳에다 발펼 자리를 찾았다. 당신이 시간이 없다면 쥐꼬리만한 시간만을 투자하여 거리모퉁이를 거닐어봐도 좋다. 당신의 시야로 차곡차곡 비쳐들어오는 것은 겹과 겹을, 줄에 줄을 이어서 선 근대의 혈관과 심장을 품은 건물일이니 태양골에다 중국 근대사를 자랑하는 ‘노천박물관’이라는 칭호를 붙여줌은 추호의 과장이 가미되지 않은 오리지날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뿌리 없는 나무는 처음엔 름름하게 태양아래 서있을 수 있다가도 바람공격을 몇번만 당하면 떨치던 위풍은 금방 바닥으로 곤두박질 하고마는 법이다. 그러나 한걸음 두걸음을 이어 몇십년을 뚜버뚜벅 걸어온 근대역사의 자국은 태양골에 그대로 찍혀있다.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다못해 흐드러진듯한 은행의 거리에 서서 좌우사방을 둘러보니 려순의 옛터 박물관을 비롯한  많은 건물들이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재활용되고 있는 건물, 일본관동군사령부와 같이 위풍이 폴싹 꺾여 엉망된 표정으로 숫자채우기를 위해  서있는 건물, ‘문화재보호’라는 팻말을 가슴에 걸고  설명글이 새겨져 있는 건물, 청소부아줌마들이 모여서서 담배를 피우며 쉬는 모습을 지켜주는 건물…. 포괄적으로 말한다면 역사의 자취가 진하게 묻어 있는 건물들이었다. 그들은 그곳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태양골의 옛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의지 당당하게 모습 름름하게 서있었다. 사람들은 어떤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스스로를 불행과 연결지을 때 보통 그런 사람을 향해 ‘행복을 지척에 두고 행복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평한다. 그러니 내가 이곳과 50보 거리만큼의 지척에 살면서도 중국 근대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태양골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마음의 부끄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나는 휴대폰 바이두의 집에 들어갔다. 바이두는 다시 한번 나의 동무이자 선생이 되어 주었다. ‘려순근대건물’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 봤더니 일번으로 나오는 것이 뿌쉬낀초등학교 건물이었다. 다행한 것은 과거로 되어 망각의 기억속으로 사라져가는 세월에도 뿌쉬낀 초등학교 구지는 지금도 고스란히 변함없이 원자리지킴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단숨에 관련 정보들을 섭렵하였다. 이 건물은 재정러시아가 1898년부터 려순을 조차하고 2년이 흘러간 후 지은 것으로 건물이 일어서던 해 3월부터는 러시아교육부 직속의 학교로 거듭나서 최고의 주목을 받은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학교는 초창기에 단층이었고 48명이던것이 1905년에 러시아가 패하여 일본이 인수받을 그 시점에는 총 177명 학생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은 또 러시아 장교들이 중국어를 배우는 요람이기도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 역사시기에 일본은 건물이 제손안에 들어오자 일단 원 건물을 한층 올려서 관동주민정서로 재활용하였고 16년후에는 격을 올려 일본관동군경무서로 이용하였다. 그러다가 항전 승리와 함께 뿌쉬낀학교는 재다시 쏘련군이 짐을 푼 곳으로 되었고 1955년 4월에 와서야 이 곳은 중국인민해방군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역사는 가고 오고를 분주히 하였고 건물주가 바뀌기를 거듭하였으나 이 건물은 지친 기색도 없이 세월의 발걸음을 재고 재어왔던 것이다. 알면 모르고 모르면 알게 되는 것이 인생의 룰이라면, 이 오래된 건물은 무형의 심장과 금같은 침묵으로 참고 견디면서 자기의 인내가 오늘의 사람들에게 정신적 양식이 되는 날이 있을 것임을 확신하고 오늘까지 온 것일가?!.        연분이란 것은 만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보다는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한차례 우연한 기회에 나는 이 유서깊은 곳에 몸담고 휴식을 하게 되었다. 현재 이곳은 중국인민해방군 주둔군의 초대소로 쓰이고 있는데, 정확히 말해서 10년 전에 나는 지역대학에서의 면접을 위해 이곳에서 마흔다섯살 나이로 꿈을 펼치고자 하루밤을 묵게 되는 작은 역사를 보탬했다. 그때는 봄이 무르녹는 5월이었으나 바다가 아직 몸을 완전 녹이지 않은 계절이라 그 건물안은 으스스했던 기억이다. 어쩌면 근대의 아픔이 아직 가셔지지 않아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만약에 그때 내가 그곳이 뿌쉬 낀학교 구지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더라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아차 깜빡! 인생은 만약과 훈련이 없는 무대와 같은 것이니 이제와서 시의 경지를 부여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뿌쉬낀학교 다음에는 일본인이 만든 최고급 건물중의 하나인 려순대화여관이다. 면 려순대화여관은 최고로 나이가 많아 현재는 재건이 아니되어 근대 건물의 숫자보 탬으로 불쌍한 모습을 하고 서있긴 하지만 그가 갖고 있는 역사는 역시 오늘에 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여관은 애시당초에는 일본싱크탱크들이 중국 약탈을 위해 설립을 한 만철주식회사 전용여관이었다고 한다. 후에 이름을 대화여관으로 고쳤고 이곳에 정계의 고위급 인물인 고관이나 높은 작위를 갖고 있는 대작들만 드나들 었다고 한다. 청말의 황제 부의가 동북이 비운을 맞은 후 일본에 납치되다시피 하여 부인 완용과 함께 이곳에서 105날을 인질로 묵어갔다는 것은 우리가 아는 사실이다. 더욱 가슴을 안고 땅을 칠 것은 그곳에서 버티던 부의가 장춘으로 자리를 옮겨 괴뢰만주정권의 리더로 거듭나서 일본의 액막이로 살아야만 했다는 진실이고 그 진실의 그늘아래 수많은 영웅들에게 죽음의 함정을 수없이 팠다는 것이다.       근대의 개화사상을 제일 처음으로 받아들인 량계초도 이곳을 두번이나 머물렀었고 심지어는 천진에 있는 집을 처리하고 이곳으로 삶을 옮겨 만년을 보낼 계획까지 짰다는 전설까지도 있다. 그리고 중국 문화의 대부라고 일컫는 곽말약과 노벨문 학상의 높이를 이루어낸 모순까지도 이곳을 묵어갔다고 한다. 그야말로 근대 시기에 이곳은 많은 것을 보아오고 품어오고 바라보았던 것이다. 말은 없었으나 그 시절 자기가 목격한 것을 그대로 지금껏 보존해 왔으니 이 또한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덕이 되는 필수 영양이 아닌가! 아픔의 터널을 거치지 않은 새 세상이란 없는 것이다. 유럽이 하나의 공동체로 국경없이 자유를 누리고 경제의 번영을 거듭 이루어내는 현재는 바로 어젯날의 페르시아왕국과  오스만제국의 멸망이라는 거대한 아픔을 밑거름으로 하고 있다.             역사는 어제이고 보이지 않는 과거일뿐이지만 우리들에게 내일을 바라보는 혜안을 선물하는 책임과 지혜의 영혼을 갖고 있다. 나는 버스가 출발한다며 집합을 부르는 소리에 태양골을 읽는 바이두라는 지식의 도화원에서 잠시 나와야만 했다. 나도 사진찍느라 야단들인 단체에 끌려 려순박물관을 배경으로, 러씨아우의탑을 배경으로 … 사진들을 남겼다. 지내놓고 보면 남는 것은 사진이기도 하지만 역사가 적혀있는 태양골을 배경으로 한 사진이라서 더욱이 마음이 뿌듯해났다.      태양골의 락엽은 오늘도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만 있다. 어떤 락엽은 작은 바람에는 몸을 약간 굽히는체하다 몸걸음 뒹굴어가고, 어떤 락엽은 주장을 꼿꼿이 세우고 원자리지킴을 하는 것도 눈에 보였다. 그러다가 좀 더 큰 바람이 불어오니 한 두발을 옮겨 터전을 완전 옮기는 치도 있었다. 그들도 휙휙하며 자연을 들었다놨다 하는 바람의 강대함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지 이사를 하는 경향이 대부분이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사를 가면서도 하나같이 원래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갔다. 그것이 노란것의 세계이건 빨간것의 세계이건 상관 없이 말이다.      락하하는 락엽의 여정을 지켜보았다. 그는 먼저는 오가는 사람에게 밟히고 바람에 엎치락 뒷치락 하더니 나중에는 널려있는 락엽들이 똘똘 뭉쳐 지어진 노란집으로 향했다. 그는 그곳에서 행복을 찾은듯 빛나는 미소를 보였다. 그가 태양골이라는 이 곳에서 해마다 같은 삶을 살아가는것은 아마도 아직 못다한 역사의 이야기를 나에게 당신에게 우리에게 풀어보기 위함일것이다.                                           발표내역: ASIA (2019년 6월  아시아 여름호)
21    [수필] 차향에 담아보는 쉼표 댓글:  조회:250  추천:0  2023-01-15
                                           나는 차를 마시는 습관을 갖고 있다. 처음 차와 가까와진 것은 그윽한 차향이 좋 아서도 아니고  소음에 젖은 마음에 고요함을 찾아주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것은 북 극곰처럼 둔갑을 해도 추위를 막을 수 없었던 내고향 내몽골의 겨울을 녹이기 위 해서였다. 그러니 내가 차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양생을 잘 되게 하는 건강도우 미로 알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나는 하루에 차 두 잔 쯤을 하지 않으면 생활의 어느 한 구 석에 구멍이 나서 원 기가 새어 나가 찬바람 손을 이끌고 오는듯한 느낌이다. 이제 하루에 차 두잔은 나의 일상이 되었다. 보통 나는 아침 아홉시쯤에 차를 마시고 오후 두시쯤에 차를 마신다. 내가 차를 마시는 시간 때만 본다면 커피 대용의 각성제 혐의도 살짝 묻어나나 사실 은 무관하다.        나에게 있어서 차를 마시는 것은 삶의 얼굴에 즐김의 꽃점을 찍는 일이다. 차를 마실때 제일 먼저 수확하는 것은 일상의 잡귀신을 멀리로 밀어내고 미묘한 향기에  젖어버리는 일이다. 뒤이어 나를 찾아오는 것은 차에서 풍겨나오는 한가로움의 부호 들과 청순한 기운의 고백들이다. 그 느낌의 마디마디를 자르면서 차물을 마시다 보면 차잎이 어김없는 풀로 태어났으나 사람들이 지고무상의 높이가 담긴 윙크를 보내는 리유를 알만하다.  차야말로 신령스러운 풀 가운데서 으뜸일지어다!        나는 차한잔으로 잠시나마 스스로와 이야기 해보는 시간을 즐긴다. 그래서 나는 ‘차를 마시면서 인생을 얻는다’고 말한 사람의 말에 깃든 의미를 새길 수 있다. 차 한잔을 앞에 놓으면 우선 계절과는 관계없이 연녹색의 세계부터 향유하게 된다. 그 차를 마시면 몸의 세포마다를 다시 줄세워주는 듯한 편안함을 느낀다. 그 다음 한모금을 마시게 되면 마음에 쌓였던 먼지가 씻기면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된다. 노여움으로 차있는 마음의 얼굴도 보이고 어떤때는 교오자만으로 차 있는 자세도 보이며 어떤 때는 일에 절어서 삶의 아름다움을 못느끼고 있는 마음의 바탕도 들여다 보인다. 차를 한 잔 하면 이러한 자신의 모습에 말을 걸어보게 되고 새롭게 꾸며보려는 자신을 발견하게도 된다.         나는 마음에 앙금이 생겼을때도 그것을 희석시키는 일을 차 한잔에 맡겨준다. 시대의 흐름에 종양이 생겼을 때나, 새 손님을 모시는 잔치도 삶의 손이 터실해졌을 때도 차 한잔에 부탁한다. 그런가 하면 저기 멀리멀리 원해로 떠나버린 정의 쪽배를 되돌리는 거대한 일도 따듯한 한잔 차로 해결의 단추를 연다. 정말 누군가가 늘 함께하는 꿈의 부처님을 품고 산다면 아마도 그것의 정리과정은 차 한잔이 필요할 것이다. 자그마한 한잔으로 마음을 비춰주고 마음의 생김새에 잘 어울리는 파란 그림을 그려진다.        인간은 살아가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말은 세상이 내몸에 지워준 짐들을 엮어서 지고 걷는다는 말이 된다. 그 짐을 가볍게 지고 가려고, 그 짐을 멋지게 지고 가려고 우리는 몸부림을 친다. 그 와중에 차를 마신다는 것은 잠깐이나마 허기진 마음에 쉼을 주고 어루만져주는 것이다. 차잔을 들고 향을 음미하는 시간은 유익의 억대 플러스이다.         이렇게 나는 차에 취한 여자로 산다. 정과 사랑에만 취하는 것이 인간본연인 줄 알았던 내가 차에 취할줄은 몰랐다. 취함이란 여유로움의 좌판을 마주하고 앉아 차잔을 기울이고 한담을 풀어내며 세월의 한오리를 자를 때 오는 우스운 만족일가! 아니면 눈가의 주름살도 잊고 마음의 오지까지를 드나들면서 충만감을 빚어내는 박수 같은것을 두고 하는 말일가!  혼탁의 세계로 달려가려던 마음의 수문을 유연하게 막고 또 하나의 세상을 열어보는 상서로운 기운일가! 모를지어다! 인생의 무기력에 쫓기고 뜯기고 핧귀고 하다가도 차한잔을 들고 차잔을 곱게 기울이면 어언간 마음의 발길은 행복을 향한다.        내가 이렇게 차잔에다 삶의 여유를 담고 있을 때 어떤 이는 술향으로 시작과 마무리를 바라는 세상으로  행진하기도 한다. 술에 취하는 것이 어찌 만천사를 다 포용한 차의 게임이 되겠냐만, 차와 술을 가지런히 세워 본다. 술에 취하는 것은 일단은 심장부터 마비시켜야만 가능해지는 일이라고 할 지어다. 가슴의 약속을 술에게 저렴하게 팔아먹었는데 또 뭐가 중요한 것이 있을소냐! 그러니 술에 취했을 때는 쓰리고 어지러우며 속의 것을 다 퍼낸것 같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그 허전해진 껍데기를 채우려 혀바닥이 굳어질 때까지 헛말을 하는 것이겠지! 힌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말에 담기 거북한 그 무엇으로 심장에 든 공허를 쫓아내야 한다는 얘기이니, 과연 이를 참아내고 자신을 건지는 자가 있기나 하려나 몰라! 모르긴 몰라도 술독에 들어갔다가 양말을 넥타이 대신으로 매고 나선 사람을 웃을 것도 없다. 누구든 술의 유혹에 빠져있는 시간엔 아름다운 함정의 손을 잡고 또렷한 의식의 여명이 올 때까지 헤매며 발이 가는데로 거닐어야 하는거니까!        술에 흩어진 맥을 잡아주는데는 차만한 것이 없다. 알콜이 들어가 휘정거려놓은 혈액을 고요하고도 잔잔한 한잔의 차로 안정을 찾아주고 희열이 고여오르게 하고 가슴에 넘쳐나게 하며 그것을 오랫동안 유지하여 준다. 이것은 차 한잔이 향유하고 있는 특권이다. 화가 났을 때 커피숍에 가서 커피 한 잔을 테이블 가운데 놓고 진 정해 보려고들 하겠지만, 커피 한잔의 힘을 어찌 감히 푸른 자연의 심장을 닮은 파란 차물에 견주랴. 차에 꼭 맞는 적성은 미소이고 나눔이고 다정다감함이라 했거늘, 횡설수설을 뿜어대는 사람이 잔잔하고도 거대한 그의 지성 앞에 나설수가 있겠는가!       영혼을 재는 잣대를 가지고 희노애락의 사이즈를 진단해 낸 후에야 상대자를 마 주하는 것이 차물이 갖고 있는 인격이라 했거늘, 마음을 차분히 정리하기 전에 그와 만나기를 삼가하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 아닐가!         평안하고 평화로운 마음을 기울여 한가로움을 지어내는 일에는 차를 따를자 없 을지어다. 벗과 더불어 찻잔을 기울이며 한담을 하면 세속의 미가 도처에 있는듯하여  마음 컨디션에 대한 최고의 오일마사지가 될지어다. ‘시간이 곧 돈이다’ 라는 관념카드를 앞에다 놓고 차를 마시는 사람은 그 시간이 낭비로 생각될지 모르겠으나, 사람이란 노년을 향해 살아가는 존재이니 시간을 제로로 무시하는 때도 있어야 하지 않을가! 우리가 한가한 시간을 내여 매일 한 두잔의 차를 마신다면 머리를 고요하게 하는 휴식이 될 수도 있고, 마음의 균형을 이루어내는 유익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잔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다시 마시면 생각이 깊어지며 마음의 번뇌가 사라지고 혼미한 정신이 번쩍 깨어나며 목이 시원해져서 청아한 목소리를 낼수 있다.’고 한 옛시구가  천만대사람 들에게 회자되는 리유가 자명해진다.        일에 쫓겨서 바쁘다를 입걸이로 걸고 사는 요즘 인간에게 차를 마시며 삶의 아름다움을 음미할 줄 아는 자신을 훈련한다는 것은 지극히 필요하고 또 지극히 인성적이라 할 지어다. 지나치게 격렬한 하루들로 일상 생활을 영위하다 보면 일의 뺑뺑이만 돌리게 되고 돈맛만 그리게 될 것이니, 잠깐이라도 시간을 비우고 차 한잔 하면서 마음의 때를 밀어주는 시간을 가져봄이 어떠할지. ‘향기로운 차는 헛된 꿈을 깨게 만든다’고 육유는 말했고 ‘한잔의 찻물은 종일토록 두눈을 반짝거리게 한다’고 증공은 읊었으니 차향기 속에 인생을 담아놓고 잠시 취할 만도 하겠다. 한 두 줄기의 차향기가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어주며, 생활의 긴장을 잊게 하고 번뇌와 세속의 때를 하늘 밖으로 던져버리게 한다는데, 이보다 더 바랄게 무엇이 있을소냐! '너무 부림을 받은 말은 곧 쓰러진다'고 한 장자의  말이 인간더러 짐을 내리어놓고 쉬어가 면서 차향을 느껴보라는 독려가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이제 ‘푸른 차잎 가라앉으니 노을빛 같은 감로수 우러나고, 차향기 풍 겨오니 그 맛이 산뜻하구나’라는 시구에 영혼을 불어넣을 때가 왔다는 것을 느낀다.                                  발표내역:  ( 2021년 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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