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연휴가 왔습니다. 오늘도 남편은 그림의 세계에 상상력을 도배하고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예술의 광장에 가면 자연은 언제보나 진솔한 도우미 역할에 충성 다하며 산답니다. 갖가지 유화오일로 새로운 색상을 만들고 있는 남편의 뒷 모습 너머 보니 이제 막 초봄 차림을 벗고 여름의 입구 앞에 선 백두산천지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숲과 꽃이 어우러져 빙 둘러 손잡고 서서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거룩한 천지와 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 아름다움의 초대장을 받은 내 마음 공간 또한 순간 아담하고 싱싱한 숲이 된듯 합니다.
봄은 가고 있습니다. 가는 계절의 미학은 우리에게 영원한 것이란 이 세상에 없 는 법임을 말해줍니다. 그야말로 계절에도 생리연령이 있으니 한 세대가 가면 또 한 세대의 탄생이 오는 법입니다.
인간도 자연의 자식인 계절을 닮았나 봅니다. 그러니 오늘도 이런 자연의 보석으 로 이루어진 땅 위에서 나름 삶의 마당을 닦고 어색함 없이 살아 가는가 봅니다.
봄이 작별 인사를 보내니 포름포름 초여름이 상큼거립니다. 시장문화가 발달한 이 고장에는 제철 야채가 문앞에서 반기고 체감에 따른 의상패션도 세계를 아름답게 장식합니다. 세월의 숨소리가 한창 바뀌고 있나 봅니다. 나도 그러한 바꿈에 익숙해진 세상의 표정을 따라봅니다. 새 인생을 열어줘야 할 겨우내 잠자던 옷가지들 , 따사로운 해볕 아래 해독을 시켜야 할 옷가지들, 이 시각부터는 장농 깊숙한 곳으로 잠적을 시켜야 하는 옷가지들… 한 가족에게 새 마음, 바뀐 기분으로 새 삶을 맞이해야 할 의무를 지닌 계절 옷 정리에 하루라는 시간의 허리를 통째로 잘리웠습니다.
스케줄 book을 봅니다. 에어로빅 코스가 다음입니다. 기분이 금방 흥분의 너울을 씁니다. 체내의 독을 땀으로 일소해 주는 건강지기로. 피곤을 죽이는 해시시로 사는 것은 운동이 누리는 삶의 전부랍니다. 큰 거울 앞에 츄리닝 차림으로 흘러나오는 스포츠 리듬을 밟으며 일에 시든 육신의 세포에 통풍을 시켜줍니다. 마음과 표정은 금방 젊음의 에너지원을 찾아갑니다.
집문 들어서기 바쁘게 욕실에 들어갑니다. 땀의 축복을 받은 몸은 물의 세례를 갈망합니다. 집이라는 안식처에 있어 샤와는 나에게 제2의 휴게소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벼락입니까! 샤워실에 켜진 등불이 명멸하고 침침습습한 냄새가 후각 신경을 파고 들어옵니다. 화장실 천정에서 물방울이 락하산을 타고 면상 위에 내려왔습니다. 눈앞 일에 양호했던 기분이 짜증으로 오염되기 시작합니다. 위층 이웃 출입문을 노크했습니다. 한참 후에야 문이 열렸습니다. 할머니분이었습니다.
기분 제어가 잘 되어 있지 않았는지 나의 두 발은 성큼 이웃 거실에 들어섭니다. 수도물 장치가 고장 났나 봅니다. 화장실과 인접한 거실쪽은 물이 자유를 누리고 있 습니다. 불쾌감으로 발작 일보 직전이던 심정은 잠깐 주춤해졌습니다. 억양에 부드러 운 올리브를 발라 물이 아래로 줄줄 세고 있으니 수리전담소에 신고하는 게 어떤가 제안을 붙여봅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아니요' 라는 가위로 내 호의의 테이프를 싹둑해버립니다. 은행 간 주인 아저씨가 귀가하면 돈푼 안 들이고 바로 수리 가능하다며 생뚱 고집울타리를 세 우고 나섭니다. 내 인내의 뚝이 끊어졌습니다. 자신을 끝내 말리지 못했습니다.
‘아이구 할머니두, 언제 아저씨를 기다린다구 그러세요. 우리집 화장실 천정이 줄줄 쇠고 있는 거 못보셨군요!’
나의 딱딱함 앞에 할머니는 한걸음 양보했습니다. 주인 아저씨에게 전화를 하라며 거실 구석쪽에 놓인 수화기를 가리켰습니다. 천만다행히도 할머님 사리의 눈금은 파랗게 살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화기쪽으로 가다가 발목이 잡혔습니다. 주방쪽에서 '주르륵, 뚜욱 뚜욱' 거리는 애기 물장난같은 소리가 청각의 문고리를 잡았습니다. 눈길을 그쪽으로 돌려 보니 백발 할머니가 난쟁이 쪽걸상에 앉아 물먹은 걸레를 쥐여짜고 있었습니다. 허리 굽혀 인사를 드렸건만 응답조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의아해진 나를 보며 ‘귀가 갔 어요’ 라고 할머니가 뀌띰했습니다.
할머니는 이번엔 놀라움에 커진 내 눈을 마주보며 자기 시어머니라고 덧붙혔습니다. 하늘 사람이 전해주는 말 같았습니다. 할머니가 할머니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고 있다 니, 나는 입을 딱 벌렸습니다. 나도 인륜의 아름다움을 구겨 밟고 노인네와 멀리하는 것에 익숙해진 시대에 살고 있는 똑똑한 바보이었나봅니다.
알고 보니 아흔 셋 고령의 시어머니와 예순 여섯되는 며느리가 한집에서 43년을 함께 살았답니다. 스물 셋에 시집와서부터 지금까지라고 할머닌 담담한 웃음을 보였 습니다. 나는 할머니와 마주하고 앉았습니다. 천상 락하수땜에 찾아 갔다는 건 완전 망각해 버렸습니다.
문을 열어준 분은 며느리 할머니였습니다. 그는 여자로 걸어온 스스로의 시집살이 인생에다 단백하고도 자그마한 점 하나를 달랑 찍었을 뿐입니다
‘’말도 말아요’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사랑에 찍어주는 점처럼 아름다움으로가 아니라 역사의 위인 에게 찍어주는 거룩함의 피조물이 되여 내 인지의 세계를 빈자리 없이 채워 주었습 니다. 시집살이 설움 많이 겪었다든지, 사는 게 식상하다는식의 한탄같은 건 시궁창 에 버린지 오래랍니다. 분명 하마슐더가 남긴 말처럼 “지나간 모든 것에 감사하고 다가 올 모든 것을 긍정하면서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그를 지탱했나 봅니다.
그 할머니는 행복한 고생을 먹으며 사는 게 인고를 초월한 보람된 것임을 아십니다.
정말 세상 터널을 빛으로 살아 나왔다고 하는 며느리 할머니의 마음 우물에 고여 있는 정답이 무엇일가가 궁금해 집니다. 미지의 집을 탈출하고자 지혜의 정미소를 방문합니다. '참을 인'자 하나가 인생의 선구가 되여 걸어가는 길에서 만나는 모든 ‘점’ 들에 보낸 미소, 삶의 정체성에 대한 무한한 확신,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시어머니 할머니가 주방에서 나오셨습니다. 쏘파에 와 앉았습니다. 머리카락 겉층에 티끌같은 것이 묻어 있었습니다. 며느리 할머니는 시어머니 할머니에게 '이리 좀 와 바’ 하더니 그것을 떼여 주었습니다. 딸을 대하듯 하는. 혈육같은 이야기가 그 짧은 말 한마디 속에 또렷또렷 펼쳐졌습니다. 따뜻하고 깊은 온정의 아름다운 사실화 그대로 이었습니다.
그 정경을 보며 들으며 느끼고 있을라니 마음의 계곡에 아름다운 격류가 만들어 집니다. 그리고 그 위로 순금의 옷을 입은 감동의 무지개가 화알짝 비껴오고 있음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 세상에서만 볼 수 있는 최정상 풍경입니다. 그 풍경 위를 거닐었다는 참 좋음이 내 마음의 집을 따뜻하게 포옹해 줍니다.
지금도 며느리 할머니의 미담은 세월의 줄을 타고 열려있는 마음과 마음들의 세계로 흘러갑니다. 나무가 흔들리지 않음은 뿌리의 깊음에 있고 인간이 인간다움은 효라는 마음의 풍경을 갖고 있음으로 가능합니다.
아마도 인간에겐 자잘한 삶의 이야기들이 있어 지척에 태양을 둘 수 있고, 거룩한 아름 다움이 있어 시대를 주름잡아 갈 수 있나 봅니다. 그야말로 우리는 누구 나 이 고운 느낌 하나하나를 부각하며 사는 인생의 조각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도 우리는 두 손에 조각용 찰흙을 부드럽게 이겨 들고 삶을 조각해 가고 있습니다. 그대는 지금 어떠한 인생상을 조각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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