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춘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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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사랑의 밧떼리
2023년 01월 05일 22시 04분  조회:145  추천:0  작성자: 남춘애
                         사랑의 밧떼리
 
                                
 
     여자는 물이라고 했던 ‘홍루몽’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물은 깨끗 정결하여 만사람의 사랑을 그득하니 받고 살아갑니다. 물은 또한 소중함으로 하여 그에 생명이란 두 글자를 붙여주어도 손색없는 존재입니다. 물은 자연이 살아가는 에너지원이고 인간을 생존케 하는 목숨입니다. 물은 여자이고 물은 생명이며 생명이고 여자입니다.
      물로 일컬어지는 여자는 결혼하면 곧바로 한 남자의 아내가 됩니다. 아울러 한 남자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삶이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여자들은 결혼을 하면서 자기 옆을 지키는 남편이란 나무를 단지 바람도 막아주고 그늘도 만들어주는 것으로 알고 남편에 기대여 매일 행복이란 그늘아래서 살아가기를 원하고 또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애초엔 언제나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곱게 담아 다정스러운 눈길로 남편을 사랑스럽게 바라봅니다. 그 눈길에 남편은 혼신을 다해 값가는 삶을 만들어 내기에 흰머리가 되고 허리가 휘어집니다. 그러다 보니 여자는 남편 사랑으로 신분승격을 하여 아내로서의 시발점을 넘어버리고 어느듯 엄마라는 종점까지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남편을 관찰하고 가끔 박수도 쳐주고 사기도 살려주던데로부터 그에서 귀찮아져 무조건 평가하는데로 넘어가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일방식 대화가 줄줄이 늘어나게 되지요. 당신은 화장실 쓰고 왜 물을 안 내리고 그래?  당신은 왜 손도 안 씻고 식사해? 당신은 왜 늦어 집에 와? 당신은 왜 휴대폰만 끌어안고 살아? 당신은 왜 다른 여자와 채팅해? 당신은 왜 방귀가 그리도 많아? 당신은 무슨 코를 천둥소리같이 굴어?...등등. 그러면서 자기도 유의하지 못한 사이에 그 남편나무가 싫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런가 하면 사람하나에 보따리가 한 광주리라고 하여 남편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남편때문에 시야가 가리고 항상 돌봐줘야 하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할 때도 많아진다는 생각이 점점 새깨를 쳐 심중에는 남편에 대한 불평과 투정과 미움의 나무가 자라기 시작합니다. 말하자면 사랑으로 가슴과 가슴을, 몸과 몸을 하나로 합했지만, 또 백년을 사랑의 초심으로 이어가려 했지만 사회와 세월의 연기에 그을러버려서 이젠 남편이 싫어지기 시작했다는 말이 됩니다. 싫은 정도면 그래도 괜찮다고 하겠지만 싫다 못해 귀찮아지고 밉기까지 하게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뿌리 없는 짜증도 내고 그이가 하는 일에 내조보다 심술을 부어놓고 힘들게 합니다.
     이러한 세월이 길어지면서 아내들은 남편나무가 시들기 시작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족에 대한 애심이 점점 줄어드는가 싶다가 아내와의 대화도 끊기기 시작합니다.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몇마디 대화가 없고, 멀리 출장 가 있어서 전화를 한통 해도 서로가 할 말이 별로 없고 해서 이유없이 멋적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남편은  아내들의 곁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남편들은 친정의 일에, 자식의 일에 얼굴의 앞면과 마음의 전부를 투자해버린 아내를 이해하는가 싶다가도 언젠가부터는 소외하고 외면하고 남일처럼 대하게 됩니다. 그런날이 길어지면 어느날부터는 안색이 거무 튀튀해지고 식사도 별로 맛있게 하지 않고 이어서 시름시름 시들어가는 나무처럼 생기가 부족해지기 시작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갈라터진 삶의 터전에서 뿌리내려 베겨내기를 잘하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는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러한 세월이 흘러가던 어느 하루 남편한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집에 빨리 한번 오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직장에서 하던일을 뒤죽박죽으로 해놓고 부랴부랴 차를 달려 집에 가니 남편의 손에는 진단서 한장 달랑 들려 있었고 몸은 분명 떨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몸에 심한 태풍이 찾아온 것입니다. 태풍이 지나가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릴 수 있다고 하면서 따뜻한 위안의 말로 남편의 마음을 펴게 하려 했으나 남편은 그 거센 비바람에 더는 버티지 못하고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사랑의 먹이가 부족한 남편에게는 태풍을 견딜 수 있는 견인력과 항체가 생기지 않았나 봅니다.
이제는 강해질대로 강해져서 아무리 뜨거운 태양이라해도 남편나무 없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고만 여겼던 나의 애초의 생각과 마음이 폴싹 내려 앉고 말았습니다. 남편 없이도 근사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그 생각은 틀렸다는 것을 나는 알아내고 말았습 니다. 삶의 마당에서 올리뛰고 내리뛰고 하면서 살아가다 보니 30년 세월을 훌쩍 떠나보내고 나서야 이러한 마음의 성장이 이루어졌습니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음의 그늘진 곳을 나오면서 자신을 깨닫고 일어서야 했습니다.
아내의 사랑이 부족해서 참고 견디고 버티고 강한체하면서 살다가 끝내는 쓰러 져버린 남편나무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알고 말았습니다. 살아가면서 받는 것에 습관이 되고 주는 것에 인색해져서 남편의 사랑은 그저 받기만 하면 된다고 여겼던 생각의 집을 뿌리째 털어낼 때가 되었음을 절감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만 생각하는 그 사이에도 남편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해빛막이로 되어주었 는지를 깊이깊이 깨달았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라는 식으로 마음에 새 길을 열어주고자 함입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남편 앞에서 도고했던 몸과 마음을 굽혀서 정성과 사랑을 모아서 이미 쓰러진 남편 나무를 다시금 일으키고 싶습니다.
    이제 돌아서서 나 자신이 걸어온 마음의 길과 삶의 자세를 보노라니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자기 중심의 마음의 길을 넓혀서 남편나무를 앞에 세우고 사랑을 받는 것이 천만지당한 것으로 알고 받고도 고마움으로 돌려주지 못했던 삶의 자세를 낮추어서 남편을 일으켜 세우고 싶습니다. 물의 밑에는 바다가 있고 몸을 낮추면 왕이 된다고 했습니다. 여자로서 아내로서의 몸을 좀 굽혀서 살아 올라가는 높은 남편나무의 원조 모습을 보고 싶어집니다.
       부부회사 경영에는 주고 받는 사랑이 심히 기울어지지 않도록 관찰해내는 능력이 필수입니다. 이제부터 사랑으로 그이 곁에 내내 서 있을 겁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고 남은 인생을 살아갈 겁니다. 남편 나무님 오랫동안 죄송했습니다. 앞으로는 잎이 마르거나 시들기 전에 남편이란 나무에 사랑의 거름을 주면서 살아가려 합니다. 남편 나무는 사랑을 먹고 사는 나무 입니다.

  

                      발표내역: <청년생활>(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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